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23:51:1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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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치바 롯데 마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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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ruby(北海道, ruby=ほっかいどう)] [ruby(日本ハム, ruby=にっぽんハム)] ファイターズ
구단 슬로건 ~2016:Hokkaido Pride(홋카이도의 자존심)
2017:We Love Hokkaido(우리는 홋카이도를 사랑한다!)
구단 법인명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株式会社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창단 1945년 11월 6일
연고지 홋카이도 삿포로
현재 연고지로 이전 2004년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 도 (1946~2003)
홋카이도 (2004~)
구단명 변천 세네터스 (1946)
토큐 플라이어즈 (1947, 1949~1953)
큐에이 플라이어즈 (1948)
토에이 플라이어즈 (1954~1972)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1973)
닛폰햄 파이터즈 (1974~200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4~)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48~1953, 1964~1987)
코마자와 구장 (1953~1961)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2~1963)
도쿄돔[1] (1988~)
삿포로 돔 (2004~)
2군 구장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1997~)
모기업 토큐 전철 (1947~1953)
토에이 (1954~1972)
닛타쿠홈 (1973)
닛폰햄 (1974~)
감독 쿠리야마 히데키 (栗山 英樹)
킷 스폰서 미즈노
마스코트[2] 파일:nipponhamfighters_mascot.png
브리스키 더 베어 & 프렙 더 폭스 & 폴리 폴라리스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62, 2006, 2016
퍼시픽 리그 우승
(7회)
1962, 1981, 2006, 2007, 2009, 2012, 2016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4회)
2007, 2009, 2012, 2016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81, 2006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1회)
2007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6
역대
한국인 선수
장훈 (1959~1975)
백인천 (1962~1974)
공식 홈페이지
1962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61-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에이 플라이어스 1963-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5-치바 롯데 마린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7-주니치 드래곤즈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15-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17-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6년 아시아 시리즈 우승 팀
2005-치바 롯데 마린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7-주니치 드래곤즈
닛폰햄 산하 스포츠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sakaFC.png 세레소 오사카
(축구)
파일:Nipponham_Fighters_Logo.png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야구)
1. 개요2. 구단 역사
2.1. 창단부터 2003년까지 - 도쿄의 그림자 구단2.2. 2004년 홋카이도 이전 이후
3. 홈구장 - 삿포로 돔4. 시즌별 성적 및 이야깃 거리
4.1. 2008 시즌4.2. 2009 시즌4.3. 2010 시즌4.4. 2011 시즌4.5. 2012 시즌4.6. 2013 시즌4.7. 2014 시즌4.8. 2015 시즌4.9. 2016 시즌4.10. 2017 시즌4.11. 2018 시즌4.12. 2019 시즌
5.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6. 역대 성적7. 팀 특징
7.1. 드래프트 지명 방식 : 상남자 스타일7.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7.3. 골든 글러브
8. 유니폼9. 대표적인 선수들
9.1. 현역
9.1.1. 투수9.1.2. 포수9.1.3. 내야수9.1.4. 외야수
10. OB
10.1. 감독10.2. 투수10.3. 포수10.4. 내야수10.5. 외야수
1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선수12. 영구결번13. 그 외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홋카이도. 모기업은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주로 니혼햄이라고 하지만[3] 일본인은 모회사 이름에 따라 닛폰햄이라고 한다. 실제 발음은 닛폰하무([ruby(日本ハム, ruby=にっほんハム)])다. 줄여서 부를 때는 보통 ハム(하무)[4] 혹은 日ハム(니치하무)라 부른다. 팀 명칭인 파이터즈는 싸움꾼이란 뜻으로, 팬 공모로 지은 팀 명칭이다.

성우 겸 가수인 카사하라 히로코가 응원가를 부른 적이 있다. 도저히 야구 응원가 같지 않지만...보러가기

2. 구단 역사

2.1. 창단부터 2003년까지 - 도쿄의 그림자 구단

메이저리그 워싱턴 세너터스의 팀명을 본따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존재했던 야구단인 도쿄 세너터스[5]의 부흥을 위해 1945년 11월 6일에 당시 세너터즈의 중심인물이었던 요코자와 사부로가 세너터즈 재건을 목표로 똑같이 세너터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한 구단이다.

그렇게 세너터스를 부흥한다는 명목으로 창단했지만, 얼마 안가 심각한 재정난으로 1947년 도큐 전철에 매각되어 토큐 플라이어즈로 구단명을 바꿨다. 재정난은 이후로도 계속되어 1948년엔 영화회사 다이에이(해당항목의 만화와는 무관)와 손잡고 규에이 플라이어즈로 구단명을 바꿨지만 한 시즌만에 다이에이가 구단 경영에서 물러나면서[6] 다시 구단명을 되돌렸다. 결국 재정난을 견디지 못한 도큐 전철은 1954년, 같은 계열 영화회사인[7] 토에이에게 구단 운영을 이관하여 토에이 플라이어즈, 1973년 1월 부동산회사인 닛타쿠홈에게 매각되어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1973년 11월 19일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에게 매각되어 닛폰햄 파이터즈가 되었다가 2004년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초창기의 스타로는 '푸른 배트' 오시타 히로시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팀 최대의 레전드는 장훈. 장훈의 활약으로 1962년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한다. 그 외에도 오스기 카츠오, 오자키 유키오, 백인천 등이 활약하여 1960년대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첫 우승을 안겨준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의 사퇴 이 후 싸인없는(...) 야구를 표방한 오시타 히로시 감독이 취임하면서부터 전력이 급강하, 오사와 케이지 감독 시절에 '우승 청부사' 에나츠 유타카가 사상 첫 양대리그 MVP세이브왕을 따내는 맹활약으로 일궈낸 1981년 리그 우승[8]과 1982년 플레이오프 진출[9]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밑바닥에서 지냈다.

장훈을 영입하려던 당시의 일본프로야구 규정상 외국 국적자는 드래프트 지명으로 영입할 수 없어서 구단주가 나서서 직접 그 규정을 고치는데 애를 썼다. 결국 외국인도 일본에 오랫동안 살았으면 일본인과 똑같이 드래프트 지명를 할수 있게 규정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재일교포혼혈인 선수들이 꽤 많이 거쳐간 팀 중 하나. 1990년대 후반 에이스 역할을 했던 가네무라 사토루와 이와모토 츠토무, 중심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10], 수비의 핵심 카네코 마코토, 모리모토 히초리 등이 재일교포로 유명했고, 다르빗슈 유도 아버지가 이란인이다.[11] 외국인 선수도 예외가 아닌게 2000년대 말 중심타자였던 미국인 용병 터멜 슬레지는 한국계 혼혈이었다!

백인천도 이 팀에서 데뷔했다. 1959년에 데뷔한 장훈의 뒤를 따라 1963년 1군으로 입성하여 포수에서 중견수로 포지션을 바꾼후 그럭저럭 활약을 보이다 1974년 시즌 종료 후 닛폰햄을 떠나 다이헤이요클럽 라이온즈(지금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된다.[12] 그 뒤 롯데 오리온즈(1976~1980)[13] - 긴테츠 버팔로즈(1981) 순으로 이적했다가 1982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파일:external/auctions.c.yimg.jp/aneel817-img600x402-1466425675scdo0g5682.jpg
도쿄 시절 닛폰햄 파이터즈의 구단기.

특히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쓰던 1990년대의 닛폰햄 파이터즈는 성적이건 흥행이건 풀리는 게 없는 만년 비인기 구단이였다. 그나마 도쿄돔 시대 후기에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카타오카 아츠시, 셔먼 오반도, 다나카 유키오, 나이젤 윌슨 등 강타자들이 포진한 '빅뱅 타선'이 위력을 발휘했으나, 에이스 카네무라 사토루 정도를 빼면 무력한 투수진 탓에 신통한 성적은 못 거뒀다. 대놓고 안티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표방하며 도쿄 안팎에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팬베이스를 확보하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와는 달리 그냥 붕 떠있는 구단이었다. 비록 퍼시픽리그에서 도쿄를 대표하는 구단이라는 상징성은 있었지만, 상징성만으로는 팀 운영을 할 수 없었다. 연식글로브의 파쿠만사가 교진을 좋아는 여자와 같이 경기를 보러 갔더니 하필이면 닛폰햄 경기였다 카더라.

예전에는 요미우리와의 비교는커녕 야쿠르트와 비교해도 미안할 정도의 비인기 팀으로, 도쿄 연고 마지막 해인 2003년 총동원 관중수가 131만에 불과했다. 이는 2011년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135만)보다도 못한 수치. 도쿄돔사직구장의 두 배인 55000명이 수용 가능한 구장인데다 일본은 경기수도 한국보다 더 많고, 일본의 수도라는 거대 세일즈 시장이 연고라는 점과, 보통 연고이전을 하는 해엔 그 연고지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팬들이 그 전보단 어느 정도 많이 찾아온다는 것을 고려하면(실제로 전년도에 비해 관중수가 50만명 정도 늘긴 했다.) 얼마나 비인기팀이었는지 알 만하다. 참고로 동시기 요미우리는 376만, 야쿠르트는 174만. 그나마도 경기장을 찾은 열혈팬은 있었지만, 일반 팬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14] 반면, 2011년에는 199만으로 일본 양대 리그 전체에서 5등 정도의 나름대로 중상위의 인기팀이 되었다.

도쿄돔 시기 파이터즈에서 뛴 경험이 있는 선수는 닛폰햄 소속으로 다케다 히사시, 이이야마 유지, 다나카 겐스케가 있고, 그 외에 츠루오카 신야(現 호크스 소속), 사네마츠 카즈나리(現 요미우리 소속), 코야노 에이이치(現 오릭스 소속), 쇼다 이츠키(現 독립리그 소속) 등 2016년 기준 총 7명이 남아있다.

2.2. 2004년 홋카이도 이전 이후

닛폰햄은 이를 타파하고자 2004년에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다. 장소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에 지어놓은 삿포로 돔. 이 구장은 J리그 축구팀 콘사도레 삿포로가 쓰고 있지만 축구장/야구장 변신이 가능했고, 야구팀으로는 당시에 세이부 라이온즈가 제2홈구장으로 가끔 공식경기를 하는 정도라 닛폰햄이 입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홋카이도로의 연고지 이전은 닛폰햄의 역사를 바꾼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야구에 별 관심이 없거나 TV에서 중계해 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면서 미지근하게나마 그 쪽 팬이였던 홋카이도 주민을 단번에 자신들의 팬으로 흡수하였고, 이 시기에 모기업 지원까지 빵빵하게 받아 리빌딩을 거친 뒤로는 일약 퍼리그 3강에 들어갈 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됐다.

2004년의 연고지 이전 이후 트레이 힐먼 감독(2017~18 SK 와이번스의 감독) 체제 아래 다르빗슈 유, 모리모토 히초리, 다나카 켄스케, 다카하시 신지 등 젊은 선수를 중용하면서 팀 리빌딩을 시도한 것이 결실을 맺고,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카네코 마코토 등의 기존 핵심전력과 신조 츠요시, 페르난도 세기뇰. 이나바 아츠노리 등 영입 전력들이 가세했다. 2006년[15] 마침내 1962년 이후 44년 만에 일본시리즈 정상에 오르게 된다.[16] 닛폰햄이 구단을 인수한 후 처음 경험한 일본시리즈 우승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7년에도 주니치 드래곤즈와 다시 일본시리즈에서 격돌하였지만, 이번에는 작년과 정 반대의 성적으로 주니치 드래곤즈가 우승한다.[17]

이처럼 홋카이도 이전 후에는 거의 매년 우승권에 발을 걸칠 정도로 성장하였고, 60년 간 두 번밖에 못한 파리그 우승을 불과 13년 사이에 다섯 번 이룩하였다, 여기에 44년만에 팀의 2번째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때문에 지금은 홋카이도 주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깍두기의 대 반란 이러한 닛폰햄의 성공은 지방 도시 야구단도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고, 닛폰햄이 홋카이도로 이전한 다음 해 창단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센다이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TV 중계는 홋카이도 이전 이후, TBS 테레비, 마이니치 방송 계열인 GAORA에서 케이블방송 중계를 맡는다. 특히 2015년부터 실황 중계를 맡고 있는 콘도 유지(近藤祐司) 캐스터는 풍부한 NFL, NBA 중계 경험을 살려서 닛폰햄 중계 시 IT'S GONE![18] 등의 영어식 표현[19]을 도입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는 중. 인터뷰 공중파 중계 경기는 HBC, STV, HTB, UHB, TVH 등에서도 자체 제작을 하는 편.

3. 홈구장 - 삿포로 돔

2003년 홋카이도로 연고이전 후 삿포로 돔을 제 1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 연고지였던 도쿄의 도쿄돔과 홋카이도 곳곳에서 지방구장 경기를 치룬다. 대표적으로 아래의 경기장에서 치룬다.홋카이도 지방경기의 경우 주로 평일에 개최하며 2013년 조명탑을 설치한 아사히카와 스타루힌 구장 이외의 곳은 야간경기가 불가능하다. 한편 스타루힌 구장은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야간경기 개최 구장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삿포로돔이 삿포로시 소유라서 연간 26억엔을 삿포로시에 지불하지만 시 소유라 경기 종료 때마다 트레이닝 기구를 일일이 치워야 하고 선수가 부상당해도 인조잔디[24] 등 주요 시설 보수에 제약이 걸리는 까닭에, 닛폰햄은 2016년부터 신구장 이전계획을 수립 중이다. 이 계획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를 성공적으로 살려낸 사업총괄본부장 마에자와 켄이 주도 중이며 닛폰햄과 기타 프로야구 팀 팬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2017년 10월 시점에서는 삿포로시키타히로시마시 두 곳으로 후보지가 좁혀지는 중이며, 두 시 모두 신구장 유치에 적극적. 허나 홋카이도 신문 출신 삿포로돔 사장이 신구장 굳이 필요하냐며 꼬장을 부려 해당 인물에 대한 평이 좋지 않다.그러니 진작 싸게 해줬어야지 결국 키타히로시마시에 새 구장 건설을 공식 발표하였으며, 2020년에 착공, 2023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링크 공식PV

4. 시즌별 성적 및 이야깃 거리

4.1. 2008 시즌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나시다 마사타카를 감독으로 영입한 첫 시즌. 치바 롯데 마린즈반 게임 차로 극적으로 제치고 정규리그 3위를 확정했다.[25] 클라이맥스 시리즈 1스테이지에 진출하여 정규리그 2위 오릭스 버팔로즈에 1차전 4:1, 2차전 7:3으로 승리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까지 진출했지만, 퍼시픽리그 정규리그 1위로 1승 어드밴티지가 부여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2승 4패(1승 어드밴티지로 인한 1패 포함)로 패해 일본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6차전에서 세이부의 선발투수와쿠이 히데아키에게 완봉승을 허용하는 등 철저히 발렸다.

4.2. 2009 시즌

팀의 주축 선수인 외국인 용병 터멜 슬레지 등 6명의 선수가 2009년 8월 19일경에 인플루엔자 A에 감염되어 몇몇 경기에 못나왔음에도 불구하고 82승 60패 2무의 성적으로 거뜬히 퍼시픽리그 1위를 확정지으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에 직행하고 1승 어드밴티지도 가져가게 되었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이번에는 2스테이지에서 한창 상승세를 타고 올라온[26]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를 4승 1패(어드밴테이지 1승 포함)으로 잠재우며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센트럴 리그 우승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1981년 이후 28년 만에 만나 혈전을 벌였고, 끝내 2승 4패로 우승에 실패했다.

4.3. 2010 시즌

전년도에 비해서 타선이 전체적으로 변비기미(...)였으며, 투수도 다르빗슈 유 혼자 분전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요 몇년간 강호였기에 시종일관 우승권에 발은 걸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즌 막판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 불과 0.5게임차로 4위에 그쳐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상술했듯 2004년, 2008년에는 정 반대 상황으로 닛폰햄이 롯데를 반 게임차로 제치고 가을야구에 진출한 역사가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것(...).

4.4. 2011 시즌

드래프트에서 주목을 모은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를 경합 끝에 뽑기에 성공하여 영입했다. 공인구가 저반발구로 바뀐 탓에 투고타저가 되었는데 득을 본건지 실을 본건지 모를 미묘한 상황. 여전히 다르빗슈에게 득점지원은 미미해서 1.44 ERA의 무시무시한 성적을 뽑아낸 다르빗슈에게 6패(18승)씩이나 안겨줘서 사와무라상을 또 놓치게 하였다.

다만 투수력 버프는 제대로 받아서 일본프로야구 기록인 팀 52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변태스러운 기록을 내면서 초중반에 괴수모드를 보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호각으로 1, 2위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9월 이후 페이스가 완전히 떨어지면서 1위와 경기차가 크게 벌어지며 결국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3위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2연패로 시즌을 끝냈다. 그리고 만년 2위의 주범(...)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이 자진퇴임. 다르빗슈 유는 포스팅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이러한 전력누수로 다음해 DTD를 시전할 유력 후보로 꼽히면서 12년 시즌을 맞이한다.

4.5. 2012 시즌

새 감독으로 쿠리야마 히데키TV아사히 해설자를 감독으로 앉혔다. 전 야구선수 -> 해설자 -> 감독 테크야 일본에서 일반적이긴 한데, 쿠리야마의 경우는 선수시절 그리 특출난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9년만에 은퇴한 선수라는 점과, 1990년에 은퇴하고 바로 해설자로 들어가서 근 20년간 단 한번도 코칭스태프 경험을 해본적 조차 없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대단히 우려되던 인선이였다.

게다가 드래프트 1위 덕후인 양반이라 사실 여러모로 역부족으로 여겨지던 사이토 유키를 개막전 선발로 꺼낸다던가, 거포 유망주 나카타 쇼가 .190 아래 타율을 밑돌아도 4번 타자로 우겨박는등 요상한 기용이 많았다.

그런데 나카타는 6월부터 페이스를 찾고 타율은 그냥 그랬지만 장타를 양산하고 강견을 앞세워 좌익수비도 곧잘 해내며 4번 타자 값을 하기 시작했고, 6년차라 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파이어볼러 좌완 요시카와 미츠오를 발굴해서 ERA 1위와 14승(5패) 활약으로 다르빗슈의 공백을 메울정도로 활약시키는 등, 시즌 끝나고 보니 잘 맞아떨어진 인선을 했다고 하여 평가가 많이 뒤집어졌다. 다만 사이토 유키망했어요

결국 초반에 반짝하던 치바 롯데 마린즈와 FA 유실 출혈로 헤롱대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막판 뒷심을 발휘해서 꼴찌에서 1위까지 치고올라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모두 제치고 막판 5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4년만에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우승이 결정되는 시합 당시 닛폰햄은 시합이 없었고, 매직넘버 1을 남긴 상황에서 2위 세이부가 지는 바람에 우승이 결정됐다.당시에는 이를 대비한다고 연습을 공개로 돌리고 삿포로 돔을 개방했는데, 시합이 없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1만명 넘는 관중이 찾아왔다고 한다. 때문에 초라할 줄 알았던 우승 세레모니 현장이 매우 훈훈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퍼시픽리그 우승 어드밴티지로 1승을 안고 홈에서 6경기를 모두 치루게 되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탄탄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3연승 스윕하며 3년 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한수 위라고 평가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끝까지 호각으로 싸웠으나, 예상대로 타력의 부족으로 패배하였다. 결과는 2승 4패. 하지만 쉽게 내준건 5차전 한 번 뿐이고 나머지는 끝까지 뒷심을 발휘하면서 저력을 보여줬다. 아쉬운건 4경기 다 더블에이스인 요시카와 미츠오와 타케다 마사루로 졌다는 점. 그리고 6년간 3번이나 일본시리즈 가서 다 준우승 깔아줬다는것도 비극 여담으로 5차전에서 일본시리즈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오심이 일어났었다. 타다노 카즈히토 항목을 참고할 것.

4.6. 2013 시즌

괴물 유망주 오타니 쇼헤이가 입단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최종적으로는 5위 오릭스 버팔로즈와 3.5게임차로 꼴찌를 차지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투타 모두에서 다듬어지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였고, 중심타자 이토이 요시오가 오릭스로 떠난 여파를 메꾸지 못했다. 결국 투-타 지표에서 모두 꼴찌를 차지하며 오릭스[27]에게마저 밀리게 되었다. 나카타 쇼가 28홈런으로 분전했고 쿠바 출신의 망명선수 미첼 어브레이유가 31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대만 출신의 중견수 요 다이칸도 도루왕을 차지하면서 제 역할을 다했지만 그게 다였다. 투수진은 전년도 리그 MVP 요시카와 미츠오가 공인구가 바뀌자마자 귀신같이3.31의 방어율로 리그 6위를 차지했지만 7승 15패로 양리그 통합 최다패를 기록하며 안습한 시즌을 보냈다.

4.7. 2014 시즌

오타니 쇼헤이가 드디어 투타 모두에서 포텐이 폭발한 게 가장 큰 뉴스거리였던 시즌.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한 시즌 10승-10홈런 선수가 되었다.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치며 1위 다툼을 하다 나가떨어진 오릭스 버팔로즈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를 치르게 되었다.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7회까지 뒤지다가 역전을 이루어내며 오릭스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FS 최종전인 3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위 오릭스를 물리치고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진출했다.

클라이맥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끝까지 괴롭혔으나, 결국 투수진이 무너지며 패퇴했다. 안그래도 쓸만한 선발이 적은 닛폰햄이 오릭스전이 장기전이 되면서 투수들이 휴식할수 있는기간이 사라졌고, 덕분에 닛폰햄 수뇌진은 울며 겨자먹기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우와사와나 오타니 등을 등판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종전 선발인 우와사와가 4이닝 2실점으로 강판, 후속인 중간계투 에이스 카기야도 솔로홈런을 얻어맞고 무너져내리며 점수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패배했다.

시즌을 리뷰하자면, 2014년 쓸만한 선발이 우라노, 오타니, 우와사와의 3명뿐이었던 닛폰햄은 2014년 루이스 멘도사를 영입하고, 사이토 유키의 부활을 시도했으며 타케다 마사루의 선발전향을 시도했다. 헌데 멘도사는 7승 13패로 영 좋지못한 결과를 냈고, 사이토 유키는 시즌종반에서야 가까스로 몸을 추스려서 시즌중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타케다 마사루는 변함없는 두부멘탈을 피로한 덕분에 선발에서 중간계투로 변경[28]. 4, 5 ,6위 팀이 알아서 자멸해준 덕분에 3위까지는 올라왔지만 결국 만성적인 쓸만한 선발부족이 원인이 되어 튼튼한 투수층이 생명선인 단기결전에서 무너져버린 시즌.

4.8. 2015 시즌

2014 시즌 종료 후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나바 아츠노리카네코 마코토를 비롯한 노장들이 대거 은퇴하고, 주전 유격수 오오비키 케이지, 2010년 타점왕 코야노 에이이치 등이 FA로 이적했으며, 작년 팀 최고의 타자였던 요 다이칸은 부상을 당해서 장기이탈하는 등 타선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되어서 강제적으로 야수진 리빌딩을 해야 하는 시즌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게 웬걸...

가능성만 보여주었던 콘도 켄스케와 스기야 켄시 등의 포텐이 터지고, 야수진의 빈자리를 채운 1-2년차 신인들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주면서 작년과 거의 차이가 없는 타격성적을 찍으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수위싸움을 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OPS는 리그 평균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는 장타력을 채워주어야 할 외국인 타자 두명이 매년 그래왔긴 하지만 다 폭망한 탓.제레미 허미다는 1홈런으로 폭망했지만 브랜든 레어드는 30홈런 찍고 잘하지 않았음? 게다가 그 OPS도 센트럴리그에 들어가면 1위를 찍을 수 있는 성적이다. 그리하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도전했다가 돌아온 타나카 켄스케를 제외하면 26세인 나카타 쇼가 주전 야수 중 가장 노장일 정도의 싱싱한 야수진을 보유한 팀으로 변모, 타구단 팬으로부터 호크스와 함께 가장 많은 부러움을 사고 있는 팀이 되었다. 특히 라인업에 노인네들만 즐비한 세리그의 교진, 한신, 주니치의 물빠따 3팀

9월까지 성적만 놓고 보면 한 때 승률 5할 +20까지 찍을 만큼 잘 나갔다. 이 정도면 예년같으면 우승을 하고도 남을 성적이건만...[29]

하필이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이름에 들어가는 동물답게 레알 날았다

그 나는 놈이 9월 초까지 무려 승률 5할 +40을 찍는 역대급 정규시즌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무지막지하게 날아가는지라, 닛폰햄은 이겨도 이겨도 게임차는 벌어지기만 할 뿐...승률 5할 +20을 찍고도 1위와 10게임이 넘는 승차에 좌절 중이다. 결국 9월 초 맞대결에서 싹쓸이 3연패를 당하면서 우승다툼에서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다만 3위권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와도 거의 10경기 차이가 나고 있어 시즌 막판 대형 연패만 없으면 현재의 위치를 지키는 건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9월 20일 세이부와의 홈 경기에서 6회 초까지 5-0으로 끌려가다 6회 말에 대거 7점을 뽑으며 7-9 승리를 거두었고, 같은 날 롯데가 소프트뱅크에게 0-1로 패하면서[30] 파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이후로는 순위가 일찌감치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경기를 치루다가(...) 10월 정규시즌 마지막에 졸지에 3위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었다.[31] 10월 4, 5일 롯데와의 원정 2연전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큰 영향이 갈 수 있다.

결국 롯데와의 원정 2연전을 싹쓸이 당하며(...) 79승 62패 2무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10월 10일 삿포로 돔에서 열린 롯데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선발 오타니 쇼헤이가 2.2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며 9-3 패배를 당하였다. 다음날 열린 2차전에서는 8회 초까지 2-1로 끌려가다 8회 말 브랜든 레어드의 동점 2루타와 야노 켄지의 역전 적시타를 엮어 3득점 하면서 2-4로 승리, 다행히도 3차전으로 끌고 가게 되었다. 그러나 3차전에서는 수많은 찬스를 날려버리며(...)[32] 2-1로 패배,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올라간 롯데는 소뱅에 대압살

4.9.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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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부터 팀의 에이스 오오타니 쇼헤이가 지독하게 승운이 없었다. 좋은 평균자책점에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패만 쌓고 있었다. 이에 대해 빡친 스트레스를 타석에서 홈런으로 풀었다 카더라 김태균보다 홈런 잘 쳤다 그래도 4, 5, 6위 팀들이 워낙 이라 B클래스로는 떨어지지 않는 상황. 그러나 교류전 막바지부터 미친듯이 승을 쌓아 2위 지바 롯데 마린즈를 3위로 끌어내렸다! 7월 8일, 치바롯데를 상대로 3대12 대승을 거두며 12연승 질주 중. 그 다음날 7월 9일도 롯데에 영봉패의 수모를 안기며 13연승을 달성, 승률 6할대에 진입했다! 그러나 아직도 매가 너무 높이 날고 있다. 다음 날은 일요일, 선발투수는 일요일의 남자 오오타니 쇼헤이.

7월 10일 지바롯데와의 경기에서는 9회말 다나카 켄스케의 동점포 + 12회말 브랜든 레어드의 끝내기홈런으로 승리, 14연승까지 달성하며 2007년에 달성한 구단최다연승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33]

7월 11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요시카와의 5⅓ 이닝 무실점 호투를 앞세워 4-1로 승리, 15연승을 기록하며 구단 통산 최다연승기록을 경신하였다!

그러나 12일 경기에서 오릭스에게 패했다. 13일 경기를 역전승으로 다시 잡으며 국민호구 오릭스에게 위닝 시리즈를 따내고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했다. 하지만 작년처럼 여전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너무 멀리 나간 탓에(...) 15연승에 6할 승률을 마크하고도 시즌 성적은 여전히 2위. 7월 13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8경기에서 7승 1패를 기록하며 호크스를 바짝 추격중이다.

투수진은 오타니 쇼헤이아리하라 코헤이가 1점대에 근접한 방어율을 찍으며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도쿄 대첩(야구)허용투수 마스이 히로토시는 망했지만 타니모토 케이스케, 미야니시 나오키, 마무리 크리스 마틴이 버티는 불펜진도 강력한 모습. 타선에서는 역시 오타니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리그 및 팀 홈런 선두를 달리고 있는 외국인 타자 브랜든 레어드, 3할 타율의 양다이강, 다나카 켄스케, 기복은 있지만 여전히 장타를 생산할 수 있는 나카타 쇼,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두터운 젊은 선수층이 고르게 활약하고 있다.

8월 5일~7일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게임 차를 3게임으로 줄였고, 소프트뱅크가 이 3연전을 계기로 4연속 루징 시리즈를 시전하는 사이 야금야금 승수를 쌓아 8월 18일 오릭스 전에서 6:1로 역전승하며 1위 소프트뱅크와 승차는 반 게임 앞서지만 승률[34]은 1리 모자란 2위가 되었다.

이 후 호크스와의 홈 3연전에서 절호의 역전 찬스를 잡았으나, 2경기 연속 펠레 스코어로 패하면서 루징 시리즈를 기록. 하지만 다음 롯데 3연전을 스윕하면서 라쿠텐에게 1승 2패로 루징 시리즈를 당한 호크스를 드디어 제치고 8월 25일 1위에 올랐다.

9월 26일 오사카 돔에서 벌어진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방문 경기에서 4-3으로 신승했고, 같은 시간 소프트뱅크가 롯데에게 2-3으로 패해 니혼햄의 퍼시픽리그 우승 매직넘버는 1로 줄었다.

그리고 9월 28일 세이부 돔에서 벌어진 세이부와의 원정경기에서 오타니의 1피안타 완봉승으로 세이부를 1-0으로 꺾으며 4년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이 기세를 몰아 10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6년은 143전 87승 53패 3무를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11.5게임 차를 뒤집혀 준 소프트뱅크와 대결해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부전승 포함 4승 2패로 소프트뱅크를 꺾고 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2006년 이후 3번[35]이나 준우승을 맛본 건 물론, 상대는 엄청난 전력의 히로시마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고 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오타니 쇼헤이를 선발투수로 내고도 패하는 등 초반 2연패를 당했으나, 3차전에서 오타니 쇼헤이의 끝내기 적시타로 5-4 역전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파죽지세의 4연승을 기록. 10년 만의, 팀 통산 3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다! 한미일 곰 마크 팀이 우승했다.



이 해 우승을 이뤄낸 감독이 구단 첫 우승한 해보다 딱 1년 먼저 태어난 것에 연관해서 다음해 레전드 시리즈 인트로 영상에 써먹었다.

최훈은 닛폰햄을 비롯해서 3개의 곰 마스코트 구단의 승리를 기념해서 곰랜드슬램이라는 기념 일러스트를 그렸다.

4.10. 2017 시즌

세이부와의 개막 3연전을 루징으로 시작하더니 이어진 롯데와의 3연전도 루징. 그리고 반등의 계기가 될 줄 알았던 오릭스와의 3연전에서 충격의 3연패를 당하면서 최하위로 침몰했다. 설상가상으로 오릭스와의 3연전 도중에는 올 시즌 타자로서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선언한 오타니 쇼헤이가 3루 땅볼을 치고 전력질주를 하다 햄스트링에 부상을 입는 비상사태까지 발생했다. 초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팀의 중심 축마저 잃은 상황. 과연 극복하고 우승팀의 자존심을 찾을 것인가 이대로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던 도중 또 한명의 중심타자 나카타 쇼마저 경미한 부상으로 이탈. 작년 시즌 홈런왕인 브랜든 레어드는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다.

4월 26일까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만 겨우 위닝시리즈를 거두었고, 1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2위 오릭스 버팔로스에게 전패를 하고, 연고 이전 후 최악의 기록인 10연패를 하는 등 4승 18패, 승률 0.181에 그쳐 압도적 최하위로 처져있다.아직 건너편의 이 팀보다는 승률이 높다 괜찮다 작년에 15연승과 막판 11.5게임차를 뒤집었던 후반기의 기세는 어디로 가고 이 지경이 되었는지...왜긴 왜야 가 없기 때문이지

그러나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고 했던가? 4월 27일 소프트뱅크전에서 부상에서 회복한 나카타의 역전 3점 홈런으로 5-4로 역전승하며 10연패에서 벗어났고, 이 후 5월 2일 지바 롯데 마린스 전에서 승리하며 탈꼴찌에 성공했다. 이 후 5연승 한 차례, 4연승 한 차례씩 기록하며 차근차근 승수를 쌓아올렸고, 5월 21일 오릭스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하며 4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교류전 들어와서 통산 승수 2위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부진을 거듭하며 초반 9경기에서 3승6패를 기록하면서 다시 패수를 적립하기 시작했다. 그 틈에 오릭스가 교류전 시작하자 마자 6연승 포함 8승2패로 선전하면서 다시 순위를 맞바꿨다. 그리고 교류전 후반전 첫 경기인 6월 9일 경기에서 구단 자체 신기록을 써가며 역사에 남을 연패 행진을 거듭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조차 1대2로 패하면서 요미우리의 연패행진을 막아준 동시에 교류전 첫 승을 헌납하는 폭탄 처리반 역할까지 뒤집어 썼다. 일본 시리즈에서도 세번 붙어 세번 다 지더니 퍼시픽리그 공인 요미우리 호구다운 결과 그 다음 두 경기를 잡으면서 요미우리전을 위닝시리즈로 마치고 그 다음 주니치와의 3연전도 위닝시리즈로 끝냈으나 요미우리보다 더한 최약체 야쿠르트에게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면서 교류전 성적도 8승 10패. 교류전도 예년과는 달리 시원찮게 마무리하면서 4위 오릭스에게 1.5게임차 뒤진 5위자리에서 리그전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와서 완전히 정줄을 놓은 듯 내려갔다. 올스타 끝난 직후인 7월 18일부터 8월 13일까지 3승 16패를 하면서 쭉 미끄러졌다. 그러는 동안 최하위 롯데와의 게임차가 1게임차 까지 줄어드는 등 하마터면 시즌 내내 그렇게 못했던 롯데를 제치고 꼴찌자리를 탈환할 뻔 했다. 그 후 7승2패로 약간 회복세를 보였으나 이미 버스는 떠나간 뒤. 8월 월간 MVP를 수상한 오타니의 회복세만이 유일한 위안 거리이다. 이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롯데의 뒤를 이어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었다.

문제는 당장 올해의 성적이 아니라 내년이 되게 생겼다. 이미 2017시즌 양다이강을 FA로 잃은 데 이어[36] 시즌이 끝나면 강제 지명할 때 약속한 대로 포스팅으로 오타니를 MLB로 떠나 보낼 예정이고, 주포였던 나카타 쇼 마저도 FA로 타팀 이적이 유력시 되고 있다. 집안 기둥뿌리를 다 뽑힐 상황에서 뾰족한 수도 없어 보이고 점점 더 걱정스러운 닛폰햄의 행보가 주목된다. 그나마 시즌 직후 나카타 쇼를 잔류시키는데 성공했고 2017 시즌 말기에 거포 가능성을 뽐내기 시작한 요코오 토시타케의 활약이 위안이 되며 일본야구에서 손꼽히는 닛폰햄의 신인 육성시스템에 기대를 걸어 봐야 한다. 올해는 키요미야 코타로를 강행지명할 듯[37]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7개 구단 경합 끝에 키요미야 코타로에 대한 교섭권을 획득했다.[38] 일단 다르빗슈, 오타니 등 대형 고졸 신인을 육성해서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보낸 실적이 있고 다음 시즌에는 오타니와 나카타 등이 팀을 떠나서 고졸 1년차부터 과감하게 1군에서 기회를 줄 여건은 된다. 본거지가 홋카이도라서 도쿄에서 멀다는 점만 빼면 키요미야 부자의 요구 조건은 거의 충족하고 있으며, 2군 홈구장도 도쿄에서 가까운 치바현 카마가야시에 있다. 남은 건 키요미야 측이 드래프트 결과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인데 웬만하면 키요미야처럼 1순위 지명이 확실한 선수는 학교 측에서 미리 인터뷰 준비를 해두고 선수는 드래프트 생중계를 지켜본 후에 지명 팀이 결정되면 바로 선수 인터뷰로 들어가나 키요미야는 그런 준비 없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39] 워낙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고 마음에 안 드는 구단일 경우 프로에 가지 않겠다는 뜻을 은연 중에 내비쳤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서 추후에 본인의 결정을 발표할 듯 하다. 다만 닛폰햄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냥 입단할 듯. 지명 후 보도자료로 돌린 지명 소감에서도 그다지 싫은 내색은 안 하고 있다. 결국 드래프트 지명회의가 끝나고 지명을 수락하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해서 닛폰햄 입단이 확정되었다. 덧붙여 키요미야는 2012년 도쿄돔에서 닛폰햄 구단이 주최한 야구 이벤트에 참석한 적이 있어서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았나라고 술회한 동시에, 닛폰햄을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라고 생각했고 쿠리야마 감독에 대해 선수기용 및 배치를 잘 하는 감독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홋카이도에 맛있는 음식이 많다고 한다

키요미야에 이어서 7순위로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의 미야다이 코헤이를 지명하면서 또 화제몰이에도 성공. 도쿄대학 출신으로는 사상 6번째 드래프트 지명으로, 도쿄 대학 야구부에서 4년동안 무려 6승을 거둔 최근 몇년 간 보기 힘들었던 실력파로 최고 구속은 150km/h를 찍고 있으며 대학 대표팀에도 선발될 정도로 그동안 프로에 발을 들여놨던 도쿄 대학 출신 선배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부상으로 인한 투구폼 교정의 영향인지 2017년 도쿄6대학리그에서 보여준 폼은 예전과 같지만은 않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팀으로서는 1999년 드래프트에서 선발한 엔도 료헤이, 2010년에 요코하마로부터 트레이드로 데려온 마쓰카 다카히로에 이어 3번째 도쿄대학 출신 선수이다.

4.11. 2018 시즌

기요미야를 뽑는데는 성공했는데 당장 2018시즌 전망은 밝지를 않다. 시즌 끝나고 떠날 줄 알았던 나카타 쇼는 2017시즌을 폭망한 후 그 성적으로는 본인이 원하는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빨리 인정하고 FA 재수의 길을 택하면서 일단 팀에 남기는 했다. 그렇다고 그게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으냐 하면 그것도 아닌게 일단 기요미야와 포지션이 겹친다. 구단 입장에서는 나카타가 FA로 팀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한 몇년간은 시즌을 포기할 각오까지 하고 기요미야 스타만들기 플랜을 세워놨는데 눈치 없이 잔류를 선택하는 바람에 당장 내년에 두 사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생겼다. 기요미야를 대놓고 밀어주자니 지난 시즌까지 팀의 리더였던 나카타를 팽하는 모양새가 되어 본인이 불만을 가질 건 뻔하고 안 그래도 그동안 팀 내에서 왕노릇하면서 팀 분위기를 자기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런 선수가 팀에 불만을 가지게 되면 팀 케미스트리에 해악을 끼칠 것이 예상된다. 물론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기요미야가 1년차에 프로에 제대로 적응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에 만약 기요미야가 1년차에 프로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기용에의 고민은 덜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이 나카타를 중심으로 기용을 해도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2018시즌 후에 또 고민거리를 안겨주게 된다. 만약 2017시즌의 부진했던 모습에서 벗어나서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맹활약하면 이미 팀 내에서의 입지가 미묘해진 나카타는 FA를 선언하고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기요미야는 괜히 1년을 허송세월하게 되는 셈이다. 설령 FA 선언 후 잔류를 한다고 해도 그 동안의 공헌도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큰 돈을 들인 선수를 놀릴 수는 없을테니 결국 나카타 위주로 기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카타의 성적이 조그만 부진해도 팬들이 나카타를 빼고 기요미야를 기용하라고 아우성일테고 기요미야 본인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팀 케미스트리를 해칠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가 왜 약속 안지키냐면서 장외에서 디스를 하면서 언플을 할 가능성도 있고. 만약 2017시즌의 모습 그대로라면 일단 시즌 동안 팀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요 시즌 후에는 또 머리를 굴려서 팀에 대한 로열티를 가장하여 FA를 선언하지 않고 잔류를 할테니 같은 고민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이래저래 팀에 남아서 잘해도 골치, 못해도 골치인 계륵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여기에 마무리인 마스이 히로토시가 FA를 선언하고 오릭스 버팔로즈로 이적을 하게 되어 졸지에 히라노 요시히사의 메이저리그 이적의 불똥이 원 소속팀인 오릭스가 아닌 닛폰햄에 튄 꼴이 돼버렸다. 불펜의 또다른 한 축이던 외국인 투수 크리스 마틴텍사스 레인저스와 메이저 계약을 맺었고, 여기에 포수인 오노 쇼타도 FA로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면서 포수자리도 비게 되었다. 일단 오노의 빈자리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FA를 선언한 츠루오카 신야의 5년만의 복귀로 메우긴 했는데 30대 중반인 츠루오카에게 백업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 아무래도 오노의 하위호환 이상은 아니다. 게다가 오노는 하필이면 다른 좋은 팀 다 놔두고 폭망한 주니치로 가는 바람에 보상선수 명단을 아무리 훑어봐도 데려갈 선수가 없었는지[40] 선수대신 돈으로 받아가겠다고 결정했다.

메이저리그 덕분에 투타의 중심과 불펜의 주축들을 잃고 여기에 주전급 포수 한명도 잃어버리고 마땅한 선수로 보상도 못 받아 뎁스도 한층 가벼워졌고, 고생 끝에 데려왔지만 프로에서의 활약이 미지수인 슈퍼스타 고졸신인은 그동안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해온 중심선수와 포지션이 겹치면서 케미스트리의 유지부터 걱정해야 될 상황이라 2018 시즌도 쉽지 않은 한 해가 예상된다

2018년 들어와서 팀의 연고지 이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연고지 이전의 원인은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오사카 돔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관계와 흡사한 상황이 그 동안 삿포로 돔과 구단 사이에서 계속 되어 왔던 것. 구단 측은 삿포로 돔의 대주주인 삿포로 시에게 구장의 운영권 위탁 혹은 시내 다른 곳에 신구장 건설 등을 포함하여 협상을 요구했으나 삿포로시 측은 "니들이 가려면 어딜 가려고?" 하는 마인드로 그동안 들은체 만체 해왔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구단측이 삿포로 인근의 기타히로시마시 측과 접촉하여 부지 제공과 구장 운영권 보장 등을 조건으로 기타 히로시마에 신구장을 짓고 주변을 볼파크화하는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고 한다.[41]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삿포로시 측에서 부랴부랴 대책을 세운다고 법석을 떨지만 버스는 거의 떠난 분위기. 이르면 2022년 정도에 신구장 건설과 더불어 연고지 이전이 일어날 수도 있을 듯. 현 연고지인 삿포로의 팬들의 반응은 "어차피 가는 곳도 위성도시고 지금 삿포로 돔도 별로 야구 보기 좋은 환경도 아닌데다 교통도 불편하니 차라리 제대로 지으면 삿포로 시내에 꼭 있을 필요는 없다. 옮겨봐야 같은 홋카이도고. 그동안 구단을 호구 취급해온 삿포로 시의 자업자득"이라는 식으로 옮기겠다는 구단측을 지지하고 구단의 요구에 미지근하게 대처해온 시 당국 측을 까고 있다.

의외로 교류전 돌입 시점에서 리그 2위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오타니가 빠지고 아리하라 코헤이가 부진하지만, 우와사와 나오유키와 타카나시 히로토시, 새로운 외국인 닉 마르티네스가 선발진의 중심을 잡고 있고 마스이 히로토시와 크리스 마틴이 빠진 구원투수진 역시 미야니시 나오키, 쿠몬 카즈히코 등의 기존 전력과 이시카와 나오유키, 니시무라 타카히로, 타마이 타이쇼, 마이클 톤킨 등의 신전력이 분전중. 타선 역시 뎁스는 얇지만 포수 유망주 콘도 켄스케지명타자로 자리잡아 3할 5푼대의 고타율을 보이며 타격재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콘도의 앞에는 2할 5푼을 밑도는 타율에도 4할에 근접한 출루율을 기록하며 도루왕 경쟁중인 니시카와 하루키 - 팀내 홈런 선두를 달리는 강한 2번타자 오타 타이시의 OPS형 테이블세터진이 자리잡아 득점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4-5번의 나카타 쇼브랜든 레어드는 공갈성이 짙기는 하지만 장타는 그럭저럭 쳐내면서 상위타순에서 점수를 짜내고 있다. 3, 4월동안 리그를 초토화하던 세이부의 상승세가 5월을 지나며 주춤해진 사이 야금야금 승차를 좁히는 상황이다. 키요미야 코타로는 1군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2군에서 빠른 속도로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등 강타자로서의 자질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소뱅을 호구잡아서 승리를 많이 챙겼다. 7월 22일 현재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12승 4패에 대 소뱅전 7연승 중
후반기 들어와서 퐁당퐁당에 두자릿수 점수를 자주 내주며 3위로 밀려나있다.

9월 27일 오릭스전을 이기고, 롯데가 패하며 A클래스 확정. 5위 롯데가 전승하고 닛폰햄이 나머지를 지면 동률이나 상대전적 우세 확정이기에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확정되었다. 오릭스나 라쿠텐이야 뭐... 28일 경기도 5:3으로 이기며 확인사살.

2018년 클라이맥스 시리즈/퍼시픽 리그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1승 2패로 막히며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실패했다.

4.12. 2019 시즌

2018년 여름에서 홀로 분투하며 고시엔 준우승까지 이끈 가나이시농고교의 요시다 코세이를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하는데 성공하고 계약금 1억엔, 연봉 1,000만엔(추정액)에 계약했다.[42]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 등 1순위 성공 사례가 많은 팀의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고교통산 40홈런을 친 만나미 츄세이[43]를 4순위로, 결승전 상대 투수였던 오사카토인의 카키기 렌도 드래프트 5순위로 지명 후 영입에 성공하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44]

외국인 선수의 경우 브랜든 레어드가 구단의 재계약 요청에도 불구하고 결별을 선택했으며[45] 야심차게 데려왔으나 공갈포로 전락한 외야수 오스왈드 아르시아는 방출했다. 용병투수진에서는 닉 마르티네스가 구단의 재계약 협상에도 불구하고 다른 마음이 있는지 자유계약으로 풀렸으나 결국 재계약에 성공했다. 시즌 중반까지는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후반기에 엄청난 불질을 한 불펜투수 마이크 톤킨은 2년 계약에도 불구하고 1년만에 결별했다. 대만프로야구 최고 타자로 활약한 왕보롱과 계약하면서 외국인 선수 구성을 마무리했다.

또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연봉협상에서 이견을 보이다 자유계약으로 풀린 가네코 치히로를 영입했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도 트레이드로 2016년 퍼시픽리그 신인왕 투수이던 다카나시 히로토시와 젊은 내야 유망주 오타 켄고를 내주고 야쿠르트의 주축 계투진이던 사이드암 투수 아키요시 료와 유틸리티 내야수 야치 료타를 받아오는 등 예년에 비해 소소한 뉴스거리가 많은 오프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화제성만 많았지 시범경기 동안 내용이 따라오지를 못하며 최하위로 마무리했다. 최근 10년동안 시범경기 최하위 팀의 성적이 좋은 적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B클래스로 끝났기 때문에 상당히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시즌개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서서히 1군 레벨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여서 기대감이 높아지던 키요미야 코타로가 시범경기 막판 오른손 유구골 골절로 전치 1개월의 부상을 입은 덕분에 당초 구상에서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요미야가 전년도 기록한 7홈런은 고졸 1년차 신인으로서는 1993년 마쓰이 히데키 이후로 최다였고 오 사다하루의 고졸 1년차 기록과 같은 기록이라 팀에서도 잔뜩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뜻밖의 제동이 걸리게 됐다.

오릭스와의 개막 3연전을 2승1무로 마무리하면서 시범경기 동안 쌓인 불안감을 해소하나 했더니 이어진 라쿠텐과의 3연전에서 싹쓸이 3연패를 당했고 주말 세이부와의 3연전도 1승 2패로 루징시리즈. 3승1무5패로 하위권에서 출발하고 있다.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시즌 개막 직전에 얇아진 투수층을 의식하면서 시즌동안 오프너 전술을 시험해보겠다고 밝혔는데 개막 이후 첫9경기 동안 선발투수로 오프너를 사용한 경기가 무려 3경기나 된다. 그러나 실제 운용을 보면 오프너 전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쓰는 건지 그냥 메이저리그에서 한다니까 유행따라 흉내만 내는 건지[46] 의구심만 자아내고 있으며 결국 오프너를 등판시킨 3경기 모두 패했다. 특히 오프너를 등판시켜서 패한 경기 중 두 경기는 두자리수 이상 실점을 하는 대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번에도 기회가 된다면 오프너를 또 사용하겠다고 하는 불굴의 실험정신으로 팬들을 뒷목잡게 하고 있다. 특히 가네코 치히로가 등판하는 날 오프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와 부상 때문에 예전만은 못해도 선발을 맡기면 어느정도 이닝을 소화해줄 수 있는 투수에게 왜 오프너를 사용하냐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아뭏든 반복되는 오프너 실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구단에서도 오프너 투수용 고과기준을 마련하겠다며 구리야마 감독의 실험을 뒷받침하고 있는 중이다.

개막 이후 리그 내 전 구단과 한번씩 붙어본 결과 일단은 7승 6패 2무로 3위에 랭크되면서 출발은 나쁘지 않아보인다. 다만 그 7승 중 3승이 최하위 롯데와의 3연전 싹쓸이 덕분이고 2승1무로 끝낸 개막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롯데, 오릭스 두 하위팀만 두들겨서 5승을 뽑아낸 결과라 여전히 불안요소는 있는 중. 앞으로의 세이부, 소뱅과의 맞대결에서 회복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지금의 성적은 하위권 팀과의 대결에서 얻은 승수로 분칠을 한 결과에 지나지 않게 될 가능성도 있다.

5월 15일 라쿠텐 원정에서는 8점차를 역전패당하는(...) 충공깽을 선보이며 장렬히 패배하였다.

그 뒤로도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이는데[47] 소프트뱅크에게 심하게 털리고 생각보다 오릭스를 못 털면서(...) 5월 22일 현재 3.5게임차 5위까지 떨어지고 만다. 아직은 3위 세이부와 1.5경기차라 희망은 보이지만... 그러나 세이부와 맞붙어 루징시리즈를 기록.

그렇지만 이후 지바롯데를 스윕하고. 선두그룹에서 대혼전이 벌어지면서, 순위는 여전히 4위지만 1위와 승차 1게임차까지 쫓아갔다. 뒤이어 오릭스까지 스윕하면서 2위를 기록. 다만 순위는 올랐지만, 라쿠텐이 소프트뱅크를 스윕하면서 1위와의 승차(1.5경기차)는 조금 더 벌어진 상황.

교류전이 되자 야쿠르트와 한신, 히로시마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며 잠깐 파리그 1위에도 올라갔지만 자이언츠전부터 루징을 당하며 뭔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디엔에이전도 1승 2패로 루징을 당했다. 결정적으로 비밀번호를 찍고 있던 주니치에게 스윕패(!)를 당하면서 8승 1무 9패로 교류전 적자 확정. 순위도 다시 4위까지 떨어지고 만다.

리그전에 돌아와서도 절대강자 소프트뱅크에게 스윕을 내주며 6연패. 그렇게 안 되려나 했지만… 라쿠텐과 세이부를 상대로 스윕을 거두며 직전의 상처를 지워버리고, 추락중인 라쿠텐을 대신하여 2위 자리에 오른다.

5.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총 관중 1,897,789명 (+2.3%) 1,959,943명 (+3.3%) 2,078,981명 2,086,410명 1,968,916명
일일 평균 26,358명 27,221명 29,281명 28,978명 27,731명

6. 역대 성적

년도 순위 승패무 승률 포스트시즌 성적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범
2007 1/6 79-60-5 .568 일본시리즈에서 탈락(주니치)
2008 3/6 73-69-2 .514 제 2 스테이지에서 탈락(세이부)
2009 1/6 82-60-2 .577 일본시리즈에서 탈락(자이언츠)
2010 4/6 74-67-3 .525 진출 실패
2011 2/6 72-65-7 .526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세이부)
2012 1/6 74-59-11 .556 일본시리즈에서 탈락(자이언츠)
2013 6/6 64-78-2 .451 진출 실패
2014 3/6 73-68-3 .518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탈락(소프트뱅크)
2015 2/6 79-62-2 .560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롯데)
2016 1/6 87-53-3 .621 일본제패(히로시마 탈락)
2017 5/6 60-83-0 .420 진출 실패

7. 팀 특징

7.1. 드래프트 지명 방식 : 상남자 스타일

연고지 이전 이후에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1라운더들이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구단이 보면 부러워한다. 다르빗슈 유, 나카타 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아리하라 코헤이 등이 드래프트 1라운더들. 또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추파를 받았을 정도로 2012 시즌 일본 고교야구의 핫이슈였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역시 이 팀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이처럼 1라운더들이 다른 팀에 비해 대박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해 고교야구 최고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를 무조건 지명하기 때문.(...)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방식 때문인데,
  • 지역 연고에서 1차지명을 뽑는 KBO 리그와 전년 성적 역순으로 드래프트를 진행하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과 달리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은 제비뽑기, 2차지명은 전년 성적 역순으로 진행을 한다. 즉 운빨이 엄청 중요한데 그러나 S급 선수, 원하는 선수를 제비뽑기를 통해 뽑았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 일본에서는 특급선수들이 선호하는 구단이 보통 요미우리 자이언츠이고[48], 그래서 다른 구단에서 A선수를 지목했을때 해당 선수가 "x까 나 요미우리 아니면 안가!"를 선언하고 사회인야구로 가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요미우리에 가고 싶어서 2번이나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거부한 오뎅장수 초노 히사요시.[49] 이렇게 되면 구단들은 1픽을 그냥 날려버리기 때문에 선수가 대놓고 선언하면 다른 팀들은 해당 선수 지명을 피한다. 그러나 닛폰햄 파이터즈는 그런거 다 필요없고 잘하면 무조건 "너 내꺼될 준비해!"라며 지명한다.(...)[50]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명한 1차지명 선수들이 못 하더라도 중박은 쳐주는 편.

닛폰햄의 경우 일본 최북부의 홋카이도라는 연고지 위치[51]도 그렇고,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약해서 물먹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소신있는 지명 방식 및 체계적인 육성시스템 덕에 1라운더 대박이 자주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로또 전쟁: 일본의 신인지명 이야기라는 글을 참조.

2017년에 또 그렇게 지명했는데 무려 7개구단이나 지명을 했는데 추첨에서 당당하게 뽑혔다! 그렇게 지명한 인물이 바로 키요미야 코타로. 쿠리야마 감독이 추첨픽을 할 때마다 물을 먹어서 GM 보좌인 키다 마사오가 왼손으로[52] 뽑았다. 역시 일본 최고 금손은 닛폰햄인 듯

그리고 2018년 드래프트에서도 당초 내야수 최대어인 네오 아키라를 뽑으려고 추첨에 지원했으나 주니치 드래곤스로 갔는데, 어부지리로 고시엔 준우승팀 가나아시 농고의 에이스인 요시다 고세이를 데려왔다.[53]

드래프트 뿐만 아니라 선수선발, 트레이드 면에서도 사건사고를 일으키거나 워크에씩 면에서 평판이 나빴던 선수들을 과감히 데려와서 갱생시키는 사례가 많아[54] <북쪽의 갱생시설>로 불린다. 니오카 토모히로, 하쿠무라 아키히로가 그 좋은 사례. 그 덕에 선수가 사회면에 나오는 일이 별로 없고[55] 사이토 유키는 오히려 교통사고를 당한 시민의 목숨을 구해내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었다. 사회면에는 요미우리가 더 많이 나온다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1픽 날린 사례
    • 스가노 도모유키는 대학야구를 씹어먹고 2011년 드래프트에 참가, 당대 최고 선수로 많은 구단들이 탐을 냈었다. 그러나 스가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하라 타츠노리의 외조카였기에 "나 요미우리 갈꺼다."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1픽으로 뽑더라도 계약을 거부할 확률이 99%였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은 눈치를 보며 빠졌지만, 상남자의 니폰햄은 "우린 너다!"라며 지명.[56] 제비뽑기에서 승리하며 지명권을 따냈지만 스가노 는 당연히 지명 거절을 하며 재수를 선언했다.[57] 닛폰햄은 멀쩡한 1픽만 날려버린 셈. 그리고 스가노는 포스팅시스템을 인정하지 않는 요미우리 방침[58]과 안습한 선발투수 사정이 합쳐져 사실상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안습
    • 2013년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소신 픽을 했지만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첫 제비뽑기 3연패를 달성하며 1라운드 꼴지픽을 하게 된다.(...) 이는 전년도 꼴지팀이 1라운드 꼴찌 픽을 한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닛폰햄은 울면서 와타나베 료를 지명했다.[59]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대박친 사례
    • 다르빗슈 유는 당시 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중 한명이었지만, 자기관리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다.[60] 그러나 니폿햄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며 당당하게 소신픽 했고 단독 1픽을 뽑아내며 입단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20세의 나이부터 일본프로야구의 절대자로 군림하며 거액의 포스팅비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건너간다.
    • 오타니 쇼헤이는 고교야구 시절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투수로써도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투수였다. 당연히 많은 구단들과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오타니는 "나 메이저 갈꺼임 건들지 마셈"이라고 선언, 다른 팀들이 눈치보고 빠질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상남자 닛폰햄 파이터즈는 또 다시 "어쩌라고."라며 패기있게 1픽으로 지명,[61] 결국 지명권을 따낸후 설득을 거쳐 오타니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62] 그리고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에서 역대급 성적을 찍으며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하였다. 다만 포스팅 비용에 관해서는 네임밸류와 성적에 비하면 좀 낮은 편인데, 이는 MLB와 NPB간의 협약에 의해, 상한치를 20M으로 고정해버린 탓이 크다. 이때문에 다르빗슈의 반도 안되는 금액으로 책정되었다. 물론 상한치 20M이라 매우 큰 돈이긴 하므로 닛폰햄 입장에서 큰 이득이긴 하지만, 오래오래 잘써먹고 비싸게 판 다르빗슈에 비해서 몇년 못쓰고 싸게 판 감이 있는 것도 사실.

7.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jpg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jpg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3.jpg
유별난 인간들이 많다 카더라

괴짜 야구선수로 유명한 신조 츠요시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비범한 장난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 이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홋카이도로 막 이전한 미미한 구단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팬서비스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똘끼의 주범(...)인 신죠 츠요시가 프로야구계에서 팬서비스를 유달리 강조한 선수이기도 했고. 파이터즈 프랜차이즈 역대 모기업 중에 특촬물 제작기업이던 토에이 산하의 야구단이었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특촬물과 연관지어서 놀기도 한다.[63]

이후 신조 츠요시가 닛폰햄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난후 모리모토 히초리가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64] 모리모토 이후 묘한 정신세계의 외야수 계보(...)는 이토이 요시오가 이었다가,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를 찍고 한신 타이거스행. 지금은 스기야 켄시가 역할을 이어 받아 야구를 할 수 있는 게닌으로 활약 중이다

7.3. 골든 글러브

팀은 1993년부터 단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년 최소 1명씩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해내고 있다. 퍼시픽리그 최장기록이다. 특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5회 수상)이 거쳐갔고 나카타 쇼가 현재 지키고 있는 1루수 부문은 수상 16회이며 이것도 퍼시픽리그 최다이다.

8. 유니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유니폼 참고.

9. 대표적인 선수들

홋카이도 시대 이 팀을 대표했던 선수는 다르빗슈 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로 유명한타다노 카즈히토도... 공수겸장 2루수 타나카 켄스케[65],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이적한 강타자 이나바 아츠노리, 한국계 가네코 마코토모리모토 히초리, 지금은 주니치 드래곤즈에 있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이 이 팀을 빛냈다.

9.1. 현역

9.1.1. 투수

  • 1. 사이토 유키 : 손수건 왕자, 항목 참조.
  • 13. 나바타메 츠바사
  • 14. 카토 타카유키
  • 15. 우와사와 나오유키
  • 16. 아리하라 코헤이
  • 17. 우라노 히로시
  • 18. 요시다 코세이 : 2018년 여름 코시엔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가나아시농고의 에이스 투수. 약체 가나아시농고를 혼자 멱살캐리하면서 코시엔 결승까지 올라왔으나 오사카토인고교의 타선에 무너지면서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대학 진학과 프로 진출을 고민하다 닛폰햄의 1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 입단.
  • 19. 가네코 치히로
  • 20. 우에하라 켄타
  • 25. 미야니시 나오키 : 사회인 시절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로 출장해 한국의 도하 참사에 이바지했다. 2008년 데뷔시즌부터 2018년까지 11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한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현재 294홀드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 홀드기록 보유자이다.
  • 27. 닉 마르티네즈 : 2018년에 이어 2년 연속 닛폰햄에서 뛰나 2019년 시즌 초는 부상으로 날렸다.
  • 28. 저스틴 핸콕
  • 29. 이구치 카즈히토 : 이중키킹을 구사하는 불펜 투수.
  • 31. 무라타 토오루
  • 33. 조니 바바토
  • 34. 호리 미즈키 :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예선 한일전의 승리 투수. 1998년생으로 이 날 프로 데뷔 후 첫 승리를 거뒀다.
  • 35. 니시무라 타카히로
  • 36. 나카무라 마사루
  • 37. 카키기 렌 : 위의 요시다 코세이의 가나아시농고를 무너뜨렸던 오사카토인고교의 에이스 투수. 그러나 동기 후지와라 쿄타나 네오 아키라에 비해서 평가가 낮았는지 드래프트에는 중하위픽으로 뽑혔다.
  • 39. 아키요시 료 : 야쿠르트에서 트레이드된 선수. 2019년 닛폰햄의 마무리.
  • 40. 후쿠다 스구루
  • 41. 브라이언 로드리게즈
  • 43. 하쿠무라 아키히로
  • 46. 다나카 에이토
  • 47. 다나카 토요키
  • 48. 다카야마 유키
  • 49. 쿠몬 카츠히코
  • 50. 스즈키 료타로
  • 51. 이시카와 나오야
  • 52. 미야다이 코헤이 :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 53. 타츠타 쇼타
  • 54. 타마이 타이쇼
  • 56. 요시카와 미츠오 : 오랫동안 포텐이 터지지 않던 애증의 좌완 파이어볼러였지만 2012년 1점대 ERA에 14승을 기록하며 다르빗슈의 메이저 진출 공백을 무색하게 하는 활약으로 에이스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평범한 선발 요원 정도의 성적만 냈고 2016년 시즌 종료 후 외야수 이시카와 신고와 묶여 요미우리의 애증의 거포 유망주이던 오타 타이시, 왼손 계투 쿠몬 카츠히코와의 2:2 트레이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다. 그러나 요미우리에서는 중간계투로 강등되는 등 좋지 못한 성적만 내다 2019년 다시 닛폰햄의 우완투수 카기야 료헤이, 좌완투수 후지오카 타카히로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포수 유망주 우사미 신고와 묶여 친정 닛폰햄으로 복귀.
  • 57. 스기우라 토시히로
  • 59. 요시다 유키
  • 63. 키타우라 류지

9.1.2. 포수

  • 10. 시미즈 유시
  • 22. 츠루오카 신야 : 내야수 다나카 켄스케와 함께 현역 NPB 유이한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 경험자. 2017년 시즌 종료 후 소프트뱅크에서 퇴단 후 FA권을 행사해 친정 닛폰햄으로 복귀했다. 2019년 시즌부터 1군 배터리코치 겸임.
  • 30. 우사미 신고 : 요시카와 미츠오와 함께 요미우리로부터 트레이드되었다.
  • 42. 쿠로바네 토시키
  • 60. 코오리 타쿠야
  • 64. 타미야 유아
  • 68. 이시카와 료
  • 90. 사네마츠 카즈나리 : 2군 배터리코치 겸 선수. 슬러거 포수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타격은 결국 대성하지 못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어 그곳에서 오랜 기간 백업포수로 뛰었다. 2018년부터 친정팀으로 돌아와 2군 육성코치 겸임 선수로 뛰면서 아래의 나카지마 사토루처럼 코치를 주 업무로 보며 비상시 콜업되어 백업포수를 맡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9.1.3. 내야수

  • 2. 스기야 켄시 : 내 외야 어느 포지션도 소화 가능한 평범한 스위치 히터 유틸리티맨이지만, 예능 한정으로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필적하는 존재감을 뽐내는 선수. 톤네루즈[66]의 리얼야구 BAN에 출연해 팀 선배 나카타 쇼의 신경을 제대로 긁는 등 뛰어난 예능감을 보여주었고, 그 뒤로 실력 이상으로 야구팬들에 주목받는 선수가 되었다. 사실 야구 실력보다도 예능감 때문에 인기있는 선수.[67] 일본 웹상에선 아예 야구 잘하는 게닌 취급을 받는다(...). 또한 세이부 원정경기 때마다 경기전 타격 연습 시 메트라이프 돔의 장내 아나운서가 장내 방송으로 디스를 하는데 이것도 명물이다. 예를 들면 "지금 대놓고 치라고 볼을 던져도 홈런은 거의 안 나오는 '대형 슬러거' 스기야 겐시 선수가 타격 연습 중입니다. 담장을 넘기는 타구는 어쩌다가 하나씩 나오지만 관중 여러분께서는 홈런 타구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식으로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것도 사연이 있는데 도쿄 출신인 스기야가 신인 시절 세이부와의 첫 원정경기 때 친구들을 잔뜩 메트라이프 돔에 초대했는데 그 때는 경기에 선발출전이 보장이 되지 않아서 모처럼 부른 친구들에게 자신이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 특별히 장내 아나운서에게 자신의 연습 타격 때 멘션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비록 원정팀 선수의 부탁이지만 장내 아나운서도 흔쾌히 받아줬고 위와 같은 위트 섞인 디스로 연습 타격 때 소개 멘트를 해줬는데 이게 관중들의 반응이 좋아서 그 후로는 스기야가 메트라이프 돔에서 타격연습만 하면 장내 방송으로 온갖 창의적인 디스멘트를 날려대며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됐다. 어떤 사람들은 메트라이프 돔의 장내 아나운서(여성이다.)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한 거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스기야 본인 왈 "이미 결혼한 분"이라고. 여담으로 스위치히터라 좌우타석의 응원가 곡이 다르며(가사는 동일) 2019년에 한 경기에서 좌타석 홈런과 우타석 홈런을 모두 기록하기도 했다.
  • 3. 다나카 켄스케 : 포수 츠루오카와 함께 닛폰햄의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유이한 현역 NPB 선수[68]. 2013~14년을 각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마이너에서 보낸 걸 빼면[69] 현역 생활을 닛폰햄에서만 보낸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2루수다. 2019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예고했다.
  • 6. 나카타 쇼
  • 9. 나카시마 타쿠야 : 2015년 도루왕. 타격은 2할대 중반에 프로생활 8년간 통산 2홈런에 그칠 정도로 장타력은 전혀 없으며 발과 수비 위주로 먹고사는 선수. 그래도 장타력을 포기한 대신 파울을 많이 얻어내 상대 투수로부터 투구수를 많이 뽑아내는 끈질긴 면이 있는 덕분에 출루율은 그럭저럭 나오고 작전 수행능력도 뛰어나다.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현대야구에서 혼자 데드볼 시대 야구를 한다는 식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도루왕을 할 때는 테이블 세터로 자주 나왔으나 2019년 현재는 발도 빠르고 뜬금포와 괜찮은 컨택, 우수한 출루능력을 가진 니시카와 하루키에게 밀려서 하위타선으로 주로 나온다.
  • 12. 마츠모토 고
  • 21. 키요미야 코타로
  • 23. 와타나베 료
  • 24. 노무라 유키
  • 32. 야치 료타
  • 38. 이시이 카즈나리
  • 45. 히라누마 쇼타
  • 55. 난바 유헤이
  • 58. 요코오 토시타케 : 거포 3루수 유망주. 여담으로 등장곡이 방탄소년단의 노래이다.
  • 62. 타카하마 유토
  • 70. 이마이 쥰노스케

9.1.4. 외야수

  • 4. 타니구치 유야
  • 5. 오오타 타이시 : 2017년 일본판 탈G효과의 주인공. 2017년 요미우리에서 닛폰햄으로 트레이드되고 나서 8년간 요미우리에서 친 홈런, 안타 갯수보다 더 많은 홈런, 안타를 1년에 쳤다.
  • 7. 니시카와 하루키 : 2014년, 2017~2018년 도루왕. 2016 일본시리즈 4차전 끝내기 만루홈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빠른 발을 주무기로 닛폰햄의 주축 리드오프로 활약 중이며 2018년 6월 1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통산 200도루를 달성함과 동시에 도루성공률 역대 1위[70]에 올랐다.[71]
  • 8. 콘도 켄스케 : 포수였지만 수비능력보다 타격능력이 좋아 주 포지션을 우익수로 변경. 그 이후로 우익수나 지명타자 또는 3루수로 자주 기용된다. 사실 3루수나 우익수 수비도 좋은 편은 아니라 지명타자로 나오는 것이 제일 좋은데 문제는 장타력이 거의 없다. 뜬금포로 5개에서 10개 정도의 홈런을 쳐 줄수는 있지만 지명타자에게 기대하는 장타력은 아니다. 거기다가 유리몸이라 풀 시즌을 뛴 적도 거의 없다. 그래도 첫 풀타임 시즌에는 부상으로 시즌아웃되기 전까지 4할도 친 적이 있고,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에는 타격왕 경쟁을 하면서 타율 2위를 두번이나 할 정도로 컨택에 재능이 있다 보니[72] 수비 포지션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도 꾸준히 출장하는 선수. 2019년 현재는 3루수로 정착하는 중이다
  • 26. 아사마 다이키
  • 43. 하쿠무라 아키히로
  • 44. 모리야마 케이스케
  • 61. 히메노 유야
  • 66. 만나미 츄세이
  • 67. 키시사토 료스케
  • 99. 왕보롱

10. OB

10.1. 감독

10.2. 투수

  • 도바시 마사유키 (1955 - 1967) : 통산 164승을 거두어 플라이어스-파이터즈 통산 최다승을 거둔 투수. 은퇴 후 2번(1973년, 1992년)에 걸쳐 팀의 감독을 역임했지만 2번 모두 성적 부진으로 단년 임기에 그쳤고 1984~1986년엔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도 감독을 맡았지만 거기서도 성적 부진으로 중도해임당했다. 플라이어즈 시대 최후의 감독이자 플라이어즈, 파이터즈 시대에 모두 감독을 맡아본 유일한 인물.
  • 야나 노부오 (1956 - 1958) : 시합도중 가슴부상을 입는 바람에 일찍 프로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지금까지도 플라이어즈 & 파이터즈의 OB 멤버로 인정받는다. 그 후 배우로 전향하였고, 야구팀의 후원사였던 토에이에서 특촬물 배우로 주로 활동하였다. 제일 유명한 작품은 첫번째 슈퍼전대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최종보스 흑십자총통.
  • 오자키 유키오 (1962 - 1973) :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전 '괴동'이라 불린 젊은 강속구 투수였으나 혹사로 인한 어깨 부상으로 일찍 기량이 쇠해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투수.
  • 주동식 (1972 - 1982) : 팀 선배 장훈의 주선으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었다.
  • 키다 이사무 (1980 - 1985) : 데뷔 첫 해인 1980년에 무려 22승 8패 4세이브, 방어율 2.25, 225탈삼진으로 다승왕,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과 최다탈삼진 기록을 꿰차는 노모 히데오의 원조급 대활약을 보여주며 사상 최초로 동시에 퍼시픽리그 신인왕과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데뷔 시즌에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 그 이후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고, 결국 닛폰햄을 떠나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주니치 드래곤즈 등을 전전했지만 끝내 부활하지 못하며 1990년을 끝으로 60승 71패라는, 데뷔 시즌의 대활약에 따른 기대와는 너무나 못 미치는 성적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 마시바 시게쿠니 (1978 - 1988) : 원래는 1970년 다이요 훼일즈에서 데뷔한 선수였으나 별다른 활약은 못하고[75] 1978년 닛폰햄으로 이적했다. 이후 1981년 무려 15승 0패10할 승률(!!)을 기록하여 그 해 최고승률 타이틀을 획득.[76] 닛폰햄의 주전 투수로 활약하다가 1989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해 이듬해 은퇴했다. 통산성적은 81승 83패 2세이브.
  • 에나츠 유타카 (1981 - 1983) : 1981년 팀을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수상한 '우승 청부사'.
  • 타나카 유키오 (1982 - 1989) : 아래의 내야수 타나카 유키오와는 이름 한자까지 똑같다지만 일단은 동명이인. 1981년 드래프트 1위로 데뷔했지만 통산성적은 25승 36패 13세이브, 방어율 4.23으로 기대엔 못 미쳤다. 하지만 1985년 6월 23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대 킨테츠 버팔로즈 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대활약을 펼친 적도 있는데, 이 노히트 노런이 본인 인생의 유일한 완봉승이자 최초의 인조잔디 구장에서 달성한[77] 노히트 노런이었다. 은퇴 후엔 2001~2003년까지 닛폰햄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고 그 외에도 스카우트를 맡기도 했다.
  • 니시자키 유키히로 (1987 - 1997) : 80년대 말, 잘 생긴 외모로 퍼시픽 리그 구장에 관중을 불러온 '트렌디 에이스'. 인기나 실력에서 라이벌이었던 긴테쓰의 좌완 아와노 히데유키와의 치열한 신인왕 경쟁 끝에 아와노에게 신인왕을 넘겨준 것으로도 회자된다. 하지만 1997년 시즌에 성적부진에 시달리다 시즌 종료 후 세이부 라이온즈로 토사구팽 당하시피[78] 트레이드되었고, 세이부에서 4년간 구원투수로 시즌 20세이브도 기록해 보는 등 그럭저럭 뛴 후 은퇴했다.
  • 타케다 카즈히로 (1988 - 1995) : 세이브왕을 차지하기도 하고(1991, 18세이브) 선발 10승도 거두는 등 여러 보직을 오가며 활약했던 투수. 1998년에는 다이에에서 13승을 거두어 다승왕을 차지해 다승왕과 세이브왕을 모두 수상한 경험이 있는 몇 안되는 투수가 되었다. 1999년에는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며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과 함께 리그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 이와모토 츠토무 (1991 - 2005) : 한국계 일본인 투수로 닛폰햄의 도쿄 말기 시절 눈물나는 선발진의 에이스로 잠시 활약했던 적이 있다. 다만 성적보다도 쇼맨쉽과 예능감으로 더 빛을 봐 은퇴 이후 오랫동안 야구 해설자로 파이터즈 관련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역시 모리모토 히초리의 선배답다
  • 가네무라 사토루 (1995 - 2007)
  • 타테야마 요시노리 (1999 - 2010)
  • 타케다 히사시 (2003 - 2017) : 170cm의 작은 체구와 최고구속 145km/h 정도의 느린 구속으로도 오랜 기간 닛폰햄의 필승조로 활약하며 홀드왕 1회(2006), 세이브왕 3회(2009, 2011, 2012)를 달성한 프랜차이즈 투수. 다만 마무리투수 말년에는 떨어진 구위로 인해 2점대 ERA인 주제에 그에 맞먹는 WHIP를 기록하면서도 어찌저찌 세이브를 챙기는 작가기질이 극대화되었고 결국 마스이 히로토시에 마무리 자리를 넘겨준 뒤 재기하지 못했다. 프로 은퇴 뒤에는 프로 진출 전 뛰었던 일본의 사회인야구 팀 일본통운에서 뛰는 중.
  • 마이클 나카무라 (2005 - 2008) : 오스트레일리아인과 일본인 혼혈 투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호주 국가대표로도 선발된 적이 있다. 2004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뒤 일본프로야구에 드래프트로 지명되었다. 2006년 퍼시픽리그 최다 세이브를 거두며 닛폰햄의 홋카이도 연고이전 후 첫 일본시리즈 제패의 주역이 되었다. 2008년 시즌 종료 후 난다긴다 하는 구원투수는 죄다 영입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으나 그곳에서는 먹튀화했다.
  • 오카지마 히데키 (2006)
  • 타케다 마사루 (2006 - 2016) : 느린 공에도 불구하고 전성기에는 정교한 제구력으로 에이스 다르빗슈를 보좌하는 2-3선발로 활약한 좌완투수. 이름(勝)과는 달리 꽤나 승리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도 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극도의 투고타저에 시달렸던 2011년에는 164이닝 2.46 ERA의 준수한 성적으로 11승 12패의 디시전을 거두며 다패왕을 차지한 것은 물론 5경기 연속 완봉패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을 정도.
  • 야기 토모야 (2006 - 2012) : 2006년 대졸 신인으로 12승 8패 2.48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신인왕을 수상하고 다르빗슈 유에 이은 2선발 역할을 맡아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한 좌완투수. 하지만 신인왕 시즌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다 2012년 오프시즌에 이토이 요시오와 함께 오릭스 버팔로즈로 트레이드되었다. 그 이후에도 별달리 좋은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2017년 주니치에서 은퇴.
  • 라이언 글린 (2007 - 2009) :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그 라이언. 일본에서는 4시즌간 괜찮은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특이사항으로 단 4시즌을 뛰었는데도 20보크를 기록해 일본프로야구 통산 보크 순위 3위에 올라있다.(...)
  • 타다노 카즈히토 (2008 - 2014) : 초저속 이퓨스한여름 밤의 음몽 출연으로 악명 높았던(...) 투수. 위의 사건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드래프트되지 못하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뛰며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나 어찌저찌 일본으로 돌아와 뛰게 되었다. 닛폰햄에서 방출된 뒤 독립리그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다 2018 시즌부터 전력분석원으로 닛폰햄에 복귀.
  • 마스이 히로토시 (2010 - 2017)
  • 저스틴 토마스 (2013)
  • 기사누키 히로시 (2013 - 2015)

10.3. 포수

  • 오오미야 타츠오 (1977 - 1987) : 팀의 2번째 퍼시픽리그 우승 당시 주전 포수. 1987년 오시마 야스노리와의 맞트레이드로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가 1992년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은퇴했다. 현재는 야구해설가로 활동 중인데, 스승인 오사와 케이지를 벤치마킹해 유카타를 입고 선수들의 조그만 실수에도 가차없이 쓴소리를 시전하는 해설로 인기를 끌고 있다.
  • 타무라 후지오 (1978 - 1995) : 80년대 중반~90년대 중반 팀의 주전포수로써 활약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통산 1123안타 110홈런, 두자릿 수 홈런 시즌 5회, 규정타석 만족 시즌 6회의 기록을 가진, NPB에선 보기 힘든 괜찮은 공격력을 갖춘 포수였다. 말년엔 롯데, 다이에에서 선수생활을 보냈으며 은퇴 후 현재까지 여러 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 타카하시 신지 (1997 - 2011) : 2004년 삿포로 돔 이전 첫 해 26홈런을 치는 등 준수한 장타력을 보여줬던 공격형 포수로 2000년대 닛폰햄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다만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는 1루수로서(2009)만 받았다. 후에 오릭스 버팔로즈로 이적했다가 은퇴.
  • 노구치 토시히로 (1998 - 2002) : 도쿄돔 말기의 주전 포수. 야쿠르트에서 후루타 아츠야에 밀린 잉여 자원으로 분류되어 닛폰햄으로 트레이드된 선수였다. 2000년에는 3할에 근접한 타율에 다리도 그리 빠르지 않은 포수 주제에 11개의 3루타를 치는 변태스탯을 찍으며 '빅뱅 타선'의 지뢰밭 하위타선을 이끌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사네마츠 카즈나리 등 젊은 포수를 육성하고자 했던 구단 방침에 따라 한신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이후 야노 아키히로의 백업으로 6년간 한신에서 뛴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다가 2010년 은퇴했다.
  • 나카지마 사토시 (2004 - 2015) : 1987년에 데뷔한 최후의 한큐 브레이브스 출신 현역 선수. 29년 연속 1군 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가진 선수로 오릭스의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과 닛폰햄의 연고이전 후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모두 경험했다. 2007년부터 은퇴하는 2015년까지 선수와 1군 배터리코치를 겸임했는데, 이는 2군 구장인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이 1군 구장인 삿포로 돔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팀 특성상 비상시 포수를 충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배터리코치가 본업인 나카지마를 비상시의 포수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응급조치처럼 이루어졌던 인사였다. 닛폰햄으로 이적했을 때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나 백업포수 정도로 쓸려고 영입된 것이었고 코치 겸임 이후에는 정말 비상시가 아니면 출장조차 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제한된 쓰임새로나마 선수생활을 이어간 특이한 케이스였다.

10.4. 내야수

  • 오오스기 카츠오 (1965 - 1974) : 양대리그 최초로 각 리그에서 1000안타를 기록한 강타자.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한 후 1978년 야쿠르트의 첫 센트럴리그+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일본시리즈에서 시리즈 타점 신기록을 찍으며 맹활약한 공으로 MVP를 수상했다.
  • 카시와바라 준이치 (1978 - 1985) : 난카이 호크스의 주전 1루수였지만 노무라 카츠야가 난카이 구단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해임된 것에 반발해 닛폰햄으로 이적했다. 닛폰햄에서도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1981년 일본시리즈 진출의 주역이 된다.
  • 후루야 히데오 (1978 - 1990)
  • 타카시로 노부히로 (1979 - 1988)
  • 토니 솔라이타 (1980 - 1983) : 1981년 홈런왕-타점왕. 닛폰햄에서 4년 연속 30홈런을 치며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은퇴 후엔 공무원으로 전직했으나, 1990년 토지매매 관련 문제로 생긴 트러블에 휘말려 상대 주민에게 총살 당하는 불운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 시라이 카즈유키 (1984 - 1995) : 준족의 2루수로 활약하며 최고출루율 타이틀도 한 차례 얻었던 선수.
  • 히로세 테츠로 (1986 - 1998) : 드래프트 1위로 데뷔했지만 데뷔 후 7년 동안이나 백업 이하로 머물렀다가 30대 초반의 나이(32세)였던 1993년에야 비로소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던 대기만성형 선수. 이후 4년간 주전 유격수, 3루수로 활약하며 골든글러브와 베스트나인을 2차례 수상하는 쏠쏠한 활약을 펼쳤으나 얼마 안가 1997년 카타오카 아츠시 등의 대두로 주전 자리를 잃고 이듬해에 은퇴했다. 대머리+안경이라는 임팩트있는 인상에 1루 슬라이딩 등의 허슬 플레이와 재미있는 언행으로 예능계에서도 나름 활약했다.
  • 타나카 유키오 (1986 - 2007) : 입단 당시 이름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의 선수가 있어 '코유키'(작은 유키)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나, 또다른 애칭은 '미스터 파이터즈'. 90년대 닛폰햄을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골드글러브 5회와 타점왕 1회, 6번의 20+홈런 시즌을 기록한 공수겸장의 유격수였다.[79] 파이터즈의 원 클럽 플레이어로서는 유일하게 2000안타를 달성해 명구회에 가입한 인물.
  • 오오시마 야스노리 (1988 - 1994) : 주니치 드래곤즈의 중심타자였으나 닛폰햄으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도쿄돔 시대의 말기(2000~2002)에 감독을 맡으며 '빅뱅 타선' 이라 불린 강타선을 구축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3년만에 해임되었다. 여담으로 통산 2204안타 382홈런 1204타점이란 뛰어난 스탯에 1983년에 센트럴리그 홈런왕까지 수상한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1번도 베스트나인,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본적이 없다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물론 요미우리의 레전드랑 포지션이 겹친 탓에 타이틀 자체를 하나도 못 딴 타이요 훼일즈마츠바라 마코토보단...
  • 카타오카 아츠시 (1992 - 2001) : 뛰어난 선구안으로 4할 출루율 3회, 100볼넷을 2회 기록한 90년대 중후반의 붙박이 3번 타자-3루수. 하지만 FA로 입성한 고향 팀 한신 타이거스에서는 2003년 우승에 공헌한 걸 빼면(근데 그 해는 규정타석 미달...) 선수 시절에는 FA먹튀, 코치로서는 타격 막장화의 주범으로 어마어마하게 까이는 인물이 되었다.
  • 오치아이 히로미츠 (1997 - 1998) : 같은 1루수였던 기요하라 카즈히로를 요미우리가 영입한 것에 반발해 스스로 방출을 요청한 후 닛폰햄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전해의 부상으로 인해 20홈런 이상을 기대할 수 있었던 장타력이 급격하게 폭망하면서 결국 과거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진 끝에 2년 만에 은퇴하고 말았다.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1997 - 2006) : 명실상부 2000년대 파이터즈를 대표하는 강타자. 2006년 퍼시픽리그 MVP.
  • 카네코 마코토 (1994 - 2014) : 타격은 극히 평범했지만, 처음으로 2루수 주전을 차지한 1995년부터 2012년까지 닛폰햄 센터 내야의 주전 한 자리를 계속해서 지켜낸 수비형 내야수. 골든글러브를 두 포지션에 걸쳐 3번 수상했다.(2루수 : 1998~99, 유격수 : 2009) 일본의 세이버메트리션 사이에서는 코사카 마코토 등과 함께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내야수로까지 평가받을 정도의 수비 장인.
  • 이이야마 유지 (1998 - 2017) : 통산 OPS 4할대에 선수생활 전부를 대수비/대주자요원으로만 보낸 선수지만, 내야 어느 포지션에서도 빈틈없는 수비능력으로 가늘고 길게 현역생활을 유지했던 선수.
  • 페르난도 세귀뇰 (2004 - 2007) : 2004년 홈런왕.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이후 최고의 거포 스위치 히터로 꼽히는 외국인 선수. 홈런왕 1회(2004), 퍼시픽리그 지명타자 베스트나인에 2회(2004, 2006) 선정되었다. 특이사항으로 훌리오 줄레타와 함께 일본프로야구에서 단 두명 뿐인 13개 구단(현 NPB 12개구단+킨테츠) 상대 홈런을 기록한 선수 중 하나이다.
  • 니오카 토모히로 (2009 - 2013)

10.5. 외야수

  • 오시타 히로시 (1946 - 1951) : 플라이어즈 초창기를 대표하는 강타자였지만, 어머니의 필로폰 중독 치료비에 쓰느라 가불받은 급여가 너무 많아진 것이 화근이 되어 구단과 불화를 겪다 1952년 시즌 개막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니시테츠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다.
  • 후카미 야스히로 (1952 - 1953) : 위의 오시타의 트레이드 상대. 플라이어즈에서는 짧은 기간만 뛰었지만, 이적 첫 해인 1952년 25홈런(니시테츠에서 2홈런, 토에이에서 23홈런)을 치며 홈런왕이 되었다. 덕분에 후카미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2구단 소속 홈런왕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 장훈 (1959 - 1975)
  • 백인천 (1962 - 1974)
  • 시마다 마코토 (1977 - 1990) - 파이터즈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 도루(통산 352도루, 그중 마지막 해 호크스에서 기록한 1도루를 빼고 모두 파이터즈에서 기록) 기록자이자 일본프로야구 도루계의 콩라인. 1979년 55도루를 한 것으로 시작해 1984년까지 40도루+ 2회(1981, 84)를 포함 단 한번도 30도루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고 3할 타율도 3회 기록하는 등 공수주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인 리드오프였다. 하지만 도루왕 타이틀은 후쿠모토 유타카오이시 다이지로에 밀려 단 한 차례도 차지하지 못했다. 덕분에 구단 사상 첫 도루왕은 시마다가 현역에서 은퇴한 지 20년이 넘게 지난 뒤에야 아래의 양다이강이 차지하게 된다. 1991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한 뒤 그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 토미 크루즈 (1980 - 1985)
  • 맷 윈터스 (1990 - 1994)
  • 제리 브룩스 (1997 - 1998)
  • 나이젤 윌슨 (1997 - 2001)
  • 셔먼 오반도 (1999 - 2002, 2004 - 2005)
  • 모리모토 히초리 (1999 - 2010)
  • 신조 츠요시 (2004 - 2006) : 훌륭한그리고 똘끼넘치는 팬서비스와 팀내의 무드 메이커 등으로 활약하며 파이터즈의 인기팀 도약과 홋카이도 정착에 공헌한 1등공신.
  • 이나바 아츠노리 (2005 - 2014) :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FA 이적한 우익수로 2006~2009년 4년 연속 베스트나인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2000년대 말 팀 리더격으로 활약한 선수이다. 現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 터멀 슬레지 (2008 - 2009)
  • 이토이 요시오 (2004 - 2012)
  • 양다이강 (2007 - 2016) : 등록명은 일본식 음독과 대만식 음독이 괴상하게 뒤섞인 "요 다이칸"[80]. 2013 WBC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2012~2014년 외야수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호타준족의 중견수. 닛폰햄 구단 사상 최초의 도루왕(2013)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가서 후쿠오카 제1고교를 나와, 일본인과 같은 방식으로 고교생 드래프트로 입단했다. 2016 시즌이 끝나고 FA를 선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그리고 먹튀가 되었다

1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선수

12. 영구결번

특이하게도 1번째 영구결번을 구단 오너로 지정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영구결번
No. 100
오코소 요시노리

오코소 요시노리가 그 주인공. 이 사람은 파이터즈의 現 모기업인 닛폰햄[81]의 창업자이자 닛폰햄 시대의 첫 오너다. 2009년 일본 야구전당에 입성했는데 이것을 기념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 故 오사와 케이지 감독의 번호였던 86번은 오사와의 퇴임 이후 등번호를 선택한 선수나 코치가 없어 사실상 영구결번 상태이다.

다만 이 이상의 영구결번은 없을 듯. 구단 측에서 선수들의 영구결번에 대해선 거의 영구적으로 제정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13. 그 외



구단 공식 응원가로 파이터즈 찬가가 있는데, 무려 1974년 제작된 곡으로, 퍼시픽 리그 구단가 중 오래 된 축에 들어간다. 참고로 원판 가수는 사사키 이사오.

AKB48의 멤버 미야자키 미호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열광적인 서포터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이 팀의 팬인 유명인으로는 성우 토미자와 미치에가 있다. 특히 토미자와 미치에는 도쿄시절부터 팬으로 그 중에서도 명구회 멤버 중 타자로서는 유일한 닛폰햄 원클럽맨인 다나카 유키오와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라이벌전로 오릭스전이 있다. 악연보다는 7회 초 오릭스 럭키 세븐 타임에 거를 수 없는 멘트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사실 이 팀은 그동안 뭔가 뚜렷한 팀 컬러를 보여주지 못해서 이렇다할 라이벌도 없었다. 도에이 시절에는 도쿄 오리온즈 정도가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두 팀 다 바닥에서 헤매는 팀이라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라이벌까지 챙길 여력이 안 됐고 덤으로 당시는 요미우리의 전성기 시절이라 그 두 팀의 대결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줬고 오리온즈가 롯데에게 넘어가고 일본 전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서는 그나마 그런 라이벌 의식도 희석되었다. 세이부가 사이타마로 이사오자 간토 지역의 팀이라는 배경으로 세이부를 라이벌 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황금기 시절의 세이부와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서 세이부를 비롯하여 두 팀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냥 혼자만의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또 같은 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는 이유로 감히 요미우리 자이언츠와도 엮이려고 했으나 일단 그 홈구장의 세입자 신세인데다가 리그 자체가 달라서 시범경기 때를 제외하면 붙을 일이 없었고, 그래도 일본 시리즈에라도 올라가서 요미우리와 자주 붙었으면 그나마 라이벌 관계를 형성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전력으로는 언감생심. 1981년 일본시리즈가 두 팀이 맞붙은 유일한 시리즈였다. 그렇게 덕아웃 시리즈는 게임에서나 해볼 수 있는 대진 취급을 받다가 홋카이도로 이전하게 되었고 도쿄를 떠나면서 안그래도 희미했던 라이벌 의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공교롭게도 홋카이도로 이전하고 나서는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요미우리와의 일본시리즈를 두번이나 치를 기회를 얻었지만 이미 그 때는 같은 홈구장을 쓰는 덕아웃 라이벌이 아닌 도쿄의 전국구 강팀 대 홋카이도를 연고로 하는 지역 팀의 대결구도가 돼서 딱히 라이벌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태였다.
오릭스와는 7회말 멘트로 인한 개그성 라이벌 관계이지만 홋카이도로 이전하고 강팀으로 탈바꿈하고 나서 실질적으로 라이벌로 생각하는 팀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인 듯 하다. 일단 호크스가 최강의 팀이긴 하지만 닛폰햄도 홋카이도 이전 후 특유의 색채를 보이는 강팀으로 성장해서 도쿄 시절의 세이부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자주 맞붙어서 나름대로 볼만한 승부를 연출하는 것도 있다. 게다가 NPB의 최북단 팀과 최남단 팀이자 각각 도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팀이라는 관계가 작용해서 일단 현재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닛폰햄 팬들은 소뱅을 라이벌시 하는 것 같다.


[1] 2004년 홋카이도로 연고이전 후 오리지널(그러니까 도쿄 시절의) 파이터즈 팬들을 위해 2004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파이터즈 홈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명 반대파의 근거는 하나 떨어지고...[2] 도쿄 연고 시절에는 야구배트를 든 기사 모양의 로고 마스코트#태양을 모티브로 한 교로탄, 익룡을 모티브로 한 파이티를 사용했으나 홋카이도 연고 이전 후 홋카이도 토착종인 곰과 다람쥐를 모티브로 새로 마스코트를 만들었다.[3] '日本'의 일본어 발음은 '니혼'과 '닛폰' 두 가지가 있는데 닛폰이라 표기하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게 자국을 강조하는 뉘앙스라 한국인 입장에선 꺼리는 경향이 있다.[4] 인터넷에서는 야민정음 식으로 으로 줄여부르기도 한다.[5] 1940년 시즌 말 츠바사군으로 팀명을 변경했다가 시즌 종료 후 나고야의 야구단 나고야 킨코군(주니치 드래곤즈와는 다른 구단)과 합병해 타이요군(타이요 훼일즈와는 관련 없음)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 타이요군마저도 1943년 서일본 철도에게 매각되면서 팀명을 니시테츠군(니시테츠 라이온즈와는 모기업만 같은 다른 구단)으로 바꿨다가 시즌 종료 후 해산했다.[6] 다이에이가 당시 또 다른 야구단인 킨세이 스타즈를 매입하면서 2개 구단의 동시 경영이 힘들었기에 결국 플라이어즈에서 손을 떼었다.[7] 1964년에 토큐 경영진과의 분리로 독립함.[8] 참고로 이 해 일본시리즈는 전 시리즈가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렸다.(즉 덕아웃 시리즈) 요미우리와 닛폰햄이 둘 다 고라쿠엔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 아직 LG와 두산이 해내지 못한 것을...[9] 퍼시픽리그는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전후기리그로 나눠 운영했으며, 전후기 우승팀 두 팀이 5전 3선승제로 벌이는 플레이오프를 실시했다.(전후기리그 전부 우승시 일본시리즈 직행) 1985~88년 한국프로야구 규정과 동일. 닛폰햄은 1981년, 1982년 후기리그 우승을 했다.[10] 단, 오가사와라는 조선적을 가진 재일교포라는 의혹이 있을 뿐,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다. 해당 항목 참조.[11] 인도인 아버지를 둔 혼혈 다스 로마슈는 입단 후 크게 성정하지 못한 채 쓸쓸히 선수생활을 접었다.[12] 그리고 1975년 시즌 종료 후 장훈도 닛폰햄을 떠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갔다.[13] 여담이지만 마지막으로 롯데에서 보낸 시즌인 1980년에 교진군에서 롯데로 이적한 사실 쫓겨난 거에 가깝지만 장훈과 다시 같은 팀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장훈은 롯데에서 3000안타를 달성. 그 뒤 1981년까지 현역으로 뛰고 장훈은 은퇴했다.[14] 게다가 2000년대 중반 이전의 일본야구는 관중 부풀리기가 일상화되어 있었고 교진만 해도 실집계로 전환한 후에는 300만을 밑돌고 있다. 실제로 닛폰햄 경기를 보기 위해 도쿄돔을 찾은 사람이 얼마나 적었을지는...[15] 이 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대혈투를 벌인다. 호크스의 에이스였던 사이토 가즈미는 최종전에서 패배한 이후 부상에 시달리다가 오랜 재활에도 불구하고 끝내 은퇴에 이른다.[16] 당시 상대팀은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이끌고 이와세 히토키, 후쿠도메 고스케, 타이론 우즈 등이 활약한 주니치 드래곤즈였다. 최종성적은 4승 1패.[17] 특히, 시리즈 최종전인 5차전은 일본시리즈 최초의 퍼펙트 게임이 나온 경기로 파이터즈가 희생양이었다. 이에 대한 뒷얘기는 퍼펙트 게임 항목 참조.[18] 이 영향으로 일본 야구팬들 사이에서 콘도 캐스터의 별명은 잇츠곤 아저씨다(...).[19] Goodbye, It is out of here, See you later도 사용한다.[20] 롯데 4경기, 세이부 3경기, 라쿠텐 2경기.[21] 오릭스 1경기, 소프트뱅크 1경기.[22] 세이부 1경기.[23] 세이부 2경기.[24] 특히 인조잔디의 경우 12구단 중 최악으로 다른 돔구장이 다 쓰는 필드터프가 구장구조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하다. 콘사도레는 천연잔디 쓰는데 미칠 노릇. 2016년에 선수회에서 삿포로돔 측에 직접 건의해서 잔디 좀 바꿔달라고 했다.[25] 재밌게도 4년전인 2004년도 롯데를 반 게임차로 제치고 당시 퍼시픽 리그에서만 단독적으로 시행되던 플레이오프에 진출한적 있다. 파업으로 인해 2경기가 취소된 탓도 있지만[2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이와쿠마 히사시다나카 마사히로 단 두 명의 투수로 틀어막았다.[27] 타격은 니혼햄 바로위의 5위지만 투수진은 방어율 1위를 달성.[28] 닛폰햄측에선 '에이스' 타케다 마사루를 층이 얇은 중간계투로 보내서 보강하는게 목적이라고 했지만, 팬중 그 누구도 방어율이 4~6점대를 왔다갔다하는 투수를 에이스라 칭하며 중간계투로 돌리는게 강화라는 구단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29] 작년의 우승팀인 소프트뱅크의 성적인 승률 5할 +18이었다.[30] 이 날 경기 전 순위상으로는 3위가 세이부, 4위가 롯데였으나, 양 팀이 이 날 경기 전까지 세이부는 9경기, 롯데는 15경기나 남겨두었기 때문에 2위의 가능성이 남아 있던 팀은 롯데 뿐이었다.[31] 심지어 3위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만나야 되는 팀이다![32] 상대 선발인 와쿠이 히데아키6.1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무려 143개를 던졌음에도 단 1실점밖에 하지 않았다.[33] 그리고 이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홋카이도로 연고지 이전 후 홈경기 500승이라는 기록도 달성되었다.[34] 호크스 승률 0.621, 파이터스 승률 0.620.[35] 2007, 2009, 2012시즌[36] 그러나 FA로 간 양다이강은 소프트뱅크의 모리후쿠 마사히코와 함께 요미우리에서 부진한 2017년을 보냈고 같이 트레이드로 간 요시카와 미츠오도 토리타니 타카시에게 헤드샷을 날리고 후반기에 평균자책점을 올리는 등 요미우리 CS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37] 실제로 2017 고교야구 양대 타자 유망주 키요미야 코타로와 고시엔 대회 최다홈런을 기록한 나카무라 쇼세이는 프로지망서를 제출하면서 12구단 OK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내걸었다. 다만 그 후에 보인 행보는 정말 12개 구단 OK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데 기요미야 고타로의 아버지인 기요미야 가쓰유키(사회인 럭비 야마하발동기 감독)은 드래프트 전부터 맘에 안드는 팀이 지명할 경우 아들을 와세다 대학으로 진학시켜 다음 드래프트에 참가시키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내비쳤으며 심지어는 구단들에게 기요미야의 육성계획에 대해서 설명회를 요구하는 등 여간 고자세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구단 지명이니 하는 소리도 나왔지만 조건이 맞지 않는 몇몇 구단은 알아서 기요미야 지명을 철회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며, 10월 2일에 열린 면담회에선 히로시마와 닛폰햄은 참석하지 않았다.[38] 이 날 홋카이도 신문에서는 호외를 발행하여 키요미야 지명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5년 연속으로 1차지명 뽑기에 물을 먹은 탓에 제비 뽑기에서 잘리고 키다 마사오 GM 보좌가 대신 제비를 뽑았다.[39] 사실 드래프트 당시 교내에서 학력테스트가 있었고, 기요미야는 드래프트 발표 당시 시험 중이었다고.[40] 그러나 그 이면에는 충격과 공포급의 뒷 얘기가 있었으니...자세한 내용은 이와세 히토키 항목을 참조.[41] 일본야구를 많이 안다면 다이요 훼일즈가와사키에서 요코하마로 이전할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 시에서의 불편함, 같은 현 내 인근 도시로 이전, 이에 따른 새 구장 건설.[42] 1위는 봄-여름 연속 제패에 성공한 오사카 토인고교의 내야수 겸 투수 네오 아키라. 네오는 4개 구단의 1위 지명을 받아 추첨 끝에 주니치가 교섭권을 획득했다.[43] 포지션은 외야수. 188cm-90kg의 큰 체구를 갖추고 있다. 콩고-일본 흑백 혼혈이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오코에 루이는 나이지리아-일본 혼혈이다.[44] 그리고 2019년 2월 스프링캠프에서 '카키요시' 콤비로 6개월만에 팀내 청백전 선발 대결을 하게 되었다.# 청대에서도 절친이라고 한다.[45] 레어드는 롯데로 이적하였다.[46]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오프너는 강한 2번타자가 자리를 잡는 최신 트렌드에 맞춰 1이닝을 전력투구하는 클로저를 첫 이닝에 투입해서 1회부터 시작되는 상대팀의 가장 강한 타선을 틀어막아 실점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2회부터 실질적인 선발투수에게 바톤을 넘겨서 선발투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사용한 전술이다. 그래서 아직도 전통적으로 3, 4, 5번타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오프너 전술이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메이저리그에서 오프너를 사용하는 이유를 대입하면 NPB에서는 1회가 아니라 2회에 클로저를 투입해서 1이닝을 막게 하는 게 오프너의 의의에 부합한다. 다만 그럴 경우 실질적인 선발투수에게 바톤을 넘길 때까지 두명의 투수를 소모하거나 클로저에게 2이닝 투구를 강요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구리야마 감독의 실제 운용을 보면 선발투수를 2~3이닝 정도까지 끌고간 뒤에 다음 투수로 교체하는 식의 운용을 하고 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사정을 잘 아는 일본의 전문가들로부터도 구리야마 감독의 전술은 오프너가 아니라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가끔씩 사용한 불펜데이 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47] 5월 22일 기준 대 소프트뱅크 2승 1무 5패, 대 라쿠텐 4승 7패, 대 지바롯데 5승 3패, 대 오릭스 4승 1무 3패. 세이부만 예외로 5승 4패를 기록중.[48] 그러나 2010년대 들어 OB 등의 간섭, 시스템상 문제로 유망주가 크지 못하는 요미우리 2, 3군 육성시스템의 악명이 높아지면서 전보다는 신인 선수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편. 오죽하면 오카모토 카즈마가 2018년 포텐이 폭발할 때 팬들도 놀랐다.[49] 그러나 초노는 2019년 1월 7일부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마루 요시히로의 FA 보상선수로 가게 되어서 오히려 닛폰햄을 비롯한 타팀 팬들이 당황하였다. 이제는 우동장수다[50] 롯데는 닛폰햄 전략을 따라하여 초노를 강행지명했다가 결국 바비 발렌타인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51] 다만 선수육성을 위한 2군 구장은 나리타 국제공항 근처 치바현 카마가야시에 있으며, 2군 홈구장에도 대형 컬러 LED 전광판을 설치하는 등 볼파크화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홋카이도는 가을부터 기후가 쌀쌀해지기 시작해 2군 구장을 세우기가 어려운 편이고, 메이저리그의 북부지구 팀들도 그래서 마이너리그 산하팀을 따뜻한 곳에 둔다.[52] 이 때 아카시야 산마가 왼손으로 뽑으라고 조언했다.[53] 요시다는 2018년 고시엔대회에서 지역예선부터 전국대회 준결승까지 10연속 완투승을 거뒀으나, 혹사의 여파로 결승전에서는 오사카 토인 고교를 맞아 5이닝 12실점 끝에 강판되었고, 처음 지명할 때 혹사에 대한 우려로 인해 아무도 먼저 지명하는 구단이 없었다. 드래프트 전 제 12회 U-18 BFA 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물빠따의 여파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된 김대한에게 쓰리런을 맞은 뒤 득점지원을 1점만 받은 채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어 안습... 이놈의 오사카 토인은 왜 전국대회고 국제대회고 나를 안 도와주지[54] 삿포로는 계획도시로 도시구조가 미국 대도시와 비슷해 의외로 삿포로역, 스스키노를 제외하면 유흥가도 없는 편이다.[55] 그러나 전직 선수이자 2군 매니저였던 미야모토 켄이 2013년 강간치상혐의로 사회면에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였다.[56] 당시 교진의 스가노 지명이 8번째 순서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바로 뒷 순서인 닛폰햄에서 지명으로 스가노라는 이름이 나온 것. 교진 제외 11구단 팬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닛폰햄이 제비뽑기까지 승리하자 현장은 교진을 제외하고는 축제 분위기였다.[57] 정확히 말하면 1년 놀았다(...). 쉬는 동안 연습경기 2번 등판한게 전부였다고.[58] FA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FA가 되면 이미 전성기가 지난 32세다.[59]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전년도 우승팀인 라쿠텐은 제비뽑기에 성공해 최대어를 가져갔다. 위쪽 링크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2007신인 지명때, 2006시즌 우승팀 삼성이 양현종을 지명하고, 2006시즌 꼴지팀 기아가 백정현을 지명하게 된 셈. 참고로 이때 라쿠텐이 데려간 최대어가 마츠이 유키. 참고로 와타나베 료는 2018년 이전까지는 1군을 제대로 밟지도 못했고 2018년에도 주전급은 아니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닌 게 닛폰햄이 두번째 제비뽑기에서 요코하마에게 밀려 빼앗긴 카키타 유타는 1군 기록 없이 입단 4년만에 방출당하면서 최악의 망픽으로 전락했다. 닛폰햄이 세 번째 드래프트에서 빼앗긴 카지야 렌은 소프트뱅크에 입단하여 입단 4년차인 2018년에 중간계투로 31홀드를 거두며 터졌다.꼴코하마만 안습[60] 2004년 9월에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걸리는 바람에 일본고교야구연맹으로 부터 엄중경고를 받기도 했으며, 프로 가서 완전히 금연했다.[61] 당시 닛폰햄의 지명자 발표는 마지막 순서였다. 바로 앞인 11번째 순서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였고, 이들이 2년 연속 스가노 도모유키를 부른 직후에 나온 오타니 지명이었다.[62] 이 때 닛폰햄이 협상과정에서 오타니를 설득하기 위해 만든 보고서는 지금까지도 일본의 스포츠구단 운영 및 마케팅에서 모범적인 자료로 쓰이고 있다.[63] 재밌게도 위의 탈의 모티브인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최종보스인 흑십자총통을 맡았던 배우 야나 노부오 옹은 원래 그 야구단(토에이 플레이어즈 시절)의 투수 출신 배우이다![64] 이후 모리모토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으나 먹튀.[6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텍사스 레인저스를 거쳐 2015년 닛폰햄 복귀.[66] 이시바시 타카아키의 테이쿄 고교 후배라 불림을 받았다. 테이쿄는 야마사키 야스아키, 모리모토 히초리 등을 배출한 도쿄의 야구명문고.[67] 2018년 리얼야구 BAN에서는 상대팀 선수로 나온 야나기타 유키, 가이 다쿠야, 마에다 겐타등이 "쟤는 나중에 야구 그만 둬도 방송활동으로 먹고 살 수 있겠네"라고 수군거리는 장면도 있었다.[68] 같은 팀의 포수 츠루오카 신야가 주로 백업이었던 것과 달리 다나카는 이때 힐만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주전 2루수로 출장했다. 메이저리그까지 합쳐도 06년 일본시리즈 우승 경험 선수는 다르빗슈 유가 더해지는 것 외에는 없다. 엄밀히 따지면 이토이 요시오도 2006년 닛폰햄 소속이기는 했지만 그 해에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하느라 일본시리즈를 포함한 1군 경기에는 전혀 출장하지 않았다.[69] 메이저리그에서도 잠깐 뛰었다. 정말 메이저리거였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잠깐 뛰어서 그렇지.[70] 일본프로야구에선 도루성공률 집계 기준을 통산 200도루 이상으로 잡는다.[71] 6월 1일 시점에선 통산 200도루 31도루자로 통산성공률이 86.58%였고 이후 남은 시즌 동안 26도루 2도루자를 추가하여 2018년 시즌 종료 후를 기준으로 통산 226도루 33도루자로 통산성공률 87.25%를 기록 중이다. 참고로 종전 1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문 대주자로 활약하던 스즈키 타카히로의 82.89%(228도루 47도루자)다.[72] 2018년 지명타자 베스트나인 수상도 했었다. 자신보다 홈런을 20개 이상 친 데스파이네도 제치고.데스파이네는 2018년에 타율이 2할 3푼대였는데 타율 중시하는 일본야구가 베스트나인을 줄리가...[73] 일본시리즈에선 작년에 4승1패로 박살낸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똑같은 전적으로 박살나면서 주니치의 53년 만의 일본시리즈 V2를 허용했다. 심지어 패배가 결정된 5차전은 합작 노히트 노런까지 당했다.[74]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감독을 맡았고, 해임된 뒤 2013년 시즌까지 LA 다저스에서 돈 매팅리 감독 휘하의 코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벤치코치(한국으로 치면 수석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16년 10월 SK 와이번스 감독 선임을 위한 면접을 진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결국 진짜로 SK 와이번스의 제6대 감독으로 선임됐다.[75] 그나마 1975년에는 3완봉승을 포함한 개막 6연승을 기록했으나 그 이후 7연패하며 여름에 2군으로 올라갔고 2군(이스턴 리그)에서 최우수 방어율(0.69)을 획득했다.[76] 이 해 마시바의 10할 승률은전후 최초의 10할 승률로, 2013년의 다나카 마사히로 이전까지 양대리그제 시행 이후 유일한 10할 승률이었다. 당연히 NPB 최고기록.[77] 원래 고라쿠엔 구장은 천연잔디를 사용했으나 1976년부터 인조잔디로 바꿔 폐장 때까지 계속 인조잔디를 유지해 왔다. 참고로 이 날 노히트 노런은 고라쿠엔 구장 최후의 노히트 노런이기도 했다.[78] 그 해 시즌에 FA권을 취득했는데, 성적 부진 탓에 본인이 FA선언을 고사했다. 그러나 구단 측에서 "FA선언을 하지 않겠다면 트레이드 요원 대상에 넣겠다"라는 사실상의 전력외통보를 선언하면서 결국 세이부로 트레이드되었다.[79] BECK타나카 유키오의 이름은 이 선수에서 따왔다고 한다.[80] 성인 요는 일본식 음독이고 이름의 다이칸은 본인 이름의 중국어식 발음인 다이강을 일본화한 독음이다. 참고로 프로 입단하고 나서 개명을 했는데 개명하기 전 드래프트에 지명될 당시의 이름은 일본식 중국음독으로 양 촌소(楊 仲壽, 한국어 표기법으로 옮기면 양 종셔우)라고 표기 했었다.[81] 닛폰햄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