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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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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어 표기
영어Presbyterian Church
한자長老會
에스페란토Presbiteria preĝejo

1. 개요2. 문화적 배경3. 역사4. 장로회와 개혁교회의 차이5. 특징
5.1. 조직 특성5.2. 신학적 특성
5.2.1. TULIP 교리
6. 한국의 장로회
6.1. 한국 장로교의 분파 형성과정
7. 국내 주요 장로회 교단 목록8. 스코틀랜드의 장로회9. 미국의 장로회
9.1. 미국의 회중교회9.2. 미국의 화란계 개혁교회
10. 네덜란드 개혁교회11. 대만 기독 장로교회12. 나무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인물
12.1. 목회자, 신학자12.2. 장로 이하 평신도

1. 개요

개신교 분파 중의 하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파이기도 하다.[1] 그러나 칼뱅주의로 범위를 넓히면 꽤 많은 곳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교파로 인정받는다. 네덜란드, 독일 일부 주, 남아공, 스위스, 체코(칼뱅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은 후스파), 태평양 섬나라들에서도 칼뱅주의가 가장 세력이 강하다.

칼뱅스위스 제네바에서, 츠빙글리의 뒤를 이은 취리히의 불링거와 함께 종교개혁을 이어나갔는데, 이것이 '개혁교회'의 시초가 된다.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개혁교회가 독립의 구심점이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라 불리며 가톨릭에 맞섰으며, 바스크족의 독립국이었던 나바라에서는 국교로 지정되었다. 헝가리에서는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 아래서 가톨릭 사제들이 도주했던 공백을 메우는 구심점이 되어 독특하게 감독제를 띠게 되었다.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의 개혁교회로서, 칼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존 녹스에 의해 세워지게 된다. 존 녹스를 비롯한 영국의 종교개혁자들은 제네바 성경을 번역했고, 영국국교회[2]의 개혁[3]에 참여했다. 이 후 이들의 후예들은 청교도가 되어 회중교회·독립교회·침례교회 등의 일부를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들 가운데, 유럽대륙의 교회들을 개혁교회라 하고, (존 녹스에 의한) 스코틀랜드의 교회들을 장로교회라고 부른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장로교'라는 단어의 현실적인 용례를 생각해보자면, 넓은 의미로는 칼뱅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모든 분파를 뜻하고, 좁은 의미로는 장로 정치 체계를 갖춘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만을 가리킨다. 다만 본 문서에서는 대륙식 개혁교회에 관한 서술도 같이 섞여 있다.

신학적 특성상 공식적으로 통일된 상징은 없다.[4] 한국의 장로교단 마크들은 밑의 교단 목록들을 참조할 것. 미국의 경우 미국 최대 장로교회인 Presbyterian Church (USA)를 비롯하여 배경에 성화가 불타고 있는 십자가를 사용하거나[5] 혹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종종 사용하는 불타는 떨기 문양을 흔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2. 문화적 배경

잉글랜드는 역사적으로 국왕에 의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채택해왔으며, 앵글로색슨족의 문화도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면이 강하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진 기독교 교파인 성공회, 감리회, 구세군 등은 감독 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수직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6]

반면에, 스코틀랜드는 주로 산악 또는 고원지대에서 지방 분권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수평적 인간관계와 자유를 중시하는 성향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를 회중이 선출하는 방식의 장로회가 각광받게 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인구 밀도가 낮은 고원과 산악 지대에서 각 클랜(clan)별로 특정 지역에 흩어져서 거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감독 정치가 아닌 장로 정치를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장로교 자체는 고지대가 아닌 비교적 저지대[7]에 속하는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우랜드도 형태만 클랜의 자리에 도시 자치 정부, 영지에 안 살고 도시민화 된 유력 귀족, 상단들과 교육 받은 부르주아만 대신하면 사회 분위기가 수평적이고, 수직적 사회 문화의 중심에 있는 왕실의 권위와 권력이 현격하게 약하고, 고위 성직자들보다 평신도나 평신도 출신 신학자들의 힘이 강한건 마찬가지였다. 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고지대에 속한 시골 교회들에서 더 원형에 가까운 장로교회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륙 국가들 중 스위스와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인데, 둘 다 합스부르크의 압제에 맞서 싸워가면서 왕정주의와 가톨릭 중앙집권제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데다[8] 독립 이후에는 시민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민주적인 장로제와 궁합이 맞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요컨데, 개혁교회/장로교회는 역사/문화적으로 외부로 부터의 간섭에 저항적이고, 중앙 권력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며, 해당 지역 내에서도 각 지방마다의 특색이 강해서 서로 확실한 우열이 없었던 스코틀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등에서 주로 채택되었던 개신교 교회라 할 수 있다.

3. 역사

16세기 중엽에 장 칼뱅은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회 제도를 본격적으로 확립하였으며, 이러한 바탕에서 전 유럽에 영향력을 끼쳐, 프랑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개혁교회라고 불리는 칼뱅주의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는 1560년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국교로 지정하며, 이후 잉글랜드미국으로 전파되는 토대를 마련한다. 이때부터 청교도 혁명에 이르는 시기에, 칼뱅의 신학을 바탕으로 한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9](Westminster Catechism)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그리고 교회헌법과 예배지침이 마련되며 이는 이후의 미국의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장로회의 토대가 된다. 쉽게 말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을 따르는 교회는 장로교회라고 할 수 있다.

4. 장로회와 개혁교회의 차이

보통은 개혁교회가 장로회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신학적으로 다른 부분은 칼뱅주의를 따른다 해도 교회 내의 의사결정을 장로제가 아닌 회중제로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헝가리의 사례처럼 감독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10]

칼빈의 교리적 주장 자체가 개혁교회의 지표라 할 수는 없다. 당장 하이델베르크 문서들이나, 웨스터민스터 문서들도 제네바의 문서를 복붙한 것이 아니다. 개혁교회의 뿌리로 여겨지는 스위스에서도 취리히의 츠빙글리, 바젤의 외콜람파디우스가 1세대이며, 칼뱅은 그 이후이다. 스트라스부르의 1세대 개혁가인 마틴 부써도 꼽을 수 있으며, 온건루터파(또는 멜랑히톤파)도 하이델베르크 문서에 참여했다. 칼뱅주의가 개혁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보다 가깝기 때문에 구심점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장로제 교회만을 가리킬 경우 스코틀랜드식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 장로교이며, 반대로 대륙식(스위스, 네덜란드)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 개혁교회라 불린다. 다만 요즘은 교단간 교류가 잦아지면서 이 차이도 사실상 없어져가는 추세이다.[11]

보통 칼뱅주의를 따르고 장로제를 취하면서 유럽 대륙에서 발생한 개신교회의 경우 '네덜란드 개혁교회'[12]와 스위스 개혁교회(Evangelisch-Reformierte)[13] 등이 있으나 교회 인테리어나 예배 형식 등에서 스코틀랜드식, 한국식과는 좀 차이가 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Reformed Church'와 'Presbyterian Church'는 같은 칼뱅파임에도 이민자들의 정체성이나 밑의 세부적인 신학적 견해 차이로 인해 다른 교파처럼 취급된다.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와 독일의 칼뱅주의 교회에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sm)과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14],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15]을 신앙규범으로 삼았는데 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제정한) 웨스트민스터 계열 문서보다 이 세 가지 문서를 더 중요시하는 칼뱅주의 교파들은 대륙식 개혁교회라 봐도 틀리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헬베티아 신앙고백서를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을 제외하면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회들은 시편찬송가(psalter)를 부르는 것이 권장되며, 실제로도 보수적인 교회들은 일반적인 찬송가를 부르지 않거나 시편찬송가 위주로 일반찬송가를 1~2곡정도 곁다리 삼아 부르는 경우가 많다.

5. 특징

5.1. 조직 특성

성공회감리회가 어느 정도 보편교회의 전례를 따라 주교/감독을 두어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다면[16], 장로회는 철저한 장로 정치 시스템에 따라 상위 치리회의 치리를 통한 정치체제를 따르고 있다.[17]
세속 정치로 따지면 간접/대의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이며[18] 실제로도 각 교단별로 교회헌법이란 것이 존재한다.

5.2. 신학적 특성

장 칼뱅의 영향을 받아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며, 신구약성서를 신앙과 행위에 대한 무오한 유일의 법칙[19]으로 본다.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서들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무오성을 입증해주는 보조적 문서로 볼 뿐이다.

장로회에서는 교회의 지도자 직위에 대하여 성서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고 본다.
  • 교회의 지도자 직임을 받은 자를 장로라고 한다.[20]
  • 목사는 장로 위에 있는 직임이 아니라, '가르치고 성례[21]를 집전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장로'에 해당한다.[22]
  • 성경에 등장하는 '감독'이란 말은 '장로'의 또 다른 표현이다.[23]
  • 장로는 교회의 회중이 선출한다.

특히 앞서 설명했듯이, 장로회의 신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원문 참조.

5.2.1. TULIP 교리

칼뱅주의 5대 교리를 지칭한다. 이 5대 교리를 총칭해서 TULIP으로 부르는 것으로, 그 중요성은 성결교회의 4중 복음, 감리회의 신인 협동설과 맞먹는다.
1. 인간의 전적 부패/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궁극적 구원(Perseverance of the Saints)

물론 장 칼뱅이 직접 발표한 교리는 아니고, 1619년 네덜란드에서 구원의 중요성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 5개 교리에 대항하여 칼뱅주의적 입장을 5개 항으로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다.

6. 한국의 장로회

전 세계 장로회 총 신자 1,800만 명 중 600만 명이 한국에 분포한다고 한다. 주로 수도권영남, 호남에서 세가 강하다. 특히 영남[24]과 호남[25]에서는 장로회가 초강세. 또한 제주도에선 전체 교회 중 무려 80%가 통합측 교회이다. 충청권에서는 충청북도 청주시 이남 지역[26]충청남도 남부의 전라북도 접경 지역[27], 대전광역시[28] 등에서 장로회가 비교적 강한 편이고 청주시 이북의 충북 북부 지역과 충남의 대부분 지역, 서울특별시서대문구[29], 인천광역시, 경기도 남서부 지역[30], 세종특별자치시, 강원도 등지에서는 장로회가 약세이다.

1882년, 만주에서 선교하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존 로스 목사가 요한복음누가복음을 번역하여 출간함으로써 한국과 첫 관계를 맺게 된다. 그 후 1885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등의 선교활동으로 처음 들어온 것으로 본다. 그런 이유로 연세대학교에 가면 언더우드관이 있다.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창설되었으며, 1912년 첫 번째 총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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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장로회, 남장로회, 호주장로회, 캐나다선교회, 감리회 등은 위 지도와 같이 각자의 선교영역을 분담하기도 했는데, 이는 후일 장로회 교단의 분열[31] 및 지역별 교단 교세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는데 이는 조선 내의 개신교 교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사참배는 죽은 사람에게 절하고 일본 천황을 신격화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교리상 명백한 우상숭배였기 때문에 초창기 개신교인들은 당연히 저항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탄압이 심해지면서 투옥되어 옥사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여럿 나왔고 성결교회재림교회는 교단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인준했음에도 신사참배 이행불량을 이유로 결국 강제 해산되었으나 장로회는 주기철 목사를 필두로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투옥된 소수의 목회자들을 제외하고 목회자 대부분이 일제의 방침에 따라 1945년 일제 패망 때까지 신사참배에 가담하였다.[32] 물론 통합, 합동 등 현재의 예장총회 계열 교회나 목회자 모두를 친일행위(신사참배) 가담자로 단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33][34]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하면서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투옥되었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석방되어 교회로 돌아왔고, 일본 기독교회에 흡수되어 사라졌던 장로회는 1947년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이름 아래 단일 총회로 재건되었다.

6.1. 한국 장로교의 분파 형성과정

하지만 이후 다수파에 의한 일방적 소수파 축출 및 노선 차이로 인한 다수파 내의 분열을 겪으며 여러 분파로 나뉘게 되었다. 이는 한국 장로회 특유의 개교회주의와도[35] 관련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 장로회 분열사 문서 참조.

위 항목에 서술된 내용을 보면 갈라지는 것만이 부각되어 보일 수 있지만 통합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백석대신 교단의 역사 자체가 통합의 역사이며, 고신과 합동의 통합 시도가 있었고 신학교 통합이 이루어지기에 이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통합 측과 합동 측 소속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티격태격 헐뜯고 싸우며 서로를 이단시하는 것까지는 아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같은 경우는 한국기독교장로회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까지 성향이 극과 극인 교단들조차 가입 원년멤버인 등 주요 장로교단들이 두루 가입하고 있다.

5대 교단의 대체적인 신학 성향과 주요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6]
교단 상징 교단 성서비평학 교회일치운동 여성목사 종교세 세습금지법 교세(2018년 기준)
파일:external/www.prok.org/4c4921a88d683bc5f2a4b8cb1f53ecaf_6vMdzXHcg5ByJOKW5lDsjn.gif 한국기독교장로회 O O O O O 교인 수 235,077명, 교회 수 1,631개
파일:external/oi65.tinypic.com/2mmwchy.png [37]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O[38] O O O O 교인 수 2,714,314명, 교회 수 9,096개
추가바람 [39]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 X [40] O O[41] X[42] 교인 수 1,507,547명, 교회 수 7,373개
파일:external/oi67.tinypic.com/r73fy1.png [43]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44] X X[45] X X[46] X[47] 교인 수 2,688,858명, 교회 수 11,922개
파일:koshin.png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48] X X[49] X[50] X[51] X[52] 교인 수 452,932명, 교회 수 2,067개


독자 로고를 사용하는 일부 교회가 아닌 경우, 교회 마크로 어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초록색 두루마리 모양의 바탕에 빨간색 십자가가 있는 마크는 통합의 마크이고, 파란색과 연두색 사각형 사이에 하얀색 십자가가 있는 마크는 합동의 마크이다. 기장은 파란색 원에 왼쪽 구석이 보라색이며 경계선이 '기' 자로 형상화된 마크를 사용한다.

이렇게 교단 마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상당수의 이단이나 사이비 교단이 장로회를 사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꼭 이단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장로회는 분파가 많아서 심볼이 없으면 구별이 안 된다. 밝혀진 바로는, 신천지 위장교회가 그대로 베껴 쓰거나, 광고물 제작업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교단 심볼은 저작권과 특허로 등록되어있기에 함부로 사칭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다.

7. 국내 주요 장로회 교단 목록

8. 스코틀랜드의 장로회

장로회 명칭의 원조인 스코틀랜드의 경우 국민교회인 'Church of Scotland'와 완전한 독립 교파들인 'Free Church of Scotland', 'Free Presbyterian Church of Scotland' 등이 존재하며, 현지말 스코트어로는 'the Kirk'라고 부른다. 이 전 버전에는 '실질적으로 국교회 같다'고 나와 있는데 현대 와서 장로 교회의 국민 교회 위치는 말 그대로 의전상, 전통적인 위상을 고려한 명예 호칭에 가깝다. 영국 국교회도 말이 좋아 국교회지 딱히 정부와 맞물려 뭔가 하는건 왕실 관련 해서 의전상 역할이라 하지만, 이 쪽은 공식적인 신학적 교회구조도 온전한 장로 교회이기 때문에 이런 의전상의 위치도 현격하게 낮다. 물론 대표적으로 에딘버러 대학교 내에 위치한 현재 장로교회 장로 총회 건물 (General Assembly Hall)이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수립 이전 까진 자치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의원들의 비공식 의사당 역할을 했는 등 스코틀랜드 정치, 국가적 정체성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쨋든 공식적인 위치는 단순히 역사적 다수 교파로서 명예직인 '국민 교회' 일 뿐이다.

9. 미국의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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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장 규모가 큰 주류 장로회는 Presbyterian Church USA(PCUSA)이다. 2014년 말 조사로 약 170만명의 정식 교인이 가입해있다. 신자들을 모두 추산하면 약 3백만명 정도 되는 듯.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 2014년에는 총회와 각 노회 투표를 통과해 동성결혼 주례도 허용하고 있다.

사실 19세기부터 1920년대까지는 PCUSA 자체가 꽤 보수적인 교단이었다. 산하 신학교인 프린스턴 신학교도 1910년대까지는 '구 프린스턴 신학'이라는 성경 중심적 신학관으로 유명했으며 당시의 프린스턴은 성서무오설을 체계화한 신학교 중 하나로도 평가되었다. 한국 개신교계에서도 널리 회자되는 존 메이첸이나 B. 워필드, 찰스 하지같은 신학자들도 원래는 프린스턴 소속이었다.

그러나 성서비평학을 지지하던 '모더니즘' 신학자들도 없진 않았다. 처음에는 정통주의자들이 교단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들어오는 신학생들은 성서비평학과 모더니즘을 편들게 되었고, 기존의 정통주의적 신학자들과 충돌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게 되었다. 두 세력의 분쟁은 1920년대~30년대에 걸쳐 가장 치열해졌다.

결국 정통주의 세력들은 프린스턴에서 쫒겨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차리게 되었고 교단도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 OPC)란 이름으로 분리되었다.

정통주의자들을 쫒아낸 PCUSA는 1930년대부터 신정통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다른 미국의 주류 교단들처럼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다. 1958년에는 성향이 비슷한 '북장로회'와 합쳐서 '연합장로회'(UPCUSA)란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1980년대에는 또다시 미국 복음장로회가 분리되는 바람에 25년만에 U자를 다시 뗀 PCUSA로 이름을 환원해야 했다.

2012년에는 동성결혼 주례나 동성애자 안수 논의를 놓고 너무 치우쳐버렸다고 생각한 중도 성향의 목사와 신학자들이 PCUSA를 탈퇴한 뒤 복음언약장로회(ECO)란 중도 성향[53] 교단을 만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ECO 교단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근본주의적 신학과 포스트모던 신학에 모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중도~중도보수 성향 교회들이 PCUSA에서 옮겨오기 때문이다.

9.1. 미국의 회중교회

'장로교와 개혁교회의 차이' 문단에서 상술했듯 칼뱅주의를 따르고(물론 극초기 이야기, 현재는 구원론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펼친다) 침례가 아닌 일반적인 세례를 주면서 교회 정치체계만 회중제를 따르는 교회는 그냥 '회중교회'라고 부르는데, 초기 미국 동부의 교회들은 의외로 장로교가 아닌 회중교회들이 많았었다. 사실 이런 교회들은 장로회보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더 가깝다. 개교회 주의를 중시하다보니 칼뱅주의가 옅어져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한없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교파가 된 것도 이때문. 오늘날에는 "회중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사실 미국 내 청교도들은 장로제보다는 직접적인 회중 자치를 중시하는 분리주의자들이 대다수였고,[54] 당연히 이들이 세운 교회도 대다수가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이며 이곳과 연관된 대학이 하버드대학교예일대학교이다.

19세기 이후로 대표적인 리버럴 교단이 되어 보수 위치에 있던 장로회와 대립했었고, 1957년 독일계 개혁교단인 '복음개혁교회'(E&R Church)와 합치게 되면서 그리스도연합교회(UCC)가 되었다.[55]

이 교단의 전도나 선교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미국 건국의 주체였었고, 비교적 늦게 유입된 장로교와 몇가지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 1 미국 동부는 회중교회가, 서부는 장로교회가 맡는다.
  • 2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대만은 장로교회가,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일본은 회중교회가 맡는다.

위 사항으로 인해 한국과 대만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일본과 중국은 회중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일본에서는 조합교회로 이어졌다.[56] 위의 합의는 절대적으로 준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도 일본 조합 교회가 들어 왔는데, 성결교회와는 반대로 일본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 내선일체에 앞장 섰고 당연히 광복 이후 강제 해산되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연관이 깊은데 일단 문동환 목사가 유학한 도쿄신학교는 회중교회의 일본 선교사인 S.R.브라운이 세운 신학원을 바탕으로 초교파적인 신학교가 된 곳으로 보인다.[57] 그의 부인이 다닌 요코하마 신학교도 일본 조합교회의 모체가 되는 도시샤대학의 설립의 배경이 된 곳.

미국에서 보수적이던 장로교단과 리버럴화의 전조를 보이던 회중교회의 마지막 합작품인 구역을 나눈 아시아 선교가 있었던 셈인데 그 영향으로 일본 유학을 간 문익환 등이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의 다른 신학자들과 달리 국가신토를 너무 가볍게 여겼으므로, 한국 개신교에서 성서비평학이 금기시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UCC의 최근 경향은 미국 메인라인 중에서도 리버럴의 중심이다.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차별, 낙태 문제에 관해 그 어떤 메인라인 교단들보다도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편.

한편 리버럴화에 반발한 극소수의 회중교회들은 CCCC 혹은 4C교단이라 하는 회중교단을 설립했으며 'Conservative'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자칭 주류인 UCC와 비교하면 동성애를 금지하는 등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신사도 운동의 창시자인 피터 와그너가 첫 목사 안수를 받은 교단인지라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 교단도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다.

9.2. 미국의 화란계 개혁교회

미국에서 'Reformed'명칭을 쓰는 교단들은 대체로 네덜란드계 이민자들과 연관이 있다.

전통적인 옛 '주류 교단'[58]으로 간주되는 RCA(미국 개혁교회)[59], 온건 정통주의 성향의 CRCA(미국 기독개혁교회) 그리고 보수 정통주의 성향인 PRCA(미국 개신개혁교회), FRCNA(북미 자유개혁교회), NRCA(미국 화란개혁주의교회)와 HNRC(헤리티지 화란개혁주의교회)[60]가 있다.

미국 개혁교회는 장로교와 교리가 유사했으나, 19세기 선교 구역이 정해질 때 회중교회와 같이 동남아와 일본을 대상으로 파송하기로 합의했다.

10. 네덜란드 개혁교회

맨 위에서 썼듯이 네덜란드는 유럽 대륙에서 몇 안되게 칼뱅주의가 크게 번성했던 나라였고, 스위스와 다르게 2010년대에도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이 다소 남아있다.

20세기 초까지는 네덜란드에서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했던 최대 종교였으나 2차대전 후로는 급격하게 세력을 잃었으며 시류에 따라 리버럴화가 진행되었다. 오늘날 개혁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전인구의 약 10% 남짓에 불과하며 보수적인 교단은 절반 수준인 5%도 되지 않는다. 한국과 상황이 정반대인 셈.

한국과 달리 장로가 임기제인 경우가 흔하며[61] 목사도 한 교회에 오래 머물러있지 않고 여기 저기 청빙되어 자주 인사 이동을 하는 스타일이다.

원어로 '개혁교회'에 해당하는 단어를 무엇으로 쓰느냐, 혹은 띄어쓰기를 쓰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교단을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례로 Hervormde(헤르포름더)와 Gereformeerde(허레포르메이더)는 네덜란드어에서는 뉘앙스상 철처하게 구별되는데 영어로는 둘다 Reformed라 써지기 때문에 상당히 헷갈린다.[62]

타 국가의 개혁주의 교단들이 그렇듯 교리나 신학적 성향을 놓고 분열과 통합을 반복한 적이 있었는데 아래와 같다.
  • 원래 네덜란드 개신교의 주류였던 '국교회'[63]와 1882년 아브라함 카이퍼의 의해 분리되었던 화란개혁교회 총회파[64]는 1962년부터 '함께가는 길'(Samen op weg)이란 이름으로 재통합 운동을 시작했고 여기에 네덜란드 복음주의 루터교회(ELKN)가 가세하여 2004년 PKN(네덜란드 개신교회)란 이름으로 정식 통합했다. 그러나 여전히 개교회별로는 특징이 구별되며 이 안에 보수 파벌인 고백연맹(Confessionele vereniging)과 '개혁주의 연맹'(Gereformeerde Bond)이 존재하고 있다.[65] 신학교로는 PthU와 암스테르담, 레이던, 흐로닝언 등의 국립대학 내 신학부가 있다.
  • 1834년 국교회의 신학적 성향을 문제삼으며 자발적으로 '분리와 (신조로의) 복귀'를 추구했던 '기독개혁교회'(CGK)[66]는 1892년 카이퍼주의자들과 통합하지 않은 소수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잔류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교단도 자유파와 보수파가 한 교단 내에 공존하고 있으며, 보수파는 'Bewaar het Pand'[67]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신학교는 헬데를란트 주 아펄도른(Apeldoorn)에 있다.
  • 1944년에는 화란개혁교회에서 '해방파'(Liberated/Vrijgemaakt)가 분리되었는데 신학적인 논쟁 탓이 컸다. 당시 신학교 교수였던 클라스 스킬더(Klaas Schilder)는 카이퍼 신학의 문제점들(가정적 중생[68], 보편은혜[69], 영원칭의[70]에 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오고 있었으나 이것 때문에 결국 신학교와 교단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들과 함께 강제로 쫒겨나서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71] 해방파 교단 역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한국의 예장고신 교단과 자매관계이다. 1967년에는 여기서 다시 NGK란 교단이 분리되어 나왔는데,[72] 2010년대 이후로 해방파 개혁교회와 기독개혁교회, NGK가 화해 및 협력 분위기로 바뀌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리버럴화 되어간다는 우려도 생기는 편. 결국 2017년 6월 총회에서 여성안수 허용안이 통과되었고, NGK와 빠르면 2023년에 교단을 통합하기로 결정되었다. 신학교는 오버레이설 주 캄펀(Kampen)에 있다.
  • 2015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보수적 개혁주의에 가까운 형태를 고집하는 교단으로는 2004년 교단 통합에 반대한 기존 국교회들이 모여서 만든 '복구파 개혁교회'(Restored Reformed Church/Hersteld Hervormde Kerk)와 1907년 G. H. 케르스턴에 의해서 분리된 Gereformeerde Gemeente(영어로는 Reformed Congregations)[73]가 있다.

11. 대만 기독 장로교회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에서도 장로회가 개신교 최대의 교파이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865년에 영국 선교사 맥스웰이 처음 상륙하여 교회를 세웠는데, 미국 선교사들이 주를 이루던 한국 장로회와 달리 대만 장로회는 주로 영국과 캐나다 선교사들이 주를 이루어 선교하였다. 물론 대만에도 다른 교단들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대만의 개신교 자체가 교세가 워낙 약하고 대부분의 다른 교단들이 장로회에 비해 한참 늦은 1950년대 이후 들어오다 보니 장로회에 비해 교세가 약한 편. 이로 인해 대만에서도 개신교 하면 대부분이 장로회로 인식하는 현실이며, 전체 개신교 신자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장로회 신자라고 한다.

286개의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 장로회[74]와는 달리 대만의 장로회는 단일 교단이며, 한국의 장로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다. 한국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1960년대부터 꾸준히 조금씩 교류가 이루어지는 편이다.

12. 나무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인물

12.1. 목회자, 신학자

12.2. 장로 이하 평신도



[1] 주권국은 아니지만 스코틀랜드에서도 최대의 종파. 다만 주권국 가운데 장로회가 개신교 최대 교파인 나라는 (다른 나라의 압력으로 주권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중화민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이 유일하며, 자치령이나 속국을 포함하더라도 국내 개신교 인구 중 장로회 신도가 7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은 대한민국 뿐이다.[2] 현재 성공회의 전신(前身)[3] 존 녹스는 성공회 신학자들과 함께 '42개 신조'와 '공동기도문'(현재 이름은 성공회기도서)을 만들었다. 42개 신조는 이후 칼뱅주의적인 요소가 더욱 가미되어 종교개혁 당시 성공회 교리의 기반이 되었던 '39개 신조'가 되었고, 공동기도문은 수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까지도 성공회 교인에게 신앙 생활의 기본이 되고있다. 그는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성공회로부터 로체스터 교구의 주교 직책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고 영국의 개혁교회를 이끌었다.[4] 사실 칼뱅도 루터처럼 개인 문장을 사용했다. 심장을 쥐고 있는 손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정작 루터의 장미 문장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다.[5] 절대 KKK 같은 불타는 십자가가 아니다![6] 잉글랜드 내에서 이러한 체계에 반발한 사람들은 아예 교인 개개인의 의사가 모두 반영되는 회중제를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에서 침례교와 회중연합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다수가 지금의 북아메리카로 쫒겨나다시피 했다.[7] 존 녹스가 주로 활동했던 지방은 로우랜드였고 하이랜드는 당시만 해도 주변 클랜들의 땅을 마구 뺏어 먹으며 클랜들 중 원톱으로 군림했으며, 개신교 매파 중 하나였던 클랜 캠밸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친가톨릭에 스튜어트 왕가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8] 스위스는 현존하는 주권국가들 중 유일한 직접민주주의 국가이며, 네덜란드는 19세기 왕정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공화정 체제였다.[9] 요리(要理)문답서이다. 요리(料理)가 아니다. "중요한 이치"라는 뜻. 번역자에 따라 "교리"문답서라고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10] 다만 헝가리의 경우는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상당히 독특하게 발전한 편이다.[11] 사실 아브라함 카이퍼나 헤르만 바빙크 등 네덜란드 신학자가 쓴 서적을 한국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다.[12] 네덜란드어에서 개혁교회를 가리키는 말로는 'Hervormde'와 'Gereformeerde'가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같은 단어이지만 19세기 이후로 전자는 국교화된 전통적인 개혁교단을, 후자는 미국, 한국의 장로교처럼 헌금으로 운영되는 독립교단을 뜻하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에서 대체로 '화란개혁교회'라고 하면 후자를 가리킨다.[13] 역사적인 이유로 독일어권에서 개혁주의라고 하면 스위스나 혹은 동프리슬란트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독일과 달리 스위스 개신교단은 한국과 구성이 비슷하다.(개혁주의+감리회)[14] 여기서 말하는 'Belgic'이란 표현은 지금의 벨기에가 아닌 16세기 기준으로 지금의 네덜란드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어로는 'Nederlandse Geloofsbelijdenis'이다.[15] 당시 네덜란드에서 쿠테타로 집권한 칼빈주의자들이 아르미니우스파(항변파)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나온 신조이다.[16] 물론 성공회감리회가톨릭에 비하면 중앙집권적인 성격이 약한 부분이 있다.[17] 일전의 문서에는 개교회주의를 장로회의 정치체제로 설명했지만, 장로회 시스템에서는 개교회주의는 인정되지 않으며, 개교회주의는 회중교회나 침례회의 특징이다. 장로회의 정치체제에 의하면 개교회들의 연합체인 노회가 개교회 이상의 권한을 가지고 있고, 노회의 상위기구인 총회가 그 이상의 최고권한을 가지고 있다. 노회 아래의 개교회는 노회의 치리를 받으며 노회와 개교회는 총회의 치리를 받는다. 즉 장로회는 개교회주의가 절대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개교회주의가 장로교 정치체제와 혼합되어 있어 혼동할 수 있으나, 이론 상 그리고 교단의 헌법 상 장로회의 정치체제는 개교회주의를 가질 수 없다.[18] 사실 교회 정치에서 장로는 세속 정치로 치면 국회의원급 위치라 볼 수 있다.[19] 여기서 말하는 성서무오설을 극단적인 축자영감설로 보기는 힘들다. 칼뱅 항목 참조. 물론 극단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한 성서무오설을 완전히 신봉하는 경우도 많다.[20] 여기서 장로회라는 이름이 연유되었다.[21] 개신교회가 인정하는 두 가지의 성사인 성찬과 세례.[22] 목사가 아직 청빙되지 않은 교회의 경우 그냥 장로가 예배를 집전할 수 있다. 다만 즉흥적인 설교는 불가능하며 전임 목사가 써놓았던 원고를 그대로 읽어야 한다.[23] 여기서 감리회의 해석과 차이를 보인다. 감리회에서 성경의 '감독'은 말 그대로 '감독'으로서 해당 지역의 감리교회 전체를 치리한다. 성공회나 천주교의 주교에 해당하는 위치이다. 장로교에서 감독은 장로들의 연합체인 회의(당회, 노회, 총회) 기간에 회의를 진행하는 사회자 역할(Moderator)을 수행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보편교회의 주교에 해당하는 감독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장로들의 연합체인 교회의 회의(총회, 노회)이며, 이는 보편교회의 시노드(Synod)에 해당한다.[24] 대구광역시는 합동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부산광역시는 합동과 고신이 많으나 근소적으로 합동이 고신보다 많다. 울산광역시는 통합과 고신이 많으나 통합의 교세가 좀더 강한 편이다. 그 외 경북 중남부 지역은 합동이, 북부 지역은 통합이, 경남 농어촌 지역은 고신이 강세이다. 예외적으로 경남 산청군만은 통합이 강세이며 강원도에서 이관된 경북 울진군은 장로회 자체가 교세가 약하고 감리회침례회가 강세이다.[25] 그중에서도 서부(광주, 목포 등)는 광신대학교(합동전 개혁측) 영향으로 합동의 비율이 높으며 동부(순천, 여수 등)는 통합의 비율이 높다. 특히 호남지역은 기장, 즉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중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이고 전주에선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26] 청주시, 괴산군, 증평군,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및 과거 괴산군 소속이었던 충주시 수안보면. 특히 청주시한국기독교장로회의 교세가 가장 강한 지역 중 하나이며 영동군은 충청도 전역에서 고신측의 교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다.[27] 서천군, 부여군, 보령시, 계룡시, 금산군 등. 서천군은 합동측, 금산군은 통합측이 강세이며 특히 부여군보령시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들이 많이 분포한다. 다만 논산시의 경우 예외적으로 감리회 강세 지역이다.[28] 한반도 선교 초기 감리회 선교 구역이었음에도 장로회의 교세가 꽤 강한 조금 특이한 경우이다. 뜬금없겠지만 일제강점기 장로회-감리회 선교구역 분할 철폐 직후인 1938년 감리회 선교지로서는 상당히 일찍 장로교회가 세워졌고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월남한 이북 출신 장로회 신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장로회가 급성장하였다. 특히 기독교연합봉사회, 대전시기독교연합회 등 개신교 연합체의 성립과 한남대학교, 대전신학대학교(이상 통합측)의 설립, 1960년대 창설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은혜측의 총회 소재지였다는 점도 대전에서 장로회가 강한 교세를 유지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후 은혜 측은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으로 흡수되었다. 참고로 대전에서 장로회 교단의 교세는 통합측, 합동측, 백석대신측, 합동개혁 대전측 순서로 강하며 고신측도 꽤 교세가 있는 편이다.[29] 감리교신학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의 영향으로 감리회가 강세이다. 다만 북부지역(홍제동, 홍은동)은 합동측이, 서부지역(북가좌동, 남가좌동)은 통합측이 나름 선전중이다. 대표적인 서대문구의 감리교회로는 창천교회, 대현교회, 북성교회, 서대문교회, 연희교회, 홍제교회, 홍은교회, 아현교회 등이 있다.[30] 부천시,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수원시, 평택시, 오산시 등.[31] ex.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캐나다 선교사 주도의 선교가 이뤄진 함경도 출신들의 기장 교단 등.[32] 신사참배에 가담한 다수의 장로회 목회자들은 총독부의 허가를 얻어 당시 경성(서울)에 신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신학교이다.[33] 성결교회에서 신사참배에 저항하다가 투옥되었던 목회자들이 1952년 설립한 임마누엘예수교 소속 교회들 상당수가 1967년 통합측으로 이적한 바 있으며, 1960년 고신과 승동파가 합쳐 합동 교단을 설립했다가 1963년 고신이 환원할 당시 본래 고신 소속이었으나 환원된 고신측에 가담하지 않고 합동에 그대로 남은 교회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후에도 '수진자'로 불리는 산정현교회 등의 신사참배 저항 신도들이 세운 교회들이 통합, 합동 등의 교단으로 다수 이적한 사례가 있다. 그 외에도 대신측, 백석측, 브니엘측 등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6.25 이후 기존의 장로교 교단들과는 별도로 독자적으로 성립된 여러 교단들이 존재한다.[34] 1997년 통합측, 2016년 합동측에서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복권 및 신학교 학적 복원을 선언하였다. 통합 교단의 한경직 목사는 생전에 공식적으로 신사참배 및 친일 행적을 회개한 바 있고, 2016년에는 통합측 채영남 총회장이 고신측 이인덕 경남노회장과 만나 과거사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또한 기장 교단도 2007년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회개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매년 신사참배 회개주일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에큐메니컬 운동을 받아들인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이 2000년대 이후 친일 청산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는 반면, 고신과 비슷한 보수 신앙을 고수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및 그 분파들은 2016년 주기철 목사 복권 선언 외에 친일 행적 청산을 위한 노력에 소극적이거나 심지어 침묵,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35] 상술하였듯 본래 장로회는 개교회주의 성향이 아니나 한국에 들어와 자리잡는 과정에서 개교회주의와 장로 정치제가 혼합되었다.[36] 매년 바뀌는 교단차원의 입장들은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카드뉴스 등 각 교계신문들의 교단별 총회 결산기사를 통해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37] 1986년 제71회 총회에서 제정되어 지금은 대다수의 통합측 교회가 현판과 차량, 공문서, 홈페이지 상의 교회명에 삽입, 예장통합 소속 교회임을 표시하여 다른 예장계열 교회들과 구분하고 있다. 특허청에 의장등록이 되어 있어(특허청 표장등록 제42-0004489호) 예장통합 소속이 아닌 교회가 이 로고를 사용하면 불법이다. 그래서인지 군소교단 교회 또는 사이비(특히 신천지) 위장 교회들 중 예장합동을 사칭하는 교회가 부지기수인데 비해 예장통합을 사칭하는 교회는 극히 드물다.[38] 통합교단 산하의 신학대학원에서는 모두 성서석의방법론이라는 과목과 성서학개론 과목들을 통해 성서비평을 가르치고 있다.[39] 근래의 교단통합 관련 판결과 그로인한 교단명칭 변경으로 아직 정식 로고가 제작되지 못했다.[40] 통합 전 백석 측은 WCC 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부산에서의 WCC 개최에 찬성하였다. 반면 통합 전 대신 측은 WCC에 가입은 물론 부산 개최에도 반대하였다.[41] 보수교단에서는 첫 결정이다. #[42] 교단 차원에서 세습을 반대하는 대신, 세습 이라는 용어 사용을 반대한다며 세습, 아니 백석대신 용어에 따르면 승계를 옹호한 바 있다.[43] 2008년 총회에서 새롭게 변경된 로고이다. 기존의 로고는 파란 지구본 안에 월계수 덩굴이 감긴 붉은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었다.[44] 기타 합동으로부터 분리된 보수성향의 군소교단들 역시 합동 교단과 신학 및 입장이 대동소이하다.[45] WCC 가입 분쟁시 예장고신과 합동하여 반대했다.[46] 종교인 자발적 납부 과세 제도를 추진하는 한편, 2018년도 총회에서도 "종교인 소득 졸속 과세법 폐기를 위한" 결의를 확인한 바 있다.[47] 2013년에 있었던 98차 총회에서 통합 측의 결의에 쫓기듯 세습금지를 결의하였으나, 2014년 99차 총회에서 이를 재차 번복하였으며 이후 재차 논의한 적이 없었다.[48] 합신 교단과 신학적 성향 및 각종 입장이 유사하거나 공동보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합신 교단은 이미 90년대부터 고신 교단과 많은 교류를 해왔으며, 서로 성향과 입장이 비슷하지만 각자의 교세기반 지역이 미묘하게 다른 양측은 교단 통합까지 염두에 두고 대화와 연구를 하는 관계이다.[49] WCC 가입 분쟁시 예장합동과 합동하여 반대했다.[50] 보수교단임에도 여성에 목사안수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네덜란드개혁교회(RCN)에 결정 재고를 권고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미 2017년에 결정된 사항으로, 오랜 협력관계였던 고신 측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임에도 그나마도 얼마 남지않은 해외 보수성향 협력교단이 하나 더 사라질 수도 있는 사항인지라 2년째 재고 권고만을 보낼 뿐 교류단절 선언은 주저하는 모양새이다.[51] 합신 교단과 함께 헌법소원까지 준비 중이다. #[52] 각 교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53] 바르멘 선언을 인정하며 예배 형태도 기존의 PCUSA와 크게 다르지 않다.[54] 이들은 이미 '사보이 선언'을 하면서 장로교와는 갈라선 상태였다. 1685년 영국 사보이 궁전에 모여서 웨스트민스터 문서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며 고백서의 내용을 일부 수정했고, 회중교회만을 위한 '사보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도 했다.[55] 그리스도의 교회 제자회(DoC)와는 무관하다.[56] 일본 조합교회는 1941년 다른 교단들과 합동하여 현재의 '일본기독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57] 2차대전 이후 아오가쿠 등 다른 대학의 신학부들이 이곳으로 이관되었으며, 명칭도 도쿄신학대학으로 바뀌었다.[58] Mainline Protestant, 후기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에 호의적인 대형 개신교 교단들을 말한다. 21세기 기준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59] 수정교회로 유명한 로버트 슐러가 이 교단 소속이었다.[60] 1993년 NRCA에서 분리된 교단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조엘 비키(Joel Beeke) 목사가 이 교단 소속이다.[61] 다만 임기가 지나도 다시 뽑히는 것이 가능하다.[62] 그리고 이러한 뉘앙스 차이는 남아공 개혁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63] Nederlandse Hervormde Kerk, 한국 신학계에서는 분리된 '화란개혁교회'와 구별하기 위해 '국가개혁교회'나 '갱생교회'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64] 분리 초기에는 국교회의 자유주의화를 애통해한다는 뜻에서 애통(Doleantie)파 교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하술된 기독개혁교회의 다수파와 통합하면서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2004년 교단 재통합 전까지 썼던 '총회파'(Synodaal)라는 표현은 해방파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별칭이다.[65] 이 파벌에 속한 국교회들은 오후예배 시간이 존재한다.(일반 국교회는 오전예배만 있음)[66] 분리 초기에는 '십자가 밑의 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 onder het Kruis)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곧 위와 같은 명칭으로 바꾸었다.[67] 디모데전서 6장 20절(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에서 따온 것이다.[68] 모태신앙은 열매를 맺기 전부터 기본적으로 거듭났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69] 유기되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최소한의 '은혜'는 입는다는 주장. 옹호 측에서는 보수적인 교회라도 적극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킬수 있다는 근거로 사용했으나 반대 측에서 이 이론은 알미니안주의와 다를 것이 없으며 교회를 세속화시킬수 있다고 논박한다.[70] 카이퍼가 주장한 영원칭의론은 일반적인 칼빈주의자들의 칭의론과 달리 한번 선택받은 사람은 그냥 그 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에 가깝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반대 측에서는 신자의 책임감을 약화시키고 이신칭의론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고 바라보는 편이다.[71] 이들은 당시의 네덜란드 교회헌법 31조를 들어 자신들이 당한 권징이 부당한것이라고 호소했고 그 때문에 '31조파'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72] 상기한 네덜란드 개신교회에 통합되지 않은 교단치고는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73]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저명성이 없는 교단이라 공식 번역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하튼 이 이름을 가진 네덜란드 교회들은 교리적으로는 분명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교단임에도 교회 안은 물론이고 뾰족탑에도 십자가를 달지 않으며,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은 챙 달린 모자를 꼭 써야 하는 등 20세기 전반의 네덜란드식 개혁주의 스타일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74] 물론 크게 분파별로 나누면 한국 장로회는 고신계, 기장, 통합, 합동계, 대신계의 5개 분파로 나눌 수 있다. 다만 고신과 합동 등 보수 교단에서 교권 다툼으로 여러 개로 갈라져서 그렇지...[75] 예장합동.[76] 예장통합.[77] 예장통합.[78] 대전광역시 5개 현역 구청장 중 유일하게 장로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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