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4 01:26:2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tablebordercolor=#3FB1E5><tablealign=cente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76px-NPB_logo.svg.png 파일:p_main_logo.gif
NPB パ・リーグ -2 {{{#D3D3D3 / NPB 퍼시픽리그 }}}
}}}
파일:Fukuoka_Softbank_Hawks_Round_Emblem.png 파일:Seibu_Lions.png 파일:Rakuten_mascotlogo.png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파일:Orixlogo.png 파일:Nipponham_Fighters_Logo.png 파일:Chiba_Lotte_Marines_Logo.png
오릭스 버팔로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치바 롯데 마린즈
파일:c_main_logo.gif 센트럴 리그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
파일:Rakuten_mascotlogo.png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 Eagles
[ruby(東北, ruby=とうほく)] [ruby(楽天, ruby=らくてん)] 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구단 법인명 ㈜라쿠텐 야구단
(株式会社楽天野球団)
창단 2004년 10월 29일
연고지 미야기센다이
구단 연고지 변천 미야기 현 (2005~)
구단명 변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
홈 구장 미야기 구장 (2005~)
홋토모토 필드 고베 (2011)[1]
2군 구장 리후시중앙공원야구장
모기업 라쿠텐
GM 이시이 가즈히사
감독 히라이시 요스케 (平石洋介)
킷 스폰서 마제스틱
마스코트 파일:Rakuten_GoldenEagles_Mascot.png
클러치(右) & 클러치나(左)
일본시리즈 우승
(1회)
2013
퍼시픽 리그 우승
(1회)
2013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13
역대
한국인 선수
김병현 (2011)
김무영 (2016)
공식 홈페이지
라쿠텐 산하 스포츠단
비셀 고베
(축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야구)
201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12-요미우리 자이언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 개요2. 창단 과정3. 역사
3.1. 2005 시즌3.2. 2006 ~ 2009 시즌 3.3. 2010 ~ 2012 시즌3.4. 2013 시즌3.5. 2014 시즌3.6. 2015 시즌3.7. 2016 시즌3.8. 2017 시즌3.9. 2018 시즌3.10. 2019 시즌
4. 유니폼5.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6. 홈구장7. 그 외8. 주요 선수들
8.1. 현역
8.1.1. 투수8.1.2. 포수8.1.3. 내야수8.1.4. 외야수
8.2. OB
8.2.1. 투수8.2.2. 포수8.2.3. 내야수8.2.4. 외야수
8.3. 구단출신 메이저리거8.4. 역대감독
9. 역대 성적

1. 개요

파일:external/www.japantimes.co.jp/w3-jason-g-20131104-e1383490389609.jpg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미야기센다이 시. 홈 구장은 라쿠텐 kobo 스타디움(미야기 구장)이다.

2004년에 있던 일본프로야구 재편 문제의 해결책으로 50년 만에 새로 창단된 구단으로, 2005년부터 퍼시픽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즉 현재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가장 나중에 생긴 구단.

줄인 명칭이 좀 따로 노는 편인데, 장내 아나운서 쪽은 라쿠텐 이글스를 쓰지만, 언론이나 중계에서는 도호쿠 라쿠텐을 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아직 지역명 부착이 활성화되지 않은 관계로 전자에 가깝다.

한자 표기가 楽天(일본 신자체), 즉 樂天(일본 구자체, 중화권정체자)/乐天(간체자)[2]인 탓에 이 단어를 중국어 명칭으로 사용하는 롯데와 혼란이 있다. 중화권에서 보기엔 롯데가 프로야구 팀을 세 개(NPB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치바 롯데 마린즈, KBO 리그롯데 자이언츠)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딱 좋다. 그래서 라쿠텐이 이 구단을 인수한 이후 치바 롯데는 '롯데' 부분의 중국어 표기를 羅德/罗德[3]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화권에서 치바 롯데는 별개 모기업 밑에 있는 구단이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롯데그룹 산하의 형제 구단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게 되었다(...).[4]

2. 창단 과정

리그 편입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다. 한창 일본프로야구 재편 문제로 시끄러웠던 2004년에 몇몇 오너들 주도로 1리그 10팀제로 바꾸기 위해서 파산 직전인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 현 오릭스 버팔로즈의 전신인 오릭스 블루웨이브 간의 합병을 인정하게 되자 "그럼 5개 구단으로 퍼시픽리그를 운용할 거냐?" → "(나머지 구단도 운영이 어렵다고 징징거리니) 결국 또 한 구단[5]을 줄여서 절름발이 운영을 없애겠네?" → "그런데 리그에 팀이 4개면 대만 야구만 봐도 알지만 매번 붙는 애들하고만 붙어서 재미 없잖아." → "결국 리그 합치겠네" 라는 전망과 센트럴리그 측(특히 교진)의 자연스런 압박이 더해졌다. 그리고 파리그는 이날의 설움을 교류전에 담아 매년 세리그를 처절히 꾸겨버리고 있다

물론 난데없이 리그 수가 반토막나고 직장이 두 개 줄어들게 되는 꼴이 되버리니 일본프로야구 선수회와 팬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후루타 아츠야 선수회장의 주도 하에 사상 전무후무한 선수회의 일명 "공백의 2일" 파업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일본의 대표적 IT업체이던 라이브도어가 "그럼 우리가 그 빈자리 메우지. 대신 킨테츠 본거지였던 오사카에는 한신이 있어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될테니까 그동안 야구 팀이 없었던 미야기센다이에서 창단할게."라면서 센다이 시민들에게 신생팀 창단 떡밥을 던지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그동안 일본프로야구는 그림의 떡으로 생각했다가[6] 생각지도 않게 우리 팀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생긴 센다이 시민들이 "모기업이 듣보잡이든 뭐든 좋으니까 우리 고장에 팀이 생긴다면야..."라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여기에 직장이 하나 줄어드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던 선수협회까지 가세. 급기야는 센다이를 연고로 하는 신구단 창단 붐은 사회현상으로까지 확장되어 결국은 기존 11개 구단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알다시피 단일리그 구성의 주체가 되고 싶어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이때 흑역사인 호리우치 츠네오 시대였다. 결국 신생팀 창단이 결정나고 처음 참여하기로 했던 IT 업체인 라이브도어[7]일본의 대표적 인터넷 쇼핑몰이었던 라쿠텐이 참여해 구단 창설 신청서를 제출, 2개 기업을 최종 심사하여 라쿠텐이 선정되고 이듬해인 2005년부터 퍼시픽 리그의 참가를 승인하면서 공식적으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발족하게 된다.

보통 신규 참가 구단이 그렇듯 라쿠텐 역시 초반에는 완전히 암담한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도 그럴게 처음에 라쿠텐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를 직접 흡수한게 아니라, 이미 오릭스와 킨테츠가 합병된 뒤에 생긴 신생 구단이기 때문에 킨테츠의 선수들을 그대로 라쿠텐에 존속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수 문제로 라쿠텐 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해체구단 선수 드래프트를 할수 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오릭스가 주요 선수는 싹 쓸어가고 남은 이미 한물간 노장선수나 아예 1군 경험도 없는 햇병아리들만으로 팀이 짜여지게 되는 안습한 상황에 처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선수의 의지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라고 쓰고 오릭스 수뇌부에 반기를 든 이소베 코이치 등 눈엣가시 선수회 인원들 라쿠텐으로 귀양보내기(…)까지 오릭스 소속을 원하지 않는 선수는 오릭스 우선 지명에서 뺐지만 그렇다고 라쿠텐 쪽으로 주요선수들이 전부 다 흘러들어가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킨테츠의 간판이었던 나카무라 노리히로오오무라 나오유키는 FA 권리를 행사해서 각각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튀었다. 그걸 빼면 애초에 전시즌 꼴찌-5위 팀들이었던 오릭스-킨테츠의, 게다가 2선급 멤버들로는 뭐가 될 게 아니었다.

참고로 이 때 선수 분배 드래프트 방식이 예술인데, 먼저 합병주체구단인 오릭스가 구 오릭스, 킨테츠 선수 전체에서 25명을 보호선수로 우선지정한다. 이 프로텍트 지정에서 빠진 선수를 라쿠텐이 20명을 지명하는데, 이 첫 20명에는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 외국인 선수, 입단 2년차 선수들의 지정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라쿠텐의 20명 지명이 끝나면 오릭스가 20명 지명, 끝나면 라쿠텐이 20명 지명, 지명이 다 끝나고 남은 선수는 오릭스 소속이 되는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라쿠텐은 작년 시즌에 5위, 최하위를 기록한 팀의 2군급 선수밖에 보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암만 두구단을 합쳤다고 해도 시작할떄부터 25명 지정하고 시작하는데 남는게 있을리가...

참고로 이때 선수분배 드래프트로 입단한 선수 40명중, 2017년 기준으로 구계에 남은 선수는 없다. 분배 드래프트로 입단한 최후의 선수는 마키다 아키히사로, 2001년에 킨테츠에 입단하여 05년 분배드래프트에서 라쿠텐으로 배속된 후. 라쿠텐에서만 12년을 더 뛰고 1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분배드래프트가 아닌 창단시에 있던 멤버로 확장해도 미국으로 갔다가 2019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한 이와쿠마 히사시가 유일하게 05년 창단시의 암흑기를 경험한 인물이다. 킨테츠 경험자 최후의 3명중 나머지 두명인 콘도 카즈키와 사카구치 토모타카는 해체시에 오릭스가 픽했으므로 라쿠텐에는 소속 된 적이 없다.

3. 역사

3.1. 2005 시즌



그렇게 이와쿠마나 이소베 정도를 빼면 오릭스-긴테쓰의 2선급 멤버들을 중심으로, 나머지 10개 구단의 잉여 전력들을 무상 트레이드나 방출선수 입단 등의 형태로 데려오면서 원년 선수단이 꾸려졌다. 여기에 구단주가 사비 털어서라도 조낸 비싼 현역 메이저리거를 영입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프론트의 쌩까기(…)가 겹쳐 외국인 선수들도 대부분 일본프로야구에서 한 번 퇴출된 전력이 있던 선수들이었을 정도로 팀 전력은 매우 안습한 상태.[8] 그래도 치바 롯데 마린즈와 맞붙은 창단 첫 경기를 순전히 이와쿠마의 완투로 3-1로 승리하는 쾌거를 기록했으나...

바로 다음날 0-26으로 최다점차 완봉패 일본 기록을 갈아치우며[9] 안습과 고난의 첫해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2009년, 2012년현진 이글스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참상. 그나마 승리를 기대할 만한 날이 이와쿠마의 등판일이었고 이와쿠마가 등판하는 날도 승리할 확률이 50%를 밑돌았다(...). 이 해 이와쿠마 히사시의 성적은 182.1이닝 113실점 101자책 9승 15패 ERA 4.99......

일찌감치 4월부터 타 팀들과 큰 폭의 경기차로 라쿠텐은 파리그 최하위 자리에 그대로 고정되었고, 5월에도 사정이 나아질 건 없었다. 교류전 36경기서도 11승 25패로 압도적 최하위. 그나마 주니치 드래곤즈에 3연전 전승을 거둬 체면치레는 했다. 7월에는 그래도 10승 9패 1무로 월간 성적 5할을 돌파했지만 8월은 참 처참했다. 3승 21패 승률 0.125멘도사 라인보다 못한 승률을 찍으며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결국 파리그 5개팀 상대로 전부 상대전적 열세 확정 및 세리그에서도 3연전 싹쓸이라도 했던 주니치[10]를 제외하곤 죄다 상대 전적이 좋지 못했다.

이렇게 2005년 시즌이 끝나고 보니 팀 성적은 무려 38승 1무 97패(……).[11] 당시 5위였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게임차가 무려 25게임, 정규시즌 1위였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게임차는 51.5게임차. 엄마야.(…) 세간에서는 100패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평가.

문제는 나름 일본 대표 쇼핑몰이자 꽤 돈이 많은 라쿠텐이라는 물주를 등에 업었음에도 외국인 보강도 싸게 하는데다 FA 획득에는 손 뗀 짠돌이 프런트. 덕분에 구단 운영은 퍼리그 5개 구단 다 적자났는데 혼자서 흑자를 봤다고 한다.(…) 그러고는 창단 감독인 타오 야스시는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시즌종료 1주일 전에 해임했다. 태평양 건너 플로리다에 있는 모팀 구단주 못지않은 프런트의 이 막장행각 때문에 첫 해에 라쿠텐 팬이기를 그만둔 토호쿠 지방 사람들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타오로는 안 된다는 라쿠텐 프런트의 판단은 나름 정확했다. 노무라 카츠야가 부임하고 나서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고 낚시왕다나카 마사히로라는 또 한 명의 에이스 후보를 데려오는 행운이 겹치는 덕분에 오히려 라쿠텐은 센다이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3.2. 2006 ~ 2009 시즌

이후 2006년 시즌 독설가로 유명한 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영입해서 제대로 된 팀 빌딩을 시작하며 그래도 프로팀답게 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만들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 성적은 마찬가지로 6위였지만 47승을 거둬 전년보다 승수를 9개 더 챙겼고 5위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차도 4.5게임차로 근소해졌다.얘넨 비교적 좋은 선수들 챙겨가고도 왜 이러냐 여담으로 이 해 미야기 구장 홈 개막 시리즈 2차전인 3월 29일 경기는 강설 중단 2번마운드에서 벽돌이 발굴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중단을 겪었고, 추운 날씨와 잦은 중단에 따른 집중력 저하로 라쿠텐 선수들이 6실책 2폭투를 기록한 대첩급 경기로 남았다.경기 영상 1, 경기 영상 2 [12]

이후 2007년에 비약적인 성장으로 4위, 2008년에는 아쉽게 5위를 기록했지만 08년도 퍼시픽 리그가 전체적으로 혼전 양상이였고 순위로는 5위였지만 1위와의 승차가 불과 11.5게임차 밖에 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또 21승 4패 ERA 1.87라는 부활투를 선보인 에이스 이와쿠마 히사시, 신인 타나카 마사히로가 크게 성장했고 경로당이었던 타선에도 텟페이와타나베 나오토 등의 젊은 피가 수혈되는 등 4년만에 동네북+승률자판기 이미지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2009년 시즌에는 그동안의 팀 빌딩의 성과가 전체적으로 잘 터져나와 개막 첫 달을 처음으로 리그 1위로 마감하면서 2009년 시즌 돌풍을 예고. 시즌 중반에는 2위와 4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분전한 결과, 리그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을 확정 지음에 따라서 창단 첫 A클래스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이와쿠마 히사시, 타나카 마사히로의 연속 완투승으로 가뿐히 발라버리고, 정규시즌 1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클라이맥스 시리즈 스테이지2에서 격돌. 핸디캡 1패 포함 1승 4패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포스트시즌 진출 시,노무라 카츠야 감독과 재계약을 하겠다던 얘기가 구단 내외부에서 나왔는데 프런트쪽에서 계약 연장을 안하기로 결정해. 팬들의 반발을 샀다. 노무라 감독은 이 소리를 듣고 "재계약을 안하는건 상관 없는데 왜 포스트시즌 시작할때 발표해서 사기를 떨어뜨리냐, 이 막장 프런트야!" 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구단과 사실상 등을 돌렸다. 그 외에도 "난 라쿠텐 이글스는 좋지만 라쿠텐 구단은 싫다." 라든가(…), 구단에서 회유책으로 명예감독 + 영구 결번을 제시하자 "라쿠텐따위에 무슨 명예를 느끼라고?", "내가 난카이에서 결번을 받으면 받았지(...)[13] 라쿠텐에서 이걸 왜 받냐?"라는 화려한 독설로 구단의 회유책을 보기좋게 걷어 차버렸다. 오오 노무라 감독. 그리고 라쿠텐은 이전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막장 프런트 인증.

노무라 카츠야의 생각 : 라쿠텐 이 놈들, 난카이도 이렇진 않았다

3.3. 2010 ~ 2012 시즌

2010년에는 일단 땜빵으로 전 히로시마 감독이었던 마티 브라운이 팀을 맡고, 보기좋게 6위로 추락했다. 덤으로 베이스 뽑기...는? 2011년 시즌부터는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아아…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2011년을 맞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을 영입한 직후부터, 과거와는 달리 대규모 현질을 하고 있다. 우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복귀하는 이와무라 아키노리, 마츠이 카즈오를 영입하고 그외에도 메이저에서 복귀하는 선수들을 다 찔러보는 중. 또 김병현, 이승엽도 영입대상으로 고려했고 두산 베어스에 뛰었던 켈빈 히메네스를 영입하는 등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결국 김병현을 영입했고 마무리 투수로 기용할 듯. 결국 마쓰이 빼고 다 망했지만

그러나…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이 라쿠텐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당연히 지진으로 도호쿠지방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거기다 라쿠텐의 연고지가 하필이면 피해가 제일 심한 미야기 현인 데다가 홈구장마저 파손된 상황이다. 다행히 2개월 정도 보수공사를 하면 홈구장은 문제가 없다지만 정규시즌 개막을 10여일 앞두고 이런 사태가 벌어져서 선수들의 멘탈은 최악으로 떨어진데다 홈구장을 보수할 때까지 경기를 어떻게 할지도 문제. 원정경기로만 치룬다면 성적하락은 불보듯 뻔하다. 게다가 홈구장을 복구한다 해도 수만 명이 사망, 실종된 도호쿠의 사정상 서포터즈와 팬들의 힘도 많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라쿠텐으로선 의욕적으로 시작하려던 시즌에 악재를 제대로 만난셈.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결국 퍼시픽 리그는 4월 12일로 개막이 연기되었고 라쿠텐은 한신의 양해를 얻어 고베홋토모토 필드 고베를 임시 홈구장으로 삼기로 했다. 이 구장은 오릭스오사카 교세라돔으로 옮기기 전, 그러니까 오릭스긴테츠의 합병 이전에 사용했던 구장으로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오릭스가 우승 전력이 아니라는 평을 뒤집고 리그 우승을 일군 구장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일 등으로 인해 결국 2011년 성적은 5위로 마감했다. 6위는 전년도에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던 치바 롯데 마린즈.

2012년도에도 5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조선의 4번 타자혼자서 야구하는 팀이 바닥을 깔고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해서 팀이 손발이 맞아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전반기에 1위를 달리던 치바 롯데 마린즈DTD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면서 승수를 쌓아올려서 한 때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까지 사정권에 들어올 정도였으나 결국 막판에 소프트뱅크의 UTU에 밀려서 4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3위였던 소프트뱅크와는 불과 1게임차로 2009년 이후로 3년만에 팀 역사상 두번째 시즌 5할 승률에 성공했다.

3.4. 2013 시즌

파일:attachment/rakuten_2013_champion.jpg
2013년은 본격적으로 호시노 빨이 결실을 맺는지, 투수진은 타나카를 위시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타선도 장거리포 부재에 시달리던 과거와는 달리 앤드류 존스케이시 맥기라는 메이저 출신 용병들이 중심을 잡고, 아카미나이 긴지 같은 젊은 타자들이 부상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구단 역사를 쓰게 되는데 창단 이래 처음으로 7월 이후 단독 선두를 밟았다. 교류전때 15승 9패로 2위의 호성적을 거둔 뒤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비슷한 팀컬러인 한국 프로야구넥센 히어로즈가 2013년에 약진하고 있어서 양국 두 신생팀이 이번 해 들어 드디어 빛을 보는 듯. 9월 26일 퍼시픽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과거 집주인[14] 치바 롯데 마린즈와 맞붙게 되었다. 10월 17일 1차전에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10월 18일 2차전에서는 연장 10회까지 간 끝에 2:4로 패하였다. 10월 19일 3차전에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10월 21일 4차전에서는 8:5로 승리하였다. 그리하여 퍼시픽리그 1위 팀에게 주어지는 1승을 포함하여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였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맞붙게 되었다.

10월 26일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는 0:2로 패하였다. 이어 10월 27일 2차전에서는 2:1로 승리하였다. 10월 29일 3차전에서는 5:1로 승리했지만 10월 30일 4차전에서는 5:6으로 패하였다. 10월 31일 5차전에서는 4:2로 승리하면서 1승만 거두면 사상 첫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상황이었으나, 다나카를 선발로 내세운 11월 2일의 6차전에서 2:4로 패[15]하며 3승 3패로 같아지면서 7차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11월 3일 7차전, 홈에서 3:0으로 승리하여 창단 이후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호시노 센이치의 감격적인 콩라인 탈출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7차전의 마무리 투수는 전날 160구를 넘게 던져 완투패를 당하고도 다시 나온 다나카 마사히로. 일본시리즈 MVP는 3차전과 7차전에서 연속으로 호투하며 2승을 기록한 미마 마나부에게 돌아갔다. 사실 진짜 MVP는 미마에게만 2패를 헌납한 스기우치 토시야라는...

하지만 2013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준결승에서 만난 대만의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에게 4대 1로 충격패. 이는 일본 아시아 시리즈 사상 최초로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한 수모이기도 하다. 가을삽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보다 처참하구려

그리고 미일협정을 통해 새로 개정된 포스팅 시스템 때문에 곤혹을 겪게 됐다. 포스팅 시스템이 빅마켓 구단들만을 위한 특권처럼 되었다는 스몰마켓 구단들의 이의에 따라 논쟁 끝에 새로 개정됐는데, 개정 내용을 보면 포스팅비는 최대 2천만 달러로 제한되며, 최고 입찰액을 구단 하나하고만 사실상 독점 협상을 하는 구조에서 최고 입찰액을 제안한 모든 구단과 협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하는 선수에게는 선택 권한이 넓어졌다는 이점이 생기고, 스몰 마켓 팀들도 포스팅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빅마켓 구단들은 독점 협상권을 더 이상 얻기 불가능해졌고, 선수를 포스팅하는 원 소속 구단도 포스팅비를 통해 막대학 이적료를 얻어 차후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다나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팀은 이와쿠마에 이어 두 번째 메이저리거 배출에 성공하지만 다나카를 보내는 공백을 대신해 얻는 비용은 실망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이와쿠마는 포스팅 실패 후 FA로 건너간거라 라쿠텐은 그의 공백만 생기고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나카 포스팅비도 막대하게 챙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라쿠텐은 포스팅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라쿠텐을 제외한 일본 야구팀들이 모두 찬성해버려 포스팅은 결국 개정. 포스팅 비용을 두둑히 챙기지 못해 다나카를 FA 때까지 잡거나 울며 겨자먹기로 포스팅 하거나 둘 중 하나에 놓이게 됐다.

라쿠텐 구단 내부에서는 다나카를 잔류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많아 12월 8일 우선 다나카와 만난 뒤 설득을 하던가, 그래도 그가 어떻게든 진출을 도모하겠다면 지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팬들은 어차피 라쿠텐은 다나카를 잔류시키려 할 것이고, 다나카는 메이저리그로 얼른 진출하기 위해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며 대립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구단주 미키타니 히로시는 공식적으로 다나카를 보낼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이에 나머지 구단들이 포스팅 금액을 보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달래기 일단 공식적인 발표는 17일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두고봐야 할듯.

이후 발표를 미루다 크리스마스날 드디어 대승적으로 다나카의 포스팅을 승인했다. 조건이 있었는데 다나카가 구단에 연봉 일부를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헌데 MLB 사무국 측에서 규정위반이라며 제동을 걸어온 상태. 금전적인 상실감을 덜 받기 위해 다나카로부터 연봉 일부를 기부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라쿠텐으로서는 심히 난감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정확히는 구단이 아닌 센다이에 기부금을 낸다고 말한 것이었지만 규정위반으로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결국 백지화 하기로 했다. 다나카 포스팅 비용으로 구장 및 주위 시설 다 뜯어고칠 생각이었다는데 말 그대로 안습

거기다 포스팅비 2천만 달러조차도 일시불이 아닌 분할 지급(18개월간 1천만+3백 4십만+3백 4십만+3백 2십만 달러)이라서 더 난감해진 상황이다.

오프시즌에는 드래프트에서 고졸 최대어로 꼽히던 좌완투수 마쓰이 유키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셋업맨, 마무리로 활약하던 브라이언 팔켄보그, 한국에도 왔다 간 트래비스 블랙클리, 마이너 계약을 맺은 케이시 맥기히를 대신해 보스턴 레드삭스 등에서 활약한 '볼넷의 신' 케빈 유킬리스등 나름 이름값있는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쯤 되면 더더욱 이 구단에 관한 압박이 심해질지도 모르겠다

3.5. 2014 시즌

라쿠텐 감독을 맡을때부터 허리 통증을 가지고 있었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결국 5월 말을 기점으로 치료를 위해 무기한 휴가를 낸 상태. 팀 역시 다나카 마사히로가 해외로 진출하고, 케빈 유킬리스가 완벽한 먹튀가 되면서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퍼시픽리그 최하위를 기록 중. 설상가상으로 9월 29일 오릭스전부터 10월 7일까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전년도 일본시리즈 1위팀이 퍼시픽리그 꼴찌로 떨어지고 마는 최악의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16] 예전에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나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덕분에(?) 종합 꼴찌는 면했다.

결국 이번 시즌은 리빌딩이 될 것이라 천명되며 일찌감치 시즌은 포기한 상황.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시즌 후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10월 7일 마지막 경기에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은퇴식이 있었다.

3.6. 2015 시즌

2014 시즌만큼이나 2015 시즌도 암울해 보이는 상황. 전반기를 마무리한 7월 20일 현재 36승 3무 43패로 파리그 5위에 랭크되어 있다. 교류전에서 한신 타이거스에 3연전 싹쓸이를 허용하긴 했지만 다른 세리그 팀들을 어찌어찌 잘 잡아내며 버텨서 치바 롯데 마린즈와 완벽히 똑같은 10승 8패의 성적으로 교류전을 마감한 게 위안거리. 그러나 소프트뱅크닛폰햄세리그 학살 대성공 그러나 그 뒤로 패를 무지하게 쌓더니 9월 15일 닛폰햄전에서 패해 기어이 꼴찌로 추락했다.

오쿠보 히로모토 감독이 2년 연속 B클래스의 책임을 지고 8월 28일에 사퇴 의사를 밝혔고, 10월 1일 나시다 마사타카 전 긴테츠[17], 닛폰햄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했다. 시즌 도중 타시로 토미오 타격코치[18] 가 자진 사퇴하는 등 곡절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미키타니 구단주의 현장 개입과 코치진들과의 불화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프리미어 12에서도 에이스 노리모토 다카히로4강전 9회에 등판해 한국 타자들에게 탈탈 털리면서 패배의 주범이 되어 팬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노리모토의 탓이라기보다는 오타니 쇼헤이가 내려간 뒤 상대적으로 공이 느린데다 원래 장기 이닝 관리능력이 우선시되는 전문 선발 투수[19]로 교체를 한 고쿠보 히로키 감독의 실수.

3.7. 2016 시즌

2013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기껏 살려놓은 분위기가 1년도 못가고 2년 연속 최하위로 빛이 바랜 상황에서 팀의 침체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2016시즌을 앞두고 과감하게 전력보강에 나섰다. FA 시장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의 주전 3루수이던 이마에 토시아키를 영입했고, 외국인 선수로는 2013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인 자니 곰스와, 한국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레다메스 리즈도 데려왔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여름 고시엔에서 화제를 뿌린 나이지리아 혼혈 외야수 오코에 루이를 1순위로 지명했다.

무엇보다도 팀을 전혀 통솔하지 못했던 오쿠보 히로모토를 자진 사임의 형식으로 물러나게 하고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나시다 마사타카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이 팀은 묘하게도 창단 때부터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음(다오 야스시) → 유능한 감독이 장기집권(노무라 카츠야) →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음(마티 브라운) → 유능한 감독이 장기집권(호시노 센이치) →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음(오쿠보 히로모토) → … 의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지라 이번에는 유능한 감독이 팀을 다시 중흥기로 이끌 거라면서 기대를 거는 팬들도 꽤 많다. 과연 그렇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시즌 시작 전에 승리수당 몰아주기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라쿠텐뿐만 아니라 요미우리, 소프트뱅크, 세이부 등도 다 해온 일이고 워낙 일본 야구계에 관행처럼 해오던 일인데다, 요미우리 선수들의 도박 파동 때문에 기타 요미우리 선수단의 문제점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불거져나온 문제라 그냥 "앞으로는 안 하겠다" 선에서 마무리 되고 큰 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맞이한 시즌 개막전에서 전년도 우승팀이자 2년 연속 일본시리즈 우승팀이고 2016년에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소프트뱅크를 상대하게 되었다. 경기초반 3점을 내주며 끌려가던 전개에도 불구하고 상대팀 투수 셋츠 타다시를 두들겨서 7대 3의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그 기세를 탔는지 4월 10일까지 퍼시픽리그 선두를 마크했지만...

역시나 빈약한 전력이 금방 뽀록나면서 성적이 하락해 금방 하위권으로 쳐지게 되었다. 게다가 없는 살림에 큰맘 먹고 데려온 이마에 도시아키는 부상으로 드러누우면서 FA 먹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외국인 용병도 4번타자 젤러스 휠러 정도만 밥값을 해주고 레다메스 리즈는 구원으로 몇경기 올렸다가 한국 데뷔 초창기처럼 제구력 실종에 한국 시절보다 구속만 낮아진 모습을 보이면서 실패, 혹시나 하고 선발로 돌려봤지만 그것도 실패하면서 한국 시절의 나빴던 모습만 보여주면서 2군행. 먹튀짓의 정점은 자니 곰스로, 별다른 활약도 없이 삽만 푸다가 구마모토 대지진 후로 "지진이 무섭다"면서 한 달만에 계약을 해지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곰지진, 곰도망[20]

그 결과 5월 하순에 9연패를 당하는 등 한 때 최하위로 쳐졌으나 오릭스 버팔로즈의 삽질로 5위로 다시 상승한 상태. 그래봤자 오릭스 바로 위. 거기다 2016년 시즌은 무시무시한 매놈들 때문에 리그 우승은 거의 땡이다. 내년 시즌이나 기대하자. [21]

한가지 희망적인 게 있다면 드래프트 1순위 지명에서 센다이 출신의 히라사와 타이가를 롯데와의 경합 끝에 놓치고 대신 지명한 오코에 루이가 기존의 일본 프로야구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성장 스피드를 보여주고 있고[22], 3순위로 뽑은 대졸 모기 에이고로가 일찌감치 마쓰이 카즈오의 노쇠화로 빈 유격수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2015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퍼리그의 신인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면서 강력한 신인왕 후보가 되고 있는 등 신인 농사는 굉장히 잘 지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2016년 당장은 아니더라도 팀의 에이스인 노리모토 다카히로나 영건 마쓰이 유키가 큰 부상없이 건재하다면 진짜로 다음해, 다다음해에는 기대를 해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7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누르고 4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라쿠텐이 아직 4할 승률인데 3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5할8푼의 호성적이라서(....) 일본꼴데가 DTD하면 되지 뭐 실제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9월 20일 세이부가 이기는 바람에 5위로 떨어졌고, 이후 나란히 연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표만 봐서 5위이지 잔여경기까지 따지면 라쿠텐까지가 그나마 포스트시즌 가시권이고, 4위인 세이부는 잔여경기가 너무 부족해 9월 21일 기준으로 거의 탈락한 상태다. 그러나 롯데한테 2연패당한 상황이라 매우 어렵다. 결국 9월 24일 닛폰햄과의 경기를 지고 롯데가 오릭스에게 승리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세이부한테 추월당해 최종적으론 5위로 시즌 마감. 일단 신인수급이 잘된 것과 최하위 탈출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다.

시즌 끝나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FA를 선언한 키시 타카유키를 영입했다. 이로써 외로운 에이스 노리모토 다카히로의 부담을 덜어주고 원투펀치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5년 시즌 종료 후부터 시작된 전력보강이 계속 되고 있는 모습.

3.8. 2017 시즌

오릭스와의 개막 3연전을 스윕으로 시작하면서 시즌을 기분좋게 출발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막장성으로 따지면 라쿠텐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 하지는 않은 오릭스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으나, 그 다음 상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홈 개막 3연전에서 2승1패로 위닝시리즈를 거두면서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다. 하루 쉬고 벌어진 롯데와의 2연전도 가볍게 연승을 거두면서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팀 두 팀을 상대로 4승1패를 거두는 선전을 하면서 7승1패로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기간동안 노리모토, 기시, 미마, 가라시마 등 선발 로테이션 투수들이 골고루 승리를 거두면서 내용도 아주 좋다. 타선에서는 타격 포텐셜이 터진 작년 신인왕 유격수 모기 에이고로와, 2번 타자로 홈런 선두를 달리며 파리그에 오랜만에 등장한 강한 2번타자 카를로스 페게로의 활약이 눈에 띈다.

나시다 감독이 전에 소속됐던 팀에서는 부임 2년차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징크스가 있어서 과연 라쿠텐에서도 그 징크스가 재현될 지 매우 흥미로운 시즌 초이다. 만약 징크스가 재현된다면 올해 센다이의 야구팬들은 매우 행복한 1년을 보낼 듯. 4월 18일까지 시즌 전적 11승 2패로 승률 .846의 깡패 모드를 선보이며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4월 1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1패를 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5월에 들어와서도 기세는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5월 11일까지 22승 8패, 승률이 무려 .733이다 이 페이스는 2위를 달리고 있는 소프트뱅크조차도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기록한 페이스이다. 팀 창단 이래 역대 최고의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유일한 걱정은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어김없이 UTU를 시전하며 올라오고 있는 그 2위팀. 마침 13일부터 그 팀과 맞대결 2연전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면 교류전까지 수위를 지킬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하나 걱정되는 건 2연전 첫 경기가 소뱅이 연례행사처럼 치르고 있는 구마모토 지방경기라 센다이에서 구마모토까지 초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점. 구마모토에서의 첫 경기는 패했으나, 다행히도 후쿠오카에서의 2차전을 승리하면서 게임 차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골든 위크를 기점으로 12승 3패의 호조를 보이고 있는 니혼햄과의 2연전을 싹쓸이하면서 더욱 선두 자리를 탄탄하게 다져놓았다. 그리고 계속 상승세를 유지하며 30승 12패 승률 .714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팀 사상 최고의 페이스를 보이면서 교류전에 돌입했다. 교류전에서매년 하던대로 3할대 성적만 내도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팀이 교류전에서 약세였던데다 발 밑에 같은 승수로 쫓아오는 경쟁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교류전의 최강자이고 교류전을 계기로 치고 올라오는 팀이라 자칫하면 승차가 확 좁혀질 수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또하나의 문제는 야외구장을 홈으로 쓰는 구단인 점을 고려하고라도 유난히 경기소화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다른 팀들이 45~49경기 정도 소화한 교류전 시작시점에서 이 팀만 유독 42경기밖에 소화하지 않았다. 이는 날씨가 더워지고 체력이 떨어질 8월달에 예비일로 편성된 날 전부 경기를 치르면서 과밀일정을 소화해야하는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부분.

그리고 교류전에서도 그 상승세는 여전해 2013년 일본시리즈를 제외하고 약세를 보이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연전을 독식했다. 특히 1차전에서는 교진군의 성골 에이스 스가노 토모유키에게 무려 8득점을 올리며 13-5로 압승했고, 3차전은 에이스 노리모토 다카히로가 7게임 연속 10K로 연속경기 두자릿수 탈삼진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3-2로 승리하는 등 매 경기마다 짜임새있는 경기력을 선보여 창단 첫 교류전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이 후 주니치, 요코하마와의 3연전에서 연거푸 1승 2패에 그치며 2위 소프트뱅크와의 격차가 1.5게임 차까지 줄어들고 교류전 우승도 물건너간 듯 싶었지만, 세리그의 강자 히로시마와의 3연전에서 1패 뒤 2연승을 기록, 위닝 시리즈를 달성하며 교류전 우승의 불씨를 다시 살렸다. 가자, 완전우승! 그러나 믿었던 야쿠르트와의 3연전에서 1차전 승리 후 2연패를 당하며 창단 첫 교류전 우승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래도 10승 8패로 흑자를 달성하며 비록 게임차는 3.5에서 1.5로 줄었지만 올해도 교류전을 우승한 소프트뱅크의 위협으로부터 선두 자리를 방어해냈다.

그러나 교류전 이후 소프트뱅크가 4연승으로 맹렬하게 추격해오며 마침내 0.5게임차로 쫓기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6월 30일부터 홈에서 소프트뱅크 3연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칫하면 시즌 초부터 지켜온 선두자리를 뺏길 위기에 처했다. 3연전 첫 경기에서 고시엔 혹사의 아이콘이었던 선발투수 안라쿠 도모히로가 5이닝 3실점으로 버티고, 바로 전 등판에서 완봉승을 거뒀던 상대팀 투수 히가시하마 나오를 1회말부터 윌러가 3점 홈런으로 두들기고 3회말에는 페게로가 솔로 홈런으로 추가 점을 올리는 등 기선을 제압한 끝에 불펜진의 필사적인 계투로 4대3으로 신승. 시즌 중반의 최대의 고비에서 다시 소프트뱅크와의 승차를 1.5로 늘렸다. 안라쿠는 시즌 첫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 ERA 1위를 달리던 선발 미마가 10실점을 하는 등 난타전 끝에 10대9로 패했고, 세번째 경기도 8회초 윌러의 실책이 빌미가 되어 5대4로 역전패하면서 1, 2위팀 간의 맞대결에서 루징 시리즈를 기록했다. 0.5게임차로 앞선 상태에서 상대팀에게 루징시리즈를 기록했으나 앞서 얘기한 소화경기 수의 관계로 승률에서 앞서 2위 소프트뱅크에게 0.5게임 뒤진 상태로 1위자리는 간신히 지켰다(...)

-0.5게임차의 불안불안한 선두자리에서 전반기 마지막 소프트뱅크와의 원정 2연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때문에 자칫하면 1위자리를 뺏긴 상태로 올스타전 휴식기에 돌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첫 경기는 에이스 노리모토가 초반 4실점하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경기 후반 소프트뱅크의 불펜을 근성으로 두들기면서 무패행진을 하던 상대팀 마무리 사파테에게서 긴지가 결승타를 뽑아내며 5대4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전반기 수위를 확정지었다. 여세를 몰아 2번째 경기에서는 FA로 이적해온 투펀치 키시 타카유키의 무실점 역투로 2대0으로 영봉승를 거두며 소프트뱅크와의 승차를 1.5경기로 벌리며 명실상부한 수위인 상태에서 전반기를 마감했다. 라쿠텐이 전반기를 수위로 마감한 것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2013년 이후 팀 사상 2번째 기록이다.

그러나...

8월 들어오면서 우려했던 과밀일정의 부담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8월 중순까지는 -0.5게임차임에도 불구하고 소화게임차의 관계로 승률에서 앞서서 1위를 유지하는 기묘하고도 불안한 포지션을 유지했으나 7월말부터 바짝 기세를 올린 세이부의 파도에 집어삼켜지면서 팽팽하던 끈이 끊어지듯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탔다. 세이부와의 맞대결에서 3연패를 당하면서 -0.5게임차 선두라는 기묘한 상황이 "나쁜 방향으로" 해소가 됐고, 8월 중순 세이부, 소뱅과의 맞대결 6연전을 고스란히 내주면서 6연패. 대세가 거의 판가름이 났다. 순식간에 소뱅과의 거리는 8.5게임차로 벌어졌고 후반기에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세이부가 1.5게임차로 쫓아오는 상황까지 왔다. 투수력, 특히 불펜진은 그럭저럭 버틸만 하나 전력의 두께가 얇고 공격진에서 페게로, 윌러의 두 용병을 제외하면 장타를 기대할 수 있는 국내 타자가 없는 상황에서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부상선수가 나오는 상황이라 힘에 부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과연 2위 자리는 수성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다만 4위에 있는 오릭스와는 16.5게임차라는 까마득한 거리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남은 경기를 거의 전패를 하지 않는 이상에는 4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문제 없어보인다.

8월 29일부터 벌어지는 세이부와의 맞대결 3연전의 첫판을 내주면서 마침내 세이부에게도 0.5게임차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제 4년만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홈 개최도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나시다 감독과 라쿠텐의 선수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위에도 말했지만 그 밑에 있는 팀은 하는 짓 봐서 쫓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거기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8월 31일 세이부에게 패하면서 7연패로 결국 세이부에게 2위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그 다음날 소프트뱅크전에서 패하면서 8연패.그다음 날도 또 패하면서 연패는 9연패로 늘어났다. 이미 시즌 중 8연패 이상의 대형 연패를 당한 7번째 팀이 된 데 이어 소뱅과의 3연전마저 싹쓸이를 당하면서 2017 시즌 10연패 이상을 기록하는 4번째 팀이 됐다. 8월 중순부터 18경기에서 1승 1무 16패를 기록하는 참상을 보이며 이제는 세이부를 쫓아가는 것도 버거워질 지경. 더 답답한 것은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에서 3경기 동안 단 6실점으로 소뱅의 타선을 틀어막고도 세경기 연속 1~2점차 패배로 무릎을 꿇은 것(...). 3경기에서 단 1점 밖에 못 뽑는 빈타로 세 경기를 각각 0:2, 1:3, 0:1로 내주었다. 특히 3연전 마지막 경기는 에이스인 노리모토 다카히로가 9회 투아웃까지 무실점으로 막는 역투에도 불구하고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의 짧은 중견수방향 플라이가 슬라이딩 캐치를 시도한 중견수 시마우치의 글러브에 맞고 튕겨나오면서 끝내기 패배.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웅크린 자세로 눈물을 삼키는 노리모토의 모습은 10년전 상대 팀의 에이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비장했다. 라쿠텐의 10연패는 창단 첫해인 2005년, 프로팀이라고 하기도 힘들었던 시기 이후의 기록이다.

9월 들어와서는 그래도 분위기를 수습해서 세이부와의 경기차를 더 벌리지는 않고 있지만 순위를 뒤집기도 힘들어 보인다. 아직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의 홈필드 어드밴티지의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9월 24일 경기에서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소프트뱅크와의 대결에 에이스 노리모토를 투입하고도 역전패, 같은 날 오릭스에게 승리를 거둔 세이부와의 게임차가 3게임으로 벌어졌다. 다만 세이부가 오릭스에게 승리함으로써 4년만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은 확정지었다. 2013년 우승 이후 3년간 하위권을 맴돌던 것을 생각하면 잘 하기는 했지만 올스타전까지의 기세가 엄청났던 만큼 아쉬움도 남는 결과가 됐다.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1차전에서 라쿠텐 킬러 키쿠치 유세이에게 농락당하며 0-10으로 참패했으나, 2차전에서 세이부 측이 2선발 노가미 료마 대신 도가메 겐을 선발로 내는 행운과 세이부에서 토사구팽당한 키시 타카유키의 역투가 겹쳐 4-1로 승리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그 기세를 몰아 3차전에서도 절묘한 투수교체와 타선의 집중력으로 5-2로 승리, 4년만에 2스테이지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야후옥션돔에서 열린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2차전을 잡았으나 3,4,5차전을 연달아 내주면서 일본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시즌 후에는 마쓰이 가즈오가 구단의 코치직 제안을 거절하고 팀을 퇴단했다. 또한 젤러스 휠러와 2+1년 4억 엔+옵션에[23] 연장 계약을 맺었다.

3.9. 2018 시즌

신년 시작하자마자 GM 역할을 했던 호시노 센이치 부회장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야구계와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인은 췌장암. 불과 1달 반 전만 해도 공식행사에 참석해서 건재할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부고에 뜻밖이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80대가 돼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야구인들도 드물지 않은 상황에서 만 70세로 타계한 것에 대해 너무 이르다면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팬들 사이에서는 세이버메트릭스를 빙자해서 통계놀음으로만 야구를 해먹으려는 막장 프런트의 폭주를 특유의 카리스마로 막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했는데 그럴 사람이 사라졌다면서 프런트의 전횡이 더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반응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인기가 없는 라쿠텐 응원가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싶었는지 응원가 작곡가로 전 레이지본 멤버이자 치바 롯데 마린즈 응원단장이었던 진 토시오를 섭외했다. 또한 관중 호응을 위해 스타팅 라인업 발표도 독일식을 일부 차용한다. 그리고 응원 스타일도 바뀌어서 앰프를 사용하고 치어리더가 응원석에 올라오는 등의 한국, 대만식 응원법을 도입했다. 물론 원정 가서는 이전과 똑같다.

시즌 초 매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최하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쑤시개를 들고 치는 것인지 타자들 중 출루 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나간다 하더라도 후속 타자가 병살 혹은 범타로 물러나 상당한 변비야구를 보여주는 중.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그나마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던 모기, 긴지 등 주축 선수들의 타격감이 바닥을 치면서 라인업에 미요시, 오코에 등으로 변화를 주지만 그것도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듯. 더욱이 용병 3인방 (휠러, 페게로, 아마도르) 의 평균 타율이 2할 초반 언저리에 머물면서 팬들의 근심을 더 늘게 하는 중이다.

어째서인지 투수들의 난조도 동반해서 진행되는중. 선발 라인업으로는 노리모토, 기시, 가라시마 등이 호투해주고 있지만 작년에 잘해주었던 미마가 시즌 초부터 제구 난조등으로 얻어 맞고 클로저 마쓰이 마저 번번이 블론 세이브를 세우면서 안습한 마운드를 보여주는중. 4월 27일 기준으로 라쿠텐은 6승 1무 15패인데 이 6승이 노리모토 3번 (그마저도 3번중 한번은 선발 승을 챙기지 못했다), 기시 1번, 이케다 1번, 후지히라 1번인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모 이글스 구단의 류xx과 이글스가 생각날 정도. (아마 올해도 노리모토의 눈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가라시마도..)

결과적으로 투타의 동반 부진으로 인해 연패를 어쩌다 끊는다 해도 다시 연패 행진을 진행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중이다. 결국 5월 6일, 세이부에게 11대0 완봉패를 헌납하며 자력우승 가능성을 소멸시켰다.

그나마 승수를 얻어갈 수 있는 교류전이 시작되었는데, 지난해 요미우리 마냥 요코하마와 야쿠르트를 상대하는 동안 이긴 경기가 없다. 그러나 요미우리 상대로 2승 1패 위닝시리즈에 성공. 하지만 교류전에서도 퍼시픽리그의 다른 5팀이 전부 상위권을 석권하는 동안 혼자만 최하위에 쳐지면서 역주행. 다른 팀과의 격차는 점점더 벌어져만 갔고 6월 16일 DeNA 전에서 에이스 노리모토 다카히로가 8회까지 무실점으로 1대0으로 앞서나갔으나 그동은 불을 질러댄 불펜을 신뢰할 수 없어서 9회에도 노리모토로 밀고 나갔다가 역전패. 21승 41패로 승패마진 -20을 기록하게 되었다. 더구나 홈 경기 성적 7승24패의 대참사. 결국 경기가 끝난 후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이 부진한 성적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승패마진 -20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다는 모양. 나머지 시즌은 히라이시 요스케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끌고가기로 했다. 감독이 시즌 도중에 사임한 것은 전임인 오쿠보 히로모토 이후 두번째이나 오쿠보의 경우에는 시즌 막바지에 다다라서 사임한 반면 나시다 감독의 경우에는 시즌이 절반도 안 지났는데 사임을 한 것으로서 절반 이상의 시즌을 감독 대행 체제로 이끌어가게 되는 것은 구단 사상 초유의 사태이다.

그렇게 무난히 꼴찌가 예상되었으나... 올스타전 전부터 이어진 상승세를 후반기에도 보여주더니 8월 3일 기준 올해도 DTD를 시전중인 5위 오릭스 버팔로즈와 1.5게임차만을 남겨두며 탈꼴찌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신예 스위치 히터 중견수 다나카 카즈키가 갑툭튀해서 장타를 뻥뻥 때려주면서 토종 슬러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것이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후에 연패를 거듭해 결국 1위와의 승차를 28.5로 벌려놓으며 일찌감찌 닛폰햄과의 격차도 좁히지 못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트래직 넘버는 0이 되었고, 136경기를 진행한 현 시점에서 5위 지바롯데와의 승차는 4이다. 지바 롯데가 치룬 경기 수가 6개나 더 적다는 걸 감안하면 무난한 꼴찌가 예상된다. 결국 10월 5일 롯데와의 맞대결 패배로 3년만의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그 와중에 예정된 정규시즌 최종일까지 경기 소화가 되지 않아서 결국 5위 롯데와의 마지막 맞대결이자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첫날인 10월 13일에 치르게 되었다. 팀 역사상 포스트 시즌 기간 중에 정규시즌 경기를 소화하는 건 2013년에 이어 두번째인데 그 때는 정규시즌 우승을 결정짓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직행해서 상대를 기다리면서 몸을 푸는 스파링 역할이라도 했지만[24] 이번 시즌은 정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밀린 숙제에 불과한 것이 차이이다.

그래도 어쨌든 히라이시 요스케 감독대행 체제 이후로는 거의 5할에 근접한 승률을 기록했다.[25] 어쨌든 작년의 선전이 무색하게 추락한 현실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시즌 중에 인사개편을 단행해서 명투수 출신이던 이시이 가즈히사 (전 야쿠르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세이부)를 GM으로 발탁해서 일단 무너진 체제의 재정비에 나서기는 했다. 이시이 GM 본인이 현역시절부터 워낙 4차원 사고방식으로 유명한데다 은퇴 이후 코치 경험은 물론 구단 프런트 경험도 없었는데 과연 제대로 된 팀 운영을 할 것인가 우려를 하면서 또 구단이 깜짝인사로 눈길 끌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팬들도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비록 장외에서는 4차원스러운 모습으로 유명하지만 야구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진지한 사람이라면서 겉보기로만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과연 어떤 수완을 발휘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듯. 그리고 나시다 감독의 사임 이후 감독 대행을 맡아 그럭저럭 팀을 수습했던 히라이시 요스케를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에이스 투수 키시 타카유키가 프로 통산 12년만에 처음으로 골든 글러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비율 1.000을 기록하는 둥 빼어난 수비력을 보여주었고 라쿠텐 투수로는 2011~2013년 3년 연속 수상한 다나카 마사히로 이후 5년만의 2번째 쾌거다. .265의 타율에 18홈런 21도루의 호성적을 기록한 다나카 카즈키는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구단 사상 3번째의 신인왕 배출이자. 작년 신인왕 겐다 소스케에 이은 2년 연속 야수 신인왕 수상.

3.10. 2019 시즌

답없는 물방망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FA를 선언한 세이부의 아사무라 히데토 획득에 나섰다. 아사무라는 자금력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소뱅, 오릭스도 눈독을 들인 터라 과연 데려올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의외로 오릭스와는 협상에 나서기도 전에 거절의사를 전달했고, 소뱅과는 한번 면담 이후에 거절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또 원 소속팀 세이부에게도 작별인사를 전함으로써 라쿠텐 이적은 사실상 확정. 이미 아사무라와의 사이에 탬퍼링에 가까운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정작 가장 당황해 하는 건 아사무라를 잃게된 세이부 팬들이 아니라 아사무라의 행선지로 결정된 라쿠텐의 팬들이다(...). 짠돌이 구단이 아사무라 획득을 위한 자금을 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믿겨지지가 않는데 소뱅의 총액 28억 제의를 거절하고 20억에 라쿠텐행을 결정했다는 얘기에 더더욱 당황스러워하는 모습. 이시이 신 GM은 첫번째 업무수행만으로 수완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여기에 오릭스의 80% 연봉삭감에 반발해서 자유계약으로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 오릭스의 가네코 치히로도 획득에 나선다고 보도되는 등 2018년의 지리멸렬한 모습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가네코는 닛폰햄으로 가서 없었던 일이 돼버렸지만.

한편 그 와중에 히지리사와 료가 은퇴를 발표하여 팬들과 동고동락한 또 한명의 프랜차이즈가 옷을 벗었다. 이외에도 일본 복귀를 선언한 이와쿠마 히사시가 라쿠텐 복귀가 아닌 요미우리행을 택하면서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아사무라를 잡느랴 이와쿠마를 영입할 여력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시즌을 앞두고 뜬금없이 대부분의 응원가가 물갈이되었다. 팬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는데(불호가 더 많다), 모기 에이고로, 오카지마 타케로 응원가 등 호평받던 응원가마저 물갈이 해버린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이 꽤 많았다. 일부 팬들은 구단에게 응원가 변경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를 말해주기를 요구하기도 했다.바꿔달라는 구단가는 안 바꾸고 선수 응원가만 갈아 엎었으니[26] 구단이 신응원가를 공식 발표하면서 응원가 물갈이의 이유를 설명했는데 저작권 상의 문제라고 한다. 이후 팬들의 항의를 받아 저작권 관련해서 다시 협의를 한다고 발표했고, 곧 원곡이 있는 응원가 외에는 거의 다 부활했다! 팬들의 반응은 아쉽긴 하지만 저작권 때문이니 어쩔수 없고 일부 응원가들이 남아서 다행이다는 반응이다. 새로 만들어진 응원가도 심플해서 부르기 편하다, 중독성이 있다 등 긍정적인 평이 조금씩 늘고 있다.

데뷔 후 5시즌동안 꾸준히 이닝을 먹어준 에이스 노리모토 타카히로가 시범경기 도중 팔꿈치에 이상이 발견되어 '클리닝 시술'을 받게 돼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게 되었다. 전반기 내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게다가 개막전 선발로 나선 기시 다카유키 조차 경기 후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엔트리에서 말소. 시즌 시작하자마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개막전 패배이후 로테이션의 두 기둥을 잃은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롯데에게 2연승으로 위닝시리즈를 거두었고. 눈보라가 몰아쳤던 홈개막 3연전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싹쓸이하며 5연승을 거두고 2위로 치고 올라오며 시즌 초반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5연승 후 상대가 개막이후 6경기동안 1승도 못올린 오릭스 버팔로즈라 상승세를 계속 이어나갈 듯 했으나 첫경기에서 0대2로 완봉패를 당하면서 연승도 멈췄고 상대팀에게 시즌 첫승도 선사했다. 결국 오릭스와의 3연전은 1무 2패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으나 그 다음에 벌어진 세이부와의 2연전을 2연승으로 쓸어담으면서 마침내 소뱅을 제치고 리그 단독 선두로 나섰다. 다음날 경기가 없는 틈에 소뱅이 승리를 거두면서 공동 선두가 됐다. 4월 12일부터 그 소뱅과의 맞대결 3연전을 앞두고 있다. 연이은 주전들의 부상으로 공격력이 약화된 소뱅을 상대로 우위를 기록하게 되면 기세를 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와의 맞대결은 1승 2패 루징시리즈로 끝났다.

그래도 어찌어찌 세이부와 오릭스를 잡으면서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4월 24일 닛폰햄 전을 시작으로 무려 5연패+1승+4연패를 당하는 대참사를 겪고 말았다… 팀순위도 4위로 추락. 다행히 5월 6일 경기에서 세이부에 승리를 거두면서 한숨 돌리긴 했다. 이후에는 닛폰햄, 지바롯데, 세이부와 같이 2위 그룹을 형성하면서 엎치락뒤치락 중. 5월 20일 현재 2위 라쿠텐과 5위 세이부 간 게임차는 1게임.

이후 같은 2위그룹에 있던 지바롯데와 닛폰햄에 위닝시리즈를 거두면서 숨통을 조금 틔우고, 마침 세이부가 소프트뱅크 2연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1위와의 게임차도 1게임까지 좁혔다. 다만 다시 3위까지 올라온 세이부와의 게임차 또한 1게임차이기 때문에, 살얼음판 2위인 것은 변함이 없다.

4. 유니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유니폼 항목 참조.

창단 10년이 조금 넘은 신생구단이지만 이벤트 유니폼이 많이 나와 그것을 정리한 항목이 단일 항목으로 분리되었다.

5.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연 평균 1,450,233명 (+13.2%) 1,524,149명(+6.6%) 1,620,961명(+4.9%) 1,770,108명 1,726,004명
일일 평균 20,142명 21,467명 22,513명 24,931명[27] 23,972명

6. 홈구장

미야기 구장 항목 참조.

주요 지방 경기장

7. 그 외

  • 일본 프로리그 12개 구단중 최악의 응원가로 유명하고, 같은 리그의 오릭스 버팔로즈와 비교해서 더 까인다.[28]일단 들어보자. 이런 응원가에 욕을 처먹다가 본인들도 안되겠다고 판단한 건지 모닝구무스메를 섭외해서 이 응원가를 만들었다.[29], 그리고 반응이 좋자 비슷한 노선을 탔는데, 문제는 2007년 야구 응원가에서 벗어나 그냥 J-POP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도 계속 삽만 푸면서 J-POP을 만들고 있다.(…)[30]
  • 구단 사장 타치바나 요조가 여러 가지 의미로 비범하다. 2013년 시즌 후 다나카 마사히로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에 관해 직접 윈터미팅 현장으로 30개 구단 단장들을 만나러 달려갔으며, 구단 홍보를 위해서 도호쿠 지방을 백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뛰는 등 여러모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15년 시즌 전에는 선수들과 스프링캠프에 같이 참석했는데, 선수들과 경쟁해서 20m 셔틀런 횟수 1등을 했다.[32] 그리고 2ch에서는 선수 겸 단장 드립이 나왔다[33] 타치바나는 2017년 10월부터 라쿠텐 산하 빗셀 고베 사장도 겸임한다. 타치바나는 게이오기주쿠대학 럭비부 출신으로, 구단 사장 취임 전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증권맨으로 일했다. 실제로 증권맨이라 숫자를 다뤄 본 경험이 많다 보니 세이버메트릭스적 데이터 분석을 구단의 핵심역량으로 삼는 중.[34]
  • 구단 사장의 증권가 이력이나 IT 기업을 구단주로 두고 있다는 점 등에서 알 수 있듯, 아직까지는 세이버메트릭스적 분석이 크게 발언력을 얻지 못하는 일본 야구계에서는 드물게도 최신식 데이터 분석에 적극적이다. 다른 구단들보다 한 발 앞서 미야기 구장스탯캐스트급 분석을 위한 트랙맨 시스템[35]을 도입했으며, 2018년에는 아예 미국 굴지의 세이버메트릭스 웹사이트인 팬그래프데이터 분석가 채용공고를 올리기도 했다. 훈련시설에도 VR 타격연습 기계를 들여놓는 중.
  • 하지만 그러한 프론트의 열의가 긍정적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 듯, 2015년에는 선수 기용, 작전 지시[36] 등을 둘러싼 프론트의 현장 개입을 둘러싸고 미키타니 히로시 구단주와 타시로 토미오 타격코치, 오쿠보 히로모토 감독과 불화설이 돌기도 했다.[37] 유니폼 색깔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넥센 히어로즈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해외유학파 구단주라든가, 돈 안 쓰는 짠돌이 구단이라든가, 세이버 메트릭스를 기반으로 한 프런트의 현장 개입이 다른 구단보다 두드러진다든가. 그 때문에 프런트와 현장의 사이가 안 좋다든가.[38]
  • 구단 모기업이 모기업인지라 승리한 다음날엔 라쿠텐 포인트를 3~5배로 주기도 한다. 열심히 응원한 당신 질러라!
  • 유니폼이 창단 이후 크게 변한 적이 없어서 파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클래식 시리즈를 개최하지 않는다.
  • 2016년까지 일본시리즈 우승이 있으면서 패배가 없는 유이한 구단...이었으나 2017년에 요코하마 디엔에이가 패배하며 유일한 전승 구단이 되었다.

* 2018년부터 일본프로야구 구단들 중 유일하게 앰프를 사용하여 응원한다. 홈경기 한정이며 원정에서는 타 구단과 마찬가지로 트럼펫을 사용. 소음 때문에 홈에서 트럼펫 안 쓰던 거였는데 정말 문제 없는 거 맞지? 한국 마냥 빵빵하게 튼다 생각하면 곤란하고, 응원단장이 소음 문제 생각 안 하는 바보는 아닌지라 트럼펫보다도 작은 소리로 튼다. 중계에서도 겨우 들릴 정도. 또 치어리더가 응원석에 올라와서 응원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일반적으로 치어리더는 경기 중간에 그라운드에서 공연만 하는 역할인 걸 보면 매우 특이한 케이스. 분명 KBO 응원단 출신인 진토시오의 의견이다
  • 2018년 빗셀 고베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라쿠텐 선수단 전원의 연봉을 합쳐도 이니에스타 1인의 연봉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라쿠텐 팬들은 빗셀에 쓸 돈 있으면 우리에게도 선수영입 등으로 써달라면서 낙담하는 중. 요미우리 리버스 버전 # 오죽하면 카호쿠신보 라쿠텐 담당기자가 도쿄돔에서 열린 이니에스타 환영식에 대해 실망의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글을 쓸 정도. # 여담으로 비슷한 시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모기업 DeNA도 야구단에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유벤투스에 오히려 더 투자를 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비난을 샀다.
  • TV, 라디오 중계는 J SPORTS, 미야기현 4개 방송국 및 TBS라디오 계열국인 TBC라디오에서 담당하며, 일본프로야구 구단 중 유일하게 구단 자체 방송국을 통한 라디오중계(Rakuten.FM)를 제작하고 있다.

8. 주요 선수들

8.1. 현역

8.1.1. 투수

  • 1. 마쓰이 유키
  • 11. 키시 타카유키
  • 12. 콘도 히로키
  • 14. 노리모토 다카히로
  • 15. 미마 마나부
    2013 일본시리즈 MVP. 진짜 MVP는 이 투수에게만 2승을 헌납한 스기우치 토시야라는 후문이 있다.
  • 16. 모리 유다이
  • 17. 시오미 타카히로
  • 19. 후지히라 쇼마
  • 20. 안라쿠 도모히로
    고시엔 혹사의 아이콘. 일본판 한기주라고 할 수 있다. 에히메 현의 사이비(済美)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 본선에서 시속 150km를 넘는 강속구를 뿌리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연투에 연투를 거듭하면서 구위가 떨어져 가는데도 처절하게 마운드에서 버티는 모습 때문에 일본 야구계 안팎에서 혹사논란이 재점화되었다. 다르빗슈 유 등 메이저리거나 쿠와타 마스미같은 일부 고교야구 OB들은 이 선수를 예로 들며 혹사를 방지,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투구수 제한, 엔트리 확대 및 선수들 부상 방지에 대한 관심 등 개선책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여러 원로 OB와 현 일본 프로야구 감독 및 해설가들은 "그 정도도 못 버티나?" , "선수로써는 실격이군" 등의 구태의연한 주장만 반복했다. 2014년 드래프트 때 라쿠텐이 1순위로 지명했지만 혹사 후유증으로 신인 시즌은 거의 재활로 보냈고, 시즌 막판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 선발로 데뷔해서 프로 첫 승을 따냈다. 이미 고교 때 보여준 불같은 강속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구속이 시속 140km 초중반은 찍는 관계로 변화된 조건에 맞춰서 투구스타일의 변경을 진행중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고시엔에서 어느정도 화제몰이를 한 스타성이 있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로테이션의 3, 4선발을 맡아줄 쓸만한 선발투수로 목표를 바꿔서 육성을 하는 중. 이름은 안락[39]한데 인생역정은 별로 안락하지 않다.
  • 21. 카마타 요시나오
  • 22. 토무라 켄지
  • 23. 유게 하야토
  • 28. 오노 후미야
  • 30. 이케다 다카히데
  • 31. 후쿠이 유야
  • 32. 앨런 부세니츠
  • 38. 니시미야 유스케
  • 39. 히키지 슈이치로
  • 41. 아오야마 코지
  • 42. 프랭크 허먼
  • 43. 쑹자하오
  • 45. 스가하라 슈
  • 47. 와타나베 유키
  • 52. 모리하라 코헤이
  • 53. 타카나시 유헤이
  • 56. 스즈키 소라
  • 58. 카라시마 와타루
  • 59. 쿠마바라 켄토
  • 60. 후루카와 유리
  • 61. 사토 토모키
  • 62. 니시구치 나오토
  • 64. 후쿠야마 히로유키
    원래는 요코하마 소속이었다가 방출된 뒤 2013년부터 뛰기 시작한 투수. 2014 시즌부터 서서히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2017 시즌은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36게임(33 1/3 이닝)동안 방어율 0.00에 자책점 0[40]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7월 20일 닛폰햄 전에서 아웃 카운트 1개도 못 잡고 브랜든 레어드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면서 37게임만에 0.00 방어율은 깨졌다.
  • 91. 쿠보 유야[41]
  • 94. 이시바시 료타
  • 98. 콘노 류타

8.1.2. 포수

  • 2. 오타 히카루
  • 27. 오카지마 타케로
  • 29. 야마시타 아야츠구
  • 37. 시마 모토히로
  • 44. 아다치 유이치
  • 65. 호리우치 켄고
  • 70. 이시하라 츠요시

8.1.3. 내야수

8.1.4. 외야수

  • 0. 시마이 히로히토
  • 7. 타츠미 료스케
  • 9. 오코에 루이
    2015년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된 고졸 신인. 아버지가 나이지리아 출신인 혼혈로 2015년 여름 고시엔 대회 본선에서 동도쿄 지역 대표인 간토다이이치 고교의 리드오프로 출전, 일본 수준을 초월하는 주력[42]과 야구센스, 넓은 수비범위로 팀의 4강진출에 공헌했다. 서도쿄 대표인 와세다 실업고의 1학년생 기요미야 고타로와 더불어 단숨에 도쿄를 대표하는 고교야구 선수로서 프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프로 입단 후에도 여전히 관심의 표적이었지만 뛰어난 운동능력에 비해 타격은 아직 정확도가 떨어져서 좀 더 성장이 필요한 상황. 2017-2018 멕시코 태평양 리그에 참여했으나 첫 경기에서 3연타석 삼진을 당하고 그 후로 1군 출장을 못 하게 되자 중도퇴단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 13. 이와미 마사키
  • 25. 다나카 카즈키
  • 35. 시마우치 히로아키
  • 49. 하시모토 이타루
  • 50. 다나카 아키토
  • 51. 오고 유야
  • 57. 야오이타 타쿠마루
  • 69. 자바리 블래시

8.2. OB

굵은 글씨는 창단 멤버이다.

8.2.1. 투수

  • 케빈 호지스 (2005)
  • 게리 레스 (2005)
  • 카네다 마사히코 (2005 - 2006)
  • 요시다 토요히코 (2005 - 2007)
    투수로서, 그리고 난카이 시절 1군경기 출장 경험이 있는 마지막 난카이 호크스 출신의 현역 선수.[43] 40대의 나이로 창단 초기 몇 년간 암울했던 투수진에서 왼손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 후쿠모리 카즈오 (2005 - 2007, 2009 - 2010)
  • 이치바 야스히로 (2005 - 2009)
    라쿠텐의 창단 첫 1라운더. 메이지대학 시절부터 주목받던 투수였으나, 스카우트 경쟁으로 인해 여러 구단이 뒷돈을 댔다는 탬퍼링 파문 때문에 그동안 뒷돈을 줬던 구단들이 전부 등을 돌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뻔 했다. 결국 탬퍼링 문제에서 자유로운 라쿠텐이 화제몰이를 겸하여 과감하게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하여 소란스럽게 데뷔했으나 2009년 시즌 도중 야쿠르트로 트레이드. 결국 통산 91경기 16승 33패의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프로를 떠나서 지금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 오구라 히사시 (2005 - 2008)
  • 아사이 히데키 (2005 - 2010)
  • 아리메 카네히사 (2005 - 2012)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간 좌완투수. 특이사항으로 2006년 8월 25일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경기에서 12이닝 완투 188구 17탈삼진이라는 21세기스럽지 않은 등판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노무라 카츠야도 옛날 사람... 2008년에는 리그 최다 66경기 등판.
  • 고야마 신이치로 (2005 - 2015)
    창단 첫 완봉승을 기록한 투수. 이후 중간계투로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 라이언 글린 (2006)
  • 나가이 사토시 (2007 - 2015)
  • 오카모토 신야 (2011)
  • 김병현 (2011)
    2011년에 입단하나 1군 등판은 단 한 경기도 없었다. 2012년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며 한국으로 복귀했다.
  • 켈빈 히메네스 (2011 - 2012)
  • 사이토 다카시 (2013 - 2015)
  • 케니 레이 (2013, 2015 - 2016)
    2008년 시즌 중 다윈 쿠비얀의 대체선수로 SK 와이번스에서 5경기 뛰고 1승 2패 6.64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광속 방출된 케니 레이가 맞다.
  • 트래비스 블랙클리 (2014)
  • 브라이언 팔켄보그 (2014)
  • 레다메스 리즈 (2016)
    한국 야구팬들이 알고 있는 전 LG 소속의 그 선수가 맞다. 한국에서도 고질적인 문제였던 제구력 난조에 한국시절보다 떨어진 스피드로 선발도 실패, 불펜도 실패하며 1, 2군을 왕복하다가 결국 1년만에 방출되었다.
  • 김무영 (2016)
    한국 선수로서는 드물게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떠나, 2008년에 일본프로야구에 드래프트되어 뛰기 시작했다. 2015년까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중간계투로서 괜찮게 활약을 했으나 소속팀의 두터운 선수층과 2015년 어깨부상으로 1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 테스트를 거쳐서 라쿠텐에 입단했으나 2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고 다시 방출되었다.
  • 제이크 브리검 (2016)

8.2.2. 포수

8.2.3. 내야수

  • 오시마 코이치 (2005)
    팀 역사상 최초의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 스즈키 이치로, 다구치 소등과 함께 오릭스 전성기의 주축 선수였으나 노쇠화로 인해 토사구팽당하고 분배 드래프트에서 라쿠텐으로 오게 되었다. 참고로 전성기를 누린 팀은 오릭스였지만 데뷔팀이 긴테쓰라서 긴테쓰, 오릭스에서 둘 다 뛴 라쿠텐 소속 선수란 진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요시오카 유지 (2005 - 2008)
    2001년 긴테쓰 우승 당시의 주전 6번타자. 팀 해체 후 라쿠텐으로 가 첫 해엔 나름 쏠쏠한 활약을 해줬지만 이후 부진으로 2008년을 끝으로 프로야구 인생의 막을 내린다.
  • 야마사키 타케시 (2005 - 2011)
    팀 최초의 홈런, 타점 타이틀 홀더. 오릭스 시절에 퇴물취급 받고 팽당하다시피해서 라쿠텐으로 왔는데 노무라 감독 밑에서 기적적으로 회춘하여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 양대리그 홈런왕[44] 타이틀 수상자가 되었다.
  • 타카스 요스케 (2005 - 2013)
  • 쿠사노 다이스케 (2006 - 2012)
    노무라 감독에게 천재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3할을 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물론 비아냥이다. 즉 하는 거 보면 전혀 3할을 칠 기본기는 안 돼 있는데 성적은 3할이 나오니 기가 찰 노릇이라는 뜻. 사실 29세라는 늦은 나이까지 사회인야구에서 뛰다가 최하위에 가깝게 프로지명을 받았고, 뒤늦게 포텐이 터진 선수라는 점에서 대단한 노력파라고 볼 수 있다. 노망주 하지만 2011년부터 기량이 눈에 띄게 저하되어 2012년에 구단으로부터 방출통보를 받고 그대로 현역에서 은퇴.
  • 호세 페르난데스 (2006 - 2008, 2012)
    2006년에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상을 획득해 팀 최초의 타이틀 홀더가 되었다.
  • 코사카 마코토 (2009 - 2010)
  • 나카무라 노리히로 (2009 - 2010)
  • 이와무라 아키노리 (2011 - 2012)
  • 마쓰이 가즈오 (2011 - 2017)
  • 케이시 맥게히 (2013)
  • 케빈 유킬리스 (2014)
  • 잭 루츠 (2014)
    에반스에 앞서 두산으로 왔으나 역시 부진으로 중도퇴출 당했다.
  • 닉 에반스 (2014)
    두산 베어스의 그 닉 에반스 맞다. 그러나 도호쿠 라쿠텐에서는 흑역사 용병. 후반기에 대체 용병으로 들어와놓고 꼴랑 1군 5경기 출장에 타율 1할 1푼 1리를 기록했다.
  • 고토 미츠타카 (2014 - 2016)
    일본프로야구 최후의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 선수. 오릭스 버팔로즈의 주전 2루수로 오랫동안 활약했으나 기량 저하로 텟페이와 트레이드되어 라쿠텐으로 오게 되었다. 얇은 선수층의 라쿠텐에서 백업 내야수와 왼손 대타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2016년 방출당하면서 선수생활을 마감했고, 이후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 현역 선수는 다른 리그의 스즈키 이치로구대성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 윌리 모 페냐 (2015)

8.2.4. 외야수

  • 이이다 테츠야 (2005 - 2006)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90년대 황금기를 대표하는 주축 리드오프 중견수였던 선수. 90년대 후반 이후 기량 하락으로 마나카 미츠루 등에게 주전자리에서 밀리면서 결국 야쿠르트를 떠났고, 라쿠텐에서 말년을 보냈다.
  • 사타케 마나부 (2005 - 2006)
  • 세키카와 코이치 (2005 - 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으로서는 최초로 공식전 타석에 들어선 타자. 1999년 선동열-이종범-이상훈의 '한국인 삼총사'와 함께 주니치 드래곤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이후 기량이 쇠하여 라쿠텐으로 무상 이적했다. 이후 2년의 암울한 시기동안 나름대로 리드오프의 역할을 맡았다.
  • 이소베 코이치 (2005 - 2009)
    킨테츠의 마지막 선수회장으로 후루타 아츠야와 함께 합병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다. 라쿠텐에서도 초창기의 중심타자로 활약했고, 은퇴한 뒤에도 개국공신으로 인정받아 2016년까지 라쿠텐에서 코치 직을 수행했다.
  • 카와구치 켄시 (2005 - 2010)
    2001년 킨테츠 우승 당시 7번 지명타자로 활약했다. 라쿠텐에서도 출장 기회는 적었지만 백업 등으로 꾸준히 뛰었다.
  • 히라이시 요스케 (2005 - 2011)
    라쿠텐 창단 첫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지명되었다. 현역시절에는 주로 백업 외야수로 1, 2군을 오갔고 2011년 시즌 후 전력외 통보를 받고 은퇴. 그 후에는 팀에 남아 코칭스탭으로 활동하다 2018년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이 시즌 도중 사임하면서 감독 대행으로서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이른바 마쓰자카 세대 최초의 감독으로서 주목을 받았으며 창단 이후 최초의 팀의 선수출신 감독이다.
  • 마키다 아키히사 (2005 - 2016)
    팀 최후의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선수이자 라쿠텐 최후의[45] 원년 멤버. 강견의 툴가이 외야수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타격의 성장이 더뎌 끝내 주전 자리는 차지하지 못하고 외야 대수비, 대타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위의 고토 미츠타카와 같은 해 방출당하며 팀에서 오릭스 블루웨이브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현역 선수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은퇴 후에는 라쿠텐의 유소년 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릭 쇼트 (2006 - 2009)
    2008년 퍼시픽리그 수위타자
  • 텟페이 (2006 - 2013)
  • 앤드류 존스 (2013 - 2014)
  • 히지리사와 료 (2008 - 2018)
    2011시즌 54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했다.

8.3. 구단출신 메이저리거

8.4. 역대감독

대수 이름 재임기간 연수 비고
1 타오 야스시 2005년 1년 구단 사상 최초의 감독
2 노무라 카츠야 2006년~2009년 4년 팀 역사상 최초의 A클래스,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감독
3 마티 브라운 2010년 1년
4 호시노 센이치 2011년~2014년 4년 팀 역사상 최초의 퍼시픽리그,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
2014년 5월 26일~7월 24일까지 건강문제로 휴양[46]
5 오쿠보 히로모토 2015년 1년 2015년 시즌 도중 사임
6 나시다 마사타카 2016년~2018년 6월 2년6개월 킨테츠 최후의 감독
2017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2018년 시즌 도중 사임
7 히라이시 요스케 2018년 6월 ~ 2018 시즌은 감독 대행

보면 알겠지만, 5대까진 홀수 대엔 무능한 감독들이 1년을 맡아서 팀을 말아먹고, 짝수 대엔 유능한 감독들이 4년을 맡아 팀을 상위권으로 이끄는 징크스가 이어진다. 다만 현임 감독인 나시다 마사타카가 과연 이러한 징크스를 이어줄진 미지수.[47] 일단 상위권 징크스는 이어줬다. 결국 4년은 못채우고 떠났다. 잠깐 징크스에 의하면 다음은 무능한 감독이 1년동안 말아먹을 차례인데?

9. 역대 성적

­ 리그 우승[48]
­ 2위
­ 3위
B클래스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49]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50]
2005 6위/6팀 6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36 38 97 1 .281
2006 6위/6팀 6위 136 47 85 4 .356
2007 4위/6팀 4위 144 67 75 2 .472
2008 5위/6팀 5위 144 65 76 3 .461
2009 2위/6팀 2위 144 77 66 1 .538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소프트뱅크)
세컨드 스테이지 (1-4 vs 닛폰햄)
2010 6위/6팀 6위 144 62 79 3 .440
2011 5위/6팀 5위 144 66 71 7 .482
2012 4위/6팀 4위 144 67 67 10 .500
2013 1위/6팀 우승 144 82 59 3 .582 파이널 스테이지 (4-1 vs 롯데)
일본시리즈 우승(4-3 vs 요미우리)
2014 6위/6팀 6위 144 64 80 0 .444
2015 6위/6팀 6위 143 57 83 3 .407
2016 5위/6팀 5위 143 62 78 3 .443
2017 3위/6팀 3위 143 77 63 3 .550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세이부)
파이널 스테이지(2-4 vs 소프트뱅크)
2018 6위/6팀 6위 143 58 82 3 .414
NPB 통산 14시즌 1회 우승 1853 831 979 43 .459 일본시리즈 1회 우승


[1]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때문에 미야기 구장을 못 쓰게 되어 잠시 옮겼다.[2] 중국어 풀네임은 東北樂天金鷲/东北乐天金鹫.[3] 굳이 일본 신자체대로 옮길 경우 羅徳. 일본 신자체에서는 '큰 덕' 자의 心 위에 一을 삭제했다. 보통 간체자가 신자체보다 획이 간단한 경우가 많지만 신자체가 더 간단한 경우 중 하나가 이 글자이다. 간체자에서는 원래의 德이 유지되고 있다.[4] 한때 중국어 위키백과에서 롯데 자이언츠도 羅德으로 고친 羅德巨人(간체 변환 시 罗德巨人)으로 바꿨었다가 현재는 乐天巨人(정체 변환 시 樂天巨人)으로 되돌린 상태이다. 현재는 羅德巨人이나 罗德巨人을 검색하면 乐天巨人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5] 모기업 다이에의 경영난으로 휘청이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세이부 그룹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져 위기를 겪던 세이부 라이온즈, 만년 비인기구단 치바 롯데 마린즈등이 타겟이 되었다. 정작 호크스는 이 사단이 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요미우리보다도 자금이 빵빵한 곳을 모기업으로 얻게 된다. 긴테쓰 지못미[6] 물론 센다이에 프로야구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롯데 오리온즈집시 롯데 시절에 잠시 센다이를 연고로 했었고 1974년에 일본시리즈 우승까지도 했다. 그러나 완벽히 정착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시즌을 치르다가(1974년 일본시리즈 홈경기도 미야기 구장의 관객수용량이 일본시리즈 개최조건인 3만명에 미달한다며 고라쿠엔 구장에서 치뤘고 우승 퍼레이드도 도쿄에서만 치룰 정도) 결국 1978년 카나가와카와사키 시에 정착했다.[7] 그러나 라이브도어가 인수했다면 훗날 터진 분식회계 및 허위공시 스캔들로 구단이 박살났을 수도 있었다. 라쿠텐이 인수한 것이 천만다행. 아니면 라이브도어 가져간 네이버로 구단주가 바뀌든가[8] 창단 용병으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케빈 호지스게리 레스가 있었을 정도. 둘 다 6점대 방어율을 찍었다.[9] 경기 기록지. 상대 선발 와타나베 슌스케는 9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을 각 하나씩만 허용했고 그나마도 그렇게 나간 주자들은 다 병살로 잡아들여서 27타자 완봉승에 성공했다.[10] 주니치는 원년에 유일하게 루징을 기록해줬을(...) 뿐만 아니라 무상 트레이드로만 4명의 선수(코야마 신이치로, 키토 마코토, 세키카와 코이치, 사카이 타다하루)를 보내줬을 정도로 신생구단이던 라쿠텐에 이런저런 공헌을 많이 해주었다. 다음 오프시즌에도 자리가 없던 외야 유망주 텟페이를 현금 트레이드로 라쿠텐으로 보냈고, 다른 경로로 라쿠텐에 온 야마사키 타케시나카무라 타케시에 창단 감독인 타오 야스시까지 주니치 OB였던 만큼 초창기 라쿠텐에는 좀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주니치 출신 인물들의 비중이 많았다. 당시 주니치의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오릭스-긴테쓰 합병 반대투쟁을 하던 선수회의 입장에 친화적이었다는 후문이 있다.[11] 승률이 .281, 즉 3할이 안 된다. 이 승률은 대략 마왕 시절의 이 팀과 끝도없이 막장모드를 달리던 꼴랑이와 비슷한 기록. 그리고 이 기록을 2013년 한화 이글스가 노리고 있었으나 결국 3할은 넘겨서 시즌 마감.라쿠텐과 같은 입장의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있음에도[12] 특히 따뜻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라쿠텐 3루수 호세 페르난데스(1974)는 복면까지 걸치고 나오는 방한대책에도 불구하고 2실책에 기록되지 않은 실책성 플레이 1개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밀어쳐서 홈런을 친 일본 시절의 카림 가르시아도 보인다[13]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노무라는 난카이의 에이스였다곤 하나 난카이 구단과는 아주 험악한 관계였다. 이게 어느 정도나면 난카이가 지은 "난카이 호크스 기념관" 에 팀의 에이스이자 감독까지 지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노무라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없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험악한 관계인질 알 수 있다.[14] 롯데 두번째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연고지가 미야기 현이었다.[15] 다나카는 9이닝 4실점 160구 완투패. 무슨 고시엔하냐?[16] 비슷한 예로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치바 롯데 마린즈가 다음 해에 꼴찌로 추락한 전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롯데도 1970년대에 잠깐 미야기 현에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롯데 오리온즈였지만은.[17] 참고로 긴테츠 버팔로즈의 마지막 감독이기도 하다. 2004년 긴테츠의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최후의 경기 때 이 사람이 남긴 말인 "모두들 가슴을 펴고 플레이해라. 너희들이 달고 있는 등 번호는, 모두 긴테쓰 버팔로즈의 영구결번이다(みんな胸を張ってプレーしろ。お前たちが付けている背番号は、すべて近鉄バファローズの永久欠番だ)." 는 지금도 야구계에서 명언으로 평가되는 말이기도 하다.[18]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2011년 SK 와이번스 타격 코치를 지내다가 김성근 감독의 경질과 함께 사퇴했는데, 공교롭게도 라쿠텐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게 되었다.[19] 노리모토는 신인인 2013년부터 줄곧 선발 투수로만 활동했다.[20] 심지어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라는 말도 했다. 이런 것도 똑같네.[21] 나시다가 감독을 맡은 팀들은 전부 2년차에 리그 우승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근데 문제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했다는 것이지만... 또한 라쿠텐 항목에 나온 감독들의 사이클을 보면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은 뒤에 유능한 감독이 취임해서 3년차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징크스가 있다. 내년에 안 되더라도 다음 해에 희망을 가지자.[22] 스프링 캠프 때 까지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수준의 스피드 등, 천부적인 툴은 좋지만 타격자세에 문제가 많아 교정하려면 1~2년 정도는 걸리며 주전으로 정착하려면 3년 후쯤이나 되어야 할 것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불과 3개월만에 타격폼을 교정하고 고졸임에도 1군 클래스로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인터뷰 스킬도 좋고 상당히 모범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장차 구단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서 기대가 큰 상황이다.[23] 약 350만 달러.[24] 당시 오릭스와의 두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돌입했고 롯데와 세이부가 퍼스트 스테이지를 치르는 동안 라쿠텐은 오릭스와의 남은 두 경기를 소화했다.[25] 나시다 감독 사임 당시 승패마진이 -20 이었는데 시즌 막판 승패마진이 그 선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26] 응원가가 하루아침에 싸그리 바뀌어버린 사례는 치바 롯데 마린스 등 타 팀에도 있지만, 구단과 기존 응원단의 갈등이라던가 저작권 문제 등 타당한 변경사유가 있었고 구단이나 응원단 측에서도 이에 대해 확실히 설명했기 때문에 팬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라쿠텐의 경우 별다른 정황이나 구단측의 설명 없이 응원가가 교체되는 바람에 팬들이 더더욱 의아해했던 것.[27] 구단 신기록[28] "요미우리 자이언츠 응원가를 군가라고 하면, 라쿠텐도 그 종류에 들어갈거야." "군가를 만든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등의 반응이다.[29] 구단 설립 당시 마케팅을 담당하는 라쿠텐 스포츠 프로퍼티를 모닝구무스메 소속사인 업프론트그룹과 합작하여 설립한 덕분. 설립 후 업프론트내 팀들이 응원가를 한차례씩 담당했었다. 이후 2010년 7월 1일에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라쿠텐 스포츠 프로퍼티를 완전히 인수 합병하여 업프론트와는 결별, 이후부터는 응원가 같은 거 없다.[30] 이 글에서 참조했다.[31] 우리나라로 치면 몽골이나 청나라에게 탈탈 털리는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32] 거꾸로 생각하면 셔틀런에서 일개 단장에게 밀릴 정도로 선수들의 기초체력이 약하다는 의미도 된다...[33] 사실 그런 드립이 나올 만도 한 게 트위터를 보면 선수들과 친하며 구단 내 관계자와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팬들과의 관계도 좋은 게, 팬들이 타치바나 사장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만들어 주기도 할 정도.[34] 실제로 라쿠텐과 같은 산업 내에 속한 아마존도 전자상거래를 통해 얻은 데이터분석 기술이 핵심역량이다.[35]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등에서도 트랙맨 분석시스템을 도입했다.[36] 이 역시 세이버메트릭스와 관련이 있다.[37] 오쿠보는 세이부 코칭스태프 시절에도 폭력, 고압적인 태도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다.[38] 대신 라쿠텐의 경우 이미 모회사부터 FC 바르셀로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유니폼 스폰서십을 할 만큼 재정기반이 안정된 글로벌 대기업이며, 연고이전 문제 및 입지 나쁜 야구장, 사기꾼이 아킬레스건이 되는 넥센과 달리 20세기에 프로야구와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던 안정된 지역기반교통 편리한 홈구장이 있다.[39] 정말로 성이 安楽이다.[40] 사실 실점이 1점이 있긴 한데 수비 실책으로 나온 실점.[41] 축구선수 쿠보 유야랑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42] 1루수 글러브를 맞고 튕긴 내야안타성 타구를 2루타로 만들었다(...) 주루센스가 좋은 듯. 주력 자체는 오기노 타카시보다 조금 느리며, 1루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기노에 비해 0.4~0.5초 더 걸린다.(오기노는 주력도 주력이지만 사기적인 스타트로 인해 도루성공률이 매우 높다. 성공률만 놓고보면 최고수준그러나 부상 때문에 퍼시픽리그 최고의 대도는 아니다. 그건 니시카와 하루키)[43] 난카이 출신 마지막 야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은퇴한 오미치 노리요시. 2010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다만 오미치는 난카이 시절엔 1군경기 출장 경험이 없다. 이 둘은 요시다가 은퇴한 해인 2007년 6월 9일 난카이 출신 선수끼리의 마지막 투타 맞대결을 가지기도 했다.[44] 나머지 두명은 오치아이 히로미츠(롯데, 주니치)와 터피 로즈(긴테쓰, 요미우리)이다.[45] 2016년 시점에서 마키다가 은퇴하면서 야구계 전체를 봐도 라쿠텐 원년 멤버는 이와쿠마 딱 한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46] 5월 26일~7월 2일까진 사토 요시노리가, 7월 3일~7월 23일까진 오쿠보 히로모토가 감독대행을 맡음.[47] 일단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전부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끈 감독이기에 희망은 걸 만하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이 없어서 문제지...[48]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한번 리그 우승 먹은 게 그대로 일본시리즈도 먹었지만 일단은[49] 2006년까지는 플레이오프 결과도 반영하므로 정규시즌 순위와 다를 수 있다. 그 때 A 클래스 찍어 본 적이 있는가는 의문이지만[50] A클래스는 포스트시즌 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