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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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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정부기.png대한민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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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공화국
이명박 정부
李明博 政府
Lee Myung-bak Government
시작일 2008년 02월 25일 00시 00분
종료일 2013년 02월 24일 23시 59분
대통령 이명박
국무총리 한승수정운찬김황식
여당 한나라당새누리당
1. 개요2. 이념3. 슬로건4. 국정원리/목표/과제5. 외교/국방6. 정치/사회7. 경제8. 비판/논란9. 주요 사건
9.1. 2008년9.2. 2009년9.3. 2010년9.4. 2011년9.5. 2012년9.6. 2013년
10. 인사11. 관련 문헌

1. 개요

파일:19124609_mb.jpg[1]

이명박 정부는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이끌었던 정부이며, 제6공화국의 두 번째 정권교체로 탄생한 정부이기도 하다.

제6공화국 5번째 정부로 2008년 2월 25일 출범해 2013년 2월 24일까지 5년간 존속했다. 한때 실용정부라는 명칭이 고려된 적도 있었으나 곧 사라졌다. 실용정부를 잘 안 써서 그렇지, 노무현의 참여정부나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처럼 공식적인 명칭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서 기사 내용에서 보듯이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그리고 실용정부 이외에도, '경제정부'나 '일하는 정부' 역시도 고려가 되었으나, 이명박의 브랜드 파워를 부각하고 이명박의 실용주의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 이명박 정부를 공식 명칭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언론에는 국민정부, 참여정부와 달리 정부가 아닌 과거 대통령들의 이니셜 앞 글자를 따와서 불렀던 것처럼 'MB'로 불린다.

2008년부터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에서 나름 선방을 했지만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공격했던 이전 정부들보다 오하려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고 국가부채를 폭증시킨데다[2], 2017년부터 불거진 블랙리스트 논란과 다스 실소유주 논란으로 인해 집권 당시보다 퇴임 후에 말이 많았던 정부이다. 때문에 정권 교체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직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비리, UAE 국군 장병 도매금 사태, 다스 실소유주 논란 등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었고, 결국 이명박은 다스 실소유주 논란끝에 구속되었고 결국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에 이어 4번째로 법정에서 징역형을 받은 대통령이 되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은 국회 내에서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세력이 있었으나 현 20대 국회 및 현 지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친이계 최측근들이 현역 의원 혹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몇 없다는 것이다. 친이계가 분명 이 정부 시기에 막강하긴 했지만 딱 대통령 임기 뿐이었고[3] 상도동계, 동교동계, 친노, 친문이 집권 전부터 존재했고,[4] 특히 친노의 경우 영향력이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이후에도 강한 걸 상기하면 이명박 정부는 자파 세력을 정계에서 지속적으로 존속시키는 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5]

2. 이념

3. 슬로건

  •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
  • 저탄소 녹색성장

4. 국정원리/목표/과제

국정목표: 신 발전체제 구축
  • 국가, 사회 간 시너지 협력을 통한 발전
  • 질적 성장 추구, 성장과 복지 간 선순환구조 구축, 선성장 후복지
  • 법치의 확립과 헌법 존중
  • 다원주의 가치, 개성, 창의 존중 인재 양성
  • 글로벌 스탠더드와 내셔널 스탠더드의조화
  • 고신뢰 사회

과제[7]
  • 섬기는 정부 - 36개 과제
  • 활기찬 시장 경제 - 50개 과제
  • 능동적 복지 - 42개 과제
  • 인재 대국 - 18개 과제
  • 성숙한 세계 국가 - 47개 과제

3대 국정운영기조[8]
  • 글로벌 외교 강화
  • 경제 활력을 높이면서 선진화 개혁에 박차
  • 친서민 중도실용의 정책 기조

5대 핵심 과제[9]
  •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한 경제 살리기
  • 공교육 질 향상을 위한 교육 개혁
  • 지역 발전의 전기 마련
  • 정치 선진화 개혁
  • 전방위 외교 및 남북관계 실질적 변화 추구

5. 외교/국방

6. 정치/사회

7. 경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환율 정책으로 빠르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고용도 늘리고기업의 수출을 늘려 상당한 무역 흑자를 봤으며 당시 무역 1조 달러를 세계에서 9번째로 달성하며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이 무역흑자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한다. 그러나 이 고환율 정책으로 기업만 좋아지고 물가가 불안정해지고 서민 경제가 좋아지지 않고 무엇보다 부채가 많이 늘어난 것에 비판을 하기도 한다.

참여정부의 비정규직 실책을 어느정도 고져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고 월급을 높여준 것과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IMF 이후 유일하게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 보다 높았고 집값을 낮추고 양극화 심화를 꺾고 줄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정경유착과 일부 고용정책과 막대한 가계부채와 전세난을 초래하고 공기업을 부실화 시킨것은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다

8. 비판/논란

9. 주요 사건

9.1. 2008년

9.2. 2009년

9.3. 2010년

9.4. 2011년

9.5. 2012년

9.6. 2013년

10. 인사

파일:대한민국 정부기 (구).png 이명박 정부국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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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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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임장관주호영이재오고흥길}}}}}}

11. 관련 문헌

  •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노무현 시대의 명암 3권 -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2010.
  • 약탈정치: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의 기록 -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2017


[1]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연설을 하는 모습이다.[2] 여기에 대해서는 세계 경제성장률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다. 세계 경제가 호황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임기 중에 외부에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그리스 경제위기가 발생했던 이명박 정부를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3]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이명박 前 대통령, 친이계와 박근혜, 친박은 상호 간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이계가 친박을 상대로 대거 공천학살을 자행했으며, 이후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에 친박과 소장파들이 연합해 친이계가 잡은 당권 체제를 무너뜨리고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박이 친이계를 상당수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차이점이 있다면 18대 국회에서는 친박의 중진들이 대거 공천학살을 당한 형세였으나, 19대 국회에서는 친이계가 어느 정도 잔존하여 친이계 중진들은 살아남고 초, 재선들이 거진 잘려나간 형세였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박근혜가 완전히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친이계는 아예 공천을 받지 못하다시피 했고, 20대 국회에서는 친이계 최측근조차 남은 이가 몇 안 된다.[4] 친박의 경우 박근혜 파면사태 이후 현재 홍준표와 김무성의 세력에 밀리거나 흡수당해 상당히 와해된 상태이었으나, 황교안 대표의 취임으로 세를 상당히 회복했다.[5] 이재오가 그나마 친이명박계 수장으로 있긴 하지만 일단 이 사람부터 국회 밖에 있으니까...[6] 친기업적 정부[7] 2009년 11월 제시되었다.[8] 2010년 대통령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3대 국정운영기조를 설정하였다.[9] 2010년 대통령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3대 국정운영기조하에 주력할 5대 핵심 과제를 발표하였다.[10] 평가의 요지가 매우 많이 갈린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11] 이명박 정부의 자동 군사개입 이면합의[12] 사건 자체는 2018년에 밝혀졌지만, 이건희 단독 사면의 정체다.[13] 이에 따라 공군 비행장 활주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