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23:38:41

박석민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315288> 파일:NC_Emblem_Home.png NC 다이노스
2019 시즌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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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민우 [[주장|
C
]] · 3 유영준 · 4 김철호 · 5 김찬형 · 6 김태진 · 7 이상호
· 10 지석훈 · 13 손시헌 · 16 모창민 · 18 박석민 · 32 이원재 · 39 오영수
· 52 노진혁 · 63 김진형 · 65 박수현 · 92 최정원 · 95 서호철 · 100 조원빈'''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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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민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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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5 2011 2012
2013 2014

보유 기록
한경기 최다 타점[1] 9타점

파일:PLAYERS_CHOICE_AWARDS_LOGO_1.png2016년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모범선수상
강민호
(롯데 자이언츠)
박석민
(NC 다이노스)
신본기
(롯데 자이언츠)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2014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5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2]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5_r6_250.png
2004 KBO 퓨처스 남부리그 타격왕

파일:5p4rcEr.png 2012 KBO 페어플레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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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민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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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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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3~2014 2015~2016 2017 2018
김동건 이호준 이종욱 박석민
손시헌
손시헌
박석민
2019~2019.05.03 2019.05.04~
나성범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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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5번
정성훈(1996~2002) 박석민(2004) 박병일(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5번
김대익(2004) 박석민(2005) 이여상(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박정환(2000~2007) 박석민(2008~2010) 김선민(201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
정홍준(2006~2010) 박석민(2011~2015) 심창민(2016~2018)
NC 다이노스 등번호 18번
홍성용(2014~2015) 박석민(2016~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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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석민_2019.jpg
NC 다이노스 No.18
박석민(朴錫珉 / Park Sok-Min)
생년월일 1985년 6월 22일[3] ([age(1985-06-22)]세)
신체 178cm, 88kg
출신지 대구광역시 동구
학력 대구율하초 - 경복중 - 대구고 - (대구사이버대학교)
포지션 지명타자[4], 3루수, 1루수[5]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1차지명 (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4~2015)
NC 다이노스 (2016~현재)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6~2007)
등장곡 카쿠다 노부아키 - よっしゃあ漢唄[6]
응원가 삼성 시절: Bananarama - Venus[7][8]
타카피 - 케세라세라[9]
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10]
현재: Bananarama - Venus
타카피 - 케세라세라[11]
연봉 7억 5천만원 (FA, 2019년)

1. 소개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고칠 점
4. 별명5. 이야깃거리
5.1. 야구 관련5.2. 야구장에서 개그치는 개그5.3. 야구 외
6. 연도별 성적7. 관련 문서

(동료들에게) 이기려 하지 말고 즐기자고 했습니다.[12]

1. 소개

NC 다이노스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다.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상무에 입대한 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 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었다.

삼성 팬들에게 평생 삼성에서 함께할 프랜차이즈로서 사랑받았지만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며 원소속팀과의 협상 결렬 후, 2015년 말 총액 최대 96억에 NC로 이적했다.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석민/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허구연: 야구 잘하는 슨슈들이 참 융릐한 슨슈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저는 박속닌이 정말로 융릐한 슨슈인거 같아요
한명재: 천재과에요
허구연: 예. 그렇습니다. 예사로운 슨슈가 아니에요
(...)

기본적으로는 눈야구를 기반으로 한 OPS형 타자이다. 2009년이후 갑자기 OPS 1.0을 기록하며 타격 포텐이 폭발했다.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으며, 풀 시즌을 소화했을 때 20홈런 이상은 보장되는 장타력을 지니고 있다. 컨택 또한 뛰어나 통산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비율 스텟을 자랑한다. WAR도 거의 KBO 탑급이여서 공헌도가 상당히 높은 타자. 다만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비롯해 잔부상이 많기 때문인지 컨디션의 기복이 있고, 이로 인해 누적에서는 비율에 비해 아쉬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방망이를 돌리고 몸을 터는 등 유독 요란한 루틴동작 역시 몸의 고질적인 부상들 때문에 통증을 털어내는 과정일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한 편. 그럼에도 매시즌 3-4-5를 찍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외에 특이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도 얼핏보기엔 기괴한 폼이지만 오히려 타격의 정석을 충실히 지킨다며 이종열이 극찬한 바가 있다.

그리고 잘 언급되진 않지만 배드 볼 히팅 성향 또한 강하다. 특히 컨디션이 만렙일 때는 그 어떤 공도 희한하게 갖다맞춰 안타를 많이 만들어 낸다. 바깥쪽 빠지는 공을 당겨친다거나 몸쪽 공을 밀어치는 장면에서는 허구연 해설조차 기겁할 정도. 물론 타격감 바닥일때는 선풍기질만 해대지만 박석민이 배드 볼 히터로 언급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출루율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 배드 볼 히터는 삼진이 적은 대신 볼넷도 그만큼 적어야 하는데 박석민은 거의 매년 출루율 4할을 넘길 정도로 볼넷이 많다. 통산 BB/K도 준수한 편으로, 오히려 타율과 비교해보면 신중하게 볼을 고르는 눈야구형 타자 유형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눈야구형 타자가 좋은 볼과 나쁜 볼을 골라 친다면 박석민은 자기가 치기 좋은 볼을 치고 치기 안 좋은 볼은 안 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이러니 위에서 한명재와 허구연이 천재과라고 평가하는 것.

펑퍼짐한 몸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땐 민첩한 수비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해설위원 이순철허구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히 공수를 가리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 내야의 코어라고 부를 만 했으나 NC 이적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부상과 노쇠화가 겹치며 수비는 크게 망가져, 2018년 기준으로는 더이상 수비를 잘 한다고 불러주긴 힘들고 소속팀에서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13]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14]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15]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3.1. 고칠 점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 + 예끼니미 X발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영상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하지만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순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식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SNS에 올라온 글로 보아 히쓰마부시(장어모듬덮밥) 팬인 것 같다. 갈 때마다 먹는다

중심타자의 숙명(?) 비슷하게 포스트시즌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 2012 KS 6차전에 2점 홈런, 2013 KS 7차전에 6:2로 도망가는 쐐기 적시타를 제외하고는 별 활약이 없었다. 2014년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은 1할대극초반에 머물렀다. (그래서 삼성이 최정 정도로 제시했을지도...) 이러한 점은 팀이 바뀌어도 그대로 였고, 2016년 플레이오프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16], KS에서는 무려 1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완전히 말아먹었다.

이 모든 것을 제쳐두더라도 가장 문제는 유리몸 기질. 이것 역시 삼성이 박석민 잔류를 망설인 이유로, 한 시즌에 1~2번은 꼭 부상으로 퓨처스로 내려간다. 그나마 STC가 있었던 삼성 시절은 몸을 마음껏 불태워도 괜찮지만, 그것이 없는 NC 시절에 삼성 때처럼 하다보니 2017년과 2018년은 부진과 부상으로 말아먹어버렸다.

4. 별명

몸개그, 홈런타자 등 확실한 캐릭터 요소 덕분에 차세대 별명의 신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다.
  • 박속닌: 2005년 코나미컵에서 이름자인 석민을 속닌이라고 듣고(그렇게 불렀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홈런왕 박속닌입니다'라고 올려놓은 것이 시초. 재일동포 고지행이 박석민을 이렇게 불렀다.
  • 브콜돼: 2008 시즌 중 난데없이 파마머리를 하고 등장했는데, 머리 밴드 위로 뭉툭하게 솟아오른 파마머리를 보고 마치 브로콜리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의 몸매(...)와 함께 브로콜리 + 돼지 = 브콜돼로 불린다.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이며 다른 별명들의 베이스가 된다. 브로콜리 돼지 너마저
  • 허콜돼: 허세 쩌는 브콜돼. 스스로 말하기를 야구를 안 했으면 의사변호사가 되었을 거라고.
  • 힙콜돼: 힙합스타일의 모자 착용 및 동작을 취하는 셀카로 인하여 생긴 별명.
  • 버클돼: 2008 시즌 중 특유의 루틴 동작을 하던 중 허리띠가 튕겨서 풀리는 상황이 발생.
  • 볼매: 브콜돼 관련 기사가 뜨면서 박석민이 기자들에게 이왕이면 '볼수록 매력'을 줄여서 '볼매'라는 별명을 밀어달라고 요청. 이에 대해 한대화 당시 삼성 수석코치는 정신병자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찼고, 수많은 야빠들은 볼수록 매를 번다며 볼매도 나름의 별명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여간에 본인은 볼매라는 별명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그런거 없고 넌 영원한 브콜돼이자 개그맨
  • 꼬부기: 이 별명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2012 시즌에 올라온 저 사진 때문.
  • 퇘가놈, 박그분 : 주장인데도 팀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유. 박석민이 당연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삼팬들이 많았으나 FA이적으로 차세대 엔전드의 길을 걷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퇘리타로 격하되었다. 두산팬 : 우리가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더불어 브콜돼 이놈 대구로 오기만 해 봐라고 잔뜩 벼르는 중. 하지만 예상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 삼성팬들이 기립박수로 반겼다.[17] [18]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 즙전드, 즙가놈 :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 짰다고 하여 붙었다.

5. 이야깃거리

2017 WBC에서 잠시 1루수를 봤었다. 처음엔 당황해서 덕아웃에 다시 물어봤고, 이내 1루에 들어갔다. (영상 추가바람)

5.1. 야구 관련

원래 장갑을 끼고 타격하였으나 어느날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공을 치는 즉시 각성하여 이후 계속 맨손 타법을 고집하였다. 그 탓에 손에 부상이 와서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다 결국 맨손 타법을 버리고 장갑을 다시 장착하였다. 그러나 얇은 수술용 장갑을 써보거나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자르는 등, 배트와 살이 맞닿는 부분을 최대화시켜뒀다.

양준혁, 김동주, 김태균, 최형우만이 가지고 있는 통산 3-4-5(타율-출루율-장타율)를 노리는 타자로 4와 5는 달성했지만 타율이 0.296으로 조금 부족하다. 참고로 이대호도 박석민과 비슷한 3-4-5 직전의 성적을 가지고 있는데, 타율과 장타율은 되는데 통산출루율이 3할9푼대로 통산 4할을 노리고 있다.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19] 2009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회 WBC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쳤으니 망정이지 못 쳤으면 원산폭격행 아니 그전에 양신한테 아구창 뒤지게 털렸다

한화 이글스에게 유달리 강하다. 한화 상대 타율이 자신의 통산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은 3할대 후반이다. 2009년에는 9개나 침으로서 한화 마운드 방어율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실 한화 상대로 어느 타자가 약하겠냐만은 특히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에게는 크보에서 가장 강한 타자이다. 2008~2009 2년간 對 류현진 성적이 15타수 5안타 4홈런 6타점 4볼넷이다. 박석민을 메이저로! 2009년에는 류현진한테 홈런 3개를 빼앗았을뿐만 아니라 그 중 2개는 한 경기에 친 것이었다. 그래서 한화 팬들은 다른 어떤 강타자보다도 박석민을 제일 무서워한다(…) 디시인사이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한나쌩(한화 나오면 쌩큐) 혹은 칰나쌩 선수로 대부분 박석민을 지목했다. ???: ㅂㄷㅂㄷ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의 손을 잡고 난 날 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대화 감독은 박석민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단다. 그런데 뛰는 한대화 위에 박석민이 있다고, 어느 날은 박석민이 안보여서 안심하고 대구구장 원정 감독실로 쓰는 임원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박석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박석민은 얼른 한대화 감독의 손을 잡고 도망갔고, 그 날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 때가 2012년 6월 13일. 이 날 박석민은 1회 좌전안타와 2번의 사구를 기록, 4타수에서 3번 출루했다. 이 징크스 일화가 실린 기사가 난 6월 14일에도 손을 잡는데 성공했는지 그날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고교 때부터 등번호 18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2010년에 18번을 달려고 했으나 군대에 입대 예정이었던 정홍준이 안 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2010 시즌 후 정홍준이 방출되면서 18번을 달게 되었다. NC로 이적 후 기존에 18번을 달던 신인투수 배재환에게 동의를 구한 후 18번을 계속 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본인의 차에 18번을 단 피규어가 다수 자리잡고 있고, 핸드폰 번호도 0018, 집도 18층에 살고 있다. 2017년 시즌 시작과 동시에 1년밖에 타지 않은 차를 바꾸면서 차량 번호도 18이 3번이나 들어가는 번호를 타고 있다. 2018년에는 커리어 하이로 2017 시즌 부진을 털 수 있을까

크보 공인 지남철최정에게 은근히 묻혀서 그렇지 박석민도 그에 못지 않게 몸에 맞는 공이 많은 편이다.펑퍼짐한 몸매 때문에 딱 맞기 좋은 체형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리수 몸에 맞는 공을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마침내 사구왕 최정을 넘어 27개 몸에 맞는공(!)으로 신흥 사구왕에 등극했다!!! 이로써 23홈런 27사사구로 나름 20-20 클럽 가입?[20]

몸에 맞는 공 때문에 특이한 일화도 있는데 이하는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의 내용 일부# 참고로 위키백과에서조차 박석민 항목은 웃기다. 역시 개그캐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 한화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머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한화 이글스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머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 KIA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스포츠플러스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출처 :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

...뭐 이쯤되면 몸에 맞는 공조차 박석민에게는 개그.

박한이처럼 타격 준비 자세가 있다. 타석에 들어서면 먼저 배트를 2번 휭휭 돌린 뒤 배트를 뒤로 돌리고 한 번 돌리고 배트를 흔든다.(트리플 악셀)

5.2. 야구장에서 개그치는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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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대기 동맹

자타공인 KBO 최고의 개그맨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타석에서 헛스윙을 할 경우 그대로 한 바퀴 돌아버리는 동작이 유명하다. 팬들은 통칭 트리플 악셀이라고 한다.

3할을 치는 프로선수라 해도 3번 나가 한번 치는 수준인 걸 고려하면 헛스윙에 이렇게 주목하는 점도 이상하지만, 박석민은 유독 헛스윙폼으로 유명하다.

2015년 5월 21일 두산전에서는 이지영의 헬멧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쓰고 나갔다.[21] 독보적인 개그왕 타이틀을 눕동님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다수의 움짤이 포함된 상세 내용은 박석민/몸개그 참조. 야구선수 문서에 몸개그 항목이 분리되어 있다니.... '다수의 움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항목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와이파이를 켜고 들어가거나 웹으로 접속하자. 데이터가 엄청나다.

5.3. 야구 외

2009년 12월 31일에 2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 양신 사실 결혼 전에 이미 동거를 하고 있었고, 아들도 결혼 전에 낳았다. 아들 이름은 준현.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2013년 현재, 박석민은 예비 학부모이다. 설마 장어덮밥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들 사랑이 꽤나 지극한 편. 홈런을 치면 주는 블레오 인형 대신 손목보호대를 던진다. 인형이 아니라 더 비싼 손목보호대를 던지는 이유는 아들 준현이가 인형을 더 좋아해서 집에 갖다주려고. 홈경기 때는 샤워도 안하고 바로 집에 가서 아들과 같이 목욕한다고 한다. 아들이 실제로 대구 홈경기 때 박석민의 손을 잡고 대구구장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유니폼에 적힌 등번호는 박석민의 18번이었고 이름에는 박석민 Jr.이라 적혀 있었다.

2010년 시즌에서는 같은 팀의 최형우와 함께 홈런 치면 가면라이더 세리머니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오치아이 코치 때문이라고 한다.

천재교육에서 나온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의 귀퉁이에 박석민의 사진이 수록됐다. 야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인데 오른손에 착용한 노란색 보호대 2개는 누가 봐도 박석민이다.

무명시절에 야갤을 한적이 있다. 근데 댓글을 보면 장난치면 死한다고...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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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친 줄 알고 폼 잡다가 펜스 맞는 안타가 되자 똥줄나게 뛴 적이 있다. 그 덕에 1루타 기록(...) 이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구단 자체 벌금을 냈다고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이때는 아직 1루까지 항상 전력질주하는 모습이었던 그분이 현역으로 뛰고 있던 2010년이었으니... 특히 더 안 좋게 보인 듯하다. 그리고 2012년에는 나지완이, 2013년에는 전준우가, 2019년에는 구자욱이 홈런 설레발의 계보를 잇는다.

2013년부터 류현진이 뛰는 팀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주전 3루수이자 류현진의 팀동료 겸 절친 후안 유리베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박리베로 불러달라고 했다.근데 그 유리베는 2015년에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되었다. 아~그러다 몇 게임 안 뛰고 또 뉴욕 메츠로 갔다. 그 이후에는 클리블랜드로 갔다.

2018년에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왜 하필 박속닌?

2015년 NC 다이노스와 FA 계약을 맺을 당시 매년 2억원씩 총 8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는데, 매년 이를 실천하고 있다. 2017년 7월에는 '밧줄 추락사'로 40대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1억원을 기부했으며 그에 앞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야구 후배들을 위해 2억여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NC 다이노스 연고 고교에 1억원 상당의 용품을 지원했다. 2019년 초에는 이승엽 재단에 5,000만원을, NC 연고 중학 야구부에는 1억원 가량의 야구 용품을 지원했으며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에도 1억원을 기부했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4 삼성 라이온즈 23 29 .103 3 1 0 1 3 2 0 3 .188 .241
2005 52 81 .198 16 3 1 0 4 7 1 10 .283 .259
2006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7
2008 126 416 .279 116 27
(2위)
1 14 64 65 2 73 .385 .450
2009 97 295 .285 84 17 0 24 62 63 0 71 .416 .586
2010 112 356 .303 108 18 0 15 64 58 3 91 .440
(2위)
.480
2011 128 457 .278 127 24 3 15 86
(4위)
74 3 72 .374 .442
2012 127 443 .312
(4위)
138 19 3 23
(4위)
91
(2위)
79
(5위)
2 99 .433
(2위)
.524
(5위)
2013 117 396 .318 126 24 0 18 76 61 4 75 .425
(4위)
.515
(4위)
2014 110 356 .315 112 21 0 27 72 77 0 66 .419 .601
(5위)
2015 134 448 .321 144 25 0 26 116 90 3 102 .441
(3위)
.551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6 NC 다이노스 126 427 .307 131 20 0 32 104 77 2 72 .404 .578
2017 101 319 .245 78 15 0 14 56 43 1 63 .369 .423
2018 103 318 .255 81 14 1 16 55 40 1 54 .360 .456
KBO 통산
(13시즌)
1357 4341 .291 1264 228 9 225 853 736 22 851 .404 .503

7. 관련 문서




[1] 2015년 9월 20일 vs 롯데 자이언츠[2] 2015 시즌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으나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 FA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여 NC 소속으로 수상.[3] 스포츠서울 창간일과 생년월일이 같다.[4] 2017년부터는 잔부상과 대상포진 등으로 사실상 지명타자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5] 2017 WBC에서 1루수를 잠시 맡았고, 삼성 시절이였던 2008~2011 시즌에도 1루수를 본적이 꽤 있다.[6] kt 위즈 오정복의 응원가와 같은 곡을 사용중이다. 치바 롯데 마린즈나카무라 쇼고도 이 노래를 응원곡으로 쓴다.[7]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 중간 간주 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하늘이 번안한 "웃기네"로도 알려져 있다. 롯데의 김상호와 달리 쇼킹 블루까지는 안 가는데, 박석민 응원가 파트는 원곡의 원곡의 원곡격인 쇼킹 블루판에는 없고, 바나나라마판부터 존재하기 때문.[8] 번안곡 "웃기네"의 가수였던 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9]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Venus와 같이 쓰였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10]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11]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12] 2016년 KBO 플레이오프 2차전 인터뷰에서.[13]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
[14]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에이로드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이 팀 팬들한테는 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15]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16] 9타수 2안타 2홈런[17] 물론 여전히 온라인 반응은 안 좋은편. 일부는 박수친 팬들을 비난했는데, 이유는 우리 팀 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18] 다만 이 경기에서 1회 말이 끝났을 때 삼성은 7대1로 이기고 있었다! 직관 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경기인데 예전에 삼성에서 뛰던 선수가 왔으니 반갑다고 박수나 쳐 준 것.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거 한 방에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점수차였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이날 삼성 선발이었던 윤성환은 상대 타자가 자팀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두 번이나(한 번은 자신의 피홈런으로!) 받는 것을 마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19]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20] 사구왕 최정도 4년 연속 20사구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지만 이정도로 독보적으로 몸에 맞지는 않았다.[21] 주요 장면 영상에서 헬멧 뒤통수의 번호가 이지영의 등번호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