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14:17:47

김상호(1965)

파일:나무위키+유도.png   現 롯데 자이언츠 소속 내야수 김상호에 대한 내용은 김상호(1989)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김상호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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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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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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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KBO 리그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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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KBO 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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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KBO 리그 타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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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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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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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1994)
이명수
(1995~1997)

MBC 청룡 등번호 45번
결번 김상호(1988~1989) 김종철
OB 베어스 등번호 44번
김원식(1988~1989) 김상호(1990~1998) 박종윤[1](2000)
LG 트윈스 등번호 33번
임선동(1997~1998) 김상호(1999~2000) 홍현우(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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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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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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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전에 시구를 하는 모습.
이름 김상호(金湘昊 / Sang-ho Kim)
생년월일 1965년 10월 19일 ([age(1965-10-19)]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선린상고-계명대
포지션 내야수(3루수)[2],
외야수(중견수, 우익수,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8년 1차지명 (MBC 청룡)
소속팀 MBC 청룡 (1988~1989)
OB 베어스 (1990~1998)
LG 트윈스 (1999~2000)

1. 소개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여담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KBO 리그 선수. 등번호는 45번(MBC 청룡) - 44번(OB 베어스) - 33번(LG 트윈스).

2. 선수 경력

1987년에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MBC 청룡의 1차지명을 받고 1988년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에 입단한다. 그러다가 1990년에 재일교포 투수 최일언과의 트레이드로 OB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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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5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면서 OB 베어스의 2번째 우승에 기여했으며, 홈런왕과 타점왕, MVP를 수상하였다.

50도 나온 현재 시점[3] 시절에서 보면 25홈런은 홈런왕 치고는 상당히 적은 숫자로 느껴질 수 있는데, 초창기 한국프로야구는 투고타저 경향이 강했으며 거기다가 1993~1997년은 특히 투수들의 성향이 강했다. 타자들은 끽해야 25홈런~30홈런 사이가 홈런왕 수준 거기에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의 훈련법의 부재, 외인타자도 없어 장타력이 지금보다 떨어지는 편에다가 8개 구단으로 경기수도 지금보다 적어서 20개 초중반이면 홈런왕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30홈런도 장종훈[4] 한명밖에 없었던 시절에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썼음을 감안하면 당시로선 그리 적은 숫자도 아니었고 오히려 엄청나게 많이 친 것. 101타점의 기록도 1992년 장종훈 이후 역대 두 번째의 100타점 돌파였다.

특히 1995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둔 팀 소속 선수로는 최초로 홈런왕을 따낸 선수가 되었다.[5] 1998년 시즌을 끝으로 류택현과 함께 친정팀인 LG 트윈스로 현금 트레이드되었으나 크게 활약하지 못하고 2000년 말에 은퇴했다.

1980년대까지 소총부대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데다가[6] 1990, 1991년 2년 연속 꼴찌를 했던 OB 베어스는 김상호를 영입하고 나서 1990년대 말까지 김형석, 강영수, 심정수 등과 함께 OB 베어스의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하였고, 김상호는 이 클린업 트리오의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슬러거 치고는 발도 빨라서 매년 20개 가까운 도루를 했으며 1995년 홈런왕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빠른 발을 가진 중장거리 타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쓴다는 것을 감안해도 통산 기록에서 홈런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편이며(통산 136홈런) 전성기도 2~3년 정도로 짧았다. 정확성과는 거리가 먼 스윙[7]으로 곧잘 쓰러질 정도로 큰 헛스윙을 해서 '칼춤'이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단단한 체구와 강인한 체력으로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8]

안성기를 닮은 쾌남형 얼굴에 이판사판 식의 화끈한 허슬플레이[9]로 적지 않은 팬이 있었지만 사실 모범생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엄청난 주당으로 야구장에서보다 잠실 근처 술집에서 그를 봤다는 팬이 더 많았을 정도였으니... 당시 신인급이었던 안경현이나 정수근[10]도 그에게서 본격적으로 술을 배웠다는 후문. 특히 정수근은 롯데 자이언츠에 가서 청출어람이뤄냈다 인터뷰에서도 당시의 여느 선수들과 달리 언제나 자신만만한 태도로 뭔가 보여드리겠다고 큰소리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면에선 팀 후배 홍성흔이나 오재원같은 똘끼 캐릭터의 원조격인 선수.[11]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주역이기도 한데 그중에서도 특이하게 팀에 복귀하고 연봉을 깎거나 동결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안 올려주면 나가겠다면서 결국 연봉인상을 받아낸 바 있다.[12]

게다가 1995년 1월, 이종민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차를 두고 갔는데, 그 다음 날 이종민은 그가 두고 간 차를 돌려 주려고 대담하게 면허없는' 상태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근처에서[13] 사고를 내고 만다.[14]

결국 1999년 좌투수 류택현과 함께 LG 트윈스로 현금 트레이드 된 후 2000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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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의 모습. 외모가 현역때랑 별로 변하지 않았다.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고, 2011년 현재 프랜차이즈 전문 기업 '후인'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2011년부터는 인천광역시 부평구에서 사회인 야구선수들과 중고생들을 위한 실내야구연습장 '팀 베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LG와 두산에서 선후배 사이였던 정삼흠이나 정수근 등이 초빙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관련 기사

2011년 8월 21일 한화 이글스와의 3연전 마지막 홈경기에서 사인회와 시구를 했다. 과거 윤동균 감독의 강압적인 지도방식에 반발해 항명했던 선수들이 2011년까지도 구단의 초청한번 받지 못하면서 잊혀져 갔는데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상호도 당시 주동자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 정규시즌과 2011년 개막전 때 시구를 했던 불사조 박철순도 항명파동 요주의 인물중 한명이였지만... 박철순의 경우엔 워낙 원년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고, 불사조의 전설로 팬들에게 OB의 박철순이 아닌 박철순의 OB로 기억될만큼, 엄청난 상징이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할수도 없는 인물이긴 하다.[15]

아무튼 김상호의 초청과 프런트진 개편을 계기로 90년대 올드스타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지는 것일지 귀추가 주목되었다.[16] 이후 항명 파동에 가담한 권명철다시 생각해라 프런트!!, 이광우가 코치로 두산에 복귀하고, 2015년 두산이 우승하자 김상호가 축하 인사를 남기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축하 인사 보러가기.

4. 여담

  • 역대 KBO 리그 MVP 중 최저 WAR을 기록한 타자다.[17] 당시 1995년 MVP는 선동열, 장종훈, 이상훈 중 한 명이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잠실 홈런왕이 아니었다면 WAR이 말해주듯 MVP는 받을 수 없었다.
  • 특이한 점으로 소속팀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홈 그라운드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 현역 시절, 귀마개 없는 헬멧을 사용한 대표적 선수기도 하다. 터프한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답답함이 덜하다는 이유로 90년대까지는 이 형태의 헬멧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제법 있었다. 삼성 장효조나 롯데 김민호도 무귀헬멧을 사용한 강타자. 2000년대 중반부터는 투수들의 구속 향상과 몸쪽 볼 구사율이 높아지면서 타자들은 부상의 위험성때문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포수(수비 한정)들의 전유물로 자리매김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 타자 기록. 붉은색은 리그 1위 기록, 굵은 글씨는 5위 이내 입상기록을 뜻한다.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8 MBC 청룡 88 267 .270 72 17 2 7 43 35 11 22 .427 .323
1989 109 362 .257 93 9 4 13
(5위)
56 51 21 55 .412 .35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0 OB 베어스 114 400 .275 110 18 1 14 52 61 12 61 .430 .370
1991 93 318 .208 66 10 1 5 42 33 12 36 .292 .287
1992 102 370 .300 111 26 4 12 49 61 16 46 .489 .377
1993 122 440 .264 116 17 1 11 56 53 19 47 .382 .333
1994 113 410 .249 102 11 5
(3위)
9 49 55 6 54 .366 .334
1995 126
(1위)
504 .272 137
(5위)
23 2 25
(1위)
101
(1위)
79
(3위)
10 51 .474 .335
1996 117 439 .269 118 27 0 20
(4위)
75 53 5 39 .467 .324
1997 96 343 .315 108 24 3 11 52 45 4 46 .499 .393
1998 34 87 .241 21 3 0 1 7 12 0 17 .310 .36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LG 트윈스 94 221 .253 56 10 1 8 40 39 1 34 .416 .350
2000 21 31 .065 2 1 0 0 2 4 0 9 .097 .275
KBO 통산
(13시즌)
1229 4192 .265 1112 196 24 136 624 581 117 517 .421 .344


[1] 롯데 자이언츠 박종윤선수와 동명이인[2] 청룡 시절 가끔 출장하다 OB 이적 후 외야수로 고정[3] 셋 다 모두 타고투저에 세운 기록[4] 이분은 이승엽 이전 최초로 3년 연속 홈런왕에 이어 1992년에 결국, 40홈런을 넘겨버린다.[5] 이후 1998년 외국인선수인 타이론 우즈가 다시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42홈런을 기록하며 잠실팀의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했다.[6] 1989년까지 역대 한시즌 팀 최다 홈런 선수는 1982년의 김우열과 1988년의 송재박으로 13개였다(그나마 1982~1984시즌 OB의 홈은 지금의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이었다.). 1980년대의 OB는 같은 서울 팀인 MBC 청룡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장타력이 떨어지는 팀이었다.[7] 그래도 1992년과 1997년에 3할 타율을 두 번 기록했다. 1995년의 기록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는 증거.[8] 엉성한 내야 수비로 '돌 글러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기도 했다.[9] 1995년 잠실구장에서 LG 김동수의 홈런성 타구를 엄청난 스피드로 쫒아가서 점프해서 잡아낸 플레이는 그 해 최고의 진기명기로 회자된다.[10] 특히, 술 이야기 하면 모든 선수도 이 분 만큼에게 도망친다는 설이 있었다...[11] 공통점이라면 팀내에 케미스트리를 잠시 깨서 두산을 제외한 모든 구단 선수들에게 밉보인 적도 조금은 있었으나 지금은 호감도가 상승하였다.[12] 팀의 고참이자 깡다구가 높던 장호연도 이런식으로 구단에게 개겼었다... 이던 당대에 두산은 식품 사업에도 있어서 해태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 처럼 꽤나 매년 기업에 대한 돈이 많이 나갔음에도 여타 저 두 구단 처럼 선수들 연봉협상에 진통이 컸었다. 예로 들면 해태는 에이스 선동열 이나 고참 이순철, 한대화 롯데는 에이스 최동원, 거포 마해영, 탱크 박정태 등등 이름 값 하는 선수들에게 인상을 하더라도 10% 조금 넘는 수준? 으로만 해주고 그냥 체면상 올려준다 해도 20%까지 올려줬다. 당대에는 20%가 최대치였으니.. 다만, 그 다음해 못하면 얄쨜없이 연봉을 깎아버린다. 그 피해자가 故 유두열 코치[13] 문제는 음주운전인지 아닌지 단속차 확인을 하던 경찰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해버린 것이다.[14] 한동안 1군 선수로 뛰다가 결국 2002 시즌이 끝나고 방출을 한다.[15] 박철순이 다시 시구하러 온다고 했을때, 새벽부터 줄서서 1,000명 사인회 기다리다 돌아간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였으니...[16] 당시 윤동균 감독에 반발해 항명한 선수 가운데 가장 구단 속을 썩이던 선수가 김상호였다. 그런 김상호를 시구자로 불렀다는거 자체가 놀라운일이다.[17] 당시 김상호의 war은 스탯티즈 기준으로 4.27인데 시즌 126경기 체제였다. 그래서 war/144로 환산할경우 4.875가 나오는데 2017년 KIA 타이거즈양현종이 144경기 체제에서 4.63으로 MVP를 수상하며 war/144의 최저는 아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