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0 00:13:42

배영수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13123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11px-Doosan_Bears.svg.png -1 [[두산 베어스|{{{#FFFFFF '''두산 베어스'''}}}]]
2019 시즌 투수
}}} ||
{{{#!wiki style="color:#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000000"
1 함덕주 · 11 이현호 · 16 김승회 · 18 박종기 · 19 권혁 · 20 곽빈 · 22 강동연
· 25 배영수 · 26 이정담 · 27 김강률 · 28 장원준 · 29 유희관 · 30 최대성 · 34 린드블럼
· 40 박신지 · 41 정철원 · 42 윤명준 · 43 후랭코프 · 45 이용찬 · 46 진재혁 · 47 홍상삼
· 48 이현승 · 50 이영하 · 51 윤수호 · 56 허준혁 · 58 김민규 · 59 문대원 · 60 배창현
· 61 최원준 · 63 변진수 · 64 박정준 · 66 박치국 · 68 이형범 · 69 김호준 · 93 정우석
· 94 정덕현 · 98 신현수 · 99 이동원 · 104 전창민 · 105 이교훈 · 106 이재민 · 108 정현욱
· 109 최현준 · 111 전형근 · 112 추종민 · 113 윤산흠 · 115 노유성 · 116 채지선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1 [[틀:KBO 리그 팀별 명단 둘러보기 틀|{{{#131230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배영수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수상 기록
2004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2004, 2013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2005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2004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2004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 ||
배영수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정회열(1999) 배영수(2000~2014) 타일러 클로이드(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37번
앨버스(2014) 배영수(2015~2016) 김진영(2017~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3번
최윤석(2016) 배영수(2017~2018) 윤승열(2019~)
두산 베어스 등번호 25번
양의지(2010~2018) 배영수(2019~) 현역
}}} ||
파일:돡영수첫등판.jpg
두산 베어스 No.25
배영수(裵英洙/Young-soo Bae)
생년월일 1981년 5월 4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북구
학력 대구칠성초 - 경복중 - 경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0~2014)
한화 이글스 (2015~2018)
두산 베어스 (2019~)
등장곡 Queen - 'We Will Rock You'[1]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주요 성적5. 부정투구 논란6. 트리비아
6.1. 야구 내6.2. 야구 외

1. 개요

두산 베어스 소속의 투수. KBO 리그 현역 최다승 투수[2]이며, 2000년대 중반 KBO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이자 우완 트로이카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쳤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칠성초, 경운중를 거쳐 대구의 야구명문 경북고를 졸업했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3] 또 한때는 "절정소년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4]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5],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6]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7],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2018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구단에서 은퇴를 제안했으나 현역 연장 의지를 밝히면서 한화를 떠나고 2019년부터 두산에서 활동한다.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배영수/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파일:f782dfc87d531025ea39ab4472f678db.gif
배영수가 토미존 서저리를 받기 전까지의 플레이 스타일은 140km/h 중, 후반 최고 155km/h를 기록하는 강력한 속구
파일:1539325574100.gif
평균속도 130km/h 중, 후반의 슬라이더
파일:ㄷㄴㅈㄱㅅㄱㅅㄱㄴㅂㅈㅇㄱ닋ㄱㅇ.gif
130km/h 후반에서 140km/h 정도의 평속이 나오는 스플리터[8] 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스타일로 존 스몰츠 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평가되었다. 이닝 소화 면에서도 2004년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비롯해 2005년도 최다이닝 4위, 2006년 팔꿈치 부상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의 연투능력이 있는 투수로서 강점을 보였다. 투구폼도 구속을 짜내기 위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 보이는[9] 스터프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투수로 kbo 최정상급의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10]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11][12]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13]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14]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15]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영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16]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삼성 25 45⅓ 0 2 0 0 0.000 6.75 59 9 24 32 36 34 1.77
2001 35 169⅔ 13 8 0 0 0.619 3.77 169 11 97 96 82 71 1.52
2002 22 81⅓ 6 7 0 0 0.462 5.53 94 13 48 63 55 50 1.68
2003 30 163⅔ 13
(3위)
5 0 0 0.722
(5위)
4.51 174 11 84 99 85 82 1.53
2004 35 189⅔
(3위)
17
(1위)
2 0 0 0.895
(1위)
2.61
(3위)
163 6 85 144
(4위)
65 55 1.25
(5위)
2005 31 173
(4위)
11 11 2 1 0.500 2.86
(2위)
148 10 59 147
(1위)
61 55 1.13
(2위)
2006 32 157⅓ 8 9 0 4 0.471 2.92 142 13 47 133 56 51 1.14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27 114⅔ 9 8 0 0 0.529 4.55 127 15 41 71 59 58 1.44
2009 23 75⅔ 1 12 0 0 0.077 7.26 106 18 29 40 73 61 1.69
2010 31 119⅔ 6 8 1 0 0.429 4.74 136 11 45 64 69 63 1.45
2011 25 103 6 8 0 1 0.429 5.42 127 5 33 47 67 62 1.50
2012 26 160 12
(5위)
8 0 0 0.600 3.21 159 7 42 89 64 57 1.24
2013 27 151 14
(1위)
4 0 0 0.778
(2위)
4.71 193 9 52 101 83 79 1.53
2014 25 133⅔ 8 6 0 0 0.571 5.45 171 14 44 111 87 81 1.57
연도 출장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한화 32 101 4 11 0 1 0.267 7.04 124 21 53 56 93 79 1.61
2016 1군 기록 없음
2017 25 128 7 8 0 0 0.467 5.06 155 17 42 86 82 72 1.44
2018 11 55⅔ 2 3 0 0 0.400 6.63 69 6 21 47 42 41 1.51
KBO 통산
(19시즌)
462 2122⅓
(5위)
137
(5위)
120 3 7 0.533 4.46 2316
(2위)
196 846 1426 1159
(2위)
1051
(2위)
1.43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3년 1완투 0완봉
2004년 4완투
(1위)
2완봉
(1위)
2005년 2완투
(3위)
1완봉
(2위)
2012년 2완투
(5위)
0완봉
2014년 1완투 0완봉
2017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11완투 3완봉

5. 부정투구 논란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백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백한 룰 위반이다. 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이 사건을 두고 몇몇 소수의 악질팬들이 아니라고 반박난리부르스하지만 이는 더욱 더 배영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다.[17] 배영수 역시 본인이 사과했지만 이는 배영수 커리어에 두고두고 남을 흑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100km 짜리 직구를 던졌다고 한다.

2017년 8월 20일 또 다시 롯데전에서 또 부정투구를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파일:부정투구2.gif
파일:부정투구1.gif

이는 샤인볼(공의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어 던지는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규정에 의하면 로진백을 터는 행위는 스피드업 관련 규정에 따라 1회 경고, 2회부터 볼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장 조사결과 허벅지에 왁스 바셀린 등이 묻어있어 부정투구임이 확인된다면 퇴장될 수 있다.

파일:영수긁적.gif

이후 MLB파크등 각종 야구커뮤니티에서는 배영수가 이전에도 이러한 행위를 했는지 찾았으며 그 결과, 롯데전 발까딱 부정투구 외에도 kt, 넥센전에서도 똑같은 방식의 부정투구 의혹이 있는 행위를 한것으로 재조명되었다. 이전 부정투구 의혹 영상들



2014년 삼성에 있을때도 똑같은 행위를 한것으로 확인되었다 [18]

배영수 본인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부정투구를 하지 않았고, 허벅지 유니폼에 문지른 기억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널들 모두 영상이 증거로 남아있고,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를 두는 행동을 한 배영수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며 규정상 명백한 부정투구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작 유니폼에 공을 문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부정투구에 관한 룰이 생긴 이상 행위의 의도나 경중을 떠나서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야기.

이후 KBO측에서 부정투구가 맞으며 차후 적발시 엄중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배영수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7월 12일 경기에서 로진백으로 2루심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비슷한 사례를 2014년 8월 28일 오주원(당시 이름 오재영)선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오주원 선수가 허벅지에 공을 문지르는 것을 김응룡 감독이 보고 항의를 하여 구두경고를 받은 바 있다.

6. 트리비아

6.1. 야구 내

  • 펠릭스 호세빈볼로 얽힌 악연으로 유명한데, 2001년 9월 18일 마산 롯데에서 호세에게 빈볼성 투구로 볼넷을 준 뒤 후속타자인 얀에게 또 다시 빈볼성 투구를 계속 던져[19] 허리를 맞추자 얀이 분노, 심판이 말리고 있는 사이 1루에서 분노한 호세가 달려와 주먹으로 때린 사건이다. 입단 첫 해에는 세이콘한테 죽빵을 뒤지도록 강타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호세한테 그렇게 쳐맞고도 멀쩡했다[20][21]
파일:/image/076/2013/06/25/2013062501002054200160873_59_20130625155406.jpg
파일:MVkfN0A.gif
헤이 영쑤!! 돈 두댓!
그 사건 이후 제가 야구를 잘하게 되었습니다, 예, 참교육 맞습니다 ㅋㅋ[22]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이 선수를 1군에 처음으로 등록한다.[23]
  • 그리고 이후 배영수가 성적이 좋아지자 호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참교육자"라는 말과 함께 그의 죽빵을 강타한 펀치는 "참교육"으로 불렸다.[24] 타팀 팬들이 자기 팀의 못하는 선수를 보고 죽빵을 때려달라면서 "참교육 한 번만 시켜주세요"라고 말한다. 장난인 줄 알았지만 방망이까지 들고 나와서 온몸으로 거부했던 신승현이 그렇게 됨으로써 완벽한 "참교육자"가 되어 버렸다.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절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2006년 WBC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던진 공은 아예 해설이 일부러 맞춘 것 같다고 대놓고 말했지만, 그때 한창 30년 발언 덕에 이치로에 대한 반발심이 들끓을 때라 '열사' 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환영받았다. 그리고 당시 구대성과 짜고서 일부러 맞춘 거라고 후에 밝혔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후 삼성은 2014년초를 기준으로 7회 우승 중 6회가 배영수가 데뷔한 후 달성한 것이고, 이승엽이 떠난 2000년대 중반의 삼성의 최대 흥행카드이기도 했다.
  • 2017년 부정투구 논란이 있다. 2017년 문단 참조.
  • KBO 통산 최다 보크 기록을 가지고 있다. 11개. 폭투도 통산 3위에 랭크되어있다.
  • 슬라이더를 박명환에게 배웠다고 한다. 올스타전에서 만났을 때 슬라이더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2004년에 MVP타는걸 보면서 박명환은 괜히 가르쳐줬다고 생각했다고(...).

6.2. 야구 외

파일:/image/109/2005/07/15/200507151644251100_1.jpg
  • 정수근과 묘하게 외모가 닮았다.[26] 그 덕분에 예전에 부산 원정을 갔을때 부산 사람들에게 정수근으로 오해받아 싸인요청까지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정수근으로 오해받은 덕택에 밥을 공짜로 얻어먹게 되어서 좋았다고. 그 때문에 한때 붙었던 별명이 배수근 그런데 정수근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정수근은 사투리를 안 쓰잖아 그 외에도 가수 은지원과 닮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 이대호처럼 어린시절이 상당히 불우했던 선수 중 하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이혼해서 도망치고 할머니와 누나가 함께 돌봐줬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 4월 2일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 때 완봉승을 챙기는 날 임종하셨다고 한다. 이 날 경기할 때 모자 챙 안쪽에다 '할머니 생각'이라고 써놓았다.
파일:/image/109/2005/04/05/200504051752231500_1.jpg
  • 위에 기술된 부상과 재활 과정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걸었던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이경필이 배영수에 대해 염려하기도 했다.
  •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한 인터뷰에서 그가 있었던 팀에서 생각나는 선수 3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배영수를 꼽았다.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갤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사방엠팍.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팬이나 한화팬이 삼성시절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남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2010년 12월 19일에 탤런트인 규휘(본명 박성희)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딸 2명을 낳았다. 딸바보 등극.
  • 2017년 5월 10일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다고 한다. #
  • 2019년 5월 5일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득남한 것으로 보인다. #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우선 그가 투혼을 발휘했던 걸로 잘 알려진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당시 고졸 신인으로써 돌풍을 일으키며 그해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를 모두 차지한 한화 류현진과 맞대결을 펼치게 되자 노장과 신예의 대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2006년 당시 배영수는 만 25세에 불과했다. 배영수의 노장 이미지는 2009년에 나온 게임빌 프로야구 시리즈 중 하나인 2010 프로야구에서도 드러나는데, 투수 스킬 중 11년차 이상 투수에게 주어지는 '노련함' 이라는 스킬이 등장하는데, 배영수의 경우 2009년 기준 만 28세였는데도 '노련함' 스킬이 붙어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넥센 김성태와 선발 맞대결을 펼친 경기에서는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김현수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개만두를 시전하였는데 그 다음 등판인 4월 7일 NC전에서 "개만두 아십니까. 저, 개만두 됐습니다. 개만두!"라고 기자들한테 말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영수의 멘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 그리고 깨알같은 선배 박찬호의 디스까지 #
  • 배영수 아줌마[27], 배영수 이모, 꽹가리 이모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팬이 있다.[28] 직관팬들은 시끄럽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항상 배영수 유니폼을 입고 와서 꽹가리를 두들기며 응원하는 중년 여성으로 예전에는 김실을 응원하셨으며, 이 후에는 아들이 배영수와 동갑이라서 배영수를 응원했다고 한다. 삼성팬들에게 워낙 유명인사였던 지라 2014년 7월 29일 경기에서는 삼성 구단에서 이 배영수 이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날 경기는 차우찬핵폭발 하면서 패배... 이 분은 배영수 이적 후 김상수로 갈아타셨다고 한다. 이젠 상수아지매
  • 통산 승리 5위이다.
  • 운명의 장난인지 두 번이나 팀을 옮겼는데도 매 시즌마다 권혁과 같은 팀이다(삼성 ~2014, 한화 2015~2018, 두산 2019~).


[1]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손승락 응원가의 원곡과 같다.[2] 우완투수로서도 최다승. 좌완투수 현역 최다승 투수는 같은 팀의 장원준[3]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입김이 있었다고 한다.[4]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5]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6] 말 그대로 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7] 배영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8] 잡는걸 보면 스플리터가 맞다. 배영수 본인도 스플리터를 던진다고 한다.[9]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10]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11]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12]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13]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14]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15]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16] 배영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17] 소수 악질 빠들이 해커를 예시로 반박하지만 해커는 꾸준히 같은 패턴으로 던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18] 본영상 35초부터[19] 훗날 배영수가 말하길 당시 슬라이더가 손에서 빠지는 바람에 그런 거라고 해명했다. 호세는 벤치에서 사인도 있고 해서 계속 몸쪽으로 던진 거고.[20] 이때 중재시키던 이민호심판이 하도 족발과 맥주병을 맞아서 심판 그만두려고 했다고[21] 배영수가 마운드에서 날아갈 정도로 세게 맞았다. 이후 공 집어던지려다 참았다고.[22] 배영수가 나중에 참교육 사건에 대해 직접 설명하면서 실제로 했던 말이다.[23] 그리고 호세는 그해 KBO 역사에 남을 성적을 올리고도 '폭행사건으로 깎인 이미지'+'투표단의 용병 차별'로 여러모로 본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타자들에게 밀려서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는데 공교롭게도 선수 모두 배영수와 같은 삼성 소속이었다.(다만 양준혁은 2001 시즌 LG에서 뛰다가 골든글러브 수상즈음 삼성으로 복귀하게 된다.)[24] 근데, 롯데팬은 좋아하더라도 타팀 팬들은 호세를 싫어하는게 도핑 경력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반가워 하지 않는다.[25] 아이러니하게도 조인성과 배영수는 훗날 한 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26] 그리고 14년 후 그는 정수근의 친정팀인 두산으로 오게 된다.[27] 현지 대구쪽의 삼성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영수아지매.[28] 원래는 김실의 팬이어서 실이아줌마라고도 불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