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5 16:47:59

권명철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131230>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두산 베어스
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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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7 이승엽 [[틀:두산 베어스 감독|
]] · 79 박정배 · 81 김지용 · 83 김동한
89 고토 · 91 이영수 · 92 조성환 · # 박석민
# 임재현'''
2군
70 조웅천 · 71 이도형 · 80 김진수 · 82 권명철
· # 서예일
잔류·재활군
72 조경택 · 74 조인성 · 90 가득염
트레이닝 파트
1군 천종민 · 조광희 · 유종수
2군 이덕현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등록 선수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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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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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2.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5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4.svg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15 2016

{{{#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16번}}}
한명수
(1991)
권명철
(1992~1998)
최훈재
(1999~2001)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29번}}}
숀 헤어
(1998)
권명철
(1999)
성영재
(2001~2002)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61번}}}
팀 창단 권명철
(2000~2002)
배홍철
(2003~2004)
{{{#fff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25번}}}
이도형
(1993~2001)
권명철
(2003~2004)
이경환
(2005)
{{{#fff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75번}}}
박상열
(2001~2004)
권명철
(2005~2009)
조계현
(2010~2011)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95번}}}
임도희
(2009~2010)
권명철
(2011)
채은성
(2012)
{{{#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75번}}}
조계현
(2010~2011)
권명철
(2012~2017)
조인성
(2018~2020)
{{{#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82번}}}
강인권
(2015~2017)
권명철
(2018~)
현역
}}} ||
파일:안경명철.png
<colbgcolor=#131230> 두산 베어스 No.82
<colcolor=#ffffff> 권명철
權明哲 | Kwon Myeong-Cheol
출생 1969년 10월 28일 ([age(1969-10-28)]세)
인천광역시 남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화초 - 동인천중 - 인천고 - 인하대[1]
신체 183cm, 90kg, O형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2년 2차 1라운드 (전체 2번, OB)
소속팀 OB 베어스 (1992~1998)
해태 타이거즈 (1999)
SK 와이번스 (2000~2002)
두산 베어스 (2003~2004)
지도자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05~2009)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연수코치 (2010)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11)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12~2013)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4)[2]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14)[3]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5~2017)[4]
두산 베어스 잔류군 투수코치 (2017)[5]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8)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9)[6]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총괄코치 (2019~2021)[7]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22)[8]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22)[9]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23)[10]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23)[11]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24)[12]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24~)[13]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24~)[14]
파일:두산 베어스 홈 심볼.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OB-두산 베어스의 투수이자 現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데뷔 시즌부터 1군 멤버로 자리잡았고, 팀의 두번째 우승에 기여하기도 한 프랜차이즈 선수로 7년 동안 베어스에서 뛰다가 4년간 타팀에 몸 담았고, 이후 다시 복귀하여 2시즌을 보낸다.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scontent.cdninstagram.com/10693429_1612524732328365_1834110650_n.jpg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선수시절[15]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109000008595.jp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선수시절[16]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A224720000413203319.jpg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SK 와이번스 선수시절
파일:두산 권명철 선수시절.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인천 출신으로, 인천고-인하대를 거쳐 1991년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OB 베어스에 입단한다. 프로 2년차인 1993년부터 두각을 나타내 1993년 10승, 1995년 15승을 기록하며 김상진과 함께 OB의 원투펀치로 활약했으며,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등 1승(0패) 1세이브를 기록해 큰 경기에 약한 김상진, 김경원을 대신해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신검에서 4급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예정이었지만, 국방부가 공익근무요원의 방송 출연, 운동경기 출장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2년을 야구공을 잡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1997년 8월에 소집 해제 후 팀 복귀를 앞두고 자동차 전복 사고로 허리 부상을 입는 등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결국 1998년 시즌 후 이재만과 최훈재를 상대로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되었다[17]. 하지만 해태 이적 후 첫 해 시범경기에서 발목 골절상을 당하는 바람에 1군에는 한 번도 올라오지 못한 채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SK 와이번스의 창단지원선수로 선정되어, 1년 만에 신생팀이자 고향팀 SK로 이적했다. SK에서는 중간계투로 뛰다가 2002년 시즌 후 방출.

SK에서 방출된 뒤 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3년 친정팀 두산 베어스에 복귀, 40경기에서 79⅓이닝을 던지는 등 전천후로 투입되어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 2004년 시즌 후 은퇴했다. 마지막 경기는 KIA 타이거즈와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이었는데 연장 10회에 구원 등판해 승리를 기록하고, 연장 12회 마지막 공격에서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석에 서서 호쾌한 헛스윙 삼진을 기록했다.

파일:external/sports.donga.com/30358410.5.jpg
조계현과 같이 17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18]

3. 지도자 경력

파일:external/sports.donga.com/42196027.8.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코치시절

은퇴 후 두산 베어스의 2군 투수코치로 일했다. 이 시기에 김상현에게 슬라이더를 전수해주었다. 2009 시즌 후 두산의 코치직에서 물러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귀국 후 2010년 박종훈 감독의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의 불펜코치로 영입됐다. 하지만 박종훈 감독이 LG 트윈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2011년 11월 1일 부로 2년 만에 다시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돌아왔다. 2013년까지 1군 불펜코치를 맡았고, 기존 투수코치였던 정명원kt wiz로 자리를 옮기자 메인 투수코치직을 승계했다.

하지만 지도자로써의 평가는 나쁜 편이다. 2014년 5월까지는 두산의 투수진이 선발 불펜 가릴 것 없이 몇 명 빼고 죄다 삽질 중이라 투수코치인 그도 팬들에게 많은 질책을 받았다. 심지어는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 권멍청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다. 투수들의 투구폼을 고쳐서 얻는 성과라곤 없고, 2014년 노경은의 대삽질과 조금씩 부진하기 시작하는 니퍼트의 주 원인으로 지목당하고 있다.

결국 8월 11일부로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며 고다 이사오 불펜코치와 함께 1군에서 말소,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반대급부로 기존 2군 투수코치였던 이광우, 가득염 코치가 1군으로 올라왔다. 다만 송재박 수석코치를 함께 내린 것 때문에 말이 많은 편.

그러다가 2015년 김태형 감독 부임 후 다시 이광우와 보직을 맞바꿔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됐다.

그리고 무능력한 인물인데도 여전히 2015년에도 1군 코치 자리를 꿰차고 있다. 김태룡, 홍성흔과 함께 2015년 돡갤 3대 주적. 2015 시즌에 부각되진 않았지만 시즌 시작 전 김강률의 투구 폼을 수정해 주며 제구를 잡아 주고 구속을 높여 준 것과 시즌 초중반 오현택이 부진할 때 투구 폼을 교정해 준 것이 있다. 하지만 김강률은 불의의 부상으로... 오현택도...

2015년 6월 봉와직염으로 인해 1군에서 말소되었다. 한용덕 코치가 1군 투수코치를 맡는다고 한다. 같은 달 11일 다시 1군으로 복귀, 대신 불펜코치로 갔다. 그 전에는 가득염이 대타로 불펜코치를 맡았다. 2016년 시즌에는 이현호를 망친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하였다.

2017 시즌을 앞두고 이강철 코치가 영입되면서 권명철은 2군이나 잔류군 코치로 갈 것으로 보였으나 정작 이강철은 2군 투수코치로 갔고, 권명철은 또 1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시즌 초 두산 투수진이 부진하면서 원흉으로 욕을 먹고 있고, 팬들은 왜 2군에 이강철 코치를 박아놓고 1군에 권명철 코치를 쓰냐며 한탄하는 중. 결국 4월 18일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잔류군으로 쫓겨났다. 정작 이강철 코치는 2군 감독으로 옮겨갔으며, 한용덕 수석코치가 다시 투수코치를 겸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8 시즌 다시 1군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팬들은 절망 그 자체... 다행히 이강철이 수석 겸 메인 투수코치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강철이 한국시리즈 직전 KT로 가겠다고 발표하면서 갑분싸가 되었다

이영하에게 포크볼의 그립을 전수해주며 그에 따른 성적이 좋아졌고 업적이 하나 더 늘었다. 2018시즌 이현호가 다시 투구폼을 바꾸고 기량이 어느정도 되돌아온 것을 보여주자 돡갤은 다시금 이현호의 투구폼을 뜯어고친 것에 대해 권명철을 깠다.

그리고 2018 시즌 종료 후 이강철 수석코치가 kt wiz의 감독직으로 가 버리는 바람에 다시 메인 투수코치를 맡을 가능성이 농후해졌지만 다행히도 수석코치로 부임하고 메인 투수코치는 새로 들어온 김원형이 맡게 되었다. 어쩌면 투수, 불펜코치보다는 수석코치가 더 맞을 수도 있다.[19] 그러나 7월 19일에 강석천과 보직을 맞바꿔 2군 투수총괄코치로 내려갔다.

2022년 6월 1일 정재훈 투수코치와 보직을 바꾸며 참으로 오랜만에 1군 투수코치로 다시 복귀했다. 그래도 전 시즌들하고는 다르게 조금 나아진 모습이 약간 보일 때도 있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긴 했다. 특히 투수들의 사사구가 너무 많아, 경기 시간이 늘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이후 과도한 이닝 쪼개기와 좌우놀이, 투수진들의 집단 부진까지 부르면서 다시 2군으로 꺼지라는 반응이 대다수.

요약하자면 1군 시절에는 안 좋은 평가가 많았으나, 2군 투수코치를 맡으며 곽빈, 권휘, 최승용, 최세창, 박웅, 김동주, 문대원, 정철원 등 투수 유망주들을 키워내 육성 능력을 증명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군만 안 맡으면 참 좋은데

2022년을 끝으로 두산과 김태형 감독의 재계약 불발이 거의 확실시해보이는 상황에서 갑자기 차기 감독 후보로 꼽히기 시작했다.[20] 하지만 대다수의 두산 팬들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의 지도자로서 행보를 생각했을때 송일수 못지 않은 마이너스로 예상하는 반응이 상당수이며, 오히려 김태형과 다시 재계약을 하는게 더 낫다는 반응까지도 주를 이루고 있다.

결국 감독으로는 이승엽이 내정되었으며, 코치 경력이 전무한 이승엽을 보좌하기 위해 초호화 코칭스태프로 꾸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친구 따라 20년 만에 두산을 떠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마무리훈련 명단에 들면서 코치 경력을 이어가게 되었다.

대신, 2군 투수코치로 다시 내려가게 되었고, 정재훈 코치가 다시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2023년 6월 11일, 다시 1군 투수코치로 복귀하자 두산팬들이 단체로 기겁하고 있다. 그러나 1군 복귀 후에도 투수 운용은 여전히 엉망이라 또 다시 권멍청으로 불리고 있다. 아웃된 후 자책하며 방망이를 내려치는 양석환을 말리기도 했다(...).

시즌이 종료된 10월 25일 재계약 썰이 들려오면서 24년에도 두산에 남을 것으로 보이나, 10월 28일 조웅천 코치의 영입 기사가 발표되면서 2군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1군에서는 평가가 좋지 않아도 2군에서의 투수 육성은 긍정 평가가 많은 만큼 계속해서 젊은 투수진을 잘 지도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그러나 조웅천 코치가 1군에서 투수 운용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고, 후임 투수코치인 박정배도 한동안 잘 하는듯 하더니 6월 이후로 불펜진을 과하게 굴리는 등 투수진 운용이 엉망이 되어버리자 끝내 7월 22일부터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다시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경기 패배중에도 필승조를 갈았던 조웅천과 박정배와 달리 패전조 투수들을 운용하는 점에선 그 둘보단 투수 운용면에서 낫다는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그러다 8월 15일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2 OB 23 79⅓ 4 4 0 0 0.500 4.99 88 9 45 54 49 44 1.58
1993 25 134⅓ 10 8 0 0 0.556 3.01 103 6 63 84 49 45 1.21
1994 23 100⅓ 6 7 0 0 0.462 3.23 92 5 41 59 42 36 1.30
1995 28 193⅓
(4위)
15
(4위)
8 0 0 0.652 2.47
(5위)
147 8 69 112 65 53 1.08
1996 1군 기록 없음
1997 12 29⅓ 3 2 0 0 0.600 2.76 22 0 10 25 12 9 1.02
1998 7 26 1 3 0 0 0.250 6.92 30 5 14 18 22 20 1.5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9 해태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SK 25 45 1 5 0 0 0.167 9.00 68 9 29 27 50 45 2.04
2001 14 26 0 1 0 1 0.000 3.81 25 2 10 16 14 11 1.23
2002 45 54⅔ 2 4 1 1 0.333 5.93 63 11 23 36 38 36 1.5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3 두산 40 79⅓ 3 3 0 1 0.500 4.20 89 8 27 45 40 37 1.41
2004 5 12⅓ 0 0 0 1 - 3.65 9 0 8 6 5 5 1.22
KBO 통산
(11시즌)
247 780 45 45 1 4 0.500 3.93 736 63 339 482 386 341 1.32

5. 여담

  • 별명은 불곰, 슬라이더 권.
  • 장원진과는 30년 지기로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공익으로 2년 간 함께 근무했으며, 은퇴 후에는 나란히 두산 2군의 코치를 맡았다.
  • 팬서비스가 좋다. 라이트 팬들이 싸인을 요청하면 장난으로 “니들이 내 선수시절때 알어?” 이러면서 농을 걸기도 한다.
  • 담배를 피는 흡연자이기도 하다
  • 강병철 감독과 묘하게 비슷하다

6. 관련 문서


[1] 1988학번[2] ~8월 10일[3] 8월 11일~[4] ~4월 17일[5] 4월 18일~[6] ~7월 18일[7] 7월 19일~[8] ~5월 31일[9] 6월 1일~[10] ~6월 10일[11] 6월 11일~[12] ~7월 21일[13] 7월 22일~8월 14일[14] 8월 15일~[15] 95년 우승 당시 김태형과 함께[16] 하지만 권명철이 해태 유니폼을 입고 정규시즌 경기에 등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99 시즌 개막 직전 시범경기에서 발목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17]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것도 컸는데 권명철 뿐 아니라 당시 이 사건에 관련된 OB 주축 선수들이 같은 시기 타 팀(김상진 - 삼성 김상호 - LG)으로 떠나야 했다[18] 해당 자료는 2010년 7월 말~8월 초에 만들어진 자료로 추정된다. 2010년 8월 17일까지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이어가며 29연속까지 기록한 뒤 다음 경기인 26일 넥센전에서 7이닝 4실점을 기록.[19] 두산 수석코치는 최근 차기 타팀 감독 자리로 각광받고 있어서 두산 팬들은 권명철을 수석코치로 바꾸라고 하고 있다(...).[20] 그 외에 후보는 이복근, 이도형, 홍성흔 등도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