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6 02:12:05

명박산성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차벽
1. 개요
1.1. 설치1.2. 문제점
2. 전례
2.1. 컨테이너 차단막의 시초
3. 철거, 그 이후4. 당위성5. 위헌성6. 대중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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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산성을 세울 당시 찍은 영상

1. 개요

2008년 6월 10일, 서울특별시 도심에 있었던 촛불집회를 막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한복판에서 시작하여 안국동, 사직터널 등에서 청와대에 진입하는 도로를 모두 봉쇄한 경찰컨테이너 구조물을 일컫는 말이다. 다음 날인 6월 11일에 철거되었다.

1.1. 설치

2008년 6월 10일, 서울 시내에서 일어날 유례 없는 대규모 시위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경찰청장인 어청수가 세종로에 설치하였다. 새벽에 구축을 시작해 당일 오후에 완공되었으며 대략 세종로의 이탈리아 음식접 '자콥'에서[1] 시작하여 세종로를 횡단, 정보통신부 건물까지 일직선으로 뻗어있었다. 용접된 다수의 컨테이너가 2층 구조로 세종로의 중심을 막았으며 양익을 다중의 경찰버스로 보완한 구조. 그 내부에는 모래주머니를 가득 채워 넣었으며 길바닥에 와이어로 고정시켰다. 컨테이너 표면은 시위대가 기어오르거나 무너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윤활유가 칠해졌다. 또한 뒤에는 소화기가 대량 배치되었고 이어 대규모의 경찰 기동대가 배치되었다.


당시 명박산성 전경을 찍은 영상

1.2. 문제점

물론 도로를 통째로 막아버렸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의 출근길을 방해했다. 사실 어차피 그 전부터 세종로 일대는 시위대가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출근 시간까지 계속 점거하고 있었기에 한낮을 제외하면 도로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산성을 이른 아침부터 설치하는 바람에 하루 온종일 도로를 마비시켰다는 데에서 좀 더 문제가 컸다.

한때 태극기가 걸리기도 했으나 윤활유에 더러워져 태극기는 설치 2시간 만에 철거되었다. 이것 때문에 시위대에서는 한때 경찰을 국기·국장모독죄고발하자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물론 이 법률은 고의로 국기를 오욕한 자일 경우에만 해당하니 가능성은 없는 얘기지만 갈색 윤활유에 떡이 되어 현장에 방치되었던 대형 태극기를 보고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어느 경찰 간부가 낸 아이디어였는지... "컨테이너 박스를 당기면 위험합니다"라는 플래카드와 "경☆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 ☆축" 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묘하게 공존하였다.

2. 전례

사실 바리케이드 설치는 한국의 전통적인 전술이었다. 이러한 전술은 4.19 혁명 때 소방차, 경찰차, 시내버스를 동원하여 실시된 바 있으며[2], 박정희 정권 중 6.3항쟁 당시 김대중 정권인 2002년 12월,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하여 미대사관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세종로에서 저지할 당시, "2002 ~ 2003년" 으로 추정되는 차벽 사진, 노무현 집권 7일차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시위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앞 세종로 등에서 시위대 진로 차단, 특정 대상 보호, 물리력 충돌 최소화 등과 같은 목적으로 실시되어 왔다.

2.1. 컨테이너 차단막의 시초

이런 컨테이너 박스 설치는 노무현 정권에서 이미 실행된 바가 있다[3] 일부에서는 이걸 이유로 명박산성에 대한 반발로 무현산성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지만 일부 당시 친정권 인사들에게만 몇번 쓰이다 말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립적인 명칭으로서, 최초로 아이디어를 고안한 사람이 어청수였으므로, 청수산성이라 부르자고 하기도 했으나 널리 퍼지지는 않아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당시 부산 BEXCO앞 시위장면

본래 과격시위대에 대한 컨테이너 방어전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참여정부 시기 2005년 11월의 일로 이후 경찰청장이 된 당시의 부산지방경찰청장 어청수가 APEC 정상회의장에 돌격하려던 2만여 명의 과격시위대에 대하여 컨테이너 바리케이드로 이를 방어하여 효율성이 입증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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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당시에는 단순하게 컨테이너의 보강 작업 없이 순수하게 컨테이너만 설치하였다. 그래서 시위대가 컨테이너를 끌어내자 속절없이 무너지고, 컨테이너 박스 위에 있던 경찰이 시위대 위로 떨어졌다. 떨어진 전경들은 그대로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3. 철거, 그 이후

윤활유가 칠해져 있는 것을 보고 일부에서는 "프락치가 의도적으로 방화하게 하여 사건을 크게 만들려는 계략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시위 도중에 스티로폼으로 계단을 쌓아 다같이 넘어가려고 했으나 소수인원만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이후 스티로폼은 시민의 자유발언을 위한 연단으로 바뀌었다가 깃발과 플래카드(및 이것들을 든 이들)만 올려보내 퍼포먼스를 취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스티로폼도 "프락치가 폭력시위를 유발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다"라는 주장이 상당히 크게 돌았으나 실제로 그 스티로폼을 가져온 사람은 실제로는 촛불시위 열렬 참가자였었고 뒤늦게 본인의 행동이 프락치의 소행이라고 욕 먹고 있는 것을 알고 "내가 알바고 프락치냐"라며 분개하는 글을 올려서 프락치설 주장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버로우 타기도 했다.

결국 명박산성은 건설 하루 뒤인 6월 11일에 철거되었다.

행정부에 의한 독단적인 행정(쇠고기 수입 협상) 진행, 이를 저지하거나 공론화하지 못한 입법부(대한민국 국회)의 무능함, 더 나아가 과장된 광우병 괴담 등으로 불만을 품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수없이 파손된 경찰버스 ㅡ 명박산성은 이런 2008년 촛불집회를 상징하는 매우 부정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2009년에는 광화문공원이 생겼다. 여의도 광장이 여의도 공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4. 당위성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 간에 충돌이 격화되어 양측의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하자, 물리적 충돌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경찰 수뇌부에서는 차벽과 컨테이너로 방어선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법원이 시위대의 주장을 기각하며 차벽 설치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증명되었다. 만일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물리적 충돌은 더욱 격해졌을 것이고 양측의 부상자도 그만큼 많아졌을 것이기에 어느 정도 당위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있다.[4]

5. 위헌성

차벽 문서 참조. 일단 법원에서는 한계를 정하여 그 당위성을 인정하였다.

6. 대중 매체에서

명박산성으로 널리 알려진 차벽에 대한 풍자 자체는 당일 낮 시위에 참가했던 한 고시생의 이글루스[5] 블로그 포스팅에서 비롯되었다. 사마천사기의 열전을 패러디해서 만든 고전적인 문구[6]가 네티즌들의 흥미를 끌었고, 곧 이글루스 밸리뿐만 아니라 웃대, 디씨, SLR클럽 등으로 퍼져나갔으며 점차 살이 붙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당시 진보신당 관악구 당원이던 '네크라소프'라는 인물이 다시 다음 아고라로 퍼가서 개작했는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세 시간. 그리고 이 버전이[7] 당일 밤 11시경에 편성되어 있던 KBS 2TV의 데일리 시사프로그램 "시사 투나잇"의 "시사난타"란 코너에 등장하여 전국방송을 탔다.

이말년씨리즈 '불타는 버스' 에 등장. 불타는 버스는 그대로 들이받아서 폭발엔딩을 맞이했다. 야후 연재분에서는 'XX산성' 으로 검열삭제되었다. 참고로 해당 화는 위헌 판결 이전에 그려진 만화다.

질풍기획 시즌 1에서는 '마룡산성'이라는 이름의 빙벽이 등장한다. 마룡전자로 향하는 질풍기획 직원들의 길을 막기 위해, 추운 겨울이란 점을 이용해 미리 만들었다는 점에서 명박산성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이터널시티3 티저 영상에도 비슷한 컨테이너 성벽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악당들의 성이 아닌 생존자들이 좀비를 차단하는 방어선으로 등장. 사진의 경☆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 ☆축 플랜카드는 서울 자치 지구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로 바뀌었다.

부산행 마지막 부분에서 낙동강 주변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군인들의 엄호 아래 좀비 그리고 고라니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컨테이너로 차단벽을 쌓았다. 부산지역에 컨테이너가 잔뜩 있을 테니 현명한 선택인 듯. 부산항과 부산신항에서 컨테이너를 공출해 온 걸로 추정된다.

감기(영화)에서 분당저지선을 자세히 보면 컨테이너가 설치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1] 현대해상 사옥과 삼성전자 광고 있는 삼각형 건물 사이에 있는 2~3층짜리 존재감이 없는 건물로 현재는 할리스커피가 있는 곳이다.[2] 동아일보 4월 19일 3면 참고[3] 특히 2006년 포항에서는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에 맞서서 건설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휘두르며 해체를 시도,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때의 사건을 바탕으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전술이 많이 발전하였다.[4] 촛불집회가 일어났던 6개월 동안 501명의 경찰이 부상당하고 173대의 경찰버스가 파손을 당했다. 만약에 차벽이 없어서 173대의 경찰버스가 입은 피해가 경력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면 경찰 측의 부상자 숫자만 해도 천 단위를 넘었을지도 모른다.[5] 현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엠파스 합병 이전까지 이글루스는 하이텔 시절부터 사용하던 PC통신 올드 유저들의 집합소였다.[6] 사실 이런 시도를 처음 한 것은 슐리펜 계획을 연구하던 어느 역사학도의 밀리터리 블로그였으며, 그는 '미리견사(美利堅史)'라는 패러디물로 '남가주공 아놀드(캘리포니아 아놀드 슈워제네거)' 같은 글을 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광종(狂宗) 조지 부시 2세'란 표현 또한 미리견사에서 처음 나왔지만 지금은 블로그가 폭파되어 이 주옥같은 풍자글들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7] 초기 버전에는 '촛불 민심이 궐로 향하는 것이 두려워' 같은 구절은 없었다. 위 링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