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사토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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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
1996 | 2006 |
NPB 일본시리즈 우승감독 | ||||
2022 |
나카지마 사토시 中嶋聡 | Satoshi Nakajima | |
생년월일 | 1969년 3월 27일 ([age(1969-03-27)]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아키타현 기타아키타시 |
학력 | 아키타현립 타카노스 농림고등학교[1]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6년 드래프트 3위 |
소속팀 | 한큐/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1987~1997) 세이부 라이온즈 (1998~200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4~2015) |
지도자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군 배터리코치 (2007~2015, 2018) 오릭스 버팔로즈 2군 감독 (2019~2020)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대행 (2020)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2021~2024) |
프런트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프런트 (2016~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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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야구선수, 前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현역시절 포지션은 포수였으며, 1987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29년동안 오랜 선수생활을 해온 걸로 유명하다.[2]2. 선수 경력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아키타현립 타카노스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드래프트 3위로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했으며, 입단 2년차였던 1988년 10월 23일 한큐의 에이스 투수 야마다 히사시의 은퇴 경기이자 한큐 브레이브스의 이름을 걸고 치르는 마지막 경기(vs 롯데 오리온즈,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개최)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우에다 토시하루의 추천 하에 야마다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한큐 브레이브스 최후의 포수로써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팀명이 오릭스 브레이브스로 바뀐 1989년부터 강한 어깨를 앞세워[3] 기존 레귤러였던 후지타 히로마사를 제치고 주전 포수로 자리잡아 그 해 121시합에 출장하여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다음 해인 1990-91시즌엔 2년 연속으로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했다. 이후엔 타격 부진 등으로 레귤러에서 밀려나 타카다 마코토[4], 미와 타카시와 출장기회를 나눠가며 주전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1995-96시즌에 다시금 주전포수로써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퍼시픽리그 2연패에 공헌하면서 베스트나인을 1차례(1995[5]) 수상하기도 했다.
1997년 시즌 종료 후에 FA를 선언하여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였고,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한때 계약 직전까지 갔었으나 주전이 아닌 3순위급 포수로써의 기용에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는 조건 때문에 결국 입단 교섭이 결렬되어 메이저리그 도전을 단념하고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된다. 세이부에서는 부동의 주전포수 이토 쓰토무와 병행하여 출장했고 주로 마츠자카 다이스케가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에 주전 포수로 나섰으나[6] 계속되는 타격 부진과 세이부 구단의 리빌딩 체제 돌입으로 점차 출장기회가 감소한 끝에 2003년 이시이 요시히토와의 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이적했으나 요코하마에서도 나카무라 타케시와 아이카와 료지에게 밀려 19시합 출장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현금 트레이드로 2004년부터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기게 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이적했다.
이미 선수로써의 기량이 한계에 달한 탓에 닛폰햄에서도 백업에 머물렀지만 베테랑 포수로써의 경험을 살려 주전 포수인 타카하시 신지, 츠루오카 신야의 백업 겸 마무리 투수인 마이클 나카무라의 전담 포수로써 팀내 입지를 어느 정도 확보했고 2006년 시즌엔 닛폰햄의 25년 만의 퍼시픽리그 우승과 함께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맛보게 된다.
2007년 시즌부터는 1군 배터리코치를 겸직하면서 선수 겸 코치를 맡게 되었고, 이 시기부터 사실상 코치 업무에 전념하면서 1군에 등록된 포수가 부족해질 때마다 간간히 경기에 출장하는 정도로[7] 선수생활을 이어오다 2015년 시즌을 끝으로 29년 간의 선수생활을 끝마치고 은퇴했다. 무려 29년이나 선수로 뛴 덕분에 은퇴 시점에서는 한큐 브레이브스 재적 경력을 보유한 마지막 현역 선수이기도 했다.
나카지마가 이렇게 오래 뛸 수 있었던 이유는 현역 후반기를 보냈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1군 구장인 삿포로 돔과 2군 구장인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단점이 컸다.[8] 1군-2군 간 엔트리 교체가 힘들다보니 이러한 팀 사정상 특히 수급이 가장 힘든 포수 포지션이 부족해지는 것을 대비하여 베테랑 포수인 나카지마를 선수 겸 코치로 등록시켜 1군 경기에서 뛸 포수가 부족할 때마다 나카지마를 긴급히 보충용 포수로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덕분에 무려 29시즌이나 현역 선수로 뛰며 연속 1군 등록 시즌 최고기록, 통산 1군 등록 시즌 최고기록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3.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5년 10월 1일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홈 최종전에서 9회 대수비로 출장한 게 그의 고별 경기가 되었고, 시즌 후 선수로써 완전히 은퇴함과 동시에 코치직에서도 물러나 닛폰햄 구단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 닛폰햄의 1군 배터리 코치로 복귀했으나 1년 만에 사임했다.3.2. 오릭스 버팔로즈
2019년 시즌부터 오릭스 버팔로즈의 2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블루웨이브에서 버팔로즈로 팀명이 바뀐 친정팀에 22년만에 복귀했다. 2020년 시즌 도중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퇴하자 감독대행으로 잔여 시즌을 지휘했고, 잔여시즌에서 29승 35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추락한 팀을 잘 추스른 공적을 인정받아 2021년 시즌부터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했다.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한 첫해인 2021년엔 늘 그렇듯 하위권으로 처지며 좋지 못한 출발을 보였지만, 교류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상승세를 타며 팀을 예상 밖의 퍼시픽리그 선두로 이끌면서 주목받았다. 후반기에 다소 주춤하면서 매직넘버를 치바 롯데 마린즈에 넘기는 등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끝내 시즌 막판에 롯데의 자멸로 자신이 주전 포수를 맡았던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의 1996년 우승 이래 25년 만의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길었던 암흑기를 끊어냈다.
이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롯데를 상대로 압도적인 투수력을 바탕으로 완승을 거두며 일본시리즈에 진출했고 1995년 일본시리즈에서 대결했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만나 당시의 패배를 갚을 기회를 잡게 되었으나 아쉽게도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패배하면서 25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는 이뤄내지 못했다.
2022년엔 전년도에 비해 하락한 타선 지표와 코로나19 전력이탈 등으로 시즌 중순까지 하위권에 머무르는 등 힘든 싸움을 이어갔으나 전반기 막판부터 연승을 거듭하면서 단박에 소프트뱅크, 라쿠텐, 세이부와 함께 우승후보로 등극했다. 이후 8월부터 라쿠텐, 세이부가 하락세를 탄 것을 틈타 시즌 막판까지 꾸준히 승수를 올리며 유력한 우승후보인 소프트뱅크보다 잔여시합이 모자라는 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소뱅을 배후에서 추격해 왔고, 9월 24일엔 오릭스 버팔로즈 체제 이래 처음으로 2년 연속 A클래스 및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9]지으며 다음날 재계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일 라쿠텐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5-2로 역전승을 거두고 같은 날 소프트뱅크가 치바 롯데에게 3-5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구단 역사상 26년만의 퍼시픽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10]
뒤이어 2년 연속 동일 매치가 된 야쿠르트와의 일본시리즈에선 초반 3차전까지 강타선을 앞세운 야쿠르트에게 압도당했으나, 이후 출중한 투수진을 앞세워 팀을 추스렀고 때마침 야쿠르트의 타선 악화와 수비진의 자멸까지 겹치면서 4차전 이후 4연승을 거두며 4승 1무 2패로[11] 작년의 스코어를 그대로 되돌려주면서 우승 실패를 설욕함과 동시에 26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해냈다! 이로써 선수, 감독으로써 오릭스의 우승을 모두 경험하게 되었다.[12]
2023년에도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3파전 상황에서 실속해버린 소프트뱅크, 치바 롯데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승수를 쌓아나갔고, 결국 9월 20일 홈 경기에서 리그 3연패를 확정지었다. 한큐-오릭스 프랜차이즈로써 3연패를 달성한 감독은 니시모토 유키오, 우에다 토시하루에 이은 3번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여전한 투수력을 자랑하며 롯데를 제압하고 3년 연속 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지만, 우다가와 유키의 혹사나 공수 양면에서 발목을 잡은 아다치 료이치 등의 선수 기용 미스가 치명타로 작용해 한신 타이거스에게 3승 4패로 패하여 38년 만의 시리즈 제패를 허용하며 일본시리즈 2연패는 무산되었다.
2024년에는 지난 3년과는 정반대로 주축 선발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야마사키 사치야의 이적, 시즌 초반 핵심 주축 타자들의 집단 부진과 이로 인한 투수 과부하, 작년보다 더 많아진 선수 기용 미스 등으로 인해 하위권에 머물렀고 끝내 5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4년 연속 우승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런데 최종전 종료 직후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할 것을 발표하며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는데, 직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본인 체제 아래에서 몇몇 선수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본인 및 코치들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등 팀 분위기를 저해시키는 행동을 일삼았고 그것이 선수들 개인과 팀 성적의 저하로 이어지자 나카지마 본인이 나태하게 변해버린 선수단의 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후쿠라 준이치 GM의 강한 만류에도 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사임 이유에 오릭스 팬들은 내내 암흑기에 머물다 이제야 강팀으로 도약하게 된 것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카지마가 자진 사임을 결심할 정도로 나태하게 굴었냐며 선수단의 태도를 질타하면서도 팀을 암흑기에서 구해내고 강팀으로 만들어준 감독의 사임에 매우 아쉬워했다.
감독 사임 후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삿포로 TV의 객원 해설자를 맡아 좋은 해설로 호평을 받았다.
4. 여담
- 별명은 상어(サメ)로, 상어와 눈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 오릭스와 한신에서 뛰었던, 느린 구속을 엄청난 제구력과 고각도 커브로 커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좌완투수 호시노 노부유키의 투구를 맨손으로 받았다는 포수가 바로 나카지마 사토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카지마는 느린 구속을 가진 호시노와는 정반대로 올스타전 부대행사인 스피드왕 콘테스트에서 마운드에 올라 최고구속 146km/h를 기록할 정도로 강한 어깨를 자랑했었다.
- 상술했듯 야마다 히사시의 은퇴 경기이자 한큐 브레이브스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에다 토시하루 감독의 천거로 야마다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다. 이후 나카지마가 하위권에 머물던 팀을 2021년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어내자 야마다는 그의 지도력을 칭찬하면서 나카지마가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벤치에서 어떤 퍼포먼스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오릭스를 하나로 잘 뭉치고 활기찬 분위기를 가진 팀으로 바꿨다고 평했다.
- 2008~2011년에 닛폰햄 감독을 역임한 나시다 마사타카는 재임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나카지마의 선수를 보는 안목을 높게 평가했다. 당시 주전 포수였던 츠루오카 신야가 부진하자 당시 백업포수였던 오노 쇼타를 천거하여 이후의 주전 포수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 일화를 언급하며 나카지마가 오릭스 감독으로 부임 후 신예 선수들의 발굴에 노력한 점이 팀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 인터뷰 때 선수를 따뜻하게 격려하는 한편 팀 상황에 대해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등 신중한 언행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대신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플레이에는 강하게 쓴소리를 한다고 한다. #
- 스프링캠프에서 베테랑들에게는 더 고강도 연습메뉴를 소화하도록 요구하는 편인데, 세트수를 걸고 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모리 토모야에게 은근슬쩍 가위를 내라고 압력을 넣은 적이 있다(...)
[1] 2011년에 아키타현립 아키타호쿠요 고등학교에 병합되어 2013년 폐교했다.[2] 다만 2007년부터는 선수와 1군 배터리코치를 겸직하는 사실상 플레잉코치 신분이었다. 이유는 후술.[3]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강한 어깨로 유명했으며, 선수생활 후반기였던 2006년에도 한신 타이거스와의 교류전에서 개최된 스피드건 콘테스트에서 구속 146km/h를 찍었을 정도였다.[4] 동명의 혐한과는 상관 없는 인물로, 나카지마와 같은 해에 요미우리의 드래프트 3위 지명을 받았으나 무라타 신이치 등에게 밀려 1992년 오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나카지마 등과 주전 경쟁을 벌이면서 1996년에 오릭스의 2연패를 이끈 공로로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은퇴 후엔 데뷔팀 요미우리에서 장기간 코치직을 역임했다.[5] 같은 해 사토 요시노리와 배터리를 짜 역대 최초 40대 투수 노히트 노런(8월 26일 vs 킨테츠 버팔로즈, 후지이데라 구장 개최)을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사토 요시노리의 고향팀인 니혼햄에서 재회해 다르빗슈의 포텐만개에 함께 기여한적 있다. 그리고 10년만에 또다시 우승반지를 득템했다.[6] 마츠자카가 갓 입단한 직후의 시범경기에서 이토와 배터리를 짠 경기에선 호흡이 잘 맞지 않았던 반면 나카지마와 배터리를 짠 경기에선 결과가 잘 나오자 세이부 수뇌진들이 "아직 신인인 마츠자카에게 있어선, 자신의 리드대로의 투구를 요구하는 이토보다는 투수의 상태에 따라 리드를 조정하는 나카지마가 더 좋은 결과를 낼 것 같다"라고 결론을 내리며 마츠자카와 나카지마가 함께 배터리를 짜게 했다고 한다.[7] 플레잉 코치를 역임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110경기에만 출장했는데, 그마저도 절반이 넘는 60경기를 코치 첫 해인 2007년에 출장했고 그 이후론 나머지 8년을 다 합쳐서 50경기만 뛰었다. 이마저도 거의 대수비로만 나왔다 보니 타석에는 9년 동안 26번밖에 나오지 않았고 2011~2012년, 2014~2015년에는 아예 타석에 들어서지 않았다. 참고로 프로 마지막 안타는 2009년에 기록.[8] 그래서 닛폰햄의 1-2군 선수 교체는 수도권 원정 때 주로 진행된다.[9] 구단 역사상 2년 이상의 연속 A클래스는 오릭스 브레이브스/블루웨이브 시대였던 1989~1999년 이래 무려 23년 만이다. 21세기 이후로는 2021년 우승 이전까지 단 2차례(2008, 2014)만 A클래스에 들어갔고 이마저도 단년에 그쳤으나 이번 2021-22시즌에 연속 A클래스를 기록하게 되었다.[10] 이날 경기로 양팀 모두 76승 65패 2무, 승률 .538로 동률이 되었으나 오릭스가 소뱅에게 상대전적 우세를 기록했기 때문에(15승 10패) 동률 계산에서 우선적으로 상대전적 우세팀을 상위팀으로 간주한다는 퍼시픽리그 규정에 따라 오릭스의 우승이 확정되었다.[11] 2차전이 연장 12회 무승부[12] 현지에서도 마무리 제이콥 웨그스펙이 우승을 확정짓는 삼진을 잡자 배터리가 아닌 나카지마 감독을 비추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