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 ||
1947 ~ 1991 냉전 | 1991 ~ 2008 탈냉전 | 2008 ~ 신냉전 |
관련 문서: 그레이트 게임 | 세계 대전 | 대침체 | 대봉쇄 ※탈냉전 종식 및 신냉전 시작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369a3, #66cc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222> 주요 사건 | |
<colcolor=#fff> 냉전의 종식 (1985~1991) | <colcolor=#000,#ddd> 소련 붕괴 ·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 소말리아 내전 · 시에라리온 내전 ·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 |
팍스 아메리카나 (1991~2008) | 고난의 행군 · 유고슬라비아 전쟁 · 보스니아 전쟁 ·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 타지키스탄 내전 ·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 제1차 체첸 전쟁 · 콩고 전쟁 · 르완다 학살 ·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 코소보 전쟁 · 제1연평해전 · 제2차 체첸 전쟁 · 홍콩 반환 · 마카오 반환 · 햇볕정책 · 제2연평해전 · 라이베리아 내전 · 9.11 테러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이라크 전쟁 · 북한의 1차 핵실험 · 남오세티야 전쟁 · 2008 베이징 올림픽 · 대침체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
국제 기구 | ||
EU · 파이브 아이즈 · TIAR · 독립국가연합(СНГ|CIS) · 집단 안보 조약 기구(ОДКБ|CSTO) | ||
}}}}}}}}}}}} |
탈냉전 脫冷戰 | Post-Cold War | |
언어별 명칭 | |
<colbgcolor=#f5f5f5,#191919> 한국어 | 탈냉전(脫冷戰) |
영어 | Post-Cold War |
러시아어 | Выхлопная война |
중국어 | [ruby(后冷战, ruby=hòu lěngzhàn)] |
일본어 | [ruby(脱, ruby=だつ)][ruby(冷, ruby=れい)][ruby(戦, ruby=せん)] |
[clearfix]
1. 개요
공산권이 붕괴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나타난 시대. 대한민국에서는 제6공화국의 시작과 맞물린다. 보통 제2세계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를 시작점으로 본다.탈냉전의 종식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많다. 2009년~2018년, 심지어 일반인 중에서는 2022년까지 탈냉전 시기로 인식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남오세티야 전쟁, 대침체까지를 탈냉전 시대로 보지만, 니얼 퍼거슨이나 존 미어샤이머 등의 학자들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집권을 계기로 미국 일극화를 더더욱 강요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반발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미감정이 격화되며 신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일부는 2008년이 아닌 2018년까지를 탈냉전 시대로 분류하기도 한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냉전 종식에 따른 기대감이 맞물려 미국이 이끄는 신세계질서로 간주되었다. 과거 2세계의 주축이었던 러시아와 빠른 성장으로 국력이 급속히 팽창하던 중국 역시도 미국에 자신들의 상황이 따라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는 등 미국의 단극 체제는 굳건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 이후 구 공산권의 대표주자격 국가들인 중국, 러시아가 힘을 다시 키울 만큼의 시간이 되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과 2008년 대침체를 겪으며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자 탈냉전 시대도 확실히 끝나게 되었다. 2010년, 아무리 좋게 쳐줘도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집권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일극체제를 더더욱 강요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대립하던 국가들의 후신인 국가들이 등장했고, 미국이 여전히 주도적인 국가는 맞지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들이 나왔다는 점에서[1] 2020년대가 된 지금은 탈냉전 기류가 끝난 것으로 간주되어 과거 양차대전 사이에 있었던 전간기와 비슷한 일종의 과도기로 보는 시각이 강해졌다. 특히 탈냉전 시대의 기준을 관대하게 쳐주는 측은 2020년 초까지도 탈냉전의 색채가 있었다는 의견을 내고 있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 이러한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좁게는 1980년대, 넓게는 1970년대 데탕트 시대 이후로 진행되던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세계화, 세계 평화의 흐름이 역행하고 국가들이 6.25 전쟁 ~ 베트남 전쟁 초기로 대표되는 1960년대 이전처럼 정치적으로 문을 걸어잠그기 시작하며 탈냉전이 끝났다.
2. 역사
2.1. 냉전 종식 (1985~1991)
1990년, 맥도날드가 모스크바에 들어서다[2] |
공산권 붕괴 시작의 주인공은 바웬사나 하벨이 아닌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고르바초프는 막장으로 치닫는 소련 경제를 개선하고자 1987년부터 페레스트로이카 또는 글라스노스트를 추진, 코시긴 개혁의 실패와 전 년도의 체르노빌 사고에서 보여진 기존 관료제의 엄청난 경직성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미국의 지원을 얻고자 평화 외교·군축 협상을 실시해 서구권에서 엄청난 외교적 인기를 구가한것은 덤이었으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하였다.
그러나 개혁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문서를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조급한 개혁으로 인하여 기존 소련의 유통구조는 도저히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기 시작했으며, 암시장에서는 기존에 단돈 몇루블이면 구할수있던 물품들이 몇십배는 더한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저렴하게 물건을 살수 있었던 국영상점에는 보급되어야 할 물건들이 전부 수익이 더 높았던 암시장으로 빼돌려지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소련 붕괴 직전의 그 시궁창스러운 경제 상황이 연출된다. 애당초 이 모든게 불과 2년만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것이다.
동구권에서도 소련이 약해진 이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1989년, 동독 정부는 서독과 흡수통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어느 한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로 인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4], 모스크바가 이곳에 개입할 능력이 없는것으로 밝혀지자 이곳에서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의 모든 붕괴가 시작되었다. 폴란드, 체코를 시작으로 각지에서 공산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유고슬라비아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당대 유고를 이끌던 티토도 죽었겠다, 공산주의 역시 약빨이 다 떨어졌다는것을 깨달은 정치인과 국민들은 이제 다시금 동유럽에서 부흥하는 민족주의와 탈공산화 흐름에 올라탔고, 서로간의 민족 감정을 부추기며 나라를 절단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가 다가왔고, 우리는 그 결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이렇게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전체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소련이 히틀러의 제3제국처럼 살아남으려 마지막 발악을 치는 게 아니냐는 일부 우려도 나왔지만, 소련은 미국과 NATO를 향해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1년, 소비에트 건국의 주요자들이 퇴직하며 등장한 노멘클라투라-올리가르히들은 보리스 옐친을 뒤에서 지원했고, 옐친을 비롯한 각 공화국 지도자들이 강제로 소련을 해체하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러시아를 건국함으로써 냉전 또한 막을 내렸다. 이로써 세계멸망의 위기는 사라지는듯 해 보였다.
세계를 양분했던 두 거대 세력의 대결치고는 한쪽의 일방적인 궤멸로 마무리가 허전한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련이 사라지면서 냉전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소련이 갈가리 찢어진 이후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종주국이었던 다른 공산권 국가들 사이에서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국과 베트남 같이 공산국가이긴 했지만 소련의 영향 아래 있지는 않았던 공산국가들도 차차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나 베트남의 도이머이 운동과 같은 개방 정책으로 선회하였으며 동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서방의 EU체제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물론 소련 해체로 인해 새로 생겨난 신생국들인 발트 3국, 벨라루스[구소련], 우크라이나[구소련], 몰도바등은 소련 해체의 부작용으로 인해 부흥은 커녕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으며, 발트 3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아직도 소련 시절에 비해서 경제가 영 좋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예 유고슬라비아나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 아예 국토 전체가 인간 도살장이 되거나 소련처럼 나라가 분절되기도 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처럼 사회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막장으로 개조시킨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문을 닫아건 나라도 있다(...).
위 내용을 종합하여 본다면, 세간에 알려진바와 달리 미국이 냉전 말기에 냉전을 이기기 위해 큰 공작을 한 것도 아니고 냉전 승리를 주워먹은 것이 맞다. 소련에 강경하던 레이건 정권도 고르바초프 집권 직후 대소 강경 정책에서 유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강경하던 레이건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자 소련을 비난하여 자극하지 않고 유화 정책을 펼쳤다. 비록 레이건이 상호확증파괴 개념을 극단적으로 싫어해 SDI에 집착해서 SDI 포기를 요구하는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은 SDI 기술을 소련과 공유하겠다며 미국과 소련이 SDI를 공유하면 핵무기가 무력화되어 결국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게 될 거라는 이상론을 주장했다. 사실 2차 집권기의 레이건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야 된다고 수시로 주장했고 화성인이 침공하면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야 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7]
비록 SDI 문제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INF 협정을 체결했고 레이건은 소련을 방문해서 더 이상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베를린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는 명연설을 하기는 했지만 립서비스였고 레이건은 2차 집권기에 냉전 승리를 위해 특별히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다.
이후 부시 집권기에도 미국은 소련에 유화 정책을 펼쳤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위성국들이 민주화되자 미국은 환영했지만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를 위해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고 소련의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로 위성국들의 공산 정권이 무너졌다. 미국은 동유럽 민주화와 독일 통일에 만족하고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소련이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으로 흔들렸지만 미국은 독립운동 지원은 커녕 소련 붕괴 직전까지도 소련의 내전을 우려하며 오히려 독립 요구를 말리려 했다. 1991년 7월에는 양국이 전략무기를 감축하는 제1차 전략무기감축협정을 맺었다. 8월 쿠데타 전에는 공산당의 권력이 살아 있었고 소련이 평화적으로 붕괴될 거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1991년 8월 쿠데타 직전에는 고르바초프의 요청으로 부시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립 반대 연설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쓴 이 연설에서 부시는 미국은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않을 거라며 독립운동을 자기파괴적인 민족주의라고 발언해 미국 보수파들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아버지 부시는 당시 독립운동을 노골적으로 미국이 지원해서 독립운동이 과격해졌다면 전쟁이 날 수 있었다고 해명하였다.
2.1.1. 주요 사건
- 이란-이스라엘 분쟁
-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소련)
- 흑묘백묘론(중국)
- 도이머이(베트남)
- 1988 서울 올림픽(대한민국)[8]
- 몰타 회담(미국-소련)
- 천안문 6.4 항쟁(중국)
-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재통일(독일)
- 동유럽 혁명(동유럽)[9]
- 걸프 전쟁(이라크)
-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소련)
- 8월 쿠데타(소련)
- 소련 붕괴(소련)[10]
2.2. 팍스 아메리카나(1991~2008)
소련 붕괴로 독립한 12개 공화국 중 조지아를 제외한 11개국은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이미 1991년 9월 6일에 독립을 승인받은 발트 3국과 조지아는 독립국가연합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후에 조지아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1993년 12월에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빌 클린턴 집권기의 미국은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무너지고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기 전이던 2008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다.[11]그러나 21세기 들어서 9.11 테러로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가 테러범들에 의해 유린당하며 미국 본토 안전신화가 깨졌고, 미국 본토도 테러와 전쟁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미국인들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또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의 삽질로 미국의 국력 및 위신도 크게 실추되며 러시아와 중국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신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북미와 유럽 등 서구에서는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련의 정치적 위기 등을 거치면서 2014년을 신냉전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 시작된 2018년을 신냉전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다만 남오세티야 전쟁 직후에는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서구에서 큰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확실한 것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와 중국이 관련된 유럽과 동북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를 상징하는 탈냉전이 끝났다는 것에 대해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2.1. 주요 사건
- 북한의 핵개발(북한)
- 고난의 행군(북한)
- 유고슬라비아 전쟁(유고슬라비아)
- 보스니아 전쟁(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러시아)
- 모가디슈 전투(소말리아)
- 아파르트헤이트 종식(남아프리카공화국)
- 제1차 체첸 전쟁(이치케리야 체첸)
- 제1차 콩고 전쟁(콩고민주공화국)
- 르완다 학살(르완다)
- 코소보 전쟁(코소보-세르비아)
- 제2차 체첸 전쟁(이치케리야 체첸)
- 하이난 섬 정찰기 충돌 사건(중국)
- 홍콩 반환(홍콩)
- 마카오 반환(마카오)
- 9.11 테러(미국)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가니스탄)
- 이라크 전쟁(이라크)
- 색깔혁명(전 세계)[12]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미국)
- 대침체(전 세계)[13]
- 2008 베이징 올림픽(중국)
- 남오세티야 전쟁(남오세티야)
3. 같이 보기
- 탈냉전 시대 (미국)
[1] 사실 북한은 언제나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지만 미사일을 제외하곤 경제력 및 정치력은 없는 수준이라 취급받지 못했다.[2] 냉전의 종결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이 맥도날드 소련 1호점은 모스크바 푸시킨스카야에 위치했었다. 서방 국가들에서는 소련 체제의 억압성이 많이 알려졌기에 당연히 충격을 받았고, 그런 공산주의 체제에 익숙한 소련 인민들에게도 서방보다야 덜하지만 꽤나 새롭게 다가왔던 사건이다.[3] 해당 지점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발하여 벌어진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의 일환으로 맥도날드가 아예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2022년 3월 8일 폐점되었다.#[4] 사실 단순히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 때문에 발생한 사태는 아니고 여러가지 일이 겹치면서 발생했다.[구소련] 다만 이들 국가는 과거 소련 시절에도 별도로 UN에 가입한 바 있을 정도로 소연맹 내부에서 사실상 국가 취급을 받긴 했다.[구소련] 다만 이들 국가는 과거 소련 시절에도 별도로 UN에 가입한 바 있을 정도로 소연맹 내부에서 사실상 국가 취급을 받긴 했다.[7] 그래서 극단적인 강경파도 아니었던 닉슨도 2차 집권기의 레이건이 지나치게 소련에 유화적이라고 레이건을 비판하기도 했다.[8] 미국과 소련은 서로가 올림픽에 가령 미국이 참가하면 소련이 불참하는 식으로 보이콧을 해댔는데,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는 두 국가가 동시에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북한 등의 선전으로 남한의 모습을 인식해왔던 동구권 국가들이 실상을 목격하고 한국의 발전상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직후 헝가리나 소련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과 수교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끝내 쿠바는 불참하였지만 먼 훗날 결국 대한민국과 관계가 개선된다.[9]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을 시작으로 하여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의 공산독재를 무너뜨렸다.[10] 사실상 냉전 종식의 정점을 찍은 사건이다.[11] 1996년에 개봉했던 영화 에어포스 원에서 명색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에서 전화 하나 걸려왔다고 쩔쩔매면서 바로 반미 성향의 주요 인사를 신속히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서라면 적어도 블라디미르 푸틴 이후라면 비슷한 상황에선 콧방귀 뀌면서 들은 척도 안 했을 거다.[12] 2000년대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들 한정[13]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알린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