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8 23:10:05

이종범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에 대한 내용은 이종범(프로게이머) 문서를, 웹툰 만화가에 대한 내용은 이종범(만화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종범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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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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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이종범

이종범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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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3 1996 1997 2009

파일:oeiwjnFKre1sqk8veo7_r1_540_2.jpg 1988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1993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4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6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7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2002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3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4 KBO 리그 MVP

파일:5p4rcEr.png KBO 한국시리즈
1993 한국시리즈 MVP

파일:5p4rcEr.png KBO 한국시리즈
1997 한국시리즈 MVP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4 KBO 리그 타격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4 KBO 리그 최다 안타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2004 KBO 리그 득점왕[1][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4, 1996, 1997, 2003 KBO 리그 도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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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KBO 리그 출루율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2003 KBO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보유 기록(KBO)
한 시즌 최다 도루 84개[3]
최다 연속 도루 29회[4]
한 경기 최다 도루 6개[5]
한 시즌 최다 고의사구 30개[6]
}}} ||
이종범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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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PBPA_LOGO_N.png (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역대 회장
{{{#!wiki style="margin: 0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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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px; margin-top:-1px; margin-bottom:-1px"
초대 2대 3대 4대 5대
송진우
2000.01~2001.06
이호성
2001.07~2001.12
김동수
2005.01~2005.11
이종범
2005.12~2007.11
손민한
2007.12~2009.11
6대 7대 8대 9대 10대
손민한
2009.12~2011.11
박재홍
2011.12~2012.12
서재응
2013.01~2015.12
이호준
2016.01~2017.03
이대호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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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30><table bordercolor=#ffffff> 파일:WBSCPremier12TeamEmoji_KOREA.pn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장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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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color:#FFF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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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px; margin-top:-1px; margin-bottom:-1px"
1998 AG 2000 Oly 2002 AG 2004 Oly 예선 2006 WBC
심재학 김기태 이종범
2006 AG 2008 Oly 예선 2008 Oly 2009 WBC 2010 AG
박재홍 박찬호 진갑용 손민한 봉중근
2013 WBC 2014 AG 2015 P12 2017 WBC 2017 APBC
진갑용 박병호 정근우 김재호 구자욱
2018 AG 2019 P12 2020 Oly
김현수
ⓐ 1998년 이전의 올림픽과 야구선수권대회에는 아마추어 선수만 출장했으므로, 따로 주장 경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 2017년 APBC는 U-24 대회다.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c70125> 파일:KIATIGERS_1.png 해태·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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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color:#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20272C"
1982년 ~ 현재
1982~1983 1984 1985~1987 1988~1993 1994~1997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A] 주장직 폐지 이순철
1998 1999~2001 2002~2004 2005 2006
이강철 이호성 이종범 김종국 이종범
2007 2008 2009 2010 2011
이종범장성호[B] 장성호김상훈[C] 김상훈 최희섭김상훈[D] 김상훈
2012 2013 2014~2016 2017~2018 2019~
차일목 김상훈 이범호 김주찬 김주찬안치홍[E]
[A]: 김일권 이후 긴 시간 동안 주장직을 폐지. 출처
[B]: 이종범의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C]: 시즌 중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인한 주장 교체.
[D]: 시즌 초 선수단의 반발로 인한 주장 교체.
[E]: 2019년 5월 15일, 김주찬의 재활과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 ||

해태 / KIA 타이거즈 등번호 7번
김종모(1982~1992) 이종범(1993~1997) 장일현(1998~2001)
장일현(1998~2000) 이종범(2001~2012) 영구결번
한화 이글스 등번호 73번
정영기(2010~2012) 이종범(2013~2014) 아베 오사무(2015)
LG 트윈스 등번호 77번
강상수(2014~2018) 이종범(2019) 결번
}}} ||
}}} ||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4 2,083 안타[7] 2010년 -
파일:attachment/1000000009.jpg
{{{#C8AB37 KIA 타이거즈 No.7}}}
이종범(李鍾範 / Lee Jong-beom )
생년월일 1970년 8월 15일 ([age(1970-08-15)]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파일:광주광역시 심볼.png 광주광역시 파일:external/www.bukgu.gwangju.kr/img_070202_17.jpg 북구
본관 함평 이씨[8]
가족 관계 부친 이계준, 모친 김귀남, 7남매 중 막내
외조카 윤대영 (1994년생)[9]
배우자 정연희 [10](1997년~현재) [11]
자녀 아들 이정후 (1998년생)[12]
딸 이가현 (1999년생)[13]
학력 서림초등학교-충장중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89학번)
포지션 유격수 (1993~1997, 1998)[14]
1루수 (2008)
2루수 (2007, 2010)[15]
3루수 (2001)
좌익수 (1999~2000, 2002)
중견수 (1998~2000, 2003, 2004~2006)
우익수 (1999~2000[16], 2002, 2007~2011)

포수[17][18]
투타 우투우타[19][20]
프로입단 1993년 1차지명 (해태 타이거즈)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93~1997)
주니치 드래곤즈 (1998~2000)
KIA 타이거즈 (2001~2011)
지도자 한화 이글스 1군 주루코치 (2013~201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루코치 (2017~2018)
LG 트윈스 2군 총괄코치 (2019)
주니치 드래곤즈 연수코치 (2020~현재)
해설위원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5~2018)
테마곡 안토닌 드보르자크 - '교향곡 9번 제4악장'[21][22]
YG 패밀리 '멋쟁이 신사'[23]
펩시맨 CM송[24]
병역 제31보병사단 방위병 (1995)
종교 불교

1. 개요2. 상세3. 선수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생활
5.1.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5.1.1. 2013 시즌5.1.2. 2014 시즌
5.2. LG 트윈스 코치 시절
5.2.1. 2019 시즌
6. 해설자 경력7. 사건사고 및 구설수8. 가족관계9. 이야깃거리10. 연도별 성적


1. 개요

파일:종범신.jpg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25]
김응용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의 야구 선수로 현재는 주니치 드래곤즈 연수코치를 역임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며 성구회의 제4호 회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이 소화가 가능한 야구천재였다.

2. 상세

통산 정규시즌 MVP 1회, 한국시리즈 MVP 2회, 골든글러브 6회를 수상. 주요 기록으로는 94년에 기록했던 타율 3할9푼3리, 도루 84개, 안타 196개, 득점 113점 (모두 시즌 1위) 97년에 기록했던 타율 3할2푼4리, 30홈런, 64도루 등의 기록이 있다. 94년의 타율은 프로 원년 백인천 4할1푼2리 이후 한국프로야구 최고 타율이고, 97년 64도루를 하며 기록했던 30홈런은 당시 32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던 이승엽과 경쟁하던 기록이라 더욱 놀랍다. 별명으로는 바람의 아들, 야구천재, 종범신 이정후 아빠 이 있다. 90년대 중후반, 00년대 초중반 한국프로야구 한 시대를 주름잡았고 대표했던 선수로 설명된다. 해태 왕조로 불렸던 9번의 우승 중 93년, 96년, 97년 3차례 우승에 기여하였고 (93년, 97년은 한국시리즈 MVP), 기아 09년 우승에 기여하며 4차례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정작 팀기여도(WAR)는 94년이 제일 높다. 아니 KBO 역대급 Baseball Lab이나 사라진 스텟티즈에서도 타자들 중에서는 원탑.

주요 기록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타율 3할9푼3리, 도루 84개, 득점 113점으로 당시 역대급 타율, 도루, 득점을 기록하였고 97년엔 홈런 역시 30개 도루 60개로 30-30을 기록한 적이 있는 강타자이자 유격수로서는 유일하게 MVP까지 수상했던 인물.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5툴 플레이어이지만 그냥 5툴이 아니라 각 툴 하나하나가 당시 KBO 역대급으로 잘했기에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선수였다. 타자로서 그냥 타격을 잘하는게 아니라 야구를 정말 잘한다라는 평판을 들었던 선수. 심지어는 포수마스크를 쓰고[26] 임창용이대진의 공을 받기도 했으며 2루로 도루를 시도하는 김재걸을 도루사(!) 시키기도 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였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면서도 그 말 조차 아쉬울 지경이다. [27]

그냥 귀찮으니깐 도루는 넘어가고, 유격수인 것도 넘어가고, 해태의 3번 우승을 견인한 것도 넘어가자. 같은 기간 한정 하자면 그보다 홈런을 많이 친 선수는 양준혁뿐이었고, 그 역시 신이 되었다. 5년간은 양준혁을 능가하는 컨택 능력. 5년 통산 타율이 .332이다.

단 일본에서 국내 복귀 이후 점점 하락세가 시작되어 말년의 기록은 전성기때 지표를 상당히 많이 까먹었고 전성기때 칭송받았던 이름값에 비하면 통산기록이 많이 아쉬운 수준에서 그쳤다. 특히 양준혁은 꾸준함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KBO 역대 타자 중 최고인 관계로 통산기록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정리하면 해태 왕조 말년과 KIA의 4차례 우승을 이끌고 한국프로야구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레전드. 그리고 위대한 전성기와 훌륭한 기록을 남긴 탑클래스의 플레이어였다.[28]

2011년 현역 최고령 선수였다. 2012년 은퇴를 선언하면서 최고령 선수 타이틀을 당시 류택현, 최동수와 후에 KIA에 입단한 최향남에게 물려주었고, 은사 김응용 감독이 있던 한화 이글스 코치를 거쳐 MBC SPORTS+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9년 시즌부터 LG 트윈스 코치로 뛰게 되었다.

3.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종범/선수 시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9s7Q6xe.jpg

4. 플레이 스타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종범/플레이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지도자 생활

은퇴 후 정들었던 광주를 떠나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한 이종범은 휴식과 방송 출연, 아들 이정후 군이 재학 중인 휘문중학교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하는 등 시간을 보냈다.[29]

그런데 2012년 10월 8일 뜬금없이 LG 트윈스의 코치로 부임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LG와는 사실 연고도 없고 여러가지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초중고를 같은 학교를 나왔고 원래 친분이 깊은 김기태 LG 감독 아래서 지도자 경력을 쌓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전격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새벽 2시에 갑자기 속보로 떠서 많은 기아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 그 자체를 겪었다. 반면 LG 팬 입장에서도 데뷔 이후 줄곧 LG를 괴롭혔던 이종범이, 그것도 지도자 연수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첫 코치 경력을 시작한다는데 불만이 많은 상황. 그러나 LG 구단 측에서 이종범을 영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거기에 이종범 본인도 전혀 거취가 정해지지 않았음을 밝히면서 LG 트윈스 코치행은 해프닝으로 종결되었으며 2019년 진짜 LG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난 당일 이번엔 그의 선수 시절 스승이었던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새로 부임하면서 양준혁과 함께[30] 코칭스태프 기용설이 거론되고 있다. 여담으로 김응룡 감독이 이종범을 코치로 부를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며 한화 이글스 프런트도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 인선 전권이 있는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5.1.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파일:/image/109/2012/10/15/201210151141772029_507b785eb2fd5_59_20121015114407.jpg

10월 10일, 공식적으로 한화 주루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링크

10월 15일 류현진이 FA를 통해 해외진출을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 때문에 팀 성적 생각만 한다고 본의 아니게 까이게 되었다. 류현진에게 FA로 해외진출을 하라는 발언이 정말로 류현진을 생각해서 한 발언인지, 일명 실적을 위해 류현진을 붙잡고 굴리려는 의도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야인으로 있을 당시 류현진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김응룡이 한화 감독 부임 이후 태도를 싹 바꿔 못가게 막는 인터뷰를 해서 한화팬들이 한참 민감한 상황인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눈치없는 발언이었다는 분위기다.

5.1.1. 2013 시즌

초보 코치라서인지 주루코치로서의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사실 코치연수조차 받지 않고 김응룡감독이 한화로 부임하면서 데려온 낙하산 같은 존재라 기대치가 없기도 했다.

7월 16일 무등 KIA전에서 1루코치에서 3루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였다.

5.1.2. 2014 시즌

3루 주루 코치를 보고 있다. 그렇지만 팀 성적이 워낙 막장인지라 썩 좋은 평가는 못 듣는 편. 김응용 및 여러 코치들이 주로 욕을 먹어서 좀 묻히는 느낌이지만.

확실한 건 GO&STOP에 대해선 매우 좋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별명 많은 돼지를 비롯한 김태완, 최진행, 조인성똥차들의 홈 주루사가 매우 적어진 편이다. 다만 웬만한 상황에서는 주자를 멈춰세우는 등 주자운용이 극히 안전지향적으로 변해 팀의 최소득점[31]에 영향이 없지는 않다는 평이다.

팀의 주루플레이 역시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다. 물론 2014년 시즌 종료후 기록을 보면 한화 이글스의 팀 도루순위는 8위로 전년보다 1계단 상승하였다. 하지만 정작 도루 갯수는 70개로 전년도랑 똑같다. 부상으로 거의 시즌 말아먹은 이용규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근우펠릭스 피에같은 발빠른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개선이 없다는 것은... 그럼에도 소통이 부족했던 김응용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가운데에서도 격의없이 선수들과 어울리고 파이팅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피에의 홈런 때마다 함께한 이종범 코치의 거수경례 세리머니는 한화의 명물 중 하나로 자리잡았을 정도.

2014 시즌 이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부임하면서 코치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32] 이 와중에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KIA 타이거즈의 신임 감독 후보에 이종범 코치도 역시 언급되었는데, 아직 코치 경력이 2년밖에 안 된 초짜인 것도 있고 본인도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여 감독직을 고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담으로 일부 타이거즈 팬들은 이종범 코치가 이때는 물론 앞으로도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선임되는 것을 반대하기도 한다. 이유는 KIA 타이거즈 7대 감독인 선동열 전 감독처럼 타이거즈 레전드가 타이거즈에서 팬들에게 온갖 욕을 먹고, 거의 금지어 취급을 당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5.2. LG 트윈스 코치 시절

파일:LG 트윈스 이종범.jpg

5.2.1. 2019 시즌

2018년 10월 24일 LG는 이종범을 코치로 영입한다 전했다. 보직은 미정이나 2군 총괄이 유력하다고 한다. 그러나 한혁수 코치의 재계약 불발로 주루코치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외조카인 윤대영과 선수와 코치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조카가 시즌 직전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 되었다. 외삼촌의 뒷통수를 거하게 친 셈.

2018년 12월 5일 2군 총괄/타격코치로 확정되었다.

서경석 TV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종범을 코치로 데려온 사람은 차명석 단장이라고 한다. 해설자보다 수입이 적은 코치로 데려오는게 미안해서 이종범의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돈은 정후가 번다며 매우 환영했다고 한다(...). 제발 자기 눈앞에서 치워달라고 한건 덤(...).

2020 시즌부터 KIA의 차기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KIA 측은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KIA의 감독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시즌 후 코치직을 사임하고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코치연수를 받을 예정이다.

6. 해설자 경력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중국과의 야구 준결승전 당시 KBS에서 특별 해설위원으로 초빙되어 처음으로 해설을 맡았다. 대체적으로 야구를 읽는 눈이 아직 녹슬지는 않았고 의외로 방방 뛰지 않고 차분하게 해설을 했다는 평. 다만 아직 남아있는 사투리와 너무 긴장해서인지 차분하다 못해 가라앉아 있어서 본격적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려면 좀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평을 받았다.[33]

한화 이글스 주루코치 사퇴 이후 KIA 타이거즈 측으로부터 감독직 및 코치직[34]을 제안받았으나 좀 더 야구를 공부하기 위해 야구해설자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MBC SPORTS+와 해설위원 계약을 맺으면서 2015년부터는 MBC 중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1993년 등장했던 양신과 종범신이 이젠 해설위원으로써 한솥밥을 먹게 된 것. 그리고 2015년 6월 12일 드디어 양신과 같이 해설했다! 시청한 사람들의 소감은 하나같이 '하라는 해설은 안하고' 한명재 캐스터랑 3명 모두 만담만 했지만, 경기 자체가 원사이드하게 흐른데다가 양 팀팬들간 서로 추억도 다시 되살려보고 대체적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엠스플 해설자 위촉 기념으로 촬영된 '종범神, 엠스플을 만나다'에 따르면 선수 시절 말기 때부터 야구를 보는 눈이 있고 입담이 화려한 이종범의 영입을 위해 엠스플이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사석에서 형동생하는 사이인 한명재 캐스터도 끈질기게 붙으면서 엠스플로 오라고 했다는 설. 은퇴 이후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은퇴 이후의 행보를 설계하느라, 2013~2014년에는 은사 김응용의 러브콜로 성사시키지 못했다가, 2014 시즌이 끝나고 그 때의 정을 생각하여 해설자 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2015 시즌전 투입된 프로그램에서는 이종범 위원의 예능감(...)이 유난히 드러났다.

그러나 해설자로서의 평은 다소 좋지 못하다. 억지로 표준말을 하려고 하니 발음이 새는 경우가 많고, 발음이 새는데 상황 설명도 자세히 말하려다 말이 꼬이고 자기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거의 매경기 연출되기 때문. 기아 경기 중계시 편파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단어와 단어를 잘 연결짓지 못해 올바른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비문이 많으며 가끔가다 따까리, 쪽팔리다와 같은 비속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보였다. KIA 팬들마저 이종범 해설은 못 듣겠다 할 정도. 그리고 유독 눈빛좋은 선수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서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눈빛충이라고 불린다.

2016년 4월 17일에 벌어진 메이저리그에서 메이저리그 포수보다 한국리그의 포수 리드가 더 좋다라는 경솔한 말과 김현수와 주전자리를 두고 경쟁중인 리카드라는 선수를 무작정 까고 감정적인 해설을 하는 소위 국뽕(?) 해설을 하여 많은 사람에게 비판을 받았다.

친정사랑이 각별하다 어느정도냐면 "우리 기아 타이거... 죄송합니다 기아 타이거즈가"라고 '해설' 발언했다. 역시 친정사랑.

2017시즌부터는 아들 경기를 중계 할 가능성이 생겼다.

2017년 5월 5일 넥센-SK 경기에서 한명재, 허구연과 해설을 했는데 이정후의 수비에 대해 냉정한 지적을 했다. 또한 이정후가 1타점 3루타를 쳐내자 "흐흐흐"하며 웃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MBC SPORTS+에서 이정후가 팀의 큰 견해를 해주었다는 칭찬을 하자, 때론 아버지로써 선배로써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7년 5월 19일 SK-NC 경기에서는 이정후와 상관 없는 경기의 해설임에도 불구하고 넥센을 거론하며 "저희 넥센같은 경우에는-" 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35]

주로 양신과 많이 엮어주는데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이 2% 부족하다는 점 양쪽 지역 사투리를 못 고친다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 결국 해설실력이 넘사벽급인 같은 방송사 다른 해설진과의 차별화를 위해 두 신의 만담해설이 주 컨텐츠로 자리잡았다.

동료 해설위원이자 1년 선배인 차명석 LG 트윈스 단장의 부름을 받고 LG 트윈스 코치로 가게 됨에 따라 2018년 10월 31일 베이스볼 투나잇 출연을 끝으로 해설위원으로서의 생활은 일단 마치게 되었다.

7. 사건사고 및 구설수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종범/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마 문서의 제목만 봐도 톱스타 한 명이 생각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8.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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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범은 7남매 중 막내로, 그의 부모인 부친 이계준 씨, 모친 김귀남 씨는 광주서림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를 시작한 막내아들에게 최대의 후원자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이상 막내아들에게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작은 체구로 운동을 하는 것도 안쓰러운데 매까지 맞는다고 하니(...) 야구를 하도록 허락한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해서 속상한 마음에 훈련중이던 이종범을 강제로 야구부에서 빼내려했었다고. 그러나 이종범이 막무가내로 버티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한다. 대신 귀가한 아들을 호되게 꾸짖은뒤 '야구를 그만둔다'는 각서를 쓰도록 했지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린 이종범이 쓴 각서의 내용은 '야구는 내 인생이니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었고,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반발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꿋꿋한 집념이 한없이 기특하게 여겨져 노여움이 눈녹듯 사라졌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일본전문서적을 번역해 이종범에게 읽어주었다고 한다. 어머니 김귀남 씨 또한 저녁마다 이종범의 훈련을 도왔으며, 하루저녁 3백개에서 5백개의 스윙목표를 정해놓고 50번을 휘두를 때마다 돌멩이를 옮겨놓으며 아들의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이외에도 당시 서림초등학교 감독을 집에서 기거케해 훈련이 끝난뒤에도 마당에서 개인지도를 받도록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
  • 아버지 이계준 씨는 2012년 5월 26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막내아들 이종범의 은퇴식에 참석했다. 주니치 나고야돔의 흙은 아버지가 직접 이종범 은퇴 기념탑에 담았는데 “일본 갔을 때도 기뻤고, MVP가 됐을 때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도 정말 기특했다. 그래도 양준혁처럼 은퇴경기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언급했다. # 어지간히 많이 아쉬우신 모양..천만번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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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는 1살 연하의 장연희 씨.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숭의여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에 패션유학을 다녀왔다. 이종범과는 1994년 말 잠실구장에서 팬과 선수로서 첫 만남을 가진 후 3년간 열애했다. 1996년 시즌이 끝난 뒤 결혼을 결심했고, 12월 예비 신부가 있는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고 파리, 런던 등지에서 12박 13일 동안 둘만의 시간을 보낸 후 1997년 1월 5일에 약혼식을 올렸다. 그해 11월 16일 광주무등파크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
  • 자녀로는 연년생인 아들 이정후, 딸 이가현이 있다. 두자녀 모두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에 태어난 일본 나고야 태생이다. 아들 이정후는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키움의 전신인 넥센 히어로즈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이종범과 함께 역대 최초로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성한 부자선수가 됐다. 이정후는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프로 데뷔 3년차만에 국가대표 탑타자로 크게 성장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별명을 물려받아 '바람의 손자'로 불리우고 있다. 2017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24세 이하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최종 엔트리에 승선해 맹활약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 대표팀 코치와 함께 '한국 최초 부자(父子)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2018년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 되며 아버지 이종범과 국가대표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다. # 딸 이가현은 연세대 음대에 재학 중이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다고. 자녀 모두 예체능 여담으로 서울예원학교에 진학을 앞둔 딸의 음악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현역 은퇴와 함께 서울로 이사갔고 이로인해 이정후 역시 광주무등중학교에서 서울휘문중학교에 전학을 갔다. 당시 이정후는 한창 예민할 시기인 중2때라 정든 교정과 친구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고 한다. 이를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에 너무나도 미안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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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범은 2017년 9월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vs삼성 라이온즈 경기의 해설을 맡았는데, 경기에 앞서 아들을 언급하며, "정후는 잡초처럼 자란 것도 아니고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랐다"며 "힘든 프로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야구를 하는 내내 아빠의 수식어가 따라다닐 텐데, 어린아이가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 몰라서 야구를 반대했다. 야구보다는 축구나 골프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에도 자질이 있었는데, 자기가 야구를 제일 좋아하더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프로 지명이 되고, 운 좋게 주전 기회를 잡아 좋은 성적까지 내주니 너무 감사하다"고 돌아봤다. 이후 간간히 토크쇼에 출연해 이를 다시 언급했기도 한데 잘했을 때는 모르겠지만 못했을 때 아들이 받을 상상 못할 비참함이 너무 클것 같아 야구를 하는 것에 크게 반대했었지만 지금은 더할나위없이 기쁘다고 정후 활약에 나도 이리 배부른데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배부르셨을까 드립을 치기도 했다 여담으로 피는 못 속이고 운명은 악착같다고 아들 이정후는 외사촌형인 윤대영이 야구를 시작하자, 3학년을 앞둔 2007년 2월에 이종범이 스프링캠프를 떠난 사이 어머니 정연희 씨와 몰래 야구부 테스트를 보러 갔다. 이를 알게 된 이종범은 "그럼, 왼손으로 쳐라."라는 조건을 내밀었고, 오른손잡이 이정후는 우투좌타가 됐다. # #

9. 이야깃거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종범/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연도별 성적

  • 굵은 글씨는 리그 5위권 안의 성적,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성적, 파란 글씨는 리그 역대 최다 기록.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해태 126 475 .280 133
(2위)
16 4 16
(4위)
53 85
(1위)
73
(2위)
38 .432 .331
1994 124 499 .393
(1위)
196
(1위)
27
(3위)
5
(3위)
19
(4위)
77
(5위)
113
(1위)
84
(1위)
57 .581
(2위)
.452
(1위)
1995 63 239 .326 78 10 2 16 35 51 32 30 .586 .397
1996 113 449 .332
(2위)
149
(2위)
28 1 25
(3위)
76
(3위)
94
(1위)
57
(1위)
74
(5위)
.566
(2위)
.425
(3위)
1997 125 484 .324 157
(2위)
28 3 30
(2위)
74 112
(1위)
64
(1위)
90
(3위)
.581 .428
(4위)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주니치 67 244 .283 69 11 3 10 29 38 18 42 .475 .387
1999 123 424 .238 101 20 5 9 33 76 24 45 .373 .310
2000 113 414 .275 114 26 2 8 37 58 11 36 .406 .332
2001 8 13 .154 2 1 0 0 0 2 0 0 .231 .15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KIA 45 188 .340 64 14 1 11 37 45 7 21 .601 .401
2001 시즌 합계[36] 53 201 .328 66 15 1 11 37 47 7 21 .577 .387
2002 123 485 .293 142 25 2 18 59 93
(5위)
35
(3위)
56 .464 .365
2003 132 524 .315 165
(2위)
43
(1위)
1 20 61 110
(3위)
50
(1위)
66 .515 .389
2004 133 493 .260 128 29
(5위)
0 17 52 100
(1위)
42
(3위)
70 .422 .350
2005 118 430 .312
(5위)
134 25
(4위)
2 6 36 69 28 58 .421 .393
2006 93 339 .242 82 18 1 1 21 41 10 29 .310 .302
2007 84 253 .174 44 6 0 1 18 23 3 15 .209 .217
2008 110 317 .284 90 19 4 1 38 38 9 33 .379 .348
2009 123 385 .273 105 21 1 6 40 63 11 46 .379 .346
2010 97 265 .245 65 16 1 4 29 36 2 18 .358 .293
2011 97 235 .277 65 15 1 3 24 27 3 23 .387 .337
KBO 통산
(16시즌)
1706 6060 .297 1797 340
(5위)
29 194 730 1100
(5위)
510
(2위)
724 .458 .370
NPB 통산
(4시즌)
311 1095 .261 286 58 10 27 99 174 53 123 .406 .334
개인 통산
(20시즌)
2017 7155 .291 2083 398 39 221 829 1274 563 847 .450 .364


[1] 최다 득점 타이틀은 1999년에 신설[2] 1993,1994,1996,1997시즌 득점 1위[3] 1994 시즌[4] 1997시즌[5] 1993년 9월 26일 vs 쌍방울 레이더스[6] 1997 시즌. 1번타자로만 출장했음에도 고의사구가 30개를 기록했다.[7] KBO 1,797 + NPB 286[8] 28세손 "範" 자 항렬[9] 윤대영의 어머니가 이종범의 누나이다.[10] 원래 이름은 장정민이였으나 개명했다. 이종범보다 1살 연하인 1971년생이며, 수원 출신으로 숭의여자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디자인 유학을 했다. 파리유학 중 주고 받은 편지만 1,000여통에 달한다고 한다. #[11] 1994년 말 잠실구장에서 팬과 선수로서 처음 만나 3년간 교제를 했다. 1997년 1월 약혼식을 올렸고, 그해 11월 16일 광주무등파크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2] 넥센 히어로즈의 2017년 1차 지명 선수. 아버지처럼 1차 지명을 받게 되었다.[13] 현재 연세대학교 음대 재학 중. 각종 콩쿠르, 연주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14] 일본 진출 첫 해인 1998년에는 부상당하기 전까지 56게임을 유격수로 플레이 했다.[15] 2010년 경기엔 백업들이 죄다 줄부상에 대타로 써버려서 어쩔 수 없이 외야수 전향 후에도 특별히 대수비로 출전했다. 하지만 공은 이종범 쪽으로 가지 않았다.[16] 주니치에서 중견수와 우익수, 좌익수를 번갈아 가면서 출전했다.[17] 링크. 96년 8월 23일 대전 한화전에서 있었던 일. 임창용의 공을 받았다.[18] 삼성전에서 김재걸의 도루를 저지한 적도 있다.[19] 원래는 왼손잡이라고 한다. 실제로 야구랑 필기빼고는 다 왼손을 쓴다.[20]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당시 자신이 존경하던 김재박을 보며 유격수가 되기 위해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는 설, 유격수가 되기 위해 좌투에서 우투로 바꿨다는 설, 왼손잡이 글러브가 없어 오른손으로 야구를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종범 본인이 이야기쇼 두드림에서 밝힌 바로는 당시 오른손 글러브 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우투좌타로 프로에 입단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록을 써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로 인해 아들 이정후에게 야구에 대해 크게 조언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조언한 것이 우투좌타를 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21] 이~ 종범 이~ 종범 안타 이~ 종범 (x2) 링크[22] 신세계 교향곡으로도 널리 알려져있고, 이종범 이전에 정경배가 사용하던 테마곡을 기아에서 가져다가 써서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2011년 6월 2일 목요일 잠실 LG전에서 대타로 나올 때의 응원가 떼창.[23] 2011 시즌에 사용. 안양 KGC인삼공사이정현 선수의 응원가이기도 하다.[24] 펩시맨 CM송에 맞춰서 '이종범!'을 외치는 구호였는데 음악은 신나지만 박자 맞추기가 어렵다고 2008년부터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25] 그리고 스크린야구 매치에서 차명석구라는 차명석 으로 써먹었다. 인생은 이호준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다.[26] 사실상 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설 수 있었다.[27] 그 유명한 김응룡감독의 명언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28] 또다른 최강급 5툴 플레이어인 박재홍은 장타력은 이종범보다 뛰어났지만 주루능력이 부족했다. 박재홍의 통산 도루 267개는 성공률이 64%에 불과한 만큼 주력에 가중치를 두기는 어렵기도 하고 컨택면에서도 이종범에게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있다.[29] 2018년 현재 이정후 군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넥센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로 활동 중이다.[30] 양준혁은 플레잉코치 제안을 받았다고한다.[31] 팀의 타격순위는 7위이지만 득점은 압도적 꼴찌다.[32] 정확히는 김응용 감독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자 스승이 물러난 곳에 남아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 짐을 쌌다고 한다. 구단 내부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고. 기사[33] 그렇지만 지방 출신 해설위원 중에 사투리를 안쓰는 해설을 찾기가 더 힘들다. 평생을 써온 말인데 고작 몇년 사이에 고쳐지는게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수도권 출신 선수만 해설위원 시킬수도 없는 노릇. 애시당초 사투리가 트레이드 마크이신 분 도 계신다.[34] 김기태 신임 감독이 직접 이종범에게 코치로 올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35] 자세한건 MBC SPORTS+의 야구 비판 참고.[36] 2001년 시즌 중 주니치 퇴단 후 KIA 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