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3 20:04:52

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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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의 감독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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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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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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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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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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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1]
1982

OB 베어스 등번호 2번
팀 창단 김경문(1982~1989) 결번
결번 김경문(1991) 송명철(1993~1995)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2번
김진한(1989) 김경문(1990) 박상일(199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1번
결번 김경문(1994~1996) 이순철(1999~2000)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74번
유지훤(1993~1997) 김경문(1998~2011) 정명원(2012~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74번
팀 창단 김경문(2012~2018.5) 한규식(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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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74
김경문(金卿文 / Kyong-Moon Kim)
생년월일 1958년 12월 11일[2] ([age(1958-12-11)]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학력 대구옥산초-부산동성중-공주고-고려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 멤버
소속팀 OB 베어스 (1982~1989)
태평양 돌핀스 (1990)
OB 베어스 (1991)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1994~1996)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1998~2003)
두산 베어스 감독 (2004~2011)
NC 다이노스 감독 (2011~2018)[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7~2008, 2019~)
종교 불교
1. 개요2. 선수 및 코치 생활
2.1. 연도별 주요 성적
3. 지도자 경력4. 스타일5. 별명6. 기타
6.1. 제2의 국민감독 후보6.2. 포스트시즌만 되면 이상하게 새가슴6.3.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6.4. 그 외

1. 개요

대한민국야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및 코치 생활

파일:external/2.bp.blogspot.com/8%25EC%259B%259416%25EC%259D%25BC4_00002.jpg
OB 베어스 현역 시절
파일:M98HTA8.jpg
공주고등학교 시절 김경문

인천 출신이며,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학창 시절 이사를 자주 다녔다. 위로 형이 많아서[4] 어린 시절부터 형들과 야구를 하면서 배웠다고 한다. 인천 송림초등학교에 다니다가 대구로 이사가 야구 명문인 옥산초등학교로 전학하고 여기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대구 경상중에 다니다가 가족들이 부산으로 이사하게 되어 부산 동성중으로 전학하게 된다.

부산 동성중을 졸업하고 부산고 야구부에 진학했다. 그런데 당시 야구부를 재창단한 공주고가 당시 야구 불모지였던 충청도에 선수층이 없어 외부 전학생들을 대거 모집하고 있었는데, 이때 공주고로 스카우트되어 전학을 가면서 야구 인생이 바뀌게 된다. 이후 야구부 해체설이 돌던 대구 대건고 야구부에서도 몇 명이 전학왔는데, 그중에 조범현이 있었다. 그러나 조범현은 일년이 안돼서 다시 대건고로 돌아갔다.[5] 김경문이 주축으로 활약한 공주고 야구부는 1977년 대통령배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그로 인해 고려대학교[6]에 진학 할 수 있게 된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는데, 조범현도 동시에 OB에 입단하게 되어 원년부터 둘은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펼치게 되었다.[7]
파일:attachment/IMG_0655.jpg
아니!!! 손창민씨께서 영화 찍으셨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기분탓이다.[8]

현역 시절 타격은 좋게 말하면 그저 그랬다. 사실 말이 좋아 그저 그랬다는 거지, 프로 10년간 통산 타격성적이 타율 0.220, 6홈런(...), 126타점에 불과하니 타격 실력은 떨어졌다고 할 수 밖에 없다.[9] 당시 조범현과 주전경쟁을 하며 상대적으로는 타격이 좋았다고 평가된다. 그래도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멤버로서 활약하면서 공을 받았던 선수다. 또 1988년 장호연의 공을 받으며 개막전 노히트노런을 경험하기도 했다. 조범현과의 치열한 주전 경쟁은 김경문은 근소한 판정승으로 끝나는데, 이는 출장 경기수에서 조범현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10]

OB에서 평범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1990년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었지만 1년만에 다시 OB로 복귀하여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파일:external/image.kmib.co.kr/201606211619_61160010720726_1.jpg
[11]

1992년 미국 애틀랜타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를 지냈으며[12] 1998년부터 두산 베어스에서 배터리 코치[13]를 맡았다.

2.1.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OB 베어스 51 106 .217 23 4 0 0 6 10 2 7 .255 .266
1983 62 117 .205 24 4 1 2 12 13 2 12 .308 .277
1984 36 96 .240 23 6 0 0 5 8 5 9 .302 .305
1985 57 79 .190 15 3 0 0 3 7 1 13 .228 .301
1986 86 180 .183 33 7 0 0 11 10 0 12 .222 .233
1987 94 228 .263 60 4 0 2 26 22 2 21 .307 .325
1988 97 257 .261 67 14 0 1 26 19 2 11 .327 .288
1989 97 227 .211 48 9 0 0 22 19 2 15 .251 .25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0 태평양 돌핀스 63 91 .231 21 5 0 0 9 3 0 6 .286 .27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OB 베어스 57 113 .133 15 4 0 1 6 8 1 4 .195 .162
KBO 통산
(10시즌)
700 1494 .220 329 60 1 6 126 119 17 110 .274 .272

3. 지도자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경문/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스타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경문/감독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별명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은 김경문의 '문'(moon) 자를 딴 감독. 또한 좋은 페넌트레이스 성적을 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우승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해서 콩경문이라고도 불리며, 삽질을 할 때는 돌경문 소리도 나온다. 2011년 시즌 중도에 사퇴한 이후의 행보 때문에 두산 팬들에게는 통갱문(통수+김경문), 런경문이라고 불린다.

호구라는 별명도 있는데, 이는 김성근에게 2007, 2008년 우승을 2년 연속으로 조공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SK 왕조의 1등 공신이라며 솩전드라 불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간통[14]이라는 감동님의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위에서 말한 돌경문이나 (가을)호구 등이 더 쓰인다. 과거 선수 시절에는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텔론 씨와 닮아서 별명이 람보였다.

장성우 사건으로 NC 다이노스 갤러리 등지에서 비가오면 돌아버린다+감동님 해서 비동님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투수 혹사에 관해서도 그 분의 뒤를 잇는 콩이기에, 혹사 관련 논쟁에서는 세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잡은 경기를 쉴새없이 등판한 구원을 굳이 올려서 점수를 퍼주고 패하는 경기가 속출하자, 킬경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NC 선수단과 팬들은 하나가 되어 감독을 가루가 되도록 마구 까고 있다.

6. 기타

6.1. 제2의 국민감독 후보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예선 7전 전승 포함 도합 9전 전승으로 팀을 금메달로 이끌었으며, 예선 및 준결승에서 대타 성공률이 50%를 기록하면서 작두 탄 김경문(기사보기)이 되었다. 이 때부터는 김인식 감독에 이은 국민 감독의 재목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일단 KBO 리그 페넌트레이스KBO 한국시리즈 우승경력이 없는 것이 아쉽다. 2004 2005 2007 2008 2009 2010 2014 2015 2016 2017 벌써 10번째다 차라리 빨리 은퇴했으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기간이 2007년, 2008년, 2019년, 2020년으로 김응룡(1977~1980, 2000), 김인식(2002, 2006, 2009, 2015, 2017)에 이어 세번재로 오랫동안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인물이며 주성노(12연승)에 이어 두번재로 오랜 기간 연승(10연승) 기록을 보유한 감독이기도 하다.

2019 WBSC 프리미어 12 대표팀을 이끈 수장이기도 한데 준우승을 거두며 2020 도쿄 올림픽 야구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일부에서는 한일전의 대패와 대만전 대패를 근거로 조기 경질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과격한 주장이다. 전임 감독이던 선동렬 전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대표팀 엔트리 논란과 더불어 자카르타 쇼크라는 참사를 맞으며 입방아에 올랐고 결국 국정감사에서 인격모욕까지 당한 후 자진 사퇴하는 등 대표팀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기존 목표였던 도쿄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한 감독을 경질하자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6.2. 포스트시즌만 되면 이상하게 새가슴

콩경문, 돌경문이라 불리는 이유는 좋은 페넌트레이스 성적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에서 2006년 이래 계속 물을 먹은 것을 빗대어 부르는 것이다. 사실 콩보다는 3을 훨씬 많이 찍은건 함정이다 락경문?

2004년은 플옵에서 1승 먼저 했지만 그 후로 3패해서 탈락, 2005년은 KS에서 4패 스윕패로 탈락, 2007년은 KS에서 2승 먼저 했지만 4연패로 탈락[15], 2008년은 KS에서 1승 후 4패로 탈락, 2009년은 PO에서 2승 후 3패로 탈락, 2010년은 PO에서 2승 3패로 탈락, 2014년은 준PO에서 1승 3패로 탈락, 2015년은 PO에서 2승 3패로 탈락, 2016년은 KS에서 4패 스윕패로 탈락, 2017년은 PO에서 1승후 3연패로 탈락.

특히, 한국시리즈 진출 4번 할 동안 잠실 경기 전적이 0승 10패 잠실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경기는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16]

파일:external/pds20.egloos.com/e0049654_4cab3509e414d.jpg
솩경문

파일:external/pds26.egloos.com/c0091033_52991ec13a705.jpg

2007년부터 3년여간 포스트 시즌에서 만난 SK팬들+대부분의 야갤러에게는 우리편이라는 의미로 솩경문이라고도 불린다. 애향심이 지극하다 오죽하면 SK에는 레전드가 없다고 까대는 야갤러들 마저도, 김경문이 SK 유니폼을 입은 합성사진을 올리면 모두 얄짤없이 솩전드라고 인정할 정도...[17] 2010년 포스트시즌에는 파생별명으로 호구로 불린다. 두산이 포스트시즌에서 이길 때마다 두산을 기다리는(?) SK 김성근 감독의 입장에서 호구 오능가?라는 유행어가 야갤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을 오가는 혈전끝에 결국 호구는 오지 못했다. 그리고 야갤러들의 걱정대로 2010년 한국시리즈망했다. 아아 호구 왜 가능가...

2004년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 2005, 2007년, 2008년, 2016년 4년간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탈락(2005년 4연패, 2007년 2승 후 4연패, 2008년 1승 후 4연패, 2016년 4연패). 이후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2승 후 3연패하여 탈락.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팬들의 지적도 있으나, 워낙 지지층이 두터워서 게시판 등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 대체로 실드치는 글들이 따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10년에는 스윕 징크스는 깼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무관의 한은 풀었지만,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1사 만루 역전패 위기에 처했을때는 난 영원히 우승은 못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라고 하니 뭐라 위로해야할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KBO 리그 원년 OB의 우승 당시 주전 포수였다. 그리고 사실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해서 그렇지 절대 콩라인은 아니다;

1982년 원년 OB베어스 우승 당시 주전 포수 - 선수시절 우승
2001년 두산 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당시 코치 - 코치시절 우승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감독으로 금메달 - 감독으로 국제대회 우승

한국시리즈만 우승하면 오히려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이다. 근데 그게 엄청 힘들어 김경문과 가장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류중일. 코치로서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감독으로서 11-14년 통합 4연패와 2014 인천AG에서 금메달 등등 지도자로서는 모든 영광을 얻었지만 정작 선수 시절에는 이 지독한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리는 바람에 한번도 한국시리즈 우승[18]을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류중일이야 다시 현역으로 뛸 일이 없지만(...) 김경문은 큰 삽질만 없으면 무난하게 감독 커리어를 이어갈 테니.

또 OB시절 포수 라이벌이였던 조범현은 김경문보다 상위호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1982년 OB 선수 시절의 원년 우승, 2002년 삼성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로 우승, 2009년 KIA 타이거즈 감독 우승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거기에 더불어서 2010년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국제대회까지 우승하며 한국프로야구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11 시즌 중 두 감독이 모두 소속팀을 떠나면서 이런 관계가 끝나는가 했으나 김경문 감독이 NC 다이노스 감독으로, 김성근 감독이 고양 원더스 감독으로 가게 되면서 또 다시 2군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정확히는 NC 다이노스는 2군 남부리그 소속이며 고양 원더스는 독립구단이기에 소속 리그가 다르지만 고양 원더스에 대한 지원책으로 2군 팀들과 번외 경기가 편성된다.

그래도 2군에서는 전반적으로 선수층이 NC쪽이 그나마 낫기에 호구라는 호칭을 벗을지도 모른다. 물론, 2군에서마저 밀리면 그 때는 정말 호구 인증일듯. NC에서 뽑은 선수들은 그래도 프로에 지명 받거나 타 구단에서 1군에서 조금이라도 뛰었던 선수들이고 원더스 소속 선수들은 대체로 미지명 혹은 방출 선수라는 걸 고려하면 아무래도 전력 자체는 NC쪽이 더 높은 편.

2012년 6월 15일~17일동안 NC 다이노스고양 원더스의 3연전을 했다. 경기 결과는 2승 1패로 다행히 김경문 감독은 호구 인증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이미 호구다

하지만 2014년 준플레이오프로 인해 그 이미지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삽질하던 박민우, 이종욱의 기용, 1차전 이재학 선발카드, 4차전 잘치던 권희동 대신 박민우 대타카드, 7회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잡고 쳐맞고 있는 원종현, 이민호를 내리지 않는 점 등 이해가 안가는 기용과 함께 경험 부족으로 1승 3패로 패퇴하면서 가을야구 호구설이 다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는 상대가 산전수전 다 겪은 김성근감독이었지만, 이번 상대였던 양상문 감독의 경우는 감독 커리어 첫 포스트 시즌이었다(...). 그나마도 각축 끝에 진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털리고 탈락한 것이어서 타팀팬들은 물론이고 NC팬들 사이에서도 이쯤되면 진짜 문제있는 거 아니냐맞다는 불만도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와 정규리그 1위를 두고 끝까지 경쟁하다가 겨우 2게임 반차로 아슬아슬한 2위를 거머쥔 2015시즌, 역시나 첫 포스트시즌을 치르던 김태형 감독의 두산 베어스에게 패승승패패로 완파당했다. NC가 이긴 2차전에서는 물론 흔들려 준 함덕주덕분도 있다만 여러 과감한[19] 작전이 성공하여 이겼고 3차전은 선발 손민한의 호투에 힘입어서 위키러가 감독을 하고 있었어도 무난히 이겼을 어마어마한 점수차의 대승리를 거두었다. NC가 패배한 1차전에는 니퍼트의 압도적인 구위에 팀 타자들이 아무 것도 못했고, 그 니퍼트를 4차전에 다시 만났을 때도 니퍼트가 완봉승 뒤 3일 휴식 후 7이닝 무실점을 시전하는 동안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스무스하게 발렸다. 하지만 대망의 5차전에서는 초반 2대0 리드를 잡았으나, 2차전 완투승 후 피로가 누적되어 계속해서 정타를 맞는 스튜어트에게 그 놈의 믿음의 야구를 또다시 시전하다가 5회 초, 4회 말을 4구로 지워버린[20][21] 두산 선발 장원준에게 보답하는 듯한 두산 타자들의 김재호 2루타 - 정수빈 1타점 2루타 - 허경민 안타 - 민병헌 볼넷 - 김현수 2타점 2루타로 5타석 연속 출루를 기록하면서 스튜어트는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은 상태에서 3점을 내리 쳐맞고 멸망, 여기에다 경기 마지막에 나성범을 마운드에 올리면서 지명타자를 소멸시키는 쓰로잉까지 보여주며 가을야구에서 또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시리즈 내내 부진했던 스파이를 끝까지 믿고 3번, 6번타자로 기용한 실책이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또한 두산에 비해 상당히 두꺼웠던 불펜 뎁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태형 감독이 이현승의 2이닝, 3이닝 세이브라는 신의 한수로 불펜 약점을 커버한 데 비하면, 질적 양적으로 우세한 불펜이 있음에도 5차전에서 선발 스튜어트를 끝까지 믿었던 그의 선택은...

2017년까지 가을야구에 10번 진출하여 코시에 4번 올라갔고 결국 우승은 모두 실패했다. 또한 페넌트레이스 우승 경력은 한 번도 없다. 감독 커리어는 우승 억제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수준. 두산은 그가 떠나고나서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6.3.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

파일:attachment/opop11.jpg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진.

두 사람의 관계는 흔히 악연으로 묘사되고 있다. 2007년부터 SK와 두산의 라이벌 구도 속에 두 감독간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 OB 시절 조범현과 주전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이 충암고등학교 시절 사제관계였던 조범현을 중용하느라 출장기회가 적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여러가지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계형철 등은 조범현을 선호하고, 박철순은 김경문을 선호했다고. 두 포수는 번갈아 기용되었지만 처음에는 김경문이 더 많이 출장했다. 하지만 2년후 김영덕 감독이 물러나고 코치였던 김성근이 감독으로 승격되자 김경문의 출장기회가 줄고 조범현의 출장이 늘어났다.
  • 2007년 이대수 - 나주환 트레이드 당시 김성근 감독이 이대수의 상대카드를 여러번 바꾸는 등 계속 말을 바꾸어 김경문 감독이 언론에 직접적으로 이를 비판했다.
  • 2007년 김성근이 시즌 내내 두산 외국인 투수 리오스와 랜들의 투구폼이 보크라고 항의했다. 심판위원회에서 몇 차례 보크가 아니다라고 판정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까지 문제 삼았고 심지어 "리오스가 심판을 속이고 있다. 악질적이다. 한국야구를 우습게 알고 저러는 것이다."면서 리오스의 멘탈까지 지적하자 김경문 감독은 몇번 참다가 "이런 식으로 따지면 문제 되지 않는 투수가 없을 것이다. 괜한 트집으로 프로야구를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 "저렇게 까지 해서 우승하고 싶나" 등으로 반박했다. 그 후 2008년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리오스가 4월에 보크판정을 무더기로 받자 김성근 감독의 지적이 옳았다는 주장이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멀쩡하게 던지던 박찬호가 일본에서 무더기로 보크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보크 판정의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 2007년 한화와 2위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SK가 만만한 한화를 밀어줄 수 있다"고 언론에 발언,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당시 한화의 김인식감독이 "젊은 감독이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며 크게 발끈하기도 했다.
  • 2007년 두산과 SK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SK측의 비매너 플레이로 양측의 감정 싸움이 극에 달했다. 두산 안경현이 SK 채병용의 공에 맞아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여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종욱정근우의 스파이크에 찢겨 부상으로 당하고 또 정근우가 주루하는 이종욱의 다리를 붙잡았다. 또 1,2,3차전에서 도합 9회의 사구가 나왔는데, 그가운데 7개가 SK가 던진 것이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위한 선수 차출 후 김성근 감독이 "선수관리를 엉망으로 했다. 애들 몸상태가 안 좋다. 대표팀에 선수들을 보내 줬는데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더라." 라고 비난하자 김경문 감독이 "그럼 직접 대표팀을 맡으시라.",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올림픽 본선에서 SK 선수는 뽑지 않겠다." 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 2008년 4월 19일 두산-SK 경기에서 빈볼 사건이 발생하자 이전부터 김성근 감독에게 감정이 쌓여있던 김경문 감독은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 라고 분개했는데, 이 때문에 김성근 감독 팬들에게 스승에게 예의를 갖추지 못한 기본이 안된 놈이라면서 맹공을 당했다. 게다가 김인식 감독이 끼여들어 김성근 감독 편을 들면서 김경문 감독이 예의가 없다고 디스한 것이 사태를 확산시키는데 크게 작용했다. 결국 김경문 감독이 삭발을 하고 사태가 무마되는 듯 했으나, LG 김재박 감독이 다시 김경문 감독 편을 들면서, SK 야구가 2007년 이후 갑자기 비신사적으로 변했다, 스파이크를 드는 거친 수비로 상대방의 부상을 유발하는 수비 행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동업자 정신이 없다고 맹렬히 비판하면서 사태는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하여 SK에게 패하고,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SK와 다시 붙었으나 또 졌다. 김성근 감독과의 가을야구 감독 대결로 3연패. 2009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일찌감치 크게 지고 있자 전년도 한국시리즈에서 SK 투수들이 던진 무수한 빈볼들에 대한 항의로 두산 투수들이 SK 선수들에게 수차례 빈볼을 던지는 일이 있었는데, 경기가 끝난 후 SK 덕아웃으로 직접 찾아가 김성근 감독의 품에 썩소를 지으며 안기기도. 김경문 감독은 이 날 인터뷰에서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놨으니 찾아가서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는 묘한 인터뷰를 남겼다. 관련 기사
  • 2000년대 후반부터 김성근 감독과의 라이벌 관계가 이어지고, 위에서 나왔듯이, 서로를 디스하는 치열한 감정 싸움이 여러번 있었지만, 이제는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노리타들의 주장이 있었다. 2010년 김동재 KIA 수비코치를 돕기 위한 일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과의 자선시합에서 김성근 감독과 배터리를 이뤄 공을 받아준 것을 그 예로 든다. 이제는 인터뷰 등에서도 서로 좋은 말을 해주는 편이었다고. 이를 두고 야구들은 두 감독 사이에 화해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복귀한 후 양 감독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 하지만 이는 단지 표면적인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007년, 2008년에 김성근 감독과 김경문 감독의 대립 과정에서 서로가 과거 사제지간이었다는 점 때문에 김경문 감독이 김성근 감독에게 당하고 있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맞대응하면 김성근 감독의 지지하는 팬들이 스승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며 맹공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2008년 4월 19일 두산-SK전 빈볼 사건 이후 김경문 감독은 이전보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맞대응을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가 다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생팀 NC와 김성근 감독의 합류와 함께 대거 선수진을 보강한 한화가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김경문 감독은 한화전에서 다른 팀과의 경기에서는 안하는 항의를 하거나,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능욕 투수 교체를 하거나 하는 일이 때때로 있었다. 이처럼 소위 김성근의 더러운 야구에 대해 이에는 이 방식으로 맞대응 하는 방식은 SK 시절에도 크게 유행하기도 했는데, 당시 김재박, 로이스터, 김시진 등 여러 감독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항의하기 위해 SK 전에서 잦은 투수 교체를 하는 맞대응을 한 바 있었다.
  • 2016년, NC 다이노스의 15연승을 리그 꼴찌였던 한화 이글스가 저지해 내면서, 다시 이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 2016년 8월 7일 대전에서 열린 NC 대 한화전에서 김성근 감독의 이중동작 항의로 한번 크게 충돌한 일이 생겼다.
    김성근 감독은 전부터 좋지 않게 보던 헤커의 투구동작에 대해 이중동작이 아냐냐 항의하였고, 심판들은 3년이상 던지고 있는 해커의 동작이 문제 없다고 하였다.
    다음 항의는 김경문 감독이었다. 3-3으로 맞선 6회초. 2사 1, 2루 득점 기회. 이종욱의 타구가 유격수 글러브를 맞은 뒤 중견수 쪽으로 굴절됐다. 이때 3루 송구가 이어졌고, 3루에 있던 테임즈가 홈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홈 송구. 홈에서 접전이 벌어졌으나 허도환의 태그가 빨랐다. 태그 아웃. 그런데 이 과정에서 NC가 테임즈의 홈 태그 아웃 과정과 관련해 합의 판정을 요청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허도환이 공을 잡은 이후 테임즈가 홈플레이트를 가로막은 허도환의 발을 차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심판들은 포구 후 자연스러운 태그동작에 의해 홈플레이트를 가로막은데다가 충돌 전 이미 태그가 된 것으로 본 것인지 첫 판정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태그 아웃. 이닝 종료. 이때 NC 김경문 감독이 심판조장인 나광남 3루심에게 가서 홈충돌방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항의는 약 4분 간 이어졌다. 그러나 규정상 합의 판정 결과는 번복될 수 없었다. 김경문 감독은 다소 강한 어조로 항의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이번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성근 감독이 박종철 구심에게 다가왔다. 이어 나광남 3루심 쪽으로 자리를 옮겨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김경문 감독의 항의에 대한 어필로 풀이됐다. '2016 KBO리그 규정' 28조 11항 합의판정 신청 및 결과는 최종적 '3'에 따르면 '합의판정이 실시되면 선수단 및 양 구단의 관계자는 더 이상 심판팀장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 조항을 위반할 경우 심판은 선수단 및 관계자에게 퇴장을 명한다'고 명기돼 있다. 그러나 심판진은 김 감독에게 퇴장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김 감독 역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경기 후 심판진들은 경기가 과열될 위험이 있어 김경문 감독을 퇴장시킬 수 없었다고 하였다.

6.4. 그 외

  • 지병인 두통을 앓고 있는데, 만 오면 특히나 아프다고 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고교 시절 경기중 상대학교 선수의 고의로 추정되는 배트 스윙에 머리를 강타당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22] 당시 김경문은 경기장에서 실신했으며 김경문의 어머니가 해당 선수를 경찰에 고소했을 정도로 당시에 크게 뉴스에 나왔던 일화. 사실 이건 웬만한 내공의 야구골수팬들도 전혀 알지 못하던 건데 장성우가 김경문이 비가 오면 돌아버린다고 뒷담을 까버리면서 이 일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사정이 있는데 그걸 가지고 쌍욕을 해댄 장성우
  • 위에도 나온 고교시절 배트강타로 중상을 입은 이후 김경문의 타격성적은 급전직하했다. 부상 이전에만 해도 4번타자를 맡을 정도로 타격이 빼어났고 공수겸장 포수 유망주로 각광받았었으나 그 부상이후 수비가 빼어난 수비형 포수에 그쳐버린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 뇌진탕 이후 야구선수 커리어가 박살나는 케이스가 적지 않은데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야구에서는 특히 치명적. 간혹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김경문이 고교시절 상대선수의 배트 강타를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한국 야구 역사가 어찌 바뀌었을지 if 놀이가 간혹 나오기도 한다.
  • 박석민의 어머니가 김경문 감독의 팬이다. 그래서인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박석민을 통해 김경문 감독에게 꽃다발을 전했다. 정작 박석민과 김경문은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박석민이 NC로 이적하면서 같은 팀의 선수와 감독이라는 인연이 생겼다. 김경문도 꽃다발을 받은 걸 기억해서인지 박석민 이적 관련 인터뷰 때 언급.
  • 대단한 커피광으로,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부근(올림픽공원 남문 대로 맞은편)에 'MOON CAFE(문카페)'라는 본인의 커피숍도 운영하고 있다. 김진욱과 붙어보자 까페 이름 'Moon'은 본인의 이름 끝글자이면서, 별명인 'Moon'에서 따온 것으로, 처음 개업했을 때에 비해 지금은 인테리어와 외관이 많이 화려해졌다. 2층에 올라가면 다양한 야구용품과 사인볼을 비롯해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사인한 유니폼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이곳이 야구와 관련된 공간임을 느낄 수 있다. 비시즌, 비전지훈련 기간에는 가게에도 자주 나가서, 본인이 직접 커피를 다리고 나른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4월 현재 폐업한 상태.
  • 2017년 기준 KBO 리그 감독 중 유일하게 EQ900을 타는 감독이었다. 같은 모델을 타는 넥센 염경엽 감독(이쪽은 구단에서 선물받음)은 2016 시즌 후 사퇴했다. 그리고 본인도 경질되었다.
  • 2017년 기준 60세로 KBO 감독 최연장자였었다.[23] 또 감독 경험(년수)이 가장 많기도 하다. 선술했듯 KBO 리그의 감독 평균 수명이 3년이 채 안되는데 비해 맡은 팀에서 6년 이상 임기를 유지하는 걸 보면 나름 능력자라고 볼 수 있다.
  • 인천 출신이지만 영남 지방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이유에서인지 말투에 경상도 억양이 살짝 묻어 나온다.
  • NC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구단과의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닌지 김택진 구단주랑 함께 창원 NC 파크 개막경기를 봤다.#, #
  • 한 기사에서는 본인 인생을 스스로 장돌뱅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인천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에는 대구-부산-공주-서울을 다 거쳤고, 프로 선수 때는 대전-서울-인천을 거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으며, 지도자로서는 대구와 서울에 이어 창원까지 계속 옮겨다니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물론 사람이 자주 바뀌는 프로야구 특성상 이런 사례는 흔하다. 이 분야의 끝판왕으로는 강원도제주도 빼고 다 돌아본 김성근 감독.

[1] 82년 우승은 우승반지가 생기기 전이지만 훗날 2011년에 베어스 구단에서 직접 우승멤버들을 초청해서 우승반지 수여식을 가졌으므로 우승반지라고 해도 무방하다.[2] 음력 11월 1일[3] 감독직에선 물러났으나 잔여 시즌 기간에는 고문직을 맡는다고 한다. 선동열의 선례 등을 볼 때 사실상 잔여연봉을 챙겨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4] 8형제 중 막내# 첫째 형과는 17살 차이가 난다고. 김경문의 모친은 1917년생이다.[5] 이후 알다시피 조범현은 대건고가 다시 해체되면서 신일고로 옮기게 되었다.[6] 동기로는 박종훈 한 학년 아래로 양상문이 있었으며, 방장 시절에는 여드름으로 고생하던 신입생 방졸 선동열을 데리고 피부과에 간 일화도 있다. #[7] 공주고 출신 김경문은 OB의 충청도 연고지 출신 선수로 먼저 입단이 결정되었고, 충암고 출신 조범현은 MBC와의 서울 연고 2:1 드래프트로 선발되었다.[8] 과거 젊었던 선수시절에 영화배우 손창민씨의 청년시절의 외모를 보면 매우 비슷하게 닮았던터라, 예나 지금이나 손창민과 형동생처럼 지낼정도로 친분이 매우 깊다. 게다가 손창민씨도 달감독님 왕팬이시다.[9] 야구친구의 2014년 3월 6일자 상식과는 조금 다른 야구 이야기 코너에 의하면 김경문이 500경기 이상 출전했던 은퇴 선수들 중 타율이 가장 낮은 '역대 최악의 타자 10위'라고 한다.[10] 참고로 역대 통산 최저 타율 2위가 바로 조범현(0.201), 1위는 SK 와이번스의 감독인 염경엽(0.195).[11] 두 사람은 2015년 포스트시즌, 2016년 한국시리즈, 2017년 플레이오프 에서 만난 적이 있다. 세번 모두 김태형 감독의 승리였다. 2016년 한국시리즈 직후 우승팀의 김태형 감독은 김경문 감독 앞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12] 이때의 삼성은 1차 암흑기양준혁, 이승엽, 외에는 돋보이는 이가 없을 정도의 부진을 겪었다. 좀 뒤로 가면 신동주(야구), 이동수(야구선수) 밖에 없었다.[13] 98년도 까지 두산 베어스는 팀명을 OB로 사용을 했다.[14] 삼성 코치 시절 2차례 간통 혐의로 고소당한 걸 빗대서 붙은 별명. 소문으로는 이혼 3번, 간통 4번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삼성은 김경문이 코치로 재임했던 기간인 94 ~ 96년 도에 1차 암흑기를 겪는다. 물론 전체적인 책임자는 김성근이지만....[15] 한국시리즈 사상 첫 2연승 후 4연패 기록이기도 하다.[16] 2005년 2패, 2007년 3패, 2008년 3패, 2016년 2패.[17] 디씨위키 김경문 항목에서도 이를 반영한 모습을 보였다.[18] 페넌트 우승은 데뷔시즌이던 1987년에 한번 경험했지만 최종보스 해태를 못넘어서...[19] 번트 앤 슬래시와 런 앤 히트,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감독이 욕만 먹었을 엄청난 작전들이다.[20] 손시헌 초구 2루수 뜬공 - 지석훈 초구 2루수 뜬공 - 김태군 2구 중견수 뜬공[21] 이게 결정적이었다. 스튜어트가 4회에 양의지에게 홈런을 맞는 등 불안했는데, 4회 말이 단 4구로 끝나버리면서 스튜어트는 페이스 조절에 치명타를 맞게 되었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22] 이 당시만 해도 포수들은 헬멧을 쓰지 않고 그냥 야구모자를 뒤집어 썼다. 당연히 외부 충격에 약할 수밖에 없던 환경. 고의로 머리를 향해 스윙을 한 것도 있지만 포수 헬멧이 없어서 사고가 더 커진 셈. 프로와 아마를 막론하고 포수들에게 헬멧이 지급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23] 알다시피 시즌 초에는 76세의 김성근이 최연장자 감독이었지만, 박종훈 단장에게 욕설을 하고 경질당하면서 김경문이 최고령 감독이 되었다.[24] 이 때문에 돡갤에서는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으로 시카고 컵스를 밀어주기도 했다. 물론 컵스의 상징이 곰이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