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1 02:23:38

임재철

임재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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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수상 기록
2013년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모범선수상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번
이종운(1989~1997) 임재철(1999~2002) 박남섭(2003~201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김동수 (2000~2001) 임재철(2002~2003) 안상국(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32번
신경현(1999~2001) 임재철(2003) 신경현(2005~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10번
조현수(2003) 임재철(2004) 임수민(2005)
두산 베어스 등번호 17번
차명주(1999~2004) 임재철(2004~2006) 김용의(2008)
김용의(2008) 임재철(2009~2013) 오재원(2014~2015)
LG 트윈스 등번호 37번
이윤학(2013) 임재철(2014) 루카스 하렐(201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7번
용덕한(2012~2014) 임재철(2015) 박헌도(2016~2018)

파일:attachment/doosan_bears.png 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손시헌
(2010~2011)
임재철
(2012)
이종욱
(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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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온 후.
이름 임재철(林載哲 / Jae-cheol Lim)
생년월일 1976년 4월 8일 ([age(1976-04-08)]세)
출신지 충청남도 천안시
학력 천안남산초 - 천안북중 - 천안북일고 - 경성대[2]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2차 3라운드 지명(전체 17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9~2002)
삼성 라이온즈 (2002~2003)
한화 이글스 (2003~2004)
두산 베어스 (2004~2013)
LG 트윈스 (2014)
롯데 자이언츠 (2015)
등장곡 AC/DC - Back in Black
응원가 두산 시절: 찬송가 '내겐 강 같은 평화'[3][4]
LG 시절: 트랜스픽션 'Get show'
롯데 시절: John Denver 'Take Me Home, Country Road'[5]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응원가4. 프로 선수 시절
4.1. 롯데 자이언츠 1기 시절4.2. 삼성 라이온즈 시절4.3. 한화 이글스 시절4.4. 두산 베어스 시절
4.4.1. 2012 시즌4.4.2. 2013 시즌
4.5. LG 트윈스 시절
4.5.1. 2014년
4.6. 롯데 자이언츠 2기 시절
4.6.1. 2015년
4.7. 은퇴
5. 스포츠 에이전트의 길로6. 연도별 성적7. 성격 및 기타

1. 개요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의 외야수. 그리고 前 갤럭시아SM의 야구사업국 국장. 現 좋은스포츠 사업본부장.

별명은 타신(타격의 신), 수달(수비의 달인), 임고철, 임헬멧 등이 있다. 타신은 김현수홍성흔 등이 타격을 잘 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타신이라고 한 것이 임재철의 별명이 되었다. 수달이라는 별명은 팬들이 붙여준 것. 인터뷰에서도 타신이라는 별명은 부담스럽고, 별명으로는 수달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우승 경험은 2002년(삼성), 준우승 경험은 1999년(롯데), 2005년, 2013년(이상 두산). 전성기와 선수생활의 상당 기간을 두산 베어스에서 보냈기 때문인지 두산맨이라는 이미지가 꽤 강한 편인데, 의외로 저니맨이기도 하다. 2014년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로 이적하면서 총 5개의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데뷔 후부터 부산광역시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하다가, 대구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 대전 연고의 한화 이글스, 서울 연고의 두산 베어스LG 트윈스로 옮기면서 경부선을 거슬러 올라가며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하면서 다시 경부선을 타고 친정팀으로 귀향가게 되었다. 부산 대구 대전 서울 찍고 다시 부산 찍고

2015년까지 현역 선수중 유일하게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이다.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이 1999년이었고 그 때 임재철이 신인이었다.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에 링크된 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영상에서 그의 신인 시절 모습 볼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시즌 이후 은퇴하면서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선수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2. 플레이 스타일

수달이라는 별명이 결코 허풍은 아닌 것이, 실제 임재철의 외야 수비는 KBO 전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2013년 LG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보여준 결정적인 보살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강하면서도 정확한 송구 능력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것은 바로 타구판단 능력이다. 빠른 발에 다이빙캐치를 자유자재로 해내는 정수빈보다도 더 좋은 외야 수비수라는 평가를 듣는데, 임재철은 타격과 거의 동시에 반응하여 낙구 지점으로 달려가서 안정감 있는 수비를 해내기 때문. 나이가 든 후로는 예전처럼 운동능력을 활용한 수비가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코너 외야수로는 최고 수준의 수비수이다.주루도 좋아 나이가 든 때에도 대주자로 자주 나왔다.

공격력도 나쁜 편이 아니다. 오히려 백업 외야수로 쓰기에는 사치다 싶을 정도로 좋은 편. 두산 이적 후 2할 후반대의 타율을 보일 정도로 컨택트 능력이 있고 출루율로 대변되는 선구안은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고 있다. 거포는 아니지만 나름 갭 파워도 갖춘 편. 과거에는 좌투수 킬러 이미지도 있어서 상대 투수에 따라 플래툰 선발요원이나 대타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건실한 백업 외야수로 뒤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주는 선수. 또한 같은 팀 선수들을 잘 챙기고 리더십이 있어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도 맡는다.

3. 응원가

두산 베어스 시절 응원가는 한 때 비틀즈Let It Be를 개사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2009년 시즌부터 개신교의 복음 성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개사하여 "두산 임~ 재~ 철~ 안타!"로 시작되는 가사로 사용되는데, 이 응원가는 다른 타자들의 경우처럼 두산 베어스의 응원단장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딸이 그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못 쓰였다. 두산 베어스의 팬페이지인 '곰들의 대화'에서 왜 찬송가를 쓰냐며 항의했기 때문.

그 후 타석에 서면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임재~철! 불꽃 사랑 임재~철!"이라는 구호를 외쳤었다. 때문에 임재철은 응원가가 딱히 없으나 현재는 오히려 그것이 임재철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4. 프로 선수 시절

4.1. 롯데 자이언츠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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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롯데 자이언츠 1기 시절. 그리고 롯데를 떠난지 13년만인 2015년에 돌아왔다.

1999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사직 야구장에서 펼쳐진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20승 투수였던 정민태를 상대로 프로 첫 타석[6]을 섰고 좌익선상 적시 2루타를 치며 역전승을 만들어내 "무서운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그 해 좌완투수들을 농락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이더니, 가을 야구에서 구대성 등 내로라하는 투수들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는 김민재가 2루타를 칠 때 역전을 하는 득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는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만족해야했다.

4.2.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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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2002년 4월 김태균, 이명호를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트레이드됐다.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여기서 임창용과 함께 찍은 사진 모습도 있다. 의외로 삼성팬 아닌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여담으로 삼성을 떠나기 직전인 2003년 4월 5일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적 있다.

4.3.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30508230143305.jpg
(출처 : 포토로)

2003년 시즌 초 김승권과 함께 지승민, 고지행을 상대로 고향 팀 한화 이글스트레이드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한화 이글스유승안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김응용 감독에게 요청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화의 성골이나 다름없는 북일고등학교 출신임에도 고향 팀인 한화 이글스를 상당히 싫어한다. 당시 개판 5분전이었던 한화 구단의 시설에 학을 뗀 나머지 이후 두산으로 트레이드될 당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라는 임팩트 강한 한마디를 남기고 갔다. [7][8]

다만 이범호 등 타지 출신 후배 한화 선수들에게 자기 집에 선뜻 묵게해준 것을 볼 때, 선수들과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낸 듯하다.

4.4.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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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파일:external/sports.donga.com/31793592.2.jpg
(출처 : 스포츠동아)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2004년 6월 차명주를 상대로 두산 베어스트레이드됐다. 하지만 그해 말 병역 비리에 연루되었고, 이후 2006년까지 입대를 연기하다가 2006 시즌 후 31세의 나이에 병역 의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상근 예비역으로 활동하다가 두산으로 복귀했고 페이스가 떨어진 전상렬 대신에 우익수를 맡아 꾸준히 활약을 하였다. 2010년 이후로는 정수빈, 민병헌 등의 등장으로 백업으로 밀려나 심심찮게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등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뛰어난 수비 센스와 뜬금포를 갖춘 공격력 덕분에 필요할 때마다 계속 기용되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4타수 5안타 2볼넷 3사구(死球) 2타점 6득점, 타율&장타율 .357, 출루율 .526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0년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스코어 팀이 8:6으로 지던 11회말 무사 만루에서 2타점 2루타를 쳐서 동점을 만들어 팀의 스코어 8:9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임재철은 4회초부터 대수비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 1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임재철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4안타 5볼넷 1도루 4타점 1득점, 타율 .308, 장타율 .385,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2승 3패로 패하여 탈락했다.

임재철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기복이 심한 이성열 대신 주전으로 낙점되어, 27타수 9안타 7볼넷 3사구(死球) 1도루 6타점 9득점, 타율 .333, 장타율 .370, 장타율 .514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1년 11월 19일, FA 자격을 얻어 두산 베어스와 2년 간 5억 원(계약금 1억 5,000만 원, 연봉 1억5,000만 원, 옵션 5,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그리고 심판의 엄청난(...)제구력으로 스냅볼에 머리를 맞아버렸다!! 2011년 9월 22일 한화와의 경기 때의 일이다. 공수 교대를 위해 외야로 가다가 오석환 주심이 두산의 선발투수 이용찬에게 새 공을 교체해 주기 위해 던진 공에 머리를 맞은 것.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주심에게 ‘앞으로 나 한 번 잘 봐주셔야 한다’라고 농담을 했다고. 그리고 이 장면이 주간 야구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면서 유명해졌다.

4.4.1. 2012 시즌

주장으로 선임된 2012년.
2012년 4월 27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에서 호수비와 스코어 0:0이던 7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때리면서 팀의 주장다운 플레이로 그 날 최고의 선수가 되었며, 팀의 0:2 승리와 이용찬의 시즌 2승에 크게 기여했고, 팀은 단독 선두가 되었다. 여러모로 주장다운 선수.그런데 타율이 .111
이날 임재철은 3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 1병살타를 기록했다.

2012년 5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는 팀이 스코어 8:7로 지던 9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우중간 깊숙한 끝내기 3루타를 기록했다! 그것도 정우람을 상대로. 그리고 수훈선수로 선정.
이날 임재철은 5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3피삼진은 덤

2012년 5월 1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경기 에서는 팀이 2:3으로 지고 9회말 2사 2루에 대주자로 나갔으나 어이없는 견제사를 당하면서 LG측의 수훈선수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루플레이 미스로 인한 손가락 골절로 한동안 2군에 있다 올라왔다. 부상으로 2군에 있는 시간이 한달 이상 되자, 결국 6월 28일 코칭스테프는 주장을 이종욱으로 교체 했다. 다시 1군으로 콜업후 여전히 허술한 플레이나 타격 부진으로 속을 썩이고 있었으나,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이후로 각성, 호수비에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인태야 보고있니 아무래도 신인 지명에서 외야수 보강에 힘을 쓴 구단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9월 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원정경기에서는 연장 12회 초 결승 싹쓸이 2루타로 3타점을 만들어내며 팀의 승리를 굳히는 데 기여한다. 오오 타신의 친정복수안타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4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7번타자, 3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13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 타율, 장타율 .077, 출루율 .143을 기록하며 타석에서는 부진했지만 외야에서 알토란같은 수비를 해주며 분투했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4.4.2. 2013 시즌

타격은 전에 비해 부족하지만, 수비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였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수비, 2, 3, 5차전은 대주자로 출장하여 1득점만을 기록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신재웅을 노리고 선발 우익수 겸 2번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 2볼넷 3득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다. 특히 두번의 출루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에 불과했으니, 팀이 스코어 4:5로 앞선 9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정성훈의 좌전 안타 타구를 4회초부터 좌익수로 수비를 바꾼 임재철이 잡아 정확하고 빠른 홈송구로 2루주자 이대형을 아웃시켰다. 그리고 스코어 4:5, 2사 2루 상황에서 이병규의 안타 때 나온 우익수 민병헌의 보살과 최재훈의 2루주자 문선재를 막는 혼신의 블로킹이 나와 팀은 9회초 대위기를 수비진 덕에 극복하고 3차전을 승리로 가져갔다.

임재철은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2번타자, 4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1안타 2볼넷 1사구(死球) 3득점, 타율&장타율 .20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임재철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은 선발 우익수, 7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6타수 1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167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임재철은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11타수 2안타 2볼넷 1사구(死球) 4득점, 타율&장타율 .182, 출루율 .357을 기록했다.

2013년 11월 22일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를 통하여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다. LG팬들은 어깨 좋은 우타 외야수가 들어왔다며 풍악을 울렸지만, 두산 팬들은 왜 임재철을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냐며 프런트를 향해 극딜을 퍼부었다. 게다가 프런트에서 은퇴 제의를 했다는 소식은 분노한 팬들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2013시즌에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한 것을 보고 왜 로스터에서 제외시켰는지 팬들은 다시 한번 의문을 가졌다.

4.5.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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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2014년

다리 부상이 있어서인지, 시범경기 마지막 날인 3월 23일 KIA전에 박용택과 교체되어 중견수로 나와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후 몇차례 더 출전하였으나 도저히 눈뜨고 못봐줄 성적을 기록하며 전격 2군행. 2군에서조차 뒷목을 잡게 하는 성적으로 팬들에게는 잘못된 영입이라 "저거 왜 데려왔냐"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6월 26일 NC전을 맞아 이보다 더 나쁜 용병은 없다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조쉬 벨이 2군으로 가며 반작용으로 1군으로 올라왔다. 첫 타석에서 유격수 앞 땅볼을 쳤고, 전일수 1루심이 아웃을 선언하자 헬멧을 땅에 집어던지며 심판에게 항의하였다. 느린 그림으로 돌려본 결과 임재철의 발이 먼저 들어가 세이프. 팬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임재철을 찬양했다.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중견수로 출장하였다. 매 경기 안타를 쳐내면서 시즌 초반 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7월 5일 NC전에서 또 다시 오심을 당했다. 세 번째 타석에서 기습번트를 댓는데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손이 먼저 베이스에 들어갔음에도 불구 이기중 1루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다행히 후속 타자인 최경철이 적시타를 치며 팀이 스코어 2: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7월 23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으나 2군으로 내려가지 않고 1군과 동행했다. 그리고 8월 2일자로 1군 엔트리에 다시 등록되었다가 8월 12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다시 말소되었다.

그러다가 확장 엔트리 때 다시 1군에 콜업되어 대수비로 간간히 출장했다. 그리고 10월 9일에 8번 타자 봉중근의 대타로 나와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며 대망의 1,1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014 시즌 후 본인이 방출을 요구하여 LG 트윈스를 떠났다.

그런데 의외로 여러 팀에서 임재철의 영입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도 FA가 된 기분이라고. 밑에도 나와 있지만 워낙 인성이 뛰어나 고참으로서 팀 분위기를 잡아주고, 외야수로서도 아직은 나쁘지 않기 때문.

그러다가 2014년 11월 27일,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와 연봉 1억 5,000만 원에 계약하여 이적하였다.[9] 이종운 감독이 직접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4.6. 롯데 자이언츠 2기 시절

4.6.1. 2015년

친정 팀으로 돌아왔지만, 딱히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고 상동 자이언츠에서 박준서와 1루 경쟁을 하고 있는 중(...) 2군에서 1루 경쟁하다가 둘 다 사이좋게 방출당했다 2015년 6월 10일 사직 kt전 이후 더 이상 1군에 오르지 못했다.

사실 나이가 나이인만큼 큰 활약은 기대하고 데려온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기대치를 밑도는 실력으로 인해 결국 2군 주전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 팀 성적도 영 좋지 못 한 상황인지라... 안그래도 수비진이 폭망인데 현역 선수로 남아있기보단 1군 작전 또는 수비코치로 되어 주시는게 어떻겠어요? 안상준이나 김응국, 박현승 거르고 임재철은 어떨까? 하지만 셋은 이제 시즌 끝나기가 무섭게 내쫓아 내고 없으니, 이젠 지도자 생활되는 일만 남았다.

참고로 연봉도 무려 하는 것도 없는데 1억 5,000만원이다. 나이가 40살인 만큼 사실 야구는 오래 했지만 커리어가 변변치 않고 동갑내기인 권용관, 박정진 처럼 가늘고 길게 야구를 한 선수이니만큼 그 정도 금액도 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 2009년 이후로 폭망한 김상현이나 장성호도 억대 연봉 받는다는걸 생각하면 또 모른다. 그니까 선수 생활 하겠다며 고집 그만 피우고 코치되는게 도와주는 거다.

2015년 11월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4.7. 은퇴

2015년 11월 28일에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의 납회식에 갔다가 방출 통보를 받은 그는 1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5개 구단을 거친 17년 간의 야구 인생을 끝마치게 되었다. 선수 생활의 시작과 끝을 롯데에서 장식한 셈.

롯데에서 방출당한 날 임재철의 부인이 딸에게 ‘아빠도 선우 삼촌처럼 은퇴하실 거 같다’ 라고 전하자 딸이 그 날 내내 엉엉 울었다고 한다.....[10]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에는 롯데 선수 출신들이 감독으로 있는 개성고와 부산신정중학교를 돌며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해설위원 제의가 왔으나, 울렁증이 있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선수 시절을 회고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지도자들 중에서는 김경문 감독을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 외에는 김기태 감독과 최정우 現 LG 벤치코치를 꼽았다.

5. 스포츠 에이전트의 길로

지도자 연수도 생각했던 그는 매니지먼트 업체인 갤럭시아SM으로부터 매니지먼트 제안을 받았고, 그에게 경기장 밖에서 야구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게 좋은 경험이라고 언급한 김선우진갑용의 권유에 따라 갤럭시아SM에 입사하게 됐다. 직책은 야구 사업국 국장.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16년 9월 6일 잠실에서 열린 LG-넥센 경기에서 갤럭시아 SM 소속의 손연재와 같은 테이블석에 앉으며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고 이후 2017 KBO 신인왕 시상식때 이정후의 어머니이자 이종범의 아내 옆에 서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2018년 10월 부터 좋은스포츠 사업본부장을 맡는다. #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1999 롯데 자이언츠 23 59 .322 19 4 2 1 9 6 4 8 .403 .508
2000 40 59 .136 8 1 0 1 3 11 1 9 .250 .203
2001 114 216 .269 58 14 1 3 26 37 10 39 .373 .38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2 롯데 / 삼성 104 72 .194 14 4 0 1 4 13 3 8 .275 .29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3 삼성 / 한화 119 270 .241 65 14 2 7 26 38 6 38 .334 .385
연도소속팀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4 한화 / 두산 51 103 .175 18 2 0 0 5 13 0 7 .225 .194
2005 두산 베어스 109 336 .310 104 13 3 3 30 41 10 39 .377 .393
2006 99 279 .258 72 7 4 0 20 37 9 29 .327 .312
2007 군복무(공익근무)
2008
2009 121 359 .281 101 13 1 6 50 61 11 64 .389 .37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0 두산 베어스 96 130 .292 38 5 2 3 18 27 7 39 .453 .431
2011 36 84 .321 27 8 0 2 10 20 0 17 .431 .488
2012 66 136 .243 33 4 2 2 14 16 4 8 .283 .346
2013 70 112 .259 29 5 1 0 10 19 2 31 .420 .32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4 LG 트윈스 53 66 .242 16 1 0 0 3 13 0 6 .306 .2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5 롯데 자이언츠 38 52 .154 8 2 0 1 3 6 2 8 .267 .250
KBO 통산
(15시즌)
1139 2333 .261 610 97 18 30 231 358 69 350 .356 .357

7. 성격 및 기타

  • 쾌활하고 넉살 좋은 성격이어서 선수단 사이에 인망이 높다. 특히 후배들 챙기는 면에 있어서는 알아주는데, 임재철이 뛰었던 지방 구단에서 이적한 선수들은 거처를 구하기 전에 일단 임재철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본다. 특히 최준석은 롯데에서 이적했을 때 임재철의 신혼집에서 지냈을 정도였다. 조규수김창훈이대수와의 트레이드두산 베어스에 이적하자 아니나다를까 임재철의 집에 임시로 짐을 풀었다. 이범호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임재철의 집에 묵기도 했다.
  • 부인은 대전시립무용단에서 무용을 전공한 바 있다. #


[1] 2012년 6월 임재철의 장기간 부상으로 인해 주장 교체[2] 1995학번[3] 두산 임재철 안타~ 두산 임재철 안타~ 두산 임재철 안타 ~날려라 날려버려~ (×2)[4] ΝС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조평호의 응원가와 원곡이 같다. 이 노래는 꽤 호평받았지만 정작 조평호는...[5] 롯데의~ 임재철~ 롯데의~ 임재철~ 안타 안타~ 오오오 오오~ 롯데의~ 임재철(전체 2번 반복)[6] 대타로 들어갔다.[7] 사실 저 당시만 해도 한화 구단에 대한 모기업의 지원이 미비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2군 구장이나 훈련장도 없었고, 2군 경기마저 1군 경기가 없는 한밭구장에서 하거나 인근 고등학교 야구장에서 치뤄야 하는 신세였다.[8]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설에 익숙한 박사장이 한화에 온다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9] 이적 당시에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알려지지 않았다.[10] 임재철과 김선우는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한다.[11] 재미있게도, 두산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KTX가 개통하지 않던 시기였다가(2004년 4월에 KTX가 개통했으니 임재철은 개통 2개월 후에 두산으로 보내졌다), 부산에 내려올 때는 KTX가 이미 2단계 구간까지 개통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