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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브룸바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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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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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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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KBO 리그 타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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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쿠비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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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6)
캘러웨이
(2005~2006)
브룸바
(2007)
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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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창단 브룸바
(2008~2009)
강귀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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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브룸바
Cliff Brumbaugh
본명 클리퍼드 마이클 브룸바
Clifford Michael Brumbaugh
출생 1974년 4월 21일 ([age(1974-04-21)]세)
델라웨어 주 윌밍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윌리엄 펜 고등학교 - 델라웨어 대학교
신체 188cm, 92kg
포지션 좌익수, 우익수, 지명타자[1], 3루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5년 드래프트 13라운드 (전체 346번, TEX)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 (2001)
콜로라도 로키스 (2001)
현대 유니콘스 (2003~2004)
오릭스 버팔로즈 (2005~2006)
현대 유니콘스 (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2008~2009)
등장곡 Ludacris - MVP
응원가 (한국) 현대 시절 박재홍 전용구호[3]
히어로즈 시절 클론 - 너의 생일엔[4][5]
응원가 (일본) 항목 참조

1. 개요2. 선수 경력
2.1. 메이저리그 및 마이너리그 시절2.2. 현대 유니콘스 1기2.3. NPB 시절2.4. 현대 유니콘스 2기 및 히어로즈
3. 평가4. 여담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현대 유니콘스, 히어로즈 소속 외국인 선수.

2. 선수 경력

2.1. 메이저리그 및 마이너리그 시절

199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13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던 중, 2001년 메이저로 승격이 된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는 대부분 대타로 활동하다가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다시 마이너 리그로 내려가게 되고[6] 2003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을 맺는다.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 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로의 승격이 되지 않자 한국 프로야구 팀인 현대 유니콘스와 계약을 체결한다.

2.2. 현대 유니콘스 1기


파일:/image/111/2007/01/11/1168472238_1.jpg

파일:SkSbCDD.jpg
현대 시절.

2003년 시즌 후반기 마이클 프랭클린의 대체선수로 이때 브룸바를 낚아온건 프런트로 근무하던 염경엽[7] 이다. 한국 땅을 밟은 브룸바는 남은 70경기를 뛰며 타율 3할3리, 14홈런, 51타점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했다.[8]

2003 시즌 후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한 그는 팀의 중심타자인 심정수가 전년도 보다 부진한 상황에서 브룸바 혼자 2004년에 타율 1위,[9] 홈런 2위, 타점 3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10] 현대 유니콘스한국시리즈 2연패에 공헌했다. 특히 2004년에는 끝내기 안타만 4개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최다 끝내기 기록을 남겼다.[11] 이 시즌은 KBO 역대 외국인 우타자 1위의 승리기여도와 wRC+를 기록한 성적이다. 그런데 이 성적으로 브룸바는 정규시즌 MVP는 고사하고, 올스타전에서조차 뽑히지 못해 KBO 리그의 외국인 선수 차별 사례 중 가장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12] 대신 기자들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내내 괴물모드를 보여준 배영수에게 MVP를 주는걸로 가되, 브룸바는 최우수선수 대신 각종 스폰서에서 주는 소소한 상[13]을 주고. 신인상은 브룸바의 팀 동료이자 데뷔 1년차 오재영 에게 주자 라는 식으로 했단다.[14]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으로 출전할 수 없었던 내야수 정성훈을 대신하여 외야가 아닌 3루수로 출전[15]하였다.

2.3. NPB 시절


파일:external/pbs.twimg.com/BluobpXCEAA4J8H.jpg
2005년에는 KBO에 뛰지 않았는데 이유는 밤 10시가 되면 규정상 무승부 처리를 하는 이상한 규정이 있었고 거기다가 프로야구 침체기 + 몰지각한 외인차별을 둔 한국야구에 회의감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 브룸바를 데려가던 한 일본프로야구 팀인 오릭스 버팔로스로 이적[16]하였으나 고질적인 발목 부상[17] 성적 부진, 당시 감독이던 나카무라 카츠히로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2006년 시즌을 끝으로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등록명이 일본어 발음상 ブランボー(브람보)로 표기되어서 이름 덕에 나름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KBO로 보자면 스캇 시볼같은 경우[18] 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듯.[19]

2.4. 현대 유니콘스 2기 및 히어로즈


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P07061600011.jpg
2006년 시즌 종료 후, 2007년에 외국인 보류권이 유효하던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다. 시즌 초반, 4월에 매우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으나, 5~6월 무렵부터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엄청난 장타력을 과시했다. 최종 성적은 126경기 전경기 출장 타격도 우수한 0.308 29홈런[20] 87타점[21]. 그렇게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가 끝나가는 동안 유니콘스의 마지막 4번 타자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골든글러브 투표에서도 팀 동료 이택근과 함께 아쉽게 탈락했다. 팀 성적도 6위로 투타가 엇박자로 행동하면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다.

현대의 고별전인 수원 한화전에서 안타를 치고 방망이를 내동댕이쳤다. 경기전 김시진 감독에게 현대의 마지막 경기인만큼 꼭 홈런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해 화가 났었다고. 그 후 바로 대주자로 교체되었고 경기는 0:2로 현대가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날 승리투수는 김수경 세이브 투수는 황두성이 기록을 했다.

2007년 말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STXKT의 인수[22]가 차례로 무산되자 마이너리그 계약을 알아보던 중 선수단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로 넘어갈 때 계약하여 히어로즈의 선수가 되었다. 전년도 3할 타율에 30개에 가까운 홈런을 기록했음에도 전년 대비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아 충격을 받기도 했으나[23] 결국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2008년에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붙박이 지명타자로 나서 102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93, 13홈런 61타점을 기록[24]하였다. 그토록 바라던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25]

파일:external/lh5.googleusercontent.com/%EB%A3%B8%EB%B0%942.jpg
2009 시즌 초반에는 붙박이 4번 타자로 출장하였고, 덕 클락이 히어로즈에 새로 영입되면서 주로 지명타자 겸 좌익수로 나왔다. 초반엔 발목 부상도 다 나았는지 개막 이튿날부터 시작해 6월까지 23개의 홈런을 쳐내며 40홈런 홈런왕도 바라봤으나, 7월 이후에 허리 부상의 여파와 심판들의 지나친 브룸바존 때문에[26][27]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되며 7, 8, 9월 세 달간 꼴랑 4개의 홈런을 친다. 이 때문에 4번 자리에서 시작한 타순이 점점 내려가 6번 타자로 출장하기도 했다. 또한 작년에 이어서 팬투표로 받은 올스타전 지명타자에 선발되었다. 당시 서군에 있던 멤버들 중 3루수 김상현/1루수 최희섭/지명타자 겸 1루수 로베르토 페타지니와 함께 리그 홈런 레이스 1위~4위를 달리고 있었다. 팀 인기순으로 보면 페타지니가 앞서지만 1루수 투표로 나왔기 때문에 최희섭에게 밀리며 올스타전 경기 도중 교체선수로 투입

부진이 길어지는 동안 트위터에 새롭게 눈을 떠 투수 크리스 니코스키[28],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 등의 용병 선수들과 친목을 하기도 했는데, 우스갯소리로 부진의 원인이 트위터가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또 트위터를 클락에게도 전파하는거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팬들도 있었다.

파일:/image/zoominusa/2009/08/05/20090805093320_thumbnail.jpg
부진에서 벗어나고자 바꾼 헤어스타일.

최종 성적은 타율 0.245, 홈런 27[29], 타점 86으로 시즌을 마감하였고, 결국 2009년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면서 많은 히어로즈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대신 클락이 다음시즌 까지 뛰고 있었으나 올스타전 끝난 날 어이없이 방출을 당하면서 히어로즈는 붕괴하고 말았다. 타격이 약한 한화 이글스[30]등의 팀에서 영입하기를 바라는 팬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나 계속되는 발목 부상, 그리고 KBO의 용병 투수 붐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2009년을 마지막으로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2010년엔 잠시 멕시코 리그에서 뛰었고, 이후엔 독립 리그인 골든 베이스볼 리그 소속의 에드먼턴[31] 캐피털스에서 뛰었다. 76경기 출장해서 타율 0.383에 23홈런 90타점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과 나이 등 여러 여건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했고, 살고 있는 곳인 오클라호마 주에서 야구와 소프트볼을 가르치는 일을 잠시 했다. 이후 코치 생활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가 떠나고 2년 후 히어로즈의 1루에 정착한 박병호가 히어로즈에서 빛을 발하자, 그의 이름을 본따서 "브룸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한민국에서 코치를 할 의항이 있다고 한다. 브랜든 나이트의 사례가 있으니 키움에서 코치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3. 평가

외국인으로서 최초의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선수이며, 그가 세운 2004 시즌 타율 .343은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높은 시즌 타율이었으나 2015년 에릭 테임즈가 3할 8푼을[32] 찍었다. 당시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어 KBO MVP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한 배영수에 밀려 수상은 하지 못하였다.[33]

성적도 좋았으며, 친화력도 뛰어나 팬이 많지 않았던 현대, 히어로즈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상 용병이 아니라 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34] 다만 그가 활약했던 시절이 한국프로야구의 암흑기 시작에서 암흑기가 사라지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저평가되는 감이 있다. 그나마 올드 야구팬들에게 "브룸바" 라는 이름 언급하면 예전에 아~ 우즈, 호세, 데이비스 이후 좀 뛰어봤다는 외인? 이라는 이름으로는 언급을 하긴 한다. 한편 현대 말기에 미키 캘러웨이조용준과 함께 삼성 팬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상대이기도 했다.[35]

4. 여담

아들이 셋 있다. 장남이 케이든, 둘째가 카슨, 막내가 캠든. 히어로즈 홈 경기일 때 케이든과 카슨이 시구/시타를 한 적도 있다.

2003년부터 대한민국 생활을 시작했으니 한국 용병 중에서 생존기간이 긴 편이다. 오랜 대한민국 생활로 대한민국에 대한 애착도 꽤 있는 듯. 2008년에 히어로즈로 바뀌면서 연봉이 줄었음에도[36] 계속 뛰었다. 트위터에도 대한민국에서 처음 활동한 현대 유니콘스를 잊지 못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만큼 대한민국과 정이 많이 든 듯.
"I will never forget the Hyundai Unicorns!! Its where it all started!! Good Times!!!"

2009년 7월 18일에 방송된 천하무적 야구단 팀과의 이벤트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적이 있다.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이 선수 목록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잠시 등장한다.
파일:attachment/클리프 브룸바/브룸바.png

100만 원짜리 수표를 10만 원짜리인 줄 알고 펑펑 쓴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100만 원짜리를 쓰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고, 브룸바는 마누라한테 엄청난 바가지를 긁혔다고 한다. 이것도 한때 소재로 쓰였는데 브룸바는 등짝을 맞지는 않았지만 바가지는 심하게 긁혔다고 실토하며 주변에 웃음을 전파했다.

대한민국을 떠난 이후에도 히어로즈의 행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지 이택근이 LG로 현금 트레이드될 당시에 의견을 물은 한 팬에게 "잘된 일이다, 젊고 좋은 선수는 기회가 있는 팀에서 뛰어야 한다. 히어로즈 사장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디스했다. 또 2010년 덕 클락의 대체용병으로 넥센에 입단하게 된 투수 크리스 니코스키에게 트위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운을 빌어, 친구. 나랑 같이 뛰었던 선수들에게 안부 전해주고.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 다 트레이드되었겠군."

2012년 12월 인터뷰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임주완 옹의 명언 "에라 모르겠다잉~" 을 이끌어낸 장본인. 장원준에게 높은 공 헛스윙 삼진을 당한 후 분함을 참지 못하고 배트를 땅바닥에 내려쳤을때 흥을 돋우기 위해 나온 멘트다.

장모님이 태국인이신데, 김치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아내도 한국 요리를 즐겨먹는다고. 아이들의 모계가 태국과 미국의 혼혈이다. 그러나 태국계 모습은 없고 거의 서양인으로 보인다.

여전히 대한민국 야구와 넥센 히어로즈에 관심이 많은지, 트위터에서 KBO 리그의 소식을 알려주는 트윗을 자주 리트윗한다. 2014년에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행을 달성하자, 넥센의 승리를 응원하는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2017년 인터뷰 기사가 떴는데, 대한민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이후엔 2019년 10월 16일 보도된 바로는 현재는 미국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오클라호마 퓨엘’이라는 야구 아카데미를 8년째 운영 중이라고 한다.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미키 캘러웨이래리 서튼물건은 자신보다 작았고 브룸바는 더 컸다는 개드립을 쳤다. 조용훈은 버스에서 브룸바가 듣는 음악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몰래 듣다가 이를 발견한 브룸바한테 맞을 뻔했다고. 무슨 음악을 브룸바 네가 듣는지 궁금했다고 콩글리시로 설명해서 오해를 풀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용훈의 별명인 "크레이지" 라는 별명을 선사한 장본인 이다.

2003년 중반 ~ 2004년 사이의 조용준에게도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생명의 은인이라 감사한다고 한다. 사건이 발단은 이랬다. 조용준이 등판한 날 블론세이브와 패전을 적립하고 경기 종료 후 덕아웃 라커룸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을 찰나, 당시 주장이던 이숭용이 이날 하필 버스에서 쉬다가 졸고 있던[37] 조용준과 눈빛을 마주친 것이다. 그것도 그렇고 팀의 패배까지 했으니 이숭용 입장에서는 화가나서 머리를 한대 때렸는데 브룸바가 조용준을 감싸고 이숭용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그날 만약 브룸바 없었으면 지옥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타이론 우즈, 제이 데이비스, 펠릭스 호세, 톰 퀸란, 에릭 테임즈 등 KBO 리그에서 뛰던 외인들이 나오면 종종 언급되며, 현대 유니콘스 선수 이야기가 나오면 심정수, 송지만과 자주 엮인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01 텍사스
콜로라도
21 49 10 2 0 1 6 4 0 3 14 .217 .265 .326 .591 -0.6 -0.8
MLB 통산
(1시즌)
21 49 10 2 0 1 6 4 0 3 14 .217 .265 .326 .591 -0.6 -0.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현대 70 264 .303 80 18 1 14 51 45 3 31 .538 .374
2004 132 475 .343
(1위)
163
(2위)
25 1 33
(2위)
105
(3위)
92 7 115 .608
(1위)
.468
(1위)
2007 현대 126 438 .308 135 13 0 29
(2위)
87
(2위)
75
(5위)
3 104 .537
(4위)
.437
(4위)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우리 102 358 .293 105 17 0 13 61 39 1 58 .450 .388
2009 히어로즈 123 436 .245 107 21 1 27
(5위)
86 69 2 88 .484 .371
KBO 통산
(5시즌)
553 1971 .299 590 94 3 116 390 320 16 396 .527 .40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오릭스 124 448 .263 80 18 1 19 57 50 3 46 .435 .331
2006 47 121 .223 27 3 0 5 12 13 1 10 .372 .280
NPB 통산
(2시즌)
171 569 .255 145 23 0 24 69 63 1 56 .422 .320

6. 관련 문서


[1] 넥센 히어로즈 시절 은퇴 임박이 가까워진 시즌 2년간 전업 지명타자였다. 2009년에는 잠시 좌익수대수비를 나온 적도 있다.[2] 마이너리그 시절 3루수로 500경기 이상을 출장하였다. 그리고 2003~4년 정성훈이 출장할 수 없게 되자 3루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3루 수비에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3] 현!대! 브!룸!바! 홈!런!타!자! 브!룸!바! 현!대! 브!룸!바! 홈!런!타!자! 브!룸!바! 브!룸!바! 화이팅![4] 홈런! 홈런! 홈~런! 브룸바![5] 이 구호는 박병호가 이어받아 사용했었다.[6] 이때 생애 최초로 외야를 뛰면서 3루수까지 뛰었다는 성적을 보여줬다.[7] 프런트 및 매니저를 2년을 하게 되면 코치직을 보장하겠다고 했던 구단이지만 오히려 3년을 더 시켰다. 그로인해 염경엽은 사직서를 수십차례나 썼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반려했다고 한다. 이유는 염경엽 처럼 일처리 잘한 사람은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는 점. 그러나 브룸바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2007년 드디어 지도자(염경엽은 07년 현대의 1군 수비코치)와 선수(브룸바)로 만나게 되었다.[8] 한국시리즈에서도 10타점으로 심정수와 함께 맹활약 했지만 최동원 이후 보기 힘든 한국시리즈 투수 3승 기록을 한 정민태에 밀려 MVP를 받지 못했다. 이때 이숭용이 "외국인 타자 치고 이렇게 못친 선수는 처음이다" 라고 기자들에게 장난삼아 망언을 했다가 그게 어록으로 남기도 했다.[9] 출루율, 장타율 또한 모두 1위 기록이다.[10] 홈런 1위에는 SK 와이번스박경완, 타점 1위에는 이호준이 기록을 했다. SK의 팀순위가 5위인데 공격력이 막강했던 시즌 중에서 이 시즌이 꽤 짭짤한 시즌이라는걸 증명했지만 투수쪽에 은근히 구멍이 많아서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 했다. 또한 타격 2위이자 SK 주측 타자인 이진영이 병풍에 연루되면서 잔여경기는 결장, 자연스레 낙마를 하면서 타격왕 타이틀 1위 자리를 고수 할 수 있던건 덤 거기다가 브룸바는 2등만 3번 했다고 콩라인 소리까지 들은건 함정.[11] 토종 선수들 중에서는 2020년에 배정대가 토종선수로는 브룸바의 단일 시즌 최다 끝내기 안타 타이 기록을 세웠다. 우연하게도 브룸바가 현대에 있었을 적의 홈이 수원이었고, 배정대 역시 수원 연고kt wiz에서 뛴다는 게 특이점. 현대가 수원을 "임시 연고지"로 썼다는 것만 다르다.[12] 1998년에 타이론 우즈가 페넌트레이스 MVP가 되고도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이승엽이 수상한것도 KBO리그의 외국인 선수 차별 사례로 꼽힌다.[13] 일명 조아제약 시상식이나 일구회, 스포츠신문사 같은 주관사에서 받는것을 의미.[14] 투표 2위는 중고신인 으로 권오준 이였다. 99년에 데뷔 했지만, 보여준게 없었고 2003년 시즌 말미에 뒤늦게 각성하면서 2004년 정규시즌 2위에 공헌을 하였다. 사족으로 권오준은 당시 삼성 투수였다.[15] 위에 언급했듯이 마이너 시절에 외야와 3루수를 병행을 했다.[16] 이 시기에 동료였던 외인 타자 카림 가르시아를 만났다고 한다. 거기다가 오릭스는 이해 라쿠텐과 함께 최하위였다. 거기다가 현대에서 뛰던 금액 보다 더 많이 받았으니 브룸바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17] 이때문에 KBO로 리턴할때 야구계의 기자들은 물론이요 관계자들은 브룸바의 몸상태 체크 중에서 유일하게 지적했던 것이다.[18] 시볼은 한때 비속어 로 불렸다.[19] 그 시볼도 일본에서 뛰었다. 2008년 FA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한 아라이 타카히로의 3루 공백을 메우기 위해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싼 값에 주워서 2시즌동안 써먹었다. 근데 KIA 타이거즈 시절 보다 더 좋은건 함정[20] 홈런 2위[21] 타점 2위[22] KT의 경우 모 기자 라고 쓰고 블로거로 악명 높은 자가 엠바고를 터트리면서 불발.[23] 비단 브룸바 만이 아니라 팀의 주측 선수들이자 좋은 활약을 보인 노장 전준호,김동수,송지만 선수들의 연봉이 50% ~ 70%라는 어처구니 없는 삭감 제시액을 받았다. 그 중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을거 같던 정민태는 웨이버 공시가 되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다.[24] 당시 홈런 1위가 김태균이 기록하던 31개 였다. 자신이 기록했던 전년도 홈런이 28개로 2위 였는데 1위 심정수 홈런이 31개로 동일했다. 저시즌 13개 홈런이면 나름 중상위권에 있었다는건 반증이며, 팀내에 두자릿수 홈런을 친건 이해에 이택근(팀내 홈런 3위), 송지만(브룸바와 송지만 팀내 홈런 1위였다.)을 포함한 3명 이였다.[25] 서군 선수들 외인타자 중에 덕 클락과 함께 출전했다. 거기다가 올스타전 선발 멤버였고 이전 KBO 1기 시절 활동하던 브룸바는 좋은 성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팬투표는 커녕 추천선수 후보 명단에도 제외 되었으니 그 기분을 제대로 푼 것 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덕 클락은 후반기 SK의 유망주 박정권과 충돌하며 부상을 당했는데 이로인해 성적이 수직하락 되면서 한화랑 제계약이 불발되어 히어로즈에서 계약을 한다. 대신 남아있던 다카쓰 신고는 제계약에 실패, 브룸바와 팀 동료로 재회한다.[26] 이전부터 바깥쪽 공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자주 나온 탓에 생긴 말. 이건 다른 외인들도 심하게 받았다. 그 중 초창기 외인제도를 사용했던 우즈가 이런 희생양으로 나왔다.[27] 7월에는 볼 판정에 불만을 갖다가 퇴장까지 당했다.[28] 이때 까지는 두산 베어스 소속이였다.[29] 홈런 순위 5위가 되었다. 우천 취소로 날아가버린 근접한 이닝에서 홈런을 2개나 도둑 맞아버렸다.[30] 2009 시즌 이후 김태균, 이범호모두 해외로 잠시 떠났고 최진행의 각성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최진행은 군전역 이후 실전감각을 위해 주로 2군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1군에 잠시 얼굴은 들렸으나 얼마안가 다시 2군행.[31]82년생 레전드 세대들이 세계 각지 야구부 학교들과 대결하여 우승컵을 들던 곳이 맞다.[32] 물론 시대 보정을 감안한 생산성 자체도 테임즈가 더 훌륭하긴 했지만, 브룸바가 뛰던 시기는 투고타저였고 테임즈가 뛰던 시기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타고투저 시기긴 했다.[33] 이해의 한국시리즈 배영수는 10이닝 노히트노런 이라는 대업적을 남겼으나 그날 경기는 무승부에 더군다나 체력적으로 더이상 던질수가 없었고 이상한 제도로 인하여 비공인 기록 이라는 물거품이 된 것이다. 만약 그 제도가 아니였다면 계속 진행되는 경기에서 현대 선수들은 배영수에게 무기력하게 당할수도 있었다는 썰도 현장에서 나왔던 것.[34] 심지어 2010 시즌엔 목동구장에서 브룸바 버거를 판매한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2009 시즌 후 결국 제계약이 불발 되면서 어찌됐건 없던 일이 되었다.[35] 현대 초창기에는 정민태, 정명원, 장정석 같은 선수들이 있었다.[36] 이장석이 어떻게 해서든 현대 유니콘스의 채무를 이어받지 않을려 하는것과 MLB의 플로리다 말린스 구단의 철학을 담긴 행동을 보였다.[37] 버스 기사님이 에어컨도 틀어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