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13 08:19:53

발비노 갈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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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49c00> 1936~1937 1938 춘계 1938 추계 1939 1940~1941
사와무라 에이지 빅토르 스타루힌 마에카와 하치로 카와카미 테츠하루 빅토르 스타루힌
<rowcolor=#f49c00> 1942 1943 1944 1946 1947~1948
히로세 슈이치 빅토르 스타루힌 후지모토 히데오 콘도 사다오 카와사키 토쿠지
<rowcolor=#f49c00> 1949 1950 1951 1952 1953
타다 후쿠조 후지모토 히데오 벳쇼 타케히코 후지모토 히데오 벳쇼 타케히코
<rowcolor=#f49c00> 1954 1955~1956 1957 1958 1959~1960
오오토모 타쿠미 벳쇼 타케히코 오오토모 타쿠미 후지타 모토시 이토 요시아키
<rowcolor=#f49c00> 1961 1962 1963 1964 1965~1966
나카무라 미노루 죠노우치 쿠니오 이토 요시아키 타카하시 아키라 카네다 마사이치
<rowcolor=#f49c00> 1967 1968~1969 1970 1971 1972~1973
죠노우치 쿠니오 카네다 마사이치 타카하시 카즈미 와타나베 히데타케 호리우치 츠네오
<rowcolor=#f49c00> 1974 1975~1978 1979 1980 1981
타카하시 카즈미 호리우치 츠네오 니우라 히사오 에가와 스구루 니시모토 타카시
<rowcolor=#f49c00> 1982 1983 1984 1985 1986
에가와 스구루 니시모토 타카시 에가와 스구루 니시모토 타카시 에가와 스구루
<rowcolor=#f49c00> 1987 1988~1989 1990 1991~1992 1993~1997
니시모토 타카시 쿠와타 마스미 사이토 마사키 마키하라 히로미 사이토 마사키
<rowcolor=#f49c00> 1998 1999 2000~2006 2007 2008
쿠와타 마스미 발비노 갈베스 우에하라 코지 우츠미 테츠야 타카하시 히사노리
<rowcolor=#f49c00> 2009 2010 2011 2012 2013
세스 그레이싱어 우츠미 테츠야 토노 슌 우츠미 테츠야 미야구니 료스케
<rowcolor=#f49c00> 2014~2016 2017 2018~2022 2023 2024~2025
스가노 토모유키 마일스 마이콜라스 스가노 토모유키 타일러 비디 토고 쇼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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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 방출
(2) 시즌 중 이적/방출
(3) 대체 영입
* 등록명을 우선적으로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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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비노 갈베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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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rowcolor=#ffffff> 1936秋 1937春 1937秋 1938春 1938秋
사와무라 에이지
도쿄쿄진군 / 13승
사와무라 에이지
도쿄쿄진군 / 24승
니시무라 유키오
오사카 / 15승
빅토르 스타루힌
도쿄쿄진군 / 15승
노구치 아키라
도쿄세네터즈 / 15승
빅토르 스타루힌
도쿄쿄진군 / 14승
빅토르 스타루힌
도쿄쿄진군 / 19승
<rowcolor=#ffffff> 1939 1940 1941 1942 1943
빅토르 스타루힌
도쿄쿄진군 / 42승
빅토르 스타루힌
도쿄쿄진군 / 38승
모리 코타로
한큐군 / 30승
노구치 지로
타이요군 / 40승
후지모토 히데오
도쿄쿄진군 / 34승
<rowcolor=#ffffff> 1944 1946 1947 1948 1949
와카바야시 타다시
한신군 / 22승
시라키 기이치로
세네터즈 / 30승
벳쇼 타케히코
난카이 / 30승
카와사키 토쿠지
나카오 히로시
요미우리 / 27승
빅토르 스타루힌
다이에이 / 27승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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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rowcolor=#ffffff> 1950 1951 1952 1953 1954
사나다 쥬조
쇼치쿠 / 39승
스기시타 시게루
나고야 / 28승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33승
오오토모 타쿠미
요미우리 / 27승
스기시타 시게루
나고야 / 32승
<rowcolor=#ffffff> 1955 1956 1957 1958 1959
오오토모 타쿠미
요미우리 / 30승
하세가와 료헤이
히로시마 / 30승
벳쇼 타케히코
요미우리 / 27승
카네다 마사이치
코쿠테츠 / 28승
카네다 마사이치
코쿠테츠 / 31승
후지타 모토시
요미우리 / 27승
<rowcolor=#ffffff> 1960 1961 1962 1963 1964
호리모토 리츠오
요미우리 / 29승
곤도 히로시
주니치 / 35승
곤도 히로시
주니치 / 30승
카네다 마사이치
코쿠테츠 / 30승
진 바키
한신 / 29승
<rowcolor=#ffffff> 1965 1966 1967 1968 1969
무라야마 미노루
한신 / 25승
무라야마 미노루
한신 / 24승
오가와 켄타로
주니치 / 29승
에나츠 유타카
한신 / 25승
타카하시 카즈미
요미우리 / 22승
<rowcolor=#ffffff> 1970 1971 1972 1973 1974
히라마츠 마사지
타이요 / 25승
히라마츠 마사지
타이요 / 17승
호리우치 츠네오
요미우리 / 26승
에나츠 유타카
한신 / 24승
마츠모토 유키츠라
주니치 / 20승
카네시로 모토야스
히로시마 / 20승
<rowcolor=#ffffff> 1975 1976 1977 1978 1979
소토코바 요시로
히로시마 / 20승
이케가야 코지로
히로시마 / 20승
타카하시 사토시
히로시마 / 20승
노무라 오사무
타이요 / 17승
코바야시 시게루
한신 / 22승
<rowcolor=#ffffff> 1980 1981 1982 1983 1984
에가와 스구루
요미우리 / 16승
에가와 스구루
요미우리 / 20승
키타벳푸 마나부
히로시마 / 20승
엔도 카즈히코
타이요 / 18승
엔도 카즈히코
타이요 / 17승
<rowcolor=#ffffff> 1985 1986 1987 1988 1989
코마츠 타츠오
주니치 / 17승
키타벳푸 마나부
히로시마 / 18승
코마츠 타츠오
주니치 / 17승
코마츠 타츠오
주니치 / 18승
이토 아키미츠
야쿠르트 / 18승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 20승
니시모토 타카시
주니치 / 20승
<rowcolor=#ffffff> 1990 1991 1992 1993 1994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 20승
사사오카 신지
히로시마 / 17승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 17승
이마나카 신지
야마모토 마사
이상 주니치 / 17승
노무라 히로키
요코하마 / 17승
야마모토 마사
주니치 / 19승
<rowcolor=#ffffff> 1995 1996 1997 1998 1999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 18승
사이토 마사키
발비노 갈베스
요미우리 / 16승
야마모토 마사
주니치 / 18승
카와사키 켄지로
야쿠르트 / 17승
우에하라 코지
요미우리 / 20승
<rowcolor=#ffffff> 2000 2001 2002 2003 2004
멜빈 번치
주니치 / 14승
후지이 슈고
야쿠르트 / 14승
우에하라 코지
요미우리 / 17승
케빈 호지스
야쿠르트 / 17승
이가와 케이
한신 / 20승
카와카미 켄신
주니치 / 17승
<rowcolor=#ffffff> 2005 2006 2007 2008 2009
쿠로다 히로키
히로시마 / 15승
시모야나기 츠요시
한신 / 15승
카와카미 켄신
주니치 / 17승
세스 그레이싱어
야쿠르트 / 16승
세스 그레이싱어
요미우리 / 17승
요시미 카즈키
주니치 / 16승
타테야마 쇼헤이
야쿠르트 / 16승
<rowcolor=#ffffff> 2010 2011 2012 2013 2014
마에다 켄타
히로시마 / 15승
요시미 카즈키
주니치 / 18승
우츠미 테츠야
요미우리 / 18승
우츠미 테츠야
요미우리 / 15승
오가와 야스히로
야쿠르트 / 16승
랜디 메신저
한신 / 13승
야마이 다이스케
주니치 / 13승
<rowcolor=#ffffff> 2015 2016 2017 2018 2019
마에다 켄타
히로시마 / 15승
노무라 유스케
히로시마 / 16승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17승
오세라 다이치
히로시마 / 15승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15승
야마구치 슌
요미우리 / 15승
<rowcolor=#ffffff> 2020 2021 2022 2023 2024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14승
아오야기 코요
한신 / 13승
쿠리 아렌
히로시마 / 13승
아오야기 코요
한신 / 13승
아즈마 카츠키
DeNA / 16승
스가노 토모유키
요미우리 / 15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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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rowcolor=#ffffff> 1950 1951 1952 1953 1954
아라마키 아츠시
마이니치 / 26승
에토 하루야스
난카이 / 24승
노구치 마사아키
니시테츠 / 23승
카와사키 토쿠지
니시테츠 / 24승
타쿠와 모토지
난카이 / 26승
타나카 후미오
킨테츠 / 26승
<rowcolor=#ffffff> 1955 1956 1957 1958 1959
타쿠와 모토지
난카이 / 24승
미우라 마사요시
다이에이 / 29승
이나오 카즈히사
니시테츠 / 35승
이나오 카즈히사
니시테츠 / 33승
스기우라 타다시
난카이 / 38승
<rowcolor=#ffffff> 1960 1961 1962 1963 1964
오노 쇼이치
다이마이 / 33승
이나오 카즈히사
니시테츠 / 42승
쿠보 마사히로
킨테츠 / 28승
이나오 카즈히사
니시테츠 / 28승
코야마 마사아키
도쿄오리온즈 / 30승
<rowcolor=#ffffff> 1965 1966 1967 1968 1969
오자키 유키오
토에이 / 27승
요네다 테츠야
한큐 / 25승
이케나가 마사아키
니시테츠 / 23승
미나가와 무츠오
난카이 / 31승
스즈키 케이시
킨테츠 / 24승
<rowcolor=#ffffff> 1970 1971 1972 1973 1974
나리타 후미오
롯데 / 25승
키타루 마사아키
롯데 / 21승
야마다 히사시
한큐 / 20승
카네다 토메히로
토에이 / 20승
나리타 후미오
롯데 / 21승
카네다 토메히로
롯데 / 16승
<rowcolor=#ffffff> 1975 1976 1977 1978 1979
히가시오 오사무
타이헤이요클럽 / 23승
야마다 히사시
한큐 / 26승
스즈키 케이시
킨테츠 / 20승
스즈키 케이시
킨테츠 / 25승
야마다 히사시
한큐 / 21승
<rowcolor=#ffffff> 1980 1981 1982 1983 1984
키다 이사무
닛폰햄 / 22승
이마이 유타로
한큐 / 19승
무라타 쵸지
롯데 / 19승
쿠도 미키오
닛폰햄 / 20승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 18승
야마우치 카즈히로
난카이 / 18승
이마이 유타로
한큐 / 21승
<rowcolor=#ffffff> 1985 1986 1987 1988 1989
사토 요시노리
한큐 / 21승
와타나베 히사노부
세이부 / 16승
야마오키 유키히코
한큐 / 19승
와타나베 히사노부
세이부 / 15승
니시자키 유키히로
마츠우라 히로아키
닛폰햄 / 15승
아와노 히데유키
킨테츠 / 19승
<rowcolor=#ffffff> 1990 1991 1992 1993 1994
와타나베 히사노부
세이부 / 18승
노모 히데오
킨테츠 / 18승
노모 히데오
킨테츠 / 17승
노모 히데오
킨테츠 / 18승
노모 히데오
킨테츠 / 17승
노다 코지
오릭스 / 17승
이라부 히데키
롯데 / 15승
<rowcolor=#ffffff> 1995 1996 1997 1998 1999
킵 그로스
닛폰햄 / 16승
킵 그로스
닛폰햄 / 17승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 15승
코이케 히데오
킨테츠 / 15승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 13승
타케다 카즈히로
다이에 / 13승
쿠로키 토모히로
롯데 / 13승
마츠자카 다이스케
세이부 / 16승
<rowcolor=#ffffff> 2000 2001 2002 2003 2004
마츠자카 다이스케
세이부 / 14승
마츠자카 다이스케
세이부 / 15승
제레미 파웰
킨테츠 / 17승
사이토 카즈미
다이에 / 20승
이와쿠마 히사시
킨테츠 / 15승
<rowcolor=#ffffff> 2005 2006 2007 2008 2009
스기우치 토시야
소프트뱅크 / 18승
사이토 카즈미
소프트뱅크 / 18승
와쿠이 히데아키
세이부 / 17승
이와쿠마 히사시
라쿠텐 / 21승
와쿠이 히데아키
세이부 / 16승
<rowcolor=#ffffff> 2010 2011 2012 2013 2014
와다 츠요시
소프트뱅크 / 17승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 17승
D.J. 홀튼
소프트뱅크 / 19승
타나카 마사히로
라쿠텐 / 19승
셋츠 타다시
소프트뱅크 / 17승
타나카 마사히로
라쿠텐 / 24승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 16승
<rowcolor=#ffffff> 2015 2016 2017 2018 2019
오타니 쇼헤이
닛폰햄 / 15승
와쿠이 히데아키
롯데 / 15승
와다 츠요시
소프트뱅크 / 15승
히가시하마 나오
소프트뱅크 / 16승
키쿠치 유세이
세이부 / 16승
타와타 신사부로
세이부 / 16승
아리하라 코헤이
닛폰햄 / 15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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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요시노부
오릭스 / 15승
야마모토 요시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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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미
닛폰햄 / 15승
아리하라 코헤이
소프트뱅크 / 1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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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1.5.3.)
갈베스
(2001.5.8.~2001)
정경주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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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비노 갈베스
Balvino Galvez
본명 발비노 갈베스 헤레스
Balvino Gálvez Jerez
출생 1964년 3월 31일 ([age(1964-03-31)]세)
도미니카 공화국 산페드로 데 마코리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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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산페드로 데 마코리스 고등학교
신체 183cm, 77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1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6)
슝디 엘리펀츠 (1994~1995)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6~2000)
삼성 라이온즈 (2001)

1. 개요2. 선수 경력
2.1. 일본 시절2.2. 삼성 라이온즈
2.2.1. 2001 시즌
2.3. 연도별 성적
3. 괴팍한 성격4. 관련 문서

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전 야구선수. 별명은 카리브해의 괴물.

대만프로야구, 일본프로야구, 한국프로야구에서 선발 투수로 뛰며 활약했던 선수지만, 실력보다도 그 괴팍한 성격 때문에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선수.

2. 선수 경력

2.1. 일본 시절

1981년 LA 다저스에 입단하지만, 198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잠시 올라온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보냈다.

이후 1994년 대만프로야구 슝디 엘리펀츠에 입단하여 16승, 1995년 10승을 기록했고[1] 1996년에는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춘계캠프에서 입단 테스트를 통해 요미우리에 입단하게 된다.

입단 첫 해인 1996년에 팀 동료 사이토 마사키와 함께 16승으로 공동 다승왕 자리에 오르며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2]의 주역이 되었고, 1999년에는 요미우리의 사상 첫 외국인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펼친다. 그러나 2000년, 개막 후 6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6경기 모두 3자책 이하로 막으며 평균자책점 3.26이라는 괜찮은 피칭에도 불구하고 0승 6패의 영 좋지 않은 기록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고 결국 요미우리에서 방출당한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5시즌 46승 43패 34완투 7완봉 평균자책점 3.31. 다승왕 1회, 올스타 1회, 리그 최다 완투 2회, 10홈런.[3]

2.2. 삼성 라이온즈

2.2.1. 2001 시즌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ERA- WAR
15 116.2 10 4 0.714 2.47 100 7 42 85 42 32 1.15 49.52 4.28
결론부터 말하자면 WAR 4.28에 ERA- 기준으로 49.52[4], 즉 일본리그에서 호성적을 기록했던 선수답게 KBO에서는 이닝이터로서 맹활약을 하다 못해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먹었다. 애초에 시즌 중 합류해 4.28의 WAR를 기록했단 것 자체가 무시무시했단 증거다. 허나 한국시리즈에서는 신나게 두들겨 맞고 성적 외적인 부분에서 여러 번 잡음이 들리며, 경이로운 정규시즌 성적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작 한 시즌만 뛰고 팀을 떠나게 된다.

이어서 시즌 내용을 보자면 갈베스는 00년까지 요미우리에서 뛰다가 시즌 후 요미우리와 재계약에 실패했고, 멕시코 리그에서 뛰다가 2001년 5월 부상으로 퇴출된 살로몬 토레스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와 연봉 20만 달러에 계약하였다.[5] 시즌 중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15경기를 선발 등판해서 9회에도 149km/h[6]대 강속구를 뿌리는 등 특유의 강철 체력으로 당시 나이 37세의[7] 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평균 7.78이닝이라는 이닝 이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5완투 2완봉 10승 4패 평균자책점 2.47로 삼성 선발진에서 맹활약했다.[8]

하지만 후술하듯이 8월 이후 돌연 귀국한 뒤 시즌이 끝날 때까지 한국 입국을 연기하는 등 멘탈 문제로 각종 잡음이 끊이질 않았고, 어찌어찌 잠적 끝에 돌아온 뒤에도 2001년 한국시리즈 1,4차전에서 도합 6이닝 10실점이라는 최악의 피칭[9]을 보이고 여기에 상술했던 멘탈 문제, 많은 나이까지 겹쳐 결국 재계약에 실패하며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에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메이저리그의 문을 다시 두드렸으나, 계약한지 1주일도 안 되어서 투수코치와 싸우고 짐을 싸서 팀을 이탈한 뒤에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에는 자신의 사비로 도미니카에 야구 아카데미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2.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6 LAD 10 20⅔ 0 1 0 - 3.92 19 12 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4 중신 27 201⅓ 16 5 4 - 2.55 186 44 132
1995 21 168⅔ 10 11 0 - 2.51 161 42 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6 요미우리 28 203⅔
(1위)
16
(공동 1위)
6 0 - 3.05
(2위)
186
(2위)
68 112
1997 27 192⅔
(2위)
12
(4위)
12
(공동 3위)
0 - 3.32 165
(5위)
53 118
1998 18 137⅓ 9 7 0 - 3.21 136 48 85
1999 27 187
(4위)
9 12
(2위)
0 - 3.66 174 57 106
2000 6 30⅓ 0 6 0 - 3.26 34 8 2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 삼성 15 116⅔ 10 4 0 0 2.47 100 42 85
<colbgcolor=#ffff88> MLB 통산(1시즌) 10 20⅔ 0 1 0 - 3.92 19 12 11
CPBL 통산(2시즌) 48 370 26 16 4 - 2.53 347 86 203
NPB 통산(5시즌) 106 751 46 43 0 - 3.31 695 234 443
KBO 통산(1시즌) 15 116⅔ 10 4 0 0 2.47 100 42 85

3. 괴팍한 성격

갈베스는 실력은 뛰어났지만 성격이 나쁘기로 악명 높았다. 좋지 않은 멘탈로 인해 사고를 치고 다녔다.

주자를 허용하면 신경질적으로 변하여 심판의 판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심해서 미트를 땅바닥에 던진다든지, 혹은 공을 아무데나 던진다든지 해서[10] 벤치 클리어링 사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두통을 늘린 주요 원인 중 하나.[11]

심지어 1998년 7월 31일에는, 한신 타이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강판 당한 뒤, 판정에 불만을 품고 깃타카 아츠시(橘高淳) 구심을 향해 패스트볼성 위협구를 그대로 세게 던저서 흥분한 심판들과 벤치 클리어링을 하는 사건을 남기기도 했다. 팀 관계자에 의하면 갈베스는 그 날 게임 시작 전부터 짜증을 내고 있었으며, 평소 자신과 잘맞는 구심과 그렇지 않은 구심을 구분해놓고 있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깃타카 심판은 후자였다는 게 문제, 승부구로 던진 코스에 던진 볼이 전부 볼판정을 받았다. 사실 그날도 구심은 공정했고 갈베스는 평소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분을 참지 못했던 것. 결정적으로 볼판정 바로 이후에 홈런을 맞으면서[12] 심판에게 볼판정에 대해 항의했고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투수를 교체하기로 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중에 분을 참지 못하고 심판을 향해 강속구를 던져버리고, 심판이 이에 항의하면서 심판과 선수의 벤치 클리어링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13] 결국 갈베스는 즉시 퇴장 처분, 1998년 잔여경기 출장금지 징계를 받았고, 구단 자체적으로도 무기한 출장정지 및 4천만엔 벌금 처분을 내렸다.[14]

주먹 실력도 상당했던 선수였다. 강타자 야마사키 타케시[15]가 주니치 시절 갈베스에게 데드볼을 얻어맞고 마운드로 걸어올라가 기싸움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안면에 무자비한 펀치연타를 얻어맞은 일이 있었다. 다만 이건 갈베스가 자신의 주먹실력만 믿고 일본 선수들을 얕보다가 그걸 벼르고 벼르던 야마사키가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야마사키도 일본인 선수 중에서는 상당한 피지컬을 갖고 있어서 나름 호기를 부리긴 했지만 결과는 앞니 3개가 빠졌다[16].

삼성에서도 성깔 때문에 민폐를 많이 끼쳤다. 정규 시즌 때의 성적과 퍼포먼스 자체는 뛰어났지만, 역시 일본 시절부터 타고났던 성격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특히 10승을 거둔 이후 돌연 귀국해버리는... 등 그의 행보는 최악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가 계약서에 적힌 옵션 조건이 10승이어서 "딱 10승만 달성"하고 그 이후로 태업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17] 그러나 나중에 김응용이 삼성 라이온즈 때문에 산다라는 책에서 김은식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 멘탈 문제로 속을 썩이긴 했지만 실제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은 시즌 막판에 당한 부상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응용이 10년 전의 용병에 대해 저렇게 말했다면 실드가 아니라 부상이 부진의 원인이 맞는 듯. 그리고 그 이후로 야구선수 생활을 하지 못한 걸 보면 생각보다 부상이 치명적인[18]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직 삼성 팬들에겐 시즌 막판 돌연 귀국을 한 기행과 한국시리즈 부진 때문에 태업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한 편이긴 하다.

삼성 시절의 대표적인 민폐 사례는 시즌 10승을 거둔 직후인 2001년 8월 20일, 모친의 병환을 이유로 고국에 돌아간 뒤 부상 등 갖가지 핑계를 대가며 무려 7번씩이나 한국 입국을 미루었던 사건.[19] 처음엔 모친의 입원수속 절차 문제로 미루다가, 마침 시의적절하게 터진 9.11 테러를 핑계로 또 미루고,[20] 이후에는 어깨에 부상이 있어 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또 미뤘다. 우여곡절 끝에 김재하[21] 단장이 도미니카공화국까지 가서 수소문한 끝에 시즌이 다 끝난 10월 4일에야 입국했지만, 무려 45일이나 운동을 쉬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전까지 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몸을 만들 시간이 부족했는지,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규시즌 당시 포스는 죄다 사라지고 구위가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 결정적인 건 4차전에서의 대량 실점. 삼성 라이온즈 입장에선 에이스라고 데려왔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뒤통수를 맞았다. 이로 인해 삼성팬들 사이에선 최악의 용병 얘기가 나오면 톰 션[22], 에스마일린 카리대, 아놀드 레온과 함께 갈베스의 이름이 꼭 나온다.[23]

한편 이렇게 제멋대로였던 갈베스에게 단단히 혼이 난 삼성 프런트는, 이후 외국인 선수 영입 때 반드시 인성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24]

다만 갈베스의 성질머리는 마운드 위에서만 한정인 듯하며 마운드 밖에서는 상당히 예의바르고 멀쩡한 사람이었다는 증언이 많다. 호리우치 츠네오는 갈베스에 대해 평상시에는 신사적이지만 마운드에만 서면 딴사람이 되던 유형이었다고 회고를 했는데, 그럴만한 것이 요미우리 시절 마운드에 서지 않았을 땐 사생활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고 팀내의 젊은 투수들에게 야구 관련으로 조언도 많이 해 줬다고 하며, 동향이었던 도밍고 마르티네스가 갓 요미우리에 입단하고나서 일본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도미니카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면서 챙겨주는 등 일본 생활에 적응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마운드에서 자제력이 떨어졌다는 점 때문에 두고두고 회자가 된 아쉬운 케이스.

4. 관련 문서


[1] 대만프로야구 통산 2시즌 48경기 42선발 34완투 8완봉 26승 16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53.[2] 일본시리즈 우승은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끌고 스즈키 이치로가 활약하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차지가 된다.[3] 좋은 타격 실력을 가진 투수로도 유명했으며 투수가 한 시즌에 만루홈런을 2번 친 경우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99년의 갈베스가 유일하다. 통산 타격 성적은 259타수 39안타 10홈런 30타점 타출장 .151/.163/.297[4] 쉽게 말하자면 ERA-는 낮을수록 좋고, 100이 투고성향 제외 시 ERA 4점 정도로 평가되니 투고성향을 제외 시 ERA 1.98 수준의 활약을 했다고 보면 편하다.[5] 물론 명목상 발표한 금액만 20만 달러고, 갈베스가 직전 시즌 요미우리에서 연봉으로만 2억 5000만엔을 받았다는 걸 감안하면 최소 150만~200만 달러는 줬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삼성이 갈베스와 20만 달러에 계약했다고 발표하자 몇몇 팀에서 이면계약설을 주장하기도 했다.[6] 2001년 6월 28일 대전 한화전. 갈베스의 삼성 시절 최고구속은 이날 7회에 황우구를 상대로 던진 151km/h. 요미우리에서의 최고구속도 1996년의 151km/h이다.[7] 실제 나이는 이것보다 더 많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중남미 선수들의 경우 메이저리그 구단과 조금 더 좋은 조건에 계약하기 위해 나이를 낮춰서 등록하는 일이 잦았고, 거기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우 행정 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실제 생년월일과 등록상 생년월일이 다른 경우가 많고, 더 심할경우 실제 생년월일을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알폰소 소리아노훌리오 프랑코가 대표적인 사례.[8] 6월 16일 광주 해태전에서 완봉승(5-0)을 거뒀으며 이 과정에서 KBO 외국인투수 사상 최초로 완봉승을 기록했다.[9] 참고로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은 18:11로 두산 베어스가 승리하였는데, 3회말에만 3:8로 뒤진 상황에서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차례로 털리면서 김동주의 한국시리즈 사상 2번째 만루홈런과 이후 안경현의 솔로 홈런 등 무려 12점을 뽑아내며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 득점을 기록한 경기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사상 첫 선발 타자 전원 득점, 한 이닝 최다 타석(15타석), 최다 점수차 역전승 등 각종 한국시리즈 관련 기록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갈베스는 이러한 막장 상황을 만든 주범 중 하나인 셈.[10] 주니치 시절 이종범도 한창 잘 나가던 도중, 갈베스의 빈볼에 "헤드샷"을 당한 적이 있다. 갈베스 영상속에 헤드샷 맞고 머리를 감싸고 구르는 선수가 이종범이다. 이종범은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청산하고 국내로 복귀 했을때 2번씩이나 헤드샷을 당했다. 그중 한번은 안면쪽에 맞아서 함몰된다.[11]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 중엔 의도적으로 일본 국내 선수들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 야구선수들의 평균 체격은 한국 선수들보다도 작은데,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체격이 크다 보니 위협을 하기가 쉬운 편이다. 또 위협적인 행동을 해서 상대를 위축시킴과 동시에 자신의 플레이를 펼침에 있어서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한 측면도 있다. 그걸 가장 잘 이용한 선수들 중 타이론 우즈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용병들의 경우 몸값이 높고 나름 수준이 있는 데다 큰 선수들이 유난히 많아서 다혈질 용병이 드물지만은 않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의 증언으로는 아예 영입한 이후 팀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몸싸움 요원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2] 이 때 홈런을 때려낸 선수는 이 해에 데뷔한 츠보이 토모치카(坪井智哉; 現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1군 타격 코치)로 시즌 2호. 이 때 날린게 프로 통산 첫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었다고 한다(시즌 1호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13] 이때 갈베스를 말리던 포수 요시하라 코스케가 흥분한 갈베스의 팔꿈치에 입을 가격당해 코피를 흘리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잡는 팔을 갈베스가 마구 뿌리치면서 쳤다. 거기에 갈베스의 무시무시한 힘은 덤. 그를 붙잡는 요미우리 선수 & 코치 10여명이 오히려 갈베스가 용을 쓰자 질질 끌려다닌다.[14] 이는 순수 벌금으로는 NPB 역사상 최고액이다.[15] 기복이 많은 커리어였지만 어찌저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부활하여 39세의 나이에 홈런왕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인다.[16] 일례로 마해영이 몸담던 삼성 시절 한화랑 벤치 클리어링이 터졌는데 이날 양팀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흥분해서 선수 본인은 휘말리지 않으려고 싸움을 중재하려 했는데 오히려 피해를 본 케이스다. 그날 이빨 1개인가 2개인가 부셔졌다고 한다.[17] 김은식 저, 한국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 출처.[18] 그로부터 22년 후, 서울의 모 팀 용병이 전반기 이후 팀에 나갔다.[19] 옵션 조건이 10승 달성이라 해당 목표를 이루자마자 태업을 했다는 설, 포스트 시즌 출전에 따른 옵션이라는 설, 팀 동료 용병인 카를로스 바에르가와의 불화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갈베스는 같은 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에르가와는 같이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바에르가를 피해다닐 정도였다고 한다.[20] 당시 상황상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다. 9.11 테러가 터진 직후 미국 영공을 비행 중인 여객기들을 강제로 착륙시켰을 정도로 미국 전역이 아비규환인 상황이었고, 테러 재발 방지를 위해 보안검색 및 미국 입출국심사 규정, 거기다 흑인, 아랍인, 유색인종 등에 대한 보안검색 규정도 한층 강화되었기 때문이다.[21] 삼성 시절 돈성이라고 불린 이유가 이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22] 이 사람은 한국의 매덕스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꾸준히 훈련을 했다고 한다. 다만 실전에서는 성적이 개판이라 불쌍한 침착의 여지가 있을뿐 카리대나 레온 처럼 구단이나 감독 디스하는 일은 없었다.[23] 여기서 카리대와 갈베스는 사용한 번호가 똑같다. 그리고 감독에게 디스 한건 똑같다.[24] 물론 이후에 인성을 고려하게 된 이유는 암묵적으로 인정받는 야마이코 나바로이다. 방출 후 알려진 내용으로는 워크에식이 안 좋다고 퍼지면서 인성이고 나발이고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