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4 01:46:19

손민한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315288> 파일:NC_Emblem_Home.png -1 [[NC 다이노스|{{{#FFFFFF '''NC 다이노스'''}}}]]
2019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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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호준 · 70 이동욱 [[감독#s-1.1|
]] · 71 이대환 · 72 전준호 · 73 송재익
· 74 한규식 · 75 진종길 · 76 지연규 · 77 용덕한 · 79 김상엽
· 81 손민한 · 82 한문연 · 83 정진식 · 85 이현곤 · 87 김민호
· 88 채종범 · 89 박석진 · 93 이종욱 · 97 유영준 · 98 김수경'''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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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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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기록
2005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5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2001, 2005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2005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자책점
2001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2006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2005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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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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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PBPA_LOGO_N.png (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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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송진우
2000.01~2001.06
이호성
2001.07~2001.12
김동수
2005.01~2005.11
이종범
2005.12~2007.11
손민한
2007.12~2009.11
6대 7대 8대 9대 10대
손민한
2009.12~2011.11
박재홍
2011.12~2012.12
서재응
2013.01~2015.12
이호준
2016.01~2017.03
이대호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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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AG 2000 Oly 2002 AG 2004 Oly 예선 2006 WBC
심재학 김기태 이종범
2006 AG 2008 Oly 예선 2008 Oly 2009 WBC 2010 AG
박재홍 박찬호 진갑용 손민한 봉중근
2013 WBC 2014 AG 2015 P12 2017 WBC 2017 APBC
진갑용 박병호 정근우 김재호 구자욱
2018 AG 2019 P12 2020 Oly
김현수
ⓐ 1998년 이전의 올림픽과 야구선수권대회에는 아마추어 선수만 출장했으므로, 따로 주장 경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 2017년 APBC는 U-24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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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틀:롯데 자이언츠 주장|{{{#FFFFFF '''롯데 자이언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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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현재
1982~1994 1995 1996 1997 1998
? 한영준 김응국 이종운 공필성
1999 2000 2001 2002 2003
박정태 마해영 조경환 강상수 박현승
2004 2005 2006 2007 2008~2010
김대익 염종석 손인호 손민한 조성환
2011 2012 2013 2014 2015
홍성흔 김사율 조성환 박준서 최준석
2016 2017~2018 2019~ 현재
강민호 이대호 손아섭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61번
윤형배(1992~1997) 손민한(1998~2011) 허준혁(2012~2015 )
NC 다이노스 등번호 54번
팀 창단 손민한(2013) 윤형배(2013~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61번
윤형배(2013) 손민한 (2013~2015) 김선규(2016)
NC 다이노스 등번호 81번
이도형(2015~2018) 손민한(2019~) 현역
}}} ||
파일:손민한2019프로필.jpg
NC 다이노스 No.81
손민한(孫敏漢 / Son Min-Han)
생년월일 1975년 1월 2일 ([age(1975-01-02)]세)
출신지 부산광역시 남구
학력 대연초 - 대천중 - 부산고 - 고려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1차지명 (롯데 자이언츠)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7~2011)
NC 다이노스 (2013~2015)
지도자 NC 다이노스 1군 수석·투수코치 (2019~)
1. 개요2. 프로 경력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2.1.1. 데뷔 후 ~ 1999 시즌2.1.2. 2000 시즌 ~ 2002 시즌2.1.3. 2003 시즌 ~ 2004 시즌2.1.4. 2005 ~ 2007 시즌2.1.5. 2006 WBC2.1.6. 2008 시즌2.1.7. 2009 WBC2.1.8. 2009 시즌2.1.9. 2010 시즌2.1.10. 2011 시즌
2.2. NC 다이노스 시절
2.2.1. 2013 시즌2.2.2. 2014 시즌2.2.3. 2015 시즌2.2.4. 은퇴
3. 지도자 경력
3.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4. 플레이 스타일5. 사건사고
5.1. 역대 감독들과의 트러블5.2. 선수협 관련5.3. 선수협 비리: 선수협의 고소취하
6. 별명
6.1. 민한신6.2. 그 외
7. 기타8. 연도별 주요 성적9. 수상 및 보유 기록

1. 개요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선수였으며 현재는 NC 다이노스 소속의 코치. 오랫동안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다. 후술된 선수협 비리에 연루되어 야구계에서 퇴출될 뻔도 했지만 무혐의 처분 후 2013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야구계에 복귀했다.

2. 프로 경력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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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손민한/son11.jpg
신인 때의 손민한.

최동원 - 윤학길 - 염종석 - 주형광을 잇는 롯데의 에이스로, 2000년대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각종 논란[1]으로 인해 롯데 팬들에게서 버려지게 된 선수.

2.1.1. 데뷔 후 ~ 1999 시즌

부산고-고려대 졸업후 1997년 롯데에 지명되면서 프로에 입단한다. 소위 5억 트리오의 막내인 셈이다. 다른 일원은 문동환차명주. 손민한과 더불어서 10여년간 배터리를 이뤘던 괴물포수 진갑용 둘 중 하나를 지명했어야 했지만 바로 그 전 해에 롯데에 지명됐었던 차명주가 다분히 먹튀성 기색[2]을 보였기 때문에 롯데에서는 투수진 보강차원에서 손민한을 지명하게 된다.

지명 직후 그간 오랜 부상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져 당분간 재활 과정을 병행하면서 구원투수로만 등판할 것이라고 알려져 롯데팬들은 시즌 시작하기도 전에 '이번에도 또 먹튀 신인이냐'라면서 좌절, 또 좌절. 1997년 광주구장에서 해태와의 개막전때 8회말부터 구원등판해서 좋은 투구내용을 보였으나 연장전 11회말에서 끝내기 폭투를 범해 데뷔전에서 패전투수가 된다.[3] 이후로도 몇 차례 등판했으나 점점 부상이 악화되어 결국 시즌아웃되고 수술대에 오른다. 데뷔시즌 성적은 1승 3패 1세이브 4.80의 평균자책점. 이 수술 덕택에 장장 2년을 개점휴업하고 1999년 후반기부터 다시 1군무대에 복귀했다. 그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포함되었으며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구원등판했다가 불을 지르며 패전투수가 되기도 했다.

2.1.2. 2000 시즌 ~ 2002 시즌

애초에 파워 피쳐로 이름이 높았기 때문에 프로에서 보여준 그의 투구 내용은 아마때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타고난 포텐셜이 있었기 때문에 김명성 감독하에서 2000년에 12승과 3.20의 평균자책점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시드니올림픽 멤버로 병역혜택까지 받았으며, 2001년에는 15승으로 공동 다승왕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이 시즌의 평균자책점은 4.21로 다소 높았는데 2001시즌이 역사상 손꼽히는 타고 투저 시즌이라는 점도 감안해야한다.

2002년 롯데에 백인천이 부임하면서부터는 채상병(심광호)과의 트레이드설까지 나돌고 심지어 손민한을 포수로 개조하려는 병크가 있었다는 설이 있지만 롯데 프런트 측에서는 금시초문이라고 한다. 여간 그다지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으며 그때 마침 막장으로 거듭나는 팀 전력에 힘입어 규정 이닝을 채우면서(141이닝) 3점대 중반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찍었지만 고작 4승밖에 못 거두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2.1.3. 2003 시즌 ~ 2004 시즌

급기야 2003년에는 의욕 저하까지 겹치며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으나 2004년 신임 양상문 감독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마무리투수로 전업하여 시즌을 시작한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마무리가 안 맞는 스타일이었던데다 4년 연속 꼴찌로 치닫고 있던 팀 사정상 등판 기회도 없어 전반기에 고작 8세이브를 올리는데 그쳤다. 시즌 중 노장진을 트레이드해온 덕택에 후반기부터는 선발투수로 다시 전업하는데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한 물타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반기 2달 동안에만 8승 1패에 1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올리며 클래스를 뽐냈다..전반기는 버린 거냐? 혹자는 이 때 손민한의 공이 프로에서 보여줬던 것 중 가장 좋았다고 평한다. 심지어 MVP시즌보다도 더 좋았다고 하니.[4]

2.1.4. 2005 ~ 2007 시즌

2005년은 두말이 필요없는 손민한의 커리어 하이. 시즌초반 상위권을 달리던 팀과 더불어 손민한도 지난 시즌 후반기의 좋았던 폼을 그대로 이어가며 그 해 전반기에만 무려 14승을 쓸어담는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였다. 20승 달성이 유력해 보였던 그였으나 시즌 중반까지 치열하게 4강 싸움을 하던 팀 사정과 맞물려 중간계투 혹은 마무리까지 마구잡이로 투입되다보니 결국 후반기에 페이스가 뚝 떨어져 4승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시즌 최종 성적은 18승 7패 1세이브 2.46의 평균자책점으로 다승 1위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비록 20승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4년 연속 꼴지팀을 5등까지 끌어올린 1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그해 프로야구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MVP가 배출된 것은 손민한이 역대 최초.[5] 손민한은 MVP 수상 소감으로 할 수만 있다면 이 MVP 트로피와 우승반지를 바꾸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우승에 대한 열망을 보이기도 했다.

그 이후 3년 간 매년 두 자리 승수와 2점대의 평균자책점의 성적을 올리며 확고부동한 롯데의 에이스임은 물론, 전국구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며 배영수, 박명환과 더불어 우완 3인방 트로이카를 형성하기도 했다. 팀은 늘 하위권을 전전했지만 손민한이 선발등판하는 경기만은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해서 민한신[6]이라는 별명도 그즈음 생겨났을 정도.

2.1.5. 2006 WBC


미국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삼구삼진한 바 있다. 13:56부터. 마! 에이로드 삼구삼진 잡아봤나!

보면 알겠지만 체인지업[7] 을 똑같은 곳에다 똑같이 집어넣어서 삼진을 잡았다삼연병 이 경기는 포기한 경기였는데(국내파 흔한 우완 손민한은 버리는카드) 손민한의 호투와 최희섭 등의 홈런으로 이겨버린 경기였다...흠좀무. 이와 같은 빛나는 호투를 했지만 국제 무대 활약은 그것 뿐이다. 본래 '국제전을 비롯한 큰 경기에 꽤나 약한 선수'라는 말을 들었지만 2015년 포스트 시즌 선발 등판에서 호투하면서 이 오명을 어느정도는 씻어낸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물론, 큰 경기 성적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손민한이 나간 큰 경기가 리그와 국제전 통틀어 99년 한국시리즈, 2000년, 2008년 플레이오프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6년 WBC, 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2015년 플레이오프이다.

이 중 승리를 거둔 경기는 2006년 WBC, 2015년 플레이오프 뿐이고 나머지는 본인 등판경기에서 팀이 졌다.

일단 99,00년에야 몸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고, 08년 삼성과의 플레이 오프에선 5이닝도 못채우고 조기강판 당했으며[8] 06년 아시안게임에서도 부진했다.

2.1.6. 2008 시즌

5월까지 패가 없을 정도로 시즌 전반기에는 최고의 전성기때인 05시즌만큼이나 정말로 눈부신 피칭을 했다. FA로이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7월 이후로는 패스트볼 구위가 하락하고 페이스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08 시즌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5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12승 4패, 평균자책점 2.97, WHIP 1.25로 롯데의 에이스 다운 피칭을 했다. 허나 FA로이드에 후반기엔 결국 체력이 다해 순위싸움 제일 치열하던 후반기에는 많이 부진했다. 사실 후반기에 강팀 상대로 팀의 에이스를 등판시키는 바보감독은 없다...에이스는 약팀과 상대하게 하여 확실히 팀의 승수를 챙겨야하기 때문.

비록 시즌 마무리는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완 선발투수 중에서는 최고였기에 FA 최대어로 꼽혔고, 소속팀과의 우선협상 마지막 날 밤 극적으로 롯데와 계약금 8억, 연봉 7억에 1년짜리 FA 계약을 맺었다.[9][10] 그러나 2009 WBC에서 주장으로 선출되고도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하며 우려를 낳더니, 결국 개막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사유는 어깨 통증. 결국 2009년을 어깨부상으로 그르쳤다. 6월부터 1군 엔트리에 복귀했지만 부상을 안아 직구 평균구속이 140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뚝 떨어진 구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제구력으로 위태위태하게 버티며 6승을 거뒀다. 결국 더 이상 공을 던지지 못할 정도로 어깨부상이 악화되며 시즌아웃. 이것이 롯데에서는 마지막이었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면서 2010년과 2011년 전 시즌을 날려먹고 말았다.

여담으로 전준호에게 KBO 통산 2000안타를 허용했다. 기사

2.1.7. 2009 WBC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에 분명히 뽑히긴 했는데(심지어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단 한 번도 등판을 안 했다. 이것에 대해 온갖 소문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결국 결승전에서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손민한이 펫코파크에서 팝콘을 팔아 대박치고 다저스타디움까지 가서 팔았다나, 뭐라나...

사실 손민한은 WBC시작 당시 감기 몸살(운동선수는 감기 하루만 걸려도 컨디션을 되찾는데 1주일 이상 걸린다.)에다가 오버페이스. 나오면 소위 말해 털렸을 컨디션.

근데 일단 국대에는 뽑힌지라 결승전때 무슨 파이널 보스급으로 일본에 알려진 2ch 번역 스레드의 짤방이 돌기도 했다. 물론 한국인이 만들어놓은 자작극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どうやら韓?の?さは本物らしいな?
한국 투수들 웰케 잘해?
どうですか解?の名無しさん:2009/03/22(日) 13:12:31.88 ID:iWfRJCtT
ったわけじゃないのか
大??初から言われていた
근데 무서운 건 아직까지 한번도 출전하지 않는 한국 투수가 있대
이 자식이 최종 보스인가봐
どうですか解?の名無しさん:2009/03/22(日) 13:13:39.78 ID:A+DpSZkQ
?やってんのかと疑うくらい勢いがやばい
그 자식은 적어도 마쓰자카급이겠군

원문이랑 번역이 안 맞는건 그냥 유머니까 넘어가자

2.1.8. 2009 시즌

WBC때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시즌 개막후에도 어깨 상태가 좋지않아 6월초까지 등판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FA로이드 후유증.

2009년 6월 7일 두산전에서 복귀하여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어깨부상 전만큼 구속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경기운영이 돋보였다. 실제로 1회말 1~2번타자에겐 아리랑볼을 던져대며 우려를 낳았으나 3번 김현수를 상대하면서부터 140Km대의 코너워크가 되는 패스트볼을 팡팡 꽂아넣는 등... 본인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프지 않아 안심이다'고 인터뷰를 했지만 결국 얼마 못가 다시 통증을 겪게 된다.

2009년 6월 26일 대전 한화전에 등판해서 5이닝 3실점(자책3) 2삼진 4피안타 5볼넷으로 마운드를 내려온 손민한은 그날 타선의 도움으로 마침내 롯데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11][12]역대 20번째.

6월 복귀 이후 8월말까지 석달간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며 등판했다. 6~7월에도 구속은 느렸지만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버텼으나, 8월 들어서 어깨가 나갔고 그탓에 계속 조기강판당하면서 연패의 수렁이에 빠졌다. 8월 4일 마산 두산전 이후 내리 3경기서 채 5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대량 실점을 하며 3연패를 당했다. 21일 부산 LG전에선 6이닝까지 버텼으나 4실점(3자책)하여 다소 살아나는가 했는데, 8월 2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며 시즌아웃 선언을 받았다. 결국 8월 27일 삼성전이 손민한이 롯데서 등판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8월 31일 서울에서 MRI를 찍어서 LA의 저명한 프랭크 조브 박사에게 보내 진단을 받았고, 결국 10월 2일 미국 LA에서 조브 박사에게 오른쪽 어깨 근육 부위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결국 부상때문에 6승 5패, 평균자책점 5.19, WHIP 1.66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6승은 모두 6~7월에 거둔 것이다. WHIP에 비해 평균자책점이 매우 낮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이다. 위기관리 능력과 로케이션은 여전히 받쳐주지만, 구위 자체가 떨어진 것을 반증하는 결과.

2.1.9. 2010 시즌

관절경 수술은 기존에 언론에 알려진거보다 큰 수술로서 수술을 한 조브 클리닉 쪽에서는 2010년 11월은 되어야 제대로 던질 수 있으리라고 봤다고 한다.

2010년 7월 현재 재활중이며, 8월 1일 LG 트윈스전에서 복귀할 계획의 일환으로, 7월 14일 2군 넥센전에서 첫 실전 피칭을 하였다. 이 경기는 2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특히 8월 1일이라는 날짜는 로이스터가 손민한을 독려하기 위해 직접 정한 날짜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통증이 재발하여 사실상 2010시즌은 끝났다. 애초에 수술한 쪽에서도 잘해야 2010년 10월~11월에 나올 수 있다고 봤었는데 10년 후반기에 복귀시점을 맞춘거 자체가 무리한 도박...물론 본인의 선수 생활 자체가 얼마 안남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해는 가지만.

설사 재기한다해도 본래 튼튼하지 못한 몸에 어깨가 한번 박살난 상태에서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재활이 필요하며 본인의 강한 의지와 운까지 따라줘야 하는 상황인데 쉽지 않을듯해 보인다. 사실 지금까지 모습만 보면 전형적인 FA로이드의 부작용으로 40억이라는 FA 몸값을 고려하면 먹튀소리 들어도 크게 할말 없다.

다른 선수 같았으면 죽도록 까일 상황이지만 암흑기동안 팀의 1선발로 활약한 노고와 악역은 감독들에게 돌리고 쌓아둔 이미지가 워낙 좋아서 아직까지 팬들의 지지도는 높은 편이다. 참고로 롯데의 FA중 홍성흔 다음으로 성공적이었던 이상목(손민한의 마무리 전환 가능, 포크볼 전파, 팀내 다승 순위권 안에 듬)은 04시즌과 07시즌을 말아먹은 탓인지 아직까지 롯데팬들에게 먹튀 소리를 듣고 있다.

미래를 위해 손민한의 짐을 내려주고 진작에 차세대 에이스 자원을 육성해야 했던 롯데 코칭스태프는 당장 급하다는 이유로 조정훈의 어깨와 팔꿈치를 모두 망가뜨렸고 장원준송승준의 실시간 롤러코스터를 끝내 제어하지 못했다. 결국 롯데 에이스의 자리는 비었고 전형적인 3선발 이후 투수들, 맞아가면서도 꾸역꾸역 이닝 먹고 어느정도 막아내긴 하지만 한 경기를 믿고 맡길순 없는 투수들로 이루어진 선발진을 보유하게 되었다.

2.1.10. 2011 시즌

일단 양승호 감독이 부임후 전력외 판정을 받은걸로 봐서는 구단에선 사실상 재기불가로 판단한 듯 하다. 본인은 아직 이렇다할 말이 없는데 이대로 재활한다며 돈 먹으면서 버티면 구단 입장에선 무척이나 열 받는 상황이다. 일단 11시즌 대비 전지 훈련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래도 현재 순조롭게 재활 중이며 재활이 제대로 끝난다면 6월쯤에는 합류가 가능할 것이라고. 가을야구 같이해요 민한信

그러다가 전 롯데팬들을 꼴레발 떨게 만드는 기사가 나왔다. '230일만의 실전 피칭' 손민한, 감 좋다! 비록 대학팀과의 경기이긴 하나 직구 구속이 141km까지 나왔고 무엇보다 통증이 없다고 한다!!! 또 SK와의 연습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142km까지 나왔다. 강민호는 이를 보고 손민한 선배에게서 후광이 보인다고 말할 정도.올시즌도 고인이란 말이죠.

3월 16일 사직구장에서 두산과의 시범경기에 출전, 2이닝을 퍼펙트(두 개의 플라이볼과 네 개의 땅볼처리)로 막았다. "140km대 안팎의 구속과 뛰어난 제구를 뽐냈다."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최고 구속이 144km까 긴 것이다. 단, 제구력은 여전히 언터쳐블. 시범경기 동안 계속 주의깊게 관심을 가져야 할 듯. 리플레이 보기전에 팬티를 여벌로 챙겨가는것이 좋을듯하다. 이거 꼴레발 떨어도 되는거지? 외쳐! 미난信 ㅠㅠ

3월 26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했으나 공을 10개도 채 던지지 못하고 강판되었는데, 3월 30일 서울 건국대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관절낭과 주변 어깨 근육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소 3개월 동안은 마운드에서 볼 수 없을 전망. 그에 대해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야구 갤러리 등지의 롯데 팬들은 참는것도 한도가 있지, 박명환만도 못한 희대의 먹튀운운하며 까고 있다.

애초에 양승호 감독이 6월달에나 선발로 뛸 것이라고 했으니 크게 예상을 빗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부상 이후 올라오는 재활 선수들마다 이런 걸 보면 롯데 구단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결국 9월 중순이 넘어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2011시즌에도 못 보게 되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6월말 1군복귀 준비 직전 재발한 원인불명의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결국 구단과 합의하에 FA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났다. 구단에서 코치직을 제안했으나 본인은 선수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신청하게 됐다고.

이런 가운데 전력보강이 절실한 NC 다이노스가 영입할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NC측에선 조심스런 상황이다. 손민한의 기량이 가장 문제라는 전제를 달고 있기 때문에 손민한의 몸상태가 변수가 될 전망으로 12월 16일자 기사에 의하면 일단 코치진이 보는 앞에서는 무사히 통과하고 메디컬 테스트만 통과하면 재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전력투구는 아직 무리고 하프피칭 수준까지는 올라왔다고...70~80%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12월 22일 메디컬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무사히 통과하였고 1월 11일까지 계약을 성사시킬 것으로 보인다. 손민한, 메디컬테스트 통과… NC 입단 유력 그러나 이후 프로야구 선수 협회 비리 관련으로 좋지 않은 기사들이 나오면서 NC에서도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2012년 말 다시 NC에 입단테스트를 타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떴다.손민한의 복귀를 보는 두 가지 시선.

2.2.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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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NC 다이노스와 계약금 없이 연봉 5천만원에 신고선수로 계약했다.# [13]

입단 당시만 하더라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는 물음표가 있었으나 이호준과 함께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기반을 다지는데 공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름 성공적인 선수 생활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2.2.1. 2013 시즌

4월 26일 경찰 야구단과의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첫 실전 등판을 가졌다.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최고 구속 143km/h를 찍으며 부활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5월 23일 두산 베어스와의 퓨처스 리그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7이닝 10피안타 3실점(2자책) 4탈삼진 무사사구로 호투하였다. 피안타가 좀 많았지만 공백기간이 상당히 있었음에도 7이닝(투구수 100개)이라는 긴 이닝을 던졌다는 점과 사사구가 단 한 개도 없었다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1군에서는 선발로 기용한다고 한다. 원래는 김경문 감독이 불펜투수로 기용할 생각이였으나, 연투가 불가능 한 몸 상태 등 이유로 서로 면담 후에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오랜 경험을 쌓은 투수인 만큼 투수진에 무게감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NC의 선발진이 상당히 안정감이 있는 만큼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알 수 없는 상태. 정확히는 손민한이 선발에 합류하는 대신 토종 선발인 이재학, 이태양 중 한명이 마무리로 이동할 가능성을 김경문 감독이 언급했기 때문. 물론 이 모든건 손민한이 1군 첫 선발등판에서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털리면 선발이고 뭐고 바로 롱릴리프행으로 갈수도 있는 것.

원래 입단할 때는 54번을 달았으나, 정식선수로 등록되면서 61번을 달고 있던 윤형배와 번호를 맞바꿨다.

6월 5일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첫 1군 선발등판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1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해 최고구속이 146km/h까지 찍히며 5.1이닝 무실점으로 또다시 승리를 챙겼다.

6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최고구속이 146km/h까지 찍히며(꾸준하다.) 7이닝 투구수 83개(...) 1실점으로 시즌 3승을 챙기며 승리투수가 되었다.이 경기에서 6회말에 오심으로 이득(?)을 크게 봤다.

7월들어 체력적인 문제로 선발로서 등판이 힘들어지자 후반기 이후부터는 불펜으로 등판하고 있다.

7월 30일 SK전에서 에릭 해커의 뒤를 이어 7회에 등판, ⅔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이후 콜드게임이 선언되면서 4:2 승리. 2628일만에 세이브를 올렸다.

8월 13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1⅔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시즌 두 번째 세이브 달성. 9회 초 프로 데뷔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14]

현재 NC에서의 손민한의 평가는 돌아온 민한신. 특히 불펜으로 등판한 뒤부터 NC의 불펜이 전반기의 불쑈에서 벗어나 상당히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후반기의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호준과 함께 팀내 최고참 선수로서의 경험으로 주는 조언 역시 무시 못할 수준. 롯데 팬들은 롯데 있던시절에 마무리 돌렸을때는 태업하더니 NC가선 마당쇠 노릇한다고 복장터져 하는 중이다.

9월 7일 SK전에서도 이현곤의 실책에 힘입어 주자를 2루에 출루시키고 번트후 1사3루 상황에서 최정박정권을 둘다 걸러버리고 만루 작전을 하려 했지만 포수의 사인을 연거푸 3번이나 거절하다가 본인이 던지고 싶은대로 던졌고 결국 김강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9월 25일 넥센전에서 9회 말 1:0으로 리드하는 상황에 등판하여 선두타자 강정호를 출루시켰지만, 장기영의 번트 타구를 재치있게 막아내며엔씨 연기대상 병살 처리. 이어서 서동욱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긴 했지만 오윤을 중견수 플라이로 돌려세우면서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시즌 7세이브를 해냈다.

2.2.2. 2014 시즌

4월 1일 기아전에서 8회 말 0:0으로 양팀 투수들이 호투한 상황에 등판, 선두타자 김선빈을 뜬공으로 잡았지만 이후 2루수 송구 실책으로 이대형이 출루하고 김주찬에게 안타를 맞으며 1사 1,3루가 되었다. 그리고 이범호가 투수 앞으로 떨어지는 내야 땅볼을 쳤는데 손민한이 공을 놓쳤다가 다시 주워서 홈으로 송구하는 바람에 1실점하였다. 이후 볼넷으로 만루까지 갔으나 삼진과 뜬공으로 마무리. 하지만 타선 득점이 없어서 결국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12일 LG전에서 8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 타자 정성훈삼진아웃으로 처리하여 노련함을 보여줬다. 팀의 실점위기를 넘기고 투수 이재학의 승리까지 지켜냈던 계기가 되었다.

5월 13일 기아전 9회초에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면서 역대 5번째로 110승을 달성했다.

2014시즌 최종평은 이호준과 같이 투수조 쪽에서 맏형의 소임을 다하여 NC의 첫포스트시즌 진출에 큰힘이 되었다고 한다.

2.2.3. 2015 시즌

이제 만으로도 불혹이 되었음에도 다시 선발투수로 낙점되었다. 3월 29일 잠실에서 열리는 두산과의 개막 시리즈 2차전에 선발로 등판한다, 그런데 상대선발은 하필 장원준(...) 꼴빠들 입장에선 어떻게 이런 매치업이 란말이 절로 나오는 선발매치업 2015년 제 1회 롯데 자이언츠 동문회 경기 자체는 6회까지 1실점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7회에 양의지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며 7회를 넘기지 못하고 6 ⅔이닝 3실점으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팀 역시 장원준에게 안타는 많이 때려냈지만 1득점에 그쳤고 결국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5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1년 9개월 14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일수로는 653일 만의 선발승. 이는 KBO리그 역대 최고령 선발승 3위 기록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6이닝 동안 무사사구 1실점(비자책) 퀄리티 스타트였다는 점. 구속은 전성기보다 떨어졌지만 다양한 변화구로 노련하게 한화 타자들을 요리했다.

5월 22일 현재 손민한의 성적은 5승 3패 평균자책점 4.06. 다승은 공동 4위, 평균자책점은 13위에 올라 있다. 넥센전에서 손민한은 77개의 공만 던지고 6.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NC 벤치는 손민한의 나이와 몸상태를 고려해 투구수를 조절해주고 있지만, 손민한은 제한된 투구수로도 최대한의 이닝을 소화하며 NC 마운드에 큰 힘을 불어넣고 있다. 인터뷰에서는 "감독님이 배려 차원에서 투구수, 이닝을 관리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더 던지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며 "팀 승리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답했다.

5월 25일 SBS Sports '주간 야구'의 코너중 하나인 '구와 숫자들' 에서 투수의 삼진, 볼넷 비율에 관한 통계를 소개하면서 손민한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바로 현재 리그에서 가장 볼넷 비율이 낮은 투수라는 것, 174타자 상대해서 단 5개의 볼넷을 내줘 볼넷 비율이 2.9%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시즌 초이지만 이는 규정이닝 투수중 가장 낮은 볼넷비율을 기록한 1991년 선동열의 3.8%보다 더 낮은 기록이다.

5월 28일 마산구장에서 두산을 상대로 손민한은 82구 6이닝 5피안타 1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최상의 투구내용을 보여주었으며 남은 3이닝을 임정호-최금강-임창민이 이어 던지며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함과 동시에 자신은 시즌 6승(3패)째를 거뒀다. 이 경기에서 4회 무사1루 상황에서 김현수를 상대로 '개인통산 7000타자'를 채웠다. 결과는 1루 땅볼 아웃. 이날 경기 전까지 6988타자를 상대했던 손민한은 4회 만에 프로 17번째 금자탑을 쌓았다. 1997년 롯데에서 데뷔한 손민한은 2007년 797타자를 상대하는 등 7000타자를 채우는데 15년이 걸렸다.

6월 18일 수원 kt wiz와의 경기에서 1,700이닝을 돌파했다.

6월 24일 마산 기아와의 경기에서 5이닝 5피안타 2사사구(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8승 통산 120승을 거두었다. 이날 양팀 선발 투수 손민한(40세 5개월 22일)과 서재응(38세 1개월) 두 선수 나이의 합은 78세 6개월 22일로 KBO 역대 두 선수 나이 합계 최고령 선발 대결이었다.

7월 5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 등판하였는데, 폭우가 오락가락하며 우천 서스펜드가 두 번이나 걸리는 최악의 그라운드 상황에서 1회에만 8안타를 뒤집어쓰며 5실점, 2이닝 5실점으로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비가 더 많이 내리면서 노 게임이 선언되어 한숨을 돌렸다.

8월 12일 넥센전에서 선발 이태양이 넥센 타선의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조기강판되고, 손민한은 3회 급하게 마운드에 올랐다. 3회 2루타 4개를 맞으면서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마운드를 지배했다. 4이닝 4안타 2실점으로 구원 승을 따내며 시즌 9승째(5패)를 따냈다. 특히 4회부터 6회까지 3이닝을 연속 삼자범퇴로 틀어막았다.

그 이후 그간 부진하다가 9월 11일 넥센전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2실점 단 67구를 던져 시즌 10승을 거뒀다. 이 10승은 의미가 있는것이 그의 나이 만 40세 8개월 9일의 기록으로 'KBO 역대 최초의 40대 10승 투수이자 역대 최고령 10승 투수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것 이다.

9월 30일 두산전 손민한은 이날 5⅓이닝 3피안타 2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를 펼치면서 시즌 11승째를 챙겼다. 이날 총 79개의 공을 던진 손민한은 최고 143km/h의 직구(38개)를 중심으로 투심(19개), 포크(13개), 슬라이더(9개)를 적절히 섞었다. 4회 들어서 갑자기 볼질하기도 했지만, 결국 6회 1아웃까지 막아놓았다. 1실점도 주자가 1명 나간 상황에서 달감이 지친 최금강올려서...

2015 시즌 최종 성적은 26경기 19선발 105이닝 11승 6패 122피안타 8피홈런 15볼넷 50K ERA 4.89. 내년이 기대되는 슈퍼 노망주 근데 은퇴했다

10월 21일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5이닝 까지 호투했으나 6회 손가락 살이 벗겨지는 부상을 입고 강판됐다. 5이닝 2실점. 팀이 두산을 16:2로 대파한 덕에 자신의 첫 포스트시즌 선발 승리를 챙겼다. 더불어 포스트시즌 최고령 선발투수와 통산 최고령(40세 9개월 19일) 선발 승리 투수[15]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2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2.4. 은퇴

손민한의 은퇴식 및 NC HONORS CLUB 가입식은[16] 하필이면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롯데 관련 커뮤니티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은퇴식을 함께 진행하는 이혜천이나 박명환이 두산 출신이기 때문에 두산 베어스전에서 진행할 수도 있었을 텐데 NC 프런트가 노린 건지는 불명. 일단 NC 프런트에게 반감을 느끼는 롯데팬이 대다수이다.

게다가 이후 인터뷰에서 과거 팀보다는 NC에 마음이 가고 감사하다. 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롯데와의 불화 이후에도 그나마 마음 속으로라도 지지하던 롯데 팬들의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에는 NC 다이노스 구단과 함께 유소년 야구 육성코치를 담당하고 있다.관련 페이스북 페이지.

3.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8년 10월 24일 NC 다이노스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사실 은퇴 이후 계속해서 구단의 코치 권유가 있었으나 본인의 코칭 방식에 대한 의문 때문에 거절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이동욱 감독의 요청을 받으면서 코치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 1군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동시에 맡는다.

2019 시즌 초반을 보면 일단 선발을 길게 끌고 가는 식으로 투수를 운용하고 있다. 4월 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를 보면, 4실점을 했던 선발 이재학을 6이닝까지 끌고 가면서 대역전극의 발판을 만들어낸 것이 그 예. 그리고 마무리 캠프 때부터 좋은 모습을 보인 신인 김영규를 발굴해냈고, 불펜 자원과 임시 선발로 계획했던 박진우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시즌 초 잦은 등판으로 인해 후반기부터 모습을 감춘 배재환를 또다시 자주 투입시킨다거나 세이브 상황이라는 이유로 원종현에게 4연투를 시키는 등 불펜 운용 쪽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6일 LG 트윈스전에서는 연장 11회 배재환이 등판했으나 불안한 제구로 5실점을 내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는데 17일 연장 12회에 또다시 배재환을 올리는 이해 못할 투수 운용을 보였다. 물론 크리스티안 베탄코트의 어이없는 실책이 실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나 결국 배재환은 이번에도 2실점을 하고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당시 NC의 불펜에는 신인 배민서를 제외하면 16일 0.1이닝만 던진 김진성이나 최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김건태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6월 들어서는 7일부터 9일까지 이어진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에서 모두 막판까지 1~2점차 상황이었다는 이유로 배재환원종현이 나란히 3연투를 하게 되었다. 3연투 과정에서 배재환은 세 경기 모두 홀드를 올렸으나 원종현은 앞선 두 경기에서 블론 세이브를 저질렀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불펜들은 스트라이크를 꽂는 것조차 힘겨워하니 나름 당위성이 있는 3연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다음 경기였다. KIA와의 주말 3연전 이후 11일 화요일부터 키움 히어로즈를 만났는데, 이번에도 2점차로 앞선 상황이라고 단 하루 휴식을 취한 배재환을 또다시 투입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구위가 떨어진 배재환은 2루타만 세 방을 내주는 등 22경기 만에 실점을 했고, 충격적인 것은 그 뒤를 이은 투수조차 나란히 3연투를 한 원종현이었다는 것이다. 원종현은 나름 위기 상황에서 실점을 하진 않았으나 결국 10회 유원상이 결승점을 내주면서 이 둘을 갈아넣고도 역전패를 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비록 앞서고는 있다고 해도 이미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배재환과 원종현을 또다시 소모시켜야 했냐는 것. 6월 들어서는 이 둘이 갖는 비중이 훨씬 커지고 있는데 11일까지 9경기를 치르는 동안 배재환이 6경기, 원종현, 강윤구가 5경기, 장현식이 3경기에 등판했고, 김진성이우석은 단 2경기에 등판했으며 5월 말부터 불펜으로 전환한 김영규는 아예 단 한 차례도 등판하지 않았다. 6월 들어 계속해서 접전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필승조만 갈아댈거면 저 투수들은 도대체 데리고 다니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특히 11일 경기는 3연투를 한 투수들을 처음부터 구상해서 제외했다면 똑같이 역전패를 당했더라도 내상은 덜했을 상황이다.

4. 플레이 스타일

아마 시절엔 150Km까지 던질 수 있는 불같은 강속구를 갖고 있었으나 혹사에 기인한 부상으로 인해 빠른공보다는 코너웍을 바탕으로 하는 스타일로 전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 투구시 최고 148km/h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다. 물론 2009년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다소간의 구속 하락은 있었지만 NC에서 불펜으로 활약하던 시절에도 140km대 초중반의 직구 평속은 기록했다.

초창기에는 부상과 팀 성적과 맞물려 좋은 내용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2004년 점차 만개하여 마침내 2005년에는 방어율 2.46에 18승 7패 1세이브, 방어율과 다승 부문 2관왕 및 MVP, 투수 골든 글러브 등 화려하게 떠오른다. 이해 롯데의 성적은 5위였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MVP를 수상한 최초의 선수이다. 그 후로도 10승은 보장해주는 활약을 보였으며, [17] 2007년에는 상조회장으로 있으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그간 있던 '롯데 상조회장이 되면 성적이 막장화된다'라는 징크스도 깨버렸다. 최동원-윤학길-주형광을 이은 에이스. 2000년대 롯데 마운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선수이다.[18]

위 연역 소개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투구 패턴이 정 반대로 바뀐 타입의 투수. 아마때의 활약을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140km/h 후반대의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 위주의 투구를 펼쳤다고 한다. 실제로 프로 초창기 및 2001년에만 해도 어느 정도는 직구에 의존하는 투구 패턴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파워피칭이라고 할 지라도 탈삼진 능력이 빼어나지는 않았다. 투구 스타일을 바꾼후엔 포크볼을 장착하여[19][20] 다양한 구종으로 맞춰잡는다. 이 포크볼의 구위는 매우빼어나며 손민한이 삼진을 잡을때 주로던지는 결정구이다.[21] 물론 삼진을 잡아내기보단 내야땅볼 유도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투구폼으로 봐도 와인드업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던지기 일쑤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성의없이 설렁설렁 던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빠른 타이밍으로 주자의 움직임을 최소화 하고 볼 판별 시간을 줄이는 등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물론 와인드업시 전력투구를 할 때는 147~148km/h 정도의 공을 던질수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대개 와인드업을 생략하고 빠른 타이밍으로 던지면서 140km/h 초반대의 직구와 변화구로 맞춰잡는 투구를 구사하며 많은 재미를 보고 있다.

어쨌든 손민한 최고의 강점은 소위 쿠세가 분명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구질을 찔러넣어" 상대 타자를 잡아내는 데 있다고 하겠다. 원하는 곳, 원하는 구질임에도 공략이 어려운 이유는 대략 타자가 정확히 노린 곳과 2%의 차이로 요약할 수 있을 손민한의 로케이션 능력. 손민한의 전성기에 주자 있는 상황에 맥없는 투수땅볼로 병살을 엮어내는 장면은 그의 피칭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전성기때는 한이닝에 안타 두개 이상씩 맞고도 이 스킬로 실점은 안하고 꾸역꾸역 무실점 행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 타팀 팬들이 뒷목을 잡다가 운민한이라는 별명을 붙이면서 열폭한 적도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냥 보는 입장에서는 금방 털릴것 같은 투수를 못털고 병살타로 자폭해버리니 손민한이 운이 좋아보인다는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야구 모르는 인간들의 헛소리. 이런 범타 유도를 통한 맞춰잡기는 필연적으로 피안타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매 투구가 완벽하게 로케이션될 수 있다면 손민한은 지금쯤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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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역대 투수중 최고의 수비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도 있다. 번트나 내야 땅볼 처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이야기. 그래서 공을 던진 후에는 한명의 내야수라는 소리도 한다.

5. 사건사고

5.1. 역대 감독들과의 트러블

역대 롯데 감독들과 숱한 마찰을 일으켰고, 그때마다 팬들을 이용해 감독만 욕먹게 만드는 짓을 공공연히 했다.

2002년 백인천 감독에 의해 트레이드당할 뻔했을 때 이유가 항명 및 훈련 불성실이었다.

2003년엔 기아전에서 태업을 해, 격분한 김용철 감독 대행에 의해 2군에서 두어달 썩었다.

양상문 감독 시절 이상목이 영입되며 마무리로 전업했을때도 태업을 일삼으며 무승부 전문 마무리가 되었다.[22]

강병철 감독때는 팬들 모인 자리에서 감독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 강병철 감독 재임시절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며 팬들 앞에서 감독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걸로 골수 롯데팬들한테 많이 까이는 편이다. 이는 정수근도 마찬가지.

정치적인 술수나 처세에 능해서 팀 내 부산고 파벌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무리 파벌의 중심이어도 성적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는지 코치 연수를 거절하자마자 방출 확정. 거기에 선수협 관련으로 강병규에게 엄청 까이고 회장에서 자진사퇴했으니 손민한에게는 악몽과 수난의 2011년이 되고 있다. 권불십년[23]

5.2. 선수협 관련

2009년 4월 28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노조를 설립한다고 파문을 일으켰다. KBO 측에선 거세게 반발하고, 팬들은 쓸데없는 짓 한다고 손먹튀라고 욕했다. 결국 8개구단 선수들이 노조설립 입장을 철회하여 사태는 그냥 무마되었다.

이후 시즌 종료후 다시 선수협 회장에 선임되고, 노조에 대한 주장을 다시 펼치는중. 선수협 사태 당시 송진우를 따르던 많은 스타선수들이 있었는데 반해 현재 선수 노조주장에는 손민한의 짐을 나눠질 선수가 없는 것이 현실. 사실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닌게 08년 올림픽 기간을 이용해서 일본측 선수협과 교류를 시작, WBC때 일본측 상조회장인 아라이에게서 법률자문을 포함한 선수협 지지성명을 이끌어내는 성과도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밀어붙였던것.WBC때 팝콘만 판건 아니었다는 뜻

노조건은 차치하더라도 전임 회장 이종범에 의해 선수협이 허수아비로 전락한 상황에서 그와 이뤄낸 성과들을 보면 권익신장을 위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고 공도 상당함을 알 수 있다. 그를 싫어하는 팬들도 이러한 공로는 인정하는 편.

하지만 온라인 야구게임 초상권 독점계약 관련하여 선수협간부 로비사건에 연루되고, 게임업체에서 받은 초상권료 관리도 불투명하다는 비판도 받아 급기야 8개구단 선수 대표들의 사퇴요구로 2011년 12월 자진사퇴했다.

5.3. 선수협 비리: 선수협의 고소취하

2011시즌 종료 후 선수협 비리의 핵심인물로 추정되면서 이제는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에이스였다는 이유로 선수로서 응원하던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결국 1월 11일 선수협에서 전임 집행부의 비리 혐의와 배임 혐의로 고소한 상태.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위의 2012년 말의 NC 입단 테스트 기사에 의하면 배임과 비리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선수협에서 고소를 취하하였고 검찰 측에서 무혐의 처분을 하였다. 선수협에서 고소를 취하했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친고죄가 아니라 고소 취하만으로 무혐의가 되는 게 아니라 검찰 조사 결과 증거불충분 혹은 혐의 없음으로 인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빵회장이 고소 취하를 후회하는 것을 봤을 때 법적으로 손민한이 책임을 질 일은 없게 되었더라도 손민한이 도덕적으로 결백하다는 결론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이후 동료 선수들에게 사과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복귀를 시도하는 한편, 손민한의 복귀를 탐탁치 않게 보는 아구계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보려는 듯.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이 분이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이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과 선수들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박재홍트위터사죄문도 아니다, 권시형 전 총장 수사 당시 선수협 돈만 몇십 억이 깨졌다, 깔끔하게 사과하라면서 대놓고 깠다.

그 후 2013년 1월 25일 박재홍의 은퇴 기자회견 때 박재홍의 선처로 공식석상에서 사과의 기회를 가졌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복귀할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거지 그간의 잘못을 전부 용서하고 덮어주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다.

2013년 선수협 공식 입장이 나왔는데, 복귀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NC 다이노스 신고선수로 계약.

6. 별명

6.1. 민한신

본래는 민한이라 하여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롯데의 부실 투수진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하다(...)" "그나마 손민한 선발이니까 믿고 직관 비용을 낼 수 있다[24]" 라는 뜻으로, 어떤 뜻으로는 암흑기의 처참한 현실을 자조하는 말에 가까운 별명이었다.[25] 사실 암흑기 전반의 에이스는 손민한 보다는 박지철이었는데, 그 때는 팀이 한국 야구사 최초로 구단 제명 협박까지 나올 정도로 크보에서 다시 그따위 팀이 나오면 안될 수준으로 못해서(...) 묻혔다.[26]그러나 이후 삼성 라이온즈양준혁 선수와 기아 타이거즈이종범 선수를 양神과 종범神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信과 神의 발음이 같은 탓에 민한信 역시 어쩌다 보니 민한으로 와전되게 되었다. 본래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생각하던 뜻과는 영 달라진 것이다. 요즘은 아예 처음부터 민한이었던 것으로 아는 이들도 많다. 웃기는 것은 롯데 팬들의 원래 의도가 손민한 신격화가 아니었음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그냥 롯데와 롯데팬을 까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일부 타팀팬들이 이 민한신이라는 표현을 A 로드 삼구삼진[27]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를 비아냥거리는 의도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에삼 당연히 타팀팬들은 이해를 못하고 지금은 롯데팬들도 그렇게 안 부른다. 아무리 대졸이고 약팀 소속이었던 것을 감안해도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투수인 최동원이나 선동열, 100완투를 기록한 윤학길, 제구력이나 이닝이팅에서 더 나았던 주형광도 신(神)이란 별칭을 못 받았는데 그보다 못한 손민한이 신이라 불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손민한이 롯데 암흑기 시절 홀로 묵묵히 활약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손민한은 FA먹튀, 선수협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롯데에서 은퇴하였다면 충분히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수 있을 만한 선수였다.

2015년 들어 NC팬들 사이에서 2013 ~2014에서 계투로 쏠쏠한 활약을 펼치고 선발에 힘을 실어 주어 다시 "민한신"이라는 별명이 나왔다. 그때는 아직 NC가 신생팀이라 그런지 NC팬들이 타팀팬들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별명을 언급할 때 먼저 '믿을 신 민한신'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 손민한은 믿을 신 민한신에서 정말로 신(神)이라 부를 수 있는 모습이었다.

6.2. 그 외

한때는 민한신이라 불린적도 있었지만 롯데 말년에는 손팝콘, 희대의 먹튀, 팝콘장사, 팝콘알바, 연봉도둑[28]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선수협 사태이후로는 손횡령이라는 별명 추가. 타팀에서는 민한도 유명했다.몸이 물렁해서인지 공이 물렁해서인지 아니면 솜방망이 처벌일지도

선수협 비리 사건 이후, 언급 자체가 적어졌지만 그나마 언급이 많은 야구게임 게시판꼴갤, 채팅 등지에선 손횡령이라는 별명이 흥하고 있다. 그 외에 투구내용은 좋지 못한데 타선지원을 잘 받아 운빨로 승을 챙겨먹는다는 운민한, 상대팀 에이스와 맞붙을 때마다 도망간다는 도망민한 등의 별명이 있었다.

NC 다이노스에서 선수 말년을 보낸 것과 NC에서 최고령 10승, 포스트시즌 최고령 선발승을 거둔 것 때문에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는 손할배라고도 부른다.

이동욱 감독과는 부산 대천중학교 동창이며, 롯데 입단 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함께 나가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다.

7. 기타

  • 1992년 우승을 이뤄낸 염종석보다 누적 WAR이 높고, 삼성왕조 건설 일등공신인 윤성환, 배영수보다 누적 WAR이 높으며, 80년대 중후반대생~90년대 초중반대생 우완선발들 중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윤석민보다 누적 WAR이 더높다. 롯데-NC만을 한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리그에서 역대 15위안에 들어가는 우완이다

파일:attachment/손민한/2014-03-28-19-20-49.jpg
  • 마구마구2014에서 2014년 3월 28일 업데이트 후 05 손민한(가명:김세준현역인데 왜 가명요?그리고 손씨인데 김씨로 가명처리된건 또 뭐지..)의 엘리트 카드가 추가되었다.(다른 추가 엘리트는 07 이종욱, 90 김태원(가명:안영준), 12 박희수, 13 최정, 02 장성호) 그리고 2014년 10월 중순 업데이트에서 본명으로 환원되었다. 다만 아프리카TV 버전에서는 가명 그대로 있다.
  • 정수근에 의하면, 선발 경기 전날에 임페리얼을 마셔 구토를 연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10분 전에 캐치볼만 하고 곧바로 선발 등판하여 완투한적이 있다고 한다.[29] 선발인데 뭐하는거야? 수근아 괜찮아 우웩~ 더 놀라운 사실은, 박명환 선수 썰에 의하면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전 때도 감기몸살로 인해 자고 있어서 선수들이 찾으러 다녔고 경기 10분 전에 캐치볼 하고 바로 나온 거라고... 이럼 A로드는 뭐가 되는걸까
  • 선수시절에 정수근과 같이 바다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붉은 표시는 1위 입상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7 롯데 자이언츠 9 30 1 3 1 - 0.250 4.80 23 2 21 17 17 16 1.43
1998 1군 기록 없음
1999 28 19⅓ 0 0 1 - 0.000 5.59 19 2 7 9 13 12 1.29
2000 29 174⅓ 12 7 0 0 0.632 3.20
(3위)
153 16 61 117 68 62 1.19
2001 23 173⅓ 15
(1위)
6 0 0 0.714
(1위)
4.21 184 18 73 110 89 81 1.46
2002 18 142⅓ 4 9 0 0 0.308 3.67 144 19 34 82 68 58 1.2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3 롯데 자이언츠 42 109⅓ 3 11 0 0 0.214 4.86 115 17 43 54 67 59 1.40
2004 28 108⅔ 9 2 8 0 0.818 2.73 90 8 31 88 36 33 1.10
2005 25 168⅓ 18
(1위)
7 1 0 0.720
(3위)
2.46
(1위)
149 9 40 105 54 46 1.11
2006 30 161⅓ 10 8 1 0 0.556 2.78
(3위)
147 4 48 96 54 50 1.15
2007 30 194
(3위)
13
(4위)
10 0 0 0.565 3.34 191 17 50 95 74 72 1.23
2008 26 179
(2위)
12
(4위)
4 0 0 0.750
(4위)
2.97 183 12 41 80 66 59 1.25
2009 14 69⅓ 6 5 0 0 0.545 5.19 87 3 32 20 41 40 1.66
2010 1군 기록 없음
20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3 NC 다이노스 28 60⅓ 5 6 9 3 0.455 3.43 56 4 26 22 24 23 1.31
2014 52 48⅓ 4 4 1 9 0.500 3.54 56 5 17 23 20 19 1.45
2015 26 105 11 6 0 0 0.647 4.89 122 8 20 50 65 57 1.31
KBO 통산
(18시즌)
388 1743⅓ 123 88 22 12 0.583 3.55 1719 144 544 968 756 687 1.27

9. 수상 및 보유 기록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0년 4완투
(2위)
1완봉
(1위)
2002년 2완투
(5위)
1완봉
(4위)
2003년 1완투
(8위)
0완봉
2005년 1완투
(5위)
0완봉
2006년 2완투
(4위)
1완봉
(3위)
2008년 1완투
(6위)
0완봉
통산 11완투 3완봉
역대 수상
2005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5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수상자
2001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2005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자책점
2001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2006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05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보유 기록
최고령 시즌 10승 만 40세 8개월 9일[30]
포스트시즌 최고령 선발승 만 40세 9개월 19일[31]


[1] FA 먹튀, 재활 태업, 선수협, 은퇴식 발언 등[2] 차명주는 중지가 벗겨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3] 이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당시 개막전이 열린 광주구장이 조명탑 보수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개막전이 오후 2시부터 열렸기때문에 별 일이야 있겠나 싶어 경기를 개시했지만 예상치못하게 경기가 연장에 접어들었고... 연장에서도 한점씩 주고받으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자 해태 프런트 직원들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고 한다. 심지어 광주시내에서 파는 모든 손전등을 구해와 관중들에게 나눠줄 생각까지 했다고. 이런 대위기에서 손민한이 11회말 끝내기 폭투로 경기를 종료시키자 해태 프런트 직원들은 손민한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4] 실제로 WHIP가 MVP시즌보다도 낮다.[5] 이후로도 2012년 박병호밖에 없을 정도로 하위권 팀 선수의 MVP 수상은 힘들다.[6]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신은 神이 아니라 信(믿을 신)이다.[7] 포크볼이며 손민한 본인은 체인지업이라고 부른다[8] 단, 본인의 실점은 1점 뿐이었고, 경기도 1점차로 졌다.[9] 당시 FA는 서류상으로는 무조건 1년 계약만 인정이 되었다. FA 재취득 기간이 4년 후이므로 실제로는 4년 계약이나 다름없긴 했지만... 이에 따르면 연봉 7억을 4년간 그대로 지급한다고 가정할 때 손민한의 실제 FA 계약은 4년 43억이 된다.[10] 참고로 LG 트윈스가 롯데보다 더 많은 돈을 책정하고 우선협상 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민한이 우선협상 마지막날 롯데와 계약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11] 롯데에서 통산 100번째 승리를 기록한 투수는 윤학길과 손민한까지 단 2명이다.2017년 8월 송승준이 추가로 달성했다.[12] 최동원도 통산 103승이지만 롯데에서 96승, 삼성에서 7승을 거뒀다.[13] NC에 입단하기로 한 후에 그의 친구이자 前 롯데 선수인 고성범(임수혁 돕기 행사를 진행하는 고깃집인 고성범 연탄구이의 주인맞다. 1993년에 입단했으나 프로에서는 별 활약없이 일찍 은퇴했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신생팀이라서 힘들지 않겠느냐며 만류하는 고성범의 말에 "이번이 선수생활 마지막이다. 한번 열심히 해볼란다"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것을 본 고성범은 손민한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함께 울었다고 한다.[14] 지명타자 이호준이 교체돼서 대주자 이상호가 올라왔으나 2루수로 보직 변경, 지명타자가 소멸되었다. 김혁민을 상대로 볼 1개를 골라냈지만 4구 삼진으로 물러났다.[15] 이전 기록은 송진우가 가지고 있었다.[16] NC에서 이번에 새로 만든 NC 출신 선수들의 OB회이며, 어린 선수들의 멘토격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17] 프로라 말하기에도 어폐가 있는 롯데의 수비 수준을 감안한다면 MVP급 성적을 거둔 2005년에 비해 모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한화수비급[18] 주형광보다 1년 선배지만 대학에 진학해서 데뷔는 더 늦었고 부상때문에 손민한이 고생한것도 있어 손민한이 전성기를 구가할때 주형광은 혹사후유증으로 입은 부상때문에 재활군에 있었고 결국 2007년에 은퇴했다.[19] 본인은 체인지업이라 부른다. 포크볼도 체인지업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한다. 본인이 가장 자신있는 구질로 체인지업을 꼽기도 했다.[20] 한때 크보 최강의 포크볼러였던 조정훈이 바로 손민한의 포크볼 그립을 보고 연습했다고한다.[21] 그 유명한 에이로드 삼구삼진 당시 던졌던 공 모두가 바로 이 포크볼이었다.[22] 그나마 2005년은 선발로 뛰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MVP가 되긴했다.[23] 이 부분은 롯데 입장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고액선수 연봉 감액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재활에 충실하라고 연봉 전액을 지급했는데 그 동안 선수협활동만 하면서 재활을 소홀히 했고 거기다 횡령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이미 구단에서 찍힌 상태였다.[24] 야구장 직관은 엄연히 돈 내고 봐야 하며, 당연한 얘기지만 그 어떤 관중도 자기 응원팀이 초장부터 시원하게 무너지는 꼬락서니를 돈까지 내면서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25] 예 : 마... 민한신 있으니께 괘안타... 라는 등으로.[26] 이 선수의 커리어 하이는 97년인데 이 해도 롯데가 꼴지를 했던 해다. 이상하게 팀이 못할때만 잘했던 선수.[27] 2006년 WBC 미국전 선발등판에서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라고 할 수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줄여서 약로드 A 로드)를 삼구삼진으로 잡은 일이 있었다.[28] 롯데 자이언츠를 퇴단하기 전까지 그가 10, 11시즌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으면서 고스란히 받아간 연봉이 1억 6천도 아니고 1년 6억이다!![29] https://www.twitch.tv/videos/22820200 3:37:00 부근 부터[30] 2015년 9월 11일 마산 넥센[31] 2015년 10월 21일 잠실 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