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1 21:57:26

김수경(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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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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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8 2000 20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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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KBO 리그 신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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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KBO 리그 다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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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KBO 리그 탈삼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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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KBO 리그 승률왕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0번
양윤기(1996~1997) 김수경(1998~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65번
팀 창단 김수경(2008~2012) 조중근(2013~2014)[1]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3번
최상덕(2010~2011) 김수경(2013) 김석연(2014~2016)
NC 다이노스 등번호 98번
이민준(2016~2017) 김수경(2018~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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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수경코치.jpg
NC 다이노스 No.98
김수경 (金守經 / Kim Soo-Kyung)
생년월일 1979년 8월 20일 ([age(1979-08-20)]세)
신체 183cm, 90kg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인천서화초 - 재능중(구 대헌중) - 인천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신인드래프트 고졸 우선지명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8~2007)
넥센 히어로즈 (2008~2012)
고양 원더스 (2014)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1군 불펜코치 (2013)
NC 다이노스 재활군 투수코치 (2018)
고양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8)
NC 다이노스 1군 불펜코치 (2019~)
프런트 NC 다이노스 스카우트 (2016~2017)
1. 소개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2.2.1. 1998 ~ 2000 시즌2.2.2. 2001 ~ 2006 시즌2.2.3. 2007 시즌
2.3. 넥센 히어로즈 시절
2.3.1. 2008 ~ 2010 시즌2.3.2. 2011 시즌2.3.3. 2012 시즌
2.4. 고양 원더스 시절
3. 은퇴 후4. 지도자 경력
4.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5. 트리비아6.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고양 원더스 소속의 투수. 現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투수왕국 이라고 불린 현대 유니콘스 최후의 에이스

젊은 시절엔 안경을 쓰고 마운드에 올라서 안경을 썼던 이미지가 강하지만 2002년 라식수술을 하고 안경을 벗은 지금은 배우 감우성과 비슷한 호남자 이미지가 되었다. 그러나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는 여전히 안경남 .

별명은 수경언니 혹은 닥터 K. 수경언니김창희, 송신영과 비슷하게 여자같은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다른 별명은 마지막 황태자. 이숭용의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본래 주인은 김수경. 현대 왕조가 해체하기 전에는 순백의 유니콘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파일:attachment/김수경(투수)/WG.gif

와인드업 투구 폼이 상당히 특이한데, 와인드업할 때 왼다리를 거의 직각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용수철 튕기듯 하이키킹한 뒤에 던진다. 박찬호의 하이키킹처럼 다리를 쫙 뻗지 않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지만 세트포지션의 투구 역시 무릎이 엄청나게 높게 올라가는 하이키킹 투구 폼이다. SK 와이번스의 투수 임치영[2]이 김수경과 닮은 꼴. 이 때문에 왼다리와 엉덩이 쪽이 받는 부담이 큰 편이며 이 투구 폼을 수정하려다가 적응에 실패하여 꽤 오랫동안 고전했다.

입단 당시엔 지금보다 더 특이했다고 한다.

개인 통산 112승을 올려 2011년 김원형[3]이 은퇴한 이후 현역 선수 중 1위였다.[4] 송진우의 역대 최다승 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 거의 유일한 후보로 손꼽혔으며 동시에 불가능에 가까운 성구회 가입 요건인 선발 200승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불리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김수경(투수)/1.gif
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투구(2007년)

주무기로 직구슬라이더가 있으며 실제로 잘 나갈 땐 빠른 직구와 종슬라이더 투피치만으로도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정도. 그러나 2011년도 이후엔 직구의 구위가 떨어져 슬라이더 이외의 변화구도 많이 구사하기 시작했다.


2008년 김수경의 투구.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인천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인천고 2학년 때인 1996년 당시 3학년이었던 이근용[5] 과 함께 봉황대기 준우승을 이끌었고 감투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인천고가 간만에 낳은 에이스 투수로 인정받아 학교 측에서 플래카드를 매년 걸어둘 정도였다. 1998년 고졸 우선으로 현대에 지명됐을 때도 인천 연고 야구 팬들에게 인천+인천고 출신이라는 점을 크게 어필했다.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파일:/image/109/2006/09/09/200609091921401101_1.jpg
전성기를 보냈던 현대 유니콘스 시절
"슬라이더는 조용준과 김수경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박경완 인터뷰

2.2.1. 1998 ~ 2000 시즌

인천고 재학 시절만 초기만 해도 직구 최고구속이 139km/h가량 나오는 선수였으며 생각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김시진이 그의 잠재력을 보고 현대 유니콘스 구단에 추천하여 1998년 드래프트 고졸우선 지명으로 뽑혔다. 현대의 나머지 고졸우선 지명자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영혼의 배터리인 강귀태.

입단 직후 김수경의 잠재력을 낮게 본 김재박 감독이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하자, 김용휘 단장이 '투수 1명만 더 데려가라'면서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었다고 한다.[6]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따라간 스프링캠프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연습경기에서 3이닝 7탈삼진이라는 호투를 보여주며 김시진 투수코치의 눈에 들게 되었다. 이후 김시진 코치의 집중조련을 받으며 최창호, 안병원, 김홍집, 최영필 등의 선배들을 제치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마침 운도 따랐는데 당시 5선발 후보였던 가내영이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으로 낙마하자 코치진은 그 빈자리를 잠재력있던 김수경에게 기회를 주게 된다.

그 해 12승 4패, 2.7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여 김용수와 함께 승률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으며[7]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최원호와 함께 1998년 현대 유니콘스 선발진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이 때 선발투수 전원 10승이라는 대기록도 만들어진다.[8] 1~5선발 투수 전원이 모조리 10승 이상을 거둔 것이다. 또한 삼성 라이온즈강동우(3할, 10홈런, 22도루)와 OB 베어스김동주(.265, 24홈런, 89타점)를 물리치고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였다. 이는 투수왕국이라 불리던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첫 투수 신인상이었다. 이 때가 그의 짧은 리즈시절. 특히 이 해에 올린 탈삼진 168개는 김시진이 기록했던 154개를 깬 역대 신인 최다 탈삼진 기록으로, 당시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던 해태 타이거즈 이대진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었다.[9] 그래서 많은 팬들은 신인 때부터 김수경을 '닥터 K'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199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등판하여 당시 현대의 천적이었던 LG 트윈스를 상대로 호투하며 승리. 역대 최연소 한국시리즈 선발 승리투수 & 세이브 투수가 되었다. [10] 한국 시리즈 총 2경기 나와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61의 쏠쏠한 활약으로 팀의 첫 우승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아쉬운 점은 1998년 처음으로 도입된 외국인 선수 제도로 현대에 영입된 마무리 투수 조 스트롱[11] 방화범 역할을 하며 김수경의 승리도 몇 차례씩 날려주는 활약을 보여주었다는 것. 이로 인해 스트롱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도 제외되었고 현대는 한국시리즈에서 선발투수와 계투진들로 돌려막기를 해야 했다.[12]

1999년에는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이 개발살나면서 중간계투로도 많이 나왔으며 타선이 김수경의 승리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팀 선배인 정민태[13]와 선발진에서 쌍두마차 활약을 해주었다. 1999년 최종 기록은 10승 11패 1세이브 탈삼진 184개 ERA 4.11. 말하자면 타고투저 징크스 그나마 수확한 건 전년도에 비해서 늘어난 삼진율 그리고 탈삼진 리그 1위. 2위는 정민태이다.

2000년에는 같은 팀의 정민태, 임선동과 함께 18승을 올리며 공동 다승왕에 오른다.[14] 당시에 기업 라이벌이기도 했던 삼성 라이온즈배영수[15]와 함께 한국 야구를 이끌 투수라고 극찬을 받기도 했었다.

파일:attachment/김수경(투수)/200604271826111101_1.jpg
그리고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대표팀에 선발되었고 4이닝 무실점 호투하며 호평을 받았다. 박종호,[16] 박진만,[17] 박재홍,[18] 박경완,[19] 임선동, 정민태 등 한 팀에서만 국가대표팀에 7명이나 뽑혔다는 점은 2000년 현대가 최강의 팀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준 KBO 리그 현재 한팀 공동 다승왕을 배출한 구단은 현대 유니콘스기아 타이거즈[20]뿐이다.[21] 한팀에서 세명이 다승왕을 차지한 것은 현재까지 2000년이 유일하며,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 세명이 따낸 18승x3=54승은 그 해 매직리그 4위였던 SK(구단의 한 시즌 총 승수을 말하는 것이다)보다 10승이 더 많았고, 3위였던 한화보다 4승이 더 많았다.

2000년 7월 16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9회 2사에 헤수스 타바레스안타가 터져서 노히트 노런 기록이 깨진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22] 당시 9회말 2아웃 1스트라이크에서 기습번트를 댄 것이 내야안타가 되어 기록을 깼다는 이야기가 있다. 퍼펙트게임 혹은 노히터가 진행되고 있을 때, 경기 후반 기습번트를 대지 말아야 한다근데 가끔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 게임을 언급하는 기사의 경우 예를 들 때 김수경을 언급하는 경우가 유일하게 없다. [23] 안습 여기서 많이 말싸움이 있었다.[24]

2.2.2. 2001 ~ 2006 시즌

2001년에 투구폼 수정을 시도하다 대실패하면서 200이닝과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던 투수가 6승으로 주저앉고 200이닝을 소화 할 수 있는 투수가 고작 100이닝 안팎으로 이닝 소화력이 줄어들었으며, 평균자책점도 폭등하게 되어버린다. 결국 시즌 중간에 부상으로 드러눕는다. 당시 오릭스 투수코치의 권유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박동희(기자) 칼럼에 의하면 주변의 조언을 본인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발언도 있다.[25] 2001년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와의 2차전에서 중간계투로 1이닝을 던지면서 2실점을 한다.[26] 특히 마일영을 제외하면 가장 어린 막내였던 김수경이 무너진것은 구단에게도 충격이고 스승 김시진 마저 역시 충격이컸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망가진 원인은 김시진 당시 투수코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27]

그리고, 2002년에 12승, ERA 4.88 2년 연속 부진을 거듭했다. 규정이닝으로는 팀내 최다승이며[28] 최다 방어율을 기록했다.[29] 준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와 만나게 되었지만 최동수매니 마르티네스에게 적시타를 포함한 만루홈런을 허용하는 등 결국 패전투수가 되고 팀 역시 탈락한다.[30]

2시즌 동안 최악의 피칭을 한 김수경은 2003년 역시 전년도와 비슷한 10승, ERA 4.63 을 기록하는데 그치며 2002년과 비슷한 성적을 냈다. 구단과 팬은 점점 그의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고 원조 에이스 였던 정민태와 새로 온 용병 셰인 바워스가 오면서 모든 시선은 정민태와 용병투수에게만 집중 되었다. 팀은 이승엽과 경쟁하던 거포 심정수와 복귀한 정민태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 시즌 1위를 한다.

한국시리즈에서는 1승1패를 기록하였다. 자세한 기록은 2003년 한국시리즈를 참고.

2004년에 11승, ERA 4.01의 성적을 올리지만 1998~2000년 사이 보여줬던 활약에 못 미쳤고, 높았던 탈삼진율마저 2001년 이후로 크게 감소하면서 투구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닝 당 삼진율을 보면 김수경은 8.0 이상에서 계속 저하가 되는데 소위 말해서 눈야구 즉, 컨택야구의 시점이 되어버린다. 이런 유형의 경우는 변화구 위주로 많이 던지는 투수들에게 크게 불리하다. 김수경 역시 구속저하가 크게 일어났기 때문에 투구수가 증가해버린 것 같다. 2004년에는 특기할만한 기록으로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세운 5타자 연속 삼진 신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김광현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경신(6개)했다. 2004년 전반기에는 방어율 및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갑자기 부진을 하며 ERA가 4점대 까지 치솟았으나. 팀은 2년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2005년에는 다시 한 번 부진에 빠진다. 특이사항으로는 완투 1개가 있다. ERA 5.76 17경기 7승7패 다시 한번 100이닝 밖을 던지고 만다. 팀 역시 창단 이래 최악의 순위를 해버렸다. 8위중 7위를 했다. 앞선 5위는 롯데 자이언츠 이쪽은 김재박저주를 받았다 카더라 6위는 LG 트윈스 최하위는 기아 타이거즈 이듬해 2006년 역시 3.7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만 17경기 4승 7패. 이 해가 심각한 투고타저였기에[31] 3점대 방어율도 낮지 않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2군 강등을, 그것도 여러 번 당한 시즌이기도 하다. 그 때 감독은 김재박인데 경험 좀 하고 오라고 보냈다 카더라. 그리고 첫 승은 7월 중순에 얻었다

2.2.3. 2007 시즌

FA를 선언하였으나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1+2년 계약을 한 채 현대에 잔류하였다. 2007년 세부기록은 생각보다 확 좋아지지는 않았으나 오랜만에 176.1이닝을 소화하고 방어율 3.88[32]에 12승 7패로 시즌을 마감. 10년 만에 100승 투수[33]가 되는 동시에 팀의 최다승 투수가 되었고, 이렇게 부활하나 싶었다. 그러나 이 없는 구단은 결국 해체... 김수경은 유니콘스의 마지막 선발 투수이자 승리투수로 남았다.

2.3. 넥센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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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시절

2.3.1. 2008 ~ 2010 시즌

그렇게 2007 시즌을 마치고 현대 유니콘스는 2008년 1월 사실상 공중분해된 뒤 해체된다. 같은 해 2008년 2월 현대 선수들과 코치진을 승계한 우리 히어로즈가 창단되었으나 창단 첫 해부터 연봉협상부터 순조롭지 못하게 시작되어 버리고[34] 팀에 고참으로서 전준호, 송신영과 고생을 많이 했다. 전지훈련도 못 가고 국내에서만 훈련한 2008년에는 부상과 재활로 다시 주저앉았고, 선발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불펜으로 뛰다 선발로 자꾸 보직이 변경되며 3승 8패 방어율 3.88 작년에 비해 이닝 수가 더 줄어버렸다. 전지훈련은 당시 2003년 한화 이글스가 훈련한 제주도[35]로 갔다. 한화가 했던 짓 그대로 반복되어서 팀도 7위를 한다.

2009 시즌에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했다. 이 때부터 배터리도 과거 연고지 라이벌 팀인 누구들처럼 초등학교 동창하고 영혼의 배터리 호흡을 맞추었으나 시즌 도중 강귀태랑 같이 2군행을 통보받는 등 6승 11패 방어율 6.67로 프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이전에 김시진 감독은 시즌 초반 이숭용&송지만 두 노장에게도 미안하지만 잠시 10일간 2군 가라는 지시를 했었다. 그 때 당시에 팀 타선이 롤러코스터로 가다가 이 둘이 다시 복귀하더니 폭발해버렸다. 근데 문제는 투수들이 더 터지고 말았다. 즉 얻어터졌다. 당시, 김수경과 배영수가 인터넷에서 많은 까임을 당했다. 훗날 밝히기를, 배영수는 은퇴까지 고려했다고. 당시 배영수는 1승 12패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단, 1경기에 대구 삼성 라이온즈 전 선발로 올라가 3⅓이닝 피홈런 1개 포함 5실점으로 조기 강판당한 후 자진해서 2군으로 갔다. 그리고는 부상이 발견되었는데 완전히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군에서 시즌을 마쳤다.[36]

2.3.2. 2011 시즌

계속 되는 2군에서 재활하다 이정훈이 부진을 거듭 할 수록 강진으로 내려가며 1군으로 1년 2개월 만에 콜업되었다.

다음날인 6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박한이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은 문성현을 구원하여 4회 1사 상황에 등판. 3⅔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직구 최고구속이 시속 136km이고[37] 야수진의 호수비로 겨우 막아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투구. 이후 6월 15일 3이닝 1실점, 6월 21일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주로 패전처리를 맡았다.

7월 7일 기아 타이거즈전에서 1⅔이닝 무실점. 정말 감질나게 나오다가 7월 9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4이닝 무실점으로 다시 등장. 3회말 1사 만루의 상황에서 구원등판해 병살로 깔끔하게 이닝 마무리. 이후 나머지 3⅓이닝도 단 1안타로 막아냈다. 평균자책점은 0.68까지 내려갔고 이 경기에서 통산 1,700이닝(1701이닝)을 달성했다. 구속이 처음 올라왔을 때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게 포인트. 이날 최고 구속은 140Km/h. 이후 등판은 없었으며 7월 21일까지 5경기 13⅓이닝 7피안타 5K 1실점 평균자책점 0.68을 기록했다. 구속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고 하였다. 143Km/h까지 나왔다는 듯.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된 김성현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선발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2011년 8월 11일 롯데 자이언츠 원정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왔지만 강민호황재균의 홈런으로 492일만에 선발 등판 경기에서 3⅔이닝 만에 강판당하였다.[38] 황재균의 홈런이 파울인지 홈런인지 논란이 있었는데 심판진에 의해 홈런으로 인정된 후 흔들리면서 무너졌다.

2011년 8월 19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 원래 선발로 예고되었던 김성태가 어깨 통증 때문에 공을 한 개도 안 던지고 내려갔고 그 대신 김수경이 깜짝 등판했다. KBO에서는 김수경을 선발 투수[39] 기록하였고 그 날 5이닝 3피안타 3볼넷 1실점 1탈삼진으로 호투했다. 중계진의 방화로 승은 거두지 못했지만 팬들은 호투한 김수경에게 박수를 보냈다. 오재영, 이보근, 박준수 이 셋이 이 날 방화의 주범…[40]

8월 31일에 두산전에 등판해서 1실점 호투했지만 손승락의 1피홈런 블론세이브로 승리가 날아갔다. 승락아! 내가 뭘 잘못했니!

9월 6일에 SK전에 등판, 3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했으나 역시나 또 불펜진들의 방화로 인하여 승리는 날아가고 말았다. 1승 거두기가 너무 어렵다

9월 11일 롯데전에 등판 2실점 퀄리티 스타트를 했으나 타선의 득점 지원 부족으로 경기가 12회말 무승부로 끝났기 때문에 승리를 챙기지 못하였다.[41] 타자님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9월 16일 두산전에서는 6회까지는 잘 막았으나 그 후에 실점하여 동점을 허용하면서 강판당했다. 팀의 역전승으로 패배는 면했지만 승을 올리지는 못했다 이쯤 되면 심수창 시즌2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9월 28일 SK전에서 6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745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고 112승을 달성하였다. 간만에 인터뷰에서 745일만에 승리투수가 되니 너무 힘들었다고...[42]

전반적으로 2011시즌을 평하면,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 이번 시즌도 안되면 은퇴도 불사하겠다고 했던 선수가 1군 등록된 이후 날카로운 제구력과 위기관리능력[43] 등을 보여주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려 팀과 선수 모두 큰 수확을 거둔 시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40km/h도 나오지 않던 구속이 143km/h까지 상승하고 시즌 중반 이후 무너진 선발의 한 축을 메꿔주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내년 시즌이 기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군에서 재활을 마치고 1군으로 콜업될 때 재활을 도운 정명원[44] 투수코치의 얘기로는 더 이상의 구속 상승 여지는 거의 없다고. 슬라이더의 구속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130km/h 초반을 찍었다. 하지만 직구 최고 구속이 143km/h에 머무른다는 건 슬라이더의 위력이 반감한다는 것. 결국 본인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약점이었다. 자신도 알고 있는지 2011시즌 후반에는 커브와 체인지업의 비중을 높였다. 흠이 있다면 중계진들이 김수경의 승을 4번이나 까먹은 것.

2011시즌 최종 성적은 69이닝 1승 2패 평균자책점 3.39.

2.3.3. 2012 시즌

팬들은 이제나 저제나 현대시절의 영광의 재현을 보고 싶어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스프링캠프 때 부터 시범경기까지 단 1차례 등판하여 1이닝 3실점을 기록, 결국. 팬들에게 깨알같은 웃음을 줬다. 개막 전때는[45] 1군 엔트리에 포함되어 잠실 야구장에서 선수 소개할 때 마침 나왔다. 그러나 이후 주장 강병식[46]과 같이 아름다운 2군행 강진에서 나왔다. 2군에서 3승 3패 1세이브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6월 12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1군에 드디어 올라왔다.[47] 팀이 스코어 0:13으로 앞선 9회초에 등판하여 1이닝 17투구수 1피안타 무실점으로 성공적인 등판이었고 팀도 0:13으로 이겼다.

팀이 대망의 중위권에 오른 상태에서 6월 16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 강윤구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강윤구가 그 놈의 볼 질볼넷 으로 밀어내기(야구)포함 4실점 헌납하여 스코어 4:2로 지던 5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김수경이 마운드에 올랐다. 2루 수비 서건창의 환성적인 수비로 병살을 잡고 6회 2루 주자 김주찬과 1루 주자 손아섭의 더블 스틸로 무사 2, 3루의 위기에서 김수경이 강민호를 루킹삼진으로 잡아냈다. 이 때 강민호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 표정이 TV 중계화면에 10초간 뜬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박종윤을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잡고 조성환에게 볼넷을 내준 뒤 황재균을 3루수 땅볼로 막으며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쳤다. 이날 3이닝 49투구수 5피안타 1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하필이면 스코어 4:4인 7회초에 실점을 한데다가 팀 타선이 7회부터 9회까지 무기력하게 막히는 바람에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6월까지의 성적은 5경기 6⅔이닝 1패 평균자책점 1.35로 괜찮은 편이었으나, 가면 갈수록 피안타율이 높아져서 결국 피안타율이 무려 .333이 되었기 때문에 팬들은 불안해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팬들은 김수경이 선발 투수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을 끝내고 말았다. 그러나 시즌 중간 스승이던 김시진이 팀에 성적을 만족시키지[48] 못해 전격 해임이 되자 김수경 본인 역시 자진 2군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 17일 현역 선수 생활 은퇴를 발표했다. 현역 200승 투수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릴 것이라 다들 기대했는데... 화려한 전성기 및 긴 재활의 시간을 거친 것은 같지만 2012 시즌 12승을 따내며 부활의 날갯짓을 펼친 배영수와 달리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선택한 것은 아쉬울 따름. 배영수와 고작 2살 차이이다.

2013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1군 불펜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방화로 시청률을 올리는 불펜진을 보며 마음 고생이 많았다. 시즌 도중 친정팀으로 복귀한 송신영은 김수경에게 불안하면 니가 나와 던지라고 했다 카더라.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했던 신영 언니한화 이글스[49]로 떠났다.

사실 별다른 은퇴식 행사도 치르지 않았기에[50], 몸만 꾸준하게 관리한다면 플레잉 코치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히어로즈 팬들이 많았다. 시즌 종료를 앞두고 이강철[51] 수석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투구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4. 고양 원더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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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 시절

2013 시즌 종료 후, 고양 원더스 소속 선수로 현역에 복귀했다. 구단에서는 올 시즌 중 성대한 은퇴식을 치러 주겠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제안했었지만 선수 복귀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은퇴식을 거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단에서는 넥센 소속 선수로 복귀할 것을 권유했지만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면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고양 원더스로 갔다. 김성근 감독 인터뷰 참조
넥센에서 현역 복귀해도 됐을 텐데,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는 이유는 뭔가.
사실 현역에서 물러날 때, 구위에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다.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에 뛰어드는 건 다소 무리라 생각했다. ‘야구’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넥센 구단에선 “네가 현역으로 복귀한다면 우리 팀에서 뛰라”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셨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넥센에서 뛰는 건 부담을 드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일단 구위를 회복하는데 집중할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 무대로 다시 뛰어들지 판단하는 게 맞지 싶었다.
- 박동희 인터뷰 중에서



2014년 2월 11일 일본 독립리그 팀 가가와 올리브가이너즈와의 연습경기에서 3.2이닝 2피안타 4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김성근 감독은 공끝이 살아나고 있으며 날이 따뜻해지면 140km 정도는 우습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들어와서는 그리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구위도 폼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가 이어졌다.

2014년 7월 14일 BCS 베이스볼 퍼포먼스에 찾아와서 점검을 받았다는 페이스북 글이 떴다.

2014 시즌 성적은 10경기 등판해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6.83. 시즌 후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면서 소속팀이 없는 선수가 되었다.

재활 훈련을 하면서 프로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불태웠으나, 결국 2015년 10월 26일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3. 은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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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NC 다이노스스카우트영입되었다. 근데 여기서도 분탕종자들이 현대 이야기를 꺼내면서 넥센과의 역사를 대립하는 모욕을 하는 유저들이 보인다.[52] 오른손 투수가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 현역 시절의 김수경같은 투수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

2017년 스카우트로 자리잡은 그의 현 모습과 야구 인생을 인터뷰했다. 1부2부

4. 지도자 경력

4.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8년부터는 NC 다이노스 육성 및 재활군 투수코치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김경문 감독의 경질과 함께 코칭스태프가 개편되면서 6월 4일자로 2군 투수 코치를 맡게 되었다.

2019 시즌부터는 의 2대 감독인 이동욱 감독과 새로 부임한 수석코치 손민한과 함께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1군에서 불펜 코치를 맡고 있다.

5. 트리비아

  • 스승인 김시진 감독이 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선수 중 한 명이며, 김시진은 늘 안타까워하는 타자나 투수를 고를 때 주저하지 않고 김수경을 꼽는다. 김수경 본인도 개인적인 목표가 124승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코치가 똑같이 통산 124승을 기록했기에 이제 본인 차례 아닌가 하는 얘기였다. 다시 복귀했었지만 결국 예전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한 터라....
  • 1998년 신인 입단 때부터 과감하게 뽑고 훈련도 철저히 시키는 등 김시진이 김수경에게 쏟은 애정은 타 선수들에 비해 보통이 아니어서, 김수경은 김시진의 양아들이라는 소리를 늘 들었고 김시진 스스로도 김수경만큼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안다고 하면서 재활 훈련, 수술 등에 관하여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한 때 투수코치 시절 마운드에 올라가면 늘 김수경을 보면서 웃어주었다고. 그런데 김수경의 은퇴설이 나돌았을때는 감독이 울먹이면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직전 최후의 선발 투수로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등판하여 마무리 투수로서의 세이브는 황두성이 했다. 당시, 한화 이글스 vs 홈경기 2:0으로 승.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현대 유니콘스 32 160 12 4 2 - 0.750
(1위)
2.76 112 6 73 168
(3위)
56 49 1.125
1999 40 184⅔ 10 11 1 - 0.476 4.14 180 18 115 184
(1위)
98 85 1.565
2000 29 195
(4위)
18
(1위)
8 0 0 0.692
(5위)
3.74 167 16 94 172
(2위)
87 81 1.323
2001 20 97 6 6 0 0 0.500 5.20 101 15 52 59 60 56 1.557
2002 27 151⅓ 12 10 0 0 0.545 4.88 155 25 60 130 84 82 1.407
2003 29 167 10 9 0 0 0.526 4.63 184 14 74 121
(4위)
96 86 1.521
2004 26 152⅔ 11 8 0 0 0.579 4.01 151 14 65 100 74 68 1.395
2005 17 90⅔ 7 7 0 0 0.500 5.76 106 17 42 70 60 58 1.599
2006 17 85⅔ 4 7 0 0 0.364 3.78 96 5 40 64 41 36 1.541
2007 30 176⅓
(5위)
12
(5위)
7 0 0 0.632 3.88 170 19 63 127 85 76 1.3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우리 히어로즈 26 106⅔ 3 6 0 0 0.333 3.88 110 7 47 63 54 46 1.425
2009 서울 히어로즈 25 117⅓ 6 11 0 0 0.353 6.67 142 29 58 66 93 87 1.662
2010 넥센 히어로즈 1 3⅓ 0 1 0 0 0.000 13.50 9 1 3 4 5 5 3.600
2011 18 69 1 2 0 0 0.333 3.39 65 6 24 37 27 26 1.261
2012 9 12⅔ 0 1 0 0 0.000 2.13 19 0 5 5 3 3 1.816
KBO 통산
(15시즌)
346 1769⅓ 112 98 3 0 0.533 4.29 1767 192 815 1370
(8위)
923 844 1.433


[1] 김수경이 인터뷰에서 직접 신인이 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고교시절 달던 번호라고 제맘대로 달아 버려서 팬들의 분노를 샀다. 거기에 팬들이 욕한다고 sns에 징징거린 건 덤... 그런데 2014년에 조중근kt wiz로 이적하면서 자동 결번이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선수가 30번을 가져갔다.... 이젠 선수 본인이 은퇴했으니 다른 선수가 달고서 원래 주인만큼의 모습을 보여 주길 팬들은 바라고 있다. 아니면 코치로 돌아와서 30번을 달았으면 좋겠다.[2] 2017년 시즌 이후 방출되었다.[3] 두 선수는 서로 다른 팀이였으나 자신들이 속한 팀의 최후의 에이스였었다.[4] 김원형의 통산 승수는 134승.[5] 97년 현대 고졸우선지명[6] 김용휘 단장의 뛰어난 선수 선구안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7] 선발투수로서는 신인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승률 1위를 달성했다.[8] 다만 이 당시 최원호의 10승 중에는 구원승 1승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선발투수 전원 10선발승 기록은 2015년에야 삼성 라이온즈의 윤성환-피가로-차우찬-클로이드-장원삼이 기록하게 된다.[9] 류현진이 2006년 204개로 경신.[10] 당시 19세로 종전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 염종석의 19세 2개월 10일이었다.[11] 역대 유니콘스 외인 선수들 중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다,[12] 단적으로 3차전에 나온 본래 선발로 뛰던 위재영이 조규제 대신에 계투로 6차전에 등판한 최원호 등을 알 수 있다.[13] 리그 유일하게 20승을 찍었으며, 당시 마무리이자 중무리로 활약하던 임창용방어율 2점대였다.[14] 다만 아래 사진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3사람이 2004년 시즌 종료 후에 찍은 사진이다. 데뷔 초 김수경은 안경을 쓰고 다녔고, 뒤에 2004년 한국시리즈 우승 엠블럼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15] 당시, 배영수는 삼성에서 그야말로 설명 할 수없던 리즈시절이였다.[16] LG 시절 방위복무를 통해 군 문제를 해결했다.[17] 고교 시절 무릎 부상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고 올림픽 직전 병역 비리에 연루되면서 병역 면제가 취소되었으나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다.[18] 1998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미 병역특례를 받았다.[19] 쌍방울 시절 방위복무를 통해 군 문제를 해결했다.[20] 둘 다 현대그룹의 야구 팀이였다. 현대 유니콘스는 지금 사라진 팀[21] 여기는 토종 20승 듀오 양현종약쟁이 헥터 노예시 2명이였다. 또 동시에 양 팀 공교롭게도 현대해상이 팀 스폰서였고 모두 타고투저에 기록 된 것이다.[22] 200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이미 원정 팀인 한화 이글스의 투수 송진우가 기록을 했었다...[23] 지금은 그냥 스포츠홈으로 되어버린다.[24] 안타깝게도 타이거즈 팬들이 부정하는 이유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송진우 투수가 기록한 날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기념일인데 하필 완봉패노히트 노런을 당했기 때문, 그리고 리그 최초로 한 시즌 두 번이나 기록 당하기 싫어서 라는 썰이 있다. 뭐 물론 판단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현대 야구에서 저 번트는 정말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25] 현재는 페이지를 볼 수 없다.[26] 7회말 3:1로 아슬하게 리드 하던 두산인데, 하필 맞은게 1차전에서 거하게 삽질을 하던 홍원기에게 홈런을 맞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두산 타자들에게 기폭제가 되어버리고 현대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는 팀의 패배로 한국시리즈 탈락을 맞이한다.[27] 이 당시 2001년 현대의 선발 투수진들은 에이스 정민태가 일본으로 진출한 시점부터 흔들렸었다. 임선동은 작년에 비해서 방어율이 급증가 했지만 공동 다승왕을 했던 김수경보다는 더 잘했었다. 마일영은 중간과 선발을 오가며 데뷔 첫 10승을 하였고 용병 투수 케일러는 기대 이하 투준호도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역시 10승을 채웠지만 방어율이 5가 넘는 대참사였다.[28] 작년 1선발로 뛰던 임선동이 허리 부상으로 김수경과 용병이던 멜퀴 토레스가 1,2선발을 분담했다.[29] 사족으로 피홈런 25개를 맞았는데 이는 규정이닝을 훨씬 뛰어넘은 임창용 보다도 많이 맞은 것이였다.[30] 수원에서도 그렇고 잠실에서도 현대 타자들은 도와주기는 커녕 삽질만 쌓아 결국, 본인들이 버리다 싶이한 투수 최원호 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당했다.[31] 당시 26홈런을 기록한 롯데의 이대호가 홈런왕을 차지할 정도로 30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없었으며,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가 5명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32] 2000년 이 후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33] 27세에 100승 투수가 되었다. 정확히는 27세 11개월 13일. 27세 3개월 2일만에 최연소 100승 투수가 된 정민철에 다음가는 기록이다.[34] 당시 박노준 에쿠스 단장이 저비용 고효율 팀을 목표로 내걸고 송지만, 이숭용 등 베테랑 고액연봉자들의 연봉을 모두 삭감해버렸고, 이 과정에서 정민태는 구단과의 갈등 끝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다.[35] 당시 한화는 유승안 감독으로 새로운 체제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난로를 피며 한겨울 내내 속옷만 입히고 훈련을 시키지 않나,,, 이상한 과학을 만들지 않나[36] 김시진이 하도 김수경에 대해서 평가를 받았는데 김수경이 무릎 수술 이후로 구위가 떨어졌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대로 콜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민태 코치는 아예 이걸 모르고 있었나보다. 먼저 알게 된 것이 정명원 2군 투수코치가 보고 바로 눈치챘다고... 정민태 같은 코치를 1군에 앉혀 놓은 김시진이 더 대단하다. 이러니 정명원 코치가 다른 팀 갔지...[37] 토미 존 서저리 수술을 받은 그 배영수 보다도 못나오는 수치였다.[38] 롯데팬들이 홈런이라고 소리를 왕창 질렀는데 이 때 심판들이 홈런으로 인정[39] 만약 구원 투수라면 선발승과 구원승에 대한 기록이 달라지며 4이닝만 던져도 승리 투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선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최소 5회를 채워야 승리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40] 팀 고참이던 송신영 마저 LG 트윈스15억에 팔려간 상태여서 투수들이 엄청 부진했었다.[41] 이날 강정호가 연장전 포수로 뛰었다.[42] 하지만 이 날 거둔 승리가 통산 마지막 승리가 되고 말았다.[43] 피안타율이 0.248인데 득점권 피안타율은 0.100이다.[44] 위에 서술하다시피 1군에서 어린 투수들을 키우고 싶다는 김시진 감독에게 어필을 했으나 쌩까고 다른 팀 가서 잘해 라고 무시를 했다. 이 때는 아무런 연수 없이 백수정민태가 3년 내내 투수 코치를 했었다.[45] 이날은 두산 베어스를 상대하여 두산의 선발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하여 넥센 선발 브랜든 나이트 신고선수 서건창과 신인 한현희가 선전하며 6:2 역전 승을 했다.[46] 무기한 2군 생활로 이 후 주장은 이택근에게 넘어간다.[47] 초반부터 나지완에게 2루타를 맞자마자 팬들을 놀래켰다.[48] 올스타전 이 후 팀 뎁스가 얇다 보니 DTD를 하지않나, 심판한테 따지다가 퇴장을 당하지를 않나 여튼 다산다난 했던 넥센의 2012년이였다.[49] 2016년 2차 드래프트로 한화가 지명을 했다.[50]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선언한 강병식의 경우 2013년 7월 7일 목동 구장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은 넥센이 LG를 개박살을 내며 강 코치의 은퇴식 승리를 짜릿하게 만들어줬다.[51] 이강철 코치는 넥센에 와서 김병현, 김병현 외에는 나머지 투수들의 폼을 건들이는 것 보다 구질을 전수하거나 좀 더 지도를 하는 것 외에는 뭐라하지 않는 타입의 시절이였다.[52] 그러할 것이 현대인천버리고 도망쳤으니 말안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