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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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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시절. LG 트윈스 시절. SK 와이번스 시절.
이름 이재영(李在永 / Jae-young Lee)
생년월일 1979년 6월 13일 ([age(1979-06-13)]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학력 방배초-선린중-선린상고-영남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2년 1차 지명 (두산)
소속팀 두산 베어스(2002~2008)
LG 트윈스(2008~2010)
SK 와이번스 (2010~2015)
등장곡 블락비 - 난리나

1. 소개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두산 베어스 시절2.3. LG 트윈스 시절2.4. SK 와이번스 시절
2.4.1. 2011 시즌2.4.2. 2012 시즌2.4.3. 2013 시즌2.4.4. 2014 시즌2.4.5. FA2.4.6. 2015 시즌
3. 은퇴 후4. 여담5. 연도별 성적

1. 소개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투수.

전형적인 와일드 씽 타입의 투수이자[1] 여러모로 병역비리에 잘못 발을 디뎠다가 쉽게 재기하지 못한 케이스라 할 수 있는 선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서울방배초, 선린중을 거쳐 선린상고 시절에 기량이 그리 출중한 선수는 아니라서, 고3 때인 1997년 말 무려 128명이 지명된 이 해 신인 지명에서 조차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 지명받던 선수들도 대학을 가던 시절인데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니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기는 힘들었고, 결국 영남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런데 영남대학교 시절에는 제법 기량이 상승하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 시절을 보냈다.

2.2.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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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신인 지명 때 도저히 서울권에서 지명할 만한 유망주를 고르지 못한 두산 베어스영남대학교에서 괜찮은 활약을 펼치던 이재영을 1차 지명으로 뽑는 과감한 선택을 했고, 이것이 적중했다. 입단 첫 해인 2002년에 67경기에 등판하여 97⅓이닝 4승 6패 7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2.96의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문제는 2002년에 나온 신인이 고졸 루키로 삼진왕을 먹은 기아 김진우라든가, 역시 연세대를 졸업하고 무적의 마무리 포스를 뿜어낸 현대 조용준이라든가…. 덕분에 신인왕 투표에서 철저히 묻혔다.

2003년에도 괜찮은 활약을 이어가면서 2년 연속 두자릿 수 홀드도 달성해서 이대로만 간다면 두산의 차세대 마무리나 불펜 에이스, 혹은 선발까지도 성장할 수 있었겠지만,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면서 야구 인생이 꼬이게 되었다. 본인 잘못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실형을 살고 나와 2005년 16경기에 등판한 후 바로 입대했다.

복무를 마치고 2008년에 돌아왔지만, 자연히 경쟁에서 밀리면서 2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엇보다 신인 시절에도 제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빠른 공의 위력이 떨어지면서 난타당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2.3.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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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2 트레이드를 통해 2008년에 갓 입단했던 타자 김용의와 함께 LG 트윈스로 건너가기에 이른다. 이 때 LG의 상대 카드는 이성열최승환.

LG에서는 전성기처럼 중간에서 활약하기를 기대했겠지만, 실상은 별로였다. 이적 첫해인 2008년에 중간계투 보직에서 6점대 평균자책점을 찍는 악몽같은 성적을 냈다. 그나마 2009년에는 작살난 우규민을 대신하여 마무리 투수 자리를 이어받아 11세이브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팀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2.4. SK 와이번스 시절

결국 2010년 7월, 3:4 트레이드를 통해 최동수, 안치용, 권용관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건너가게 된다. 그래도 트레이드된 후 잠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2.4.1. 2011 시즌

2011년에도 좀처럼 1군에는 못 올라오다 8월 말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중간계투 보직에서 가끔씩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우완계투 기근에 시달리는 SK에서 좋든 나쁘든 슬슬 기회를 받으면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9월 14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757일만에 승리 투수가 되면서 이적 후 첫 승을 신고했다.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⅓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2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5⅔이닝 5피안타 1피홈런 1볼넷 2사구(死球)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이재영은 2011년 포스트시즌 14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8이닝 6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사구(死球) 4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13을 기록하였다.

그동안 19번을 달고 뛰었으나, 2011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김원형이 쓰던 16번을 쓰게 되었다. 다승 5위이자 프랜차이즈 레전드의 등번호니 못하면 욕 먹는 등번호기도 하다. 정신 못차린 솩런트들

2.4.2. 2012 시즌

2012년 시즌 들어와서 초반에는 부진해서 불재영 소리도 들었으나 갈수록 좋아지면서 물재영 소리를 들었다. 그 대신 투수진이 부실해진 여름에 미친듯이 신나게 굴려졌다. 일례로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4일 내내 연투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8월초 부상으로 아웃당했다가 복귀했다.

9월 13일 경기포기 핑계를 대는 LG 트윈스 김기태 감독에게 디스당했다. 9월 25일 LG 트윈스전에서 홀드를 거둔 후 인터뷰에서 김기태 감독의 디스로 인해 아내가 상처받았다고 하였다.

2012년 최종 성적은 48경기 65이닝 6승[2] 3패 1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하며 호성적을 거두었다. 시즌 중반 부상으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엄정욱의 부상 이후 그 빈자리를 잘 메꾸며 SK와이번스의 마당쇠로 팀의 2위 수성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⅔이닝 3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경기 1⅔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0.8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이재영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2경기 2⅓이닝 2피안타 4볼넷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7.71을 기록했다.

2.4.3. 2013 시즌

3월 30일 LG 트윈스와의 문학 개막전에서 호투한 조조 레이예스가 8회초에 지치기 시작하자 등판했으나 최윤석이 평범한 병살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저질러 만루가 된 상황에서 다음타자 박용택에게 스트레이트 밀어내기 볼넷을 내준 뒤, 정성병자에게 초구를 통타당해 만루포를 맞고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며 졸지에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본인에겐 조금 억울할듯.

그리고 5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결국은 분식회계 및 방화나 저지르는 예전 모습으로 접어들면서 가뜩이나 약해진 SK 불펜을 더욱 약화시키는 주범 중 한 명으로 전락했다. 올해 만루 피홈런 2방으로 만루피홈런 순위 1위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3]

2.4.4. 2014 시즌

2월 16일 스프링캠프 기간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때 팀의 3번째로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진해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시즌 전반기에는 그냥 방화범이자 퇴물의 모습만 보이다가, 부상과 혹사로 상태가 메롱이 된 후반기에 페이스가 좋았다. 박정배가 이탈한 불펜진에서 몇 안되는 강속구 구원 투수의 면모를 보였고 괜찮은 위기 관리 능력을 보였다.

2.4.5. FA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했으나 SK와 우선 협상이 결렬되어 FA 시장에 나왔다. SK에서는 3년 10억 원이라는 어찌 보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지만 선수 본인은 거부했다. 어차피 자기 자리가 없을 걸 아니까 알아서 나왔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FA 시장에서도 다른 구단의 외면을 받으며 결국 SK로 유턴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해가 넘어가고 나서 결국 1+1년간 총액 4억 5천만 원에 계약을 완료하였다. 비슷하게 유턴한 나주환의 경우 ktKIA를 믿고 시장에 나갔다가 의외로 시장이 일찍 닫히면서 망한 경우지만, 이재영은 본인이 스스로 나오기를 원했음에도 어찌보면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격.

2.4.6. 2015 시즌

주로 패전조로 등판하는데 6월 3일 기준 12.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0이다.[4] 점수차가 많이 벌어진 상황에 등판하기 때문에 홀드는 1개에 불과하지만 지는 경기에서 깔끔한 이닝소화로 더 이상의 불펜 소모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덕아웃에서도 젊은 투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투수조 최고참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팬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상술한 제로맨 스탯 때문에 '패전상황의 선동열'을 줄인 패동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6월 9일 kt wiz전에서 고효준분식회계로 방어율이 1.29가 되었다.

7월 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연장 11회에 올라와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올해 첫 승리를 따내었다.

7월 22일 1이닝 무실점으로 방어율 1.09를 찍은 이후로는 다시 이전처럼 그런저런 성적의 투수가 되었다.

8월 17일 기준으로 방어율이 4.65까지 치솟았으며 그 후 2군으로 내려간 후 1군에는 한번도 콜업되지 못한 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10월에 수술을 받는다고 하며, 구단에서는 팔꿈치가 좋지 않다고 언급했다.

결국 엄정욱 등과 함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방출되었다. 기사

3. 은퇴 후

현재 허일상과 함께 1대 1 개인레슨을 하고 있는 듯 하다.

4. 여담

  •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지만, 한국시리즈 준우승만 3번(2005년, 2011년, 2012년)한 콩라인선수 중의 하나이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2 두산 67 97⅓ 4 6 2 7 2.96 64 9 47 3 112 1.14
2003 52 116 6 2 5 10 3.65 105 12 78 3 83 1.58
2004 60 94 9 7 3 14 2.59 71 7 39 4 79 1.17
2005 16 22⅓ 1 2 0 1 4.03 24 4 11 0 20 1.57
2006 군복무
200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8 두산 / LG 48 68⅓ 1 4 1 8 6.19 69 8 32 3 39 1.48
2009 LG 47 56⅔ 5 3 11 1 4.13 61 6 29 3 47 1.5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10 LG / SK 8 10⅔ 0 0 0 0 6.75 15 2 10 2 6 2.34
2011 SK 21 29 2 0 0 2 2.79 19 3 8 0 15 0.93
2012 48 65 6 3 1 10 4.29 65 6 35 5 46 1.54
2013 44 43⅔ 2 4 0 3 5.56 39 5 24 5 35 1.44
2014 38 48 1 0 0 4 6.19 45 7 28 0 42 1.52
2015 26 31 1 0 0 1 4.65 36 4 13 3 26 1.58
KBO 통산
(12시즌)
475 682 38 31 23 61 4.13 613 73 354 31 550 1.42


[1] 제구가 잘 안 잡히는 강속구 유형의 투수. 영화 메이저리그에 나오는 찰리 쉰이 연기한 주인공 투수의 별명을 따라 그렇게 부른다.[2] 시즌 중반에 5승으로 한 달 정도 팀내 최다승 투수인 적도 있었다. 이는 주로 추격조로 등판하여 위기 상황을 막아내고 역전승한 경우가 많아서였다. 이후에는 필승조로 격상되어 승/패 상황은 많이 없어지고 홀드가 늘어났다.[3] 여담으로 당시 만루 피홈런 공동 1위는 개만두를 달성한 배영수이다(...)[4] 2실점을 하였으나 자책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