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전 | ||
1918 ~ 1939 전간기 | ||
<bgcolor=#dcdcdc,#2e2f34>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66666, #000000)"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222><colcolor=#fff> 주요 사건 | |
제1차 세계 대전의 끝 (1918~1920) | <colcolor=#000,#ddd> 부쿠레슈티 조약 ·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 세브르 조약 · 로잔 조약 · 뇌이 조약 · 트리아농 조약 · 생제르맹 조약 · 베르사유 조약 | |
전간기 초기 (1918~1931) | 러시아 내전 · 외몽골 출병 · 카프 폭동 · 로마 진군 · 루르 점령 · 메멜 점령 · 리프 전쟁 ·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 ·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 로카르노 조약 · 국민혁명(제1차 국공합작) · 황고둔 사건 · 켈로그-브리앙 조약 · 대공황 | |
만주사변 (1931~1933) | 만주사변 · 제1차 양광사변 · 나카무라 사건 · 만보산 사건 · 제3차 초공작전 · 류탸오후 사건 · 천진사변 · 영월합작 · 진저우 침공 · 사쿠라다몬 의거 · 마옥산 사건 · 제1차 상하이 사변 · 훙커우 공원 의거 · 송호정전협정 · 이시모토 사건 · 열하사변 · 당고정전협정 | |
나치당 집권 후 (1933~1939) | 복건사변 · 라이히스탁 방화 사건 · 수권법 통과 · 장검의 밤 · 신강 침공 ·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 스페인 내전 · 라인란트 재무장 · 수정의 밤 · 오스트리아 병합 · 하산 호 전투 · 뮌헨 협정 | |
중일전쟁 (1937~1939) | 루거우차오 사건 · 상하이 전투 · 난징 전투 · 난징 대학살 · 파나이 호 사건 · 트라우트만 공작 | |
국제 기구 | ||
}}}}}}}}}}}} |
전간기의 유럽의 지도 |
[clearfix]
1. 개요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전간기 |
영어 | Interwar period |
한자 | 戰間期 |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20년 동안의 시기를 일컫는 단어다.
연도로 따지자면 일반적으로 1918년 11월 12일부터 1939년 8월 31일까지를 가리킨다. 제2차 세계 대전 개전일을 중일전쟁의 개전일로 본다면 1937년까지로도 볼 수 있다. 제국주의 열강 시대와 냉전 시대의 과도기이며, 파시즘과 군국주의, 그리고 공산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했던 시기다.
한국사에 있어서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이 이루어져 현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태동한 시기이자 다이쇼 데모크라시 이래 일본 제국의 기만적 문화통치(민족 분열 통치)가 본격화되어 역설적으로 친일파가 대거 양산되었던 한국 독립운동의 암흑기이기도 하다. 종국에는 일제의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막을 내리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본격적으로 발흥하여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민족 말살 통치기가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의 끝으로 접어드는 시기다.
2. 과정
2.1. 전쟁 직후
제1차 세계 대전의 피해는 막대했고, 유럽 국가들은 전후 피해로 하루하루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이 전쟁의 여파로 군주국들, 이를테면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이 멸망하고 공화국이 들어선다. 그 중 독일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지고 러시아 제국에는 러시아 혁명이라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소련이 수립되는 등 유럽 국가들에게 공화주의적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1]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나치당이 집권하고 소련에서는 소련 공산당 독재가 수립되는 등 독재가 유럽에서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후일의 일이지만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내전으로 에스파냐국이 세워지기도 했다. 또한 제국들의 급격한 붕괴로 정세가 불안해졌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전승국이었지만, 격전지가 되거나, 전쟁 초반 서부전선의 주역을 맡아 격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청년 인구의 1/3 가량이 증발하는 등 인적자원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은 초기에 참전 준비가 안 된 상태여서 육군이 확충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프랑스는 독일과 영국에 비해서 인구가 적었기에 같은 피해 규모라도 프랑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2.2. 종결
이 시기의 동아시아에선 중화민국은 국민당의 1차 북벌 및 2차 북벌과 반장전쟁으로 연달아 대륙에 흩어진 각지 군벌들을 격파하는 등 조금씩 중원제패의 길을 걷고 있었고, 조선은 여전히 일본 제국에게 합병당해 식민지 상태에 있었으며, 일본 제국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호황이 붕괴되면서 군국주의로 급격히 경도되었다. 결국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을,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 1933년 열하사변을 일으키며 국제정세를 위협하더니 급기야 국제연맹 탈퇴를 선언해버리고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한 다음 페르디낭 포슈 원수는 베르사유 조약을 일컬어 영구적인 평화가 아니라 기껏해야 20년 정도의 휴전이 될 것[2]이라고 했는데, 귀신같이 들어맞았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지도 못했으며,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다. 그렇다고 독일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어 민심을 얻는 것도 아니었다. 독일을 완전히 망가뜨리지도 그들의 마음을 얻지도 못한 베르사유 조약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1320억 마르크라는 미친 배상금으로 인해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로 인해 전 국민이 경제난에 시달리면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또, 후에 도스 안과 영 안으로 배상금을 감면해주기는 하고 간신히 독일이 배상금 경제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대공황이 닥치며, 바이마르 독일 사회가 나치 돌격대를 비롯한 정치깡패들의 난립으로 몸살을 앓더니 이미 아돌프 히틀러로 대표되는 나치즘 극단주의가 들어선 뒤였고, 결국 독일은 라인란트 재무장을 기점으로 재무장 완료를 선언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국제연맹은 유명무실화되고 말았다. 미국은 먼로 독트린과 국민 여론 때문에,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국제연맹에서 빠졌고, 유엔과 달리 자체적인 무력행사 수단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이 강한 미국과 소련, 강대국 중 두 나라나 빠진 데다가, 국제연맹의 제재를 어기더라도 그것을 강제할 무력수단이 전혀 없다보니 그야말로 이름뿐인 연맹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추축국의 공격을 시작으로 또 다시 전쟁의 불길에 휘말리게 된다.
3. 특징
3.1. 세계 권력의 이동
이 시기에 세계 경제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갔으며, 유럽이 1차대전의 상흔과 그에 따른 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동안 미국은 광란의 20년대라는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에서 일어난 대공황이 세계 전체로 퍼져 세계 대공황을 만들어 냈다는 것으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지금의 미국과는 다르게, 전간기의 미국은 철저히 고립주의적인 국가였다. 그 일본 제국과도 외교로 해결하려 했을 정도.학계에서는 이 당시 미국이 아직까지 세계 무대를 다스리는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원하지 않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미 1890년대에 미국은 전 유럽의 생산량을 앞서기 시작했으며, 서부개척이 끝난 이후에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발전했기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세계 무대에 나설 수 있었음에도 나서지 않은 것은 먼로 독트린을 바탕으로 하는 고립주의 노선 때문이었다.[3]
3.2. 군사 기술 발전
전쟁의 양상이 크게 바뀐 시기이다. 참호전으로 인해 전쟁 전에 남아있던 전열보병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초기 형태의 전투기가 모습을 드러냈고, 최초로 전차가 나타났다. 그리고 군함 역시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것은 기동전 또는 화력전으로 대표되는 현대 군사 교리의 기초를 쌓게 되었다. 이러한 서유럽의 군사기술 발전은 리프 전쟁 당시 리프 봉기군을 진압하는 데 크게 쓰였다. 뿐만 아니라 군용 오토바이와 군용 자동차, 장갑차도 등장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장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총포와 화기의 발달로 역할이 점점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전장과 군대의 중심을 지켜왔던 기마병이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4. 유사 시기
전간기(Interwar)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을 말하지만, 같은 혹은 유사한 세력과 반대편 역시 유사한 세력이 여러차례 전쟁을 벌이는데 중간에 공백이 있는 경우 전간기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에 일어난 페르시아 전쟁의 경우 중간의 휴식기를 Interwar라 부르기도 한다. 로마와 카르타고 간에 3차례 벌어진 포에니 전쟁의 경우도 중간의 휴식기에 가끔 이 단어를 쓰기도 한다.한편, 전쟁은 전쟁이라도 전혀 다른 별개의 세력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별개의 전쟁의 경우에는 이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기간은 보통 전간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시대에 대하여서는 전쟁 시기까지 포함하여 '양란(兩亂) 시기'라는 말을 주로 쓰는 편이다.
냉전과 신냉전 사이에 있었던 탈냉전(1990년대~2000년대)도 전간기와 유사한 시기이다.[4]
[1] 1차대전의 승전국인 영국과 이탈리아에도 그런 열풍은 예외가 아니었다.[2] "This is not a peace. It is an armistice for 20 years.", Memoires (1963) by Paul Reynaud, vol. 2, p. 457.[3] 전반적으로는 고립주의였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정책이나 미국-스페인 전쟁 등의 예외는 있었다.[4] 다만 신냉전 시기에는 세계대전처럼 큰 규모의 전쟁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기에 보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