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2 17:48:05

윤석민(투수)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C70125> 파일:KIATIGERS_1.png KIA 타이거즈
2020 시즌 투수
}}} ||
{{{#!wiki style="color:#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000000"
11 박정수 · 19 이민우 · 20 김기훈 · 21 유승철 · 24 윤석민
· 26 임기준 · 28 김윤동 · 31 박준표 · 35 문경찬 · 37 박지훈 · 38 임기영
· 39 하준영 · 43 홍원빈 · 45 장지수 · 46 양승철 · 47 김명찬
· 48 강이준 · 49 김승범 · 50 김세현 · 51 홍건희 · 54 양현종 · 55 전상현
· 58 차명진 · 60 고영창 · 61 남재현 · 63 황인준 · 65 이준영
· 69 박진태 · 04 이종석 · 09 이원빈 · 011 유근상 · 012 서덕원 · 017 백미카엘
· 021 박서준 · 023 이태규 · 029 이호현 · 030 나용기 · 031 박동민
· - 정해영 · - 오규석 · - 유지성 · - 김양수 · - 장재혁 · - 강민수 · - 최용준 · - 브룩스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윤석민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9

수상 이력
2011년 한국프로야구 MVP
2011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2011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2008, 2011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자책점
2011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2011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2011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 ||
윤석민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오봉옥(2004) 윤석민(2005~2009) 조태수(2010~2012)
홍건희(2015.1.~3.)[1] 윤석민(2015~2017) 이윤학(2018)
KIA 타이거즈 등번호 28번
조태수(2009) 윤석민(2010) 고우석(2011~2012)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
손영민(2010) 윤석민(2011~2013) 송은범(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유재신(2017) 윤석민(2018~) 현역
}}} ||
파일:img_PlayerView_big_{윤석민}.png
KIA 타이거즈 No.24
윤석민 (尹錫珉 / Suk-Min Yoon)
생년월일 1986년 7월 24일 ([age(1986-07-24)]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파일:경기도 휘장.png 경기도 파일:구리시 심볼.jpg 구리시
학력 구리초-인창중-야탑고
신체 184cm, 85kg, B형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5년 2차 1라운드 (KIA)
소속 팀 KIA 타이거즈 (2005~2013)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 (2014)[2]
KIA 타이거즈 (2015~)
응원가 싸이 '아버지'[3]
병역 병역특례
가족관계 부인 김시온[4], 아들, 장모 김예령
연봉 2억원[5] (84%↓, 2019년)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소개2. 선수 경력3. 연도별 성적4. 플레이 스타일5. 평가6. 양현종과의 반비례?7. 여담8. 관련 문서

1. 소개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120533_STD.jpg
남들은 나보고 운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KIA 타이거즈 같은 명문팀에서 1선발로 뛰고 있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2007년 암울한 기아 타선과 수비로 최다패를 기록했을 때
진짜 운 좋은 사람 맞다[6]

KIA 타이거즈 소속의 우완 투수.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의 트리플 A 노퍽 타이즈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지만 2015년 다시 KIA로 복귀하였다.

역대 등번호는 20(2005~2009) - 28(2010)[7] - 21(2011~2013) - 55(2014) - 20(2015~2017) -24(2018~)

한 때 국내 최고의 우완투수였었다. 과거 빅3라고 불리던 배영수, 박명환, 손민한이 부상으로 차례차례 몰락한 뒤,[8] 프로야구판에 뛰어난 우완 '선발' 은 찾기 힘들게 되었다.[9] 선발 로테이션에 끼어 꾸준히 던져주는 우완 투수들은 대부분 해외파인 상황에서, 송은범과 함께 토종 정통파 우완의 자존심을 세울 기대주로 떠올랐다.[10]

어려 보이는 외모로 '석민 어린이' 등의 별명을 얻었고, 2007년 팀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때 윤석민상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AAA리그에서 수준 이하의 기량을 보여준 2014년에는 노폭전드 내지는 윤졸도[11]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무리로 뛰게 된 2015 시즌 한정 별명은 석센시오. 그리고 17시즌 이후 재활이 더디게 진행되어 복귀가 계속 미뤄지자 '그 먹튀', '그 90억(금액)' 내지는 '그 FA' 등의 별칭도 생겼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파일:/image/020/2007/05/03/200705030243.jpg
야탑고 재학 시절.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6_r1_400.png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70주년 기념 현역 All-Star
in 2016. 동아일보
박용택
OF / 휘문고
민병헌
OF / 덕수고
정의윤
OF / 부산고
지석훈
SS / 휘문고
홍성갑
2B / 북일고
최정
3B / 유신고
윤석민야탑고
김광현안산공고
안준모
1B / 선린상고
박병호
C / 성남고

성남시에 있는 야탑고등학교를 나왔으며[12], 2005년 2차 1순위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는데 이때는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투수는 아니었다. KIA 타이거즈의 성공적인 스카우팅 사례 중 하나.

리틀 야구 시절에는 타자 윤석민과 프로 때와 정반대로 서로 포지션이 달랐다. 투수 윤석민은 이때에는 포수, 타자 윤석민은 투수였다. 초, 중학교를 같은 곳을 나왔으며, 인창고 1학년까지도 같이 동문수학을 하다가 투수 윤석민이 야탑고로 전학갔다.

2.2. KIA 타이거즈 1기 시절

파일:external/ph.kyeonggi.com/740557_677784_418.jpg

2006년 구속이 붙으면서 서정환의 벌떼야구의 중심축으로 활약하며[13] 본격적으로 우수한 투수의 반열에 올랐다.

2007년 시즌에 팀의 선발투수 부족으로 선발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윤석민상 수상 2008년 시즌에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으로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 방어율왕을 차지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2.1. 2009 시즌

파일:attachment/윤석민(투수)/1239456247.jpg

4월 11일 광주 삼성전 9이닝 1실점 승패없음(결국 그 경기 패)

초반 방어율이 4점대인데다, 기아 방어율이 6선발 평균 2점대의 다른 팀 에이스 선발급 포스를 내뿜고 있어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게다가 기아 타선이 윤석민이 등판할때는 파업을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윤석민 등판일의 성적이 가장 나쁘다. 그야말로 안습의 절정을 달렸다.

4월 17,18,19일의 3연전에서는 타선이 폭발해서 25점이 나왔지만 윤석민 등판일인 18일에는 달랑 2점만 나오는 안습함까지.(결국 패전투수)

게다가 연이은 한기주퐈이야로 날려먹은 경기가 꽤 되는 상황이 되자(4월 21일~26일, 6일 연속으로 8회 이후에 실점), 결국 조범현 감독은 선발에서 부진한 윤석민을 마무리로 내리기로 결정한다.

5월 1일 경기에서 한기주의 퐈이야에 이은 4:4 상황에서 등장, 한화 타선을 4⅓이닝 동안 6삼진 퍼펙트로 완벽하게 틀어막았으나 타선의 삽질이 이어지며 이번에도 승수 쌓기는 실패했다.

그리고 어린이날에 미묘하게 부진하면서 결국 패전투수. 결국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서야 최희섭김상현의 도움으로 시즌 첫 승을 기록하였다.

마무리로서 제법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서재응과 이범석의 부상으로 인해 선발 로테이션에 문제가 생기자 5월 29일 선발로 복귀했다. 하필이면 상대투수가 봉중근이라 좀 흔들리는 감도 있긴 했으나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를 챙겼다. 조범현 감독은 이제 다시 마무리는 안 한다고 못 박은 만큼 남은 시즌은 선발로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부상 당해 2군으로 내려간 한기주를 대신해 유동훈이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윤석민은 다시 선발로 복귀,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서 호투하며 부활을 알렸다.

이후 후반기에도 호투를 이어가며 연승행진 중. 기아 타선이 좋고 본인의 투구가 좋으니 진짜 남은 등판 경기 다 이겨서 10승 찍는 거 아니냐는 설레발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2009년 8월 12일 롯데전에서 7이닝 무실점 5탈삼진으로 시즌 6승을 거두며 팀과 자신의 연승 행진을 이어가는데 성공. 8월 18일 히어로즈 전에서는 5이닝 1실점 승리, 8월 23일 SK전에서는 7⅔이닝 1실점으로 8승째를 올리며 10승 설레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8월 30일 두산전에서는 7이닝동안 피안타 2개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기아 타선이 미친듯한 병살을 때려내면서 1:0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2007년의 윤석민이 되살아나....나 했는데 8회 초에서 최희섭의 적시타와 장성호의 대타 만루홈런, 다음 타자 김원섭의 백투백 1점 홈런으로 기아가 대거 6점을 뽑아내면서 역전에 성공, 시즌 9승째를 거뒀다. 이로써 등판 9연승을 이어가는 한편, 평균 자책점 부문에서 부상 때문에 출전하지 못하는 김광현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9월 5일 두산전에서 3이닝 10실점하는 최악의 피칭을 하며 평균자책점 타이틀 수성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2007년 무리하면서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은 이후 후반기로 가면서 체력과 투구 밸런스에 악영향이 심각한 것 같다. 결국 MRI 촬영결과 어깨에 부종이 확인, 시즌 아웃이다. 다행히 포스트 시즌에서는 투구가 가능한 듯.

그리고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기다렸다는 듯 복귀,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기아의 2연승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6차전에서는 5이닝 3실점을 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해설, 선배투수, 본인까지 한목소리로 '너무 급했다'고 평했을 정도로 일찍 승부를 보려는 조급한 피칭을 했다. 팀 타선도 꽁꽁 묶여서 승리는 결과적으로 어려웠던 경기. 타선이 터졌으면 승리 투수가 되면서 나름 잘했다고 칭찬 받을 수도 있었다. 역시 이기면 뭐든지 좋게 보인다.

2.2.2. 2010 시즌

성적이 나쁜 건 아니지만 순 제멋대로인 스트라이크존에 제대로 적응 못하고 투수코치가 데스기모토로 바뀐 탓인지 부진하다.

5월 9일에는 뜬금없이 마무리 등판까지 했다. 5월 11일 광주 넥센전에서 2년만에 완투승을 거뒀지만, 류현진의 17K 탈삼진쇼에 아쉽게 묻혀버렸다. 5월 26일 잠실 LG전에서는 ⅔이닝동안 8실점으로 관광당했다... 충격이 오래 갈듯 할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0년 6월 18일 있었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완투직전에 윤상균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강판당했다. 그리고 강판 후에 분노를 이기지 못해 라커룸에 오른손을 내리쳤는데 하필 새끼손가락이 골절되었다. 전치 6주.[14]

8월 15일에는 2대 1 상황에서 등판, 볼넷과 송구 실책으로 1점을 내준 직후 홍성흔의 타석에서 던진 직구가 손등을 강타해 홍성흔이 시즌아웃이 돼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개 몸쪽 볼은 대부분의 타자들이 잘 피하는데, 가끔 스윙하려고 나가다가 손등에 맞는 경우가 나온다. 하필 홍성흔도 이 경우였기에 안타까운 상황. 문제는 기아와 롯데는 4강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중이었고, 홍성흔은 그런 롯데타선의 중심축이었던 선수였다. 게다가 홍성흔은 타점 신기록 경신이 상당히 유력한 상태였기도 했다.

때문에 윤석민은 롯데팬들에게 많은 욕을 먹었다.빈볼 논쟁이 나오기도 했지만 롯데, 기아 모두 빈볼은 아니라는 입장이고, 특히 피해자인 홍성흔은 사과 전화를 한 윤석민에게 경기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신경쓰지 말고 잘해라 라고 말해주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이기도 했다.#기사

8월 19일 경기에서 마무리로 등판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8월 24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구원등판하였는데 커브볼이 손에서 빠지면서 조성환의 헬맷에 맞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분노한 사직 구장 롯데 팬들의 오물 및 물병 투척으로 경기가 10여분 정도 지연되었다가 재개되었다.

이 때 롯데팬들의 분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는데 이는 단순히 롯데팬이 극성이기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다. 해당 경기 시점에서 롯데와 KIA의 4강 경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 + 2010시즌 윤석민이 던진 몸에 맞는 볼이 총 3개인데 3개 모두 롯데 중심 타자들(강민호, 홍성흔, 조성환)에게 맞았다는 것[15] + 8회말에 등판해서 9회말 2아웃까지 절묘한 제구로 5타자 연속으로 삼진 및 범타로 처리를 하던 중이었다는 것이 합쳐지는 바람에 엄청난 결과가 돼버렸다.

조범현 감독은 3만 관중이 "내려가" 콜을 하는데도 굴하지 않고 계속 윤석민을 던지게 했고, 윤석민은 이대호를 고의사구[16]로 거른 후 카림 가르시아를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고 내려갔다.

경기 결과는 KIA가 7:5로 승리. 이후 경찰들의 경호를 받으며 구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후에도 큰 파장이 있었다.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참조.

결국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기사 한편 메이저리그의 한 멘탈 코치가 윤석민의 소식을 듣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기사 그리고 이 때 공황 장애로 내려갔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루머로 밝혀졌다.[17]

그리고 9월 14일 다시 1군에 올라왔다.#기사 하지만 역시 후유증이 남아있었는지 9월 15일 서재응에 이어 8회 등판 ⅔이닝 4실점하며 084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사구 논란과 그 후의 부진 때문에 광저우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든 것을 비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2014년 6월 16일 조성환이 은퇴를 선언하자 이 사건이 다시 재조명 되었다.[18]

2.2.3. 2011 시즌

파일:KIA_YSM_2011_04.jpg

윤석민(투수)/2011년 항목으로.

2.2.4. 2012 시즌

윤석민(투수)/2012년 항목으로.

2.2.5. 2013 시즌

윤석민(투수)/2013년 항목으로.

2.3. 마이너리그 시절

2.3.1. 2014 시즌

2013 시즌 종료 이후 FA를 선언하면서 해외 진출을 꾀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FA 선언 선수들이 전부 계약한 가운데 이듬해 2월이 넘어가도록 계약소식이 들리지 않으면서 국내유턴 설 등 여러 루머들이 돌았다.

마침내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해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6월 중순 기준으로 방어율이 리그에서 밑에서 4위이고 이닝당 피홈런수는 리그 1위이며 6월 17일 기준으로 아홉경기 연속 피홈런을 맞는 등전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마이너리그 시즌이 모두 끝난 시점에서는 딱 크보급 투수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정도. 10경기 연속 피홈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겪었다.

8월 31일 볼티모어의 40인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국내 리턴설이 다시 떠오르는 중. 윤석민 본인은 내년에도 메이저리그 도전의사를 드러냈다.

자세한 내용은 윤석민(투수)/2014년 항목으로.

2.4. KIA 타이거즈 2기

2.4.1. 2015 시즌

파일:윤석민(투수)20150929.jpg

1년 동안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지만 결국 실패하여 친정팀 KIA로 돌아온 해이다.

윤석민(투수)/2015년 항목으로.

2.4.2. 2016 시즌

자세한 내용은 윤석민(투수)/2016년 항목으로.

2.4.3. 2017 시즌

2016년 12월 8일 팀 공식 SNS를 통해 어깨에 웃자란 뼈 제거 수술에 들어가며 복귀에 최소한 6개월은 걸린다는 소식이 나왔다. 관련기사. 수술 후 재활에 반년 정도 걸려 2017년 상반기는 출장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재활 후에도 등판 준비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전반기는 아웃이 확실시되고 후반기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팬들은 어차피 수술할 거였으면 일찌감치 수술을 받고 다음시즌을 확실히 준비해서 나올 것이지, 12월이 되서야 수술을 받는 이 상황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쯤되면 토종투수들 중 사상 최악의 먹튀가 될지도 모르는 우려스러운 상황.

여담으로 시즌 전인 2016년 12월에 득남했다. #

인터넷에서 팬들끼리 아직 복귀를 하지 않는 윤석민의 보직을 두고 선발투수불펜 자리로 예송논쟁을 벌이고 있다 카더라.

6월 18일 현재에도 이전의 6월 복귀 기사에 대한 복귀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올해 안에 복귀한다해도 현실적으로 2년째 경기경험이 없는 선수가 복귀 직후 제대로 된 활약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올해 복귀는 힘들다고 보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복귀해도 불펜으로 쓸 수 있는지조차 의문.

8월에 돌아온다고 하지만 또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결국 9월달에야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났다. 몸 상태가 완벽해지면 복귀시킨다고 하는 걸로 봐서 아예 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될지도.

7월 31일, KIA가 2017년 2차 1라운더 유망주인 좌완투수 이승호를 내주고 넥센의 마무리 투수 김세현을 받아오자 팬들은 더더욱 윤석민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윤석민이 제때 돌아와 투수진에서 활약해줬어도 꼭 성사할 필요가 없었던 트레이드였기 때문이다.

결국 2017년 8월 30일, 2017년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같은 날, 팀 또한 최규순 스캔들이 터지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이걸로 KBO 역사상 유례 없는 최악의 먹튀 확정.

결국 2017시즌 기아 타이거즈의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하지 못했다.

11월 14일, 개그맨 변기수와의 사진으로 근황을 공개했다.

12월 9일, 아내의 출산으로 인해 1년여 간 미뤘던 결혼식을 올렸다.

12월 22일, 골프에 빠졌다는 근황이 공개되었다.

2.4.4. 2018 시즌

해당 문서로.

2.4.5. 2019 시즌

연봉이 대폭 삭감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무려 10억 5천만원이 삭감된 2억에 계약하였다. 하지만 팬들은 이것도 너무 많다는 반응이다.

2월 7일 인터뷰에 따르면 2017 시즌에도 언급된 오른쪽 어깨 웃자람뼈 제거 수술 이후 아직도 통증을 호소한다고 한다. 햇수로 수술을 받은지 2년 2개월이 지났는데도 통증을 호소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크게 절망하며 사이버&먹튀화 예약이라며 씁쓸해 하는 중. #

결국 김세현처럼 국내 귀국 조치가 떨어졌고, 갸갤과 엠팍은 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그 2억 마저도 먹튀 대체적인 기류는 부활은커녕 더이상 선수생활이 어려울거 같단 의견이 대다수. 김세현도 4월부터 자주 나오는데 당신은 대체

4월 퓨처스 리그에서 등판하여 24일 1이닝 무실점, 27일 2이닝 2k 무실점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최고 구속 139km를 찍었다고 한다. 구속이 더 올라오면 복귀가 가능하다는 전망도 있으나 복귀해서 활약할지는 미지수다. 윤석민이 하체 근력이 뛰어나 어깨부상을 커버할수 있는 투구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또다시 몇경기 뛰고 부상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높다. 물론 마쓰자카처럼 복귀하여 한 시즌을 쏠쏠하게 활약해주면 좋겠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냥 없는 투수라고 생각하는 게 맘 편하다. 박흥식 대행 역시 김기훈과 함께 당장은 쓸 생각이 없는 듯.

7월 13일. 꽃님의 은퇴식에서 오랜만에 근황이 포착되었다. 다른 선수들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라운드로 나와 있는데 차마 그러진 못했는지 라커룸에 있었다고 한다.

결국 4월 퓨처스 등판을 끝으로 재활만 하다 시즌을 마감했다. 그렇게 재활만 했는데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 모양. # 팬들도 이젠 완전히 포기하는 모양새. 이젠 남은 선수생활 동안 1군에 올라와서 공 한번이라도 던지는게 기적으로 받아들여질 지경.

2.5. 국가대표 경력

2.5.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2.5.2. 2008 베이징 올림픽

윤석민을 임태훈을 대신하여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당시 대표팀 감독 김경문이 윤석민 뽑는 것을 반대하다가, 평가전에서 참패하고 기술 위원들의 설득으로 임태훈 대신 넣었다고. 허구연의 방송사고로 드러났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윤석민은 대표팀 명단 발표가 나고 페이스가 올라왔고, 임태훈은 하락했다. 대회 직전만 보면 윤석민이 들어가는 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올림픽 대표팀의 불펜진은 한기주, 오승환, 권혁(L), 정대현(U)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부해 보였으나 한기주가 심각하게 부진했고 오승환도 컨디션 이상으로 이탈해 버려서 졸지에 대표팀 유일의 우완 불펜으로 등극, 윤노예라 불리며 마운드에 자주 올랐다. 사실 올림픽 때의 투구내용 자체는 훌륭한 편이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분식회계가 많았다. 이대호가 윤석민을 살렸다고 했을 정도.

윤석민은 조별리그 1차전 미국과의 경기, 6:5로 리드중인 9회초에 대회 첫 등판을 했다. 당시 한기주 아웃카운트 단 한개도 잡지 못한채 홈런-안타-안타를 허용해 무사 2,3루 위기를 만든 상황에서 윤석민은 2아웃까지 잘 잡아냈지만 결국 적시타를 맞아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팀이 9회말 3점을 내서 역전하는 바람에 윤석민은 대회 첫승을 기록하게 됐다.

이후 윤석민은 조별리그 4차전 일본과의 경기에 6회 1사후 구원등판했다. 윤석민은 올라오자마자 투런 홈런을 허용했지만 이후 타자들을 안정적으로 막아내며 2.2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이번에도 팀이 9회초 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투수로 기록되었다.

윤석민은 조별리그 5차전 대만과의 경기 9:8로 리드중인 8회 다시 한번 구원등판했다. 이날 대한민국의 마운드를 상대로 맹폭을 날리던 대만타선을 1.2이닝 0실점으로 잠재우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덤으로 이번 대회 첫번째 세이브까지 기록했다.

바로 하루 뒤인 조별리그 6차전 쿠바전 역시 구원등판했다. 원래 윤석민은 이 경기 선발투수로 내정되었으나 대만전이 예상치 못한 접전으로 흐르게 되어 등판했던 것이다. 이날 윤석민은 4점차 리드 상황에 등판하여 1.1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오승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윤석민의 등판은 결선 토너먼트에 가서도 이어졌다. 윤석민은 4강 일본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1이닝 0실점 깔끔한 피칭을 보여줬다. 비록 팀이 4점차로 리드중인 상황이라 세이브로 기록되진 않았다.

결국 대한민국이 결승전에서 쿠바를 다시 한번 꺽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윤석민 역시 목에 금메달을 걸 수 있었다. 대회 내내 중요한 경기의 승부처마다 등판해 제 몫을 해낸 윤석민이 대한민국의 사상 첫 금메달의 일등공신중 한명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최종성적: 5경기 7.2이닝, 2승 0패 1세이브, 6K, ERA 2.35

2.5.3. 2009 WBC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떠오른 윤석민은 당연히 이번 엔트리에도 포함됐다. 불펜 투수로서 합류했던 지난 대표팀때와 달리 이번 대표팀에서는 선발투수로서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윤석민은 1라운드 중국전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몇 수 아래의 중국타선을 상대로 견고한 피칭으로 6이닝 0실점 완벽투를 펼첬다. 대한민국이 7회 14:0 콜드게임 승을 거둠에 따라 이번 대회 첫 승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이후 멕시코전, 일본전에서 계투조로 활약하며 방어율 0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다.
베네수엘라와 펼친 4강전에서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베네수엘라 타선을 6⅓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틀어막아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미겔 카브레라를 본인의 장기인 슬라이더로 삼진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최종 성적: 16이닝, 13K, 2승 0패, ERA 1.23, WHIP 0.88

2.5.4.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자신의 커리어 2번째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지난 4년전의 도하 참사 맴버로서 겪은 굴욕을 만회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11월 13일 조별리그 대만전 7회에 선발 류현진을 구원등판하러 나왔는데... 알고보니 당일 출전선수 명단[19]에서 빠진 상태였다. 때문에 주심이 윤석민을 퇴장시키는 바람에 1구도 못 던지고 쫓겨나고 대신 봉중근이 급히 올라왔다. 프런트의 초대형 사고. 이 과정을 심판이나 위원회가 민감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재경기 내지 몰수패라도 나올 상황이었다는 점[20], 대만측에서도 윤석민을 퇴장시킨 후에도 이런저런 항의를 하며 제스쳐를 취했다는 점, 비록 크게 리드해나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분위기가 매우 미묘해지는 바람에 등판투수의 기복에 문제가 있을수 있었다는 점[21] 등 큰 문제가 될 뻔했다.

이일로 기아갤과 야갤에선 윤종범, 윤유령, 윤투명, 윤실종, 윤미아, 윤난입, 윤톨이, 윤누락, 윤나가, 윤간인, 윤난입, 윤리건, 윤명인간, 윤유령투수 등 김별명 못지않은 온갖 별명을 얻었다.

그래도 18일 준결승 중국전에는 제대로 나와서 150km/h 가 넘는 공을 뿌리며 호투했다.

이후 19일 대만과의 결승전에서는 선발 류현진 다음으로 마운드에 올라가 5이닝 7k 무실점, 9회까지 모두 던지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류현진이 4이닝 3실점으로 흔들렸지만 휘둘리지 않고 호투를 해서 경기 끝까지 안심하고 지켜본 국민들에게 박수를 많이 받았다. 야갤러들 마저 공황甲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특히 7회의 3타자 연속 삼진은 이 경기의 백미.

2.5.5. 2013 WBC

윤석민은 2013 WBC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4년전에 이어 커리어 2번째 WBC 출전이다. 이 대회에서 류현진, 김광현이 각각 MLB진출과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를 고사했기 때문에 팀의 에이스로서 윤석민의 어깨가 어느때보다 무거웠던 대회였다.

세간의 예상대로 팀의 에이스 윤석민은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1차전에 선발등판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타선은 한국언론에 과소평가받았지만 내실있는 강타선이었다. JPB 2년 연속 홈런왕 블라디미르 발렌틴, MLB 상위 유망주였던 안드렐톤 시몬스, 잰더 보가츠 등 해외에서 이름있는 선수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이 타선을 상대로 윤석민은 4.1이닝 2K 2실점(4피안타, 1피볼넷)을 기록하며 제 역할을 어느정도 해줬다. 하지만 팀 타선이 네덜란드 투수진을 상대로 단 한점도 뽑지 못하면서 패전투수로 남게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호주, 대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2승 1패를 기록했지만 이 때의 5점차 대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상 첫 WBC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맛봐야만 했다.

최종성적: 1경기 4.1이닝, 0승 1패, 4K, ERA 4.15

3. 연도별 성적

통산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KIA 53 84 3 4 7 0 0.429 4.29 92 8 38 49 47 40 1.48
2006 63
(5위)
94⅔ 5 6 19
(5위)
9 0.455 2.28 81 5 31 75 26 24 1.14
2007 28 162 7 18
(1위)
0 0 0.280 3.78 161 10 74 104 76 68 1.36
2008 24 154⅔ 14
(2위)
5 0 1 0.737
(5위)
2.33
(1위)
121 10 46 119
(5위)
45 40 1.05
(1위)
2009 27 119⅔ 9 4 7 0 0.692 3.46 110 9 52 117 52 46 1.29
2010 23 101 6 3 3 0 0.667 3.83 95 5 39 94 48 43 1.30
2011 27 172⅓
(5위)
17
(1위)
5 1 0 0.773
(1위)
2.45
(1위)
137 10 50 178
(1위)
53 47 1.05
(1위)
2012 28 153 9 8 0 0 0.529 3.12 120 9 41 137
(4위)
60 53 1.00
(1위)
2013 30 87⅔ 3 6 7 2 0.333 4.00 91 9 29 76 41 39 1.3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BAL 1군 기록 없음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NOR 23 95⅔ 4 8 0 0 0.333 5.74 125 15 31 67 69 61 1.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KIA 51 70 2 6 30
(3위)
0 0.250 2.96 69 4 26 68 23 23 1.33
2016 16 31 2 2 1 6 0.500 3.19 36 1 13 26 14 11 1.42
2017 1군 기록 없음
2018 28 40 0 8 11 0 0.000 6.75 55 9 10 29 32 30 1.63
2019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2시즌)
398 1270 77 75 86 18 0.507 3.29 1168 89 449 1072 517 464 1.21
MiLB(AAA) 통산
(1시즌)
23 95⅔ 4 8 0 0 0.333 5.74 125 15 31 67 69 61 1.58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5년 0완투 0완봉
2006년 0완투 0완봉
2007년 2완투
(3위)
1완봉
(2위)
2008년 1완투 0완봉
2010년 1완투 0완봉
2011년 3완투
(1위)
3완봉
(1위)
2012년 3완투
(2위)
2완봉
(1위)
2013년 1완투 0완봉
2016년 1완투
(3위)
0완봉
통산 12완투 6완봉

4. 플레이 스타일

여러 가지 구종을 잘 던지는 유형의 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22], 이런 이미지가 생긴 건 일단 본인이 구종을 배우는 데 열심이고 실전에서 한 번씩 사용해보긴 하기 때문. 일례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훈련 중 임모씨에게 포크볼을 전수받기도 했으며, 2011 시즌에는 팀에 영입된 이범호를 통해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 그립을 전해받아서, 자신만의 포크볼 그립을 만들어 활용해 보기도 했다. 또 팜볼도 아주 가끔씩 던지곤 한다. 그 일례로 2009 한국시리즈 당시 6차전에서 이호준에게 팜볼[23]을 던지고 결승 홈런을 허용했는데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또 쳐봐라'라는 심정으로 던졌는데 다 치더라"라고 인터뷰를 해서 한동안 까인 적이 있었다. 각설하고, 다양한 변화구 때문에 야구를 처음 접하는 라이트 팬들 중엔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을 앞세운 피네스 피처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패스트볼-슬라이더 투피치 위주의 파워 피처다.

파일:1307367787.gif
폼이 좋을 때 주력 구종은 시속 155km/h 까지 나오는 포심 패스트볼과 복수의 슬라이더[24]이며 간간이 서클 체인지업을 곁들이는 정도다. 커브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사용 빈도가 낮다. 사실 윤석민의 패스트볼 제구나 구위는 A급은 아니나[25] 워낙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다른 구종을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양준혁 등 일부 전문가들은 윤석민의 서클 체인지업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으며, 실제 2009 WBC 베네수엘라전에서는 오히려 체인지업이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민은 슬라이더'라는 고정관념을 의식한 탓인지 더이상 체인지업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MLB에서의 실패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이도 상당수 있다. 평균적인 구속과 그에 조금 모자라는 제구와 구위의 패스트볼로는 아무리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홈런을 허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 2014시즌 류현진이 자신의 체인지업이 공략당하자 슬라이더와 커브 조합으로 MLB의 타자들을 이겨낸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노포크 시절의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국내에서의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낙폭이 적은 커터성 슬라이더가 되어버렸고 이러한 구종의 무브먼트 감소는 피홈런 증가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물론 변화구 위주로 맞춰잡는 피칭도 가능하긴 하지만, 컨디션이나 구위가 좋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며 피칭 내용도 만족스럽게 나오는 일은 많지 않다. 실제로 던지는 구종이 늘어날 경우 윤석민은 오히려 부진했다. 일례로 잘 나갔던 2008 시즌에는 전체적으로 패스트 볼의 비중을 높게 가져갔으나 부진했던 2009, 2010 시즌에는 변화구 구사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는 본인의 피지컬 변화에 따른 구종 선택의 변경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08 시즌의 윤석민의 투구폼은 어깨상태가 절정인 상체 위주의 부드러운 투구폼에 140km 중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패스트볼 위주의 피칭이었던 반면에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로 하체를 이용한 피칭을 시작하며 강력한 직구와 함께 안정적인 변화구 구사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2011 시즌 초에는 타자들이 아예 패스트 볼은 버리고[26] 변화구에 타격 타이밍을 맞춰서 공략해 들어오곤 했다. 이 시기 구사비율이 높아진 서클 체인지업의 경우 장기인 고속 슬라이더과 패스트 볼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오다 속도를 유지한 채로 움직임에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직구처럼 보이게 오다가 '속도가 느려지면서'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격 리듬을 변화구 타이밍에 맞추고 있어야 공략이 가능한 공이고, 따라서 패스트 볼 구위가 밑밥으로 깔려있어야 타자가 소위 직구-체인지업의 타이밍 이지선다에 걸려서 속아넘어가게 되는데, 지나치게 변화구 구사율이 높아지고 패스트 볼 비중이 줄어든 탓에 애초부터 타자들이 변화구에 배팅 타이밍을 맞춘 채 체인지업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족족 얻어맞게 된 것이다. 감독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이 점을 지적했고 본인도 이를 인식했는지 패스트 볼과 슬라이더 위주로 피칭 내용을 바꿨고 커리어 하이를 맞았다.

신인 시절에 마무리 투수로 뛴 적도 있기에[27] 팀 사정에 따라서는 불펜 투수로도 기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구성이 좋지 않아 철저하게 관리받아야 하는 선수를 혹사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기아팬들은 양날의 검으로 생각하고 있다.

5. 평가

2012년까지의 평가는 KBO에서 손꼽히는 국대급 우완투수, 2015년 메이저리그 도전 실패 후 받는 평가는 딱 KBO급 투수, 복귀후의 평가는 완벽한 마쓰자카의 한국 버전[28] . 2014년 마이너리그에서 초반에 대량실점 빈도가 많았고, 중후반 접어들면서 그나마 좀 줄었지만, 10경기 연속 피홈런을 맞는 등 전형적인 홈런공장장으로 전락했다. 슬라이더의 구위 역시 직구의 구속이 KBO에서처럼 150km/h 전후로 나올 때 발휘되는 것인데 130km 후반의 직구와 곁들여지는 슬라이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 이외의 경기 내용도 딱히 훌륭하다고는 말 못한다. 팀에서 정했는지 본인 스스로가 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선발로는 경쟁이 없어 불펜으로라도 9월 확장로스터 때 올라오려고 한다는 안습한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그마저도 한국 시각으로 2014년 8월 31일에 40인 로스터에서 지명할당되면서 무산됐고, 2015년에는 벅 쇼월터 감독이 아예 윤석민은 전력 구상에 없다는 발언을 직접적으로 하면서 볼티모어도 아예 윤석민을 부르지 않자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류현진과 비견되곤 했지만[29][30] 사실 그에 비견할 만한 성적을 낸 적은 드물다. 잦은 부상[31]과 극심한 기복, 떨어지는 내구성으로 명성에 비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발로 보직 전환을 하고도 간간이 클로저로 뛴 것을 감안하더라도 2008 시즌과 2011 시즌을 제외하면 10승 이상을 올린 적이 없고,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도 4시즌밖에 되지 않는다. 2009년과 2010년 연달아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200이닝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으며, 2011년에 기록한 통산 최다 이닝도 172이닝으로 류현진의 평균치보다 적다.[32] 같은 팀 양현종과 비교하더라도 4년 연속 170+이닝, 평균 193이닝을 3년 연속 찍어준 양현종에 비해 윤석민의 내구성은 극도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2011시즌 윤석민의 등판 간격을 보면, 잘 나가던 해에도 4일 휴식 후 등판이 3번 밖에 없고 등판 간격을 길게 조절하며 관리해줘야 했을 정도로 내구성이 취약하다. 잔부상의 원인으로는 서정환 감독 시절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런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지목된다. 하체 힘이 약해지면서 각종 근육계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얘기.[33]

허약한 팀타선 및 윤석민 선발 시 유난히 점수가 나지 않는 불운과, 심심하면 클로저로 투입되는 등 팀 사정 등의 요인이 분명 작용한다. RS가 6.22로 리그 1위였던 2011 시즌을 제외한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윤석민의 통산 RS는 4.14로 봉크라이 봉중근의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RS인 4.40보다 낮다.

변화구를 많이 던져서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구종에서 언급했듯이 윤석민의 정석 투구 패턴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구위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피칭이다.[34] 오히려 변화구 많이 던지면 게임이 더 안 풀리고 보통 잘 풀릴 땐 투피치에 좌타자용 서클 체인지업 정도 추가하는 게 일반적이다.[35] 좋은 구위를 가진 특급 투피치 선발이 한국에서는 충분히 먹힌다는 건 KBO가 문 연 이래 꾸준히 증명되어온 사실이고, 윤석민은 류현진이 워낙 굇수라 그렇지 당연히 제구가 상당히 좋은 투수이다.
특히 좌우 코너웍을 볼카운트에 상관없이 공략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능하다. 특히 투구폼은 가장 이상적이고 유연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인터벌 역시 상당히 유동적이기 때문에 도루도 쉽게 허용하지 않으며 투구 후 수비로 전환하는 폼 역시 좋다. 무엇보다 탁월한 주자 견제 능력과 더불어 선수 본인이 상당히 영민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참 선배였던 김상훈, 차일목이 포수로 앉아 있어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본인이 구종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 2016시즌 후반기에는 윤석민의 야구 IQ를 확인할 수 있는데, 평균 구속 133km 직구로도 코너웍과 구질 선택, 주자 견제와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 등으로 꾸역꾸역 막아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상하게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2010 시즌에 발생했던 몸에 맞는 공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롯데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롯데 타선이 강력했던 2008~2010 시즌동안 61⅔이닝 7승 1패 4세 ERA 2.34를 기록하였고, 홍대갈 트리오가 극강의 위용을 자랑했던 2010 시즌에도 24⅓이닝 3승 1세 ERA 2.59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사구 사건 이후 롯데 타선이 크게 약화된 2012, 2013 시즌까지도 맥을 못췄다. 윤석민상 운운될 정도로 커리어 내내 시련을 겪어오면서 성장한 그이기에 멘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으나 對롯데전은 두고두고 멘탈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래도 2015년 대롯데 성적은 5경기 8.2이닝 무실점 7피안타 11삼진으로 무척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 극복한 모습을 보였다.

분명히 윤석민은 국내 야구에서 토종 우완들 중에서는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었으며 같은 시기 뛰거나 뛰었던 외국인 우완들 전체와 비교했을 때 역시 탑클래스 선발투수였다.[36] 그렇지만 친기아적인 성향의 일부 악질적 기자들과 일부 과도한 팬들의 지나친 띄워주기로 인해 과대평가가 더해져 그에 대한 반발로 깎아내리고 평가절하도 심하게 당했다.[37] 즉, 추켜세우기가 너무나도 지나쳐 그가 KBO 기준으로 훌륭한 투수임이 분명한데도 과대평가를 받은 선수라는 비난이 함께 나오는 것. 현재는 역사에 남을 먹튀짓을 자행하는 바람에 빠와 까 모두 먹튀로 대동단결했다.

윤석민의 데뷔 이후 KIA의 야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대목으로는 불펜 전환이 있는데, 실제로 모든 기아의 감독들은 불펜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거나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윤석민 불펜카드를 만지작거리고 매년 실행되었다. 심지어 리그 MVP를 수상했던 2011시즌에도 불펜으로 등판했었으니 더 이상의 서술은 필요치 않을듯 하다. 물론 KIA라는 팀 자체가 09 시즌 우승 당시 유동훈을 제외하고는 믿을 만한 불펜, 혹은 마무리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첫번째 원인으로 꼽자면 선수 본인이 워낙 다재다능한 탓이다. 어떠한 지도자이건 팀의 성적에 해가 되는 의도로 선수를 기용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윤석민이라는 투수는 일단 불펜으로 등판했을 때 성적이 나쁘지 않고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러닝을 적게 하는 투수 치고는 체력도 있는 편이어서[38] 감독들의 생각에는 관리만 잘 한다면 불펜으로든 선발로서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선수로 인식되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KBO 리그 복귀 후 17시즌까지 종료된 시점에서는 먹튀 확정. 계약 당시엔 윤성환이 80억, 장원준이 84억에 계약한 상황에서 과거 이 둘보다 비교우위였던 윤석민이 90억을 받는 것은 타당한 금액이란 주장이 있었다. 분명 계약 시점에서 1년을 날려먹고 귀국했지만, 그간 쌓은 윤석민의 KBO 커리어는 윤성환, 장원준보다 우월한 측면이 있었다.[39]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3시즌간 윤성환과 장원준은 선발투수, 그것도 큰 부상없이 꾸준한 이닝 이터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윤석민은 대체로 불펜으로 기용되었으며, 불펜인 것을 감안해도 윤성환, 장원준보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아 복귀 후 두번째 시즌인 2016시즌은 부상으로 거의 다 날렸고, 수술로 17시즌도 시즌아웃.[40][41] 결국 17시즌 윤성환의 통산 WAR이 윤석민을 넘어섰다.

윤석민은 구속 하락과 동시에 해외 진출을 했다가 마이너스 시너지를 냈고, 국내 복귀 후 회복을 완전히 하지 못하는 2000년대 정민철의 전철을 밟고 있다. 정민철은 한화가 싸게 잡았다고 재평가된 반면 윤석민은... 물론 윤석민이 수술 후 구속을 다시 회복할 가능성도 있고, 제구력과 변화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투수기에 정민철처럼 기교파로 전향해 부활할 가능성도 있긴 있다. 하지만 80억대의 돈을 받고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 투수들과 비교할 때 90억 계약을 맺은 투수에게 기대하는 활약을 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불펜에서 90억을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장원준과 똑같이 84억을 받는 마무리 정우람, 60억 받는 손승락 모두 수준급 활약을 하는데도 먹튀 소리도 종종 들으며 오버페이라는 의견이 많다.[42] 굳이 돈값을 시키려면 중무리로 굴리면 되겠지만 워낙 유리몸이라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일단 2018년도에도 언급되었지만 윤석민이 먹튀라는건 불변의 사실이다. 다만 기아 입장에서 복귀를 기대할 만한 선수인 건 분명하다. 윤석민이 예전과 같은 폼은 절대 아니지만 복귀해서 불펜으로 찍은 WAR 3.87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0년 이후로 불펜으로 WAR 3.8 이상 찍은 선수는 10 정재훈, 11 오승환,정우람, 12 박희수, 15 윤석민, 17 손승락이 끝이다. 기아 불펜진은 참고로 09년도 이후로 단 한 번도 WAR 3을 넘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WAR 2도 못 넘어봤다... 여전히 불펜이 매우 불안하고 5선발이 확정되지 않은 기아가 윤석민의 복귀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비슷한 부상을 당한 선수들이 윤석민에 비해 복귀가 빠른 점, 다른 부위지만 토미존 서저리까지 받은 류현진은 재활기간 2년을 끝내고 3년차 리그 초반에 선발로 복귀함과 동시에 다저스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었다.[43] 그런 와중에도 3년차인 윤석민은 5월에 2군 피칭까지 들어갔지만 1군콜업이 언제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회복속도가 느린거면 어느정도 실드가 가능하지만, 재활중에 골프치러 다니거나 그 유명한 드르렁 사건 등등, 이정도면 1군복귀 의지가 부족한게 아니냔 말까지 나올정도면...게다가 타팀에 비해 올시즌 불펜이 안정적이지 못한데다 이대진 투코가 키워놓은 유망주도 없고 작년의 수호신인 김세현이 폭망하면서 윤석민에 대한 기대가 월등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까이는 비율이 높은 이유다.

당장 윤석민과 동시기에 같은 수술을 받은 안영명은 복귀해서 140초반대의 투심성 직구로 선발진에서 버텨주다 18시즌 불펜에서 다시 140 후반대의 공을 뻥뻥 뿌리며 한화 이글스 불펜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며 18시즌 초반 한화의 상승세를 이끌었다.[44] 또 재활에 1년이 걸리는 토미존 수술에서 복귀한 김광현도 팀에서 철저히 이닝과 투구수를 관리하고 있지만 구속과 구위는 이미 수술 이전, 혹은 그 이상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KIA 팬들은 재활은 안하고 골프나 치고 다닌 게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중. 먹튀도 먹튀지만 1군 선발을 돌 수 있는 구위, 체력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윤석민을 위해서 멀쩡한 투수 보직마저 파괴하는 김기태 때문에 속이 터질 노릇이다.

6. 양현종과의 반비례?

같은 소속팀이자 현 기아의 에이스인 양현종과의 엇갈리는 행보가 눈에 띈다. 2년 선후배로 거의 같은 동년배에 둘 모두 전성기 때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에이스 투수였지만[45] 공교롭게도 둘이 동시에 좋은 성적을 찍은 해가 없다시피하다.

07~08년까지 양현종은 포텐을 터트리지 못한 유망주였지만, 윤석민은 07년은 불운의 에이스, 08년은 평균 자책점 1위를 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09~10년은 양현종이 드디어 터지면서 좋은 성적을 찍었지만, 윤석민은 부진과 불펜기용, 부상등으로 인해 2년 모두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11~12년은 말이 필요없는 양붕괴 시즌. 2년 합쳐 WAR가 0.46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반면 윤석민은 11시즌 투수 4관왕으로 MVP. 12시즌은 전년도보단 못하지만 준수한 1선발 성적을 찍어주며 주가를 올렸다. 덧붙여 이때 양현종은 부진한 자신과 달리 MVP를 찍으며 잘나가는 윤석민을 보고 이미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13시즌은 양현종이 드디어 부활을 시작했다. 단. 그게 전반기라는게 함정. 후반기는 부상으로 거의 못나왔다. 그래도 비율 성적은 좋은 편이어서 충분히 희망을 보여준 시즌. 하지만 윤석민은 부진과 어깨부상으로 불펜으로 보직 변경하였으나 비율성적 또한 좋지 않아 FA직전해로썬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14시즌은 양현종이 완벽히 부활한 시즌. 윤석민은 노폭전드. 미국에서 완벽하게 말아먹고 이듬해 한국으로 복귀했다.

15시즌은 양현종이 무려 WAR 8을 넘게 찍으며 압도적인 리그 투수 1위, 윤석민도 마무리 투수로서 30세이브에 리그 구원투수 WAR 1위를 찍으며 둘 다 성공한 시즌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윤석민이 본업인 선발투수가 아닌었던게 옥의 티. 그나마 이게 어디야

16~17시즌은 양현종이 각각 200이닝, 20승을 찍어주며 이제는 KIA의 토종 에이스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했지만, 윤석민은 16시즌은 잠깐 보이더니 17시즌은 통째로 사라졌다.

18시즌은 역시 꾸준한 양현종이 sWAR 리그 5위, 국내 선수중에선 2위를 찍으며 여전히 리그 탑급 에이스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윤석민은 0승8패 11세이브, 40이닝, 평균자책점 6.75 라는 재앙급 성적을 내면서 역시 무너졌다.

두 선수가 선발로 동시에 활약하는 것은 기아팬들의 소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윤석민까지 완벽 부활을 한다면, 기아는 리그 탑급의 국산 원투펀치를 보유 할 수 있다. 다만 이제 윤석민의 부진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면서 거의 포기 상태.

7. 여담

  • 원래 등번호는 20번이었으나 2010년에는 28번을 달았다. 그러나 위의 설명대로 안 좋게 작용하자 28번을 반납하고 등번호를 다시 바꾼다. 28번은 윤석민에게 팀 한정 흑역사급 등번호가 되었다고.[46] 정작 국제대회에서는 좋은 의미로 남았다. 28번을 단 이유는 이승호(작은승호)와 진갑용과 등번호가 겹쳤기 때문. 1년 간 28번을 단 이후에는 21번을 달았고, 해외 진출 후 복귀 때에는 다시 20번을 달았다가 2018년부터는 본인과 아내, 아들의 생일 일자와 동일한 24번으로 변경했다.
  • 마구마구를 아주 잘한다고 한다. 2009년 올스타전에서 김현수와 마구마구 대결을 해서 이겼다. 임창용을 가지고 있다고. 기사에 의하면 마구마구에서 닉네임을 실명으로 쓴다고 한다. 자기 소개를 하고 게임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누가 믿겠냐 심지어 2009년 8월 18일에는 자기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s.m이라는 마구마구 클럽을 만들어서 가입신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초딩은 제외하고.[47] 마구마구에서는 자기 자신을 선발로 사용하는 타이거즈 올스타 덱을 사용하다가 중후반 쯤에 3엘리트를 비롯 괴악한 카드를 교체하는 잡덱으로 변모한다고 한다. 4월에는 이병규 엘리트를 획득(3이닝 10실점한 그날)하여 엘리트카드를 4장째 보유중. 휴식일에 마구마구에 출몰하여 이벤트성으로 유저들과 플레이한다고 한다. 결국 이 마구마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점으로 인해서 올스타전 시기에 김현수와 함께 켠김에 왕까지출연했다.
  • 어느 날도 마구마구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니가 윤석민이면 난 이종범이다, 선배한테 인사해야지? 라는 주옥같은(...)드립을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 꼽은 바 있다.
  • 가끔가다 까일 때는 윤섹민이라고도 불린다. 싸이에 여자친구가 부적절한 글을 올린 탓에...
    파일:gsao9OL.jpg
    덕분에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PC방에서 싸이월드 로그아웃 하지 않은 상태로 나가버렸다가 생긴 해프닝인 듯. ...앞으로 PC방 갈 땐 조심하자. 그리고 현재 별명은 윤석개[48]로 확정됐다.[49][50] 야구 갤러리 한정으로 타팀 팬들에게는 윤복서,[51] 윤공황[52] 등으로 불린다.
  •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現 kt wiz 소속인 윤석민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던 사이이다. 타자 윤석민은 85년생으로 투수 윤석민의 동네형이자 선배. 심지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서로가 이름을 몰랐다는 것. 투수 윤석민은 어릴 적 타자 윤석민에 대해 "그 형은 어릴 때부터 덩치가 워낙 크고 힘도 세서 동네 골목대장이었고, 놀다가 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많이 때리기도 해서 같이 놀면서도 우리들끼리는 무서워하던 형이었다. 특히 지금은 내가 키가 좀 더 크지만 아직도 그 형만 보면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무서울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예로 동네에서 같이 야구할 때 내 방망이를 빼앗아가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슬슬 피한 적도 많다고 한다. 투수 윤석민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나서도 어릴 적 이야기를 주변 선수들에게도 많이 해서 소문이 났는데, 타자 윤석민은 "내가 애들 괴롭히고 그랬다는 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둘 사이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있었지만 투수 윤석민과 타자 윤석민이 서로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같은 해에 리틀야구단에 들어가면서 이름이 호명되어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때 '윤석민'이라는 이름이 두 번 불려서 당황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투수 윤석민은 그 동명이인이 본인이 무서워하던 동네 골목대장 형이었다는 게 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타자 윤석민은 지금의 투수 윤석민을 "어릴 때부터 체격도 작고 말라서 항상 약해보였다."고 기억하며 지금의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이 사항은 구리 리틀야구단 시절에는 타자 윤석민이 투수, 투수 윤석민이 배터리를 맞추던 포수였다고 한다. 사실 중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도 둘의 인연은 있었다. 많이 야탑고등학교 졸업으로 나와있어 둘의 인연이 중학교 때까지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투수 윤석민은 인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투수 윤석민은 야탑고등학교로 전학가게 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이후 계속 다른 팀에서 활동하여 운명적인 인연(이름+동네+학교+야구)인 것 치고는 절친 급은 아닌 듯 하지만, 모 스포츠 신문 동명이인 특집에서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서로 더 잘 되기를 응원한다고 하는 등 친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사이가 나쁜 건 전혀 아니다.
  • 2011년도의 화려한 성적을 재증명이라도 하듯, 각종 야구게임에서 매우 놀라운 성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마구마구에선 상급 레어에다가 후에 엘리트 카드가 추가됐으며,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1년에 투타 한장씩만 만든다는 EX 카드로 등장했다.
  • 2011 시즌 중 트위터를 개설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비교적 트위터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글 올리는 속도가 무섭다. 비시즌 기간에 글이 많이 올라온다.
  • 201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기록한 풀백 윤석영이 윤석민의 6촌지간이다.# 어렸을 때에는 숨바꼭질도 하고 축구도 했던 사이였다고. 또한 SK 와이번스의 윤석주도 투수 윤석민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윤석영와 윤석주도 육촌 사이이다.
  • 파일:attachment/1001132_407651466007481_892291847_n.png
본격 원근법 무시.JPG[53] 비교대상자는 김원섭.
  • 워낙 어린이 이미지도 강하고 강민호, 양준혁 등이 워낙 머리가 큰 것으로 유명해서 묻히는 감도 있지만, 의외로 대두의 소유자. 실제로 덕아웃에 있는 사진이나 다른 선수들과 어울려서 찍은 사진을 보면 유난히 머리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2014년 미국 진출로 인해 마구마구2014에서는 '박규환' 이라는 가명으로 바뀔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복귀로 최근 업데이트 이후 다시 본명으로 돌아왔다.
  • 2016년 신인연기자 김시온과 약혼식을 치뤘다는 뉴스가 떴다. 시즌후 결혼할 예정이라고. 여담으로 김시온의 모친은 배우 김예령씨다. 12월 24일 아버지가 되었다.
  • 2017년 충남 소재 모 대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던 정 모씨가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10여년 전 정 씨가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였던 시절 현 KIA 선수인 제자에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던 사실이 밝혀졌다. KIA 선수단에서 야탑고 출신은 윤석민과 박정수 둘 뿐이고, 정 씨가 코치로 있었던 시기를 추론하면 윤석민이 피해자였던 것으로 나온다.
  •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SK의 3라운드 지명을 받은 윤석주 선수의 사촌형이다. 참고로 둘은 같은 야탑고를 졸업했다.
  • 전 대통령 이명박을 닮았다(...). 그래서 별명이 윤명박...

8. 관련 문서




[1] 홍건희는 2015년에만 등번호를 두 번 빼앗기는 불운(?)을 겪었는데, 2015 시즌 시작 당시 21번을 달고 싶어했으나, 팀 선배이자 21번의 전 주인의 친구인 곽정철에게 빼앗기면서 20번을 달게 되었고, 윤석민이 돌아온 후 또 다시 번호를 빼앗기게 되면서 48번을 달게 된다.[2] 트리플A 노퍽 타이즈[3] 기아의 언터쳐블 윤석민 기아의 윤석민 윤석민 기아의 언터쳐블 윤석민 윤석민 사랑해요[4] 본명은 김수현, 1989년 4월 17일생 ([age(1989-04-17)]세).[5] 역대 최고 삭감액(10억)이다[6] 지금에서야 그렇게 느껴지지만 사실 저 말을 한 시기때는 팬들에게 감동을 준의미있는 말이었다. 기아가 당시 타격이 바닥을 치는 팀이라 타팀에서였다면 더 많은 승수를 거둘수 있는데도 더 많은 패를 기록하기도 했으니..윤석민 본인이 타이거즈에 가지고 있는 애착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말이자 올드팬들이 왜 최악의 먹튀인 윤석민을 아직까지도 맘으로 안타깝게 여기고 아끼는지를 증명하는 말.[7] 후술하겠지만 28번은 국가대표팀에서 달던 등번호였다. 2010년 쇄신의 의미에서 28번을 달았으나 정작 성적이 좋지 않아서 바로 번호를 바꿨다.[8] 배영수는 어느정도 재기에 성공해 에이스는 아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무난히 합류해 평균자책점은 좀 높지만 10승 이상 책임질 정도는 되었으나 한화 이글스 이적 이후 다시 몰락, 손민한은 부상에 FA먹튀, 횡령 사건으로 나락에 떨어졌다가 NC 다이노스에서 마당쇠 노릇을 하다 은퇴. 신인시절부터 혹사에 시달린 박명환은 LG 이적 후 부상과 부진 등으로 FA먹튀 소리를 들으며 몰락, 2014 시즌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으나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조용히 은퇴했다.[9] 유원상 항목에서도 볼 수 있지만, 팬들의 비아냥섞인 별명에서도 드러났듯 2010 시즌의 유원상의 성적이 순수 국내파 선발중에서 손꼽힐만한 성적이라는 사실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해석은 보는 이에게 맡긴다. 이 시즌 윤석민은 시즌 초 2009 시즌 우승의 주역이였던 유동훈, 손영민, 곽정철 등 불펜요원들이 2경기에 한번 꼴로 블론질을 일삼는 팀 상황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본인의 선발로서의 부진과 함께 부진한 중간계투를 메꾸기 위해 불펜으로 전환되고 갖가지 사건들과 함께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참조.) 결국 장기간 마운드에서 사라졌다.[10] 공교롭게도 두 투수 모두 높은 기대치에 비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시즌이 많았고, 전천후로 불펜 알바를 자주 뛰었다는 공통점이 있다.[11] 별명의 어원은 참조.[12] 인창중 졸업 후 인창고로 진학했으나 1학년 마치고 야탑고로 전학했다. 이 당시 동기로는 같이 인창고에서 전학온 초중학교 동창 오재일이 있고, 2년 선배로는 오재원이 있다.[13] 94⅔이닝을 던졌다. 특히 서정환카드를 긁기 전에는 이상화와 둘이서만 계투진에 있는 수준이었고, 9월 이전까지 66이닝을 던졌다.[14] 일본의 좌완 투수 스기우치 토시야가 이전에 비슷한 짓을 하다가 부상당한 적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후 안티들이 윤석민을 깔 때 윤복서라고 부르기도 했다.[15] 공교롭게도 이 중 홍성흔조성환은 2010년 골든글러브 수상자다. 전원 3할 타자에 홍성흔의 경우 이승엽의 한 시즌 타점 신기록 갱신 가능성까지 있는 상태였다. 조성환은 전 시즌에 채병용에게 공을 맞아 광대뼈 함몰에 전치 8주 판정을 받은 적도 있고.[16] 이 고의사구가 롯데팬들의 분노를 키웠다.[17]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추정되나 기아빠로 유명한 이선호가 윤석민을 옹호하겠답시고 공황 장애라고 기사를 써 버린 것. 이에 대해 윤석민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18] 네이버 측에서 조성환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들을 올리면서 이 사건도 같이 올렸다.[19]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24명 엔트리에, 경기당 22명까지 출전 가능하다.[20] 물론 굳이 법대로 하자! 라면 규정상의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원래 이런건 빌미를 잡혀봤자 좋을거 하나 없거니와 조범현 감독도 몰수패 판정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21] 우천지연등의 예로도 알수 있지만 타자도 리듬이 깨지지만 이 경우 어깨가 식고, 페이스를 잃은 투수쪽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걸 빌미로 역전이라도 당했었다간 큰일이었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22] 그 예로 프로야구매니저의 윤석민 카드를 보면 각종 구종이 덕지덕지 붙어있다.[23] 써클 체인지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24] 높은 아웃 코스에서 주로 사용하여 직구 볼처럼 보이게 하다가 살짝 떨어져서 루킹으로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는데 주로 사용하는 130km 중후반대의 낙폭이 작은 슬라이더와 스트라이크 존에서 뚝 떨어져서 헛스윙을 유도하는 낙폭이 큰 140km/h 대의 고속 슬라이더 두 개를 주로 사용한다.[25] 당시 A급의 기준은 김광현, 류현진, 오승환 등 특급투수였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26] 변화구를 지나치게 많이 던지면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직구 제구에 문제가 생긴다. 변화구 비중이 본격적으로 높았던 2010 시즌 윤석민의 직구 로케이션은 전에 비해 공 두 개 정도 높아졌다.[27] 2006년에 특유의 낙차 큰 슬라이더로 붙은 '광주댐'이라는 별명에서 윤석민이 얼마나 믿음직한 마무리였는지 알 수 있다.[28] 실제로 돌아오고 나서의 행보가 마쓰자카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모습을 보여준다. 메이저에서 작살나고 돌아와선 심적, 신체적 부상으로 퍼진것까지. 심지어 골프에 빠져 팬들에게 욕먹는 것까지도 똑닮았다. 다른점이 있다면 마쓰자카는 메이저에서 한 두 시즌이라도 적당히 모습을 보여줬다면 윤석민은 트리플A에서도 신명나게 털리다 복귀했다는 정도[29] 굳이 류현진만이 아니어도 국대 3인방하면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을 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2014시즌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류현진과 다른 둘의 차이는 비교 불가 수준으로 크게 벌어져버렸다는 점.[30] 윤석민은 국대에서 14경기 38.2이닝을 뛰며 평균자책 1.40 5승 1패 1세이브라는 미친 퍼포먼스를 자랑했으며 윤석민이 고평가된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31] 윤복서 사건 같이 본인이 망가뜨린 전력도 있다.[32] 류현진은 200이닝 이상 소화한 시즌이 2번, 올림픽 차출이 있었던 2008년과 부상에 시달려 커리어 로우를 찍은 2011년을 제외하곤 모두 180이닝을 넘겼다.[33] 1년에 2, 3번은 근육통으로 2군에 내려갔다 왔다.[34] 아시다시피, 선동열의 투구패턴과 흡사하다. 중요한 건 그렇게 던진다고 선동열이 변화구를 많이 던져서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난 적이 없다는 것.[35] 정확히 말하자면, 변화구를 많이 던지는 날은 전반적으로 제구가 안 되는 날이다. 윤석민의 경우, 플레이트의 좌우를 이용한 코너웍은 빼어나지만 높낮이 제구가 안 되어 통타당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36] 좌완으로 쳐도 명백히 앞선 류현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김광현 빼면 없었다. 용병쪽은 동시대에 흥했던 좌완이 특별히 없기도 했고.[37] 이건 반 기아 성향이 심한 DC나 네이버에서 두드러진다. 한창 저평가가 심할 때는 송은범과 별 차이도 없는데 팀 잘 만나서 거품만 오지게 낀 선수라는 소리도 들었을 정도.[38] 위에도 윤석민의 이닝 소화력을 지적하는 글이 있지만 매년 불펜 알바로 투입되면서 선발 로테이션이 엉킨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선발 윤석민의 평균 소화이닝은 6.2이닝으로 나쁜 편이 아니다. 적어도 윤석민이 선발등판하는 날에는 7회까지는 편안하게 야구를 시청할 수 있다. 물론 등판일정을 조절해줘야 하지만.[39] 다만 윤석민은 노포크에서 뛰면서 구속 및 구위 저하 논란이 있었기에 이것이 일시적인 하락인지 아니면 노화 혹은 부상으로 인한 기량저하인지에 대한 시각에 따라 오버페이론이 제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리스크가 분명 존재했는데도 기아는 이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40] 승리 기여도로 보면, 최소한 16시즌은 밥값을 못했다고 볼 수 있다. 15년 KIA 복귀 시즌에 30세이브를 달성하며 sWAR 3.87를 찍었지만, 2016년 다시 선발로 뛰다 완투패를 한 뒤, 어깨부상으로 2군을 다녀온 뒤 다시 마무리로 뛰며 부진한 탓에 WAR이 0.88까지 하락했기 때문. 참고로 기여도가 1를 넘지 못하면 평균적 대체선수를 기용하는게 차라리 낫고 0 이하인 경우는 빼도박도 못할 먹튀로 본다.[41] WAR는 누적 스탯이기 때문에 부상으로 시즌을 대부분 날려먹은 상황에서 WAR 0.87 이라고 먹튀라는 건 절대 아니라는 각주가 있었으나 먹튀 맞다. 많이 뛰면서 좋은 성적을 내달라고 그 돈을 주는건데 성적은 괜찮았지만 많이 뛰지 못했으니 그냥 먹튀다. 다만, '부상만 아니었어도....' 같은 약간의 동정어린 시선을 추가적으로 받을 뿐. 괜히 사이버투수, 사이버타자라는 조롱성 표현이 있겠는가.[42] 손승락의 경우 2017시즌에는 팀 역대 최다 세이브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워낙 롯데 자이언츠의 전임 마무리 투수들이 처참했던지라 16, 18시즌도 그럭저럭 만족하는 팬도 꽤 많았다. 정우람도 4년 내내 꾸준히 리그 최상급 좌완 마무리투수로 군림하여 팬들의 만족도는 괜찮은 편이다. 다만 일단 받은 액수가 워낙 큰지라 오버페이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하는 편.[43] 커쇼를 포함한 선발진 부진중에도 류현진의 등판일수에 비해 승수를 잘챙겼었다. 다만 사타구니 부상으로 DL로 내려가며 다져스가 무너지고있다는게 문제지만.[44] 5월 중 감기 몸살에 걸리 뒤 밸런스를 잃어 다시 무너지긴 했다만 아예 부상으로 등판을 못한 것은 아니었고, 추격조로 등판하며 가을안구에서까지 그럭저럭 던졌다.[45] 양현종은 현재진행형.[46] 그리고 팀 후배 손영민은 자신이 달던 배번 21번을 선배에게 빼앗겼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안습.[47] 다이어리가 올라온것은 16시 즉 등판하기 2시간전에도 마구마구 생각을...[48] 16연패 기간내내 KIA 갤러리에서 윤석민 개새끼 해봐라는 꾸준글이 올라왔고 그것이 별명화돼버렸다.[49] 윤석민 본인도 윤석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트위터에서 밝혀졌다... 본래 뜻을 알고 쓰는건지 아니면 2011년 최고의 시즌을 보내면서 석개가 윤석민 개쩔어로 변형되면서 그 뜻인줄 아는건지는 본인만 알듯...[50] 나중에 나쁜 뜻인줄 알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51] 문에 주먹질하다가 부상당해 팀 16연패의 단초.[52] 공황장애 기사.[53] 본래 아주 멀리서 줌으로 당긴 화면은 원근법이 사실상 무시되는 것이 맞다. 그래도 뒤에 있는 사람이 앞에 있는 사람보다 커질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