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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41년 12월 19일[1] ([age(1941-12-19)]세)[2] | ||
| 오사카부 나카카와치군 카미무라 토가쿠이도3초메 52[3] (現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라노구 카미미나미3초메 4-15)[4] # | |||
| 사저 |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23길 42[5] | ||
| 본적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리 덕실마을 | ||
| 재임기간 | 제17대 대통령 | ||
|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 |||
| 서명 |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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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기준지 | 경상북도 영일군 곡강면 덕성동 537[8] (現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리 537) | ||
| 부모 | 아버지 이충우, 어머니 채태원[9] | ||
| 형제자매 | 누나 이귀선(1930년생)[10], 이귀애(1938년생)[A] 형 이상은, 이상득 남동생 이상필(1943년생)[A] 여동생 이윤진(1946년생)[13] | ||
| 배우자 | 김윤옥(1970년 결혼) | ||
| 자녀 | 장녀 이주연 차녀 이승연 삼녀 이수연 장남 이시형 | ||
| 학력 | 포항영흥국민학교 (졸업) 포항중학교 (졸업)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 61 / 학사) | ||
| 병역 | 제2국민역 (활동성폐결핵 경도, 기관지 확장증 고도)[14] | ||
| 종교 | 개신교 (장로회 / 예장통합[15]) | ||
| 신체 | 키 175cm[16] / 체중 70kg / B형 | ||
| 소속 정당 | [17] | ||
| 의원 선수 | 2 | ||
| 의원 대수 | 14, 15 | ||
| 약칭 | MB, 李 | ||
| 호 | 청계(淸溪)[18] | }}}}}}}}} | |
1. 개요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취임 선서 |
2. 약력
- 1954.2. 포항영흥국민학교 졸업
- 1957.2. 포항중학교 졸업
- 1960.2.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
- 1964.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직무대행[19]
- 1965.2.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1965. 현대건설 경리과 평사원
- 1968. 현대건설 경리과 과장
- 1969. 현대건설 부장
- 1971. 현대건설 이사
- 1973. 현대건설 전무
- 1974. 현대건설 부사장
- 1976. 한국포장건설 사장
- 1977.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 1978.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 1978. 한국도시개발 대표이사 사장
- 1978.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 1978. 구국여성봉사단 운영위원[20]
- 1980. 해외건설협회 업계대표 부회장
- 1980.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업계대표 부회장
- 1981. 대한알루미늄 사장
- 1981. 대한수영연맹 회장[21]
- 1982.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 1982.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 1982.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겸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 1982. 체육훈장 백마장·거상장 수훈
- 1983.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 1983. 해외건설협회 이사
- 1983. 동남아경제협력 건설분과 위원장
- 1984.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 1984. 국제수영연맹 집행위원
- 1984.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 1985. 한라건설 대표이사 사장
- 1985. 금탑산업훈장 수훈
- 1986. 주한 부탄 왕국 명예총영사
- 1986. 체육훈장 거상장 수훈
- 1987.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1987. 현정국토개발상 수상[22]
- 1988.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 1988. 한무쇼핑 대표이사 회장
- 1988. 현대엔진공업 대표이사 회장
- 1989. 현대종합목재 대표이사 회장
- 1989. 한·소련 경제협회 부회장[23]
- 1990. 현대자원개발 대표이사 회장
- 1990. 한국항만협회 이사
- 1990. 대명기업 대표이사[24]
- 1990. 대명통상 대표이사
- 1991. 한국사회발전연구소 이사장
- 1991. 동북아민간경제협회 회장
- 1992.5.30. ~ 1996.5.29. 제14대 국회의원 (초선 / 전국구 25번 / 민주자유당)
- 1992. 6.3동지회 회장[25]
- 1992. 미국 아칸소 주 명예대사
- 1993. 한국청년실업인협회 회장
- 1993.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운영이사회장
- 1993. 제1차 세계한인상공인대회 조직위원장[26]
- 1993. 부동산임대이명박 대표[27]
- 1995. 삼청로터리클럽 회장
- 1995.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 1995. 소망교회 장로[28]
-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민주자유당 경선 후보[29]
- 1995. 민주자유당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 1996. 신한국당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 1996.5.30. ~ 1998.2.21. 제15대 국회의원 (재선 / 서울 종로구 / 신한국당)[30]
- 1996. 한국국악협회 고문
- 1997. 한나라당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경선 후보[31]
- 1998. 한국체육대학교 명예이학박사
-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32]
- 1999. BBK투자자문 대표이사 회장
- 2000. 아시아·태평양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33]
- 2000.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
- 2000. LKe뱅크 대표이사 회장
- 2000. e뱅크증권 중개 대표이사 회장[34]
- 2000. 한국장애인정보화협의회 명예회장
- 2001. 해외한인무역협회 고문[35]
- 2001.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
- 2002.6.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후보
- 2002.7.1. ~ 2006.6.30. 제32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3기 / 한나라당)
- 2002. 서울시립대학교 운영위원장[36]
- 2002. 제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 2004.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 2004.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학교 명예이학박사
- 2005. 몽골 몽골국립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 2005. 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 2006.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
- 2007.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 본선 당선
- 2008.2.25. ~ 2013.2.24.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 2008.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명예박사
- 200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명예행정학박사
- 2011. 프랑스 파리제7대학교 명예예술학·문학·철학·고전학박사
- 2011.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교 명예환경학박사
- 2011. 덴마크 코끼리훈장 수훈
- 2013.2. 무궁화대훈장 수훈
- 2013.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37]
3.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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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초상화 |
1992년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의원에 출마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하여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제11-14대 종로구 국회의원 이종찬[38], 그리고 노무현[39]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었다. 서울특별시장 재임 당시 Hi Seoul 브랜딩, 청계천 복원사업, 서울시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 등의 정책을 수행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득표율 차이 22.53%p, 득표수 차이 5,317,708표로 꺾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40] 이는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에 해당한다.
재임전 혹은 재임 중 발생한 다스 실소유주 논란,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등[41]으로 2020년 10월 29일, 대법에서 원심의 판결을 확정하여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이 확정되었다. 이후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사면, 복권되었다.[42]
3.1.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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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명박/서울특별시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2.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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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명박 정부#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이명박 정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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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명박/비판 및 논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평가
5.1. 대통령 이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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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명박/17대 대선 당시 장단점#|]]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2. 대통령으로서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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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명박 정부/평가#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이명박 정부/평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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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명박/어록#|]]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제17대 대통령 취임사 #===
| 대한민국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 |
선진화의 길, 다 함께 열어갑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 여러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엥흐바야르 남바르 몽골 대통령, 삼덱 훈센 캄보디아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내각총리대신, 빅토르 줍코프 러시아 연방 총리, 무하마드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을 비롯한 각국 경축사절과 내외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한없이 자랑스러운 나라, 한없이 위대한 국민 앞에 엄숙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며 제게 주어진 역사적, 시대적 사명에 신명을 바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습니다. 문화를 창달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겠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 통일의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겠습니다.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잃었던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업을 동시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힘으로 일구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베푸는 나라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신화’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입니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진실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독립을 위해목숨을 바친 선열들, 전선에서 산화한 장병들, 뙤약볕, 비바람 속에 땅을 일군 농민들, 밤낮없이 산업현장을 지켜낸 근로자들, 젊음을 바쳐 민주화를 일구어낸 청년들의 눈물겹도록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롱속 금붙이를 들고 나와 외환위기에 맞섰던 시민들, 겨울 바닷가에서 기름을 걷고 닦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사회 각 영역에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온 수많은 직장인들과 공직자들, 이들 모두가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주역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내놓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떳떳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자부심이 미래를 여는 대한민국의 힘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 열어가고자 합니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고, 각자가 스스로 자기 몫을 다하며, 공공의 복리를 위해 협력하는 사회,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향한 장엄한 출발을 선언합니다.
지난 10년, 더러는 멈칫거리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제 성취의 기쁨은 물론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세계화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입니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룩하는 데에 나와 너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이 없습니다.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
훌륭한 인재를 길러 세계로 보내고, 세계의 인재를 불러들이는 나라, 바로 제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룩하고자 하는 선진 일류국가의 꿈입니다.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신화는 이어질 것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발전의 엔진에 다시 불을 붙여 더욱 힘차게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고 국민 여러분이 하나 되어 나서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 시점에서 우리 함께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세계는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가고 있습니다. 후발국들도 바짝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은 떨어지고 자원과 금융시장의 불안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중산층은 위축되고 서민생활은 어려워졌습니다. 계층간, 집단간의 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투쟁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권리주장이 책임의식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분단국으로서 지고 있는 짐도 무겁습니다.
다음 60년의 국운을 좌우할 갈림길에서, 이 역사적 고비를 너끈히 넘어가기 위해서 저는 국민 여러분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나서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변화를 소홀히 하면 낙오합니다. 변화를 거스르면 휩쓸리고 맙니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더 빨리 변해야 합니다. 불합리하거나 시대에 맞지 않으면 익숙한 것들과 과감히 헤어져야 합니다. 방향은 개방과 자율, 그리고 창의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여 더 활기차게 성장하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부부터 유능한 조직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잘 하는 곳은 더 잘 하게 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힘이 되는 역할을 맡겠습니다.
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민간에 이양하겠습니다. 공공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겠습니다. 세금도 낮춰야합니다. 그래야 투자와 소비가 살>아납니다.
공무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혁파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머지않아 새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업은 국부의 원천이요, 일자리 창출의 주역입니다. 누구나 쉽게 창업하고 공장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인이 나서서 투자하고 신바람 나서 세계 시장을 누비도록 시장과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겠습니다.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중소기업들이 활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서 대기업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도록 돕겠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영하는 기업인들이 존경받고,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 사랑받아야 합니다.
노와 사는 기업이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입니다. 어느 하나가 제몫을 못 하면 수레가 넘어집니다.
선진국에서는 노사분규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과격한 투쟁은 결국 자멸을 가져온다,” 는 인식을 노사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노사문화의 자율적 개선은 선진화의 필수요건입니다. 이제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기업도 노조도 서로 양보하고 한걸음씩 다가서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이 힘을 내야 합니다. 기업이 먼저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으로 노동자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이런 때 노동자도 더 열심히 일해 주어야 합니다. 불법투쟁은 지양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노사관계가 건강해집니다. 정부도 원칙과 성의를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큰 흐름입니다. 수출산업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부를 늘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개방에 취약한 부문에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농어민들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농어민의 아들딸입니다. 농업, 농촌, 농민 걱정이 곧 나라 걱정입니다.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정부가 함께 하겠습니다.
농림수산업이 더 이상 1차 산업으로 머물러선 안 됩니다. 첨단 생산기술을 접목하고 유통 서비스 경영과 결합시켜 경쟁력 있는 2차, 3차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농어민과 정부가 뜻을 합치고 지혜를 모으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다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국가가 보살펴야 합니다.
시혜적, 사후적 복지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능동적, 예방적 복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낙오자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됩니다.
여성은 시민사회와 국가발전의 당당한 주역입니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사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생애주기와 생활형편에 따른 수요에 맞추어 맞춤형 보육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정부가 보육의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청년세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국내외에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젊은이들의 사회 진출을 돕겠습니다. 주거생활을 안정시킴으로써 개인 생활은 물론 사회의 안정 기반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복지대책도 시급합니다. 노령연금을 현실화하고, 공공복지를 개선하겠습니다.
고령자를 위한 의료혜택과 시설을 늘리고, 근로의욕이 있는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겠습니다.
장애인들에게도 더 따뜻한 배려와 함께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피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선진화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청소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꿈과 활력의 발전기 입니다. 청소년들의 적성과 잠재력을 개발하고 디지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교육현장에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의 숨결을불어 넣어야 합니다.
학교유형을 다양화하고 교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겠습니다. 그래야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 열풍이 잦아들게 됩니다. 학생들의 적성과 창의력이 살아납니다.
대학의 자율화는 국가경쟁력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선진화의 관건입니다. 교육과 연구의 역량을 늘려서 세계의 대학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지식기반사회의 전선에 서야 합니다.
교육의 기회를 질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복지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습니다.
과학이 사회를 합리적으로 바꾸고 선진화 시킵니다. 한국의 몇몇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20년, 30년을 내다보면서 과학기술의 창의적 역량을 키워 가겠습니다.
우수한 과학도를 길러내고, 과학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과학기술이 미래로 가는 문을 열어줍니다.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거대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국가가 장기계획을 가지고 밀어 주어야 합니다. 대학과 기업과 정부의 연구개발 협력체제도 보다 실질화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주택은 재산이 아니라 생활의 인프라입니다. 주거생활의 수준을 높이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주거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겠습니다.
국토의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고자 합니다. 해양지향, 광역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래의 생활양식에 필요한 공간 활용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친환경, 친문화적 기조를 유지하여 국토의 건강성과 품격을 높여나가겠습니다.
환경보전은 삶의 질을 개선하고 환경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냅니다. 지구 환경 변화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상재해가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이에 적응하려면 당장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참고 창의적으로 적응해야만 합니다.
식량, 환경, 물, 자원, 에너지 등과 관련된 정책 전반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입니다. 최근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한류는 그런 전통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현대화와 문화예술의 선진화가 함께 가야 경제적 풍요도 빛이 날 것입니다.
이제는 문화도 산업입니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문화강국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격조가 올라갑니다. 문화로 즐기고, 문화로 화합하며, 문화로 발전해야 합니다.
정부는 우리 문화의 저력이 21세기의 열린 공간에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더 넓은 시야, 더 능동적 자세로 국제사회와 더불어 함께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외교를 펼칠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과 종교, 빈부의 차이를 넘어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 공동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에 동참하겠습니다.
미국과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미래지향적 동맹관계로 발전, 강화시키겠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형성된 역사적 신뢰를 바탕으로 전략적 동맹관계를 굳건히 해 나가겠습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일본, 중국, 러시아와 고루 협력관계를 강화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모색하겠습니다.
우리 경제의 엔진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자원과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에도 힘쓸 것입니다. 아울러 평화와 환경을 위한 국제협력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외교역량에 걸맞게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기여외교를 펴겠습니다. UN 평화유지군에 적극 참여하고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겠습니다.
문화외교에 역점을 두어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더 원활히 하겠습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이 어우러지면 한국의 매력을 세계로 내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7천만 국민의 염원입니다.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천 달러에 이르도록 돕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족을 위하는 길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7천만 국민을 잘 살게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서로 존중하면서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는가, 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라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변하지 않고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발전 방향과 실천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민생고를 덜어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용정치의 기본입니다.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 봅시다. 소모적인 정치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합시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생산적인 일을 챙겨 합시다.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국회와 협력하고, 사법부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대한민국 지도를 세계로 넓히겠습니다. 세계의 문물이 거침없이 들어와서 이 땅에서 새로운 가치로 창조되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내보내는 나라 선진 일류국가가 되게하겠습니다.
선대의 기원이고, 당대의 희망이며,후대와의 약속입니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정부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나서 주셔야 합니다. 각자가 스스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더 튼튼하게 길러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기업인과 노동자들은 손잡고 더 진취적으로 매진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군인과 경찰은 국가와 사회를 더 성실히 지켜야 합니다.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도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공직자들은 더 성심껏 국민을 섬겨야 합니다. 대통령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시대적 과제,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한 대전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국민이 합심하여 떨치고 나서면 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2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 여러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엥흐바야르 남바르 몽골 대통령, 삼덱 훈센 캄보디아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내각총리대신, 빅토르 줍코프 러시아 연방 총리, 무하마드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을 비롯한 각국 경축사절과 내외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한없이 자랑스러운 나라, 한없이 위대한 국민 앞에 엄숙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며 제게 주어진 역사적, 시대적 사명에 신명을 바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습니다. 문화를 창달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겠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 통일의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겠습니다.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잃었던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업을 동시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힘으로 일구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베푸는 나라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신화’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입니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진실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독립을 위해목숨을 바친 선열들, 전선에서 산화한 장병들, 뙤약볕, 비바람 속에 땅을 일군 농민들, 밤낮없이 산업현장을 지켜낸 근로자들, 젊음을 바쳐 민주화를 일구어낸 청년들의 눈물겹도록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롱속 금붙이를 들고 나와 외환위기에 맞섰던 시민들, 겨울 바닷가에서 기름을 걷고 닦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사회 각 영역에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온 수많은 직장인들과 공직자들, 이들 모두가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주역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내놓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떳떳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자부심이 미래를 여는 대한민국의 힘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 열어가고자 합니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고, 각자가 스스로 자기 몫을 다하며, 공공의 복리를 위해 협력하는 사회,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향한 장엄한 출발을 선언합니다.
지난 10년, 더러는 멈칫거리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제 성취의 기쁨은 물론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세계화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입니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룩하는 데에 나와 너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이 없습니다.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
훌륭한 인재를 길러 세계로 보내고, 세계의 인재를 불러들이는 나라, 바로 제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룩하고자 하는 선진 일류국가의 꿈입니다.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신화는 이어질 것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발전의 엔진에 다시 불을 붙여 더욱 힘차게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고 국민 여러분이 하나 되어 나서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 시점에서 우리 함께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세계는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가고 있습니다. 후발국들도 바짝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은 떨어지고 자원과 금융시장의 불안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중산층은 위축되고 서민생활은 어려워졌습니다. 계층간, 집단간의 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투쟁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권리주장이 책임의식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분단국으로서 지고 있는 짐도 무겁습니다.
다음 60년의 국운을 좌우할 갈림길에서, 이 역사적 고비를 너끈히 넘어가기 위해서 저는 국민 여러분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나서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변화를 소홀히 하면 낙오합니다. 변화를 거스르면 휩쓸리고 맙니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더 빨리 변해야 합니다. 불합리하거나 시대에 맞지 않으면 익숙한 것들과 과감히 헤어져야 합니다. 방향은 개방과 자율, 그리고 창의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여 더 활기차게 성장하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부부터 유능한 조직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잘 하는 곳은 더 잘 하게 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힘이 되는 역할을 맡겠습니다.
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민간에 이양하겠습니다. 공공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겠습니다. 세금도 낮춰야합니다. 그래야 투자와 소비가 살>아납니다.
공무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혁파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머지않아 새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업은 국부의 원천이요, 일자리 창출의 주역입니다. 누구나 쉽게 창업하고 공장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인이 나서서 투자하고 신바람 나서 세계 시장을 누비도록 시장과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겠습니다.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중소기업들이 활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서 대기업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도록 돕겠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영하는 기업인들이 존경받고,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 사랑받아야 합니다.
노와 사는 기업이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입니다. 어느 하나가 제몫을 못 하면 수레가 넘어집니다.
선진국에서는 노사분규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과격한 투쟁은 결국 자멸을 가져온다,” 는 인식을 노사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노사문화의 자율적 개선은 선진화의 필수요건입니다. 이제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기업도 노조도 서로 양보하고 한걸음씩 다가서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이 힘을 내야 합니다. 기업이 먼저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으로 노동자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이런 때 노동자도 더 열심히 일해 주어야 합니다. 불법투쟁은 지양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노사관계가 건강해집니다. 정부도 원칙과 성의를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큰 흐름입니다. 수출산업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부를 늘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개방에 취약한 부문에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농어민들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농어민의 아들딸입니다. 농업, 농촌, 농민 걱정이 곧 나라 걱정입니다.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정부가 함께 하겠습니다.
농림수산업이 더 이상 1차 산업으로 머물러선 안 됩니다. 첨단 생산기술을 접목하고 유통 서비스 경영과 결합시켜 경쟁력 있는 2차, 3차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농어민과 정부가 뜻을 합치고 지혜를 모으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다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국가가 보살펴야 합니다.
시혜적, 사후적 복지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능동적, 예방적 복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낙오자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됩니다.
여성은 시민사회와 국가발전의 당당한 주역입니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사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생애주기와 생활형편에 따른 수요에 맞추어 맞춤형 보육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정부가 보육의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청년세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국내외에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젊은이들의 사회 진출을 돕겠습니다. 주거생활을 안정시킴으로써 개인 생활은 물론 사회의 안정 기반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복지대책도 시급합니다. 노령연금을 현실화하고, 공공복지를 개선하겠습니다.
고령자를 위한 의료혜택과 시설을 늘리고, 근로의욕이 있는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겠습니다.
장애인들에게도 더 따뜻한 배려와 함께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피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선진화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청소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꿈과 활력의 발전기 입니다. 청소년들의 적성과 잠재력을 개발하고 디지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교육현장에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의 숨결을불어 넣어야 합니다.
학교유형을 다양화하고 교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겠습니다. 그래야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 열풍이 잦아들게 됩니다. 학생들의 적성과 창의력이 살아납니다.
대학의 자율화는 국가경쟁력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선진화의 관건입니다. 교육과 연구의 역량을 늘려서 세계의 대학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지식기반사회의 전선에 서야 합니다.
교육의 기회를 질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복지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습니다.
과학이 사회를 합리적으로 바꾸고 선진화 시킵니다. 한국의 몇몇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20년, 30년을 내다보면서 과학기술의 창의적 역량을 키워 가겠습니다.
우수한 과학도를 길러내고, 과학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과학기술이 미래로 가는 문을 열어줍니다.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거대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국가가 장기계획을 가지고 밀어 주어야 합니다. 대학과 기업과 정부의 연구개발 협력체제도 보다 실질화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주택은 재산이 아니라 생활의 인프라입니다. 주거생활의 수준을 높이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주거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겠습니다.
국토의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고자 합니다. 해양지향, 광역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래의 생활양식에 필요한 공간 활용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친환경, 친문화적 기조를 유지하여 국토의 건강성과 품격을 높여나가겠습니다.
환경보전은 삶의 질을 개선하고 환경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냅니다. 지구 환경 변화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상재해가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이에 적응하려면 당장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참고 창의적으로 적응해야만 합니다.
식량, 환경, 물, 자원, 에너지 등과 관련된 정책 전반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입니다. 최근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한류는 그런 전통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현대화와 문화예술의 선진화가 함께 가야 경제적 풍요도 빛이 날 것입니다.
이제는 문화도 산업입니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문화강국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격조가 올라갑니다. 문화로 즐기고, 문화로 화합하며, 문화로 발전해야 합니다.
정부는 우리 문화의 저력이 21세기의 열린 공간에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더 넓은 시야, 더 능동적 자세로 국제사회와 더불어 함께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외교를 펼칠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과 종교, 빈부의 차이를 넘어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 공동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에 동참하겠습니다.
미국과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미래지향적 동맹관계로 발전, 강화시키겠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형성된 역사적 신뢰를 바탕으로 전략적 동맹관계를 굳건히 해 나가겠습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일본, 중국, 러시아와 고루 협력관계를 강화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모색하겠습니다.
우리 경제의 엔진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자원과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에도 힘쓸 것입니다. 아울러 평화와 환경을 위한 국제협력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외교역량에 걸맞게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기여외교를 펴겠습니다. UN 평화유지군에 적극 참여하고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겠습니다.
문화외교에 역점을 두어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더 원활히 하겠습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이 어우러지면 한국의 매력을 세계로 내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7천만 국민의 염원입니다.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천 달러에 이르도록 돕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족을 위하는 길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7천만 국민을 잘 살게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서로 존중하면서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는가, 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라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변하지 않고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발전 방향과 실천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민생고를 덜어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용정치의 기본입니다.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 봅시다. 소모적인 정치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합시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생산적인 일을 챙겨 합시다.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국회와 협력하고, 사법부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대한민국 지도를 세계로 넓히겠습니다. 세계의 문물이 거침없이 들어와서 이 땅에서 새로운 가치로 창조되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내보내는 나라 선진 일류국가가 되게하겠습니다.
선대의 기원이고, 당대의 희망이며,후대와의 약속입니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정부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나서 주셔야 합니다. 각자가 스스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더 튼튼하게 길러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기업인과 노동자들은 손잡고 더 진취적으로 매진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군인과 경찰은 국가와 사회를 더 성실히 지켜야 합니다.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도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공직자들은 더 성심껏 국민을 섬겨야 합니다. 대통령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시대적 과제,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한 대전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저, 이명박이 앞장서겠습니다.
국민이 합심하여 떨치고 나서면 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2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 제17대 대통령 퇴임사 #===
|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지난 5년 대통령으로서 봉사할 기회를 주시고, 늘 함께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바닷가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길에서 장사를 하며 고학하던 소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만들어온 우리 국민 또한 참으로 위대한 국민입니다.
위대한 국민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지난 5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보람되고 영광된 시간이었습니다.
5년 전 저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을 선진화하는데 제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청와대 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나가는 이 순간까지, 잠시도 잊지 않았던 소명은 오로지 선진일류국가로 가는 기초를 닦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미진한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은 계속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선진국이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 큰 대한민국'이 우리 눈앞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85%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이런 저런 어려움이 우리 삶을 고단하게 해도 우리가 이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 국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긍심과 자신감이야말로, 앞으로 펼쳐질 웅대한 대한민국의 꿈을 실현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5년간 두 차례에 걸친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큰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지고자 힘써왔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정부가 출범하던 때는 세계 어떤 나라도, 어떤 전문가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전 세계를 엄습하면서, 모든 나라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 외국 언론은 한국이 가장 먼저 침몰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2백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고 2만 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했던 때보다도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오직 이 위기를 넘겨야 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데 전력을 쏟았습니다.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하고, 매주 빠짐없이, 무려 145차례에 걸쳐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신속하고 선제적이며 과감하게, 정책을 집행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과 통화 스왑을 체결한 것은 금융위기 극복에 결정적 힘이 되었습니다.
그 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유럽발 재정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지켜온 재정건전성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재정건전성이 취약한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과는 달리, 우리는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노·사·정이 힘을 모으고, 국민 모두가 합심해서 위기 극복을 위해 밤낮없이 땀 흘렸습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대 무역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한·아세안, 한·EU, 한·미 FTA를 통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경제영토를 개척했습니다.
지난 해 세계 7번째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이 넘는 나라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세계 주요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모두 떨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은 지난 5년간 OECD 34개국 중 가장 높이 상승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장구한 세계사 속에서 위기는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위치를 바꾸는 큰 분수령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또한 오히려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일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고, 마침내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위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분명한 교훈은 이제 글로벌 리더십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도, 키울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세계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연결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세계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이처럼 깊이 연관된 적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녹색성장 비전을 제시한 것도 유효했습니다.
녹색성장은 이제 세계 공통 용어가 되고 많은 나라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만 잘사는 길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잘사는 길을 우리가 앞장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G20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이 되어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으로 선출되고, 미래의 대표적인 국제기구로 전망되는 녹색기후기금을 유치한 것은 우리의 글로벌 외교가 글로벌 리더십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5대양 6대주의 모든 나라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질서를 쫓아가던 나라에서 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 살기만 바빴던 나라에서 앞장 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나라,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일류국가의 모습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돌이켜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처음엔 갑자기 긴 터널에 들어온 것처럼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위기 대처를 위해 지혜를 모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가 힘과 지혜만 모으면 어떤 어려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묵묵히 땀 흘려 온 기업인, 근로자, 공직자,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고맙고 또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묵묵히 참고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가락동 새벽시장에서 "얼마나 힘드시냐"고 하는 저에게 "나야 나 살려고 하는 일이지만, 대통령이야말로 얼마나 힘드시냐?"며 도리어 저를 위로하던 박부자 할머니에게 받았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어려운 다른 이들을 걱정하며 열심히 사는 이런 분들을 저는 곳곳에서 만났습니다.
그 분들이 바로 우리 국민들의 참 모습입니다.
사실 경제위기 때는 물론이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서민들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일자리 나누기, 복지 사각지대 지원, 미소 금융, 든든 학자금, 전통시장 상품권 같은 다양한 친서민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기대만큼 서민들의 어려움이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는 세계 모든 나라의 공통 과제로서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에 대해 많이 고심하면서 새로운 비전과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친서민 중도실용, 동반성장, 공생발전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제시된 비전입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자연과 인간, 국가와 국가, 남과 북, 기업가와 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인과 청년, 남성과 여성,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길입니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 가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중소기업 정책을 강화하고 동반성장을 통해 상생의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복지, 교육과 보육, 문화, 과학기술에 대한 제도를 확충하고 투자를 계속 늘리는 것도 필수적인 일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국정의 중심을 삶의 질 향상에 두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 자유롭고 더 풍요해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행복해 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 큰 길에 이념과 지역과 세대를 넘는 협력과 동참이 필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입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모델이 되는 나라들이 있었고, 그 나라들을 따라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 경제 영토 2/3와 맺은 FTA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자유 통상 국가의 길을 추구하는 것도 대한민국만이 시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을 더욱 강화하면서, 세계가 가야할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몫입니다.
인류적 의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한 말이나 구호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녹색성장기본법을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예측치(BAU) 보다 30% 줄이겠다고 스스로 한 약속을 우리는 꼭 지켜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과 대규모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시행한 4대강 살리기 사업도 그 취지를 계속 살려나가야 합니다.
국내 일부에서 논란도 있지만, 해외 전문가 그룹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OECD는 '종합적 수자원관리의 성공사례'로 꼽고, 유엔환경기구(UNEP)은 '강 복원을 통한 녹색경제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태국 물 관리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 기반한 창조와 선도의 과학기술 역사를 만드는 것도 코리아 루트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지난 5년간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그 이전 10년 합친 것 보다 많은 총 68조원을 투자했고, GDP 대비 투자 비율은 세계 2위가 되었습니다.
이를 계속 살려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는 국내외 과학자들이 모여 인류를 위한 기초과학의 꿈을 키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만이 아니라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력중심 사회를 지양하고 능력중심 사회를 열기 위해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신고졸시대를 열었습니다.
저는 지난 2월 7일 마이스터고 졸업식에 참석해서 졸업생들의 자신에 찬 모습과 학부모들의 밝은 표정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취업난 속에서도 100%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서, 능력중심 사회로 변화해 가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정부 출범 시 4.2%에 불과했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은 13.7%로 높아졌고, 6대 전략광물 자주개발율도 18.5에서 29%로 높아진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 역시 계속 살려가야 할 코리아 루트입니다.
한류를 전 세계에 확산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으로 나가 어려운 이웃나라에서 땀 흘려 봉사하며 세계인의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전인미답의 코리아 루트가 더욱 힘차게 개척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통일에 달려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관계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안으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5년이 북한이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상생공영의 남북관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내 정치를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하지도 않았고 실질적인 변화 없이는 일방적 지원도 절제했습니다.
도발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으로도 한·미 간 완벽한 공조와 중국을 위시한 주요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펼쳐나간다면,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주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만류와 경고를 무시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북한정권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핵과 미사일이 북한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과 제재를 자초해 막다른 길로 점점 다가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변화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통일의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굳게 믿습니다.
서둘러 통일을 준비해야합니다.
물론 한 치의 빈 틈 없는 확고한 안보태세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 정부 5년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더 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었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저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는 끝나도, 국민 행복을 위한 저의 명예로운 의무는 계속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국정을 도와주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5년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생각을 달리하고 불편했던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정의 책임을 내려놓는 이 시점에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정부를 간절히 바랬지만,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가슴 깊이 안고 가야할 아픔도 있습니다.
바로 천안함 46용사들입니다.
이들을 떠나보내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이름을 부를 때 목이 메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바로 그날, 저는 이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한 사람 한 사람 부르고자 합니다.
온 국민과 함께 박근혜 당선인과 새 정부에 따뜻한 축복을 보냅니다.
저는 새 정부가 '더 큰 대한민국'과 '행복한 국민'을 향한 큰 길을 열어갈 것으로 믿습니다.
헌신적으로 보좌한 국무위원과 비서진,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힘들 때마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에게 감사하고,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인생을 늘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버거운 역사적 책임을 내려놓으면서, 저는 다시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있습니다.
퇴임 후 꽃피는 계절이 오면, 4대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우리 강산을 한 번 둘러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저에게 항상 기회와 용기를 주신 국민 여러분, 내내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3년 2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지난 5년 대통령으로서 봉사할 기회를 주시고, 늘 함께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바닷가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길에서 장사를 하며 고학하던 소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만들어온 우리 국민 또한 참으로 위대한 국민입니다.
위대한 국민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지난 5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보람되고 영광된 시간이었습니다.
5년 전 저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을 선진화하는데 제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청와대 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나가는 이 순간까지, 잠시도 잊지 않았던 소명은 오로지 선진일류국가로 가는 기초를 닦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미진한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은 계속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선진국이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 큰 대한민국'이 우리 눈앞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85%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이런 저런 어려움이 우리 삶을 고단하게 해도 우리가 이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 국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긍심과 자신감이야말로, 앞으로 펼쳐질 웅대한 대한민국의 꿈을 실현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5년간 두 차례에 걸친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큰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지고자 힘써왔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정부가 출범하던 때는 세계 어떤 나라도, 어떤 전문가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전 세계를 엄습하면서, 모든 나라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 외국 언론은 한국이 가장 먼저 침몰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2백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고 2만 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했던 때보다도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오직 이 위기를 넘겨야 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데 전력을 쏟았습니다.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하고, 매주 빠짐없이, 무려 145차례에 걸쳐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신속하고 선제적이며 과감하게, 정책을 집행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과 통화 스왑을 체결한 것은 금융위기 극복에 결정적 힘이 되었습니다.
그 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유럽발 재정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지켜온 재정건전성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재정건전성이 취약한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과는 달리, 우리는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노·사·정이 힘을 모으고, 국민 모두가 합심해서 위기 극복을 위해 밤낮없이 땀 흘렸습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대 무역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한·아세안, 한·EU, 한·미 FTA를 통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경제영토를 개척했습니다.
지난 해 세계 7번째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이 넘는 나라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세계 주요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모두 떨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은 지난 5년간 OECD 34개국 중 가장 높이 상승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장구한 세계사 속에서 위기는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위치를 바꾸는 큰 분수령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또한 오히려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일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고, 마침내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위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분명한 교훈은 이제 글로벌 리더십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도, 키울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세계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연결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세계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이처럼 깊이 연관된 적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녹색성장 비전을 제시한 것도 유효했습니다.
녹색성장은 이제 세계 공통 용어가 되고 많은 나라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만 잘사는 길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잘사는 길을 우리가 앞장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G20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이 되어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으로 선출되고, 미래의 대표적인 국제기구로 전망되는 녹색기후기금을 유치한 것은 우리의 글로벌 외교가 글로벌 리더십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5대양 6대주의 모든 나라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질서를 쫓아가던 나라에서 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 살기만 바빴던 나라에서 앞장 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나라,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일류국가의 모습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돌이켜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처음엔 갑자기 긴 터널에 들어온 것처럼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위기 대처를 위해 지혜를 모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가 힘과 지혜만 모으면 어떤 어려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묵묵히 땀 흘려 온 기업인, 근로자, 공직자,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고맙고 또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묵묵히 참고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가락동 새벽시장에서 "얼마나 힘드시냐"고 하는 저에게 "나야 나 살려고 하는 일이지만, 대통령이야말로 얼마나 힘드시냐?"며 도리어 저를 위로하던 박부자 할머니에게 받았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어려운 다른 이들을 걱정하며 열심히 사는 이런 분들을 저는 곳곳에서 만났습니다.
그 분들이 바로 우리 국민들의 참 모습입니다.
사실 경제위기 때는 물론이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서민들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일자리 나누기, 복지 사각지대 지원, 미소 금융, 든든 학자금, 전통시장 상품권 같은 다양한 친서민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기대만큼 서민들의 어려움이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는 세계 모든 나라의 공통 과제로서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에 대해 많이 고심하면서 새로운 비전과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친서민 중도실용, 동반성장, 공생발전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제시된 비전입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자연과 인간, 국가와 국가, 남과 북, 기업가와 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인과 청년, 남성과 여성,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길입니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 가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중소기업 정책을 강화하고 동반성장을 통해 상생의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복지, 교육과 보육, 문화, 과학기술에 대한 제도를 확충하고 투자를 계속 늘리는 것도 필수적인 일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국정의 중심을 삶의 질 향상에 두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 자유롭고 더 풍요해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행복해 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 큰 길에 이념과 지역과 세대를 넘는 협력과 동참이 필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입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모델이 되는 나라들이 있었고, 그 나라들을 따라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 경제 영토 2/3와 맺은 FTA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자유 통상 국가의 길을 추구하는 것도 대한민국만이 시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을 더욱 강화하면서, 세계가 가야할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몫입니다.
인류적 의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한 말이나 구호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녹색성장기본법을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예측치(BAU) 보다 30% 줄이겠다고 스스로 한 약속을 우리는 꼭 지켜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과 대규모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시행한 4대강 살리기 사업도 그 취지를 계속 살려나가야 합니다.
국내 일부에서 논란도 있지만, 해외 전문가 그룹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OECD는 '종합적 수자원관리의 성공사례'로 꼽고, 유엔환경기구(UNEP)은 '강 복원을 통한 녹색경제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태국 물 관리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 기반한 창조와 선도의 과학기술 역사를 만드는 것도 코리아 루트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지난 5년간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그 이전 10년 합친 것 보다 많은 총 68조원을 투자했고, GDP 대비 투자 비율은 세계 2위가 되었습니다.
이를 계속 살려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는 국내외 과학자들이 모여 인류를 위한 기초과학의 꿈을 키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만이 아니라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력중심 사회를 지양하고 능력중심 사회를 열기 위해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신고졸시대를 열었습니다.
저는 지난 2월 7일 마이스터고 졸업식에 참석해서 졸업생들의 자신에 찬 모습과 학부모들의 밝은 표정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취업난 속에서도 100%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서, 능력중심 사회로 변화해 가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정부 출범 시 4.2%에 불과했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은 13.7%로 높아졌고, 6대 전략광물 자주개발율도 18.5에서 29%로 높아진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 역시 계속 살려가야 할 코리아 루트입니다.
한류를 전 세계에 확산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으로 나가 어려운 이웃나라에서 땀 흘려 봉사하며 세계인의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전인미답의 코리아 루트가 더욱 힘차게 개척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통일에 달려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관계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안으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5년이 북한이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상생공영의 남북관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내 정치를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하지도 않았고 실질적인 변화 없이는 일방적 지원도 절제했습니다.
도발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으로도 한·미 간 완벽한 공조와 중국을 위시한 주요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펼쳐나간다면,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주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만류와 경고를 무시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북한정권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핵과 미사일이 북한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과 제재를 자초해 막다른 길로 점점 다가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변화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통일의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굳게 믿습니다.
서둘러 통일을 준비해야합니다.
물론 한 치의 빈 틈 없는 확고한 안보태세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 정부 5년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더 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었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저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는 끝나도, 국민 행복을 위한 저의 명예로운 의무는 계속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국정을 도와주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5년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생각을 달리하고 불편했던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정의 책임을 내려놓는 이 시점에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정부를 간절히 바랬지만,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가슴 깊이 안고 가야할 아픔도 있습니다.
바로 천안함 46용사들입니다.
이들을 떠나보내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이름을 부를 때 목이 메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바로 그날, 저는 이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한 사람 한 사람 부르고자 합니다.
온 국민과 함께 박근혜 당선인과 새 정부에 따뜻한 축복을 보냅니다.
저는 새 정부가 '더 큰 대한민국'과 '행복한 국민'을 향한 큰 길을 열어갈 것으로 믿습니다.
헌신적으로 보좌한 국무위원과 비서진,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힘들 때마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에게 감사하고,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인생을 늘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버거운 역사적 책임을 내려놓으면서, 저는 다시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있습니다.
퇴임 후 꽃피는 계절이 오면, 4대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우리 강산을 한 번 둘러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저에게 항상 기회와 용기를 주신 국민 여러분, 내내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3년 2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
7.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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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이명박/별명#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이명박/별명#|]]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저서
| | | |
| 신화는 없다[43], 이명박 |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44], 이명박 | 대통령의 시간[45], 이명박 |
9. 대중 매체에서
이명박을 모티브로 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다수 있다.[46]- 야망의 세월 - 박형섭: 대한건설 직원이다. 유인촌이 연기했으며 이 인연으로 인해 나중에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장관까지 되었다.
- 영웅시대 - 박대철: 세기건설 직원이다. 유동근이 연기했다.
- 재벌집 막내아들 - 본인: 순양그룹의 사위였던 최창제는 이명박의 등장으로 인해 당에서 공천도 못 받고 서울시장 재선에 실패했다.
- 스노든 - 본인: 자료 화면 속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 38대조 중시조(中始祖) 이거명 (李居明)
- 37대조 이금현 (李金現)
- 36대조 이금서 (李金書)
- 35대조 이윤홍 (李潤弘)
- 34대조 이승훈 (李承訓)
- 33대조 이주복 (李周復)
- 32대조 이칭 (李偁)
- 31대조 이치련 (李侈連)
- 30대조 이총섬 (李寵暹)
- 29대조 이춘정 (李春貞)
- 28대조 이현복 (李玄福)
- 27대조 이선용 (李宣用)
- 26대조 이승고 (李升高)
- 25대조 이득견 (李得堅)
- 24대조 이핵 (李翮)
- 23대조 이세기 (李世基)
- 22대조 이천 (李蒨) - 국당공파(菊堂公派)의 파조
- 21대조 이경중 (李敬中) - 문정공파(文貞公派)의 파조
- 20대조 이육 (李毓)
- 19대조 이정견 (李廷堅)
- 18대조 이형 (李衡)
- 17대조 이종윤 (李從允)
- 16대조 이계세 (李繼世)
- 15대조 이적 (李迪)
- 14대조 이유 (李瑜)
- 13대조 이군영 (李君塋)[47]
- 12대조 이성립 (李成立, 1552년 ~ 미상)
- 11대조[48] 이준 (李濬, 1568년 ~ 1635년, 향년 67세)
- 10대조 이유일 (李惟一, 1592년 ~ 1633년, 향년 41세)
- 비조부(9대조) 이두첨 (李斗瞻, 1622년 ~ 1701년, 향년 69세)
- 원조부(8대조) 이세팽 (李世彭, 1648년 ~ 1733년, 향년 85세)
- 태조부(7대조) 이시태 (李始泰, 1696년 ~ 미상)
- 열조부(6대조) 이용필 (李龍弼, 1720년 ~ 미상)
- 현조부(5대조)[49] 이달준 (李達俊, 1777년 ~ 1851년, 향년 74세)
- 고조부 이임 (李林, 1795년 ~ 1837년, 향년 42세)
- 증조부 이수발 (李圭秀, 1822년 ~ 1911년 5월 4일, 향년 89세)
- 조부 이종한 (李鍾漢, 1857년 11월 ~ 1940년 11월 16일, 향년 83세)
- 부친 이충우 (李忠雨, 1907년 11월 14일 ~ 1982년 9월 21일, 향년 74세)
10. 가족 관계
- 조부 이종한 (1857 ~ 1940) / 조모 문덕립 (1882 ~ 1968)
- 아버지 이충우 (1907 ~ 1982)[50] / 어머니 채태원 (1909 ~ 1965)[51]
- 누나 이귀선 (1930 ~ 2010) / 夫 김일용 (1924 ~ 1983)[52]
- 조카 김동석
- 조카 김동혁 (1951 ~ ) 前 현대산업개발 자재부장[53]
- 형 이상은 (1933 ~) 다스 회장 / 妻 박청자
- 조카 이동형 다스 부사장
- 조카 이씨 / 夫 전종화 (1966 ~ ) 前 씨모텍 부사장[54]
- 형 이상득 (1935 ~ 2024) 전 국회부의장 / 妻 최신자 (1941 ~ )
- 조카 이지형 (1966 ~ ) 前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 / 妻 조재희 (1973 ~ )
- 조카 이성은 (1969 ~ ) / 夫 구본천 (1964 ~ )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55]
- 종손 구씨 (2001 ~ )[56]
- 조카 이지은 (1970 ~ ) / 夫 오정석 (1970 ~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57]
- 누나 이귀애 (1938 ~ 1950[A])
- 본인 이명박(족보명 이상정) (1941 ~ ) / 妻 김윤옥 (1947 ~ )
- 장녀 이주연 (1971 ~ )[B] / 夫 이상주 (1970 ~ ) 청계재단 이사 겸 삼성전자 해외법무팀 전무이사[60]
- 손주 1남 1녀
- 차녀 이승연 (1973 ~ )[B] / 夫 최의근 (1973 ~ )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62]
- 손녀 2녀
- 3녀 이수연 (1975 ~ )[63] / 夫 조현범 (1972 ~ )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 사장[64]
- 손주 1남 1녀[65]
- 아들 이시형 (1978 ~ ) 다스 전무이사 겸 에스엠 대표이사[66] / 妻 손진아[67]
- 남동생 이상필 (1943 ~ 1950[A])
- 여동생 이윤진 (1946 ~)[70] / 夫 김진 에스엠 대표[71]
11. 선거 이력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5ba6,#005ba6><tablebgcolor=transparent><rowbgcolor=#005ba6,#005ba6><rowcolor=#ffc224,#ffc224>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전국구 | [[민주자유당| 민주자유당 ]] | 7,923,718 (38.5%) | 당선 (25번) | 초선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종로 | | 40,230 (41.01%) | 당선 (1위) | 재선[72] |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서울특별시장 | [[한나라당| 한나라당 ]] | 1,819,057 (52.28%) | 초선 | |
| 2007 | 제17대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 [[한나라당| 한나라당 ]] | 11,492,389 (48.67%) | [73] |
| 역대 선거 벽보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 |
| | ||
| 제17대 대통령 선거 | }}}}}}}}} |
| 역대 후보 이력 | |||||||||||||||||||||||||||||||||||||||||||||||||||||||||||||||||||||||||||||||||||||||||||||||||||||||||||||||||||||||||||||||||||||||||||||||||||||||||||||||||||||||||||||||||||||||||||||||||||||||||||||||||||||||||||||||||||
| |||||||||||||||||||||||||||||||||||||||||||||||||||||||||||||||||||||||||||||||||||||||||||||||||||||||||||||||||||||||||||||||||||||||||||||||||||||||||||||||||||||||||||||||||||||||||||||||||||||||||||||||||||||||||||||||||||
12. 소속 정당
| <rowcolor=#ffc224,#ffc224> 소속 | 기간 | 비고 |
| [[민주자유당| 민주자유당 ]] | 1992 - 1995 | 정계 입문 |
| | 1995 - 1997 | 당명 변경 |
| [[한나라당| 한나라당 ]] | 1997 - 2012 | 합당[74] |
| | 2012 - 2017 | 당명 변경 정계 은퇴 |
| | 2017 - 현재 | 탈당[75] |
13. 여담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이명박/여담#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이명박/여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4. 역대 프로필 사진
| | | |
| 국회의원 시절 | 제32대 서울특별시장 시절 | 제17대 대통령 후보 시절 (2007년) |
| | | |
| 제17대 대통령 전반 (2008년) | 제17대 대통령 후반 (2012년) |
15. 둘러보기
| <colkeepall> {{{#!wiki style="margin:-10px" | <tablebordercolor=transparent><tablebgcolor=transparent> | 이명박 관련 문서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95DA,#0095da> 일생 | 일생 · 구속 사건 (타임라인) · 재판 (1심 · 항소심 · 상고심) ·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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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라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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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 · 신종플루 유행 · 호남고속철도 착공 · 명텐도 ·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 · 쌍용차 사태 ·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 대청해전 · 롯데월드타워 건축허가 | |
| 2010년 | 천안함 피격 사건 · 연평도 포격전 · 5.24 조치 ·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 경부고속철도 2단계 개통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
| 2011년 | 아덴만 여명 작전 ·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 · 내곡동 사저 의혹 · 외규장각 반환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 |
| 2012년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 2012 여수 엑스포 ·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 이명박 대통령 천황 사과 요구 · 제18대 대통령 선거 · 정부세종청사 개청 · 번개사업 | |
| 2013년 | 나로호 3차 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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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대훈장 수훈자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 1949년 | 8월 15일 | 이승만 | 대통령 | 대한민국 | |||
| 1960년 | 8월 13일 | 윤보선 | 대통령 | 대한민국 | |||
| 1963년 | 12월 5일 | 12월 17일 | 박정희 | 대통령 | 대한민국 | ||
| 1967년 | 6월 23일 | 육영수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79년 | 12월 7일 | 12월 17일 | 최규하 | 대통령 | 대한민국 |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 |
| 홍기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80년 | 8월 29일 | 전두환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 이순자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노태우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 김옥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김영삼 | 대통령 | 대한민국 | ||
| 손명순 | 영부인 | 대한민국 |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김대중 | 대통령 | 대한민국 | ||
| 이희호 | 영부인 | 대한민국 | |||||
| 2008년 | 1월 28일 | 1월 31일 | 노무현 | 대통령 | 대한민국 | ||
| 권양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2013년 | 2월 12일 | 2월 22일 | 이명박 | 대통령 | 대한민국 | ||
| 김윤옥 | 영부인 | 대한민국 | |||||
| 2월 19일 | 2월 27일 | 박근혜 | 대통령 당선인 | 대한민국 | |||
| 2022년 | 5월 3일 | 문재인 | 대통령 | 대한민국 | |||
| 김정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하인리히 뤼프케 | 대통령 | 서독 | 외국인 최초 수훈 | |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빌헬미네 뤼브케 | 영부인 | 서독 | 외국인 최초 수훈 |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이스마일 나시루딘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틍쿠 인탄 자하라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푸미폰 아둔야뎃 | 국왕 | 태국 |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시리낏 끼띠야콘 | 왕비 | 태국 | ||
| 1966년 | 2월 1일 | 2월 15일 | 장제스 | 총통 | 중화민국 | ||
| 1968년 | 5월 10일 | 5월 18일 | 하일레 셀라시에 | 황제 | 에티오피아 |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반티에우 | 총통 | 남베트남 |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티마이아인 | 제1부인 | 남베트남 |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하마니 디오리 | 대통령 | 니제르 |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아이샤 디오리 | 영부인 | 니제르 |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 대통령 | 엘살바도르 |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 영부인 | 엘살바도르 |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오마르 봉고 | 대통령 | 가봉 |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조세핀 봉고 | 영부인 | 가봉 |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 대통령 | 세네갈 |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 영부인 | 세네갈 | ||
| 1980년 | 5월 11일 |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 국왕 | 사우디아라비아 | |||
| 1980년 | 5월 14일 |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 1981년 | 6월 25일 | 수하르토 | 대통령 | 인도네시아 | |||
| 1981년 | 6월 25일 | 시티 하티나 | 영부인 | 인도네시아 | |||
| 1981년 | 6월 29일 |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81년 | 6월 29일 | 틍쿠 아프잔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81년 | 7월 6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대통령 | 필리핀 | |||
| 1981년 | 7월 6일 | 이멜다 마르코스 | 영부인 | 필리핀 | |||
| 1981년 | 10월 13일 | 로드리고 카라소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 1981년 | 10월 13일 |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 영부인 | 코스타리카 | |||
| 1982년 | 5월 10일 | 사무엘 도 | 대통령 | 라이베리아 | |||
| 1982년 | 6월 7일 | 모부투 세세 세코 | 대통령 | 자이르 | |||
| 1982년 | 6월 7일 | 보비 라다와 | 영부인 | 자이르 | |||
| 1982년 | 8월 25일 | 압두 디우프 | 대통령 | 세네갈 | |||
| 1982년 | 12월 21일 | 케난 에브렌 | 대통령 | 튀르키예 |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 대통령 | 수단 |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 영부인 | 수단 | ||
| 1983년 | 9월 10일 | 후세인 1세 | 국왕 | 요르단 | |||
| 1983년 | 9월 10일 | 누르 | 왕비 | 요르단 | |||
| 1984년 | 4월 9일 | 하사날 볼키아 | 국왕 | 브루나이 | |||
| 1984년 | 4월 21일 | 할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 | 국왕 | 카타르 |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다우다 자와라 | 대통령 | 감비아 |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치렐 자와라 | 영부인 | 감비아 | ||
| 1985년 | 5월 17일 |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 대통령 | 파키스탄 | |||
| 1985년 | 5월 20일 |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 1986년 | 9월 4일 | 4월 10일 | 엘리자베스 2세 | 국왕 | 영국 | ||
| 1986년 | 9월 4일 | 4월 16일 | 보두앵 | 국왕 | 벨기에 | ||
| 1987년 | 4월 7일 | 아메드 압달라 | 대통령 | 코모로 | |||
| 1988년 | 11월 3일 | 이스칸다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88년 | 11월 3일 | 자나리아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20일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 대통령 | 서독 |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프랑수아 미테랑 | 대통령 | 프랑스 |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다니엘 미테랑 | 영부인 | 프랑스 | ||
| 1990년 | 6월 21일 |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 대통령 | 파라과이 | |||
| 1990년 | 11월 5일 | 괸츠 아르파드 | 대통령 | 헝가리 | |||
| 1991년 | 9월 13일 | 아즐란 샤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91년 | 9월 13일 | 투안쿠 바이눈 | 왕비 | 말레이시아 | |||
| 1991년 | 9월 25일 |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 대통령 | 멕시코 | |||
| 1992년 | 8월 13일 |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 대통령 | 과테말라 |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피델 라모스 | 대통령 | 필리핀 |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 영부인 | 필리핀 | ||
| 1994년 | 11월 7일 | 11월 21일 |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 대통령 | 칠레 | ||
| 1994년 | 12월 5일 | 12월 9일 | 레흐 바웬사 | 대통령 | 폴란드 | ||
| 1995년 | 2월 7일 | 2월 16일 | 이슬람 카리모프 | 대통령 | 우즈베키스탄 | ||
| 1995년 | 2월 21일 | 3월 6일 | 로만 헤어초크 | 대통령 | 독일 | ||
| 1995년 | 3월 28일 | 4월 3일 | 젤류 젤레프 | 대통령 | 불가리아 | ||
| 1995년 | 6월 26일 | 7월 7일 | 넬슨 만델라 | 대통령 | 남아프리카 공화국 | ||
| 1995년 | 9월 26일 | 9월 29일 | 카를로스 메넴 | 대통령 | 아르헨티나 | ||
| 1996년 | 7월 23일 | 9월 4일 | 알바로 아르수 | 대통령 | 과테말라 | ||
| 1996년 | 7월 23일 | 9월 11일 | 페르난두 카르도주 | 대통령 | 브라질 |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후안 카를로스 1세 | 국왕 | 스페인 |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공주 | 왕비 | 스페인 | ||
| 1996년 | 11월 26일 |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 국왕 | 말레이시아 | |||
| 1996년 | 12월 10일 | 12월 15일 | 레오니드 쿠치마 | 대통령 | 우크라이나 | ||
| 2000년 | 2월 22일 | 3월 3일 |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 대통령 | 이탈리아 | ||
| 2000년 | 2월 22일 | 3월 6일 | 자크 시라크 | 대통령 | 프랑스 | ||
| 2006년 | 3월 12일 |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 대통령 | 알제리 | |||
| 2007년 | 3월 26일 |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 2007년 | 3월 28일 |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 국왕 | 카타르 | |||
| 2009년 | 5월 13일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대통령 | 카자흐스탄 | |||
| 2009년 | 11월 12일 | 알란 가르시아 | 대통령 | 페루 | |||
| 2012년 | 5월 30일 | 칼 16세 구스타프 | 국왕 | 스웨덴 | |||
| 2012년 | 11월 21일 |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 대통령 | 아랍에미리트 | |||
| 2018년 | 10월 8일 | 10월 15일 | 에마뉘엘 마크롱 | 대통령 | 프랑스 | ||
| 2019년 | 6월 12일 | 하랄 5세 | 국왕 | 노르웨이 | |||
| 2021년 | 6월 14일 |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 대통령 | 오스트리아 | |||
| 2021년 | 6월 16일 | 펠리페 6세 | 국왕 | 스페인 | |||
| 2021년 | 6월 16일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왕비 | 스페인 | |||
| 2021년 | 8월 25일 | 이반 두케 | 대통령 | 콜롬비아 | |||
| 2021년 | 9월 21일 | 보루트 파호르 | 대통령 | 슬로베니아 | |||
| 2023년 | 7월 13일 | 안제이 두다 | 대통령 | 폴란드 | |||
| 2023년 | 11월 21일 | 찰스 3세 | 국왕 | 영국 | |||
| 2024년 | 11월 16일 | 디나 볼루아르테 | 대통령 | 페루 | |||
| 2025년 | 10월 29일 | 도널드 트럼프 | 대통령 | 미국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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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익현 | 이만섭 | | 안무혁 | ||||||
| | | | | ||||||
| | 강선영 | 정시채 | | ||||||
| 강용식 | | | | ||||||
| 서상목 | 윤태균 | 박구일 | 곽영달 | ||||||
| 이명박 | 이환의 | 강인섭 | 김동근 | ||||||
| | | 이현수 | 노인도 | ||||||
| | | | 박근호 | ||||||
| 유성환 | 이재명 | 정옥순 | 김찬두 | ||||||
| 김사성 | 이연석 | 이민헌 | 이수담 | ||||||
| | 김정숙 | 김현배 | 박승웅 | ||||||
| 진경탁 | 허세욱 | ||||||||
| 민주당 22석 | |||||||||
| | <colbgcolor=#009d68> | 이기택 | <colbgcolor=#009d68> | 강창성 | <colbgcolor=#009A44> | | |||
| | | | 김옥천 | ||||||
| | 이동근 | 국종남 | | ||||||
| 강희찬 | | 박일 | | ||||||
| 박은태 | 장기욱 | 김말룡 | 양문희 | ||||||
| | 이장희 | | | ||||||
| 최병욱 | 장정곤 | 김유진 | 서호석 | ||||||
| 장광근 | 박명서 | 한원석 | 김용덕 | ||||||
| 정양숙 | 고홍길 | ||||||||
| 통일국민당 7석 | |||||||||
| 문창모 | 양순직 | | | ||||||
| 최영한 | 이건영 | 정장현 | 강부자 | ||||||
| 이용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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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석 | 홍사덕 | 이회창 | 맹형규 | 김병태 | |
| 강동 갑 | 강동 을 | ||||
| 이부영 | 김중위 | ||||
| 선거 결과 | |||||
| * 종로 이명박 사퇴 (1998.2.21.) * 서초 갑 최병렬 사퇴 (1998.4.29.) * 구로 을 이신행 당선무효 (1998.12.22.) * 송파 갑 홍준표 사퇴 (1999.3.9.) * 강남 갑 서상목 사퇴 (1999.9.6.) * 구로 을 한광옥 사퇴 (1999.11.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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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 서정화 | 이세기 | 노승우 | 김영구 | 이순재 |
| 백남치 | 박명환 | 박주천 | 박범진 | 김기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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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섭 | 박경수 | 김기수 | 박우병 | 정재철 | |
| 이용삼 | 이춘구 | 신경식 | 김종호 | 민태구 | |
| 송광호 | 성무용 | 이상재 | 황명수 | 박희부 | |
| 오장섭 | 송영진 | 양창식 | 황인성 | 김길홍 | |
| 박세직 | 금진호 | 박헌기 | 김윤환 | 류돈우 | |
| 김찬우 | 이상득 | 황윤기 | 이영창 | 장영철 | |
| 반형식 | 김종하 | 황낙주 | 차화준 | 차수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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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일 | 정필근 | 신재기 | 신상식 | 나오연 | |
| 김채겸 | 김봉조 | 박희태 | 노인환 | 이강두 | |
| 권해옥 | 현경대 | 양정규 | 변정일 | 권익현 | |
| 이만섭 | 안무혁 | 강선영 | 정시채 | 강용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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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성 | 이연석 | 이수담 | 김정숙 | 김현배 | |
| 박승웅 | 진경탁 | 허세욱 | 최영한 | 이건영 | |
| 정장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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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태 | 염홍철 | 박맹우 | 손학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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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영 | 이의근 | 김태호 | 김한욱 [[권한대행| 권한대행 ]] | ||
| * 경상남도지사 김혁규 사퇴 (2003.12.15.) * 부산광역시장 안상영 임기 중 사망 (2004.2.4.) * 제주도지사 우근민 도지사직 상실 (2004.4.27.) * 전라남도지사 박태영 임기 중 사망 (2004.4.29.) * 충청남도지사 심대평 사퇴 (2006.3.24.) * 제주도지사 김태환 사퇴 (2006.5.8.) |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임기: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
| 1960-1961 · 민선 1기 · 민선 2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민선 8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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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 김진선 | 김태호 | 박맹우 | 손학규 | 안상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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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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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41년 11월 2일. 여담으로 12월 19일은 본인의 결혼 기념일이자 대통령 당선일이라 트리플 크라운 데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역대 대통령 중 생일이 가장 늦다. 이명박 다음으로 늦는 인물은 단 하루 차이로 윤석열이다.[2] 2026년 현재 생존 중인 전현직 대통령 중 최고령이다.[3] 이후에 도가쿠이도()에서 후쿠이도()로 바뀌었고, 1955년에 가미촌이 오사카시에 통합되며 후쿠이도()에서 가미후쿠이도()로 바뀌었다. 이후 1974년에 현재 가미미나미(加美南)정으로 통 폐합 되었다. 지금 이름인 가미미나미(加美南)정과 혼동되어 존재한 적이 없는 가미미나미 후쿠이도()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MB도 모르는 오사카 출생지(JBC 뉴스) 1945년 8.15 광복 직후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실질적인 고향은 경상북도 포항시이다. 포항시 덕실마을에 이명박 전 대통령 고향집이 위치해 있다. 주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길 512-7이며, 2007년 포항시에서의 경선 연설 중에도 자신의 고향이 포항이라 말한 바 있다.[4] 이카루가 유업 본사가 위치했으나 오염된 우유를 먹고 지역 주민들이 단체로 소화 기관에 문제가 생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많은 소송전에 직면한 끝에 결국 폐업했고, 현재는 건물이 철거되어 공사 중에 있다. 구글 지도 링크[5] 이명박/자택 참조.[6] 어맹뿌 밈이 바로 이 서명 특유의 필기체에서 파생된 것이다.[7] 국당공파(菊堂公派)-문정공파(文貞公派) 중시조 39세손 상○(相○)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족보명 이상정(李相定). 다만 다른 족보에는 본명 이명박으로 기재되어 있다.(족보) 헤이그 특사 정사(正使) 이상설, 민족대표 33인 이갑성, 이상정의 동생인 시인 이상화, 삼성그룹 창업주 겸 초대 총수 이병철(즉 이건희, 이재용를 비롯한 범삼성가 자체가 경주 이씨다. 단, 이병철은 항렬에 맞는 이름이 아니다.),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와 같은 항렬이다. 여담으로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이재명은 중시조 41세로서 같은 국당공파(-제정공파)에 속하지만 손자뻘이다.[8] 고향집 터가 있는 538번지 바로 앞에 있다.[9] 인천 채씨 소감공파-유정공파 30세손.(족보)[10]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기였던 2010년 1월 30일 사망.[A] 1950년 6.25 전쟁 당시 피난 중에 사망했다.[A] [13] 본명은 이말분이었으나 개명했으며, 선교사로 활동 중이다.[14] 병무청공고제2002-26호(지방선거당선자의병역사항공개)[15] 소망교회 은퇴 장로다. 서울특별시장 재임 당시 "수도 서울특별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모 기도회에서 발언한 적이 있었고, 대통령 재임 당시 고려대+소망교회+영남 코드인사로도 비판받은 적이 있었다.[16] 175cm였으나 현재는 고령으로 인해 키가 줄어 173cm이다. #[17] 2017년 1월 1일에
을 탈당했다.[18]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으나, 서울특별시장에 재임하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려대학교 동문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천에서 따온 청계(淸溪)로 바꿔 지었다. 참고로 안중근 의사와 호가 같다.[19]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학생회장으로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6.3 항쟁을 주도했다. 이후 수배된 이명박은 서울교도소(현 서울구치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다.[20] 새마음봉사단으로 불리던 당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는 박근혜 영애였다. 1978년 위촉장 수여식에서 두 사람은 처음 조우한 것으로 알려졌다. # 1979년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새마음제전에서 박근혜 전 총재, 최순실 전 대학생총연합회장과 함께 관람하는 사진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21] 12년 간 회장직을 맡았다.[22]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수여.[23] 현대건설 회장 자격으로 참여했다. 당시 언론 보도.[24] 영포빌딩 소유. 이 회사 대표자격으로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해서 월급을 99만원 받는다고 신고해서 화제가 되었다.[25] 출처.[26] 출처[27] "부동산임대이명박"이 회사이름이다. 대명주빌딩 관리.[28] 교회 설립 초기 멤버로, 장로가 되기 위해서 주차봉사활동도 하는 등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퇴임 이후로는 발길을 끊은 것으로 보였으나, 윤석열 정부 시절 사면복권 된 이후에 교회를 찾았다.[29] 당시 1위는 노태우 정부 시절 국무총리 역임했던 정원식이 공천 받았다.[30]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아 판결 나오기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본인이 사퇴한 지역구에 재보궐선거를 치렀는데, 들어온 사람이 본인 전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다.[31] 당시 1위는 마지막 관선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고, 훗날 한나라당 대표를 했던 최병렬이 최종 공천 되었다.[32] 훗날 여기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33]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인데, 아내인 김윤옥 여사의 친인척들이 번갈아 총재직을 맡고 있는 단체라고 한다.[34] 참고. BBK, LKe뱅크, e뱅크증권 중개 이 3개 기업을 통칭해 e뱅크코리아라고 명명했고, 이명박은 e뱅크코리아 회장으로 대외활동을 했다.[35] 홈페이지상에서는 아직도 고문으로 나와 있다.[36] 서울특별시장이 당연직으로 겸임한다.[37] 이미 2000년에 맡은 적이 있었다. 참고.[38] 現 광복회 회장.[39] 제13대 부산 동구, 제15대 종로구 국회의원,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40] 득표율 차이는 여전히 제6공화국 역사상 최고 기록이며, 득표수 차이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5,570,951표) 이전까지 제6공화국 역사상 최다 기록이었다.[41] 상세한 내용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참조.[42] 다만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아래 전직대통령법)' 제7조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 받거나 재직 중 탄핵 결정을 받아 퇴임됐을 경우 '필요한 기간의 경호나 경비'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예우는 모두 박탈된다.[43] 1995년에 이명박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쓴 수필.[44] 2008년에 대통령 취임 직전에 출간한 에세이.[45]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쓴 회고록.[46] 이승만, 박정희 같은 옛날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민감성을 이유로 이들처럼 실명으로 등장할 수 없다. 이명박이 실명 그대로 등장하려면 최소 한두세대는 지나야 한다.[47] 여담으로 족보에 기재된 13대 조모 평산 신씨는 본처로 추정된다.[48] 양가 11대조(친가 11대조의 첫째동생)이며 친11대조는 이택 (李澤)이다.[49] 양가 현조부(친가 현조부의 첫째동생)이며 친현조부는 이달환 (李達換, 1770년 ~ 1809년, 향년 39세)이다.[50] 평생 목축일을 했다고 알려졌다.[51] 대통령 재임 시절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는데 생전에 자신을 뒷바라지하며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그리움을 표하며 눈물을 보였다.[52] 강릉 김씨 김진호(金振浩)의 장남이다. 강릉 김씨 대보공파-평의공파-회정공파 38세손. 족보명 김원기(金元起).(족보(1)족보(2))[53]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특보를 지내며 여의도에서 이명박을 도우며 정치에 뜻을 보이기도 했으며, 다스 협력업체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2018년, 상속받은 재산이 이명박의 차명재산이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54]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무혐의 처분되었다.[55] LG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56] 2012년에 11살의 나이로 36억원대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57] 부총리를 지냈던 오명의 아들.[A] [B] 줄리아드 스쿨 졸업, 현재 전업주부[60] 前 검사. 2010년 당시 가장 젊은 삼성 임원이었으며, 2012년 사내 최연소 팀장에 오르기도 했다. 승진 속도에 대한 설명에서는 항상 이명박의 맏사위라는 설명이 덧붙는다.[B] [62] 이명박의 대통령 재임 시절 주치의 최윤식의 아들.[63]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현재 전업주부[64] 조양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회장의 아들. 효성그룹과 이어진다. 아내 및 두 처형과는 리라초등학교 동문이다.[65] 당시 9살 손녀와 6살 손자가 2012년 어린이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 당시 가치로는 9억원과 9억 1천만원대다.[66] 에스엠은 이시형이 설립한 자동차 부품업체로 다스 협력업체다.[67] Double K의 친누나[68] 득남/득녀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24년 6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이명박 저택 방문 영상에서 15초쯤 친손주들이 그에게 꽃다발을 주는 영상이 있다.[A] [70] 중국에서 선교사를 했다고 한다. 이말분에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71] 이시형이 만든 다스 협력업체.[72] 1998년 2월 의원직 사퇴 (서울특별시장 출마).[73] 대한민국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임기 내내 당적을 유지한 첫 대통령.[74] 통합민주당과 신설합당.[75] 대한민국 제6공화국 이후 퇴임 후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첫 대통령이었으나, 2017년 1월 1일 정치색을 없앤다는 뜻에서 탈당했다.[76] 의원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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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井戸#!if ruby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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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加美南福井戸,ruby=)]을 탈당했다.[18]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으나, 서울특별시장에 재임하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려대학교 동문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천에서 따온 청계(淸溪)로 바꿔 지었다. 참고로 안중근 의사와 호가 같다.[19]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학생회장으로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6.3 항쟁을 주도했다. 이후 수배된 이명박은 서울교도소(현 서울구치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다.[20] 새마음봉사단으로 불리던 당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는 박근혜 영애였다. 1978년 위촉장 수여식에서 두 사람은 처음 조우한 것으로 알려졌다. # 1979년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새마음제전에서 박근혜 전 총재, 최순실 전 대학생총연합회장과 함께 관람하는 사진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21] 12년 간 회장직을 맡았다.[22]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수여.[23] 현대건설 회장 자격으로 참여했다. 당시 언론 보도.[24] 영포빌딩 소유. 이 회사 대표자격으로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해서 월급을 99만원 받는다고 신고해서 화제가 되었다.[25] 출처.[26] 출처[27] "부동산임대이명박"이 회사이름이다. 대명주빌딩 관리.[28] 교회 설립 초기 멤버로, 장로가 되기 위해서 주차봉사활동도 하는 등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퇴임 이후로는 발길을 끊은 것으로 보였으나, 윤석열 정부 시절 사면복권 된 이후에 교회를 찾았다.[29] 당시 1위는 노태우 정부 시절 국무총리 역임했던 정원식이 공천 받았다.[30]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아 판결 나오기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본인이 사퇴한 지역구에 재보궐선거를 치렀는데, 들어온 사람이 본인 전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다.[31] 당시 1위는 마지막 관선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고, 훗날 한나라당 대표를 했던 최병렬이 최종 공천 되었다.[32] 훗날 여기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33]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인데, 아내인 김윤옥 여사의 친인척들이 번갈아 총재직을 맡고 있는 단체라고 한다.[34] 참고. BBK, LKe뱅크, e뱅크증권 중개 이 3개 기업을 통칭해 e뱅크코리아라고 명명했고, 이명박은 e뱅크코리아 회장으로 대외활동을 했다.[35] 홈페이지상에서는 아직도 고문으로 나와 있다.[36] 서울특별시장이 당연직으로 겸임한다.[37] 이미 2000년에 맡은 적이 있었다. 참고.[38] 現 광복회 회장.[39] 제13대 부산 동구, 제15대 종로구 국회의원,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40] 득표율 차이는 여전히 제6공화국 역사상 최고 기록이며, 득표수 차이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5,570,951표) 이전까지 제6공화국 역사상 최다 기록이었다.[41] 상세한 내용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참조.[42] 다만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아래 전직대통령법)' 제7조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 받거나 재직 중 탄핵 결정을 받아 퇴임됐을 경우 '필요한 기간의 경호나 경비'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예우는 모두 박탈된다.[43] 1995년에 이명박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쓴 수필.[44] 2008년에 대통령 취임 직전에 출간한 에세이.[45]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쓴 회고록.[46] 이승만, 박정희 같은 옛날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민감성을 이유로 이들처럼 실명으로 등장할 수 없다. 이명박이 실명 그대로 등장하려면 최소 한두세대는 지나야 한다.[47] 여담으로 족보에 기재된 13대 조모 평산 신씨는 본처로 추정된다.[48] 양가 11대조(친가 11대조의 첫째동생)이며 친11대조는 이택 (李澤)이다.[49] 양가 현조부(친가 현조부의 첫째동생)이며 친현조부는 이달환 (李達換, 1770년 ~ 1809년, 향년 39세)이다.[50] 평생 목축일을 했다고 알려졌다.[51] 대통령 재임 시절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는데 생전에 자신을 뒷바라지하며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그리움을 표하며 눈물을 보였다.[52] 강릉 김씨 김진호(金振浩)의 장남이다. 강릉 김씨 대보공파-평의공파-회정공파 38세손. 족보명 김원기(金元起).(족보(1)족보(2))[53]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특보를 지내며 여의도에서 이명박을 도우며 정치에 뜻을 보이기도 했으며, 다스 협력업체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2018년, 상속받은 재산이 이명박의 차명재산이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54]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무혐의 처분되었다.[55] LG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56] 2012년에 11살의 나이로 36억원대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57] 부총리를 지냈던 오명의 아들.[A] [B] 줄리아드 스쿨 졸업, 현재 전업주부[60] 前 검사. 2010년 당시 가장 젊은 삼성 임원이었으며, 2012년 사내 최연소 팀장에 오르기도 했다. 승진 속도에 대한 설명에서는 항상 이명박의 맏사위라는 설명이 덧붙는다.[B] [62] 이명박의 대통령 재임 시절 주치의 최윤식의 아들.[63]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현재 전업주부[64] 조양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회장의 아들. 효성그룹과 이어진다. 아내 및 두 처형과는 리라초등학교 동문이다.[65] 당시 9살 손녀와 6살 손자가 2012년 어린이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 당시 가치로는 9억원과 9억 1천만원대다.[66] 에스엠은 이시형이 설립한 자동차 부품업체로 다스 협력업체다.[67] Double K의 친누나[68] 득남/득녀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24년 6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이명박 저택 방문 영상에서 15초쯤 친손주들이 그에게 꽃다발을 주는 영상이 있다.[A] [70] 중국에서 선교사를 했다고 한다. 이말분에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71] 이시형이 만든 다스 협력업체.[72] 1998년 2월 의원직 사퇴 (서울특별시장 출마).[73] 대한민국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임기 내내 당적을 유지한 첫 대통령.[74] 통합민주당과 신설합당.[75] 대한민국 제6공화국 이후 퇴임 후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첫 대통령이었으나, 2017년 1월 1일 정치색을 없앤다는 뜻에서 탈당했다.[76] 의원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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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 대한민국 대통령
- 서울특별시장
-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 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 1941년 출생
- 2013년 은퇴
- 히라노구 출신 인물
- 북구(포항) 출신 인물
- 경주 이씨 국당공파
- 동지고등학교 출신
- 고려대학교 출신
-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 대한민국의 남성 기업인
- 현대건설/인물
- 제17대 대통령 선거/후보
- 비례대표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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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 신한국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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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 기업인 출신 정치인
- 대한민국의 테러 피해자
- 무궁화대훈장
- 인터넷 밈/정치인/대한민국
- 인터넷 밈/기업인/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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