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fff> 宗敎 | Religion |
종교를 정리한 이미지[1] |
1. 개요2. 어원3. 종교의 정의
3.1. 중세 유럽의 정의3.2. 근대 유럽에 나타난 정의3.3. 경건이나 영성 중심의 정의3.4. 실재 인식 중심의 정의3.5. 초자연적 믿음 중심의 정의3.6. 문화적 소속감 중심의 정의3.7. 사회적 기능 중심의 정의3.8. 신화 중심의 정의
4. 개념5. 종교를 둘러싼 담론5.1. 유교는 종교인가?5.2. 종교와 세속 이데올로기는 단절된 체계인가?5.3. 종교와 현대 이데올로기의 융합과 경쟁이 시사하는 것5.4.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자비)인가?
6. 종교의 기원7. 종교의 분포8. 종교의 사회적 기능8.1. 정치적 구심점8.2. 도덕, 윤리, 관습법 제공8.3. 학문의 발전, 교육8.4. 고전적 사회보장제도(복지제도)8.5. 극한 상황의 극복8.6. 사회불안 요소8.7. 헤르만 뤼베의 이론
9. 종교의 심리적 효용 및 신앙심의 발생원인10. 종교의 현재와 미래11. 종교에 대한 비판들12. 각종 오해와 통념들12.1. 소수종교 관련
13. 기타14. 종교의 계통/목록15. 가상의 종교16. 문헌17. 관련 문서1. 개요
종교(宗敎, religion)는 영적인 존재나 초월적 질서에 관한 관행, 도덕, 신념, 믿음 등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 체계나 문화 체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절대적 진리의 추구와 신에 대한 숭배 혹은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거나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결사로 풀이된다. 해당 문서를 다 읽을 시간이 없고, 종교의 본질에 대한 현대 종교학과 인류학의 가장 포괄적인 해석을 알고 싶다면, 아래 문단 중 신화 중심의 정의를 참고할 것.종교는 흔히 특정 신앙 체계나 의례적 실천으로만 이해되기 쉽지만, 사실상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외적)·본능적(내적)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사고하며,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형태를 띤다. 초월적 질서, 선악의 구도, 의례와 상징, 운명과 구원 같은 개념은 단지 특정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과학, 이념, 정치, 심지어 일상적 믿음체계 속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단순한 제도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가 의존하는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인식 구조로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2. 어원
한자문화권에서의 어휘 '종교'(宗敎)는 불교에서 유래했으며, 전통적으로는 '으뜸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해설은 宗(마루 종): 근본, 으뜸, 존귀한 것, 敎(가르칠 교): 가르침, 교훈이다.유럽 언어의 'religion'은 라틴어의 'religio'에서 나온 말로, 근대 일본 학자들이 "religion"을 "宗敎"로 번역한 것에 영향을 받아 근현대 한국 및 중국 등에서도 "宗敎"라는 어휘를 "religion"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키케로는 religio를 '다시 읽다', '정확히 주목하다'를 뜻하는 relegere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신들을 숭배하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기도 하고 다시 읽기도 하기 때문이다. 키케로에 반대하여 신학자 락탄티우스는 religio를 '뒤로 묶다'를 뜻하는 religare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히브리계 종교는 인간을 신 앞에서 죄를 지은 종으로 보는데, 이에 그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인정하는 조건에서 태어난 인간은 경외의 밧줄에 의해 하느님을 향한 의무를 가져 당겨져 묶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원에 기초하여 '종교'를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의 한계는 한자어 "宗敎"건 라틴어 "religio"건 현대의 "종교(religion)"라는 말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한자어 "宗敎"는 '으뜸되는 가르침'이라는 명백히 가치 판단을 담은 표현이며, 키케로 또한 현대에는 '종교'라는 말로 통칭할 현상을 "religio"와 "superstitio"라는 별개의 표현으로 쪼개서 분류한 바 있다.[2] 이처럼 현대의 '종교'라는 말은 그 어원과는 의미가 상당 부분 달라졌다.
3. 종교의 정의
종교학, 신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에서 종교를 정의하고자 시도했다. 여러 쟁점이 존재하며 이를 정확히 통찰하기 위해서는 '종교'라는 개념의 역사적 변천사와 발전과정을 이해해야 하지만, 일단 현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바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있다:-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낼 만한 '종교'에 대한 간단명료한 정의는 대부분 각각 다양한 반례에 부딪힌다.
- '종교'의 정의는 그 자체로 종종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쟁점에 얽혀 있고는 하다.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사회학》에서 다음 네 가지 원칙을 통해 종교가 단일한 개념 혹은 체계(일신론, 도덕적 규범, 세계에 대한 해명, 초자연적인 것)로 환원될 수 없음을 밝혔다:
- 종교는 일신론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 종교는 도덕적 규범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 종교가 반드시 세계를 해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종교는 초자연적인 것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3.1. 중세 유럽의 정의
중세 유럽에서 "종교(religio)"라는 개념은 현대와 같이 체계화된 신념 체계나 제도적 종교 전체를 지칭하는 포괄 개념이 아니었다. 당시 종교는 신에 대한 개별적인 헌신, 경건, 기도, 고행, 숭배 등 개인의 신앙적 실천 행위를 가리키는 말에 가까웠다. 즉, religio는 집합적 실체가 아니라 개인이 얼마나 경건하게 신과 관계를 맺는가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종교적이다(religiosus)"라는 말은 특정 교리를 따른다는 뜻이 아니라, 삶 속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기도하고 금욕하며 신을 향한 헌신을 실천하는가를 의미했다.이러한 맥락에서 religio는 오히려 수도원적 삶이나 고행적 삶과 결부되어 있었다. 수도사, 성직자, 금욕주의자들이 '진정한 religio를 따르는 자들'로 여겨졌고, 일반 신자들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신앙 실천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종교 개념은 신학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의해 심화되었고, 경건의 행위는 인간이 신의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반면, 교회(ecclesia)는 제도적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었으며, 신학, 교리, 사제직, 성례전 등을 포함하는 공적·조직적 영역으로 구분되었다. 다시 말해 religio는 내면적 헌신, ecclesia는 외면적 질서로 이해되었다. 이는 현대의 '종교=신념 체계+교회 제도'라는 등식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관념이다.
한편, 중세 유럽에서는 타 종교, 특히 이슬람교, 유대교, 이교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인식을 가졌다. 기독교 바깥의 신앙 체계는 종종 religio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이들은 진리를 소유하지 못한 이단 혹은 거짓 종교로 규정되었다. 이슬람교는 초기에는 '사라센의 이단' 정도로 이해되었으나, 십자군 전쟁 이후에는 명백한 적대적 타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유대교의 경우 구약의 전통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종종 맹목적 고집, 정신적 어둠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이 정의는 오늘날 종교를 제도, 신념, 문화, 집단의 총합으로 보는 현대적 정의와 명백히 대비된다.
종교적 타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단지 신학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구별과 배제의 근거가 되었다. 종교라는 개념은 기독교적 경건과 순종을 중심으로 정의되었으며, 타자의 신앙은 "종교 없는 삶" 혹은 "거짓된 믿음"으로 비하되었다. 또한 이 시기 종교적 보편주의(universality)는 오직 기독교적 질서 아래 모든 이가 포섭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었으며, 이는 이후 종교 개념이 유럽 중심적 보편주의로 확장되는 기초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중세적 종교 개념, 즉 종교를 개인의 경건과 헌신으로 이해하고 교회 제도는 그 경건을 매개하는 질서로 간주하는 관점은 종교개혁기의 신학적 갈등과 정체성 위기로 이어졌다. 마르틴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구원이 교회 제도나 성례전이 아닌 '개인의 신앙과 내면적 경건'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 가톨릭 교회의 교권과 중보체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따라 구교(가톨릭)는 교회를 통한 은총의 질서를 강조했고, 신교(개신교)는 신 앞에 선 개인의 직접적 신앙을 중심으로 종교를 재정의하면서, religio 개념이 제도와 결합된 구교적 모델과 내면적 신앙에 집중한 신교적 모델로 극명하게 분화되었다. 이로 인해 종교는 더 이상 단일한 경건의 삶이 아니라 신념과 구조에 대한 해석의 전쟁터가 되었고, 종교 개념 자체가 정치적·신학적 논쟁의 핵심 대상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3.2. 근대 유럽에 나타난 정의
유럽에서 벌어진 종교 개혁과 그로 인한 격렬한 종파 분쟁 이후, 사람들은 종교 간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근대의 종교 개념은 인간과 신의 관계를 보편적 원리와 개별적 전통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를 낳았고, 이는 보편적으로 타당한 '자연 종교'와 특정한 문화·역사 안에서 주어진 '특별 계시'의 이원적 구도로 나타났다.'자연 종교'란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공통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종교적 진리 또는 도덕적 원칙으로, 신에 대한 인식과 숭배가 이성적 탐구를 통해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놓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이신론(deism)은 신의 존재와 창조를 인정하지만, 초자연적 계시나 기적, 교회 제도는 부정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 체버리의 에드워드 허버트(Edward Herbert of Cherbury, 1583–1648)는 참된 종교의 보편 원칙 5가지를 제시하며 이성 중심의 종교론을 전개했고, 매튜 틴들(Matthew Tindal, 1657–1733)은 특별 계시 역시 자연 종교의 이성적 원리를 반복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존 로크는 이성과 도덕은 충분하지만, 계시는 이를 보완하거나 자극할 수 있는 보조 도구로 여겼으며, 반면 존 트렌차드는 인간 내면의 경건함이 본래 일신론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타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들에서 이신론자들은 성경을 포함한 모든 초자연적 계시를 합리적 이성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는 기존 교회 권위에 강력한 도전이 되었다.
요한 잘로모 젬러는 종교를 '공적-역사적 종교'와 '사적-윤리적종교'로 나누어 전자는 교의와 성경, 제도적 종교 전통을, 후자는 개인의 종교적 확신과 윤리적 성찰을 중심으로 한다고 보았다. 그는 후자를 보다 성숙한 신앙 형태로 보았지만, 제도적 종교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후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윤리나 교리와 분리된 고유한 감정·직관의 차원으로 재정의하면서 종교 개념의 혁신을 주도했고,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무신론 철학자들의 종교 비판은 종교를 인간 심리와 사회 구조의 산물로 환원시키며 세속주의적 인식을 대중화시켰다.
다만 이러한 유럽식 종교 정의는 현재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근대 유럽의 종교 개념의 정립과 변화는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와 종교 간 관용을 추구하려는 시도였지만, '자연 종교 vs 특별 계시'라는 이원론적 틀은 기실 서구 기독교 중심의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틀은 이슬람, 유교, 힌두교, 불교 등 비서구적 종교의 개념 구조와 전통을 배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이성 중심의 보편 종교'라는 관념은 종종 제도 종교를 비이성적·타락한 형태로 전제해, 오히려 종교적 다양성을 축소하는 또 다른 규범적 시선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과 그 문화적, 상징적 층위들에 대한 이해 부족은 이 담론이 지닌 내재적 한계로 남아 있으며, 종교를 단일한 진리나 윤리 체계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종종 종교적 실천과 감정, 신화적 사유를 간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근대 유럽에서 종교 개념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 중 하나는 임마누엘 칸트였다. 그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등을 통해 이성의 한계를 강조하며 신 존재 증명에 대한 전통적 시도들을 비판하였다. 특히 존재론적, 우주론적, 목적론적 증명을 각각 논리적 오류 또는 이성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간주하며, 신의 존재는 인식이 아니라 도덕적 이념의 차원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신은 인식 가능한 실재가 아니라 도덕법칙을 완성하기 위해 "가정"해야 하는 필연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로써 종교는 형이상학적 논증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이성의 요구에 따른 도덕적 실천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문제'로 전환되었고, 이는 종교를 초월자의 객관적 존재보다 윤리적 자율성과 실천의 문제로 이해하는 계몽주의적 종교관의 기초가 되었다. 칸트의 이 비판은 이후 종교철학과 신학에서 신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들었고, 종교의 정당화 방식을 감정·의지·경험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3.3. 경건이나 영성 중심의 정의
임마누엘 칸트가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이후,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던 당시 지식인 사회에 맞서 종교를 옹호하고 재정의하려 했다. 그는 종교의 본질을 형이상학적 명제나 도덕률에서 찾지 않고, 직관과 감정 속에 있다고 보았다. 무한한 우주에 대한 경외, 감각, 감정, 직관은 종교의 핵심이며,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이러한 종교적 경험은 본질적으로 다원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신 개념과 종교 개념을 분리하여,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가능성을 열었고, 형이상학이나 윤리를 포함하는 자연종교 개념은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이러한 관점은 울리히 바르트에게 계승되었고, 그는 종교적 자아와 세계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1) 문화적 전통과의 거리두기 (자기 성찰), (2) 경건한 주체와의 관계 형성 (경험의 수집), (3) 내면적 전유 (자기 초월), (4) 헌신적 태도 (관상). 이를 통해 종교는 단순한 교리나 제도의 문제가 아닌, 인간 내면의 존재론적 통찰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았다. 또한 종교심리학의 관점에서 종교는 "영성을 촉진하도록 설계된 제도적 맥락 속에서 유의미성을 탐색하는 행위"로 정의되기도 한다.[3] 즉, 종교는 초월적 가치나 성스러움을 향한 영성적 추구가 제도, 교리, 의례 등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틀 안에서 전개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영성(spirituality)은 종종 종교와 구분되어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개인적인 추구로 이해된다. 이때 종교는 집단적, 제도적인 특성을 갖고, 영성은 보다 개인적이고 역동적인 양상을 띤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영성 역시 카페, 동호회, 명상센터 등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경우도 있기에 이러한 대조는 완전히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영성은 순수하고 종교는 억압적이다"라는 이분법적 주장은 학술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우며, 영성 역시 여러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작용 속에서도 발현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경건 중심 또는 영성 중심의 종교 정의는 종교의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제도적 종교의 강압성과 획일성을 비판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반대로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종교의 사회적·정치적 기능이나 공동체 구성의 역할을 간과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 둘째, 직관이나 감정에 기반한 종교 개념은 정의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이성과 교리, 의례의 중요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셋째, 영성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출 경우, 종교와 비종교 간 경계가 무너져, 명확한 개념 분석이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이 접근은 종교의 존재론적 경험에 집중함으로써 설명의 깊이는 확보하나, 종교 현상의 전반을 포괄하는 데에는 이론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3.4. 실재 인식 중심의 정의
막스 뮐러는 종교를 "다양한 이름과 모습으로 나타나는 무한한 존재를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정의하였다. 이는 종교를 감정, 도덕, 제도보다 존재론적 인식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뮐러에 따르면,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나 신화, 상징 등을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는 무한자(infinite being)의 존재를 포착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신의 실재 여부가 아니라, 인간이 그 실재를 어떻게 의식하고 해석하는가이다.이러한 정의는 종교를 일종의 인식론적 활동으로 본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뮐러는 신화, 상징, 언어가 단순한 종교적 장식이 아니라 인간이 실재를 인식하고 표현하기 위한 시도라고 보았다. 따라서 종교는 특정 교리나 신학 체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고대 신화나 자연 숭배, 철학적 사변조차도 모두 실재 인식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종교는 "신을 믿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실재라고 보고,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뮐러는 종교의 본질을 "절대자에 대한 감각(sense of the infinite)"으로 보았는데,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 너머의 어떤 질서, 존재, 실재를 인식하거나 감지하는 직관적 경험을 뜻한다. 이러한 인식은 언어나 개념에 의해 제도화되면서 종교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종교는 단순한 믿음 체계가 아니라, 무한자에 대한 지각과 그것을 해석하려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는 종교의 철학적 기원을 탐색하는 데 유용하며, 인류 보편 종교성의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종교는 특정 민족, 문화, 시대를 넘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무한자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보편적 구조를 가진다. 고대인들이 하늘, 천둥, 별, 죽음을 경외한 이유는 단순한 무지 때문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어떤 초월적 실재를 감지하려는 시도였다고 본다. 한편 이러한 관점은 종교를 존재론적 문제의식과 인간 인식의 구조적 조건 속에서 설명한다는 점에서, 도덕 중심 또는 감정 중심의 종교 정의와 차별된다. 뮐러는 종교를 단지 도덕적 교훈이나 위로를 위한 장치로 보지 않았고, 그것을 인간 정신의 가장 근본적인 활동 중 하나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정의 역시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실재 인식 중심의 접근은 초월자의 존재 인식 능력을 강조하지만, 그 인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지, 또 왜 다양한 종교들이 서로 충돌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부족하다. 또한 무신론적 신념 체계나 세속적 영성은 이 정의 안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결국 이 정의는 종교의 철학적·보편적 성격을 강조하는 데 강점을 지니나, 종교의 사회적 실천, 제도, 권력 구조에 대한 설명은 미흡하다는 평을 받는다.
3.5. 초자연적 믿음 중심의 정의
종교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는 종교를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간주하는 접근이다. 신, 정령, 영혼, 사후 세계, 천국과 지옥 같은 요소들이 대부분의 전통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종교는 곧 인간이 자연을 넘어선 실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와 관계를 맺는 체계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정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광범위하게 통용되며, 일상적 종교 이해의 기본 전제로 작용해왔다.사회학자 토마스 루크만은 이를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면서, 종교를 "초자연적이거나 초경험적인 지시체가 없는 믿음들"로 정의하였다. 이때 '초경험적 지시체'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 범위를 넘어선 실재에 대한 상정을 의미한다. 루크만은 종교가 인간의 세계 경험을 조직하는 상징체계로 작용하며, 그 핵심에는 자연 질서를 초월하는 어떤 실재에 대한 신념이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는 종교를 단순한 제도나 문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응답 구조로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초자연적 정의는 특히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제임스 프레이저, 에밀 뒤르켐 등 19~20세기 고전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종교 이론에도 강하게 반영되었다. 당시 학자들은 종교를 신화, 의례, 주술, 영혼 등의 개념과 연계해 원시적 세계관에서 발생한 인간의 보편적 반응으로 보았고, 그 공통 기반을 초자연적 신념에서 찾았다. 이런 흐름은 종교를 문명 진화 과정 속에서 이해하려는 근대 인본주의적 시도와 맞닿아 있으며, 이후 종교의 기원과 기능을 설명하는 주요한 분석 틀로 작용했다.
이 정의의 강점은 종교의 초월성, 신성성, 경외심 같은 근본적 요소를 포착한다는 점이다. 신이나 정령의 존재를 믿고 그와 교류하려는 행위는 다양한 종교에서 중요한 의례와 실천의 동기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우주적 질서 안에 위치시키는 의미화 작업을 수행한다. 따라서 초자연적 믿음은 종교적 실천의 중심이자, 인간의 내면과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 중추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정의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종교의 모습을 모두 포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그로 인해 유교, 세속적 인본주의, 무신론적 종교운동 등 비초자연적 종교현상에 대해서는 보완적 정의와의 병행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는 실제 법적 쟁점으로도 이어졌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1년 Torcaso v. Watkins 판례에서 무신론 교회 등을 포함한 세속적 인본주의를 "종교적 신념체계(religious belief system)"로 간주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는 종교를 정의할 때 초자연적 신념 유무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판례는 종교가 삶의 총체적 방향성과 가치 지향, 그리고 제도와 실천이 동반되는 모든 체계를 포함할 수 있는 복합적 현상임을 법적으로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자연 중심 정의는 종교 현상의 전통적 기반과 상징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시각을 제공하며, 특히 신화학, 고대사, 비교종교학 등의 분야에서는 여전히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3.6. 문화적 소속감 중심의 정의
종교를 개인의 내면적 '믿음'이나 신념의 유무를 중심으로 정의하는 방식은, 종종 지나치게 협소한 종교 이해로 비판받기도 한다. 특히 종교를 사적 신앙 고백으로 환원하는 관점은 개신교 전통을 기반으로 한 영미권의 종교 문화에 특화된 정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정의는 정교분리, 양심의 자유, 신념에 따른 구원관이 강조된 서구 근대의 산물로, 종교를 '내면의 문제'로 간주하게 된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유래한 것이다.반면, 여러 문화권에서는 종교가 반드시 개인의 초월적 신념 고백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실천과 소속 구조로 기능해 왔다. 즉, 종교는 개인적 확신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 문화적 의례, 공공의 일상에 뿌리내린 현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종교를 믿음보다 '참여'(participation), 그리고 '소속'(belonging)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 더 유효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공식적으로는 무종교를 표방하지만, 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고, 새해맞이, 결혼, 장례와 같은 삶의 주요 전환점마다 전통적 종교 의식에 참여한다. 여기서 종교는 초월적 실재에 대한 인식이라기보다는, 삶의 질서와 공동체 소속감을 확인하는 문화적 행위로 기능한다. 이들은 종교를 "믿지 않지만 한다"는 방식으로 실천하며, 이런 패턴은 종종 문화적 종교(cultural religion) 혹은 의례적 종교(ritual religion)라고 불린다.
유사한 현상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도 관찰된다. 많은 시민들이 종교에 대한 신념이나 예배 참여율은 낮지만, 교회 소속을 유지하며 국교회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치르는 문화적 소속감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한다. 이는 '무신론자 교인(non-believing church member)'이라는 표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종교가 정체성·전통·국가 의례와 얽힌 사회 제도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4]
이러한 현상은 종교를 정의할 때 신념(belief)에만 집중하는 접근이 문화적으로 편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현대 종교사회학에서는 'believing without belonging(믿지만 소속되지 않음)'뿐 아니라, 그 반대 현상인 'belonging without believing(믿지 않지만 소속됨)'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종교가 단지 초월적 실재에 대한 확신만이 아니라, 집단적 연대, 문화적 표지, 의례적 실천과 깊이 얽혀 있는 다층적 사회 현상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의식 참여와 문화적 소속감'을 중심으로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종교의 제도적 지속성, 사회적 통합 기능, 문화적 의례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이 관점은 종교를 개인의 ‘신념 체계’로만 규정하는 근대 서구 중심 정의에 대한 상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다양한 종교 문화의 실천 형태를 포착하는 데 적합한 설명틀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의식 참여와 문화적 소속감' 중심의 종교 정의는 종교를 믿음이 아닌 사회적 실천과 정체성의 관점에서 조명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한계도 지닌다. 가장 큰 한계는 초월성이나 내면적 신념의 차원을 상대적으로 간과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종교 전통에서 개인의 믿음, 구원, 내적 체험은 핵심 요소로 간주되며, 단순한 문화적 참여만으로는 그 종교의 의미를 포괄하기 어렵다. 또한 이 정의는 종교와 비종교적 의례(국민의례, 시민장 등)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종교 개념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위험도 있다. 마지막으로, 참여와 소속만으로 종교를 정의할 경우 개인의 신앙적 진정성이나 선택의 자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종교를 지나치게 집단적, 외적 행위로 환원할 위험이 존재한다.
3.7. 사회적 기능 중심의 정의
근대 이후로 등장한, 종교를 정의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종교를 사회적 기능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접근, 즉 사회학에서의 정의가 있다. 이 정의는 종교가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 집단 정체성 유지, 도덕 질서 확립 등 집단적·실천적 효과를 통해 존재 이유를 가진다고 본다. 즉, 이 틀에서 종교는 초월적 실재에 대한 인식보다는, 사회 안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를 기준으로 정의된다는 점에서 기능주의(functionalism)에 기반한 해석이다.사회적 기능 중심 정의의 대표적 이론가는 에밀 뒤르켐이다. 그는 저서 '종교생활의 원초형태'에서 종교를 "사회가 스스로를 숭배하는 형식"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집단적 정체성을 통합하고, 도덕적 질서와 가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신이나 성스러움은 실제로는 집단이 만들어낸 상징에 가깝고, 종교 의례는 개인이 사회 전체와 연결되고, 규범을 재확인하는 의식적 행위로 작동한다.
이 입장에 영향을 받은 탈콧 파슨스는 종교를 사회체계의 안정화 메커니즘으로 보았다. 종교는 개인의 동기를 규범과 일치시키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불확실성과 위기 상황 속에서 사회적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죽음, 재난, 실패 등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을 종교는 초월적 질서나 운명의 일부로 해석하여 수용 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종교는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상징적·심리적 조정장치로서 기능한다. 또한 피터 L. 버거는 종교를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도구"로 이해했다. 그는 저서 '종교의 사회구성'에서 종교는 인간이 혼란스러운 세계에 질서와 일관성을 부여하는 '의미의 우주(nomos)'라고 보았다. 특히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나 질서가 자명성을 잃을 때, 종교는 그것을 "하늘로부터 부여된 것처럼 정당화"하여 현실 질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써 종교는 단순한 신념 체계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구조물이다.
현대 종교사회학에서도 종교는 집단적 연대, 윤리적 내면화, 정체성 정치의 장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국가주의, 환경주의, 젠더운동과 같은 세속적 운동조차도 종교처럼 공동체 정체성을 조직하고, 의례와 상징, 금기와 규범을 통해 구성원들의 참여와 헌신을 이끌어낸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이런 분석은 종교를 하나의 사회적 양식 혹은 문화적 운영체제로 간주하게 하며, 초자연적 믿음과 무관한 영역까지도 종교처럼 작동하는 구조로 해석할 수 있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사회적 기능 중심 정의는 종교가 실제로 무엇을 믿는가보다는 무엇을 '하는가'에 집중함으로써, 종교의 사회적 중요성과 적응적 역할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한계도 존재한다. 첫째, 종교의 핵심인 초월적 차원이나 내면적 체험의 중요성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실제로 종교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동체 결속이나 사회 안정이 아니라, 신과의 관계, 구원에 대한 확신, 초월적 진리와의 접촉이다. 기능주의는 이런 내적 실존적 차원을 도외시하기 쉽다. 둘째, 종교를 기능으로만 환원하면 비슷한 기능을 하는 세속 제도나 이념도 종교로 포함하게 되어, 종교 개념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예컨대, 국가행정이나 환경운동도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서 종교라고 부를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 정의는 설명력은 크지만 개념적 구분력이 약화될 수 있다. 셋째, 특정한 사회적 기능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종교가 '기능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식의 해석은, 역사적 종교의 지속성과 내적 동기를 설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기능주의는 종교의 왜 존재하는가에는 답하지만, 왜 여전히 믿고 있는가에는 완전한 답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해당 이론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작동 매커니즘을 설명해줄 뿐, '종교' 자체에 대한 정의와 본질적 분석을 제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기능 중심의 정의는 후술할 신화 중심의 정의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며, 현대 사회학, 인류학, 종교학, 집단심리학에서 종교를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통합적 틀을 형성한다. 신화 중심 정의가 종교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형성된 상징 체계와 존재론적 의미 구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기능주의적 정의는 그 상징과 의미가 현실의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유지되는가를 설명해준다. 즉, 신화는 종교의 본질 즉 '무엇'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와 해석을 제공하고, 기능주의는 '왜'와 '어떻게'에 대한 해석을 보완한다. 이 두 관점은 각각 본질적·구조적 차원과 심리적·사회적 차원을 아우르며, 종교가 단순한 믿음 체계를 넘어, 인간 존재와 공동체를 조직하는 복합적 문화 현상임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기능주의적 해석 중심으로 종교의 역할과 동기를 분석한 사회학적 이론들은 후술할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종교의 심리적 효용' 단락에서 자세히 나열 및 설명되어 있다.
3.8. 신화 중심의 정의
종교를 신화(myth)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종교를 단순한 교리나 윤리 체계로 보지 않고, 인간이 성스러움과 장엄함을 경험하고 그것을 서사로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 정의는 특히 루돌프 오토와 미르체아 엘리아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종교의 본질을 성스러운 것(the Sacred)과 그것이 드러나는 신화적 계시 속에서 찾는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종교의 핵심을 "성스러움"의 체험과 그 기억 및 반복에서 찾았다. 그에게 있어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세계의 근원적인 구조와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는 진리의 서사'였다. 신화는 시간과 공간을 성스럽게 만들고, 공동체가 우주의 질서에 다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의례적 모델로 기능한다. 그는 "과학이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답한다면, 신화는 왜 존재하는가에 답한다"고 보았다. 이때 신화는 성스러움의 반복과 재현이며, 인간이 자신과 세계의 위치를 이해하려는 존재론적 탐구의 서사적 양식이다.이와 유사하게, J. R. R. 톨킨은 종교를 상상력(imagination)을 통해 진리와 기원을 전달하는 서사 체계로 이해했다. 그는 신화를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우러나오는 진리의 상징적 매개체로 보았으며, 종교는 결국 인간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궁극적 질문을 다루려는 열망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의 문학 세계관은 신화가 사실(fact)을 초월하는 더 깊은 진리(truth)를 담고 있다고 전제하며, 인간이 신화 속에서 실재를 접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C. S. 루이스 역시 톨킨의 영향을 받아 종교를 "진정한 신화(true myth)"로 이해했다. 그는 고대 신화들이 인간 내면의 진리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는 이 모든 신화적 구조가 역사 속에서 실현된 실재적 사건이라고 보았다. 즉, 루이스에게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상징적 직관과 계시의 형식이었다. 이 관점은 종교를 이성과 감성, 상상과 실재의 통합으로 보는 통전적 접근을 가능케 한다.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접근법은 종교를 단순한 신앙이나 감정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본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초월적 질서, 기원과 종말, 죽음과 구원, 진보와 약속' 등의 구조를 서사화하여 제시하는 의미 체계로 본다. 따라서 이 해석은 이러한 상징적 서사가 반드시 신이나 영적 존재를 동반할 필요는 없으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 내면에 의미 구조와 성스러움을 환기하고 현실과 연결되기 위해 '의례적 실천과 반복 구조'를 동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신화 중심 접근은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거시 구조(국가, 법, 이념, 예술, 역사, 이벤트, 건축, 문명 등)가 종교적 형식을 변형해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낸다. 결과적으로 이는 종교가 단지 특정 제도나 신앙 공동체에 한정되지 않고, 엘리아데가 언급한 '의미와 상징의 우주', 즉 인간 정신이 근본적으로 의존하는 '의미 구성의 심층적인 인지적 틀'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종교와 신화의 서사는 한 사회의 '문화적·심리적 심층 코드(code or DNA)'로 작동한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정체성과 인식을 형성할 뿐 아니라, 정서, 무의식, 상징체계, 가치판단, 심지어 일상의 선택과 감정 반응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설령 어떤 개인이 특정 종교를 믿지 않거나, 자신이 탈종교적 정체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해당 문화권의 종교적 유산이 각인시킨 심리적 구조와 감정의 리듬에 의해 강하게 구속되어 행동한다. 더욱이 동일한 종교적 상징이나 개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뿌리내린 종교적·역사적 맥락 즉 '심층 코드'의 구성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 구조를 갖는다. 예컨대 '구원'이라는 개념은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영혼의 구제와 천국이라는 종말론적 전망을 떠올리게 하지만, 불교권에서는 해탈과 윤회의 소멸이라는 전혀 다른 존재론적 전제를 내포한다. 이처럼 종교적 상징은 단순히 보편적 의미를 지닌 개념이 아니라, 각 문화권의 심층 코드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고 작동하는 '신화'라는 이름의 '의미의 지층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종교가 인간과 사회를 조직하고 이해하는 가장 심오한 상징적 체계라는 점을 재확인시켜준다.
결과적으로, 신화 중심의 정의는 종교가 '세계와 인간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서사 구조'라는 점에서, 종교의 기원, 기능, 표현 양식, 심리적·사회적 효능을 총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설명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는 종교를 믿음이나 제도를 넘어서 인간 정신의 깊은 층위에서 우러나오는 의미 구성의 핵심 장치로 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신화'라는 서사는 문화 간 비교, 종교 간 대화, 예술과 상상력의 종교적 기능, 무엇보다 한 국가 혹은 문화권의 심층 의식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개념으로 작용하며, 종교를 인간 본성의 근원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학제적 가교를 제공한다. 이로 인해 신화 중심 정의는 종교학, 인류학, 사회학, 문학, 철학, 역사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종교 이해 방식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신화 중심의 종교 정의는 전통 종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세속적 이데올로기나 무신론적 종교 운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강력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예컨대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같은 현대 이념들도 구성원들에게 기원(자유주의에서는 계몽주의와 사회계약의 전통, 공산주의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착취당한 역사), 소명(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는 것, 공산주의는 계급 해방과 평등한 사회 건설), 구원(자유주의는 계약과 시장질서 속의 정의로운 세계, 공산주의는 무계급 유토피아)에 대한 서사를 제공하며, 상징과 의례, 순교적 영웅 서사(자유주의의 에이브러함 링컨, 공산주의의 체 게바라)를 통해 정체성과 헌신을 조직한다. 무신론 교회나 정치적 올바름 같은 세속적 인본주의 운동 역시 종말론적 비전(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 멸망 경고), 공동체적 의례(비건행진,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 프라이드 퍼레이드 등), 인간 중심의 신화('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진보적 윤리 내러티브)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종교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를 단지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믿음 유무뿐만 아니라, 인간이 '성스러움·절대성·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신화 중심 정의의 보편성과 해석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신화 중심의 종교 정의는 종교를 사회적 기능에 따라 분류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보완하면서도 넘어서는 통찰을 제공한다. 기능주의는 종교와 세속 이념이 비슷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경우 둘 사이의 경계를 흐릴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반면, 신화 중심 정의는 이념과 종교가 각기 다른 역사적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인간 정신 속에서는 기원, 소명, 구원, 성스러움, 구속, 구원에 대한 내러티브, 상징과 금기, 의례화된 실천과 순교적 영웅들이라는 동일한 신화적 구조를 따라 작동하며, 이를 통해 감동·장엄함·헌신의 감정을 환기시킨다는 점을 밝혀낸다. 즉, 신화 중심 접근은 종교와 이념을 무분별하게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수행하는 세계 해석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유사함을 드러냄으로써, '종교 현상'이라는 인류 문명의 핵심 동력을 보다 깊이 있고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결국 제도적 종교, 이데올로기, 과학 이론, 심지어 일상적·문화적 실천에 이르기까지 어떤 현상이든 간에,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성스러움(sacredness)과 장엄함(awe)을 느끼게 만들고, 의례적 반복과 내러티브를 통해 그 감정을 환기시키며 개인적·공동체적 정체성, 구속력, 의미 체계를 지속적으로 구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이는 인간의 심리적·사회적 의식 속에서 실질적으로 ‘종교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의 존재 여부나 형이상학적 전제와는 별개로, 인간 정신이 이와 같은 구조적·서사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한 인간은 여전히 종교적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종교란 단순히 신에 대한 믿음 유무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의미 구성 방식을 드러내는 포괄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신화 중심 정의는 종교학에서 가장 정설에 가까운 이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종교를 인간이 성스러움과 실재에 대해 구성한 의미 서사로 이해하는 이 관점은, 다양한 문화와 시대를 초월해 종교의 구조와 기능을 폭넓게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정의는 종교의 상징적·존재론적 차원에 집중하기 때문에, 종교가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 집단 통합, 권위 정당화 같은 측면은 상대적으로 간과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종교학에서는 신화 중심 정의를 상기한 단락들의 기능주의적 해석들과 병행하여, 종교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동시에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시도가 일반적이다.
3.8.1. 종교의 필수 요소
종교를 신화 중심적으로 정의할 때, 핵심적으로 주목해야 할 세 가지 필수 요소는 바로 초월적 질서, 의미체계, 그리고 제의의 반복이다. 이러한 구성요소들은 단순한 부차적 특징이 아니라, 종교를 종교답게 만드는 구조적 핵심이자 토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면, 해당 사상이나 체계는 종교학적으로 '종교'로 분류될 수 있다.첫째, 초월적 질서는 종교의 근본적 전제를 형성한다. 모든 종교는 가시적인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보편적 원리나 존재, 곧 '초월자' 또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이 초월적 질서는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에 궁극적 질서와 방향성을 부여하는 힘이다. 그것은 신, 법칙, 운명, 도, 자연법 등 다양한 문화권과 각기 다른 시대에서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공통적으로 현실 세계를 넘어선 어떤 근원적 원리이자, 그 자체로 존재와 가치의 근거로 작용한다. 인간은 이 초월적 질서를 통해 삶의 불가해한 측면(고통, 죽음, 우연, 실패 등)에 대한 해석의 틀을 얻는다.
둘째, 종교는 이 초월적 질서를 기반으로 하여 서사적 의미체계를 형성한다. 신화는 단순한 전설이나 이야기의 집합이 아니라, 초월적 질서를 서사 구조로 번역하여 인간에게 세계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장치다. 신화 속의 창조 이야기, 영웅 서사, 신들의 투쟁, 종말론 등은 모두 인간 존재의 기원과 운명, 올바른 삶의 방식, 악과 고통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서사적 형식의 진리 체계이다. 이 의미체계는 종교적 교리와 도덕률, 신화적 상징, 예언적 메시지 등으로 구체화되며, 인간에게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왜 고통을 겪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죽음 이후는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존재론적·윤리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의미체계는 세속 종교에서도 반복된다. 창조 이야기는 '역사적 진보나 혁명 서사'로, 영웅 서사는 '위대한 지도자나 민족의 서사'로, 신들의 투쟁은 '계급투쟁이나 문명 충돌의 담론'으로, 종말론은 '유토피아적 미래나 대재앙 서사'로 이름만 바뀐 채 계승되었다. 이처럼 세속 종교는 전통 종교의 서사 구조와 기능을 현대 사회의 이념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며, 인간의 의미 갈망에 응답하고 있다.
셋째, 이러한 의미체계는 제의(ritual)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종교는 단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특정한 의례적 행위와 상징적 반복을 통해 그 의미를 몸으로 새기고 공동체적으로 재확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예배, 제사, 성찬, 순례, 금식, 기도와 같은 제의는 신화 속 사건을 반복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시간을 신화적 시간으로 전환시키고, 개인과 공동체를 초월적 질서에 다시 연결하는 행위다. 제의는 단순히 과거의 신화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화하고 반복함으로써 '지금-여기'에서 '신성과 인간의 연결'을 체험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제의적 요소 역시 세속화된 형태로 현대 사회에 이어지고 있다. 축제, 시위, 기념일, 국가 행사, 졸업식과 취임식, 심지어는 대규모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까지도 일종의 제의로 기능한다. 이들은 특정 집단의 정체성과 결속을 강화하고, 상징적 질서를 재확인하며, 공동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구조를 갖는다. 종교적 의례처럼 반복성과 상징성, 감정적 고양을 지니며, 이를 통해 세속 종교도 전통 종교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적 통합과 의미 부여의 기능을 수행한다.
3.8.2. 시사점
따라서 종교의 본질을 단순히 '전능한 인격신에 대한 믿음'으로 한정하는 협의적 정의는 그 실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유교, 불교, 도가처럼, 전능한 인격신을 노골적으로 숭배하지 않거나 전능한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 체계들 또한 종교학적 의미에서 충분히 종교로 분류된다. 이들은 초월적 인격신이라는 개념 대신, 인간 존재를 천(天), 육도윤회(六道輪廻), 도(道) 등으로 대표되는 '영혼의 세계'라는 초월적 질서 속에 위치시키고, 내세에 대한 직·간접적 믿음과 반복되는 의례, 윤리적 삶의 실천을 통해 독자적인 의미체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핵심 요소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예컨데, 유교는 조상과 하늘(天)에 대한 의례적 실천과 도덕적 삶의 규범을 중시하고, 불교는 윤회·업·해탈이라는 초월적 질서에 대한 신화적·의례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도가 역시 우주 만물과 인간의 영혼(정신·혼백)을 '도(道)'라는 초월적이며 자생적인 질서 속에 위치시키고,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명상과 수련, 제의 등 다양한 실천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모두 초월적 질서에 기반한 의미체계와 반복되는 제의적 실천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도덕, 사회 질서에 통합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성격을 뚜렷이 지닌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상기했듯이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 무신론적 구원운동, 과학주의 또한 일정한 구조와 작동 원리에 따라 '세속 종교'(secular religion)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은 비록 초월적 신이나 내세의 존재를 부정하더라도, 인간 역사·과학·이성·민족·혁명·국가 등의 개념을 통해 인류를 '현실을 초월한 절대적 질서' 속에 위치시키고, 그에 따라 '추상적 도덕의 기반'과 '진보·발전의 서사'라는 의미체계를 설정한 뒤, 이를 중심으로 '집단적 상징과 의례의 반복'을 구성하여 인간 삶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국가적 애국주의·민족주의 행사나 집단 운동,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철학, 과학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신념, 특정 정치 진영의 도그마화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종교의 핵심 요소가 초월·의미·제의라는 구조라면, 반드시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종교로 기능할 수 있으며, 세속 종교는 그 대표적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 그 질서를 서사로 풀어낸 의미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몸과 공동체 속에서 살아내는 제의적 반복이라는 삼중 구조로 이루어진 복합적 체계다. 종교는 이 세 요소를 통해 개인의 존재와 삶을 세계의 궁극적 의미 속에 위치시키며, 단순한 문화적 관습이나 사회적 제도가 아닌, 존재론적 해석체계이자 실천 구조로 기능한다.
아래는 신화 중심 이론이 밝혀낸 종교적 문화 현상들에 대한 분석을 서술한 것이다. 이 사례들은 종교와 종교적 내러티브 구조가 특정한 신앙 체계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정신의 구조 그 자체로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종교성이야말로 인간 정신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지 체계 중 하나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3.8.3. 일상세계의 종교적 구조
신화 중심 정의는 종교를 단지 믿음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비신자들에게조차 본질적으로 필요한 성스러운 서사와 의례의 공간을 제공하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종교를 상기한 '문화적 소속감과 정체성 형성의 핵심 매개로 설명하는 관점'과도 깊이 연결된다. 예컨대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결혼, 장례, 명절 등 인생의 전환점에서 종교적 의례를 찾는 이유는, 그 의례가 개인의 삶을 집단의 신화적 서사와 의례적 집단감정과 연결시켜주는 상징적 통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 중심 정의는 종교가 신앙 여부를 넘어서는 존재론적·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주며, 문화적 소속감 중심 정의의 이론적 기반을 더욱 깊이 있게 설명해준다.이러한 종교적 구조는 일상의 여러 문화적 실천들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생일, 졸업식, 취임식, 시상식과 같은 의례들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정체성의 확인'과 '사회적 위계의 승인'을 상징적으로 수행하는 종교적 전환 의례로 작동한다. 이들 행사에는 일정한 복장, 상징, 선언, 축사, 찬양 등의 형식이 동반되며, 이는 고대 종교의 통과의례 구조와 밀접하게 닮아 있다.
또한, 브랜드 충성도와 관련된 소비 행위에서도 유사한 종교적 심리가 발견된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맹목적 애착, 신제품 공개일에 맞춘 대기 행렬, 한정판 제품에 대한 집착, 로고와 창립자에 대한 상징적 찬양은 마치 '세속적 숭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브랜드는 고유의 신화와 가치, 금기와 의례를 구성하며 소비자를 하나의 신앙 공동체처럼 묶어낸다. 브랜드 충성도와 관련된 현상은 뇌과학적 연구에서도 그 '준-종교성'이 일부 입증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강한 브랜드 충성도를 지닌 소비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 로고를 볼 때 뇌의 감정·보상 회로인 측좌핵과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종교적 이미지나 신앙적 상징을 접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상당히 유사하며, 결국 브랜드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신념과 정체성의 일부로 내면화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여러 브랜드나 게임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밈인 자고로 신앙을 잃는 것은 같은 표현도, 단순한 우스갯소리를 넘어서, 정신의 깊은 층위에서는 해당 브랜드나 콘텐츠가 정말로 종교적 구조와 결합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브랜드나 세계관에 대한 헌신, 배신, 회복의 감정 구조가 전통 종교에서의 신앙 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나아가 '자기계발 및 영성 산업' 역시 고대 종교의 금욕적 자기정화 모델을 세속화한 구조다. 명상, 루틴 훈련, 새벽 기상 챌린지, 자기계발 워크숍, 현대적 성공 신화 등은 '고행-자각-성장'이라는 종교적 내러티브를 충실히 따르며, 참가자에게 초월적 통찰과 새로운 정체성의 획득을 약속한다. 이 산업은 특히 종교에 회의적인 현대인들에게 '신 없이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체계'를 제공하며, 그 심층 구조는 여전히 종교적이다.
이러한 종교적 구조는 일반인들의 '여행' 행위에서도 유사하게 작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대의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낯선 공간을 경험하며 일상적 삶의 반복에서 벗어나 초월적 감동(awe)과 정화(catharsis)를 체험하는 의례적 행위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자연 경관이나 역사적 성지, 문화적 상징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은 고대 종교의 성지순례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심지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같은 담론은 일종의 세속적 구원서사를 구성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의 감동적 풍경 감상, 인증샷 촬영, 기념품 구입, SNS 공유 등의 반복 행위 역시 종교 의례에서의 상징적 반복과 다르지 않은 기능을 수행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행기나 여행 후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고대 성직자들이 신전을 순례하고 신성 체험을 글로 남긴 수기처럼, 독자들에게 '대리적 체험, 성스러운 감정의 재현, 순례의 전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의례적 서사로 기능하기도 한다. 즉, 인간은 종교적 신앙을 가짐 여부와 상관없이, 성스러운 체험과 의미 구성의 틀을 일상적 문화행위 속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3.8.4. 대중문화의 종교적 구조
현대 대중문화 전반에서도 이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아이돌 및 가수 문화는 공연 관람, 응원, 굿즈 소비, 팬덤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의례적 소속감과 내면적 정화를 제공하며, 이는 고대 신전·중세 종교적 예배·무속적 샤머니즘 의례와 매우 유사한 심리적·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현대에서 아이돌, 가수, 스트리머 등의 팬덤이 이토록 열광적이고 헌신적인 이유 역시, 그 구조가 전통 종교의 심리적·사회적 기능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심지어 '아이돌(idol)'이라는 명칭 자체가 종교적 기원을 내포하고 있다. 본래 '아이돌'은 고대 종교에서 우상(偶像), 즉 신을 형상화한 숭배의 대상으로 쓰이던 용어다. 반면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이 용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많은 팬들이 특정 인물을 충실한 헌신, 이상화, 정서적 의존의 대상으로 삼는 현상은, 단어의 어원이 함의하듯 종교적 숭배 구조의 세속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대 아이돌 문화는 용어적 차원에서도 이미 '종교의 대체물'로서 자리 잡았으며, 그 문화적 위치는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일종의 세속화된 신상(神像)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팬들은 단순한 오락 소비자를 넘어,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을 '상징적 존재'로 내면화하며, 그 존재를 중심으로 삶의 방향성과 감정의 위안을 얻는다. 이들은 콘서트나 라이브 방송을 일종의 '예배'처럼 기다리고, 굿즈와 포토카드, 음원 스트리밍과 같은 실천은 마치 '헌금'이나 '의례적 공덕'처럼 반복되며 집단 정체성과 충성을 상징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또한 커뮤니티에서의 집단 응원, 팬아트 창작, 스트리밍 인증 등은 고대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순례, 봉헌, 의례 참여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팬덤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한 헌신', '의례를 통한 공동체 연대', '이단(타 팬덤)에 대한 배척', '구원과 의미의 투사' 등 종교의 핵심 구조를 거의 완전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 많은 젊은 세대에게 제도 종교를 대체하는 사실상의 '문화적 신앙 공동체'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워즈,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 반지의 제왕(레젠다리움), 해리 포터 시리즈, 워해머 40K 등과 같은 영화·드라마·게임의 신화적 세계관은 현대인들에게 고대 신화와 전설적 영웅 서사 및 종교적 구원의 서사 구조를 재현하며, 팬덤은 이러한 내러티브 세계 안에서 신앙 공동체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사적 세계관은 단지 엔터테인먼트에 머물지 않고 팬들에게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하는 신화적 질서를 제공하며, 심지어 골수 팬덤에게는 제도 종교를 보완하거나 대체하여 실질적으로 삶의 방향을 투사하고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용기와 희망의 원천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현대 대중문화 내에서 벌어지는 마블 코믹스의 정치적 올바름 논쟁 또한 단순한 취향 차이나 정치적 입장의 대립이 아니라, 정통과 이단의 경계에 대한 종교적 갈등 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5] 기존의 팬덤은 오랜 시간 축적된 세계관과 캐릭터 정체성을 일종의 정전(正典)으로 간주하며, 그 안에서 질서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경향을 보인다. 이들에게 세계관의 통일성은 마치 신화의 신성한 일관성처럼 느껴지며, 캐릭터의 급격한 변화나 정체성 개편은 신성모독이나 이단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자신을 개혁자로 인식하는 PC 성향의 작가들이나 팬덤은 기존 서사가 배제해 온 집단(인종, 성별, 젠더 정체성 등)에 서사적 구원과 상징적 대표성을 부여하려는 사명감을 갖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개입을 오래된 신화 체계를 갱신하고 확장하려는 정의롭고 진보적인 개혁으로 인식하며, 구조적 차별을 바로잡고 새로운 신화적 보편성을 구축하려는 종교윤리적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이처럼 정통주의적 팬덤이 '기존 질서의 신성성'을 수호하려는 심리라면, PC 성향의 개혁자들은 억압받았던 이들이 이야기 속에서 중심으로 회복되는 '구속사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마블 팬이 아닌 사람들이 언뜻 이해하기 힘든 두 팬덤 간의 격렬한 갈등은, 바로 이러한 종교적 구조와 정체성 투사의 메커니즘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컨텐츠 소비자의 성향을 떠나서, 이러한 갈등 구조는 단순한 컨텐츠 소비를 넘어, 대중문화 역시 이미 신화적 서사와 공동체적 정체성을 제공하는 준-종교적 구조 속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3.8.5. 스포츠의 종교적 구조
또한 스포츠 경기 역시 단순한 승부를 넘어, 집단의 응집, 이단 적대, 희열과 절망, 영웅적 플레이에 대한 숭배 등에서 고대 검투사·전차경주 의례나 마야의 제의적 구기경기와 유사한 종교적 성격의 대리적 성전(聖戰) 체험을 제공한다. 고대에는 신에 대한 헌신과 신탁의 증명이 이런 의례적 경쟁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현대에는 그 대상이 '팀, 지역, 국가, 민족, 인민' 혹은 '세계평화' 등으로 세속화되어 대리전을 이어간다. 지역간 친선전이나 국제 경기에서 사람들이 '애국가' 혹은 '기념곡'을 부르며 국가와 지역 간 정체성을 환기하고 평화적 교류를 기원하며 경기를 시작하는 것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선 종교적 상징의 의미를 내포한 스포츠의 신성한 본질을 잘 보여준다.이러한 성격을 대표하는 의례가 바로 올림픽의 개막식이다. 이는 올림픽 개최국이 자국의 문화, 예술, 역사, 고대 신화까지를 집약적으로 구성해 신화적 정체성과 국가의 상징적 신성을 표현하는 의례적 무대로 기능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올림픽 참여국 대표선수단이 들고 입장하는 국기는 각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성소의 깃발'처럼 작용하며, 관중과 선수들은 일종의 세속화된 종교적 제례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각 경기에서 팬들은 특정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며 곧 '세계, 국가, 지역, 민족'이라는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인 대표성 혹은 역사적 서사를 투사하고,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은 이단과 적에 대한 응징 감정처럼 작동한다. 승리는 '공동체의 명예'로 신성화되고, 패배는 '분노와 비난'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승리자건 패배자건 그들의 분투는 '영웅적 희생'으로 찬양되기도 한다. 이처럼 스포츠는 신을 중심으로 한 고대 의례적 헌신 구조가 세속적 정체성과 집단 충성의 틀로 재편된 대표적 세속 종교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패배한 팀에 대한 집단적 감정 구조'는 지중해 세계의 검투사 시합과 고대 마야의 구기 경기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작동했다. 로마에서 패배한 검투사가 황제와 시민들의 결정 하에 죽음을 맞이했던 관습과 마야에서 패배한 구기팀이 단체로 인신공양되었던 의례는, '신성한 경기에서 주신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의 책임 수행'인 동시에, '공동체 질서 회복을 위한 의례적이고 명예로운 희생'으로 해석된다. 이와 대응하는 구조로, 현대 국제 구기 스포츠에서도 패배한 팀을 향해 종종 들려오는 "헤엄쳐서 돌아와라" 같은 조롱은 '신성한 경기'에서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는 집단적 긴장과 실망을 '책임과 죽음'으로 연결시키는 세속적 배출구로 작동하는 한편,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격려는 패배자들이 '공동체를 위해' 끝까지 싸운 헌신과 희생적 노력에 대한 '의례적 존중'의 감정으로 이중적으로 작동한다. 즉, 과거의 '신들에 대한 헌신'이 현대에서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으로 주체만 바뀐 채, 선수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헌신 존중이라는 양면적 정서가 동일한 종교적 집단심리 구조 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인간은 제도 종교의 영향력이 전근대보다 약화된 시대에서도 끊임없이 성스러운 구조를 재창출하며, 대중문화·미디어·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적 영역에서 이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과거 2024 파리 올림픽의 개회식이 전세계 관객들에게 "정치적 올바름 대잔치"처럼 비쳐졌던 현상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연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프랑스가 자국의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심서사로 '정치적 올바름(PC)'이라는 새로운 세속 종교적 신화를 투영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고전적인 민족·역사·신화 중심의 국가 서사 대신, 보편적 인권과 다양성, 탈식민주의 담론 같은 현대적 가치들을 신화적 요소로 채택함으로써, 프랑스는 새로운 도덕적 권위의 근거를 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은 의도를 떠나서, 내부적으로도 두 정치 진영 간의 이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외부적으로는 전통적 국가 정통성과 서사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타국 관객들에게 낯설거나 공감되지 않는 시도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일부 국가의 대중에게는 지나치게 이념화된 선언처럼 받아들여졌고, 결국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는 뉴스와 유튜브에서 '모범적인 개막식'으로 평가되는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과 자주 비교되는데, 런던 개회식은 고대 신화, 셰익스피어, 산업혁명, 팝문화 등 영국 고유의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 자산을 신화적으로 구성해 국가의 연속성과 고유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처럼 국가 개회식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단순한 미학이나 기획 문제가 아니라, 그 국가가 오늘날 어떤 '신화적 서사'를 중심으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나아가 세계 각국의 관객들이 그 신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문화적 온도차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3.8.6. 과학주의의 종교적 구조
또한, 이런 내러티브 구조는 심지어 일부 과학주의적 세계관 내부에서도 반복된다.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 인공지능의 초지능적 진화, 우주 식민지화, 트랜스휴머니즘, 불멸의 기술 같은 서사는 많은 과학주의자들에게 고전 종교의 종말론과 구원 신화를 대체하는 내러티브로 작동한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 인류는 기술적 진보를 통해 결국 죽음과 고통을 극복하고 신적 능력에 도달할 것이라는 구원적 비전을 품는다. 이 과정에서 과학적 사실과 이론이 실증적 탐구를 넘어서 심리적 의존, 의미의 초월화, 절대적 믿음의 대상으로 기능하며, 이는 기존 종교의 감정적·의례적 구조와 다르지 않은 형태를 취한다. 더 나아가 물리학 일각에서 제기되는 '평행우주(멀티버스) 이론', '다세계 해석', '고등 차원의 존재 가능성', '엔트로피 우주의 최종 목적론적 진화'같은 개념들도 일정 부분에서는 신비적 상상력과 종말 및 구원 서사의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변형으로 매혹적으로 소비된다.특히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 서사'는 많은 과학주의자들에게 고등 존재의 계시와 인류 구원을 약속하는 현대적 종교 서사로 작동하며, 칼 세이건은 이러한 신화적·문학적 상상력을 자신의 저서 <코스모스>와 과학적 탐사의 이름으로 가장 세련되게 전개한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또한 유사과학의 일종이긴 하지만, '초고대 고등문명론' 역시, 인류 외부의 초월적 지혜와 개입을 인류의 기원으로 상정하며 이와 유사한 신화적 위안을 제공한다. 이러한 이론들은 과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인간에게 더 높은 존재 가능성, 영원한 진보, 최종적 통합과 조화를 약속하는 초월적 희망을 제공하며, 이는 고대 종교의 구원 서사와 상징적 구조와 심리적 기능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4. 개념
4.1. 자연종교와 계시종교
종교를 구분하는 전통적 분류 방식 중 하나는 자연종교(natural religion)와 계시종교(revealed religion)의 이분법이다.자연종교란 인간의 이성과 자연 관찰, 경험을 통해 신적 존재나 초월적 질서를 추론하고 그에 따라 종교적 믿음과 실천을 형성하는 유형의 종교를 가리킨다. 이러한 종교에서는 신이나 궁극적 실재가 인간의 자연적 사유와 감각을 통해 점진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 유교의 천(天)에 대한 관념, 초기 힌두교 철학에서의 범신적 사유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들은 특정한 인격신의 계시 없이도 인간 이성과 도덕성의 발현을 통해 신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계시종교는 신적 존재가 초월적 방식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었다는 계시(revelation)를 근거로 삼는다. 여기서의 계시는 꿈, 환상, 음성, 예언자, 경전 등을 통해 나타나며, 인간 이성의 범위를 초월한 직접적 진리를 포함한다. 대표적인 계시종교는 유일신 종교들, 즉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이다. 이들은 신이 특정한 순간, 특정한 인물에게 진리를 전달했고, 이는 절대적 권위를 지니며 인간 이성으로는 자율적으로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계시종교는 교리의 정통성과 권위를 매우 중시하며, 그에 대한 해석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종교는 인간 중심적 인식론에 기반한 종교적 형식이며, 계시종교는 신 중심적 권위 구조에 기반한 종교적 체계라고 요약할 수 있다.
4.2. 종교성과 제도종교
오늘날 종교를 논할 때 흔히 간과되는 구분이 바로 '종교성'과 '제도종교' 사이의 차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하면 교회나 사찰 같은 장소, 신부나 스님과 같은 성직자, 성경이나 불경과 같은 경전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도화된 형태의 종교, 즉 제도종교를 말하는 것이다. 제도종교는 일정한 교리와 성직 구조, 의례 체계, 공동체 규범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세계관과 윤리 체계를 제공한다. 이들은 국가, 문화, 사회와 긴밀히 얽히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반면, 종교성은 특정 종교 제도에 소속되지 않아도 인간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초월적 의미에 대한 감수성, 삶의 궁극적 가치에 대한 질문, 존재의 목적을 찾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종교성이 반드시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신이 아니라 자연, 우주, 혹은 예술과 철학을 통해 같은 감정과 깨달음을 체험하기도 한다. 명상, 요가, 자연 속에서의 감동, 삶의 고통을 이겨내는 심리적 통찰 등은 모두 종교성의 표현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제도종교에서 멀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의미', '정화', '소속감'을 추구하는 이유는, 인간 내면의 종교성이 단지 제도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구조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 장례, 명절처럼 인생의 주요 전환점에서는 무신론자조차 종교 의례를 원하기도 한다. 이는 종교가 단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공통의 신화와 상징을 통한 공동체의 정체성 구조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교성과 제도종교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는 의미를 느끼려는 내면의 감수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감수성을 조직화하고 제도화한 구조물이다. 이 둘은 역사 속에서 때로 충돌하고 때로 서로를 보완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신성한 것을 구성해왔다. 현대사회는 전통적 제도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지만, 종교성은 다양한 문화적 형태로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 표현 방식만 바뀌었을 뿐 인간 정신 속에서 '성스럽고 장엄한 것'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4.3. 이단과 사이비
종교학에서 이단(heresy)과 사이비(cult)는 일반적으로 동일하게 간주되지 않는다. 이들은 각기 다른 기준에 따라 규정되는 개념이다.이단은 기존 종교 전통의 내적 틀에서 볼 때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해석이나 실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단은 기존 종교 체계 안에 있으면서도 교리적 해석이나 신학적 입장이 다르다고 판단되어 '정통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가령, 아리우스파나 네스토리우스파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이단으로 간주되었지만, 그 사상은 철저히 그리스도교 신학의 범주 안에서 출발하였다. 이단은 흔히 신학적 논쟁과 내부 분열의 결과로 생겨나며, 역사적 맥락에 따라 정통이 되기도 하고, 박해받기도 한다.
반면 사이비는 그 기준이 교리적 정통성보다는 사회적, 윤리적 기준에 맞춰져 있다. 사이비는 특정 집단이나 교리를 '종교'라고 주장하지만, 일반적으로 종교학적·사회학적 기준에서 비정상적이거나 유해한 형태로 간주되는 신흥운동이다. 사이비 종교는 대개 극단적인 폐쇄성, 맹목적 복종, 경제적 착취, 교주의 절대화, 극단적 종말론 등과 같은 특징을 보이며,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병리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종교학에서는 사이비를 단순히 '틀린 종교'가 아니라,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위협하거나 심리적·물리적 해악을 끼치는 종교적 행위 체계로 분류한다.
이처럼 이단은 '정통 교리'의 기준에서 벗어난 변형을 의미하고, 사이비는 '사회적 해악과 병리적 구조'의 기준에서 정의되는 종교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종종 이단과 사이비가 혼용되기도 하지만, 학문적 구분은 이처럼 명확하다. 한편, 모든 신흥종교가 사이비인 것은 아니며, 사이비로 낙인찍힌 집단들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새로운 종교로 성장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개념은 언제나 시대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5. 종교를 둘러싼 담론
5.1. 유교는 종교인가?
5.1.1. 종교(宗敎)
"유교를 종교로 보아야 하는가? 철학으로 보아야 하는가?"하는 논란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종교와 철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흔히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을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러한 구분은 서구 및 중동 지역 특유의 역사적 분리, 즉 헤브라이즘(유일신 신앙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전통)과 헬레니즘(고대 그리스의 이성 중심 철학 전통)에서 비롯된 구획에 가깝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은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형성된 것이며, 동아시아나 인도와 같은 다른 문명권에서는 철학과 종교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더 나아가 서양조차도 그 기원을 살펴보면, 철학과 종교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핵심 인물인 플라톤은 그리스 신화와 종교적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유체계를 전개했으며, 그의 이데아론이나 영혼불멸론 등은 신화적 상징과 형이상학이 결합된 종교철학적 체계에 가깝다. '향연'에서는 에로스에 대한 탐구가 신화적 언어로 전개되며, '파이돈'에서는 영혼의 불멸과 내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펼쳐진다. 특히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탐구가 다이몬(신령 혹은 신적 존재)의 인도에 따른 것이라 고백하며, 단순한 합리주의자가 아니라 신적인 소명을 받은 인물로 자신을 인식한다. 결국,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플로티노스에 이르기까지, 서양 고전 철학은 신적 질서, 우주의 궁극 원인, 영혼의 구조 등에 대한 탐구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현대적 의미의 '세속적 철학'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유교가 종교인가 철학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철학과 종교를 나누는 기준 자체가 역사적으로 제한된 배경에서 나온 구분이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다른 문화권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교는 이성과 제사의례, 도덕윤리, 정치철학을 모두 포괄하는 전통이며, 그것을 단지 '철학'으로 축소하거나, 반대로 '맹목적 종교'로 오해하는 이분법은 문화사적 무지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론부터 말하면, 유교는 종교다. 그리고 어떤 사상이 종교라는 사실이 '비합리적인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교가 종교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쟁은 종종 대중적 차원에서 반복되며, 그 근저에는 '종교'라는 개념에 대한 서구 중심적이고 근대적인 오해가 깔려 있다. 유교에는 조상 제사, 천명(天命), 도(道), 성인 숭배 등 분명히 종교적 제의와 규범 체계,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유교는 초월신을 믿지 않으니 종교가 아니다",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무신론이다"같은 단편적 관점으로 유교를 철학으로만 단정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종교를 비합리적이거나 맹목적인 믿음 체계로 간주하는 오해, 그리고 종교와 철학을 인위적으로 이분화한 서구 근대적 개념을 동양의 유불도 철학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다 발생하는 문화적 왜곡이다.
고대 동양 사회에서 종교와 철학은 본래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가르침(敎)'은 단지 '신앙'만이 아닌 삶과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고, 인간의 도리를 규정하며, 의례와 정치 질서를 포함하는 총체적 세계관이었다. 유교에서 말하는 종교(宗敎)는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가르침'이란 뜻에 가깝고, 이는 불교와 도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동양 문명에서는 종교와 철학, 윤리, 정치가 하나의 구조로 통합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유교가 철학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고 해서 종교가 아니라는 식의 이분법은 동아시아 전통 사유 구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판이라 할 수 있다.
5.1.2. 천(天)
무엇보다 유교는 단순한 윤리체계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기반을 갖춘 종교 체계다. 특히 그 중심에는 하늘(天)에 대한 개념이 존재한다. 초기에는 신과 조상령들의 의지가 담긴 운명적 힘에 가까웠던 '천'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도덕적 인격성과 초월성을 갖춘 절대적 질서의 원천으로 발전했다. 맹자는 이를 '하늘은 인간에게 도덕적 감각을 부여한다'는 식으로 정립했고, 중용에서는 '성(性)은 천의 명령이며, 도는 성을 따르는 것'이라 하여 철저히 종교적 구조 속에서 윤리와 철학을 전개하였다. 이는 불교의 법신불 개념, 도교의 도(道)와 무위자연 사상과도 연결되며, 동아시아 전체 사상의 신학적 구조화 과정 속에서 유교 역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로 정립되었다.중국 사상에서 ‘하늘(天)’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자연 현상 이상의 신적인 위상과 의지를 지닌 절대 질서로 발전했으며, 그 기원은 상나라 시대의 조상령 숭배와 자연 숭배의 결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나라 사회는 철저한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삼황오제로 대표되는 선조 및 영웅 조상들에 대한 경외와 천둥, 비, 태양, 강물 등 자연현상에 깃든 신령에 대한 제사가 함께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조상령과 자연령이 구분되지 않고 초월적 권능과 위엄을 가진 의지적 존재들로 인식되었고,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궁극적 실체로서 점차 '하늘'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조상령들의 총체이자 집단적 질서로서의 '하늘'은 상제(上帝)라고도 불리며, 단지 기후나 하늘 그 자체가 아닌, 세상의 운명을 관장하고 인간의 삶을 심판하는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다. 상나라 왕들은 천명을 위임받은 자로 자처했으며, 왕실 제사는 천상의 조상령과의 직접적인 소통이자 정치 권위의 원천이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상나라는 강의 범람과 가뭄이 빈번한 한랭건조한 기후 속에서 자연재해를 매우 많이 겪었기에, 이 하늘의 뜻을 달래기 위해 실제로 인신공양이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하늘' 개념이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극도의 공포와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실체적 존재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인신공양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결국 상나라에서 하늘은 자연의 질서, 조상 숭배, 정치 권위, 죽음과 희생이 통합된 세계관의 정점이었으며, 이로부터 중국 고대 사상의 초월자 개념이 점차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주나라로 넘어가면서 인신공양은 줄어들고 마침내 성인 공자에 의해서 인신공양이 폐지되고 도덕적 질서로서의 천(天) 개념이 정립되지만, 그 기저에는 여전히 상대적이고 가혹하며 공포스러운 '하늘의 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유교의 천명사상, 도교의 자연 순응 사상, 중국 대승불교의 업과 인과론과도 차례로 연결되며, 동아시아 전체에서 하늘은 도덕적 권위이자 운명적 질서로서의 종교적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교에서의 '천(天)' 개념은 상술했다시피 초기에는 '왕실 조상령들의 집단적 질서'를 의미했으나,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성현(聖賢)들의 혼백(魂魄)과 융합한 우주의 윤리적·도덕적 질서로 추상화·도덕화되었다.
결론적으로, 유교는 그 본질상 윤리학과 형이상학, 사회철학과 제의체계를 모두 포괄하는 종교적 전통이다. 단지 신의 형상을 명시하지 않고, 구체적인 계시를 통한 종말론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종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구조는 초월자에 대한 이성적 접근, 공공윤리와 국가 운영의 기반, 인간 존재의 도덕적 의미를 탐구하는 체계로서 종교의 본령에 더 충실한 전통일 수도 있다. 현대 종교학계에서 유교가 여전히 '종교'로 분류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을 반영한 결과이다. 유교가 철학적 요소를 가진다고 해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불교가 공(空)을 말하니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이라는 주장만큼이나 피상적인 해석이다.
결론적으로, '천(天)'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의 신성한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후대의 자연 질서나 천지의 이치로까지 의미가 확장되고 축적된 복합적인 표현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공자나 맹자 등도 천을 신격화된 존재로 묘사하며, 이에 근거한 주장인 "민심이 곧 천심이다", "민심을 잃으면 왕조는 교체되어야 한다"와 같은 표현은 현대 철학 언어로 보자면 '초월적 존재의 명령'을 암시하는 '당위'(ought)에 해당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맹자의 성선설 또한 인간의 본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도덕적 당위'를 서술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유교에서 '본성'을 말할 때 그것은 곧 '마땅히 그래야 할 것'에 대한 윤리적 이상을 내포하며, 이는 곧 정치 질서와 인간 사회의 도덕적 방향성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5.1.3. 천도(天道)
동국통감을 비롯해 삼국사기는 철저히 유학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서다. 그런데 정작 삼국사기에서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수한 배경을 서술하면서 "또한 당나라 군사의 신령한 힘을 빌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그 지역을 취하여 군현으로 만들었으니, 가히 성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신령한 힘'이라는 표현은 당나라의 군사력이 실제로 초자연적이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인지는 해석이 갈릴 수 있다. 만약 '신령한 힘'이라는 표현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받아들여졌다면, 이는 역사 철학을 넘어 종교적 서술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또 다른 예로, 견훤이 신라를 평하면서 남긴 말로 알려진 "천도(天道)는 되돌려주기를 좋아합니다."라는 구절도 있다. 여기서 '천도'는 단순한 자연의 법칙인지, 아니면 초월적 의지를 지닌 절대자의 뜻인지가 모호하다. 문맥상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의 논리처럼 보이지만, '천도' 자체가 현실 너머의 질서를 암시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언어로도 읽을 수 있다. 참고로 동국통감에서는 이 '신령한 힘'이라는 표현을 보다 정치적인 어조로 완화하여 ‘당나라의 위엄을 빌려’로 수정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표현들은 단지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교 내부에서도 종교적 감수성과 철학적 담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예를 들어 '천도'라는 개념은 노자의 도덕경에도 등장하며,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나올 때마다 일부 학자들은 "도교적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이는 결국 이기이원론을 둘러싼 조선 시대 당쟁으로까지 확산되기도 했다. 사실 유교 지식인들 중에는 불교, 도교와도 교류가 활발했던 인물들이 많았다. 삼국사기의 편찬자 김부식 역시 고승들과 교류하며 불교 관련 시를 남겼던 인물이었고, 조선 시대 유학자들 중에서도 유교적 윤리를 따르면서도 은근히 도교 사상에 매료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는 유가, 불가, 도가가 각각 독립된 사상 체계로 보이면서도, 천도(天道)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유의 핵심이 상당 부분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교를 좋아하거나 선종(불교)을 추구하는 이들은 도가와 도교를 구별하려 하지 않는 일체론적 관점을 취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정통 유학의 입장에서는 이들을 철저히 분리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도가-도교 분리론은 초기 불교나 교종 계열 불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주장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중국 사상사에서도 반복되었던 보편적 현상이다. 고구려 역시 초기에는 도교적 영향을 받아 불교를 탄압했으며, 도교와 불교, 유교 사이의 경쟁과 융합은 동아시아 전통 종교문화의 핵심적 특징이었다. 다시 말해, 유교 사상이라 하여 철학적으로만 해석하려는 시도는 실제 유학자들의 사유 및 표현과는 괴리가 큰 시도이며, 유교 역시 그 뿌리부터 초월적 질서와 종교적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5.2. 종교와 세속 이데올로기는 단절된 체계인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개념처럼 여겨진다. 전자는 '초월적 존재나 신비적 체계를 전제한 신앙'이고, 후자는 '세속적 사유와 정치적 실천의 틀'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사상사적으로 보자면, 이 두 개념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사와 기능 면에서 연속성을 가진 역사적 전개 과정의 일부다. 즉, 이데올로기는 종교를 전면적으로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 사유 구조를 인간 중심으로 변형한 세속화된 후계 체계라는 것이다. 앞선 종교의 정의에 대한 설명에서 서술한대로, 고대와 중세의 인간은 자연과 세계, 삶의 고통, 죽음 이후에 대한 근본 질문에 대해 신과 신화의 서사를 통해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 서사는 단지 '믿음'에 머무르지 않고, 도덕적 규율, 공동체 정체성, 정치 질서의 정당화, 삶의 목적을 총체적으로 조직했다. 종교는 단지 초월적 믿음을 담은 교리가 아니라, 인간 세계를 해석하고 구성하는 인지적·사회적 틀이었던 셈이다.근대 이후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의 영향으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회의가 대두되자, 이전까지 종교가 담당하던 세계 이해의 구조는 '이성, 과학, 역사, 인류, 국가, 계급'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 대체는 기능의 소멸이 아니라 기호와 구조의 "세속화"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 전통과 사회주의 전통 모두에서, 서양의 '신의 뜻(예언)'과 동양의 '하늘의 뜻(천명)'은 '역사의 법칙'으로, '구원'은 '진보'로, '죄'는 '착취'로, '종말'은 '혁명'이나 '해방'으로 치환되었으며, 그 과정은 기존 종교적 구조의 틀을 거의 유지한 채, 그 구조를 채우는 단어와 내용만을 세속적 언어로 다시 쓰인 과정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근대의 이데올로기는 종교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그 계보를 잇는 형식적 후계자다. 인간은 여전히 '질서와 의미', '정체성과 소속', '절대성과 심판'을 필요로 했고, 종교의 퇴조 이후 그 욕망은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신'이 자리잡던 자리를 '인간'이, '교리'가 자리잡던 자리를 '이념'이, '구원'이 자리잡던 자리를 '역사적 사명'이 대신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상기한 '신화 중심의 정의'에서 설명한대로 인간이 세계를 조직하고 해석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더불어 역사적으로도 분리될 수 없는 사상사적 흐름과 맥락을 공유한다. 이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대립적으로만 보는 시각은, 오히려 근대를 형성한 사유의 실제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여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종교를 해체하거나 극복하려는 듯 보였던 근대 사상가들조차, 실상은 기독교의 서사 구조와 핵심 개념들을 철학적 언어로 재구성하여 유지했다. 특히 근대 사상의 아버지들이라 할 수 있는 임마누엘 칸트, 헤겔, 장 자크 루소, 존 로크 등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대다수가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초월적 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줄였을 뿐, 그 자리에 윤리, 이성, 역사, 자율성, 보편성 등의 개념을 두고 기독교적 구원·윤리·종말론 구조를 철학적으로 보존했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신, 자유, 영혼불멸을 실천이성의 이념들로서 도덕의 정초가 논리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이념의 전제로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계몽의 시대에 신의 개념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도덕률에 복속된 '도덕적 신'의 개념을 제시하며, 기독교의 윤리적 신을 철학적 방식으로 존속시켰다. 또한 그가 <영구평화론>에서 제시한 인류의 도덕적 성숙과 이상국가에 대한 희망은 기독교적 종말론과 천년왕국의 세속적 변형이라 평가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헤겔은 더욱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개념을 철학 체계 속에 끌어들인다. 그는 <정신현상학>과 <역사철학 강의> 등에서, 세계사는 '세계정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며, 이는 사실상 기독교적 섭리 개념과 역사적 종말론을 철학적으로 구조화한 것이다. 즉 '신의 자기현현'이라는 기독교 교리가, 정신의 자기전개와 자유의 실현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 담긴다. 그의 '세계정신'은 기독교 신의 철학적 후속개념이며, 유럽 중심의 역사관은 사실상 '기독교적 구원 역사'의 세속화된 버전인 셈이다.
사회계약론 사상가들 역시 이성과 계약, 권리, 보편 도덕 같은 개념을 내세웠지만, 그 근저에는 기독교 윤리의 인간 존엄성, 양심의 자유, 자연법적 질서에 대한 믿음이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존 로크는 종교적 관용을 주장하면서도 신의 존재를 자연법의 전제로 수용했고, 루소의 '일반의지'는 개인을 초월하는 도덕적 공동체의 의지로, 종교 공동체의 구조를 정치철학 안에 옮겨온 예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현대 자유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인권, 보편 가치, 자율성 등의 개념도 기독교의 신학적 인간관을 세속화한 산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는 심지어 기독교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종교를 극복하고 새로운 합리적 사유체계를 구축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기존 종교의 서사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오직 그 핵심 자리에 있던 '신'을 인간 또는 이성으로 교체했을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종교가 담당하던 질서, 목적, 도덕, 구원의 기능은 이데올로기적 또는 과학주의적 언어로 재해석되었고, 부족한 연결부는 '과학적 방법론'과 '실증적 담론'으로 보완되었다. 말하자면 신의 빈자리를 인간이 차지했고, 그 주변을 과학이 땜질한 셈이다.
대표적으로 오귀스트 콩트는 '종교 → 철학(형이상학) → 과학'이라는 인류 지성의 진화 단계를 제시하며, 종교를 인간 발전의 초기 단계로 치부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실증주의를 '인류를 위한 도덕적 종교'로 선언했고, 과학을 새로운 성직 체계처럼 제도화하려 했다. 그는 '인류성(L'humanité)'이라는 개념을 신격화하고, 자신을 실증주의의 사제로 자처했으며, 사원과 의례, 심지어 실증주의적 경전까지 상상했다. 이런 점에서 콩트는 종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신 없는 종교'를 다시 세우려 한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콩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류 평등'과 '계급 해방'이라는 기독교적 구원 서사를 제시했고, 역사 유물론은 신적 섭리 대신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이름의 세속적 예정론을 제공했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이성의 신'을 만들어 신전을 세우기도 했으며, 앞서 말한 루소는 '일반의지'라는 집단적 절대성을 제안해 종교적 계율을 정치적 개념으로 대체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신화적 구조는 유지한 채 그 내용을 인간 중심으로 재서술하고, 그 정당성을 '과학적 언어'로 포장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철학적·사상적 전통은 궁극적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정당화 구조로 이어졌다. 인간의 존엄성, 자유 의지, 양심과 이성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적 인간관의 세속적 전환으로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인권, 평등, 자율성의 사상적 토대를 형성했다. 즉,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윤리의 세속화와 철학적 재구성을 통해 탄생한 정치적 신념 체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마치 종교처럼 보편적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 이념 구조 속에 도덕적 절대성과 구속력을 부여하는 종교적인 정당화의 유산이 여전히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왜 아직도 기독교가 현대 사회에서 깊은 영향력을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기독교가 단지 심리적 위안을 제공해서가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대 사회의 정치적·도덕적 질서는 본질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세속화한 산물이기 때문에, 설령 스스로를 비신자라고 여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 심지어 온건한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을 신봉한다면, 이미 기독교적 사유와 믿음체계, 그리고 세계관의 지평 안에 서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적 신앙을 넘어, 오늘날 현대인이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구성하는 방식 전반에 내재된 '가장 심층적인 문화적 코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 사상가들은 종교를 극복하려 한 것이 아니라, 종교의 핵심 자리를 바꾸는 서사적 재배치 작업을 수행한 셈이며, 이 과정에서 인간 이성, 계급, 민족, 과학, 진보, 역사 등이 '신'을 대신하는 중심 개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개념들은 여전히 의미, 질서, 규범, 구원, 심판, 순교의 기능을 수행하며, 단지 종교적 서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오직 그 틀의 맥락으로부터 강력한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과학은 이들 개념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 전체 구조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결국 이들은 종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신과 교회의 형식을 해체한 뒤, 그 핵심 의미를 철학과 정치 개념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신 없는 기독교', '철학적 교리로 탈바꿈한 신학'이 근대 철학의 배경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근대 이념은 종교와의 단절이 아니라, 종교적 구조의 사상적 번역이었으며, 이데올로기는 신학의 종말이 아니라 형태 변화에 불과한 계승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근현대의 여러 철학자들과 사회이론가들의 연구에 의해 체계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정치철학자 에릭 보글린(Eric Voegelin)은 대표적인 저술 <정치적 종교>와 <신성과 역사>에서 근대 이데올로기, 특히 공산주의, 나치즘, 계몽주의적 유토피아주의를 고대 종교의 '세속화된 신화 구조'로 해석했다. 그는 인간이 세계 내에서 의미와 질서를 찾으려는 존재인 이상, 초월성을 제거한 이데올로기도 종교적 형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보글린은 이데올로기를 "역사 안에서 구원을 성취하려는 시도", 즉 '구원 신학'의 정치적 재구성으로 간주했다.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 마르셀 고셰(Marcel Gauchet) 또한 <종교의 탈마법화와 민주주의(Le Désenchantement du Monde)>에서 서구의 근대화는 종교의 소멸이 아니라 종교의 구조가 사회 전체에 스며드는 과정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독교의 탈주술화 과정이 오히려 인간 중심의 윤리와 정치 질서를 정초했으며, 이로 인해 현대 정치사상이 종교의 형식을 벗지 못했다고 본다. 즉, "종교 없는 종교의 시대"라는 고셰의 개념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 체계가 여전히 종교적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또한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신학>에서 "모든 근대의 핵심 개념은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다"라는 학계의 매우 유명한 테제를 제시하며, 주권, 정의, 계엄 등의 정치 개념들이 본래 신학에서 기원한 개념임을 밝힌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정치 체계조차 신학적 메타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며, 정치이론이 사실상 세속 종교의 이론적 후속물임을 드러낸다.
이 외에도 한나 아렌트는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고대 신비종교의 열광적 폐쇄성과, 이를 계승한 근대 영웅주의 서사와의 결합으로 이해했으며, 폴 리쾨르는 근대적 서사가 어떻게 구원의 서사구조를 은밀히 계승했는지를 해석학적으로 탐구했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역시 <종교생활의 원초형태>에서 종교를 초월적 신념 이전에 집단 정체성과 질서 창출의 사회적 장치로 규정함으로써, 종교의 구조가 그대로 세속적 사회제도에 이입될 수 있음을 이론화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론적 전통에 속하면서도 공통적으로, 이데올로기가 단순히 종교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종교의 형식을 세속적 언어로 재번역한 것임을 강조한다. 즉, 근대성은 종교의 탈피가 아니라 종교적 구조의 재배열이자 기능의 세속화된 이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이데올로기들은 종교의 해체가 아니라, '세속화'(secularization)를 통해 신화의 재배치와 정당화라는 더 복잡한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종교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만 달리한 채 '이데올로기'라는 새로운 언어로 귀환한 것이다.
5.3. 종교와 현대 이데올로기의 융합과 경쟁이 시사하는 것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데올로기는 종교의 해체자가 아니라 종교의 계승자이자 세속적 자식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데올로기는 종교적 구조에서 초월적 신의 자리를 제거한 뒤, 그 자리를 인간, 계급, 민족, 이성, 역사, 진보 같은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종교적 서사를 세속적으로 재편한 체계다. 그렇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종교와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현대 이데올로기들조차도 신앙적 헌신, 교리적 엄격성, 상징과 의례, 구원과 심판의 구조를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물론 이데올로기는 제도와 법률, 무엇보다 인권 개념의 발전을 통해 인류 문명과 정신의 동학을 고도화함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인간 이성이 종교를 대체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이, 실제로는 신을 제거한 자리에 다른 절대적 세속 구조를 대입한 것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결국, 이른바 '세속화(secularization)'란, 현실을 초월하는 절대적 구조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단순히 억제하거나 삭제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이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구속, 구원, 초월, 질서, 의미 등의 종교적 구조를 온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단지 신이라는 요소를 배제한 뒤 그 빈자리에 다른 하위개념을 삽입한 '불완전한 대체'였던 셈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세속 이데올로기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금 초월적 성격과 구조를 재도입하거나, 아예 종교와 융합된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 의식의 구조적 필요에 따른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인간이 단지 신을 버림으로써 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종교적 구조는 형태만 바꾸어 언제나 인간 사회 속에서 반복되고 재생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계몽주의자들의 예측과 달리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종교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분명해졌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서는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조화되거나 혼합된 형태로 새로운 이념들이 탄생하며, 또 매우 다변화되고 있다. 현대의 급진적 좌파 사상은 종교적 도덕률과 세속적 정의 담론을 접목하여, 오늘날에는 제도 종교보다 오히려 더 강한 교리적 엄격성과 윤리적 헌신을 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좌익 민족주의, 해방신학, 정치적 올바름, 인권(적극적 자유) 담론, 생태주의, 기술주의적 진보주의 등은 종교적 교리와 이데올로기적 구조가 결합되어 형성된 현대적 신념 체계이며, 종교와 이데올로기 중 하나로만 규정짓기 어려운 모호한 경계에서 전개되며 다양한 갈래로 분화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초월적 신을 도입하거나 그와 유사한 개념을 통해 강력한 도덕 명령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구성원들에게 구속력 있는 규범과 상징체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세속 종교'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파 사상은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동맹과 융합의 형태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보수주의, 민족주의, 자유주의의 일부 분파들은 전통 종교와 깊게 결합하여, 종교적 권위와 도덕률을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으로 삼는다. 미국의 기독교 우파나 러시아 정교회, 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의 가톨릭 보수주의, 한국의 보수 개신교 진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종교를 국가 정체성과 도덕 질서의 중심축으로 삼아 정치적 아젠다에 통합한다. 낙태 반대, 반동성애 담론, 전통 가족 가치의 옹호 등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이자 동시에 종교적 신념으로 기능하며, 이 과정에서 종교는 이데올로기의 정당성과 제도적 명분을 부여받고, 이데올로기는 종교적 언어와 상징을 통해 광범위한 대중적 정서에 호소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정치 사상 안에 구원의 약속, 타락한 세계에 대한 정화의 필요, 이단(적)에 대한 응징 등을 내포한 복합적 종교-이념 체계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융합 양상은 중도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중도파나 실용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이념들도 표면적으로는 극단의 교리성과 거리를 두려 하지만, 실제로는 극단적 원리주의와 근본주의와 결별함으로써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게 된다. 결국, 중도주의는 이념적 근본주의와 스스로를 구분지으면서도, 여전히 기존 질서의 정당화, 도덕적 안정성의 유지, 사회적 통합이라는 목적을 이루고 '내면의 통제감'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적 정당성이나 상징 체계를 은연중에 차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보편적 인권'이나 '합리적 질서', '공공선'과 같은 개념은 형이상학적 기반 없이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상은 근대 기독교 윤리와 자연법 사상의 유산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중도적 이념은 극단적 종교나 이념에 비해 온건하고 실용적인 듯 보이지만, 그 또한 인간 사회가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초월적 의미, 질서, 정당성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종교적 코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종교화된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는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날카롭게 대립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호 보완하거나 뒤섞이며 작동하는 양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오류나 혼란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애초에 종교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필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사실 이데올로기는 처음부터 한 번도 종교의 구조적 그늘을 완전히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그 내러티브 안에서 현대인의 의식구조 전반을 구속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무신론자가 스스로를 "순수한 이성의 신봉자"라고 자처하더라도, 그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윤리적 당위를 절대화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종교적 구조로 작동하는 이념에 귀속되어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종교적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신을 부정하더라도, 그의 이념적 사고 안에서 그 자리는 여전히 신성화된 믿음, 금기, 도덕적 구속력, 의례적 정체성 등으로 대체되어 있으며, 인간 사회는 그 구조적 메커니즘 안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결국 현대의 좌우파 이데올로기는 기표와 담론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세속화된 기독교적 종교 논쟁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자유, 평등, 전통, 진보, 다문화, 시장경제, 복지국가 등과 같은 세속적 개념들이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누가 더 기독교적 윤리의 세속화 버전, 즉 인간 존엄, 정의, 구원, 정화, 절대적 가치 등을 정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경쟁이 숨겨져 있다. 오늘날 정치적 논쟁은 자신이 따르는 가치가 '인류 보편의 진리이자 도덕적 중심'이라는 강한 확신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의 신념은 흔히 '타락'이나 '이단'으로 간주된다. 이런 양상은 결국 고전 종교에서 벌어졌던 정통과 이단의 투쟁, 순결과 오염의 구분, 그리고 최종적인 구원의 약속과 종말론적 심판 서사와 동일한 구조로 작동하고 있으며, 현대 정치 담론이 여전히 종교적 형식과 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현실은 개개인의 합리성과 종교적 신앙 여부와는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결국엔 의미와 질서, 구원과 정체성을 요구한다는 존재론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그 욕망은 고대에는 신화와 종교로, 근대에는 이념과 이데올로기로, 현대에는 다시 혼합된 형태로 반복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적 무신론자든 급진적 진보주의자든 간에, 만약 그가 어떠한 정치적 신념에 헌신하고 있다면 그는 종교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그의 믿음은 비록 신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종교적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결국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이데올로기는 언제든 종교와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경로를 내포하고 있다. 초월적 정당성과 내면적 구속력에 대한 인간의 요구는 단순한 세속 이념만으로는 완전히 충족될 수 없기에,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변형되거나 분화되며, 종종 종교적 상징과 사유 체계를 다시 끌어들이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이데올로기와 세속종교가 아무리 정교하게 구성되더라도 전통 종교의 심층적 의미 체계와 상징의 무게, 그리고 존재론적 통합력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이데올로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금 전통 종교의 방대한 철학적 자산과 심성 구조에 의존하거나, 그로부터 유사한 구조를 차용하려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즉, 전통 종교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대체되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과거 신정국가 시절과 같은 권력을 되찾기는 어렵겠지만, 오히려 이데올로기와의 공존 혹은 융합을 모색하며 다른 방향에서 계속 인류 정신과 의미체계의 핵심 축으로 기능할 것이다.
결국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구별될 수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으며, 현대 사회는 이 두 구조의 교차점 위에 세워진 이념적 풍경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어느 한쪽만을 절대시하거나 제거하려는 시도는, 두 개념의 연속성에 비추었을 때 처음부터 자가당착적이고 실현될 수 없는 시도이며, 스스로가 또 다른 종교적 언어와 이단 심문을 낳는 역설적 구조에 갇히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며 타인을 비난하거나 배제하기보다는, 이러한 복합적이고 필연적인 구조와 현실를 이해하고 타자와의 대화를 모색하는 태도가 오히려 향후 더 깊은 사유와 공동체적 공존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5.4.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자비)인가?
대다수의 종교가 '사랑' 혹은 '자비'란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 용어의 심층적인 맥락과 의미, 그리고 해당 종교의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그 가치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현저히 다르며, 따라서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아래는 관점에 따라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5.4.1. 종교학에 입각한 답변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다"라는 주장은 종종 종교를 평화주의적 프레임으로 재단하며 옹호하거나 종교 간의 갈등이나 교리적 차이를 축소하려는 입장에서 제시되는 주장이다. 특히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심지어 무신론 측에서도), 종교의 본질이 변질되었거나 잘못 해석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진정한 종교는 사랑"이라는 도식으로 원래의 종교성을 재정의하려는 시도에서 자주 등장한다. 얼핏 듣기엔 이상적인 명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단순화되고 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인 해석이며, 많은 경우 종교의 실질적 다양성과 교리적 복합성을 가리는 피상적인 일반화에 불과하다.물론, 넓은 의미에서 "사랑", "자비", "황금률"은 많은 종교에서 중요한 가치로 강조된다. 예컨대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율법의 핵심으로 제시했으며, 불교에서도 자비는 해탈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태도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많은 종교가 사회적 조화와 타인에 대한 선의를 권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현대 자유주의 개념으로서의 사랑'이 종교의 실질적 교리적 중심인가 하는 문제다. 종교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명제는 특히 현대의 보편주의적 인권 담론과 정서적 공감 능력을 중시하는 감정 중심주의의 산물일 때가 많다. 현대에서는 근대 이후 '세속화된 기독교적 사랑'이 윤리의 보편규범으로 떠오르며, 종교 또한 궁극적으로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이는 전통 기독교의 사유 체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표면적 단순화일 뿐만 아니라, 문화 상대성의 원리를 간과한 시각이다. 동아시아 종교는 질서·조화·예(禮)를 중시하며, 인도계 종교는 업(業)과 해탈이라는 메커니즘 중심의 체계를 갖고 있고, 중동에서 비롯된 유일신 전통은 신의 절대적 명령과 계약이 핵심이다. 이처럼 문화권마다 윤리의 기반은 상이하며, '사랑'이라는 개념조차도 그 정의와 작동 방식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예컨대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단순히 '사랑하라'가 아니라, 신 앞에서의 죄와 철저한 회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극적인 구원이라는 '구원론적 구조'에 있다. 사랑은 이 구조를 뒷받침하는 도덕적 요청이지, 그 자체가 종교의 전부는 아니다. 유교에서의 '인(仁)' 역시 단순한 자애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하늘의 도를 인간사회에 구현하려는 도덕적 주체의 혹독한 자기 수양과 예(禮)를 통한 질서 확립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다. 불교의 핵심은 사성제와 팔정도, 즉 삶의 고통을 인식하고, 집착을 끊고, 열반에 도달하는 '깨달음'의 구조다. '자비'는 이 과정에서 실천적 자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것이 불교의 "본질"이라고 말하면 원래 구조를 오도하는 결과가 된다.
결국 '사랑'이라는 개념을 모든 종교에 일괄적으로 투사하는 것은, 오히려 종교 전통의 사유 구조를 오독하거나 왜곡할 위험이 크다. 또한 무엇보다도 모든 종교가 '사랑'을 중심에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율법의 준수나 신의 주권을 매우 중시하며,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철저히 신의 권위와 정의에 종속된 것이다. 힌두교는 카르마, 다르마, 윤회 등 복잡한 인과와 의무의 구조 위에 서 있으며, '사랑'보다는 의무와 깨달음, 해탈이 핵심이다. 요컨대, "모든 종교는 사랑을 본질로 한다"는 주장은 교리의 실질적 구조를 무시하고, 문화적 표현의 유사성만을 절대화한 것이다. 종교는 사랑만이 아니라 고통, 죄, 구속, 의무, 해탈, 순종, 정화, 초월, 희생 등의 다양한 개념들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그 중심 교리는 사뭇 다르다. 단지 '사랑'만을 중심 개념으로 가져오는 태도는 결국 종교를 도덕 교육이나 심리적 위안의 수준으로 축소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5.4.2. 교리적 본질에 입각한 답변
많은 종교는 인간의 감정적 충동이나 내적 열망이 아니라, 외부적이고 초월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중심을 둔다. 신과의 언약을 지키고, 전통적 계율에 따르며, 질서에 순응하고, 정해진 도(道)나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종교는 자율적 사랑보다는 종속적 실천, 혹은 경건한 복종을 요구하는 구조를 띄며, '사랑'은 그 결과 혹은 부차적 동기일 뿐이다. 따라서 '사랑'만을 강조하는 방식은 종교의 긴장성과 내적 훈련의 성격을 지우고, 도덕적 무난함과 정서적 위로로 종교를 탈정치화·탈형이상화하는 결과를 낳는다.이는 종교의 본질적 권위와 장엄함을 파괴하는 세속적 축소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종교의 '사랑' 담론은 대체로 온화하고 비폭력적인 이미지와 결합되어 소개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종교는 단순히 연민과 포용을 설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의 악과의 싸움, 고통의 인내, 도덕적 결단, 공동체와 신념을 위한 자기희생 등 '전투적 윤리'를 함께 내포해왔다. 이는 그리스와 북유럽의 투쟁적 신화관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에서도 자명한 진실이다. 기독교의 경우 초기 수도사들은 자신의 '죄성'과 싸우기 위해 극단적 고행과 자발적 고통을 감내했고, 불교 역시 마찬가지로 보시와 자비를 위한 '깨달음의 길'은 고통스러운 수행과 끊임없는 번뇌와의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거리낌없이 자신의 삶을 신앙과 맞바꿔 투신한 결단에서 비롯된 그 강렬한 에너지야말로, 지극히 호전적이었던 로마의 귀족들과 중국의 군신들이 이들에게 감탄하며 스스로 '칼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게 만든' 기적을 일으킨 원천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종교 담론에서 종교의 이러한 본질적 전투성과 강인함은 '사랑'이라는 단어 아래 점차 소외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을 지나치게 감정 중심의 연민이나 용서로 협소화함으로써, 신앙의 근본이 되는 긴장과 결단, 경건한 두려움, 운명적 의무감, 신화적 장엄함이 약화되는 것이다. 특히 서구 자유주의 신학이나 세속 인본주의와 결합한 종교 해석은 종교를 정서적 위로의 수단이나 개인적 평화를 위한 도구로 재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그로 인해 종교 본래의 위엄과 엄숙성, 실존적 결단의 긴장성이 퇴색되고 만다. 이는 종교를 '무해한 사랑의 언어'로만 소비하려는 현대 대중사회의 일종의 탈형이상적 경향이며, 본래 종교가 지닌 인간 내면의 악과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정신적 무장'으로서의 측면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5.4.3. 비트겐슈타인 학파적 답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개념들을 정의할 때 하나의 공통된 본질을 찾기보다는, 서로 일정 부분 겹치면서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특성들의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틀은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교, 힌두교 등 세계의 주요 종교들은 '신', '의례', '구원', '윤리', '세계관'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서로 다르게 조합하고 있으며, 공통된 본질로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사랑'이라는 개념 역시, 종교들을 묶는 하나의 보편 정의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아가페',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仁)', 이슬람의 '은혜(라흐마)' 등은 모두 대체로 인간 간의 관계에서 선의와 긍휼을 나타내지만, 각 종교의 내적 구조와 실천 체계, 무엇보다도 개념이 형성되어온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그 의미와 기능은 현저히 다르다. 또한, 많은 종교가 사랑보다는 '의무'나 '경외심'에 더 방점을 두며, 고행이나 수련, 의식적 전통의 반복 같은 행위적 요소가 중심이 되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종교란 '하나의 본질'로 규정지을 수 없는 언어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주장은 특정 종교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주로 현대적, 리버럴적 가치관)의 해석 틀을 다른 모든 종교에 일방적으로 투사한 결과에 불과하다. 종교 간에는 분명 유사성과 공유된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공통된 본질이 아니라 겹치는 속성들의 다발일 뿐이다. 결국 종교는 단일한 가치로 환원될 수 없으며, '사랑' 역시 그중 일부일 뿐 전체는 아니다.
6. 종교의 기원
이는 단순히 자료와 연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좋든 싫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본질적으로 '종교적 존재(Homo religiosus)'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을 초월적 질서 안에 위치시키려는 성향을 가지며, 이는 개인의 종교 유무와 무관하게 인류 공통의 특성으로서 기능한다. 종교는 단지 믿음의 체계를 넘어, 시간·죽음·도덕·존재의 이유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응답 구조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의 기원을 설명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따라서 종교의 기원을 단일한 시점이나 원인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인간 정신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간과하는 것이며, 종교는 인류의 역사와 정신 구조를 함께 탐구해야만 접근 가능한 문제로 남아 있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흔적 중 하나는 선사시대의 매장 의례이다. 기원전 10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매장지에서는 시신과 함께 붉은 색의 황토나 동물 뼈, 꽃가루 등이 발견되며, 이는 단순한 시체 처리 이상의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상징적 인식이 존재했음을 암시한다.[6] 물론 이것이 오늘날의 제도화된 종교와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초월적 질서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감각이 매우 오래된 인간 정신의 일부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초기 종교는 주로 애니미즘(정령 신앙), 샤머니즘(영혼과의 중재자), 토테미즘(자연물과의 신성한 동일시) 등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집단 정체성과 생존을 조직하는 사회적 장치로도 기능했다. 이들 신앙은 단순히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화와 의례를 통해 공동체의 삶을 의미화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현대 진화심리학은 종교가 인류 진화의 부산물인지, 적응적 산물인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가설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가설이 자주 언급된다:
- 적응적 진화론: 종교는 집단 결속과 협동을 강화하여 개체군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이 관점에서는 윤리, 금기, 공동의례가 생존 전략으로 해석된다.
- 부산물 가설: 종교는 본래 생존에 특화된 심리 기제들, 예컨대 의도 탐지 시스템(agency detection), 이과성 회피 반응, 이야기 기억의 강화 등이 우연히 결합되어 생겨난 심리적 부산물이라는 설명이다.
- 문화적 바이러스 이론: 종교는 특정한 '밈'(meme)으로 작용하여 부모-자식, 스승-제자 관계를 통해 복제되고 지속된다는 관점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를 진화적 적응이라기보다 정보적 전염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론들은 종교가 왜 거의 모든 인간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했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며, 초자연적 존재의 실재 여부와는 무관하게 종교적 사고의 발생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진화심리학적 가설들은 종교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하지만, 가설의 구성과 해석이 종종 제안한 학자의 종교에 대한 태도에 크게 좌우된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종교를 심리적 착오나 진화적 부산물로 보는 가설은 대체로 무신론적 또는 비판적 입장에서 제시되며, 반면 집단 적응의 결과로 보는 이론은 종교의 긍정적 사회적 기능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생물학과 인지과학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설명 방향과 가치 판단이 과도하게 이념적으로 갈리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경험적 검증보다는 해석적 틀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종교는 인간 정신이 세계를 질서화하고 구조화하려는 상징체계의 일부라고 본다. 이 관점에서 종교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 인간이 혼란스러운 현실을 의미 있는 신화적 질서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에밀 뒤르켐은 종교를 사회적 집합의식이 상징화된 형태로 이해하며, 종교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사회 규범을 내면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다. 구조주의적 접근은 종교를 인간 정신의 보편적 구조와 상징 체계의 산물로 설명함으로써 문화 간 유사성을 밝혀내는 데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 관점은 종종 개별 문화의 역사적 맥락과 실천적 다양성을 간과하고, 종교를 지나치게 추상화하거나 결정론적으로 해석할 위험이 있다. 또한 인간의 행위와 신념을 고정된 이항 대립 구조로 환원하려는 경향은, 종교 내의 변화와 창조성, 권력관계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종교의 기원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성스러움' 경험에서 찾았다. 그는 종교가 단지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기 존재를 우주 속에 위치시키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신화는 바로 그 질서를 전달하는 이야기이며, 종교는 의미의 우주를 창조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단순히 종교가 '왜 생겼는가'를 넘어서, 어떻게 작동하며 인간 정신 속에서 지속되는가에 주목한다. 단 종교학은 종교 현상을 비판적이고 학제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그 자체로도 몇 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우선, 종교학은 서구 학문 전통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비서구적 종교나 구전 전통, 비제도권 신앙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종교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특정한 이념적 전제를 담을 수 있으며, 진화심리학적 관점과 마찬가지로 연구자의 신앙 유무나 가치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주관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또한 종교학 내부에서도 학자 개인의 종교적 입장에 따라 종종 신학과의 경계 설정에서 모호함을 보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종교를 해체하거나 도구화하는 입장으로 치우칠 위험도 있다.
일부 행동과학자들은 인간 외의 동물에게도 유사한 종교적 행동이 존재할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한다. 스키너의 비둘기 미신 실험이나, 제인 구달이 관찰한 침팬지의 폭포 앞에서의 의식적인 행동은, 초월적 질서나 경외심의 기초가 동물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여전히 논쟁 중이며, 의례와 신화의 언어적·사회적 구조를 갖춘 복합적 종교는 현재로서는 오직 인간만이 갖는 문화적 산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종교의 기원에 대한 이론들은 기능주의적, 인지과학적, 사회학적, 존재론적, 문화상징적 접근으로 다양하게 나뉘며,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 서로 보완적인 틀로 작용하고 있다. 종교는 생물학적 진화의 부산물일 수도 있고, 사회적 구조의 산물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인간 정신의 내면에서 자생한 성스러움의 경험일 수도 있다. 단선적 설명이 아니라, 종교라는 복합현상을 다양한 층위에서 교차적으로 이해하는 시도가 현대 종교학의 추세이다.
7. 종교의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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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세계 4대 주요 종교 | |||
기독교 | 이슬람 | 힌두교 | 불교 |
8. 종교의 사회적 기능
8.1. 정치적 구심점
종교는 역사적으로 공동체를 조직하고 정치적 권위를 정당화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고대의 경우 단군신화, 박혁거세, 천자(天子), 이집트 파라오, 로마 황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왕권이나 정치체제는 종종 신성한 기원 또는 초월적 권위에 기반하여 정당화되었다. 지도자는 단순한 통치자를 넘어서 신의 후손, 제사장, 예언자와 같은 지위를 함께 지니며, 종교적 상징과 의례를 통해 그 권력을 신성하게 포장했다. 이러한 종교적 기원을 통해 정치적 복종과 집단 정체성이 동시에 구축되었다.현대에 들어서도 종교는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사회적 구심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해외의 한인교회, 이슬람권의 모스크, 도심 내 성당과 사찰 등은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이민자들의 정체성 유지, 사회적 안전망, 네트워킹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의 서울중앙성원 역시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이슬람 공동체의 문화·정치적 상징 공간으로 기능하며, 한인타운 교회들 또한 국적·언어·정체성을 공유하는 거점 공간으로 작동한다.
에밀 뒤르켐은 그의 저서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이러한 종교의 기능을 사회적 결속의 상징 체계로 이론화하였다. 그는 종교를 인간의 신성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보기보다는 사회가 스스로를 상징화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토테미즘을 원시 종교의 원형으로 보며, 토템은 특정 동물이나 상징물이면서 동시에 집단 전체와 그 가치 체계를 대변하는 표상이라고 해석했다. 종교 의례는 이 토템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며, 사회적 연대와 규범의 재확인을 가능하게 한다.
한동안 학계에서는 종교가 농경의 정착과 인구 밀집 이후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튀르키예에서 발견된 기원전 10,000년 전의 종교유적 괴베클리 테페는 이 통념을 뒤엎는 중요한 반례로 작용했다. 이는 농경이나 도시국가 이전의 수렵채집 시대에도 상당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한 거대한 종교 시설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종교적 신념이 인간의 생존 문제를 넘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조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시사한다.
종교가 공동체의 중심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전 세계의 거대 건축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스톤헨지, 모아이 석상, 이집트 피라미드, 하기아 소피아, 성 베드로 대성당, 불국사, 앙코르와트 등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대 최고 기술과 자원, 인력을 동원해 만들어진 종교적 상징물이며, 정치·문화·종교가 통합된 집단적 정체성의 표현이었다. 종교는 이처럼 물리적 공간, 상징, 제의, 서사를 통해 정치적 중심성을 갖는 기능을 역사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8.2. 도덕, 윤리, 관습법 제공
- 도덕과 종교의 관계 참조
종교는 단순히 개인의 내면윤리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습법과 사회규범의 형태로 제도화되어, 정치·경제·가족제도 등 사회 전반에 규범적 토대를 제공해 왔다. 예컨대 유교의 예, 힌두교의 다르마, 기독교의 자연법 전통 등은 개인과 공동체의 역할을 규정하는 규범체계로 작동했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단순히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목적과 삶의 이상을 설계하는 포괄적 윤리 질서를 제시한다.
한편 일부 세속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일반인들은 이러한 종교의 도덕 제공 기능을 결과 중심의 기능주의적 틀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대개 종교의 교리와 계율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규범 집합에 불과하며, 신의 존재나 진실성은 부차적 문제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종교에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학자들의 입장에서도 공감받지 못하는 단순한 설명이며, 종교의 의무론적·초월적 윤리의 기반, 즉 도덕이 단순한 결과 계산을 넘어서 '옳음 그 자체'로 이해되는 전통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보편적으로 보이는 도덕 원칙들조차, 사실은 장엄하고 복잡한 종교적 사유 체계의 산물이며, 각 문화와 전통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논리적 맥락을 갖는다. 이를테면 "살인하지 말라", "강도질하지 말라"는 규범은 그 자체로 자명한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신성함, 제국의 질서, 신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존재 등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해석될 때 그 진정한 의미와 각종 예외 규정들(가령 불의한 살인과 정의로운 전쟁의 구분, 부정한 약탈과 정당한 세금의 경계 등)을 획득한다. 이런 도덕 규범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세계는 어떤 질서를 따르는가, 절대적인 선은 무엇인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응답의 일부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적 윤리는 도덕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며, 더 큰 세계관 속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결과이다. 즉 그 자체로 철학적·문학적 완결성을 가진 서사적 구조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그러므로 종교윤리는 단순히 이기심을 억제하고 집단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는 인간 내면의 존재론적 자각과 '궁극적 선'의 추구, 의무로서의 도덕 실천, 신 앞의 책임의식 같은 심화된 윤리적 통찰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수많은 철학적 탐구와 담론의 근원이 되어왔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 에마뉘엘 레비나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등 주류 학자들은 '신적 타자성'이나 '절대적 도덕 근거' 없이는 윤리 자체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으며, 이는 종교가 단지 도덕의 외부 원천이 아니라, 그 뿌리와 방향성을 제공하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내적인 토대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단순한 도덕 교육의 도구가 아니다. 이는 도덕을 성스러운 차원과 연결시키고, 인간에게 실존적 책임을 부여하는 상징적·윤리적 체계로 작동해 왔다. 따라서 종교의 윤리 기능을 단순한 사회 통제의 산물로만 해석하는 것은 종교가 제공해온 도덕적 인간 형성의 깊이와 인류 사유체계의 방대함과 연속성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8.3. 학문의 발전, 교육
고대 사회의 제사장, 중세의 성직자, 중동 세계의 랍비, 불교의 승려 등은 당대 최고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엘리트 계층이었다. 이들은 단지 종교적 의례를 집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학, 천문학, 윤리, 문법,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정리하고 발전시킨 지식인들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중국 등 고대 문명권에서 종교와 학문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합된 지식 체계였으며, 신의 뜻을 이해하는 일은 곧 자연과 인간을 탐구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었다.문자의 발명과 함께 지식의 체계적 축적이 가능해지자, 종교는 경전의 정리와 보존, 그리고 그 해석을 중심으로 학문적 교육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성서, 코란, 율장, 우파니샤드 등 각 종교의 경전은 신앙의 근거를 넘어 법률, 도덕, 우주론, 인간론을 아우르는 지식의 총체로 기능했다. 인쇄술의 발명 이후 최초로 대량 인쇄된 책이 성경이었다는 사실은, 지식 확산의 초기 단계에서 종교가 중심에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경전 중심의 지식은 단지 성직자나 수도원 안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차세대 구성원에게 윤리와 함께 전수되었다. 이슬람 마드라사, 유대교 예시바, 기독교 수도원, 불교 강원, 유교 학당 등은 종교적 윤리와 함께 언어, 논리, 수사, 수학, 자연학 등 다양한 교양을 가르쳤던 종합 교육기관이었다.
중세가 '암흑기(Dark Ages)'였다는 인식은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과도하고 왜곡된 편견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중세는 수도원과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고대의 지식이 보존되고 재해석된 시기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 아베로에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등의 학자들은 철학, 논리학, 천문학, 의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를 발전시켰다. 특히 스콜라 철학은 이성적 논증을 통한 신앙 이해를 추구하며, 훗날 과학적 사고에 필요한 논리적 틀과 학문적 전통을 제공했다. 이러한 학문적 인프라 없이는 17세기 이후의 근대 과학 혁명 또한 성립 불가능했으며, 근대의 과학자들도 중세의 신학적·형이상학적 세계관을 전제로 삼고 활동했음을 고려할 때, 중세는 오히려 현대 과학의 토대를 형성한 시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19세기에는 계몽주의자들이 기존 종교 권위와 적대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본질적으로 대립한다는 '단절론'을 제기했으나, 현대 학계에서는 이 이론이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과장된 이분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중세의 수도사들은 천문학, 역법, 약초학 등의 실용 지식을 정리했고, 이슬람 세계의 종교 학자들은 연역논리, 해부학, 광학 등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바로 위 문단에서 언급했듯 아이작 뉴턴, 요하네스 케플러, 그레고어 멘델같은 근대 과학의 선구자들 또한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활동하였다.
애초에 종교vs과학 식의 과장된 이분법은 학계의 진지한 입장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대중사회의 자극적 메세지에서 촉발되어 소모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크다. 현대 사회학자, 종교학자, 인류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을 대립하는 체계가 아니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의미 체계로 본다. 과학적 방법론의 등장은 17세기 이후 자연현상을 수학적 모델과 실증적 관찰로 설명하려는 시도로 나타났으며, 이는 기존의 종교적 세계 이해와는 방법론적으로는 구분되는 길을 걷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종교와 과학이 본질적으로 대립하거나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종교는 존재의 목적과 윤리적 방향을, 과학은 현상의 메커니즘과 설명 가능성을 다루며, 둘은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상보적 구조를 가질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종교 교육과 과학 교육은 동일한 인간 이해, 책임 윤리, 생명 존중 등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공동의 문제를 풀어가는 대화 가능한 두 축으로 다시 조명받고 있다.
8.4. 고전적 사회보장제도(복지제도)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종교는 단순한 신앙 체계를 넘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종교는 때로는 사회 안정의 윤리적 기반으로 작용했으며, 때로는 복지적 책임과 강제력을 동시에 수반하는 체제로 기능했다.예컨대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빈민에 대한 시선이 매우 도구적이고 실용주의적이었다. 로마인들은 구제가 빈곤층을 타락시킨다고 보았으며, 직접적인 대가나 정치적 효용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지원을 제공했다. 국가의 무료 급식도 시민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에 가까웠고, 개인이 행하는 자선도 종종 사회적 위신과 영향력 과시를 위한 행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에 유입되면서 이러한 복지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며, 약자를 돕는 것이 곧 신의 뜻에 응답하는 행위라는 교리를 바탕으로, 보상이나 조건 없이 약자를 돌보는 무조건적 사랑과 자선을 강조했다. 이는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에도 중세 유럽에서 수도원, 교회, 기사단 등을 중심으로 장기간 지속되며, 종교가 복지의 중심 기관으로 기능했던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복지국가 체제가 국가가 복지의 주체가 되는 방향으로 이동했지만, 종교의 역할은 여전히 빈곤, 돌봄, 질병, 교육 등에서 보완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에도 가톨릭 자선회, 이슬람 자카트, 기독교 NGO, 불교 사회복지단체 등 전 세계의 종교 기반 단체들은 민간 복지의 최전선에 서 있으며, 이는 실존적·윤리적 책임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즉, 이런 활동은 해당 종교들의 매우 전통적이고 근본적인 교리적 핵심 실천행위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단순히 교세 확장이나 신도 확보의 수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현대의 종교적 복지는 단순히 물질적 지원을 넘어, 고립된 노인, 심리적 외상자, 이주민, 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사회적 통합의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종교는 단지 복지의 공급자일 뿐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인간 존엄의 가치가 구현되는 공간이자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정체성과 위로, 의미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8.5. 극한 상황의 극복
종교는 인간이 극한의 고난과 위기를 마주할 때, 그 고통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감내할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 자원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위안이나 회피가 아니다. 이는 '현실을 견뎌내는 힘'과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이를 두고 "인간이 역사의 폭압(Terror of history)을 극복하려는 구조적 대응"이라고 보았으며, 종교는 고통을 불행이 아니라 신적 질서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건으로 재구성하게 한다.종교는 또한 집단이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강인함을 내면화하도록 돕는다. 죽음, 질병, 전쟁, 재난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종교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희망,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무력감이 아니라 행동과 연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종교는 외적인 보호막인 동시에 인간의 심리적 탄력성과 실존적 용기를 강화하는 내적 구조로 기능한다.
또한 많은 종교는 "보이지 않는 감시자" 또는 "궁극의 정의"를 상정함으로써 사회적 신뢰와 윤리적 자기 규율을 가능케 한다. 이는 감시 기술이나 법적 처벌이 미치지 않는 일상 속에서도 인간이 공동체적 책임감을 유지하고 자율적으로 선을 행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구조는 사회의 도덕적 안정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삶을 고귀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된다. 결국 종교는 극한의 시기마다 인간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붙잡아주는 정신적 연대의 언어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 삶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고통에 맞서는 힘,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능력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문화적 기제로 남아 있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종교는 단지 공동체적 연대나 집단 결속의 수단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 강인함을 형성하는 깊은 정신적 기반으로 작용해 왔다. 인간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 상실, 불확실성, 죽음의 문제에 직면할 때, 논리나 경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실존적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종교는 인간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와 같은 질문과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는 그 질문에 대해 '고난을 감내하고 의미화하며, 스스로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구조화된 내적 질서'를 제공한다.
즉, 종교는 고통을 통한 성장, 인내를 통한 구원, 시련 속에서의 정화 같은 서사를 통해, 신도 개인이 상황의 희생자가 아니라 시련을 통과하며 성숙해가는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적인 심리적 복원력(resilience)으로 이어지며, 외부의 도움이 없더라도 혼자서도 삶을 다시 세우는 의지와 존엄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종교는 공동체적 연대가 아니더라도, 혼자의 시간과 침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중심을 세우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단단히 지탱해주는 독립적인 정신적 토대가 되어 왔다.
8.6. 사회불안 요소
한편, 종교는 역사적으로 사회 체제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면서 다른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순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기능 또한 지니게 되었다. 특히 교리적 경직성, 종교적 배타성, 제도화된 권위 구조 등은 특정 상황에서 폭력이나 억압, 차별의 정당화에 이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종교 간의 분쟁, 종파 간의 갈등, 그로 인한 전쟁, 학살, 테러는 유럽사를 비롯한 여러 문명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과 정치 현장에서 여전히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9.11 테러는 그 상징적인 사례로, 종교가 정치·문화 갈등과 결합되었을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부각시켰다.종교는 또한 지배 체제의 정당화 도구로 기능해 온 이력이 있다. 민중의 편에서 저항의 이념으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제 내에 흡수되어 기득권을 옹호하거나 직접 지배 권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맡은 경우도 많았다. 이로 인해 현대사회에서는 종교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나 비판적 성찰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연구들은 종교와 사회발전 수준 간의 상관관계를 논의한다. 대표적으로 선진국일수록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낮아지고, 개발도상국일수록 종교의 공공적 역할이 강하다는 연구들이 있다. 이는 경제적 안정, 교육 수준, 사회적 안전망이 확립된 환경에서는 종교가 담당하던 기능들이 국가 제도나 과학적 사고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반화하기 어려운 경향으로,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활발한 종교 활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이 있으며, 복음주의와 공동체 기반의 신앙 활동은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신흥종교나 사이비 종파는 전통 종교의 경직성과 제도 피로감 속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며,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찰스 킴볼(Charles Kimball)은 'When Religion Becomes Evil'에서 종교가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해악을 끼칠 때 나타나는 다섯 가지 징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절대적인 진리 주장
- 맹목적인 복종
- 이상적인 시대의 절대화
-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
- 성전(聖戰)의 선포
이러한 요소는 일부 극단주의 혹은 근본주의 종교 운동이나 사이비 집단, 과격 종파주의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며, 힌두교 극단주의(RSS 등), 불교 급진파(969 운동 등), 이슬람 극단주의(IS, 알카에다 등) 등의 사례가 그 예로 제시된다.
또한 일부 심리학·사회학 연구에서는 지능과 종교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대표적인 메타분석 연구인 'The Relation Between Intelligence and Religiosity'에 따르면, 지능이 높을수록 종교적 신념에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된다. 다만, 이 연구는 지능이 종교적 기능(자기조절, 의미 부여)을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는 해석을 제시하지만, 이는 모든 문화와 개인에게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상기한대로 높은 지능과 교육 수준을 가진 신자들도 다수 존재하며, 이들은 오히려 종교의 초월적 구조 안에서 자신의 업무와 고난을 종교적 사명감으로 승화시키는 삶의 태도를 보인다. 즉, 종교적 신념은 단순한 지능 수준이나 교육 정도 이상의 매우 복합적 요소에 의해 형성된다.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성향이 강한 사람들 중에서도,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같이 종교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이성 중심의 극단적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사실 소수에 해당한다. 실제로 높은 교육 수준과 지적 능력을 갖춘 인물들 중 다수는 종교를 단순히 맹신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심오한 인문학적 유산, 복합적 의미 체계, 도덕적·존재론적 탐구의 장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종교가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제공하는 순기능, 그리고 종교 전통 속에 담긴 방대한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예술적 상징 체계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심을 표하는 경향이 있으며, 신학이나 종교철학 분야에서도 높은 학문적 성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종교적 세계관이 지닌 장엄함, 구조화된 의미 체계, 인간 존재에 대한 통합적 서사는 단순한 신앙을 넘어서, 지적 성찰의 자극원으로 작용해 왔다.
이러한 관점은 실증적 연구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예컨대 Zuckerman, Silberman, Hall(2013)의 메타분석에서는 지능과 종교성 사이에 약한 부적 상관이 관찰되었지만, 이는 주로 전통적·근본주의적 신앙 형태에 국한된 경향이었으며, 철학적·비판적 성찰을 수반하는 종교적 세계관이나 영성(spirituality)과의 상관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했다. 또한 McAdams(2001)이나 King & Boyatzis(2004) 등의 연구는 고등 교육을 받은 개인들이 종교를 맹목적 수용이 아니라 해석적, 상징적, 존재론적 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종교를 단순한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성찰적 서사, 그리고 도덕적 책임과 초월적 지향을 탐구하는 문화적·지적 체계로 인식한다. 이는 고등 지능과 종교가 반비례적이라기보다는 접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종교를 단순한 이성과 대립하는 대상으로 보는 관점의 한계를 지적한다.
따라서 종교의 악기능에 대한 논의는 종교 일반에 대한 부정적 단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종교 자체를 갈등의 원인으로 두기보다, 종교가 제도화되고 권력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이나, 종교가 사회문화와 집단 간 갈등구조와 결합하는 역사적이고 복잡한 구조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도 종교는 단순한 교리 집합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삶의 의미를 찾고 윤리적 방향성을 설정하며,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8.7. 헤르만 뤼베의 이론
헤르만 뤼베(Hermann Lübbe)의 종교 이론은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 근대 계몽주의자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특히 세속화 이론의 단순화를 비판하는 관점으로 주목받는다. 뤼베는 종교를 단순한 신앙 체계나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실존적 조건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다음은 그의 이론을 구체화한 핵심 내용이다.뤼베는 인간의 삶에서 우연, 불확실성, 죽음, 운명, 출생, 질병, 사랑, 재난 등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언제나 존재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절대적 의존성"이라 불렀고, 종교는 바로 이 의존성에 대한 응답과 해석의 체계라고 보았다. 즉,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힘이나 조건에 노출되었을 때, 그 의미를 부여하고 정신적으로 통합할 수 있게 돕는 틀이며, 이는 단순히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신념 차원이 아니라 삶의 구조적 불완전함을 다루는 방식이다.
뤼베는 특히 "우연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는데, 이는 인간이 계획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삶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이 우연성 앞에서 인간은 의미화의 충동을 느끼며, 종교는 바로 이러한 우연한 사건들을 질서와 의미 속에 통합하는 장치라고 보았다. 예컨대 갑작스러운 죽음, 질병, 사고, 자연재해 등은 과학적 설명만으로는 개인의 심리적 통합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며, 이때 종교는 그러한 사건을 더 큰 질서나 서사, 즉 신의 섭리, 인연, 업보, 축복 혹은 시련과 같은 개념으로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한다.
뤼베는 계몽주의 이후에도 종교가 계속 존속하는 이유를, 종교가 단순히 비합리적인 믿음의 유물이라서가 아니라, 합리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조건과 경험을 통합하는 유일한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기술적, 제도적 합리화가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실존은 여전히 고통, 불안, 우연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종교는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뤼베의 사상에서 중요한 점은, 그는 종교를 사회의 별도 독립 영역이 아니라, 다른 삶의 영역들(경제, 정치, 학문 등)과 교차하며 인간의 다층적인 삶 속에 스며드는 체계로 보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는 일상적인 삶의 전 영역에 내재된 의미체계를 조직하는 방식이며, 단지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적 경험 전체에 걸친 정신문화적 작동 구조다.
요약하자면, 헤르만 뤼베는 종교를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삶의 근본적인 의존성과 우연성을 해석하고 통합하는 문화적·정신적 체계로 보았으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종교가 인간 사회에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론은 종교를 단지 신앙의 문제가 아닌 실존적 의미 체계로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특히 세속사회에서도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로 활용된다.
9. 종교의 심리적 효용 및 신앙심의 발생원인
9.1. 행복과 종교
종교와 행복의 관계는 단순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고 일도양단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관계를 보인다. 현대 긍정심리학 연구에서는 종교성이 인간의 행복감, 특히 삶의 의미와 정신적 평안, 공동체 소속감 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종교를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높은 삶의 만족도와 정서적 안정을 보인다는 실증 연구들이 다수 존재한다(Crowther et al., 2002; Glass et al., 1999; Koenig et al., 1998 등).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성공적 노화'의 핵심 조건 중 하나로 종교성을 꼽기도 한다.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우선, '종교성(religiosity)'이라는 용어 자체가 너무 협소하다는 비판이 있으며, 그보다는 '영성(spirituality)'이나 '초월성(transcendence)' 같은 보다 넓은 개념이 인간의 내면적 행복을 이해하는 데 더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문화적 차이에 따라 종교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게 나타난다. 예컨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에서는 종교인과 비종교인 간의 행복감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거나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난 연구들도 있다(구재선 & 서은국, 2011). 그러나, 이런 연구들 역시 상기한 종교의 핵심적 내재 요인들이 개인의 삶에서 제대로 실현된다면 행복을 유의미하게 증가시킨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 종교가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긍정적이거나 반대로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는 그 신념이 올바른 방향으로 형성될 경우, 인간에게 의미 중심적이고 고차원적인 만족을 제공할 수 있다. 반대로, 강압적·공포 기반 신앙, 극단주의적 교리, 맹목적 복종이 강조될 경우, 개인의 정신적 자율성과 정체성을 해치고 자기파괴적인 양상으로 흐를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종교집단의 폐쇄성과 강압성은 우울증, 불안, 죄책감 등의 악영향으로 이어진다는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다.
더불어, 종교의 긍정적 기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회 전체가 종교 중심으로 유지될 필요는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유럽 사회의 경우, 종교가 제공하던 안정감과 도덕적 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토대가 정착됨에 따라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었음에도 높은 행복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행복에 있어 종교가 절대적 필수요소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종교가 인간의 행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여부는 개인의 자유와 자발적 결단이 그 신앙 안에서 얼마나 존중되고 공존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종교적 환경은 개인의 자율성과 내면의 주체성을 훼손하여 신앙을 짐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는 반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경우, 종교는 삶에 깊이 있는 방향성과 위안을 제공하는 존엄한 영적 자산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종교가 행복의 원천이 되느냐, 혹은 구속의 근거가 되느냐는 신앙의 내용보다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과 조건에 달려 있으며, 이 점에서 종교와 자유는 결코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신앙일수록 자유로운 자아와 깊은 연대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된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행복에 있어 상황적이며 입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신앙의 방식과 그에 기반한 공동체의 질, 개인의 심리적 구조에 따라 종교는 삶의 방향성을 부여하는 힘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구속과 고립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종교와 행복의 관계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맥락과 신념의 질에 따라 달라지는 복합적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9.2. 소속감과 정체성 형성
종교는 사회적 소속감과 집단 정체성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외현적 종교성(예배, 의례, 집회 참석 등)을 통해 신자들은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소속된 위치를 확인하고, 서로 간의 결속을 강화한다. 이러한 소속감은 정서적 위안을 넘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토대로 작용하며, 개인이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실질적 감각을 제공한다.이는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 말하는 세 가지 핵심 욕구 중 하나인 관계성(relatedness), 즉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대표적인 메커니즘이다. 특히 가족과 직장 등 전통적인 연결망이 약해지는 중장년기 이후에는 종교 공동체가 유일하거나 핵심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로 기능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노년층 신자들이 예배 참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돌봄과 교류의 장을 경험한다는 연구들도 다수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기능이 무비판적으로 방치될 경우 집단적 동질성의 강화가 배타성과 폐쇄성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종교가 제공하는 공동체성은 동시에 사회적 책임성과 포용성을 수반해야 한다는 비판적 논의도 병행되어야 한다.
9.3. 이타성과 종교
본 논의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일단, 이 논의에서 비판적 논제로 삼는 부분, 즉 '종교가 공동체와 이타성을 중심에 둔다'는 전제는 확실이 사실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또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이타성의 강조는 종교의 본질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종교가 사회적 제도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외부 규범과 융합되며 발전한 기능적 측면'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이타성은 종교의 본질이라기보다는 기능적·문화적 산물이다. 종교의 이타성 교육은 단지 교리의 결과라기보다도 공동체 유지를 위한 실천적 지침으로 제도화된 측면이 강하며, 이 점에서 오히려 문화적 배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예컨대, 한국에서는 '조선 사회의 특수성과 융합한 유교 문화'가 '종교적 이타성 담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와 이타성의 관계는 종교 그 자체보다도 오히려 전통적인 유교 문화의 영향 아래 강하게 형성된 도덕 의식에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 유교는 오랜 시간 한국인의 사회 규범과 일상생활의 근간을 이루었고, 그 영향 아래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도덕적 실천, 공경, 봉사 같은 사회적 덕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렴되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의 교리나 사상적 중심과는 별개로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서 "종교인은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기대가 당연시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특유의 문화적 배경에 기반한 시각은 동시에 기독교와 불교 등 다른 문화권의 계율로 행동하는 종교인들의 행동을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즉, 이타성과 도덕성을 중심으로 종교를 평가하는 접근 자체가 유교적 가치관이 내면화된 결과다. 다시 말해, 한국인 관찰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여러 종교의 소위 '이타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사실상 이는 '유교', 그중에서도 '조선 성리학'이라는 특정한 종교의 기준과 프레임으로 다른 종교들을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이타적이다" 혹은 "종교인은 더 선하다"는 명제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자칫하면 종교의 전체적 역할과 철학적 깊이를 단순한 '유교적 도덕 실천 행위'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문화에 따라 인간 실존의 의미, 초월적 진리, 죽음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심오한 사유 체계이자 세계관이며, 이타성은 이러한 큰 틀 속에서 파생되는 윤리적 결론 중 하나에 불과하다. 종합하자면, 한국과 같은 유교적 정서가 강한 사회에서는 종교적 전통을 넘어선 윤리 기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종교의 이타성 기능을 해석할 때 '이기성'과 '이타성'이 문화와 종교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게다가 보다 통찰력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논의 자체가 결국 종교의 이타성 여부를 따지고 도덕적 정당성을 평가하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것이 한국 사회가 유교라는 종교적 가치체계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종교를 갖고 있든 없든, 대다수 한국인은 공동체 윤리, 도덕적 의무, 인간관계의 위계와 책임 등의 개념을 당연한 전제로 삼는다. 이는 비종교적 정체성을 표방하는 이들조차도 종교적 유산에서 비롯된 사고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인간은 문화와 언어, 가치 판단의 깊은 층위에서 종교적 사고와 감정의 구조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를 단순한 제도나 선택 가능한 사상으로 보기 어렵게 만들며,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초월적·의례적 감각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려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만약 해당 논의로 '종교인은 사실 이타적이지 않으며, 종교는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의 논거로 삼고 싶은 사림이 있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자가당착적이고 무의미한 시도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사고틀을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다.
따라서 이와 같은 논의는 위의 설명을 숙지하고,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 편견(즉, '종교인은 반드시 유교적 덕목을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적 도식)의 시각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며 해석하려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본격적으로 해당 주제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자면, 확실히 대부분의 종교는 공통적으로 "선하게 살며 타인을 위하라"는 윤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종교는 다양한 사회 갈등의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해 왔으며, 특히 전쟁이나 분쟁의 원인 또는 명분으로 종교가 언급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학자 스콧 애트런(Scott Atran)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3,500년 동안의 주요 충돌 중 약 60%는 종교적 동기 없이 발생했으며, 종교적 동기가 명시적으로 작용한 경우는 약 7%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다.
종교성과 이타성(Religiosity and Generosity)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매우 활발히 진행되어 왔으나, 그 결과는 일관되지 않다. 일부 연구에서는 가상적 상황에서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더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고, 이와 함께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도덕적·이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신적인 상징(십자가)에 노출되거나 초월적 존재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되면 자원 분배 게임 등에서 보다 후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진화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Ara Norenzayan)은 이러한 효과가 인간이 신의 존재를 내면화하면서 '감시당하는 느낌'이 도덕적 행동을 촉진한다는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며, 이를 종교의 친사회적 기능의 진화적 기원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종교개혁기의 '코람 데오(Coram Deo)' 정신, 즉 '신 앞에서의 삶' 개념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와 유사하게, 다른 연구자들은 신적 처벌에 대한 공포가 개인의 자제력을 높이고 무절제한 자기이익 추구를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교가 사회적 규범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렇듯 종교성과 도덕성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인과관계로 설명되기 어려운 복합적 주제이다. 이러한 주제를 다룰 때는 분석 설계의 정교함이 특히 중요하다. 예컨대 '종교인 vs 비종교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분만으로는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종교적 이타성을 연구할 때에는 내집단/외집단에 대한 차별적 태도, 사회경제적 지위(SES), 교육수준, 그리고 내적 종교성과 외적 종교성의 구분 등이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실제로 일부 고전적 연구에서는 내적으로 신념을 내면화한 독실한 신자들이 이타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외적으로만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경우 오히려 편견과 독선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음이 보고된 바 있다. 또한 연구자의 종교적 배경, 문화적 맥락, 표본의 지역적 특성 역시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종교성과 도덕성의 관계를 다룰 때에는 단순한 평균적 비교가 아닌 정교한 설계와 맥락 분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한편, 일부 연구에서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불의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타인의 위법이나 부도덕에 대해 관용보다는 엄정한 처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고했다. 이는 때때로 엄벌주의적 태도로 나타나지만, 반드시 사적 제재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태도를 '신적 정의에 대한 위임(outsourcing)'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예컨대 현실에서는 처벌이 불가능하거나 불충분한 상황에서, 신앙을 가진 이들은 "신이 벌을 줄 것이다", "다음 생에 대가를 치를 것이다"와 같은 인식을 통해 불의에 대한 심리적 균형을 유지한다. 이러한 접근은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분노를 내면화하여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개인적 자제력을 높이는 적응적 측면도 지닌다. 다만 상황에 따라 이는 체념이나 무력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에, 종교적 정의 인식은 긍정적 기능과 부정적 기능이 모두 가능한 이중적 사회심리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 종교를 도덕성의 촉진자 혹은 억압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파악하기보다는, 문화적·심리적·사회구조적 맥락 속에서 변화하고 조정되는 복합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9.4. 동기와 통제감
동기(motive)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게 통제감이라는 주제는 20세기 중엽부터 종종 종교성과 함께 엮여서 논의되어 왔다.9.4.1. 통제의 소재(LOC; Locus of Control) 이론
통제의 소재(LOC, Locus of Control)는 심리학에서 "내 인생을 누가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개념이다. 쉽게 말해,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내적 통제소재(I-LOC), 운이나 타인, 사회 구조가 나를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은 외적 통제소재(E-LOC)라고 한다.이 이론은 1950년대에 줄리안 로터라는 심리학자가 처음 제시했다. 초창기에는 이걸 꽤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내적 통제를 가진 사람은 주도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 반면 외적 통제를 가진 사람은 무기력하고, 운에 의존하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처럼 묘사되곤 했다. 지금 보면 이건 꽤 편향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종교인들 대부분이 '신'이라는 외부 존재에 삶을 맡긴다고 보기 때문에, 이 이론대로라면 종교인은 의지박약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라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전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결론이 나버린다는 점이다. 당연히, 오늘날 심리학계에서는 이런 식의 해석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비판에 대응해서 나온 것이 1차–2차 통제 이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1차 통제는 세상을 바꾸려는 통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 회사에서 승진하려고 야근하는 것 같은 것이다. 반면, 2차 통제는 세상은 바뀌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바꿔서 통제감을 얻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실패했지만 분명 의미가 있었어", "하늘이 나중에 더 좋은 기회를 줄 거야" 같은 해석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때 종교는 대표적인 2차 통제 수단 중 하나다. 전지전능한 신, 강한 국가, 카리스마 지도자 등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세상은 결국 공정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식이다. 이걸 대리 통제(vicarious control)라고 부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종교는 무기력해서 믿는 게 아니라, 혼란스럽고 불공정한 세상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건 멜빈 러너라는 심리학자의 '공정한 세상 가설(Just World Hypothesis)'과도 연결된다. 사람들은 세상이 결국은 공정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신이 벌을 내릴 것"이라든가 "지금은 힘들지만 천국에서 보상받을 거야"라는 믿음이 등장한다. 이런 믿음은 종교의 도덕 체계나 악의 문제(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는가)를 설명하는 데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이 이론도 완벽한 건 아니다. 우선, 종교를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용"이나 "통제력 회복 장치"로 보는 건 지나치게 기능주의적인 해석이다. 실제로 많은 신앙인은 신을 믿는 이유가 도덕적 헌신, 존재의 의미, 초월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마음의 안정을 위해 신을 믿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2차 통제를 계속 "수동적"이라고만 보는 것도 문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강한 통제감을 가진 지도자나 지식인들조차 종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종교 =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사람의 위안"이라는 통제소재 이론의 단순화를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고대의 제왕, 중세의 신학자, 근대의 사상가들 중 상당수는 종교의 장엄한 질서 안에서 자신을 신의 사자, 정의의 수호자, 구속된 영웅으로 위치시켰다. 이들은 종종 신의 뜻을 자신의 사명과 동일시하며, 종교를 단순히 운명에 순응하는 구조가 아니라 세계를 바꾸기 위한 동력으로 활용했다. 즉, 종교적 통제는 수동적 복종이 아니라 자기 정당화와 역사적 사명감을 강화하는 서사적 무대가 되기도 했으며, 이는 2차 통제가 반드시 소극적이라는 해석에 균형을 요구하게 만든다.
또한, 이 이론은 서구, 특히 백인 중산층 남성 위주로 연구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시아권, 아프리카계, 중남미 등에서는 외부 요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더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하늘이 도와야 한다", 일본인은 "운명이다", 아프리카계 공동체에서는 "조상의 뜻을 따른다" 같은 사고방식이 흔하다. 동아시아나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처럼 관계 중심의 문화권에서는 외부에 기대는 것이 오히려 지혜롭고 유연한 대처 방식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론을 서구식 기준으로만 해석하면 문화적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외적 통제를 갖는 게 이상하거나 열등한 게 아니다. 그런데 LOC 이론은 그런 사람들을 전부 '심리적으로 미성숙하다'고 평가할 위험이 있어서, 자문화 중심주의적이다, 심하면 문화적 차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이런 해석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종교적 신념은 대리 통제의 예로 설명하면서도, 현대의 정치 이념이나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는 예외적으로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인 것처럼 구분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복지국가, 권위 있는 리더십 등에 기대어 통제감을 얻는 현상 또한 같은 심리적 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이중적 기준은 종교적 믿음만을 과도하게 병리화하거나 축소 해석하게 만들고, 결국 종교는 다른 이데올로기와 구별되지 않는 심리적 보상 체계로만 간주되어 그 고유한 형이상학적·철학적 의미가 지워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종교를 비판적으로 해체하려는 기능주의적 프레임이 지나치게 확장된 사례로 평가되며, 종교 현상에 대한 문화적·철학적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9.4.2. 보상적 통제 이론(CCT; Compensatory Control Theory)
사회심리학자 아론 케이(A. Kay)는 '보상적 통제 이론(CCT)'을 통해 인간이 세상이 통제되고 있고 질서 정연하다는 인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구를 지녔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핵심은 '내가 직접 통제하고 있다'는 내적 통제감뿐 아니라, '누군가가 세상을 질서 있게 통제하고 있다'는 외적 통제감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안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즉, 인간은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느 하나의 통제 자원이 무력화되면, 그 자리를 다른 통제 자원, 즉 예컨대 종교적 신념으로 빠르게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이 이론에 따르면, 종교는 내면의 통제감이 상실된 상황에서 외재적 통제자로서의 '신적 존재'를 통해 질서감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실험적으로도, 참가자의 자율성과 선택감을 제한하여 내적 통제감을 낮추었을 때, 신의 존재를 더 강하게 신뢰하거나 종교적 신념이 강화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7] 이와 같은 경향은 미국 남부와 중서부, 즉 '바이블 벨트' 지역이 종교적으로 더욱 열정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되곤 한다. 이 지역은 허리케인, 토네이도 등 자연재해가 빈번하고, 산업 구조상 경제적 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통제력을 상실한 개인이 신앙을 통해 외적 질서를 부여하려는 심리가 더욱 강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통제감의 연장선상으로, 전 세계 어디를 가나 3D 직업 종사자들은 종교를 쉽게 믿는다. 공무원 직군 중에서도 경찰관, 소방관, 군인, 교도관, 우체부, 환경미화원 등 고위험직 공무원들은 행정/기술직 공무원에 비해 종교를 더 많이 믿는 경향이 있다.
보상적 통제 이론은 종교가 실존적 불안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보상 체계'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분명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종교를 단지 교리나 전통으로 보지 않고 심리적 구조와 긴밀히 연결된 기능적 장치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현대 종교심리학 및 정치심리학의 핵심 흐름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이론은 몇 가지 한계점을 지닌다. 첫째, 종교의 복합적 기원과 기능을 단일한 심리 기제로 환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종교는 단지 통제감의 보상체계가 아니라, 철학, 도덕, 공동체, 미학 등 다층적 기능을 수행하며, 단순히 불안에 대한 반작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둘째, 문화 간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재난 상황에서도 어떤 문화권은 종교가 아니라 공동체 자조나 제도적 대응으로 불안을 다스리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CCT는 서구 심리학의 일반화 가능성 문제, 특히 WEIRD(서구, 교육받은,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적) 샘플의 편중이라는 한계를 내포한다. 셋째, '신앙의 자발성과 능동성, 진정성'을 도외시할 우려가 있다. 이 역시 위의 문단의 한계와 일맥상통하는 한계다. 단순히 불안을 회피하거나 통제감을 얻기 위해 종교를 수단화한다고 보는 해석은, 신앙의 인격적·초월적 요소를 간과하는 기능주의적 환원의 일종이며, 역시 강한 통제감과 공격적 자율성을 지닌 개인들(상기한 역사적 지도자와 사상가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종합하자면, 보상적 통제 이론은 종교적 신념이 실존적 불안과 무질서에 직면한 인간의 '질서 회복 메커니즘' 중 하나라는 점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종교 현상을 심리적 필요에 대한 기계적 반응으로만 보는 단선적 설명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보다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해서는 이론이 포착하지 못하는 종교적 감정, 사유, 초월성에 대한 철학적·문화적 맥락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9.4.3. 종교와 정부의 상호 대체
보상적 통제 이론(CCT)의 연장선에서, 아론 케이는 '신에 대한 신앙'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심리적 차원에서 상호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개인이 세상이 질서정연하다는 감각을 유지하려는 심리적 동기에서, 신이 그 질서의 보증자가 되지 못할 경우 정부나 제도, 혹은 그 반대로 통제의 주체를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적 리더십이 불안정하거나 정권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때, 사회의 전반적인 종교성 지표가 상승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반면, 새 정부가 출범하거나 공권력이 강하게 작동할 때는 종교적 신앙심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는 보고도 존재한다.[8]이러한 효과는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 간의 심리적 전이 실험에서도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캐나다에서 진행된 한 실험에 따르면, 참가자들에게 '현대 과학은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신은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을 노출했을 때, 이들은 자국 정부의 능력과 신뢰도를 상대적으로 더 높게 평가했다. 반대로 '과학은 신의 질서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유신론적 진화론 내용을 접한 집단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 요컨대, '신'이 통제자로 기능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정부'나 '제도'에 통제감을 위탁하려는 심리적 보상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신에 대한 신앙이 결여된 사람들조차도 통제감에 대한 심리적 욕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케이의 연구에 따르면, 무신론자들은 종교적 세계관 대신 정부나 제도와 같은 세속적 구조물에 통제감을 위탁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이들 또한 세계가 무작위적으로 흘러간다는 불안감을 심리적으로 보상하려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험 결과,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내용을 접한 무신론자들은 자국 정부의 통치 능력과 신뢰도를 유의미하게 더 높게 평가했으며, 반대로 정부의 기능이 약화되었다는 정보를 접한 신자 혹은 유동적 피험자의 경우에는 신에 대한 신념이 강화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이는 종교적 신념의 유무와 무관하게, 인간이 질서 있는 세계에 대한 인지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외부 통제 체계를 심리적으로 대체하며 활용한다는 보상적 통제 이론의 핵심 가설을 뒷받침한다.
보상적 통제 이론의 확장은 종교를 넘어선 여러 현상에도 적용된다. 개인이 실존적 불안이나 통제감 결핍을 느낄 때, 이를 보완하기 위한 인지적 기제가 활성화되며, 그 결과 음모론, 징크스, 착각적 상관 인식(illusory correlation)과 같은 비합리적 믿음이나 신념 체계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9] 대표적으로, 기후 위기나 경제 위기 등 거시적 문제에 대해 일부 개인이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나 '군산복합체', 혹은 '유대계 자본' 등을 배후의 조종자로 지목하는 경향은, 세상이 우연이나 무작위로 움직이고 있다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단순하고 명확한 인과관계를 투사하려는 심리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한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적 수준에서 패턴을 인식하려는 성향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서는, 통제감을 상실한 피험자들이 TV 백색 노이즈 화면에서조차 의미 없는 패턴이나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응답했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보고되었다.[10] 이러한 경향은 개인이 질서 잡힌 세계에 대한 심리적 요구를 얼마나 절박하게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종교, 정치, 사회적 이념 등 모든 거시적 구조가 때로는 이 심리적 공백을 메우는 상호 대체 가능 자원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리하자면, 종교성, 정치적 신뢰, 음모론적 사고, 심지어는 미신까지도 인간이 불안정한 현실에서 질서를 회복하고자 할 때 활성화되는 동일한 심리적 메커니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종교를 인간 존재가 복잡한 사회 속에서 통제감을 유지하고자 할 때 발현되는 보편적 반응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해당 연구는 인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심리적 통제감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뿐 아니라 정부, 이데올로기, 음모론 등 다양한 믿음 체계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을 잘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이론이 말하는 '대체 가능성'이 곧 모든 믿음 체계가 동등한 위상이나 심리적 무게를 지닌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해당 연구는 종교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일시적 보상이나 설명의 틀에 머물지 않으며, 오히려 정부라는 거대 구조를 대체할 만큼 거대한 체계로 작동한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기도 하다. 종교는 존재론적 의미, 도덕의 근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통합적 해석을 제공하는 총체적 체계로서 작동하며, 그 심리적·사회적 비중은 음모론이나 정치적 구호처럼 보완 역할을 하는 체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층위에 놓여 있다. 따라서 CCT는 인간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질서를 회복하려는 경향을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야지, 종교가 단순한 대체재들 중 하나라는 것을 주장하는 연구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10. 종교의 현재와 미래
종교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자연, 운명, 죽음, 고통 등)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탄생한 문화적·인지적 장치였다. 따라서 자연과 사회의 작동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확장된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의 영향력이 전통 사회에 비해 눈에 띄게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문자 그대로 교리를 신봉하는 근본주의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종교적 전통 또한 세속화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여전히 사회의 핵심 축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으며,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사회적·심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제시한다.- 종교가 현대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존속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종교가 인간의 '근본적인 무력감'에 대한 존재론적 해답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던져진 존재(Thrownness)'이며, 죽음, 고통, 불의, 우연성, 상실 등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조건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과학, 정치, 경제적 합리성조차 이러한 궁극적 조건 앞에서는 해답을 주지 못한다. 프랭클은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의미에 대한 의지(will to meaning)'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종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무의미와 허무 대신 초월적 의미와 질서를 제공하며, 존재의 고통을 견디게 만드는 상징, 의례, 공동체,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실존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다. 즉, 종교는 단순한 설명 체계가 아니며,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심층적 의미의 틀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 존속은 기능적 유용성을 넘어선 인간 본성의 깊이와 맞닿아 있다.
- 종교는 인간의 심리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여전히 유효한 구조다. 심리학자 티모시 윌슨(T. Wilson)과 쉬나 아이엔가(S. Iyengar)는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종교를 지목하면서, 종교는 단순히 도덕 교리나 사회 규범을 넘어서서 관계성, 감정적 안정, 삶의 의미 부여와 같은 인간 본연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다룬다고 분석한다.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유럽 사회에서조차도 경제 위기 시기에는 다시 종교 참여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종교가 위기 상황에서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 소속감을 회복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인간은 이성적 증거만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심리학자 매슈 허트슨(M. Hutson)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가 깊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는 종교인뿐 아니라 비종교인에게서도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가령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거나 "엿을 먹으면 잘 붙는다"는 수능 관련 미신은, 효과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종교적 신앙이 단순한 맹신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복잡한 현실을 해석하고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의례적 질서라는 점을 보여준다. 현대에는 이러한 행위가 '진짜 믿음'이라기보다는 성의와 응원, 사회적 연대의 표현으로 기능하는 경우도 많다.
요컨대, 종교는 과학과 세속화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의미, 질서, 위안을 제공하는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그 본질적 역할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 축소되기 어렵다. 미래의 종교는 기존의 제도적 틀에서 벗어나 더 다양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사회적 요구에 응답할 가능성이 높으며, 개인화되고 심리화된 신앙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 이는 곧 종교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결국, 종교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학계에서는 종교가 향후에도 높은 확률로 어떤 형태로든 존속할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 도덕적 지향과 같은 실존적 질문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석과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는 종교의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선진국에서는 기성 제도 종교의 권위가 약화되며 개인적 신념이나 문화적 관습의 차원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뚜렷하지만, 이것은 종교의 종말이라기보다 종교의 양식이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따라서 종교는 그 형식과 위상은 달라질지언정, 인간 삶의 구조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학계의 주류적 시각이다.
한편, 사회과학 기반의 미래 예측 연구에서는 전 세계 평균적으로 종교 인구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Pew Research Center 등의 자료에 따르면, 고출산 지역에서 종교성이 강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슬람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에서는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따라서 종교의 미래를 논할 때, 서구 선진국의 세속화 경향만을 전지구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편협하며, 지역 간 문화적, 인구학적 차이를 고려한 다층적 분석이 필수적이다. 결과적으로, 종교는 향후에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유의미한 문화·심리·사회적 체계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 전 세계 종교 인구 증가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지역 간 출산율의 차이다. 현재 비종교인의 대다수(약 95%)는 동아시아(78.7%)와 서유럽(16.3%)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들 지역은 공통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지역이다. 반면, 종교성이 강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출산율이 매우 높으며, 이로 인해 종교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서구권은 저출산을 겪는 동시에 종교성이 높은 이민자들(예컨대 무슬림 이민 가정)이 다수 유입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이들의 인구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 종교성이 높은 개발도상국의 인구 동태 역시 종교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등에서는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높으며, 이러한 지역에서는 종교의 영향력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특히 이슬람권과 인도 아대륙 일부 국가들은 급속한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종교성이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이와 같이 현대화가 반드시 세속화를 의미하지 않으며, 많은 지역에서 전통 종교의 권위는 여전히 견고하다.
- 한편, 브라질과 같은 일부 중남미 국가에서는 기존 기득권 종파(가톨릭)에서 이탈하여 개신교 등으로 종파를 전환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국가들(예컨대 카자흐스탄)에서는 공산권 붕괴 이후 종교성이 급격히 증가했다. 러시아, 발칸반도, 캅카스, 폴란드, 미얀마 등도 종교가 국가 정체성과 결합하며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 사례다. 따라서 서구 및 동아시아의 세속화 경험을 전 지구적 기준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종교의 미래는 지역별 문화·정치적 맥락에 따라 매우 상이하게 전개되고 있다.
- 물론 출산율은 종교보다 경제적 요인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동아시아와 서유럽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생활 수준과 피임 수단의 접근성으로 인해 출산율이 낮아졌고, 반대로 개발도상국은 의료 및 교육 인프라의 제한으로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종교 인구의 절대 수가 증가하는 현상은 단기간 내 역전되기 어려운 구조적 특징을 가진다.
- 마지막으로, 종교 인구가 늘어난다고 해서 전통적 종교 생활 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제도권 종교 기관의 신도 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 정체성을 지닌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일부 학자들로 하여금 종교가 중앙집권적 교리 체계에서 개인화된 영성 중심 체계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주로 서구 선진국에 국한된 것으로,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제도권 종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종교의 미래는 일률적으로 단정짓기 어렵고, 지역적 다양성과 전통의 지속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로 인해, 근미래에 세계 인구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영향력과 종교인의 비율은 오히려 현재보다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과 서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무신론자나 비종교인의 증가세가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경우, 불가지론자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는 무신론자 및 비종교인의 인구 비율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며, 2010년 기준 16%였던 이들의 비율은 2050년에는 약 13%로 줄어들 전망이다. 절대 수치로는 약간의 증가가 예상되지만(11억 → 12억), 세계 인구 대비 비중은 현저히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미래의 세계 종교 지형 역시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먼저 서구 선진국에서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무종교, 이슬람 및 기타 종교들의 영향력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남미, 중국,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지역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서구의 신자 수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교세 확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종교학자들은 특히 20세기 식민지 시대 종식 이후 이러한 지역에서 폭발적인 교세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비서구 지역의 그리스도교 성장은 주로 개신교, 그중에서도 복음주의, 은사주의, 오순절교회와 같은 종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개신교 = 미래지향적이고 첨단적인 종교'라는 인식이 강화된 것과도 맞물린다. 1960~80년대 대한민국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반면, 서구권의 전통적 백인 개신교 세력은 일부 아미시와 같은 소규모 공동체를 중심으로만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가톨릭 역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에서 신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중남미에서 개신교로의 이탈로 인한 교세 감소를 어느 정도 상쇄하고 있다. 종합하자면, 미래에도 세계 그리스도교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32~34% 수준을 유지하며, 세계 인구 성장률과 유사하거나 약간 웃도는 수준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서구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교 감소는 단순한 세속화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양상과 재편이 동반된 복합적 현상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전통적인 국가교회들(영국 성공회나 독일 복음주의교회(EKD))는 빠르게 제도적 권위를 상실하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 2022년 기준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쳐도 전체 인구의 50% 이하만이 등록 신자이며, 실제 정기 예배 참석자는 10% 미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복음주의 교회와 오순절 운동, 특히 이민자 출신 신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가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 런던 내 흑인 아프리카계 개신교 교회는 200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하였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남미 및 아프리카계 신자들의 유입으로 신흥 교파들이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동유럽 일부 지역, 특히 폴란드나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에서는 여전히 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헝가리나 러시아처럼 정치권과 결합한 '문화적 그리스도교'가 부상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미국에서는 전통적 주류 개신교(Mainline Protestant)가 꾸준히 감소하여 2021년에는 전체 인구의 14%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복음주의 개신교(Evangelical Protestant)는 여전히 22~25%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백인 외 소수인종 그룹(히스패닉, 아시아계, 흑인) 복음주의 교회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07년에서 2021년 사이 미국 내 '무종교' 비율은 16%에서 29%로 급증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Spiritual But Not Religious)'로 자신을 정의하며 완전한 세속주의로 이탈한 것은 아니다. 이런 경향은 이민자 집단을 중심으로 한 소형 교회 부흥, 대형 교회(Megachurch)의 청년층 재유입, 그리고 정통 교단이 아닌 신흥 종파의 유입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서구의 그리스도교는 숫자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 소멸이 아니라 구조적 이행과 교파 재조정, 인구 이동과 문화 재구성에 따른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중이다.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유럽, 필리핀 등에서 강세를 보여 왔으나, 최근 몇십 년간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개신교로의 이탈과 유럽 내 세속화로 인해 교세가 정체되거나 다소 약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동시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전체적인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1980년대 이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함께 가톨릭 교세도 크게 확장 중이며, 이러한 지역에서의 성장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의 신자 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21세기 중반까지도 가톨릭은 세계 최대의 단일 종파로서 안정적인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서구 중산층 백인 사회에서는 전통적 제도 종교의 영향력 약화와 함께, 개인의 내면적 체험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영성 중심' 종교(Spiritual but not Religious)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교리나 교단의 권위보다는 명상, 자연과의 연결, 초월적 의미 탐색 등 개인적 영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며,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제도 종교의 신자 수 감소와 병행되면서도, 인간의 종교적 의미 추구 욕구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이슬람은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 남아시아 등지의 높은 인구 증가율에 힘입어 21세기 중후반까지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슬람 인구는 세계 평균 인구 증가율을 상회하는 속도로 늘고 있으며, 이는 유럽 등지에서의 이민과 출산율을 통해 반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21세기 말에는 이슬람이 그리스도교를 소폭 추월해 세계 최대 종교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무슬림의 출산율도 장기적으로는 완만하게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2100년경에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각각 세계 인구의 약 35%를 차지하며 비등한 비율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21세기 말에는 세계 인구의 약 70%가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교(그리스도교와 이슬람)를 신앙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힌두교는 인도 아대륙의 인구 성장에 기반하여 여전히 남아시아에서는 강력한 세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도 내에서는 힌두교가 다수 종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무슬림 및 타종교 인구의 상대적 성장세에 따라 점진적인 비율 감소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계적 수준에서 힌두교 인구의 증가 속도는 그리스도교와 유사한 정도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그리고 세계적 확장성의 제한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전반적인 정체 내지 소폭 감소가 예상된다. 불교는 이슬람이나 그리스도교와 달리 활발한 세계 선교 기반이나 인구 재생산력이 부족하고, 특히 아프리카나 중남미와 같이 종교 성장세가 높은 지역에서는 이미 타종교가 확고히 뿌리내린 상황이기 때문에 교세 확대가 어렵다. 다만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권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영성 중심'의 종교적 전환과 맞물려 서구 내 불교 신자 혹은 불교에 호의적인 인구가 증가하는 경향도 관찰되고 있다.
유대교는 전 세계적 비중이 미미한 상태에서 장기적으로도 인구 비율의 소폭 감소가 예상된다. 특히 이스라엘 내에서는 하레디와 같은 정통파 및 극정통파 유대교 공동체의 출산율이 높아 이들 집단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세속 유대인의 감소로 인해 전체 유대 인구는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지 못할 전망이다. 미국 내에서도 무슬림 인구의 증가에 따라 유대교는 제2 종교의 지위를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기타 토착 종교 및 전통 신앙 체계들은, 세계화 및 주요 종교들의 선교 확대와 정치적 영향력 강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쇠퇴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제도권 교육과 도시화가 확산되는 지역일수록 이들 종교는 젊은 세대에게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으며, 문화적 전통이나 민속적 요소로만 잔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세계 종교의 미래에 대한 허핑턴포스트 분석과 미국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결과(영어)에도 나온다.
11. 종교에 대한 비판들
본 항목은 대체로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비판한, 현대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지성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니체의 종교 비판에 대해 서술한다. 그러나 들어가기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마르크스와 니체는 흔히 '종교를 혐오한 대표적 지성인'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이 둘의 종교 비판은 단순한 '반종교'라기보다는 기독교, 그중에서도 유럽 근대 문명 속에 자리 잡은 '특정한 형태의 기독교 비판'에 가깝다. 특히 그들은 종교라는 보편적 인간 경험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종교가 "인간을 어떻게 무기력하게 만들고, 고통에 순응하게 만들며, 현실을 마비시키는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시도했다.그리고 흥미롭게도, 마르크스와 니체는 사실 종교를 비판함으로써 그 어떤 철학자보다 '인간의 종교성' 자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찬미하고자 한 철학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둘이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과 사상 체계를 완성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공통점은 매우 인상깊은 지점이며, 결국 그들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서 '신화'를 회복시키려 한 혁명가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불렀지만, 이는 단순한 혐오 발언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과 불의를 마비시키는 위로 기제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정치경제적 비판이었다. 더 나아가, 그가 발표한 공산당 선언의 어찌보면 영성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문학적 수사들로부터, 마르크스는 '기독교가 제공하던 구원과 평등의 서사를 혁명적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신화로 대체하려 한 인물'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원형적으로 제시한 인간의 해방, 평등, 이상향은 여전히 그에게 중요한 가치였으며, 다만 그것을 신이 아닌 역사와 인간 공동체의 손으로 성취하려 했다는 점에서 '신화의 방향 전환자'로 이해할 수 있다.
니체 또한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이는 단순히 종교 전반을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도덕, 특히 금욕주의, 약자 중심의 가치, 원한 감정에 기반한 윤리가 생명력과 인간 정신을 억압한다고 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오히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 북유럽의 전사적 서사, 심지어 성경 속 욥기와 요한묵시록 같은 내파적 상징 속에서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적 인간상', '영웅적 삶(거리의 파토스)', '노예(약자) 도덕을 혐오하는 귀족(강자) 도덕'의 가능성을 찬미하고 이를 인간 문명에 회복시키고자 했다. 즉 그에게 종교는 폐기할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인간상으로 재창조될 수 있는 서사의 원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와 니체는 모두 단순히 신을 부정했다기보다는, 신이 차지하던 자리를 인간의 해방, 창조, 투쟁의 이미지로 다시 채워넣고자 한 인물들이다. 즉 이 둘의 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떠나서, 그들의 종교 비판을 '무신론적 냉소'로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재단한 오류다. 마르크스와 니체가 완성하고자 한 사상은 당대의 '생명력을 잃은 종교와 도덕'을 대체할 더 강력한 서사와 정신적 구조를 요청한 급진적 사유였다는 점에서, 종교 일반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 그 역할의 재구성과 대체, 즉 '인간 정신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들의 대표 저작 자본론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정신적 각성을 경험한 당대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여러 저술에서 그들을 일종의 예언자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종교에 대한 회의주의가 강화되던 근대 학계조차 사실은 그 기저에서 기존의 윤리를 대체할 강력하고 새로운 종교성을 갈망하고 있었으며, 니체와 마르크스는 혜성처럼 나타나 그 요구에 응답한 선지자로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11.1. 카를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
19세기 독일 관념론 전통의 연장선에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그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서 종교를 인간 정신의 산물로 간주하며, "신은 인간이 자기 본질을 외부로 투사하여 창조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이상적 속성을 신이라는 존재에 투사하고, 그것을 숭배하는 과정을 통해 실은 자기 자신을 외화(外化)한 신의 노예로 전락한다. 그는 이러한 구조가 인간을 스스로의 본질로부터 소외시키며, 종교란 자기 자신을 외부로 낯설게 내던진 인간의 자기소외라고 비판했다.이 포이어바흐의 소외 개념을 계승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전환시킨 인물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단순히 정신적 투사의 산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종교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 구조와 사회경제적 소외를 정당화하고 고착화하는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그에게 종교란 본질적으로 "현실 사회의 모순을 은폐하고, 피억압계층이 그 현실에 체념하게끔 만드는 허위의식(ideology)"의 한 형식이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종교는 단순히 지배 계층을 직접적으로 찬양하거나 신성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조는 보다 은밀하고 교묘하다. 예컨대 "신은 성실한 자에게 보상을 주신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은 천국에서의 보상으로 이어진다", "신은 각 사람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는 식의 교리는, 현실의 불평등과 고통을 체념 속에서 수용하게 만드는 이념적 장치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는 특정한 계급 이익을 노골적으로 "정당화"한다기보다는, 그 사회구조 자체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자연화"함으로써 현상 유지에 기여한다.
이러한 종교의 기능은 억압과 착취의 구조를 영속시키는 데 결정적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유명한 표현을 남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이 표현은 종종 단순한 조롱으로 오해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아편'은 단지 마비시키는 중독제가 아니라, 인민이 고통을 견디게 하는 진통제이기도 했다. 즉, 종교는 고통받는 민중에게 현실을 잊게 하거나 해방의 에너지를 상실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고통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유일한 위안의 장치이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현실의 물질적 조건이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자, 인간 소외의 총체적 결과물이다. 그는 진정한 해방은 종교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종교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 자체를 철폐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이 더 이상 자기 존재의 의미를 외부로 투사하지 않고, 자신의 현실을 스스로 통제하며 의미를 구성할 수 있게 될 때, 종교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를 단순히 폐기해야 할 신념 체계로 본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인간의 '소외된 삶'에서 비롯된, 즉 억압의 원인이 아닌 소외의 결과라고 파악했다. 따라서 그는 종교의 해체만으로는 인간의 해방이 불가능하며, 종교를 낳는 사회적 조건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그가 제시한 대안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종교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환상적 위안'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해방은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 현실의 조건, 즉 자본주의 체제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계급 착취'와 '노동 소외'를 철폐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이 외부의 신적 존재에 투사되는 왜곡을 거부하고, 현실의 인간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공동체, 즉 자유롭고 평등하며 협력적인 인간 중심의 사회를 이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인간이 타자와의 협력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고, 경제적 평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소외에서 벗어나 참된 의미를 찾는 구조를 지향한다. 요컨대, 마르크스는 종교를 대신해 현실의 인간이 중심이 되는 비종교적이지만 윤리적이고 공동체적인 해방의 이상, 곧 공산주의 사회를 종교의 실질적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 자체가 시간이 지나며 종교적 구조를 재현하게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수많은 학자들은 공산주의가 단순한 정치적 이념을 넘어, 신념의 절대화, 역사 종말론, 순교적 희생의 미학, 지도자에 대한 숭배, 그리고 이상 사회에 대한 구원 서사를 포괄하는 '세속적 종교'로 기능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레몽 아롱(Raymond Aron)은 그의 저서 <지식인의 아편>에서 공산주의를 "세속화된 종교"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했으며,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또한 스탈린주의적 역사주의가 일종의 '구속력 있는 교리 체계'로 작동했음을 분석한 바 있다. 이러한 구조는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이념의 신성화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드러냈고,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신화가 무너졌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즉, 인간 중심의 해방을 외쳤던 이념이 오히려 새로운 교조주의와 통제의 수단으로 전화되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비판했던 '종교적 소외'의 반복이라는 아이러니를 낳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는 현대 좌파 담론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종교의 구조를 세속화한 새로운 이념체계들의 성립에 지대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현대의 해방신학, 급진적 진보주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인권 담론, 생태주의 등의 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구조적 소외 비판과 해방 지향적 사유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세속 종교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들은 초월적 신 대신 '억압받는 자', '자연', '미래 세대', '궁극의 과학기술', '동물 해방' 등을 도덕적 중심에 놓고, 사회적 정의 실현이라는 궁극적 구원을 지향하는 서사 구조를 취한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의 정치적 실패와는 별개로, 그 이념이 낳은 서사적·도덕적 구조는 현대 세속 종교 담론의 핵심 골격으로 잔존하고 있으며,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변형·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11.2. 프리드리히 니체의 종교 비판
프리드리히 니체의 종교 비판은 단순히 특정한 신앙 체계를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비판은 오히려 기독교의 유산을 세속적으로 계승한 근대 이데올로기들까지 포괄하여, 서구 문명을 지탱해온 도덕적 기반 전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럽의 전통 윤리와 가치를 '노예의 도덕'으로 규정하며, 그것이 인간의 생명력과 창조적 의지를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니체의 비판은 세 가지 핵심 사상과 연결되어 전개된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 노예 도덕과 주인 도덕의 구분, 그리고 초인(Übermensch)의 개념이다.우선, 니체는 <즐거운 학문>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는 충격적인 선언을 내놓는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무신론적 선언이 아니라, 근대 이후 이성과 과학의 발달, 계몽주의의 전개 속에서 더 이상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이 도덕적·사회적 중심축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다시 말해, '신의 죽음'은 하나의 문화적·정신사적 사건으로서, 기존의 도덕 질서와 세계관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니체는 이것을 단순히 해방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신이 죽은 뒤의 공허한 세계에서 인간이 허무주의(니힐리즘)에 빠져들 위험을 경고한다.
이러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니체가 제시한 것이 바로 초인(Übermensch)의 개념이다. 초인은 기존의 도덕과 가치, 특히 기독교가 대표하는 보편적·동정적 윤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적 도덕은 약자들이 강자에 대한 복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노예의 도덕'이며, 이는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를 억압하고 인간 본연의 창조성과 힘을 제한한다. 반면, '주인의 도덕'은 강자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거리감 속에서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거리의 파토스, 즉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 부여의 귀족적 감각이다. 초인은 이러한 주인의 도덕을 구현하며,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자다.
니체는 또한 '영원회귀'의 개념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삶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을 만큼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형이상학적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삶 전체를 긍정할 수 있는 정신의 강도'를 요구하는 윤리적 명제다. 신의 질서와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이때 요구되는 정신적 자세가 바로 초인의 자세다.
결국, 니체의 종교 비판은 단순한 무신론이나 반종교적 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분명 종교를 인간 정신의 병리적 구조로 간주하며, 그것이 어떻게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고 삶의 의지를 억압하는지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종교의 해체 이후 남겨진 공백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철학적 대안을 인간의 가장 오래된 사유구조인 '신화' 안에서 발견한다. 니체는 그 대안을 종교와 신화의 내부, 즉 상징과 서사의 깊은 층위 속에서 찾으며, '신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삶 자체를 긍정하며 '자기 초월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끈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단순한 해체자가 아니라, 근대 이후 철학적 종교 비판의 지평을 전환시킨 결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는 단순히 종교의 소멸을 선언한 것이 아니다. 니체는 고대와 중세를 관통한 종교, 특히 기독교가 인간 정신과 서구 문명의 윤리적·정신적 틀을 형성해왔으며, 그 구조 안에 담긴 인간의 고통, 구원, 의미 추구의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서사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의지의 깊이를 발견했다. 니체에게 기독교는 인간의 나약함과 희생을 찬미함으로써 삶을 부정하고, 노예 도덕을 미화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그 비판 너머로, 고통을 견디며 의미를 창출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구조 자체는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는 예수의 수난, 순교자들의 죽음, 성자들의 고행 등은 모두 어떤 초월적 의미를 향한 자기 투신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현실의 고통을 견디며 그 너머의 가치를 창출해내려는 정신적 장치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성경의 욥기와 요한묵시록 속에서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갈망과 절망을 읽어낸다. 욥기의 내파적 구조는 신의 도덕성과 고통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며, 요한묵시록은 절망과 분노가 종말론적 서사로 전이되어 구원의 환상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니체는 이 상징들을 통해 종교가 노예도덕과 복수심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그 이면에 자리한 초월에 대한 갈망, 존재의 심연을 응시하려는 인간 정신의 구조를 간파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철학적 응답으로, 그는 디오니소스의 유희를 제시한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아폴론적 질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디오니소스적 충동을 설정하며, 존재의 진정한 원천은 이성적 질서가 아니라 고통과 몰락, 분열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원초적 힘에 있음을 밝힌다. 디오니소스적 서사는 신에게 의탁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삶의 일부로 긍정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구원에 도달하려는 서사다. 니체에게 있어 구원이란 초월적 존재가 내려주는 보상이 아니라, 고통을 껴안은 채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한 도약인 것이다.
즉, 니체가 말한 '초인'이란 신 없는 세계에서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삶의 영광과 고통, 승리와 몰락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영웅담으로, 곧 "나 자신에 대한 신화"이자 "예술작품"으로 창조해내는 존재다. 따라서, 그는 기존 종교가 제공해 온 서사적 형식(타락, 고통, 정화, 구원, 영광)을 단순히 폐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세속적이고 미학적인 차원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상기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역시 이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매 순간을 절대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고통과 무게마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 능력과 책임을 짊어진 자, 그리고 외부의 이념과 초월적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구원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야말로, 즉 '초인'이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전통적 종교의 서사 구조, 특히 고통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구도(救度)의 틀을 비판적으로 전복하면서도, 동시에 그 구조를 철저히 계승하고 예술적으로 변형한 사상가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니체는 종교의 허위성과 도덕적 억압을 강력하게 비판했지만, 종교적 서사가 인간 정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그것을 서사화하는 방식에 대해서 매우 깊은 감탄과 통찰을 보였다. 그는 이를 철저히 해체하면서도, 그 정신적 에너지를 새로운 삶의 미학과 윤리로 승화하려 했던 사상가였던 것이다.
다만, 니체는 기존 종교와 도덕 체계의 해체를 촉구하며 인간 정신의 해방을 외쳤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의 사상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엘리트주의나 권력 중심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초인' 개념은 보편적 윤리 대신 강자의 자기 정당화로 오용될 위험이 있으며, 실제로 20세기 초 독일 내에서 니체의 개념이 반민주적·파시즘적 이데올로기에 이용된 사례도 존재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 이후 남겨진 가치 진공을 구체적으로 채우는 윤리적·사회적 구조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초인 개념이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카를 야스퍼스는 니체가 고대의 신화를 복원하고자 했으나, 결국은 개인의 고독한 미학주의에 머물렀다고 지적했으며, 한나 아렌트는 그의 사상이 전체주의의 이념적 기반으로 오용될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니체의 사상은 현대 사유 전반에 깊고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심층심리학 등 여러 지적 흐름의 사상적 원류를 제공했으며, 특히 개인의 자기 초월과 가치 창조라는 개념은 20세기 이후 인간 중심 철학의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정치적으로도 그의 사상은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오용되었지만, 동시에 개인의 절대적인 자유와 권력 비판의 사상적 근거로도 기능했다. 예컨대 미셸 푸코의 권력 개념, 질 들뢰즈의 탈중심주의, 심지어 그를 비판한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 분석 역시 니체의 권력의지와 가치 해체 사유에서 많은 통찰을 차용했다. 결국 니체는 종교와 도덕의 해체 이후에도 인간 정신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세계를 다시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철학, 문학, 정치학, 좌우파 담론 모두에서 20세기 사상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12. 각종 오해와 통념들
- 종교는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일 뿐이므로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
- 해당 주장은 종종 과학주의적 우월감이나 편협한 무신론 시각에서 비롯되며, 종교를 단순한 오류이자 역사적 사고의 잔재로 치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기본 전제와 완전히 배치된다. 종교는 단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구조이기 때문이다. 종교학은 인류학의 뿌리이며, 문화연구의 필수 영역이다. 애초에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심리학 등 이른바 인간에 대한 '학문'은 종교의 연구에서 출발했다. 에밀 뒤르켐, 막스 베버, 제임스 프레이저, 클리퍼드 기어츠 같은 위대한 고전 사회학자들은 모두 종교를 인간 사회의 기본단위로 보았고, 종교 현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인간 공동체의 구조, 권위, 상징, 신념체계를 밝혀냈다. 특히 현대 인류학에서는 종교를 단순한 신념체계가 아닌,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해석하는 총체적 서사"로 본다. 즉 종교를 연구하지 않는 인류학은 있을 수 없으며, 종교 없는 인간학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실제로, 종교를 제거한 인간 이해는 비과학적일 정도로 불완전하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종교를 믿는 인구는 약 80~85%에 달하며, 대다수 사회에서 종교는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의 윤리, 정치적 선택까지 관여한다. 종교는 여전히 살아있는 실존 구조이며, 이를 '미신'이라 일축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동학을 무시하는 행위에 가깝다. 중동의 분쟁, 인도의 카스트 문제, 미국 정치의 기독교 우파 영향력, 한국 사회의 유교·도교·불교·기독교 기반 문화 등은 종교를 제외하고는 분석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종교를 연구하지 않겠다는 건 인류에 대한 이해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 또한, "비합리적이니까 무가치하다"는 주장은 철학적으로도 모순이다. 예술, 신화, 문학, 심지어 인간의 사랑이나 도덕 감정조차 비합리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그것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왜? 그것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며, 죽음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를 알려면 종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심 주제다. 오히려 이를 무시하는 태도야말로 편협하고 반합리적이다.
게다가, 후술하겠지만 종교는 문명 전체를 움직인 동력이었다. 피라미드, 그리스의 신전, 앙코르와트, 바티칸, 불국사 등등 전 세계의 대표적 유산 대부분은 종교적 목적에서 출발했다. 종교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이 건축하고 예술을 창조하고, 법과 윤리를 정립하고, 자신을 초월하려는 시도의 총합이다. 종교를 연구하지 않겠다는 말은, 인류 문명은 물론 그 문명 안에 살아가는 자기자신을 연구하지 않겠다는 한심한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 이와 관련해서는 종교학자 파스칼 보이어(Boyer, 2004)가 《Skeptics Inquiry》 저널에 기고한 글을 볼 것. Boyer(2003)나 레슬리 프란시스(L.J.Francis)의 다른 저작들에도 나온다.
- 각국의 신화는 비과학적인 과거의 잔재이며,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문화와 관습은 종교적 기원을 지닌다. 현대인의 일상 속 관습과 기념일, 사회적 의례들은 대부분 종교에서 유래했다. 예를 들어 결혼식, 장례식, 성인의례, 경축일 등은 각국의 고대 신화와 종교적 의미에서 출발하여 관습화된 것이다. 비록 세속적 형식을 띠고 있을지라도, 그 본질은 여전히 초월적 질서와 인간의 삶에 대한 신성한 해석을 담고 있다. 일요일의 휴식, 연말의 축제, 출산과 죽음에 대한 태도 등은 모두 종교적 시간 감각과 윤회, 구원 등의 관념과 연결되어 있다.
- 신화는 '사라진 이야기'가 아니라 '은폐된 근거'다. 많은 사람들은 신화를 단순한 옛날이야기나 비현실적 상상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신화는 한 사회의 심층 구조를 형성하는 상징적 코드로 작용한다. 예컨대 서양 문학과 영화에서 영웅 서사의 구조는 헤라클레스, 오디세우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고대 신화의 인물 유형과 거의 동일하다. 정의와 희생, 금기의 파괴와 초월,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서사 등은 지금도 이야기 구조의 뼈대가 된다. 이는 단지 상상력의 유산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구조 자체가 신화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신들은 인간들의 무의식과 문화적 상징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날 누구도 제우스나 토르를 신앙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이름은 천문학, 의학, 문학, 스포츠 브랜드, 심지어 대중문화 전반에 여전히 등장한다. 이는 신들이 인간의 감정, 신념, 욕망, 이상, 공포를 형상화한 상징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신을 더이상 숭앙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신들이 구현한 서사와 이미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 DNA로 남아 있다. 심지어 한국을 포함해 현대 선진국 시민들은 고대 아테네 문명 혹은 베네치아같은 중세 도시국가 시민들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후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 정의, 사랑, 자유처럼 현대인들이 철석같이 믿고있는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사실상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 신학'의 관념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의 문제와 별개로, 이는 엄연히 모든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그 자체를 반영한다. - 종교와 신화는 현대인들에게조차 여전히 '정체성의 언어'로 기능한다. 국가의 정체성, 민족의 정신, 지역의 전통은 대부분 종교적 또는 신화적 이야기 위에서 정당화된다. 국기, 국가, 국가적 영웅이나 순교자들을 기리는 행위는 일종의 세속적 의례이지만, 그 구조는 고대 제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정치조차도 때때로 신화적 영웅을 호출하거나 종교적 구원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대중의 집단 감정을 결속시키곤 한다.
- 종교는 과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과학기술과 종교는 공존할 수 없고 어느 한쪽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 "종교는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결국 과학과 종교는 양립 불가능한 체계로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언뜻 이성적인 듯 보이나 실은 오히려 사상적 환원주의와 시대착오적 이원론에 기반한 이분법적 서사다. 이 주장의 핵심 오류는, 종교와 과학을 각각 "비합리적 신념 체계"와 "합리적 지식 체계"로 이분화하며, 둘 사이에 중첩적 공간 혹은 교차 가능성에 무지하거나 빈약한 과학주의적 도그마에 매몰되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데 있다. 이것은 마치 학문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라는 두 파편으로 나누고, 서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능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한다.
종교는 결코 단일하고 고정된 정의로 환원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을 믿기 이전에 신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이며, 종교는 특정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실천하고, 경험하고, 기억하고, 구조화하며, 공동체 안에서 전승하는 문화적이고 인지적 총체다. 종교의 신비적 교리 자체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지라도, 그 믿음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 사회적 기능, 행동 패턴, 뇌 신경 구조 변화 등은 모두 실증 가능하고 반복 측정이 가능한 연구 대상이다. 대표적으로 티베트 승려들을 대상으로 한 fMRI 연구(Richard Davidson 외)는 수십 년간 명상을 수행한 수행자들의 뇌 구조 자체가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불교의 '무아', '집착 해체' 등의 추상 개념이 객관적 뇌 작용의 변화로 관찰되면서, 종교가 결코 '비과학적'이거나 '비논리적' 체계로만 기능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 또한 무엇보다도, 종교와 과학은 서로의 '대척점'이 아니라 충분히 공존과 교류가 가능한 '관찰 방식'의 차이다. 이른바 "과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종교는 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말처럼, 양자는 인간 존재의 다른 층위를 설명하는 방식일 수 있다. 과학은 세계의 '작동 방식(how)'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종교는 세계와 인간 삶의 '의미(why)'에 천착한다. 이는 접근 방식의 차이이지, 둘 중 하나가 진실이고 나머지는 퇴치되어야 할 허위라는 식의 갈등적 서사는 결코 아니다.
더구나 누차 강조했듯이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은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해왔다. 이슬람 세계의 천문학, 수학, 의학 발전은 코란 해석과 라마단의 시간 규정에서 시작되었고, 중세 기독교 수도원의 지식 축적과 고전 번역 운동은 르네상스 과학혁명의 밑거름이었다. 유교 문화권의 천문역법과 도가적 기 기초의 의학 체계도 마찬가지다. 종교는 언제나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을 제공해왔다. 그것이 근대 이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제되었을 뿐이다. - 근대 이성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은 종교의 소멸을 수백 년 동안 예언해왔다. 대표적으로 오귀스트 콩트는 인간 지성이 신화 → 철학 → 과학으로 진화하며, 종교는 사라질 운명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는 틀렸다. 21세기 세계는 여전히 대다수가 종교적 신념을 지니고 있고, 오히려 현대 종교는 신흥종교의 창궐, 탈정통주의, 영성 운동 등 다양한 적응과 진화를 통해 살아남고 있다. 종교는 단순한 지식 시스템이 아니라 정체성과 삶의 의미, 공동체 윤리, 의례적 감응과 감정 해소 장치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단순한 '설명체계'였다면 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소멸했겠지만, 그것은 의례적·정서적·도덕적 기능이 결합된 인간의 내면 작용이며, 그 구조는 오히려 과학기술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정교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반종교주의자들이 거의 숭앙하는 오귀스트 콩트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이 "종교는 사라질 것이며 과학과 이성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믿은 것은, 그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종교적 구조와 신화적 서사를 정치 이데올로기 안에 재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교를 '초월적 존재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만 환원하고 이를 극복해야 할 과거의 잔재로 간주했으나, 정작 그들이 제안한 과학, 진보, 이성, 공화주의, 혁명 등의 개념은 고대 종교의 도식, 예컨대 모험과 도전, 죄와 구원, 심판과 해방, 메시아와 재림을 세속화한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콩트 자신이 "인류를 위한 새로운 도덕적 종교"로서 실증주의를 제창하고, 스스로를 사제라 칭한 사실은 이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그들이 주장한 세속 이데올로기조차도 결국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질서, 의미, 구속, 구원이라는 종교적 욕망의 변형된 표현이었으며, 종교의 본질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그들의 종교 소멸론은 자가당착적인 신화적 사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은 종교의 적이 아니라, 종교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렌즈 중 하나다. 종교 역시 과학이 놓치는 인간 감정의 깊이와 초월의 필요를 보완하는 또 다른 감각 기관이다. 양자는 영역이 다르지만 서로 관통할 수 있으며, 인간을 이해하는 데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과학이 발달하면 종교는 사라진다"는 말은, 마치 "영양학이 발달하면 요리는 필요 없어질 것이다”라는 주장만큼이나 공허하다. 과학은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종교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둘은 공존할 수 있으며, 이미 공존해왔다. - 더 자세한 내용은 과학vs종교 문서로.
- 종교인들은 무식하며 아는 것이 별로 없다.
- 종교를 무지로 보는 편견은 "합리=무신론"이라는 도식에 갇힌, 단선적인 걸 넘어 빈곤하기까지한 사고의 산물이다. 오히려 많은 지식인들에게 종교는 과학과 철학을 탐구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따라서 해당 주장은 단지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열등하다고 간주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이며, 과거의 종교적 독선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역사적으로나 현대적으로나 종교와 지식은 결코 반대 개념이 아니며, 수많은 과학자, 작가, 고고학자, 철학자, 정치학자, 지도자, 지식인들이 신앙 속에서 가장 심오한 질문들을 탐구해왔다. 과학과 종교가 충돌한다고 여기는 것은 오히려 과학도, 종교도, 역사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착각에 가깝다. 종교인을 무시하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무지와 오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 역시 위에 주구장창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해당 주장은 종교인을 광신도와 동일시하는, 오히려 해당 주장을 내뱉는 사람의 무식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무시한 매우 단선적이고 사실과도 다른 인식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식은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과학혁명 이전에는 종교인들이 사회의 지식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많은 대학이 세워졌으며, 고려와 조선은 불자와 유학자들이 이끌어가던 나라였다. 과학혁명 이후의 역사만 논한다고 쳐도, 멀게는 마이클 패러데이에서부터 가깝게는 프랜시스 콜린스[11]까지 박식한 종교인들도 적지 않았으며, 이들은 무슨 맥스웰이나 에이브러햄 링컨의 사례처럼 반박할 여지조차 없는, 진짜배기 독실한 신앙심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과학혁명 이전의 세계에서 지식의 중심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 중세 유럽의 대학들은 대부분 수도원과 성당을 기반으로 세워졌으며, 전근대 유럽의 학문 발전과 전성기를 이끈 학자들은 거의 모두 성직자 또는 수도사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등은 신학자이자 철학자, 자연학자였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파리 대학 등도 모두 종교적 기초 위에서 형성된 고등 교육기관이다. 동양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고려와 조선은 각각 불교와 유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학문을 주도한 집단은 승려와 유학자들이었다. 고려 말의 의천, 지눌, 조선 초기의 정도전, 정약용 같은 인물들은 모두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정치·학문·윤리를 논했다. - 또한, 과학혁명 이후에도 종교인은 지식인이었다. 근대 과학이 발달한 이후에도 종교와 지성은 대립하지 않았다. 근대 이후에도 "종교인은 무식하다"는 편견은 역사와 현실 모두에서 반박된다.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방대한 신학서를 남긴 독실한 신자였고, 자신의 과학 연구를 "신의 질서를 밝히는 행위"로 여겼다. 요하네스 케플러, 그레고어 멘델, 조르주 르메트르, 파스칼 등도 마찬가지로 과학과 신앙을 병립한 인물들이며, 그 이외에도 종교를 진지하게 여긴 위대한 학자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현대에 와서도 상기한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이끈 생화학자 프랜시스 콜린스, 양자장 이론 연구자로서 인정받고 은퇴 후 성공회 사제가 된 존 폴킹혼, 미국 천문학계의 권위자이자 과학사 연구자 오웬 진저리치 등 깊은 신앙을 지닌 과학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처럼 종교는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깊은 사유의 원천이 되었으며, 과학과 철학, 예술과 문명을 이끈 원동력이기도 했다. 따라서 해당 주장은 종교 자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반지성주의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 종교적 몰입은 일부 무지하고 피암시성이 높은 저학력 하류층에서만 나타나며, 교육을 통해 계몽되어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된 지성인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 매우 흔하고도 뿌리 깊은 편견이다. 종교에 몰입하는 사람은 항상 무지하고 저학력자일 것이며, 교육을 받으면 종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전제인데, 이는 실제 통계와 역사적 사례 모두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먼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지성인들 중 상당수가 독실한 종교인이었거나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사유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은 반종교주의자들이 대개 외면하거나 축소하는 사실이다. 아이작 뉴턴은 과학혁명의 선봉장이자 만유인력의 발견자이지만 동시에 성경 주석과 종말론 연구에 몰두한 열렬한 신자였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도 교육 수준이 높다고 종교적 신앙이 반드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MIT, 옥스퍼드, 프린스턴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는 여전히 종교학과와 신학과가 존재하며, 해당 분야 교수들 대부분은 박사학위를 보유한 전문 연구자이자 스스로의 신앙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종교학은 인류학, 철학, 문학, 언어학, 고고학, 사회학이 통합된 대표적인 고등지성의 학문 분야로,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저학력·저소득 계층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모든 학문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오히려 통계적으로 보면, 극단적인 무신론 및 반종교 정서는 오히려 중간 정도 교육을 받은 층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매우 낮은 교육 수준에서는 전통적 종교에 대한 의존이 높고, 매우 높은 교육 수준에서는 다양한 종교적 체계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정 수준의 합리주의와 비판적 사고만을 익힌 채 도그마화된 과학주의를 맹신하는 층에서 ‘종교 = 미신’이라는 도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극단적 반종교주의자들은 종교적 광신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지성인은 무조건 종교를 버려야 한다"는 또 다른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다시말해, '책을 아예 안 읽은 사람'과 '아주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은 정작 종교에 진지하게 접근하는데, '책 한권만 읽은 어설픈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몰입은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 형이상학적 고민, 존재론적 성찰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며,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몰입의 방식은 더 고차원적으로 변할 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 종교를 실제로 믿지 않더라도, 그 상징성과 인류학적 깊이에 매료되어 이를 연구하거나 사유한 지식인들은 많다. 대표적으로 무신론자로 알려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종교를 비판하면서도, 그것이 인간 무의식과 충동의 상징체계라는 점에서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해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토템과 터부', '모세와 일신교'는 종교가 인간 문명의 뿌리에 닿아 있음을 분석한 대표작이다. 그의 제자인 카를 융은 종교적 신비주의와 신화를 보다 긍정적으로 보았으며, 세계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들을 '집단 무의식'의 표출로 해석하였다. 융에게 있어 종교는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통합과 자기실현을 위한 상징적 도구였다.
신화학자 요제프 캠벨 또한 특정 종교를 신봉하지 않았지만, 세계의 모든 신화가 공유하는 영웅서사 구조를 정리하며, 종교와 신화가 인간 존재와 문화적 창조성에 얼마나 본질적인지를 강조했다. 그의 저작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수많은 예술가와 사상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또한, 20세기 인류 지성사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거장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오히려 세계 각국 신화에 내제한 인간의 본질적 힘에의 의지를 되살리겠다는 선언이었다. 동시에 그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 신화를 통해 인간 삶의 비극성과 예술적 충동을 설명했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그는 종교를 인간 정신이 세계와 마주하는 가장 위대하고 형이상학적인 구조로 간주했다.
이처럼 종교를 실제로 믿지 않더라도, 그 문화적, 심리적, 철학적 위상과 의미에 깊이 공감하고 연구한 지식인들은 많다. 종교를 무지의 산물로만 보는 것은 오히려 이들의 사유 깊이를 간과하는 태도이며, 종교는 때때로 가장 회의적인 사유자들에게조차 인간 존재의 핵심을 이해하는 열쇠로 여겨져 왔다. - 일부 극단적인 신합리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대의 뇌신경과학자들은 브랜드 충성도[12]와 같은 다른 사회적 몰입 현상에 대해서도 종교적 몰입과 정확히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것은 단지 계몽이냐 반계몽이냐 같은 이분법적 차원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뇌가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종교인들은 정신적으로 뒤떨어지는 나약한 사람들이다.
- 해당 주장은 "종교적 신념 = 미신에 의존하는 정신적 나약함"이라는 단선적 전제에서 출발한 편견이며, 역사적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실제로는 종교는 개인을 오히려 단련하고, 초월적인 책임감과 의지, 그리고 자기희생의 가치를 위해 삶을 던지게 만든 강력한 심리적·철학적 기반으로 작용해왔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경외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군주, 사제, 지식인, 전사들은 언제나 종교적 신념을 통해 정신적 강인함과 실천을 정당화하거나 내면화해 왔다.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중국 역사의 무장과 조선의 유학자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괴력난신을 혐오했다는 이유로 현대적인 실용주의자들로 오해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종교적·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결단과 통치를 정당화한 존재였다. 한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삼고, 하늘의 뜻(천명)에 따라 제국을 통치한다는 명분을 세웠으며, 후한의 관우는 무장의 이상으로 숭배되어 도교적 신격화까지 이루었다. 송대 이후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를 탐구했으며, 그 속에서 도덕적 결단력과 자기수양의 전사적 미학을 발전시켰다. 조선 유학자들도 현실 정치와 도덕적 천명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했으며, 유교적 충의와 천리(天理)는 오히려 죽음을 무릅쓴 결단과 국가를 향한 헌신의 근거로 작용했다. 즉, 동아시아의 지식인과 무장들 역시 종교적 신념을 통해 정신적 강인함을 구축하고 정치를 실천했던 존재들이었으며, 조국이 망국에 진입할 때마다 목숨을 부지하기보다 천명을 다했다는 신념 아래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즉 이들은 단순한 관료나 학자가 아니라,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 세상에 맞서 자기 목숨을 던지는 결단의 인물들이었으며, 이러한 선택은 도덕적 형이상학을 현실 정치보다 우위에 둔 종교적 신념 없이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행위였다.
둘째는 고대 그리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이다. 고대 그리스의 전사 문화는 신화와 영웅 숭배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인들에게 전쟁과 죽음을 단순한 파괴가 아닌 신들의 뜻과 인간의 운명이 교차하는 장엄한 드라마로 인식하게 했다. 그리스 전사들은 싸움에서의 용맹뿐 아니라, 신의 축복 아래 죽는 것, 혹은 신과 함께 기억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겼다. 특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런 종교적·신화적 사고를 정치적 무기이자 정신적 동력으로 활용한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제우스의 아들, 혹은 헤라클레스의 후계자로 여겼으며, 원정을 통해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신화의 주인공이자 신에 가까운 존재로 자신을 형상화했다. 실제로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아문의 아들로 공식 인정받았고, 그의 전설적 행적은 신화적 색채로 재구성되어 유라시아 세계 전역에 퍼졌다. 즉, 고대 그리스 전사들과 알렉산드로스의 전쟁관에서는 전쟁, 신화, 명예, 죽음이 하나의 종교적 내러티브로 통합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초월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정신문화가 자리잡았다.
셋째는 칭기스 칸과 몽골 제국의 신성한 전쟁관이다. 인류 최대의 대제국을 건설한 군주 칭기스 칸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였다. 그는 하늘(텡그리)의 뜻을 실현하는 초월적 전사로 여겨졌으며, 이것이 바로 흩어져 있던 몽골 유목민 집단이 하나로 결집할 수 있었던 강력한 정신적 기반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이 하늘로부터 사명을 받은 '천손'이라 선포하며, 정복 전쟁을 단순한 세속적 야망이 아니라 신성한 질서를 회복하고 세계를 바로잡는 사명으로 정당화했다. 이와 같은 종교적 명분은 부족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각기 다른 전통과 언어, 문화를 지닌 무인 집단을 하나의 대의 아래 통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몽골 전사들에게 싸움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 질서를 실현하는 성스러운 의무였으며, 이는 대제국 건설의 사상적 동력이 되었다. 즉, 칭기스 칸의 종교적 세계관은 단순한 정복의 정당화 수단을 넘어, 몽골 제국을 통합하고 전사 집단에 초월적 정체성과 결단을 부여한 핵심 축이었다.
넷째는 초대교회의 교부들이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단순히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존재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죄성'을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자였다. 특히 이집트와 시리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이른바 '사막의 교부들(Desert Fathers)'은 세상의 쾌락과 유혹을 피하여 인간이 견디기 가장 어려운 자연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단식, 침묵, 육체노동, 자학에 가까운 고통을 감수하며 '죄악에 탄식하는 자들'로서 수행에 몰두했다. 이들은 사랑의 복음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 안의 탐욕과 분노, 교만, 성욕 등을 끊임없는 '내적 전투의 대상'으로 간주했고, 그들에게 그 싸움은 단순한 명상이나 기도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이러한 수도자들의 삶은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기괴하거나 병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정신적 결단과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전통은 중세 유럽 수도사들의 고행으로 계승되었으며, 종교를 나약한 인간의 피난처로 오해하는 이들에게 초기 기독교 수도사들의 예는 오히려 종교가 인간 정신을 얼마나 극한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투쟁적이고 숭고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반례다.
다섯째는 중세의 십자군이다. 십자군은 물론 온갖 폐단으로 현대까지 비판받기는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면모만 평가하자면 단순히 미신에 사로잡힌 군중의 광란으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기사도, 명예, 성지 탈환이라는 신성한 임무, 순례와 순교는 모두 종교적 믿음을 기반으로 했으며, 그 중심에는 왕족과 귀족 출신의 무장 엘리트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병사"라 여기며, 심지어 죽음조차 영광이라 여겼다. 이는 종교가 오히려 전투적 결단과 자기희생을 이끌어내는 심리적 기반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많은 기사들은 영지와 생명, 심지어 가족까지도 내려놓고 전장에 나섰으며, 죽음을 '순례의 완성'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종교적 열정이 개인의 욕망을 넘어선 초월적 가치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여섯째는 바이킹과 북유럽 전사들이다. 북유럽 바이킹 문화에서 종교는 용맹성의 근원이었다. 오딘, 토르, 발키리, 발할라의 신화는 전사들에게 죽음 이후의 영광과 전사로서의 운명을 부여했다. 바이킹은 바다를 건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라그나로크라는 종말의 전투를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한 신앙을 넘어서, 종교적 세계관이 전사적 미덕과 결합된 강력한 문화 형태였다. 전사로서 명예롭게 전사한 이들은 발할라로 인도되어 오딘의 부하로 다시 싸우는 영광을 누린다고 믿었기에, 바이킹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의 길이었다. 심지어 노르드 전사들의 무덤에서는 전투 장비, 무기, 제물과 함께 전사와 신의 교류를 상징하는 상징물들이 발견되며, 이는 신화가 단순한 이야기 차원을 넘어 일상과 죽음, 전투의 실천적 원칙이었음을 보여준다. 즉, 바이킹 문화에서 종교는 삶과 죽음, 명예와 운명을 통합하는 실질적인 존재 방식 그 자체였다.
일곱째는 불교의 수라도(修羅道)다. 불교는 일반적으로 자비와 평화를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수라도 개념은 그와 다르다. 수라도는 용맹하되 분노와 투쟁심으로 가득 찬 중생이 환생하는 세계로, 영적 수행의 방향이 다른 형태이다. 전쟁에서 죽은 영웅, 군인, 결단력과 투쟁심이 강한 자들이 수라로 환생하며, 그들은 천상계와 끊임없이 싸우고 신들에게 도전하며 서로의 기량을 겨룬다. 이 개념은 종교적 수행과 전사적 성향이 병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또한 아수라들은 강한 의지력과 투쟁정신, 정의감을 상징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일부 불교 수행자들은 수라적 기질을 통해 자신의 번뇌와 업장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행 자세를 강조했으며, 그 고통스러운 싸움 자체를 수행의 일부이자 업장을 정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즉, 수라도는 미혹된 세계이면서도 동시에 '내면의 적'과 싸우는 정신성의 상징으로 기능했으며, 자비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불교 내의 전투적 초월성을 대표하는 차원으로 존재했다.
여덟째는 일본의 사무라이들이다. 사무라이들은 불교, 특히 일본 대승불교와 밀교 전통, 그리고 상기한 수라도 철학에서 비롯된 선종과 신도적 죽음관을 결합시켜 '죽음에 초연한 무사도(武士道)'를 만들어냈다.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죽는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식의 결단 철학은 불교적 무상관과 신도적 충성심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사무라이 정신의 핵심은 "종교적 내면화된 죽음 수용"에 있었으며, 종교는 이들의 정신적 강인함을 강화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의무와 충절을 다하는 마지막 무대였다. 현대까지도 종종 미디어 매체에 등장하는 화두인,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주제가 바로 이 선종의 종교적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사무라이들이 죽음 앞에서도 침착하게 하이쿠를 읊고, 미소를 머금고 자결에 임했던 이유이며, 종교가 단지 위안을 주는 수단이 아니라 '죽음조차 의미 있게 만드는 실천적 철학'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아홉째는 메소아메리카의 전사들이다. 마야, 아즈텍 등 중남미 문명은 전사적 종교성과 가장 강하게 결합된 사례다. 특히 아즈텍 전사들은 태양신 토나티우와 위칠로포치틀리에게 전쟁 포로를 제물로 바치며 태양의 순환을 유지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신을 위한 피의 제의를 수행하면서 죽음을 영광으로 여겼고, 전사로 죽으면 태양의 길을 함께하는 존재가 된다고 여겼다. 전쟁은 단지 영토 확장이나 자원 약탈이 아닌 신성한 종교의식의 연장이었으며, 아즈텍 전사 계급은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신의 뜻을 실현하는 성직자적 존재로 간주되었다. 젊은 전사들은 태양을 위해 싸우고 피를 흘리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자 이상적 죽음이라 배웠으며, 심지어 포로가 되는 것조차 제물로 바쳐질 영광스러운 운명으로 여겨졌다. 즉 이 문화권에서는 종교란 '죽음과 명예의 완전한 일치'였다. 이는 종교가 단순한 신념 체계를 넘어서, 삶의 방식과 죽음의 형식을 규정짓는 절대적 질서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역사 속 수많은 지도자들과 전사 집단은 단순히 군대 혹은 자본에 의존한 게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초월적 사명감을 통해 강인한 결단력과 죽음을 초월한 명예를 부여받은 존재로서의 동기로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종교를 나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죽음을 견디고 삶을 투신하게 만드는 정신적 무장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신념은 곧 위대한 문명과 제국의 기초가 되었다. - 상기한 역사적 강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종교는 단순한 '심리적 의존'이 아니다. "사후세계나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건 결국 죽음이 두렵고, 현실을 감당 못해서 무언가에 의존하는 약자들의 심리"라는 식의 주장도 자주 나오지만, 이는 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이며 인간 정신의 깊이와 복합성을 간과한 발언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불안한 존재이며, 그 불안 앞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종교는 단지 그 불안을 억누르기 위한 무작위한 발상이 아니라, 인간이 죽음, 고통, 무의미에 직면하면서 그 너머를 해석하려 한 철학적·상징적 체계이다. 실제로도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초월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개인적 고난을 신성한 사명으로 승화하는 태도들이 종교 전통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 종교생활에 충실한 노인들이 그만큼 연령에 결부된 인지적 감퇴(age-related cognitive decline)가 느려진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있다.[13] 그러다 보니 영성(spirituality) 내지는 종교성(religiosity)을 성공적 노화의 조건으로 포함시킨 연구자들도 나타났다.[14] 또한 종교를 가진 개인들은 회복탄력성(resilience) 역시 더 크며,[15] HIV 환자들 중에서도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비난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 적게 보고했으며 더 의연하고 성숙하게 죽음을 수용했다.[16]
- 종교는 문명을 쇠퇴하게 한다. 또는, 종교는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해로운 현상이다.
- 정반대다. 상기했듯이 문명과 제국은 오히려 종교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 문명, 인류학에 대한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이런 주장은 절대 내뱉을 수 없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고대 불가사의나 유물, 건축물들만 보더라도 종교적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를 신의 화신으로 여긴 종교적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대한 토목 사업이었고, 고대 도시 대부분은 신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종교가 단순한 사적 믿음이 아니라, 이 세상 어느 문명권에서든 사회를 조직하고 통합하는 핵심 구조였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도 종교는 사회적 연대의 핵심 축이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공통의 상상 속 존재'를 실재처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인지혁명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그 대표적인 예로 종교를 들었다. 종교는 서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조차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결속의 수단이었고,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기반이었다. 실제로 종교 사원이 먼저 세워지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도시가 형성된 경우는 고고학적으로도 수없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마치 문명을 쇠퇴시키거나 발전을 저해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실제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일방적 서술이다. 만약 종교가 진정으로 사회 발전을 막는 요소였다면, 인류의 문명은 이토록 오래 지속되거나 고도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종교 없는 사회와 종교 있는 사회를 동일 조건에서 비교한 실험은 존재하지 않으며, 전 인류 역사에서 종교는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그 형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했지만, 종교적 관념은 인류 문화의 중심에 늘 자리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철학, 과학, 윤리의 기반에도 종교적 직관이 깔려 있다. 대표적으로 뉴턴은 신이 창조한 세계는 질서정연하다는 전제 위에서 자연법칙을 탐구했으며,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본질적으로 신적 실재를 전제로 한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형이상학에서 '부동의 원동자'라는 개념을 통해 신적인 존재를 상정한다. 근대 이전의 지성사에서 종교는 결코 억압적인 외부 요소가 아니라, 사유의 가장 강력한 촉진제였다. 게다가 중국의 역사적 발전에서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 특히 청교도적 직업 윤리가 합리적 자본주의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인도 역시 힌두교적 세계관과 사회구조의 영향을 깊이 받으며 발전해왔다.
또한 각국의 신화와 그 신화들이 문학에 끼친 영향을 보면, 종교적 세계관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스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웅의 능력, 이름, 사건 전개 방식에서부터 등장인물의 도덕적 기준과 클리셰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과 문화 양식의 원천이자 뿌리였다. 이처럼 종교는 인류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는, 지속적인 요소였다. 이런 사실이 종종 간과되는 이유는, 현대적 가치관을 기준 삼아 과거를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문명은 발전 속도가 매우 느렸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기술과 지식도 수천 년에 걸친 축적의 결과였다. 예컨대 철기 사용만 보더라도, 인간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특정 광물이 열에 녹고, 냉각되면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기반으로 철광석을 불에 집어넣고, 망치질을 하고, 온도를 높여 제련하는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철제 도구의 보급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과정도, 당시의 무지한 상황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발견이었다.
현대의 급속한 발전은 방대한 선행 지식의 토대 위에서 가능해진 것이지, 과거 사람들이 종교에 얽매여서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역사에서 종교가 문명의 쇠퇴를 초래했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대부분의 경우 국가의 쇠퇴는 정치적 부패, 경제적 파탄, 외부 침입 등의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되며, 그 와중에 종교가 경직되거나 이데올로기화되어 혁신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종교는 때에 따라 사회를 발전시킬 수도, 퇴보시킬 수도 있다"는 조건부 해석이어야지, "종교는 무조건적으로 사회를 퇴보시킨다"는 식의 단정적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 무엇보다, 자신이 과학적 합리주의자라고 여기는 현대인들에게조차 현대 이데올로기와 신념 체계는 '세속 종교'로 기능한다. 정치적 신념, 환경주의, 인권운동, 심지어 일부 과학적 이론들까지도 현대인들에게는 종교적 기능을 수행한다. 믿음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이견에 대한 공격적 반응, 이단자에 대한 배척, 상징과 의례의 존재 등은 심리학, 사회학적으로 종교와 매우 흡사한 구조를 보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믿음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이기에, 전통적 종교가 약화된 자리에 새로운 '세속 종교'들이 들어선 것이다.
심지어 좌우 정치계를 막론하고, 현대의 이데올로기들은 과거의 신화와 종교와 완전히 단절된 독자적 체계가 아니라, 그 논리구조와 핵심 개념들 자체를 재구성하여 실질적으로 계승한 세속적 후속 체계다. 예컨대 종교에서의 '구원'은 이데올로기에서 '해방'이나 '진보'라는 말로 치환되었고, '신의 뜻'은 '역사의 법칙'이나 '인류의 보편 가치' 같은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죄'와 '속죄'는 '착취'와 '혁명'으로, '이단'은 '반동'이나 '수정주의자'로 개념이 바뀌었을 뿐, 그 구조와 기능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의미를 구성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이 신화적·종교적 사고구조를 바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대 이데올로기는 종교와 신화를 넘어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 개념적 골격을 세속화한 형태로 이어진 이론적 후계자다.
냉전 시기를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과 자본진영의 대립 또한 전형적인 세속 종교 간의 충돌로 이해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해방'이라는 구원 서사를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구축했으며, 노동자 계급은 '선민(選民)'으로, 자본가는 '타락한 악의 세력'으로 형상화되었다. 정당에 대한 충성, 상징(붉은 깃발, 혁명가), 순교자(체 게바라, 레닌 등)의 신격화는 종교적 열정과 다르지 않다. 반면 자본진영 역시 자유시장, 개인주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보편 진리'처럼 절대화하였으며, '성장'과 '소비'는 일종의 현대적 구원론으로 기능했다. 경제적 성공은 신의 축복처럼 간주되었고, '자유세계'는 '공산 독재'에 맞서는 선(善)의 진영으로 이상화되었다. 결국 이 양 진영은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며 '구도적 전쟁'을 벌였고, 이는 사실상 군사적 갈등을 넘어선 믿음과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이처럼 인간은 사상이든 체제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초월적 질서로 성역화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조차 쉽게 '종교화'되는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PC주의) 역시 전통 종교에 대응하는 강력한 세속 종교로 기능하고 있다. 특정 소수자 집단의 권리 보장, 언어적 배려, 역사적 반성과 같은 의제들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가치이지만, 이 가치들이 절대화되면 교리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낙인찍히고, 잘못된 말 한마디로 '사회적 파문'을 당하며, 반성 없는 개인은 '죄인'으로 취급된다. 이는 이성적 사유체계라기보다 차라리 종교적 믿음의 구조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순결성과 진영 충성도가 공동체 소속의 조건이 되며, 이것은 전통 종교에서의 신앙 고백, 고해, 속죄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 음악과 미술 역시 종교와 깊은 연관 속에서 발전해왔다. 고대 유물 속 벽화들만 보더라도, 이집트 피라미드의 벽화는 파라오를 신격화한 종교적 신앙을 반영한 것이며,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 또한 원시 신앙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원시인들은 그림에 혼이 깃든다고 믿어, 사냥하고 싶은 동물을 그려놓고 돌을 던지거나,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례로 벽화를 남기곤 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의 확산과 함께 성상화(이콘) 제작이 미술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으며, 음악 또한 예배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했다. 중세의 유명 작곡가들 대부분이 가톨릭 미사에서 사용되는 성가를 작곡했으며, 이와 같은 종교적 목적의 예술 창작은 이후 세속 예술의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한 미적 표현이 아니었다. 이는 종교적 신념과 의례에서 기원한 인간의 근원적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 가난한 사람일수록 종교에 많이 의지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종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 "가난한 사람이 종교에 의지하고, 부유한 사람은 종교에서 멀어진다"는 명제는 단순화된 통념이며, 실제 세계 각지의 통계와 역사적 사례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는 역사적으로 부와 권력, 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기능해왔으며, 오늘날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권력과 자본의 원천이었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토지의 최대 소유자였고, 승려와 사제는 지식과 정보, 기록의 독점계층이었다. 이슬람 세계의 '와크프'(Waqf) 제도도 종교적 명분 아래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운영했고, 불교 사원 역시 각종 세속적 부와 군사력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도 불교나 유교 기관은 국가 지원과 사회적 권위를 누리며 실질적 자산 운영 주체였고, 오늘날도 대형 종교단체는 교육·의료·복지·언론 등 광범위한 자산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 예컨대 종교 참여율이 높기로 알려진 미국의 '바이블 벨트' 지역은 가난한 주가 많긴 하지만, 이건 미국 사회를 전혀 대표하지 않는 단편적인 예시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은 기독교 거대 자본 네트워크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는 단순한 신앙의 차원을 넘어 자본, 정치, 교육, 미디어를 포괄하는 강력한 네트워크로 기능하고 있다. 메가처치(Megachurch)들은 연간 수천억 원대의 헌금을 운용하며 자체 방송국, 출판사, 학교, 병원, 자선재단 등을 보유한 복합체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예로 텍사스의 레이크우드 교회는 수만 명의 주간 출석자와 수백만 명의 방송 청취자를 기반으로 엄청난 재정력을 자랑한다. 이 같은 교회들은 지역 경제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지방정부 수준의 조직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즉, 미국 사회에 대한 옹호와 비판을 떠나서, 미국의 복지 시스템은 사실상 종교와 그 종교에 속한 자본가들의 자발적인 자선이 책임지고 있다. 복음주의 계열은 공화당 등 정치 세력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투표 동원, 로비, 싱크탱크 운영 등을 통해 낙태, 성소수자 권리, 교육 등 핵심 사회 의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이외에도 미국의 주요 사립대학 재단과 기부 네트워크 역시 상당 부분 종교 기반 후원자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 종교는 사실상 현대 미국 사회의 권력과 자본 구조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다. '가난한 자의 위안'이라는 종교에 대한 통념은 미국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작용하며, 종교는 조직력과 물질력, 사회자본을 결합한 고도의 집단적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최고 부촌인 강남·서초 지역의 개신교 및 가톨릭 신자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 서북권의 은평·관악 등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무종교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오히려 제도적 종교는 중산층 및 고학력층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며, 해외 유학이나 글로벌 문화 접점이 많은 고소득층에서 교회 활동이 활발한 것도 그런 예다. 유럽 사례도 다르지 않다. 종종 북유럽이나 네덜란드의 세속화가 부유함과 관련 있다고 인용되지만, 해당 국가 내부에서도 지역 간 차이는 크고, 종교인구가 많은 지역이 반드시 가난하지는 않다. 오히려 에스토니아나 구소련권 국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무종교 국가가 된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공산주의 정권의 오랜 종교 탄압과 체제적 억압의 결과로 봐야 한다.
- 또한 물론 이는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비판이 될 수는 있겠지만, 종교는 가난한 개인에게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동시에 상류층에게는 사회적 자본이 된다. 고급 교회, 대학 캠퍼스 사찰, 재단 법인 형태의 성당은 단순한 신앙 공간이 아니라 인맥, 권력, 문화 자산이 교차하는 장소이며, 이들 사이에서의 신앙은 더 이상 '의존'이 아닌 사회적 장치로 작용한다. 요컨대 종교는 단순한 빈곤의 보상심리가 아니라, 물질과 정신, 권력과 윤리, 계층과 연대가 교차하는 총체적 시스템이며, 가난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부유한 자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자원이었다. 종교의 영향력을 평가할 때는 단순한 '소득별 종교율' 이상의 다층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은 인맥을 형성하고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이다.
-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인맥 형성과 사회생활 때문"이라는 주장은 일부 사례에서는 사실일 수 있으나, 이를 전체 종교인의 동기나 태도로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편향된 인식이다. 물론 교회나 성당, 사찰이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중심지 역할을 하며, 교포 사회나 이민자 집단에서 네트워크 형성의 통로가 되기도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일부 대형 종교기관은 실제로 정치·경제적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심리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외현적 종교성'(Extrinsic Religiosity, E형)으로 구분하며, 이와는 다른 '내현적 종교성'(Intrinsic Religiosity, I형) 역시 존재함을 강조한다. 고든 올포트(Gordon W. Allport)와 로스(Ross)의 1967년 연구에 따르면, 외현적 종교성을 지닌 사람들은 종교를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며, 편견·배타성도 높은 반면, 내현적 종교성을 지닌 사람들은 종교를 삶의 중심 신념 체계로 내면화하고 있으며, 인종 차별과 편견이 현저히 낮고 타인에 대한 수용성도 높았다. 다시 말해, 인맥과 사회생활을 위한 종교 활동은 실제 현상의 일부일 수 있지만, 종교의 본질적 동기를 구성하지는 않으며,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통계적·윤리적 오류이자 종교인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또다른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이다. - 그뿐만 아니라, 종교가 사회적 네트워크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적이다. 인간은 본성상 공동체적 존재이며, 종교는 오랜 역사 동안 인간 공동체의 연대, 상호부조, 심리적 안정, 윤리적 규범 정립 등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종교 공동체가 사람 간 유대감을 형성하고 사회적 지지망을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아야 하며, 이는 단순히 '이기적 목적을 위한 출석'으로 축소할 수 없는 문제다. 현대 사회학과 심리학에서도 사회적 유대감과 소속감이 인간의 정신 건강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본다. 특히 외로움, 고립, 정체성 혼란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종교 공동체는 '의미의 공간'이자 '돌봄의 장소'로서 기능하며, 이는 단순히 사교 목적이 아닌 실존적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일방적으로 속물적 동기로만 해석하는 시각은 종교의 본질은 물론, 인간 사회의 복합성과 정서적 구조를 간과한 협소한 판단이다.
- 종교인들은 오직 사후세계를 열망하기에 현재의 삶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즉,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이승에서의 삶에 별 의미(meaning)를 두지 않고 밀도 있는 건강한 삶을 살지 않는다.
- 물론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극단적인 문구나 전도 방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으며, 그 불쾌함이 종교 자체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종교인이 오직 사후세계만을 열망하며 이승의 삶에 무책임하게 살거나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먼 편견일 뿐 아니라 다수의 종교 전통의 본질을 완전히 왜곡하는 발언이다. 이 주장은 마치 모든 종교가 단순히 내세의 보상을 조건으로 신앙을 강요하며, 현실은 무가치하다는 태도를 취한다고 간주하지만, 실제 종교의 교리나 실천 양상은 훨씬 복합적이다.
우선, 대부분의 종교는 사후세계를 강조하더라도 그것이 "현생을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의 도덕적 삶, 책임감 있는 행위, 타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는 사후세계에 대한 신앙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된다. 그리스도교는 '믿음'과 '행위'의 일치가 바로 구원받은 자의 증명이라 설파하고, 불교는 '업(業)'과 '윤회'를 통해 현생의 행위가 다음 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이처럼 많은 종교는 현세의 삶이 단순한 통과지점이 아닌, 윤리적 판단의 무대이자 스스로를 성찰하고 완성해가는 중요한 단계로 본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서도 종교인은 오히려 비종교인보다 삶의 의미를 더 깊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가 있다. King et al. (2006)의 연구에 따르면, 종교적 신념은 개인의 삶에 의미와 일관성을 부여하고, 이는 주관적 삶의 만족도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Hicks, Schlegel, & King(2010) 역시, 삶의 의미를 지각하는 것은 개인의 정신건강과 행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종교가 그러한 '의미 제공의 장치'로서 강력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종교인이 현생을 등한시한다는 주장을 실증적으로도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종교의 윤리적 체계는 단순히 내세의 보상을 기다리는 수동적 구조가 아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종교인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학교, 병원, 복지시설을 세웠으며, 인권과 자유의 외침을 신앙으로부터 길어 올렸다. 종교는 '죽은 뒤의 삶'에 대한 관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을 강조해 왔다. 기독교 수도원 운동, 불교의 보살행, 이슬람의 자카트(의무적 자선) 등은 전부 현생에서의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종교인은 사후세계만 바라보며 이승의 삶에 무책임하다"는 주장에는 극단적인 소수의 사례가 확대되어 들어가 있으며, 계층과 부의 차이에 관계없이 다수의 종교 전통과 실제 신앙인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모든 과학자는 무신론자다", "모든 예술가는 도덕적으로 자유분방하다"라는 말만큼이나 그릇된 일반화이다. 신앙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찾는 활동이며, 종교인이 사후세계를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이 삶을 더욱 엄숙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부여받는 것에 가깝다.
- 어린 자녀를 부모가 교회 등에 데려가서 주일학교(sunday school)와 같은 공동체에 소속시키거나, 가정에서 종교 교육을 시키는 것은 자라나는 어린이의 가치관에 매우 해로운 세뇌 과정이며, 많은 부모가 아이를 '지옥불 논거'로 협박하며 고압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 이 주제는 확실히, 단순한 찬반으로 나뉘기 어려운 복합적 층위를 가진 문제다. 다만 우선 오해를 바로잡자면, 종교적 양육을 일률적으로 "세뇌"로 규정하는 주장은 현대 발달심리학과 종교사회학의 관점에서 매우 단순화된 판단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사춘기 시기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부모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조정한다. James Marcia의 정체성 발달 이론에 따르면, 사춘기의 청소년은 부모나 제도에 의해 정체감이 강요되는 정체감 폐쇄(foreclosure) 상태에 머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가치체계를 탐색하는 정체감 유예(moratorium)를 경험한다. 즉, 단순히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아이가 종교에 맹신적으로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학계에서도 부모의 신앙심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신학적 성향, 부모-자녀 관계의 질, 가정의 정서적 안정성 등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 결과로 나타난다고 본다. 예를 들어, Mahoney, Pargament 등의 연구(2006)는 부모가 신앙을 자녀와의 애정관계를 통해 긍정적으로 매개할 경우,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근본주의적으로 지옥이나 신벌을 강조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은 "부정적 종교 대처"로 간주되며, 이는 오히려 불안, 죄책감, 우울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Gershoff et al., 1999; Volling et al., 2009). - 그러나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종교교육 현장은 종종 부모의 신념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하거나 교리적 근본만을 강조하면서 그 본래의 인간형 육성 목적을 망각하는 문제가 있다. 교회의 주일학교, 불교의 어린이 법회, 이슬람의 꾸란 교육 등이 종종 단순 암기식 교리 주입과 심지어는 도덕을 지키라는 협박에 그치거나, 세속적 출세주의와 결합된 보상 신앙 혹은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반지성주의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종교가 가진 실존적, 철학적, 신화적 깊이를 전달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청소년기의 회의나 탈종교화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올바른 방식으로 종교가 전달될 경우, 이는 오히려 강인한 정신력, 윤리적 결단력, 세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함양하는 중요한 교육 도구가 될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종교는 인간이 죽음과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공동체를 위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신화적 세계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위치시킬지를 가르치는 일종의 '실존의 교육'이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앙, 유대교의 율법 교육, 불교의 자비 수행은 모두 어린이들에게 삶과 죽음, 고통과 의미를 가르치는 정교한 정신 교육이었다.
실제 연구에서도 종교적 헌신은 학업 성취나 자기조절력과도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Smith & Denton(2005)의 ‘National Study of Youth and Religion’에 따르면, 종교적으로 헌신적인 청소년은 비종교적인 청소년보다 더 높은 자기조절력, 정서적 안정성, 진로계획 능력을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학문에 대한 집중력도 높았다. 이는 단순히 종교의 내용이 아니라, 공동체 의례, 상징 체계, 내적 성찰의 시간이라는 포맷이 인간 발달에 유익한 구조를 제공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결론적으로 말해, 종교적 양육이 반드시 세뇌가 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반드시 순기능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가르치느냐,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종교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오래된 도구이며, 이를 통해 삶의 진정성, 명예,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교육하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종교가 그 본래의 심오한 구조와 목적을 상실하고, 교리적 도식이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직시하고, 더 나은 종교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며 성숙한 대응일 것이다.
- 모든 종교인들은 폭력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 "모든 종교인은 폭력적이게 된다"는 식의 주장은 역시 근거가 매우 부족한 일반화다. 우선 폭력성은 종교라는 개념 고유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집단을 형성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사회심리학적 경향성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무자페르 셰리프(Muzafer Sherif)의 Robbers Cave Experiment가 있다. 이 실험은 1954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한 여름 캠프장에서 12세 소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별다른 차별 요소 없이 단순한 팀 나누기와 경쟁만으로도 심각한 적대감과 충돌이 유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셰리프는 이를 통해 '현실적 갈등 이론(Realistic Conflict Theory)'을 제안하며, 자원 경쟁이나 명성 경쟁 등 실제적 이해관계가 개입하면 집단 간 갈등은 쉽게 격화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헨리 타지펠(Henri Tajfel)의 Minimal Group Paradigm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피험자들을 무작위로 "Klee 선호 그룹"과 "Kandinsky 선호 그룹" 같은 이름으로 나누었고, 이들 집단은 서로 아무런 실제적 갈등이나 역사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을 보였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집단에 더 많은 자원을 분배하고, 타 집단을 불리하게 대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실험은 인간이 매우 사소한 차이만으로도 집단을 구분하고, 그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공격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인간이 종교라는 요소 없이도 집단화되는 순간 폭력적 경향성을 띤다는 점을 명확히 시사한다. 따라서 종교는 단지 갈등의 도구로 작용할 수 있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필연적으로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심리학적 근거가 부족한 인식이다. 인간은 집단을 형성하고 경계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내집단'과 '외집단' 간의 긴장과 공격성을 띠게 된다. 이때 종교는 단지 그 경계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경우일 뿐이다. 이와 같은 메커니즘은 민족, 이념, 언어, 심지어 스포츠 팬덤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 오히려 역설적으로 종교는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충동을 억제하고, 그것을 규율과 가치의 체계 속에 편입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 예컨대 무장을 통해 전투를 수행한 종교인들이라도, 그것은 충동적인 난폭성과는 달리 의례적, 규범적 전투성을 전제로 한 것이며, 마치 수도사의 고행이 육체적 극기인 동시에 정신의 훈련이듯, 전사적 종교성도 전투의 명분과 절제를 내면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불필요한 폭력성을 낮추고 필요한 전투성만을 선별한 뒤 명예롭게 강화하는 구조인 것이다. 요컨대, 종교인은 폭력적이라는 주장은 종교를 잘못된 방식으로 집단폭력의 원인으로 환원시킨 뒤 인간 본성의 폭력성을 고의적으로 은폐한 오류이며, 실제로는 폭력성을 통제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표출하려는 문명화된 장치로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 또한 통계적으로도 종교 신앙이 있다고 해서 폭력적 경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행위가 과도하게 조명된 결과일 뿐, 대부분의 종교인은 타인을 해치기보다 도덕적 삶을 추구한다. 특히 아미시, 메노나이트 같은 개신교 재세례파는 무저항주의를 고수하며, 자기를 해치는 이조차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사회학적 논의 외에도, 역사적 실제로도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성을 내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초대교회의 비폭력주의 전통이다. 1세기부터 3세기까지, 로마 제국 하의 기독교인들은 군 복무를 거부하고 절대적인 무저항주의를 실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부들 가운데 테르툴리아누스나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인은 검을 들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으며, "전쟁은 신의 뜻과 배치된다"고 선언했다. 순교를 기독교인의 최상 가치로 여긴 이들은 폭력에 대항해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용서, 인내, 자발적 고난을 택함으로써 오히려 로마의 사회적 질서와 무력 의존적 제국주의에 대한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종교와 폭력 사이에는 단선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변주되는 복합적 관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상기한 초대교회의 비폭력주의, 아미쉬의 평화주의, 힌두교와 불교의 자비를 비롯해서 종교가 자발적 비폭력의 길을 걸은 무수한 사례들은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 모든 전쟁의 원인은 종교다.
- 이는 반종교주의자들이 반복적으로 꺼내는 주장으로, 종교는 본질적으로 분열과 폭력의 근원이며, 인류 역사상 벌어진 거의 모든 전쟁은 종교 때문이라는 식의 인식을 담고 있다. 십자군 전쟁, 탈레반, IS와 같은 극단주의 사례들이 단골 예시로 등장하며, "종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전쟁도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실, 국제정치 분석, 사회심리학 및 인류학적 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된 터무니없는 일반화에 불과하다. 이는 감정적 비판을 가장한 반지성적 주장일 뿐, 실증적 검토를 전혀 거치지 않은 믿음의 수준에 가깝다.
우선, 실제로 벌어진 수많은 전쟁은 종교와 무관하게 발생했다. 예컨대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정벌 야망과 국내 정치 장악을 위한 수단이었고, 6·25 전쟁은 냉전체제와 이념 대립, 그리고 초강대국의 대리전 성격이 강한 전쟁이었다. 둘 다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전쟁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 즉 1차 세계대전은 복잡한 동맹 구조와 군비 경쟁, 민족주의적 대립이 맞물려 발발했고, 2차 세계대전은 인종주의, 제국주의, 파시즘, 경제공황과 같은 세속적 문제들이 핵심 원인이었다. 베트남 전쟁, 걸프전, 미국-멕시코 전쟁 또한 정치·경제·전략적 이해관계가 중심에 있었으며, 종교는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다. 요컨대, 전쟁의 주요 원인은 대부분 권력, 자원, 이념, 민족, 전략적 계산에 있으며, 종교는 극히 일부의 전쟁에서나 등장하는 부차적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종교적 색채가 강해 보이는 대표적 사례인 십자군 전쟁과 30년 전쟁조차, 순수한 신앙의 충돌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십자군은 성지 탈환이라는 종교적 구호 아래 시작됐지만, 실제로는 교황권 강화, 동방 무역로 확보, 봉건 귀족층의 불만 해소라는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다층적 전쟁이었다. 30년 전쟁도 겉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충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프랑스, 스웨덴, 합스부르크 가문 등 유럽 열강 간의 세력 균형 다툼이었다. 즉, 종교는 어디까지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표면적인 명분이자 군사 엘리트들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철학으로 기능했을 뿐, 전쟁을 일으킨 실제 원인과 동력이 아니다. - 사회심리학 분야에서도 집단 간의 폭력과 갈등은 종교라는 단일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자비한 경쟁, 정체성 위협, 희생양 메커니즘, 불신의 누적 같은 심리적·집단역학적 요소들이 훨씬 더 깊은 원인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셰리프의 로버스 케이브 실험은 단지 집단을 나누고 경쟁시키는 것만으로도 적대감이 생긴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T. Wildschut의 불연속 효과 연구는 개인보다 집단이 될수록 비합리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됨을 보였다. Hovland와 Sears의 희생양 이론은 사회적 불만이 외부 집단으로 전이될 때 갈등이 폭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 사회에서 갈등과 전쟁은 구조적이며 본질적으로 복잡한 심리적 기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종교는 많고 많은 갈등 촉진 요인 중 하나의 '상징적 도구'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인류학은 종교가 전혀 개입하지 않은 전쟁도 얼마든지 발생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류학자 나폴레옹 섀그넌(Napoleon Chagnon)은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야노마미족을 대상으로 연구하며, 이들이 전쟁을 벌이는 주요 원인이 신앙이나 초월적 신념이 아닌, 극심한 성비 불균형과 여성 확보 경쟁임을 밝혔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웃 마을과 전투를 벌였으며, 전쟁이 다시 성비를 악화시켜 새로운 전쟁을 유발하는 폭력의 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즉, 이 연구는 종교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전쟁은 발생한다는 강력한 반례이며, 오히려 종교가 없는 싸움은 지혜도 명예도 없이 원초적인 욕망과 잔혹한 폭력만이 반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 결국 "모든 전쟁의 원인은 종교다"라는 주장은, 감정적 혐오에서 파생되어 실제 원인을 분석하지 않은 허위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는 분명 갈등에 동원될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요소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전쟁의 보편적 원인이라는 주장은 실증적으로 틀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흐리는 위험한 시선이다. 상기했듯이 종교는 많은 경우 오히려 지식인에게 지식과 지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자, 전사들에게 죽음을 극복하고 싸움을 견디게 만드는 심리적, 상징적 힘으로 작용했으며, 그것이 없다면 더 잔혹한 형태의 공포와 야만, 나약함과 허무주의가 만연했을 것이다. 종교는 인간 문명이 존재하기에 발생하는 아주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따라서 과학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선과 악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평화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전쟁의 명분으로 오용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구조물이다.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그것을 선동과 지배에 악용한 권력과 인간의 야망이다. 요컨대, 이 주장은 종교를 희생양 삼아 인간 사회의 진짜 폭력성과 책임을 감추려는 사고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며,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설 자리가 없다.
- 종교인들이 베푸는 선행은 모두 그들이 믿는 신에게 잘보이기 위한 행위다.
- "종교인들이 베푸는 선행은 모두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사실상 극단적 환원주의에 가까운 오해다. 인간의 행동 동기는 복합적이며 다층적인데, 종교인의 선행을 오로지 신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연예인의 자선 활동을 모두 이미지 관리로 치부하거나, 정치인의 사회공헌을 모두 표 계산으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왜곡된 판단이다. 실제로 많은 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적 윤리와 공동체적 책무, 그리고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정서로 선행을 실천한다. 이들은 신의 존재 유무와 무관하게 인간됨의 도리를 행하는 것이며, 이는 종교가 가지는 실천적 윤리의 핵심 중 하나다.
더불어, 기독교 전통에서는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행'은 오히려 위선(hypocrisy)으로 간주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은밀한 자선을 진정한 덕목으로 제시한다. 이는 단지 형식적이고 외향적인 선행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이 내면적 진실성과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종교는 진정한 선행이란 신 앞에서의 순수한 마음, 타자에 대한 책임, 그리고 자기 내면의 정화 과정으로 이해하며, 보상심리에 기댄 선행은 오히려 비판받아 마땅한 외식(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지만 속은 위선적인 태도)으로 규정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종교인이 선행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래 행위'라는 주장은 종교에 대한 매우 피상적이고 왜곡된 인식에 불과하다.
사실 위선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행위 중 하나로 여겨진다. 상기한대로 기독교에서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예수 스스로 강하게 꾸짖었고, 불교에서도 참된 수행 없이 공덕만을 자랑하거나 보시를 과시하는 행위는 오히려 집착과 아집의 발로로 간주된다. 이슬람에서는 리야(riya)라 하여,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나 자선을 신앙의 타락으로 규정하며 신에 대한 불순한 태도로 본다. 유교 또한 겉으로는 효와 예를 갖추나 실제 내면의 진정성과 도리를 잃는 것을 가식으로 보고 도덕적 타락으로 경계했다. 즉, 진정성과 내면의 정직함은 거의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핵심이며, 이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위선이기 때문에, '종교인은 신에게 잘 보이려 선행한다'는 식의 일반화는 해당 종교의 교리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 종교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도구다.
- 해당 주장은 그 자체로 과도한 일반화일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주장조차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오류다. 마르크스의 본래 입장은 "종교는 억압의 도구"라기보다는, "고통받는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고 견디기 위한 응답"이었다. 그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종교를 "억눌린 피조물의 탄식이며, 무정한 세계의 따뜻한 마음이고, 민중의 아편"이라 표현했지만, 이는 종교가 단순히 지배의 수단이란 뜻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의 본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이지만 결과적으로 고통을 위로하는 현실 도피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에 가깝다.
따라서 그가 전달하고자 한 바는 종교가 사람들의 고통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그 고통을 고발하는 목소리라는 모순된 역할을 지닌다는 의미였다. 즉, 그에게 종교는 현실의 불의를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그 불의 자체를 의식하게 만들고,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르크스조차 종교를 단순히 지배계급이 고안한 '도구'로 보지 않았으며, 종교가 생겨난 기저에는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반응이 깔려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에 대한 근본적 반박 역시 그가 스스로 인정한 지점, 즉 종교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종교는 억압적 구조 속에서 생겨난 일시적 위안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삶, 죽음, 정의, 구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형성한 자생적 사유 체계다. 실제로 종교는 단순한 수동적 위안 이상의 역할을 해 왔으며, 수많은 경우 지배질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예컨대, 유대교의 예언자 전통이나 초기 기독교 공동체, 불교의 출가 사상, 이슬람의 공동체주의는 모두 당대의 불의한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즉, 종교는 오히려 인간이 세계를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며, 초월적 가치에 따라 세속 질서를 비판하는 정신적 힘의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일면적 해석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 종교는 정치 권력 이전부터 존재했다. 고고학적으로도 기원전 1만 년 전의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국가 체계나 계급도 없는 시기에 세워진 종교적 제단이며, 이는 종교적 열망이 공동체를 형성하게 만들었고, 이후 농경과 정치가 그 뒤를 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즉 종교는 지배 도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 생사, 우주,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마주하면서 탄생한 원초적이고 장엄한 사유의 틀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종교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종교 전체를 정치의 하위 개념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종교가 가진 정신적, 윤리적, 형이상학적 탐구의 깊이와, 인간 삶의 고통과 경이로움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근원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마저 자명하게 시인한 것처럼, 종교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끊임없이 물어왔던 질문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응답 중 하나다.
12.1. 소수종교 관련
- 몰몬교도들은 일부다처제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
- 1890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사실 과거 몰몬교의 일부다처제라는 것은 모진 박해로 인하여 가장을 잃은 가족들을 위한 대안가족의 성격이 더 강했다.처음 등장했을 시부터 연방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종교 단체로 공인받을 때까지, 몰몬교 신자들은 툭하면 연방군에게 토벌당해서 대대적으로 학살당하거나, 인근의 원주민 부족들과 층돌을 빚어서 신도들이 죽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신자들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경향이 컸다. 세계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꽤 있는데, 여몽전쟁으로 많은 인구를 잃은 고려에서 고위층들에 한하여 향처와 경처를 따로 두는 것을 허용하거나, 삼국동맹전쟁의 패전으로 인해 성비가 붕괴되어버린 파라과이에서 일시적으로 일부다처제를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아직도 억지로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도 있는데 주류교회 사람들은 당연히 싫어하며 일부다처를 실시한 경우 파문을 당한다.
- 몰몬교는 흑인과 성소수자를 싫어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 흑인의 경우 1978년까지 신권을 주지 않았기에 인종차별을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19세기, 20세기 초반 미국내 대다수의 개신교회들이 흑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보다 심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며 지금은 다른 교파에 비해 차별하지 않는다. 20세기 초반까지 대다수의 개신교회가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여 예배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던 반면 몰몬교는 함께 모임을 봤으며 19세기 노예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또한 보수적인 교회의 특성처럼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이 강하긴 하지만 성소수자를 적대시하거나 멸시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물론 일부 극단적인 신도들이 그런 형태를 취할 수는 있어도 교회 자체가 증오심을 부추기는 일은 없다. )
-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거의 여호와의 증인 소속이다.
- 여증 소속이 99.33%를 차지한다. 한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단에서도 다수 나온적이 있지만 교단 차원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로 결의한 후 거의 여호와의 증인에서만 나온다.
- 다만, 외국의 경우 존 스토트(성공회 저교회파) 같은 경우도 있고, 개신교 재세례파, 메노나이트 교도나 퀘이커교 쪽에서도 꽤 나왔다. 살생 금지 교리 때문에 드물게 불교 쪽에서도 간간이 병역거부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 평화주의, 반전주의, 반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사상과 이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도 소수 존재한다. 집총만 거부하고 의무병으로 복무하는 경우도 있다.
-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불을 숭배한다.
- 유교는 무조건 여성을 억압하는 구절밖에는 없다.
- 실제로는 소학 제2장 명륜편에 "오불취" 나 "삼불거" 같은 구절들이 최소한의 보호를 담당했다. 물론 무시당하면 별 수 없겠지만(...)
13. 기타
화물 신앙이라는 신기한 종교도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근대 문명의 산물들을 신의 선물로 생각하며 숭배한다. 이 종교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던 남태평양의 섬[18] 주민들이 서양인들과 처음으로 접촉하면서 나타났다. 서양인들이 섬에 들어오면서 함께 가져온 화물들이 근대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조상신이 마법을 통해 내려준 선물이라고 믿은 것이 이 종교의 시작으로, 서양인들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았으며, 20세기 중반부터 섬에 사회적 인프라 확충, 의무교육 보편화, 관광산업 진흥이 일어나면서 외지인 방문의 증가와 대중매체의 보급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점차 사라졌다.[19]14. 종교의 계통/목록
15. 가상의 종교
- 가공의 종교 참조
16. 문헌
종교 정의 시도의 근본 문제:- Judith KÖNEMANN: „Ich wünschte, ich wäre gläubig, glaub ich“. Zugänge zu Religion und Religiosität in der Lebensführung der späten Moderne, Opladen 2002.
종교의 기원:
- Pavel Duda, Frank W. Marlowe, and Harvey C. Peoples, "Hunter-Gatherers and the Origins of Religion", Human Nature, Vol. 27, Iss. 3, 2016, pp. 261–282.
키케로의 종교론:
- Ernst FEIL: "1.2 Zum römischen Verständnis von „religio“ ", Religio. Die Geschichte eines neuzeitlichen Grundbegriffs vom Frühchristentum bis zur Reformation (FKDG 36), Göttingen 2001, 39–49.
락탄티우스의 종교론:
- E. FEIL: "2.5 Laktanz", op. cit., 60–64.
Religio의 어원에 대한 악셀 베르크만의 새로운 현대적 시도:
- Axel BERGMANN: Untersuchungen zur Geschichte und Vorgeschichte der lateinischen Vokabel re(l)ligion, Marburg 1984.
제1대 체버리의 허버트 남작, 에드워드 허버트의 종교론:
- E. FEIL: "Edward Lord Herbert von Cherbury", Religio. Dritter Band. Die Geschichte eines neuzeitlichen Grundbegriffs vom Frühchristentum bis zur Reformation (FKDG 36), Göttingen 1986, 189–205.
영국 이신론과 프랑스 계몽주의에서 종교론의 발전:
- Ulrich BARTH: "Die Religionsphilosophie der westeuropäischen Aufklärung: Deismus in England und Frankreich", Gott als Projekt der Vernunft, Tübingen 2005, 127–144.
크리스티안 볼프에서 요한 요아힘 슈팔딩까지 종교론의 발전:
- U. BARTH: "Von der Theologia naturalis zur natürlichen Religion: Wolff Reimarus Spalding", op. cit., 145–171.
신신학에서 종교론의 발전:
- U. BARTH: "Mündige Religion / Selbstdenkendes Christentum: Deismus und Neologie in wissenssoziologischer Perspektive", Aufgeklärter Protestantismus, Tübingen 2004, 201–224.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 U. BARTH: "Die Religionstheorie der ›Reden‹: Schleiermachers theologisches Modernisierungsprogramm", op. cit., 259–289.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종교론:
- Gunther WENZ: Religion. Aspekte ihres Begriffs und ihrer Theorie in der Neuzeit (Studium Systematische Theologie 1), Göttingen 2005, 166–212.
찰스 Y. 글록의 종교론:
- Charles Y. GLOCK: "Über die Dimensionen der Religiosität", in: Joachim MATTHES (Hg.), Kirche und Gesellschaft. Einführung in die Religionssoziologie II, Reinbek 1969.
프란츠크사버 카우프만의 종교론:
- Franz-Xaver KAUFMANN: Religion und Modernität. Sozialwissenschaftliche Perspektiven, Tübingen 1989.
데틀레프 폴라크의 종교론:
- Detlef POLLACK: "Was ist Religion? Probleme der Definition" in: Zeitschrift für Religionswissenschaft, Bd. 3, Heft 2, 1995, 163–190.
울리히 바르트의 종교론:
- U. BARTH: "Was ist Religion? Sinndeutung zwischen Erfahrung und Letztbegründung", Religion in der Moderne, Tübingen 2003, 4–27.
한국에서 "종교" 개념의 배경:
- 장석만, "III. 교(敎)의 패러다임에서 종교(宗敎)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과 그 배경",『한국 근대종교란 무엇인가?』(한국 근대종교 총서 1) 서울 2017.
- ———, "IV. 종교로서의 정체성", op. cit.
17. 관련 문서
[1] 다윗의 별(맨 위)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바하이, 힌두교, 도교, 불교, 시크교, 스바로그의 손, 켈트 신앙, 노르드 신앙, 함사(혹은 Natib Qadish), 위카(신이교), 케메티즘, 헬레니즘, 로마 다신교이다.[2] Gothóni, R. (1994). Religio and Superstitio Reconsidered. Archiv Für Religionspsychologie / Archive for the Psychology of Religion, 21(1), 37-46.[3] Hill et al., 2002; Pargament, 1997.[4] Kasselstrand, 2015[5] 대중문화 속의 암묵적 종교: 팬 커뮤니티의 종교적 차원<Jeniffer Porter>[6] #[7] Kay et al., 2008; Laurin et al., 2008.[8] Kay, Shepherd, Blatz, & Chua, 2010.[9] Whitson & Galinsky, 2008.[10] Whitson & Galinsky, 2006.[11] 현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이자 진화론자, 생화학자이며 인간게놈 프로젝트 총책임자.[12] 한 연구에서는 fMRI와 같은 측정장비 속에 누워있는 애플 社 팬들에게 새로 나온 애플 전자기기 광고를 보여주자 그들의 뇌의 특정 영역이 강렬하게 활성화됨을 발견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활성화된 영역은 독실한 종교인들이 신(神)적인 심상이나 종교적 상징을 접했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영국 BBC 다큐멘터리 《슈퍼 브랜드의 비밀》 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13] van Ness & Kasl, 2003; Hill, Burdette, Angel, & Angel, 2006.[14] Crowther, Parker, Achenbaum, Larimore, & Koenig, 2002.[15] Vahia et al., 2011.[16] Siegel & Schrimshaw, 2002.[17] 물론 고학력자들의 적지않은 수가 중산층 이상의 경제 수준을 지녔음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부유할수록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큰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18] 멜라네시아, 뉴기니등[19] 물론 아직까지 이 종교가 남아있는 곳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