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15 15:54:32

이홍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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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홍범(李洪範 / Hong-Beom Lee)
생년월일 1953년 2월 10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남산초 - 선린중 - 장충고
포지션 우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OB 베어스 (1982~1986)
지도자 OB 베어스 코치 (1989~1991)
태평양 돌핀스 코치 (1992~1993)
쌍방울 레이더스 1군 트레이닝 코치 (1996~1999)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2)
삼성 라이온즈 1군 트레이닝 코치 (2003)
제물포고등학교 감독 (2004)
SK 와이번스 1군 트레이닝 코치 (2010~2011)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1)
LG 트윈스 2군 재활코치 (2014)
한화 이글스 1군 트레이닝 코치 (2015~2016)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1]
1982
OB 베어스 역대 주장
윤동균
(1983)
이홍범
(1984~1985)
이종도
(1985~1987)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한국 프로야구의 전 야구선수이자 지도자. 2015 시즌부터 2016 시즌까지 한화 이글스의 트레이닝 코치를 맡았었다.

2. 선수 경력

장충고 출신으로 1972년 철도청에 입단하여 실업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준수한 유격수였지만, 아쉽게도 팀 전력이 강하지 못해서 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아니었고, 1979년까지 철도청에서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프로 출범 직전에는 한국 화장품 소속으로 뛰었다. 이 무렵에는 유격수 포지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상태였다. 프로에 데뷔할 당시에 이미 나이가 만 29세로서 당시 선수들의 몸 관리를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나이였고, 실제로도 프로 선수로서는 1982년 우승 멤버라는 점 외에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1986년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미국에서 트레이닝 연수를 받아 1989년 OB 베어스의 트레이닝 및 수비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태평양과 쌍방울, LG 등에서 코치 생활을 보냈다.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은 일단 이홍범은 선수로, 김성근은 코치와 감독으로 OB에서 같이 했던 인연이 있었고, 1996년부터 쌍방울에 합류해서 쌍방울의 전성기와 해체를 경험했던 인물이었다. 2002년 LG에서 김성근과 함께 했지만 김성근의 해임과 함께 LG를 떠났고, 한동안 야인이었던 그를 부른 것도 김성근이었다. 2007년 SK의 트레이닝 코치로 합류한 후 줄곧 김성근과 함께 지냈고, 2011년 SK가 흔들릴 때 1군 수석코치까지 올라갔다가 김성근의 해임과 함께 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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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2014년 LG의 재활코치를 거쳐서 2014년 시즌 후 김성근의 한화 취임과 함께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선수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계형철 코치와 함께 짤방감 사진을 제조하셨다.

2016 시즌 후 불거진 선수 대리운전 논란으로 해임됐다. 노리타들이 목에 피를 토하며 외쳤던 '엠스플뉴스에서 김성근을 모함하기 위해 대리운전 논란을 조작했다'라는 읍소와는 달리, 한화 프런트박종훈 단장은 대리운전을 박상열, 이홍범 코치가 지시한 것이 사실이며 이것이 강제성이 있든 없든 대리운전을 선수에게 시킨 것에 대해서는 선수단 관리 미흡이라는 판단[2] 하에 해임했다. 결국 17년도 한화의 김성근 사단인 코치는 김정준, 계형철, 김광수만 남게 되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1982 OB 베어스 71 153 0.235 36 7 1 3 15 29 9 19
1983 63 158 0.304 48 6 0 0 19 23 5 9
1984 72 144 0.222 32 6 0 1 7 17 2 11
1985 82 107 0.224 24 3 1 2 12 15 0 7
통산(4시즌) 288 562 0.249 140 22 2 6 53 84 16 46


[1] 82년 우승은 우승반지가 생기기 전이지만 훗날 2011년에 베어스 구단에서 직접 우승멤버들을 초청해서 우승반지 수여식을 가졌으므로 우승반지라고 해도 무방하다[2] 정세영 기자의 기사에서 확인해 주며 쐐기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