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6 00:06:58

이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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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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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근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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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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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외야수 부분 골든글러브 2009 외야수 부분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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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 현재
2008~2009 2010 2011 2012 2013~2015
송지만 이숭용 강병식 강병식
이택근(교체)
이택근
2016~2017 2018 2019~
서건창 서건창
김민성(교체)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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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2번
멜퀴 토레스(2002) 이택근(2003~2004) 이보근(2005~2007)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1번
장교성(2004) 이택근(2005~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29번
팀 창단 이택근(2008~2009) 번사이드(2010)
윤지웅(2011) 이택근(2012~ ) 현역
LG 트윈스 등번호 29번
페타지니(2008~2009) 이택근(2010~2011) 임찬규(201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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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No.29
이택근(李宅根 / Taek-Keun Lee)
생년월일 1980년 7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기장군[1]
종교 불교
학력 배정초 - 부산대천중 - 경남상고 - 고려대
포지션 포수[2], 외야수[3], 1루수[4], 지명타자
투타 우투우타
신체 183cm, 89kg
프로입단 1999년 2차 3라운드 (전체 24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3~2007)
히어로즈 (2008~2009)
LG 트윈스 (2009~2011)
넥센-키움 히어로즈 (2012~)
등장곡 The Prodigy & Tom Morello - One Man Army
응원가 활밴드 'Forever Korea' [5][6]
2NE1 'I Don't Care'[7]
LG 시절: Kelly Clarkson - My Life Would Suck Without You[8][9]
연봉 5억원 (FA, 2019년)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선수 경력
3.1. 아마추어 시절3.2. 데뷔와 전성기3.3. 2010 시즌3.4. 2011 시즌3.5. 2012 시즌3.6. 2013 시즌3.7. 2014 시즌3.8. 2015 시즌3.9. 2016 시즌3.10. 2017 시즌3.11. 2018 시즌
4. 사건사고
4.1. 불성실한 팬서비스 논란4.2. 이택근 문우람 폭행사건
5. 기타6. 연도별 성적

1. 개요

키움 히어로즈외야수이자 팀의 정신적 지주였지만 후술할 내용으로 인해 이미지를 스스로 실추시켜 히어로즈의 흑역사로 남게된 선수

넥사스 레인져스불꽃클린업 L-P-GL을 맡고 있다...가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로 갔고,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로 떠나면서 완전해체되었다.[10]

이택근의 타격, 주루센스와 훌륭한 송구 능력을 알 수 있는 하이라이트 영상(2012년 6월 27일 베스트 플레이어). 빠른 발, 영리한 플레이, 10개 언저리의 홈런을 기록해 주는 괜찮은 장타력, 항상 3할대의 정교한 타격이 장점이며 포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강견이다. 또한 주루 센스도 좋은데 특히 투수와 포수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하는 도루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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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이택근의 산책 도루

1루 수비가 그리 좋지 못한 점, 2010년 이후로는 잦은 부상(고질적인 허리 부상) 등으로 풀타임 소화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받는다.[11] 2011 시즌부턴 부상과 선구안의 하락으로 ops가 뚝 떨어졌다. 그러다 2014시즌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부활했다. 역대급 타신투병 시즌과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의 적극적인 체력 관리가 더해진 결과.

2. 플레이 스타일

이택근은 리그를 폭격할 정도의 특출난 강점은 없지만, 그렇다고 리그 평균에 미달할 정도의 단점도 없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적당히 괜찮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12] 한마디로 모든 툴이 고루 좋은 보급형 5툴 플레이어.

현역 4000타석 이상 소화한 우타 외야수 중 유일한 통산타율이 3할이 넘는 컨택형 타자이자, 항상 볼넷을 삼진보다 많이 고르는 선구안에 한 시즌 10개 이상 통산 100 홈런을 넘길 정도의 장타력과 압도적인 빠른발은 아니지만[13] 주루센스로 한 시즌에 두자리수 도루 이상 통산 100도루를 넘긴 주루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역시 특출나진 않지만 주자의 추가진루를 억제할수 있는 송구력과 넓진 않지만 타구판단 능력으로 커버하는 리그 평균급 수비범위 그리고 안정적인 중계와 펜스플레이를 할줄 아는 준수한 외야수다. 한마디로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 발, 어깨, 파워 등 피지컬로는 리그 최상위급이라고 할 수 없지만 리그 평균을 웃도는 수준에서 골고루 갖추고 있으며, 야구센스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유형이다. 히어로즈 팀 내에서 야구에 대한 센스는 가장 뛰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센스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종종 시도하는 산책 도루와 상대방의 플레이를 보고 덕아웃에서 누상의 타자에게 이동을 지시하는 플레이 등이 있다.

현대 시절부터 오래 겪어본 팬들은 이제 노쇠로 인한 하향곡선만이 남은 선수 이택근보다, 은퇴 후의 작전코치 내지는 감독 이택근이 더 기대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타격에 있어선 전형적인 다운스윙을 하는 타자로서 큰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3할이 넘는 통산 타율에서 보듯이 안정적으로 타율을 유지한다. 타격폼은 극단적인 오픈스탠스로 보이지만 투구와 동시에 다리를 모아 오픈스탠스로 볼 순 없다. 몸쪽, 바깥쪽 크게 약점없이 고루 공략을 한다. 다소 정석에서 어긋난 폼이긴 하나, 자신의 몸에 맞춘 좋은 폼이다. 젊던 시절엔 배팅글로브를 착용하지 않고 타격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한쪽 손에만 착용했고 지금은 양손 모두 착용한다.

좋은 컨택과 장타력을 고루 갖춘 중장거리형 타자지만 번트밀어치기를 잘해 작전수행 능력이 무척 뛰어나기도 하다. 히어로즈 복귀 초기 LPG의 일원으로서 중심타선에 배치 됐으나 염경엽 감독 부임 이후 강한 2번타자로서 2번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장타면 장타, 컨택이면 컨택, 작전이면 작전 모두 뛰어나게 소화하며 2014년 MVP 서건창과 함께 역대 최고의 테이블 세터를 구축하는데 일조했다.

원 포지션은 포수로 대학시절부터 일찌기 국가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전도유망한 선수로 꼽혔지만, 프로 입단 이후 수비력에서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자 당시 김재박 감독에 의해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를 거쳐 외야수로 전향한다. 이후 주로 코너 외야수로 출장하다 2006년부터 중견수로 자리잡는다. 재밌게도 코너 외야수는 잘 못했지만 중견수로서는 괜찮게 했는데, 코너에서 휘는 타구에 대한 타구 판단에 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직선형 볼만 처리했던 내야수들과 포수들이 외야수로 전향했을 때 코너 외야수로서 애를 먹는 경우가 흔한데, 이택근도 그런 케이스다.

원 포지션이 포수였고 20대 중후반에 외야수로 정착하여 전문 외야수들에 비해선 조금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타구 판단, 포구, 범위, 펜스플레이 모두 특출나진 않아도 그렇다고 해서 중견수로써 크게 나쁘지도 않은 수비력을 보였다. 다만 2015년 이후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가 수비범위가 급격히 좁아지며 코너 외야수로 전향하게 됐다.[14]

주루에 있어서는 크게 적극적이거나 과감한 시도를 하는 편은 아니나 안정적으로 한 베이스를 더 가고 상대 수비와 투수들의 속을 벅벅 긁어놓는 센스있는 주루플레이가 일품이다. 이대형처럼 압도적인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거나 이용규처럼 내야를 휘젓는 뛰어난 주자는 아니지만 상대 수비진의 헛점을 노리고 야금야금 한 베이스씩 먹고 들어가는 유형이다.

3. 선수 경력

3.1. 아마추어 시절

경남상고 시절에는 김사율과 배터리를 이루며 팀의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포수 유망주였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3순위(전체 24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다. 대학 시절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01년 대만 야구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2003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현대에 계약금 2억 3,000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3.2. 데뷔와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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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시절

데뷔할 때 포지션은 포수였으나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는 김동수, 강귀태라는 수준급 포수가 버티고 있어[15] 실질적으로 포수로 뛴 시즌은 루키 시즌뿐이었고 그 이후 1루수3루수를 오가다 2006년부터 외야수로 전향했다.[16] 다만 모든 외야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제대로 볼 수 있는 외야 포지션이 양쪽 코너가 아닌 중견수뿐이다. 자신은 코너 외야가 더 어렵다고 한다. 이택근이 포수를 포기한 데에는 이택근의 포수로서의 스킬을 도저히 프로에서 써먹을 수 없다고 코칭스태프가 판단한 것이 큰 이유였다. 입단 이후 이택근은 현대 코칭스태프에게 "포구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못한 포수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래서인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포수인 진갑용의 부상, 강민호의 퇴장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17]

2003년 입단 첫 해에는 갓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온 투수 이동학과 신인왕 경쟁을 벌였지만, 수상에는 아쉽게 실패했다.[18] 하지만 2003년 이후의 이동학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05년 이숭용이 시즌 중반 부상으로 주춤하자, 복수의 포지션으로 출장하면서 많은 타석은 아니지만 0.331의 고타율을 기록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뛰면서 전반기에만 9홈런을 기록해 홈런레이스에 출전, 결승에서 홈런 하나를 치고 우승했다.[19] 당시 이택근은 "예선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명치가 아파서 더 이상 넘길 수 없었다"고 밝혔으며, 결국 후반기에는 홈런 0개를 기록했다.

중견수로 전향한 후, 2006~2009년까지 4년 연속 3할 타율에 4할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리그 최정상급 외야수로 성장했다. 전향 초기만 해도 홈런과 도루수가 한자리였으나 2009년에는 자신의 최다 기록인 15홈런 43도루를 기록하며 골든 글러브도 수상했다.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케이스 중 성공적인 케이스.

기량을 인정받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으나 도하 참사를 겪으며 동메달에 그쳤고,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특례를 받게 되었다. 팀원들이 감기에 걸릴 까봐 매번 방을 돌아다니면서 에어컨을 끄고, 햄버거 셔틀도 마다하지 않은 모습, AD카드[20] 부족으로 불펜 포수가 없어서 불펜 포수를 보는 모습에서 호감을 느낀 팬들이 적지 않았고, 이 때부터 비로소 팬이 확 늘었다.

이렇게 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잡는 것처럼 보였으나, 구단의 자금난 탓에 2009 시즌 종료 후 트레이드 루머가 돌다가 2009년 12월 17일 강병우, 박영복 + 현금 38억 원을 대가로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되었다.[21] 선수 팔기라는 논란 끝에 이 트레이드는 12월 30일에 승인되었으며, 이로써 이택근은 LG로 이적하게 되었다.

3.3.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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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로 이적한 후 원래 포지션이었던 중견수는 이대형이 지키고 있고, 코너 외야나 1루수는 주 포지션인 중견수보다 수비 능력이 부족한 통에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하다가 시즌 초반 7경기를 뛰고 허리 통증을 이유로 2군으로 내려갔다. 2009 시즌을 마치고 무릎 수술을 받은 후 페이스를 끌어올리려다 무리한 탓에, 허리 상태가 나빠진 것이었다.

5월 25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1군에 복귀했다. 수비는 계속 중견수로는 나오지 못하고[22] 좌익수 혹은 1루수로 출전, 야구에서 가장 쉬운 포지션이라지만 주 포지션이 아닌 탓인지 불안한 수비와 함께 2할 초반대의 빈타에 허덕이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지만...

박용택과 함께 후반 3개월동안 괴물같은 타율 상승폭을 보이며[23] 결국 10시즌을 타율 .303로 마무리. 역시 스탯근 어디 안간다. 여담이지만 이적 후 KIA 타이거즈와의 시범경기에서 벤치에 있을 때 서용빈 코치에게 헬멧 쓴 채로 손으로 가격당했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그냥 헬멧테스트.

이전의 프리에이전트(FA) 규정대로 라면 2012년 시즌 종료 후 FA 권한을 득템할수 있었지만, 2011년 KBO 1회 이사회에서 대졸선수(4년제 대학 졸업 선수 한정)의 FA 연한이 8년으로 축소됨에 따라 2011 시즌을 부상으로 날려먹어도 FA 선언이 가능하게 되었다. LG 구단에서는 FA 연한이 아직 남은 이택근에게 저렴한 축의 연봉을 제시하며 상호 마찰이 있었는데, 이 연한 축소에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이를 전해 들은 이택근의 반응은 "야~, 살다가 이런 행운도 오네요".[24]

이 소식을 들은 넥센 팬들은 다시 사오자라고 하고 있는 추세였다. 혀갤에서 '돌택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리고 2011 시즌이 끝난 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4. 2011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택근/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5. 2012 시즌

넥센으로 다시 돌아와서 팀의 중견수와 3번 타자를 맡았다. 사실 돈값을 따진다면, 일단 4월 성적은 썩 좋은 상황은 아닌 편. 하지만, 높은 득점권 타율과 도루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팀 타선의 구심점 자체가 없던 넥센 입장에서는 팀 타선의 구심점[25][26]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덧붙여서 온갖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게 된 선수 중 하나가 돌아왔다는 것으로도 넥센 팬들에게는 감격 그 자체.

그런데 12시즌 LG와의 경기마다 야유가 쏟아졌다 시범경기부터 시작된 야유가 424 대첩에서 절정에 달았다. LG팬들의 야유는 LG 나름대로 후한 제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FA협상이 결렬된 것에 대한 분노와 인터뷰에서 LG팬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대인기피성향이 생겼다는 발언에서 온 서운함 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야유를 보낸 것 자체는 팬으로서 일면 이해가 가는 행위이지만 문제는 야유에 그치지 않고 도를 넘어서는 비난이 뒤따랐고 심지어는 인신공격까지 이루어졌다는 점. 다만 선수 스스로 유학드립을 친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포화 속에서도 야유를 무색하게 하는 3안타 2타점을 기록, 424 대첩을 만드는데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426 대첩에서도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확인 사살.

5할에 달하는 득점권 타율과 준수한 타율, 출루율을 보여주며 넥센 타선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다. 팀 타선 전체에는 준수한 우산이 하나 씌워진 셈. 넥센 타선의 강화에 있어 박병호라는 거포의 활약과 강정호의 재도약 외에 이택근의 존재를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5월 첫 주 동안 24타수 1안타를 치며[27] 극히 부진(그동안 팀은 1승 1무 4패)했으나 LG를 만나면서 귀신같이 부활, 5월 9일 현재 타율 0.298, 허나 대 LG 타율 0.588...혹자는 LG에서 부진한 이유가 다 있었다고도 하였다.[28]

혹자는 2011년 탈쥐효과의 산 증인이 박병호라면 2012년의 산 증인은 이택근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5월 23일, 탈쥐효과를 온몸으로 입증이라도 하듯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내야안타와 솔로홈런을 추가하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게임 중반 타구판단을 잘못하여 1점을 헌납하는 실책을 범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택근의 활약에 힘 입어 넥센은 2008년 팀 공식 창단 이래 첫 1위를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6월에 접어들며 타율과 득점권 타율 등에서 부진을 보였는데, 검진 결과 손바닥 부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6월 6일부터는 선발에서 빠졌다.

6월 9일에는 대타로 나와 3타석에 나왔으나 무안타. 하지만 12회말 4:3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대수의 타구가 중견수 쪽을 향해 날아가자 펜스까지 죽어라 뛰어서 나이스 캐치를 선보이며 경기를 마무리, 문자 그대로 팀을 구원하는 수비를 해냈다. 동영상 링크

손바닥 부상이 심해져 1주 결장한 후 6월 26일부터 다시 출장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결장하는 동안 침체된 타선으로 인하여 고생하던 소속팀은 6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1회에만 5득점하는 등 방망이가 불을 뿜으며 13:3으로 크게 이겼다. 그리고 6월 27일 경기에서 그는 적시타를 치고 도루를 성공시키고 보살을 기록하는 등 원맨쇼를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정수빈을 홈에서 아웃시킨 보살은 두산의 추격의지를 꺾어버리는 중요한 순간이었고, 그는 이 경기에서 MVP로 선정되었다.

2군에 오래 내려가 있던 강병식을 대신해 7월 11일, 넥센의 새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7월 24일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후반기 첫 경기에서 투런홈런을 쳤다. 시즌 6호 홈런. 이 날 최종 성적은 4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

FA 총액 50억의 임팩트가 커서 뭔가 할 때마다 수식어로 50억이 붙는다. 50억 땅볼, 50억 삼진, 50억 테러 등등. 초반에는 50억에 맞지 않는 저조한 타율로 우려를 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기 페이스를 찾고 넥센 공격을 이끌고 있다. 6월 말에는 타율을 3할 언저리까지 끌어올렸다. 본인 또한 돈값을 하기 위하여 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하여 출전하는 등 나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넥센 타선의 리딩 히터로 뛰면서 넥센에 우산 효과를 씌워주고 있지만, 이 상황은 때론 넥센에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이택근이 부진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넥센 타선 자체가 점수를 못 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특히 이택근이 주자를 여럿 두고 찬물이라도 끼얹는 경우에는 더더욱. 이런 날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잔루에 시달리다가 패배하거나, 그냥 아예 상대팀 투수들에게 말려버리거나, 역전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났다. 그 정도로 넥센 타선에서 이택근의 비중은 크다는 말.

2012년 8월 후반부터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다시 제외되었다. 팀 또한 DTD를 제대로 당했고, 그 또한 8월 24일 이후 1군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3.6. 2013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택근/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7. 2014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택근/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8. 2015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택근/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성적은 누적기록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좋은 편이었지만 시즌 마무리가 몹시 매끄럽지 못했다. 소위 "좀비데이"라는 히어로즈 고유의 홈 최종전 그라운드개방 행사에서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미리 싸인한 종이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팬들에게 가져가라 했던 것. 그리고 행사 종료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먼저 행사장을 이탈한 것. 가뜩이나 무기력한 경기내용에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해 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거기에 과거에 했던 부적절한 발언이나 기분에 따라 싸인을 거절하는 등의 행동이 재발굴 되면서 더욱 가열차게 까이는 중. 더군다나 준 PO에서의 삽질로 인해 하루가 멀다하고 비난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건 후술할 폭행 논란의 새발의 피도 안된다.

3.9. 2016 시즌

2번째 FA 자격을 얻어 4년 총액 35억 원의 조건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2012년부터 맡아오던 주장직을 2루수 서건창에게 넘겼다.

좌익수로 수비전향을 할 예정이었으나 외국인 타자 대니 돈의 송구 능력이 영 좋지 못한것으로 드러나 우익수를 맡게 되었다. 2월 연습경기에서 드러난 바로는 예상보다 우익수 수비가 안정적이어서 팬들이 놀라고 있는 중. 또한 그동안 고수해온 타격폼도 바뀌었다.

4월 5일 대전 한화전에서 산책 도루를 선보이며 한화 선수단을 당황하게 했다. [29] 팀은 5:9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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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kt 위즈 전에서 벤와트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치며 포효, 고척 스카이돔의 첫 홈런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수훈선수로서 단상인터뷰 자리에 서서 "고척돔 1홈런은 우리팀에서 치고 기왕이면 내가 치고 싶었는데 홈런돼서 세리머니 했더니 채태인이 부끄럽게 그게 뭐냐고 쿠사리 먹였다"는 뒷얘기를 풀어놓았다. 단상인터뷰 동영상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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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NC와의 마산 경기에서는 멀티히트를 기록해놓고도 혀갤러들한테 엄청나게 까였는데 8회 2사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이후 박동원의 타구를 나성범이 애매하게 처리하면서 페어지역에 떨어졌는데 2아웃임에도 불구하고 설렁설렁 뛰다가 홈에서 아웃당했기 때문이다.[30]

5월 3일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 투런 홈런 포함 3타점을 기록하며 나름 밥값을 했다.

5월 29일 kt전에서 개인 통산 2000루타를 달성했다.

6월 14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8회말 박정음의 대타로 나와 한아두를 기록했는데 팀의 대역전으로 묻혔다.

6월 18일 한화전에서 대타로 나와 정우람에게 블론을 안겨준 동점 적시타를 쳐냈다. 바깥쪽 공을 배트를 던지다시피 스윙을 해 밀어친 기술적인 스윙이 일품이었다.

7월 12일 kt전에서 9회에 대타로 나와 개인 통산 1400안타를 때려냈다. 그것도 팀이 4대5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동점 솔로 홈런으로! 이 홈런으로 기세를 가져온 넥센은 이 이닝에서만 3점을 내 7대5로 역전승한다.

7월 20일 LG전에 오랜만에 선발 출장, 소녀 어깨 고종욱과 대비되는 홈 보살을 보여줬고 타석에서도 결승타가 된 2타점 2루타를 쳐내며 화려한 복귀전을 치뤘다.

8월에는 그놈의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몇 번 빠지기도 했으며 8월 11일~14일 4경기 동안 심각하게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월 들어 타격감 자체도 매우 형편없다. 그러나 8월 27일에는 투런 포함 3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3.10. 2017 시즌

개막 3연전에서 9타수 1안타로 엄청나게 부진하면서 욕을 먹고 있다. 결국 팀이 5연패에 빠진건 덤. 그리고 그동안 말이 많았던 팬서비스와 관련해 얘기가 다시 나오면서 더더욱 까이는중. 함께 부진한 대니 돈, 채태인과 엮여서 까이고 있다.

그러다 4월 12일 kt전에서 대타로 출전, 2타점 적시타를 때리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4월 27일 두산전에서 7번타자 우익수로 출장, 3타수 2안타 1타점 3득점으로 활약했다.

개막 직후만 해도 타격도 안 되고 수비도 설렁설렁하는 유리몸 35억 먹튀라고 팬들에게 무척 까였는데, 본인도 선수생활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4월 말 기준으로는 타격감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으며 경기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8일 한화전에서 9회 말 무사 만루에서 대타로 출전, 팀이 6대 4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정우람을 상대로 극적인 끝내기 그랜드 슬램을 날렸다. KBO 역대 두 번째 대타 끝내기 만루홈런이다.[31] 이날 인터뷰에서 한 타석, 한 경기의 소중함을 후배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기도.

그러나 5월 21일 kt전에서 우익수로 나와 1회말 노바운드 캐치를 노리다 장타를 만들어주는 어처구니 없는 수비로 위의 까방권을 순식간에 소모하였다. 이 삽질로 인해 선발 투수였던 최원태는 주지 않아도 됐을 실점을 하고 말았고 이후 멘탈이 무너지면서 대량실점, 3이닝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됐다. 결국 팀은 대패.

노련미가 더해진 공격력과는 달리 수비력은 신체능력 저하로 인해 매년 퇴보하는 추세이다. 사실 이쯤 되면 수비는 접고 지명타자나 대타로 주로 활약해야 맞겠지만, 정작 넥센 외야진(이정후, 고종욱, 박정음 등)의 상태가 수비 면에서는 이택근과 비교해도 하나같이 고만고만하거나 오히려 더 떨어지는데다, 그나마 수비력이 가장 낫다는 평을 듣는 임병욱은 부상 중이라 코칭스태프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시즌 중후반부에 들어서며 체력이 바닥난게 역력한 어린 선수들을 대신해 이택근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다. 역시 스탯근답게 낮았던 타율을 2할 후반대까지 끌어올리며 팀의 막판 5강 싸움에 힘을 보탰지만.

약간 아쉬운 올해 성적이지만 연차가 다른 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은 잘해주고 있다. 선수들의 인터뷰나 해설위원들이 이택근을 칭찬할 때마다 언급되는 사항.

8월의 크리스마스 두산전에서 5타수 4삼진 1병살타로 삽을 펐다. 1회초 이정후의 볼넷 후 타석에 들어서서 삼진 먹은 건 그렇다 치는데, 2회초 장영석의 솔로 홈런으로 1점을 더 달아나 2:0이 된 후 주자가 차곡차곡 쌓여 1사 만루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유격수 병살타로 날려먹었다. 5회초에는 이정후가 볼넷으로 나갔지만 헛스윙 삼진 후 이정후가 도루사되면서 졸지에 창조병살을 먹었다. 7회초 고종욱이 내야플라이 실책으로 출루하는 행운을 얻은 후 희생번트와 진루땅볼로 3루까지 갔으나 거기서 또 삼진을 먹고 잔루. 8회초 초이스의 적시타로 다시 앞서갔다가 8회말 김상수가 백투백 홈런을 맞아 재역전된 뒤 9회초 박정음의 사구 출루 후 이정후가 3루 파울플라이로 물러나며 2사 1루가 된 상황에서 6구만에 끝내기 삼진을 기록, 3:4로 팀이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영웅 게시판과 혀갤 등지에서 미친듯이 까였다.

시즌 최종 기록은 타출장 .278, .347, .386으로 ops가 7할 5푼도 안 된다. 센터 포지션도 아니면서 8할을 못 넘는다는 건...

3.11. 2018 시즌

스프링캠프 중 무릎 부상으로 조기 귀국한 후 2군에서 개막을 맞이했다.

2018년 4월 14일 콜업돼 대 두산 베어스전에서 싹쓸이 2루타를 치면서 팀의 7-6 승리에 공헌했으나 다음날 두 번의 사구를 맞고 교체됐다.

4월 20일 4회 1사 만루에서 좌전 안타로 결승타를 때려내 팀의 6-1 승리를 이끌어냈다. 다음날 역시 8회 2사 1,3루에서 우전 안타로 결승타를 때려내 4-3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팀의 3연승을 이끌어내는 안타들로 타율이 2할이 채 안되는 상황임에도 부활의 조짐이 보인다며 박수를 박고 있다.

4월 24~26일 LG와의 시리즈 에선 7타수 5안타 4볼넷으로 그야말로 혼자서 야구했다.

5월 3일 NC전에서도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는지 거의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있지만 단순히 잘 치는 타자가 아니라 주자가 있으면 팀배팅을 하고 루상에 나가면 특유의 야구센스로 투수를 흔들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주루도 열심히 하는 등 여러모로 트루 리더를 외치게 만드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먹튀행각으로 욕을 먹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절실함이 느껴진다는 평.
5월 17일 기아전에서 4타수 1안타 2타점 1홈런을 기록했다 팀의 8-2 승리를 이끌어냈다.
옛 동료 김세현의 1군 복귀전 초구를 받아쳐 홈런을 만들었다. 높게 몰린 공이 아니라, 정타를 맞추기 힘든 꽤 높은 볼이었는데 받아쳐서 홈런을 만들었다. 상당히 기술적인 타격이었는데, 체력은 예전만 못하더라도 기술이나 센스는 여전한 듯하다.

5월 30일 기아전에서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타를 쳐 한현희의 승리를 도왔다.

노쇠화 문제가 뚜렷하던 지난 시즌의 염려를 반전시키고 노련한 플레이와 팀배팅으로 보급형 5툴 플레이어답게 상황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를 풀타임으로 뛰기는 어렵지만 마침 팀에 우수한 외야수 자원이 많아져서 굳이 이택근이 수비로 들어가야 할 일이 별로 없어졌기에 체력 관리 면에서도 도움을 받게 되었다.

요새는 은퇴 전이라 그런진 몰라도, 팬서비스가 굉장히 좋아졌다. 사실 야구를 잘 하는 게 팬서비스다 카더라 팔 아프게 사인 해 두게 하지 말고 구단 홈페이지에 올린 걸 프린트하자 넥센팬들아

10월 13일 삼성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갈비뼈 부상을 당해 4주 진단을 받아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선수단과는 계속 동행한다.(규정에 따라 경기 중 덕아웃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뛰겠노라 다짐하면서 재활과 훈련을 반복했지만, 팀이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다. 그의 4번째 한국시리즈 출장 기회도 그렇게 날아갔다.

4. 사건사고

4.1. 불성실한 팬서비스 논란

파일:택팬서비스.png
이 사진은 엠엘비파크에 올라온 이택근 팬서비스 레전드.jpg라는 글에 나온 사진이다.

유명한 일화중 하나로 넥센 히어로즈 팬 사인회가 있었을 때, 이택근은 미리 사인을 해놓고 탁자 위에 탁하고 올려놓고 가져갈 사람 가져가라고 해놓고 자긴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잤다고 한다. 심지어 선글라스까지 끼고 당시 상황이 탁자랑 의자가 있었고 넥센 선수들과 팬이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대화 나누며 사인회를 하는 일종의 팬미팅 자리였던 것. 이 장면이 한 넥센 팬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상에 올려서 크게 화제가 됐었고 평소에도 팬서비스가 좋지 않기로 말이 많았던[32] 이택근의 팬서비스 논란에 화룡점정을 찍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4.2. 이택근 문우람 폭행사건

사건이 워낙 커져 분리되었다.해당 항목으로.

5. 기타

  • 이름 때문에 대표적인 별명이 만화 "로보트 태권 V"를 본뜬 택근브이. 팀 내에서도 이택근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 모자에 29V라고 써놓을 정도로 통하는 별명인 듯. 한편으로 득점권 찬스나 주자가 있을 때에는 그다지 위압감이 없어서(주로 LG시절. 디씨 히어로즈 갤러리 내지 LG갤러리에서는 잉택근 혹은 스탯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있다.[33] 게다가 전 여자친구 윤진서와 속옷 광고를 찍은 이후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해 팬티근(끈) 혹은 빤스근(끈)이라는 조롱섞인 별명도 생겼다.
  • LG에서 2년 동안 열심히 부상 당한 몸을 치료하고 몸을 추스려 슈퍼먹튀 이택근, (개)씹택근이라고 조롱 당하기도 한다. 특히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아예 금지어수준까지 올라갔다. 2년 동안 성적 못 낸 것도 문제지만, 넥센 복귀 후에 유학드립, 팬들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워 대인기피증에 걸렸다는 등의 무개념 인터뷰를 하면서 말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김상현처럼 말조심을 못해 욕먹는 케이스다. 2012년 LG와의 3연전에서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LG 관중 쪽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 넥센에 돌아온 뒤로는 50억에서 따 온 오시벅, 시벅이형,택주(장) 등으로 불렸다. 물론 못 할 때는 당연히 가차없이 까인다. 주로 LG시절에 만들어진 조롱 섞인 별명으로... 팀 주전 중 나이가 있는 편이라 노친네에서 따온 택친네 라던가, 낡은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 영화배우 윤진서와 연인 관계였고, 둘이서 키스를 하는 사진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함께 속옷 화보도 찍은 적이 있다. 속옷 화보치고는 노출이 적은 편이지만 어쨌든 야하다. 구글에 검색하면 한방에 나온다. 2010년 11월 5일에 결별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사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여름에 깨졌다고 하는 카더라가 돌았는데 그것이 이제서야 기사가 난 것.
  • 2011년 11월 11일 슈퍼스타K3 결승전에 관람온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 박용택이 인터뷰 하기를 자기가 LG에서 이택근 있을때 빼놓곤 자기 자리를 위협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2012년 12월 언론에 이택근이 2013년 1월에 재일교포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 갑자기 2014년 12월 7일에 한국인 치과 의사와 1년 간의 열애 끝에 결혼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네티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재일교포 여성과 약혼을 맺었다가 파혼되었다는데, 구단 측의 보도가 나오면 추가바람.
  •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의 황태자다. 이택근이 복귀하던 당시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라는 말을 했고, 공공연히 이택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택근 역시도 단상인터뷰에서 아무리 금액 차이가 많이나도 히어로즈에 잔류하겠다는 의사를 일찌감치 밝혔고 팀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보인다.
  • 2006년, 2009년 골든글러브 2회 수상자인데도 불구하고 수상한 해 모두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두 선수가 모두 좌타자였다는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34]
  • 축구선수 차두리고려대학교 동기라고 한다. 그 이유인지 차두리목동구장에 넥센 경기를 관람온 적도 있다. 자신의 유니폼을 차두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 이유인지 차두리는 공개적으로 넥센 팬임을 밝히기도 했다.
  • 2014년을 마지막으로 강정호가 떠나고 2017년 김세현 & 유재신이 기아로 떠남으로서 2004년 데뷔한 오주원, 2005년 데뷔한 이보근과 함께 히어로즈에 단 셋만 남은 현대 유니콘스 출신 선수이자 유일한 야수다. 특히 현대의 마지막 영광인 2003, 2004년 2연패를 경험한 마지막 선수다.[35] 유니콘스의 영욕과 히어로즈의 험난했던 초창기, 현재를 모두 지켜보았다. 중간에 LG에 가 있어서 모든 시절을 다 경험하진 못했지만.....[36]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3 현대 101 212 .278 59 11 0 4 17 26 2 11 35 .350 .387 96.6
2004 41 57 .211 12 1 0 2 8 9 0 5 11 .297 .333 71.6
2005 71 139 .331 46 9 0 2 14 20 2 19 22 .440 .439 149.3
2006 118 419 .322
(2위)
135 21 2 9 66 58 8 45 51 .396 .446 147.1
2007 116 438 .313 137 15 1 11 56 74 6 39 41 .398 .427 129.2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8 우리 110 372 .317 118 19 1 12 58 59 18 48 44 .398 .470 143.0
2009 서울 123 456 .311 142 26 0 15 66 84 43
(3위)
64 59 .407 .467 129.1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0 LG 91 337 .303 102 17 1 14 50 66 14 38 55 .377 .484 125.7
2011 85 317 .297 94 17 0 4 29 44 10 40 45 .377 .388 115.6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2 넥센 94 345 .275 95 20 1 8 55 54 13 31 30 .335 .409 111.1
2013 123 477 .287 137 31
(1위)
1 9 66 73 29 39 58 .345 .413 104.5
2014 122 441 .306 135 32 1 21 91 87 11 51 43 .386 .526 116.5
2015 105 347 .326 113 16 1 10 44 61 11 44 53 .402 .464 122.6
2016 127 398 .309 123 19 1 8 65 64 7 53 56 .389 .422 107.6
2017 100 241 .278 67 15 1 3 29 27 0 25 58 .347 .386 87.3
2018 104 308 .308 95 25 1 4 52 40 1 32 44 .385 .435 109.9
통산 1631 5304 .304 1610 294 12 136 766 846 175 584 705 .380 .440 118.3


[1] 출생 당시에는 경상남도 양산군이었다. 기장군은 1995년 1월 1일부로 양산군의 해안지역 일부를 분할하여 부산광역시에 편입하면서 신설된 행정구역이다.링크[2] 경남상고 시절에는 포수였다. 데뷔 초창기 현대 유니콘스시절에도 잠깐 포수로 뛴 적이 있었다.[3] 현대시절부터 2015년까지는 주로 중견수로 나섰다가, 2016년 이후로는 코너 외야수로 종종 나온다.[4] 현대 입단시 1루수를 봤었다. LG에서도 봤었으나, 뭐... 알다시피 1루 수비는 가만히 서 있는 병풍 수준...[5] 히어로 이~택근~ 히어로 이~택근~ 승리를 위~하여 오오오오오x2 귀여워 이택근으로 들린다.[6] 2017 시즌 저작인격권 문제로 넥센의 응원가를 싹 갈아엎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응원가다.[7] 2009년까지 사용했던 응원가.[8] 무적엘지~이택근~워우워어~예~(X2) 무적엘지~이택근! 워~워우워! 무적엘지~이택근~워~예~[9] 이택근이 넥센으로 이적한 후 이 응원가는 윤요섭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 윤요섭kt로... 결국 이천웅이 물려받았다.[10] 그래도 박병호는 2018년에 다시 돌아왔다.그런데 강정호가....[11] 외야가 과포화되어 이택근을 1루수로 쓸 수밖에 없었던 LG 시절에는 이것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12] 예를 들어서 박한이꾸준함으로 설명하듯이.[13] 순수한 빠르기로는 넥센 팀내에서 유재신, 고종욱은 물론 박병호한테도 뒤지는 걸로 알려져 있다.[14] 물론 운동 능력이 급감했다고 하더라도 외야수로서의 수비력은 고종욱보단 훨씬 위다. 그만큼 고종욱의 수비 센스가 개망이란 이야기도 되지만.[15] 2002년 말 박경완SK 와이번스에 넘겨 주고 난 후 현대 구단의 구상은 강귀태와 이택근을 번갈아 기용하고, 이미 노쇠한 것으로 여겨지던 김동수를 백업 및 대타 요원으로 쓴다는 것이었는데, 강귀태가 2003 시즌 초 부상으로 이탈하고 이택근의 포수 수비가 시망 수준으로 드러나면서 김동수에게 기회가 돌아와 결국 김동수의 부활로 이어졌던 것. 즉, 시즌 시작 전에만 해도 SK에서 방출된 뒤 현대에 입단한 김동수는 퇴물 취급을 받았고, 강귀태는 그 때나 그 이후에나 수준급 포수라고 봐 주기 어려운 선수였다.[16] 경기 전 훈련 때마다 간간이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공을 받아준 적은 있다.[17] 다만 마지막 쿠바전에서 이택근이 포수 마스크를 쓸뻔했다. 당시 윤석민이 마무리로 등판하고 포수경험이 있던 이택근을 포수로 넣으려했다. 그런데 진갑용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대신 포수를 보겠다고 나섰고, 진갑용이 정대현을 추천해 없는 얘기가 되었다.[18] 1차 투표 동률, 2차 투표에서 2표 차이로 졌다.[19] 상대인 양준혁에게 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양준혁이 0개의 전설을 세웠다.[20] 올림픽같은 대회에 선수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분증이다. 이 카드가 없으면 대회 기간 중 선수 구역에 들어갈 수 없다. 특히 올림픽의 경우 보안 관계로 이걸 최소한만 주기 때문에 AD카드를 전 종목이 분배해서 써야 되는데, 가뜩이나 야구는 코칭스탭 규모가 큰 축에 속하는지라 다른 종목을 생각하면 불펜 포수 몫까지 달라고 할 수가 없다.[21] 현금 트레이드 액수는 25억 원으로 발표했으나,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으로 실제 금액이 38억원이었음이 드러났다.[22] 당시 이대형의 페이스가 3할대 중반의 몬스터급 활약이었던지라...뭐 결국 시즌 후반에 원위치를 넘어 바닥을 파고 들어갔지만.[23] 7월 0.299, 8월 0.325, 9월 0.431[24] LG 트윈스넥센 히어로즈에게 이택근을 30억+서울입성금 20억 퉁치는 조건으로 영입했는데 만일 넥센이 2011 시즌후 이택근의 FA 보상금 9억을 주고 사오게 되면 물경 41억이 남는 장사...[25]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에서부터 오래 뛰었고, 커리어도 어느정도 있으며, 나이도 중간급. 이숭용이 자신의 은퇴이후 팀을 이끌 인물로 꼽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택근이었다.(다른 한 명은 정성훈)[26] 이택근이 돌아오기 전까지 히어로즈의 구심점을 맡아줄 사람은 다들 한가지씩 부족한 상황이었다. 송지만은 나이가 너무 많았고, 김민우는 커리어가 부족했으며, 강정호는 그런 역할을 맡기엔 아직 어렸다. 그외의 선수들은 외부출신(박병호, 허도환)이거나 커리어가 너무 부족했다.(오윤, 장기영, 유한준)[27] 타율은 0.0417이었다. 0.417이 아니다!![28] LG로 가기 전에도 대LG전 타율이 유독 상당히 높았다. 반면 LG에 있었을 때 대 넥센전 타율, 목동구장에서의 타율은 형편없이 낮았다. "엘넥라시코"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택근의 대 LG전 타율은 LG팬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좋았다.[29] 재밌게도 6회에 정근우가 똑같은 플레이를 했다.[30] 참고로 2아웃일 때 전력질주하는 건 프로야구 선수라면 기본 중의 기본이다.[31] 참고로 첫번째 대타 끝내기 만루홈런은 데뷔 첫 타석에 김원형의 초구를 받아친 송원국이다.[32] 근데 어린이 팬들에겐 꾸준히 잘 해준다....이건 뭐[33] 혀갤에서 주로 쓰던 표현이다. 쥐갤에선 훨씬 나쁜 별명들을 만들어서 썼다.[34] 2006년에는 좌타자인 박한이이용규가 수상을 하였고 2009년에는 역시 좌타자인 박용택김현수가 수상을 했다.[35] 그리고 이택근은 합류만 2003년에 했지 지명은 무려 현대의 인천 시절인 1998년, 1999년 신인드래프트 때 받았다.[36] 히어로즈의 역사를 모두 경험한 멤버로는 이보근이 유일해진다. 근데 타자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