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4 22:23:39

우치카와 세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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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번덕 개콘에 나온 사람 닮은 듯아니 세얼간이에 나온 이분 닮은 듯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1
우치카와 세이이치 (内川聖一)
생년월일 1982년 8월 4일
국적 일본
출신지 오이타 현 오이타 시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1~201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0~)
응원가 타카기 유타카 테마 (2001~2010)
호크스 구단 자작곡 (2011~)[1]
2011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와다 츠요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치카와 세이이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요시카와 미쓰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4년 일본시리즈 MVP
미마 마나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우치카와 세이이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이대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반지
2009


1. 개요2. 프로입단 전3. 프로입단 후
3.1.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3.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3.2.1. 2011년3.2.2. 2012년3.2.3. 2013년3.2.4. 2014년3.2.5. 2015년3.2.6. 2016년3.2.7. 2017년3.2.8. 2018년3.2.9. 2019년
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의 야구선수. 현재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안타 제조기.

센트럴리그 동네북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에는 무라타 슈이치와 함께 3, 4번 타선을 형성한 팀 타선의 간판선수였으며, 소프트뱅크로 이적한 현재에도 수비는 데뷔 초기에는 2루수를 보았고, 1루수좌익수 수비가 가능하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주로 좌익수로 뛰었고 소프트뱅크 이적 후에는 좌익수로 고정되었다가 이대호가 이적한 2016년에는 주로 1루수를 본다.

...그러나 이 내용들보다도, 한국의 야구팬들에게는 2009년 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때 찍힌 이 짤방 하나가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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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눈에 안들어온다
홍성흔닮았다

이 덕분에 한국 내에서의 별명은 일본산 턱돌이. 사실 일본에서도 "턱이 비정상적으로 길다"라고 놀림받고 있으며(…) 거기서 불리는 별명은 '아고질라'.[2] 눈도 상당히 신경쓰입니다만 본인도 자신이 턱이 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도리어 홈런 등을 치고 나면 덕아웃에서 동료들이 턱 세레모니를 해주는 등 그 사실에 대해서 크게 신경은 안 쓰는 모양.

AKB48의 멤버 나카니시 치요리가 광팬이라고 한다.[3]

2. 프로입단 전

고교 시절 골농양[4]에 걸려 세 번에 걸쳐 수술을 받는 등 고생을 했음에도 고교 3년 동안 홈런 41개를 쳐내며 모교의 코시엔 대회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 덕에 요코하마가 1순위로 2001년에 지명해 지금에 이른다. 노력으로 성공한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타입.

3. 프로입단 후

3.1.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

(...) 참고로 부르고 있는 노래는 요코하마의 응원가인 熱き星たちよ 긴장감 없는 노래

(소프트뱅크로의 이적이 결정된 후의 마지막 베이스타즈 관련 행사. 즉 요코하마 유니폼을 입은 우치카와의 마지막 모습)

무라타 슈이치, 요시무라 유키[5]과 함께 별 볼일없는 팀에서도 무시못할 중심타선을 형성했다. 2008년에는 0.378의 고타율로 타격왕을 수상했는데 이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오른손 타자 시즌 최고 타율이다. 그러나 정작 소속팀인 요코하마는 그 해 자신의 타율보다 낮은 승률(0.338)을 기록했다. 약팀의 비운이다. 안습.

이처럼 안습한 팀 상황 속에서도 중심타선[6]과 테이블 세터를 오가며 2010년까지 3년 연속으로 3할 타율을 달성하며 맹활약했으나, 2010 시즌 종료 후 FA 권리를 행사하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波間に熱く光る ダイヤモンドの主役
파도에 뜨겁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주역
勝利へ走れ 内川 GO!GO!
승리를 향해 달려라 우치카와 GO!GO!

우치카와의 요코하마 시절 응원가를 도쿄여자류 라는 아이돌 그룹이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다. 다만 본래 저 응원가는 타카기 유타카가 선수생활 말엽에 응원가로 쓰던것이 원곡이었다. 위 가사에서 熱く를 渋く로 바꾸고 우치카와를 유타카로 바꾸면 원조 가사가 된다. 참고로 유타카 버전의 CD음원이 올라온 이유는 2003년 이후 요코하마가 선수용 응원가 CD를 발매하지 않아서 우치카와 버전의 CD음원이 없기 때문.

3.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이적 후에도 신나게 응원가를 불렀다. 가와사키 무네노리의 깨방정은 덤.

3.2.1. 2011년

투신타병 시즌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을정도의 성적을 기록했다. 2011년의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1위를 달린 원인이 야구의 기본 중 하나인 투타의 조합이 아주 잘 이루어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타석에서의 우치카와는 미칠듯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1~2점대 방어율이 넘쳐나는 사상 유례가 없는 투고타저 시즌에 3할 3푼 8리의 고타율을 찍을 정도였으니.[7] 6월 말부터 7월말까지 부상으로 중간에 빠지면서 규정타석 미달로 타격 순위에서 빠지기도 했으나 시즌이 막판으로 접어든 9월 22일 규정타석을 채워서 다시 수위타자로 복귀, 결국 2위와 무려 2푼 가까운 차이를 벌리면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두번째로 양대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획득하였다[8]. 역대 FA 최고 성공사례로 기록될 만한 대활약. 하여튼 소프트뱅크로서는 정말 좋은 영입으로 인해 타선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교류전이 끝나고부터 1위를 질주, 2년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우치카와의 활약 등에 힘입어 소프트뱅크는 9월 17일에 매직넘버를 켰는데, 이것이 우치카와 야구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매직넘버라(...), 너무 기쁜나머지 약간 의도적인 디스 실언을 한게 있어서 전 소속팀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팬들에게 폭풍같이 까이기도 했다. 내용인 즉슨 "아무런 긴장감이 없는데서 플레이 하는것보다, 이런 곳에서 플레이 하는게 보람이 느껴진다."라는 발언인데, 다시 말하면 전 소속팀인 만년 꼴찌 요코하마는 긴장감이 없는 팀이라는 소리(...).[9] 교류전 때도 FA이적후 처음으로 방문한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과거의 홈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야유를 받았지만 선제 홈런을 날려서 관중들을 침묵시키기도 했다. 요코하마는 교류전이 시작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통산 소프트뱅크 전에서 15승 1무 31패의 참담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위 발언이 있고 불과 1년뒤, 요코하마에서 우치카와와 타격의 양대 축을 이루던 무라타 슈이치마저 헹가래 치는 모습이 부럽다면서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떠났다. 요코하마는 꿈도 희망도 없어.[10]

결국 난생 처음으로 소속 팀이 정규시즌을 1위로 통과했다. 그리고 본인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포스트시즌인 세이부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1, 2차전에서 선제 타점을 올리면서 큰 무대에서의 긴장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활약으로 승리에 공헌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클라이맥스 시리즈만큼은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쐐기타점 및 호수비 등으로 팀의 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공헌했다.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맹타를 휘두르고 오승환에게까지 안타를 뽑아냈으나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하지만 교류전 MVP,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에 퍼시픽리그 시즌 MVP까지 획득하면서 역대 FA 최고 성공사례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만큼의 활약상을 보여줬다.

3.2.2. 2012년

2012년에는 등번호를 1번[11]으로 바꾸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한 타격을 보여주며 팀의 하락세를 부채질했으나, 팀의 UTU와 함께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결국 5시즌 연속 3할 타율을 사수하고 157안타로 퍼시픽리그 최다안타 타이틀을 따내는 등 야구는 잘 하던 놈이 잘 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3.2.3.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푸에르토리코와의 준결승전을 치를 때, 8회말에 결정적인 본헤드 플레이[12]를 범하며 일본의 4강 탈락에 일조하고 말았다. 그나마 눈물까지 흘리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동정은 받았다. 네덜란드한테 발렸다며 낄낄댄 모 선수는 반성해야 한다

WBC에서의 뼈아픈 실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규시즌에서는 180안타를 치며 198안타를 친 같은 팀의 하세가와 유야에 이은 최다안타 2위를 차지하고 타율 .316, 출루율 .376, 장타율 .477, OPS 853의 비율스탯을 찍는 등 여전한 안타제조기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팀은 치바 롯데 마린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밀려 5년만에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했다.

3.2.4. 2014년

2014년 시즌에도 변함없이 중심타선에서 안타를 양산하며 7년연속 타율 3할에 성공했다. 이 기록은 오른손 타자로서는 일본프로야구 타이기록이다. 그리고 일본시리즈에서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지만 팀 전원 누구도 특출난 활약을 보인 선수가 없어서 3할5푼의 타율로 시리즈 MVP로 선정되며 2011년 시즌에 유일하게 놓친 시리즈 MVP 수상에도 성공했다. 미션 클리어

3.2.5. 2015년

2015년 시즌에는 시작 전부터 신임 쿠도 키미야스 감독으로부터 4번타자 자리에 고정하겠다는 언질을 받았다. 덤으로 주장 자리에도 취임했다. 생애 처음으로 4번자리에 고정 된 데다 주장 임무까지 맡게 된 탓에 부담감을 느껴서인지 예년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찬스 때마다 적절하게 병살타를 날리고 본인이 부상으로 빠지니까 오히려 팀 타선이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는 등 잘나가는 팀 타선에서 이마미야와 더불어 욕을 먹는 액받이 역할을 했다. 결국 시즌 2할8푼4리로 3할 타율에도 실패하며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오른손 타자 8년연속 3할 타율 도전에도 실패했다. 그리고 티셔츠 값도 토해내게 됐다.[13]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3경기 연속 결승타로 하극상을 선언한 롯데를 물리치는 데 공헌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 시즌 중의 부진을 털어냈다. 중요한 포스트시즌에서 컨디션이 회복되는 기미를 보여서 일본시리즈에서의 활약도 기대를 하게 했으나 시리즈 개막 전에 갈비뼈 미세골절로 시리즈 출전이 불가능해졌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이미 롯데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파울볼을 처리하는 중에 펜스에 부딪히면서 갈비뼈에 금이 간 상태였으나 클라이맥스 시리즈 동안에는 통증을 참으면서 경기에 출전했다고 한다. 결국 통증이 심해져서 일본시리즈 출장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상대팀인 야쿠르트에는 희소식이었으나 우치카와 대신 4번 자리에 복귀한 이대호가 맹타를 휘두르며 일본시리즈 MVP를 차지하는 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덕분에 중요한 경기에서 중심타자인 자신이 부상으로 빠지게 됐다는 마음의 짐을 덜게 된 건 다행.

3.2.6. 2016년

다시 3할 복귀, 커리어 첫 100타점

4번 타자-1루수 자리에 고정되어 풀 시즌을 치루었다. 전년도의 하락세가 일시적이었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한 듯 .304 .345 .435 18홈런 108타점 169안타의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앞 타순에 리그 최고 출루율을 자랑하는 야나기타 유키가 고정되면서 커리어 첫 100타점을 기록했다. 다만 리그 최다 병살타(27개)도 기록했다.

3.2.7. 2017년

커리어 최악의 시즌, 그러나 포스트 시즌에서 빚을 갚다

시즌 중반에 부상을 당하면서 규정타석, 시즌 100안타, 3할 타율 등 커리어 내내 당연하듯이 달성해 온 수치를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후반기 내내 거의 결장하다가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하고 나서야 회복을 겸해서 출전하기 시작했다. 출장 경기는 시즌의 절반수준인 73경기로 정상적으로 풀시즌을 뛰었으면 통산 2000안타와 명구회 가입도 8월쯤에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결국 30개를 남겨놓고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복귀하며 시즌 막판 부상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까지 결장하게 된 야나기타 유키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신기록인 4게임 연속홈런을 기록하며 초반 2연패로 몰린 팀을 위기에서 건져내고 일본시리즈 진출로 이끌었다. 본인은 커리어 세번째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하면서 본인 유니폼에 왜 C가 박혀있는지 스스로 증명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2017년 일본시리즈에 올라온 상대가 7년 전에 호크스로 오고 나서 틈만나면 긴장감 없는 팀, 뛰는 보람이 없는 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팀 등등으로 디스를 해오던 바로 그 팀이 되었다. 본인도 올라온 상대팀도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가운데 별로 재회하고 싶지 않은 상대를 만난 본인의 표정이 상당히 궁금해진다.[14] 본인이 디스하던 팀은 TBS 테레비가 운영했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고 일본시리즈에서 붙는 팀은 DeNA가 경영하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사실은 다른 팀이라서 상관없다 카더라. 그리고 역시나 전 소속팀과 일본시리즈에서 붙게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어찌되든 상관 없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상대가 어디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인터뷰를 했다.[15]

그리고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 요코하마의 마무리 투수 야마사키 야스아키를 상대로 9회말 1사에서 극적인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 이후에 팀이 11회말에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면서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우치카와 본인은 이 공로로 일본시리즈 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 이 후 인터뷰에서 "난 요코하마를 싫어하지 않는다. 지금도 자택의 진열장에는 아직도 요코하마 시절의 유니폼과 야구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다만, 내가 있던 시기의 요코하마와 지금의 DeNA는 기업, 유니폼과 마스코트, 그리고 선수단까지 많은 것이 변해서 다른 팀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있던 시기의 요코하마에서는 팬들에게 우승하겠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는데, 팬들에게 그 꿈을 볼 수 있게 해준 DeNA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다음에는 (베이스타즈가) 리그까지 우승해서 다시 일본시리즈에서 대결하고 싶다." 라며 친정팀이자 상대팀인 DeNA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요코하마에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원정을 간 우치카와가 시합 전 몸 푸는 시간에 베이스타즈 팬들에게 인사하고 팬들이 박수로 화답하는 모습. 훈훈하다

3.2.8. 2018년

매우 좋지 않다.

전년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4경기 연속홈런과 일본시리즈에서 야마사키 야스아키로부터 친 동점홈런의 기세는 어디갔는지 시즌 개막하고 한달 반이 다 돼가는데 타율이 멘도사라인에서 놀고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통산 2,000안타에 근접하면서 본인도 기록달성이 부담이 됐는지 부진이 더더욱 깊어지는 중. 일각에서는 본격적으로 노쇠화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2,000안타 달성에 단 2개를 남겨둔 5월 2일 롯데 전 이후, 달성을 기대했지만 안타 추가가 쉽지 않았다. 5월 5일 롯데전에서 통산 1,999안타를 치고 난 뒤 후쿠오카 자택에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초밥 장인까지 섭외한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 격려에도 불구하고 14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다. 결국 홈 팬들 앞에서 통산 2,000안타를 치고 싶다던 소망도 물거품이 되고 5월 9일 세이부 원정경기 4번째 타석에서 다케쿠마를 상대로 우전안타를 치면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51번째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최종성적은 타율 0.242에 68안타 8홈런 30타점. 확실히 하락세를 타고 있다.

3.2.9. 2019년

시즌 초에는 꾸준히 주전 1루수로 나오는데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와 함께 팀 타선의 혈을 끊어먹고 있다.

2017년 일본시리즈의 활약 덕에 큰 경기에 강한 남자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었으나 일본시리즈에서도 11타수 2안타로 썩 인상에 남는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시즌 종료 후 성적은 535타석 128안타 12홈런 타율 0.256 OPS 0.666으로 작년보다는 약간 낫지만 1루수임을 감안하면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성적을 기록했다.[16] 다만 수비 면에서는 퍼시픽 리그 최초로 1루수 필딩율 100%(수비기회 1094회)를 달성하며 커리어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일본 세이버메트릭스 업체인 DELTA사의 데이터상 UZR +18.6라는 독보적 수치를 기록했다.

결국 연봉삭감을 피하진 못했다. 4억엔에서 38% 감액된 2억 5천만엔에 단년계약을 맺었다. 여기다가 시즌 후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영입되어 진짜 망할 위기에 처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배드볼 히터 스타일의 중장거리 교타자. 사실 20홈런 정도에 많은 2루타를 칠 정도의 갭파워를 갖고 있는 선수라 일반적인 중거리 교타자보다는 장타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타자친화 구장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뛰건, 투수친화 구장인 후쿠오카 돔에서 뛰건, 공인구 변경으로 투고타저가 되건간에 단 한번도 20홈런을 넘긴 적이 없다. 희한하게도 후쿠오카 돔에 홈런 테라스 존을 설치한 후에는 노쇠화 때문인지 홈런 갯수가 오히려 전년에 비해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 홈런 커리어 하이는 2013년의 19홈런이다. 배드볼 히터라 볼넷이 적어서 그렇지 볼삼비도 좋고 컨택이 워낙 좋은지라 꾸준히 중심타선에서 활약하는 중.

주력은 평균 이상이나 도루는 못한다. 데뷔 초에는 사실 2루, 3루, 유격수도 봤으나 수비의 문제가 있었는지 현재는 1루수와 코너 외야수만 본다.[17][18] 그리고 우익수 수비도 평가가 안 좋아서 사실상 1루수, 좌익수 전용. 그래도 1루수와 좌익수 수비력은 준수하다. 물론 이 두 포지션은 수비만으론 절대 살아남을 수 없지만.


[1] 右に左に捌け コースを絞って 狙い澄まし 内川打て(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날려라 코스를 정해 정확히 노려서 우치카와 쳐라)[2] 일본어로 을 뜻하는 '아고'와 마쓰이 히데키의 별명인 "고질라"를 합성[3] 공교롭게도, 나카니시 치요리는 HKT48 멤버였고 후쿠오카 출신이기도 하다.[4] 뼈에 완두콩 크기의 구멍이 생기면서 고름이 나오는 병[5] 이들은 전부 일본프로야구에서 보기 드물어진 토종 우타 거포에, 규슈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6] 터멜 슬렛지, 브렛 하퍼 등 중심타선 보강용으로 데려온 좌타 외국인 선수들이 쓰일 때가 있었다.허나 이 팀의 가장 큰 문제가 공격은 아니었을텐데...[7] 부상 직전까지 3할 6푼대의 타율을 찍었었다. 더구나 2011년이 사상 유례없는 투고타저 시즌인 점을 감안하면, 타고투저 시즌이었으면 4할도 찍었을 기세였다.[8] 첫번째는 에토 신이치(江藤慎一)로 센트럴 리그의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2회(1964, 65), 퍼시픽 리그의 롯데 오리온즈에서 1회(1971) 획득하였다. 파이터즈 시절 퍼시픽 리그 타격왕을 7번이나 차지했던 대타자 장훈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획득할 기회가 있었으나 김기태(재일교포)와의 악연으로 놓친 적이 있다.[9] 이후 배째라 정신을 탑재했는지 틈만 나면 요코하마를 디스하는 발언을 거듭하여 2ch 등지에서는 NPB를 대표하는 귀축이자 요코하마 안티의 갑 of 갑으로 칭송받는다(...)[10] 나머지 한 명인 요시무라 유키는 2012년 타무라 히토시가 포함된 3:3 트레이드로 우치카와가 있는 소프트뱅크로 이적했고 현재까지도 오른손 대타 요원으로 활약중이다. 굿바이 요코하마[11] 당시 팀의 감독인 아키야마 코지의 현역 시절 등번호이다.[12] 1:3으로 뒤진 1아웃에 2루에 이바타 히로카즈가, 그리고 1루에 우치카와가 있던 상황에 사인 미스로 우치카와는 2루로 뛰는데 이바타는 2루에 그냥 머물면서 우치카와가 아웃되고 말았다. 이 당시 푸에르토리코 포수였던 야디어 몰리나가 공을 들고 2루까지 직접 뛰어와서(...) 우치카와를 아웃시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이 더블스틸과 함께 그린라이트 사인을 냈다고 기자회견에서 해명을 했다. 이바타는 낚시용으로 뛰는척을 한건데, 엉뚱하게도 우치카와가 거기에 낚여서 2루로 뛴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것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얘기가 나오지 않아서 진상은 알 수 없었지만 누가 들어도 부자연스러운 해명이다. 이바타, 우치카와 둘 중에 하나가 사인을 잘 못 본 것은 확실하고 야마모토 감독이 실수한 선수를 감싸기 위해서 결국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한 것은 확실하다. 사인을 잘못 본 것이 이바타인지 우치카와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 병살을 막기 위해서 작전이 사용되고 주자는 무조건 스타트를 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사인을 놓친 건 이바타일 확률이 높으나 어쨌든 아웃은 우치카와가 됐기 때문에 우치카와가 자신이 본헤드 플레이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자책을 하는 형태로 넘어간 듯 하다.[13] 무슨 얘기냐 하면 2015년 시즌 초에 호크스는 선수별 티셔츠를 발매하면서 각 선수별로 2015 시즌의 공약을 티셔츠에 적게 했다. 예를 들면 야나기타는 트리플 쓰리, 이마미야는 골든글러브 상, 셋쓰는 5년연속 10승 이상 등등. 그리고 이 공약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티셔츠 매출액만큼을 선수 연봉에서 까서 구매한 팬들에게 환불해주기로 공약을 했는데 8년연속 3할 타율을 공약한 우치카와는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공약을 내걸고 티셔츠를 제공한 선수 중에서 성공한 선수가 별로 없다. 혼자 토해내는 건 아니라는 게 위로[14] 실제로 호크스로 오고나서 인터뷰에서 요코하마 시절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곤 했다.[15] 다만 본인은 이 발언에 대해서 일본 시리즈에서 승부가 중요할 뿐 친정팀에 대한 감정 등은 상관 없다는 의미였지, 베이스타즈 따위 신경 안쓴다는 의미는 아니였는데 매스컴에서는 해당 문장을 대문짝만하게 찍어내는 걸 보고 자신이 (오해가 될 수 있을 말로) 잘못 말했다고 느꼈다고 한다.[16] 1루수가 두 자릿수 홈런을 치고도 OPS .666이라는 건 그 홈런도 공갈포에 가까웠다고 보는 게 맞다.[17] 2004년과 2006년에는 주전 2루수를 맡기도 했었다. 그런데 풀 시즌은 아니고 다른 포지션 알바를 자주 뛰면서 했는데도 두 자릿수 실책을 하는 등 별로 좋지 못했던게 함정.(필딩률은 .974로 괜찮다.) 그리고 유격수의 경우는 신인 시절에 종종 알바를 뛰었는데 풀 시즌을 뛸 시 40실책 페이스로 실책을 해 대서(...) 2004년 이후 봉인.(필딩률도 .940으로 낮았다. 보통 .950-.960만 돼도 수비 못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18] 참고로 3루수 후루키 카츠아키, 유격수 우치카와, 2루수 무라타 슈이치, 1루수 타이론 우즈로 구성되었던 2003년 요코하마의 내야진은 일본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수비 한정 NPB 역대 최악의 내야진으로 간간히 거론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