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18:07:29

리오 퍼디난드

리오 퍼디난드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팀 수상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attachment/FIFPro_logo.png






파일:PFA.png
2012-13 PFA 올해의 팀
{{{#!wiki style="margin: -5px -7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0%, #FFFFFF 20%, #FFFFFF 80%,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0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FW
루이스 수아레스
(리버풀 FC)
FW
로빈 판페르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MF
에덴 아자르
(첼시 FC)
MF
마이클 캐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MF
후안 마타
(첼시 FC)
MF
가레스 베일
(토트넘 핫스퍼)
DF
레이턴 베인스
(에버튼)
DF
리오 퍼디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DF
얀 베르통언
(토트넘 핫스퍼)
DF
파블로 사발레타
(맨체스터 시티)
GK
다비드 데헤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

}}} ||
리오 퍼디난드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1년
지네딘 지단
(7750만 €)
2002년
리오 퍼디난드
(4,600만 €)
2003년
데이비드 베컴
(3750만 €)

}}} ||
파일:external/1.bp.blogspot.com/Rio%2BFerdinand%2B18.jpg
BBC 해설위원
리오 개빈 퍼디낸드[1]
(Rio Gavin Ferdinand)
생년월일 1978년 11월 7일
국적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출신지 런던
신장 191 cm
체중 84 kg
혈액형 A형
포지션 센터백, 골키퍼[2]
소속 클럽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1995-2000)
AFC 본머스(1996-1997)(임대)
리즈 유나이티드 FC(2000-20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02-2014)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2014-2015)
국가대표 81경기 3골
가족관계 안톤 퍼디난드(동생)
1. 개요2. 클럽 경력
2.1.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2.2. 리즈 유나이티드 FC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3.1. 입단 초기2.3.2. 2005/06시즌2.3.3. 2006/07시즌2.3.4. 2007/08시즌2.3.5. 2008/09시즌2.3.6. 2009/10시즌2.3.7. 2010/11시즌2.3.8. 2011/12시즌2.3.9. 2012/13시즌2.3.10. 2013/14시즌
2.4.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수상 기록
5.1. 우승 기록5.2. 개인 수상
6. 퍼디난드에 대한 말, 말, 말7. 트리비아
7.1. 프로복서
8. 사건 사고
8.1. 도핑 테스트 불참8.2. 불륜 사건

1. 개요

리오 퍼디난드는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네마냐 비디치와 함께 맨유 주전 센터백으로 맨유의 전성기를 이끈 맨유와 EPL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뽑힌다.

2. 클럽 경력

2.1.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파일:Rio-Ferdinand-westham.jpg

런던베컴페컴(Peckham)에서 태어난 퍼디난드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였다. 그는 처음에 스트라이커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센터백 포지션으로 옮겨갔다. 1992년, 웨스트 햄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같은 시기에 웨스트 햄 유스였던 선수들 중에는 프랭크 램파드조 콜 등이 있다. 당시 퍼디난드의 재능을 발견한 건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이다.

1996년 5월 5일, 퍼디낸드는 셰필드 웬즈데이와 1:1로 비긴 홈경기에서 교체 출전함으로써 성인 클럽에 데뷔하였다. 퍼디난드는 빠른 속도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서 리그에서 돋보이는 센터백으로 성장했고, 97-98 시즌에는 20세의 나이로 웨스트 햄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2.2. 리즈 유나이티드 FC

파일:rio-ferdinand.jpg

01-02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퍼디난드는 그 당시 수비수로서는 최고 몸값이었던 1800만 파운드에 리즈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진짜 리즈시절이던 리즈의 핵심 일원으로 자리잡았다.[3] 2001년 8월에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주장이 되었다. 그러나 리즈가 과도한 지출로 인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자,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퍼디난드는 그해 이적 시장 최다 이적료인 2900만 파운드에... 하필이면 숙적인 맨유로 팔리게 되었다.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파일:external/img.vavel.com/ferdinand-y-vidic-2897090939.jpg

퍼디난드가 잉글랜드의 당대 월클 수비수로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잘 해왔고 많은 우승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 거래는 비싸게 주고 데리고 왔다는 의견도 많다. 당시 리즈 유나이티드는 그냥 어려운 정도가 아닌 풍전등화 수준이어서 타 클럽과 영입 경쟁이 붙더라도 이적료를 충분히 깎을 수 있었으며,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수비수로 평가받는 알레산드로 네스타야프 스탐의 이적료(이들도 똑같이 이적할 당시 원소속 SS 라치오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와 비교되는 부분도 있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잉글랜드 프리미엄"(자국 선수의 몸값 뻥튀기)도 적용했을 것이다.[4][5]

다만 맨유와 리즈가 리버풀 못지 않은 앙숙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라이벌팀의 핵심 선수를 빼내오는 것이기에 좀 더 많은 이적료를 지불해야 했던 점도 있다. 실제로 아스날에서 로빈 반 페르시를 영입할 때도 벵거는 맨유가 상대라면 원래 책정해놓았던 20M 파운드보다 더 받아야겠다고 버텨서 옵션포함 24M 파운드의 금액으로 팔았다. 1M 달러로 리즈에서 맨유로 이동한 에릭 칸토나의 경우도 있지만 칸토나는 실력과 별개로 그 성깔 때문에 리즈측에서 감당하기 힘들어하던 찰나에 맨유가 지른 거라 적은 이적료로 거래가 성사된 것.

2.3.1. 입단 초기

나중에 수비진 파트너가 될 네마냐 비디치처럼, 맨유 시절 초반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호나우두가 맨유를 관광보냈을 때 중앙수비수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보자. 그래도 이적한 첫 시즌에 팀이 리그 우승과 2002-03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소실점에 크게 기여했다.

2003년 후반기, 퍼디난드는 의무적 약물 검사에 불참하여 징계를 받게 되었다. 퍼디난드는 이사하느라 까먹었다고 말했고, 이에 빡쳤는지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퍼디난드에게 8개월 출장 정지를 명령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건사고 항목 참조. 덕분에 맨유는 단단했던 수비가 흔들리며 으로 후반기 리그 3위로 추락했으며, 유로 2004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퍼디난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6]

2.3.2. 2005/06시즌

퍼디난드는 05-06시즌부터 더욱 안정감을 찾아갔고, 출전 수도 자연스럽게 더욱 많아지고 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나이도 전성기일 나이인지라 더욱 팀의 중요한 선수가 되고 있다. 하지만 팀은 챔스 조별리그 4등으로 광탈하고 리그또한 첼시에 밀려 2위에 머물고 있으며 fa컵또한 탈락하고 만다. 그래도 시즌 후반기에 자신의 영원한 파트너인 네마냐 비디치가 영입되며 둘이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늘었다. 파트리스 에브라도 영입되어 에인세와 경쟁에 들어갔다. 또한 시즌 시작전에는 에드윈 반 데 사르, 박지성등이 영입되기도 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팀이 전성기를 달릴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팀은 끝내 리그 우승 판도를 뒤집지 못 해 준우승에 그치고 아쉽게 리그컵 우승에 그쳤다.

2.3.3. 2006/07시즌

06-07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네마냐 비디치가 실베스트르를 밀어내고 프리미어리그에 적응을 하면서, "'퍼디치"' 조합과 뒤에 받혀주는 경험 많고 거대한 골키퍼 에드윈 반 데 사르는 수많은 팀들의 공격진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팀이 수비적으로 안정되고 높이도 높아졌다. 또한 이 시즌부터 반니가 없었지만 호날두가 포텐이 터지고 마이클 캐릭이 영입되는 등 많은 보강이 이루어져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고 있다. 리그에서 첼시,리버풀,아스날과 경쟁 중이며 간만의 우승이 보이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1차전에는 2대1로 패했으나 2차전에서 무려 팀이 7골을 뽑아내며 7대1로 승리하여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1차전 3대2 승리했으나 2차전에서 3대0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래도 그의 활약과 많은 선수들에 힘입어 정말 간만의 리그우승을 거두었고 fa컵도 우승은 실패했으나 결승에 진출했었다. 퍼디난드는 본인의 전성기가 팀의 전성기와 겹쳤다.

2.3.4. 2007/08시즌

파일:RIO_793265.jpg

네빌의 장기부상으로 주장 완장을 다는 날이 많아졌고 그의 활약또한 여전히 일취월장하다. 팀은 역대급 페이스를 달리고 있고 본인또한 정말 많이 출전하고 있다. 비디치 또한 지난 시즌보다도 더욱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철벽의 센터백 듀오를 유지 중이다. 테베스와 호날두 그리고 루니가 주전 공격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는 미드필더진, 그리고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브라운의 포백에 반 데 사르가 수문장으로 활약하니 당연히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죽을 맛.

시즌 중반 리버풀과의 리그 경기에서는 비디치와 함께 철벽같은 경기력으로 무실점에 큰 기여를 했고 3대0 대승했다.

챔피언스리그는 8강에서 또 다시 로마를 상대로 쉽게 이기며 4강에 진출하여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차전 0대0 무승부, 2차전은 스콜스의 골로 바르샤를 꺾으며 1999년 이후 첫 결승전에 진출했다. 사실 퍼디치의 이날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엄청났고 어쨌든 퍼디난드 개인 첫 챔스 결승. 리그 최종경기까지 가는 끝에 리그 우승이 확정되는데 최종전에서 2대0 승리를 거두며 첼시를 따돌리며 2시즌 연속 우승을 거둔다.

첼시 FC를 꺾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맨유의 주장을 맡은 건 퍼디난드였고 2008년 월드 베스트11에 들기도 했다. 팀은 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다.

2.3.5. 2008/09시즌

08-09 시즌 또한 비디치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는데 잔부상으로 결장 수가 조금 늘었으나 중요 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출전 중이다. 비디치의 뚝배기 또한 강력해졌다. FIFA 클럽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나왔으며 결승에서 5대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펼쳐진 첼시와의 경기에서 비디치, 루니, 백작의 골로 3대0 승리했다.

이후 리그컵을 우승하며 트로피를 한 번 더 들어올렸고 리그에서 리버풀이 끝까지 쫓아오며 맨유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어린 선수들의 활약으로 극장골 등 꾸역승을 거두며 선두자리를 계속해서 지킨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는 아스날을 만나 홈에서 승리를 거두고 2차전에서도 박지성의 선제골과 호날두의 멋진 2골로 3대1승리하며 2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리그도 끝내 우승을 거두며 3연속 리그 우승을 성공했다. 특히 비디치와 함께 공중볼 싸움에서 정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로마에서 펼쳐진 챔스 결승에 선발 출전했으나 팀은 에투의 골과 메시헤딩골로 바르셀로나에 2대0으로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다. 이 경기는 호날두의 맨유 소속 마지막 경기

2.3.6. 2009/10시즌

09-10 시즌부터 잔부상(특히 등부상)으로 인해 퍼디난드는 자주 결장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간간히 맡던 주장직도 내놓고 말았다. 원래 주장은 개리 네빌, 부주장은 라이언 긱스지만, 이 둘이 부상과 나이 때문에 꾸준히 출장을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퍼디난드가 주장 완장을 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맨유에서 정식으로 주장으로 임명된 적은 없고, 네빌 이후 정식으로 맨유의 주장이 된 것도 파트너인 네마냐 비디치였는데 이는 과거 첼시 이적 문제로 시끄러웠던 때에 퍼거슨의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이 때부터 가끔씩 정신 놓은 플레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 리그에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진 맨체스터 더비에서의 패스미스는 매우 욕 먹었다.[7] 출전 수가 리그에서 20경기가 채 안될만큼 부상이 잦으면서 컸지만 퍼디난드가 없는 맨유 수비진은 조금 불안했다. 이 시즌에 팀은 리그컵을 우승하나 챔스 8강 리그 2위에 그친다.

2.3.7. 2010/11시즌

2010년 여름에 당한 무릎 부상 때문에 10-11 시즌 초반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맨유 수비진도 시망 비디치 지못미 확실히 퍼디난드가 다시 출전하기 시작한 후로는 수비진이 안정된 모습이 보인다.

시즌 중후반기에는 다시 퍼디난드가 중용되면서 비디치의 부담도 줄어들었고 다시 탄탄해진 수비를 유지중이다. 리그는 경쟁팀들의 부진으로 승점 단 80점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챔스에서도 라울 곤잘레스가 있는 샬케 04를 만나 4강 1차전 2대0, 2차전 4대1로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챔스 결승에 진출했고 바르셀로나와 다시 한 번 붙게 되었으나 3대1로 패배하여 리그 우승에 만족해야했다. 이제 퍼디난드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앞으로 고질적으로 겪게 될 등 부상을 어떻게 최소화시켜 나갈지가 가장 큰 숙제이다.

2.3.8. 2011/12시즌

비디치가 장기부상으로 빠진 수비진을 굳게 책임진 시즌

11/12시즌 시작 전 커뮤니티 실드에서 3대1로 승리하며 기분좋게 시작하나 리그 개막전부터 파트너인 비디치가 큰 부상을 당하며 나가리된다. 결국 새로 온 필 존스가 중용되며 같이 활약한다.

그러나 06/07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봤을 때 가장 팀이 부진한데 아스날을 상대로 8대2로 승리하기도 하나 맨시티 상대로 6대1로 패하기도 하는 등 약간 행보가 아쉽다. 특히 챔스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여 유로파로 가서 16강 탈락하는 등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 FA컵은 32강에서 리버풀을 만나 박지성이 득점을 기록하나 2대1로 패하여 탈락, 리그컵또한 탈락하며 리그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리그도 맨시티의 가세로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는 주전의 노쇠화와 새로 입단한 선수들의 부진이 원인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수비진은 비디치가 리그에서만 총 10경기를 소화하지 못하였고 오른쪽 풀백도 확고한 주전 선수가 없다.

그러다가 맨시티를 8점차까지 따돌리며 우승에 가까워지다가 이후 4경기에서 1승2무1패를 기록하며 다시 2등으로 추락하였고 최종전에서 득실점차이로 결국 준우승을 하고 만다. 하지만 퍼디난드 본인은 리그 30경기 출전하는 등 부상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며 다시 좋은 활약을 펼쳤다.

2.3.9. 2012/13시즌

파일:i15337874419.jpg

퍼거슨의 마지막 시즌이며 본인도 나이가 이제 많은지라 점차 맨유에서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주전으로 나와 활약 중이며 비디치도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주전으로 나오고 있다. 반 페르시가 영입되는 등 여러 영입이 이루어졌고 특유의 꾸역승으로 리그 선두 유지 중이다. 챔스는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합산점수 2대3으로 탈락한다. 호날두와의 간만의 만남이었다.

파일:img_20130513082716_0db7a58f.gif
이후 리그에만 집중하게 되자 팀은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고 퍼거슨의 마지막 올드 트래포드 경기에서는 1대1 상황에서 세트피스 골을 기록하며 2대1 승을 이끌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리그 28경기 1골로 12-13시즌 EPL 베스트 11에 뽑혔다.

2.3.10. 2013/14시즌

그러나 13/14시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다시 부상으로 시름시름 앓고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가 적어져 점차 주전에서 밀리는 중이다. 팀은 역대급 망 페이스다.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 중 파트리스 에브라만 꾸준히 나오고 있다. 또한 퍼디난드의 경기력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나올 때마다 불안불안하다.

결국 맨유는 퍼디난드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음을 내비쳤고, 2014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이 만료되었다. 7월 4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 협상이 완료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월드컵 중계차 브라질에 가 있는 퍼디난드가 복귀하면 바로 입단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2.4.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4년 7월 18월 자유 계약으로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1년. 수비가 좋지 않은 QPR에서 노련한 수비 지휘로 팀의 중심축을 잡아 주길 기대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영국 언론으로부터 최악의 영입 3위에 선정되어 불명예를 안았다.

다만 노쇠화로 기량이 저하되고 있던 시기는 맞지만, 부인이었던 레베카가 유방암에 걸렸었고, 부부 사이가 극진했던 퍼디난드가 멘탈적으로 크게 흔들렸던 것은 약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결국 투병생활을 하던 레베카와 2015년 5월 사별하게 됐다.

그리고 결국 2015년 5월 30일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대표

19세 하고도 8일째, 퍼디낸드는 1997년 11월 15일 카메룬과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면서 첫 번째 국대 출전기록을 세웠다. 당시 잉글랜드 국대에서 가장 어린 수비수가 되었는데 이 기록은 2006년 마이카 리차즈에 의해 깨어졌다. 20세때, 그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에 백업 수비수로 뽑혔지만 음주운전으로 인해 글렌 호들 감독은 최종 스쿼드에서 그를 제외하였다.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참가했다. 국내 방송사에선 "페르디난드"로 표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도 얼굴을 비췄으며 두 대회를 통틀어서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 잉글랜드의 2연속 8강에 공헌했다. 퍼디낸드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10번의 월드컵 경기를 치렀는데 잉글랜드 대표팀은 그 중 7번의 클린시트를 기록했으며 그가 피치 위에 있는 동안 겨우 4골만을 허용했다.[8] 2008년 3월 25일에는 퍼디낸드가 2008년 5월 26일에 있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퍼디낸드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서 3골을 넣었는데 첫 번째 골은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넣은 것으로, 경기 시작 5분만에 골이 뙇 들어가 덴마크의 참패에 일조했다. 두 번째 골은 유로 2008 예선 중 웸블리에서 러시아를 상대로한 2007년 9월 12일에 나왔다. 세 번째 골은 2008년 10월 12일 카자흐스탄과의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이다.

2008년 3월 25일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부임한 두 번째 국대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찰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FA의 발표에 따르면 리오가 주장으로 호명된 것은 월드컵에서 정식 주장을 결정하기까지 돌려가며 주장을 시켜보겠다는 카펠로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잉글랜드 주장은 존 테리로 결정되었고 퍼디낸드는 부주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존 테리의 사생활 문제로 인해 주장직을 박탈당한 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은 퍼디낸드로 선임되었다.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England+v+Platinum+Stars+Friendly+match+2010+xGqSwcflwJQx.jpg
부상 문제만 아니면 우승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본인이 부상 트러블을 일으킨 잉글랜드의 캡틴(…)
2010년 여름에 무릎 부상을 당해,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불참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시망.

이후 2011년 동생의 인종차별 논란 사건으로 인해 존 테리와는 사이가 멀어지면서 이를 고려한 로이 호지슨 감독은 UEFA 유로 2012 최종 명단에 퍼디난드를 탈락시켰다. 당시 맨유에서도 잔부상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괜찮은 폼을 보여주었는데 이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3년 3월 한동안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던 퍼디난드를 호지슨 감독이 다시 발탁한다는 소식이 나왔으나 A매치 주간에 퍼디난드의 개인 일정으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 얼마 후 잉글랜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유연함과 좋은 피지컬과 발재간으로 발로 공을 다루는 데에 능한, "부드러운" 수비를 하는 만능 센터백.[9] 퍼디난드의 장점은 속도, 힘, 피지컬, 테크닉, 위치선정, 볼 컨트롤 능력 전부를 갖춘 컴플리트 디펜더라는 점에 있다. 피지컬과 운동능력도 뛰어나지만, 퍼디난드를 대표하는 요소들은 부드러움, 유연함, 위치선정, 공을 다루는 능력, 중원과의 연계력 등이다. 즉, 만능 센터백이긴 하지만 볼-플레잉 디펜더에 더 가까운 셈.

다만 아쉬운 점은 위치선정 능력도 좋고, 보는 대로 상당한 장신이니 만큼 고공 플레이에 능하긴 하지만 코너킥 상황에서의 득점력은 떨어진다.[10] 당장 축구팬들이 생각나는 헤딩골도 최근이 아닌 먼 옛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16강 vs덴마크 전에서 넣은 선제골이다. 위에 언급한 셋피스서 헤딩 득점력보단 오히려 발재간으로 넣은 골이 더 빛을 발한다. 06-07 vs리버풀전에서 성공시킨 골은 환상과 침착함 그 자체. 또, 과거 EPL 경기에서 후반전 후반 공격수 자원 부족으로 선수교체 이후 포메이션이 꼬이자 아주 잠깐 공격수 룰을 맡기도 했다.

전성기때는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훌륭한 공간 커버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뒷공간 침투를 주무기로 삼는 공격수에게는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 AC 밀란을 상대로는 퍼디난드가 결장하면서 스피드를 주무기로 삼는 카카에게 탈탈 털려서 세골을 넣고도 다섯골을 내줘서 결승진출에 실패했지만, 07-0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FC 바르셀로나전에서는 똑같이 스피드를 주무기로 삼는 사무엘 에투를 퍼디난드가 나와서 꽁꽁 묶었고, 결승에 진출하는데는 한 골이면 충분했다. 퍼거슨이 2009년 3월 기준 인터뷰에서 자기가 지도해 본 선수들 중 가장 빠른 선수들 중 한명으로 꼽기도 했다. [11]

다만, 정신줄을 간간히 놓는 게 문제.[12] 대표적인 삽질 케이스로 05-06 시즌 포츠머스 FC 원정 경기. 맨유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키퍼 에드윈 반 데 사르와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이 시즌 초부터 종종 있었는데 이 경기에서 결정적으로 백헤딩으로 패스한 공이 그대로 골대로 들어가 어이없는 자책골을 먹으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09-10 시즌 맨체스터 더비에선 괜히 로빙패스 하려다가 벨라미한테 공을 뺏겨 90분대에 동점골을 허용하는 장면은 가히 OME 수준. 맨유의 레전드 로이 킨도 몇몇 선수들을 대차게 까는 악명높은 인터뷰를 했을 때[13] 퍼디난드를 제일 대차게 깠다.[14]

그리고 굉장히 롱런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미 1990년대 후반기부터 정상급 활약을 펼쳤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2000년 리즈로 이적할때 세계 수비수 이적료 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 뒤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11, 넉넉히 잡으면 12/13시즌까지는 정상급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거의 15년동안 단 한시즌도 빠지지 않고 기량면에서 정상급 선수였고, 활약면에서는 약물파동으로 빠진 단 한시즌을 제외하고 언제나 중심으로 활약했다.

5. 수상 기록

5.1. 우승 기록

5.2. 개인 수상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 1997-98
  • PFA 올해의 팀 (6): 2001-02, 2004-05, 2006-07, 2007-08, 2008-09, 2012-13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1년 10월
  • 프리미어 리그 20주년 베스트 XI: 1992-93 / 2011-12
  • ESM 올해의 팀: 2007-08
  • FIFA/FIFPro 월드 XI: 2008
  • FIFA 100: 2004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16

6. 퍼디난드에 대한 말, 말, 말

파일:Rio-Ferdinand.png
"리오같은 선수는 어떤 공격의 압박에도 어떻게 대처할지 아는 수비수들입니다. 그는 환상적인 수비수죠"
알렉스 퍼거슨
"가장 힘들었던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와 네마냐 비디치."
디디에 드록바
"처음에는 프랑스지네딘 지단, 브라질호나우지뉴를 좋아했다. 하지만 수비수로 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리오 퍼디난드를 사랑하게 됐다. 퍼디난드는 완벽한 수비수였고,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 선수였다."
슈코드란 무스타피
"나는 비록 유나이티드에서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최고의 센터백인 리오와 비디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과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제라르 피케
"나는 더 어릴 때는 로이 킨의 팬이었고, 더 커서는 비디치와 리오 퍼디난드의 팬이 되었습니다."
에릭 다이어
"그처럼 플레이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며 그와 같이 플레이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에리크 바이

7. 트리비아

재밌게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네번 연속 월드컵 명단에는 이름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15] 유럽 챔피언쉽 대회에는 명단이 올라간 적이 없다. 04년에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징계를 받아서 못 나왔고, 08년에는 잉글랜드가 예선 탈락 했으니까.

듀란 듀란의 노래인 "Rio"는 축구 응원가이기도 하지만 사실 퍼디낸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2002년 그의 팬인 Simon le Bon (듀란 듀란의 리드 싱어) 는 만약 잉글랜드 대표팀이 승리하면 축구 응원가 중의 하나를 재녹음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져버렸기 때문에 그의 약속이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축구선수 황당부상' 주제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TV보다가 리모콘 찾기 귀찮아 발로 채널 돌리다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 외 연예 활동이 활발한 편으로, 2006 독일 월드컵 전에는 몰래카메라 식으로 웨인 루니,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등 잉글랜드 동료들을 당황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리오"라는 자신의 잡지도 만들었다.

박지성을 꽤나 아끼는 듯 하다. 박지성 이적 후 락커룸에서 박지성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고, 그리고 주장 로이 킨 등 동료들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서 박지성의 애칭으로 'Ji'를 쓰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07-08시즌 훈련장에서 했던 우승 축하 단체 세레모니 영상에서 당시 부상으로 목발 때문에 제일 바깥쪽에 서 있었던 박지성의 머리를 격하게 토닥토닥.

한 인터뷰에서 "박지성은 팀에 있을때는 잘 모르지만 없으면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지는 선수다"(When he is not in the team you will realise(realize) what a fantastic player he is)라고 칭찬했다.

초코파이를 무지 좋아한다. 자세한 건 초코파이김갑수 항목 참조. 최근 트위터에 빠져 있는 상태.[16] 초코파이 잘 받았다고 인증까지 했다.

그러나 이 트위터 애용이 너무 지나쳐서 최근에는 트인낭으로 안 좋은 이미지가 더 늘어나고 있다. 애슐리 콜을 초코 아이스라고 비하[17]하여 FA의 징계를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존 테리, 애쉴리 콜과 사과하기로 했다.[18]

그리고 2014년 10월 30일, 한 맨시티 팬이 QPR은 좋은 센터백을 새로 영입해야 한다고 올리자, 그 팬에게 네 엄마를 들여보내면 잘할 것이야라고 올렸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해시태그로 #sket을 달았는데 sket은 매춘부를 일컫는 비속어. 당연히 논란이 커졌고, FA는 이에 3경기 출장 정지 및 벌금 2만 5천 파운드, FA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이수 등의 징계를 부과했다. 그런데 그러고도 트위터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한다.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FA컵 준결승전에서 발로텔리의 윙크를 보고 발로텔리의 멱살을 잡는 등 한 성질 한다는 면모도 보여주셨다. 뭐 발로텔리의 짓거리를 보고 화 안 나는 선수가 몇이나 있겠냐마는...

13-14시즌 겨울이적시장에 후안 마타라는 스타플레이어 선수가 맨유로 이적한다고 하자 많은 맨유팬들은 리오의 트위터에 "헤이 리오 마타가 정말 맨유로 이적하는거야?"라고 물어보자 "나도 몰라, 나도 트위터로 뉴스 보고 있어"라고 대답하면서 깨알같은 트위터 사랑을 보여줬다.

파일:external/static.guim.co.uk/Rio-Ferdinand-with-Usher-001.jpg

스스로를 나름 패션 아이콘으로 자부하고, 기럭지 때문인지 수트발이 좋긴 하다. 옆에는 미국의 R&B 가수 어셔.

동료가 골을 넣으면 (수비수라는 포지션상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격하게 붙잡아 세레모니를 방해하거나 뒤에서 달려와 동료들이 모여있는 곳 위로 뛰어올라 포효한다. 이렇게.

파일:external/heidthebaw.files.wordpress.com/ferdinand2.jpg

파일:external/soccernet-assets.espn.go.com/carlostevezandrioferdinand_576x324.jpg
등짝, 등짝을 보자!
동생인 안톤 퍼디난드도 수비수로 축구를 하고 있으며[19], 이들 형제의 사촌형인 레스 퍼디난드도 축구를 했었다.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그는 QPR토트넘에서 활약했었고, 유로 1996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뛰기도 했었다. 은퇴 후 친정팀인 토트넘과 QPR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현재는 QPR의 풋볼 디렉터[20]을 맡고 있다.

레스 외에도 케인 퍼디난드 라는 사촌이 풋볼 리그 1 소속인 피터보로 유나이티드[21]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고, 아일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으나 국가대표팀에는 소집 되지 못하고 있다.

2011/2012 시즌이 끝난 후 박지성의 JS 파운데이션이 주최한 자선 경기에 참여했다. 마찬가지로 자선경기 관련해서 태국을 방문한 런닝맨 멤버인 하하, 이광수, 그리고 예전 멤버였던 송중기와 같이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예전 초코파이 때 이후 다시 한국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15년 5월 2일 리오 퍼디난드의 아내인 레베카 엘리슨이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최근엔 폴 스콜스와 함께 맨유 경기 분석가/전문가로 같이 초빙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이 좋게 같이 고개를 절레거리며 반 할의 맨유를 깐다

자서전에서 꼰대정신(...)을 드러냈다.[22] 한국 축구팬들은 역시 선후배문화는 어디든 똑같다라는걸 깨달았다.

2019년 5월 7일과 8일, 안필드의 기적암스테르담의 기적을 모두 지켜보았다. 특히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게리 리네커, 글렌 호들과 함께 루카스 모라의 세번째 골을 보고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7.1. 프로복서

파일:Boxer Rio.jpg
2017년 09월 19일 인터뷰에서 프로복서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아내 잃은 슬픔을 복싱을 통해 달랬다고 한다.

8. 사건 사고

8.1. 도핑 테스트 불참

2003년 9월 23일, 영국의 도핑을 담당하는 UK SPORTS 소속의 반도핑연구소(Anti-Doping Agency)에서 맨유 캐링턴 연습구장을 불시에 방문해 구단측에 리오 퍼디난드와 니키 버트등 일부 선수들의 도핑테스트 참가와 샘플을 요구했다. 훈련중에 이 이야기를 접한 리오 퍼디난드는 훈련 종료후 샤워실로 갔고 샤워를 마친후 도핑 테스트를 받으러.....가지 않고 그대로 맨체스터 시내로 나가버렸다.(...) 한편 시간이 지나도록 리오 퍼디난드가 도핑을 받으러 오지 않자 팀닥터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고 2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후 반도핑연구소에서는 에이전트 1명만을 남기고 모두 철수했고 리오 퍼디난드는 사건 발발 3시간이 지나서야 "테스트 받을께요!"라고 연락을 했다. 물론 반도핑연구소에서는 씹었다(...). 이 사건 이후 며칠후 재 도핑을 받았고 음성판정을 받았고 그대로 사건이 종료되나 싶었는데 2004년 10월 11일 유로 2004 플레이오프전을 앞두고 리오가 엔트리에서 빠졌는데 그 사유가 도핑테스트를 불참해서 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반응은 대폭발 해버렸다. 거기다 제프 블래터 FIFA회장이 뜬금없이 난입해 "약쟁이들은 무조건 조져야 한다!"라며 난리를 쳐댔고 맨유는 FA에 압박 주지말라며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잉글랜드축구협회에서는 FIFA[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눈치를 보며 사건을 질질 끌었고 2003년 12월 19일 8개월 출장정지와 벌금 5만 파운드를 부과했다.[24]

여담으로 리오의 해명은 "그날 새로 이사할 집에 필요한 집기를 사다가 잊어버렸다"였다.

8.2. 불륜 사건

2011년 7월 긱스의 불륜 충격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퍼디난드가 결혼 이후 10명의 여성들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퍼디난교 퍼디난드는 이 사실을 폭로한 기자와 신문사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영국의 스포츠 찌라시 '더 선'에서는 아주 신이 난 듯. 퍼디난드의 애인으로 구성된 축구 포메이션을 공개하며 대차게 까고 있다. FC 퍼디난드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10708091950013.jpg

마누라가 골키퍼인 게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근데 반대편 골키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1] /ˈriːəʊ ˈɡævin ˈfɜrdᵊnænd/[2] 2007/08시즌 FA컵 8강에서 반 데 사르의 부상으로 들어온 쿠슈차크가 퇴장당하며 대신 골키퍼를 봐야 했다.[3] 이때 리즈는 챔스 4강까지 갔던, 말그대로 돌풍의 팀이었다. 리즈시절이 지금은 비아냥거리는 투로 쓰이지만, 한때 리즈는 잘나가던 팀이었던 건 사실이다. 너무 반짝하고 끝났기 때문에 그렇지...[4] 덧붙이자면 당시 스탐은 퍼거슨과의 불화로 맨유를 떠난 것이라 영입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네스타의 경우 당시 세계 축구 이적시장의 큰손인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맨유보다 더 우월하거나 비등한 구단들이 영입 경쟁을 한 선수였다. 명성과 현금박치기가 상대적으로 딸리는 당시의 맨유는 네스타 영입은 꿈도 꿀 수 없었다.[5] 2002년경 세계축구의 추세는 이탈리아 세리에 A였으며 자연스럽게 상위권 팀인 AC 밀란, 유벤투스 등이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꼽혔다. 당시 유벤투스는 수비진에 릴리앙 튀랑, 치로 페라라 등이 버티고 있어서 네스타나 스탐을 굳이 비싼돈 주고 영입할 필요가 없었다. 인테르의 경우엔 3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언제든지 우승 가능한 저력이 있던 팀이였다. 사실 공격수만 수집해서 우승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결국 인테르는 최종결전에서 네스타를 AC 밀란에 내주게 된다.[6]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의 센터백으로 꼽히던 퍼디난드는 2004년 출장정지징계와 2008년 잉글랜드의 유로예선 조기탈락과 같은 악재가 겹쳐 단 한번도 유로 본선대회에서 뛰어본적이 없다.[7] 이 때 마이클 오언의 극장골로 4대3 승리.[8] 2006년 월드컵에서 스웨덴의 헨릭 라르손이 골을 기록하기 전에 교체되었다.[9] 어렸을때 발레를 하였다. 영국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플레이의 비결에 대해 이 같이 대답했다.[10] 대신 파트너 비디치가 굉장히 능하기 때문에 맨유 입장에선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지만.[11] 맨유에서 지도했던 선수 중 가장 빨랐던 선수는 누구인가요? (우사인 볼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이 팀에는 빠른 선수들이 많았죠. 특정한 거리라면 개리 팔리스터를 꼽을 수 있겠네요. 전력질주 속도가 대단했고 100m 달리기 기록이 단연 최고였거든요. 하지만, 축구에서의 빠르기란 그라운드 위에서 곧장 100m를 질주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안드레이 칸첼스키스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 앤디 콜, 폴 파커(정말 빨랐죠), 안데르송, 리오 퍼디난드, 리 샤프 정도를 꼽아야 하겠죠. 샤프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죠. 폴 인스도 빨랐고요. 앞서 언급한 선수들을 모두 빠른 선수라고 분류할 수 있겠지만, 100m 종목이라면 팔리스터가 1등일 걸요. 축구적인 의미로는 긱스, 특히 젊은 시절의 긱스와 칸첼스키스라고 해야겠네요. -
<인사이드 맨유 2009년 03월호 200호 특집 인터뷰>
[12] 이건 푸욜도 마찬가지지만.[13] 이 직후 킨은 구단을 떠났다.[14] "주급 12만 파운드를 받고 토트넘 핫스퍼 전에서 20분 동안 잘했다고 지가 슈퍼스타인 줄 아나 본데."[15] 98년에는 경기를 뛰지는 않았고, 2010년에는 부상으로 빠졌지만.[16] 팬들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본인도 어렸을 적에 선수들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고.사생팬??[17] 흰 아이스크림에 검은 초콜릿 옷을 입혔다는 뜻으로 백인 같은 흑인을 조롱하는 속어로 쓰인다.[18] 존 테리안톤 퍼디난드 간의 인종 차별 논쟁 때문에 일어났다. 애쉴리 콜은 이 사건에서 증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는데 애쉴리 콜의 발언으로 존 테리가 무죄 판정을 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19] 맨유와 선더랜드 AFC와의 경기에서 선더랜드가 2-1로 앞서나가다가 안톤의 자책골로 비기자 벤치에서 경기를 보던 리오는 애매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20] 단장[21] 알렉스 퍼거슨의 아들인 대런 퍼거슨이 감독을 했었던 팀이다.[22] 박지성한테 한국 똥군기 사례를 들어보니까 "그거 좋은 문화다. 우리도 예전에 그런 아름다운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서 엉망이다."라고 얘기했다.[23] 정확히는 제프 블레터의 눈치[24] 다만 이때 과도한 징계 아니냐는 반응들도 있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을 보였던 빌리 터리(디비전 2에서 뛰던 골키퍼)는 FA로 부터 어떤 징계도 안받고 '경고'로 그쳤으며,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던 크리스티앙 니가와이는 퍼디난드처럼 도핑테스트를 하지 않았지만 FA는 그에게 벌금형만을 내렸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