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8 02:46:42

최동원

파일:Semi_protect.svg   로그인 후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최동원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롯데 자이언츠 영구결번
파일:cdw_11.jpg

최동원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wiki style="margin: 0 -11px -5px"
{{{#182132,#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1px"
{{{#000000,#E5E5E5
1982 1983 1984 1985 1986
황태환
OB 베어스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1992 1993 1994 1995 1996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이상훈
LG 트윈스
구대성
한화 이글스
1997 1998 1999 2000 2001
이대진
해태 타이거즈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임선동
현대 유니콘스
신윤호
LG 트윈스
2002 2003 2004 2005 2006
송진우
한화 이글스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류현진
한화 이글스
2007 2008 2009 2010 2011
리오스
두산 베어스
김광현
SK 와이번스
로페즈
KIA 타이거즈
류현진
한화 이글스
윤석민
KIA 타이거즈
2012 2013 2014 2015 2016
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손승락
넥센 히어로즈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해커
NC 다이노스
니퍼트
두산 베어스
2017 2018 2019 2020 2021
양현종
KIA 타이거즈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미란다
두산 베어스
}}}}}}}}}}}}}}} ||
파일:KBO 리그 로고.svg
프로야구 40주년 기념 포지션별 올스타
in 2022. 1. 3. 일간스포츠

OF

OF

OF

SS

2B

3B

1B

C

SP

SP

SP

SP

SP

CP

CP


파일:옛날롯데.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4

파일:KBO 리그 로고.svg
1984 KBO 리그 MVP

파일:KBO 리그 로고.svg
1984 KBO 리그 다승왕

보유 기록
223K[1][2] 국내 선수 및 우완투수 한 시즌 최다 탈삼진
4승[3]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승
}}} ||
최동원의 역대 등번호 /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c1c24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김일환
(1982)
최동원
(1983~1988)
김청수
(1989~1994)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홍성연
(1988)
최동원
(1989~1990)
최일언
(1991)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75번}}}
조대현 최동원
(2001)
이철성
(2004)
이철성
(2004)
최동원
(2005~2008)
백재호
(2009)
{{{#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이정민
(2009~2011.9.29.)
최동원 영구결번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6600><tablebg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한화 이글스 2군
역대 감독
(빙그레 시절 포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대 2대 3대 4대
정연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백기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
감독대행
정구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
이희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5~1996)
김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
5대 6대 7대 8대 9대
김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
유승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박용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3)
유종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
손상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
9대 10대 11대 12대 13대
백기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
최동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08)
우경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9)
정영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2012)
이정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2015)
14대 15대 16대 17대
전대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
최계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9)
최원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감독대행
전상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최원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
}}}}}}}}} ||

}}} ||
}}} ||
파일:레전드11최동원.jpg
<colbgcolor=#002955><colcolor=#c8ab37> 롯데 자이언츠 No.11
최동원
崔東原 / Choi Dong-Won
출생 1958년 5월 24일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면[4] 북변리[5][6]
사망 2011년 9월 14일 (향년 53세)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7]
본관 경주 최씨
국적 [[대한민국|]]
학력 구덕초 - 경남중 - 파일:Ag2Mzmf.jpg 경남고 - 파일:연세대학교 문장.svg 연세대[8]
신체 179cm, 95kg[9]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가족 아버지 최윤식, 어머니 김정자,[10] 동생 최수원, 부인 신현주, 아들 최기호[11]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롯데)
소속팀 파일:lotte_giants_primary.png 롯데 자이언트 (1981)
파일:attachment/nasunelec_logo.jpg 한국전력 (1982)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롯데 자이언츠 (1983~1988)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9).svg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삼성 라이온즈 (1989~1990)
지도자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1, 2005~2006)[12]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07~2008)
해설위원 파일:SBS 로고 1994.svg 해설위원 (1993~1995)
파일:부산MBC 로고.svg 해설위원 (2000)[13]
파일:KBS N SPORTS 로고(2006~2014).svg 해설위원 (2003~2005)
병역 예술체육요원[14]
종교 개신교[15]
기타 KBO 경기감독관 (2009~2011)
묘소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16]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최동원과 선동열
4.1. 미디어 믹스
5. 선거 이력6. 소속 정당7. 여담8. 기록9. 수상 내역10. 연도별 성적

[clearfix]

1. 개요

파일:최동원.jpg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10914150415.944.jpg
{{{#white 한국 야구를 함께 빛낸 대투수 [[선동열|선동열]], [[김시진|김시진]]과 함께.[17]18+11=29.]}}}
그때 감독님이 그러더라고,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알겠심더. 마, 함 해 보입시더."[18]
스포츠 2.0과의 인터뷰 중

대한민국의 前 야구인. 현역 시절 선동열과 함께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한 양대산맥으로 손꼽히는 투수이자 롯데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선수로 야구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사후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영구결번을 받았다. 더 놀라운 건, 아마 시절에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19] 혹사에 시달린 후 프로에 데뷔했음에도 프로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의 투구 폼은 용틀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역동적이었으며, 자기 공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그것은 일본의 선진 야구를 배우게 한 아버지의 덕이 컸었다.[20] 부산에서 시청 가능하던 일본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을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최동원의 전매특허인 드롭[21]이 바로 호리우치의 주무기였다.

공격적인 투구 성향으로 피홈런율이 상당히 높았다.[22] 더불어 통산 고의사구가 15개밖에 안 된다. 1년에 2개도 안 던진 셈. 정말로 공격적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아마 때부터 혹사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프로 입단 당시부터 부상을 달고 살아서 구속이 많이 느려지고 고생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진가가 드러나 몇 년간 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나와 이닝을 소화했다. 덕분에 장명부 다음으로 많은 284.2이닝을 던졌으며, 역대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2위 기록인 223K를 기록한다. 이 기록은 2021 시즌 두산 베어스아리엘 미란다가 경신할때 까지 37시즌 동안이나 깨지지 않은 기록이었다. 참고로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이가 1996년 221K를 기록한 주형광이었다. 류현진조차도 200K 시즌은 2번(2006년, 2012년) 있었지만 끝내 최동원의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투구 전 송진가루, 신발끈, 겉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로 만지고 공을 던지는 루틴이 있었다.
그를 불후의 전설로 만든 1984 한국시리즈
KBS 스페셜 “무쇠팔 최동원, 인생을 던지다“ (2011)

2. 선수 경력

최동원의 선수 경력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통합 선수 경력: 최동원/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svg
고교야구 시절 대학야구 시절 실업 시절 1983년
1984년 1985~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 ||

2.1. 은퇴 이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최동원/은퇴 이후의 삶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파일:OgLrxUs.gif
파일:j46qf8e.gif 파일:Q80pzt0.gif
특유의 폭포수 커브
파일:J2kWzPp.gif 파일:gDYEDp3.gif
투심 슬라이더[23]
파일:9vsDmaB.gif 파일:ZClL1TN.gif
스플리터성 역회전 공, 본인은 떨어지는 공이라고 부른다.
파일:attachment/f0018015_4e75c8af9bbae.jpg
밴쿠버 썬의 자료에 따르면 싱커도 던졌던 걸로 나와있다. 어쩌면 위의 움짤의 역회전 공이 싱커일 수도.
KBO 역사상 최고의 마구를 던졌던 파워피쳐. 주 구종은 최고 154km/h까지 나오는 패스트볼커브였는데, 특히 커브는 선동열의 슬라이더와 함께 KBO 역대 최고의 마구라고 평가받는다.[24] 최고 150km/h 초반대의 패스트볼과 빠른 커브, 그리고 완벽히 타이밍을 뺏기 위한 느리고 폭이 큰 커브 등을 무기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게다가 저런 커브볼 자체가 한국프로야구에서도 흔하질 않았기에, 어떻게 보면 최동원은 메이저리그로 따지자면, 커브볼이라는 구종을 도입한 모데카이 브라운이었다. 그 뒤로 정민철, 김상엽 등이 등장했으니..

최동원의 최고구속은 신명철 기자가 최동원과 최윤식씨를(최동원의 아버지를) 직접 취재해서 확인한 바, 1981년 토론토 불루제이스측의 스카우터 웨인 모건이 측정한 96마일(154km), 하지만 최동원이 현역에서 은퇴한 후, 일요일 일요일밤에 출연해서 자신의 최고구속은 156km라고 말으며 이후 또 다른 방송에 출연, 손석희와 인터뷰를 할 때는 157km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1978년]]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방송 중계 중에 측정이 되어 신문에 난 것을 지인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980년대 당시 기사에는 157km가 아닌 153km로 되어 있었다. 또한, 1981년 당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는 최동원의 구속을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으로 평가했었는데, 당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0km에 미치지 못 하는 수준, 평균 138km전후였다.

4. 최동원과 선동열

파일:attachment/sun1.jpg

전성기가 약간 지난 시점에서 프로데뷔를 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크며, 전성기 때의 선동열과 비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일 것이다. 선동열은 최동원을 라이벌이자 존경하는 선배로 인식하였고 최동원 또한 선동열을 라이벌이자 인정하고 존중하는 후배로 인식했다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최동원 VS 선동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1. 미디어 믹스

4.1.1. 영화

4.1.1.1. 퍼펙트 게임
2011년 12월 22일에 개봉한 영화로, 최동원과 선동열의 3번의 선발 맞대결을 그렸다. 조승우·양동근, '퍼펙트게임'서 최동원·선동렬 변신 최동원 역은 조승우가, 선동열 역에는 양동근이 맡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두 레전드가 나란히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4.1.1.2. 1984 최동원
2021년 11월 1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4.1.2. 다큐멘터리

이와는 별도로 2011년 9월 25일 KBS 스페셜 무쇠팔 최동원 인생을 던지다 편이 방송되었다.[25] 야구팬이라면 무조건 감상하자. 이 방송에 나온 바로는 영화 퍼펙트게임 제작진에게 '내 투구폼이 워낙 와일드하기 때문에 배우가 다칠수도 있다. 꼭 정확하게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해당 다큐에서는 민훈기, 박동희[26], 강병철, 유두열, 김시진, 김일융, 한문연, 송승준 등의 인터뷰도 곁들여져 있다. 대본은 스포츠 다큐멘터리 작업을 많이 하는 민혜경 작가가 썼다.

이후에도 2011년 11월 11일에[27] MBC 스페셜에서 불멸의 투수 최동원편이 방송되었다.[28] 직전에 만들어졌던 KBS보다 양이라든가 자료 면에서 풍부하니[29] 팬이라면 보는 것을 추천. 중간에 보면 은퇴 이후에도 팬들이 편지를 보내거나 하면 빠짐없이 답장엽서를 보낸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에 롯데 자이언츠라는 문구가 있다. 자신을 그렇게 내팽겨쳤던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롯데 자이언츠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

2021년, 10주기를 맞아, KBS부산에서 다큐멘터리 '철완 최동원 시대와 승부하다'가 방영됐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구성으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영상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91 1991년 지방선거 (부산직할시의회 서구 1선거구)

파일:민주당 1990년 글자.svg
10,667 (37.8%) 낙선 (2위)
역대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최동원벽보.jpg
1991년 지선 (부산 서구 1) }}}}}}}}}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파일:민주당 1990년 글자.svg
1991 정계 입문


[[무소속|
무소속
]]
1991 - 2011 탈당
정계 은퇴

7. 여담

  • 최동원의 부친 최윤식 씨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상이용사였고 모친 김정자 여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30] 특히 최윤식 씨는 생전 최동원의 실질적 에이전트를 자처하며[31]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따라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연봉 협상 때도 롯데 프런트와 만나 협상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1988년 초 연봉 협상 과정에서는 박종환 당시 롯데 전무와 갈등을 일으킨 적도 있다. 최동원 90만원 사건 참조. 김정자 여사는 교사 경력을 살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강좌 등에도 나선다고 전해지며 후술하는 것처럼 아들의 동상을 자주 찾고 있다.
  • 롯데의 계약금 미지급으로 시작된 최동원과 롯데의 갈등 역사는 연봉 협상 및 지급을 둘러싼 갈등, 선수협 창설 과정에서 보복성 트레이드 단행 등으로 뿌리가 깊다. 최동원의 팬들이 도저히 롯데를 좋아할 수 없게 만든 사건들이 많았는데 상세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논란 및 사건사고/구단 관련 문서 참조.
  • 평소 생활도 소탈했다고 한다. 오로지 야구밖에 몰랐던 그는 경기장 밖에서는 대부분 추리닝 차림새에 , 담배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고기조차 거의 안 먹었다고...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모친 김정자 여사가 해주던 김치쌈이었는데, 실제로 1980년대 모 잡지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여름 보양식에 대해 인터뷰를 할 적에 다른 선수들은 보약, 장어, 홍삼 등 오만 보양식을 논했지만, 최동원은 찬 물에 밥 말아서 김치 싸먹으면 그게 보양식이라는 대답을 했다고... 물론 고기나 보약 같은 선물들이 들어올 때가 있긴 했지만 항상 지인들에게 나눠줬고, 특히 1958년 개띠라서 에 대해 애착을 보였던지라 누군가 개소주를 보내주면 진심으로 화냈다는 일화가 있다. 유일하게 보양식으로 먹었던 것이 인삼대추를 달인 물. 그런데 정작 서구화된 식습관이 주 원인으로 지목받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놓고 자존심이 강한 최동원이 롯데에서 트레이드된 이후 겪었던 엄청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기도 한데, 야구를 그만두고 평생 입에 대 본 적이 없는 술을 마셨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 최동원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
  • 그라운드에서의 자신만만하고 오만하기까지한 이미지와는 달리 사적으로 만나면 겸손하고 수수했다고... 1990년대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을 보면 구수한 말투에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 이선희, 장효조와 더불어 프로야구가 5년만 일찍 생겼더라면의 단골 떡밥 중 하나다.
  • 차가워보이는 이미지의 선수였지만 팬 서비스가 매우 좋았던 선수였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싸인 요청에도 절대 찡그리지 않고 싸인을 다 해줬고 자신의 앞으로 온 팬레터에는 한 장도 빼놓지 않고 사비를 털어서 만든 싸인 엽서에 감사 인사와 싸인을 해서 답장을 전했다고 한다. 이후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삼성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이후에도 자신에게 싸인을 요청하는 롯데 팬들에게 변함없이 친절하게 싸인을 해줬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롯데 팬에게 싸인을 해주던 최동원과 그에게 싸인을 받은 롯데 팬이 모두 뒤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는 점이다. 팬들을 위한 최동원의 마음은 그의 별세 직후 방영된 MBC 스페셜에도 나오는데 프로그램 막바지에 모친 김정자 여사가 자택에 보관하던 싸인 엽서 뭉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동원이 삼성으로 이적한 이후는 물론 은퇴한 이후에도 팬레터에 대한 답장으로 써줬다는 그 싸인 엽서에는 롯데 자이언츠 11번 최동원이라는 글씨가 너무도 선명히 적혀 있었다. 자신을 매몰차게 버렸던 구단이었지만 끝까지 롯데를 잊지 않았던 최동원의 생전 모습에 많은 롯데 팬들이 눈물을 흘렸고 롯데 구단에 분노했다.
  • 정치적 이유로 각종 데모와 시위가 많던 1980년대, 시위에 참여하는 군중 속에 끼어있던 최동원 선수에게 놀란 행인들이 혹시 야구선수 최동원 아니냐고 묻자, "예, 저 최동원 맞심더." 하고 태연하게 시위를 계속하더라는 일화가 있다.(2011년 9월 방영된 KBS 스페셜 참조) 그리고 1980년대 말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시기, 부산지역 언론노조에서 총파업을 했을 때 무기명 후원금을 기탁했다고도 한다.(MBC 다큐스페셜 '불멸의 투수, 최동원' 참조)
  • 동료 선수들의 기본생계권을 보장하기 위해 선수협을 창단했던 것을 보면 야구실력뿐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의감과 소명감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실력뿐 아니라 인성까지 갖추었던 진정한 1인자.
  • NC 다이노스 창단 당시 초대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른 사람들 중 1인이었다. 특히 NC의 김택진 구단주가 어린 시절부터 최동원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에 영입이 강력하게 추진됐다. 당시에는 암 투병 중이었기 때문에 무산되고 그 대신 건강이 회복된 뒤에 프런트나 코칭스태프로 모셔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끝내 최동원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별세하면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김택진 구단주는 김경문 감독과 함께 최동원의 빈소를 찾았는데 조문 후 인터뷰에서 "최동원 선수는 제 마음 속에 영원한 별이십니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결국 NC 다이노스가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김택진 구단주가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가지고 최동원의 묘소를 찾았다. 이에 최동원의 모친 김정자 여사가 김택진 구단주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 2012년 9월 11일 사직 야구장 두산 베어스 vs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그의 아들인 최기호 군의 시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는 못 속이는지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과 묵직한 구위를 선보이며 팬들을 아련하게 만들었다.[32] 타석에 있었던 이종욱이 놀랐을 정도.
  • 2012년 10월 25일, 매니지먼트 게임인 프로야구매니저는 원년시즌까지의 선수카드를 업데이트 했으며 최동원이 활약했던 시즌의 카드를 업데이트했다. 특히 한국시리즈 4승의 역투로 기억되는 1984년 카드는 EX카드로 나와 최동원을 모르는 어린 야구팬들도 최동원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파일:attachment/영원우표/Korea_stamp.jpg
    영원우표가 발매되었다.
  • 2014년 4월 17일, 한국판 사이 영 상최동원 상이 탄생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2015년 2월 5일, 불법 소금물 관장 시술을 하던 목사 부부가 체포되었는데 이들이 진행한 9박 10일 캠프에 암 투병 중이던 최동원도 사기를 당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33]
  • 2015년 3월 28일, 최동원 모친 김정자 여사가 2015 한국 프로야구 kt wiz롯데 자이언츠의 개막전 경기에 앞서 시구를 했다. 최동원의 현역시절 투구폼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서 많은 롯데팬들의 기대를 받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비슷하게 투구폼을 소화해냈다. 투구폼 뿐만 아니라 생전 공을 던지기전에 버릇[34]까지 똑같이 보여주면서 뭇 야구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 2015년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빅토르 메사가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그에 관해 언급했다.(위 멘트 참고)
  • 원년팬의 평가
  •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는 과정에서는 당시 감독이었던 박영길의 인맥이 작용했었는데, 박영길은 최동원의 조부가 부산 충무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었을 때 만든 야구부에서 야구를 배웠다고 한다. 이로 인해 박영길 감독이 최동원을 롯데로 데려올 때 조부의 도움을 받았었다고.
  • 롯데 구단은 2016년 11월 1일자로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 군을 육성팀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 어머니 김정자씨가 자주 사직구장 광장에 있는 아들의 동상을 보러 가시는게 포착되어 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셨다.
  • 2017년 부산KBS의 '부네스코 위원회'라는 프로그램에서 부산을 상징하는 인물로 최동원을 다뤘다.
  • 조종규 전 심판위원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 5명을 뽑아 달라는 질문에 그 첫 번째로 서슴없이 최동원을 꼽았다. 카리스마 있는 피칭, 연투능력, 그리고 승리에 대해 투철했던 집념을 이유로 들었다. 참고로 나머지 4인은 선동렬, 김시진, 송진우, 류현진을 순으로 꼽았다.
  •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허구연은 자신이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빈볼을 가장 잘 던지는 투수로 최동원을 꼽았다. 최동원은 때리겠다고 하면 진짜로 때렸다고...최동원이 빈볼을 때릴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타석의 타자들이 멀찍이 물러서서 볼을 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할 정도였다고.
  • 우여곡절 끝에 최동원 동상이 사직구장 앞에 세워졌지만 정작 그 대우는 헛웃음이 나온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동상 근처에서 담배를 피는 건 양반이고, 침을 뱉거나 쓰레기 투척에 대소변을 보는 일까지 빈번하게 터진다. 특히 2019년 5월 14일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최동원 동상을 발로 밟고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부산대학교 전체에 망신살이 뻗쳤을 정도. 참고로 이곳은 최동원의 노모가 자주 들리는 곳이기에 그야말로 고인은 물론 유족의 가슴에 피멍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들어 팬들이 직접 쓰레기를 치우는 등 관리를 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대우가 롯데 팬들에게는 씁쓸한 흑역사로 남았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성한이 술회하기를 김성한이 유독 상대하기 힘들었던 투수가 최동원이었고 실제로 최동원의 투구에 손목을 맞아 골절상을 입고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대전적은 김성한이 괜찮았다고 한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건열은 정해진 포지션 없이 땜빵으로 떠돌기만 하다가 김성한의 부상 당시 주전 1루수로 계속 출전기회를 얻으면서 괜찮은 타격성적을 기록했으나 김성한이 무려 2주만에 복귀하자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8. 기록

  • 5년연속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 2년연속 225이닝-14완투-1점대 ERA-1점대 FIP
  • 5년연속 208이닝-14완투-2점대이하 ERA-2점대이하 FIP
  • 5년연속 전구단 상대 완투
  • 6년연속 선발승 전경기 완투승
  • 6년연속 선발등판경기 2/3이상 완투
  • 3년 776.2이닝 66승 45완투 1.97ERA 1.86FIP (3년간 연평균 259이닝-22승-15완투)
  • 4년 1000.2이닝 80승 60완투 2.16ERA 1.95FIP (4년간 연평균 250이닝-20승-15완투)
  • 5년 1209.1이닝 89승 76완투 2.28ERA 2.05FIP (5년간 연평균 242이닝-18승-15완투)
  • 1984년 324.2이닝 31승 6세 18완투 258탈삼진, 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시리즈 40이닝 4승 4완투 포함)
  • 단일 한국시리즈 8개 부분 1위 (이닝, 다승, 선발등판, 선발승, 완투, 완투승, 완봉승, 탈삼진)

통산 기록은 8시즌(248게임, 1414.2이닝)동안 103승 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 WHIP 1.15, 1019탈삼진을 기록. 커리어하이는 1984년 시즌으로 27승(!)[35]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 WHIP 1.04, 223탈삼진[36]을 기록했다.

특이한 기록은 1984년 8월 16일 MBC 청룡을 상대로 '4번 타자'로서 1사 만루 상황에 타자로 나선 일이다. 4번타자 1루수였던 김용철이 자신이 친 타구에 부상을 당하여 물러나자, 지명타자였던 김민호가 1루수로 들어오면서 김용철의 타순에 투수였던 최동원이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MBC 청룡의 투수 유종겸은 앞 타자를 고의사구로 보내고 최동원을 상대했으나, 최동원은 2볼 1스트라이크에서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터뜨렸다. 이것은 그대로 결승타가 되었으며, 유일한 프로에서의 타격 기록이다. 따라서 그는 타율이 10할, OPS가 3.000이다.[37]

9. 수상 내역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1984)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1984)
MVP (1984)
승리 1위 (1984)

10.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3 롯데 38
(5위)
208⅔
(5위)
9 16 4 0.360 2.89 202 17 59 148
(4위)
89 67 1.21
1984 51
(2위)
284⅔
(1위)
27
(1위)
13 6
(5위)
0.675
(4위)
2.40
(4위)
229 18 82 223
(1위)[38][39]
91 76 1.04
1985 42
(5위)
225
(4위)
20
(3위)
9 8
(3위)
0.690
(3위)
1.92
(2위)
170 7 49 161
(2위)
60 48 0.94
1986 39 267
(1위)
19
(2위)
14 2 0.576 1.55
(2위)
204 7 61 208
(2위)
60 46 0.97
1987 32 224
(2위)
14
(4위)
12 2 0.538 2.81 218 6 68 163
(1위)
80 70 1.25
1988 16 83⅓ 7 3 3 0.700 2.05 77 4 25 83
(4위)
24 19 1.21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9 삼성 8 30 1 2 0 0.333 2.10 36 2 19 9 12 7 1.80
1990 22 92 6 5 1 0.545 5.28 113 9 56 24 62 54 1.82
KBO 리그 통산
(8시즌)
248 1414⅔ 103 74 26 0.582 2.46
(2위)[40]
1249 70 419 1019 478 387 1.15
  • 타자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1984 롯데 1 1 1.000 1 1 0 0 2 0 0 1.000 2.000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1983년 16완투
(3위)
1완봉
1984년 14완투
(2위)
1완봉
1985년 14완투
(1위)
4완봉
(1위)
1986년 17완투
(3위)
4완봉
(3위)
1987년 15완투
(2위)
4완봉
(1위)
1988년 3완투 1완봉
1990년 2완투 0완봉
통산 81완투
(2위)
15완봉


[1] 외국인 선수 겸 역대 최다 탈삼진 기록은 두산의 아리엘 미란다[2] 본래 최동원의 기록이었으나 2021시즌 미란다가 37년만에 갱신했다.[3]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3차전, 5차전, 7차전에 모두 선발 등판하고 5차전 패배 후 6차전에 구원 등판하여 구원승을 기록했다. 다시는 나오면 안 되는 혹사가 만들어낸 기록.[4] 1979년에 남해면이 남해읍으로 승격되었다.[5] #,@[6] 국민학교 입학 직전에 부산으로 이주했다고 한다.[7]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100 (백석동) 소재.[8] 경영학과 학사[9] KBO 프로필[10] 초등학교 교사였으며, 교감으로 정년퇴직하였다.[11] 문화방송에서 방영했던 국군 다큐멘터리 '전투도 과학이다'라는 프로에 1사단 기간장병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2012년에 상병이었으니 현재는 예비군도 끝났다.[12] 이 시기 최동원 코치는 스프링캠프에서 KBO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덩치 큰 친구를 발굴해냈다.#[13] #[14] 1980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 #[15] 경상도는 다른 지역들에 비해 불교의 세가 매우 큰 지역으로, 그것을 반영하듯 경상도를 연고로 한 팀들인 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는 역대 선수들 중 불자가 많기로 유명한데, 최동원은 박정태, 조성환과 함께 롯데의 몇 안 되는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으러 절에 가긴 했다.[16] #[17] 1987년 올스타전 당시 모 잡지사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 다음 해인 1988년의 트레이드로 11번과 29번은 유니폼을 서로 바꿔 입게 된다. 이들의 손동작의 의미는 선동열의 등번호와 최동원의 등번호를 더하면 김시진의 등번호가 나온다는 뜻이다. 즉[18] 이 말은 롯데 자이언츠의 2017년 포스트시즌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마 함 해 보입시다![19] 실업야구 코리아시리즈 6경기에 모두 등판(선발로 세 번)하여 무려 42.1이닝을 던졌다. 경기당 평균 7이닝을 소화한 셈.[20] 최동원 선친은 본래 소싯적에 축구에 재능이 있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고, 그 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은 아픈 기억을 안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뒤로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아들의 성장을 위해 헌신했었고, 구설수에 휘말린다 싶으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고 하며 아들을 감쌌다.[21] 낙차 큰 커브.[22] 이후 인터뷰에 보면 정말 대단한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이 보이는데 홈런을 맞으면 다음 상대 때 다시 똑같은 코스에 던져서 "칠테면 쳐봐라. 이번에도 또 치면 넌 실력이었고 못 치면 운이 좋아서 네가 쳤을 뿐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졌었던 게 나온다. 홈런을 허용하고도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었다.[23] 참고로 투심과 슬라이더의 영상은 지칠 대로 지쳐있던 한국시리즈 7차전 영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투구폼이 상당히 무너져 있는 것을 볼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게 슬라이더야, 커브야?"라고 할 정도로 종으로 떨어지는 정도가 이미 한국프로야구 평균을 넘어섰다.[24] 보통 최동원, 정민철, 김상엽을 역대 최고의 커브볼러 3순위로 꼽는다. 에스밀 로저스가 넥센 히어로즈에 있었을 때 굉장한 커브볼을 던져서 삼진을 많이 잡아냈었는데, 올드 롯데 팬들이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커브볼을 보고, 최동원이 생각난다고 했을 정도.[25] 자세히 보면, 처음 최동원의 투구 자세를 재연하는 장면에서 공을 던졌는데 글러브 안에 공이 있다거나 우완투수였던 재연배우가 좌완으로 바뀌어있는 등(이 경우는 다른 영상일 가능성도 있다.)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최동원의 대사. "승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라운드에 들어와서 야구복을 입고 자기의 모든 것을 즐거워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게임한다 그러면 그보다 더 보람된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26] 과거 노리타 전적이 있어서 까이긴 하지만, 원래 이 사람은 최동원을 존경했었다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의 아들 이름을 동원이라고 지은 것이다. 매년 기일에 참석하는 것은 덤.[27] 정확히는 20111111일 밤 11시에 MBC는 11번 채널이다. 등번호 11번의 최동원을 기념하기 위한 너무나도 완벽한 숫자의 조합.[28] 그러나 그시간에 부산MBC에서는 자체방송을 하였다.[29] 다른 것은 몰라도 MBC의 1980년대 KBO 리그 영상자료 보유량은 타 방송사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회사 산하에 MBC 청룡이라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었고 매주 화요일이나 수요일 저녁 시간대에 지상파 프로야구 생중계를 반고정 편성할 정도로 야구를 자주 보여줬다. 각 구장의 경기 영상을 종합해서 보여주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MBC가 먼저였다. 그래서 영상자료가 많다. 이 때문에 유독 MBC에서 옛날 야구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그 방대한 영상자료를 인터넷 다시보기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단점.[30] 교감으로 정년퇴직하였다.[31] 이 당시만 해도 한국프로야구 선수에 대한 에이전트 활동은 허가가 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32] 야구를 배우긴 했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 탓인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만뒀다고 한다. 이후로는 일본 도쿄의 데이쿄 대학교(帝京大学) 경영학과에서 스포츠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33] 최동원이 불법 시술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암 투병 중인 상태에서 시술을 받기 위해 캠프에 참여한 것. 참고로 캠프에 참여하면 9박 10일 동안 매일같이 소금물 관장만 한다. 여담으로 SBS에서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에서도 해당 소금물 관장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최동원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실제로 방영된 영상의 최동원을 보면 롯데팬들 입장에서는 씁쓸함이 절로 밀려올 정도다.[34] 투구 전 송진가루, 신발끈, 겉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로 만지고 공을 던지는 버릇[35] 1983년 장명부의 30승 다음으로 한국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승 2위 기록이다.[36] 이는 2020년까지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다가 2021년 두산 베어스 아리엘 미란다에 의해 경신됐다.[37] 출루율 1.000 + 장타율 2.000[38]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2위.[39] 아리엘 미란다 이전까지 37년간 KBO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40] 1위는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지 다 알 것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