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2 14:21:48

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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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종모(金鍾模 / Joung-mo Kim)
생년월일 1959년 11월 1일
출신지 전라남도 화순군
본관 안동 김씨
학교 서림초-동성중-광주상고-영남대
포지션 내야수[1],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제일은행 야구단 (1981)
해태 타이거즈 (1982~1992)
지도자 해태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1993~2000)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01)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02~2003)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6~2007)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08~2009)
광주동성고등학교 감독 (2012)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3~2014)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 (2014)
해설위원 kbc 야구 해설위원 (2018~)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83 1986 1987
1988 1989 1991
1983, 1984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김준환(해태 타이거즈)
양승관(삼미 슈퍼스타즈)
김성관(롯데 자이언츠)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박종훈(OB 베어스)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홍문종(롯데 자이언츠)
이광은(MBC 청룡)
박종훈(OB 베어스)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1986, 1987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이광은(MBC 청룡)
박종훈(OB 베어스)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이광은(MBC 청룡)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이광은(MBC 청룡)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1987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김무종(해태 타이거즈)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한대화(해태 타이거즈)

1. 소개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절4. 해설자 시절5. 기타6. 연도별 성적

1. 소개

한국의 前 야구선수, 前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 해태 타이거즈의 원년 멤버이다. 등번호는 7번[2]. 광주상고 출신.

2.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외야수로서,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등의 거포가 많았던 해태에서 가장 정교했던 교타자로 꼽히면서 펀치력도 준수한 편이었던 전형적인 중장거리형 교타자였다. [3] 컨택능력에 있어서 비교될 선수가 역대 최고의 교타자였던 장효조 뿐일 정도로 빼어난 컨택능력을 자랑했다. 그것을증명하듯 선수시절 김종모에겐 좌효조, 우종모라는 별명이 붙어졌다. 그러나 역시 장효조의 벽은 넘지 못해서 타격왕은 차지하지 못하는 2인자였다.[4]타격 뿐만 아니라 안정감 있는 수비실력으로도 유명해, 265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5] 김성한이나 선동열, 이순철에게 가려져 있지만 1980년대 해태 왕조의 건설에 기여한 공로자였다. 항상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인품도 매우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다.1987년 올스타전에서는 MVP로 뽑히는 등 원년부터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고질적인 허리부상 때문에 경기 출장수가 많지 않은편이다. 현역시절 정말로 공이 너무 좋아 못칠것 같은 투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자신에게 그런 투수는 없었다. 라고 말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1992년 전년도 허리부상등으로 부진을 했지만 몸이 완전히 회복되고 스프링캠프때도 전년과 확연히 달라진 몸상태를 보여 본인과 코칭스태프가 많은 기대를 했지만 시범경기때 공이 구강쪽을 강타하는 불의에 부상을 당해 이로인해 한달여간 제대로 된 식사와 운동을 하지못해 스프링캠프때 몸을 만들어 놓은게 사라지면서 구단의 코치 권유에 의해 은퇴를 하게되었다.

3.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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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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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이후 해태에서 수비코치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스승인 김응용이 2001년부터 삼성감독으로 옮길때 따라 삼성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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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2004년 선동열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자 타격코치로 1년을 있다가, 코치진개편때 잘리고 다시 해태의 후신인 KIA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8년 조범현 감독이 부임할 때 다시 KIA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당시 기아 사장이 자신과 같은 인하대 출신 감독을 원했고 그래서 조범현 감독이 선임이 되었는데 조범현 감독 성적부진을 대비해서 구단에서는 조범현에게 수석코치를 이순철과 김종모 둘중 한명을 선택하라고 했고 조범현은 김종모 수석코치를 선택하여 수석코치로 부임하였다.[6] 수석코치로 당연히 해태와 인연이 없던 OB 출신의 조범현프랜차이즈 출신 김종모를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고... 결국 2009년 KIA 우승으로 조범현의 입지가 크게 강화되자 우승 4일만에 조범현의 입김으로 해임된다.[7] 이에 대해 KIA팬들의 반발이 많았다.

해임 후 광주상무지구에 평소 모밀을 좋아해 종모밀이라는 모밀전문점을 운영하다 2011년 모교 광주동성고 감독으로 선임되어 폐업을 하였다. 2012년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스승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로 영입되었다. 2014년 6월 26일, 김성한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수석코치에 임명되었다. 마찬가지로 공석이 된 타격코치 자리는 장종훈 코치가 전담한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2014년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코치직을 사임(구단의 재계약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의 행보는 불명확하나, 수석코치로 여러 번 우승을 하면서 나름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공석인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기아가 김기태를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그냥 추측으로 끝났다.

4. 해설자 시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18 시즌부터 kbc MyFM에서 KIA 타이거즈 홈경기 야구해설을 맡게 되었다. 캐스터는 참고로 전남 출신 개그맨 양원경. 지역방송이니까 가끔씩 사투리도 섞어가면서 편안하게 해설을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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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야구 해설을 하는데 매 경기마다 캐스터 양원경과 함께 신들린 먹방을(...) 보여주고 있다.

5. 기타

우승복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분이시다. 선수 시절 6개의 우승메달[8]를 건 뒤로, 해태 코치로서 1993, 1996, 1997년 우승. 거기에 2001년에는 김응용감독을 따라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에서 거기서도 우승(2002)을 하며 2005년까지 삼성에 몸을 담았다가, 선동열이 수석코치로 오자 다시 친정인 KIA 타이거즈로 돌아가 2009년까지 타격코치를 하며 KIA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을 맛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김종모가 1군 코치로 부임하는 동안에는 그 팀은 우승한다. 하지만 결국 한화에서는 비밀번호 2자리만 더 늘린 채 팀을 떠나게 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이건열과 더불어 마산아재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타자 헬멧 쓰고 외야 수비를 본 인물로 추정된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해태 77 258 .291 75 12 0 10 43 28 7 20 .453 .342
1983 86 311 .350
(2위)
109
(5위)
17 2 11 44 51 7 29 .524
(4위)
.406
(2위)
1984 74 272 .316
(5위)
86 12 1 14
(5위)
44 38 2 35 .522
(4위)
.394
1985 57 147 .231 34 2 0 4 20 9 1 11 .327 .285
1986 104 383 .313
(2위)
120
(3위)
19 2 11 61
(3위)
59
(5위)
6 42 .460
(5위)
.381
(2위)
1987 88 332 .331
(5위)
110 13 1 9 41 43 2 25 .458 .377
1988 105 353 .300 106 8 2 4 35 36 1 29 .368 .350
1989 57 127 .236 30 4 0 0 16 6 0 10 .268 .288
1990 117 381 .286 109 20 1 10 64 41 0 46 .423 .360
1991 64 155 .206 32 4 1 8 23 15 0 12 .400 .262
1992 21 20 .200 4 0 0 1 4 3 0 6 .350 .385
KBO 통산
(11시즌)
850 2739 .298 815 111 10 82 395 329 26 265 .435 .356


[1] 1983년 당시 3루수로 출장했었다.[2] 이후 이종범의 영구결번으로 처리 된 등번호이기도 하다.[3] 세간의 평으로는 포수 미트에 들어간 공을 꺼내서 치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4] 특히 83년에는 .350의 고타율을 기록하고도 장효조에 밀려 2위를 기록하는데, 이게 역대 타이거즈 역사상 이종범, 김선빈에 이은 3위 기록이다. 프로 통산타율은 0.298인데, 선수 후반기의 부진 때문.[5] 이 기록은 훗날 조원우에 의해 깨진다.[6] 김종모는 자신의 야구철학과 성격이 조범현과 맞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계속해서 거절했으나 새벽까지 이어진 설득과 만약 해임을 할시에 몇달전에 미리 언질을 준다는 확답을 받고 수락하였다고 한다.[7] 선임때 해임전에 미리 언질을 준다는 약속을 했으나 지키지 않고 당일날 해임을 하였다고 한다.[8] 1983, 1986, 1987, 1988, 1989, 1991. 이때까지는 한국시리즈의 우승팀 선수들에게는 우승반지가 아니라 메달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