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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 현대 유니콘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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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보 | 구단 역사|역대 시즌|실업 현대|연고 이전 1994년 한국시리즈|1996년 한국시리즈|1998년 한국시리즈 (V1)|2000년 한국시리즈 (V2)|2003년 한국시리즈 (V3)|2004년 한국시리즈 (V4) 역대 감독|역대 주장|역대 1차 지명 선수|사건 사고 | 암흑기 | ||||
세부 정보 | 선수단|등번호|유니폼|재계 라이벌 시리즈 | ||||
경기장 | 숭의야구장(1996~1999)|수원종합운동장 야구장(2000~2007)|춘천공설운동장 야구장|원당 야구장(제2 홈구장) |
현대 유니콘스 | |||||||
Hyundai Unicorns | |||||||
<colbgcolor=#007f55><colcolor=#fab93d> 창단 | 1982년 2월 5일([age(1982-02-02)]주년)[1] | ||||||
해체 | 2008년 1월 7일([age(2008-01-07)]주년) | ||||||
법인명 | ㈜현대유니콘스 | ||||||
법인 설립 | 1987년 10월 14일([age(1987-10-14)]주년)[2] | ||||||
상장 유무 | 비상장 기업 | ||||||
기업 규모 | 대기업 | ||||||
구단명 변천 |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태평양 돌핀스 (1988~1995) 현대 유니콘스 (1996~2007) | ||||||
후신 | 키움 히어로즈[3] | ||||||
주요 라이벌 | - 재계 라이벌 시리즈 | ||||||
모기업 | 현대그룹 | ||||||
연고지 변천 | 인천광역시 (1982~1999) | ||||||
(사실상) 경기도 수원시 (2000~2007)[5] | |||||||
홈구장 | 숭의야구장 (1982~1999) | ||||||
없음 (2000~2007)[6] (사실상) 수원 야구장 (1989~2007)[7] | |||||||
2군 구장 | 원당 야구장[8] | ||||||
해체 당시의 구단 사무국 (2007년) | |||||||
구단주 | 공석[9] | ||||||
구단주 대행 | 강명구 | ||||||
사장 | 김용휘 | ||||||
단장 | 정재호 | ||||||
감독 | 김시진 | ||||||
KBO 한국시리즈 우승 (4회) | |||||||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 |||||||
페넌트 레이스 우승 (3회) | |||||||
단일 리그 | 1998년, 2003년, 2004년 | ||||||
양대 리그 | 2000년 드림 | ||||||
포스트 시즌 진출 (10회) | |||||||
한국시리즈 | 1994년, 1996년,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 ||||||
플레이오프 | 1989년, 1994년, 1996년, 2000년, 2001년, 2006년 | ||||||
준플레이오프 | 1989년, 1996년, 2002년 | ||||||
프랜차이즈 팀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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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승률 | 0.188[10] 1982년 80경기 15승 65패 | ||||||
최다 승 | 91승 2000년 133경기 91승 2무 40패 | ||||||
최다 패 | 82패 1993년 126경기 34승 10무 82패 | ||||||
최다 관중 | 476,277명 1994년[11][12] | ||||||
최소 관중 | 118,582명 2002년[13][14] | ||||||
최고 FA 계약 | 3년 18억 원 2006년 송지만 |
[clearfix]
1. 개요
KBO 리그에 소속되었던 2007년에 해체된 원년 프로야구단. 삼청태현의 역사를 마무리한 구단으로 넷 중 가장 긴 역사를 기록했던 구단이자[15]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16] 구단이었다.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 서울특별시·무연고[17] / (비공식)경기도 수원시.[18] 1996년 취임해 팀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 한 김용휘 단장[19] 이하 구단 프런트가 개념이 넘친 현장 지원으로 명성을 떨쳤고, 역대 감독은 김재박-김시진이었다. 팀의 상징동물은 유니콘, 상징색은 녹색과 노란색.[20]재계 서열 1위를 다투는 대기업이 야심차게 시작한 구단이었기에 초창기에는 그룹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재정적으로 풍족했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 현대그룹의 대분열로 인해 모그룹이 상당히 빈약해졌고, 운영 주체가 모호해져 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채가 극심한 수준으로 누적되어 결국 2007년 시즌 종료 후 더 이상 운영을 지속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고, KBO의 관리 아래 이장석 대표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인적 자원과 지명권을 인수해 법인을 해산하고 히어로즈로 재창단하였다.
별명은 투수 왕국. 태평양 돌핀스 후기 시절부터 좋은 투수진을 여럿 배출하던[21] 이 팀의 팀컬러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장원삼 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한 투수들이며 무려 4명의 투수신인왕을 배출했다. 1998년 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재영.[22]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쌍방울 레이더스와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해본 두 팀 중 한 팀이다.[23]
2. 구단 디자인
2.1. 엠블럼
현대 유니콘스 역대 엠블럼 | ||||
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24] | 태평양 돌핀스[25] | 현대 유니콘스 |
태평양 돌핀스까지는 전신 구단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엠블럼의 마스코트가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게 유지되어 왔지만 현대 유니콘스부터는 여느 다른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엠블럼을 사용했다. 다만 보조 엠블럼에서는 삼청태와 동일하게 유니콘이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디자인을 사용했다.#
2.2. 유니폼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유니폼 문서 참고하십시오.2.3. 마스코트
또한 말 가면을 쓴 사람과 대결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2007년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등장하지 않는 줄 알았으나...
3. 역사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4. 팬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인기 구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팀으로 전락했지만 그 전까지는 이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꽤 있었고 유명인 중에서도 현대 팬을 자처하던 이들이 있었다.2000년 연고지 이전 이후에도 줄곧 이 팀을 응원했던 유명인으로는 가수 겸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던 김광진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인천광역시 출신의 배우 윤철형도 이 팀의 열성팬이었고 인천 출신인 류현진 또한 과거 이 팀의 어린이회원이었다. 기사에 나오는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친형 류현수씨와 함께 유니콘스 어린이회원 모자 착용 및 유니폼을 입고 있다. 류현진과 동기생인 이재원도 이 팀의 어린이회원이었는데 인천 연고팀 소속의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 현대 구단이 해체되니 만감이 교차했다고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쓰기도 했다.
반면 삼미 시절부터 이 팀의 열혈 팬을 자처했던 개그맨 지상렬, 염경환, 이혁재 등은 2000년 연고지 이전 이후 신생팀인 SK 와이번스로 응원팀을 옮기게 된다.
4.1. 인기
2004년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모인 현대 유니콘스 팬들과 치어리더들 |
12년(1996~2007)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구단 역사에서 무려 8번(1996,1998,2000,2001,2002,2003,2004,2006)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그 중 5번의 한국시리즈 진출(1996,1998,2000,2003,2004),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1998,2000,2003,2004)을 이뤄낸 명문 구단이 됐지만 인기 측면에서는 타 팀에 밀렸던 비인기 구단이었다.
사실 현대도 1995년 말 태평양을 인수해서 인천에 터를 잡고 있던 1999년까지는 인천에서 인기가 꽤 높았던 팀이었다. 유니콘스 시대의 첫 해이자 돌풍을 일으켰던 1996년에는 47만5910명의 관중을 인천과 수원에서 동원하며 1994년에 태평양이 세웠던 프랜차이즈 단일 시즌 최다 관중 기록(47만6277명)을 깰 뻔 했다. 인천이나 수원에서 열리는 주말 홈경기는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중이 많았고 어린이회원 모집 열기도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관중의 숫자가 30만대로 급감하더니 1999년에는 창단 첫 해의 절반 수준으로 홈 관중 수가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팀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던 1998년에도 홈구장인 인천과 수원에서 31만766명의 관중을 동원하는데 그쳤는데 당시 현대의 홈구장 평균 좌석 점유율은 40%대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포수 뒷쪽 지정석과 현대 쪽 내야 응원석에만 관중이 들어오고 나머지 블럭은 사실상 텅텅 비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당시 중계 화면을 봐도 숭의야구장과 수원야구장의 외야 관중석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현대의 관중 동원이 인천에서도 하락세를 탔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숭의야구장이 지나치게 낡고 협소했다는 점이다. 당시 숭의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친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보수 공사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현대가 구단을 인수한 후 그라운드를 뒤엎고 배수 시설을 고친 뒤 인조잔디를 새로 깐 것이 유일한 보수 내역이었다. 더구나 관중석에 대한 시설 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는데 과거 청보 핀토스 시절부터 쓰던 관중석 의자를 계속 쓰다보니 어떤 좌석에서는 의자 지지대가 삭아서 부러진 곳도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 역시 군부대 훈련장이나 낙후된 시골 터미널에서나 볼법한 수준으로 낙후됐다
이렇게 더럽고 낡은 시설에 관중이 스스로 찾아올 리가 만무했기에 현대 구단에서도 경기장 관리권을 지닌 인천시청 측에 경기장에 대한 증축 및 전면 리모델링을 건의했으나 인천시 측에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일설에는 숭의야구장이 당국의 건축 허가를 받지 않고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어서 인천시와 현대 구단 모두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쨌든 심각하게 낡고 좁은 야구장을 시민들이 싫어했기에 열혈팬들이 아니고서는 관중들이 찾지 않는 경기장이 됐다. 다만 2002년에 문학 야구장이 개장한 점을 고려한다면 낡은 야구장 타령은 사실 변명에 불과하다. 야구장 짓는데 2년 가까이 걸리고 계획이 있었다면 수년 전부터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것인데 현대가 이걸 모를리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1997년 말 찾아온 외환 위기의 여파다. 외환 위기로 인해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근로자들이 대거 실직한 상황에서 여유롭게 야구장에서 경기 관람을 즐길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구단의 모기업인 현대그룹은 자금력이 탄탄했지만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의 지갑은 얇아지다 못해 없어질 지경이었다. 하찮은 지출 내역도 모두 줄여야 하는 초긴축 경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축소되는 지출은 여가생활에 대한 지출이었다. 이 때문에 야구장으로 들어오는 관중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IMF 여파는 현대라는 특정 구단만이 아닌 한국야구 전체의 큰 위기 였다. 1995년 KBO리그 창설 최초의 500만명 이상 및 평관 1만명 돌파 이후로 점차 줄어들다가 2000년을 기점으로 푹삭 주저 앉았다.
결국 상대적으로 인천보다 거대한 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수도 서울로 가는 것이 관중 몰이에 적합하다는 2차원의 사고를 가지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천지역에서 흥행 지속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현대 구단은 2000년 1월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현금 54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인천 연고권을 신생 창단팀인 SK 와이번스에게 넘기기로 했는데 이 결정이 결국 얼마 없던 유니콘스의 팬덤을 대거 박살내는 계기가 된다. 현대의 연고지 이전 계획이 언론에 공개되자 분노한 다수의 인천지역 야구 팬들은 현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새 인천팀인 SK를 응원하거나 아예 야구를 끊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그 뒤의 일인데 구단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살림이 어려워지고 당장의 구단 운영비에 여유가 없어진 현대가 SK로부터 받아서 기존 서울 2구단인 LG, 두산에게 줘야 하는 연고지 침해 보상금 54억원을 이미 구단 운영비로 다 써버렸다. 결국 기존 서울 연고팀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현대는 서울 입성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홈경기를 할 수 없게 되자 현대는 제2 홈구장으로 쓰던 수원야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삼았다. 당시 현대는 야구장 안팎에 "수원 현대 유니콘스! 수원시민과 함께 뛰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며 수원시민들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수원시민들은 현대의 이같은 행보를 오히려 냉대했다.
당시 수원시민들은 현대 유니콘스를 그저 "우리 동네에 잠깐 있다가 언젠가 서울로 갈 팀"으로 생각 할 수밖에 없었기에 당시 수원구장 관중석은 늘 비어 있었다. 더구나 당시 수원은 1996년부터 K리그에 참여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의 인기가 막강했던 축구 도시였기에 수원시 입장에서도 뜨내기에 불과했던 현대에 마음을 줄 수 없었다.
결국 한때 막강한 자금력과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을 보유한 명문 팀이었음에도 홈구장 시설의 낙후, 경제 위기에 따른 야구팬들의 경제력 악화, 구단 운영진의 실책 등이 겹치면서 팬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비운의 팀이 되고 말았다.
5. 응원가
5.1. 공식 응원가
현대유니콘스 응원가 (사용년도 : 1996 ~ 2007)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이 함성 모아서 너희에게 주리라 이루자 신화창조를 우리의 희망을 모두 다 모아서 힘차게 달려 보아라 최강의 유니콘스[26] 꿈의 구단 유니콘스 지칠줄 모르는 너희의 용기 최강의 유니콘스 꿈의 구단 유니콘스 패기와 정열의 너희의 이름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이상이다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친구다 현대 유니콘스 너희를 사랑하리라 우리의 현대 유니콘스 |
1996년 창단 때부터 마지막 시즌인 2007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27]응원가를 부른 사람은 디지몬 어드벤처 OP를 불렀던 홍종명이라고 한다. 출처
한 때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응원가 관련 게시물의 댓글에 누군가가 '홍서범-조갑경이 부른 것 같다'라고 개인적인 의견을 적은 것이 갤러리 내에서 와전된 후 꽤 널리 퍼져 사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게다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홍서범은 LG 트윈스가 지면 다음날 집안 분위기가 개판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LG 트윈스의 광팬이다. 때문에 1996년 창단 당시 현대 구단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응원가 녹음 제안을 했다고 하더라도 LG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한 홍서범이 수긍을 했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서울 히어로즈 창단 초기에는 이 응원가의 현대! 유니콘스! 부분을 최강! 히어로즈!로 바꿔서 부르기도 했으나 원곡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여러 논란들이 겹치며 폐기처분돼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5.2. 비공식 응원가
자세한 내용은 연안부두(노래) 문서 참고하십시오.연안부두 (사용년도 : 1996 ~ 1999)[계승]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빠라바라밤~ 빠바밤 빠라바라밤~ 빠바바밤~ 빠바바바바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안개 속에~ 가물가물~ 정든 사람 손을 흔드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 선 이 마음을 달래주는데~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
5.3. 리듬응원 및 선수 응원가
(정보 있는것들만)- 강병식: (홍하의 골짜기) 우리가 원하는건~ 홈!런! 힘차게 홈런을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홈런 날려~ 힘차게 홈런을 날려라~ 홈런!
- 브룸바: (SK 시절 박재홍 구호) 현!대! 브!룸!바! 홈!런!타!자! 브!룸!바! X2 브!룸!바! 화이팅!
- 이택근: (369송) 이~택근 이택근 이~택근 이택근 안~타! 이!택!근! X2
- 박경완: (Ole Ole) 홈런~ 홈런 홈런 홈런~ 박경완~ 박경완~ x2
- 안타송: (원곡불명) (딴다단다따단~) OOO 안타!(홈런!) (딴따다다다다다다단) OOO 안타!(홈런!) X2
- 리듬응원1: (캉캉) (딴 따다다다 딴딴 따다다다 단단 따다다다) 막!강!현!대! X2 막! 강! 현! 대!
- 리듬응원2: (순정) 워어어~ (현!) 워어어~ (대!) 워어 워어어 워어어~ (현대!) X2
- 견제응원: (쿵쿵!) 에이씨! (쿵쿵!) 에이씨! (쿵쿵!) 에이씨!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던져!
- 박수구호: (짝짝짝! 짝짝! 짝짝짝!) 현대! X2
6. 역대 선수 및 인물
6.1. 주요 선수
현역 선수 및 기타 야구인으로 활동 중인 경우에는 비고란에 표기하였다.기준 현재 남아있는 현대 출신 현역 선수들은 총 4명이다.[29]
6.1.1. 투수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47 | 가내영 | 투수 | 1990(태평양) | 1990~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2003(KIA) | |
68 | 김동건 | 2004(현대) | 2004~2005 | 2005(현대) | ||
67 | 김민범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07(현대) | 키움 히어로즈 원정기록원 | |
50 | 김영민 | 2006(현대) | 2006~2007 | 2021(SSG) | ||
93 | 김익재 | 1991(OB) | 1996~1999(현대) | 1999(현대) | ||
66 | 김선일(小) | 2004(현대) | 2004~2006(현대) | 2006(현대) | ||
45 | 김성태(투수) | 2000(현대) | 2000~2007 | 2014(넥센) | ||
30 | 김수경 | 1998(현대) | 1998~2007 | 2014(고양) |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 |
11 | 김홍집(좌완투수)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2001.6(현대) | 2003(한화) | 부평구 리틀야구단 감독 | |
48~34 | 노병오 | 2002(삼성) | 2004~2007 | 2007(넥센) | 키움 히어로즈 1군 투수코치 | |
50 | 노환수 | 2003(현대) | 2003~2007 | 2013(넥센) | 수원시 야구레슨장 코치 | |
57 | 류상문 | 2003(현대) | 2003~2005 | 2005(현대) | ||
29 | 마일영 | 2000(현대) | 2000~2007 | 2015(한화) |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 |
93 | 박민주 | 2007(현대) | 2007 | 2018 (NC)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 |
38 | 박상진 | 2004(현대) | 2004~2006 | 2006(현대) | ||
60 | 박장희 | 1999(현대) | 1999~2007 | 2008(우리) | 두산 베어스 스카우트팀 차장 | |
21 | 박정현 | 1988(태평양) | 1988~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2000(SK) | 토론토 사회인 야구리그 (MPBL) 감독 겸 선수 | |
49-27 | 박준수 | 2000(현대) | 2000~2007 | 2012(KIA) |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 |
21 | 배힘찬 | 2002(현대) | 2002~2007(현대) | 2017(KIA) | ||
23 | 신철인 | 2000(현대) | 2000~2007 | 2010(넥센) | 하남시 야구교실 운영 | |
34 | 설의석 | 2001(현대) | 2001~2005 | 2005(현대) | ||
21 | 손승락 | 2005(현대) | 2005~2007 | 2019(롯데) |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 |
53 | 송선목 | 2002(현대) | 2002 | 2002(현대) | ||
14-19 | 송신영 | 1999(현대) | 1999~2007 | 2017(한화) | SSG 랜더스 1군 수석코치 | |
29 | 안병원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2003(LG) |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 |
47 | 오성민 | 2005(현대) | 2005~2007 | 2013(두산) | 김해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 |
59 | 오재영 | 2004(현대) | 2004~2007 | 2021(키움) | 키움 히어로즈 잔류군 투수코치 | |
33-59-55 | 이대환 | 2002(현대) | 2002~2007 | 2015(NC) | ||
65 | 이근용 | 1997(현대) | 1997~1998,2001(이상 현대) | 2001(현대) | ||
65 | 이동학 | 2000(현대) | 2000~2007 | 2014(LG) | 상인천중학교 야구부 코치 | |
42 | 이보근 | 2005(현대) | 2005~2007 | 2021(kt) | ||
11 | 이상열 | 1996(한화) | 2001~2007 | 2015(SK) | 포천 몬스터 투수코치 | |
52 | 이상현[30] | 2000(현대) | 2000~2005 | 2008(우리) | ||
25 | 이정호 | 2001(삼성) | 2005~2007 | 2010(넥센) |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 |
29-48 | 이현승 | 2006(현대) | 2006-2007 | 2022(두산) | ||
91-22 | 우원식 | 2004(현대) | 2004~2005 | 2005(현대) | ||
18 | 위재영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2004(현대) | 2007(SK) | ||
56 | 윤성귀 | 2002(현대) | 2002~2004,2007(현대) | 2007(현대) | ||
54 | 임선동 | 1997(LG) | 1999~2007 | 2007(현대) | 진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 |
55 | 장원삼 | 2006(현대) | 2006~2007 | 2020(롯데) | ||
38 | 장태종 | 2006(현대) | 2006~2007(현대) 2008~2009(우리) 2010~2011(넥센) | 2011(넥센) | ||
40 | 전승윤 | 2005(현대) | 2005-2007 | 2022(kt) | ||
61 | 전준호(1975) | 1994(태평양) | 1994~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11(SK) | ||
28 | 정명원 | 1989(태평양) | 1989~1995(태평양) 1996~2000(현대) | 2000(현대) | ||
20 | 정민태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08(KIA) |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 |
21-27 | 조규제 | 1991(쌍방울) | 1998~2000 2003(이상 현대) | 2005(KIA) | 제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 |
51 | 조용준 | 2002(현대) | 2002~2007 | 2010(넥센) | ||
57 | 조용훈 | 2006(현대) | 2006~2007 | 2013(넥센) | ||
41 | 조웅천 | 1990(태평양) | 1989~1995(태평양) 1996~2000(현대) | 2009(SK) |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 |
64 | 조창훈 | 1997(현대) | 1997~1999 | 1999(현대) | ||
98 | 최동진 | 1999(현대) | 1999~2002 | 2002(현대) | ||
18 | 최영필[31] | 1997(현대) | 1997~2001.6(현대) | 2017(KIA) |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야구부 감독 | |
45 | 최원호 | 1996(현대) | 1996~1999(현대) | 2010(LG) | 한화 이글스 1군 감독 | |
31 | 최창호 | 1987(청보) | 1987(청보) 1988~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2002(LG) |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 |
40 | 최환인 | 2002(현대) | 2002~2004 | 2006(롯데) | 前 동산고등학교 코치 | |
16 | 홍민구 | 1998(현대) | 1998~2001 | 2001(현대) | ||
45 | 황두성 | 1997(삼성) | 2001~2007(현대) | 2011(넥센) |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현재 소속팀 |
18 | 장효훈 | 투수 | 2007(현대) | 2007 | 한화 이글스(2020~) |
6.1.2. 포수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12 | 강귀태 | 포수 | 2002(현대) | 2002~2007(현대) | 2013(KIA) | |
35 | 김동기 | 1986(청보) | 1986~1987(청보) 1988~1995(태평양) 1996(현대) | 1996(현대) | 천안 야구교실 운영 | |
2 | 김상국 | 1986(빙그레) |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2 | 김동수 | 1990(LG) | 2003~2007(현대) | 2009(히어로즈) |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 |
32 | 김성준(포수)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1999(현대) | 1999(현대) | ||
12 | 김성태 | 1994(태평양) | 1994~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1998(현대) | ||
2-56 | 김필중 | 1998(현대) | 1998~2004 | 2004(현대) |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배터리코치 | |
15 | 도명진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현대) | 1996(현대) | 부천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 |
26 | 박경완 | 1991(쌍방울) | 1998~2002(현대) | 2013(SK) | LG 트윈스 1군 배터리코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 | |
22 | 유선정 | 2005(현대) | 2006~2007 | 2016(넥센) | 여주ID 베이스볼 클럽 감독 | |
26 | 임태준 | 2007(현대) | 2007 | 2019(질롱) | ||
25 | 장광호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1999,2001(현대) | 2001(현대) | 덕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 |
53 | 정재엽 | 2003(현대) | 2003~2006 | 2006(현대)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 |
24-37 | 허웅 | 2002(현대) | 2002~2005 | 2017(SK) | ||
44 | 허준 | 2005(현대) | 2005~2007 | 2014(NC) | 백송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
6.1.3. 내야수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 | 2루수 | 1989(삼성) | 1996 | 1996(현대) | |
25-17 | 강정호 | 유격수 | 2006(현대) | 2006~2007 | 2019(PIT) | [33] |
52 | 권도영 | 내야수 | 2003(현대) | 2003~2007 | 2011(넥센) | 키움 히어로즈 2군 수비코치 |
55 | 권준헌 | 3루수, 투수[34] | 1990(태평양) | 1990~1995(태평양) 1996~2003(현대) | 2008(한화) | |
00 | 김경기 | 1루수, 3루수 | 1990(태평양) | 1990~1995(태평양) 1996~2000 시즌 중(현대) | 2001(SK) | 우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
14 | 김남형 | 내야수, 우익수 | 2007(현대) | 2007 | 2014(넥센) |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
김동현 | 내야수 | 1996(현대) | 1996~1999(현대) | 1999(현대) | ||
14 | 김승권 | 내야수 | 1995(한화) | 2005~2006 | 2006(현대) | |
0-5 | 김일경 | 내야수(2루) | 1997(현대) | 1997~2007 | 2013(LG) |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
3 | 김민우 | 내야수, 좌익수 | 2002(현대) | 2002~2004 | 2016(KIA) | |
17 | 톰 퀸란 | 3루수 | 1987(토론토) | 2000~2001(현대) | 2002(LG) | |
31 | 박종호 | 2루수 | 1992(LG) | 1998~2003(현대) | 2010(LG) | 백송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
7 | 박진만 | 유격수 | 1996(현대) | 1996~2004(현대) | 2015(SK) | 삼성 라이온즈 감독 |
12 | 스캇 쿨바[35] | 3루수 | 1989(텍사스) | 1998 | 1999(투손) | |
3 | 신현철 | 유격수, 2루수, 3루수 | 2006(현대) | 2006~2007 | 2017(kt) | 비봉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
9 | 손차훈 | 2루수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1999(현대) | 2001(SK) | 한화 이글스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 |
7 | 서한규 | 내야수 | 1998(롯데) | 2002~2007(현대) | 2007(현대)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야구부 감독 |
56 | 안명성 | 내야수 | 1996(현대) | 1996~1998 | 1998(현대) | |
12-5 | 염경엽[36] | 유격수 | 1991(태평양) | 1991~1995(태평양) 1996~2000(현대) | 2000(현대) | LG 트윈스 감독 |
92-66 | 유덕형 | 내야수 | 2005(현대) | 2005~2007 | 2007(현대) | KBO 리그 심판 |
68 | 유재신 | 내야수[37] | 2006(현대) | 2006~2007 | 2020(KIA) | 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코치 |
9 | 이근엽 | 3루수 | 1991(태평양) | 1991~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9(쌍방울) | |
10 | 이숭용[38] | 1루수, 외야수 | 1994(태평양) | 1994~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11(넥센) | SSG 랜더스 감독 |
37 | 이재주 | 포수,내야수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2001(현대) | 2009(KIA) | |
4 | 이명수 | 1루수, 2루수 | 1989(OB) | 1998~2001(현대) | 2001(현대) | |
6 | 이용주 | 내야수 | 1995(태평양) | 1996~2002(현대) | 2002(현대) | 제물포고등학교 감독 |
50 | 이유섭 | 내야수 | 2003(현대) | 2003~2005 | 2008(우리) | |
3-31 | 장교성 | 3루수 | 2000(현대) | 2000~2001,2004~2005 | 2006(두산) | 건국대학교 야구부 코치 |
35 | 조승현 | 내야수 | 1997(현대) | 1997~1999,2000~2006 | 2006(현대) | |
17 | 조중근 | 1루수, 좌익수 | 2001(SK) | 2007 시즌 중 ~ 종료(현대) | 2015(kt) | kt wiz 2군 타격코치 |
58 | 조평호 | 내야수 | 2004(현대) | 2004~2007 | 2018(NC) | 안산중앙중학교 야구부 코치 |
16 | 정성훈 | 1루수 | 1999(해태) | 2003~2007 | 2018(KIA) | |
6 | 지석훈 | 2루수, 3루수, 유격수 | 2003(현대) | 2003~2007 | 2021(NC) | NC 다이노스 2군 수비코치 |
7 | 차화준 | 내야수 | 2005(현대) | 2005~2007 | 2017(삼성) | |
15-9 | 채종국 | 유격수, 2루수 | 1998(현대) | 1998~2007 시즌 중 | 2008(LG) |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
3 | 홍원기 | 3루수 | 1996(한화) | 2006~2007 | 2007(현대) | 키움 히어로즈 감독 |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현재 소속팀 |
34 | 오재일 | 1루수 | 2005(현대) | 2005~2007 | kt wiz(2024~) |
94 | 정훈 | 2루수 | 2006(현대) | 2006~2007 | 롯데 자이언츠(2010~) |
13 | 황재균 | 3루수, 유격수 | 2006(현대) | 2006~2007 | kt wiz(2018~) |
6.1.4. 외야수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25-36 | 강병식 | 1루수, 우익수 | 2002(현대) | 2002~2007 | 2012(넥센) | SSG 랜더스 타격코치 |
44 | 강영수(大) | 외야수 | 1989(삼성) | 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8(쌍방울) | |
33 | 강필선 | 외야수 | 1999(현대) | 1999~2001 | 2003(롯데) | 야로 베이스볼 클럽 코치 |
36 | 공의식 | 외야수 | 1993(태평양) | 1993(태평양), 1996~1997 시즌 중(현대) | 1997(쌍방울) | 유원대학교 야구부 감독 |
14 | 김갑중 | 외야수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1999(쌍방울) | |
16-33 | 김광림 | 외야수 | 1984(OB) | 1997~1998 | 1999(쌍방울) | 분당구B 리틀야구단 감독 |
42 | 김낙관 | 외야수 | 1997(현대) | 1997~1999(현대) | 1999(현대) | |
8 | 김인호 | 내야수, 외야수 | 1989(롯데) | 1990~1995(태평양) 1996~2001(현대) | 2001(현대) | |
8 | 김병철 | 외야수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33 | 래리 서튼 | 외야수 | 1992(캔자스) | 2005 | 2007(KIA) | |
44 | 박기범 | 외야수 | 1999(현대) | 1999~2000,2003~2004 | 2004(현대) | 동산중학교 야구부 감독 |
14 | 박우호 | 외야수 | 2002(현대) | 2002~2004 | 2005(현대) | |
62 | 박재홍 | 중견수, 우익수 | 1996(현대) | 1996~2002(현대) | 2012(SK) | MBC SPORTS+ 해설위원 |
27 | 서성민 | 우익수 | 1999(현대) | 1999~2002 | 2002(현대) | |
36 | 소중형 | 좌익수 | 2002(현대) | 2002~2005 | 2005(현대) | |
14 | 심재학 | 우익수 | 1995(LG) | 2000 | 2008(KIA) | KIA 타이거즈 단장 |
44-32 | 심정수 | 3루수, 좌익수, 우익수 | 1994(OB) | 2001~2004 | 2008(삼성) | |
17-25 | 송지만 | 외야수 | 1996(한화) | 2004~2007 | 2014(넥센) |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
3 | 윤덕규 | 외야수 | 1985(MBC) | 1992(시즌 중)~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44 | 윤인섭 | 외야수 | 2000(현대) | 2000,2002 | 1992(현대) | |
32 | 오윤 | 외야수 | 2000(현대) | 2000~2007 | 2015(한화) | 키움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
39 | 유한준 | 유격수, 외야수 | 2004(현대) | 2004~2007 | 2021(kt) | kt wiz 1군 타격 보조 코치. |
46 | 이승주 | 외야수 | 2004(현대) | 2004~2007 | 2013(고양) | |
39 | 이종욱 | 외야수 | 2003(현대) | 2003~2005 | 2018(NC) | NC 다이노스 1군 작전·주루코치 |
42-31 | 이택근 | 포수, 1루수, 외야수 | 2003(현대) | 2003~2007 | 2020(키움) [39] | 파주 챌린저스 타격 코디네이터 |
63 | 이학균 | 좌익수 | 1998(현대) | 1998~2000 | 2000(현대) | |
51 | 이희성 | 외야수 | 1989(태평양) | 1989~1995(태평양) 1996(현대) | 1997(삼성) | |
47 | 장기영 | 유격수 | 2001(현대) | 2001~2007 | 2018(한화) | |
62 | 장요상 | 우익수 | 2004(현대) | 2004~2005 | 2005(현대) | |
46 | 장정석 | 외야수 | 1996(현대) | 1996~2002 | 2004(KIA) | |
64 | 전근표 | 외야수 | 2000(현대) | 2000~2007 | 2010(한화) | SDF 투칸스 U-16 감독 |
1 | 전준호 | 좌익수, 중견수 | 1991(롯데) | 1997~2007 | 2009(히어로즈) | KBS N SPORTS 해설위원 |
8 | 정수성[40] | 우익수, 중견수 | 1997(현대) | 1997~2007(현대) | 2013(넥센) | LG 트윈스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
63 | 정현택 | 좌익수 | 1998(LG) | 2001(시즌 중)~2002 (이상 현대) | 2003(KIA) | |
17 | 정현희 | 외야수 | 1999(현대) | 1999~2000 | 2000(현대) | |
13 | 조재호 | 외야수 | 1998(현대) | 1998~2005 | 2012(SK) | 상무 피닉스 야구단 주루코치 |
24 | 최만호 | 외야수 | 1997(현대) | 1997~2000 | 2009(롯데) | kt wiz 1군 작전·주루코치 |
46-33 | 최익성 | 외야수 | 1994(삼성) | 2002~2003 | 2005(SK) | |
4 | 최현종 | 외야수 | 2004(현대) | 2004~2005 | 2012(LG) | |
24 | 클리프 브룸바 | 3루수, 외야수 | 2001(텍사스) | 2003~2004, 2007 | 2009(히어로즈) |
6.1.5. 역대 외국인 선수
- USA: 미국
- DOM: 도미니카 공화국
- VEN: 베네수엘라
년도 | 이름 | 국적 | 포지션 | |
1998 | 조 스트롱(Joe Strong) | USA | 투수 | |
스캇 쿨바(Scott Coolbaugh) | USA | 내야수 | ||
1999 | 에디 피어슨(Eddie Pearson) | USA | 내야수 | |
조지 카날리(George Canale)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브렌트 바워스(Brent Bowers)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 |
2000 | 톰 퀸란(Tom Quinlan) | USA | 내야수 | |
에디 윌리엄스(Eddie Williams)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대릴 브링클리(Darryl Brinkley)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시즌중 방출 | |
찰스 카펜터(Charles Carpenter)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 |
2001 | 케리 테일러(Kerry Tayler) | USA | 투수 | |
톰 퀸란(Tom Quinlan) | USA | 내야수 | ||
J. R. 필립스(J. R. Philips)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오스카 엔리케스(Oscar Henriquez) | VEN | 투수 | ↖ 대체 영입 | |
2002 | 멜키 토레스(Melqui Torres) | DOM | 투수 | |
코리 폴(Corey Paul) | USA | 내야수 | ||
다리오 베라스(Dario Veras) | DOM | 투수 | 시즌중 방출 | |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 USA | 내야수 | ↖ 대체 영입 | |
2003 | 셰인 바워스(Shane Bowers) | USA | 투수 | |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 |
2004 |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 USA | 외야수 | |
마이클 피어리(Mike Fyhrie) | USA | 투수 | ||
2005 | 래리 서튼(Larry Sutton) | USA | 외야수 | |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 USA | 투수 | ||
2006 | 래리 서튼(Larry Sutton) | USA | 외야수 | |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 USA | 투수 | ||
2007 |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 USA | 외야수 | |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 USA | 투수 | 시즌중 방출 |
6.1.6. 역대 등번호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등번호 문서 참고하십시오.6.1.7. 해체 당시 선수단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선수단 문서 참고하십시오.6.2. 역대 구단주
<rowcolor=#373a3c,#212121> 구단명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삼미 슈퍼스타즈 | 김현철 | 1982년~1985년 | 삼미그룹 회장 |
구단명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청보 핀토스 | 김정우 | 1985년~1987년 | 청보식품 회장 |
구단명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태평양 돌핀스 | 서성환 | 1988년~1995년 | 태평양그룹 회장 |
구단명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현대 유니콘스 | 정몽헌 | 1996년~2003년 | 현대그룹 회장 2003년 별세 이후 구단주 공석[41] |
6.3.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7f55> | 현대 유니콘스 역대 감독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1982년 ~ 2007년 | ||||
<rowcolor=#b21528> 초대 (삼미 초대) |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 ||||
박현식 (1982) | 감독 대행 이선덕 (1982) | 김진영1 (1983, 1984~1985) | 감독 대행 이재환 (1983) | ||
<rowcolor=#b21528>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 3대 (청보 2대) | ||||
감독 대행 이선덕 (1983) | 감독 대행 박현식 (1983) | 감독 대행 신용균 (1985) | 허구연 (1986) | ||
<rowcolor=#fff> 3대 (청보 2대) | 4대 (청보 2대, 태평양 초대) | 5대 (태평양 2대) | |||
감독 대행 강태정 (1986) | 강태정 (1987~1988) | 감독 대행 임신근 (1988) | 김성근 (1989~1990) | ||
<rowcolor=#ff9933> 6대 (태평양 3대) | 7대 (태평양4대) | 8대 (현대 초대) | 9대 (현대 2대) | ||
박영길 (1991) | 정동진 (1992~1995) ☆ | 김재박 (1996~2006) ☆ ★ ★ ★ ★ | 김시진 (2007) | ||
윗첨자1 : 김진영 감독이 1983년 중반 폭행 사건으로 인해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고 이재환, 이선덕 코치, 박현식 고문이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 1985년에는 18연패로 인해 신용균 코치가 임시로 대행을 맡았고 모기업이 청보로 넘어가자 다시 복귀했다. |
<rowcolor=#373a3c,#212121>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삼미 슈퍼스타즈 | 초대 | 박현식 | 1982년 | 13전 3승 0무 10패 (승률 0.230) | |
감독대행 | 이선덕 | 1982년 | 67전 12승 0무 55패 (승률 0.179) | ||
2대 | 김진영 | 1983년~1985년 | 153전 61승 3무 89패 (승률 0.407) | ||
감독대행 | 이재환 | 1983년 | 14전 5승 0무 9패 (승률 0.357) | [42] | |
감독대행 | 이선덕 | 1983년 | 30전 17승 0무 13패 (승률 0.567) | ||
감독대행 | 박현식 | 1983년 | 20전 8승 1무 11패 (승률 0.421) | [43] | |
감독대행 | 신용균 | 1985년 | 38전 14승 0무 24패 (승률 0.368) | [44] | |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청보 핀토스 | 초대 | 김진영 | 1985년 | 55전 24승 1무 30패 (승률 0.444) | [45] |
2대 (통산 3대) | 허구연 | 1986년 | 57전 15승 2무 40패 (승률 0.273) | [46] | |
감독대행 | 강태정 | 1986년 | 51전 17승 0무 34패 (승률 0.333) | ||
3대 (통산 4대) | 1987년 | 108전 41승 2무 65패 (승률 0.389) | [47] | ||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태평양 돌핀스 | 초대 | 강태정 | 1988년 | 15전 1승 0무 14패 (승률 0.066) | [48] |
감독대행 | 임신근 | 1988년 | 93전 33승1무 59패 (승률 0.357) | ||
2대 (통산 5대) | 김성근 | 1989년~1990년 | 240전 120승 7무 113패 (승률 0.515) | 1989년 플레이오프 진출 | |
3대 (통산 6대) | 박영길 | 1991년 | 126전 55승 2무 69패 (승률 0.444) | ||
4대 (통산 7대) | 정동진 | 1992년~1995년 | 504전 206승 21무 277패 (승률 0.427) | 199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 |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현대 유니콘스 | 초대 (통산 8대) | 김재박 | 1996년~2006년 | 1427전 778승 36무 613패 (승률 0.559) | 199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1년 플레이오프 진출 2002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4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6년 플레이오프 진출 |
2대 (통산 9대) | 김시진 | 2007년 | 126전 56승 1무 69패 (승률 0.448) |
7. 역대 기록
7.1. 구단 성적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007f55> | 현대 유니콘스 역대 시즌 (삼미, 청보, 태평양 시절 포함) |
{{{#!wiki style="color:#FAB93D; margin: -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982 | 1983 | 1984 | 1985(전) | 1985(후) |
6위 | 3위 전기 2위 후기 공동 2위 | 6위 | 6위 | 6위 후기 4위 | |
1986 | 1987 | 1988 | 1989 | 1990 | |
6위 전기 6위 후기 7위 | 7위 전기 7위 후기 5위 | 7위 전기 6위 후기 7위 | 3위 | 5위 |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
5위 | 6위 | 8위 | 2위 | 7위 |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
2위 | 6위 | '''1위 ''' | 드림 3위 | '''1위 ''' |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
3위 | 4위 | '''1위 ''' | '''1위 ''' | 7위 | |
2006 | 2007 | ||||
3위 | 6위 | ||||
■: 우승|■: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82 | 6위/6팀[49] | 6위 | 삼미 슈퍼스타즈 | 80 | 15 | 0 | 65 | 0.188 |
1983 | 3위/6팀[50] | 3위 | 100 | 52 | 1 | 47 | 0.525 | |
1984 | 6위/6팀[51] | 6위 | 100 | 38 | 3 | 59 | 0.392 | |
1985[52] | 6위/6팀[53] | 6위 | 삼미 / 청보 | 110 | 39 | 1 | 70 | 0.358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 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86 | 6위/7팀[54] | 6위 | 청보 핀토스 | 108 | 32 | 2 | 74 | 0.302 |
1987 | 7위/7팀[55] | 7위 | 108 | 41 | 2 | 65 | 0.389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 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88 | 7위/7팀[56] | 7위 | 태평양 돌핀스 | 108 | 34 | 1 | 73 | 0.319 |
1989 | 3위/7팀 | 3위 | 120 | 62 | 4 | 54 | 0.533 | |
1990 | 5위/7팀 | 5위 | 120 | 58 | 3 | 59 | 0.496 | |
1991 | 5위/8팀 | 5위 | 126 | 55 | 2 | 69 | 0.444 | |
1992 | 6위/8팀 | 6위 | 126 | 56 | 3 | 67 | 0.456 | |
1993 | 8위/8팀 | 8위 | 126 | 34 | 10 | 82 | 0.310 | |
1994 | 2위/8팀 | 준우승 | 126 | 68 | 3 | 55 | 0.552 | |
1995 | 7위/8팀 | 7위 | 126 | 48 | 5 | 73 | 0.401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 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96 | 4위/8팀 | 준우승 | 현대 유니콘스 | 126 | 67 | 5 | 54 | 0.552 |
1997 | 6위/8팀 | 6위 | 126 | 51 | 4 | 71 | 0.421 | |
1998 | 1위/8팀 | 우승 | 126 | 81 | 0 | 45 | 0.643 | |
1999 | 드림 3위/4팀 | 드림 3위 | 132 | 68 | 5 | 59 | 0.535 | |
2000 | 드림 1위/4팀 | 우승 | 133 | 91[57] | 2 | 40 | 0.695[58] | |
2001 | 2위/8팀 | 3위[59] | 133 | 72 | 4 | 57 | 0.558 | |
2002 | 3위/8팀 | 4위[60] | 133 | 70 | 5 | 58 | 0.547 | |
2003 | 1위/8팀 | 우승 | 133 | 80 | 2 | 51 | 0.611 | |
2004 | 1위/8팀 | 우승 | 133 | 75 | 5 | 53 | 0.586 | |
2005 | 7위/8팀 | 7위 | 126 | 53 | 3 | 70 | 0.431 | |
2006 | 2위/8팀 | 3위[61] | 126 | 70 | 1 | 55 | 0.560 | |
2007 | 6위/8팀 | 6위 | 126 | 56 | 1 | 69 | 0.448 | |
KBO 리그 통산 26시즌 | V4 | 3137 | 1466 | 77 | 1594 | 0.479 |
7.1.1.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 89준PO : 2승 1패 00PO : 4승 04KS : 4승 3무 2패 | 준PO 1승, PO 1승,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10승 3무 3패 |
KIA 타이거즈 | 89PO : 3패 96KS : 2승 4패 |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2승 7패 |
한화 이글스 | 94PO : 3승 96준PO : 2승 06PO : 1승 3패 | 준PO 1승,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6승 3패 |
LG 트윈스 | 94KS : 4패 98KS : 4승 2패 02준PO : 2패 | 준PO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
쌍방울 레이더스 | 96PO : 3승 2패 |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
두산 베어스 | 00KS : 4승 3패 01PO : 1승 3패 | PO 1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6패 |
SK 와이번스 | 03KS : 4승 3패 |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3패 |
7.2.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청태현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이므로 1982년부터 2007년까지의 기록만 서술한다.7.2.1. 통산
7.2.1.1. 투수
부분 | 이름 | 기록 | 삼청태현 소속 |
등판경기 | 정명원 | 395경기 | 1989~2000 |
선발등판 | 정민태 | 269경기 | 1992~2000, 2003~2007 |
완투 | 장명부 | 61완투 | 1983~1985 |
완봉 | 양상문 | 9완봉 | 1987~1993 |
ERA | 정명원 | 2.56 | 1989~2000 |
승리 | 정민태 | 124승 | 1992~2000, 2003~2007 |
패전 | 정민태 | 95패 | 1992~2000, 2003~2007 |
세이브 | 정명원 | 142세이브 | 1989~2000 |
홀드 | 이상열 | 50홀드 | 2001~2007 |
이닝 | 정민태 | 1827.1이닝 | 1992~2000, 2003~2007 |
탈삼진 | 정민태 | 1275개 | 1992~2000, 2003~2007 |
피안타 | 정민태 | 1774개 | 1992~2000, 2003~2007 |
피홈런 | 정민태 | 157개 | 1992~2000, 2003~2007 |
볼넷 | 김수경 | 644개 | 1998~2007 |
사구 | 김신부 | 61개 | 1986~1989 |
7.2.1.2. 타자
부분 | 이름 | 기록 | 삼청태현 소속 |
출장경기 | 이숭용 | 1566경기 | 1994~2007 |
타율 | 박재홍 | 0.292 | 1996~2002 |
출루율 | 박재홍 | 0.383 | 1996~2002 |
장타율 | 박재홍 | 0.526 | 1996~2002 |
타석 | 이숭용 | 5803타석 | 1994~2007 |
타수 | 이숭용 | 4970타수 | 1994~2007 |
안타 | 이숭용 | 1403안타 | 1994~2007 |
2루타 | 이숭용 | 278개 | 1994~2007 |
3루타 | 전준호 | 49개 | 1997~2007 |
홈런 | 박재홍 | 176홈런 | 1996~2002 |
타점 | 이숭용 | 736타점 | 1994~2007 |
득점 | 전준호 | 717득점 | 1997~2007 |
도루 | 전준호 | 289도루 | 1997~2007 |
볼넷 | 이숭용 | 626개 | 1994~2007 |
사구 | 이숭용 | 105개 | 1994~2007 |
삼진 | 이숭용 | 728개 | 1994~2007 |
7.2.2. 단일 시즌
굵은 글씨는 역대 최고 기록.7.2.2.1. 투수
부분 | 이름 | 기록 | 시즌 |
등판경기 | 이상열 | 81경기 | 2004 |
선발등판 | 장명부 | 44선발 | 1983 |
완투 | 장명부 | 36완투 | 1983 |
완봉 | 장명부 | 5완봉 | 1983 |
ERA | 정명원 | 1.86 | 1998 |
승리 | 장명부 | 30승 | 1983 |
패전 | 장명부 | 25패 | 1985 |
세이브 | 정명원 | 40세이브 | 1994 |
홀드 | 이상열 | 21홀드 | 2004 |
이닝 | 장명부 | 427.1이닝 | 1983 |
탈삼진 | 장명부 | 220개 | 1983 |
피안타 | 장명부 | 388개 | 1983 |
피홈런 | 감사용, 김수경 | 25개 | 1982, 2002 |
볼넷 | 최창호 | 114개 | 1989 |
사구 | 김신부, 멜퀴 토레스 | 21개 | 1986, 2002 |
7.2.2.2. 타자
부분 | 이름 | 기록 | 시즌 |
출장경기 | 톰 퀸란, 심정수, 이숭용 | 133경기 | 2000, 2002, 2003, 2004 |
타율 | 클리프 브룸바 | 0.343 | 2004 |
출루율 | 심정수 | 0.478 | 2003 |
장타율 | 심정수 | 0.720 | 2003 |
타석 | 심정수 | 601타석 | 2003 |
타수 | 이숭용 | 511타수 | 2003 |
안타 | 클리프 브룸바 | 163안타 | 2004 |
2루타 | 박재홍 | 31개 | 2000 |
3루타 | 전준호 | 8개 | 2002 |
홈런 | 심정수 | 53홈런 | 2003 |
타점 | 심정수 | 142타점 | 2003 |
득점 | 심정수 | 110득점 | 2003 |
도루 | 김일권 | 62도루 | 1989 |
볼넷 | 심정수 | 124개 | 2003 |
사구 | 박종호 | 31개 | 1999 |
삼진 | 톰 퀸란 | 173개 | 2000 |
8. 역대 캐치프레이즈
- 1996년 ~ 1997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62]
- 1998년: 도전! '98!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1999년: 도전! 2연패!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0년: 정상 새천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1년: 정상 2001!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2년: 도전 2002!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3년: 새로운 도전! 승리의 이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4년: 불패신화! 끝없는 도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5년: 멋진 승리, 끝없는 도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6년: 도전! 열정! 투혼!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7년: 새로운 각오! 새로운 신화!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9.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여담
- 최훈이 GM에서 수원 램스의 기본 컨셉을 이 팀에서 가져왔고, 램스라는 이름은 세인트루이스 램스에서 따왔다. 다만 후속작인 클로저 이상용에서는 넥센 히어로즈 쪽을 참고한걸로 보인다.
- 2020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삼청태현의 구단역사에서 현대 유니콘스 시절만 따로 계산하면 KBO 리그에 존재했던 모든 구단 가운데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에게 역대 상대 전적에서 앞서고 있는 유일한 구단이 된다. 현대 시절의 삼성 상대전적은 121승 6무 94패.[63] 특히 조용준과 미키 캘러웨이는 해체된 지 시간이 좀 흐른 지금에도 삼성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삼성 상대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자랑했다.2004년 어린이날에 진행된 경기는 삼성에 9회까지 8-4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연장까지 끌고가서 끝내 14-10으로 승리를 가져갔는데 그 충격의 여파로 '창단 후 10연패'라는 흑역사를 열게 한 시발점으로 삼성팬들에게 회자되고 있고, 같은해 한국시리즈에서는 배영수가 10이닝을 노히트 노런으로 끌고 갔어도 결국 경기를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도 있는데다, 이 시리즈에서 배영수의 글러브 패대기 장면을 만들었던 당시 무명선수급 인지도였던 백업 전근표의 한 방까지 나왔다. 그러다보니 현대가 삼성을 상대로 루징시리즈를 기록했던 시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팬들의 각인으로는 항상 안풀리거나 발목을 잡는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를 꼽아서 회자하곤 한다. 삼성팬 중에서는 이러한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현대 선수단은 유명선수 무명선수 신인 베테랑 할 것 없이 전부 삼나쌩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팬도 있었을 정도다. 정규 시즌 이외에도 2000년 플레이오프 현대 4전 전승, 2004년 한국시리즈 현대 4승 3무 2패 등 삼성은 현대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는 당시 유니콘스의 프론트가 동종업계 라이벌이었던 삼성과의 승부결과에 굉장히 민감했고, 이에 따른 추가적인 인센티브까지 부여해서 따로 격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64]
- 반대로 LG 트윈스에게는 삼청태 시절이나 현대 시절이나 꾸준히 약했다. LG가 비밀번호를 찍던 때에도 밀렸으며, 1994년 한국시리즈와 2002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스윕을 당했으며,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우승했지만 상대전적에서 밀렸다.(7승 11패)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2000년에도 가장 고전한 팀이 LG였다.[65]
- 특이하게 해체될 때까지 같은 범현대가인 KIA 타이거즈와 포스트 시즌에서 붙어본 적이 없었다. 2002~2004년, 2006년에 가을야구에 동반 진출을 한 적은 있었으나 모두 교묘하게 대진이 빗겨나갔다.[66][67]
- SK그룹이 2012년에 이 구단의 모기업이자 대주주인 하이닉스를 인수했는데, 만약 이 구단이 그때까지 해체되고 않고 유지되었다면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를 망설였거나[68] 과거 프로농구처럼 두 개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참고.
- 2022 시즌 후 전유수, 이현승이 은퇴하며 현역으로 뛰고있는 현대 출신 선수는 오재일, 정훈[69], 황재균, 장시환 4명만 남았다. 현대의 지명을 받은 선수까지 포함하면 임창민[70]도 있다.
- 유독 한국시리즈를 쉽게 우승한 적이 없었다. 1998년 4승 2패로 6차전까지 치르고 나서야 우승했는데 이게 네 번의 우승 중 가장 적은 경기로 우승한 것이다. 2000년에는 3승을 먼저 거둬 손쉽게 시리즈를 가져가는 듯 했으나 두산에게 4~6차전을 내주면서 리버스 스윕 직전까지 갔으나 7차전을 이겨 4승3패로 우승하였다. 2003년 역시 SK와 승패를 주고받으며 7차전까지 치른 후에 우승하였고, 현대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2004년에는 무려 9차전까지 치르고 난 뒤에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10.1.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야구계에서 2007년은 그야말로 눈물의 한 해라고 할 만하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와 동대문야구장의 철거라는 한국 야구의 양대 비극이 모두 2007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바로 다음해인 2008년, 한국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라는 희대의 빅이벤트 속에 엄청난 팬덤 증가와 중흥을 맞이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니콘스 매각을 진행했다면 프로야구단 인수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과 여론의 추이는 2007년보다 높았을 거라는 푸념이 있다.[71]하지만 이미 이 시기에는 KBO가 오랫동안 모아왔던 야구기금을 유니콘스를 대신 운영하는데 다 털어먹었기에 여력이 소진된 상황이었고[72], 여기에 발전기금으로 끌어다 쓰던 유니콘스 구단측은 끝끝내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가는 등 말년의 쌍방울 레이더스나 해태 타이거즈처럼 뼈를 깎는 인건비 절감 노력을 하긴커녕 기존에 쓰던 예산을 절감하려는 노력도 아예 하지도 않고, 야구계 전체의 돈을 탕진해서 자기들 성적을 내려 한다는 인식이 박혀 다른 구단들로부터 시선이 싸늘해진 상황이었다. 2007년 시즌 말의 상황은 급박했으며, 더이상 시간을 끄는 건 불가능했다. 유니콘스가 해체되어 7개 구단 체제가 되면 '이참에 우리도 해체할까?'라며 추가로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구단들이 있다는 루머는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 그렇다면 리그는 순식간에 쪼그라들 상황이었다. KBO가 센테니얼의 창단 의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사실 2008년의 프로야구 인기의 부활[73]에는 오랫동안 야구계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유니콘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영향이 있었고, 만약은 모르는 것이지만 이 문제가 계속 되었다면 2008년 이후의 인기부활이 가능했을지는 불명확하다.[74] 이후 히어로즈 구단이 한 동안 메인스폰서를 구하는데 애를 먹은 것에서 볼 수있듯, 리그의 인기증가를 통한 경제적 효과가 기업에 얼마나 이득이 될 것이며, 기업이 이를 체감하고 투자를 결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시 KBO는 지나치게 일찍 협상사실을 공개하거나 기존 구단과의 물밑협상을 거치지 않는 등 매각 협상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미 야구계의 여력은 소진된 상태에서 언제 또 다시 온풍이 불지 알 수없는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다른 대기업들마저 듣도보도 못한 센테니얼에게 유니콘스를 넘기는 선택에 동의할 정도였던걸 생각한다면, KBO의 선택을 그저 매도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11. 관련 문서
- 삼청태현
- 키움 히어로즈 - 현대 유니콘스를 승계하여 구단을 해체하고 다시 창단하였다. 현대 유니콘스의 후신이다.
- SSG 랜더스 -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 이전 이후 인천 야구의 계승자가 되었다.
- kt wiz - 현대 유니콘스의 임시 홈구장인 수원 야구장의 새 주인이 되었다.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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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OB 베어스 | ★ 1회 | ||
1983 | 해태 타이거즈 | ★ 1회 | ||
1984 | 롯데 자이언츠 | ★ 1회 | ||
1985 | 삼성 라이온즈 | ★ 1회 | ||
1986 | 해태 타이거즈 | ★ ★ ★ ★ ★ 5회 | ||
1987 | ||||
1988 | ||||
1989 | ||||
1990 | LG 트윈스 | ★ 1회 | ||
1991 | 해태 타이거즈 | ★ ★ ★ ★ ★ ★ 6회 | ||
1992 | 롯데 자이언츠 | ★ ★ 2회 | ||
1993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7회 | ||
1994 | LG 트윈스 | ★ ★ 2회 | ||
1995 | OB 베어스 | ★ ★ 2회 | ||
1996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 ★ 9회 | ||
1997 | ||||
1998 | 현대 유니콘스 | ★ 1회 | ||
1999 | 한화 이글스 | ★ 1회 | ||
2000 | 현대 유니콘스 | ★ ★ 2회 | ||
2001 | 두산 베어스 | ★ ★ ★ 3회 | ||
2002 | 삼성 라이온즈 | ★ ★ 2회 | ||
2003 | 현대 유니콘스 | ★ ★ ★ ★ 4회 | ||
2004 | ||||
2005 | 삼성 라이온즈 | ★ ★ ★ ★ 4회 | ||
2006 | ||||
2007 | SK 와이번스 | ★ ★ 2회 | ||
2008 | ||||
2009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10회 | ||
2010 | SK 와이번스 | ★ ★ ★ 3회 | ||
2011 | 삼성 라이온즈 | ★ ★ ★ ★ ★ ★ ★ ★ 8회 | ||
2012 | ||||
2013 | ||||
2014 | ||||
2015 | 두산 베어스 | ★ ★ ★ ★ ★ 5회 | ||
2016 | ||||
2017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11회 | ||
2018 | SK 와이번스 | ★ ★ ★ ★ 4회 | ||
2019 | 두산 베어스 | ★ ★ ★ ★ ★ ★ 6회 | ||
2020 | NC 다이노스 | ★ 1회 | ||
2021 | kt wiz | ★ 1회 | ||
2022 | SSG 랜더스 | ★ ★ ★ ★ ★ 5회 | ||
2023 | LG 트윈스 | ★ ★ ★ 3회 | ||
2024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 12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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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 삼미 슈퍼스타즈[1] | 삼성 라이온즈 | |
해태 타이거즈[2] | MBC 청룡[3] | OB 베어스[4] | |
[1] 舊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現 키움 히어로즈의 전신 [2] 現 KIA 타이거즈 [3] 現 LG 트윈스 [4] 現 두산 베어스 |
삼청태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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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
1982년 2월 ~ 1985년 5월 | 1985년 5월 ~ 1987년 10월 | |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 |
1987년 10월 ~ 1995년 9월 | 1995년 9월 ~ 2008년 1월 |
[1]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일로 프랜차이즈 개시일이다.[2] 전신 태평양 돌핀스의 법인 설립일로 추정. 당시 태평양화학은 1987년 10월 6일 풍한방직 측과 청보 핀토스 구단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3] 부채 문제 탓에 법인이 해산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 때문에 두 구단은 같은 구단이 아니며 우승 기록과 원년 구단으로서의 자격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엄연히 현대의 권리를 인수하는 부분적 인수로서 KBO로부터 구단을 인계 받아 창단한 팀으로, 선수 경력에 있어서는 같은 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은 데다 현대의 SK에 대한 연고지 침해와 같은 경우에서도 현대의 책임을 이어서 지고 배상을 하는 등 사전적 의미의 '후신'에는 완벽히 부합한다. 자세한 내용은 키움 히어로즈 문서로.[4] 구단 공식 연고지는 서울이었으나, 기존 서울 연고 구단인 LG와 두산에 권리금을 지불하지 못해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어 실상은 무연고 상태였다.[5] 무단으로 사용하던 수원 야구장이 위치한 수원이 사실상 연고지였다.[6] 이 당시, 목동 야구장은 아마 구장으로 인식됐으며 고교야구 경기장으로 쓰이고 있었다.[7] 연고 이전 후 수원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했고 1999년까지는 제2 홈구장이었다. 공식적으로는 현대가 서울로 가기 위해 연고지 이전으로 떠난 후 창단된 SK 와이번스에게 연고권을 매각하면서 이 야구장도 SK 와이번스의 제2 홈구장이 되었으나 서울 이전에 실패한 현대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무단으로 결국 이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게 되었다. 이후 후신인 히어로즈가 이때의 연고지 침해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했다.[8] 흔히 '원당 야구장'이라 불리긴 했는데, 정확히는 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에 있었던 야구장이었고 이름과 달리 소재지는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다. 원당이라는 지명 자체가 일산이기도 해서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유니콘스 해체 이후에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후신인 히어로즈 야구단이 강진으로 2군을 보내기 전까지 잠시 이 곳을 빌렸고,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9] 정몽헌 회장 사망 이후 공석.[10]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에 세운 기록이다.[11] 가을 야구를 제외한 정규 시즌 기준.[12] 경기당 평균 7,560명[13] 가을 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4] 경기당 평균 1,797명[15] 현대라는 이름으로 12시즌을 보냈는데 3시즌 반을 치른 삼미, 2시즌 반을 치른 청보, 8시즌을 치른 태평양보다는 확실히 구단 역사가 길다.[16] 현대의 인수 이전에는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약체였지만 현대는 막강한 전력을 앞세워 프랜차이즈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팀으로 기록됐다.[17] 공식적으로는 서울특별시가 연고지이지만 모기업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기존 서울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게 권리금을 내지 못했고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18] 당시 SK 와이번스는 현대로부터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 연고권을 함께 양수받았는데, 연고권을 양수받을 때 현대가 서울 입성 전까지 사용할 홈구장으로 수원구장을 2001년 상반기까지 빌려주기로 했고, 현대 유니콘스는 2001년까지 서울 상암동에 홈구장을 지어서 그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대 유니콘스가 재정난에 빠지게 되면서 서울 입성에 사실상 실패하게 됐고, 유니콘스측은 구단이 해체된 2008년까지 SK 측에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수원시에 눌러 앉아서 수원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 현대 해체 이후에는 권리를 인수한 히어로즈가 현대의 연고지 침해에 대한 책임을 가져가게 되어 SK에게 연고지 침해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후로도 경기도 연고지 권리는 SK 와이번스가 가지고 있다가 2013년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wiz가 창단되면서 자연스럽게 넘겨주게 되었다.[19] 2000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전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사장이 되어서도 구단의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20] 공교롭게도 태평양 돌핀스 시절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썼던 상징색과도 같다. 응원 깃발의 색깔은 창단 당시부터 줄곧 녹색이었으나 막대풍선 색깔은 창단 초기에 다소 바뀌었다. 원래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썼으나 하필이면 이 당시 LG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도 노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게다가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쓰는 팀끼리 맞붙다보니 색깔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4차전에 붉은색 막대풍선을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가 먼저 노란색을 버리고 1997년부터 해체될 때까지 하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하얀색 막대풍선에는 범현대가 계열 기업의 로고나 제품의 명칭이 광고 형식으로 삽입됐다. 구단 초창기에는 현대전자의 PC였던 멀티캡이나 현대오일뱅크의 로고가 새겨졌고 이후에는 현대증권이나 현대해상 로고가 써져있었다. 초록색을 상징색으로 삼던 팀이었지만 초록색 막대풍선은 창단 초창기 잠시 연두색 막대풍선을 쓴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하얀색 막대풍선 외에도 수원야구장 시대 초기 노란색 봉투에 초록색 글씨로 "막강현대"를 삽입한 비닐봉투를 응원도구로 쓰기도 했다. 비닐봉투 응원도구는 2008년 주황색 봉다리 열풍을 일으킨 롯데 자이언츠가 원조라고 다들 아는데 사실과 다르다. 비닐봉투 응원을 먼저 발명한 건 현대였다. 이후 베이징 올림픽 시절 기준으로 야빠들의 전성기가 들어설때 롯데가 이를 활용한 것이었다. 롯데가 사용한 비닐봉투는 흔히 편의점에서 주는 소형 비닐봉투 크기였고 현대의 비닐봉투는 크기가 조금 커서 어린이의 경우 봉지에 구멍을 뚫어서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정도였다.[21] 사실 인천/경기팜은 전통적인 투수 강세 지역이다. 현대의 전신인 삼미 시절에는 임호균이라는 국가대표 투수가 있었고 청보 시절에는 최계훈이 에이스 역할을 했다. 투수왕국의 이미지는 태평양 시절에 들어서면서 극대화된다. 강력한 투수들이 대를 이어 배출됨에도 팀 전력이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강력한 투수력에 비해 야수들의 타력과 수비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투수진이 기를 쓰고 1실점만 해도 타자들이 점수를 아예 못 내서 1-0으로 경기를 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쉽게 말하자면 투타의 불균형이 매우 극심했던 팀이 현대 이전까지 있었던 팀들의 전통적 팀컬러였다.[22] 이동학의 사례에서 보듯 2003년은 두각을 나타낸 신인 자체가 보이지 않은 신인 흉년의 해였다. 또 다른 신인왕 후보라 해봐야 이택근이 있었는데 이택근도 신인왕을 받을 성적은 전혀 아니었다. 조용준이 전성기는 짧았지만 한국시리즈 MVP를 받기도 했었고, 오재영은 싸융짱문오에 포함될 정도가 되긴 했어도 불펜에서 잘 활약해주고 있다.[23]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 2패 이후 3승을 거두는 리버스 스윕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 삼성은 199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과 대결했다.[24] 1988~1993[25] 1994~1995[26] 몬더그린 현상으로 인해 이 대목이 '최강희 눈이 커'라고 들리기도 했다. 불암콩콩코믹스에도 이 몬더그린을 사용했다.[27] 느린버전도 있지만 현재는 소실되어 찾을수 없다[계승] 태평양 돌핀스의 응원가를 계승했다[29] 오재일, 장시환, 정훈, 황재균[30] KBO 신인 드래프트의 2000년 강원 지역 최초의 1차지명 선수[31] 前 야구선수의 좌완투수였던 최영완의 친형이다.[32] 본인이 영원한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기에 현대로 오자마자 은퇴를 선언해버렸다.[33] 2022년 키움으로 복귀하려고 하였으나 불발.[34] 2000년 투수 전업[35] 등록명은 스코트 쿨바였다. 다들 성만 등록명으로 쓰는걸 생각하면 특이 케이스.[36] 2007년 당시 75번을 달고 수비코치를 맡았으며 후신격 팀인 넥센 히어로즈의 제 3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다시 올려놨다. 2016년 자진사퇴 후 2017년 SK 와이번스 단장으로 취임되었고, 2019년부터 2020년까지 sk의 감독직을 맡았다.[37] 2014 시즌에 외야수로 전향했다.[38] 히어로즈에서 은퇴. 정민태와 함께 팀의 프랜차이저 스타였던 인물이다.[39] 키움 히어로즈 소속기간은 2008~2009년, 2012~2020년[40] 前 야구선수 정수근의 친동생[41] 강명구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해체시까지 구단주 대행 역임.[42] 김진영 감독이 1983년 6월 1일 잠실 MBC전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 후 구속되고 자숙의 의미로 잔여 시즌을 감독대행 체제로 가게 되자 별안간에 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런데 14경기를 치르고 돌연 이선덕 코치에게 지휘봉이 가게 됐는데 이재환과 경동고 동문인 백인천이 급작스럽게 삼미에 선수 겸 코치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환과 백인천의 사이는 매우 험악했고 이를 고려해 이재환을 한직인 2군 감독으로 내려보냈다.[43]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 박현식 선생이 맞다. 구단 고문으로 위촉됐던 박 선생이 다시 지휘봉을 잡은 것 역시 백인천 때문이었다. 선수 겸 타격코치로 일하던 도중 간통죄로 인해 구속되면서 사실상 구단에서 퇴단 조치됐다. 그러면서 선수단 개편 차원에서 이선덕 코치에게 투수코치 임무만 맡기고 박현식 고문을 감독으로 다시 복귀시켰다. 그러나 자숙하던 김진영 감독이 복귀하면서 박현식 감독도 물러나게 된다.[44] 2020년 한화 이글스에 의해 깨질 뻔 했던 초유의 18연패 당시 감독대행. 1985년 3월 30일 구덕 개막전 승리 이후 내리 16경기를 패배하자 김진영 감독이 4월 29일 '조건부 휴가'라 쓰고 사실상의 퇴진이라 하는 절차를 밟으며 물러났다. 투수코치였던 신용균이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으로 치른 마지막 경기까지 팀을 지휘했다.[45] 삼미 슈퍼스타즈가 간판을 내리고 1985년 후기리그부터 청보 핀토스라는 이름으로 시즌을 치렀지만 후기리그까지만 팀을 지휘하고 퇴진하게 된다.[46]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뿌라와 으린 슨슈를 사랑하시는 그 분 맞다. 본인은 청보 감독 시절을 잊고 싶은 과거로 생각하는 듯 하다.[47] 1군 참여 2년차 빙그레 이글스에도 털릴 정도로 꼴찌를 기록한 감독이었지만 한 시즌을 풀로 채웠다. 리그 참가 6시즌 만에 처음으로 감독 교체 없이 한 시즌을 보낸 것은 이때가 처음. 물론 이미 구단의 모기업인 청보식품이 1987년 중반부터 상당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에 감독을 바꾸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48] 태평양화학이 핀토스 구단을 인수해서 재편한 것이 1988년 시즌 개막 직전이었기 때문에 이 당시도 감독을 바꾸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름만 태평양으로 바뀌었을 뿐 청보 핀토스와 크게 차이가 없었고 결국 시즌 초반에 경질된다.[49] 전기 6위, 후기 6위[50] 전기 2위, 후기 2위[51] 전기 6위, 후기 6위[52] 전기리그에서는 삼미 슈퍼스타즈로 활동.[53] 전기 6위, 후기 6위[54] 전기 6위, 후기 7위[55] 전기 7위, 후기 6위[56] 전기 6위, 후기 7위[57] 2016년 두산 베어스가 93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KBO 리그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다.[58] KBO 리그 단일시즌 승률 3위. 1위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0.706, 2위는 1982년 OB 베어스의 0.700. 다만 1985년과 1982년은 전후기리그로 시즌을 나눠 치르던 체제였기 때문에 1989년부터 제정된 단일시즌 체제로 한정하면 이 기록이 최고 승률 기록이다.[59] 페넌트 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두산의 우승으로 최종 3위.[60] 페넌트 레이스 3위였지만, 4위 팀 LG의 한국 시리즈 진출로 최종 4위.[61] 페넌트 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한화의 한국시리즈 진출로 최종 3위.[62] 창단 첫 해부터 해체될 때까지 이 캐치프레이즈는 변하지 않았다. 일종의 구단 기본 슬로건이 된 셈. 기본형 문구 앞에 뭔가의 낱말이 붙는 형태로 캐치프레이즈가 정해졌다.[63] 물론 삼청태현은 공식적으로 한 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전적은 현대 한정. 통상적이며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삼청태현의 통합 전적은 당연히 삼성한테 일방적으로 뒤진다. 공식적으로 현재 삼성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은 47승 2무 47패로 승률이 5할인 kt wiz다. 두 번째는 178승 8무 182패로 승패마진이 -4인 SK 와이번스.[64] 투수조 조장인 정명원이나 정민태 같은 선수들.[65] 상대전적 8승9패까지 갔다가 마지막 2경기를 잡아 10승9패가 됐다. 2000시즌 현대를 상대로 가장 높은 승률을 올린 팀이었다.[66] 현대는 2002년에 LG 트윈스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고, 기아는 2003년에 SK 와이번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패배, 2004년과 2006년에는 각각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해서 두 팀이 포스트 시즌에서 붙을 일은 없었다.[67] 전신까지 포함하면 1989년과 1996년에 붙은 적은 있었다.[68] 단, 인수조건을 걸면서 야구단을 제외하고 하이닉스를 인수했을 수는 있다.[69] 현대 시절 1군 출장 기록은 없다.[70] 2008년 2차 2라운드 전체 11번으로 지명. 현대가 해체되며 선수단을 인수한 우리 히어로즈에 입단했다.[71] 다만 많은 유니콘스 팬들이 바라는 구단 역사의 공식적 승계는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이 인수했다 해도 어려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7년간 구단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한 명목상의 모기업 하이닉스가 뜬금없이 나타나 인수대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이다.[72] 야구계 인사 일부는 기존 구단들에게서 운영비를 추렴해서 현대가 1년만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말 그대로 시간벌기밖에는 안 되는 미봉책일 뿐이지만, 어쨌든 그렇게라도 하고 봐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절박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KT의 인수시도가 사외이사들과 주주들에 의해서 엎어졌듯이 이미 적자투성이인 프로야구판에서 자신의 기업도 아닌 남의 회사를 홍보하는데 당연히, 그 어느 기업도 자기 회사의 돈을 선뜻 내놓겠다고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73]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2008시즌 초부터 이미 프로야구의 인기는 관중수에서 입증되듯이 부활하고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런 추세에서 부스터 역할을 했지 유일한 촉매 역할을 한게 아니다.[74] 당장 이웃종목의 K리그만 봐도 2002년 FIFA 월드컵으로 조성된 리그 붐을 받아먹을 준비(대회 종료 후 축구장에 가고 싶은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서울팀이 없고, 대구 인천 광주에도 없다던지 등)가 되어있지 않았고, 기회가 왔을때 허무하게 날려먹어서 여전히 흥행에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국제대회의 호성적은 리그 붐에 기여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리그의 앞날을 하루 아침에 밝게 비춰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