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0 22:13:48

호비뉴

호비뉴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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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코파 아메리카 MVP
호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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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비뉴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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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7
페르난도 토레스
(3800만 유로)
2008
호비뉴
(4300만 유로)
2009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9400만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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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BIN81.jpg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No. 70
호비뉴 (Robinho)[1]
생년월일 1984년 1월 25일[2]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
출신지 브라질 산투스
신장 173cm
포지션 포워드
소속팀 산투스 FC (2002~2005)
레알 마드리드 CF (2005~2008)
맨체스터 시티 FC (2008~2010)
산투스 FC (임대) (2010)
AC 밀란 (2010~2015)
산투스 FC (임대) (2014~2015)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5)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16~2018)
시바스스포르 (2018~2019)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2019~)
국가대표 100경기 28골[3]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4. 우승5. 플레이 스타일6. 사건사고/논란
6.1. 성폭행 사건
7. 기타

1. 개요

브라질의 축구 선수. 한때 제 2의 펠레라고 불렸던 선수였으나 불성실하고 태만한 자기관리로 빛이 바랜 선수다.

2. 클럽 경력

2.1. 데뷔 이후

2002년 산토스 FC에서 데뷔,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산토스에서 브라질 리그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우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으며 펠레자신의 후계자라며 저주극찬을 아끼지 않았다.[4]

2.2. 레알 마드리드

파일:호비뉴 레알 마드리드.jpg

2005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이때 루이스 피구가 쓰던 등번호 10번을 받았으니 어느 정도 기대를 모았는지 잘 말해준다. 그리고 기대에 걸맞게 활약해주었고, 특히 1월과 2월에만 8골을 넣으면서 팀의 크랙 역할을 잘 맡았다. 다만 2월 이후 득점이 5월 4일이 되어서야 나왔다는 게 흠이다.[5] 어찌되었든 데뷔 첫 시즌에 총 51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넣으며 갈락티코 세대를 이을 주역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당시에 떠오르는 신예였던 리오넬 메시와 자주 견주어질 정도였다. 호비뉴는 브라질과 레알마드리드 소속, 메시는 아르헨티나와 바르셀로나 소속이었기에 팬들이 이 둘을 많이 비교했고 이 둘의 비교 영상들도 많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2006-07시즌을 앞두고 자신을 데려온 페레즈 대신 라몬 칼데론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칼데론 회장과 함께 부임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단순하면서도 실리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는 감독으로 변칙적인 플레이 리듬과 개인 기술이 강점이던 호비뉴와는 맞지 않았고, 이 시기 호비뉴는 주로 교체 자원으로 활약했다. 06-07시즌에는 41경기 8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카펠로 감독이 재미없는 축구를 펼친다는 이유로 해임된 이후 부임한 베른트 슈스터 감독의 밑에서 호비뉴는 반전의 기회를 얻는다. 2007/2008시즌 슈스터 감독은 그 해 코파 아메리카에서 6골을 넣으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호비뉴에게 공격의 전권을 맡기는 한 편[6] 수비부담에서 해방하여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었고, 호비뉴는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팀을 2년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7] 07-08 시즌 기록은 리그 32경기 11골, 국왕컵 2경기, 챔스 6경기 4골, 기타 2경기 등 총 42경기 기록하면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

그러나 누구나 레알의 다음 에이스는 호비뉴라고 생각하던 이 때, 칼데론 회장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기 위해 '호비뉴+현금'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미는 위엄을 선보였다.

2.3. 맨체스터 시티

2008년 여름 이적시장을 후끈 달군 이 트레이드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마음이 돌아선 호비뉴는 레알의 재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떠나기로 결정한다.

가장 먼저 연결된 팀은 첼시 FC로 호비뉴에게 아낌없이 돈을 퍼부을 준비가 된 첼시와 선수의 신뢰를 잃어버린 채 가격 흥정만 하던 레알, 사실상 얘기는 다 끝났고 첼시 유니폼 들고 사진만 찍으면 끝난 상황으로 보였지만 이적 마감인 9월 1일, 호비뉴는 맨체스터 시티로 전격 이적했다. [8]. 이당시 많은 축구팬들은 호비뉴가 맨체스터 시티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헷갈린 것이 아니냐고 농담으로 말할 정도로 이 당시의 맨체스터 시티는 중하위권의 그저그런 팀으로 인식되었다.

흔히 인수 이후 돈만 많은 졸부클럽이라며 조롱받던 맨시티에게 전환점이 된 영입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나, 실제 호비뉴의 영입은 인수 당일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탁신이 팀을 팔아넘기려 하면서 이런저런 루머는 흐르고 있었으나 인수의 주체가 중동의 거부 왕족이라는 사실이 확정난 것은 이적시장 마지막 날로,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팬들에게 알려진 일이었다. 이후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세계적인 스타 호비뉴의 영입까지 성사된 것. 출근하러 나가면서 아랍 왕자가 팀을 샀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호비뉴가 영입된 꼴. 이후 맨시티는 성공할 때까지 수많은 추가적인 영입을 거쳐야 했으나 저런 드라마틱한 스타트를 끊은 것이 호비뉴이기 때문에 본인의 활약은 기대에 못 미쳤고 이적 자체도 돈 때문에 이뤄진 흔적이 역력했는데도 지금까지 맨시티의 전환을 상징하는 영입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맨체스터 시티 이적 초반에는 대활약을 하였지만[9] 이후 영국 생활 부적응 및 주전 출장 문제[10]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며 산토스로 임대를 가게 된다.

2.4. 다시 산토스로

산토스에서 예전 날카로운 모습을 되찾으면서 다시금 호비뉴의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호비뉴는 산토스에서 계속 뛸 마음이 있었지만, 시티는 임대를 연장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2010년 8월 30일 AC 밀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2.5. AC 밀란

부활하는 줄 알았으나 져버린 밀란에서의 활약

2010-11시즌 시작 전에 AC 밀란으로 이적한 후 몇몇 경기에 교체출전했는데, 이런저런 트러블로 인해 월드컵 이후 훈련을 못 한 것 때문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폼이 올라오며 날카로운 드리블과 패스 능력으로 밀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다. 그렇게 2010/11 시즌에 레알마드리드 시절의 폼을 되찾으며 팀 내 에이스로 활약하였고 리그에서만 14골을 성공시키며 세리에A 우승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11/12시즌은 시즌 초반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가 부상이 회복되고 알렉산드르 파투, 안토니오 카사노 등이 부상으로 아웃되며 많은 경기를 주전으로 출장하고 있다. 또한 지난 리그 경기 유벤투스전에서 페널티킥을 골로 넣으면서 살아나는 듯 했으나, 이후에는 그냥 후반전에 대타로 나오면서 간간히 몸을 푸는 것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지난 시즌에 비해 매우 부족했던 활약상이다.

12/13시즌에는 리그에사 23경기에 출장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보다도 부진했고 또한 교체 출장이 많아서 존재감이 부족했다. 점차 팀 내에서 계륵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부활따위는 없는 것인가..

그런데 13/14시즌 리그 첫 경기에 선발로 기용되면서 뜬금없이 부활하더니 현재, 팀의 주전 원톱으로 기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리그 8라운드까지 성적은 2골 4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하고있다. 챔스 조별리그에서는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다. 비록 메시에게 동점골을 먹히며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지만, 카카와 함께 공격루트를 만들어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리그성적이 3승 2무 4패다. 팀이 또 부진하고 만다.
그리고 시즌이 후반기가 되면서 본인도 팀과 함께 다시 부진에 빠지며 예년과 비슷한 기록으로 시즌을 마쳤고, 팀은 역대급 망시즌을 보내며 다음시즌 구상에서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4년 8월 7일 산투스 FC로 임대되었다.

2.6. 광저우 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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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광저우 헝다에 입단했다. 국내 축구팬들은 이미 올거라 알고 있긴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충격과 공포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
리그가 막 후반기로 접어든 시점에 이뤄진 이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다. 리그에선 9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다. 팀 당 외국인 선수 3명 + 아시아 쿼터 1명으로 외국인 선수 등록 제한이 있는 ACL에서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5시즌이 끝나고 광저우를 반 년만에 떠나게 됐다.

2.7.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이후 스완지 시티EPL 클럽들과 브라질의 다수의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결국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 입단하며 브라질로 돌아갔다. 미네이루와의 계약 기간은 2년이며 주급은 약 1억 7천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2.8. 시와스스포르

2018년 1월 터키 쉬페르리그의 시바스스포르에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이며 등번호는 70번을 달게 됐다.

예니 말라티야스포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장한 이후, 두번째 경기인 카이세리스포르와의 경기에서 역시 교체로 출전하여, 마수걸이 골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반 시즌 동안 14경기 4골을 기록하며, 무난한 활약을 보여줬다.

2.9.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3. 국가대표

2003년 7월 13일 골드컵 멕시코 전에 성인 국가대표선수로 데뷔하였다.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하여 조별리그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이후 계속해서 대표팀에 발탁되며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 본선에도 출전하였고, 팀의 핵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없으면 허전한 선수로 자리잡는다.

2007년 코파에서는 6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우승에 기여했다.[11] 카카와 호나우지뉴가 휴식을 이유로 대회 참가를 고사했고, 제 호베르투까지 대표팀 은퇴 선언을 하면서 전력 공백을 맞았는데 반해 아르헨티나는 풀 전력으로 나와서 브라질의 우승을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코파에서 호비뉴는 좌측 프리롤을 맡았다. 카카, 호나우지뉴가 없었던 게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카카, 호나우지뉴, 호비뉴 모두 왼쪽에서 중앙으로 들어가는 플레이를 즐겨 하는 선수들이고 셋을 한꺼번에 경기에 내보내면 동선이 겹쳐서 역효과가 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12]

개막전에서 멕시코에게 0-2로 완패한 경기에서 크로스를 때렸던 호비뉴는 칠레와의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몰아쳤고, 에콰도르와의 3차전에서도 페널티킥 결승골을 터트리며 8강 진출을 주도했다.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기록한 4골이 모두 호비뉴의 발끝에서 나왔다. 칠레를 다시 만난 8강전에서도 호비뉴는 2골을 추가했다.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둔 우루과이와의 준결승전과 아르헨티나를 만난 결승전에선 득점을 추가하지 못했으나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를 받아 다른 선수들이 보다 수월하게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간접 기여로 제 몫을 다했다.#
대회 당시 최강으로 평가받던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게 3대0으로 패배했고 이때부터 리오넬 메시의 메이저 대회 결승전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뜸하다가 2016년 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에 힘입어 2017년 다시 국대로 발탁, 100경기 출장을 이뤄냈다.[13]

자기 관리도 전혀 안되었고 사고도 많이 치고 기복도 심했지만 브라질에 단 여섯 명밖에 없는 센추리 클럽 가입자가 되었다.[14]

4. 우승

  • 산투스 FC (2002 ~ 2005 / 2010 / 2014 ~2015)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 2002 , 2004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 2010
  • 레알 마드리드 CF (2005 ~ 2008)
    • 라리가 : 2006-07 , 2007-08

  • 광저우 헝다 (2015)
    • 중국 슈퍼 리그 : 2015
  • 브라질 국가대표팀
    • 북중미 골드컵 준우승 : 2003
    • 코파 아메리카 : 2007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2005, 2009

5. 플레이 스타일

스텝오버플립 플랩을 비롯한 화려한 개인기, 타고난 볼 터치, 세계 최고의 드리블 등 브라질리언의 모든 장점을 다 갖췄다. 심지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너무 많은 스텝오버를 했다'는 이유로 심판에게 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특히 좁은 지역에서 밀집한 상대 수비를 가볍게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눈이 즐겁다. 다만 최전성기
시절에도 호날두메시 같은 신계 공격수들에 비하자면 득점력이 상당히 떨어지고 스피드도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다. 사실 스프린터나 스코어러 타입이보다는 유연한 드리블로 수비진을 뒤흔든 다음에 공간이 생기면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하여 골을 노리는 타입에 가깝다. 실제 패스 센스도 좋은 편.

현역 선수들 중에서는 같은 브라질 국적의 루카스 모라와 스타일이 가장 비슷하다는 평이 많다. 다만, 루카스 모라호비뉴만큼의 화려한 발재간보다는 기본기에 좀 더 충실하면서 간결한 방식의 드리블을 선호하는 편이며, 피지컬도 확실히 호비뉴보다 괜찮다. 모라는 소속팀 토트넘에서 윙어로 주로 출전하며, 호비뉴 또한 윙어 포지션으로 플레이는 가능했으나 본인이 선호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 시절부터 맨시티 시절까지 감독과의 불화가 잦았고 자연히 폼 저하로 이어졌다. 호비뉴가 가장 선호하던 포지션은 주로 투톱에서 약간 쳐진 중앙 공격수 위치. 그리고 클래스를 떠나, 멘탈은 확실히 사생활도 깨끗하고 감독과의 불화도 잘 일으키지 않는 모라가 훨씬 좋다.

6. 사건사고/논란

6.1. 성폭행 사건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하던 2009년에 리즈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보석으로 풀려난 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되었다.

그리고 AC 밀란 소속이었던 20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한 알바니아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는 데 가담한 혐의가 인정돼 밀라노 법원으로부터 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호비뉴는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는 성폭행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고, 혐의에 대해 이미 방어권을 행사했다"라며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밝혔다. 브라질과 이탈리아 간의 범죄자 인도 협정이 체결돼있지 않아 실제 이탈리아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호비뉴', 성폭행 혐의로 징역 9년 선고

7. 기타

  • 2009년 성폭행 혐의 체포 후 브라질 축구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며 펠레에게 한 소리 들었다
  • 별명은 초딩요. 애 같은 얼굴이기도 하지만 애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라 한다. 감독의 칭찬이나 자신에게 적합한 포지션에 배치하면 맹활약하지만 팀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하거나 자신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면 부진하는 면이 강하다.
  • 소문난 악동 안토니오 카사노 때문에 물들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그 아햏햏한 골세레머니(...). 레알 마드리드 시절이면 호비뉴는 20대 초반일 때인데 벌써 그런 민망한 세레머니를 배웠으니...
  • 수원에서 영입할 수도 있었다. 산토스 시절 브라질에 스카우트하러 갔던 수원 스태프가 당시 16세였던 호비뉴를 보고 영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가격도 스카우터가 생각하기에는 적절했다. 그러나 윗선에 보고를 하자 겨우 16세를 그 가격에 영입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으나 리그가 열려 17세가 된 호비뉴는 전반기에 교체로 뛰더니 후반기에는 산토스에서 풀타임을 뛰었다고 한다.


[1] 본명은 호브송 지 소자 (Robson de Souza)이다.[2] 은근 생일이 주목받는데, 축구계 대표 노안 선수인 아르연 로번과 생일이 겨우 이틀 차이이기 때문. 태어난 연도도 똑같고 날짜만 단 이틀 차이이다.[3] 2017년 1월 25일, 센추리 클럽에 가입.[4] 펠레가 현역 시절 자신이 유일하게 있었던 브라질 팀인 산토스에 왔을 때, 펠레는 훈련 도중 한 메마른 아이의 나이에 비해엄청난 활약을 보고 잠시 훈련을 중단시킨 뒤 그 아이에게 "눈물이 다 나오는 구나. 널 보니 내 생각이 난다."며 격려했는데, 그 아이가 바로 호비뉴였다고 한다.[5] 애초에 호비뉴는 골을 많이 넣는 스타일이 아니다.[6] 라인업으로 보면 오른쪽 윙에 배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른쪽 윙을 두지 않은 채 중앙에서 뛰는 호비뉴와 2명의 중앙 공격수로 변칙적인 3톱을 구성했다. 호비뉴는 전 시즌에 카펠로와 불화가 있던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카펠로가 자신을 윙어로만 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7] 2007년 발롱도르 순위는 9위로 이 순위가 개인 최고 기록이다.[8] 첼시의 CEO인 피터 캐넌이 호비뉴의 영입을 공개적으로 자신하는 발언을 하고, 런던에서 뛰고 싶다고 화답하는 호비뉴. 심지어 첼시 공식 스토어에 호비뉴의 유니폼이 올라와 있는 해프닝까지 벌어질 정도로 당시 호비뉴의 첼시 이적은 단순한 찌라시로 보기 힘든 측면이 많았다. 막판에 첼시가 맨시티의 35m보다 더 높은 이적료를 제시했지만 레알은 챔스에서의 부메랑을 우려해서 당시만 하더라도 챔스진출을 못하던 맨시티로 이적시켰다.[9] 당시 감독인 마크 휴즈는 호비뉴를 섀도우 스트라이커에 배치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다만 이 때문에 전 시즌 맨시티 공격의 핵심이었던 공격형 미드필더인 엘라누가 호비뉴에게 밀려 한 시즌만에 후보로 내려가는 문제를 낳았다.[10] 마크 휴즈가 경질되면서 새로 부임한 로베르토 만치니가 호비뉴에게 왼쪽 윙어를 맡게 하였고 카펠로와 이 건으로 싸웠던 적이 있던 만큼, 이번에도 호비뉴가 거부하면서 불화가 생기게 되었다.[11] 2007년이 호비뉴의 최전성기였다. 0607시즌 전반기보다 후반기 활약이 더 좋았고, 리그우승에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과 리그우승까지 했으며 그 활약이 0708초반까지 이어졌다. 0708후반기에는 아르옌 로번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레알에서 호비뉴와 로번은 공존이 되지 않았다. 로번의 부상이 워낙 심해서 경기에 별로 뛰지 못한 것도 있지만 호비뉴, 로번 둘다 볼 소유 시간이 길어서 개인플레이가 심했기 때문이다. 둘다 동시에 경기에 나섰던 건 2경기 정도밖에 안된다. 물론 0708 전반기 활약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2연패에 기여한 건 부정할 수 없다.[12] 2006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8강에서 그친 건 카카와 호나우지뉴가 공존이 되지 않아서 공격진이 시너지가 나지 않았던 것도 작용을 했고 끝끝내 대표팀에서 둘의 공존은 실현되지 못했다.[13] 생일인 2017년 1월 25일,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 콜롬비아 대표팀의 샤페코엔시 추모 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A매치 주간이 아니었던 탓에 해외파 소집이 어려워 국내파 위주로 팀을 구성하였고 호비뉴도 소집되었다.[14] 호비뉴와 함께 센츄리 클럽에 들어있는 5명중 아우베스를 제외한 4명은 월드컵 우승 멤버이고 -타파렐(94), 카푸(94, 02), 카를로스(02), 루시우(02)- 대표팀에서든 클럽에서든 굉장히 꾸준하고 자기관리 잘한 선수들이었다. 대표팀 커리어가 볼품없는 아우베스는 대신 어마어마한 클럽 커리어를 쌓으며 오랫동안 활약했다. 이 선수들과 나란히 놓고보면 전성기도 짧고, 형편없는 멘탈에 자기관리 전혀 안되었던 호비뉴의 센츄리 클럽 가입은 굉장히 이질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