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1 15:38:15

페르난도 토레스

페르난도 토레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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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페르난도 토레스
2008 Ballond'or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페르난도 토레스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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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토레스의 기타 정보
{{{#!folding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6
안드리 솁첸코
(4600만 유로)
2007
페르난도 토레스
(3800만 유로)
2008
호비뉴
(4300만 유로)
2010
다비드 비야
(4000만 유로)
2011
페르난도 토레스
(5990만 유로)
2012
헐크
(5500만 유로)

}}} ||
파일:2019601502_l.jpg
사간 도스 No.9
페르난도 토레스
(Fernando Torres)
생년월일 1984년 3월 20일 ([age(1984-03-20)]세)
국적 파일:스페인 국기.png 스페인
출신지 마드리드
신체조건 186cm[1] / 82kg
혈액형 O형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유스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5~2001)
프로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1~2007)
리버풀 FC (2007~2011)

첼시 FC (2011~2015)
AC 밀란 (임대) (2014~2015)
AC 밀란 (2015~201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임대) (2015~201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6~2018)
사간 도스 (2018~2019)
국가대표
(2003~2014)
110경기 38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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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
2.1. 유소년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1.1. 수많은 이적 떡밥
2.2. 리버풀 FC
2.2.1. 이적 뒷 이야기
2.3. 첼시 FC2.4. AC 밀란
2.4.1. 14-15 시즌
2.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복귀
2.5.1. 14-15 시즌2.5.2. 15-16 시즌2.5.3. 16-17 시즌2.5.4. 17-18 시즌
2.6. 사간 도스
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경력
5.1. 출전 기록5.2. 대회 우승5.3. 개인 수상
6. 트리비아

1. 개요

파일:la-emocion-de-fernando-torres.jpg
스페인 국적의 축구 선수로, 현 소속팀은 사간 도스이다. 주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2. 클럽 경력

2.1. 유소년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일:Fernando-Torres-young.jpg
AT 마드리드 유스 시절

토레스는 마드리드 근교의 푸엔라브라다 지역에서 자랐다. 푸엔라브라다는 오래 전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토레스를 발견한 것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연령별로 유소년 팀을 거쳐온 토레스는 1998년에 첫 번째 중요한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5세 이하 팀을 나이키 컵에 출전시켰는데, 여러 유명한 유럽 클럽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토레스는 후에 같은 나이대의 선수 가운데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99년 15세의 토레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첫 번째 계약을 맺은후 첫 번째 해를 유소년팀에서 보냈고 16살이 되면서 유소년 팀 최상위 리그인 División de Honor에 참가하게 되었다.

2000-01 시즌은 정강이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으면서 안 좋게 시작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토레스는 12월까지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토레스는 시즌 전부터 1군에서 훈련받으며 준비하였으나, 결국 데뷔는 시즌 끝무렵인 2001년 5월 27일에 이루어졌다. 17세의 나이에 토레스는 성인팀에 데뷔하여, 1주일 후에 프로 최초의 골을 성공시켰고 성인들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토레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소년팀을 거치면서 아틀레티코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아쉽게 4위를 기록하며 프리메라 리가로의 승격은 실패하였다. 세군다 리가에서 두 시즌을 보내면서 40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하였다.

2001-02 시즌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세군다 리가 우승을 하면서 라 리가로 승격하였다. 그렇지만 토레스는 36경기에 나오면서 6골을 기록하는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스페인 최상위 리그에서의 첫 번째 시즌이었던 2002-03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11위로 마감하는 동안 토레스는 29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하는 호성적을 보여주었다. 라 리가 두 번째 시즌인 2003-04시즌에 토레스는 더욱 발전하여 35경기 출전에 19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순위 3위로 마감하였다.

토레스는 단 19세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주장을 맡게 되었다. 아틀레티코는 아깝게 UEFA컵 진출권을 놓치고 말았지만, 7위를 기록하며 UEFA 인터토토컵에 나가게 되면서, 토레스는 첫 번째 유럽 클럽 대항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토레스는 OFK 베오그라드와의 두 차례 경기에서 각각 한 골씩 넣으면서 유럽 클럽 대항 첫 골을 기록하였다. 아틀레티코는 인터토토컵 결승에 올라갔지만 비야레알 CF에 승부차기에서 패배하였다.

2.1.1. 수많은 이적 떡밥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었던 첼시 FC가 2005년에 토레스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구단주인 엔리케 세레초는 "no chance"라고 하며 토레스의 이적을 불허하였다. 세레초는 2006년 1월에 토레스의 이적 제의를 귀기울여 들을 용의가 있다고 말하였고, 같은 해 3월에 토레스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가 데려가길 원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던 2006년 FIFA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 토레스는 2005-06시즌 말에 첼시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였다. 다음 시즌인 2006-07시즌에 라 리가에서 14골을 넣었지만, 토레스의 아틀레티코에서의 선수생활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UEFA컵 출전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게 되었다. 아스날 FC, 첼시 FC, 리버풀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토레스를 데려가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잉글랜드 미디어의 리포트에서는 토레스가 리버풀의 주요 이적 타겟이라고 보도하였다.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 아틀레티코의 구단주인 세레초의 귀에도 들어갔고 세레초는 "우리는 리버풀이나 다른 클럽으로부터 어떠한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며칠 후에, 아틀레티코가 토레스를 리버풀로 이적시키는데 동의했다는 새로운 기사가 나왔다. 소문에 따르면 이적료는 2,500만 파운드에 루이스 가르시아를 함께 이적시킨다는 것이었다. 6월 30일에 아틀레티코는 비야레알로부터 디에고 포를란을 데려오며, 토레스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토레스의 이적을 공식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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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시즌에는 리버풀과 첼시의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을 앞두고 열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주장 완장에 YNWA가 적힌 꼬리표를 달고 출전하기도 했다.

7월 2일 토레스는 최종적으로 리버풀로 이적하게 되었다. 다음 날, 토레스는 리버풀의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였고, 고별 기자회견이 7월 4일에 마드리드에서 열렸다.

2001년에 프로에 데뷔한 이후 토레스는 라 리가에서 174경기에 출전하여 75골을 기록하였다.

2.2.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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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빨간 토레스
파일:external/pic.pimg.tw/df0a23fe25a7adfee970f68d8ab78cfc.jpg
Liverpool No. 9 [3]

리버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였다. 2008년 3월에 리버풀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스는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약 20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들었다고 밝혔다.[4]
리버풀 시절에는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제토라인이라는 최고의 공격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데뷔 시즌인 07-08 시즌 리그에서만 33경기 24골, 총합 46경기 33골으로 맹활약하며 EPL 외국인 선수 데뷔 시즌 최다골을 경신했고,[5] 1995-96 시즌의 로비 파울러 이후 리버풀에서 한 시즌에 20골 이상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거기에 잘생긴 외모까지 한몫하면서 인기 폭발, EPL의 간판 스타가 되었다. 토레스는 빠른 주력을 앞세워 비어있는 뒷공간을 침투하는 플레이에 아주 능했다. 햄스트링 부상을 자주 당하며 은근 유리몸 기질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리버풀에서 토레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했다. 당시의 플레이 영상을 보고 있으면 첼시의 토레스와 비교해볼 때 정말 같은 선수인가 의구심이 들 지경.

결국 07-08 시즌의 활약과 유로 2008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이끈 점을 인정받아 FIFA/FIFPro 월드 XI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된 것은 물론, 호날두, 메시에 이어 발롱도르 3위, FIFA 올해의 선수상 3위를 차지하게 된다.

토레스는 08-09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리버풀에서 총 84경기 50골(리그 57경기 38골)을 득점했으며 프리미어리그 38골, 챔피언스 리그 8골, 칼링컵 3골, FA컵 1골을 득점했다. 09-10 시즌에는 애스턴 빌라와의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넣음으로써 리버풀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내에 50골(72경기 50골)을 득점한 선수가 되었다. - 이전 기록은 리버풀 레전드 로저 헌트 경이 가지고 있던 기록이었다.(78경기 50골) 페르난도 토레스의 이 기록은 앤디 콜의 65경기 50골, 앨런 시어러의 66경기 50골, 뤼트 판니스텔로이의 68경기 50골에 이은 4위 기록이다.

샤비 알론소가 팔려나간 후 리버풀은 상당히 기울었는데, 밑에도 서술되어있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 토레스의 활약은 상당히 지지부진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토레스이기에 다른 팀들, 특히 첼시에서 정말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전부터 토레스를 틈틈히 노려온데다가 첼시가 정말 토레스에게 많이 당했기에[6] 안첼로티 감독로만도 토레스에 대한 관심을 표하였었다.

첼시만이 아니라 FC 바르셀로나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토레스가 나가겠다고 하면 당시 구단주인 힉스와 질레트는 얼씨구나 하고 팔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토레스는 월드컵을 리버풀의 응원 수건을 두른 모습으로 들어올리면서 이러한 이적설을 일축시켰다.

하지만 토레스가 본래 리버풀로 온 이유는 오직 우승이었고, 특히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고 싶어하였기에 앞날은 모르는 것.[7][8] 특히 요즘 로이 호지슨처럼 못난 감독과 함께라면…그래도 구단이 인수되어서 안정이 되었기에 무조건 떠난다고 볼 수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 1월 29일. 토레스는 서면으로 정식 이적 신청을 했지만, 구단의 뜻에 의해 기각되었다. 성적 부진과 루이스 수아레스의 영입으로 팀을 옮길 결심을 했다는 추측이 대부분. 어떻게 되든 리버풀에게는 향후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1월 30일, 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토레스의 이적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떴으며, # 링크1 곧이어 리버풀도 이적에 동의했다. # 링크2 요구 이적료는 50m 혹은 40m + 니콜라 아넬카. 이제 남은 것은 로만의 선택이다. 덤으로 언론은 토레스의 행보에 잔뜩 주목하고 있다. 리버풀에서 토레스를 까는 익명의 선수 인터뷰가 올라왔다.

토레스의 이적 때문에 잉글랜드 이적 시장은 하루만에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에 빠져들었다.

리버풀이 토레스가 빠진 공격진 보강을 위해 앤디 캐롤을 35m에 사고 블랙풀의 찰리 아담을 14m에 비드를 넣었다.[9] 그리고 캐롤을 보낸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볼튼 원더러스의 요한 엘만더를 찌르고 볼튼은 첼시에게 다니엘 스터리지를 임대. 이에 질 수 없는 토트넘은 주세페 로시에게 35m이라는 거액의 비드를 넣었다. 기자의 반응은 The world's gone mad.

결국 리버풀은 트위터로 토레스가 떠났음을 밝혔다. 남은 것은 메디컬 테스트 뿐이라고 한다. 이적료는 50m. 그리고 리버풀 팬들은 토레스의 유니폼을 태워버렸다.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football_new4&no=29bcc427b78077a16fb3dab004c86b6f58fd4e160e9f6d5311213618ba4e3ff6b8c4ad2ae80eb92488f46d58f2f2e29aa0f04da39311976ecf8675c43d9438850b0b5faa0a4b8ca2bc4830c9a3687310e3cec5c8b6ac82aa&f_no=a67b1cad3736b5548e8086e546827d73b6243f

리버풀에서의 기록은 142경기 82골. 리그 102경기 65골.

2.2.1. 이적 뒷 이야기

토레스가 처음 이적을 요구한 것은 2010년 여름이다. 즉 저기 위에서 리버풀 머플러 걸고 사진찍은지 얼마 안 돼서 이적을 요구한 것이다. 첼시가 35M파운드를 오퍼했고 챔피언스 리그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리버풀의 상황때문에 토레스는 첼시로 이적을 원했으나 보드진은 클럽의 판매가 걸려있다며 클럽에게 존경심을 보이라고 요구하며 투자를 약속하는 한편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 실패시 50M 파운드의 바이아웃 조항을 설정해 재계약을 했다. 2010-11시즌 리버풀의 성적은 더욱 참담했고 첼시가 1월 이적시장에서 다시 오퍼를 해오자 토레스는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다.

애초에 본인이 사랑하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나 리버풀로 온 것도 타이틀 때문이니 이해를 못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적 요구를 하는 한편 안 떠날거라고 인터뷰로 장담했던 것이라 좀 이상한 모양새. 게다가 리버풀에 있던 시절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리버풀에 대한 사랑을 표출하고 충성 맹세를 했기 때문에 토레스를 멘탈갑으로 생각하던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적하면서, 그리고 완전 이적 후에 인터뷰로 '리버풀에 문제가 많았다', '자기는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는 폭탄 발언을 하며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좋은 이미지마저도 스스로 깎아먹는 모습을 보였다.[10]

파일:attachment/Torregi_transfer_the_truth.jpg

한편으로 2012년 9월 발간된 제라드의 두 번째 자서전에서 토레스가 제라드에게 "나 이적하고 싶다"라 말했더니 제라드가 몹시도 마음 아파했다는 이야기가 공개되었다. 케니 달글리시 당시 감독이 당시 왜 그리도 격분했는지 잘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며, 이를 읽은 리버풀 팬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3. 첼시 FC

파일:external/i.telegraph.co.uk/torres_2003375c.jpg
자신의 명성과 평판을 나락까지 떨어뜨린 암흑기

너무 길어서 따로 항목을 만들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2.4. AC 밀란

2.4.1. 14-15 시즌

파일:external/worldsoccertalk.com/Torres1-600x384.jpg
이탈리아에서도 부진을 떨치지 못하다

가디언을 비롯한 언론에 따르면 임대 이적은 한푼의 위약금도 주지 않기 위해서 한 결정이며, 주급 보조 또한 0%로 밀란이 모두 부담한다고 한다. 그리고 첼시는 곧바로 로익 레미 영입에 착수했다.이건 첼시가 벼르고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상 최악의 먹튀에게 위약금 따위 한푼도 주지 않겠다는 첼시 보드진의 의지가 보인다. 토레스는 첼시와 2016년 6월까지 계약했으므로 사실상 밀란으로 이적한 셈이 된다. 그리고 토레스의 이적이 확정되자마자 수많은 첼시 팬들이 이제는 우리 선수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토레스를 나노 단위로 까대기 시작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토레스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터뷰 내용인즉슨 토레스는 철저한 프로페셔널이며, 일류 선수인 만큼 AC 밀란보다는 자신의 친정팀인 인테르로 보내고 싶었다는 것. 아마도 토레스가 이탈리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편 이미 해탈할 대로 해탈한 밀란 팬들은 토레스가 부활할 것이란 헛된 망상까지 보이고 있으니...[11]

9월 24일 엠폴리 FC 전에서 팀이 0: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헤딩 만회 골을 넣어 밀란에서의 데뷔골을 기록했다. 첼시에서의 첫 골은 무려 경기 출전 486분만에 기록했지만, 밀란에서의 첫 골은 57분만에 기록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버로우를 타고 있다. 그 와중에 피오렌티나전에서 마티아 데 실리오의 크로스를 바이시클 슛으로 데 실리오에게 다시 튕겨내며 큰 웃음을 주었다.택배 반품 사실 2대1 패스라 카더라

밀란에서도 끔찍한 부진을 이어가자 밀란이 임대 취소를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무리뉴 감독은 즉각 토레스 돌아와도 자리없다기사라고 일축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리버풀 복귀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신뢰를 보였던 필리포 인자기 감독도 임대 취소설에 대해 별 얘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밀란 내부에서도 토레스를 처분하려는 생각인듯 하다. 그러더니 급 알레시오 체르치와 맞임대를 합의 보았다. 이로써 토레스는 약 10년만에 고향 팀으로 복귀가 확정되었다.
토레스의 라 리가 복귀 소식이 알려진 후 와싯은 토레스의 세리에 A 활약상을 기생수를 패러디하여 그렸는데 걸작이다. 기생수를 못본 위키러들이 있다면 기생수를 보고 난후 이 만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2.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복귀

2.5.1. 14-15 시즌

"마침내 으로 돌아왔다. 꿈을 이루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12]

2015년 1월 5일부터 AC 밀란으로 완전 이적하게 되며 곧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1년 6개월간 임대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IMG_20150125_231505.jpg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두 골을 기록 후 환호하는 토레스

코파 델 레이 16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 경기에서 복귀 첫 출전, 팀은 2-0으로 이겼으나 본인은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그러나 원정 2차전에서는 전반전 1분에 레알 마드리드와 팬들의 혼을 빼놓는 벼락같은 선제골을 넣더니, 후반전에도 시작한지 1분만에 추가골을 넣으면서 팀의 2-2 무승부와 다음 라운드 진출에 톡톡히 기여했다.##

8강 바르셀로나전도 1, 2차전 선발출전했는데 1차전 원정에서는 골을 넣지 못하고 팀이 1-0으로 졌지만 2차전 홈에서는 또 전반 시작 1분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전체 스코어를 원점으로 돌려놨다.[13][14] 다만 팀은 얼마 안 있어 네이마르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난타전을 벌인 끝에 2-3으로 져서 탈락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앙투안 그리즈만, 마리오 만주키치와 함께 돌아가면서 투톱을 이루고 있다.

8일 마드리드 더비에서도 77분에 교체 출전해, 89분에 뒷 공간 침투에 이은 감각적인 크로스로 만주키치가 헤딩 골을 따내면서 1도움으로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최근 나쁘지 않은 활약상에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 토레스의 영입을 14-15시즌 겨울 이적시장 최고의 영입 Best 10에 포함시켰다. 두 해설위원의 설명과 다른 네티즌의 의견을 종합하자면...
  • 만주키치, 그리즈만에 이은 3옵션으로 더 이상 에이스로서 느끼는 부담감을 안느껴도 됨
  • 고향팀에서의 심리적 안정감
  • 폼은 전성기에 비해 떨어졌으나 절대 무시못하는 클래스
  • 적지 않은 나이에 혹사당하지 않고 몸상태를 잘 관리할 수 있는 팀에서의 입지
  • 여전한 스타성과 유니폼 판매량(...)
등의 이유때문에 토레스와 아틀레티코 양쪽 모두 이득이라고 평가받고 있다.AC 밀란은 매주 피눈물을 머금고 주급을 내주겠지

그러나 코파 델 레이에서의 놀랄 만한 성적과는 대비되게도, 2015년 3월 중반기까지 리그 및 챔피언스 리그에서 출장 경기 수가 두 자리 수가 넘어가도록 무득점 1 어시스트PK 1골 박주영VS 1어시스트 토레스라는 빈곤한 활약상을 보이면서 클래스는 어디 안간다는 비아냥 역시 듣고 있다.[15]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승부차기 5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키며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28라운드 헤타페전에서 멋진 헤딩으로 1골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마수걸이골을 기록하였다.

4월 11일 말라가전에서는 전반 37분 자책골을 넣었다.

4월 29일 비야레알 CF전에서 후반 29분 상대의 실수를 가로체 단독 드리블 이후 골키퍼까지 제치며 결승골을 뽑아냈고 5월 10일 레반테 UD 원정에서는 후반 막판 동점골을 뽑아내며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내는 등 시즌 막판에 알토란같은 활약을 선보이며 부상 이후 폼이 떨어진 만주키치를 대신하여 선발 자리를 꿰차기도 하였다.

2.5.2. 15-16 시즌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instaG_2015_06_26_23.22.04.jpg
다시 9번으로 돌아오다
파일:external/images.performgroup.com/fernando-torres-atletico-madrid_19369webwj7p613s9aldtgw3gb.jpg
후반기에 각성하여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하다

마리오 만주키치가 이적한 지 한 시즌 만에 유벤투스 FC로 이적함에 따라 공번이 된 9번을 달게 되었다.

현지 메가스토어에서는 9번 마킹 토레스의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16]

8월 시즌 첫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됐으나 별다른 활약상은 없었다.

세비야 FC와의 프리메라리가 2번째 경기에선 선발 출전, 침투가 아딜 라미에게 계속 막히며 고전하다가 후반에 잭슨 마르티네스와 교체되었다.

프리메라리가 3라운드 FC 바르셀로나 전에서 계속 침투를 시도했고 결국 후반 7분에 골을 성공시켰다.[17] 하지만 팀은 코즈믹 호러를 경험하며 패배했다.

프리메라리가 4라운드 에이바르 전에서는 후반전에 교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2:0 승리에 크게 공언했다.[18]

11월 26일 챔피언스 리그 갈라타사라이 전에서 매우 좋은 움직임과 연계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전에서의 드리블 돌파와 올리베르 토레스의 패스를 전성기 못지 않은 침투로 받아먹고 연계까지...

그러나 계속해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골닷컴이 선정한 2015-16 프리메라리가 전반기 워스트 일레븐에 선정됐다. 레알 소시에다드와 함께 추락중인 카를로스 벨라, 세리에 A 득점왕 출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폼을 보여주는 치로 임모빌레 또한 함께 선정되었다.

한편, 전북 현대 모터스와 링크가 뜨고 있다. 최강희 감독이 네임밸류급 빅스타 공격수 영입을 프런트에 요청했고, 그 일환으로 접촉을 했다고 하고 로빈 반 페르시 또한 링크가 났다. 1월 22일, 토레스의 에이전트는 토레스가 세계 최고의 연봉을 내세운 오퍼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적설이 더는 진행되지는 않았고 토레스는 아틀레티코에 남았다.

2월 7일, 에이바르와의 홈경기에서 드디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리그 100호골을 달성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아틀레티코 유스팀 단장인 마누엘 브리아나스[19]에게 달려가 자신의 100번째 골을 넣은 경기 유니폼을 건네주었다. 지금의 토레스를 있게 해준 인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아틀레티코의 감동의 100호골. 현재 이 유니폼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박물관에 토레스의 마누엘 브리아나스 단장에게 쓴 친필 글이 적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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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리그 100호골을 달성하다
2월 15일 프리메라리가 헤타페 전에서 전반 1분 득점에 성공하여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초에 이은 리그 2경기 연속 골. 이번엔 정말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 전에서 교체 투입 후 득점을 기록했다. 게다다 상대 선수 한 명을 퇴장시켰다. 계약 종료 기간이 다가오니 갑자기 살아난다. 또한 이 경기는 토레스의 아틀레티코 통산 300경기에 102골[20]까지 기록했으니 매우 의미있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머리를 기르고 있다.

4월 2일 프리메라리가 31라운드 레알 베티스 전에서 리그 6호골을 성공시켰다. 코케의 패스를 전성기와 비슷한 라인 브레이킹으로 받아먹은 후 칩슛으로 골을 넣었다. 역시 토레스는 머리 길이와 실력이 비례한 것 같다.

4월 6일 UCL 바르셀로나 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여 바르셀로나 킬러라는 별명에 맞는 활약을 하나 했지만, 퇴장 당하여 다음 경기는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린샤 클럽?[21] 팀은 루이스 수아레스의 멀티골로 2:1 역전패. 다행히 팀은 2차전 홈에서 앙투안 그리즈만의 멀티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4월 10일 프리메라리가 32라운드 에스파뇰과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뒤지고 있는 전반 34분, 코케의 감각적인 로빙 스루 패스를 전성기 시절과도 같은 뒷공간 침투와 깔끔한 퍼스트 터치를 보여주며 동점골을 넣었다. 그리고 88분, 우측면으로 공간을 열어 조금 길었던 터치설계를 크로스로 이어 전반과 반대로 코케의 골을 도왔다. 최근 3경기 연속 골인데다가, 시즌 2호골 이후로 11경기 6골을 터뜨리며 전성기 이래 활발한 활동량으로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4월 18일 프리메라리가 33라운드 그라나다와의 경기에서도 특유의 라인 브레이킹 능력으로 한골을 추가로 적립하였다.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고 있다. 코케의 날카로운 스루 패스가 토레스의 서서히 되살아나는 스피드, 골 결정력과 결합하면서 마치 리버풀 시절 제라드-토레스 라인을 보는 것 같다는 평.

4월 21일 프리메라리가 34라운드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그리즈만의 크로스를 멋진 헤더로 꽂아넣어 한 골을 추가하였다. 전성기 시절에도 해본 적 없는, 프로 데뷔 후 첫 5경기 연속골이라고 한다. 아틀레티코는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1:0 승리를 거두고 바르셀로나와 동승점을 유지했다. 자신의 선수 커리어 중 유일하게 없는 단 한 가지가 아틀레티코에서의 우승이라는 그. 과연 토레스는 꿈에 그리던 아틀레티코에서의 라 리가 우승을 만끽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4월 28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비센테 칼데론에서 연속골 기록이 깨졌다. 하지만 골대를 맞추는 활약을 해서, 토레스 본인이 더 아쉽지 않을까 싶다. 팀은 사울 니게스의 골로 1-0 승리.

5월 3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알짜배기 활약을 보여주었다. 홈 극강인 뮌헨을 상대로 애초에 중원을 내준 전반전에는 수비 역할에 전방 압박을 치중하였고 중원 장악을 시도한 후반전에는 팀 동료와의 매끄러운 연계 플레이를 해냈고 앙투안 그리즈만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후반전 중반에는 돌파 이후 패널티킥까지 얻어내었으나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래도 팀은 2-1로 패배했지만 합산 스코어 2-2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결승에 진출, 본인은 커리어에서 2번째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를 밟아보게 되었다.

5월 8일 프리메라리가 37라운드 레반테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공간 침투 + 칩샷을 선보이며 골을 넣었다. 2010-11시즌 이후 처음으로 리그 두자리수 골을 기록. 하지만 팀은 2대1로 역전패하며 리그 우승은 물건너갔다.

5월 15일 셀타 비고와의 프리메라리가 38라운드 홈 경기에서 후반 6분 수비수의 머리를 맞고 뜬 공을 발리슛으로 차 넣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어 토레스의 시저스 킥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온 뒤 그리즈만이 헤딩으로 추가골을 터뜨리면서 ATM은 최종전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리그 30경기 11골 기록.

시즌 전반기에는 당연하다는 듯부진하였으나 후반기에 급속도로 폼이 올라오며 정말 오랜만에 리그 두 자리 수 골을 기록하였고 이러한 후반기 활약 덕분에 재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특히, 후반기에 넣은 골들이 매우 순도가 높아서 토레스의 활약상에 수많은 팬들이 열광하였다. 다만 아쉽게도 스페인의 유로 2016 명단에는 들지 못하였다.

5월 29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1-0으로 밀리던 후반전 초반 페널티킥을 얻어냈지만, 앙투안 그리즈만이 실축을 하면서 동점골의 기회가 무산되었다. 이후 풀타임을 뛰었고 팀은 야닉 카라스코의 극적 동점골과 함께 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전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토레스가 우승했던 2011-12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과 똑같은 패턴으로 흘러갔지만, 결국 아틀레티코는 4번 키커 후안프란이 승부차기를 실축했고, 토레스가 승부차기를 해보기도 전에 레알 마드리드 키커 전원이 성공시키며 2014년에 이어 또 다시 레알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경기 종료 후 토레스 본인도 남은 선수 생활로 볼 때 향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무대에 다시 올라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는 지 서러운 듯 슬픔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5.3. 16-17 시즌

AC 밀란은 토레스의 임대 복귀와 계약 연장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부활을 성공시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의 완전 이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큰 계약들은 이미 끝나고 세부 계약 조정만 마무리하면 완료되는 것으로 보인다. 클럽이나 팬들도 지난 시즌 토레스의 활약과 더불어 과거의 레전드 선수가 클럽에 복귀하는 것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현재 시메오네 감독의 결별설에 대해 앙투안 그리즈만과 더불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관련된 모두가 시메오네 감독의 잔류를 바란다."라고 했다. 덧붙여서 시메오네의 거취의 고려는 할 수도 있는 거지만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전부 가정일 뿐이라고 한다. 토레스 "모두가 시메오네의 잔류를 원해"

그리고 7월 4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토레스를 자유계약으로 완전 영입했음을 밝혔다. 이로써 토레스는 이번 시즌에도 아틀레티코에서 뛰게 되었다.

프리시즌 투어 등번호가 지난 시즌과 동일한 9번으로 확정되었다.

현지시각 기준 7월 23일 프리시즌 투어 누만시아전에서 특유의 침투와 라인 브레이킹으로 1골을 넣어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지난 시즌 말기의 폼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고, 아직 폼이 유지되고 있는 듯 하다.

16-17 시즌 리그 개막전 알바레스 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줬다. 토레스가 투입되니까 경기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프리시즌에 누만시아전을 제외하곤 공격 포인트가 없었고, 머리도 밀어버렸기에 또 토레기 모드를 시전하는게 아닌가...하고 걱정했지만 그런건 없었다. 15-16시즌 말기 폼 그대로였다. 골대를 맞추기도 했고 추가시간에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가메이로가 넣었다. 또한 드리블로 수비수를 다 제치고 골대 바로 앞에 있던 고딘에게 패스하여 밥상 다 차려줬는데, 누가 수비수 아니랄까봐 골대 밖으로 날려버렸다. 팀은 1:1 무승부. 이 경기만 놓고보면 45분 뛴 토레스가 90분 뛴 가메이로보다 잘했다. 가메이로는 이적후 리그 첫 경기라 아직 적응이 덜되어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지 못하였더라도 당분간은 가메이로가 무조건 주전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후 프리메라리가 4라운드 히혼전에서는 무려 멀티골을 기록했다. 후반 23분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준 그리즈만과 교체되어서 들어간지 3분만에 득점을 성공시켰고, 추가시간에는 페널티 킥까지 성공시키며 팀의 5:0 대승에 일조했다. 역시 선수에게는 맞는 리그와 팀이 있는 듯하다.

가메이로와 그리즈만이 선발로 나서고 토레스가 조커로 나서는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 토레스 본인도 가메이로가 아틀레티코의 주전 공격수가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어느정도 폼이 돌아온 토레스이기에 언제 이런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프리메라리가 5라운드 바르셀로나전에 교체 출전하였다. 골은 기록하지 못하였지만 역시 바르셀로나 킬러답게 코레아의 골을 어시스트 하였다. 팀은 1:1 무승부. 정말 어렵다는 캄프 누 원정에서 귀중한 승점 1점을 따냈기에 더욱 값진 공격 포인트가 되었다.

2016년 11월 19일, 프리메라리가 12라운드 마드리드 더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수비수 나초와 바란에게 완벽하게 막히며 지워져 버렸다.

코파 델 레이 32강 2차전에서 주장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하였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전반 45분 득점에 성공하였다.

12월 30일 알 리티하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교체 출전하였다. 호세 히메네스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2G 연속 득점.

프리메라리가 21라운드 레가네스 전에서 오랜만에 멀티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리그 22라운드 셀타 비고 전에서 카라스코의 패스를 트래핑 후 바로 터닝슛으로 환상적인 골을 넣었다. 다만 그 후에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2경기 연속 멀티골은 실패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버쿠젠 원정에서 교체 투입되어 헤딩골을 넣었다. 14-15 시즌부터 전반기 부진>후반기 부활은 공식이 된듯 하다... 사실 첼시 시절부터 그래왔다.

그러나, 프리메라리가 25라운드 데포르티보 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뛰다가 후반 40분경 공중볼 경합 도중 알렉스 베르간티뇨스와 충돌하여 의식을 잃었고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부딪친 것도 그렇지만 넘어질 때 정말 세게 그라운드에 머리를 박았다. 시메오네 같은 경우 '목이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한테도 들렸다'면서 걱정을 표시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데포르티보 선수들 모두 침울한 분위기였다.[22][23] 이후 의식을 회복했고 뇌와 경추에는 이상이 없지만 추가 검사를 한다고 한다. Fernando Torres Horrible Injury

프리메라리가 29라운드 말라가 복귀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2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둘 다 드리블 돌파하다 넘어져 흘린 볼을 다른 선수가 마무리한 골이다. 그래도 풀타임 출장하면서 몸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호날두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심한 욕을 쓰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토레스에게 더 비관적이었다.

이후 비센테 칼데론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프리메라리가 38라운드 빌바오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였다. 다음 시즌부터 사용하지 않을 칼데론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팀의 레전드가 멀티골을 뽑아내어 팀의 승리를 이끌어, 비센테 칼데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2.5.4. 17-18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복귀 이후 상당히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팀에 공헌해준 토레스가 멕시코 진출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났다. 멕시코 구단 케레타로가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받는 450만 달러보다 더 높은 연봉 500만 달러를 제시한 것. 다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현재 FIFA로 받은 영입 금지 징계로 인해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며, 최대한 현 스쿼드를 지키는 자세로 나가고 있으며 앙투안 그리즈만, 코케, 사울 니게스 등을 포함한 아틀레티코의 주전 선수들 역시 팀에 남겠다고 발언한 상태이다.

결국 1년 더 재계약을 하면서 한 시즌 더 아틀레티코의 선수로 활약할 수 있게 됐으며 2017-18 시즌부터 홈구장이 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 완다 메트로폴리타노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프리시즌 아우디 컵 나폴리전에 선발 출전하여 그리즈만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넣었다. 아우디 컵 결승전 리버풀전에서는 교체 출전하여 승부차기를 깔끔히 성공시켰다. 팀은 1:1(승부차기 5:4)로 우승. 브라이튼과의 친선경기에는 선발 출전하여 헤딩골을 넣고 후반 앙헬 코레아와 교체되었다.

11월 23일, AS 로마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홈 경기에서 68분경 그리즈만의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의 시발점이 되는 로빙 패스를 찔러넣었다.

2017년 12월 5일에 펼쳐진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6라운드 첼시 원정경기에서 사울 니게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하지만 팀은 이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3위로 유로파 리그로 가게 되었다. 한편, 이날 토레스는 교체 아웃될 때 첼시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후 교체로만 출전하다가 2018년 1월 29일 프리메라 리가 21라운드 라스 팔마스전에서 오랜만에 리그 선발 경기를 치뤘다. 후반전에는 앙헬 코레아의 패스를 받고 수비수 2명을 리버풀 시절급의 움직임으로 제친 뒤 골을 넣으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2018년 3월 15일 유로파 리그 16강 2차전 홈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5:0 승리를 이끌어내며 합산 점수 8:1로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한편 이번 시즌이 끝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결별한다.

프리메라 리가 32라운드 레반테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리그 3호골을 터뜨렸다.

5월 17일에 펼쳐진 2018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90분경 3:0으로 앞서면서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상황에 그리즈만과 교체되어 경기장을 밟았고, 끝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3:0으로 마르세유를 누르고 우승을 거두면서 토레스는 아틀레티코 소속으로 첫 우승을 거두었다. 토레스와 아틀레티코 양쪽 입장 모두 해피엔딩이다.

2018년 5월 20일에 펼쳐진 자신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마지막 경기인 프리메라리가 38라운드 에이바르와의 홈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하여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토레스의 아틀레티코에서의 기록은 총 404경기 129골 16도움(라리가 281경기 103골 12도움)이다.

2.6. 사간 도스

2017-18 시즌이 끝나고 토레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난다고 언급했다. 행선지는 미국 아니면 중국으로 예상됐지만 뜬금없이 사간 도스와의 이적설이 떴는데 '고베처럼 돈많은 구단도 아니고 모두가 그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오보이긴 했지만 J리그 공식 홈페이지에도 영입 완료가 올라왔었고, 연봉 조율이 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오면서 진짜로 가나 싶었지만, 다시 결렬기사가 뜨면서 무산된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러나 2018년 7월 10일 오피셜이 떴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이적으로 시즌 중 등번호 변경이 가능해지면서 조동건의 9번을 가져갔다.

7월 22일 베갈타 센다이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50분 교체 투입되며 J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헤딩 경합에서 우위를 보여줬고, 좋은 패스도 몇번 보여줬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87분 상대에게 골을 먹히며 팀은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강등권 탈출에 실패.

이후 6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는 등 그리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J리그가 어렵다는 투의 발언을 하면서,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는 황의조만도 못하다며 까이고 있다(...).[24]

일왕배 컵 경기에서 이니에스타의 빗셀 고베와의 경기에서 8경기만에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팀은 3-0 승리. 이어 리그 감바오사카 전에서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2경기 연속골. 슬슬 적응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나 그 후 2경기 또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강등권에 있는 사간 도스가 만약에 2부 리그로 강등을 당한다면 팀을 떠날 것이라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33라운드에서 강등을 다투던 요코하마를 만나서 후반전에 극적인 골을 터뜨렸다. 드디어 돈값을 하는건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애초에 돈값을 했으면 강등권에서 일찌감치 벗어났을 거다. 34라운드에서 가시마 앤틀러스와 비기며 잔류를 확정지었지만 이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로서 2018 시즌은 빼도박도 못할 먹튀 확정.

사간 도스를 지원하던 싸이게임즈가 철수함에 따라서 토레스 역시 팀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졌으나 잔류한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2019년도 도스에서 뛸 가능성이 높다. 새 감독이 된 루이스 카레라스는 과거 AT 마드리드 시절 토레스의 동료로 토레스 잔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019 시즌 리그 10경기를 치룬 현재 사간 도스는 리그에서 승점 4점의 압도적인 꼴지를 기록하면서 강등권에 있다. 팀은 10경기에서 1득점 16실점의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 1득점도 토레스가 기록한게 아니란게 함정. 토레스는 리그 8경기에서 0골이라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카레라스 감독과 같이 사이좋게 일본을 떠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은 상황이다. 결국 토레스가 사간 도스 잔류에 영향을 미친 루이스 카레라스 감독은 5월 4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된다.

2019년 6월 21일, 토레스가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서 축구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고 밝혔고, 뒤이어 사간 도스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토레스가 현역에서 은퇴함을 알렸다.

6월 23일 기자회견에서 선수 생활은 마감하지만, 사간 도스의 고문에 취임해서 팀은 떠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도스 팬들 : 아아 우리의 피같은 세금아낄 기회가 날아갔다....

6월 30일 시미즈와의 홈경기에서 전반에만 2골을 기록하면서 갑작스러운 활약을 보여줬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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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함대 전성기의 일원[25]

2001년 2월, 토레스는 스페인 16세 이하 팀 선수로 참가하여 알가레브 토너먼트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16세 이하 팀은 5월에 열린 2001년 UEFA U-16 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역시 우승하였다. 2001년 11월에는 2001년 FIFA U-17 월드컵에 참가하였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하지는 못하였다. 2002년 7월에는 2002년 UEFA U-19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토레스는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결승전에서의 유일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2003년 9월 6일 스페인과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통해 국제 경기에 데뷔하였다. 첫 번째 득점은 2004년 4월 28일에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나왔다. 또한 UEFA 유로 2004의 선수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조별리그 처음 두 경기에 후반 종료 무렵 교체선수로 출전하였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주전으로서 출전하였으나, 1-0으로 패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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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유럽 예선에서 11경기 동안 7골을 득점하며, 스페인의 예선전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첫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토레스는 우크라이나와의 4-0 승리 경기에서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월드컵 본선 첫 골을 신고하였다.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인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는데, 첫 골은 76분에 2-1로 리드하는 골이었고 두 번째는 90분에 페널티킥으로 넣은 득점이다. 토레스는 다비드 비야와 함께 3골을 넣어 스페인의 공동 최다 득점자로 대회를 마쳤다. 토레스는 UEFA 유로 2008 명단에 포함되었고, 러시아와의 대회 첫 경기에서 비야의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토레스는 스페인 감독인 루이스 아라고네스에게 교체된 후에 외관상으로 악수를 거절한 것으로 보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토레스는 이 사건을 코치진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토레스의 대회 첫 번째 골은 스웨덴과의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에서 나왔다. 토레스는 UEFA 유로 2008의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1-0 승리를 거두게 해준 결승골을 넣으며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골 넣은것 뿐만 아니라 리버풀 전성기급으로 종횡무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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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참가, 조국 스페인은 최초로 우승을 했으나, 활약은 없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수많은 찬스들을 말아먹어서 잠시 동안 '토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스페인 대표팀은 압도적인 점유율과 패스 정확도, 그리고 슈팅 수에 비해 골은 8골밖에 넣지 못했다. 사실 월드컵 직전 부상의 여파로 폼이 확연하게 떨어졌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폼이 확 떨어진 선수를 계속해서 주전으로 기용한 감독의 용병술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26]

UEFA 유로 2012에서 다시 한번 국가대표로 승선하였는데 이탈리아 전에서는 부진했지만 아일랜드 전에서 2골을 넣으며 기대를 모았는데 다시 부진했다.[27]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최종 성적은 3골 1어시스트. 주목할 점은 이 기록이 192분만에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3골을 넣은 선수들 중에서 어시스트를 1개 기록했고, 그 중에서도 경기 시간이 짧아 결국 마리오 고메즈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다. 전성기급의 돌파력은 떨어지지만 여전한 뒷공간 창출, 수준급의 패싱 플레이는 토레스가 여전히 수준급의 선수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다만 스페인이 포워드를 뺀 제로톱 전술을 매우 효과적으로 구사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이에 토레스는 다소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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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대회 2연속 결승전 득점을 기록한 토레스.

애초에 위 기록은 스탯만 보면 화려하지만 그 외에는 실속없는 기록이다. 물론 스탯도 중요하지만 토레스가 UEFA 유로 2012에서 제대로 기용된 경기는 조별 예선 아일랜드전 딱 한번 뿐 나머지는 모조리 교체출전했다. 아일랜드가 감독이 화려하더라도 그다지 좋은 팀이 아닌데 이런 팀을 상대로 2골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1명이 부상으로 빠지고 체력 다 떨어진 이탈리아 상대로 교체출전해서 1골 1어시스트를 올린 것이다. 게다가 이미 이탈리아는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스페인이 앉아서 가지고 놀 만큼이었다. 게다가 교체 출전해서 무조건 잘한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전에서는 결정적인 찬스 두 번을 모두 말아먹었고 특히 부폰과의 1대1 찬스에서는 자신의 특기인 골키퍼 제치기를 하려다가 부폰의 개인기에 놀아나며 개털렸다.[28]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인 크로아티아전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뒤 토너먼트에서 꾸준히 기용되지 않다가 마지막 결승전 후반에 마타와 함께 투입되어 스탯만 쌓았다. 득점왕도 좀 그런게 전경기 풀타임 출전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1경기 선발 3경기 교체출전으로 득점왕을 얻어냈다.[29]콩메즈는 여기서도 콩이 되었네요. 풀타임 경기 출장했으니까 경기수가 적은 사람이 타는 게 맞긴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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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더레이션스컵 득점왕을 차지하다.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최약체 타히티에게 4골 1도움을 몰아넣었고,[30] 나이지리아 전에서 교체투입, 한 골을 추가하여 총 5골로 동률을 이룬 프레드보다 경기 시간이 짧아 유로 2012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또 다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실버부츠를 수상하였기 때문에 이번 골든부츠 수상은 한 단계 뛰어넘은 업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프레드가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몰아넣는 등 브라질의 우승주역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다소 민망한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아틀레티코에서 대활약을 보인 디에고 코스타의 귀화와 알바로 네그레도, 로베르토 솔다도, 페르난도 요렌테 등의 경쟁자들로 인해 2014 브라질 월드컵 출전은 매우 불투명해 보였으나 델 보스케 감독의 선수 선발의 보수적인 성향과 이러저러한 상황이 어찌저찌 맞아들어서 스페인 대표팀 최종 명단에 승선했다. 이후 첫 평가전인 볼리비아 전에서 PK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기는 했다. 허나 도중에 이니에스타의 환상적인 패스를 어이없는 트래핑으로 날려먹었다.

이후 월드컵에서는 디에고 코스타에 이은 두번째 옵션으로 활용되었으며 조별리그 1차전 네덜란드와의 월드컵 리턴 매치에서 교체 출전했지만 막판에 환상적인 개뻘짓을 보여주었으며, 칠레전에서도 교체투입 되었으나 클로킹 모드를 발휘하며 스페인의 광탈에 일조하였다. 광탈 확정 후 3차전 같이 광탈이 확정된호주 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하여 추가골을 득점하였다. 그 이후로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2019년 6월 21일 현역에서 물러났다.

4. 플레이 스타일



개인기나 드리블이 특출나게 뛰어난 편은 아니고 볼터치도 상당히 투박하다. 단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는 것이나 위치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고 골결정력도 빼어나다. 키가 큰 편이고 센터 포워드다 보니 윙어들처럼 스피드가 부각되는 선수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빠른 편인데 리버풀 시절 200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EPL에서 가장 빠른 선수[31] TOP 10에 들어갔었다. 특히 순간속도와 민첩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볼터치도 투박하다지만 빡빡한 압박 사이에서도 칼같이 트래핑하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동료들에 비해서나 그렇지 압박 강도가 적당하다면 볼터치도 쓸 만하다. 게다가 골 결정력은 유럽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수준이어서 어려운 각도, 어정쩡한 자세에서도 절묘하게 골을 넣어주는 능력도 있다. 이 모든 장점이 결합되어서, 라인을 올리고 뒷공간을 넓힌 팀 상대로 뒷공간을 따먹고 골을 넣는 능력은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였었다. 이 부분에선 사무엘 에투 정도나 비길까. 토레스의 특징 중 하나가 유독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매우 강하다는 것인데[32] 바르셀로나가 전통적으로 라인을 높게 잡는 팀이라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첼시에서의 먹튀 이미지 때문에 잊혀진듯 하지만 사실 비단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다수의 강팀을 상대로 많을 골을 넣는 강팀에 강한 선수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된 바르셀로나는 말할 필요도 없고 프리미어리그에 있었을때도 맨유, 첼시를 비롯한 강팀을 상대로 많은 골을 넣었다. 이것은 아무래도 강팀들이 라인을 올리고 경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토레스의 장점이 극대화될 여지가 많기 때문인듯 하다. 그리고 큰 경기에서도 은근히 한방씩 해주기도 한다. 유로 2008 결승, 11/12시즌 챔스 준결승 2차전, 유로 2012 결승, 12/13시즌 유로파 결승 등등 큰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33]

다만 상대가 라인을 낮추고 뒷공간을 줄이면 파괴력이 줄어들고, 이를 보완할만한 연계 플레이나 고립된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력은 탁월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 덕분에 스페인 국가대표팀처럼 볼의 점유율에 집중하며 천천히 만들어가는 전술에서는 진짜로 다재다능한 다비드 비야에 비해 훨씬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소속팀인 리버풀은 빠른 스피드, 많은 활동량, 정밀한 스루 패스로 적극적으로 뒷공간을 노렸기에 1.5선의 제라드와 더불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의 부진으로 인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플레이 스타일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알론소나 제라드처럼 패스를 찔러주는 선수가 없으면 많이 무력해진다. 볼터치도 문제다. 본래 그저 그런 볼터치고, 또한 좀 낮은 지역에서 소유나 풀어주기를 위한 볼터치 감각이 둔하기에 공을 받기 위해 밑으로 내려올수록 토레스의 존재감은 더 옅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드리블도 공 받고 순간적으로 수비수 1~2명 제끼는 드리블이 좋지 골대에서 먼 곳에서는 그냥...

사실 골 넣는 것만 잘하는 스트라이커가 득점력 자체가 떨어지면 팀에 그만한 민폐도 없다.

첼시 이적 후 첼시의 스타일 자체가 정밀한 스루 패스로 풀어나가기보다는 측면에서 안으로 파고 드는 공격 루트가 많아 최고 장점인 라인 브레이킹 능력의 활용 국면이 줄어들었다. 거기다 노쇠화인지 부상인지 순간 속력이나 힘이 리버풀 시절보다는 떨어져서 라인 브레이킹 시도가 실패하는 장면도 많고 결정력은 더욱 떨어졌다. 결국 첼시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틀레티코 15-16 시즌 후반기를 기준으로 옛 리버풀 시절의 폼을 거의 되찾은듯 싶다. 옛날같은 속도는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해 보여주지 못하지만, 위치선정과 결정력 만큼은 확실히 살아났다.

첼시나 밀란처럼 윙어 위주의 플레이어들이 많으면 망하고 제라드나 코케처럼 수준높은 조율사 및 패서가 있어야 흥하는 스타일이다. 첼시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던 램파드는 토레스가 이적해온 시기에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었으니...

첼시 시절 부진의 원인은 토레스 본인의 폼 저하도 있었지만 전술상의 이유 그 중에서도 미드필더나 2선의 선수들이 창조적인 패스를 못 하거나 토레스가 좋은 움직임을 보여도 미드필더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바빠서 토레스가 부진했다는 말이 있었다.

일단, 토레스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려면 토레스가 이적할 당시의 첼시 상황을 알 필요가 있는데 당시 첼시는 팀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있는 상태였다. 수비진은 히카르두 카르발류의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었고 중원은 미하엘 발락의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 했고[34] 램파드의 장기 부상과 그로 인한 노쇠화, 에시앙의 폼 저하로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었고 드록바는 말라리아로 고생 중이었다. 측면은 그 악명 높은 말루다-칼루 라인이 주축이었다.[35] 게다가 팀은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상태여서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겨울 이적시장 막바지에 급하게 영입된 것이 토레스와 다비드 루이스이다. 하지만 중원 보강도 없었고 완전히 무너져있는 팀에 토레스같은 유형의 스트라이커가 왔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즉, 토레스가 영입된 시즌에는 토레스가 제대로 활약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이후에 첼시가 리빌딩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첼시가 2선을 뜯어고치면서 후안 마타, 에당 아자르라는 최고의 2선 자원이 영입되었고 그 외에도 오스카, 모제스, 쉬얼레, 윌리안 등 한가닥 하는 선수들이 대거 들어왔다. 비록 선수 영입이 너무 2선에 치우치다보니 밸런스가 맞지 않는 감은 있었으나 토레스에게 훌륭한 동료들이 생긴 것만큼은 분명하다. 특히, 후안 마타는 12/13시즌에 19골 35어시스트[36]라는 미친 스탯을 쌓으며 커리어 하이에 있었고[37] 아자르도 리그에서 15어시스트로 도움 2위에 랭크되었다. 이런 동료들을 두고 토레스는 그 시즌에 리그 8골밖에 넣지 못하였다. 비록 유로파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고는 하나 유로파리그는 아무래도 한 단계 낮은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이고 선수에게 가장 메인이 되어야 할 대회는 리그이다. 이적료 5000만 파운드의 스트라이커가 리그 도움 1, 2위를 동료로 두고서 8골밖에 넣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리고 팀의 전술만을 탓하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위에 토레스가 만약 첼시가 아니라 수준 높은 패서가 있는 클럽으로 이적했더라면 매 시즌 두자리 골은 넣었을 것 같다고 써있는데 사실 첼시에 있는 동안 마타, 아자르, 오스카, 램파드 등등 미드필더진이 떠먹여 주는 것만 제대로 받아먹기만 했어도 10골 이상 넣었다(...).[38]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타, 아자르, 오스카, 램파드가 슛하고 튕겨져 나온 것들만 정확하게 밀어넣었어도 역대 최악의 먹튀 소리는 안들었다. 그리고 과장도 아닌 것이 토레스가 첼시 시절에 정말 어이없게 놓친 골 찬스가 매시즌 4~5번 있었는데 그것들만 다 넣었어도 매 시즌 리그 두자리수 골은 된다. 토레스가 첼시에 있었을때 첼시 팬들이 가장 답답해했던 부분은 토레스의 저하된 폼도 아니고 전술적인 문제도 아닌 1부리그 선수, 그것도 우승권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의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토레스의 결정력이었다. 팬들이 흔히 말하는 '저건 내 할머니도 넣는다.'류의 찬스도 놓치는데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스트라이커는 골만 잘 넣어도 절반은 간다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종합해 보자면 토레스가 첼시에 있었을 때의 부진의 주된 원인은 잘못된 시기에의 이적, 개인의 폼 저하, 과도한 이적료로 인해 부담감, 기복, 그리고 이것들 모두가 종합되어 생긴 자신감 저하로 인한 결정력 부재 때문이지 패서의 부재, 팀 전술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토레스도 첼시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첼시의 전술에 어느 정도 적응하였지만[39] 문제는 그것을 골로 결정짓지 못했다는 점이다. 토레스의 첼시 시절에 수많은 팬들이 '움직임은 좋은데 결정력이 한심하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보자.

5. 경력

5.1. 출전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00/0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군다 리가 4 1 2 0 - -
2001/02 36 6 1 1 - -
2002/03 라리가 29 13 3 1 - -
2003/04 35 19 5 2 - -
2004/05 38 16 6 2 5 2
2005/06 36 13 4 0 - -
2006/07 36 14 4 1 - -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07/08 리버풀 FC EPL 33 24 1+1[40] 1+3 11 6
2008/09 24 14 3+2 2+0 9 2
2009/10 22 18 2+0 0+0 8 4
2010/11 23 9 1+0 0+0 2 0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0/11 첼시 FC EPL 14 1 - - 4 0
2011/12 32 6 6+2 2+0 10 3
2012/13 36 8 5+4 1+2 16 9
2013/14 28 5 2+1 0+1 10 5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4/15 AC 밀란 세리에 A 10 1 0 0 - -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4/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19 3 4 3 3 0
2015/16 30 11 2 0 12 1
2016/17 31 8 5 1 9 1
2017/18 27 5 6 3 12 2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J리그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8 사간 도스 J리그 17 3 0 0 0 0
2019 8 0 1 0 0 0

5.2. 대회 우승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0/01 - 2006/07, 2014/15 - 2017/18)
    • 세군다 디비시온: 2001/02
    • UEFA 유로파리그: 2017/18
  • 첼시 (2010/11 - 2013/14)
    • FA컵: 2011/12
    • UEFA 챔피언스리그: 2011/12
    • UEFA 유로파리그: 2012/13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6 챔피언십: 2001
    • UEFA U-19 챔피언십: 2002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2008, 2012
    • FIFA 월드컵: 2010

5.3. 개인 수상

  • UEFA U-16 챔피언십 최우수 선수: 2001
  • UEFA U-16 챔피언십 득점왕: 2001
  • UEFA U-19 챔피언십 최우수 선수: 2002
  • UEFA U-19 챔피언십 득점왕: 2002
  • FIFA/FIFPro 월드 XI: 2008, 2009
  • PFA 올해의 팀: 2007/08, 2008/09
  • EPL 이달의 선수상: 2008년 2월, 2009년 9월
  • UEFA 올해의 팀: 2008
  • ESM 올해의 팀: 2007/08
  • 발롱도르 3위: 2008
  • FIFA 올해의 선수 3위: 2008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 슈: 2013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실버 슈: 2009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골든 부츠: 2012

6. 트리비아

  • 토레스는 원래 골키퍼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형제가 이미 그 포지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트라이커를 선택하였다.
  • 토레스는 현역 시절 같이 뛴 가장 인상깊은 선수가 누구였는지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스티븐 제라드를 선택했다. 그는 “함께 뛴 최고의 선수는 제라드라고 항상 말해왔다. 내 축구를 완성시켜준 선수이다. 그와 함께 뛸 때면 내 수준이 다른 차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제라드와 함께 뛰었던 3년 반은 대단한 시절이었다. 단 1분이라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회고하였다.
  • 2005-06시즌 AT 마드리드 시절, 라 리가에서 볼 빼앗긴 횟수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총 396번 볼을 빼앗겼다고(…) 이 시즌 36경기 출장했으니 매 경기 11번(…) 볼을 뺏긴 셈이다.[41]
  • 팬에게 매너 좋기로 유명하다.
  • 딸을 낳으면 Olalla라는 이름을, 아들을 낳으면 Diego라는 이름을 생각하고 있던 과거가 있다. 하지만 아들 이름은 레오라고 지었지 딸이름도 노라로 짓고
  • 주근깨 때문에 피부가 안습(…)한 편. 하지만 피부 따위는 눈에 들어 오지도 않을 만큼 정말 잘생겼다. 잘생긴 축구선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다. 베컴은 할리우드 영화배우 같은 외모, 카카는 귀공자 느낌, 호날두는 섹시한 야생마 같은 이미지라면 토레스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백마 탄 왕자 같은 외모. 지금은 머리를 짧게 깎고 나이도 조금 들어서(빡구?) 원숙한 이미지가 되었지만, 전성기때 금발을 휘날리던 모습은 정말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금발의 백마 탄 왕자 그 자체였다. 팬들이 많은 데에는 외모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녀 팬을 가리지 않는다...거기에다 목소리는 그런 귀공자같은 외모와 달리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다. 그야말로 간지폭발.
  • 리그 득점왕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42]
  • 해충갤에서 낚시를 할 때 쓰이고 있다. 토레스 낚시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 EXO카이가 토레스의 팬이었는데, 이를 안 EXO의 팬들이 토레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카이의 생일 선물로 토레스의 사인을 선물해달라고 부탁했고, 친필 사인한 공과 티셔츠를 선물로 보내줬다고 한다. 민폐도 저런 민폐가 따로없다.
  • 머리 길이와 실력이 비례한다는(...) 무슨 삼손이냐이야기가 돌 정도로 머리숱과 인연이 깊은데, 장발을 하고 있었던 리버풀 시절과 최근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머리가 짧았던 첼시와 밀란에서는...그런데 첼시에서도 한동안 머리 기르고 있다가 1년 정도 지나고서야 삭발했다. 그래도 존잘이더라 팩트는 첼시에서 장발일때도 못해서 본인이 삭발한 것이다.
  • 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우승과 유로 우승, 득점왕 등 커리어가 훌륭하다 못해 역대급이고, 클럽에서도 챔스 우승, 유로파 우승과 각종 컵 대회 우승까지 커리어가 좋으나 단 한가지 그에게 없는 우승 커리어가 바로 리그 우승이다. 온갖 대회에서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토레스는 단 한차례도 리그우승 트로피가 없다. 본인의 전성기였던 리버풀 시절에는 아예 우승 트로피를 하나도 들지 못했고, 첼시로 이적해서는 챔스 우승과 유로파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리그 우승은 토레스가 첼시에 없던 안첼로티 1년차(09-10)와 무리뉴 2년차(14-15)에 했다. 아틀레티코로 돌아온 후에도 아직 라리가 우승은 못했다. ATM이 우승한 13-14 시즌엔 그가 첼시선수였으니. 또 하필이면 프리메라 리가에는 바르샤와 레알 두 거함이 버티고 있어 앞으로도 라리가 우승이 쉽지않아 보인다
  • 2017-18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첼시로 이적한 알바로 모라타가 아직은 프리 시즌이고 원래의 포지션인 스트라이커에서 왼쪽 윙어로 활약해서 낯선 감이 있었지만 흐지부지한 결과를 만들어내어 첼시 시절의 그와 모라타를 어원으로 하여 토레타가 완성되었다. AT에 있는 레전드 토레스도 첼시 시절을 까고 있는 축구 팬들(...).[43] 다만 모라타는 우려와 달리 첼시에서 맹활약하는 줄 알았지만 후반기가 되자 귀신같이 부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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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elebHeights.com 오후신장(맨발) 184.5cm.[2] 스페인 역대 출장 순위 8위(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공동 순위), 역대 득점 순위 3위.[3] 이 사진은 레알 마드리드를 4-0으로 털어버리던 2008/09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첫 골을 넣은 후의 셀레브레이션이다. 원정팬 응원석, 그러니까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바라보는 바로 앞에서 No. 9 토레스의 위엄을 뽐낸 명장면이었으며, 이 해부터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토레스의 잔부상으로 인해 리버풀과의 조별리그에서 친정방문이 좌절된 것을 아쉬워했던 아틀레티코 팬들에게도 통쾌함을 선사했다.[4] 하지만 리버풀은 토레스를 데려오기 위한 이적료를 마련하기 위해 크레이그 벨라미, 지브릴 시세, 마르크 곤살레스, 루이스 가르시아, 플로랑 시나마-퐁골 등 주전급 자원 여러 명을 이적시켜야 했고, 이는 팀의 스쿼드 두께가 얇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5] 이전 기록은 반 니스텔루이.[6] 특별히 강팀에 강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유독 첼시에게 강했다. EPL 데뷔 시즌에서도 첼시전에서 탈 벤 하임을 완벽하게 농락하며 멋진 골을 넣었고, 심지어 폼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던 10/11 시즌, 그러니까 첼시로 이적한 그 시즌 리버풀 소속일 때도 한창 부진하다가 첼시를 만나 2골을 넣으며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거기에 그 2골도 정말 멋진 골이었다. 이거 마치 요번 월드컵 말아드셔서 욕만 부지런히 잡숫고 계신 그 어느 누구와 닮았구만.[7] 그렇기에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같이 떠나버린 선수들이 충성심 없다고 좀 비판받지만 사실 마스체라노의 결정이 오히려 야망있는 선수들의 일반적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토레스의 멘탈이 위대한 것이지 마스체라노의 멘탈이 못난게 아니다…였는데 이것도 옛날 이야기. 특히 리버풀 팬들은 자기가 이적 신청해서 나갔다는데 화를 내고 있다.[8] 마스체라노가 까인 것은 출전거부하고 징징거린 것 때문이지 단순히 이적해서가 아니다. 사비 알론소나 알바로 아르벨로아 같이 곱게 떠난 선수들은 이적했다고 해서 리버풀 팬덤에서 안까인다.[9] 다만, 아담은 이 시즌에 이적하지 않고 블랙풀이 강등당한 그 다음 시즌에 오게 된다.[10] 리버풀 엠블럼에 키스하는 세레머니가 캡쳐 사진으로 나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오직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이기 때문에 리버풀 엠블럼에 키스한 적 없다고 밝히거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뛸 때도 주장 완장에 You'll never walk alone이라고 써놓은 리버풀 팬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면서 자신은 리버풀 팬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거나…이런 발언 때문에 그나마 토레스가 리버풀을 떠난 것을 이해한다고 했던 팬들까지도 많이 돌아섰다.[11] 아무리 세리에 A 수준이 하락하기는 했어도 진짜 골 넣는 것 빼고 다 잘하는 분과는 다르게 패스 성공률도 별로 안 높고(60%대) 드리블도 이미 실속을 잃은 상황이다. 첼시 2선의 득점을 얘기하기에는 첼시 2선 선수진이 워낙 좋은 것이지 토레스가 연계가 훌륭해서 2선 선수들에게 득이 오지는 않았다.[1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행이 확정되고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13] 비센테 칼데론 복귀골. 그라운드에 입을 맞추는 세레머니를 보여줬다.[14] 바르셀로나 상대로 14경기 9골. 참고로 이 기록은 토레스가 예전에 아틀레티코에서 뛰었을 때는 아틀레티코가 지금같은 강팀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15] 다만 토레스가 아틀레티코의 공격 1옵션이 아니기 때문에 교체 출전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6] 판매량 1위가 토레스고 그 다음이 그리즈만, 코케, 시메오네 감독을 마킹으로 해가는 팬들로 있다고 한다.[17] 바르셀로나 상대 15경기 10골. 해설을 맡은 한준희 위원은 '토레스 그대는 진정한 바르셀로나 킬러'라며 토레스의 킬러 본능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졌다.[18] 이 날 기록한 골이 리버풀 시절의 그것과 비슷해서, 다시 한 번 토레스의 259번째부활을 기대하는 팬이 늘고 있다.[19] 토레스가 유스팀에 테스트를 받으러 왔을 당시 "잘하고 있다. 얘야, 넌 아틀레티코의 선수가 될게다."라고 말해준 인물. 페르난도 토레스가 세상에서 가장 감사해하는 인물이라고 한다...[20] 역대 아틀레티코 득점 10위[21] 물론 가린샤 클럽은 월드컵 한정이다. 하지만 참가팀들의 실력에서는 월드컵을 넘어서는 UCL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적도 많지 않다.[22] 상대편인 데포르티보 선수들이 의료진에 급하게 손짓을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23] 실제로 히메네즈 같은 경우 펑펑 울었다.[24] 도스 팬들도 토레스보다 김민우를 도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김민우가 달았던 등번호 10번을 2020년까지 임시로 영구결번 처리했다.[25] 100경기 이상 출전에 국가대표 역대 득점 3위, 월드컵 1회 우승, 유로 2회 우승을 했으니 최소한 스페인 국가대표 황금세대의 일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월드컵 우승 당시에는 경기력이 매우 좋지 않았고 UEFA 유로 2012 우승때도 득점왕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실속있는 활약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워서(심지어 이때는 스페인 공격수들의 폼이 너무 안좋아서 가짜 9번 전술을 쓰기도 했다.) 토레스의 국대 커리어가 평가절하 되는 경향은 있다. 또한 스페인 대표팀의 또 다른 주포인 다비드 비야UEFA 유로 2008에서 총 4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과 동시에 조국의 우승에 크게 일조하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총 5골을 넣으며 조국의 우승에 다시 한 번 더 크게 일조하고, 대회 브론즈볼, 실버부트를 수상한 것과 너무 대조되면서 토레스의 국가대표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인식되는 것도 있다. 물론 토레스 본인도 UEFA 유로 2008에서 2골 1어시 그 중에서도 1골은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로 넣은 골이어서 대회 우승에 크게 일조한 부분도 있다.[26] 좋은 예로 포르투갈 전을 들 수 있다. 선수비 후역습으로 나오는 포르투갈에 스페인은 비야-토레스 투톱으로 나섰지만 찬스가 번번히 무산되었고 감독은 후반에 토레스를 빼고 피지컬 좋고 키 큰 타겟맨 요렌테를 투입하였다. 그 뒤 공격이 확실히 살아나 결국 비야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27] 일단 부진이라 표현하기도 뭣한게 그 이후로 딱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경쟁 공격수들도 페드로를 빼면 워낙에 못해서…[28] 이 사진이 바로 토레스 희대의 굴욕으로 남을 부폰의 발재간 농락 사진이다. 정말 말 그대로 부폰의 발을 이용한 선방에 막혔다.[29] 이전 버전에서 석연찮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다. 출전 횟수야 어쨌든 미리 정해져 있던 득점왕 선정 룰에 따라 득점왕이 된 것이므로.[30] 이 때 토레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타히티의 팬이 되었다. 단순히 우리가 이겨서 아니라 지고 있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다른 팀들도 타히티를 보고 배워야 한다.' 는 인터뷰를 했다. 이 발언은 토마스 뮐러가 산마리노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8:0으로 이긴 후 산마리노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대조되기도 했다.[31] 공을 가지고 있을 때와 가지고 있지 않을시의 달리기 두 부문 모두 10위안에 들어갔다.[32] 2016년 4월 기준 17경기 11골. 참조 기사[44] 저 경기들은 토레스의 전성기였던 리버풀 시절이 아니라 대부분 유망주 시절, 폼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떨어진 첼시 시절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복귀 후 경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 특히 11-12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넣은 골은 토레스 하이라이트를 틀면 높은 확률로 맨 마지막에 나온다.[33] 11/12시즌 챔스 준결승에서 토레스가 득점을 하지 않았어도 첼시가 진출하는 상황이었고 유로 2012 결승에서도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별 영양가 없는 득점이기는 하지만 기록은 기록이다. 특히, 유로 2012 결승에서는 유로 역사상 최초로 두 대회 연속 결승전 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34] 하미레스를 영입했으나 하미레스가 첫 시즌에 발락만큼 활약해주진 못 했다.[35] 물론 말루다와 칼루 모두 전성기때는 한가닥 하는 선수였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폼이 급격하게 떨어졌다.[36] 리그에서는 17어시스트로 도움왕.[37] 마타는 팀 밸런스가 무너져 있던 11/12 시즌에도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첼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38] 만약 정말로 전술이 문제였다면 스트라이커를 겨냥한 역습 위주의 전술과는 상극인 전술을 쓰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유로 2012 득점왕, 컨페드 득점왕을 하는 등 토레스가 잠깐이나마 반짝였던 것은 설명이 불가능하다.[39] 그리고 5000만 파운드 몸값의 선수가 세 시즌 반동안 새 팀 전술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40] FA컵+풋볼 리그 컵[41] 사실 토레스는 전성기 시절, 먹튀 시절 가리지 않고 볼 헌납이 많았다.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플레이 스타일이 정교함보다는 다이나믹함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42] 실제로 전성기라고 여겨지는 리버풀 시절 득점왕을 차지했던 선수들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니콜라스 아넬카, 디디에 드록바가 있다.[43] 그런데 모라타도 레알 유스에 입단하기 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에 입단한 적이 있다!


[44] 이 기사 이후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서 1골을 추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