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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그리스 신화의 여신에 대한 내용은 니케 문서를, 미국의 미사일에 대한 내용은 나이키 미사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N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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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1964년 1월 25일 (블루 리본 스포츠)
1971년 5월 30일 (나이키)
설립자 필 나이트 (Phil Knight), 빌 바우어만 (Bill Bowerman)
기업구분 대기업
시가총액 123조 7,898억원[1]
본사 미국 오리건비버튼
사업 의류, 스포츠 장비 등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로고3. 역사4. 대한민국의 나이키 역사5. 광고6. 제품군 및 대표제품7. 스폰서 목록
7.1. 축구
7.1.1. 대회7.1.2. 국가대표팀7.1.3. 클럽7.1.4. 개인
7.2. 농구
7.2.1. 대회7.2.2. 국가대표팀7.2.3. 클럽7.2.4. 개인
7.3. 아이스하키
7.3.1. 국가대표팀
7.4. 그 외
7.4.1. 국가대표팀7.4.2. 리그 & 클럽7.4.3. e스포츠
8. 트리비아9. 함께 보기

Just Do It.
Risk Everything.

1. 개요

미국스포츠 용품 회사. 대표 상품인 운동화를 비롯해 의류, 모자 등 다양한 제품을 판다.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1971년 '나이키(NIKE)'[2]라는 상호로 바꿨다. 참고로 나이키의 어원은 그리스의 승리의 여신 니케(Νίκη, Nik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현재 전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라이벌격인 아디다스를 제치고 독보적인 스포츠 브랜드 1위 기업[3]으로 '애플', '구글',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 공홈에도 온라인 스토어가 있으며, 델타 항공스카이마일스 쇼핑이나 아메리칸 항공의 어드밴티지 e-쇼핑 사이트를 경유하여 마일리지도 적립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라인 스토어가 한국 카드를 거의 안 받아 준다는 것. 대개 나이키 공홈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하려면 카드를 직접 이용하기 어려워서 페이팔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아니면 피니시라인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4]

2.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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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1978년 로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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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995년 로고[6]
흔히 나이키하면 떠올리는 스우시(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7]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다. 이 35달러도 처음부터 단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여서 17시간 30분을 만들고 만든 시간에 따라 35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11달러 정도라고.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슨이 로고를 완성하고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보여주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다고 한다. 로고가 발탁되고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 로고는 1971년 상호를 나이키로 바꾸면서 공개되었다. 로고가 공개되고 나서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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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사모트라케의 니케)을 왼쪽으로 눕히면 나이키의 로고가 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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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시 로고를 만든 캐롤린 데이비슨 여사

데이비슨의 말에 따르면 1983년 9월, 나중에 나이트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한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한동안 나이키에서 일했으며[9] 2000년 은퇴했다.

특히 현재에 와선 이 로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부터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수많은 선수들이 나이키의 협찬을 받아 장비를 입고 홍보를 하면서 이 로고가 자연스레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운동선수와 브랜드를 연결짓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1988년부터 밀어온 슬로건인 Just Do It과 함께 나이키의 대명사가 되었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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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와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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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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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아무리 봐도 코르테즈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운동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빌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제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 BRS)를 설립하였다.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아식스의 신발 메이커 중 하나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들이면서 사업은 시작되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 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달러로 매출이 증가하였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더 이상 오니츠카 타이거를 유통하지 않고 자사의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이키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때 나이키의 스우시 (Swoosh) 로고가 탄생하게 된다.[10]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든가, 사장 앞에서 경쟁사 신발을 신는 패기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11]와 겹쳐 아디다스리즈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만다.

미국 내에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던 당시, 나이키는 조깅 열풍 당시의 아디다스처럼 아줌마들이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게 피트니스지. 그건 스포츠가 아님하면서 늑장대응(...)하여 가벼운 피트니스화[12][13]를 출시한 리복의 도전을 받는 듯 했으나...그래도 미국이 홈 그라운드인지라 아디다스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이후 1976년 브랜드 광고를 하게 되고 순식간에 성장하여 1980년에는 미국 운동화 시장의 절반을 집어삼키게 된다. 이때 쯤부터 아디다스는 전세계 시장 지분에서 나이키에게 완전히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나이키의 매출은 마이클 조던과 협업으로 제작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성공으로 급상승하게 되었다. 참고로 에어 조던 시리즈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스토리텔링으로 더해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실제 나이키는 조던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런칭하여 운영 중이다. 그리고 에어 조던의 성공으로 큰 매출을 올린 나이키는 이후에도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각 분야의 스타들과 계약을 맺어 하나의 라인을 런칭하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는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나이키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에 자신들의 생산 라인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생산지의 노동자들이 아동이고 급여를 거의 못 받은 채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나이키는 초창기 계약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기 꺼려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정보를 보고서로 제출하게 되었다.

나이키는 많은 회사들을 인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콜한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바우어 하키(나이키 바우어)를 인수하고 2002년에는 헐리를 인수했다. 2004년에는 스타터, 2008년엄브로를 인수했다. 하지만 너무 여기저기 손대는 것 같은지(...) 자신들의 중심 사업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스타터, 바우어 하키, 엄브로, 콜한 순으로 처분되고 현재는 컨버스헐리만 남아있다.

4. 대한민국의 나이키 역사

1981년 (주)화승그룹 계열사인 (주)풍영과의 기술제휴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기사
1986년 화승과 결별하고 (주) 삼양통상과 50대 50의 자본제휴로 한국나이키를 설립한다.기사
1989년 삼나스포츠로 사명을 변경한다.
1994년 전체 지분을 나이키가 인수하고 나이키스포츠 코리아로 재출범한다.

5. 광고

2004년 월드 시리즈 이후 나온 광고.[14] 1인칭 시점인 광고[15]
Just do it: 너를 외쳐봐 just do it: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된다.[16]

나이키의 필 나이트는 광고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는데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는 상품을 광고에 직접 보이거나 선수들에게 협찬을 해주면서 광고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Nike is a marketing-oriented company, and the product is our most important marketing tool.
나이키는 마케팅에 기반한 회사이다. 그리고 상품이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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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에어 조던 광고 후에 에어 조던 29에 프린트되어 나왔다.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나이키 CF를 거쳐갔다. 마이클 조던[17]부터 시작해서 타이거 우즈까지...



2018년 9월 나이키는 "Just Do It" 30주년 광고 캠페인에 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의 얼굴과 함께 의미심장한 문구를 써서 화제에 올랐다. 광고 영상 몇몇 구매자들이 이에 나이키에 항의하는 의미로 자신들이 산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영상을 올렸으나#, 애초에 Kaepernick을 지지할 만한 사람들(진보, 다인종, 도시)이 나이키나 다른 소위 힙한 브랜드들이 노리는 주요 고객층[18]이고, 기대했던 대로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고[19] 기존 타겟층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진 게 확연하기 때문에 나이키 측에서는 콧방귀도 안 뀌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은 광고 공개 이후 폭락했다가 다시 회복하고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나이키 주식을 살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광고 후 나이키 온라인 매출이 31% 상승했다. 하지만 나이키가 자신들의 신발을 만들고 있는 (하청업체) 공장에서[20] 아동착취 등 인권유린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광고를 하는 것이 위선적이며 깨어있는 척("woke-washing")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긴 하다.

6. 제품군 및 대표제품

많은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헐리, 컨버스 등이 있으며 같은 나이키라도 브랜드가 상당히 많다. 에어 조던, 나이키 골프, 나이키+, 나이키 프로, 나이키 블레이저, 에어 포스 원(신발), 나이키 덩크, 에어맥스, 나이키 스케이트보딩, 나이키 풋볼 등이 있다. 콜한, 엄브로는 이전에 자회사였다.

사실상의 본업과 다름없는 육상은 물론이고 축구, 농구(에어 조던), 수영, 골프, 스케이트보드, 야구 등 굉장히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용품을 제작 판매 중이다. 전문 트레이닝 라인의 성능도 좋지만, 패션 브랜드로도 나름 위세를 떨친다. 원래는 전문 트레이닝 라인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패션 라인으로 팔리는 것들로는 에어맥스, 에어포스, 덩크 등이 있다. 미국에서도 나이키 신발은 그리 싸지 않은 편이지만,[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키의 점유율과 인지도 덕분인지 대중화 되어있다.

대표적인 운동화로는(에어 조던은 나이키 산하이나 자체 브랜드임으로 제외)
  • 코르테즈 - 나이키 최초의 기능성 운동화이자 상징적인 제품이며 오니츠카 타이거의 납품 업체에서 벗어나 비로소 독자노선을 가게 된 계기를 만든 제품. 현재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 에어포스 1 - 컨버스 올스타, 아디다스 슈퍼스타와 더불어 오랜 기간 사랑받은 범대중적 제품. 현재는 라이프스타일군으로 분류되어 패션화처럼 취급받지만, 사실 원래는 나사 직원의 아이디어 제안으로 만들어진 에어 달린 기능성 농구화였다. 현재는 세월이 흘러 기능성보단 스트릿 패션의 대명사이며 특히 힙합 패션의 큰 혁명을 가져다준 제품. 래퍼 닥터 드레의 에어포스 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여성들도 애용하는 신발이다.
  • 에어맥스 시리즈 - 에어가 주입된 러닝화 제품. 87년 에어맥스 1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그 중 에어맥스 역사상 인기가 높았던 시리즈들을 기술하자면 에어맥스 1애니버서리 레드 색상은 위대한 스니커 선정에서 1등을 했던 적도 있고, 에어맥스 90은 스트릿 패션의 대명사이자 스테디셀러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없는편이다. 대표적인 컬러는 인프라레드와 올백색상. 에어맥스 95는 역대 시리즈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고 매니아층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지금도 그러한 제품이다 특히 형광은 짝퉁이 판칠 정도로 인기가 어마어마한 색상이다. 에어맥스97 대표색상이었던 실버는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2017년 20주년부터 나이키 맥스시리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시리즈가 될 정도로 그 인기가 이제서야 시작되고 있다. 2018년에는 에어맥스 98이 97에 이어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베이퍼 맥스 시리즈의 출현으로 차세대 에어맥스는 단종되는 듯 했으나, 2018년 에어맥스 270 이라는 신제품이 출시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베이퍼 맥스 - 차세대 에어맥스 제품으로 미드솔에 에어 주머니가 들어간 일반 에어와는 달리 아웃솔 전체가 에어 주머니로 이루어져있다. 플라이니트라는 가벼운 재질과 새로운 방식의 에어가 맞물려 나이키 기술력이 결집됐다고 볼 수 있는 제품. 에어중 최초로 미드솔이 사용되지않았기 때문에 무게가 에어맥스 시리즈중에서 가장 가볍다. 일각에선 아디다스 부스트 시리즈의 엄청난 성공을 목격한 나이키가 계획보다 앞당겨 출시했다는 루머도 있다. 차세대 제품 경쟁에서 아디다스의 부스트 제품들과 경쟁이 예고되는 제품으로 이들의 공방전은 앞으로 지속될 듯 하다.
  • 루나 시리즈 - 나이키 러닝화의 대표 모델. 하지만 러닝화 뿐만 아니라 루나 트레이너처럼 트레이닝화, 루나 레주베네이트 미드처럼 일상화도 나온다. 루나론이라는 나이키에서 개발한 미드솔[22]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 제품이다. 러닝화를 주로 출시하는 라인업답게 색상도 형광색의 튀는 색상이 특징이며, 축구화마냥 다양한 라인업이 존재하는 것 또한 특징이다. 일부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루나 미드폼은 대부분 캐리어 밖으로 노출되었던 적은 없다[23] 왜냐하면 루나 폼이 밀도가 낮아 내구성이 낮고 무르기 때문에 안정성을 더해줄 캐리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해 경량성을 포인트로 잡다보니 아웃솔에 사용되는 탄소고무도 적게 사용되었다. 루나에픽이 발매되던 부근부터는 캐리어 부분이 아웃솔 탄소 고무를 대체하는 제품들이 퍼포먼스 라인까지 확장되었다.[24] 이로인해 아웃솔 내구성이 엉망이라 비난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루나론 자체가 일반적인 eva 신발보다 쿠션 수명이 낮기 때문에 둔하거나 잘 모르시는 분들은 아웃솔이 닳을때까지 쭉 쓰시기때문에 (특히 어르신) 교체 주기를 확인해준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 프리 시리즈 -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나이키 프리란 스탠포드 대학교 육상선수들이 훈련시 맨발로 달리는 모습을 본[25] 나이키 직원들이 이 모습을 보고 맨발에 가까운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러닝화를 만들기 위해 수년간 인체공학 연구를 통해 내놓은 시리즈라고 한다. 그만큼 무게도 가볍고, 발의 움직임을 제한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밑창에 그어논 특유의 수많은 칼집선들이 특징. 미니멀리즘, 최소주의 신발의 나이키식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26]
  • 업템포 시리즈 - 1994년부터 만들어진 꽤 유서 깊은 시리즈로, 이전에는 가드용인 '플라이트(Flight)'군과 센터용인 '포스(Force)'군이 있었지만 포워드용 농구화 카테고리가 없었기 때문에 나이키는 새로이 업템포(Uptempo)라는 포워드용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94년도에 처음 발매된 모델인 에어 업템포를 시작으로 해마다 에어맥스 2(스퀘어) 업템포, 에어맥스 업템포, 에어 모어 업템포 등 수많은 시리즈가 발매되었다. 스카티 피펜크리스 웨버가 자신들의 시그니처 라인이 나오기 전에 애용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은 바디에 커다랗게 AIR 알파벳이 박히고 전장 맥스 에어솔이 들어간 에어 모어 업템포(Air More Uptempo)이다. 이 모델이 피펜이 96년 플레이오프와 애틀란타 올림픽 때 착용한 피펜의 준시그니처 모델이며 이미 한국에서도 많은 농구선수들과 학생들이 신은 유명한 모델이다. 특히 GD가 신어 화제가 되었던 크리스마스 에디션과 검흰 컬러가 유명하다. 에어 모어 업템포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업템포 시리즈를 대표하는 모델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에어 모어 업템포를 그냥 업템포라고 부르는 건 엄연히 잘못된 표현이다. 또한 남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올림픽컬러 모델을 '에어 모어 업템포 시드니' 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굉장히 많은데 위에서 기술했듯이 애틀란타 올림픽에 착용한 모델이다. 따라서 '올림픽' 혹은 '애틀란타 올림픽'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야 한다.
  • 바우어만 시리즈 - 현재는 대부분 줌에어와 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나오는 시리즈로 나이키의 대표적인 러닝화 제품군이다. 흔히 러닝하면 에어맥스를 떠올리기 좋지만 에어맥스 제품들은 대부분 무게가 무겁기에에어는 내구성도.. 운동으로서 러닝을 선택한다면 줌 시리즈를 선택하는게 좋다.
  • 리액트 - 2017년에 시작된 러닝화 제품군. 경쟁사인 아디다스아디다스 부스트 시리즈의 폭발적인 흥행을 견제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나이키는 이 제품의 밑창, 통칭 '리액트 폼'이 자사의 루나론보다 에너지 회수율이 13% 높으며, 아디다스 부스트보다 30% 가볍고, 수만시간동안의 연구와 전문 농구선수를 기용해 이루어진 2,000시간 이상의 점프 실험으로 개발되었다고 아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2019년 기준 플라이니트 갑피로 만든 에픽 리액트(Epic React)를 하이엔드급으로 두며 나이키의 얼굴마담 상품으로 밀어주려고 하는 듯. 그러나 2018년판 모델이 서양인 기준으로 만든 칼발이나 뒷꿈치의 딱딱한 지지대, 설포가 없는 발등 접합부를 그냥 덧대서 신발끈으로 이어버린 것이 개인의 걸음걸이에 따라 상처를 낸다는 이슈도 있었다. 미들엔드 제품으로는 오디세이 리액트(Odyssey React)등이 있는데, 보급형이 에픽보다 편했다는 등의 개인차가 갈리는 편이다.

7. 스폰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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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너 일루 와봐 싫은데여

나이키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스폰서였다. 역대 나이키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찾는다면 이 항목을 참고하자. 1995년말 계약하여 1996년부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스폰서를 맡고 있었다. 나이키가 축구용품을 런칭한 초창기부터 함께했으니 거의 20년간 공식 스폰서였던 셈. 2012부터 2019년까지 8년간 총액 1200억원(물품600억+현금600억)재계약을 맺었다. 아디다스가 재계약 기간에 매번 스폰서 계약을 노리고 있어 지원액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3년부터 유럽 메이저 팀이 받는 트레이닝복을 받게 되어 이제서야(...) 20년간 공식 후원사의 대우 좀 해줬다. 유니폼 디자인을 좋게 보는쪽은 깔끔하고 심플함, 나쁘게 보는쪽은 그냥 빨강 티셔츠에 나이키 스우시, 축협 엠블럼이 땡인 성의없는 디자인[27]이라고 평한다. 이래서 파이어 드래곤 유니폼이 이 모양이었구나. 축구팬들은 불에 가까운쪽이라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높게 쳐준다. 아디다스도 삽질하긴 하지만 나이키보다는 낫다는게 평. 그러자니 꾸미면 의미부여를 많이 한 나머지 해괴한 디자인이 나와버려 또 까인다(...)[28] 1995-96 시즌 유니폼[29]은 아직 나이키 특유의 독자적인 디자인이 정립되기 전이라 현재 적-백-청 조합이 아닌 적-백-흑 조합에 얼핏 보면 1994 월드컵 때 유니폼의 색동조각 무늬와 비슷해 보인다. 2004-06 시즌의 유니폼은 앞면에 박힌 특유의 동그라미 등번호 마킹 때문에 '로또 유니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2018년 3월에 3월A매치 때부터 계약 종료일인 2019년 12월 31일까지 그 기간 a매치동안 입을 유니폼을 발표했는데 내복으로 보이는듯한 괴기한 디자인과 한국,호주,사우디를 제외한 다른 나이키 스폰을 받는 국가대표팀들은 베이퍼니트리는 신소재를 사용 앞서 말한 아시아 3개국만 기본 소재인 드라이핏 소재를 사용해서 엄청나게 혹평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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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방콕 아시안 게임부터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까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담당했다. 역대 유니폼. 야구유니폼은 축구유니폼과 달리 대회를 치를수록 디자인이 점점 진일보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013년의 야구 국대의 유니폼은 나이키 본사에서 직접 제작한 맞춤형 유니폼이라고 한다.하지만 정작 2013년 대회는 야구국대 역사상 2번째로 큰[30] 흑역사다. 그도 그럴 것이, WBC에 참가하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메이저리그 유니폼 공식후원사인 마제스틱사가 일괄적으로 디자인하는 것과는 달리[31][32] 한국은 MLB 사무국(WBC 대회 조직위)에 별도의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마케팅 성과를 거둬 나이키에게나 한국 국가대표팀에게나 모두 윈윈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2013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었으나 이후 대한야구협회데상트와 4년간 20억원의 스폰서를 체결해 202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 되기 전까지[33] 나이키 유니폼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농구 국가대표팀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그 즈음부터 공식 스폰서가 됐다. 농구 대표팀 유니폼 항목 참조.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스폰서도 맡고 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때 여자 대표팀이 북한과 단일팀을 진행하면서 여자 대표팀은 나이키 유니폼을 못입게 되었고 남자 대표팀만 입고 출전했다.

국가대표팀 유니폼 제작에는 열정적인 반면 국내 스포츠팀 유니폼 후원에는 소극적이라 팬들의 비난이 있는 편. A대표 1200억원-K-리그 0원, 글로벌 나이키의 마인드. 보다시피 축구쪽의 비난이 많다. 참고로 다른 동아시아 국가를 보면 중국의 경우엔 전구단이 나이키 스폰서를 받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산프레체 히로시마, 가시마 앤틀러스 등이 나이키의 후원을 받고 있다.
  • K리그의 경우에 2000~2003년 부산 아이콘스 유니폼, 2003년 광주 상무 유니폼, 그리고 2009년 강원 FC의 유니폼 제작을 제외하곤 전무하며, 다른 축구 리그로 확대해봐도 2007년, 2008년에 챌린저스 리그서울 유나이티드의 킷스폰서로 참가한 것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강원 FC는 강릉점 차원에서의 스폰이라 그냥 기본킷에 글자만 넣어놨던 물건이었고, 2003년의 광주 상무 유니폼도 비슷한 성격이었다.
  • 오랫동안 K리그 스폰서로써 K리그 공인구가 나이키로 쓰여왔지만 이마저도 2012년부터는 아디다스로 바뀌면서 국내 프로축구에선 완전히 손을 뗐다.[34]
  • 프로야구의 경우엔 2013년 넥센 히어로즈유니폼 킷스폰서 계약을 맺었으며 반응이 좋았는지 2017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35] 다른 구단들의 경우에는 배팅장갑, 야구화등 야구 용품 일부를 구단 단위로 나이키에게 스폰서를 받는 경우가 있다.
  • e스포츠에서는 SK텔레콤 T1이 2006년부터 이어져온 아디다스와의 유니폼 계약이 종료된 이후 2012년 12월, 나이키와 유니폼 계약을 맺었다. 다만 이쪽은 따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품에 팀 엠블럼만 부착해서 제공된다.

7.1. 축구

7.1.1. 대회

7.1.2. 국가대표팀

2018년 국가대표팀 리스트

7.1.3. 클럽

첼시, 맨시티, 토트넘, 바르셀로나, AT마드리드, 로마, 인테르, 갈라타사라이 등 8팀은 회사에서 최고대우를 받으며 다른 클럽들에 비해서 많은 의류가 출시되고 등급이 높은 유니폼과 함께 3rd 유니폼도 특색있는 디자인으로 따로 광고를 해준다.

7.1.4. 개인

7.2. 농구

7.2.1. 대회

7.2.2. 국가대표팀

7.2.3. 클럽

7.2.4. 개인

일반적으로 빅맨 포지션보다는 스윙맨, 가드 포지션 선수들이 상업적으로 인기가 많다. 바클리의 경우는 샤킬 오닐과 같이 캐릭터가 분명했으며 안티 히어로 같은 이미지가 소비자들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팀 던컨이 선수 커리어는 완벽했지만 상업적으로는 그리 매력적인 선수는 아니였다.

7.3. 아이스하키

7.3.1. 국가대표팀

올림픽에서는 가슴에 국가명이나 상징이 들어가고 그 외 국제대회에서는 주로 협회 로고가 들어간다.
  •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미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캐나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러시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스웨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핀란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체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스위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슬로바키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슬로베니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독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노르웨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 일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7.4. 그 외

7.4.1. 국가대표팀

7.4.2. 리그 & 클럽

7.4.3. e스포츠

8. 트리비아

  • 여느 글로벌 신발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은 OEM 업체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는데 한국의 태광실업이 전체 물량의 10%를 책임지며 나이키 내 OEM 3위 안에 든다고 한다.
  • 시그니쳐 제품들은 스포츠 스타와 손을 잡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비스포츠 스타와도 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비스포츠 스타와의 퍼스트 콜라보레이션은 래퍼 칸예 웨스트와 손을 잡고 만든 AIR YEEZY. 하지만 칸예 웨스트는 마이클 조던처럼 지분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나이키에서 거절당하자 이후 삐져서 아디다스로 넘어갔다.
  • 2015년 아디다스가 전세계 6개 도시(뉴욕, LA, 런던, 파리, 상하이, 도쿄) 공략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이에 자극받았는지 2017년 나이키는 상기된 6개 도시에 추가로 6개 도시(서울, 베이징, 베를린, 바르셀로나, 밀라노, 멕시코시티)를 더해 도합 12개 도시를 중점 판매 거점 도시로 선정하기도 했다. 글고보니 아디다스는 독일 회사면서 정작 독일 도시는 넣지도 않았다
  • 한국의 힙합가수 Beenzino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나이키 찬양가인 'Nike Shoes'를 만들었다. 그의 EP 앨범 1번 트랙 노래이기도 한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
  • 나이키와 애플의 합작라인인 'Nike+iPod'도 있다. 아이팟 없이 Nike+ 기능을 쓸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고 한다. 아이팟이 시들해진 지금은 애플워치시리즈에 나이키 에디션을 추가해 판매 중이다.
  • 의외로 일본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와 연관이 꽤 있다. 2004년 그란투리스모 4 시절에서는 나이키와 그란투리스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출시되기도 했었으며,[53] 게임 내에서도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Nike One 2022라는 미래지향적 컨셉트카를 수록.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그란투리스모를 위한 차를 디자인해주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Vision Gran Turismo에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메이커로는 유일하게 컨셉트카 발표 예정.[54]
  • 창립자 필 나이트의 아들 트래비스 나이트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쿠보와 전설의 악기가 있다.
  • 2009년 나이키에서 욱일기로 디자인된 조던12 시리즈를 발매하면서 이후 국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55] 라이징 선은 깔창에 욱일기를 그대로 갖다붙여놓은데다 이름마저 라이징 선이고,[56] 2013년에는 홈페이지에서 대놓고 일본 욱일기 디자인임을 밝히기도 했다. 에어 조던 12 레트로 더 마스터라는 모델은 2016년 3월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 논란이 일면서 나이키 코리아는 이후 발매되는 12 시리즈를 한국에서는 발매하지 않고 있는 중이다.
  • 2019년 2월 20일에 미국 농구선수 자이언 윌리엄슨의 운동화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찢어지는 바람에 넘어져서 경미한 무릎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해당 선수가 속한 팀이 라이벌전에 져서 나이키는 전방위적으로 욕을 엄청 먹고 있다.정리글 영상
  • 2019년 현재 나이키 스포츠웨어 라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9. 함께 보기



[1] 2019년 3월 21일 기준, 1,095억 달러.[2] 나이크가 아닌 나이키라 읽는다.[3] 아디다스는 북미에서 언더아머에게도 밀리는 형국이었으나, 부스트 시리즈 등의 호조로 2017년 다시 북미 시장 2위를 재차지하긴 했다. 또 나이키도 이에 대응하고자 자사 인원을 일부 감축하고 그동안 애써 무시해왔던 온라인 유통 시장에 눈을 돌려 아마존과 정식 협약을 맺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4] 그러나 피니시라인은 서로 치수가 안 맞는 신발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막장 라인"으로 불린다. 실제로는 물건을 직구로 구매하고 받아놓고선 못 받았다고 카드 결제를 취소해버리고 물건도 보내지 않는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안 받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풋 계열은 잘 받는 중이고 변팔만 잘되면 미국 공홈에서 충분히 한국카드 사용 가능하다.[5] 이 로고도 매우 가끔씩 빈티지 나이키 슈즈에 각인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으나, 드물다.[6] 현재는 주로 NIKE 로고가 안 달린 버전으로 쓰지만 이 버전도 간간이 쓰인다.[7] 심지어 처음부터 그래픽 디자인을 지망한 게 아니라 저널리즘 공부 도중 학점 채우기용으로 디자인 수업을 듣다가 전과했다고 한다.(...)[8] 나이키의 로고를 만드는 데 이 동상이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9] 회사가 작았을땐 전담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70년대 중반부터 나이키가 외주를 주면서 데이비슨 역시 나이키 일 말고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10] 오니츠카 타이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신발이 바로 코르테즈이다. 자동차 업계로 본다면 아식스는 미쓰비시, 나이키는 현대자동차 쯤 되겠다.[11] 아디다스의 미국 내 총판을 맡고 있던 미국인들로부터 판매권을 인수하는데 자금을 무리하게 동원하였다.[12]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실수로 장갑용의 가죽으로 신발을 생산하여 납품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모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화승산업에서 리복의 운동화를 생산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시절 세계 최대의 스포츠화 생산기지는 한국이였다.[13] 화승은 1970~1980년대 나이키에 스포츠화를 공급했고 국내에도 나이키 브랜드를 들여왔지만 1986년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로 르까프 브랜드를 런칭했다. 여기에는 나이키 뿐만 아니라 리복을 위시한 타 브랜드에도 신발을 납품하려는 화승의 계획과 자사에만 독점 납품하기를 원했던 나이키와의 의견 대립이 원인이였다는 설이 있다.[14] 별다른 문구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을 표시했음에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광고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광고계에서 엄청난 주목도를 받았다.[15]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등등 당시 최정상 축수스타들이 참여하였다.[16] 빅뱅태양, 2NE1산다라 박, 축구선수 박지성, 테니스 선수 정현이 카메오 출연.[17]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의 팬이었고, 계약을 맺을 당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와 계약하기를 고대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4년 당시 나이키의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었지만 조던과의 계약 후 최초의 시그니쳐 개념을 가진 Air Jordan이란 메이커가 대박을 친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상황이 역전됐다. 또 1990년대 초반, 즉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당시에는 몇몇 사람들이 Air Jordan을 나이키에서 독립시켜 독자적 브랜드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Air Jordan은 세계 3위의 신발 제조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흠좀무.[18] 즉, 나이키는 돈 안되는 보수주의자나 공화당원, 트럼프 지지자가 필요없다는 것. 또한 사회적 이슈로 광고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펩시스타벅스와 달리 예전부터 나이키는 '반항아'적인 광고를 해왔으며, 이러한 광고가 나이키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19] 실제로 4천3백만 달러 가치의 SNS 버즈량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20] 이 기사에 나오는 하청업체는 한국회사(...)이다.[21] 다만 소득의 규모를 따져보면 한국인들보다 체감적으로는 덜 비싸게 느껴질 것이다.[22] 아웃솔은 운동화 바닥의 고무재질을 의미한다.[23] 쭈글쭈글한 모양도 캐리어에 그냥 모양낸것뿐 ,프리런 디스턴스나 보메로10같이 노출되었을때는 일반적인 형태였다.[24] 파일론이라고 표기되나 파일론의 내마모성이 그리 좋지 못하므로 프리시리즈처럼 파일라이트를 사용했으리라 추정됨 파일라이트도 현재는 명칭이 그냥 파일론으로 퉁쳐버려서 정확한 정보는 없다.[25] 맨발로 생활하는 것이 발 건강에 좋다는 이론은 신발 공학자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논쟁거리다. 자세한 내용은 신발 항목 참조.[26] 이맘때쯤 써코니 호카 등 미니멀 신발을 메인으로 삼은 브랜드들에 의해 러닝화쪽 점유율을 많이 잃었기에 자체 개발했다고 생각되어진다. 마라톤에서 아식스 다음이였던 나이키 점유율이 5위권 밖까지 밀려나가기도 했을 정도. 이 여파가 커서 2018년까지도 나이키는 마라톤에서 점유율 5위권을 다투고 있다.[27] 이 특징이 월드컵 최종예선 유니폼만 엄청 부각된다[28] 우리나라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나이키 스폰서 팀의 공통사항이다.[29] 당시에 원정 유니폼은 있었긴 했으나 실제 착용하고 뛴 경기는 전혀 없었다.[30] 최악은 바로 다음 대회인 고척돔 참사.[31] 그 외에 2013년 WBC에서 일본은 미즈노가 키트 스폰서를 맡았다.[32] 대만 역시 2009년 대회까진 일본 미즈노사 것이었다가 2013년 대회에서부터 미국 마제스틱사 것을 쓰게됐다.[33] 2020년부터 나이키가 메이저리그 유니폼 스폰서를 맡으며 일본을 제외한 202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국은 강제적으로 나이키 유니폼을 착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34] 이는 본토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스포츠 4대 리그 역시 전체가 같은 회사 제품을 쓰는, 독점계약 체결 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고로 MLS의 공식 스폰서는 아디다스다. 즉, 아디다스에서 MLS 구단 유니폼을 일괄 제작한다는 얘기.[35] KBO 리그에 참가하는 구단들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가하기는 쉽지 않은데, 목숨걸고 스폰서하려는 국내기업을 받는 곳도 있고, 삼성 라이온즈 처럼 모기업 스폰서를 받는 구단도 있고, 기왕이면 야구 용품으로는 더 높게 쳐주는 곳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끼어들기 힘들다.[36] 의 본사가 있는 국가의 리그인데도 오히려 후원 클럽이 더 많다.[37] 공인구는 몰텐.[38] 코비는 01-02시즌 까지 트레이시 맥그레디와 아디다스를 대표하는 선수였지만 과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결국 코비는 나이키와 계약했다. 코비 은퇴 이후 아디다스는 '크레이지' 라는 브랜드 네임으로 레트로 하기 시작했다.[39] 줌 업템포가 피펜이 96년 플레이오프 및 애틀란타 올림픽 기간 신은 농구화이다.[40] 로드맨은 커리어 후반 컨버스에서도 시그니처가 나왔다. 그 컨버스가 이제는 나이키 자회사.[41] 96-97시즌 한정 팀 하더웨이만 착용한 농구화가 있다.[42] 로빈슨과 모닝은 센터용 농구화 메인 모델.[43] 웨버는 딱 1시즌 시그니처 모델이 있고 간간히 레트로 되었다. 나이키와 종료 이후 필라, 리복 등 다양한 브랜드 농구화를 신었다.[44] 푸마, 앤드 원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부터나이키 착용.[45] 조던과 바클리의 선수 말년 및 은퇴 그리고 페니의 부상으로 위기가 닥차자 나이키는 제이슨 윌리엄스, 팀 던컨, 케빈 가넷을 중심으로 보다 스트릿하고 젊은 방향으로 전략을 변경했다. 힙합음악배경에 애니메이션과 실제 경기 영상을 교차 편집한 광고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46] 던컨도 시그니처 모델이 있다.[47] 가넷은 커리어 초중반 나이키 모델로 중반 이후부터는 앤드 원, 아디다스와 계약했다.[48] 웨이드는 당대 슈퍼스타 선수였지만 이상하게 나이키 후원을 받던 시절 시그니처모델과는 인연이 없었다. 오히려 제임스 하든의 첫 농구화 하든 vol.1 과 유사했던 05-06 시즌 착용한 컨버스 농구화가 웨이드를 상징하는 제품. 이후 웨이드는 커리어 후반 중국 브랜드 리닝과 계약했다.[49] 18-19시즌 부터 푸마 메인 모델.[50] 드로잔과 토마스는 당연히 시그니처 모델은 없다. 기존 모델에 PE버전으로 제공했을 뿐이다.[51] 18-19시즌 부터는 뉴발란스로 옮겼다.[52] 비비는 줌 비비, 왈라스는 에어 포스 하이를 신고 경기를 했다.[53] 나이키 디자인의 드라이빙 슈즈와 티셔츠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의 패키지.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54] 사실 에어 조던 역시 예정하고 있지만 나이키 산하의 조직이다.[55] 사실 욱일기 항목에도 있지만, 서구권에선 욱일기 자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한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크게 논란이 된건 2010년대 들어서부터다.[56] Rising Sun: 떠오르는 해=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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