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6 22:20:54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파일:external/kobe-kobecco.com/20130603602.jpg
구장명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阪急西宮スタジアム)
[1]
홈구단 한큐 베어스 - 한큐/오릭스 브레이브스(1937년~1990년)[2]
다이요 로빈스 (1948년~1949년)
소재지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타카마츠
개장일 1937년 5월 1일
폐장일 2002년 12월 31일[3]
내야 그라운드 천연잔디(개장~1940년대)
흑토(1950년대~1989년)
인조잔디(1990년~폐장)
외야 그라운드 천연잔디(개장~1977년)
인조잔디(1978년~폐장)
크기 좌우 101m,[4] 중견 118.9m[5]
수용관객수 35000~55000명[6]

1. 소개

과거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던,[7] 한큐 전철 소유의 다목적 스타디움. 건립 당시부터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구장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큐 베어스 - 한큐 브레이브스 - 오릭스 브레이브스 등의 일본프로야구 팀들의 홈구장으로 쓰였으며, 이외에도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많은 경기를 감당하기 힘들시 이곳에서 분산 개최하기도 하였다. 한큐-오릭스 구단이 고베고베 종합운동공원 야구장으로 연고지 이전을 한 후엔 경륜장 등으로 사용되다가 결국 2002년을 끝으로 폐장.

이후 2004~2005년 야구장은 철거되었고, 현재는 한큐 전철이 경영하는 백화점한큐 니시노미야 가든즈가 들어서 있다. 여기에는 과거 니시노미야 구장이 있었다는 표식이 있다.

2. 여담

  •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 호리우치 츠네오는 고후 상고 재학 시절, 고시엔 대회 본선에 진출했으나 팀의 경기가 이 구장에서 편성되는 바람에 한신 고시엔 구장을 밟아보지는 못했다.
  • NPB 진기명기 장면 모음에서 볼 수 있는 한큐의 야마모리 마사후미의 호수비 장면은 이 구장에서 연출됐다.#
  • 1982년 영국 록밴드 의 10집 Hot Space홍보 투어 중에 공연한 곳이다. 이때당시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가창력이 전성기를 찍던 때라 일본에서만 공연하면 거의 항상 말아먹었었는데 이 공연에서는 꽤 좋은 가창력을 보여주었다.(그래도 81년 남미 투어나 86년 매직 투어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 1972년 9월 26일, 난카이 호크스와의 홈경기에서 입단 4년차이자 24세였던 후쿠모토 유타카가 메이저리그 1시즌 최다 도루(104)기록을 경신하는 105번째 도루를 기록했다. 난카이 포수 노무라 카츠야는 도루를 막아보고자 무려 6번이나 견제를 반복했지만 손쉽게 2루 도루에 성공했다.[8] 106개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으로부터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으니 휴식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은 8경기에 출장하지 않았다. 한신 고시엔 구장과 같은 니시노미야 시내에 있어[9] 관중 동원에서 밀렸으나 이 날 만큼은 18,000여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이 날 한큐는 2년 연속, 통산 5회째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 한큐 브레이브스는 센트럴리그의 최강자였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일본시리즈 9연패를 하던 시절에 무려 5차례나 대결해 전부 패배하며(...) 홈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다가 1975년 우에다 토시하루 감독의 지도하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4승 2무로 격파하고 3만여명의 관중 앞에서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해와 그 다음해에도 모두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쓰러뜨리고 일본시리즈 3연패를 차지했으나 하필 원정지인 고라쿠엔 구장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엔 1978년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게, 1984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패배하며 한큐가 이 구장에서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건 1975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에나츠 유타카메이저리그에도 유례가 없던 9연속 탈삼진을 이 구장에서 1971년 7월 17일(올스타전 1차전)에 기록했다. 밤새 마작을 치고 한숨도 자지 않고 등판해 세운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어 던진 투수들도 모두 무안타로 막는데 안간힘을 써서 결국 릴레이 노히트 노런 게임을 달성했다.
  • 다카라즈카 극단과 모기업이 같고 인접해있어서 한큐 야구단 선수과 극단 단원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니시노미야키타구치역 인근에 있다.

[1] 또다른 명칭은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阪急西宮球場)으로, 개장 당시부터 1991년 3월 31일까지 병용해서 사용했다.[2] 정식으로 본거지가 된 건 연고지 개념이 확립된 1952년부터.[3] 철거는 2004~2005년[4] 1978년 럭키존 설치 전까진 91.4m[5] 개설 당시엔 120m였단 카더라도 있다.[6] 이건 시기마다 다른데 개설 당시엔 55000명이었다가 후에 35000명(1978년 외야 그라운드를 인조잔디로 바꿨을 당시 완성 기념으로 구단에서 발급한 팜플렛에 적혀있던 수치)으로 축소되었고 이후 증설이 되었는지 폐장 때까지 40000명(경영 말년 구장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밝힌 수치)을 수용 가능한 구장으로 남아있었다.[7] 니시노미야키타구치역 앞에 위치하여 있었다. 타카라즈카 가극단처럼 이 역시 한큐가 자신의 철도 노선을 이용하도록 유도한 것이어서 이 위치에 지어지게 된 것이다.[8] 한큐와 대결하는 팀들은 후쿠모토의 도루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고심했는데 후쿠모토 유타카 문서를 참조하자.[9] 두 구장 간의 거리는 3km 정도로 서로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