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01:35:23

박종훈(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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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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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장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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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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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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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손경수 추성건 류택현 송재용 최기문
(고졸)
김선우
박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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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이경필
(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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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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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구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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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이재영 노경은 김재호 김명제 남윤희(1)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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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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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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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2~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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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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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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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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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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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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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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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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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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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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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강대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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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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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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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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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5대 6대 7대 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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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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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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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4)
손상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5~1996)
9대 10대 11대 12대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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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손상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손상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2003)
송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06)
14대 15대 16대 17대
박종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09)
김광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
박승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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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감독 대행
김우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18대 19대 20대 21대 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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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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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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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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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
이강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
23대 24대 25대 26대
강석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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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1)
이복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이정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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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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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0> 초대 2대 3대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감독 대행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한동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어우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5)
<rowcolor=#ff0> 4대 5대 6대 7대
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1987)
감독 대행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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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1991)
<rowcolor=#fff> 8대 9대 10대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1996)
감독 대행
천보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
천보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1999)
이광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1)
감독 대행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
<rowcolor=#fff> 11대 12대 13대 14대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이순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06)
감독 대행
양승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09)
<rowcolor=#fff>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박종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2011)
김기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2014)
양상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4~2017)
류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2020)
류지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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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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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1번}}}
이광환
(1982)
박종훈
(1983~1989)
홍길남
(1990~1992)
LG 트윈스 등번호 75번
미즈타니
(1986~1987)
<colbgcolor=#000><colcolor=#fff> 박종훈
(1994~1996)
민경삼
(1997~2000)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6번
오대석
(1992~1996)
박종훈
(1997~2002)
결번
SK 와이번스 등번호 80번
양승관
(2001~2002)
박종훈
(2003~2004)
가토
(2005)
SK 와이번스 등번호 76번
조범현
(2003~2004)
박종훈
(2005~2006)
이철성
(2010~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87번
이충순
(1983~1986)
박종훈
(2007~2009)
김현수
(2010)
LG 트윈스 등번호 75번
정진호
(2007~2009)
박종훈
(2010~2011)
박준태
(2012~2014)
}}} ||
}}} ||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611171303775656_582d2eb869ef6.jpg
KBO 경기운영위원
박종훈
朴鍾勳
출생 1959년 6월 12일 ([age(1959-06-12)]세)
제주도 제주시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석화초등학교 (졸업)
신일중학교 (졸업)
신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3년 1차 지명 (OB)
소속팀 상업은행 야구단 (1982)
OB 베어스 (1983~1989)
지도자 보스턴 레드삭스 연수코치 (1993)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1994~1995)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1996)[1]
LG 트윈스 루키군 코치 (1996)[2]
현대 유니콘스 2군 타격코치 (1997~1998)
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1999)
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 (2000~2002)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03)[3]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03~2006)[4]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07~2009)
LG 트윈스 감독 (2010~2011)
프런트 NC 다이노스 육성이사 (2013~2015)
NC 다이노스 고양본부장 (2016)
한화 이글스 단장 (2017~2019)
경력 KBO 기술위원 (2012)
KBO 경기운영위원 (2020~)
병역 예술체육요원[5]
종교 개신교
가족 아들 박윤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프런트 경력5. KBO 임원6. 여담7. 연도별 주요 성적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OB 베어스 박종훈_C.jpg
OB 베어스의 외야수, LG 트윈스의 감독, NC 다이노스의 고양본부장, 한화 이글스의 단장이었다.

선수 시절에 성적뿐만 아니라 미남으로서도 팬들에게 인기가 상당했다.

2. 선수 경력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3, 1985)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오가며 자랐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 때인 1979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대학 시절 내내 국가대표로 뽑혔으며 대표팀 합숙시에는 선수들 중 가장 먼저 일어나 개인훈련을 하고 야간에도 열심히 스윙 연습을 하는 성실함을 보여서 대표팀 김응용 감독의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파일:OB 베어스 박종훈_A.jpg
파일:OB 베어스 박종훈_B.jpg
파일:김경문 & 박종훈.jpg
김경문과 함께
히스토리 11 '최초로 빛난 샛별' 초대 신인왕 박종훈
실업 야구 팀인 상업은행 야구단을 거쳐[6] 198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OB 베어스의 1차 지명 2순위로 입단하였다.
파일:1983년 신인왕 박종훈.jpg
신인왕을 수상한 박종훈
1983년 1군 97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06, 117개의 안타를 기록하여 최다안타 1위를 기록했고,[7] 신인왕과 KBO 골든글러브 상(외야수 부문)을 수상하였다. 한국프로야구 초대 신인왕을 차지한 것인데,[8] 장효조가 박종훈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장효조는 프로야구 출범 전의 최상위 야구리그였던 실업야구 리그에서 4년간 활약하며 한국 최고의 교타자로 유명했으므로 신인같지 않은 신인이라는 이유로 기자단 투표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9] 박종훈도 실업야구에서 1년간 뛰었지만 1982년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 참가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고, 결정적으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에 실업야구에서 뛰었기 때문에 야구기자단은 박종훈이 대졸 신인과 다름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1985년에는 타율 0.342와 119개의 안타로 개인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두번째 KBO 골든글러브 상(외야수 부문)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오영일의 사구로 기량이 하락하였다. 1986시즌엔 타율 1할이 사라졌다. 1987시즌엔 박종훈의 명성엔 걸맞지 않는 타율 0.284, 6홈런으로 실망스런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해 OB는 중장거리형 교타자가 많아서 홈런 6개 치고 팀내 홈런 1등이었다. 2위는 신경식, 이복근, 김형석, 김호근의 홈런 3개... 이는 KBO역사상 가장 홈런을 적게 치고 팀내홈런 1등을 기록한 기록이다.

타자 삼종훈 삼총사 중 첫번째 주자이기도 하며(박종훈은 1959년생, 장종훈은 1968년생, 김종훈은 1972년생) 데뷔년도도 빠른 편이다.(박종훈 - 1983년, 장종훈 - 1986년(연습생), 김종훈 - 1994년) 또한 삼종훈 삼형제 중 유일하게 좌투좌타 포지션.

다만 삼종훈 삼총사 중 선수시절에 가을야구(KBO 포스트시즌)에 나온 것은 2시즌뿐이며(1986년, 1987년)[10] 유일하게 우승한 적은 없다. 이후 선수 시절에 경험 못했던 우승을 코치로서(1994(LG), 1998/2000(현대)) 3차례 경험한 것으로 작게나마 위안 삼았을 뿐.

프로 데뷔때부터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날렸고, 입단 3년째인 1985년에는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다가 MBC 청룡 투수 오영일의 직구에 허리뼈를 직격당해 큰 부상을 당했고, 당시에는 부상 후 재활에 대한 인식이나 관리 체계가 없다시피 하던 시절이어서 그냥 참으면서 경기 출장을 이어나갔다. 그 때문인지 이후의 성적은 내리막을 이어갔고, 결국 1989년 시즌을 끝으로 불과 30세로 은퇴했다. 신인왕 출신으로 화려하게 프로에 입문했지만, 불행히도 선수생활은 짧게 마감하였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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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런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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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KBO 임원

한화와의 단장직 계약이 만료된 뒤인 2020년, 신임 경기운영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6. 여담


  • 얼굴이 상당히 잘 생긴 편이다. 특히 배우 황정민과 많이 닮았고, 강석우하고도 좀 닮았다. 최불암불암콩콩코믹스에서 이를 이용해 달콤한 인생 드립을 쳤다. "인생은 고통이야." 덧붙이자면, 황정민은 박종훈의 친정 팀인 OB - 두산 팬이다. 선수 시절 별명은 소설 뿌리, 정확히는 미드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 온 쿤타 킨테. 환갑을 넘은 지금도 미중년에 이어 미노년의 길을 착실히 걷는 중.
  •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시절에 말한 주박백정[11] 발언이 두산 팬들 사이에서 재평가 되고 있다.
  • 야구 토크쇼 사사구에서 박종훈이 LG 감독시절 박병호 트레이드 당시 박병호를 내줄 거면 적어도 손승락은 받아와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말을 했다. 이는 말같지도 않은 자기 미화이며 당시 박병호는 7년차 선수였는데 1군에서 단 한번도 WAR 양수를 기록한적이 없는 1루수 였으며, 손승락은 박병호와 같은 년차에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였다. 더군다나 당시 엘지는 1루,지명타자,외야수가 포화 상태여서 박병호의 가치는 낮았다. 애초에 말도 안되는 소리여서 방송 직후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 위 썰과 더불어 똑같이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한 오상민의 썰에 따르면 LG 감독 시절 시즌 막바지에 FA 등 구단과 인센티브 옵션 계약을 맺은 고참 선수들을 불러모아 옵션을 채워주지 못한다고 대놓고 사전통보를 한 뒤 잔여 경기에 출전을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오상민 역시 홀드 두개를 남겨놓고 옵션 달성에 실패했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낮술을 하고 구단 사무실에 찾아가 항의하니 옵션 5천만원 중 40%인 2천만원을 보상해주었다고 한다.
  • 이에 박명환도 썰을 새로 하나 풀었는데, 부산 원정 경기를 마치고 버스로 장시간을 이동한 뒤 새벽 2시 반에 홈 구장에 도착했는데,[12] 박종훈 감독이 당시 투수조 조장이었던 박명환을 불러 피로에 지쳐있는 선수들에게 야간 훈련을 통보했다는 후일담을 공개했다. 옆에 있던 오상민도 말도 안되는 지시에 크게 분노해 자기가 그냥 선수들을 들여보냈던걸 떠올리면서 훈련을 더 시킬거면 다음 날에 일찍 나오라고 하면 되는데 왜 굳이 새벽에 시키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이러니 선수들이 이러한 감독을 신뢰하고 따랐을 리 만무한데 2011시즌 LG의 DTD는 선수와 구단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선수들에게 민심을 전혀 얻지 못하고 팀을 뭉치는 데 실패한 박종훈 본인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 된다. 즉 애초부터 박종훈 자체가 능력과 별개로 "절대 조직의 수장을 맡겨서는 안되는" 유형의 인물이었음을 알려주는 일화들이라 할 수 있겠다.[13]
  • 훗날 박명환은 은퇴 후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경질했을 당시 단장이 무슨 권한으로 감독을 막느냐며 박종훈을 강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김성근과 무슨 특별한 친분이 있어서 옹호하기보다 박종훈 개인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었던 모양. 그런데 그 후 박종훈 측에서 당장 글을 내리고 다시는 칼럼 쓰지 말라며 본인과 언론사 측에 외압을 가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게스트로 나온 정수근도 '그런 사람은 오래 못 간다.'며 동조했다.
  • 한화 이글스 단장 재임 시절이던 2018년 배영수에게 은퇴를 권유했는데 기준이 뭐냐고 묻자 "내가 봤을 때"라고 답했다는 황당한 일화가 있다.[14] 사실 황당하다기보단 그동안 선수들을 지켜 본 그의 눈에 비춰봤을때 배영수가 나이 먹고 더 기대할 만한 실링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쪽이 정확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장이란 사람이 저런식으로 말 하면서 은퇴를 종용하는건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 역시 박종훈 단장 재임 시절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심수창이 은퇴 후 개인 유튜브에서도 밝힌 이야기에 따르면 심수창은 2이닝 던지고 2군행을 통보 받았다. 2군 세이브왕을 했지만 콜업되지 않았고, 그래서 1년이라도 다른 팀에서 기회를 받을 수 있게 한 번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 말을 들은 박종훈은 선수보고 직접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어 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꺼냈다고 한다. 심수창도 이에 따라 5개 팀 감독에게 요청하여 트레이드 카드를 끝끝내 맞추어 왔지만[15], 정작 박종훈 단장은 뒤에서 해당 팀들에 전화를 걸어 심수창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뒤통수를 쳤고, 결국 심수창은 웨이버 공시된다. 뒤이어 조인성 사례를 꺼내며 방출 통보하는 당일에 왜 2군서 운동 안하냐고 따졌다고 한다.[16] 게스트로 출연한 안영명 역시 FA 계약을 맺으러 단장실에 갔는데, 대뜸 서류를 집어 던지면서, "우리 계약하지 말자"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나름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이고,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원만한 분위기를 기대한 안영명은 큰 충격을 받아 생전 안 먹은 술도 마셨다고 전했다. 그래서 당시에 한화에 소속되어 있었던 베테랑들도 박종훈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따금씩 한화에 대한 디스를 종종 하던터라 한화팬들에게는 먹튀 혹은 칰무원 주제에 아가리 턴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까였지만 이러한 뒷이야기가 풀리고 이어서 심수창은 한화는 좋아한다며 자길 싸잡아 욕하던 이들을 감싸주는 대인배적 행보를 보였다. 물론 이어지는 말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간접 디스를 하기도 하였다.
  • 2023년 초 허도환스톡킹에 출연해 2007년에 있었던 두산 2군 시절 썰을 풀었는데, 5월에 한번 1군에 콜업되어 올라갔다가 1경기만 뛰고 다시 2군으로 내려왔는데 하필 팔꿈치 통증이 심해지는 바람에 병원에서 MRI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두산 2군 감독이던 박종훈에게[17] MRI를 찍는다고 보고했더니 "너는 1군에서 내려오더니 건방지게 선배들 하는거 배워가지고 아프다고 하면서 2군 경기 안 뛰려고 하냐?" 라면서 사실상 수술을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후 어찌어찌 부상을 참고 8월이 다 되어서야 MRI를 찍을 수 있었는데 내측 측부인대(MCL)가 아예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즌이 끝나가던 9월 즈음 허도환을 따로 불러 "재활해서 내가 기회를 더 줄테니 내년에 열심히 해 보자" 라고 해놓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방출당했다는 사실과 함께 자존감이 확 떨어졌다고 밝혔다.[18] 이에 팬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박종훈은 어떤 사람이길래 야구계에서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더더욱 까였다.
  • 반면 박현준은 박종훈을 은사라 표현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현준이 LG에서 뛰던 시절 감독이 그였고, 혹사에 가까운 기용이었지만 어쨌든 기회를 많이 받아서 뛸 수 있었기 때문. 박종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 위의 일화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코치나 프런트로 있으면서 그 팀에 있는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막상 구단의 수뇌부에게는 깍듯한 모습을 보여서 야구계에서 계속 자리를 보전해왔다. 야구를 잘 모르는 구단 사장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예의를 지키면서, 선수들을 쥐잡듯이 휘어잡는 똥군기스러운 모습을 보고, 정신력을 강조하는 모습이 좋게 보여서 그를 중용했지만, 실체가 까발려져 그 팀에서 떠나는 게 대다수였다.[19]
  • 2020년 4월 24일, 부친상을 당했다.
  • 2011년 시즌 중 프로야구 8개 구단 감독들에게 역대 최고의 대통령을 물어보는 설문에서 유일하게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이명박을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뽑았다.[20]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3 OB 97 375 .312
(4위)
117
(1위)
19 6
(1위)
3 24 53
(4위)
7 41 .419 .380
(5위)
1984 99 271 .306 83 11 2 7 37 35 9 31 .439 .377
1985 101 348 .342
(2위)
119
(3위)
19 4 6 51 48 17 33 .471 .399
(4위)
1986 92 320 .259 83 11 2 6 28 47 12 40 .363 .341
1987 80 264 .284 75 10 1 6 34 33 5 22 .398 .336
1988 103 336 .262 88 11 1 3 36 34 11 34 .327 .328
1989 107 295 .254 75 13 1 1 21 31 10 33 .315 .328
KBO 통산
(7시즌)
679 2209 .290 640 94 17 32 231 281 71 234 .391 .355

8. 관련 문서



[1] ~7월 23일[2] 7월 24일~[3] ~8월 13일[4] 8월 14일~[5] 1980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6] 대학 졸업 후 프로 원년 멤버로 입단할 수 있었으나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을 위해 프로 진출을 1년 미뤘다. 그러나 정작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탈락했다.[7] 장효조와 공동 1위였는데, 당시에는 최다안타 부문에 별도의 시상을 하지 않았다. 최다안타에 상을 주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시즌부터다.[8] 당시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도에는 왜 신인왕 수상을 안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 프로야구 출범때는 전원 신인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원년 MVP였던 OB 박철순이 신인왕이나 다름 없었다.[9] 같은 해 삼성에 입단하여 17승을 거둔 김시진도 1981년 육군 경리단에 입대하여 실업야구 리그에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장효조와 같은 이유로 신인왕 투표에서 배제되었다.[10] 하필이면 상대가 크보 최강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였다![11] 주전감은 박건우, 백업은 정수빈.[12] 참고로 사직 야구장잠실 야구장 간 거리는 대략 380km, 자동차로는 약 4시간 30분~5시간 정도 소요된다.[13] 실제로 1군 감독, 단장이었던 LG와 한화 시절에 유독 잡음이 많았던 인물이다. 반면 2군 감독, 육성이사였던 두산과 NC 시절에는 별다른 잡음이 없었던 편.[14] 알다시피 배영수는 한화의 은퇴 제의를 거부하고 방출된 뒤 두산 베어스에서 1년 더 뛰었고,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투수로 등판한 뒤 우승반지를 하나 더 끼고 명예롭게 은퇴한다.[15] 사실 이건 심수창이 저니맨에 그래도 쓸만한 자원이었기에 가능한 소리이다.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라면 절대 불가능할 소리.[16] 이건 다시말해 해고당한 사람한테 업무 왜 안하냐는 소리하고 똑같은 소리다.[17] 비록 허도환이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고 스톡킹을 진행하던 심수창을 향해 "누군지는 말 안할게요. 이 하도 많이 하셔가지고...그 분이..." 라고 했는데, 허도환이 두산에서 뛰던 2007년 당시 두산 2군 감독이 박종훈이었다.[18] 방출된 후 허도환은 자비로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고, 소집해제된 후 넥센 히어로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한다. 허도환 본인에 의하면 이 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19] 실제로 박종훈의 악명은 2020년대에나 드러났지만, 2000년대 두산 2군 감독부터, LG 트윈스 정식 감독 선임, 한화 이글스의 단장을 할 때 기자들이 언제나 리더십, 정신력, 선수들의 스타의식 타파등으로 굉장히 호의적으로 평가해준 걸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박명환의 말대로 자신에게 안 좋게 쓴 기사를 보면 바로 전화를 해서 기사 내리라는 요청을 할 정도로 언론플레이에도 능했다.[20] 한대화 한화 감독은 답변 곤란, 이만수 SK 감독대행은 노무현, 그 외 조범현 KIA 감독, 류중일 삼성 감독, 양승호 롯데 감독, 김광수 두산 감독대행, 김시진 넥센 감독은 모두 박정희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