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3 08:34:09

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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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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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84

보유 기록
223개 한 시즌 최다 탈삼진
4승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승

수상 기록
1984년 한국프로야구 MVP
198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1984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1984, 1987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 ||
최동원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김일환(1982) 최동원(1983~1988) 김청수(1989~1994)
이정민(2009~2011.09.29) 영구결번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홍성연(1988) 최동원(1989~1990) 최일언(1991)
한화 이글스 등번호 75번
조대현 최동원(2001~2008) 백재호(2009)
}}} ||
파일:attachment/c7_gudsh123.jpg
현역시절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10914150415.944.jpg
{{{#fff 한국야구의 레전드 투수 선동열, 김시진과 함께.[1]18+11=29. 양쪽 선수의 손모양이나 최동원의 서 있는 자세로 봐서는 양 옆에서 최동원을 떠받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롯데 자이언츠 No.11
최동원(崔東原 / Dong-Won Choi)
생몰년도 1958년 5월 24일
2011년 9월 14일 (향년 53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남해군 [2] [3]
학력 구덕초 - 경남중 - 경남고 - 연세대
신체 179cm, 95kg,* KBO 프로필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십이지 개띠
별자리 쌍둥이자리
가족관계 아버지 최윤식, 어머니 김정자, 동생 최수원, 부인 신현주, 아들 최기호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트 (1981)
한국전력 (1982)
롯데 자이언츠 (1983~1988)
삼성 라이온즈 (1989~1990)
지도자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1, 2005~2006)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07~2008)
종교 개신교[4]
기타 KBO 경기감독관 (2009~2011)
묘소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5]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선수 경력
3.1. 은퇴 이후
4. 최동원과 선동열
4.1. 영상화
5. 여담6. 기록7. 연도별 성적

1. 개요

파일:최동원.jpg
그 때 감독님이 그러더라고,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알겠심더. 마, 함 해 보입시더."
스포츠 2.0과의 인터뷰 中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사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영구결번을 주었다. 혹사가 아니었다면, KBO리그에서 더 대단한 성적을 남길 수도 있었다고 평가받은 무쇠팔. 더 놀라운 건, 이 사람은 아마 시절부터 상상을 초월하는[6] 혹사에 시달려 전성기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 되어 프로에 데뷔했다는 것이다.

그의 투구 폼은 용틀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역동적이었으며, 자기 공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그것은 일본의 선진 야구를 배우게 한 아버지의 덕이 컸었다.[7] 부산에서 시청 가능하던 일본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을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최동원의 전매특허인 드롭[8]이 바로 호리우치의 주무기였다.

공격적인 투구 성향으로 피홈런률이 상당히 높았다.[9] 더불어 통산 고의사구가 15개 밖에 안 된다. 1년에 2개도 안 던진 셈. 정말로 공격적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아마 때부터 혹사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프로 입단 당시부터 부상을 달고 살아서 구속이 많이 느려지고 고생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진가가 드러나 몇 년간 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나와 이닝을 소화했다. 덕분에 장명부 다음으로 많은 284.2이닝을 던졌으며, 한 시즌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인 223K를 기록한다. 이 기록은 2018 시즌 종료 후인 현재까지도 경신되지 않고 있다. 즉, 32시즌이 지나도록 여전히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 참고로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이가 1996년 221K를 기록한 주형광이었다. 현 시대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고 탈삼진왕을 5번이나 차지한 류현진조차도 200K 시즌은 2번(2006년, 2012년) 있었지만 끝내 최동원의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투구 전 송진가루, 신발끈, 겉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로 만지고 공을 던지는 루틴이 있었다.

2. 플레이 스타일

파일:OgLrxUs.gif
주구종은 패스트볼커브였는데 특히 커브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커브라고 평가받는다.[10] 150km/h에 육박하는 패스트볼과 더불어서 빠른 커브, 그리고 완벽히 타이밍을 뺏기 위한 느리고 폭이 큰 커브 등을 무기로 많은 삼진을 잡았다. 공격적인 투구 성향, 그로 인한 좋지 않은 기록[11]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탈삼진을 뽑아냈다.
파일:j46qf8e.gif 파일:Q80pzt0.gif
특유의 폭포수 커브
파일:J2kWzPp.gif 파일:gDYEDp3.gif
투심 슬라이더[12]
파일:9vsDmaB.gif 파일:ZClL1TN.gif
스플리터성 역회전 공[13] 본인 입으로는 떨어지는 공이라고 부른다.

파일:attachment/f0018015_4e75c8af9bbae.jpg
밴쿠버 썬의 자료에 따르면 씽커도 던졌던 걸로 나와있다. 어쩌면 위의 움짤의 역회전 공이 싱커일수도 있다.

최동원의 공식적인 최고구속은 1981년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측정한 155km/h이다. 하지만 1978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시속 159km을 기록했다는 말이 있는데,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등지에 있는 당대 신문 기사에서 기자들은 최동원의 최고구속을 1981년 측정한 155km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159km을 기록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또한, 1981년 당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는 최동원의 구속을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으로 평가했었다. 아쉽게도 1980년대 프로야구는 스피드건이 귀했던지라 프로 시절 최동원의 최고 구속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프로시절 최고구속은 150km/h 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3. 선수 경력

최동원/선수 경력 참고.

3.1. 은퇴 이후

최동원/은퇴 이후의 삶 참고.

4. 최동원과 선동열

파일:attachment/sun1.jpg
전성기가 약간 지난 시점에서 프로데뷔를 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크며, 전성기 때의 선동열과 비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일 것이다. 선동렬은 최동원을 라이벌이자 존경하는 선배로 인식하였고 최동원 또한 선동렬을 라이벌이자 인정하고 존중하는 후배로 인식했다고.

대결과 관련된 항목은 최동원 VS 선동열 항목 참조.

덧붙여 이선희, 장효조와 더불어 프로야구가 5년만 일찍 생겼더라면의 단골 떡밥 중 하나.

4.1. 영상화

2011년 12월 22일에 개봉하는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최동원과 선동열의 3번의 선발 맞대결을 그렸다. 조승우·양동근, '퍼펙트게임'서 최동원·선동렬 변신 최동원 역은 조승우가, 선동열 역에는 양동근이 맡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두 레전드가 나란히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2011년 9월 25일 KBS 스페셜 무쇠팔 최동원 인생을 던지다 편이 방송되었다.[14] 야구팬이라면 무조건 감상하자. 이 방송에 나온 바로는 영화 퍼펙트게임 제작진에게 '내 투구폼이 워낙 와일드하기 때문에 배우가 다칠수도 있다. 꼭 정확하게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해당 다큐에서는 민훈기, 박동희[15], 강병철, 유두열, 김시진, 김일융, 한문연, 송승준 등의 인터뷰도 곁들여져 있다. 대본은 스포츠 다큐멘터리 작업을 많이 하는 민혜경 작가가 썼다.

이후에도 2011년 11월 11일에[16] MBC 스페셜에서 불멸의 투수 최동원편이 방송되었다.[17] 직후에 만들어졌던 KBS보다 양이라든가 자료 면에서 풍부하니[18] 팬이라면 보는 것을 추천. 중간에 보면 은퇴 이후에도 팬들이 편지를 보내거나 하면 빠짐없이 답장엽서를 보낸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에 롯데 자이언츠라는 문구가 있다. 자신을 그렇게 내팽겨쳤던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롯데 자이언츠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

5. 여담

  • 평소 생활도 소탈했다고 한다. 술, 담배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고기조차 거의 안 먹었다고...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모친 김정자 여사가 해주던 김치쌈이었는데, 실제로 1980년대 모 잡지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여름 보양식에 대해 인터뷰를 할 적에 다른 선수들은 보약, 장어, 홍삼 등 오만 보양식을 논했지만 최동원은 찬 물에 밥 말아서 김치 싸먹으면 그게 보양식이라는 대답을 했다고. 물론 고기나 보약같은 선물들이 들어올 때가 있긴 했지만 항상 지인들에게 나눠줬고, 특히 1958년 개띠라서 개에 대해 애착을 보였던지라 누군가 개소주를 보내주면 진심으로 화냈다는 일화가 있다. 유일하게 보양식으로 먹었던 것이 인삼대추를 달인 물. 그런데 정작 서구화된 식습관이 주원인으로 지목받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게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다.[19] 이를 놓고 자존심이 강한 최동원이 롯데에서 트레이드된 이후 겪었던 엄청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기도 한데, 오죽했으면 야구를 그만두고 평생 입에 대 본 적이 없는 술을 마실 법했음에도 주변 사람들 모두 최동원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
  • 그라운드에서의 자신만만하고 오만하기까지한 이미지와는 달리 사적으로 만나면 겸손하고 수수했다고. 1990년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을 보면 구수한 말투에 주위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 정치적 이유로 각종 데모와 시위가 많던 1980년대, 시위에 참여하는 군중속에 끼어있던 최동원 선수에게 놀란 행인들이 혹시 야구선수 최동원 아니냐고 묻자, "예, 저 최동원 맞심더." 하고 태연하게 시위를 계속하더라는 일화가 있다.(2011년 9월 방영된 KBS 스페셜 참조) 그리고 1980년대 말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시기, 부산지역 언론노조에서 총파업을 했을 때 무기명 후원금을 기탁했다고도 한다.(MBC 다큐스페셜 '불멸의 투수, 최동원' 참조)
  • 동료 선수들의 기본생계권을 보장하기 위해 선수협을 창단했던 것을 보면 야구실력뿐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의감과 소명감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실력뿐 아니라 인성까지 갖추었던 진정한 1인자.
  • NC 다이노스 창단 당시 초대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른 사람들 중 1인이었다. 특히 NC의 김택진 구단주가 최동원의 팬이었기 때문에 영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당시에는 암 투병 중이었기 때문에 무산되고 그 대신 건강이 회복된 뒤에 프런트나 코칭스태프로 모셔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끝내 최동원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별세하면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 2012년 9월 11일 사직야구장 두산 베어스 vs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그의 아들인 최기호 군의 시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는 못 속이는지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과 묵직한 구위를 선보이며 팬들을 아련하게 만들었다.[20] 타석에 있었던 이종욱이 놀랐을 정도. 영상
  • 2012년 10월 25일, 매니지먼트 게임인 프로야구매니저는 원년시즌까지의 선수카드를 업데이트 했으며 최동원이 활약했던 시즌의 카드를 업데이트했다. 특히 한국시리즈 4승의 역투로 기억되는 1984년 카드는 EX카드로 나와 최동원을 모르는 어린 야구팬들도 최동원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 2014년 4월 17일, 한국판 사이 영 상최동원 상이 탄생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2015년 2월 5일, 불법 소금물 관장 시술을 하던 목사 부부가 체포되었는데 이들이 진행한 9박 10일 캠프에 암 투병 중이던 최동원도 사기를 당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21]

    (추가) 17.09.14 6주기 시구 영상
  • 2015년 3월 28일, 최동원 모친 김정자 여사가 2015 한국 프로야구 kt 위즈롯데 자이언츠의 개막전 경기에 앞서 시구를 했다. 최동원의 현역시절 투구폼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서 많은 롯데팬들의 기대를 받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비슷하게 투구폼을 소화해냈다. 투구폼 뿐만 아니라 생전 공을 던지기전에 버릇[22]까지 똑같이 보여주면서 뭇 야구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 2015년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빅토르 메사가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그에 관해 언급했다.(위 멘트 참고)
  • 원년팬의 평가
  •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는 과정에서는 당시 감독이었던 박영길의 인맥이 작용했었는데, 박영길은 최동원의 조부가 부산 충무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었을 때 만든 야구부에서 야구를 배웠다고 한다. 이로 인해 박영길 감독이 최동원을 롯데로 데려올 때 조부의 도움을 받았었다고.
  • 롯데 구단은 2016년 11월 1일자로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 군을 육성팀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 어머니 김정자씨가 자주 사직구장 광장에 있는 아들의 동상을 보러 가시는게 포착되어 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셨다. 수영구에 있는 집에서 구장까지 지하철로 40분이 걸리는데, 한번 들르면 1-2시간은 보내신다고 한다.
  • 그리고 시사IN은 이걸 소재로 정치적인 만평을 실었는데, 최동원과 그 가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만평의 소재로 삼은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패륜적인 모습으로 이용하는 사고를 터트렸다. 욕을 엄청나게 먹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그 사과문 자체도 정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이미지가 시궁창에 빠진 상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 전술했듯 최동원이 1988년 선수협회를 만들기 위해 찾았던 변호사가 바로 문재인이었다. 문재인이 직접 상담했고 이는 문재인 본인이 2016년 11월에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훗날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를 하게 되는데, 이 날 구심이 우연찮게도 최동원의 동생 최수원 심판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마운드 위에서야 구본능 KBO 총재로부터 전해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깜짝 놀라며 반가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 2017년 부산KBS의 '부네스코 위원회'라는 프로그램에서 부산을 상징하는 인물로 최동원을 다뤘다.

6. 기록

  • 5년연속 규정이닝 2배이상 투구
  • 2년연속 225이닝-14완투-1점대 ERA-1점대 FIP
  • 5년연속 208이닝-14완투-2점대이하 ERA-2점대이하 FIP
  • 5년연속 전구단 상대 완투
  • 6년연속 선발승 전경기 완투승
  • 6년연속 선발등판경기 2/3이상 완투
  • 3년 776.2이닝 66승 45완투 1.97ERA 1.86FIP (3년간 연평균 259이닝-22승-15완투)
  • 4년 1000.2이닝 80승 60완투 2.16ERA 1.95FIP (4년간 연평균 250이닝-20승-15완투)
  • 5년 1209.1이닝 89승 76완투 2.28ERA 2.05FIP (5년간 연평균 242이닝-18승-15완투)
  • 1984년 324.2이닝 31승 6세 18완투 258탈삼진, 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시리즈 40이닝 4승 4완투 포함)
  • 단일 한국시리즈 8개 부분 1위 (이닝, 다승, 선발등판, 선발승, 완투, 완투승, 완봉승, 탈삼진)
통산 기록은 8시즌(248게임, 1414.2이닝)동안 103승 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 , WHIP 1.15, 1019탈삼진을 기록. 커리어하이는 1984년 시즌으로 27승(!)[23]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 WHIP 1.04, 223탈삼진[24]을 기록했다.

특이한 기록은 1984년 8월 16일 MBC 청룡을 상대로 '4번 타자'로서 1사 만루 상황에 2타점 적시 2루타를 때린 기록이 있다. 4번타자 1루수였던 김용철이 자신이 친 타구에 부상을 당하여 물러나자, 지명타자였던 김민호가 1루수로 들어오면서 김용철의 타순에 투수였던 최동원이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결승타가 되었으며, 유일한 프로에서의 타격 기록이다. 따라서 그는 타율이 10할, OPS가 3.000이다.[25]

7. 연도별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3 롯데 38
(5위)
208⅔
(5위)
9 16 4 0.360 2.89 202 17 59 148
(4위)
89 67 1.21
1984 51
(2위)
284⅔
(1위)
27
(1위)
13 6
(5위)
0.675
(4위)
2.40
(4위)
229 18 82 223
(1위)
91 76 1.04
1985 42
(5위)
225
(4위)
20
(3위)
9 8
(3위)
0.690
(3위)
1.92
(2위)
170 7 49 161
(2위)
60 48 0.94
1986 39 267
(1위)
19
(2위)
14 2 0.576 1.55
(2위)
204 7 61 208
(2위)
60 46 0.97
1987 32 224
(2위)
14
(4위)
12 2 0.538 2.81 218 6 68 163
(1위)
80 70 1.25
1988 16 83⅓ 7 3 3 0.700 2.05 77 4 25 83
(4위)
24 19 1.21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9 삼성 8 30 1 2 0 0.333 2.10 36 2 19 9 12 7 1.80
1990 22 92 6 5 1 0.545 5.28 113 9 56 24 62 54 1.82
KBO 통산
(8시즌)
248 1414⅔ 103 74 26 0.582 2.46
(2위)
1249 70 419 1019 478 387 1.15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1984 롯데 1 1 1.000 1 1 0 0 2 0 0 1.000 2.000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1983년 16완투
(3위)
1완봉
1984년 14완투
(2위)
1완봉
1985년 14완투
(1위)
4완봉
(1위)
1986년 17완투
(3위)
4완봉
(3위)
1987년 15완투
(2위)
4완봉
(1위)
1988년 3완투 1완봉
1990년 2완투 0완봉
통산 81완투
(2위)
15완봉

[1] 1987년 올스타전 당시 모 잡지사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 다음 해인 1988년의 트레이드로 11번과 29번은 유니폼을 서로 바꿔 입게 된다. 이들의 손동작의 의미는 선동열의 등번호와 최동원의 등번호를 더하면 김시진의 등번호가 나온다는 뜻이다. 즉[2] #, #[3] 국민학교 입학 직전에 부산으로 이주했다고 한다.[4]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불교의 세가 매우 큰데 그것을 반영하듯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중에는 불교 신자가 많으며 박정태, 조성환과 함께 몇 안 되는 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5] #[6] 실업야구 코리아시리즈 6경기에 모두 등판(선발로 세 번)하여 무려 42.1이닝을 던졌다. 경기당 평균 7이닝을 소화한 셈.[7] 최동원 선친은 본래 소싯적에 축구에 재능이 있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고, 그 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은 아픈 기억을 안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뒤로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아들의 성장을 위해 헌신했었고, 구설수에 휘말린다 싶으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고 하며 아들을 감쌌다.[8] 낙차 큰 커브.[9] 이후 인터뷰에 보면 정말 대단한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이 보이는데 홈런을 맞으면 다음 상대 때 다시 똑같은 코스에 던져서 "칠테면 쳐봐라. 이번에도 또 치면 넌 실력이었고 못 치면 운이 좋아서 네가 쳤을 뿐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졌었던 게 나온다. 홈런을 허용하고도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었다.[10] 보통 최동원, 정민철, 김상엽을 역대 최고의 커브볼러 3순위로 꼽는다.[11] 피안타, 피홈런, 볼넷[12] 참고로 투심과 슬라이더의 영상은 지칠대로 지쳐있던 한국시리즈 7차전 영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투구폼이 상당히 무너져있는것을 볼수있다.[13] 흔히 슈트라고 부르는데 슈트는 구질이 아니라 구종을 말한다. 싱커나 포크볼 등이 슈트성 공에 포함된다.[14] 자세히 보면, 처음 최동원의 투구 자세를 재연하는 장면에서 공을 던졌는데 글러브 안에 공이 있다거나 우완투수였던 재연배우가 좌완으로 바뀌어있는 등(이 경우는 재다른 영상일 가능성도 있다.)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최동원의 대사. "승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라운드에 들어와서 야구복을 입고 자기의 모든 것을 즐거워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게임한다 그러면 그보다 더 보람된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15] 과거 노리타 전적이 있어서 까이긴 하지만, 원래 이 사람은 최동원을 존경했었다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의 아들 이름을 동원이라고 지은 것이다. 매년 기일에 참석하는 것은 덤.[16] 정확히는 20111111일 밤 11시에 MBC는 11번 채널이다. 등번호 11번의 최동원을 기념하기 위한 너무나도 완벽한 숫자의 조합.[17] 그러나 그시간에 부산MBC에서는 자체방송을 하였다.[18] 다른 것은 몰라도 MBC의 1980년대 KBO 리그 영상자료 보유량은 타 방송사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회사 산하에 MBC 청룡이라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었고 매주 화요일이나 수요일 저녁 시간대에 지상파 프로야구 생중계를 반고정 편성할 정도로 야구를 자주 보여줬다. 각 구장의 경기 영상을 종합해서 보여주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MBC가 먼저였다. 그래서 영상자료가 많다. 이 때문에 유독 MBC에서 옛날 야구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그 방대한 영상자료를 인터넷 다시보기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단점.[19] 이 부분은 일반 의학으로 의문점이 남지만 한의학에서는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체질상 고기가 맞고 해산물/야채가 잘 안 맞는데, 육식을 금하고 해산물 혹은 야채만 먹는다면 몸에 문제가 올 수 있다는 논리.[20] 야구를 배우긴 했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 탓인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만뒀다고 한다. 이후로는 일본 도쿄의 데이쿄 대학교(帝京大学) 경영학과에서 스포츠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21] 최동원이 불법 시술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암 투병 중인 상태에서 시술을 받기 위해 캠프에 참여한 것. 참고로 캠프에 참여하면 9박 10일동안 매일같이 소금물 관장만 한다. 여담으로 SBS에서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에서도 해당 소금물 관장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최동원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실제로 방영된 영상의 최동원을 보면 롯데팬들 입장에서는 씁쓸함이 절로 밀려올 정도다.[22] 투구 전 송진가루, 신발끈, 겉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로 만지고 공을 던지는 버릇[23] 1983년 장명부의 30승 다음으로 한국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승 2위 기록이다.[24] 이는 2018년 현재까지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이다.[25] 출루율 1.000 + 장타율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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