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20 17:28:13

페르난도 토레스

페르난도 토레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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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페르난도 토레스
2008 Ballond'or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페르난도 토레스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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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토레스의 기타 정보
{{{#!folding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6
안드리 솁첸코
(4600만 유로)
2007
페르난도 토레스
(3800만 유로)
2008
호비뉴
(4300만 유로)
2010
다비드 비야
(4000만 유로)
2011
페르난도 토레스
(5990만 유로)
2012
헐크
(5500만 유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E62A3C 0%, #E92825)" 파일:2019601502_l.jpg
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
파일:torres 9.jpg
이름 페르난도 토레스
Fernando Torres
본명 페르난도 호세 토레스 산스
Fernando José Torres sanz
생년월일 1984년 3월 20일 ([age(1984-03-20)]세)
국적 파일:스페인 국기.png 스페인
출신지 마드리드
가족 배우자 올라야 토레스
장녀 노라 토레스
장남 레오 토레스
차녀 엘사 토레스
신체 조건 185cm, 82kg
혈액형 O형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유스 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5~2001)
프로 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1~2007)
리버풀 FC (2007~2011)

첼시 FC (2011~2015)
AC 밀란 (2014~2015, 임대)
AC 밀란 (2015~201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5~2016, 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6~2018)
사간 도스 (2018~2019)
스태프 사간 도스 (2019 ~ / 고문 )
국가대표
(2003~2014)
110경기 38골[1]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1. 소개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커리어
5.1. 출전 기록5.2. 대회 기록5.3. 개인 수상
6. 트리비아7. 외모

1. 소개

파일:la-emocion-de-fernando-torres.jpg
스페인의 전 축구선수. 주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2. 클럽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페르난도 토레스/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페르난도 토레스2.jpg
무적 함대 전성기의 일원[2]

2001년 2월, 토레스는 스페인 16세 이하 팀 선수로 참가하여 알가레브 토너먼트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16세 이하 팀은 5월에 열린 2001년 UEFA U-16 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역시 우승하였다. 2001년 11월에는 2001년 FIFA U-17 월드컵에 참가하였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하지는 못하였다. 2002년 7월에는 2002년 UEFA U-19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토레스는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더불어서 결승전에서의 유일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2003년 9월 6일,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하였다. 2004년 4월 28일에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UEFA 유로 2004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조별리그 처음 두 경기에 후반 종료 무렵 교체로 출전하였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주전으로서 출전하였으나, 1-0으로 패하며 광속탈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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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11경기 6골을 기록하며 스페인의 예선전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3] 첫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토레스는 우크라이나와의 4-0 승리 경기에서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월드컵 본선 첫 골을 신고하였다.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인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는데, 첫 골은 76분에 2-1로 리드하는 골이었고 두 번째는 90분에 페널티킥으로 넣은 득점이다. 토레스는 다비드 비야와 함께 3골을 넣어 스페인의 공동 최다 득점자로 대회를 마쳤다. 토레스는 UEFA 유로 2008 명단에 포함되었고, 러시아와의 대회 첫 경기에서 비야의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토레스는 당시 스페인 감독이었던 루이스 아라고네스에게 교체된 후에 외관상으로 악수를 거절한 것으로 보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토레스는 이 사건을 코치진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토레스의 대회 첫 번째 골은 스웨덴과의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에서 나왔다. 토레스는 UEFA 유로 2008의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1-0 승리를 거두게 해준 결승골을 넣으며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또한 골 넣은 것 뿐만 아니라 리버풀 전성기급으로 종횡무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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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참가, 조국 스페인은 최초로 우승을 했으나, 활약은 없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수많은 찬스들을 말아먹어서 잠시 동안 '토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스페인 대표팀은 압도적인 점유율과 패스 정확도, 그리고 슈팅 수에 비해 골은 8골밖에 넣지 못했다. 사실 월드컵 직전 부상의 여파로 폼이 확연하게 떨어졌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폼이 확 떨어진 선수를 계속해서 주전으로 기용한 감독의 용병술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4]

UEFA 유로 2012에서 다시 한번 국가대표로 승선하였는데, 이탈리아 전에서는 부진했지만 아일랜드전에서 2골을 넣으며 기대를 모았는데, 다시 부진했다.[5]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최종 성적은 3골 1어시스트. 주목할 점은 이 기록이 192분만에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3골을 넣은 선수들 중에서 어시스트를 1개 기록했고, 그 중에서도 경기 시간이 짧아 결국 마리오 고메즈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다. 전성기급의 돌파력은 떨어지지만 여전한 뒷공간 창출, 수준급의 패싱 플레이는 토레스가 여전히 수준급의 선수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다만, 스페인이 포워드를 뺀 제로톱 전술을 매우 효과적으로 구사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이에 토레스는 다소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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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대회 2연속 결승전 득점을 기록한 토레스.

애초에 위 기록은 스탯만 보면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는 기록이다. 물론 스탯도 중요하지만 토레스가 UEFA 유로 2012에서 제대로 기용된 경기는 조별리그 아일랜드전 딱 한번 뿐 나머지는 모조리 교체 출전했다. 아일랜드가 감독이 화려하더라도 그다지 강한 팀이 아닌데 이런 팀을 상대로 2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1명이 부상으로 빠지고 체력 다 떨어진 이탈리아 상대로 교체출전해서 1골 1어시스트를 올린 것이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이미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스페인이 앉아서 가지고 놀 만큼 폼이 안 좋았다. 게다가 교체 출전해서 무조건 잘 한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전에서는 결정적인 찬스 두 번을 모두 말아먹었고 특히 부폰과의 1대1 찬스에서는 자신의 특기인 골키퍼 제치기를 하려다가 오히려 부폰의 개인기에 놀아나며 개털렸다.[6]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크로아티아전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후 토너먼트에서도 꾸준히 기용되지 않다가 마지막 결승전 후반에야 후안 마타와 함께 투입되어 스탯만 쌓은 것아다. 득점왕도 좀 그런 게 전 경기 풀타임 출전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1경기 선발 3경기 교체 출전으로 득점왕을 수상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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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더레이션스컵 득점왕을 차지하다.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에서 최약체 타히티에게 4골 1도움을 기록했고[8] 나이지리아 전에서 교체투입, 한 골을 추가하여 총 5골로 동률을 이룬 프레드보다 경기 시간이 짧아 유로 2012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또 다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실버부츠를 수상하였기 때문에 이번 골든부츠 수상은 한 단계 뛰어넘은 업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프레드가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몰아넣는 등 브라질의 우승주역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다소 민망한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아틀레티코에서 대활약을 보인 디에고 코스타의 귀화와 알바로 네그레도, 로베르토 솔다도, 페르난도 요렌테 등의 경쟁자들로 인해 2014 브라질 월드컵 출전은 매우 불투명해 보였으나, 델보스케 감독의 선수 선발의 보수적인 성향과 이러저러한 상황이 어찌저찌 맞아들어서 스페인 대표팀 최종 명단에는 승선했다. 이후 첫 평가전인 볼리비아전에서 PK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기는 했다. 허나 도중에 이니에스타의 환상적인 패스를 어이없는 트래핑으로 날려먹었다.

이후 월드컵에서는 디에고 코스타에 이은 두번째 옵션으로 활용되었으며, 조별리그 1차전이었던 네덜란드와의 월드컵 리턴매치에서 교체 출전했지만, 막판에 환상적인 개뻘짓을 보여주면서 팀의 대패에 일조하였으며, 칠레전에서도 교체 투입 되었으나 클로킹 모드를 발휘하며 스페인의 광탈에까지 일조하였다. 광탈 확정 후 3차전 호주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하여 추가골을 득점하였다. 그 이후로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9년 6월 21일,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국가대표 마크도 자연스럽게 반납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개인기나 드리블이 특출나게 뛰어난 편은 아니고 볼터치도 상당히 투박하다. 단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는 것이나 위치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고 결정력도 뛰어나다. 키가 큰 편이고 중앙에 배치하다 보니 윙어들처럼 스피드가 부각되는 선수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빠른 편인데, 2000년대 후반 기준으로 EPL에서 가장 빠른 선수 TOP 10에 들어갔다. 특히 순간 속도와 민첩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터치도 투박하다지만 빡빡한 압박 사이에서도 칼같이 트래핑하는 스페인 대표팀 동료들에 비해서나 그렇지 압박 강도가 적당하다면 못 봐줄 수준은 아니다.

골 결정력은 유럽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이어서 어려운 각도, 어정쩡한 자세에서도 절묘하게 골을 넣어 주는 능력도 있다. 이 모든 장점이 결합되어서, 라인을 올리고 뒷공간을 넓힌 팀 상대로 뒷공간을 따먹고 골을 넣는 능력은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였다. 토레스의 특징 중 하나가 유독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매우 강하다는 것인데[9] 바르셀로나가 전통적으로 라인을 높게 잡는 팀이라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비단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다수의 강팀을 상대로 많은 골을 넣는 강팀에 강한 선수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된 바르셀로나는 말할 필요도 없고 프리미어리그에 있었을때도 맨유, 첼시를 비롯한 강팀을 상대로 많은 골을 넣었다. 이것은 아무래도 강팀들이 라인을 올리고 경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토레스의 장점이 극대화될 여지가 많기 때문인듯 하다. 그리고 큰 경기에서도 은근히 한방씩 해주기도 한다. 유로 2008 결승, 11/12시즌 챔스 준결승 2차전, 유로 2012 결승, 12/13시즌 유로파 결승 등등 큰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10]

다만 상대가 라인을 낮추고 뒷공간을 줄이면 파괴력이 줄어들고, 이를 보완할만한 연계 플레이나 고립된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력은 탁월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 덕분에 스페인 국가대표팀처럼 볼의 점유율에 집중하며 천천히 만들어가는 전술에서는 진짜로 다재다능한 다비드 비야에 비해 훨씬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소속팀인 리버풀은 빠른 스피드, 많은 활동량, 정밀한 스루 패스로 적극적으로 뒷공간을 노렸기에 1.5선의 제라드와 더불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의 부진으로 인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플레이 스타일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알론소나 제라드처럼 패스를 찔러주는 선수가 없으면 많이 무력해진다. 볼터치도 문제다. 본래 그저 그런 볼터치고, 또한 좀 낮은 지역에서 소유나 풀어주기를 위한 볼터치 감각이 둔하기에 공을 받기 위해 밑으로 내려올수록 토레스의 존재감은 더 옅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드리블도 공 받고 순간적으로 수비수 1~2명 제끼는 드리블이 좋지 골대에서 먼 곳에서는 그냥...

사실 골 넣는 것만 잘하는 스트라이커가 득점력 자체가 떨어지면 팀에 그만한 민폐도 없다.

첼시 이적 후 첼시의 스타일 자체가 정밀한 스루 패스로 풀어나가기보다는 측면에서 안으로 파고 드는 공격 루트가 많아 최고 장점인 라인 브레이킹 능력의 활용 국면이 줄어들었다. 거기다 노쇠화인지 부상인지 순간 속력이나 힘이 리버풀 시절보다는 떨어져서 라인 브레이킹 시도가 실패하는 장면도 많고 결정력은 더욱 떨어졌다. 결국 첼시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틀레티코 15-16 시즌 후반기를 기준으로 옛 리버풀 시절의 폼을 거의 되찾은듯 싶다. 옛날같은 속도는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해 보여주지 못하지만, 위치선정과 결정력 만큼은 확실히 살아났다.

첼시나 밀란처럼 윙어 위주의 플레이어들이 많으면 망하고 제라드나 코케처럼 수준높은 조율사 및 패서가 있어야 흥하는 스타일이다. 첼시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던 램파드는 토레스가 이적해온 시기에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었으니...

첼시 시절 부진의 원인은 토레스 본인의 폼 저하도 있었지만 전술상의 이유 그 중에서도 미드필더나 2선의 선수들이 창조적인 패스를 못 하거나 토레스가 좋은 움직임을 보여도 미드필더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바빠서 토레스가 부진했다는 말이 있었다.

일단, 토레스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려면 토레스가 이적할 당시의 첼시 상황을 알 필요가 있는데 당시 첼시는 팀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있는 상태였다. 수비진은 히카르두 카르발류의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었고 중원은 미하엘 발락의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 했고[11] 램파드의 장기 부상과 그로 인한 노쇠화, 에시앙의 폼 저하로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었고 드록바는 말라리아로 고생 중이었다. 측면은 그 악명 높은 말루다-칼루 라인이 주축이었다.[12] 게다가 팀은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상태여서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겨울 이적시장 막바지에 급하게 영입된 것이 토레스와 다비드 루이스이다. 하지만 중원 보강도 없었고 완전히 무너져있는 팀에 토레스같은 유형의 스트라이커가 왔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즉, 토레스가 영입된 시즌에는 토레스가 제대로 활약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이후에 첼시가 리빌딩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첼시가 2선을 뜯어고치면서 후안 마타, 에당 아자르라는 최고의 2선 자원이 영입되었고 그 외에도 오스카, 모제스, 쉬얼레, 윌리안 등 한가닥 하는 선수들이 대거 들어왔다. 비록 선수 영입이 너무 2선에 치우치다보니 밸런스가 맞지 않는 감은 있었으나 토레스에게 훌륭한 동료들이 생긴 것만큼은 분명하다. 특히, 후안 마타는 12/13시즌에 19골 35어시스트[13]라는 미친 스탯을 쌓으며 커리어 하이에 있었고[14] 아자르도 리그에서 11어시스트로 도움 2위에 랭크되었다. 이런 동료들을 두고 토레스는 그 시즌에 리그 8골밖에 넣지 못하였다. 비록 유로파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고는 하나 유로파리그는 아무래도 한 단계 낮은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이고 선수에게 가장 메인이 되어야 할 대회는 리그이다. 이적료 5000만 파운드의 스트라이커가 리그 도움 1, 2위를 동료로 두고서 8골밖에 넣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리고 팀의 전술만을 탓하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위에 토레스가 만약 첼시가 아니라 수준 높은 패서가 있는 클럽으로 이적했더라면 매 시즌 두자리 골은 넣었을 것 같다고 써있는데 사실 첼시에 있는 동안 마타, 아자르, 오스카, 램파드 등등 미드필더진이 떠먹여 주는 것만 제대로 받아먹기만 했어도 10골 이상 넣었다(...).[15]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타, 아자르, 오스카, 램파드가 슛하고 튕겨져 나온 것들만 정확하게 밀어넣었어도 역대 최악의 먹튀 소리는 안들었다. 그리고 과장도 아닌 것이 토레스가 첼시 시절에 정말 어이없게 놓친 골 찬스가 매시즌 4~5번 있었는데 그것들만 다 넣었어도 매 시즌 리그 두자리수 골은 된다. 토레스가 첼시에 있었을때 첼시 팬들이 가장 답답해했던 부분은 토레스의 저하된 폼도 아니고 전술적인 문제도 아닌 1부리그 선수, 그것도 우승권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의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토레스의 결정력이었다. 팬들이 흔히 말하는 '저건 내 할머니도 넣는다.'류의 찬스도 놓치는데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스트라이커는 골만 잘 넣어도 절반은 간다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종합해 보자면 토레스가 첼시에 있었을 때의 부진의 주된 원인은 잘못된 시기에의 이적, 개인의 폼 저하, 과도한 이적료로 인해 부담감, 기복, 그리고 이것들 모두가 종합되어 생긴 자신감 저하로 인한 결정력 부재 때문이지 패서의 부재, 팀 전술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토레스도 첼시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첼시의 전술에 어느 정도 적응하였지만[16] 문제는 그것을 골로 결정짓지 못했다는 점이다. 토레스의 첼시 시절에 수많은 팬들이 '움직임은 좋은데 결정력이 한심하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보자.

5. 커리어

5.1. 출전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00/0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군다 리가 4 1 2 0 - -
2001/02 36 6 1 1 - -
2002/03 라리가 29 13 3 1 - -
2003/04 35 19 5 2 - -
2004/05 38 16 6 2 5 2
2005/06 36 13 4 0 - -
2006/07 36 14 4 1 - -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07/08 리버풀 FC EPL 33 24 1+1[17] 1+3 11 6
2008/09 24 14 3+2 2+0 9 2
2009/10 22 18 2+0 0+0 8 4
2010/11 23 9 1+0 0+0 2 0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0/11 첼시 FC EPL 14 1 - - 4 0
2011/12 32 6 6+2 2+0 10 3
2012/13 36 8 5+4 1+2 16 9
2013/14 28 5 2+1 0+1 10 5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4/15 AC 밀란 세리에 A 10 1 0 0 - -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4/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19 3 4 3 3 0
2015/16 30 11 2 0 12 1
2016/17 31 8 5 1 9 1
2017/18 27 5 6 3 12 2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J리그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8 사간 도스 J리그 17 3 0 0 0 0
2019 8 0 1 0 0 0

5.2. 대회 기록

5.3. 개인 수상

6. 트리비아

  • 축구를 시작할 때 원래 골키퍼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형제가 이미 그 포지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트라이커를 선택했다고 한다.
  • 토레스는 현역 시절 같이 뛴 가장 인상 깊은 선수가 누구였는지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스티븐 제라드를 선택했다. 그는 “함께 뛴 최고의 선수는 제라드라고 항상 말해왔다. 내 축구를 완성시켜준 선수이다. 그와 함께 뛸 때면 내 수준이 다른 차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제라드와 함께 뛰었던 3년 반은 대단한 시절이었다. 단 1분이라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회고하였다.
  • 2005-06시즌 AT 마드리드 시절, 라 리가에서 볼 빼앗긴 횟수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총 396번 볼을 빼앗겼다고(…) 이 시즌 36경기 출장했으니 매 경기 11번(…) 볼을 뺏긴 셈이다.[19]
  • 팬에게 매너 좋기로 유명하다.
  • 딸을 낳으면 Olalla라는 이름을, 아들을 낳으면 Diego라는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던 과거가 있다. 하지만 아들 이름은 레오이고. 딸이름은 노라와 엘사로 지었다.
  • 리그 득점왕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20]
  • 해축갤에서 낚시를 할 때 쓰이고 있다. 토레스 낚시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 EXO카이가 토레스의 팬이었는데, 이를 안 EXO의 팬들이 토레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카이의 생일 선물로 토레스의 사인을 선물해달라고 부탁했고, 친필 사인한 공과 티셔츠를 선물로 보내줬다고 한다. 민폐도 저런 민폐가 따로없다.
  • 머리 길이와 실력이 비례한다는(...) 무슨 삼손이냐이야기가 돌 정도로 머리숱과 인연이 깊은데, 장발을 하고 있었던 리버풀 시절과 최근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머리가 짧았던 첼시와 밀란에서는...그런데 첼시에서도 한동안 머리 기르고 있다가 1년 정도 지나고서야 삭발했다. 그래도 존잘이더라 팩트는 첼시에서 장발일때도 못해서 본인이 삭발한 것이다.
  • 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우승과 유로 우승, 득점왕 등 커리어가 훌륭하다 못해 역대급이고, 클럽에서도 챔스 우승, 유로파 우승과 각종 컵 대회 우승까지 커리어가 좋으나 단 한가지 그에게 없는 우승 커리어가 바로 리그 우승이다. 온갖 대회에서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토레스는 단 한차례도 리그우승 트로피가 없다. 본인의 전성기였던 리버풀 시절에는 아예 우승 트로피를 하나도 들지 못했고, 첼시로 이적해서는 챔스 우승과 유로파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리그 우승은 토레스가 첼시에 없던 안첼로티 1년차(09-10)와 무리뉴 2년차(14-15)에 했다. 아틀레티코로 돌아온 후에도 아직 라리가 우승은 못했다. ATM이 우승한 13-14 시즌엔 그가 첼시선수였으니. 또 하필이면 프리메라 리가에는 바르샤와 레알 두 거함이 버티고 있어 앞으로도 라리가 우승이 쉽지않아 보인다
  • 2017-18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첼시로 이적한 알바로 모라타가 아직은 프리 시즌이고 원래의 포지션인 스트라이커에서 왼쪽 윙어로 활약해서 낯선 감이 있었지만 흐지부지한 결과를 만들어내어 첼시 시절의 그와 모라타를 어원으로 하여 토레타가 완성되었다. AT에 있는 레전드 토레스도 첼시 시절을 까고 있는 축구 팬들(...).[21] 다만 모라타는 우려와 달리 첼시에서 맹활약하는 줄 알았지만 후반기가 되자 귀신같이 부진하고 있다.
  • 유독 피파온라인 시리즈에서 실제 능력에 비해(?) 침투가
    좋은편에 속한다
  • 일본 생활이 마음에 드는 듯 하다. 오래 거주할 것이며 특히 일본 여자들이 어려 보이고 귀엽다고 칭찬했다. #

7.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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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 미소년 + 큰 키 + 멋진 몸 +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 + 정상급 스트라이커 + 첫사랑과 결혼 등 만화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이다 보니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1] 스페인 역사상 출장 공동 8위, 득점 3위.[2] 센추리 클럽 가입에 국가대표 역대 득점 3위, 월드컵 1회 우승, 유로 2회 우승을 했으니 최소한 스페인 국가대표 황금 세대의 일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월드컵 우승 당시에는 경기력이 매우 좋지 않았고 UEFA 유로 2012 우승 때도 득점왕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실속 있는 활약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워서 토레스의 국대 경력이 평가 절하되는 경향은 있다. 또한 스페인 대표팀의 또 다른 주포인 다비드 비야UEFA 유로 2008에서 4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과 동시에 조국의 우승에 크게 일조하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총 5골을 넣으며 조국의 우승에 다시 한 번 더 크게 일조하고, 대회 브론즈볼, 실버 부츠를 수상한 것과 너무 대조되면서 토레스의 국가대표 경력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인식되는 것도 있다. 물론 토레스 본인도 UEFA 유로 2008에서 2골 1도움, 그 중에서도 1골은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로 넣은 골이어서 대회 우승에 크게 일조한 부분도 있다.[3] 여담이지만 토레스는 그 후 월드컵 예선에서는 단 한 번도 득점하지 못했다.[4] 좋은 예로 포르투갈전을 들 수 있다. 선수비 후역습으로 나오는 포르투갈에 스페인은 비야 - 토레스 투톱으로 나섰지만 찬스가 번번히 무산되었고 감독은 후반에 토레스를 빼고 피지컬 좋고 키 큰 타겟맨 요렌테를 투입하였다. 그 뒤 공격이 확실히 살아나 결국 비야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5] 일단 부진이라 표현하기도 뭣 한 게 그 이후로 딱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경쟁 공격수들도 페드로를 빼면 워낙에 못해서…[6] 이 사진이 바로 토레스 희대의 굴욕으로 남을 부폰의 발재간 농락 사진이다. 정말 말 그대로 부폰의 발을 이용한 선방에 막혔다.[7] 이전 버전에서 석연찮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다. 출전 횟수야 어쨌든 미리 정해져 있던 룰에 따라 득점왕이 된 것이고, 원래 더 적게 출전한 선수가 이득을 보는 것이 맞다.[8] 이 때 토레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타히티의 팬이 되었다. 단순히 우리가 이겨서 아니라 지고 있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다른 팀들도 타히티를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겸손한 인터뷰를 했다. 이 발언은 3년 후 토마스 뮐러가 산마리노와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지역예선에서 8:0으로 이긴 후 산마리노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과 대조되기도 했다.[9] 2016년 4월 기준 17경기 11골. 기사[22] 저 경기들은 토레스의 전성기였던 리버풀 시절이 아니라 대부분 유망주 시절, 폼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떨어진 첼시 시절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복귀 후 경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 특히 11-12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넣은 골은 토레스 하이라이트를 틀면 높은 확률로 맨 마지막에 나온다.[10] 11/12시즌 챔스 준결승에서 토레스가 득점을 하지 않았어도 첼시가 진출하는 상황이었고 유로 2012 결승에서도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별 영양가 없는 득점이기는 하지만 기록은 기록이다. 특히, 유로 2012 결승에서는 유로 역사상 최초로 두 대회 연속 결승전 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11] 하미레스를 영입했으나 하미레스가 첫 시즌에 발락만큼 활약해주진 못 했다.[12] 물론 말루다와 칼루 모두 전성기때는 한가닥 하는 선수였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폼이 급격하게 떨어졌다.[13] 리그에서는 17어시스트로 도움왕.[14] 마타는 팀 밸런스가 무너져 있던 11/12 시즌에도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첼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15] 만약 정말로 전술이 문제였다면 스트라이커를 겨냥한 역습 위주의 전술과는 상극인 전술을 쓰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유로 2012 득점왕, 컨페드 득점왕을 하는 등 토레스가 잠깐이나마 반짝였던 것은 설명이 불가능하다.[16] 그리고 5000만 파운드 몸값의 선수가 세 시즌 반동안 새 팀 전술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17] FA컵+풋볼 리그 컵[18] 골닷컴 선정[19] 사실 토레스는 전성기 시절, 먹튀 시절 가리지 않고 볼 헌납이 많았다.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플레이 스타일이 정교함보다는 다이나믹함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20] 실제로 전성기라고 여겨지는 리버풀 시절 득점왕을 차지했던 선수들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니콜라스 아넬카, 디디에 드록바가 있다.[21] 그런데 모라타도 레알 유스에 입단하기 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에 입단한 적이 있다!


[22] 이 기사 이후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1골을 추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