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09:42:54

줄리우 세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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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우 세자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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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ruby(쳉가, ruby=발테르)] [ruby(사네티, ruby=하비에르)] [ruby(마테우스, ruby=로타어)] ㅤㅤㅤㅤ
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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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ruby(톨도, ruby=프란체스코)] [ruby(파케티, ruby=자친토)] [ruby(스탄코비치, ruby=데얀)] [ruby(메아차, ruby=주세페)]
2020 [ruby(세자르, ruby=줄리우)] [ruby(베르고미, ruby=주세페)] [ruby(캄비아소, ruby=에스테반)] [ruby(밀리토, ruby=디에고)]
2021 [ruby(팔리우카, ruby=잔루카)] [ruby(마테라치, ruby=마르코)] [ruby(스네이더, ruby=웨슬리)] [ruby(에투, ruby=사무엘)]
2022 [ruby(보르돈, ruby=이바노)] ㅤ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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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파일:Julio_Cesar_Brazil.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줄리우 세자르 소아리스 이스핀돌라
Júlio César Soares Espíndola
출생 1979년 9월 3일([age(1979-09-03)]세)
두키 지 카시아스(Duque de Caxias)[1]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직업 축구 선수(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CR 플라멩구(1997~2005)
인테르나치오날레(2005~2012)
AC 키에보베로나(2005 / 임대)
퀸즈 파크 레인저스(2012~2014)
토론토 FC(2014 / 임대)
SL 벤피카(2014~2017)
CR 플라멩구(2018)
국가대표 87경기 (브라질 / 2004~201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clearfix]

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인테르의 2009-10 시즌 트레블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2. 클럽 경력

1997년 CR 플라멩구에서 팀 내 베테랑 골키퍼였던 클레메르의 밑에서 시작하고. 2000년에는 그는 팀의 명실상부한 주전 골키퍼가 되었으며 리우데자네이루 주에서 열리는 캄페우나투 카리우카에 네 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러한 인상적인 활약 덕분에 그는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의 주전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자유계약으로 2005년 1월 키에보 베로나로 입단했는데, 그 이유는 세리에 A의 명문인 인테르가 그를 가지기 위해 일부러 그 곳으로 입단시켰기 때문이다. 세리에 A의 규칙에 따르면 EU 국적을 가지지 못한 선수와 계약하는 것에는 한도가 있기에 처음에 줄리우 세자르는 키에보에 입단하였다. 키에보에서의 6개월동안 그는 루카 마르케지아니에게 밀려 키에보의 주전이 되지 못하였으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 하였다. 그가 클럽에서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2.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파일:external/cdn23.us2.fansshare.com/julio-cesar-inter-milan-as-roma-liga-italia-feb-inter-354727871.jpg
인테르 시절
결국 2005년 6월, 그는 인테르와 3년 계약을 맺는다. 2005-06 시즌에 인테르의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프란체스코 톨도에 이은 두번째 골키퍼로 예상되었는데 데뷔전은 없이 인테르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우승하는 것을 벤치에서 지켜봐야했다. 그러나 기량이 발전해서 톨도를 제치고 팀의 주전이 되었으며, 그 덕분에 인테르는 세리에 A에서 유벤투스와 AC 밀란에 이은 3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칼치오폴리 사건이 터지면서 인테르가 2005-06 시즌을 우승한 것으로 처리된다.

2006-07, 2007-08 시즌에도 인테르의 주전 골리로서 맹활약하면서 세리에 A 최고의 골키퍼이자 세계에서도 탑 클래스로 인정받는 골키퍼가 되었으며,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했으나 3시즌 연속으로 세리에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9년 초에는 ESPN 브라질이 뽑은 2008-09 시즌 최고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프레미우 푸테볼 노 문도(세계축구상)도 수여받았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16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는 상대 공격진의 맹공에 고전했고, 원정에서는 볼판단 미스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헤딩골을 허용하기도 하는 등 실점을 허용하면서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 시즌에도 이탈리아 내에서는 무지막지한 선방 능력을 보여주면서 수비 안정화에 도움을 주면서 리그 우승을 달성, 4시즌 연속 리그 정상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2009년 11월에는 인테르와의 계약을 2년 더 연장한 2014년까지 연장했다. 인테르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은 전 인테르의 골키퍼였던 잔루카 팔리우카에게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는 찬사를 받게 했다. 그리고 또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선수인 디노 조프와 팀 동료인 톨도에게도 같은 칭찬을 받았다. 2010년 1월 24일에는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 브라질 대표팀 동료인 호나우지뉴의 페널티킥을 선방하여 9명인 인테르가 밀란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는데 기여를 했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과의 2010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아르연 로번의 절묘한 감아차기를 막아내고, 이외에도 여러차례 좋은 선방을 기록하면서 2대0으로 승리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약으로 인테르가 2009-10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으며, 2010년 8월 26일 UEFA 올해의 골키퍼상을 받았다.

2009/10 챔피언스리그에서 세자르의 선방률은 무려 81%(38/47)에 달하는데, 이는 18/19 알리송의 선방률 80%와, 15/16 챔스 준우승을 달성한 얀 오블락의 선방률 76%를 뛰어넘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파일:7Bom0FP.gif
세자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선방.[2]

2010-11 시즌에는 주제 무리뉴가 감독자리에서 떠나고 라파엘 베니테스가 왔는데 팀이 극심한 부진을 겪기 시작하였고, 세자르는 이 시기에 부상으로 다소 고전하였다. 이후 베니테즈가 경질된 후, 시즌 후반기에는 팀과 본인 모두 반등에 성공하여 다시 지난 몇년간의 모습을 되찾아왔으나 UEFA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토트넘 가레스베일에게 헤트트릭을 당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는 등 샬케 04의 공격력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팀의 탈락에 일조한다. 결국 리그에서도 끝내 AC 밀란을 넘지 못하면서 아쉽게 리그 준우승에 머무르면서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만족해야했다.

2011-12 시즌에는 인테르가 본격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하였고 말그대로 망했던 시즌이었기에 무관에 그쳤으며 리그 6위를 기록하면서 챔피언스리그 티켓도 얻지 못했던 시즌이었다. 결국 인테르는 팀 선수단의 몸값을 줄이기 위해 트레블 당시의 멤버들을 하나둘씩 팔기 시작하였고, 세자르 또한 그 대상들 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세자르는 7년 간 몸담았던 인테르를 떠나게 된다.

2.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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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 시작

2011-12 시즌을 마치고 안드레아 스트라마키오니 감독이 사미르 한다노비치를 영입하면서 줄리우 세자르는 7년 동안 활약한 인테르를 떠나 프리미어리그 QPR로 이적했다. 이 때만 해도 전성기가 어느 정도 지났다고 생각되던 줄리우 세자르는 QPR 구단주 토니 페르난데스의 원대한 프로젝트와 후한 대우, 요약하면 '돈 때문에 왔다'고 볼 수 있는 이적으로 QPR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와본 QPR의 골문은 인외마경이었다.

엉망진창인 조직력의 수비진, 돌아오지 않는 선수들로 인해 세자르만 죽도록 굴렀다.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하며 브라질 국대 클래스를 증명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고 수비수들의 실책으로 실점은 늘어났다. 2012년 10월 21일 리그 8R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면서 1:0으로 앞서던 팀의 1승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세자르가 부상을 참아가며 경기를 뛰고 있었고 시즌 중 수술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이 시즌의 세자르를 요약하는 한 단어가 바로 강제 전성기다. 매 경기마다 여러 차례의 선방으로 국내 해외축구 팬들의 연민을 샀으며, 강제 전성기라는 단어는 QPR의 무능한 수비진을 조롱하는 말이다. QPR의 어느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세자르 하이라이트를 보는데 "한 시즌 전체 하이라이트인 줄 알았는데 한 경기 하이라이트더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슈퍼세이브 없는 경기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수비진들이 오른쪽 자동문이 털리면 왼쪽 역시 열어주어 골을 허용하는 아가페 정신을 선보인 몇몇 경기에서는, 과장 조금 보태서 골키퍼 원맨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의 활약이 두드러질때도 있었다. 그에 따라서 브라질 국가대표팀에도 소집되고, 빅클럽과의 링크도 심심치 않게 떴다. 아스날, 맨유,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까지. 강제 전성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QPR 관련 기사 댓글란에서 아델 타랍과 함께 가장 자주 언급되었던 인물이다. 타랍을 깔 때 세트로 동반되는 댓글이 세자르에 대한 연민과 찬양의 댓글이었다. 주로 저런 팀에서 말년을 보내며 고생한 세자르가 안쓰럽다거나 수비진의 부진이나 타랍 탐욕에 세자르만 욕 본다는 식, 혹은 그의 슈퍼세이브 능력을 보고 QPR 에이스는 타랍이 아니라 세자르라며 그를 추켜올리는 댓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세자르가 실책을 한 몇몇 경기에서도 세자르는 결코 까이지 않았다. 거기다 QPR의 잔류를 믿어 의심치 않고, 올 시즌 끝나도 팀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립서비스를 날린 후부터는 대인배라고 멘탈로도 찬양받았다. 심지어 세자르 역시 보살의 반열에 들었다며 QPR을 보살 제조기라고 부르는 팬들도 늘어났다. 풋볼크레이지에서는 하얀 타랍이라는 영상 중 세자르가 선덜랜드전에서 부상 아웃한 것은 타랍이 교체 멤버로 경기에 들어와 다 잡은 승리를 놓치게 할까 염려하시어 마지막 교체카드를 쓰기 위함이었다라며 논개 세자르 선생이라고 드립을 치기도 했다. 팬들은 세자르님은 타랍마저 선방하신다고 찬양하며 타랍의 벤치행에 풍악을 울렸다.

그리고 2013년 2월 6일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주전으로 등장하며 강제 전성기임을 인증(?)했다.

QPR의 강등이 확정되면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세자르는 이적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고 실제로도 아스날, 나폴리 등에서 오퍼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전성기가 지난 폼과 계약기간 등의 이유로 전부 무산되었고 결국 2부 리그에 잔류하게 되었다. 그래도 컨페드컵에서의 뛰어난 활약 덕분에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이 "세자르가 2부 리그에 있어도 월드컵에 데려가겠다"고 언플했다. 본인도 "2부 리그에서 폼을 유지해서 월드컵에 출전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주전 골키퍼 자리를 로버트 그린에게 빼앗겼다. 실력이나 지난 시즌 때의 활약이나 세자르가 밀릴 이유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그래서 해리 레드냅 감독이 남미 선수들에게 인종차별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것이 세자르를 이적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런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세자르의 주급 55,000 파운드를 2부리그 신세인데다 지난 시즌 막대한 적자를 본 QPR에서 감당하기는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12-13 시즌 종료 후 박지성을 비롯한 어지간한 고액 주급자들은 모두 이적 아니면 임대로 팀을 떠났다.

2.3. 이후

월드컵을 위해 천신만고 끝에 토론토로 임대되었다. 퀸즈 파크 레인저스가 승격 플레이오프를 거쳐 1시즌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자 임대를 해지하며 QPR에 복귀하였다. 토론토 팀을 떠나면서 얼마나 복귀하기 싫었으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월드컵 종료 후 QPR과 상호계약해지를 하여 SL 벤피카로 이적하였다. 21세기 브라질 최고의 골키퍼라는 칭호답게 이적 후에도 여지없이 클래스를 뽐내며 벤피카의 리가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14-15 시즌을 프리메이라 리가·타사 다 리가·타사 드 포르투갈의 미니 트레블로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돌연 이케르 카시야스포르투로 이적해 오면서 의외의 매치업이 성사되었다.

2015-1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2라운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신들린 선방쇼를 펼치며 팀에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이후 플라멩구로 이적하였고, 2018년 4월 18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대표팀 경력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처음에는 AC 밀란의 레전드 골리이자 2015년까지도 브라질에서 현역으로 뛴 지다에 밀려 후보였다.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실제로 뛰지는 못 하였다. 처음으로 국제 경기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2004년 코파 아메리카였으며, 지다를 밀어내고 6경기를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결승전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첫번째 키커의 슈팅을 막아내어 브라질이 승부차기 끝에 4-2로 이기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렇지만 이후 3년 동안 대표팀 후보 골키퍼였으며, 이 기간 동안 오직 7경기만 출전하였다. 그는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는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지다와 호제리우 세니에 이은 3번째 골키퍼로 이름을 올렸다.

월드컵 이후 지다의 대표팀 은퇴와 함께 브라질의 새로운 주전 골키퍼를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새로운 감독인 둥가의 취향에 맞지 않아 토트넘에우렐류 고메스, 포르투의 에우통, AS 로마도니에게 밀렸다. 어쩔 수 없이 소속 클럽에서만 활약을 이어갔지만, 결국 2009년 7월 도니를 대체하면서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3-2로 이기면서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연패를 이루어냈다.

3.1.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둥가 감독의 브라질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본인의 두 번째 월드컵이었으며, 브라질은 8강전에서 줄리우 세자르의 팀동료 웨슬리 스네이더에게 두 골을 내주면서 네덜란드에 2-1로 역전패를 하면서 탈락하였다. 이 경기에서는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실수로 네덜란드에 첫 번째 골을 내주었고, 이에 탄력을 받은 네덜란드가 역전골까지 성공시키면서 이 경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첫번째 실점이 스네이더의 크로스를 가로채기 위하여 뛰어 올랐으나 평소답지 않게 공을 놓치면서 펠리페 멜루의 머리를 맞고 들어갔기 때문이다.[3]

3.2.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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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리그 일본전을 3:0, 멕시코전을 2:0 무실점으로 꽁꽁 틀어막았으며, 이탈리아전에서는 4:2로 2실점을 하기는 했지만 4강전인 우루과이전에서는 디에고 포를란의 PK를 선방해내며 브라질의 2:1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경기 MVP로도 선정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페인과의 결승전이었는데 경기결과가 3:0이라는 압도적인 결과가 난 것은 네이마르프레드 등의 활약이 컸지만 스페인의 여러 슈팅을 슈퍼세이브로 막아내면서 스페인을 상대로 클린시트를 기록한 것도 영향이 컸다.

5경기 3실점으로 대회 최소 실점으로 대회를 마쳤고, 결국 컨페드컵에서 보여준 엄청난 활약으로 이케르 카시야스를 밀쳐내고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했고 수상했기에 더 빛났다.

3.3. 2014년 브라질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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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었고, 조별 리그 1차전에 선발로 출전하였다. 경기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크로아티아 선수들에게 한 골도 허용하지 않으며 3:1 승리에 기여했다.[4]

그리고 칠레와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접전 끝에 신들린 듯한 선방으로 2골을 막아내며 브라질의 8강 진출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계속해서 콜롬비아와의 8강전에서도 하메스 로드리게스에게 내준 PK 실점을 제외하고 완벽하게 골문을 사수했다.

그러나 4강 독일전에서는 무려 7실점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면서 네덜란드전에서 5실점을 했던 이케르 카시야스를 제치고 이번 대회 한 경기 최다 실점을 하고 말았다. 주장 티아고 실바가 결장하면서 브라질 수비가 와해되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본인도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쉬얼레의 1:1 찬스가 될 뻔한 걸 페널티 박스 밖으로 나와 걷어내고 토마스 뮐러의 왼발 중거리슛을 가까스로 막아내는 등 추가 실점은 막았다.

경기 이후 눈물을 보이며 인터뷰를 하여 팬들의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네덜란드와의 3위 결정전에서도 0-3으로 완패하면서 3실점이 추가되었다. 4강 진출 이후 10실점이나 기록했으니 그야말로 참패였다. 이로서 줄리우 세자르는 7경기 14실점을 기록해 대회 최다 실점 골키퍼 및 브라질 역사상 월드컵 최다 실점 골키퍼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대표팀의 경기가 모두 끝난 후 브라질의 참패에 책임을 지고 공격수 프레드와 함께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4년 월드컵 때 이미 30대 중반으로 많은 나이였고, 다음 월드컵 때는 어차피 만 39세가 되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 결과에 상관없이 은퇴할 수밖에 없긴 했지만 대표팀 커리어의 끝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참패에 책임을 지고 은퇴하는 안타까운 결말을 맺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골키퍼 치고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5][6] 높은 집중력과 특유의 유연성, 그리고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잘 활용하는 편이다.

또, 패널티킥 선방율이 40%가 넘을만큼 심리전에도 강하며 1:1 상황과 역습상황에서도 빠른 판단으로 상대 공격수가 슛각을 확보하기 이전에 빠르게 각을 좁히며 공격을 차단하는 등 뛰어난 판단력을 여실없이 보여주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피지컬과 뇌지컬 모든 면에서 월드클래스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올라운더형 골키퍼다. 위의 09/10 챔스 4강전 메시의 슛 장면처럼 중요한 순간에 아주 위험한 슈팅들도 판단력과 반응신경을 이용해 곧잘 선방 해내며, 판단력도 좋아 자칫 실점 위기로 다가올 수 있는 공격수와의 1:1 상황에선 빠르게 튀어나와 걷어내거나 위험한 헤딩이 나오기 전에 미리 펀칭으로 걷어내는 등 상황에 따라 본인이 어떤 스타일로 수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그걸 받춰주는 피지컬을 통해 팀의 후방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그러나, 세자르 역시 에이징커브를 이겨낼 수는 없었는지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 커리어 말년이 시작된 2015 시즌부터는 노련한 위기 대처 능력으로 역습 상황이나 1:1 상황의 경우 여전히 높은 선방 능력을 그대로 유지하며 수비 가담에 있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판단력 못지않게 피지컬이 매우 중요한 돌발 위기 상황에서는 너무나 쉽게 골을 헌납하는 등 예전의 세자르 답지 않은 한 박자 느린 반응 속도나 유연성이 발목을 잡으며 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Bayern+Muenchen+v+Inter+Milan+UEFA+Champions+TEyyn6nauAKl.jpg
*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2:0 승리한 뒤 아들을 목마 태워주며 기뻐했다. 참고로 아들의 어머니, 그러니까 세자르의 부인이 브라질의 모델이자 배우, 한때 호나우두의 애인으로 유명했던 수잔나 베르너(Susana Werner)다.
파일:external/www.ofuxico.com.br/207581_36.jpg
* 그렇지만 호나우두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 QPR에 있을 때 아델 타랍을 보고 "저런 태도를 가진 놈은 못 봤어. 난 호나우지뉴, 호나우두, 호비뉴 같은 사람들과 함께 뛰어 봤지만,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리고 둘은 벤피카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타랍의 태업을 보다 못한 세자르가[7] 감독에게 타랍의 2군행을 권유했고 결국 타랍은 한동안 벤피카 2군에서 뛰게 되었다.
* 은퇴 후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 벤피카에서 같이 뛰었던 에데르송 모라에스가 그의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

[1] 리우 데 자네이루 북쪽의 위성도시.[2] 바르샤를 상대로 한 09-10 유럽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1차전을 3:1로 이겼고 0:1로 막아내 결승에 진출했다. 만약 저 때 골을 먹었으면 바르샤가 결승에 갔을 수도 있었다.[3] 사실 제대로 보면 세자르가 분명히 잡거나 쳐낼 수 있었다. 멜루가 그의 앞에서 뛰어오른 탓이 크다.[4] 실점한 한 골은 마르셀루의 자책골이었다.[5] 사실 프로필 상 키는 187㎝로 상당히 큰 키인데, 옛날부터 키 논란이 없지 않았던 선수다. 183㎝의 왈테르 사무엘이나 티아고 실바보다는 확실히 크고, 187㎝의 루이스 구스타부나 188㎝의 루시우 페헤이라보다는 확실히 조금 작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약 185~186㎝로 추정된다.[6] 그리고 무엇보다 키에 비해 다리와 팔이 짧아 골키퍼로서 상당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7] 타랍은 벤피카에서도 경기 전날 나이트에 가는 등 태업을 일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