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8 21:30:47

요미우리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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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파일:p_main_logo.gif 퍼시픽 리그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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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ruby(読売, ruby=よみうり)] ジャイアンツ
구단 법인명 ㈜요미우리 교진군
(株式会社読売巨人軍)
창단 1934년 12월 26일
연고지 도쿄도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도 (1952~)
구단명 변천 대일본 동경 야구 클럽 (1934)
도쿄 교진군 (1935~1946)
요미우리 자이언츠 (1947~)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37~1987)
도쿄돔 (1988~)
2군 구장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 (1985~)
모기업 요미우리 신문
감독 하라 타츠노리 (原辰徳)
킷 스폰서 언더 아머
마스코트 파일:Yomiuri_Mascot.png
자빗[2]
일본시리즈 우승
(22회)
1951, 1952, 1953, 1955, 1961, 1963,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81, 1989, 1994, 2000, 2002,
2009, 2012
센트럴 리그 우승
(37회)
1951, 1952, 1953, 1955, 1956, 1957, 1958, 1959, 1961, 1963,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6,
1977, 1981, 1983, 1987, 1989, 1990, 1994, 1996, 2000, 2002,
2007, 2008, 2009, 2012, 2013, 2014, 2019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5회)
2008, 2009, 2012, 2013, 2019
일본 야구 연맹 리그 우승[3]
(9회)
1936 추계, 1937 춘계, 1938 추계, 1939, 1940, 1941,
1942, 1943, 1949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12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2009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2회)
2012, 2014
역대
한국인 선수
[4]
장훈 (1976~1979)
조성민 (1996~2002)
정민철 (2000~2001)
정민태 (2001~2002)
이승엽 (2006~2010)
공식 홈페이지 한국어 페이지[5] 트위터[6] 인스타그램 유튜브[7]

1. 구단에 대한 소개2. 선도 구단3. 명문 구단의 자부심4. 역사 및 시즌별 요약5. 관중수 추이6. 순수혈통주의7. 유니폼8. 트리비아
8.1. 한국선수에 대한 인연8.2. 기요하라에게 고개숙인 감독 & 코치들의 굴욕8.3. 한때 NPB에서 상대 구단 올킬이었던 구단8.4. 센트럴리그 유일 비밀번호 없음8.5. 특정 팀에게 두 번 스윕당한 유일한 팀
9. 선수 목록10. 역대 감독11. 역대 성적
11.1. NPB
12. 네임드 팬13. 관련 문서14. 둘러보기15. 우승 이력

1. 구단에 대한 소개

GIANTS PRIDE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일본프로야구 최고 명문 구단이며, 종목을 불문하고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스포츠 클럽 중 하나 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제일 안티가 많은 스포츠 클럽[8][9] 연고지는 도쿄. 홈 구장은 일본 최초의 돔 구장인 도쿄돔. 팀 컬러는 주황색이다.

파일:attachment/Giabbit.jpg

마스코트는 자빗(Giants+Rabbit)으로 토끼를 소재로 한 마스코트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자에 있는 YG 교차 로고의 형상에서 토끼 모양을 착안해낸 것에서 비롯됐다. Y자의 갈라진 부분이 귀가 되고 G와 교차되면서 얼굴 모양을 형성하고 Y의 받침 부분이 몸통과 발의 형태를 하는 형식으로 디자인되었으며 1992년부터 채택되었다. 1970년대에는 미스터 자이언츠라는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가 마스코트였고 1980년대에는 쌍방울 레이더스 비슷하게 팔다리가 달린 야구공이 헬멧을 쓰고 마녀 빗자루처럼 야구 배트를 타고 있는 '배트를 탄 소년' 마스코트였다.

일본에서는 보통 요미우리 자이언츠라고 다 부르지 않고, 줄여서 일본식 애칭인 '거인(쿄진・巨人)'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야구중계의 스코어 표기에서도 지역명이나 스폰서명의 축약이 아니라 거인의 앞글자인 '巨'를 사용한다. 모회사 이름인 요미우리로 부르는 일은 타 팀 팬들이 반쯤 멸시적으로 지칭할 때 빼면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교진군이나 요미우리로 부르는 경우가 많고 몇몇 한국 매체의 경우는 한자로 거인(巨人)이라 표시한다. 1990년대까지 미국의 보도 매체에서는 미국식으로 TOKYO GIANTS로 표기됐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YOMIURI GIANTS로 표기하는 매체의 비중이 늘고 있다.

일본 주식 시장에 등록된 팀명은 '(株)読売巨人軍'. 그러나 말만 주식회사지 모기업인 요미우리 신문으로부터 재정의 대부분을 지원받는다. 모기업이 요미우리 신문인 만큼 창립자 및 간부들이 조선 침략을 미화하는 등 극우적 발언을 한 사례들이 있었다. 다만 아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구단 역사의 여명기부터 지금까지를 빛낸 구단 OB 중에는 상당수의 재일 한국인이 있고, 지금까지 한국인 선수를 가장 많이 데려간 프로야구단이기도 하다.[10]

당연히(?) 요미우리 계열사인 니혼 TV가 전 경기를 중계하나, 몇 년 전에는 구단의 성적이 중하위권을 맴돌아 시청률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었다. 전 경기 중계라고 해도 한국의 케이블 TV처럼 1회 초부터 9회 말까지 완전 중계도 아니었고 정규방송 편성에 따라 3~4회부터 중계를 시작하거나 7~8회에 방송을 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11] 대표적인 예가 왕정치가 756호 홈런을 친 경기. 경기가 중계는 됐지만 정작 홈런을 친 순간은 정규 편성 중이던 예능 프로 방송 때문에 묻혀버렸다(...). 중계 방송이 시작된 시점은 이미 왕정치가 홈런을 치고 나서 20분이나 지난 뒤였고(...), 전 일본의 야구 팬이 그해 시즌 시작부터 기다려온 그 순간을 생중계를 하지 않는 병크로 인해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친 건 당연한 수순. 잠깐 이거 한국에도 비슷한 예가 있는 거 같은데? 결국은 니혼 TV도 전 경기 중계를 포기하고 대부분의 경기 중계를 니혼TV 계열 위성 방송사인 G+로 옮겼으며[12], 라디오는 주요 3개 라디오국(TBS 라디오[13], 닛폰방송[14], 분카방송) 외에 요코하마시에 있는 라디오닛폰(간사이권에선 라디오칸사이)이 전경기 전담 중계를 담당한다. 대신 여기서는 1회부터 경기 끝날 때까지 완전 중계니까 팬들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인터넷 중계의 경우 GIANTS Live Stream에서 담당하는데 월 1,500엔을 내면 도쿄돔 홈경기, 원정 한신전, 원정 교류전까지 다 볼 수 있다. 인터넷 중계에 소극적인 야쿠르트, 요코하마, 히로시마, 주니치[15]와는 대조적. 그리고 해외팬들을 위한 홈경기 중계 서비스를 2017년부터 시작하였다. 일본 국외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는 유료이며 언어는 일본어로만 돼 있으므로 일본어를 필수적으로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가격은 1달에 11,200원으로 꽤 비싸다. 그래도 요미우리 팬이고 토쟁이 사이트에서 불법으로 시청하는 건 싫고 돈을 내고라도 합법적으로 시청하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희소식일 수도. 구글에서 海外専用巨人戦完全中継 를 입력하면 주소가 나온다.

그리고 2019년부터 DAZN을 통해서 인터넷중계를 시작하는데, 요미우리신문과 포괄적 제휴 협정을 맺었으며 오래 전부터 협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히로시마와 야쿠르트는 중계권문제로 DAZN이 중계하지 못했다.

요미우리 계열 스포츠신문인 스포츠호치(スポーツ報知)가 사실상의 당기관지 자이언츠 전담 매체다. 스포츠신문에 '거인' 카테고리가 따로 있을 정도지만 1면 기사로 요미우리가 올라오는 비율이 한신 전담 매체인 데일리스포츠보다는 덜하며 고교야구 기간에는 고교야구 기사가 더 많이 올라온다.[16] 2000년대 이전에는 블록지를 제외한 다른 스포츠신문도 요미우리 위주의 보도를 했으나 현재는 지역밀착을 바탕으로 한 퍼시픽리그의 인기 상승으로 균형이 잡혀져 있는 상태.

2. 선도 구단

한때는 일본 야구계의 독보적인 돈지랄 구단이다. 좋은 의미던 나쁜의미던 요미우리 그룹이 야구팀에 붓는 애정은 큰 편이라, V9를 달성했던 시절의 과거에는 전국에서 유망주를 데려와서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게 해줬고[17], 드래프트제도가 생기면서 유망주 풀을 독점적으로 확보하지 못하게 된 뒤로는 FA에 크게 투자하여 타구단의 A급 선수를 쓸어담으면서 언제나 선수층을 두텁게 유지하였다.

그러나 2015년, 2016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1인당 평균 연봉으로 요미우리를 이겼고, 퍼시픽리그 구단들이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면서 자력생존을 목표로 흑자운영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돈지랄 키워드의 독점은 옛말이 되고 있다. 게다가 요미우리신문은 인터넷OTT의 발달로 인해 주요 돈줄이었던 신문사업 및 방송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어서 2010년대 들어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자력생존을 위해 뛰고 있는 상황. 신문은 끊을 수 있지만 휴대전화는 끊을 수 없다 하지만 FA 영입에 있어 요미우리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는데, 2018년 들어서는 1군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는 FA 선수들의 고비용 저효율 악성계약 및 프랜차이즈 선수의 보상픽 유출이 이어지고 있어서 인재육성에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그와 크보의 폭탄처리반이라는 멍에를 썼다 2019년에도 마루 요시히로는 활약을 해주고 있으나 모리후쿠 마사히코 등이 먹튀짓을 하고 있다(...).

돈지랄을 한창 해대던 요미우리의 모습 중 대표적인 일화로, 요미우리 회장이 2014년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로 진출한 '다나카 마사히로'한테 '우리 팀 선수가 된다면 연봉 10억 엔을 주겠다'라는 발언을 한 것을 들수가 있다. 당시 엔 시세를 감안하면 못해도 90억 원 이상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요, 달러로 환산해도 800만 달러는 그냥 넘어가는 큰 금액이다. 그러나 다나카는 그 2배가 넘는 연봉, 그것도 7년이나 보장받고 양키스로 갔다.(...) 아무리 요미우리라도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상대가 안된다는 적절한 예시. 그것도 요미우리보다 더한 돈지랄의 끝을 보여주는 양키스이니... 그리고 2017년 시즌 종료 후 옵트아웃을 행사하지 않고 양키스에 잔류하였다.

이런 모습 때문에 일본 리그의 좋은 선수란 좋은 선수를 싹 쓸어가는 관계로 타 구단 팬들 중 특히 안티가 많다. 다만 한국에서는 한국인 선수들이 많이 거쳐갔었고 이승엽이 한창 활동하던 무렵에 중계까지 해 줘서 그런지 요미우리 구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이다. 물론 한국 내 요미우리팬을 제외한 일본야구 마니아들에겐 얄짤없이 안티구단이다.

사실 이것이 이들 구단 탓만 할 것이 아닌 게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우승 가능한 구단, 여기에 누구나 알고 있는 명문 구단에서 뛴다는 것은 프로 선수 인생에 있어서 희망 사항 중 하나이다. 당장 야구만이 아닌 타 구기 종목 프로 구단만 봐도 그렇다. 괜히 칼 말론이나 게리 페이튼 같은 명선수들이 단기 계약을 감수하고서라도 LA 레이커스에 입단했던 것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뉴욕 양키스는 메이저리거라면 한 번쯤 뛰어보고 싶은 명문 구단이라는 점 역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승 후보에 명문이란 두 가지 장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요미우리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보자.[18][19]

애초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체가 메이저리그와의 친선경기라는 사실상 국가대항전급 이벤트의 선발 팀으로 기획되었고, 요미우리 신문 창립자 쇼리키 마쓰타로가 일본프로야구 창설의 주역이기도 했으며[20]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요미우리 때문에 단일 리그였던 일본 프로야구가 양대 리그로 나뉘어졌을 정도.[21], 한 일본 야구 팬은 '일본 야구는 요미우리와 안티 요미우리로 나뉘어진다'라고 말할 정도. 즉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는 곧 '요미우리와 요미우리에 대항하는 나머지 5+6개 팀'의 역사로 점철될 정도로, 요미우리는 영원한 수장으로서 일본 야구를 이끌어가고 있다. 요미우리가 특유의 돈지랄을 통해 앞서 나가고 나머지 센트럴리그 5개 구단이 그에 반기를 들며 도전하는 양상이며 안티 요미우리의 수장이 일본의 뿌리 깊은 관동-관서 라이벌 의식[22]까지 곁들여져 있는 한신 타이거스, 그리고 신문사 라이벌[23]이기도 하며 주부 지역의 대표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라이벌 구도, 그리고 같은 도쿄 연고 팀임에도 교진의 기에 눌려서 변방 취급받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쟁 구도 등이 주가 된다.

이에 비해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 자체에 반기를 들면서 '니네는 인기와 기믹으로 먹고 산다면 우리는 야구 실력으로 먹고 산다'라는 식으로 어필해 왔지만, 센트럴리그보다는 관중 동원 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프로레슬링을 연상케 하는 '스토리성'이 그동안 일본 프로야구를 이끌어온 요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요미우리 구단, 혹은 요미우리 신문의 재정 상태가 나빠져서 특유의 돈지랄을 못 하든가, 아니면 어쩌다 리그 하위권에 오래 머문다든가 하는 경우 위에서 언급한 스토리라인이 깨지기 대문에 요미우리 뿐만 아니라 NPB 자체의 인기가 크게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이다. 안티 요미우리의 선봉에 선 팀들조차 결국은 거인의 인기로 인한 반사 이익을 얻기 때문에 프로야구의 판이 깨지는 극단적인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 특히 이 팀의 회장인 꼰대 영감 와타나베 츠네오의 경우 일본 야구 판도 자체를 좌지우지할 정도이며, 전술되어 있듯 다나카 마사히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 '우리 팀이었다면' 연봉 10억 엔을 주겠다고 발언할 정도로 일본 야구계에서 막강한 인사이다.

이렇기 때문에 일본야구기구라는 행정기구가 있고, 커미셔너가 따로 존재[24]하지만 요미우리의 입김이 매우 강력해서 모든 정책이 요미우리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 예로 1983년부터 2016년까지 KBO에서 사무총장을 포함한 다양한 직을 맡아서 NPB와도 이런저런 협력을 많이 한 이상일의 증언에 따르면 WBC 개최 협력을 위해 한미일 커미셔너들이 모인 자리에서 NPB 커미셔너는 MLB 사무국쪽 사람들에게 2004년에 퍼시픽 리그가 이미 진행중인데도 뉴욕 양키스탬파베이 데블레이스[25] 도쿄돔에서 MLB 개막전을 한 걸 가지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화를 냈고, 자기들이 한 일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그는 나중에 그것이 요미우리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된 거였다는걸 전해들었다고 한다. 아시아 시리즈의 경우도 요미우리측이 초반 3년간 운영을 전담하고 수익을 대부분 가져가서 한일중대만 협의에서 NPB 사무국 측이 불만을 토로하곤 했고 그런것이 결국 겹쳐서 엎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상 NPB 사무국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야구계 큰 일을 처리히는 정도의 파워를 가진 것.

요미우리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중 하나는 중계권료인데, 일본프로야구 중계권료는 약 150억엔이며 이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중계권료가 전체 중계권료의 약 30%를 차지한다.[26] 라디오 중계도 타팀 마켓이 커버하지 못하는 방송국은 요미우리 중계 위주로 채우는 편. TBS가 빠진 지금은 닛폰 방송 중계로 채우는 편이다.

과거에는 자체적으로 유망주를 키워 V9[27]을 달성하였으나[28] 90년대 초반부터 FA 제도가 시행된 이후 다른 팀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많이 데려갔다.[29] 그런데 문제는 이 검증된 선수들이 이상하게 자이언츠에 입단하면 먹튀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미스테리이다. LG 트윈스도 그랬었지... 용병들도 싹쓸이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며 로베르토 페타지니,[30] 터피 로즈 등 많은 선수들이 요미우리에서 시련을 겪었다(고쿠보 히로키, 알렉스 라미레스 등 예외는 있다).일본 내의 평가[31] 08 시즌 충격적인 일본 데뷔를 한 임창용도 결국 야쿠르트와 재계약을 했지만 그 전까지는 요미우리가 데려갈 거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다만 하라 타츠노리 감독의 2차 집권기부터는 육성 선수 제도 등을 활용해 야마구치 테츠야, 마쓰모토 테츠야처럼 우수한 신인을 발굴하는 등 팀의 자원을 유망주 육성에 더 쓰고 있으며 이를 통해 2000년대 후반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32] 물론 미국의 LA 다저스가 보여주듯 유망주 수집도 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시기에도 FA시장에 나온 대어급 선수들의 영입이 꾸준히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으로 2006년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3], 2011년 스기우치 도시야, 무라타 슈이치 등이 있다.

선수 스타팅 라인업 발표 시 타악기와 육성만 사용하는 두 구단 중 하나(다른 하나는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쪽은 응원 구호도 타 구단과 크게 차이난다. 다른 구단이 일본 프로야구 범용 구호[34]를 사용하는 데 비해, 자이언츠는 축구 서포터즈의 응원 콜을 사용한다.[35] 또한 일본 야구 하면 생각나는 플라스틱 배트도 외야 서포터즈석으로 가면 잘 쓰지 않으며, 맨손 응원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 베르디가 못해 빡친 서포터즈가 여기로 왔나[36] 그 외에는 다른 구단과 응원 스타일 면에서 큰 차이는 없는 편. 여담으로 안티 팬들이 많다보니 자이언츠가 자기 팀의 응원을 베꼈다는 의혹이 자주 제기되기도 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굳이 다른 팀에서 볼 수 없는 문화를 꼽자면 적시타가 나올 때마다 머플러를 머리 위에서 돌리는 것이다.[37] 그러나 머플러 돌리기 자체는 지바 롯데가 원조다.

3. 명문 구단의 자부심

일본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일본 스포츠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전국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기사 2014년 기준으로 889만 명을 보유하고 있어서 608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한신 타이거스보다도 월등히 많다. 출처(일본어 원문)[38] 한신전도 요미우리 상대로는 시범경기까지 포함해 입장료가 더 올라간다.

2군 경기장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의 경우에도 입장료를 1,100엔이라는 정신 나간 2군 입장료를 자랑하며 자사 방송사를 동원해 방송 중계를 하다 보니 경기장 펜스 광고도 판매하고 있다. 펜스 광고의 경우 지역밀착 정책을 성실히 수행하는 닛폰햄, 소프트뱅크도 도입하는 추세.

보다시피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요미우리 신문이라는 언론사를 등에 업은 빅 마켓 구단이라는 특성상 국내, 외국 선수 막론하고 끓는점이 굉장히 낮다. 대부분의 초인기 빅마켓 팀 선수들이 치르는 고역이긴 하지만, 요미우리는 그 정도가 심해서 10년을 잘하다 한달만 못해도 바로 역적으로 취급해 쫓아내기도 한다는 것. 본가인 요미우리 신문에서 물어뜯기 시작하면 외국인 용병은 금방금방 버림받기 쉬웠다. 이승엽 선수도 "요미우리가 나에게 모든 것을 줬고 또 나에게 빼앗아 갔다"라고 표현했을 정도. 심지어 요미우리신문, 니혼TV 외의 미디어에서도 2000년대 전까지 야구 관련 뉴스를 센트럴리그, 특히 요미우리 위주로 보도했던 경우가 많아서 이 '선수 때리기'는 일상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구단도 '요미우리는 일본 야구를 대표한다'라는, 명문 구단의 자부심이 강하다. 선수들에게 대접을 잘 해주는 대신 타 구단에는 없는 품위 유지 규정이 존재한다. 이승엽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수염 못 길러.", "옆머리가 귀를 덮게 하지 마.", "껌 씹지 마.", "경기 중에 침 뱉지 마.", "귀걸이 하지 마.", "원정 경기 이동시에는 정장을 착용할 것." 등의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알렉스 라미레스등 원래 팀에서 수염을 길렀던 선수들도 자이언츠에 들어간 이후에는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39] 또한 2019년 하라 타츠노리 감독 취임 이후 SNS 관련규정도 강화되어 고참 선수들을 제외하고 상당수 선수들이 시즌 중 SNS 업데이트를 중지하고 있다.

다만 거의 유일하게 거인에서 수염을 길렀던 선수가 2명 있었다. 1번째는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야시키 카나메라는 타자로, 요코하마 시절 골든글러브 5회, 도루왕 3회의 실적을 가진 빠른 발과 좋은 수비력을 자랑하던 외야수로 은퇴 시즌인 1994년 요미우리로 이적해서[40] 1년간 뛰었다. 또 다른 1명은 닛폰햄 파이터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세이부 라이온즈 등에서 뛰며 통산 169승을 거둔 타카하시 나오키[41]란 투수로, 이쪽도 은퇴 시즌인 1986년 요미우리로 이적해서 1년간 뛰었는데, 이 선수는 아예 응원가 첫 부분이 콧수염의 나오키(ヒゲの直樹)였다(...) 실제 응원가[42] 물론 야구 외적으로도 사생활에 잡음이 없어야 한다는 건 덤이다. 이러한 룰을 지키지 않을 경우엔 아무리 성적이 좋고 인기 스타라 해도 용서가 없다. 3할 타율에 20홈런을 때릴 수 있는 유격수에다 교진 성골 스타였던 니오카 토모히로(二岡智宏)가 불륜 스캔들 한 번에 내쫓기듯 닛폰햄으로 투수인 하야시 마사노리와 묶여 트레이드 당한 사례가 좋은 예. 이 때 닛폰햄 팬들은 왜 사고친 선수를 데려오냐면서[43] 험악한 반응이 나왔고 실제 안타갯수도 닛폰햄 이적 이후 전성기의 반으로 깎였다.[44] 그러나 막상 2013년에 불륜으로 인해 난리가 났던 스기우치 도시야는 아직까지 트레이드 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스기우치는 성골도 아니다[45]

우승에 대한 기준도 남달라 다른 팀의 경우는 리그 우승만 해도 포스트시즌의 졸전 여부와 상관없이 시즌 종료 후 우승 기념 이벤트를 여는 경우가 많지만, 거인은 오로지 리그 우승+일본시리즈 우승의 경우에만 우승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한다. 이 때 담당 백화점은 미쓰코시, 킨테츠.[46]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답게 간사이에도 팬이 상당히 있는 편이라 연 1회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홈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신의 압도적인 인기에 가려서 간사이의 요미우리 팬들은 카쿠레키리시탄 취급을 받았으나[47] 지금은 간사이에서 요미우리를 대놓고 응원하는 팬들도 많으며, 고베의 라디오칸사이에서 라디오닛폰[48] 중계를 받아 요미우리 편파 라디오 중계도 해 준다.

또한 오키나와현 출신 선수를 꾸준히 영입하고, 나하시에서도 시범경기 및 캠프를 가져서 오키나와에도 팬이 꽤 있는 편이라, 미야자키현에서와 같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함께 인기를 나눠먹고 있다.

4. 역사 및 시즌별 요약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2019년 기준으로 리그 우승 46회,[49] 일본시리즈 우승 22회라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50][51]

1934년 미국 대표 팀과 친선 경기를 치른 전 일본 야구 팀을 기반으로 창단되었으며, 창단 당시 이름은 대일본도쿄야구클럽(大日本東京野球倶楽部[52])이었다. 그러나 일본 프로야구 리그 출범 전에 시행한 미국 원정 기간에 당시 사용하던 명칭은 너무 길고 미국 사람들에게는 전혀 어필이 안 되는 이름이라 구단 창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뉴욕 자이언츠의 이름을 따서 도쿄 자이언츠라는 이름으로 미국 원정을 돌아다녔고, 귀국해서는 도쿄 거인군이라는 명칭을 썼으며 이 명칭은 2차 대전 종전까지 계속된다. 2차 대전 후 요미우리의 명칭을 표면에 내세우면서 도쿄 요미우리 거인군이라는 이름을 썼고 영문 명칭 사용이 허용되고 야구 규약상 타 구단과 같은 방식으로[53] 맞추게 되어 정식 명칭이자 현재까지 사용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명칭이 확정된다.

다만 이때의 반동으로 이미 없어진 쿄진(거인의 일본 발음)을 팀의 상징적으로 병렬 사용하며 이게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중계 때 주로 사용되는 축약어도 . 하지만 공문서에는 야구 규약에 명시된 대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이름만 사용되기 때문에 팬들 사이뿐만 아니라 언론에서 애칭이 정식 명칭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가 정착되었다.

이후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재팬 시리즈 9년 연속 우승(V9)이라는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의 고도성장과 함께 컬러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고 슈퍼스타 듀오 왕정치(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시게오ON포의 맹활약이 어우러지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V9 시대가 종료된 후에 1975년 구단 창립 이후 사상 첫 센트럴리그 꼴찌를 경험하게 되나 1981년, 1989년, 1994년, 2000년, 2002년, 2009년, 그리고 2012년에도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지금까지도 명문 팀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워낙 V9 시대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한 탓에 V9 시대 이후에도 강팀이었던 기간이 길었지만 그때만큼의 임팩트는 주지 못하고 있기도.

2007년 이후의 각 시즌 별 요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시즌 참조.

5. 관중수 추이

연도별 연 평균 일일 평균
2013년 3,008,197명 (+3.6%) 41,781명
2014년 3,018,284명 (+0.3%) 41,921명
2015년 3,001,187명 (-0.6%) 42,270명
2016년 3,004,108명 (-1.3%) 41,724명
2017년 2,958,890명 (-0.1%) 41,675명
2018년 3,002,347명 (+1.4%) 41,699명
2019년 3,027,682명 (+0.8%) 42,643명 (+2.3%)

6. 순수혈통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순수혈통주의 참조.

7. 유니폼

요미우리 자이언츠/유니폼 항목 참조.

8. 트리비아

8.1. 한국선수에 대한 인연

과거에는 이팔용, 장훈, 가네다 마사이치, 김일융, 이승엽, 조성민, 정민철, 정민태 등 많은 한국인, 재일 한국인 선수들을 두고 있었다.

여러모로 자매구단인 삼성 라이온즈와 인연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재일동포인 김일융이 삼성에 발을 딛은 게 시초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종훈김한수, 김현욱과 삼성 출신 선수인 황두성은 요미우리 코치 연수에 다녀온 적이 있었고 이승엽도 한 때는 지바롯데에서 뛰다가 2006년 하라 감독 복귀와 요미우리 전력증강으로 영입하였다. 요미우리 입단 첫 해인 2006년에는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하며 41개의 홈런을 치는 등 맹활약 덕분에 시즌 후 무려 4년 총 30억엔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2008년 이후 잔부상으로 인한 하향세가 이어지자 요미우리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계약기간 동안 2010년까지 이승엽을 데리고 있었다. 이승엽은 2011년 오릭스를 거쳐 2012년부터 다시 삼성에 복귀하여 2017시즌 후 은퇴했다. 삼성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에서 3시즌간 뛴 적이 있던 김기태김기태도 있다. 공교롭게도 사고치는 꼬라지자매구단과 같이 쌍으로 치고 다니는 중이다.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보다는[54] 스프링캠프지 미야자키와 오키나와를 같이 쓰는 두산 베어스와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고토 코지 코치 부임 이후로 아베 신노스케박세혁 선수가 오프시즌 기간 동안 훈련을 같이 하기도 하고, 고토 코치의 요미우리 컴백 이후 두산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오키나와 연습경기에 초대받기도 했다. 실제로도 두산과 요미우리는 운영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은 편.[55]

8.2. 기요하라에게 고개숙인 감독 & 코치들의 굴욕

위에서 설명한 순혈주의를 완벽하게 무시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기요하라 카즈히로, 요미우리 시절 파리그의 다른 팀 출신임에도 자기 따르는 선수들을 모은 파벌을 결성했다. 이 파벌은 기요하라 군단으로 불릴 정도로 팀 내에서 위세가 높았으며 실제로 기요하라는 팀에서 왕노릇을 했다. 감독이고 코치고 그를 제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기요하라가 코치에게 자리 비키라고 반 협박을 해도 코치가 알아서 비켜주기도 했을 정도니...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요미우리에게 있어서는 타팀출신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휘둘려버리는 감독 & 코치의 모습이 드러났으니 제대로 망신살. 더군다나 방송으로 찍던 말던 오다 코헤이를 대놓고 괴롭히는 기요하라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서 오다가 야구선수로써 기량발전을 못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방관은 더 나쁜 것일지도.

8.3. 한때 NPB에서 상대 구단 올킬이었던 구단

여기서 올킬이라 하면 모든 상대 리그 팀을 일본시리즈에 만나 격파한 것이다. 일본시리즈 우승이 22회로 많은 편인데다 퍼시픽 리그 팀이 나름 골고루 올라와서 가능한 것이다. 반대편 사이타마 세이부도 13회 우승이 있고, 모든 팀을 만났지만 한신과 요코하마에게 져서 2킬이 부족한 상황이다. 소프트뱅크와 서로 치고받고 하면서 승패를 주고받았고(당시는 난카이,다이에였다), 그 후 세이부, 오릭스, 롯데, 닛폰햄, 긴테츠를 꺾으며 올킬 달성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왜 "이었던"이냐 하면 오사카 긴테츠가 오릭스 버팔로즈로 합병되면서 사라지고 도호쿠 라쿠텐이 들어왔기에 올킬이 박탈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라쿠텐 하나만 이기면 라쿠텐 들어오고 올킬로 회복할 수 있었으나, 2013년 일본시리즈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56]에게 지는 바람에 올킬 달성은 후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게다가 긴테츠가 오릭스 버팔로즈로 합병되고, 난카이,다이에가 소프트뱅크로 바뀌면서, 진정한 올킬을 위해선 소프트뱅크,오릭스 버팔로즈까지 격파를 해야 된다.

그 사이 퍼시픽 구단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가 올킬을 달성하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2번째이자 현존하는 팀들 상대로는 유일하게 전 구단 격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2019년 요미우리는 소프트뱅크에게 올킬을 당하면서, 일본시리즈에서 같은 팀에게 두 번 스윕패를 당한 유일한 팀이라는 굴욕을 세웠다.(1959년 난카이와 대결해서 스윕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8.4. 센트럴리그 유일 비밀번호 없음

비밀번호란 6년 연속 하위권이다. 워낙 명문 구단 이미지도 있고, 실력도 크게 나쁜 적이 별로 없기에 비밀번호를 찍은 적이 없다. 이전엔 길어봐야 3년이었던 주니치와 유이했으나 2013년 이후 주니치가 침체에 빠지며 기어코 비밀번호를 생성. 유일하게 비밀번호를 만들지 않은 센트럴 구단이 되었다. 물건너 옆나라 자이언츠비밀번호가 있었는데

한편 퍼시픽 구단에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비밀번호가 없는 유일한 팀이다. 6자리 채우기 전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간간히 끊어냈다.

8.5. 특정 팀에게 두 번 스윕당한 유일한 팀

1959년 난카이 호크스에게 스윕으로 패한 후, 2019년 난카이가 이름이 바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일본 시리즈에서 같은 팀에게 두 번 스윕당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반면 퍼시픽 구단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특정 팀을 두 번 스윕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9. 선수 목록

요미우리 자이언츠/선수목록 참조.

10. 역대 감독

역대이름활동 연도년수
1대 미야케 다이스케 1934 - 1935 2년
2대 아사누마 요시오 1935 - 1936 2년
3대 후지모토 사다요시[57] 1936 - 1942 6년
4대 나카지마 하루야스 1943 1년
5대 후지모토 히데오[58] 1944 - 1946 3년
6대 나카지마 하루야스 1946 - 1947 2년
7대 미하라 오사무 1947 - 1949 3년
8대 미즈하라 시게루 1950 - 1960 11년
9대 카와카미 테츠하루 1961 - 1974 14년
10대 나가시마 시게오 1975 - 1980 6년
11대 후지타 모토시 1981 - 1983 3년
12대 오 사다하루 1984 - 1988 5년
13대 후지타 모토시 1989 - 1992 4년
14대 나가시마 시게오 1993 - 2001 9년
15대 하라 다쓰노리 2002 - 2003 2년
16대 호리우치 츠네오 2004 - 2005 2년
17대 하라 다쓰노리 2006 - 2015 10년
18대 다카하시 요시노부 2016 - 2018 3년
19대 하라 다쓰노리 2019 - -

보면 알겠지만 양대리그 분리 후에는 깔끔하게 한번도 시즌 도중에 감독이 교체되거나 한 적이 없으며 2015년까지 65년동안 10대에 걸쳐 단 7명만이 감독에 재임하여 감독 임기도 평균 6.5년으로 수명도 길다. 물론 나가시마, 후지타, 하라의 경우에는 중간에 한번 물러났다가 다시 지휘봉을 잡은 케이스이기는 했지만 이들 감독들도 중간의 어떤 흑역사를 제외하곤 장기간 감독자리에 앉으면서 팀을 안정되게 이끌었다.

11. 역대 성적

11.1. NPB

­ 리그 우승[59]
­ 2위
­ 3위
B클래스
연도[60]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61]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62]
1950 3위/8팀 3위 요미우리 자이언츠 140 82 54 4 .603
1951 1위/7팀 우승 114 79 29 6 .731 일본시리즈 우승 (4-1 vs 난카이)
1952 1위/7팀 우승 120 83 37 0 .692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난카이)
1953 1위/6팀 우승 125 87 37 1 .702 일본시리즈 우승 (4-1-2 vs 난카이)
1954 2위/6팀 2위 130 82 47 1 .636
1955 1위/6팀 우승 130 92 37 1 .713 일본시리즈 우승 (4-3 vs 난카이)
1956 1위/6팀 우승 130 82 44 4 .646 일본시리즈 (2-4 vs 니시테쓰)
1957 1위/6팀 우승 130 74 53 3 .581 일본시리즈 (0-1-4 vs 니시테쓰)
1958 1위/6팀 우승 130 77 52 1 .696 일본시리즈 (3-4 vs 니시테쓰)
1959 1위/6팀 우승 130 77 48 5 .612 일본시리즈 (0-4 vs 난카이)
1960 2위/6팀 2위 130 66 61 3 .519
1961 1위/6팀 우승 130 71 53 6 .569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난카이)
1962 4위/6팀 4위 134 67 63 4 .515
1963 1위/6팀 우승 140 83 55 2 .601 일본시리즈 우승 (4-3 vs 니시테쓰)
1964 3위/6팀 3위 140 71 69 0 .507
1965 1위/6팀 우승 140 91 47 2 .659 일본시리즈 우승 (4-1 vs 난카이)[63]
1966 1위/6팀 우승 134 89 41 4 .685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난카이)
1967 1위/6팀 우승 134 84 46 4 .646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한큐)
1968 1위/6팀 우승 134 77 53 4 .592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한큐)
1969 1위/6팀 우승 130 73 51 6 .589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한큐)
1970 1위/6팀 우승 130 79 47 4 .627 일본시리즈 우승 (4-1 vs 롯데)
1971 1위/6팀 우승 130 70 52 8 .574 일본시리즈 우승 (4-1 vs 한큐)
1972 1위/6팀 우승 130 74 52 4 .587 일본시리즈 우승 (4-1 vs 한큐)
1973 1위/6팀 우승 130 66 60 4 .524 일본시리즈 우승 (4-1 vs 난카이)
1974 2위/6팀 2위 130 71 50 9 .587
1975 6위/6팀 6위 130 47 76 7 .382
1976 1위/6팀 우승 130 76 45 9 .628 일본시리즈 (3-4 vs 한큐)
1977 1위/6팀 우승 130 80 46 4 .635 일본시리즈 (1-4 vs 한큐)
1978 2위/6팀 2위 130 69 49 16 .570
1979 5위/6팀 5위 130 58 62 10 .483
1980 3위/6팀 3위 140 61 60 9 .504
1981 1위/6팀 우승 130 73 48 9 .603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닛폰햄)[64]
1982 2위/6팀 2위 130 66 50 14 .569
1983 1위/6팀 우승 130 72 50 8 .590 일본시리즈 (3-4 vs 세이부)
1984 3위/6팀 3위 140 67 54 9 .554
1985 3위/6팀 3위 140 61 60 9 .504
1986 2위/6팀 2위 130 75 78 7 .610
1987 1위/6팀 우승 130 76 43 11 .639 일본시리즈 (2-4 vs 세이부)
1988 2위/6팀 2위 130 68 59 3 .535
1989 1위/6팀 우승 130 84 44 2 .656 일본시리즈 우승 (4-3 vs 긴테쓰) [65]
1990 1위/6팀 우승 130 88 42 0 .677 일본시리즈 (0-4 vs 세이부)
1991 4위/6팀 4위 130 66 64 0 .508
1992 2위/6팀 2위 130 67 63 0 .515
1993 3위/6팀 3위 131 64 66 1 .492
1994 1위/6팀 우승 130 70 60 0 .538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세이부)
1995 3위/6팀 3위 131 72 58 1 .554
1996 1위/6팀 우승 130 77 53 0 .592 일본시리즈 (1-4 vs 오릭스)
1997 4위/6팀 4위 135 63 72 0 .467
1998 3위/6팀 3위 135 73 62 0 .541
1999 2위/6팀 2위 135 75 60 0 .556
2000 1위/6팀 우승 135 78 57 0 .538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다이에) [66]
2001 2위/6팀 2위 140 75 63 2 .543
2002 1위/6팀 우승 140 86 52 2 .623 일본시리즈 우승 (4-0 vs 세이부)
2003 3위/6팀 3위 140 71 66 3 .518
2004 3위/6팀 3위 138 71 64 3 .526
2005 5위/6팀 5위 146 62 80 4 .437
2006 4위/6팀 4위 146 65 79 2 .451
2007 1위/6팀 우승 144 80 63 1 .559 세컨드 스테이지 (0-3 vs 주니치)
2008 1위/6팀 우승 144 84 57 3 .596 세컨드 스테이지 (3-1-1 vs 주니치)
일본시리즈 (3-4 vs 세이부)
2009 1위/6팀 우승 144 89 46 9 .659 세컨드 스테이지 (4-1 vs 주니치)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닛폰햄)
2010 3위/6팀 3위 144 79 64 2 .552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주니치)
2011 3위/6팀 3위 144 71 62 11 .534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야쿠르트)
2012 1위/6팀 우승 144 86 43 15 .667 파이널 스테이지 (4-3 vs 주니치)
일본시리즈 우승 (4-2 vs 닛폰햄)
2013 1위/6팀 우승 144 84 53 7 .613 파이널 스테이지 (4-0 vs 히로시마)
일본시리즈 (3-4 vs 라쿠텐)
2014 1위/6팀 우승 144 82 61 1 .573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한신)
2015 2위/6팀 2위 143 75 67 1 .528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야쿠르트)
2016 2위/6팀 2위 143 71 69 3 .507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DeNA)
2017 4위/6팀 4위 143 72 68 3 .514
2018 3위/6팀 3위 143 67 71 5 .486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야쿠르트)
파이널 스테이지 (0-4 vs 히로시마)
2019 1위/6팀 우승 143 77 64 2 .546 파이널 스테이지 (3-1 vs 한신)
일본시리즈 (0-4 vs 소프트뱅크)[67]
NPB 통산 70시즌 리그 37회 우승 9394 5216 3881 297 .573 V22

12. 네임드 팬

(작성중)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Guiness World Records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54px-Guinness_World_Records_logo.svg.png
Most Japan Series Wins
(최다 일본시리즈 우승)
#
대상 기록 장소 등재 시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1회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2009년 @When_M&[email protected]
  • 최상단 표에서 보듯 한번 더 우승했으나 등재 신청을 하지 않아 과거 기록이 등재되어 있다.

15. 우승 이력

1951년, 1952년, 195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50-마이니치 오리온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1954-주니치 드래곤즈
1955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54-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56-니시테츠 라이온즈
1961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60-다이요 웨일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2-도에이 플라이어스
196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62-도에이 플라이어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4-난카이 호크스
1965년,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64-난카이 호크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1974-롯데 오리온즈
1981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0-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2-세이부 라이온즈
1989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8-세이부 라이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0-세이부 라이온즈
1994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93-야쿠르트 스왈로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5-야쿠르트 스왈로즈
2000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99-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1-야쿠르트 스왈로즈
2002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1-야쿠르트 스왈로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3-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9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8-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0-치바 롯데 마린즈
2012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11-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3-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951년, 1952년, 1953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50-쇼치쿠 로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1954-주니치 드래곤즈
1955년,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54-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0-타이요 훼일즈
1961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60-타이요 훼일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2-한신 타이거스
1963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62-한신 타이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4-한신 타이거스
1965년,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64-한신 타이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1974-주니치 드래곤즈
1976년, 1977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75-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78-야쿠르트 스왈로즈
1981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80-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2-주니치 드래곤즈
1983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82-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4-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7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86-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8-주니치 드래곤즈
1989년, 1990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88-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1-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4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93-야쿠르트 스왈로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5-야쿠르트 스왈로즈
1996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95-야쿠르트 스왈로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7-야쿠르트 스왈로즈
2000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99-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1-야쿠르트 스왈로즈
2002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2001-야쿠르트 스왈로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3-한신 타이거스
2007년, 2008년, 2009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2006-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0-주니치 드래곤즈
2012년, 2013년, 2014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2011-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5-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12년 아시아 시리즈 우승 팀
2011-삼성 라이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3-캔버라 캐벌리
2019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2018-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최근 시즌


[1] 2018년부터 사용된 신 로고이다.[2] 자이언츠(Giants)+토끼(Rabbit)[3] 양대 리그 출범 이전.[4] 정식 선수는 아니지만 2000시즌부터 전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 유환진씨가 20년째 불펜포수로 근무하고 있다. 핵심 투수들이 훈련이나 컨디션 점검을 할때 너나할것없이 유환진씨부터 찾는다고 한다.[5]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인 선수는 없으나 예전부터 한국인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한국어 홈페이지가 상당히 충실하다. 심지어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티켓 구매 절차가 설명되어 있고 리다이렉트되는 영어 페이지에서 구매가 가능하다.[6] 비록 늦게 생겼으나 트위터 일본지사와 협력하여 센트럴리그 구단 중 트위터를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 일본지사에서 하는 트위터 Q&A도 선보이며, 오프시즌이나 경기가 없는 날에는 팬들에게 자체적으로 질문을 받아서 올려주기도 하는 편.[7] 2018~2019년 이후 컨텐츠가 베어스포티비와 상당히 유사해졌는데, 고프로를 통해 우승직후 순간을 중계하기도 했다.[8] 어느 정도인지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응원가 문단 참조.[9] 그리고 보통 종목 불문하고 가장 인기가 많은 명문팀이면 안티도 제일 많다. 당장 같은 야구만 봐도 뉴욕 양키스가 팬 숫자와 안티 숫자가 압도적이고 분데스리가에서 독주하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도 독일 내 팬과 안티가 제일 많은 팀이며, LCK에서도 T1의 안티가 가장 많다. 실제로도 요미우리 계열 스포츠지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스포츠호치에서는 요미우리 담당기자인데 정작 본인이 안티요미우리인 사례가 있기도 했다(...). 기자칼럼 스포츠호치도 12구단 담당기자가 엄연히 다 있어서 완전한 요미우리 편파는 아니니 오해는 금물.[10] 재일교포와 재일한국인의 대부분이 도쿄를 비롯한 간토 지방에 살고 있어서 요미우리의 인기도 은근히 있다. 야구를 보러 가면 요미우리로 많이 간다.[11] 게다가 간토권 독립방송국도 요미우리 중계권을 확보하지 않아 선 텔레비전이 있는 한신과는 달리 공중파 완전 중계는 원천적으로 꿈도 꿀 수 없다.[12] 다만 토요일 아침 니혼TV의 <줌인 새터데이>에서 프로야구 넷케츠(熱ケツ情報)정보라는 이름으로 요미우리 OB인 미야모토 카즈토모(현재는 미야모토가 요미우리 코치로 부임하면서 츠지오카 기도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맡고 있다.)가 요미우리 선수들을 야구와 관련 없는 주제로 미니 인터뷰하기도 한다.[13] 2018 시즌부터 중계권료 상승 등의 문제로 야구 중계 포기.[14] 특히 NRN 망을 통한 전국 중계로 닛폰방송 경기가 방송되는 경우가 많다.[15] 이 4개 구단 중 야쿠르트를 제외한 구단들은 2017년 DAZN, Sportsnavi 서비스로 인터넷 중계를 시작하였다.[16] 스포츠호치는 고교야구 전문잡지를 발행하는 유일한 스포츠신문사이다.[17] 물론 예외도 있어서 1979년 실시된 지옥의 이토 전지훈련도 있다.[18] 주니치 팬들의 야유 영상으로 위 영상 1:00부터 시네! 시네! 쿠타바레!(死ね死ねくたばれ=죽어라 죽어라 뒈져라)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상속에 나오는 노래는 요미우리의 응원가인 "투혼을 담아(闘魂こめて)"인데 후렴구인 유케 유케 소레 유케(行け行けそれゆけ=가라 가라 나아가라)가 흘러나오면 원정팬들은 어느 팀 팬이건 간에 가운데 손가락을 요미우리를 향해 갈기면서 다같이 큰소리로 시네 시네 쿠타바레를 외친다. 반면에 요미우리 선수들과 타팀 선수들은 경기 중에는 요미우리와 싸우지만 경기장 바깥에서는 (서로를 동업자 혹은 정당한 라이벌로 보고) 사이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일부 팬들은 돈지랄로 선수 사들이는 것을 비꼬아 "상혼을 담아(商魂込めて)" 라며 아예 가사를 요미우리 비하 가사로 바꾸어 노래를 열창한다. 이 때문에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vs 한신 경기에서 '시네 시네 쿠타바레'가 2017년 8월 26일 그대로 NHK 프로야구 중계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근데 웃긴건, 투혼을 담아의 작곡가인 코세키 유지는 주니치의 前 구단가 드래곤즈의 노래도 작곡한 바 있다(...)(참고로 그 곡은 한때 구장에서 반주곡까지 틀어줄 정도로 자주 쓰였으나 타올라라 드래곤즈가 유명해진 후 나가리가 된(...) 비운의 곡(?)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롯데노 파쿠리~(롯데 베낀거~)'를 외쳐주면서 마무리하는 것이 포인트.[19] 이 팀의 응원가 음원영상 같은 경우에는 2018년 9월 기준으로 조회수 98만회에 좋아요가 1724개, 싫어요가 1044개다.(...) 참고로 같은 업로더가 올린 한신 타이거스의 응원가인 롯코오로시는 2018년 9월 기준으로 좋아요 1200개에 싫어요 212개다. 일본 제일 안티구단의 위엄을 보여주는 부분.[20] 일본프로야구에서 야구인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상 이름부터가 쇼리키 마쓰타로상이다.[21] 요미우리가 난카이 호크스의 에이스 투수 벳쇼 다케히코를 영입하면서 생긴 일명 '벳쇼 빼내기 사건'을 저질렀으며, 또한 위시한 오리온즈를 거부하는 팀들이 센트럴 리그를, 가입에 동의하는 팀들이 퍼시픽 리그를 출범하게 만들어버린 것도 바로 요미우리가 단초를 제공했다.[22] 특히 요미우리-한신과의 대결은 전통의 일전으로 불리며, 2016년 시즌부터 양팀의 레전드인 타카하시 요시노부가네모토 도모아키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김박성 감독님께 묵념... 양 구단이 '전통의 일전'을 공식적으로 더비매치의 명칭으로 사용하며 공동 마케팅을 통해 이 라이벌리를 다시 띄우는 중이다. 그러나 퍼시픽리그에선 엘꼴라시코 취급중[23] 신문 및 방송사업그리고 논조에서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주니치와는 지방방송국 지분을 가진 동업자이기도 하다. 지방방송국에서 서로의 지분을 뺀다면 방송사경영이 어려워진다.[24] 2000년대 들어 세토야마 류조를 비롯한 퍼시픽리그 출신들이 커미셔너에 취임하면서 요미우리의 힘은 조금 줄어든 상태.[25] 당시 이름 기준[26] 하지만 TV 시청, 라디오 청취 환경 변화와 함께 요미우리의 성적이 떨어지는데도 중계권료가 너무 높아 요미우리 경기 중심으로 중계하던 TBS라디오가 2018년부터 야구중계를 그만두었다.[27] 9년 연속 우승[28] 그러나 요미우리는 2000년대 츠지우치 타카노부를 필두로 드래프트와 육성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이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박살나는 막장 육성시스템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으며, 트레이드된 선수들이 오히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2017년 팀 OB 스즈키 타카히로도 FA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 및 당장의 성적을 위한 근시안적 운용, 고위관계자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젊은 선수들이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성장도 멈추는 팀내 분위기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에 오카모토 카즈마가 홈런을 뻥뻥 터뜨리고 두산 베어스KBO 리그의 타격성적 1위로 키워낸 고토 코지 코치가 돌아오면서 육성에도 조금 희망이 보이는 분위기.[29]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오치아이 히로미츠를 필두로 히로사와 카츠미(야쿠르트), 이시이 히로오(긴테쓰), 키요하라 카즈히로(세이부), 에토 아키라(히로시마), 고쿠보 히로키(다이에)[94] 등 각 팀에서도 4번 타자를 맡았던 프랜차이즈 스타 들을 대거 대려왔다.(다만 구쿠보는 트레이드로 영입) 투수 영입은 상대적으로는 소박했지만 역시 쿠도 키미야스등 빅네임들이 있었다.[30] 페타지니의 경우 기존 1루수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쓰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우익수로 출장시켰다가 무릎 부상을 당했던 바 있다.[31] 준수한 활약을 펼친 선수라도 워낙 투자한 액수가 커서 적자로 평가한 사례들도 있다.[32] 하지만 쵸노 히사요시, 사와무라 히로카즈, 스가노 도모유키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자금력과 명성, 뒷공작 등을 이용해 드래프트 최대어를 미리 확보해 놓는 등 과거와 같은 패악질을 일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스가노의 경우는 자기 외삼촌이 당시 감독이던 하라여서 교진을 가고 싶어했던 면도 있었지만...[33] 요미우리의 수많은 FA영입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 중 하나였다. 4년의 계약기간 내내 평균 140경기에 출전, 3할 30홈런 OPS 9할 이상을 기록하며 MVP 1회, 정규시즌 리그우승 3회, 일본시리즈 우승 1회의 주역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 찾아온 급격한 노쇠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34] 범용 구호는 "오~ 소레! ○○○(선수명)". 참고로 치바 롯데 역시 범용 구호 사용하지 않고 한국 야구에서 쓰는 콜을 주로 쓴다.[35] "(짝짝짝) ○○○!(선수명)". K리그이 경우를 들면 한 선수당 두세 번 사용하는데, 자이언츠는 이들 중 세 번을 외친다.[36] 응원 도구를 적극적으로 쓰는 철천지 원수 한신과는 크게 대조적인 부분이다.[37] 이는 1975년부터 시작된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테러블 타월> 문화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응원타월 문화도 피츠버그가 원조.[38] 참고로 팬덤 수에서 3위~5위까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292만 명), 주니치 드래곤즈(288만 명),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79만 명) 순이다.[39] 오가사와라는 자이언츠가 수염 길러도 좋다고 한 엄청나게 드문 사람인데 자기가 알아서 깎고 다닌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죠 이러한 규정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정돈된 콧수염까지는 봐주는데 그 이상은 금지. 예를 들면 조니 데이먼은 보스턴에서 뛸 때에 길렀던 수염을 양키스 이적 후에 밀어버렸다. 사실 이 규정은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괴팍함 때문에 생겨났지만...[40] 1993년 시즌 종료 후, 젊은 선수들 중심의 팀 재편을 명목으로 타이요 시절부터 같이 베테랑 선수로 뛰어온 동료들인 타카기 유타카 등의 5명과 함께 단체로 방출되었는데, 이 방출의 실상은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1루수였던 코마다 노리히로의 FA 영입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라는 설이 유력하다.[41] 참고로 이 선수는 한 경기에서 동시에 승리투수와 세이브투수가 된 유일한 사례다. 자세한 건 세이브(야구) 항목 참조[42] 마무리 투수 사와무라 히로카즈모히칸 머리를 했는데 팀 관계자들의 불평이 거셌다.(모히칸 머리: 머리 양옆은 다 스킨헤드식으로 밀어버리고 중앙에만 남겨놓은 헤어스타일, 왕년에 A 특공대로 유명한 Mr. T가 하고 다녀서 유명해졌다.)[43] 그도 그럴 것이, 도쿄돔 시절 요미우리의 텃세에 눌려서 불이익을 본 구단이 닛폰햄이다. 그러나 홋카이도 이전 후 성적뿐만 아니라 닛폰햄의 육성시스템에서 키워낸 선수들이 대박을 치면서 유망주의 무덤 2,3군이 있는 요미우리보다 신인 선수들의 입단선호도가 높아지는 중.[44] 니오카는 야마모토 모나와의 불륜 하나로 문책성 트레이드가 된 건 아니고, 그 전에 후배 선수인 야노 겐지와 동석한 술자리에서 영 좋지 않은 곳의 털을 라이터로 태우면서 그 후배 선수는 고통스러워하는데 낄낄 웃으면서 병신짓한 게 걸려서 구단이 발칵 뒤집어진 후 2연타로 터진 것이었다. 쫒겨날 만했다. 그 전까지 모범적인 이미지가 강한 선수였기에 이 2연타 병크로 두 얼굴의 사나이 & 모나오카 등등으로 불리며 엄청나게 까였다. 니혼햄으로 하야시 마사노리와 같이 트레이드됐을 때 마지막 기자 회견에서 울먹거리면서 인터뷰를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달랐던 듯... 그러게 왜 그런 변태짓에다 불륜짓해서 쫒겨나니 ㅉㅉ 그리고 니오카는 닛폰햄에서 그저 그런 활약을 펼치다가 은퇴 후 2016년 요미우리에 2군 타격코치로 복귀했다. 정작 그 다음에 3순위로 뽑혔던 카토 켄은 백업포수로 2군과 1군을 왔다갔다하며 니오카가 코치로 돌아온 2016년에도 선수로 뛰고 있었다.그러나 통산 185경기 뛰고 2016년 시즌을 끝으로 방출당했다 참고로 니오카의 동기 중 1순위로 뽑혔던 건 우에하라 코지고 2018년에 요미우리로 10년만에 복귀했다.[45] 스기우치는 은퇴 이후 소프트뱅크의 홈인 후쿠오카 쪽 방송에 더 많이 나오고 있다.[46] 2005년 킨테츠 구단 해체 이후로 오릭스 버팔로즈의 우승 세일은 AEON이 담당한다. 2008년 한신 난바선 개통 이후 요미우리 우승기념 세일광고가 고시엔구장을 지나가면 심히 난감해지기도.[47] 이게 어느 정도냐면, 아사히 신문기사에서 요미우리 팬 학생이 한신 응원가 롯코오로시를 모른다고 담임에게 비국민 취급을 받거나 직장에서 어제 야구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한신팬이라 간주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기사에 나온 요미우리 응원 이자카야에서도 "간사이에서 장사하려면 한신 응원해라" 전화가 와서 주인이 "불만 있으면 우리 점포로 와라"라고 맞불을 놓기도. 그래서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간사이의 요미우리 팬들을 이 기사에서 '간사이 유산'으로 선정하며 강팀을 응원하는 건 자랑이니 기죽지 말고 요미우리 응원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48] 간사이에서 웬만하면 TV, 라디오를 막론하고 요미우리-한신전 경기는 도쿄 쪽 방송국이 아닌 오사카 방송국에서 직접 제작해서 중계한다.[49] 센트럴 리그 우승 37회, 양대 리그 성립 이전 리그 우승 9회를 합해 총 46회이다.[50]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챔피언십 우승을 이룬 구단은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뉴욕 양키스월드시리즈 27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요미우리이다. 단 사실상 현재의 상황대로라면 요미우리가 양키스의 기록을 추월할 가능성이 약간 높은데 양키스가 전력보강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노려 볼 만 하다.[51] 전구단 격파도 2004년까지는 갖고 있었다. 1951년 난카이 호크스(現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를 시작으로, 1963년 니시테츠 라이온즈(現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967년 한큐 브레이브스(現 오릭스 버팔로즈), 1970년 롯데 오리온스(現 치바 롯데 마린즈), 1981년 닛폰햄 파이터즈(現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898년 긴테쓰 버팔로즈(해체 당시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까지 꺾었다. 200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창단 이후 이 막내만 못 꺾었는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처럼 못 만나서 못 꺾은 게 아니고 2013년에 만났는데 4-3으로 패배했다.[52] 참고로 한자로 되어 있는 구락부는 '클럽'의 음차자이다. 과거 일본에서는 거의 이 표기로 썼으며 현재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음차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다 이렇게 음차한 듯하다.[53] 지역명+고유명이나 기업명+고유명 등 최대 2단 구조로만 맞추고, 축약명 1단으로 하는 것. 2단 구조를 처음으로 깬 구단은 1969년 지역명, 기업명 표기를 다 하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이며, 1단 축약명 규칙을 깨부순 건 1978년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다.[54] 삼성은 오치아이 에이지 2군 감독, 세리자와 유지 전 배터리코치 부임 이후로 오히려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교류가 늘어났다.[55] 수도 연고지, 순혈주의(~2000년대), 워크에씩 중시 등.[56] 당장 스가노부터 라쿠텐에게 드라마틱하게 진 경험이 있다(...).[57] 사실상 교진군에서 공인하는 초대 감독이다. 일본프로야구 공식전이 시작된 1936년부터 감독을 맡았기 때문. 후일 퍼시픽/타이요 로빈스, 킨세이-다이에이 스타즈, 한큐 브레이브스, 한신 타이거스의 감독을 맡았으며, 1962년에 한신을 양대 리그제 실시 이후 최초의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뒤 1964년에도 또다시 우승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서 62년엔 도에이 플라이어즈에게, 64년엔 난카이 호크스에게 패배한 콩라인이기도 했다(...)[58] 요미우리 역사상 유이한 외국인감독(다른 한명은 왕전즈)인데 왜 그런지는 항목참조. 625전쟁 이후에 일본으로 귀화했다.[59]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60] 양대리그 분리 이후 성적만 서술.[61] 클라이맥스 시리즈 이전에는 승률 1위라도 다승을 못하면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고, 거기서 지면 2위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런 적이 있어야지[62] 2006년까지는 리그 우승만 일본시리즈로 진출, 2007년부터 A클래스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괄호 안은 상대팀.[63] 그 유명한 V9시대의 시작이다.[64] 모든 경기가 고라쿠엔 구장에서만 치러졌다.[65] 전설의 리버스 스윕이 일어난 경기,일명 이나오 시리즈[66] 일본판 2007년 한국시리즈다. 실제로 홈에서 2패를 당하고, 그 이후 4연승을 하였다.[67] 이로써 같은 팀에게 2번 스윕패를 당한 굴욕을 만들었다.[68] SMAP의 리더. 요미우리 연예인 팬의 대명사 격으로 야구 관련 예능 프로에서 MC를 맡으면서 틈만 나면 자이언츠 팬심을 어필한다. 심지어 야구 선수, 감독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연예계 대표 야구 매니아로 통한다.[69] 드라마 오센 홍보 영상에서 팬임을 밝힘.[70] 명탐정 코난 작가.[71] 가족 모두 요미우리 팬. 심지어 한신 고시엔 구장 옆도시인 효고아시야 출신이다.[72] 현재 요미우리 선수로, 어릴 때부터 요미우리의 팬.[73] Hey! Say! JUMP 멤버 가수. 사이조 우먼 뉴스기사에서 "급격의「거인팬」고백" 밝힘.[74] 정작 이 선수는 요미우리는 커녕 센트럴리그 팀에 간 적도 없다.[75] 도르트문트 소속의 축구 선수. 요미우리 구단의 시구도 했다.[76] 요미우리 팬이고, 이승엽을 좋아했다고 한다.[77] 아버지는 라이벌 한신 타이거스의 팬(...)이시라고 한다.[78] 본인의 공식 블로그에서 밝힘.[79] 2016년 당시 공식 블로그에 부모님이 요미우리 팬이고 본인도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을 응원했는데,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해서 좀 슬프게 축하한다고 언급하였다.[80] 현재 요미우리의 유격수. 어릴 때부터 요미우리 팬이었던데다 나머지 11개 구단의 안티(...)였다. 동시에 한신 타이거즈를 엄청 싫어해서, 한신 팬들을 먼지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81] 실제로도 요미우리 선수단이 VS아라시에 출연하여 아라시 멤버들과 대결한 적이 있다.[82]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이자, 일단 외삼촌이 선수 데뷔부터 은퇴, 코치 생활, 감독 생활까지 쭉 요미우리에서만 했던 하라 타츠노리이다.[83]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과 생전 친밀한 관계였다.[84] 위의 아오야마 고쇼와 전 부부 사이였다. 연애 당시에 같은 요미우리 팬이라는 것에 가까워졌었다고.[85] 방송에서는 간사이 이미지 제대로 내면서 정작 야구는 요미우리 팬(...)[86] 크레용 신짱의 등장인물이 맞다.[87] 인스타그램에 도쿄돔 직관 다녀온 사진을 올리기도 했고 아이즈원 멤버들과 함께 이승엽 선수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 성덕[88] 게임 작곡가.[89] 이게 드립이 아닌 게 야쿠르트의 오너였던 마쓰조노 히사미가 "거인한테는 이기지 않아도 된다"라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90] 쟈니스Jr. 美 少年의 멤버. 190713 쟈니스주니어채널, 나스 유토에 대한 퀴즈를 맞추는 기획에서 "유토가 좋아하는 프로 야구팀은?"이라는 질문에서 '쿄진 자이언츠'를 좋아한다고 언급. 또, 좋아하는 선수가 있냐는 동료의 질문에 "사카모토 하야토(坂本勇人) 선수"라고 언급한 바가 있음. https://youtu.be/SdXbBLWbwP8 2:55~4:11[91] 제작사가 니혼 TV가 아닌 오사카 준키국인 요미우리 TV다. 아이러니한 점은 요미우리TV가 간사이권 방송국 중에서 한신 응원 프로그램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것.[92] 이 애니 제목은 마이니치 방송에서 훗날 한신 소식 전담코너인 '한신의 별'로 패러디되며 베이스볼 투나잇을 방불케 하는 약빤 한신전 하이라이트 편집및 요미우리 디스를을 선보였다. 요미우리 디스의 선봉장[93]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스코트였던, 사람 얼굴 같은 공이 배트에 탄 모양새인 '배트에 탄 소년(バットに乗った少年)'을 표절한 "방울이" 를 본인들 마스코트로 사용했다. 쌍방울 레이더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