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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1. 나는 또 한 천사가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1.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1. 나는 또 많은 높은 좌석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했다고 해서 목을 잘린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1.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요한의 묵시록 20장 1-5절(공동번역)
1. 개요2. 전(前)천년설
2.1. 역사적 전천년설2.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3. 후(後)천년설4. 무(無)천년설5. 교단별 견해6. 참고 자료7. 관련 문서

1. 개요

/ Millenarianism, Millenarism

요한묵시록 20장 1-10절을 해석하기 위한 기독교의 신학 이론 중 하나. 그리스도의 재림('그리스도와 함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 그리고 요한묵시록 20장에서 묘사된 '천년왕국'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질 지에 대해서 여러 이론이 있어 왔다. 요한묵시록의 경우 글 마지막인 22장 18-19절에 '내용을 보태거나 빼지 말라'고 단언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 논의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천년왕국은 다른 신약 성서에 등장하지 않는 개념인데, 천년왕국의 출처는 다름 아닌 구약의 예언서인 이사야에제키엘이다. 이사야 24-27장은 하늘의 권세들과 세상의 왕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심판받은 세상의 왕들은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며, 하느님이 온 민족을 시온산으로 불러 사망을 멸하시게 되는데, 그것과 별개로 그 이후에 하느님의 죽었던 백성들이 부활하고, 하느님이 땅과 레비아탄을 심판하시며, 큰 나팔 소리[1]와 함께 이방 땅에서 고생하던 유대인들이 시온산으로 돌아와 하느님께 예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에제키엘 37장에서는 마른 뼈들이 부활하여 회복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38-39장에서는 흩어졌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다시 세운 나라를 마곡의 왕 곡이 침략하려다가 실패하는 장면이 나오며, 40-48장에서는 요한의 묵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해당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요한의 묵시록에서는, 마귀와 세상의 권세자들이 심판을 받은 다음 첫째 부활과 함께 천년 왕국이 열리고, 천년 왕국의 끝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일어나고 사탄이 완전히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후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으며, 그 이후에야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의 내용과 같이 구약의 예언서들의 패턴은 요한의 묵시록이 말하는 천년왕국 관련 내용과 일치한다.

2. 전(前)천년설

2.1. 역사적 전천년설

Historic premillennialism

예수가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한다는 설이다. 재림 뒤에 문자 그대로 1000년 동안 세상을 직접 다스릴 것이라고 본다.
  • 시간 순서: 7년 대환난→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부활→ 휴거→ 천년왕국→ 최후의 심판→ 새 하늘 새 땅
초대 교회 시대부터 파피아스, 이레네우스, 순교자 유스티누스, 테르툴리아누스 등이 주장하였다. 그 뒤 아무리 기다려도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점차 잊혀지게 되었는데, 19세기에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후천년설에 반대하여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그 뒤 20세기에 이 부류에서 극단적 문자 해석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나오게 되는데, 1944년부터 세대주의파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역사적'이라는 단어를 집어 넣게 된다.

재림 이후에 지상에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생기고 그로부터 천년 후에야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다는 이러한 주장은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 재림 이후 곧바로 온 세상이 불에 녹아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다고 말하고 있는 베드로후서 3장과 모순되며,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요한복음 18장 36절과도 모순된다. 또한 데살로니카후서 2장은 다니엘 11-12장을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적그리스도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데, 다니엘 12장의 의인과 악인이 함께 부활한다는 서술은 천년왕국 시대에는 의인만 부활한다는 요한의 묵시록의 서술과 다르다. 게다가 요한의 묵시록에서는 천년왕국이 끝난 다음에 일어나는 것으로 나와 있는 최후의 심판이, 마태오의 복음서 25장 31-33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에 일어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즈가리야 14장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영적으로 해석했을 때 명백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는데, 재림 직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14장 11절에서는 다시는 세상에 저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끝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된 천년왕국에 대한 설명과 다르다.

2.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Dispensationalism /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역사적 전천년설에 세대주의 이론을 더한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역사를 일곱 시대로 구분하여, 시대마다 하느님이 신앙인들을 다른 방법으로 이끈다고 가르친다. 또한 세대주의 전천년 신학은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전체적 관점을 잃어버린 경우다. 당장 '환난 전 휴거' 사상이 그렇다. 쓴 부분은 빼고 달콤한 부분만 남겼다고나 할까. 들었을 때 듣기 싫은 부분은 빼버린 케이스. 예수만 믿으면 아무 걱정 근심 고통 없다는 식이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예수가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한다는 점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같으나, '천년'을 문자적 1000년으로 본다. 또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서는 예수가 공중과 지상, 두 번에 걸쳐서 재림한다. 지상은 유다인들이 차지할 것이며, 천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이는 구약시대부터 유다인들에게는 '땅'에 대한 약속이 있었으므로 '새 땅'은 유다인들 차지가 될 것이며, 남은 하늘은 자연스럽게 신약의 새 백성인 그리스도인들 차지가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모든 문자적 해석을 총집대성(?)한 예언이라고 보면 된다.

19세기 이후 등장한 설이며, 블링거, 그레이, 블랙스톤 등이 주장했다. 세대주의 신학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으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서 존재하는 종말론을 극단적으로 증폭하여 이단에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잘 분별하여야 한다.[2] 만일 몇날 몇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거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고 특정하고, 많은 재산을 교회에 갖다 바치게 하는 경우 100%이단이니 무조건 빠져나와야 한다. 기독교는 타인의 재산을 갈취하거나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
  • 시간 순서: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휴거→ '7년'[3] 대환난→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천년왕국→ 최후의 심판→ 새 하늘 새 땅
이 시간 순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1992년의 다미선교회 휴거 소동도 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기반하고 있다.[4]

위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에 집착해서 전체적 관점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수용해, 구약의 언약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고 보는 개정 세대주의나 점진적 세대주의가 출현했다. 개정 세대주의나 점진적 세대주의와 대비해서 기존의 세대주의는 고전적 세대주의라고 한다. 점진적 세대주의는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에서도 고전적 세대주의의 문제를 많이 해결했다고 보고(비록 그 호평의 결론은 '그러니까 나머지 세대주의의 잔재도 버리고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로 오십시오'이지만) 고전적 세대주의자에거는 '저건 세대주의가 아니다!'라는 매도를 받을 정도로 진보적이다. 그럼에도 점진적 세대주의를 세대주의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천년왕국 자체는 천상과 지상에 별도로 임할 것이라는 세대주의의 핵심 주장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여전히 환난 전 휴거 사상도 유지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파루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비밀스럽게 오심과 공개적으로 오심으로 완벽하게 분리해서 증언한다.
위의 해설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대한 편견적인 늬앙스가 다수 보인다.
그리스도 예수의 파루시아는 삼층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공중으로, 공중에서 지상으로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성경에서 주 예수의 공중 재림에 대한 표현:
밤에 도둑같이, 밤중에 신랑을 맞는 신부, 아무도 모르게, 구름을 입고(즉 구름 속에 감춰져 그 영광이 보이지 않는) 등의 수식어를 붙여 은밀히 오시는 공중 재림을 증거한다.
참고로 공중 재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은 성도를 공중으로 부르시는 일, 즉 휴거를 말한다. 이 때의 휴거는 역시 은밀히 진행되는데 밭에서 일하다 데려감을 당하고, 맷돌질을 하다가 갑자기 데려감을 당한다.
성경에서 주 예수의 지상 재림에 대한 표현:
그의 오심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행하신다. 번개가 동에서 서로 번쩍임같이 오겠다, 모든 민족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구름 위에서 그의 영광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며) 지상으로 임할 것을 볼 것이다.

3. 후(後)천년설

Postmillennialism

천년왕국 기간 이후에 예수가 실제로 재림한다는 설이다. 오순절 이후 1000년 동안 교회가 성장하고 이상적인 시대가 온 후 예수가 재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무천년설과 유사하지만, 무천년설은 '천년'을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고 현재가 천년기간이라 본 반면 후천년설은 복음이 퍼져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어지는 별도의 시대를 가리킨다. 문제는 이게 두 번의 재림이냐 아니면 한 번이며 인간의 노오력으로 가능하느냐의 문제인데. 보수적 입장은 전자에 해당됨.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재림이 앞서 있고 이후 실제 오심이 있단 것.

그간 후천년설은 다니엘 휘트비, 코체유스, 알팀, 비트링가 등이 주장했다는게 지금까지의 설이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더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즉 후천년설에도 보수주의 신학이 있고 현대신학이 있는 셈.

그간 한국에 알려진 후천년설은 예수 재림은 단 한 번이며 인간의 노오력 등으로 낙관적 복음 충만 시대에 도달한다는 이론이었다. 물론 세계대전 등으로 낙관적 계몽주의 후천년설을 믿는 이는 급감하였다.

한국에 알려진 후천년설은 계몽주의가 등장한 17세기 이후에 발달하였으며 인간에 대한 낙관론도 담고 있다. 후천년설을 주장한 이들은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인간 사회의 계몽과 발전, 개혁을 통해 좋은 세상을 구축하고 난 후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본주의적인 낙관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5] 자칫하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신의 은총이 아닌 인간의 노력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라는 비성경적인 해석으로 이어질 여지도 다분하다. 1, 2차 세계대전 등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대에 들어서 '신율적 후천년설(theocracy millennialism)'이라는 후천년설의 진화버전이 나왔는데,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세상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시민사회와 정치판에서 노오력[6]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두 번 재림에 의해서 라는 것을 기억하자.[7]
  • 시간 순서: 현재→ 예수 1차 재림→ 유대 천년왕국[8]→ 전 인류의 큰 배교→ 예수 2차 재림→ 최후 심판→ 새 하늘 새 땅

4. 무(無)천년설

Amillennialism

요한묵시록에서 나온 천년통치에 관한 언급은 실제로 미래에 지상에서 이루어질 '천 년 간의' 통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쉽게 말해 문자 그대로 미래에 천 년 동안 이루어질 통치는 없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은 단순히 예수를 믿고 죽어 천국에 간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문제는 숫자 1천은 아니지만, 미래에 기간이 있느냐 아니면 아예 기간 자체도 없고 지상에 없느냐 인데. 전자가 후천년설이고 후자가 무천년설[9]이다.

초대 교회 시대에 무천년설은 없었다. 초대 교회의 주교 파피아스(Papias)는 기록에 의하면 전천년설을 믿었다.

속사도시대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천년을 신약 시대 그 자체로 보았다.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는 복음 시대, 즉 예수가 이 땅에 내려오고 재림하기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고 보았다.[10] 칼뱅 역시 무천년설을 지지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반면 그렇지 않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전자가 네덜란드 개혁교회이고 후자가 장로회[11].

잘 읽어보면 어떤 부분에선 계몽기 때 후천년설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는 무천년설이 후천년설에서 갈라져나온 이론이라 그런건데, 당대 사람들이 유럽을 휩쓴 전쟁을 겪고나서 후천년설을 지지하던 사상적 기반을 잃게 되자 일부 신학자들이 무천년설을 주장한 것이다. 단어가 하필 '무'천년설이라 "요한묵시록의 천년왕국은 아무 의미 없는 단어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때문에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은 "무천년설이라는 단어 말고 '실현된 천년설(realized millennialism)'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라고 말한다.
  • 시간 순서: 그리스도의 초림→ 신약시대=천년 왕국→ 대환란→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부활→ 최후의 심판→ 새 하늘 새 땅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는 첫째 부활이 일어나야 하고 사탄도 무저갱에 갇혀있어 세상에 죄가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비판을 받기도 하나, 성경의 내용 상으로 천년왕국 기간동안 모든 마귀들이 무저갱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우두머리 마귀만 무저갱에 갇힌다고 나와있고, 천년왕국 기간은 말세의 전세계적 핍박이 시작되기 전까지 각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있어왔던 기독교 핍박기 이후의 기독교 부흥기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단일화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은 단순히 재림 전에 죽어서 천국에 간 사람들이라고 해석해버리면 이러한 비판을 피해갈 수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부흥기에 대응되는 핍박기의 기간도 1,000년으로 잡으면, 공교롭게도 마지막 환난 전까지 있을 핍박기와 부흥기의 기간이 도합 2,000년이 된다.

5. 교단별 견해

천주교의 경우에는 가톨릭 대사전에서 '(현재는) 어느 설도 정통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계몽기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의 중간에 있다고 보면 된다. 천주교 신학에서도 천년 통치를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상징화한 개념이라고 보며, 후천년설과 달리 종말론적 완성의 주도권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으니 온전히 인간의 힘만으로는 완성에 이를 수 없으며, 무천년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여'라는 제한 안에 완성에 관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 묵시록이 천 년을 강조한 것은 당시의 박해받는 순교자들을 위로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즉 최후 승리는 이미 예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그리스도가 재림할 천 년으로 상징되는 긴 기간 동안 신앙의 여러 적들로부터 싸워 나가며 박해를 이겨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일부 개신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천년 왕국설을 숫자적 연도로 계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고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계에 한해서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우세하다. 그러나 무천년설 역시 지지하는 이들이 많으며, 어느 주장이 교리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12] 그렇기에 천년왕국설을 논하는 개신교인들도 전천년설이든, 후천년설, 무천년설이든 구원과는 별개의 이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신학계에서도 역사적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학자가 다수며 무천년설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소수설로 취급되고 20세기 초에 큰 화제가 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격렬한 비판을 받고 고전적 세대주의에서 개정된 세대주의나 점진적 세대주의로 옮겨가는 추세다. 그러나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인기가 많으며,[13] 그것도 신학계에선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이단이나 이단 의심 사례로 자주 지적받는 고전적 세대주의[14]를 추종하는 목사나 평신도들이 많다. 이는 한국 기독교계에 드리운 근본주의반지성주의적 신학 무용론의 영향이 있다.

정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감리회는 무천년설 관점을 취한다. 새사도교회는 역사적 전천년설을 채택한다.

영국 웨일즈의 부흥운동을 이끈 목회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물론 예언적 교훈은 성경의 중요한 일부이고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래 세계에서 일어날 사건들에 너무 관심을 가지는 나머지 우리가 지금 살아야 하는 생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라면서 천년왕국에 대한 특정 주장에 도를 넘을 정도로 경도되는 것을 경고한 바 있다.#

일부 교단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어야 천년왕국이 도래한다고 믿는 경우도 있고, 예배당을 신축할 때 성전 짓는다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이미 예루살렘 성전은 사라졌다. 우리 몸이 성전이다.[15] 따로 성전을 짓는 게 아니고 신자가 모인 공동체가 교회며 장소가 교회당일 뿐이다.

성경침례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주장한다.

6. 참고 자료

7. 관련 문서


[1] 바울로데살로니카전서 4장에서 이 나팔 소리를 동반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자신의 살아 생전에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2] 이를 활용하는 대표적 이단 단체가 구원파생말선. 전도집회나 수양회 때 빠짐 없이 강조하는 내용이다.[3] 3년 반으로 나누기도 한다.[4] 사실 전천년설은 20세기 말에 가장 흥했다. 현재는 사그라든 상태.[5] 당대 유행하던 자유주의 신학과 맥락상 일치[6] 이 노력이란 모든 사람들이 성경 말씀대로 살게 만드는 것이다.[7] 1차 재림과 2차 재림은 성격이 다르다. 그간 한국교회가 말해온 재림은 2차에 해당된다. 모든 것의 종말.[8] 보수신학 후천년설은 기독교 유대인 세계지배설이다. 예수 재림 후, 세계에 흩어진 유태인들이 최종적으로 예수를 믿게 되고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 여기서 천년이란 숫자 1천년이 아니다. 다만 기간이라는 것.[9] 사실은 현재천년설 그러니까 현천년설로 불러야 한다. 천년기간이 없는게 아니라 지금이 천년기라는 뜻이다.[10] 그러나 그도 6천년설을 믿었다. 신국론을 보라. 다만 언제 재림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 아퀴나스도 6천년설을 믿었음이 신학대전에서 확인된다.[11] 토마스 브라이트맨을 보라. See Thomas Brightman. http://m.blog.daum.net/kkho1105/9206?categoryId=756[12] 단, 안식교에서는 역사적 전천년설을 교리로 못박은 바 있다. 이는 해당 교단의 정체성(재림)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13] 목회/신학 “종말론, ‘역사적 전천년주의’로 하루속히 통합돼야”, 이대웅 기자, 크리스천투데이, 2012-06-12.[14] 고전적 세대주의 그 자체가 이단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단적 종말론으로 빠지기 쉽다.[15]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6장 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