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5 17:13:10

1988년

연도구분
1987년 1988년 1989년
연대구분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88년
대한민국 70년
단기 4321년
불기 2532년
황기 2548년
이슬람력 1409년~1410년
간지 정묘년~무진
주체 77년
민국 77년
일본 쇼와 63년
히브리력 5748년~5749년
에티오피아 1980년~1981년

1. 개요2. 통일운동의 부활, 1988년3. 사건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3.1.13. 일자 불명
3.2. 가상
4. 탄생
4.1. 실존 인물 4.2. 가상 인물
5. 사망
5.1. 실존 인물
5.1.1. 1월5.1.2. 2월5.1.3. 3월5.1.4. 4월5.1.5. 5월5.1.6. 6월5.1.7. 7월5.1.8. 8월5.1.9. 9월5.1.10. 10월5.1.11. 11월5.1.12. 12월5.1.13. 일자 불명
5.2. 가상 인물
6. 데뷔
6.1. 배우6.2. 가수
6.2.1. 한국6.2.2. 해외
6.3. 예능인6.4. 만화계6.5. 스포츠
7. 은퇴
7.1. 스포츠
8. 히트작
8.1. 영화8.2. 드라마8.3. 가요8.4. 개그 코너8.5. 애니메이션8.6. 베스트셀러
9. 유행어10. 최초
10.1. 창간
11. 달력

1. 개요

매일경제 선정 1988년 10대 뉴스

어찌보면 10년 뒤와 은근 대조된다;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우리나라가 정부수립 40년 이래 최대의 이벤트였던 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이룩한 눈부신 경제 발전의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올림픽 당시 오후 수업이 있으면 올림픽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유치원의 수업도 오전 수업만 했다고 한다.

제6공화국 헌법이 효력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정치제도가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 시기이다. 88년생은 6공과 동갑내기 4월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노태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0월 유신 이후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에 이어 광주학살, 일해재단 비리, 1980년 언론대학살의 진상 등을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가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재벌총수, 언론인, 정치가 등 유명 인사들이 출석하여 TV로 생중계되는 등 올림픽에 버금가는 전 국민적 화제를 낳았으며, 국회의원 중에서는 훗날 대통령으로 당선된 분께서 청문회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이후 강원도 설악산백담사유배(?)를 가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이른바 '북방정책(중국, 소련 등 북방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를 맺는 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남북학생회담 투쟁과 '7.7선언'의 발표를 계기로 대학 운동권 사이에서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퍼져갔다.

1996년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로 바뀌면서, 1995년에 입학한 1988년생들은 '마지막 국민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처음으로 졸업한 1984년생부터 1988년생까지를 일명 "국초딩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88 올림픽 때문에 "쌍용 세대", "올림픽 세대", "호돌이 세대". "쌍팔년도 세대."라고도 불리며,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하면 땡칠 07학번이 되었다.

1988년 출생자들은 중학교 입학금과 수업료를 마지막으로 내고 다닌 것으로 유명한데 1988년 3월~1989년 2월 출생자[1](현재의 07학번에 해당되는 세대이다.)까지는 수업료와 운영지원비를 지불하고 중학교에 다녔다. 게다가 올컬러판으로 나왔던 7차 교육과정 교과서의 첫 세대였기 때문에 앞의 선배들보다도 교과서값이 장난아니게 비쌌다. 그걸 다 내고 다녔다. 08학번부터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남의 일이니까 관심도 없을 듯 [2] 중학교 3년동안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를 모두 본인 부담으로 비싼 수업료를 냈다.[3] 또한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매긴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한편 이 세대는 중학교를 제7차 교육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된 최초의 세대이다. 그리고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처음으로 교과목으로서 배웠다. 또, 이 해를 기점으로 교육, 학사 혹은 경제면에서 2002년생까지 하나씩은 고통받는 세대가 된다.(...)[4]
이 해 이후에 태어난 한국 남자들은 나라사랑카드를 신검 때 발급받게 된다.그래서 지디

88년생의 인생사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서울랜드가 개장하였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COEX에 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가 완공되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루는 가장 먼 시대이기도 하다.[5]

대학이나 군대, 회사에서 뭔 일만 있으면 거론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작 88년도에 머리 굵은 적이나 태어난 적도 없을지라도 선배가 마음에 안드는 후배에게 "88년도 식으로 해볼까?" 라고 꺼내는 게 주된 방식.

쌍팔년도라고 자주 지칭되는 해이다. 하지만 쌍팔년도라는 단어는 원래 서기 1988년이 아닌 단군기원 4288년인 1955년을 뜻하는 단어로, 1988년 이전부터 사용되던 어휘였다. 50년대를 쌍팔년도로 표현했던 70년대 신문기사

여담이지만, 이 해에는 드물게 별다른 태풍, 가뭄도 없이 유난히 농작물이 풍작을 맞이했고, 해외여행 연령도 종전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확장됐고, 부부동반 여행도 허용되었다.

2. 통일운동의 부활, 1988년

1987년에 터진 6월 항쟁6.29 선언은 1960년 4월 혁명 이후와 같이 통일운동의 물꼬를 텄다. 해방 이후 그 동안 국민들은 통일에 대해 오랫동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왔다. 통일문제는 곧 북한과 직결되는 문제인 데다 그 역시 이념문제로 취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정부의 통일정책의 범위 내에서만 발언이 가능했다. 이승만의 제1공화국 이래 정부의 통일정책은 오로지 반공과 동일한 의미로만 써왔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 시절 짧은 기간 동안 민간 위주의 통일운동이 활성화될 뿐이었다. 그러던 게 1988년에 민선으로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의 제6공화국에 들어서 학생과 재야세력 등 다양한 계층과 세력에 의해 통일에 대한 여러 의견이 표출되었고, 통일운동이 다시 활발히 전개되었다.

통일운동의 첫 물꼬를 튼 건 학생들이었다. 1988년을 전후해서는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국가보안법 철폐운동과 함께 전개되었으며 그해 3월 29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의 '남북한 대학생 공동체육대회'와 '국토순례대행진' 제안은 통일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제안에 대해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어 학생들은 6월 10일 판문점에서 남북청년학생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국토순례대행진에 들어갔다. 야당은 신중한 태도를 취했지만 민통련 등 재야단체들도 환영을 뜻을 표했다. 그러나 학생회담과 6.10 대회는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어 개최하려던 8.15 남북학생회담 역시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통일의 필요성을 가슴에 와닫게 한 사건은 바로 '조성만 투신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대 화학과 3학년이었던 조성만은 5월 15일에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할복 후 투신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막연히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었던 것을 우리가 노력해서 많은 학생들에게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6.10 남북학생회담이 무산된 뒤 7월 20일에 민통련 등 11개의 재야 단체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를 결성하고 통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며, 8월 28일에는 문익환, 계훈제, 박형규 등의 재야인사들을 주축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휘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를 결성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앞서 개최되려던 8.15 남북학생회담과 1989년 3월에 개최 예정인 범민족대회 예비회담까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었지만, 학생과 재야 세력은 더욱 활발히 통일운동을 폈다.

1988년에 터졌던 통일 열기는 학생들이나 재야 단체들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종교계와 문화예술인, 노동자와 농민, 해외 동포들까지 통일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자고 나섰다. 이들이 주장하고 나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민간 차원의 자율적인 교류/협력이었다. 이렇게 분단된 지 반세기가 가까워지는 동안 남과 북은 너무 오랫동안 자기 체제의 틀 안에 갇혀 서로를 적대시해왔다. 그렇듯 오랜 세월 동안에 높이 쌓인 장벽을 허무는 일 역시 하루아침에 가능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서로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 걸친 민간교류가 당시 통일운동의 좋은 대안으로 통했다.

학생들과 재야단체의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때 노태우 대통령은 7월 7일에 남북간의 교류를 제안하고 북이 미-일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하 7.7 선언)'을 발표해 종래의 교차승인과 유엔 동시 가입에 따른 두 개의 정책을 재확인했다. 이 선언은 표면적으로는 북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웠지만, 북을 고립시키려는 북방정책과 연결되어 있었다.

3. 사건

3.1. 실제

3.1.1. 1월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대립/앙금을 걷어내고 국민화합을 실천하자고 촉구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는 신년사에서 화합의 새 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촉구하였다.
    • 국민연금제가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행되었다.
    • 문학과지성사가 <문학과 사회>를 창간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북연석회의의 연내 개최를 제의하면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와의 대화 용의가 있다고 천명했다.
  • 1월 5일 - 한미 통상회담에서 미국측은 한국의 담배, 보험, 농산물 시장을 개방키로 했다.
  • 1월 7일
    • 전국엽연초생산조합연합회 산하 43개 연합장 및 임직원 1백여 명이 수입개방 반대와 양담배 불매운동을 결의하였다.
    • 호네커 동독 국가평의장이 프랑스를 방문하였다.
  • 1월 8일 - 경찰은 이사진 개편과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며 넉달간 점거농성 중이던 조선대에 진입해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켰다.(1.8 항쟁)
  • 1월 9일 - 미-EC 무역 대표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무역회의에서 한국 등 아시아 NICS에 통화평가 절상 및 무역흑자 감소를 촉구했다.
  • 1월 10일 - 신인가수 신촌블루스가 1집 앨범 <그대 없는 거리>로 데뷔했다.
  • 1월 11일
    • '민주화합범국민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계훈제는 민통련 해체를 요구하며 민통련 부의장직을 사퇴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 임금인상 대책위원회(이하 임대위)'가 결성되었다.
    • 북한 정무원 총리가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하였다.
  • 1월 12일
    • 다케시타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여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을 열었다.
    • 동아일보는 황적준 박사의 일기를 입수해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실을 특종 보도하였다.
    • 북한 조선올림픽위원회가 서울올림픽 불참성명을 발표했다.
  • 1월 13일
    • 경남 합천군 쌍책면 옥전고분에서 환두대도 등 유물 8백여 점이 발굴되었다.
    • 북한 중앙인민위, 정무원, 사회단체 등이 연합회의를 열어 '남북연석회의 북측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 장징궈 중화민국 총통이 세상을 떴다.
    • 리덩후이 중화민국 부총통이 장징궈의 유고로 총통직을 승계하였다.
  • 1월 14일
    • 문교부는 새 한글 맞춤법/표준어 규정을 확정하고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 현대중공업은 1987년 7~8월 파업과 관련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19명을 해고 조치했다.
  • 1월 15일 - 안기부는 KAL808 폭파사건 범인 하치야 신이치-마유미가 김승일-김현희였다고 밝혔다.
  • 1월 16일 - 대검찰청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자인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을 구속하였다.
  • 1월 18일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전대협 공정선거감시단은 제13대 대선에서 선거부정이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며 선거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 일본 닛산자동차가 고급 승용차 '시마'를 출시하였다.
  • 1월 19일 - '민주출판언론노동조합협의회(이하 민출노협)'가 결성되었다.
  • 1월 20일 - 미 국무부는 KAL기 공중폭발 사건과 관련하여 북한을 국제적 테러 국가로 규정하는 등 3개항의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 1월 22일
    • <월간중앙>이 8년 만에 복간되었다.
    • 부산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대한언론인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5일
    • CBS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민추위와 신지협의 다수파를 주축으로 한 '신당결성 전국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월 26일
    • 서대협은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에 대한 시국 대토론 및 경제침탈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양순직 등 평민당 의원 8명은 야권 통합을 요구하며 탈당했다.
    • 경기 시흥군 의왕읍에 철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1월 29일
    • 경찰대 총동창회와 재학생들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화에 대한 성명을 채택하였다.
    • '민중의당 창당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반미청년회가 결성되었다.
  • 1월 31일 - 서울 사당 2동 공터에서 '재개발 반대 및 임대주택 쟁취를 위한 도시빈민대회'가 개최되었다.

3.1.2. 2월

  • 2월
    • '인천지역노동자그룹'이 결성되었다.
    •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이하 민자통)'가 결성되었다.
  • 2월 1일 - '전국대학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2월 2일
    • 평민당의 유제연, 김성수, 김성식 의원이 통일민주당으로 옮겨갔다.
    • 국토개발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3일
    • 문동환 교수 등 97명이 평민당에 입당하였다.
    • 전택노련 중앙위원 60여 명이 설립신고서 반려에 항의하며 노총회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2월 4일 -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5일
    • '5.18 광주민중혁명 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는 합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 현대사회연구소와 조선대학교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8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야권 단일화를 위해 총재직을 사퇴하고 당원으로써 백의종군을 선언하였다.
    • 서울대병원 민병구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인공심장을 개발하였다.
    • 인하대학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2월 9일 - 대법원은 권인숙의 변호인단이 낸 재정신청을 인정하였다.
  • 2월 10일 - 민주당과 평민당은 '야권 단일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2월 11일 - 전교협은 해직교사 복직을 요구하는 교사와 학부모 4.245명의 연명청원서를 문교부에 제출하였다.
  • 2월 12일
    • 팀 스피릿 '88 훈련이 개시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부총리 겸 화학/공업위원장에 김환, 부총리 겸 건설건재공업위원장에 조세형, 국가계획위원장에 김달현을 각각 임명했다.
  • 2월 13일
    •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분당 전 상태로 못 돌아간다고 말하고 야권 통합을 거부했다.
    •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되었다.
    •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캐나다 맥마흔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 2월 16일 - 정부는 대통령과 재직 1년 미만 장관을 제외하는 방법으로 전 각료에의 훈장수여 계획을 수정하였다.
  • 2월 17일
    • 서울 종로구 청진동 삼송빌딩 9층 강당에서 '한겨레민주당 창당 발기인 대회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열렸다.
    • 아시아나항공의 전신인 (주)서울항공이 세워졌다.
    • 태국-라오스 양국이 휴전협정에 조인하였다.
  • 2월 18일 - 씨름선수 이만기가 통일장사씨름대회 결승에서 이봉걸을 꺾어 천하장사 타이틀을 되찾았다.
  • 2월 21일
    • 현대엔진 노조 간부들이 사측의 노조에 대한 고발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인민군 총참모장 오극렬 대신 최광을 임명했다.
  • 2월 22일
    • 보사부는 귀국 외항선원을 최종 검사한 결과 국내 최초로 에이즈 증세가 나왔다고 발표하였다.
    • '충남민주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한국여성개발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2월 23일
    • UPI-CIC 영화 비디오 배급 유한회사가 세워졌다.
    • 쇼트트랙 선수 김성훈이 캘거리 동계올림픽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아프간 이슬람 반군 '무자헤딘'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 2월 24일
    •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이 제정되었다.
    • 한기원 등 청년학생구국결사대 소속 대학생 5명이 서울 미국문화원에서 점거농성을 하다 경찰에 의해 1시간만에 연행되었다.
    • 연세대 신학대생 안내상이 추가 검거 후 광주 미국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사실을 진술했다.
  • 2월 25일
    •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이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개최되었다.
    • 제9차 개정 헌법이 시행되었다.
  • 2월 26일
    • 한미 재무장관회담에서 미국은 자본 및 금융시장 조속 개방과 원화 평가절상 가속화를 강력히 요청했다.
    • 논산훈련소는 훈련병 면회제도를 29년만에 부활시켰다.
    • 광주 미국문화원 1층 도서관 진열장에서 시한폭탄이 발견되었다.
    • 경북 영양군에서 주부 변월수가 자신을 성폭행한 강간범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변월수 사건)
  • 2월 27일
    • 정부는 시국사범 1,731명을 포함한 7,234명을 복권했다.
    • 원로 체육인 33명은 체육민주화와 자율화를 촉구하라고 성명을 냈다.
    • 현대엔진은 노동자들의 농성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 조치를 내렸다.
    • 현대사회연구소는 연구소 운영 민주화를 요구한 노조위원장 이희덕 등 연구원 26명을 집단 해고하였다.
    • 맥스테크 파업이 노사 간 협상으로 55일 만에 종식되었다.
    • 이라크 공군기가 이란 최대 정유소를 폭격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초수전대 라이브맨>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28일 - 헝가리 라이코무용단이 미수교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했다.
  • 2월 29일 - 서울고법은 부천서 성고문사건 가해자 문귀동 경장을 인천지법에 재판회부하도록 결정하였다.

3.1.3. 3월

  • 3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북한 동포들의 올림픽 참가를 호소하였다.
    • '국어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이 결성되었다.
  • 3월 2일 - 이란 공군은 이라크의 도시들을 3일째 무차별 폭격했다.
  • 3월 5일
    • 소련 정부는 국영기업에 경쟁을 보장하고 주식 발행을 허가하는 '사기업 장려법안'을 마련하였다.
    • 티베트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반중시위로 유혈폭동이 발생했다.
  • 3월 6일 - '민중의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 3월 8일
    • '완전소선거구제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 종전의 청보 핀토스가 '태평양 돌핀스'로 출범되었다.
  • 3월 12일 -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가 일본 전역에 개봉되었다.
  • 3월 14일 - 중-월 양국군이 난사 군도에서 무력충돌을 벌였다.
  • 3월 15일
    • 연합통신경인일보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헝가리 시민들이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 3월 16일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 지중해의 양국 함대의 동결을 제의했다.
  • 3월 17일
    • 서울대 김수태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간 이식수술에 성공하였다.
    • 극동석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18일
    • 경향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일본 최초의 돔경기장인 '도쿄돔'이 구 고라쿠엔 구장 터에 개장되었다.
  • 3월 21일
    • 검찰은 새마을본부 및 전경환 전 회장에 대한 집중수사에 착수하였다.
    • 안기부는 '반미청년회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여 장원섭, 윤은주 등 관련자 7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서울시경은 전대협 의장 권한대행 우상호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3월 22일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제2창업'을 선언하였다.
  • 3월 24일
    • 헝가리 측이 동구권 국가 중 처음으로 서울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다.
    • 한국노총 화학노련의 '고무/타이어' 부문이 독립하여 전국고무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고무노련)이 출범되었다.
  • 3월 25일 -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비산종합상가 3층에 소재한 봉제공장 '그린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공장 내 기숙사에서 잠자던 여성 노동자 20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6].
  • 3월 29일
    •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는 <김일성종합대학 청년학생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에서 '남북한 국토종단 순례 대행진' 및 '민족 단결을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공동 체육대회'를 제안하였다.
    • 한겨레민주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 맥안산업이 맥도날드 한국 1호점을 서울 압구정에 개점하였다.
    • 한양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31일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 구속되었다.
    • 문공부는 월북작가 정지용과 김기림의 작품들을 공식 해금하였다.

3.1.4. 4월

  • 4월 1일
    • 노태우 정부는 5.18 광주항쟁의 성격을 "광주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규정하며 유감을 표했다.
    • 동양고압고무, 빙그레, 두산유리 노동자들이 노동쟁의를 벌였다.
    •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노동자 1만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다.
    • MBC 표준FM의 간판프로 <여성살롱>이 <여성시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4월 2일
    • 외무부는 1989년 1월 1일을 기해 해외관광여행자의 연령제한을 철폐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민정당은 '농어촌의료보험 개선대책'을 마련하였다.
  • 4월 4일
    • 검찰은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의 재산 해외도피 수사에 착수했다.
    • 북한 김일성종합대 학생회는 '6.10 남북학생회담 실무회담'을 수락하였다.
  • 4월 6일 - '전국언론노동조합협의회(이하 언노협)'가 결성되었다.
  • 4월 7일
    •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
    • 한국인삼연초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10일
    • 서대협은 해소를 결의하고 '학간 연대조직 재편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조직건설 과정에서 학생회 간에 이견이 생겨 서건추론과 서대협강화론, 서총협론 등으로 분리되었다.
    •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성남지역제화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11일
    • KNCC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선언의 논란에 대하여>라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산호세에서 게임 개발자 회의(GDC)가 처음 열렸다.
  • 4월 12일 - '서울지역대학생연합 건설 추진위원회(이하 서건추)'가 결성되었다.
  • 4월 13일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동생인 전경환의 비리 사태와 관련하여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 및 민정당 명예총재 등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
    • 서울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14일
    • '반민정당총선투쟁연합(이하 총투련)'이 결성되었다.
    • 미국, 소련,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파키스탄 4국 외무장관들은 '아프가니스탄 국제평화협정'에 조인하였다.
  • 4월 16일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민주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였다.
    • '진주지역민주노동조합연합회(이하 진민노련)'가 결성되었다.
    • 한국사회연구소가 세워졌다.
  • 4월 18일 - 한국방송인단체총연맹은 총선에 즈음하여 공정방송, 외부간섭 배제, 자율저해 제도 혁파 등을 결의하였다.
  • 4월 19일 - 한국중공업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 4월 20일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 7백여 명이 노조 신고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거제군청을 점거해 철야농성을 벌였다.
    • 중공 정부는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경제계획을 발표하였다.
  • 4월 22일 - 이날 건국대에서 전국 농민/학생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농축산물 수입저지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 4월 23일 -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설립되었다.
  • 4월 24일 - '성남민주노조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4월 25일 - 제주MBC가 정파시간 도중 13대 총선 제주시 개표결과를 사전방송하고 말았다. 이에 방송사 측은 리허설 중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 4월 26일 -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전국 각지에서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민정당은 87석으로 제1당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해 1950년 총선 이후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 4월 27일
    • 대우중공업 노조가 임금교섭 결렬을 이유로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였다.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림춘추 북한 부주석이 사망했다.
  • 4월 28일
    • 서총련준비위는 '조국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연합(이하 조통특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김세진-이재호 열사 4주기 추모식 및 추모사업회 발족식'이 서울대 관악캠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 노동부는 서울인쇄노조에 신고필증을 부여하였다.
  • 4월 29일 - 대한무역진흥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30일 - 서울 구로공단 4개 업체 노조가 쟁의발생을 신고함에 따라 각 사업장에까지 파업이 확산되었다.

3.1.5. 5월

  • 5월 2일
    • 서울 및 4개 직할시 산하 총 50개구가 개정 지자체법 시행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로 격상되었다.
    • 서울 종로구청은 청피노조에 설립 신고필증을 부여하였다. 이로써 전태일 열사의 후예인 청피노조는 탄생 18년, 투쟁 4년만에 합법화를 쟁취하였다.
  • 5월 3일
    • 안기부는 '반제반파쇼한국민중전선(KPF) 사건'을 발표하며 관련자인 송운학 등 3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서울지역제화공노동조합이 신고필증을 쟁취하였다.
    • 고려무역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4일 - 전경련 산하 경제사회개발원이 발족되었다.
  • 5월 6일 - 현대건설 노조 추진위원장 서정의가 사측에 의해 전남 목포로 청부납치당했다(서정의 납치 사건).
  • 5월 7일 - 한국에너지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8일 - 폴란드 레닌조선소 노조가 자유노조를 인정하라고 촉구하며 파업 및 시위를 벌였다.
  • 5월 11일
    • 한덕개발이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권역에 '서울랜드'을 개장하였다.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4세 미국 국방부 차관은 오자복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측의 방위비 분담 증액, 동북아 지역 미군 항공기의 정비용역 제공을 요구했다.
  • 5월 12일
    • 가톨릭 주간지 <평화신문>이 창간되었다.
    • 매일경제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3일
    • 대통령 자문기구 '행정개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서대협의 후신으로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이하 서총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 서울대학교 강사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사회운동가 고정희가 정신병원에서 의문사를 당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사건 13년 뒤인 2001년에 사건 진정을 기각하였다.
    • 중앙관악관현악단이 설립되었다.
  • 5월 14일 - '개천예술탑건립사업회'가 발족되었다.
  • 5월 15일
    • 아프간 주둔 중이던 소련군이 철수를 개시하였다.
    • 진보성향 종합일간지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다.
    • 서울대 화학과생 조성만이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확성기로 양심수 즉각석방 및 미군 철수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할복 후 투신자살했다.
  • 5월 16일 - '광주학살·부정비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울지역 민주투쟁연합(이하 서민투련)'가 결성되었다.
  • 5월 18일
    • 민주당 등 야3당 총재들이 정국운영 5개항에 합의하였다.
    •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5월공동투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한국경제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9일
    • 조성만 열사의 장례식이 서울 경희궁공원에서 '민주통일장'으로 거행되었다.
    • 현대건설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20일
    • KBS와 한국동력자원연구소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서총련 산하 애국청년결사대 소속학생 7명이 미국 대사관에 사제폭발물 4발을 투척했다가 전원 검거되었다.
  • 5월 21일 - '현대그룹노동조합연합회(이하 현노련)'가 결성되었다.
  • 5월 24일
    • 법무부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사건으로 17년을 복역중인 서준식의 석방을 결정하였다.
    • 치안본부는 '서울올림픽 88경비단'을 창설하였다.
  • 5월 25일 - 노동부는 전택노련에 신고필증을 부여해 합법 노동조합으로 격상시켰다.
  • 5월 26일
    • 가농 등 8개 농민단체 회원 3천여 명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농축산물 수입반대 농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 노동부는 경기 부천시 아연도금공장에서 카드뮴 중독 사실을 국내 최초로 확인하였다.
    • 한국방송촬영인연합회가 설립되었다.
  • 5월 27일
    • 서울고법은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박형규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남북공동 개최가 실현되지 않을 시 서울올림픽에 불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 5월 28일
    • 국립중앙도서관이 서울 남산을 떠나 서초구 반포동 새 건물로 이전하였다.
    • 노태우 대통령은 야 3당 총재와 영수회담을 열었다.
    • 기존의 정법회와 청년변호사회가 통합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결성되었다.
    • 조용필 10집이 발매되었다.
  • 5월 29일
    • 헝가리 통상사절단 40명이 동구권 국가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 서울시내 85개 노조가 모여 '서울지역노조협의회(이하 서노협)'을 결성했다.
    • 전국 각계각층 67개 운동단체가 남북 공동 올림픽과 6·10 남북학생회담의 성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5월 30일
    • 현대정공 노조원들이 정몽구 회장 등 간부들을 감금한 채 4백일 째 농성을 벌였다.
    • 한국과학기술원 노조가 인사제도 개선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다.
    • 현대차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이 파키스탄, 말레이 등 3개국을 순방했다.
  • 5월 31일 - 서총련 산하기구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조통특위)'가 결성되었다.

3.1.6. 6월

  • 6월 1일
    • 서울지하철노조가 쟁의발생 신고를 냈다.
    • 서울올림픽 선수촌 및 기자촌이 준공되었다.
    • 광주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3일
    • 검찰은 <중간계층의 구성과 민주변혁에서의 지위>라는 논문을 쓴 서관모 교수를 소환하였다.
    • 서노협·마창노련·사무금융노련 등이 중심이 되어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 서총련은 '제1회 서울지역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을 경희대 서울캠에서 개최하였다.
  • 6월 4일 -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6월 6일 - 필리핀 상원은 핵무기 반입 및 핵 적재 함정의 기항 금지를 골자로 한 반핵 법안을 통과시켰다.
  • 6월 7일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이하 전국노운협)'가 결성되었다.
  • 6월 8일
    • 야 3당 총재들은 '6.10 회담 투쟁'과 관련하여 정부는 학생과 대화하고 학생은 회담 연기를 촉구하도록 하는 등의 공동 발표문 6개항에 합의하였다.
    • 중공 베이징 대학생들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위해 천안문 앞에 집결하고자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좌절되었다.
  • 6월 9일
    • 오후 10시에 연세대 신촌캠에서 ‘6·10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한 백만학도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교통개발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0일
    • 연세대 신촌캠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전국 2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6·10 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열어 판문점까지 나아가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150여명이 부상당하고 1천여명이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남북학생회담은 무산되었다.
    • 포철이 국민주 1호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다.
    • '부산지역노동조합연합회(이하 부노협)'가 결성되었다.
    • 최광수 외무부 장관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대회 및 불가침 협정 후 구체적 군축협상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였다.
    • 삼성신용카드가 카드 브랜드명을 '위너스카드'로 확정하였다.
    • 한국사회연구소가 기관지 <동향과전망>을 창간하였다.
  • 6월 11일 - 문공부는 초조본 대반야바라밀경 249권을 국보 제241호로 지정하였다.
  • 6월 14일 - 고려대 등 3개 대학생 1천 2백여 명이 파주 임진각에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염원제'를 거행하였다.
  • 6월 15일
    • 전국 2백여 명의 법관들이 대법원 전면 개편을 주장하는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법관 서명파동)
    • 서울민사지법 소장법관 102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민통련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준비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사월혁명연구소가 발족되었다.
    • 청문회제도 신설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제정되었다.
    • <제일경제신문>이 창간되었다.
  • 6월 16일 - 10개 학술단체는 검찰의 서관모 교수 소환에 대해 학문, 사상, 비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6월 17일 - 국회는 광주특위 등 7개 특위구성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6월 18일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인노협)'가 결성되었다.
    • 한국교육개발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0일 - 한국기업평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1일 - 서울올림픽조직위는 올림픽 공식가요 <손에 손잡고>를 발표하였다.
  • 6월 24일 - 서울대생 1백여 명이 농촌활동 보조금을 요구하며 총장실에 난입하였다.
  • 6월 25일 - '성남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성남노협)'가 결성되었다.
  • 6월 27일 - 여야가 합의해서 5공비리 특별위원회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 6월 28일 - 북한의 김일성이 몽골을 공식 방문하였다.
  • 6월 30일
    • 대림산업이 건설 중이던 이란 칸간가스정제소 건설현장에 서 이라크군 전투기의 공습으로 현지에서 작업 중이던 한국인 건설노동자 13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당했다.
    •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등 양심수 46명이 가석방되었다.
    • 연세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3.1.7. 7월

  • 7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새 대법원장에 정기승, 감사원장에 김영준을 내정하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 사법연수원생 181명과 민변은 정기승 대법원장 지명 반대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국이동통신이 국내 최초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7월 2일
    • 국회는 노태우 대통령의 정기승 대법원장 내정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 협성계공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 작가회의 회장단은 기자회견에서 '남북작가회담'을 제의하였다.
    • 소련 공산당은 특별 당 대회에서 모든 간부의 10년 임기제를 채택하였다.
  • 7월 3일
    • 이란항공 655편 A300기가 페르시아 만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미군 함정 빈센스 함의 포격으로 격추되어 탑승자 290명이 전원 사망했다.(USS 빈센스 함 사건)
    • 북한 조선로동당 연락사무소장 김춘삼이 사망했다.
  • 7월 4일
    • 50개 재야 및 종교단체, 시민, 학생 등이 경찰의 보호/허용 하에 '통일염원 범국민 평화 대행진'을 2시간 동안 개최했다.
    • 작가회의는 7.4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을 맞이해 남북작가회담을 제안하였다.
    • 에너지경제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5일 - 일본 리쿠르트사 미공개 주식을 나카소네 전 총리 등의 비서에게 양도한 사실이 발각되었다.(리쿠르트 사건)
  • 7월 7일
  • 7월 8일 -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을 '중공' 대신 '중국'으로 공식 호칭키로 결정하였다.
  • 7월 10일 - 한국선박안전기술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11일
    • 부일노조가 편집국장 추천제를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재래식 무기 감축의 장벽 제거를 위한 전 유럽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 동아방송 회복준비위는 문공부에 (재)동아방송 설립허가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 북한 조평통은 남한측의 7.7선언을 거부하고 남북연석회의를 주장했다.
  • 7월 13일
    • 아산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설립되었다.
    • 갤럽조사연구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15일
  • 7월 16일
    • '연구전문기술직노동조합협의회(이하 연전노협)'이 결성되었다.
    • 정우엔지니어링,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7월 17일 - 제40주년 제헌절 기념식이 사상 첫 국회 주관으로 치뤄졌다.
  • 7월 18일 - 매일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19일
    • 문공부는 벽초 홍명희 등 북한정권 협력문인 5명을 뺀 나머지 월북문인 1백여 명의 해방 전 작품들을 해금했다.
    • 전국 축협 조합원 3천여 명은 여의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를 벌였다.
    • '대한민국 팔각회'가 설립되었다.
  • 7월 20일
    •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협의회(이하 조통협)'가 결성되었다.
    • <경기교육신보>가 창간되었다.
  • 7월 22일
    • 서건추는 해체와 동시에 서총련과의 통합을 결의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안양지구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23일
    • 문송면의 죽음을 계기로 원진레이온 산재 피해자들이 '원진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일본 교도통신은 박철언 보좌관이 6월에 노태우 대통령의 특사로 소련과 중국을 방문했음을 보도했다.
  • 7월 25일
    • KBS노조는 방송민주화와 정구호 사장 등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 버마의 군사독재자 우 네 윈 장군이 집권 26년만에 총리직에서 사퇴하고 군부 강경파인 세인 르 윈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 7월 26일
    • 전국 철도기관사 1천 4백여 명이 부산행 직통열차 대전 교대, 시간외 수당 근로기준법 적용, 근로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7.26 철도기관사 총파업)
    •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의장이 김재순 국회의장에게 남북연석회의 개최 및 불가침선언, 올림픽문제 토의를 제안하였다.
  • 7월 29일 - 국회 5공특위는 일해재단 등 30건을 1차 조사대상으로 확정하였다.
  • 7월 30일 -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의장이 미국 의회에 '평화협정회의'를 제안하였다.

3.1.8. 8월

  • 8월 중: 서울문화사가 <우먼센스>를 창간하였다.
  • 8월 1일
    • 문익환 등 각계 인사 1,014명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 취지문’을 발표했다.
    • 전국도시노점상협의회 회원과 학생 1천 5백여 명은 고려대에서 '노점상 탄압 규탄대회'를 개최되었다.
    • 연합철강 부산공장 노동자 2천여 명은 동국제강의 경영권 포기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 서울경제신문이 8년만에 복간되었다.
  • 8월 2일
    • 전대협은 국토순례대행진 및 8.15 남북학생회담을 강행키로 결정했다.
    • 서울신문노조 집행부 등 50명이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다.
  • 8월 3일
    •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가 결성되었다.
    • '전국대학강사협의회(이하 전강협)'가 결성되었다.
    • 방송위원회는 새 위원장직에 여해 강원용 목사를 선출하였다.
    • 버마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날로 거세지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에 나섰다.
    • 한국광고영상제작사협회가 설립되었다.
  • 8월 4일 - 선반공 소창영이 MBC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 스튜디오에 난입해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쳤다.(내귀에 도청장치 사건)
  • 8월 5일
    •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직무대리 오홍근 기자가 출근 도중 괴한 3명에 의해 피습당했다.(오홍근 테러 사건)
    •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되었다.
    • 한국청소년공연예술진흥회가 세워졌다.
    • 전북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6일
    • 치안본부는 전대협의 8.15 남북학생회담 추진을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원천 봉쇄할 것을 천명하였다.
    • 울산지역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이하 부산노련)가 결성되었다.
    • 가수 조용필이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을 열었다.
  • 8월 7일 - '제1기 통일선봉대 발대식'이 고려대 안암캠에서 전대협 주최로 개최되었다.
  • 8월 8일 - 버마 전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군부투쟁이 일어났다. 특히 랭군에서는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가두 투쟁을 벌였다(8888 항쟁).
  • 8월 9일
    • 캐나다인 NHL 선수 웨인 그레츠키에드먼턴 오일러스에서 LA 킹스로 이적되었다.
    • 제30회 서울대 총연극회 정기공연에서 상연된 민중극 <통일밥> 작가 주인석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 전대협 주최 '국토순례대행진 출정식'이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었다.
  • 8월 10일
    •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소련 등 20개 미수교국과의 국제자동전화를 개통한다고 밝혔다.
    • '삼청교육대 진상규명 전국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11일
    • 전국 22개 대학가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이 개최되었다.
    • 언노협, 기협, 중앙일보 노조는 오홍근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테러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배후규명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8월 12일
    • 국회 광주특위는 최규하 전 대통령 증언채택안을 표결로 채택하였다.
    • 전국 22개대생 6천여 명이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 및 저지규탄대회 후 가두시위를 벌였다.
    • 대한변협은 남북학생회담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 조선대 교수협이 이돈명 변호사를 새 총장으로 선출하였다.
    • 종전의 서울항공이 '아시아나항공'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안산지구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르 윈 장군이 집권 17일만에 버마 총리직에서 하야하였다.
  • 8월 13일
    •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8.15 남북학생회담과 관련해 폭력행위를 즉각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업계 최초로 엑셀 147대를 일본에 수출하였다.
    • '전대협 2기 발족식'이 연세대 신촌캠 노천극장에서 개최되었다.
  • 8월 14일
    • 프로권투선수 문성길이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태국의 카오코 갤럭시를 꺾어 챔피언으로 등극하였다.
    • 20세기폭스코리아가 설립되었다.
  • 8월 15일
    • 노태우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남북한 최고 책임자 회담'을 제의하였다.
    • 서울시는 올림픽 기간을 전후해 집회금지 구역 '평화구역'을 37개동을 제외한 전 지역으로 확정하였다.
    • 서울지검 특수1부는 최열곤 서울시교육감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하였다.
    • 대학생 6천여 명이 연세대 신촌캠에서 '8.15 민족해방제 및 출정식'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봉쇄로 학생 1,539명이 연행되었다.
  • 8월 16일
    • 전대협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원천봉쇄 규탄대회 및 통일염원제’를 개최하였다.
    •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이 개최되었다.
  • 8월 17일
    • 정부는 서울 올림픽 관련 시설과 성화봉송 루트가 포함된 전국 76개시 89개군을 '올림픽 평화지역'으로 선포하였다.
    • 행정개혁위는 국가원로자문위 및 사회정화위 폐지안을 제출하였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뒤편에 '국제방송센터(IBC)'가 문을 열었다.
    • 재야문화운동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해 난동을 벌였다.(우리마당 피습사건)
    • 전교협은 최열곤 서울시교육감 구속과 관련하여 청렴한 교육자 출신 교육감 선출 등 4개항을 촉구하였다.
    • 동아컴퓨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경기일보>가 창간되었다.
  • 8월 18일
    • 한국예술실연자단체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북한측은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한 최고책임자 회담 제의에 관해 반대입장을 밝혔다.
  • 8월 19일 - 마웅 마웅 법무장관이 새 버마 대통령 겸 당 의장직에 선출되었다.
  • 8월 20일
    • 서울오페라단이 창단되었다.
    • 이란-이라크 양국이 휴전협정을 발효시킴에 따라 8년간에 걸친 긴 전쟁이 끝났다.
  • 8월 21일
    • 서울올림픽 국제학술회의가 <후기산업시대의 세계공동체>를 주제로 하여 개막되었다.
    • 민가협은 서울 대학로에서 '양심수 전원석방 촉구 시민가요제'를 개최하였다.
    • '전북노동조합연합회(이하 전북노련)'가 결성되었다.
  • 8월 23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가 스위스 글리온에서 개최되었다.
  • 8월 25일
    • MBC노조가 공정방송의 제도적 보장을 요구하며 한국 방송사상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 한국노동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미국 유명 록밴드 메탈리카가 네 번째 정규 앨범 <...And Justice for All>을 발매했다.
  • 8월 27일 - 서울올림픽 성화가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 8월 29일 - 제52차 국제PEN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3.1.9. 9월

  • 9월 1일
    • 1988 서울올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이 개최되었다.
    • <중도일보>가 15년만에 복간되었다.
  • 9월 2일
    • 정부는 일반 공산권 자료를 전부 공개 후 <로동신문>과 영상자료 등은 제한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
    • 경찰은 자본론을 출간한 '이론과실천' 대표 김태경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전국민중민주운동연합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9월 3일
    • 북한측은 1988 서울 올림픽에 불참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 서울 용산에서 한 임산부가 미군 10대 자녀들에게 구타당해 유산되었다.
    • '올림픽을 빙자한 민중운동 탄압 규탄대회'가 개최되었다.
    • 한국역사연구회가 설립되었다.
    • '나라사랑청년회(이하 나사청)'가 결성되었다.
  • 9월 6일
    • 한국생산성본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연방제 논의를 전제로 남북정상회담 용의를 밝혔다.
  • 9월 7일 - 서울 역삼동 무역센터가 문을 열었다.
  • 9월 8일
    • 전남 여수지역 국민학교 교사 21명이 국민학교 최초로 교사협의회를 발족하였다.
    • '양심수 석방을 위한 서울시민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 북한의 김일성은 고려연방제 통일안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이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미군 철수와 남북 상호불가침 체결이 들어 있었다.
  • 9월 9일
    • 서총련 서부지구 소속 대학생 40여 명이 한미행정협정 폐기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정문연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2권을 발간하였다.
  • 9월 10일
    •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은 한미행정협정의 전면개정을 정부와 각 정당에 발송하였다.
    • 종전의 반공협, 공민협, 공해추방운동청년협의회 등 3개 단체가 통합하여 '공해추방시민운동연합(이하 공추연)'이 결성되었다.
    • '전두환-이순자 구속 처단 및 평화선 철폐 전국대회'가 개최되었다.
    • 전국 대학생들은 연세대에서 '올림픽 단독개최 및 독재 연장음모 분쇄를 위한 수도권 청년학생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9월 11일
    • 종전의 인천국민운동본부가 발전적 해체되어 '인천지역민족민주운동연합'으로 새로 출범하였다.
    •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30만 명이 모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9월 12일
    • 대한항공 906편이 소련 영공을 처음 통과하였다.
    • '전국화물운송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국제야외조각전'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되었다.
    • 신애전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13일
    • 민통련은 단독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전국수세폐지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9월 14일
    • 정문연이 '퇴계학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 '진보정당 건설 준비연합'이 결성되었다.
    • '영어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이 결성되었다.
  • 9월 15일
    • 헌법재판소가 발족되었다.
    • '용인민주청년회'가 결성되었다.
  • 9월 16일
    •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소속 업자 80여 명이 미국 UIP 직배에 반대하며 항의농성을 벌였다.
    • 한국기계공업진흥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9월 17일
    •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서총련 소속 대학생 1백여 명은 단독올림픽 반대 전단을 살포하였다.
    • 전국 도시노점상 3천여 명은 경희대에서 '노점상 올림픽 문화제'를 열어 노점상 강제단속 중지와 빈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였다.
    • 전국화물운송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다.
  • 9월 18일
    • 역도선수 전병관이 서울올림픽 52kg 결승에서 은메달을 땄다.
    • 소 마웅 장군이 이끄는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가 쿠데타를 일으켜 버마 정부의 전권을 장악했다.
  • 9월 19일
    • 영화감독 50여 명이 미국 UIP의 영화 직배에 항의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쇼와 일본 덴노가 각혈로 병세가 중해지기 시작했다.
  • 9월 20일 - 레슬링선수 안대현이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kg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 9월 21일
    • 레슬링선수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레슬링선수 이재석이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2kg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합의부는 강간범의 혀를 깨문 변월수 여인에게 징역 6개월 및 집유 1년을 선고했다.
    • 소 마웅 SLORC 위원장이 버마의 새 수상으로 취임하였다.
  • 9월 22일
    • 권투선수 변정일이 불가리아 선수 흐리스토프와의 서울올림픽 복싱 2회전에서 편파판정으로 탈락했다.
    • 세계복싱연맹은 변정일의 패배에 대한 한국팀의 제소신청을 기각했다.
    • 여연은 성폭행범 혀를 깨문 변 여인의 유죄판결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 대한무궁화중앙회가 발족되었다.
  • 9월 23일 - 서울시내 32개 영화관이 미국 UIP 한국지사의 <위험한 정사> 직배에 항의하며 휴관했다.
  • 9월 24일
    • 서울시경은 1987년 4월 통민당 관악지구당 창당방해사건 관련자인 '용팔이' 김용남을 구속하였다.
    • 육상 100m 결승에서 캐나다 벤 존슨이 미국 칼 루이스를 물리치고 9.79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체조선수 박종훈과 역도선수 이형근이 서울올림픽에서 각각 동메달을 땄다.
    • 일본 수영선수 스즈키 다이치가 서울올림픽 남자배영 1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는 아시아인으로서 25년만이다.
    • 미국 수영선수 트로이 델비 등 3명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사자석고상을 훔치다가 경찰에 입건되었다.
    • 미국영화 <위험한 정사>가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 등 6개 영화관에서 개봉되었다. 이는 한국영화 사상 첫 외국영화 직배 사례였다.
    • 버마 정부는 정식 국명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였다.
    • 북한-콜롬비아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9월 25일 - 유도선수 김재엽이 서울올림픽 유도 60kg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9월 26일
    • 유도선수 이경근이 서울올림픽 유도 66kg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미국 NBC는 점증하는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우려해 자사 올림픽 취재팀에게 제복을 입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 9월 27일
    • 캐나다 육상선수 벤 존슨이 100m 경기에서 금지약물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져 기록이 취소되고 금메달이 박탈당했다. 당시 2위를 기록했던 칼 루이스가 금메달을 승계하였다.
    • IOC 선수분과위는 약물복용에 반대하는 <서울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하얏트호텔 석고상을 훔친 미국 선수 3명이 서울 용산경찰서에 출두해 해명하고 사과성명을 냈다.
  • 9월 29일
    •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서울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에서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 레슬링선수 김태우가 서울올림픽 자유형 90kg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민청련 부설 '민족민주운동연구소'가 세워졌다.
  • 9월 30일
    • 양궁선수 김수녕-왕희경-윤영숙이 서울올림픽 개인전 결승에서 각각 금-은-동을 석권하였다.
    • 탁구선수 현정화-양영자 조가 서울올림픽 여자 복식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한국 여자하키 대표팀이 서울올림픽 결승전에서 호주에 0-2로 패해 은메달을 땄다.

3.1.10. 10월

  • 10월
    • '전국노점상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민청련 산하 '동서울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동민청)'가 결성되었다.
    •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이 결성되었다.
  • 10월 1일
    • 한국 양궁 대표팀이 서울올림픽 남녀 단체전 전부 금메달을 석권하였다.
    • 탁구선수 유남규-김기택이 서울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결승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쓸었다.
    • 레슬링선수 한명우가 서울올림픽 자유형 82kg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다.
    • 소련 최고회의는 새 간부회의장에 그로미코 대신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선출하였다.
  • 10월 2일
    • 권투선수 김광선과 박시헌이 서울올림픽 복싱 결승에서 각각 금메달을 땄다.
    • 1988 서울올림픽 폐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한국 선수단이 종합 4위를 달성하여 역대 최고성적을 거두었다.
  • 10월 3일 - 법무부는 개천절을 맞아 공안사범 52명을 포함한 재소자 1,026명을 가석방시켰다.
  • 10월 4일
    • 노태우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남북정상회담 조속개최를 거듭 촉구하였다.
    • 유고슬라비아 서울무역사무소가 개설되었다.
  • 10월 5일 - 피노체트 칠레 대통령이 국민투표에서 반대표 53%를 받아 패배하여 1997년까지의 임기 연장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야당 측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였다.
  • 10월 6일
    • 노동법 개정 노조특위가 전국노운협 노동법개정특위와 통합하여 '88 전국 노동법 개정 투쟁본부(이하 전국투본)'를 결성하였다.
    • 서총련 소속 8개 대학생 23명은 5공 비리 관련자와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정호용 의원 사무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 서울 장애인올림픽 선수촌이 문을 열었다.
  • 10월 7일 - 한국방송광고공사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10월 8일
    • 영등포교도소 재소자 지강헌 등 12명이 충남 공주교도소 이감 도중 호송버스에서 교도관을 찌르고 서울로 도주했다(지강헌 탈주사건).
    • 서울시는 구 양정고 자리에 '손기정공원'을 조성하였다.
  • 10월 9일
    • 서머타임제가 1년 만에 전국에서 일제히 해제되었다.
    • 미국 드라마 <코스비 가족 만세>가 KBS2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10월 10일
    • 광주-전남지역 일간지 <무등일보>가 창간되었다.
    • 한국공업표준협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11일 - 미국과 필리핀은 6개 미군 기지의 사용 대가로 1990~1991년에 5억 달러씩 지불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하였다.
  • 10월 13일 - 대림그룹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14일
    • 정부는 1991년부터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키로 하고 연내에 금리자유화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 광주 전남대와 조선대생 150명이 광주 미국 문화원을 기습 점거하였다.
  • 10월 15일
    • 민통련 등 각 민주단체들은 '광주학살/5공비리 주범 전두환-이순자 구속 처벌을 위한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 1988 서울장애자올림픽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밤 9시 40분경. 지강헌 일당 4명이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 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평양방문 용의 표명에 대해 국보법 선 폐지를 조건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 10월 16일 - 지강헌의 자살과 부하들의 검거로 인질극이 종료되었다.
  • 10월 17일 - '강제징집/삼청교육 사망자 유가족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18일
    • 노태우 대통령이 한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한반도에 화해와 통일을 여는 길>이란 주제로 연설하였다.
    • 한국석유개발공사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10월 19일 - '신애전자 노동조합 탄압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20일 - 노태우-레이건 한미 양국 정상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10월 22일 - 유고 연방의회는 시장경제체제를 대폭 도입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10월 23일 - <가면라이더 BLACK RX>가 일본 MBS에서 첫 전파를 탔다.
  • 10월 25일
    • 주 헝가리 한국대표부가 부다페스트에 개설되었다.
    • 삼청투위 측은 삼청교육대 진상규명을 위한 공정조사기구 구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국철 안산선 금정역 ~ 안산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26일 - 경북대 등 학생 10명이 대구지검 공안검사실, 대구 미국문화원 등 4곳에서 시위 및 점거농성을 벌였다.
  • 10월 27일
    • 정부는 납/월북 예술인 작품 중 1948년 8월 15일 이전에 낸 순수예술작품에 한해 해금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는 10.27 법난 8주년을 맞이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10월 28일
    • 전국 각 대학별로 '광주학살/5공비리 주범 전두환-이순자 구속처벌 특별위원회'가 속속 결성되었다.
    • '부정비리 주범 전/이 구속처벌 및 광주학살 5적 처단을 위한 서울지역 학생투쟁연합(이하 학투련)'이 결성되었다. 산하에 '전/이 체포결사대'도 같이 구성되었다.
  • 10월 29일
    • 교통부는 김포공항의 심야비행을 전면 금지시켰다.
    • 세가는 16비트 게임기 '메가드라이브'를 일본에 발매하였다.
  • 10월 30일 - '전국농민단체협의회(이하 전농협)'가 결성되었다.

3.1.11. 11월

  • 11월 중 - 도서출판 서화가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를 창간하였다.
  • 11월 1일 - 동자부는 2일 0시를 기해 석유류 제품 가격을 4.7%로 내리겠다고 발표하였다.
  • 11월 2일
    • 국회 5공특위는 일해재단 관련 비리 조사를 위한 1차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회 청문회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 전대협은 '제1회 전국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을 전남대 5.18 광장에서 개최하였다.
  • 11월 3일
    • 노태우 대통령이 말레이 등 아-태 4개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전국 대학가에서 학생의 날을 맞이해 '전두환-이순자 구속을 위한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11월 4일
    • '외국기업노동조합협의회 결성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1월 5일
    • 전국 15개 도시에서 '전-이 구속을 위한 궐기대회'가 동시 개최되었다.
    •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가 결성되었다.
  • 11월 8일 - 미국 공화당 후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41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11월 10일
    •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이 결성되었다.
    • 박세길이 쓴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권이 세상에 나왔다.
  • 11월 12일
    • 민통련은 각 민주단체들과 함께 '반민주악법 개폐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형 전기환, 사촌동생 전우환, 동서 홍순두 등 세 명을 구속하였다.
    • '구로역사연구소'가 결성되었다.
  • 11월 13일 - 전국투본은 노동자 5만여 명이 연세대 노천극장에 모인 가운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폐막 뒤 여의도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 11월 15일 - 아라파트 PLO 의장이 팔레스타인독립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 멸망노선 대신 생존권을 인정한다는 공존공생의 의지를 밝혔다.
  • 11월 17일
    • 전농협은 여의도광장에서 '농축산물 수입개방 저지 및 제값 받기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 6백여 명이 구내식당에서 작업을 거부하고 농성을 벌였다.
  • 11월 18일 - 국회 광주특위는 청문회를 열고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발포명령자 여부에 대해 추궁하였다.
  • 11월 19일
    • 서울 대학로에서 '전-이 구속을 위한 제2차 서울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 유고 최대민족인 세르비아인 130만 명이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민족차별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11월 20일 - 전교협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민주교육법 쟁취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21일 - 국회 문공위는 1980년 언론사태 진상규명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 11월 22일 - <전북도민일보>가 창간되었다.
  • 11월 23일
    •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중 일어났던 온갖 비리를 시인하며 사과 및 재산 전액 국가헌납 의사를 표명한 후 백담사로 은둔하게 되었다.
    • 소련령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두 공화국에서 130만명의 군중시위로 인종분규가 확산되었다.
  • 11월 24일
    • 비 공산주의계 인사인 네메트 미클로시가 헝가리 공산정권 총리로 취임하였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수원지구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1월 25일
    • 서울 여의도에서 상경 농민 1만여 명이 농협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였다.
    •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성명과 기도문을 채택하였다.
    • 일본 도쿄 아다치 구 아야세에서 불량학생들이 여고생 후루타 준코를 납치했다.
    • 고단샤 월간 애프터눈 2호에서 <오! 나의 여신님>이 처음으로 연재되었다.
  • 11월 26일
    • 서총련 소속 학생 42명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처벌을 요구하며 민정당 연수원에서 기습 농성을 벌였다.
    • 국내 원달러 환율이 1달러: 600원 대에 진입했다. 3저호황의 정점이었다.
    • 종전의 언노협이 발전적 해체되어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하 언노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 11월 27일: 종전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개편되어 MBC에서 새로이 전파를 탔다.
  • 11월 28일: 경기교육신보가 <기호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3.1.12. 12월

  • 12월 1일
    • 정부와 한은이 '금리자유화 계획'을 발표하였다.
    •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이하 극협)와 민족건축인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소련 최고회의는 선거법 개정을 골자로 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정치개혁안을 승인했다.
    • 평화신문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12월 2일 - 주간지 <여성신문>이 창간되었다.
  • 12월 4일 -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이하 통불협)가 결성되었다.
  • 12월 6일 - 민교협 소속 교수 50명이 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12월 7일 - 소련령 에스토니아에서 그동안 사용금지된 에스토니아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12월 10일
    • 전국건설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순복음교회 계열 종합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 한겨레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2월 11일 - '외국기업노동조합협의회(이하 외노협)'가 결성되었다.
  • 12월 12일
    • 국회 문공위는 허문도, 이진희, 이원홍 등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언론청문회를 속개하였다.
    • 현중노조가 수당신설 인상 등 4개항 결렬을 이유로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제8기 4차 회의에서 연형묵을 새 총리로 승인했다.
  • 12월 14일 - KIST 등 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들이 연전노협의 주도 하에 처우 개선 및 연구 자율성 보장 등을 요구하며 연대파업을 벌였다.
  • 12월 15일
    • 종전의 계간미술이 <월간미술>로 바뀌었다.
    • 매일경제신문사가 국내 최초의 전자신문 'MEET' 서비스를 실시하였다.
  • 12월 16일 - 강영훈 총리서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 12월 17일 - 병원노협의 후신인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이하 병원노련)'이 결성되었다.
  • 12월 19일
    • 대한광업진흥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가 34년만에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국경문제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 12월 21일 - 프랑크푸르트발 디트로이트행 팬암 103편 B747–121기가 영국 스코틀랜드 로카비 상공에서 공중폭발로 탑승자 259명 전원을 비롯해 총 270명이 숨졌다.(팬암 103편 폭파 사건)
  • 12월 22일 - 서울문화사가 주간 소년만화잡지 <아이큐 점프>를 창간하였다.
  • 12월 23일
    •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하 민예총)'이 결성되었다.
    • 아시아나항공이 국내선 취항을 개시하였다.
  • 12월 26일
    • 문공부는 '백제문화권 정비사업계획'을 발표하였다.
    •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북한준비위 및 조선학생위가 축전 초청 관련 남북학생회담을 제의하였다.
  • 12월 28일
    • 노태우 대통령은 불법시위, 각종 치안사범, 노사분규 등에 대해 공권력을 엄중 행사하도록 지시했다.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이하 경기노련)'가 결성되었다.
  • 12월 30일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상공부에 북한방문서를 제출하였다.
  • 12월 31일
    • 상공부는 1989년 1월부로 농산물 등 14개 품목 등 22개 수입감시 품목들의 수입을 허용하면서 '수입 감시제도'를 없애기로 했다.
    • 방송문화진흥회가 발족되었다.

3.1.13. 일자 불명

3.2. 가상

4. 탄생

호돌이 세대들
일본인의 경우, 1927년부터 금년도까지 62년간 출생한 사람들은 모두 쇼와 세대 취급을 받는다.[10]

4.1. 실존 인물

4.2. 가상 인물


일자 불명

5. 사망

5.1. 실존 인물

5.1.1. 1월

5.1.2. 2월

5.1.3. 3월

5.1.4. 4월

5.1.5. 5월

5.1.6. 6월

5.1.7. 7월

5.1.8. 8월

5.1.9. 9월

5.1.10. 10월

5.1.11. 11월

5.1.12. 12월

5.1.13. 일자 불명

  • 최정호: 대한민국의 한글 서체 디자이너

5.2. 가상 인물

6. 데뷔

6.1. 배우

6.2. 가수

6.2.1. 한국

6.2.2. 해외

6.3. 예능인

  • 김형진
  • 박미선
  • 손병재
  • 이옥주
  • 이웅호
  • 정진수

6.4. 만화계

  • 강병호
  • 김광성 - <자갈치 아지매>
  • 김미상 - <오렌지샘의 겨울이야기>
  • 김상택 - <경향만평>
  • 김석천
  • 김정진 - 만화광장 정치만평
  • 박재동 - <한겨레그림판>
  • 백상아 - <나>
  • 서정희[20] - <베네치아의 연풍>
  • 서타영 - <저승에서 온 사나이>
  • 안수길 - <판소리 소녀경>
  • 장승태 - <무등만평>, <무돌이>
  • 주완수 - <보통고릴라>
  • 황재모 - <어느 개인 날 아침>

6.5. 스포츠

  • 농구
    • 강을준
    • 게리 그랜트
    • 그랜트 롱
    • 대니 매닝
    • 댄 멀리
    • 로니 세이컬리
    • 로드 스트릭랜드
    • 릭 스미츠
    • 미치 리치몬드
    • 버논 맥스웰
    • 브라이언 쇼
    • 비니 델 네그로
    • 앤드류 랭
    • 앤소니 메이슨
    • 에이버리 존슨
    • 윌 퍼듀
    • 이호근
    • 존 스탁스
    • 하비 그랜트
    • 허시 호킨스
    • 허재

7. 은퇴

7.1. 스포츠

8. 히트작

8.1. 영화

  • 국산/수입
    • 접시꽃 당신
    • 마지막 황제
    • 시네마 천국

8.2. 드라마

  • 인간시장
  • 순심이
  • 조선왕조 500년 - 인현왕후
  • 모래성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8.3. 가요

  • 한국
    • 강애리자 - 분홍 립스틱
    • 김동환 - 묻어버린 아픔
    • 김완선 -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 김종찬 - 사랑이 저만치 가네, 토요일은 밤이 좋아
    • 김학래 - 사랑하면 안 되나
    • 김현식 - 언제나 그대 내 곁에
    • 동물원 - 거리에서, 변해가네
    • 민해경 - 그대 모습은 장미
    • 바다새 - 사랑하고 싶어요
    • 박남정 - 아 바람이여
    • 석미경 - 물안개
    • 소리새 - 그대 그리고 나
    • 소방차 - 어젯밤 이야기, 통화중, 일급비밀
    • 수와 진 - 파초
    • 시인과 촌장 - 가시나무
    • 양수경 - 바라볼 수 없는 그대
    • 여운 - 홀로된 사랑
    • 유열 - 이별이래
    • 유익종 -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 이남이 - 울고 싶어라
    • 이문세 -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 이상은 - 담다디
    • 이선희 - 나 항상 그대를, 사랑이 지는 이 자리
    • 이정석, 조갑경 - 사랑의 대화
    • 이지연 -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난 사랑을 아직 몰라
    • 이치현과 벗님들 - 집시여인
    • 임지훈 - 사랑의 썰물
    • 작품하나 - 난 아직도 널
    • 전영록 - 저녁놀
    • 전인권 -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
    • 정수라 - 환희
    • 조영남 - 화개장터
    • 조용필 -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 조하문 - 이 밤을 다시 한번, 눈 오는 밤
    • 주현미 - 신사동 그 사람
    • 최성수 - 동행, 해후, 기쁜 우리 사랑은
    • 최성원 - 제주도의 푸른 밤
    • 최진희 - 미운 사람
    • 최호섭 - 세월이 가면
    • 코리아나 - 손에 손 잡고
    • 푸른하늘 - 겨울바다
    • 한영애 - 누구 없소
    • 홍수철 - 장밋빛깔 그 입술
    • 핵폭탄과 유도탄들 - 라면과 구공탄
  • 해외
    • George Michael - Faith
    • Guns N’ Roses - Sweet Child O’Mine, Welcome to The Jungle
    • Kylie Minogue - The Locomotion, I Should Be So Lucky
    • Michael Jackson - Man in the Mirror, Smooth Criminal
    • Milli Vanilli - Girl You Know It's True
    • Rick Astley - Together Forever
    • Tiffany - I Saw Him Standing There

8.4. 개그 코너

  • 영구야 영구야 - 유머 일번지
  • 동작그만 - 유머 일번지
  • 청춘을 돌려다오 - 유머 일번지
  • 쓰리랑 부부 - 쇼 비디오 쟈키
  • 시커먼스 - 쇼 비디오 쟈키
  • 최병서의 따따부따 - 일요일밤의 대행진
  • 박미선의 별난 여자 - 일요일밤의 대행진
  • 헬로우 일지매 - 일요일일요일밤에

8.5. 애니메이션

8.6. 베스트셀러

  • 남부군 - 이태 저.
  • 홀로서기 - 서정윤 저.
  •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저.

9. 유행어

  •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나 이 사람, 믿어 주세요 - 노태우
  • 왜 나만 갖고 그래~ - 최병서 (따따부따 中 전두환)
  •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 유전무죄 무전유죄 - 지강헌
  •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증인은 지금 위증을 하고 있어요 - 5공 청문회
  • 영구 없~다/띠리리리리리~ - 심형래 (영구야 영구야)
  • 장사 하루 이틀 하나? - 김형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 - 김미화, 김한국 (쓰리랑 부부)
  • 내일 봐~요/철가방 - 김미화 (쓰리랑 부부)
  • 오~ 신이시여! 우리 로마를 버리시나이까?/셱셱셱! - 최양락 (네로 25시)
  • 골뱅이 하나 추가했어요/너 그렇게 사는 거 아냐~ - 정명재 (네로 25시)
  • 망했다, 망했다 - 장두석, 이봉원 (시커먼스)
  •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빠른 시일 내~에, 믿어, 못 믿어? - 김상호 (미스터 뚱)
  • 아니 이 사람아 뭘 그리 놀라~나/소사 소사 맙소사 - 김보화
  •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 이홍렬 (참깨부부 들깨부부)

10. 최초

10.1. 창간

  • 신문
    • 경기일보
    • 국민일보
    • 기호일보
    • 기독교연합신문
    • 인천일보
    • 평화신문
    • 한겨레신문
    • 한국대학신문
  • 잡지
    • 닌텐도 파워
    • 르네상스
    • 문학과 사회
    • 아이큐 점프
    • 영 챔피언

11. 달력

1월2월3월
12 123456 12345
3456789789101112136789101112
101112131415161415161718192013141516171819
171819202122232122232425262720212223242526
242526272829302829 2728293031
31
4월5월6월
121234567 1234
3456789891011121314567891011
101112131415161516171819202112131415161718
171819202122232223242526272819202122232425
24252627282930293031 2627282930
7월8월9월
12 123456 123
34567897891011121345678910
101112131415161415161718192011121314151617
171819202122232122232425262718192021222324
2425262728293028293031 252627282930
31
10월11월12월
1 12345 123
2345678678910111245678910
91011121314151314151617181911121314151617
161718192021222021222324252618192021222324
2324252627282927282930 25262728293031
3031



[1]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2001년에 중학교에 입학한 세대. 그러나 1988년 1~2월생 중에도 입학 유예자가 있으면 포함됨.[2] 고등학교 등록금 네이버 지식인[3] 이들의 경우 서울의 일반 공립 중학교는 3달에 한번씩 수업료 27만원정도+운영지원비 50000원 내외의 돈을 학교에 지불하고 중학교에 다녔는데 이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는게 3달에 32만원X4=1년에 무려 130만원정도를 학교에 갖다바치고, 3년동안 무려 390만원, 400만원에 달하는 대학 한학기~1년치 등록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중학교에 갖다바친 셈이다. 1988년생 07학번 출생자들이 중학생시절 이것만 생각하면 환장하고 미칠 노릇이다. 1989년생 현재 08학번 세대부터는 의무교육이 적용된 첫 세대이기 때문에 3달에 5만원(1년이면 20만원정도, 중학교 3년이면 60만원 정도)의 운영지원비만 지불하고, 막말로 학교에 돈 갖다바치고 중학교에 다닌 것이다.[4] 취소선을 친 이유는 사람은 누구든지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당장 남들의 고통 탓하지 말고 자신의 앞날부터 생각하자.[5]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면서.[6] 사고 당일 사망자는 19명이었으나 이후 1명의 사망자가 추가됨.[7] 원작 만화판에서는 1982년에 발생한다.[8] 또한, 이 날짜는 AKIRA가 일본에서 첫 상영된 날이다.[9] 같은 해 진짜 대통령이었던 국가안전기획국 국장 로이 콘도 사망했다.[10] 정확히는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이다. 넘치는 기간이 앞뒤로 7일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1926년생은 다이쇼 세대, 1989년생은 헤이세이 세대이다.[11] 동일인물이다(...)[12] 애니판에서는 10월 23일생으로 되어있으나 여기서는 원작을 따른다.[13] 일란성 쌍둥이.[14] 작중 5학년으로 나온다.[15] 철권4 이후 작중 시점 기준[16] 1997년에 동부건설로 합병[17] 라이히-5의 미국 국가안전기획국장이자 진짜 38대 미국 대통령.[18] 라이히-5의 허수아비 38대 미국 대통령.[19] 주인공 료의 아버지. 작중 기준으로 10년 전에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은 1998년이다.[20] 서세원 전 부인하고는 동명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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