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5 00:03:02

사무엘 에투

사무엘 에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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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UEFA 올해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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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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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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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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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
카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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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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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레스 푸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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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FIFA 올해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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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프랭크 램파드
3위
사무엘 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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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가 앰배서더
카타르 SC No. 81
사뮈엘 에토 피스
(Samuel Eto'o Fils[1])
생년월일 1981년 3월 10일 ([age(1981-03-10)]세)
국적 파일:카메룬 국기.png 카메룬
출신지 두알라
신체 조건 180cm, 7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등번호 카타르 SC-81번
유스클럽 카지 스포츠 아카데미 (1992~1996)
레알 마드리드 CF (1996~1997)
프로클럽 레알 마드리드 CF (1997~2000)
CD 레가네스 (임대) (1997~1998)
RCD 에스파뇰 (임대) (1999)
RCD 마요르카 (임대) (2000)
RCD 마요르카 (2000~2004)
FC 바르셀로나 (2004~2009)
인테르나치오날레 (2009~2011)
FC 안지 마하치칼라 (2011~2013)
첼시 FC (2013~2014)
에버튼 FC (2014~2015)
UC 삼프도리아 (2015)
안탈리아스포르 (2015~2018)
코니아스포르 (2018)
카타르 SC (2018~)
국가대표
(1997~2014)
118경기 56골
지도자 경력 안탈리아스포르 임시감독 (2015~2016)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트리비아6. 기록
6.1. 우승 기록6.2. 개인 수상6.3. 출전 기록

1. 개요

카메룬의 축구선수.

2000년대 중후반을 호령했던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조지 웨아와 더불어 아프리카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또한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서로 다른 클럽에서 2시즌 연속 트레블이라는 진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다.[2]

2. 클럽 경력

2.1. 레알 마드리드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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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어린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거의 대부분의 시즌을 다른 팀에 임대를 가거나 B팀에서 잠시 뛰는 등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은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에 RCD 마요르카로 이적했다.

2.2. RCD 마요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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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 시즌 알베르트 루케, 아리엘 이바가사와 삼각편대를 구축하여 팀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끌었고, 이후로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02-03 시즌 14골, 03-04 시즌 17골을 기록, 마요르카를 라리가의 강호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특히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여 레알 마드리드 킬러로 불리게 된다.

이러한 활약과 레알에게 유독 강한 성향으로 인해 2,400만 유로라는 거액의 이적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2.3.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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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의 화려한 전성기가 막이 올랐다. 바르셀로나의 쟁쟁한 포워드, 미드필더진과 함께 호흡을 맞춰 주전 공격수로서 맹활약하며 04-05 시즌 25골[3], 05-06 시즌 26골, 08-09 시즌에 30골을 몰아치며 명실상부 라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떨쳤고, 큰 경기마다 결정적인 골들을 터뜨리며 수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4]

특히 05-06 시즌과 08-09 시즌은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즌으로 기억된다. 반면 06-07 시즌에는 전반기를 장기부상으로 날려먹었고, 07-08 시즌에는 호나우지뉴와의 불화로 팀 내 분위기가 엉망이라 다소 침체되기도 했다. 근데 두 시즌 모두 리그에서 10골 이상 넣은 건 함정

한편 2006년에는 레알 사라고사와의 원정경기 도중 사라고사의 홈팬들로부터 인종차별 모욕을 당했고, 이에 격분한 에투가 경기를 포기하려 드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축구계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바르사 시절은 에투의 커리어에 있어 리즈 시절이었으며, 이 시기 바르셀로나의 챔스 2회 우승, 라리가 3회 우승, 08-09 시즌 트레블을 이끈 에투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2009년 여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계약내용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사무엘 에투 + 3500만 파운드이다.) 그리고 에투는 다음 시즌 챔스에서 이를 바르사에 고스란히 되갚아준다.

2.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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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초기엔 둘 다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나... 즐라탄은 전반기 메시의 빈 자리를 메우며 라리가 전반기 MVP를 차지하는 맹활약을, 에투는 '사비의 패스빨로 먹고 사는 기계'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부진했다. 자신의 스타일과 팀의 컬러가 맞지 않은 불상사가 골가뭄으로 이어진 것.

그러나 에투는 주제 무리뉴의 뛰어난 지휘력에 힘입어 단숨에 폼을 되찾았으나, 즐라탄은 후반기 메시의 복귀와 함께 챔스, 리그 가리지 않고 전반기에 미치지 못해 팽당하며, AC 밀란으로 임대 이적했다. 그리고 09-1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다시 한 번 트레블을 달성하며 2시즌 연속 트레블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0-11 시즌에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7골 16도움을 기록하며 디에고 밀리토의 부진을 메꿨다. 특히 시즌 초반 베법사의 삽질에 칠테르로 전락한 팀을 에투가 거의 홀로 이끌다시피 했다. 결국 인테르는 에투의 활약과 후임 감독 레오나르두의 지도력에 힘입어 리그 준우승, 코파 이탈리아 우승이라는 괜찮은 결과로 시즌을 마감할수 있었다.

이렇듯 매우 뛰어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같은 아프리카 출신의 스트라이커 디디에 드록바에게 인기가 밀리거나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누구냐는 설문에 잘 끼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

이는 에투의 전성기였던 시절 EPL에 비해 라리가가 거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데다, 그의 국적이 다름아닌 카메룬인 탓이 크다.[5][6]

나가토모 유토의 증언에 의하면 검열삭제의 크기가 무시무시하다고 한다(...). 팀에 합류 후 처음으로 샤워룸에서 그 크기를 알현하고 믿기지 않아 두 번 쳐다봤다고.

2011년 8월 12일 인테르에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FC 안지 마하치칼라로 이적료 3,500만 유로(약 541억원)에 연봉 2,000만 유로(약 310억원)로 이적,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는 사나이가 되었다. 호날두의 연봉이 1,200만 유로(약 186억원)라는 것을 감안할 때 가히 엄청난 액수.

2.5. FC 안지 마하치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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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350만 유로, 한화 수십억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당국에 고발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고 5년형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진위 여부에 따라 에투의 커리어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누구든 탈세 하면 좆되는 거에요. 아주 좆되는 거야.

구단주인 슬레이만 케리모프의 사업실패로 인해 긴축재정으로 돌입을 시작되어 2013년 8월 30일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안치의 전 단장이었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공격수 사무엘 에투가 팀 분위기를 망쳤다고 밝혔다.

2.6.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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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시즌 첼시의 감독으로 복귀한 무리뉴와 재회하게 되었다. 에투가 영입되면서 첼시의 공격진은 페르난도 토레스, 뎀바 바, 로멜루 루카쿠 등 과포화 상태가 되었고 정작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자원은 별로 없지만 결국 루카쿠가 임대를 떠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리그 4R 에버튼전에서 첼시 소속 데뷔전을 가졌다. 다만 경기내내 마타와 포지션이 겹쳤으며,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5R 경기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경쟁자인 토레스가 좋은 폼을 보여준 지라 주전 경쟁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7R 노리치 전에서도 전성기의 폼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리그 8R 경기에서는 후반 20분에 드디어 에투가 골을 성공시켰다!!. 아자르의 패스를 받고 그대로 때린 슛이 골대 안으로 들어간 것. 이날 해설을 맡은 장지현 해설위원은 드디어 최전방 공격수가 득점을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최전방 공격수의 부진이 너무 길었다. 여기에 도움까지 기록하면서 1골 1도움으로 팀의 완승에 기여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 샬케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30분에 중계진이 존 테리를 카메라로 포착하고 있을 즈음에 갑작스레 에투가 골을 넣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힐데브란트 골키퍼가 골킥하려는 것을 에투가 막은 것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가면서 선제골이 된 것이다. 이로서 에투는 이번 시즌에만 두번의 거대한 예능을 보여주며 수많은 축구팬들을 웃음짓게 만들어주었다얘들아 뽕따사왔다는 덤이다. 그 뒤 별다른 일 없이 전반이 종료되고 후반, 절박함이 느껴질 정도로 공격적으로 밀고 올라오는 샬케에게 에투는 후반 8분 만에 윌리안의 스루패스를 받아 추가골을 선사했다.

11R WBA전에서는 전반 종료 직전 아자르의 슈팅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나온 것을 상대 수비수 리지웰이 머뭇거리는 사이 에투가 재치있게 슈팅하여 선제골을 넣으면서 리그 2호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후 경기내용은 썩 좋지 못했고, 팀도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하지만 에투가 첼시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다. 전성기 때에 비해 스피드가 상당히 느려졌고, 무엇보다 1대 1에서의 득점을 못 하고 있다. 덕분에 첼시는 올 시즌에도 해결사 공격수 없이 보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투가 다른 공격수들보다는 폼이 괜찮다는 것과, 골 감각은 조금이나마 살아 있어서 가끔씩은 골을 넣어준다는 것이지만...어차피 자유계약이라 토레기처럼 까일 일도 없고

15R 스토크시티전에서 후반에 들어온 에투는 자신은 선발로 뛸 만한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하는 끔찍한 모습을 보이며 1월 이적 시장에서 보강이 필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단지 원톱 뿐만 아니라 3선 역시 보강이 필요하다고 팬들은 부르짓고 있다. 팀은 1-0 패배를 거두었다.

18R 스완지전에서는 간만에 선발출전했지만 무리뉴 감독이 대놓고 경기 후 공격수의 골 결정력 부진을 언급할 정도로 답답했던 경기였다. 무수히 많은 찬스가 나왔으며 특히 마타는 두번이나 결정적인 찬스를 에투에게 떠먹여 주었으나 일촌신청거절은 이렇게 하는 거다뽕따나 더 사와에투가 날려먹었고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에투가 그나마 움직임이 가장 좋다는 것이며 그 대체자들은 더 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2선이 탐욕을 부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선이 볼 키핑 부족, 골 결정력 부족, 연계력 부족으로 버벅거리기만 하며 상대팀에게 역습 찬스를 줄 기회를 제공하기까지 하는데 2선이 알아서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19R 리버풀전에서는 지난 경기에서 부진했는데도 불구하고 선발출전하여 결정적인 찬스에서 골을 넣으면서 지난 경기의 까임을 어느 정도 해소시켰고, 동시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에투가 가장 잘하니까 계속 선발로 나오는 거다라는 주장에 신빙성을 얻게끔 하였다. 그리고 리그만 3골 밖에 안되는 거지 챔스, 리그컵, 리그 모두 합쳐 스트라이커 자원 중 가장 공격 포인트가 높은 선수는 에투다. 2013년까지 총 5골 5어시스트라고(...).

그러던 리그 22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선발출전하여 전반 16분에 에투가 때린 슈팅이 절묘하게 캐릭의 발에 맞고 굴절되어 들어가면서 첼시가 선제골을 넣었다. 운과 슈팅 감각이 모두 제대로 겹친 훌륭한 골. 이후 전반 종료 직전 코너킥 찬스에서 케이힐의 땅볼 패스를 절묘한 위치에 서 있던 에투가 툭 하고 찬 것이 데헤아를 맞고 들어가면서 첼시가 2골차로 앞서나갔다. 그리고 후반 4분 만에 또 다시 에투가 코너킥 찬스에서 케이힐의 헤딩을 데 헤아가 막고 흐른 볼을 그대로 밀어넣으면서 토레스의 2012년 4월 29일 이후 거의 1년하고도 9개월 만에 첼시 공격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개인 통산 14시즌 연속 두 자리 수 골을 기록하면서 개인의 커리어도 제대로 쌓았다.

25R 뉴캐슬과의 경기에서는 후반 17분에 첼시의 코너킥 찬스에서 윌리안이 코너킥을 올렸을 때 에투가 음비와와의 몸싸움에서 밀려나며 패널티킥을 얻었다.[ 잉글랜드 해설진은 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판정이라고 해설했다.] 이를 아자르가 성공시키면서 득점에 일조했지만, 전체적으로 이날에도 골결정력은 답이 없었던지라 살짝 아쉬웠다.

이상하게 첼시 이적 뒤에 굉장한 예능(?)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과연 사냥스타일도 흑표범. 이들 중 카디프전에서의 행동은 반칙이다. 즉 오심(...).

여타 아프리카 선수들처럼 나이를 속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심지어 현재 감독인 무리뉴도 에투에 대해 "그는 32살이지만, 잘 모르겠다. 어쩌면 35살이지 않을까"라고 얘기하는 상황(...).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에투의 전 여자친구가 에투의 실제 출생연도는 1974년, 즉 13-14 시즌 기준으로 39세라는 인터뷰를 했다(...).# 2년 연속 트레블하던 때 나이가 35세라는 얘기니 이건 뭐 충공깽. 그러나 실제로 에투가 나이를 속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런 세계적인 선수가 20대때 레알 마드리드 유스에 있었다는 건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나이를 적당히만 속였다면?

이후 무리뉴 감독의 무리한 언플로 폼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컸으나 오히려 선발 출장할 때마다 골을 박아넣으며 첼시 스트라이커 중에서 믿을 만한 건 에투밖에 없다는 의견에 힘을 넣어주었다.

3월 9일 29R 토트넘 전에서 에투는 전후반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1골 1어시스트로 나타났다. 팀도 4-0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선제골을 넣고 한 노인 세레모니는 백미 중의 백미였다. 이후 챔스 갈라타사라이 16강 2차전 홈 경기 선제골, 31R 아스날 홈 경기 선제골 등 넣으며 3월에만 3경기 3골이라는 대활약을 펼쳤으나 아스날전 선제골 이후 6분 만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내 역할은 여기까지요. 토레스와 교체되어 들어왔다.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홈 경기에서는 무리뉴 감독이 후반에 총공세를 펼치면서 교체 투입되었다. 그런데... 후반 14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코스타가 에투의 발에 걸려 넘어졌고 주심은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후 키커로 나선 코스타가 강력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역전당했다. 결국 3-1 패배를 당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3-14 시즌 종료 후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자유계약으로 2014년 8월 27일 (한국시간) 에버튼으로 이적하였다.마침 에버튼에는 로멜루 루카쿠도 있다. 첼시산 공격수를 애용하는 에버튼..

2.7. 이후

파일:external/static.weltsport.net/gwb_a1bKJ_l.jpg
에버튼 FC의 서브 공격수로 낙점받았고 어느 정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2014-15 시즌 도중 세리에 AUC 삼프도리아와 2년 반 계약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떴다.

2015년 1월 27일 (한국시간) 삼프도리아 이적이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9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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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삼프도리아로 이적한지 1주일도 안 되어서 감독인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와 추가 훈련을 놓고 대판 싸웠고, 퇴단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화해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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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7일 터키 쉬페르리그 소속의 안탈리아스포르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안탈리아스포르의 구세주로 자리잡았다. 리그 15경기에서 13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 득점 1위를 기록 중이다. 하위권팀이던 안탈리아스포르는 그의 활약 덕분에 7~9위 정도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유수프 심세크(Yusuf Şimşek) 감독이 물러나 공석인 팀 감독까지 임시로 맡게 되었다.

2018년 1월 30일 안탈리아스포르와 상호계약해지를 했고 다음날 오후 3시 코니아스포르와 계약 정식 서명을 하였다. 등번호는 81번. 8월 4일 코니아스포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유는 높은 임금 때문이라고 추측. 2018년에는 카타르 SC에서 뛰고 있다. 등번호는 81번이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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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역대 월드컵 최연소 출전 2위에 해당하는 만 17세 3개월의 나이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국가대표로서도 그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2000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0·200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2006·200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 4회 수상이라는 눈부신 성적을 남겼다. 반면 월드컵에는 4번 출전[7]하여 통산 3골을 기록했지만 4번 모두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이한 점은 네이션스컵 우승 2회, 득점왕 2회, 통산 18골로 역대 최다 득점자임에도 네이션스컵 베스트 11에 한번도 선정된 적이 없다.

2011년 3월 26일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지역예선 원정에서 세네갈한테 깨지고 6월 4일 안방에서 설욕전을 벌이려고 했는데 0:0 무승부 상태에서 종료 직전에 얻은 페널티킥을 에투가 허무하게 실축해서 무재배 모드가 되었다. 이거 그냥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는데 이 개같은 경우 때문에 결과적으로 1경기 남겨놓고 조 1위 세네갈에 승점이 5점이나 밀려서 본선 직행은 안드로메다로, 게다가 조 2위 추가진출도 물 건너 갔다. 왜 나 에투는 햄보칼수가 업서! 만일 그 페널티킥이 들어가서 1:0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승점 차이가 2점으로 좁혀져 그나마 희망이 있었지만... 그저 지못미.

2012년에는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지역예선 최종전에서 본선 진출을 위해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팀은 2:1로 승리하고도 골득실에 밀려 으앙 망함 카보베르데한테 본선 진출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 후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카메룬은 모래알 조직력을 과시하며 3전 전패, 대회 최하위로 광탈했고, 에투 본인도 조별리그 1경기만 뛰고 대회가 끝나자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흑인 특유의 쫄깃함과 폭발적인 스피드, 그리고 타고난 센스를 바탕으로 한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유했던 스트라이커로, 중앙 뿐만 아니라 좌우 윙포워드로도 훌륭한 활약을 보였던 선수다.[8]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준 탄력적인 모습은 칭찬받을 만하다. 비단 수비라인을 찢어발기며 득점을 올리는 걸 제외하더라도, 윙포워드 에이스들의 돌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위칭하던 모습, 중앙 미드필더들이 유기적으로 판을 짜올 때의 대응해주는 예민함은 왜 에투에게 흑표범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물론 얼굴은 말고

특히 전성기 토레스와 대등할 정도로 상대 뒷공간을 잘라 먹고 들어가서 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는데, 전성기의 스네이더가 있던 인터 밀란사비, 이니에스타가 있던 바르셀로나에서 처럼 창의적인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들과 찰떡 궁합이었다.

특유의 활동량을 이용한 전방압박능력 또한 상당히 뛰어나서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들이 진을 빼게 만들었다. 간혹 골키퍼에게 백패스로 가는 공을 가로채 골로 연결시키기도 했으며 골킥같은 상황에서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골키퍼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5. 트리비아

  • 유명하게 떠돌아다니는 가짜 일화가 하나 있다. 삼프도리아와의 경기 전 당시 감독이던 주제 무리뉴가 에투에게 "넌 소심해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절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에투는 발끈해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 500달러를 걸고 내기했다. 그리고 박스 안에서 에투는 삼프도리아 수비수의 차징을 받는 순간 곧바로 시뮬레이션을 시전, 하지만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심판에게 딱 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무리뉴는 대 폭소, 에투는 어필을 해보고 주변의 삼돌이 선수들 역시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에투의 표정을 보면 삐질거리는 게 눈에 보인다. 결국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에투는 심판 조롱죄로 2경기 추가 출장정지를 받게 된다라는 것이 내용. 할리우드영상 사실은 그냥 전체적으로 심판이 맘에 안 들었던 무리뉴가 심판 판정에 어이없어서 웃은 거다. 한마디로 심판에 대한 조롱조로 웃은 거다. 에투는 무리뉴가 웃으니까 그냥 덩달아 웃은 거고. 진짜로 그랬으면 저렇게 에투가 격렬하게 항의할 이유도 없다. 굳이 사석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서 출장정지 먹을 멍청이도 아니고. 게다가 명색이 프로 선수가 시뮬레이션 액션 따위로 내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 바르셀로나 시절 탈세를 했다는 혐의가 나왔고 스페인 검찰은 그에게 무려 징역 10년을 구형하였다.

6. 기록

6.1. 우승 기록

6.2. 개인 수상

  • 아프리카 올해의 신인 선수: 2000
  •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4): 2003, 2004, 2005, 2010
  • ESM 올해의 팀 (4): 2004/05, 2005/06, 2008/09, 2010/11
  • FIFA 올해의 선수 3위: 2005
  • FIFA/FIFPro 월드 XI (2): 2005, 2006
  • UEFA 올해의 팀 (2): 2005, 2006
  • 라리가 득점왕: 2005/06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5/06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 (2): 2006, 2008
  • UEFA 올해의 클럽 공격수: 2005-06
  •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2010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10-11
  • CFA 아프리카 올해의 팀 (6): 2005, 2006, 2008, 2009, 2010, 2011
  •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최우수 선수: 2013
  • 골든풋: 2015

6.3. 출전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기타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7-98 레가네스 세군다 디비시온 30 4 0 0 0 0 - -
1998-99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1 0 0 0 0 0 - -
1998-99 에스파뇰 라리가 0 0 0 0 0 0 - -
1999-2000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2 0 0 0 3 0 1 0
마요르카 라리가 13 6 0 0 - - - -
2000-01 마요르카 라리가 28 11 5 2 - - - -
2001-02 마요르카 라리가 30 6 1 1 9 3 - -
2002-03 마요르카 라리가 32 14 6 5 0 0 - -
2003-04 마요르카 라리가 32 17 2 0 7 4 2 1
2004-05 바르셀로나 라리가 37 25 1 0 7 4 - -
2005-06 바르셀로나 라리가 35 26 0 0 11 6 2 2
2006-07 바르셀로나 라리가 19 11 2 1 4 1 3 0
2007-08 바르셀로나 라리가 18 16 3 1 7 1 - -
2008-09 바르셀로나 라리가 36 30 4 0 12 6 - -
2009-10 인터 밀란 세리에 A 32 12 2 1 13 3 1 1
2010-11 인터 밀란 세리에 A 35 21 4 5 10 8 4 3
2011-12 인터 밀란 세리에 A - - - - - - 1 0
안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2 13 1 0 0 0 - -
2012-13 안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5 10 3 2 16 9 - -
2013-14 안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4 2 0 0 0 0 - -
2013-14 첼시 프리미어 리그 21 9 5 0 9 3 2 0
2014-15 에버튼 프리미어 리그 14 3 2 0 4 1 1 0
2014-15 삼프도리아 세리에 A 18 2 0 0 - - - -
2015-16 안탈리아스포르 터키 쉬페르리그 31 20 1 0 - - - -
2016-17 안탈리아스포르 터키 쉬페르리그 15 6 0 0 - - - -
2017-18 코니아스포르 터키 쉬페르리그 17 6 1 0 - - - -
2018-19 카타르 SC 카타르 스타즈 리그 16 6 2 3 - - - -

[1] /samɥɛl eto fis/. fils는 '아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다. 발음은 /fis/. 영어에 대응될 수 있는 단어로는 '주니어(junior, jr)'가 있다. 즉, '사뮈엘 에토 2세'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2] 트레블을 2번 달성한 선수는 에투를 포함해 리오넬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제라르 피케, 세르지오 부스케츠, 다니 아우베스, 페드로 로드리게스까지 총 8명이 있다. 그러나 2시즌 연속 트레블과 2개 클럽에서의 트레블은 오직 에투만 보유한 기록. 참고로 에투를 제외한 7명은 모두 바르셀로나에서 08-09 시즌과 14-15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다.[3] 25골로 포를란과 동률이었지만 피치치(라리가 득점왕) 시상을 주관하는 마르카에서 에투의 1골을 무효처리하면서 포를란이 단독으로 피치치를 수상하게 된다.[4] 2006, 200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의 첫 골을 모두 에투가 득점했다.[5] 비단 에투뿐만이 아니라 몇몇 스타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라리가 선수들 중 국내에서 저평가를 받은 인물은 한두명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같은 시기 사라고사에서 뛰었던 디에고 밀리토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디에고 포를란. 게다가 같은 라리가 출신이라 해도 페르난도 토레스다비드 비야와 같은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에 비하면 이들의 인지도는 거의 공기 수준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월드컵에서의 활약이나 인테르의 트레블이 없었다면 국내에서 이들을 탑클래스의 스트라이커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꼭 저 시절까지 가지 않아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르히오 아구에로다비드 실바와 같은 선수들 역시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기 전까지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 게다가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얼굴 때문에라도 인지도가 어느정도 있었는데 에투는 얼빠마저 없었다. 한국에서 축구선수를 평가하는데엔 은근히 얼굴이나 이미지가 비중을 꽤 차지하는데 에투는 둘 다 좋지 않았다.[6] 이를 메시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메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에투에 대한 저평가는 리오넬 메시가 아직 전성기에 접어들기 전부터 있어왔으며, 오히려 에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메시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인 인테르의 트레블 전후의 일이다.[7] 1998, 2002, 2010, 2014[8] 인테르 시절 첫 시즌인 09-10시즌 수비적인 임무도 상당히 부여 받았고, 4-2-3-1 포메이션이 자리잡힌 후에는 거의 수비형 윙어 수준의 역할을 부여 받아 아주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트레블의 숨은 공신이 되었다. 10-11시즌에는 좀 더 사이드에서 플레이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부진의 늪에 빠진 공격진을 하드캐리하며 흑마법에 빠진 팀을 홀로 구해내곤 했다.[9] 합성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세레머니다.(!) 2011 클럽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팀 동료가 건네준 비닐봉지를 들고 춤을 추며 세레머니를 했다. 근데 도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