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1 22:58:16

강인권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315288> 파일:NC_Emblem_Home.png NC 다이노스
2020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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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권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2번
서석기 강인권(1995~2001) 이도형(2002~2010)
두산 베어스 등번호 12번
표성대(2000) 강인권(2002~2005) 김진수(2006~2010)
두산 베어스 등번호 81번
김인식(1995~2003) 강인권(2007~2011) 김우열(2012~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81번
팀 창단 강인권(2012~2014) 이도형(2015~2018)
두산 베어스 등번호 82번
스즈키(2014) 강인권(2015~2017) 권명철(2018~)
한화 이글스 등번호 82번
윤재국(2016~2017) 강인권(2018~2019)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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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0003657120_001_20171109065025422.jpg
NC 다이노스 No.
강인권(姜仁權 / Kang In-kwon)
생년월일 1972년 6월 26일 ([age(1972-06-26)]세)
출신지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1]
학력 대전신흥초-충남중-대전고-한양대[2]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5년 2차지명 6라운드 (전체 47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5~2001)
두산 베어스 (2002~2006)
지도자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코치 (2007~2010)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2010~2011)
NC 다이노스 배터리코치 (2012)
NC 다이노스 1군 배터리코치 (2013~2014)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2015~2017)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8~2019)
NC 다이노스 1군 수석코치 (2020~ )
가족 아들 강태경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1. 개요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포수. 은퇴 후에는 두산 베어스NC 다이노스, 한화 이글스에서 배터리코치를 맡았으며 2020년부터 NC 다이노스의 수석코치를 맡는다.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628170329921A3.jpg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200604161506431100_1.jpg
말년을 보낸 두산 베어스 시절.

충남중학교, 대전고등학교, 한양대학교를 거쳐 1995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 47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한 선수는 아니지만 건실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조경택과 같이 번갈아가면서 출전했던 포수였다.[3] 가장 유명했던 것은 1997년 정민철노히트를 캐치한 일. 하지만 당시 강인권은 노히트를 이끌고도 욕을 먹었는데, 그 노히트는 무사사구 노히트로 그 날 경기의 유일한 출루는 심정수낫아웃 출루였기 때문이다.[4]낫아웃 출루 때문에 퍼펙트 게임을 놓쳤다는 것이 당시 팬들이 비난한 이유. 다만 정민철은 강인권이 잘 해 줘서 노히트를 했다고 공을 돌렸는데, 실제로 강인권은 유승안, 양의지와 함께 KBO에서 노히트 경기를 2번 경험한 3명 중 한 명이며, 이후 2000년에 송진우의 노히트노런 달성 시에도 강인권이 포수를 맡았다. 또한 역사적인 사건도 하나 만들었는데, 리그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일 설마 또 그러겠냐 끝내기 타격방해가 있다.

2001년까지 한화에서 뛴 후, 2002년 1월 한화가 이도형을 얻기 위해 현금과 함께 맞트레이드되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여 2006년까지 뛰었다. 주된 역할은 홍성흔을 받쳐주는 백업 포수.

두산에서 은퇴한 후에는 김경문 감독 밑에서 배터리 코치로 일했으며, 김경문이 NC의 감독으로 취임할 때 같이 건너갔다. 그 뒤 2015년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로 컴백하였다. 재밌는 점은 NC는 강인권의 배터리코치 자리를 이도형으로 메웠다는 것이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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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배터리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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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배터리코치 시절.

2006년 은퇴 이후 2011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2군 배터리코치직을 담당하였으며, 그 해 시즌을 마치고 10월 4일 NC 다이노스 배터리코치로 선임되었다.

2014년 시즌이 끝나고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두산은 우승했다.

첫째 아들 강동형이 배명고에서 선수로 뛰었으며(마산용마고에서 전학) 2017년 청룡기 결승에서도 외야수로 활약했다.사진 2018년에 부산 경성대학교 유니폼을 입었다. 둘째 아들 강태경은 마산중학교 1학년을 마친 뒤 잠신중학교로 전학했고 배명고로 진학해 2019년에 3학년이 되었다. 포지션은 투수이며, 187cm, 95kg의 큰 체구를 가지고 있다.관련기사 2019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MVP에 뽑혔다.[5] 그리고 당해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5라운드에서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았다.

한화 이글스의 감독 하마평에 한용덕, 정민철 등과 함께 올라와있다고 전해졌는데 10월 31일 한화 이글스 11대 감독으로 부임한 한용덕과 함께 17년만에 한화 이글스의 배터리 코치로 오게 되었다.

2019년 3월 19일 자로 병가를 냈고 한다. 원인모를 속앓이 때문에 한용덕 감독이 간곡하게 쉬라고 권했다고. 약 한 달 정도 팀에서 이탈할 예정이라고 한다. 4월 20일에 복귀했다.

2019 시즌 후 정민철 단장이 오면서 한화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후 수석코치를 맡는다. 5년 만에 NC에 복귀했으며, 아들 강태경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5 한화 104 246 .220 54 6 2 1 22 17 1 47 55 .345 .272 .617
1996 50 50 .220 11 1 0 1 5 6 0 11 10 .355 .300 .655
1997 84 108 .185 20 1 0 0 6 8 0 20 22 .313 .194 .507
1998 24 5 .000 0 0 0 0 0 0 0 2 0 .286 .000 .286
1999 55 68 .221 15 3 0 0 3 6 1 18 15 .384 .265 .648
2000 81 118 .280 33 4 0 0 9 17 1 21 25 .383 .314 .697
2001 104 223 .247 55 8 0 6 28 20 2 34 50 .345 .363 .70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2 두산 38 51 .294 15 1 0 0 1 4 2 4 10 .346 .314 .659
2003 67 179 .291 52 9 0 0 17 17 0 19 28 .355 .341 .696
2004 79 160 .238 38 7 0 0 23 13 0 13 35 .290 .281 .571
2005 18 28 .286 8 1 0 0 5 5 0 6 8 .412 .321 .733
2006 6 16 .250 4 0 0 0 0 1 0 0 6 .250 .250 .500
KBO 통산
(12시즌)
710 1252 .244 305 41 2 8 119 114 7 195 264 .343 .299 .642

5. 관련 문서



[1]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2] 1991학번[3] 출전 비율은 조경택이 더 높았는데, 같은 수비형 포수지만 타격은 똑딱질이라도 조경택이 더 나았고 강인권이 워낙 물어깨인 탓도 있었다.[4] 재미있는 건 이 둘은 초중고를 같이 나온 동기. 정민철이 중학교 때 유급하고 72년생 동기들보다 1년 늦은 92년에 입단했고, 강인권은 대학 진학(한양대)을 하여 정민철보다 3년 늦은 95년에 입단하였다.[5] MVP 선정 후 인터뷰에서 구경백 해설위원이 아버지에게 할 말 있지않냐고 물었고 부모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다가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