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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페타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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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LG 트윈스 시절
이름 로베르토 안토니오 페타지니
(Roberto Antonio Petagine)
생년월일 1971년 6월 2일 ([age(1971-06-02)]세)
국적 베네수엘라
출신지 카라카스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5)
뉴욕 메츠 (1996~1997)
신시내티 레즈 (1998)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9~2002)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3~2004)
보스턴 레드삭스 (2005)
시애틀 매리너스 (2006)
멕시코시티 레드데블스 (2008)
LG 트윈스 (2008~200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0)
응원가 Dschinghis Khan - Dschinghis Khan [1]
200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9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김현수
(두산 베어스)
로베르토 페타지니
(LG 트윈스)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번호 29번(2008~2009)
제이미 브라운
(2008)
로베르토 페타지니
(2008~2009)
이택근
(2010~2011)

1. 개요2. 선수 경력
2.1. 마이너리그 시절2.2. 일본 프로야구 1기 시절2.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2.4. LG 트윈스 시절2.5. 일본 프로야구 2기 시절
3. 기타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출신으로 일본프로야구한국프로야구의 LG 트윈스에서 활약했던 前 프로야구 선수.

LG 시절 때의 별명은 갓타지니, 페타(神), 페느님, 못할 때 한정으로 폐타이어 등이 있다.

2. 선수 경력

2.1. 마이너리그 시절

페타지니는 1992년, 1994년 BA 선정 휴스턴 애스트로스 팀내 유망주 탑 10에 들었던 1루수 유망주였다.

1993년 더블A에서 타출장 3/4/5를 기록하며 텍사스리그 MVP를 받자 1994년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는데, 대타로 기용된 5타석에서 무안타에 그치며 곧바로 트리플A로 내려간다. 이후 타출장 3/4/5를 기록하며 7월말에 콜업을 받지만, 페타지니가 얻은 기회는 단 3타석. 8월 12일 부터는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로 인해 리그가 중단됐고, 더군다나 휴스턴의 1루수는 만장일치로 리그 MVP를 수상하는 휴스턴의 레전드 제프 배그웰이었으니 3타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래저래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가 된 페타지니는 트리플A로 잠깐 내려가기도 하지만 144경기의 단축 시즌에서 89경기 152타석의 기회를 얻는데, 선구안만 통하는 모습으로 fwar 0.3을 찍는다. 1996년에는 뉴욕 메츠로 팀을 옮기고 트리플A에서 역시나 타출장 3/4/5를 기록하지만 빅리그에서는 50경기 113타석에서 fwar0.1을 기록한다.

1997년과 1998년에는 투수 친화적인 트리플A IL에서 아예 타출장 3/4/6을 찍으며 MVP를 차지할 정도로 트리플A를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1997년 메츠에서는 FA로 영입된 1루수 존 올러루드가 fwar 4.4를 찍는 활약을 펼치면서, 페타지니는 9월에서야 콜업을 받았고 그 마저도 대타로 출장한 18타석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998년에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8월에 콜업을 받은 뒤 34경기 79타석에서 OPS .873를 기록하며 fwar 0.6, bwar 0.5를 찍었지만 fwar 0.8, bwar 0.9를 기록한 3살 어린 팀내 유망주 션 케이시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2]

결국 AAAA형 1루수가 된 페타지니는 일본행을 결심한다.

2.2. 일본 프로야구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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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스왈로즈 입단 첫 시즌인 1999년에 OPS 1.146의 몬스터 시즌을 보내며 홈런 44개로 홈런왕[3] 이 된다. 2001년에는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는 활약으로 팀을 리그와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센트럴리그 MVP에 선정. 야쿠르트 시절 4년 동안 베스트나인 4회, 골든글러브 3회를 획득하기도 한다. 야쿠르트 시절의 조정 OPS+가 194-173-191-195. 그야말로 센트럴리그를 쥐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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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일본프로야구 최고 연봉자가 되며 주포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로 떠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는데, 2003년 요미우리에서는 페타지니를 기존의 1루수였던 기요하라 가즈히로와 함께 기용하기 위해 우익수로 돌리는 실수를 범한다. 그런 탓에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무릎은 악화됐고, 5월에는 왼쪽 무릎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는 등 10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100경기에서 34홈런, OPS 1.139를 기록하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규정타석에 미달했음에도(20타석) 미달한 규정타석을 범타로 처리해도 출루율 1위를 기록하는 성적을 거둘 정도. 하지만 그 당시 일본프로야구 규정상 출루율엔 토니 그윈 룰[4]이 적용되지 않아서 후쿠도메 코스케에게 최고출루율 타이틀을 내줘야 했다.

2004년에는 기요하라와 플래툰으로 기용되는데, 계속된 무릎 부상의 영향으로 시즌 중반에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다가 8월 이후 페이스를 끌어올려 29홈런, OPS .970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당시 타고투저의 리그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연봉과 명성에는 못 미치는 성적이었고, 시즌 종료 후 연봉이 대폭 삭감된 재계약 조건을 받고 결국 일본 무대를 떠나게 된다.[5]

2.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

200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산하 트리플A 팀인 포터켓과 계약을 맺는다. 보스턴이 케빈 밀라의 백업 후보군으로 페타지니를 스프링캠프에 초청하는데, 스프링캠프 기간 중 왼쪽 무릎연골 손상으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빅리그 도전이 무산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꽤 빠르게 회복했고, 트리플A IL 74경기에서 .327/.452/.635 20홈런 69타점을 올리며 가볍게 트리플A를 정리한다.

보스턴은 1루에 케빈 밀라와 존 올러루드로 플래툰을 돌리고 있었는데 올러루드가 15일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페타지니를 8월초에 메이저로 콜업한다. 8월 한 달 동안 13경기 30타석에서 1홈런 8타점 OPS .900의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올러루드가 복귀하면서 기회는 줄어들었고 9월에는 단 6타석밖에 들어서지 못하며 결국 OPS .799로 시즌을 마친다.

시즌 종료 후 케빈 밀라와 존 올러루드는 팀을 떠났지만, 보스턴에서는 1루에 3루수 유망주인 케빈 유킬리스와 새로 영입한 수비요정 J.T. 스노우를 플래툰으로 쓸 계획이었고 FA로 유격수 알렉스 곤잘레스를 영입하면서 40인 로스터 중 누군가는 빠져야 되는 상황이 오자 2006년 2월에 페타지니를 방출시킨다.

그 후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시범경기 21경기에 출장해서 OPS 1.125를 기록했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쓰리런 홈런을 치기도 했다.

그런 덕분에 1루수 리치 색슨의 백업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는데, 개막전에 대타로 나와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에게 홈런을 쳐낸다. 이후 4월 한 달 동안 대타로 출장한 11타석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에서는 지명타자 자리에 시즌 내내 부진하여 fwar -0.8을 찍게 되는 칼 에버렛을 기용했고, 이후에는 페타지니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31경기 32타석에서 OPS .683의 기록으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한다.

2.4.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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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얼마간 멕시칸리그에서 뛰고있던 페타지니를 데려온 것은 한국 프로야구팀인 LG 트윈스. 투수 제이미 브라운을 대신해서 한국땅을 밟은 페타지니는 68경기에 나서 타율 0.347, 75안타, 7홈런의 호성적을 기록한다. 풀 시즌을 못 뛰어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기에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0.347의 타율은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 기록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9년, 이전 시즌의 활약을 인정받아 재계약의 성공한 페타지니는 말 그대로 팀의 최고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무시무시한 장타툴과 함께 X-존과의 궁합으로 당시 두산 마무리 이용찬에게 3연타석 홈런이자 끝내기 역전 만루홈런을 때려내는 장면은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 경기 하이라이트더불어 FA로 영입한 이진영, 정성훈이 앞뒤로 페타지니의 우산효과를 받았고 박용택이 이 시즌부터 완전히 각성한 이유 중 하나가 페타지니의 타격 메카니즘을 보고 배우며 깨우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타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6월까지 김상현, 클리프 브룸바, 최희섭 등과 홈런왕 경쟁을 벌였지만 극단적인 풀 히터 성향을 파악한 팀들이 페타지니 시프트를 펼치기 시작하면서 4할을 넘나들었던 타율이 슬슬 내려오고 이와 함께 좋지 않은 무릎과 나이로 인한 체력저하로 인해 홈런왕 경쟁에서는 멀어졌다. 시즌 마무리 즈음에는 발바닥 부상으로 인해 수비를 나서기도 힘들어졌고 팀이 가을 야구와 멀어졌기에 무리하지 않고 시즌을 다소 일찍 마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율 0.332(6위), 26홈런(6위), 출루율 0.468(1위), 장타율 .575(6위), OPS 1.049(2위), BB/K 1.39[6]를 기록하며 거의 모든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심판보다 볼을 정확히 보는 선구안은 역대 KBO 올 타임 넘버 원이라고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재계약이 유력해보였으나 후반기에 비교적 부진하면서 고령의 나이가 걸림돌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병규가 주니치와 계약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하고 히어로즈에서 이택근을 트레이드로 영입하게 되자 새로 부임한 박종훈 감독은 투수진 보강에 중점을 두기 위해 페타지니와의 재계약을 포기한다. 외국인 선수는 전부 투수(에드가 곤잘레스, 오카모토 신야)로 채웠고, 하지만 오카모토는 마무리였기에 선발 투수진은 별반 나아진 게 없었으며(선발진이 봉중근-곤잘레스/더마트레-김광삼-심수창-박명환일 정도로 봉중근을 제외하면 막장이었다. 그나마 트레이드로 들어온 박현준이 쏠쏠히 활약해서 블랙홀이 생기진 않은정도.. 지만 이 해의 여파로 봉중근은 드러눕고 다시는 선발투수로 재기하지 못 한다) 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이대형 등으로 구성된 외야진에 이택근까지 가세하면서 외야는 그야말로 과포화상태가 되었다. 빅파이브그래서 LG팬들은 굳이 욕먹고 페타지니까지 버려가면서 이택근을 데려와야 하냐, 이왕 욕먹을 거면 이현승을 데려와야지라며 울부짖었다. 물론 시즌 개막 직후 이현승이 부진하자, 이현승을 아쉬워하는 소리는 쏙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곤잘레스와 오카모토가 차례로 실패하고, 이택근은 규정타석도 못 채워 돈값을 못한 채 도로 히어로즈로 돌아가는 등, LG팬들은 페타지니를 눈물나게 그리워했다.

칭기스칸 멜로디를 차용한 그의 LG 시절 응원가는 워낙 인기를 끌어서 한국프로야구 외국인타자 응원가를 논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페타지니 이후 이름 네글자인 LG 용병타자들은 모두 이 멜로디를 사용할 정도. 실제로 스나이더, 히메네스가 페타지니 이후로 그 노래를 쓰기도 했다.

2.5. 일본 프로야구 2기 시절

2010년 4월 1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에 합의하여 6년만에 일본프로야구에 복귀했다.

이후 한달 정도 몸을 만들며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페타지니는 이범호가 내려가고 5월 29일 1군에 합류하게 된다. 합류 초반에는 끝내기 홈런을 2번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으나,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인데다 2010년 초반 무직 상태로 고향인 베네수엘라에서 거의 놀다시피하며 지냈던 까닭인지 1군 81경기에서 10홈런 41타점 OPS .772로 크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결국 소속팀 소프트뱅크로부터 재계약 포기 통보를 받았다. 이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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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타지니는 실력 말고도 항상 따라붙는 이슈가 있다. 바로 부인인 올가 페타지니. 25살 연상의 나이 차이도 놀랍지만, 친구의 어머니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엄마를 사랑했네 잠깐, 그럼 그 친구는 졸지에 자기 친구를 아버지로 맞이한 건데? 이 때문에 팀을 옮겨다닐 때마다 게시판에서 이 얘기가 나왔다.[7]
  • 외국인 선수의 이미지답지 않게 대단히 온화한 성격이라 데드볼을 꽤 많이 맞고도 화를 한 번도 안 냈다. 그러나 전성기 일본 시절엔 이와세 히토키가 데드볼을 던지자 달려든 적이 있긴 했다.[8]
  • 스페인어를 쓰는 베네수엘라 출신이라 그의 성(姓)이 한때 '페타히네'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부계쪽이 이탈리아계라 '페타지니'로 불러달라고 했다.
  • 은퇴 이후 2018년에 일본프로야구 팬 1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투표에서 5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이 투표에서 현역 선수 중 제일 높은 순위를 차지한 선수는 4위인 블라디미르 발렌틴.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1999 야쿠르트 134 452 .325 147 23 2 44 112 97 10 116 .469 .677
2000 136 484 .316 153 30 0 36 96 91 7 97 .432 .601
2001 138 463 .322 149 27 0 39 127 93 4 120 .466 .633
2002 131 453 .322 146 23 1 41 94 90 0 85 .438 .64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3 요미우리 100 331 .323 107 17 0 34 81 70 1 77 .457 .683
2004 117 383 .290 111 17 0 29 84 70 2 75 .409 .56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8 LG 68 216 .347 75 17 1 7 35 29 1 40 .452 .532
2009 115 388 .332 129 16 0 26 100 62 2 97 .468
(1위)
.57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10 소프트뱅크 81 264 .261 69 12 0 10 41 34 0 39 .352 .420
NPB 통산
(7시즌)
837 2830 .312 882 149 3 233 635 545 24 609 .438 .613
KBO 통산
(2시즌)
183 604 .338 204 33 1 33 135 91 3 137 .462 .560

5. 관련 문서



[1] 페!페!페타지니~오오오 오오오 오오오오 오오~*4[2] 션 케이시는 이듬해인 1999년 타출장 .332/.399/.539, fwar 4.1, bwar 4.0의 활약으로 내셔널리그 올스타가 된다.[3] 이 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페타지니보다 1개 작은 홈런을 기록중이던 마쓰이 히데키의 홈런 타이틀을 가져다 주기위해 요미우리 자이언츠 벤치에서 선발 투수였던 우에하라 고지에게 고의사구를 명했는데, 우에하라는 고의사구를 내주고 남자답지 못한 승부를 펼쳤다는 속상함에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우에하라 고지항목 참조.[4] 자세한 건 규정타석 항목 참고[5] 1루수로 페타지니를 거르고 키요하라를 선택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키요하라가 노쇠화와 잦은 부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코칭스탭 머리 위에 놀며 갈등을 빚는 등 최악의 수가 되었고. 그 해 요미우리는 5위로 추락했다. 그 후폭풍으로 오프시즌에 호리우치 츠네오 감독의 모가지가 날아가고 키요하라도 오릭스 버팔로즈로 쫓겨나는데, 그 자리를 대신해 요미우리가 새 주전 1루수로 영입한 것이 이승엽.[6] 97볼넷 70피삼진. 외국인 선수 단일시즌 최고 BB/K는 2001년 펠릭스 호세로, 1.76(127/72)이다.[7] 크레용 신짱 38권에서 지나가는 대사로 페타지니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페타지니 본인도 이 사실을 알아서 아내 얘기를 면전에 꺼내면 굉장히 언짢아했다고 한다. 그래도 애정하나는 진퉁이었는지 차명석이(2살 위다) 그래도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묻자 답변이 걸작이다. "너희들은 사랑을 아직 몰라."[8] 이때 그 호시노 센이치조차 맞대응할 생각을 못하고 황급히 말릴 정도로 엄청 격하게 화냈다. 그러나 와카마츠 츠토무 감독이 "안돼! 페타(페타지니의 애칭)!", 이 한 마디만 말하면서 말리자 바로 난동을 그쳤다는 후문이 있다. 와카마츠 감독이 선수들 사이에서 인망이 뛰어났다는 좋은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