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7 14:13:50

백기성

백기성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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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1986 1987
1988 1989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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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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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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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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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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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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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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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백기성코치.jpg
이름 백기성(白基成)
생년월일 1949년 3월 27일 ([age(1949-03-27)]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초등학교 - 배문중학교 - 배문고등학교
가족 아들 백승훈
해설자 SBS 라디오 (1997)
소속팀 한일은행(1968~?)
지도자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1980~1981)
해태 타이거즈 주루코치 (1983~1991)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수석코치 (1994~1996)
OB 베어스 1군 코치 (1998)
SK 와이번스 1군 코치 (2000~2001)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2003)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04~2006)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고교야구3.2. 해태 타이거즈 지도자 시절3.3. 야인3.4. 한화 이글스 지도자 1기 시절3.5. OB 베어스 지도자 시절3.6. SK 와이번스 지도자 시절3.7. 한화 이글스 지도자 2기 시절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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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이자 지도자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역전의 명수'로 유명했던 군산상고 야구팀의 감독이자, 1980년대 해태 왕조 시절 김응용 감독의 오른팔과도 같은 존재였다. 여러모로 호남 야구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지도자.

2. 선수 경력

배문고등학교에서 2루수를 맡았으며 한일은행 야구단에 입단하여 김응용 감독의 지도 아래 강문길[1], 강병철, 우용득, 허구연, 김용철 등과 같이 뛰었다.

3. 지도자 경력

고교야구, 한국프로야구에서 코치를 맡았다.

3.1. 고교야구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던 최관수 감독의 후임으로 1980년에 군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해서 이건열, 조계현 등을 키워냈고 1981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1982년에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1983년까지 군산상고 지휘봉을 잡았다.

조계현이 술회하기를 백기성은 스파르타식으로 팀을 조련하여 팀플레이와 수비를 완벽하게 만들었고 아침에 등교하면 식사시간만 제외하고는 연습을 거듭하여 밤늦게 하교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선수들에게 '군산상고 야구부는 군산시민의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군산을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2003년에는 서울고 감독으로 1년간 재직했으나 청룡기 8강의 실적을 내는데 그쳤다.

3.2. 해태 타이거즈 지도자 시절

군산상고 감독이었다가 김동엽(1938)이 감독직에서 해임된 뒤 김응용해태 타이거즈로 부임하면서 코치로 그를 불러들였다. 1983년 김응용 감독이 심판에게 거친 행동으로 6게임 출장정지를 받아 감독대행으로 팀을 지휘한 적이 있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의 창단 후 첫 우승 당시 코치였다.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1988년 한국시리즈, 1989년 한국시리즈, 1991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해태가 차지한 총 9번의 우승 가운데 6번을 함께 했던 셈.

3.3. 야인

1992년 시즌 후 해태 시절 함께했던 김인식 감독이 있는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로 갈 예정이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불발되자 1993년 시즌에 야인으로 지냈으며 1991년 10월 22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태평양 돌핀스 감독에 취임한 정동진 감독이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여 1993년 시즌 뒤 김인식 감독이 정동진 감독 후임설에 거론될 당시 수석 겸 수비코치 물망에 올랐는데 역대 인천 팀 감독 중 계약기간을 채운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던 점 뿐 아니라 주전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전력 공백이 컸던 점을 고려하여 김의광 사장이 정동진 감독에게 마지막 기회를 줘 정동진 감독이 태평양에 그대로 잔류하는 바람에 좌절됐다.

3.4. 한화 이글스 지도자 1기 시절

한일은행 야구단 함께했던 강병철 감독과의 인연으로 1993년 시즌 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온 후 2군 감독과 1군 수석코치를 역임했지만 KBO 준플레이오프/1996년 패퇴에 따른 문책성 해고에 따라 그 해 말 팀을 떠났다.

3.5. OB 베어스 지도자 시절

한일은행 야구단 함께했던 김인식 감독과의 인연으로 1997년 시즌 후 1년 전속계약으로, OB 베어스 코치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는데 KBO 준플레이오프/1998년 패퇴에 따른 문책성 해고에 따라 그 해 말 팀을 떠나 한동안 현장에서 멀어져 있었다.

3.6. SK 와이번스 지도자 시절

2000년 10월에 다시 강병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SK 와이번스 코치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지만,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따른 문책성 해고에 따라 2001년 말 팀을 떠나 또다시 현장 복귀와는 거리가 멀었다.

3.7. 한화 이글스 지도자 2기 시절

2004년 10월 한화 이글스에 김인식 감독이 부임함에 따라 코치로서 합류한다. 2005년 시즌 종료 후 보직을 2군 타격코치에서 2군 감독으로 옮겼다. 2006년 2군 우승을 일궈냈으나 재계약에 실패했다.[2] 그 이후 모 선수의 음해성 투서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으며 고소를 취하한 적이 있다.#

4. 기타

  • 1997년 1년동안 SBS 라디오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 대한민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활동했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송일섭이 술회하기를 대타로 출전 당시 백기성 코치가 '야! 그냥 시원하게 때려버려라!'는 말과 함께 버스터를 지시했고 홈런으로 연결시켰다고 한다. 이 홈런이 본인의 선수 생활 중 기억에 남는 홈런이라고 설명했다.


[1] 단국대 감독 역임[2] 그 과정에서 1군 투수코치였던 최동원이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