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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비노 갈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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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발비노 갈베스 (Balvino Galvez)
생년월일 1964년 3월 31일 ([age(1964-03-31)]세)
국적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png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지 산페드로 데 마코리스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1년 LA 다저스
소속팀 LA 다저스(1986)
슝디 엘리펀츠(1994~1995)
요미우리 자이언츠(1996~2000)
삼성 라이온즈(2001)
2001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송진우(한화 이글스) 발비노 갈베스(삼성 라이온즈)
손민한(롯데 자이언츠)
신윤호(LG 트윈스)
김현욱(삼성 라이온즈)

1. 소개2. 선수 커리어
2.1. 연도별 성적
3. 괴팍한 성격

1. 소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전 야구선수. 별명은 카리브해의 괴물.

대만프로야구, 일본프로야구, 한국프로야구에서 선발 투수로 뛰며 활약했던 선수지만, 실력보다도 그 역대급으로 괴팍한 성격 때문에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선수. 삼성의 흔한 참교육러 만약 그가 호세와 맞붙는다면?

2. 선수 커리어

1981년 LA 다저스에 입단하지만, 198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잠시 올라온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보냈다.

이후 1994년 대만프로야구 슝디 엘리펀츠에 입단하여 16승, 1995년 10승을 기록했고[1] 1996년에는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춘계캠프에서 입단 테스트를 통해 요미우리에 입단하게 된다.

입단 첫 해인 1996년에 팀 동료 사이토 마사키와 함께 16승으로 공동 다승왕 자리에 오르며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2]의 주역이 되었고, 1999년에는 요미우리의 사상 첫 외국인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펼친다. 그러나 2000년, 개막 후 6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6경기 모두 3자책 이하로 막으며 평균자책점 3.26이라는 괜찮은 피칭에도 불구하고 0승 6패의 영 좋지 않은 기록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고 결국 요미우리에서 방출당한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5시즌 46승 43패 34완투 7완봉 평균자책점 3.31. 다승왕 1회, 올스타 1회, 리그 최다 완투 2회, 10홈런.[3]

1998년 7월 31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강판 당한 뒤, 깃타카 아츠시(橘高淳) 구심을 향해 위협구를 던져버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팀 관계자에 의하면 갈베스는 그 날 게임 시작 전부터 짜증을 내고 있었으며, 평소 자신과 잘맞는 구심과 그렇지 않은 구심을 구분해놓고 있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깃타카 심판은 후자였다는 게 문제, 승부구로 던진 코스에 던진 볼이 전부 볼판정을 받았다. 사실 그날도 구심은 공정했고 갈베스는 평소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분을 참지 못했던 것. 결정적으로 볼판정 바로 이후에 홈런을 맞으면서[4] 심판에게 볼판정에 대해 항의했고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투수를 교체하기로 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중에 분을 참지 못하고 심판을 향해 강속구를 던져버리고, 심판이 이에 항의하면서 심판과 선수의 벤치 클리어링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5] 결국 갈베스는 1998년 잔여경기 출장금지 징계를 받았고, 구단 자체적으로도 무기한 출장정지 및 4000만엔 벌금을 내렸다.

이후 2000년까지 요미우리에서 뛰다가 시즌 후 요미우리와 재계약에 실패했고, 멕시코 리그에서 뛰다가 2001년 5월 부상으로 퇴출된 살로몬 토레스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 15경기를 선발 등판해서 9회에도 149km/h[6]를 뿌리는 등의 특유의 강철 체력으로 당시 나이 37세의 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7.78이닝을 소화하며 5완투 2완봉 10승 4패 평균자책점 2.47로 삼성 선발진에서 맹활약했다[7] . 하지만 멘탈 문제로 각종 잡음이 끊이질 않았고, 특히 2001년 한국시리즈 1,4차전에서 도합 6이닝 10실점이라는 최악의 피칭[8]을 보이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방출되고 말았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6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0 20⅔ 0 1 0 - 3.92 19 12 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4 슝디 엘리펀츠 27 201⅓ 16 5 4 - 2.55 186 44 132
1995 21 168⅔ 10 11 0 - 2.51 161 42 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6 요미우리 자이언츠 28 203⅔
(1위)
16
(공동 1위)
6 0 - 3.05
(2위)
186
(2위)
68 112
1997 27 192⅔
(2위)
12
(4위)
12
(공동 3위)
0 - 3.32 165
(5위)
53 118
1998 18 137⅓ 9 7 0 - 3.21 136 48 85
1999 27 187
(4위)
9 12
(2위)
0 - 3.66 174 57 106
2000 6 30⅓ 0 6 0 - 3.26 34 8 2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 삼성 라이온즈 15 116⅔ 10 4 0 0 2.47 100 42 85
MLB 통산(1시즌) 10 20⅔ 0 1 0 - 3.92 19 12 11
CPBL 통산(2시즌) 48 370 26 16 4 - 2.53 347 86 203
NPB 통산(5시즌) 106 751 46 43 0 - 3.31 695 234 443
KBO 통산(1시즌) 15 116⅔ 10 4 0 0 2.47 100 42 85

3. 괴팍한 성격

프로야구 용병 역사에서 손꼽히는 멘탈갑(부정적인 의미로)이다. 대만, 일본, 한국 가리지 않고 사고를 치고 다녔다(...). 펠릭스 호세와 한판 떴으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운이 좋아서 벤치 클리어링은 일어나지 않았다.[9][10]

주자를 허용하면 신경질적으로 변하여 심판의 판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심해서 미트를 땅바닥에 던진다든지, 혹은 공을 아무데나 던진다든지 해서[11] 벤치 클리어링 사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두통을 늘린 주요 원인 중 하나.[12] 심지어 상술했듯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 직구를 그대로 쎄게 던저서 흥분한 심판들과 벤치 클리어링을 하는 사건을 남기기도 했다.

주먹 실력도 상당했던 선수였다. 강타자 야마사키 타케시[13]가 주니치 시절 갈베스에게 데드볼을 얻어맞고 마운드로 걸어올라가 기싸움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안면에 무자비한 펀치연타를 얻어맞고 본전도 못 챙긴 일도 있었다. 야마사키 타케시도 일본 선수 중에서는 꽤 터프하고 힘센 선수로 유명했지만 갈베스의 무쇠같은 주먹 앞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삼성에서도 그놈의 성깔 때문에 민폐를 많이 끼쳤다. 정규 시즌 때의 성적 자체는 뛰어났지만, 역시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특히 10승 이후의 행보는 최악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가 계약서에 적힌 인센티브가 10승이어서 딱 10승만 달성했다는 주장도 있다.[14] 그러나 나중에 김응용이 삼성 라이온즈 때문에 산다라는 책에서 김은식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 멘탈 문제로 속을 썩이긴 했지만 실제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은 시즌 막판에 당한 부상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응용이 10년 전의 용병에 대해 저렇게 말했다면 실드가 아니라 부상이 부진의 원인이 맞는 듯. 그리고 그 이후로 야구선수 생활을 하지 못한 걸 보면 생각보다 부상이 치명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직 삼성팬들에겐 태업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한 편이긴 하다.

삼성 시절의 대표적인 민폐 사례는 2001년 8월 20일 모친의 병환을 이유로 고국에 돌아간 뒤 부상 등 갖가지 핑계를 대가며 무려 7번씩이나 귀국을 미루었던 사건.[15] 처음엔 입원수속 절차 문제로 미루다가, 시의적절하게 터진 9.11 테러를 핑계로 또 미루고, 이후에는 어깨에 부상이 있는 것 같다고 또 미뤘다. 우여곡절 끝에 시즌이 다 끝난 10월에야 귀국했고, 그리고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의 대폭발 대량 실점. 삼성 라이온즈 입장에선 에이스라고 데려왔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뒤통수를 맞았으니... 약주고 병주고 이로 인해 삼성팬들 사이에선 최악의 용병 얘기가 나오면 톰 션, 에스마일린 카리대, 아놀드 레온과 함께 갈베스의 이름이 꼭 나온다.

한편 이렇게 제멋대로였던 갈베스에게 단단히 혼이 난(?) 삼성 프런트는, 이후 외국인 선수 영입 때 반드시 인성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에도 똑같은 도미니카 출신인 에스마일린 카리대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이번엔 지능형 사기


[1] 대만프로야구 통산 2시즌 48경기 42선발 34완투 8완봉 26승 16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53.[2] 일본시리즈 우승은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끌고 스즈키 이치로가 활약하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차지가 된다.[3] 좋은 타격 실력을 가진 투수로도 유명한데, 투수가 한 시즌에 만루홈런을 2번 친 경우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99년의 갈베스가 유일하다.[4] 이 때 홈런을 때려낸 선수는 이 해에 데뷔한 츠보이 토모치카(坪井智哉; 現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1군 타격 코치)로 시즌 2호. 이 때 날린게 프로 통산 첫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었다고 한다(시즌 1호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5] 이때 갈베스를 말리던 포수 요시하라 코스케가 흥분한 갈베스의 팔꿈치에 입을 가격당해 코피를 흘리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6] 2001년 6월 28일 대전 한화전. 갈베스의 삼성 시절 최고구속은 이날 7회에 황우구를 상대로 던진 151km/h. 요미우리에서의 최고구속도 1996년의 151km/h이다.[7] 6월 16일 광주 해태전에서 완봉승(5-0)을 거뒀으며 이 과정에서 KBO 사상 최초 외국인 완봉승 투수로 기록됐다[8] 참고로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은 18:11로 두산 베어스가 승리하였는데, 3회말에만 3:8로 뒤진 상황에서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차례로 털리면서(…) 김동주의 한국시리즈 사상 2번째 만루홈런과 이후 안경현의 솔로 홈런 등 무려 12점을 뽑아내며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득점을 기록한 경기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사상 첫 선발타자 전원득점, 한 이닝 최다타석(15타석), 최다점수차 역전승 등 각종 한국시리즈 관련 기록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갈베스는 이러한 막장 상황을 만든 주범 중 하나인 셈.[9] 전혀 그런 일이 없겠지만 양자간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주먹 다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아예 격투기 시합을 방불케 하는 초대형 패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10]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점이 펠릭스 호세배영수를 상대로 참교육을 시전했던 경기(2001년 9월 18일 마산 삼성-롯데전) 당시에 갈베스는 삼성 덕아웃에 없었다. 아래에도 후술되지만 어머니의 병환 문제를 이유로 8월 20일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 정규시즌이 끝날 때까지 갈베스가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다.[11] 아래의 난투극 모음집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이종범도 갈베스의 빈볼에 당한 적이 있다.[12]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 중엔 의도적으로 일본 국내 선수들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 야구선수들의 평균 체격은 한국 선수들보다도 작은데,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체격이 크다 보니 위협을 하기가 쉬운 편이다. 또 위협적인 행동을 해서 상대를 위축시킴과 동시에 자신의 플레이를 펼침에 있어서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한 측면도 있다. 그걸 가장 잘 이용한 선수들 중 타이론 우즈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용병들의 경우 몸값이 높고 나름 수준이 있는데다 큰 선수들이 유난히 많아서 다혈질 용병이 드물지만은 않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의 증언으로는 아예 영입한 이후 팀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몸싸움 요원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3] 기복이 많은 커리어였지만 어찌저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부활하여 40대의 나이에 홈런왕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인다.[14] 김은식 저, 한국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 출처.[15] 포스트 시즌 출전에 따른 옵션이라는 설도 있고, 팀 동료 용병인 카를로스 바에르가와의 불화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갈베스는 같은 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에르가와는 같이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바에르가를 피해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단장이 직접 도미니카까지 가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