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08:12:53

조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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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12 이명원 · 21 김남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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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5 유현우 · 16 이동훈 · 27 정휘찬 · 39 권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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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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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퐁황.jpg 1977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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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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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코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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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감독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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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감독)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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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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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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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11)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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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이만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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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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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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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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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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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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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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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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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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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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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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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초대
주성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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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김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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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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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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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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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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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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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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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조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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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류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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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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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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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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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이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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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류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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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25번}}}
팀 창단 조범현
(1982~1990)
김범수
(1991~199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7번
김동호
(1990)
조범현
(1991~1992)
김종국
(1993~1995)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76번}}}
유성기
(1991~1992)
조범현
(1993~1999)
팀 해체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6번
조문식
(1994~1997)
조범현
(2000~2002)
김현욱
(2005~2009)
SK 와이번스 등번호 76번
성준
(2001~2002)
조범현
(2003~2004)
박종훈
(2005~2006)
SK 와이번스 등번호 70번
강병철
(2000~2002)
조범현
(2005)
최태원
(2007)
SK 와이번스 등번호 80번
가토
(2005)
<colbgcolor=#ff6600><colcolor=#fff> 조범현
(2006)
가토
(2007~2011)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99번}}}
결번 조범현
(2007)
장준영
(2008~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70번
성민규
(2007)
조범현
(2008~2011)
홍세완
(2012~201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8번
김태욱
(2011)
조범현
(2013)
구준범
(2014~2014.5.4.)
{{{#ffffff [[kt wiz|kt wiz]] 등번호 70번}}}
팀 창단 조범현
(2014~2016)
배정대
(2018)
}}} ||
}}} ||
파일:조범현 미디어데이.jpg
<colbgcolor=#000000> 수원 파인 이그스 No.70
조범현
曺凡鉉 | Cho Bum-hyun
<colcolor=#ff0000> 출생 1959년 10월 1일 ([age(1959-10-01)]세)[1]
경상북도 의성군[2]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창녕 조씨 (昌寧 曺氏)
학력 대구초등학교 (졸업)
대건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졸업)[3]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신체 177cm, 80kg[4], A형[5]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OB 베어스 (1982~1990)
삼성 라이온즈 (1991~1992)
지도자 쌍방울 레이더스 1군 배터리코치 (1993~1999)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2000~2002)
SK 와이번스 감독 (2003~2006)
KIA 타이거즈 1군 배터리코치 (2007)[6]
KIA 타이거즈 감독 (2008~2011)
삼성 라이온즈 2군 포수 인스트럭터 (2013)
kt wiz 감독 (2013~2016)
수원 파인 이그스 감독 (202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배터리 코치 (200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 (200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0)
경력 KBO 기술위원 (2007)
KBO 육성위원장 (201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2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 (2022~2023)
종교 개신교 (장로회)[7]

1. 개요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주요 성적
3. 지도자 경력4. 지도자 스타일5. 김성근과의 인연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나의 재계약보다 팀의 모습이 우선이다. 내가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ㅡ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대한민국야구인. 現 독립 야구단 수원 파인 이그스의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수.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OB 베어스 소속 선수로 우승,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 코치로 우승,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2009년 페넌트레이스와 함께 통합우승을 한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이다. 거기에 더불어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에서 조범현호를 이끌고 우승하며, 한국프로야구에서 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인물이다.

김상엽처럼 홀수 해에는 좋은 성적을, 짝수 해에는 나쁜 성적을 거둔다는 징크스가 있다. 2003년 2위[8], 2004년 5위, 2005년 3위, 2006년 6위, 2008년 6위, 2009년 1위[9], 2010년 5위, 2011년 4위[10] 그러나 이 법칙은 2015년에 kt wiz가 KBO 사상 첫 10위를 찍으며 깨지고 말았다. 물론 신생팀이라서 꼴찌만 안해도 다행인 시즌이었고 그나마 4월의 부진을 뒤로 하고 댄 블랙 영입 이후로는 그럭저럭 선방했던 시즌이었다.

2. 선수 경력

대구국민학교 4학년 때 그의 운동 신경을 눈 여겨본 체육 선생님의 추천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대건중학교를 거쳐 대구의 3대 야구 명문고인 대건고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다. 대건고등학교 야구부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멤버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1] 그러나 대건고 야구부 해체설이 돌자 조범현은 당시 재창단하여 외부 전학생을 모집하고 있던 공주고등학교 야구부로 전학가게 된다. 그러나 공주고등학교에는 부산고등학교에서 먼저 전학 온 김경문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고 조범현은 몇 개월만에 다시 대건고등학교로 돌아갔다. 대건고등학교는 결국 해체되고 말았는데 이때 김성근 충암고 신임 감독이 대구로 내려와 대건고 야구부 출신 28명 전원을 충암고등학교로 전학 시켰고 조범현도 충암고등학교 야구부로 전학가게 되었다. 1977년 봉황대기에서 충암고등학교가 우승하고 조범현은 MVP를 차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1978년 인하대 체육학과 (1978학번)에 진학했다.
파일:pp9cJhA.jpg
충암고 시절 김성근과 조범현
봉황대기에서 우승하고 MVP를 차지하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범현이 인하대 밖에 가지 못한 것은 매우 의아한 일이다. 라이벌인 김경문이 1977년 대통령배에서 공주고가 우승한 후 MVP를 차지하고 고려대에 진학한 것과 너무나 비교된다. 김성근 감독이 선수끼워팔기를 위해 조범현에게 인하대에 진학하기를 강요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성근은 신일고 감독 때인 1981년 이재홍에게 연세대 진학을 포기하고 동기들과 함께 건국대에 진학하라고 강요했다가 이것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파문이 일어나 결국 신일고 감독에서 경질되었던 적이 있다.
파일:BDdSTXY.jpg
OB 베어스 선수 시절, 감독인 김성근과 함께 항의하는 모습.[12]
1982년 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동기로 김경문이 있다.[13] 둘은 포수 포지션을 두고 원년부터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다. 도루 저지율이 매우 뛰어난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다. 3년 연속 도루 저지율 5할을 넘겼고 1985년에는 당시 프로 통산 역대 최고기록인 5할3푼8리의 도루 저지율을 달성했다. 그러나 공격력이 너무 약한 것이 흠이었다. 데뷔 첫해에 타율 0.271을 기록하며 "공격형 포수"로서의 가능성을 뽐냈으나 이듬해인 1983시즌에 타율이 0.174로 폭락하더니 그대로 은퇴할 때까지 거의 1할대에 머무는 극히 저조한 타격을 보였다. 김경문 역시 수비형 포수로 타격이 나빴고 도루저지율은 오히려 조범현이 조금 더 뛰어났지만 김경문의 타격이 그나마 덜 나빴다. 김성근이 한때 조범현을 선호하여 중용하기도 했지만 출장 경기수를 따져보면 김경문이 조범현을 다소 앞선다.

1991시즌을 앞두고 윤석환과 함께 고향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김성근 신임 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원년부터 삼성 주전 포수 이만수를 마음에 안 들어하여 매우 껄끄러운 관계였던 김성근은 삼성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삼성의 최대 약점이 포수라고 지적하고 며칠 후 조범현을 영입했다. 1991시즌 초 한때 김성근의 중용을 받았고 고향팀에 입단한 조범현 본인도 완전히 회춘하여 자신의 통산 최고 기록에 근접하는 0.261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모습을 보였으나 이만수라는 거대한 존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곧 백업 포수 롤을 맡게 되었다. 이듬해인 1992년에는 급격하게 커리어가 하락하고 말았고 시즌이 끝나고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자 같이 은퇴하게 된다.

2.1.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OB 베어스 48 118 .271 32 7 2 2 9 12 2 6 .415 .307
1983 41 69 .174 12 3 0 0 7 3 0 7 .217 .250
1984 77 175 .194 34 7 2 3 18 16 4 14 .309 .253
1985 87 239 .238 57 8 0 3 33 30 4 15 .310 .281
1986 41 65 .169 11 1 1 1 6 8 3 3 .262 .206
1987 48 80 .150 12 2 0 0 6 3 1 2 .175 .171
1988 58 72 .194 14 0 0 0 3 4 0 2 .194 .213
1989 54 86 .163 14 3 0 1 5 6 1 6 .233 .215
1990 84 102 .137 14 2 0 0 6 8 0 8 .157 .2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삼성 라이온즈 51 61 .262 16 3 0 1 10 11 0 3 .361 .297
1992 26 24 .125 3 1 0 1 4 1 0 1 .292 .160
KBO 통산
(11시즌)
615 1091 .201 219 37 5 12 107 102 15 67 .277 .246

3.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범현/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지도자 스타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범현/지도자 스타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김성근과의 인연

감독으로는 김성근 감독의 제자[14][15] 데이터 야구를 표방한다.[16] 그러나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고 2008 시즌을 보내며 악평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타자에게 맡기는 팀컬러와 다른 감독 스타일과, 2008년 시즌중에 있었던 전병두를 포함한 2대3 트레이드 건이 있다. 주전 포수 김상훈이 부상 당함에 따라 별 수 없었던 트레이드였지만, 해태 시절부터 대대로 좌완, 특히 좌완 투수는 귀한[17] KIA에서 딱 둘 있는 좌완투수 중 한 명인 전병두를 트레이드했기에 팬들이 분노했다. 거기에 대 SK전에는 거의 조공식으로 지다시피했다[18].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상당히 각별했고, 김경문 감독과 악연이 많았다.[19] 조범현은 대구 대건고 야구부였는데, 팀이 해체위기에 놓이자 공주고로 가는데, 김경문에게 밀린다. 다시 대건고로 돌아갔지만 대건고는 결국 해체되고, 결국 서울 충암고로 전학을 가서 야구를 계속한다. 이때 감독이 김성근이었다. 1977년 황금사자기 8강전서 충암고신일고에 패했는데[20], 이때 조범현은 포수마스크로 땅을 치며,“이제 우리 대학 우찌 가노, 우찌 가노...”했다 한다.[21] 여담으로 이는 김성근 감독이 야구인생에서 울어봤던 단 2번의 일 중 하나라고 한다.[22] 다른 한번은 조범현이 삼성에 몸담던 시절인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SK의 관중석에서의 수비 시프트 지시, 사인 훔치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승 후 조범현이 직접 김성근을 찾아가 인사까지 했고 김성근도 답례를 했었다. 조범현의 kt를 김성근이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2016 시즌 초에 하고도 그 이후에도 덕담을 잘만 나눌 정도로 사이가 좋은 편이다. 알려진 이야기로는 김성근 감독의 딸과 친남매 수준이라고 한다.

6. 여담

  •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프로야구 계의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1995년, 2녀 1남 중 막내인 국민학생 아들을 희귀 신장병으로 잃은 비극이 있다. 당시 조범현은 쌍방울 코치였기 때문에 전주시에서 주로 지내야 했고, 아들과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 보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야구인이 된 것을 너무나 후회했다고 한다. 원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는데 아들이 희귀병에 걸리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자주 지방으로 자리를 비워야 할 때 교인들이 가족처럼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게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고 한다. 아들을 잃고 방황했으나 종교의 힘으로 간신히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잃은 아들 생각만 하면 감정이 격해진다고 한다. 물론 현장에서는 슬픈 티를 안 내려고 선수들을 더 열심히 훈련 시켰다고 한다.
  • 별명은 조뱀.[23] 덕분에 최훈카툰에서 모자쓴 으로 묘사된다. 2009시즌 초반의 부진한 모습이 점차 사그라들고 결국 시즌 중반 1위에 오르게되자 조갈량으로 레벨업(?)이 되었다. 최훈카툰에서의 캐릭터묘사도 제갈량 복장의 뱀으로 변경. 그리고 삼국전투기조범도 이 뱀 캐릭터로 등장한다.
  • 감독으로서 징크스가 있는데 홀수해에는 성적이 좋은 편이였다. 홀수해때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에 가을야구까지 할 정도로 성적이 매우 좋았다. 심지어 2009년에는 우승까지 했었다. 반면에 짝수해에는 유독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것과 반대되는 케이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 현역시절, 1987년 7월 26일 무등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11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포일을 범해 역대 최초로 끝내기 포일을 기록하였다.

7. 관련 문서


[1] 호적상 1960년생이나 실제로는 1959년생이다. 링크[2] 포털사이트에는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나와있지만 본인은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이라고 답했다. 사실 의성군과 대구광역시는 옆동네 수준이고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보냈기때문에 대구 출신으로 봐도 무관하다.[3] 대건고등학교공주고등학교 → 대건고등학교 → 충암고등학교[4] 네이버 프로필 기준[5]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5/07/01/2005070170220.html[6] 6월 18일~[7] 기타 문단에 후술하겠지만 크리스천이 된 계기가 1995년에 2녀 1남 중 막내인 국민학생 아들을 희귀 신장병으로 잃은 비극이 있었는데 당시 조범현은 쌍방울 배터리 코치였기 때문에 전주시에서 주로 지내야 했고, 아들과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 보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야구인이 된 것을 너무나 후회했다고 한다. 원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는데 아들이 희귀병에 걸리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부인과 두 딸도 같이 개신교에 귀의했다.[8] SK 감독이었는데,정규시즌 4위였으나 200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KIA를 연달아 꺾었으나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대혈투 끝에 당시 왕조를 구축했던 현대 유니콘스에게 왕좌를 넘겨준다.[9] 2009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2009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및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도 7차전 혈투 끝에 SK 와이번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10] 이마저도 전반기에는 52승 35패 1위로 마감했으나 후반기에 18승 28패로 DTD를 찍어버려 이렇게 된 것이다. 다만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이번에는 SK 와이번스에게 패권을 1승 뒤 3연패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넘겨주고 KIA 타이거즈 감독에서도 사실상 경질되었다.[11]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 원년 멤버의 거의 3할을 대건고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결국은 김성근 덕에 고향팀으로 올수 있었다.[12] 심판과 조범현 사이에 서있는 타자는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였던 포수 심재원.[13] 공주고 출신 김경문은 OB의 충청도 연고지 출신 선수로 먼저 입단이 결정되었고, 충암고 출신 조범현은 MBC와의 서울 연고 2:1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되었다.[14] 김성근이 충암고 감독을 맡았을 때 대구에서 전학온 조범현을 받아 주었고, 이후 OB 감독-선수, 삼성 감독-선수, 쌍방울 감독-배터리코치로 인연을 이어갔다. 이후 쌍방울이 해체된 뒤 2000년부터 조범현은 삼성 1군 배터리코치로 옮겼고, 김성근은 삼성 2군 감독으로 오면서 어찌어찌 인연을 이어갔다.[15] 현역 선수 시절 혹은 코치 시절 김성근 감독 아래서 있었던 걸로 김성근의 제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범현의 경우 그중에서도 애제자로 불렸을 만큼 김성근 감독과 각별한 사이였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의 딸들도 조범현을 '오빠' 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16] 이와 이름으로 인해 얻은 별명이 조뱀이다.[17] 김응용강영식을 그렇게 아낀 이유가 있다. 원래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끌고 오라는게 야구계의 격언이기는 하지만.[18] 2008시즌 대 SK전 4승 14패. 그러나 2009 시즌에는 상대전적에서 앞섰고, 결정적으로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이기고 우승했다.[19] 둘다 코치 첫 커리어는 대구에서 시작했다.[20] 전국대회 4강은 대학스카우트가 보장되는 어마어마한 메리트였다.[21] 이 이야기는 김성근 감독이 쓴 책에도 나와 있다.[22] 그래도 충암고는 그 해 봉황대기배 우승에 성공해서 조범현은 특기생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다.[23] 조범현을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하면 조배맨. 주로 ㅓ,ㅕ 발음을 ㅐ 로 한다. 주호민 을 보면, 후임들이 주호민을 쭈뱀~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2008년의 부진한 성적을 빗대어 호랑인줄 알았는데 뱀이네~ 등의 비하적인 의미도 있었다.[24]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현역 감독들은 모두 2015년 기준으로 21세기에 창단한 야구팀의 감독들이란 점이다.[25] 여담으로 이휘재는 LG, 현대, 두산, KIA에서 뛰었던 심재학 해설위원과 고교 동창이자 절친이라 야구계에 인맥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26] 1960년 생 동갑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건 조범현의 출생신고가 1년 늦어서 그런 것이며, 실제로는 1959년 생이다. 그래서 인하대 입학 시기도 1978년.[27] 그도 그럴 것이 윤석열은 충암중학교와 충암고등학교를 연달아 나온 서울토박이고, 조범현은 대건고등학교, 공주고등학교를 돌고 돌아 충암고로 전학간 케이스이기 때문에 접점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게다가 조범현은 야구부였으나 윤석열은 일반 학생인데다 나이도 달랐으니 서로 마주칠 일도 없었다. 게다가 흔히 운동부는 오전수업만 참석하고 오후에는 훈련만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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