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9 15:27:22

세키카와 코이치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cc800><tablebgcolor=#fcc800>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엠블럼.svg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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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90 코쿠보 히로키
1군 95 나라하라 히로시(수석코치) · 94 쿠라노 신지(수석투수코치 겸 수석코디네이터) · 72 나카타 켄이치(투수코치)
72 와카타베 켄이치(투수코치) · 78 무라카미 타카유키(타격코치) · 93 무라마츠 아리히토(타격코치)
80 혼다 유이치(내야수비·주루·작전코치) · 87 이데 타츠야(외야수비·주루·작전코치) · 84 타카야 히로아키(배터리코치)
2군 74 마츠야마 히데아키(2군 감독) · 76 테라하라 하야토(투수코치) · 77 요시모토 료(타격코치) · 88 아카시 켄지(타격코치)
82 타카타 토모키(내야수비·주루코치) · 96 키도코로 류마(외야수비·주루코치) · 83 시미즈 마사우미(배터리코치)
3군 85 오가와 히로시(3군 감독) · 86 사쿠모토 마사히로(투수수석코치) · 97 마키타 카즈히사(투수코치) · 75 오미치 노리요시(타격코치)
91 카네코 케이스케(내야수비·주루코치) · 98 타카나미 후미카즈(외야수비·주루코치) · 95 요시츠루 켄지(배터리코치)
4군 011 사이토 카즈미(4군 감독) · 012 카와고에 히데타카(투수수석코치) · 013 모리카사 시게루(타격코치)
014 사사가와 타카시(내야수비·주루코치) · 016 마토야마 테츠야(배터리코치) · 017 모리야마 료지(투수 재활코치)
019 세키가와 코이치(야수 코디네이터) · 020 호시노 쥰(투수 코디네이터) · 022 모리 히로유키(배터리 코디네이터) · 008 김원형(코치연수)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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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타격코치 시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 88
<colbgcolor=#fcc800> 세키카와 코이치
関川 浩一 | Koichi Sekikawa
생년월일 1969년 4월 1일 ([age(1969-04-01)]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도쿄도 초후시
학력 토인가쿠엔고교 - 고마자와 대학
포지션 외야수, 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0년 드래프트 2위 (한신)
소속팀 한신 타이거스(1991~1997)
주니치 드래곤즈(1998~200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005~2007)
지도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8~2009)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외야 수비, 주루 코치 (2011)[1]
한신 타이거스 1군 코치 (2012~2015)[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순회코치 (201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군 감독 (2018)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 타격코치 (201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타격코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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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2.2. 한신 타이거스 시절2.3.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2.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3. 지도자 시절4. 기타

1. 개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타격코치. 한신 타이거스 출신으로 한신의 준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

도쿄도 초후시 출신으로 고교 때 고시엔 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었으나, 프로 지명은 받지 못하여 고마자와 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2년 선배 노무라 켄지로와 함께 맹활약했으며 동도대학야구연맹[3] 포수 베스트 나인에 2차례 뽑혔다. 1990년 드래프트 2위로 한신 타이거스에 들어갔다.

2.2. 한신 타이거스 시절

당시 한신은 키도 카츠히코, 요시다 히로유키[4], 야마다 카츠히코[5] 등이 포수진에 자리를 잡았기에, 세키카와의 자리는 없었다. 덕분에 첫 시즌인 1991년엔 겨우 10경기, 선발로는 5경기 출전에만 그쳤다.

2년차인 1992년부터 조금씩 출전 기회를 늘렸고, 1993년엔 프로 첫 홈런[6]포수 수비율 10할을 기록하였고 1994년에 처음으로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차며 103경기에 출전했다. 다만, 그 해 .125의 처참한 도루저지율로 센트럴 리그 역대 최저 기록[7]을 찍으며 수비에서는 타자들이 진루하는 족족 자동문 역할을 해버렸다. 1995년부터 조금씩 외야수 겸업을 시도[8][9]했고, 1997년엔 시즌 후반에는 좌익수로 고정되었다.[10]

2.3.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1997년 시즌 종료 후, 쿠지 테루요시와 같이 주니치 드래곤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주니치에서는 타이호 야스아키야노 아키히로가 건너왔다. 주니치 이적과 동시에 완전 외야수로 전환하였고, 주니치 1년차인 1998년엔 125경기에 출전하며 규정타석을 채웠다. 1999년엔 개인 한 시즌 최다인 135경기에 출전했고, 타율 .330 / 4홈런 / 60 타점 / 20 도루로 주니치 공격을 이끌며 주니치의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2000년에도 127경기나 출전하며 공수에서 한 축을 맡았으나, 2001년부터 출전 기회가 급격히 줄더니 2004년엔 단 12경기 출전에 그쳤다.

2.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04년 창단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긴테츠 해체 드래프트를 통해서 전년도 5, 6위인 오릭스 블루웨이브킨테츠의 2군급 선수들만을 모아 놓은 상황이었다. 이 난국에 주니치가 통크게 지원을 해 줬는데[11], 바로 무상 트레이드로 세키카와 코이치, 코야마 신이치로, 키토 마코토, 사카이 타다하루를 보내준 것. 먼저 세키카와와 코야마가 2004년 시즌 후 도호쿠 라쿠텐으로 무상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창단 첫 시즌 라쿠텐에서 그나마 1군 경험이 좀 있던 선수여서[12] 제법 중용되었다. 창단 첫 경기 1번 타자를 맡았다. 2005년 4월 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전에서는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함과 동시에 구단 최초 1경기 3안타 타자가 되었다. 2005년 그 암울한 라쿠텐에서 101경기나 소화하며 외야 공백을 열심히 메웠다.

그러나 2006년부터 다시 출전 기회가 줄었고, 2007년에 은퇴 의사를 밝히고 10월 4일 치바 롯데 마린즈 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통산 1408경기 1129안타 24홈런 324타점 타율 .286 / 출루율 .353 / 장타율 .360 / OPS .713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라쿠텐의 2군 코치, SK 와이번스 타격코치를 하다가 2012~2015년에는 친정팀 한신 코치를 하기도 했다. 다만 한신 코치 시절 평은 별로였는데, 타격 부진도 부진이었지만, 맷 머튼과 트러블이 난 적이 한 번 있었다. 2020년부터 소프트뱅크 2군 또는 3군에서 타격코치를 하고 있다.[13]

4. 기타

한신 시절에는 "세키씨(セキさん)"로도 불렸다고 한다. 등번호는 1991~1996년까지는 21번[14], 1997년엔 22번[15], 주니치 및 라쿠텐 때는 23번을 달았다.


[1] 시즌 초반엔 2군에 있었으나, 5월 15일 1군으로 순환배치되었다. 1군과 2군 모두 외야 수비, 주루코치로 맡은 역할이 동일하였다.[2] 2012년에는 외야 수비, 주루 코치였고 2013년부턴 1군 타격코치를 역임했다.[3] 도쿄도 내 대학들을 모아서 만든 대학야구 리그.[4] 1960년생의 요코하마 고등학교 출신 포수로 원래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소속이었으나, 1990년 시즌 종료 후 5-4 초대형 트레이드로 한신에 이적했다. 호크스 시절엔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 말기에 주전 포수로 뛰었지만 이적 후엔 별다른 활약 없이 키도나 야마다 등에게 밀려 이적 3년만인 1993년에 방출되어 그대로 은퇴했다.[5] 세키카와와 동년배였으나 고졸로 프로에 입단(1987년 드래프트 3위)해서 세키카와보다 빨리 1군에 자리잡았다. 한신이 간만에 우승 경쟁을 벌인 1992년에 주전 포수를 맡았으며 이후 세키카와와 주전포수 경쟁을 벌였으나 멘도사 라인에 걸치는 빈약한 타격이 발목을 잡아 끝내 온전한 주전 확보엔 실패했으며 설상가상으로 트레이드로 세키카와와 맞바꿔 들어온 야노 아키히로가 바로 주전을 먹으면서 결국 백업으로 밀려나 2003년 닛폰햄 파이터즈로 트레이드되었고 닛폰햄에서도 타카하시 신지 등에게 밀리면서 별다른 활약 없이 2005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라쿠텐, 오릭스, 한신에서의 배터리 코치 역임을 거쳐 2022년부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배터리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6] 세키카와 다음 해에 입단했던 쿠지 테루요시도 공교롭게도 이 해에 데뷔 첫 홈런을 쳤다.[7] 2019년 그렇게 포수 못한다고 욕을 먹던 나균안도루저지율은 3할대였다.[8] 이 해에는 규정타석은 채웠으나 포수로는 94경기, 외야수로 26경기를 뛰었다.[9] 1996년엔 1루수를 겸업하기도 했으나 1루수로 뛴 건 6경기에 그쳤으며, 이 시즌 외엔 1루수로 뛰지 않았다.[10] 원래대로면 저 자리는 마이크 그린웰의 자리였어야 했다.[11] 주니치는 라쿠텐의 통산 첫 3연전 스윕승 및 상대전적 우세(2승 4패)를 허용했다. 그리고 2005 시즌 후 주니치에서 자리가 없던 외야 유망주 텟페이도 라쿠텐으로 보내줬다. 여기에다가 라쿠텐 창단 감독 타오 야스시는 원래 주니치 OB였다.[12] 세키카와 외에는 야마사키 타케시, 나카무라 다케시 외 나머지 선수들은 거의 무경력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야수진은 그나마 나았는데 투수진은 더 심각했다. 사실상 제대로 된 투수는 이와쿠마 히사시 한 명 뿐이었기 때문이었다.[13] 2020~2021은 3군, 2022부터 2군[14] 이후 이와타 미노루, 아키야마 타쿠미가 달았다.[15] 원래 키도 카츠히코가 달았으며, 세키카와 이후로는 후지카와 큐지오승환이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