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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오스만 제국/역사, 오스만 제국/국가
숭고한 오스만 국
دَوْلَتِ عَلِيّهٔ عُثمَانِیّه'
Devlet-i Aliye-yi Osmâniye[1]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Osmanli-nisani.svg.png
국기[2] 국장[3][4]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Ottoman_Empire_(2710788094).jpg
[5]
1299년 ~ 1922년
표어 دولت ابد مدت
(불멸의 제국[6])
위치 서아시아, 동유럽,
남유럽, 북아프리카
수도 쇠위트 (1299~1335)
부르사 (1335~1453)
에디르네 (1363?~1453)[7]
코스탄티니예 (1453~1922)
정치 체제 군주제[8]
전제군주제 (~1876)
입헌군주제 (1876~1878)
전제군주제 (1878~1908)
입헌군주제 (1908~1920)
국가 원수 베이 (1299~1383)[9]
술탄 (1383~1922)
파디샤(황제) (1453~1922)[10]
언어 오스만 터키어(공용어)[11]
종족 (현대의) 터키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아랍인, 슬라브인 외 다수[12]
종교 이슬람, 정교회, 유대교[13]
주요 사건 [ 펼치기 · 접기 ]
1299년 건국
1302년 바페우스 전투
1326년 부르사 점령
1354년 갈리폴리 점령 (유럽 진출)
1389년 코소보 전투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
1402년 앙카라 전투
1444년 바르나 전투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
1514년 찰디란 전투
1517년 이집트 정복, 칼리파 위 획득[14]
1526년 모하치 전투, 헝가리 정복
1529년 제1차 빈 공방전
1534년 프레베자 해전
1571년 레판토 해전
1672년 포돌리아[15] 점령, 최대 판도 구축
1683년 제2차 빈 공방전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
1718년 파사로비츠 조약
1739년 베오그라드 조약
1743-1746년 오스만 페르시아 전쟁
1774년 퀴췩카이나르자 조약
1798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
1827년 나바리노 해전
1839년 탄지마트 개혁
1853-1856년 크림 전쟁
1876년 미드하트 헌법 제정
1878년 산 스테파노 조약
1908년 2차 헌법 제정
1912-1913년 발칸 전쟁
1915-1918년 1차 세계대전
1915년 갈리폴리 전투
1919-1923년 터키 독립전쟁
1922년 제국 멸망
통화 악체
쿠루쉬
리라[16]
면적 5,400,000km2 (1683년)
1,700,000km2 (1914년)
성립 이전 및 확장 [ 펼치기 · 접기 ]
룸 술탄국
13~16세기 여러 튀르크계 소국들 병합
1396년 불가리아 병합
1453년 동로마 제국 병합
1456년 세르비아 병합[17]
1463년 보스니아 병합
1479년 알바니아 병합
1517년 맘루크 왕조 병합
1541년 헝가리 삼분할
1556년 알제리 병합
1574년 튀니지 병합
해체 및 멸망 이후 [ 펼치기 · 접기 ]
1. 개요2. 역사3. 국명4. 국력
4.1. 영역4.2. 인구4.3. 군사
4.3.1. 지방 상비군
4.3.1.1. 계급4.3.1.2. 지역
4.3.2. 중앙 상비군
4.3.2.1. 기병(시파히) 6 부대4.3.2.2. 보병의 7부대
4.3.2.2.1. 예니체리4.3.2.2.2. 아제미4.3.2.2.3. 제베지4.3.2.2.4. 톱추4.3.2.2.5. 톱아라바즈4.3.2.2.6. 훔바라즈4.3.2.2.7. 라음즈
4.3.3. 전략4.3.4. 보급4.3.5. 상인4.3.6. 공군 최초보유4.3.7. 군악대
5. 문화
5.1. 복장
5.1.1. 모자(on the head)5.1.2. 조끼(vest)5.1.3. 상의5.1.4. 하의5.1.5. 신발(feet)
6. 행정 구역7. 세금 제도8. 종교 국가?9. 튀르크족의 국가?10. 평가11. 국가(國歌)12. 역대 군주 목록13. 대중매체에서
13.1. 창작물에서 모티브를 딴 것들
14. 역사 틀 둘러보기


1. 개요

남동유럽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던 국가이다. 참고로 왕가의 종교는 이슬람이었지만, 밀레트 제도에 의해 다른 종교 및 그들의 종교법 또한 존중했기에, 이슬람을 국교라 하기에는 애매하다. 실제로, 제국헌법에서 이슬람을 국교로 명시한 시기는 압뒬하미트2세시절에 미트하트 파샤가 주도한 1876년헌법(1876 kanun-ı esasi)이 처음으로 제국의 존속기간(1299~1922)을 따져보면 꽤나 늦다.

1299년 아나톨리아내륙의 오스만이라는 베이(Bey, 부족장)가 다스리던 작은나라로 시작해 정복전쟁을 통해 이웃소국들을[18] 병합하며 성장, 아나톨리아를 장악하였다. 마침내 1453년에는 건국이래, 2200년을 이어온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며 교통과 무역의 요지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장악, 수도로 삼고 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진출해 북으로는 오스트리아폴란드, 서로는 모로코, 남으로는 에티오피아, 동으로는 이란과 접하여 그 당시 전세계적영향력을 미치는 강력한 패권국가운데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못하고 무능한 황제까지 잇따라 배출되어 국가 막장 테크를 타더니, 제1차세계대전동맹국의 일원이 되는 최악의 수를 두었고, 연합국에 패배. 이후, 내부소수민족대다수가 독립하고, 그리스에게 국가의 발상지인 아나톨리아의 해안가까지 점령당하며 강대국들에 뜻해 갈라져 열강들의 위성국으로 전락할 뻔했으나, 아타뛰르끄의 지휘아래에 기사회생해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튀르크족의 국민국가, 터키 공화국으로 개편되어 1922년 11월 1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파일:costumes-des-maures-et-des-turcs-au-seizieme-siecle-53086d70.jpg
(오스만제국의 복식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랍복식과는 차이가 있는데 튀르크 복식을 기반으로 페르시아와 동로마 복식에서 영향을 받은것도 상당하다.)

2.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만 제국/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국명

오스만 제국이라는 이름은 제국 황가인 오스만 가문에서 따 온 것이며, 오스만 가문은 제국의 초대 군주인 오스만 가지(عثمان غازى, Osman Gazi)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영어로는 오토만(Ottoman)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오스만 제국, 오스만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제국 등으로 부르며, 과거에는 오스만 터키라고 하기도 했다. 터키어 발음으로는 투르크가 아니라 튀르크이기 때문에 오스만 튀르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다만 학술적으로는 오스만 투르크나 오스만 튀르크나 둘 다 틀렸고, 오스만 제국이 가장 적당한 표현이다.

튀르크(Türk)라는 말은 오스만 제국 당대에도 있었지만 특정 종족이나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척박한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가난한 농민들이나 유목민 부류를 가리킬 때 쓰던 말이었다. 가난뱅이, 시골뜨기처럼 좋지 않은 뉘앙스의 말이었기 때문에 남을 욕할 때나 쓰였고 개인이나 집단 차원에서 튀르크를 자칭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스와 발칸 반도 지역의 기독교도 신민들도 투르크라는 말을 썼는데, 이 경우에는 민족이나 혈통과 상관없이 그냥 이슬람교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컨대 그리스 혈통이고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이라도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면 그리스인들은 그 사람을 투르키(τούρκοι)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도 발칸 지역의 일부 국가들에는 이슬람교도를 싸잡아 투르크, 터키 놈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남아 있다.

튀르크가 민족 정체성을 뜻하게 된 것은 오스만 제국 말기의 일이다. 오스만 제국이 강성하던 시절에는 수많은 민족들을 지배했는데, 이 때의 제국은 신민들을 종교에 따라 나누어 다스렸을 뿐 민족 정체성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제국 말기가 되자 유럽에 불던 내셔널리즘 열풍의 영향을 받은 신민들이 민족 의식을 형성하고 단일 민족 독립 국가 건설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이런 독립운동들이 성공하면서 제국의 다민족국가적 특성은 점점 약해졌고, 거기에 더해 제국의 국력 자체가 쇠퇴하여 많은 영토를 유럽 열강에 빼앗기면서 제국 내에서 '수니파 이슬람을 믿고 오스만어(터키어)를 쓰는 아나톨리아 출신 사람들'의 인구 비중이 전례 없이 커지게 되었다. 이들을 가리키기 위한 표현으로 재발견된 말이 바로 튀르크이다. 이후 튀르크 민족주의가 제국 내에서 큰 지지를 받게 되고, 그 거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키고 튀르크 민족국가를 표방한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면서 튀르크 민족이라는 개념이 완성되었다.

오스만 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신민들을 가리킬 때 쓴 말은 오스만인(Osmanlı)이었다. 이 말은 오스만 제국이 소규모 부족 국가이던 시절 오스만 가문의 추종자들을 의미하던 말인데, 제국이 거대하게 성장하면서 중앙 정부의 관리나 군인 등 제국 지배체제의 핵심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이 되었다. 부유하고 인구밀도가 높아 오스만 제국의 핵심 지역이었던 그리스 북부, 트라키아,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 지역의 주민들은 룸인(Rumi)이라는 표현도 썼다. 룸은 로마라는 뜻인데, 위 지역들이 옛 로마 제국의 중심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룸이 곧 지명으로 쓰이게 되었고, 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룸인이라고 부른 것이다. (다만 룸인이란 표현은 점점 제국 내의 그리스인들을 가리키는 쪽으로 의미가 변하여 그리스 독립 이후에는 확실하게 후자로 의미가 고정되었다) 오스만 제국 바깥의 다른 튀르크계 국가나 민족들 역시 오스만 제국과 발칸, 아나톨리아 지역을 오스만 혹은 룸이라고 불렀다. 제국 말기에 튀르크 민족주의가 득세하기 전까지 오스만인들은 튀르크라는 정체성이 없었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국가/민족들도 범튀르크주의와 투란주의가 유입되기 전까지 오스만인들을 튀르크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오스만 제국과 튀르크 민족의 이런 상세한 사정에 대해 잘 몰랐고, 오스만 제국 사람들을 전부 싸잡아 '투르크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 당대에도 정식 국호인 오스만을 잘 쓰지 않고 그냥 투르크 제국(Imperium Turcicum, Imperium Turcarum), 터키(Turchia) 등을 훨씬 많이 썼다. 오스만 투르크라는 표현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 무지한 사람들이 기존의 관습적 표현인 투르크에 원래 국호인 오스만을 덧붙여 만든 잘못된 이름이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기 이전엔 그냥 투르크나 터키라고 불렀는데, 제국이 멸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자 오늘날 터키(터키 공화국)가 아닌 옛날 터키(오스만 제국)를 가리키기 위해 투르크, 터키 앞에 오스만을 덧붙인 것이다. 21세기 들어 용어를 엄밀하게 따지는 학술적인 글에서는 이제 거의 쓰이지 않지만, 일반인들의 글에서는 한국이든 서구권이든 오래된 습관이 잘 바뀌지 않아서 아직까지 오스만 투르크, Ottoman Turk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4. 국력

역대 중동 제국 중에서 가장 강한 제국이었다. 한번 마음먹고 군대를 보냈다 하면 전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19] 강력한 제국이었으며[20] 유럽 동부에 제대로 된 공포를 느끼게 해 준 단 둘뿐인 제국인 데다가 메흐메트 2세, 쉴레이만 1세 등 멋진 명군이 활약한 이야기는 세간에 유명하기도 하다. 유럽사에서 악의 축이나 마왕 같은 이미지로 서로 전투를 벌이던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이 상대라면 한뜻이 되어 연합군을 편성하는 일도 빈번했다. 유럽 국가뿐 아니라 카라만 공국, 백양 왕조, 사파비 왕조, 맘루크 왕조도 다 같이 유럽 국가들과 손을 잡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려 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었다.

오래 있던 왕조 중 하나인데 600여 년간이나 존속하였다. 웬만한 이슬람 왕조는 단명하는 사례가 많지만 오스만 왕조는 600년이나 갔다.[21] 게다가 적어도 부르사, 에디르네 초기 양대 수도 점령 이전까진 거의 구전 설화 수준으로 기록이 없긴 하지만, 이후로는 몇몇 술탄 개인이 문약한 성격이었거나 술탄의 모후들이 권력을 휘두르거나, 예니체리 친위대에게 황제권이 농락 당한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이슬람 왕조들 중 독보적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인 황제권을 휘두른 국가이다. 동시대 사파비 왕조는 훨씬 일찍 18세기 초반, 그것도 내부 권력 구조의 취약함이란 근본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체 지방 토후였던 아프가니스탄 일대의 반란으로 멸망했고, 무굴 제국 또한 알람기르 1세 치세의 과다한 전쟁으로 인해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반란을 틀어막지 못한 채 18세기 초중반 이후로는 델리 일대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한 식물 정권으로 마지막 한세기를보낸 걸 보면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은 끝에서 네 번째인 압뒬하미트 2세 (1876~1909년 제위)까지만 하더라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그대로 전제 권력을 유지했으니 이슬람 왕조 국가들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근대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중앙 집권 전제군주정을 유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핵심이었던 소아시아의 튀르크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계승하여 터키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특성을 상당 부분 부정하고 세워졌기에 둘 사이의 연속성은 있더라도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당장 무스타파 케말의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케말리즘 또는 '여섯 개의 화살'은 공화주의, 민족주의, 인민주의, 국가 통제, 세속주의, 혁명인데, 이 가운데 공화주의는 오스만 제국에 명백히 반대하는 것이고, 민족주의도 오스만 제국의 체제를 계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 또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인민주의도 무슬림과 무슬림이 아닌 자(즘미)를 차별하던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이슬람을 국교로 삼은 데다 황제가 곧 칼리파이기도 했던 오스만 제국의 체제와 세속주의 역시 명백히 위배된다. 물론 오스만 제국이 터키 공화국의 전신인 것은 맞지만[22] 오스만 제국과 터키 공화국의 관계는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관계와 유사하다.

4.1. 영역

파일:34511aq1.png

전성기 시절에는 터키 본토는 물론이고 흑해 일대와 남동유럽(발칸 반도) 전체, 헝가리, 북아프리카[23], 서아시아[24], 카프카스아르메니아, 아라비아 반도 남부 예멘까지 세력이 뻗칠 정도로 거대한 제국이었다. 한창 전성기이면서도 기독교 세계와의 대립이 가장 치열했던 16세기 후반~ 17세기 초중반에는 헝가리,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직접적인 대결뿐만 아니라 저 멀리 있는 현대 인도네시아아체 지방에서 포르투갈과 대립하는 현지 무슬림 소국들에 병력과 무기를 지원해 주고 남쪽 소말리아 해안에서 역시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는 기독교 왕국 에티오피아에 맞서 무슬림 아달 술탄국의 물주 노릇을 했을 정도로 본격적인 세계 제국으로서의 국력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직접 지배하고 있는 곳 외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수니파 이슬람권의 큰형님 노릇을 하기도 했다. 몰디브나 인도의 이슬람 제후국들, 소말리아의 무슬림 국가들과 인도네시아 아체의 지원 요청을 받고 원정군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대부분 포르투갈인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인도양의 무역 루트를 둘러싼 이슬람-가톨릭 세력의 갈등으로 보기도 한다. 자세한 건 영문 위키의 일련의 사건 참조.

4.2. 인구

그러나 그 거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1683년의 2차 빈 공방전 직전 최대 판도를 자랑할 당시의 인구가 대략 3천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고대 로마 제국 동부의 인구가 3400만 명 정도, 동시기 프랑스 인구가 2천만을 넘었다. 프랑스는 농토의 비율이 높아서 비슷한 면적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인구가 많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사실 13세기 흑사병으로 1/3이 죽었는데도 1100만 명 수준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 최전성기인 카를 5세의 제국이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을 사실상 다 장악하고 있었는데도 유럽 내 영토의 인구만 놓고 보면 동시기 프랑스와 간신히 비슷하거나 조금 많았을 정도였고, 러시아조차도 프랑스에 크게 밀렸던 시절이다. 카를 5세가 괜히 프랑스를 경계한 게 아니다.[25] 이 당시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포함한 열강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았다. 러시아는 아직 변변치 못했다.[26] 여담으로 16세기 초반의 영국 인구는 400만에 불과했다.[27]

프랑스와 오스만 간 영토 크기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로마 제국 동부 역시 오스만 제국보다 작다. 반면에 동시대 유럽 전체의 인구가 1억 2천만이 넘어 오스만의 4배나 되었다. 그나마 3천만 명도 오스만 제국이 전성기 때의 인구로, 인구상으로 최정점을 찍은 시기인 1856년에 고작 3500만 명, 코스탄티니예 주변과 중동 일대만 간수한 말기인 1914년에는 2천만도 안 되는 1852만에 불과했다.(참고로 1906년 조사 기준으로 무슬림 인구 비중이 74%에 불과했다. 그리스인이 14.6%, 아르메니아인이 5.5%, 불가리아인 3.7% 등 기독교인 인구도 많았다. 문제는 이 당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적었던 열강인 이탈리아보다 1천만 이상이나 적었다. 즉, 20세기에 와서는 인구에서 유럽 전체도 아니라, 유럽 열강의 한 국가 보다도 열세였던 것. 오스만이 망하고 들어선 신생 터키 공화국도 인구가 고작 1463만에 불과했다. 참고로 신생 터키 공화국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 당시 그리스 인구가 약 750만 정도로 터키에 거주하는 그리스계가 200만 명 정도이니 그리스 입장에선 해볼 만하다고 느낀 셈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인구와 농토가 로마 시대에 정점을 찍었으나 지속적인 사막화로 인구부양력이 오히려 감소한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인구가 오늘날까지 유럽보다 적은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인구와 농토가 지속해서 감소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시대에 이르면 풍요롭던 옥토의 상당수가 사람 살기 어려운 땅으로 변해버렸고, 살 만한 땅도 끊임없는 전쟁과 간헐적인 학살로 인구가 상당히 감소했다.[28]

4.3. 군사

파일:external/img15.deviantart.net/ottoman_army_by_byzantinum.jpg

오스만 제국의 군사 조직은 크게 지방의 군사 봉토를 받아서 그곳에 거주를 하면서 징세권을 행사를 하던 지방 상비군인 시파히와 중앙 상비군인 카프쿨루가 있었다. 카프쿨루의 인원은 주로 데브쉬르메 제도에 따라 제국에 거주를 하는 그리스도인 자제들을 징집을 하는 것으로 충당을 했다. 카프쿨루 군단은 수행 임무에 따라서 7대 단위 부대로 구성이 되었다. 부대의 구성은 아제미, 예니체리, 제베지, 톱추, 톱아라바즈, 훔바라즈, 라음즈의 7개 단위로 구성을 했다. 그 중에서 최정예인 예니체리는 화기가 등장을 하던 16세기에 그 중요성이 부각이 되어서 거대한 군사집단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특히 오스만 제국은 동원력이 뛰어났는데 황제가 친정을 하면 10만 아니면 10만이상의 병력이 동원될 정도였다.

4.3.1. 지방 상비군

티마를르 시파히: 지방에서 군사 봉토를 받아 징세권 행사를 하던 상비군. 서유럽의 기사(역사)와 비슷하며 봉건영주들이라고 보면 됨. 투르크의 전통세력
4.3.1.1. 계급
  • 티마르(2만 에이커를 넘지 못하는 규모 + 최대 5명의 제벨루) : 일반병들에게 배분
  • 지아멧(ziamet, 2만 에이커 이상에서 10만 에이커 미만 + 최대 20명의 제벨루) : 중간장교급
  • 하스(has, 최대 10만 에이커에 달하는 대토지 + 20명 이상의 제벨루) : 최고위 장교 전용
4.3.1.2. 지역
서로의 홈그라운드에 와서 싸울 때에는 본인이 우익[29]에, 상대방의 영역에서 싸울 때에는 본인이 좌익에 배치됨.
  • 루멜리 사파히
    • 거주지: 발칸반도
    • 무장: 둥근 방패, 랜스, 검, 투창, 체인메일등 유럽기사와 비슷
    • 전술: 투창을 이용 적군의 기병대를 유인후, 기병대와 보병대가 따로 떨어진 틈을 타 기병대를 포위, 섬멸하는 전법을 즐겨 사용
  • 아나돌루 사파히
    • 거주지: 아나톨리아
    • 무장: 둥근 방패, 킬트, 터키식 복합궁, 검 등 전통적 궁기병의 무장.
    • 전술: 보통 궁기병이 그렇듯, 활과 화살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가 기본

4.3.2. 중앙 상비군

카프쿨루 <- 데브시르메 제도(그리스도인 자제들 대상으로 한 징집)에서 충당.
4.3.2.1. 기병(시파히) 6 부대
  • 시파히: 오스만 제국의 귀족 엘리트들에게서 모집, 술탄의 경호대 및 의장대, 가장 대규모
  • 실라흐타르: 레인저 같은 특공대, 가장 뛰어난 전사만이 속할 수 있었음. 일반병사들도 전공을 세웠다면 포함가능
  • 사으 울루페시 : 중산층 출신
  • 솔 울루페시 : 중산층 출신
  • 사으 가립 : 하류층 출신, 경무장
  • 솔 가립 : 하류층 출신, 경무장
=> 1828년, 부대 해체 후, 새로 개편된 서구식 기병대에 합류
4.3.2.2. 보병의 7부대
4.3.2.2.1. 예니체리
어원: 예니센(튀르크어), 뜻: 신군대
최정예 보병. 화기가 등장한 16세기 이후 중요성이 부각되어 군사집단으로 발전
  • 배치 지역별, 규모별 분류
    • 베일릭 예니체리: 술탄의 직속부대. 최정예. 루멜리아 지역의 방비만 담당. 61개의 오르타 규모
    • 제마아트 예니체리: 봉급을 받고 싸우는 상비군. 수도권 제외 중요 거점, 전방 도시 배치, 실질적 주력. 101개 오르타 규모
    • 세크반 예니체리: 역할은 제마아트와 동일, 봉급은 없음. 주로 경보병으로 적의 추격 및 섬멸(전리품)이 주요 업무. 주로 농민. 34개의 오르타.
    • 아제미 오을란: 예니체리 훈련병. 보스탄즈: 술탄의 호위병 겸 정원사, 궁경경비대. 34개 오르타.
  • 기능 별 분류
    • 지르힐 네페르(갑주병사): 경번갑, 투구 + 다양한 검, 전투도끼, 폴 암, 갈고리 창, 메이스, 단검, 발칸식 방패
    • 옥추(궁수): 복합궁, 차가라(석궁), 젬베렉(굵은 화살용 대형 석궁), 검, 도끼, 단검
    • 튀펙치(머스킷 사수) 머스킷(참호거치식, 부싯돌 격발식, 화승식, 기병용), 검, 도끼, 단검
    • 솔락/페익(정예부대원): 투구만 착용, 갑옷은 입지 않음 + 가다라(미늘창), 단검/ 복합궁, 창
    • 보스탄즈(궁궐경비대)
  • 예니체리 무장
    • 무기: 검, 합성궁, 메이스, 도끼 등(티마를르 시파히 중, '루멜리 사파히'와 비슷)
    • 방어: 플레이트 메일, 체인메일, 둥근 방패 -> 17세기 후반부터 입지 않음.
  • 예니체리 복장
    • 머리
      • 일반: 뵈르크(45cm 길이의 하얀색 머리 보호대, 깃털을 꽂고 행군함): 술탄이 옷에서 잘라 하사한 소매를 모자로 쓴 것이 시초
      • 궁궐경비대(보스탄즈): 바타라(붉은색 머리보호대)
    • 상의
      • 정예(솔락/페익): 노란색 군복 + 청동제 투구
      • 일반: 돌라마(빨강과 노란색 로브)
      • 궁궐경비대(보스탄즈): 붉은색 로브
    • 하의: 치마(청색, 암청색)
    • 군화
      • 고급장교: 붉은색
      • 하급장교: 검은색
  • 예니체리 머리 스타일
    • 정수리의 한 움큼만 남겨놓고 삭발: 참수 후 잡기 편하라고(;;;)
  • 예니체리 수염 스타일
    • 콧수염만: 당시, 턱수염은 자유민의 상징. 예니체리는 술탄의 개인 소유 노예
4.3.2.2.2. 아제미
예니체리 중에서 정원이 차서 떨어진 자들로 구성
4.3.2.2.3. 제베지
전투 담당이 아닌, 무기 제작과 관리 담당 장인, 전시에는 수송업무 담당
4.3.2.2.4. 톱추
전문 화포 담당 군인, 공성속도 올리는 것이 목적
4.3.2.2.5. 톱아라바즈
대포를 끄는 마차를 담당하는 군인
4.3.2.2.6. 훔바라즈
화포 제작 관리자. 분해와 조립 숙달이 목적
4.3.2.2.7. 라음즈
다른 부대와 협력하여 다양한 공작활동 담당

4.3.3. 전략

먼저 지방세력(시파히)을 보내 상대방을 지치게 한 후, 정예군(예니체리)을 보내는 방식

4.3.4. 보급

오스만 제국 관료들은 원정이 있기 전 군대에게 필요한 식량의 양을 계산해야 했다. 그리고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식량을 전부 현지에서 구매하거나 현지에 세워둔 창고에서 해결하려 들면 해당 지역의 물가가 심각하게 교란될 수 있었으므로, 관료들은 이전 원정에서 남은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 또 새로 구입해야 하거나 보급해야 하는 식량은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서 필요한 식량의 양을 결정해야 했다. 또 다음해의 원정을 위해 그 해에 모은 식량을 몽땅 써 버릴 수는 없었으니 잉여분도 충분히 잡아야 했다.

오스만 제국은 군대에 필요한 식량을 징발한 게 아니라 구입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관료들은 식량 운송비는 물론 식량 구입비까지 계산해야 했다. 주둔지나 행군경로 인근의 작황이 좋지 않으면 당연히 구입비가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모았다가 남은 식량은 비축되기도 했지만 봄이나 추수기에 구입한 가격으로 다시 해당 지역에 되팔았는데, 대개 원정이 겨울에 끝나다보니 식량 가격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정부가 저가로 식량을 판매하는 것은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되었다.

4.3.5. 상인

오스만 제국군은 보급부대와 함께 다수의 상인들을 데리고 다녔다. 1570년대 크레타 원정 시에는 식료품상과 외과의들이 동행했고, 1730년의 동방 원정 시에는 식료품상뿐만 아니라 제화공, 이발사들도 동행했다. 이들은 군대에 필요한 식량이나 무기, 장비들을 공급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도 챙겨 갔다. '징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오스만 상인들은 원정이 자신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항상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 나온 1730년 원정 시 참가한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충분히 지켜지지 않았다고 느끼고 불만을 품고, 결국 이 불만이 폭발해 술탄 아흐메드 3세가 퇴위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기도 한다. 중동에서 상인들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해서, 19세기 말~20세기 초에도 이란의 상인들은 영국의 담배전매권을 취소시킨다든지, 헌법을 도입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16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은 화폐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오르기 바빴는데, 1586년 오스만과 사파비 페르시아와의 전쟁 시 타브리즈의 수비군들은 자신들의 지급받은 화폐의 가치가 이전의 3/5로 떨어지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이 시기 원정을 다룬 역사가 무스타파 알리에 따르면 당시 카프카즈 지역에서 밀가루 1옥카(okkas=1.28kg)는 66악체, 빵 1옥카는 알툰(altun)금화 두개, 즉 250악체와 맞먹었는데, 여기 주둔하던 병사들의 급료는 하루 5 악체로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 병사들은 당연히 이 지역에서 싸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군대는 통솔을 잘 따르지 않거나 아예 반란에까지 동참하게 되었고, 예니체리들마저 부업에 나서게 되었다.

4.3.6. 공군 최초보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독립된 공군을 창설, 운영한 나라다. 오스만 제국에 비행기가 들어온건 1909년 11월에 벨기에인 파일럿 바롱 드 카테르(Baron de Catters)가 코스탄티니예에서 시연한 부아생(Voisin)형 비행기로 중량 500kg, 최대 시속 76km로 날 수 있는 모델이었다. 이를 본 술탄 메흐메트 5세가 앞으로 전쟁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청년 튀르크당과 함께 1911년에 공군을 창설했으며 초기에는 17기밖에 안되는 비행기를 가지고 정찰 및 전령 목적으로 운영했지만 1912년에 발발한 발칸 전쟁과 같은 해에 있었던 리비아 전쟁에서 대활약을 하고, 공화국 성립 이후 터키군이 이 부대를 인수받아서 오늘날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또 오스만 제국 공군은 세계 최초의 흑인 파일럿인 아흐메트 알리 첼릭텐(Ahmet Ali Çelikten)을 배출했다. 오스만 제국의 아프리카 영토 일부, 아라비아 반도 일부 지역에 흑인 거주민들이 있었으며 수도에도 흑인 노예들, 황실 하렘의 흑인 환관들도 존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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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남동 유럽 전쟁 당시 오스만 제국 공군의 모습)

4.3.7. 군악대

오스만 제국은 인류 역사상, 적어도 유럽 사상 최초로 군악대를 운용한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고대부터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한 용도로 나팔 소리 같은 것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순수하게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목적만으로 음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정예군인 예니체리이다. 예니체리 내에 딸린 군악대를 메흐테르(Mehter)라고 하는데 이는 해당 문서 참조.

5. 문화

5.1. 복장

5.1.1. 모자(on the head)

  • kalpak, sarık(터번)
  • başlık: perisani(슐레이만 시대) -> fez
    • kulah's covered with abani, yemeni
    • yusufi, orji, katibi, kavaze, etc.
    • kavuk: 가장 일반적인 배쉬크

5.1.2. 조끼(vest)

  • caftans with fur lining and embroidery: 상류층
  • cübbe, hırka: 중류층
  • cepken, yelek: 하류층

5.1.3. 상의

  • mintan, zibin, şalvar, kuşak, potur, entari

5.1.4. 하의

5.1.5. 신발(feet)

  • çarık, çizme, cedik, yemeni

6. 행정 구역

파일:Ottoman_Empire_(1609).png파일:Ottoman_Empire_(1900).png
Eyalet 행정 구역, 1609년. Vilayet 행정 구역, 1904 - 1912년.

오스만 제국의 행정 구역은 크게 1867년 이전과 그 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해 1월 21일을 기하여 최상위 지방 행정 구역이 에얄레트(Eyalet)에서 빌라예트(Vilayet)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먼저 1867년 이전까지 지방의 최상위 행정 구역이었던 에얄레트는 베일레르베일릭(Beylerbeylik)또는 파샬륵(Paşaıik)라고 했는데, 1365년 무렵에 오스만 제국령 남동유럽을 통째로 '루멜리 에얄레트(Rumeli Eyalet)' 로 묶은 것이 시초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남동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는 있었지만 아나톨리아 반도와의 사이에 동로마 제국 영토가 놓여 있어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30], 이에 루멜리 전체를 지방 행정 구역으로 묶어 관리하려던 것. 이후 바예지트 1세가 루멜리로 군사 원정을 떠나면서 아나톨리아 반도도 아나돌루 에얄레트(Anadolu Eyalet)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이게 되었고, 1398년에 아나톨리아 동부의 튀르크계 공국이었던 에레트나 공국을 멸하고 그 땅에 룸 에얄레트(Rûm Eyalet)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15, 16세기까지 메흐메트 2세, 셀림 1세, 쉴레이만 1세 등이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이면서 에얄레트가 계속해서 설치되게 된다. 각 에얄레트는 베일레르베이(Beylerbey)[31]라 불리는 총독이 관할했으며, 하위단위인 산작(Sancak)으로 나누어졌지만 일부는 시파히들에게 하사하는 영지로 편성되기도 했다. '메흐메트 알리' 문단에 소개된 것처럼, 베일레르베이들은 각자가 담당한 에얄레트 내에서는 군사권, 행정권, 경찰권 등 폭넓은 권한을 보유하며 그 지방 내에서는 황제와 거의 유사한 권한을 행사했다.

각 에얄레트 아래에는, 산작이라 불리는 하위 행정 구역이 있었다. 각 산작은 산작베이(Sancakbey)라 불리는 지방관이 관할했으며, 에얄레트의 하위 단위인데다 그만큼 관할 범위도 좁다는 것을 제외하면 에얄레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다만 처음 생겨난 것은 이쪽이 조금 더 일러서, 2대 군주 오르한 때인 1340년 무렵으로 여겨진다. 또한 각 산작 아래에는 카자(Kaza)라 불리는 최하위 행정 구역이 있었는데, 이쯤 되면 향촌 단위로 카디(kadi)라 불리는 법관이 통치하거나[32] 오스만 제국이 정복하기 이전에 유력한 부족이나 귀족이 통치하고 있던 경우 자치를 인정해주었다. 특히 아나톨리아 동부의 쿠르드족과 남동부의 아랍인들은 동쪽에 위치한 강력한 적인 사파비 왕조에 맞서기 위해 이들의 군사적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공화국시기 직전까지도 사실상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에얄레트와 산작은 지방 행정 단위이기도 했지만, 그 동시에 군대 편제이기도 했다. 먼저 베일레르베이와 산작베이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각자 맡은 구역에 대한 군사권도 가지고 있었고, 전쟁이 일어나면 산작베이는 각자가 맡은 산작이 속한 에얄레트를 다스리는 베일레르베이의 지휘하에 들어가고, 각 베일레르베이는 원정을 총지휘하는 황제 또는 재상의 지휘하에 들어가거나 원정의 규모가 작다면 베일레르베이가 총사령관을 맡는 체제였기 때문. 실제로 산작라는 말 자체가 터키어로 '군기'라는 뜻이다.

1867년 이전까지의 최상위 행정 구역이었던 에얄레트와 그를 대신하게 된 빌라예트의 가장 큰 차이는, 각 에얄레트(또는 빌라예트)의 크기가 대체로 일정한가 그렇지 않은가였다. 그때그때 정복한 땅에 설치되었던 에얄레트는 크기가 완전히 제각각이어서 두어 개의 산작만을 거느린 에얄레트가 있는가 하면[33] 스무 개가 넘는 산작을 거느린 에야레트도 있을 정도였는데[34], 오스만 제국이 잘 나갈 때야 지방 행정 구역을 어떻게 짜든 상관이 없었지만 남동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독립 운동을 일으키고 심심하면 러시아가 쳐들어오고 하는 상황에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방 행정 제도가 필요했던 것. 1878년 당시의 오스만 제국의 빌라예트 체제는 다음과 같다. 자세히 보면 당시의 오스만 행정 구역이 거의 정확하게 이라크(무술, 바으다트, 바스라 빌라예트), 이집트(므스르 헤디브령), 리비아(트라블루스가르프 빌라예트),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스나 빌라예트)의 전신임을 볼 수 있다.

7. 세금 제도

밀레트 제도에 따라, 오스만 제국의 백성들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서로 다른 세금을 납부했다. 무슬림은 소작민의 경우 지대, 도시민의 경우 도시세, 종교세이자 소득세 역할을 한 제캬트(Zekât)[35], 그리고 병역 혹은 병역을 대신할 세금을 납부했으며 기독교인은 소작민의 경우 지대, 도시민의 경우 도시세, 교회에 납부하는 십일조, 비무슬림에 대한 생명 및 재산 보호세 명목이지만 사실상 소득세의 역할을 한 지즈야(Cizye)를 납부했다. 기본적으로 세금은 각 가정의 노동이 가능한 성인이자 자유인인 남성 인구를 대상으로 부과되었으며, 어린이, 여성, 장애인, 노인, 노예등은 모든 세금에서 면제되었다. 지즈야를 납부하는 비무슬림 인구는 지즈야가 소득세 겸 병역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군대에 징집되지 않았다. 지즈야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세금들은 빈민층, 특히 농노에게는 가혹했지만 부유층에게는 그다지 높은 세금이 아니었다. 세금을 걷는 관료는 각 세금 종류마다 다 다른데, 이를테면 제캬트와 십일조는 각자의 종교시설에 납부하는 세금이고, 지즈야의 경우 지즈예다르(Cizyedar)라고 불리는 지즈야를 책정하고 걷는 세무원에게 납부하고, 지대와 도시세는 봉건 영주 혹은 각 도시의 총독에게 납부하는 세금이다. 이렇게 걷어진 세금은 각각 중앙에 납부하는 할당량을 제외하고는 해당 주체가 자유롭게 유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 중앙에서 할당한 세금보다 많은 양을 거두어 지방, 도시, 모스크, 교회에서 예산으로 활용했다.

당시 조세 저항이 가장 심했던 오늘날의 알바니아 지역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알바니아 산골 마을에 지즈예다르가 찾아왔다. 목적은 당연히 지즈야를 거두려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총을 가지고 나와 허공에 대고 쏘면서 "우리는 무슬림이다. 지즈야를 낼 수 없다!" 고 뻗대기에 지즈예다르는 소득없이 돌아갔다. 그 후 모병관이 마을을 찾아와서 "당신네들은 무슬림이니 군대를 가거나 병역세를 내라!" 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총을 쏴대면서 "우리는 조상 대대로 기독교인이다. 우리가 왜 군대를 가야 하냐?" 라며 모병관을 쫓아버렸다. 그러자 그 다음 달에는 지즈예다르가 다시 찾아왔고, 또 총을 쏴대면서 "우리는 무슬림이다!" 라며 쫓아내어 마을 사람들은 사실상 면세를 누렸다는 일화인데, 오스만 제국의 복잡한 세금 제도와 부실한 지방 장악력이 드러나는 일화.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지방 통치는 주요 거점 만을 장악한 형태로, 촌락, 부족, 지주들의 영지는 각 촌장, 부족, 지주 등 유력자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졌으며, 이들의 고유 권한은 중앙 정부나 지방 총독도 간섭할 수 없었다.

8. 종교 국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초창기에는 튀르크 부족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로마와의 성전"을 명분으로 세력을 끌어모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시기 까지 가지(Gazi)로 대표되는 종교 이데올로기는 국가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영토 확장으로 대규모의 비무슬림 피정복민들을 끌어안는 상황이 되자 이는 수정이 불가피했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급속도로 팽창한 15세기 초부터 발칸 지역 대부분을 상실하게 된 19세기 말까지 대략 4세기 동안 제국 내에는 무슬림보다 비무슬림 인구가 더 많았다. 때문에 오스만 제국은 멸망 당시 까지도 제국의 백성들을 '그들이 믿는 종교'에 따라 공동체(Millet, 밀레트)를 형성하게 하여 각자의 종교법에 따라 통치하고, 형법(Kanun) 만큼은 모든 밀레트가 공통적으로 지키게 했다.

그리고 가지의 의미가 이슬람 전사라 하더라도 딱히 십자군 전쟁 같이 종교적인 이유에서 전쟁을 한 것도 아니다. 상술 된 오스만 건국에 대한 일화가 보여주듯 기독교계라도 이해 관계가 일치한다면 얼마든지 동맹이나 파트너가 될 수 있었고, 초기 오스만 공국 입장에선 동로마가 워낙 가깝고 군침흘릴만한 문화 유산이 많았긴 했어도, 인근의 아이딘 공국 같은 다른 무슬림 아나톨리아 튀르크 공국들도 실컷 털어먹었다. 14-15세기아나톨리아 문맥에서 '가지'의 종교성은 사실 저렇게 노략질로 벌은 돈으로 수피 순례자들 모시고, 이마렛이라 하는 모스크와 그 옆에 딸려 있는여행자용 편의 시설을 건설 하는 등 비전투적인 면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때문에 민족주의 열풍으로 제국이 조각나기 시작하는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종교 문화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이질적이었다. 각자의 종교법에서 금지하는 것[36]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서로 다른 밀레트 간의 민사 갈등을 해결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의 밀레트에 속하지 않은 판관에게 가서 재판을 요구하는 일도 매우 흔했다.

마크 마조워의 <발칸의 역사>가 당시의 풍토를 잘 묘사하고 있는데, 자신을 소를 떼먹고 돌려주지 않는 아들에게 샤리아법대로 돌려받기를 원하는 정교회 신자 아버지나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척)하고 남편을 '불신자'로 보아 혼인 무효를 이끌어내는 크로아티아인 가톨릭 여성,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튀르크인 선원, 마을에 알 수 없는 재난이 자꾸만 발생하자 정교회 성직자, 가톨릭 성직자, 유대인 랍비, 이슬람 이맘을 불러 구마 의식을 하다가 도저히 해결 안되자 튀르크인 마법사를 불러 푸닥거리를 하게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불가리아의 한 시골 마을 같은 이야기를 보면 당시의 사회가 오늘날 이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심지어 무슬림은 튀르크인들 조차도 포로로 잡힌 영국 선원들에게 '이슬람을 믿을 것을 권하다가' 이들이 한사코 개종을 거부하자, 선실 하나를 내주어 교회로 개조하게 하여 '그럼 기독교라도 열심히 믿어야지!' 하며 예배를 독려하는 튀르크인 선장 이야기라든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자 '왜 성모님께 기도하지 않소?' 라고 개신교인 선원에게 힐난하는 무슬림 선원 등의 일화가 줄줄이 나열된다.

황제들 또한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보호하는데 헌신적이었는데, 성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바꾼 장본인인 메흐메트 2세 조차도 전란으로 허물어진 로마 제국 시절의 정교회 성당 복구에 금전 지원을 했고 보스니아를 정복한 뒤에는 '제국 신민들 중 그 누구도 기독교도들이나 기독교회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라는 내용의 포고령을 내리기도 했으며[37], 셀림 1세아토스 산에 막대한 지원을 하여 수도원들을 수리하게 하는 동시에 "그간 전쟁, 천재지변으로 무너지거나 손상된 정교회 성당, 수도원을 수리할 것이며 이들을 절대로 파손해서는 안 된다."칙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이후의 황제들도 정교회나 가톨릭, 유대교에 대한 지원을 간간히 한 기록이 발견되며, 성 니콜라오의 교구였던 미라의 성당 또한 러시아 차르와 함께 오스만 황제의 지원을 통해 복원이 이루어졌다.[38]

일각에선 바티칸에 비교하면 피상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를 보고 오스만 제국의 탄압을 그 동기로 지목하는 모양이다. 물론 동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 아예 국가적 차원에서 정교회를 대표하는 정치적 교권은 아예 상실했지만, 딱 이 이상으론 본 적이 없는 수박 겉핥기 수준의 피상적인 평가다. 정복 후 총대주교좌 또한 처음에는 하기아 소피아 다음으로 격이 높았던 성 사도 성당을 쓰게 해주었다. 성 사도 성당은 몇 년 뒤 다시 뺏기고 아예 해체, 현재 그 자리에 있는 정복자의 모스크로 바뀌었지만 이건 황실의 종교적 편협성과 심술보의 산물이 아니라 건물 자체의 노후화 문제로 생긴 문제로, 옮긴 옆의 파마카리스토 성당 또한 상당히 권위 있는 건축물이었다. 파마카리스토 성당 또한 16세기 후반 오스만 황실이 뺏어 모스크로 개조했지만, 이때 새로 받아 아직까지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 성당인 성 제오르지오 성당(아야 요르기)도 상당히 유서깊었던 건물이었다. 교회의 사이즈는 모스크보다 작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크기 자체는 작으나 적어도 지금 현대 모습으로 18세기 재건축 할 때는 황실에서 당대 최신식 유럽의 건축가, 건축 기술 다 끌어오며 공들여 지은 것이며, 자세히 조목조목 살펴보면 당장 외부부터 대리석 떡칠에 속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호화롭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이스탄불에서 백년 전엔 이 도시의 반이 그리스어를 쓰며 정교회를 믿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로마인이라 불렸던 현지 그리스계 공동체가 사라진 건 오스만 제국이 망한 이후 공화정 시절 각종 재산권 분쟁을 빌미로한 실질적인 민족 탄압 정책 이후 생겨난, 가슴아프게도 상당히 근대의 사건들이다.

9. 튀르크족의 국가?

오스만 제국의 기원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단 튀르크족이 세운 나라인 건 맞다. 하지만 요즘 터키의 민족주의적 성향의 사학자들이나 극우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오스만 제국을 튀르크 민족국가라고 보기엔 여러가지 무리가 따른다. 일단 황제의 모후들 부터가 휘렘 술탄이나 쾨셈 술탄, 나크시딜 술탄등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그리스인, 슬라브인, 캅카스인(조지아인, 체르케스인 등), 알바니아인들이 대다수였던지라 제국의 황가는 비(非)튀르크계 혈통이 상당히 많이 섞였기 때문에 오스만 1세오르한 정도라면 모를까 후대로 가면 갈수록 '튀르크인' 이라고 하기 어려워지며[39], 제국이 팽창하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는 민족이고 출신이고 안 가리고 오직 능력에 따라 등용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고향에서 헐벗은 소작농 출신의 아이도 능력만 인정받으면 이스탄불의 최고급 교육기관에서 수학하고 황제의 근위병이 되거나, 건축, 군사, 교육 분야의 능력자가 되거나, 심지어 고향에 총독으로 부임할 기회나 황제 다음으로 높은 자리인 재상까지 오를 기회도 열려있었다. 당장 오스만 제국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들만 하더라도 순수한 튀르크 혹은 이슬람 배경을 가진 인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제국의 역대 재상들은 대부분 발칸 반도캅카스 출신들이었다.

제국의 영토였던 동유럽 출신 인사들을 고관으로 기용된것만큼 잘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제국 외부의 기독교 세계인 서유럽 출신 인물들이 관직에서 활약한 사례도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 발견할 수 있다. 해적 출신들도 있었지만 당대 유럽의 상위 계층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 초빙되어 활동했던것 처럼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 개종 후 기용된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오스만군의 군제 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 훔바라즈 아흐메트 파샤[40], 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활약한 독일 출신 메흐메트 알리 파샤[41], 폴란드 출신 무스타파 젤라레딘 파샤[42] 등이 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인 도제의 서자로 쉴레이만 1세 시절 오스만에서 베이오울루라는 이름으로 오스만의 동유럽 원정에 협력한 알비제 그리티(Alvise Gritti)의 사례도 있다.

(1908년 오스만 제국 의회 의원들의 출신 민족을 나타내는 지도)

동유럽, 북아프리카 영토가 독립, 혹은 서구 열강에 떨어지고 있던 제국 말엽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의회 의석들을 보면 142명의 튀르크인 의원들 외에도 아랍인 의원 60명, 알바니아인 의원 25명, 그리스인 의원 23명, 아르메니아인 의원 12명, 유대인 의원 5명, 불가리아인 의원 4명, 세르비아인 의원 3명, 블라흐인[43] 의원 1명등 절반 가량의 의석이 비튀르크인들이 점유하고 있는걸 볼 수 있다.

심지어 민족주의의 시대에 접어들어 그리스를 비롯한 피지배국들이 독립하던 시절에도 압뒬하미트 2세는 민족주의가 아닌 범이슬람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의 공용어를 아랍어로 정하고, 제국 내에 튀르크인보다 수가 많은 아랍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기까지 했다. 아타튀르크 항목을 보면 당시에 대한 아타튀르크의 기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청년튀르크당의 혁명을 초래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오스만 제국은 현재의 민족주의적 핀트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다민족,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제국이었다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현재의 "터키 공화국 영토 내에서 거주하고 터키어를 사용하며, 터키 문화속에서 자랐으며 스스로를 터키인으로 인식하는 자는 모두 터키인이다." 라는 케말리즘적 튀르크 민족주의의 정의를 최초로 내린 사람인 오스만 제국의 사회학자인 지야 괵알프(Ziya Gökalp)는 자자족출신이며, 현대 터키 공화국의 국가인 독립행진곡(İstiklâl Marşı)을 작곡한 메흐메트 아킵 에르소이(Mehmet Âkif Ersoy)는 알바니아계 출신이다. 아타튀르크 본인도 그리스의 테살로니카 출신에다 금발벽안의 백인의 외모를 하고 있으며, 그의 동료이자 공화국 2대 대통령으로 제임하는 이스메트 이뇌뉘는 쿠르드인이며 3대 대통령인 젤랄 바야르는 불가리아계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오스만 제국을 튀르크인의 민족국가로 정의하는 것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 평가

메소포타미아[44]레반트[45] 모두를 400여년 가까이 지배하여 역사상 최장 기간 지배한 기록을 세웠다. 그 뒤로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약 200여년 간 지배하였다. 로마 제국(동로마 포함)은 이집트와 레반트는 오래 지배했지만[46] 북부 일부를 제외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에 잠시 차지했던 것 외에는 지배한 적이 없다. 그곳 자체가 파르티아-사산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거리도 서로 멀고 국력도 강해서 완전 병탄을 할 수 없는 로마 입장에서는 잠시 찔러볼 수는 있을지언정 영유할 수는 없었다. 최전성기의 로마 제국부터 19세기의 슈퍼 파워 영국, 20~21세기 슈퍼 파워 미국조차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장기간, 그것도 완벽히 지배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그리고 미마르 시난의 작품들로 대표되는 오스만 제국 특유의 비잔티움 건축 양식을 계승한 돔형 지붕의 거대 모스크들은 북쪽으로는 헝가리로 부터 시작하여 유럽에서는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그리스,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에 걸쳐 남쪽으로는 이집트, 튀니지, 수단 해안 지대, 예멘까지 엄청나게 넒은 지역에 오랜 시간 동안 수난을 당하면서도 꿋꿋히 남아 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세계사적 위세와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오스만 제국 국력의 원천지이자 정치적, 경제적 핵심지였던 지방은 흔히 생각하는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 등이 아니라 아나톨리아 해안 도시들과 '로마인들의 땅'이란 뜻인 루멜리아라고 불렸던 남동유럽의 현대 그리스,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지방 일대였는데, 정작 이곳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문화재가 많이 소실되었다는 것이다. 이 동네가 19세기 이후 각각 민족 국가로 독립하면서 소위 과거사 청산을 위해 많은 수의 오스만 모스크들과 목욕탕, 정부 건물 등 사적들이 기독교 교회로 강제 개조하거나, 심한 경우 아예 국가 차원에서 무신론을 밀었던 공산 정권 시절 방기, 혹은 파괴당했다. 물론 독립 투쟁의 열풍이 지나간 이후 이 또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사적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보존, 유지한 경우도 많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자체가 상당히 더디게 진행 되다가 발칸 전쟁과 1차세계대전이란 거대한 참화를 맞고 중단 된 과정이다 보니 이 와중 역사적으로 제국 두번째 도시였던 테살로니키가 1917년에, 세번째 도시였던 스미르나가 1922년에 대방화 사건을 겪고 [47] 구시가지가 싸그리 불타는 등 20세기의 영 안좋은 참혹한 편지풍파를 살아남지 못한 경우가 많다. 당장 16~17세기에 걸쳐 변방 도시로서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자 무역로에도 위치해 있어 오스만 제국이알토란 같이 잘 개발해 놓아 16세기 말에는 인구가 10만명이 넘는 대도시였던 베오그라드만 하더라도 현대에는 한때 존재했던 273개의 모스크 중 남아 있는게 하나밖에 없다#.

이에 덧붙여 추가로 설명하자면 학계 내부에서라도 민족주의적 앙금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최근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오스만의 과거 유럽 속주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의 자국 통치 시기를 무조건적인 암흑의 시대로만 규정하여 오스만 제국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오스만의 유산에 대해 호의적인 터키 쪽에서도 핀트가 심하게 어긋난 근대 민족 국가적 관점이나, 이슬람주의적 관점에서 오스만 제국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하여 현대적 의미의 동·서양 구분을 뛰어넘는 오스만 제국의 역사적 정체성이 왜곡당한 면이 더욱 심했다.

오스만 제국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했던 16~17세기 시절에도 오스만 제국의 핵심 알토란 땅은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동유럽, 아나톨리아가 핵심이었고, 그밖의 영토 중에서는 기껏해야 시리아의 알레포, 다마스쿠스 정도가 쓸만한 땅이었다.[48] 다마스쿠스는 초기 칼리파 시절 부터 근 9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리아 지방 행정 수도였고, 알레포는 십자군 전쟁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제노바 공화국, 라구사 공화국을 통한 대서방 교역의 중심지였다. 게다가 이 지방은 오스만 제국의 핵심이었던 서부 아나톨리아와 그리스 일대에서는 그나마 짦은 시일 내에 군대와 관료를 파견할 수 있는 거리다. 이집트는 복속 이후로도 토착 맘루크 세력의 견제 때문에 제국 중앙의 권력이 잘 안 닿았으며, 아라비아 반도는 이슬람의 두 성지(메카메디나)가 있다는 종교적 의미를 빼면 쓸모 없는 사막이 대부분인 불모지였고, 튀니지, 알제리 등의 북아프리카 일대는 사막이 많은 불모지에다 제국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여 실질적으로는 제국의 직할지가 아니라 현지 사략 해적 군벌들의 영지에 가까웠고, 현대 이라크지방 또한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와의 접경 지대로서 안정적으로 개발하기 힘든 땅이었다. 험준한 산맥 지형으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인구가 밀집되어 있지 않고, 현지 토착 민족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중앙의 통제가 힘든 동부 아나톨리아캅카스 산맥이야 말 할것도 없다.

이 와중에 오스만 제국이 직접적으로 운영하며 정치, 군사 엘리트들이 대거 배출되었고, 인구 또한 가장 많았던 비옥하고 중요한 알토란 땅들은 당연히 이스탄불를 필두로, 셀라니크, 위스퀴프, 얀야, 이즈미르, 에디르네, 트라브존, 마나스티르, 필리베, 사라이보스나, 이슈코드라, 퓌르졘, 베오그라드, 테메슈바르 등의 현대 아나톨리아 해안가, 그리스, 남동유럽에 걸쳐져 있던 땅들인데, 이들은 로마 제국 동부의 요충지로 시작하여 동로마 제국을 통해 헬레니즘에 중점을 둔 동일한 문명권을 형성하던 지역들이다. 남동부 유럽이 터키 동부보다 백년 일찍 오스만에게 정복된 사실도 있다. 오스만이 남동부 유럽의 패자가 된 것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2차 불가리아 제국이 무너진 14세기 후반인데, 오늘날의 터키 중부 및 동부까지 오스만에 복속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중반인 메흐메트 2세 치세다. 오늘날 터키가 완전히 정복된 것은 셀림 1세 때.

오스만 제국의 술탄 파디샤들은 이러한 지정학적, 문명적 연속성을 근거로 러시아 제국보다 백년 먼저, 그것도 상당한 세월 동안 더욱 설득력이 있게 로마의 카이사르 (Kayser-i Rum)를 자처했던 것이다. 애초에 이 지방 사람들이 보아왔으며 익숙했던 로마 제국의 일면은 게르만 족의 침공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300년 이상 제국의 단절을 겪었던 현대 서유럽 지역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통해 끊임 없이 계속 이어져 왔던 그리스-오리엔트 쪽 측면이기도 했다.

아무튼 터키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술탄제에 이어 칼리파 제도 폐지하고 오스만 가문 구성원들을 모조리 국외 추방하면서 평가가 매우 부정적이었으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집권 하에서는 어느 정도 재평가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이쪽은 또 상술했다시피 오스만 제국은 종교성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았고, 국가의 핵심 이데올로기 몇가지 중 하나에 불과 했으며, 무엇보다 튀르크인, 무슬림만의 것이 아닌 보편 제국[49]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슬림 터키인들만의 전유물이었던양 포장하려고 들어 이건 또 나름대로 문제가 심각하다. 현대 터키에서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오스만 제국을 조상들의 역사로 기리며 인정하고, 자부심을 담아 묘사하려고 한다면 그때 그때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추어 어설픈 선전 영화나 찍어내고 리인액터들이나 부를게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성공 비결이었던 유연한 사고 방식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11. 국가(國歌)

오스만 제국의 국가는 본격적으로 서구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마흐무트 2세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스만 제국/국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역대 군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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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로 불리는 것은,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 '로마 황제'를 자칭. 이것이 오스만 제국 군주의 공식 명칭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탄'이라는 명칭도 관습상 계속해서 사용되었는데, 이는 러시아의 차르와 비슷한 경우이다.

※ 참고로 여기 나온 황제 이름들은 터키식 발음이다. 아랍식 발음은 좀 다르다. 예를 들어 메흐메트: 무함마드, 압뒬하미트: 압둘하미드,[50] 쉴레이만: 술라이만 같은 식. 또한 현대 터키어에서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인명들 중에 끝이 'd'로 끝나는 것을 't'로 발음하고 표기한다. 이를테면 메흐메트(Mehmet), 무라트(Murat) 같은 이름들을 터키 공화국 이전에는 아랍 문자의 'd' 음가로 표기하여 메흐메드(Mehmed), 무라드(Murad)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터키어 발음에서 유성음이 끝에 위치하면 무성음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발음상으로는 끝에 d가 오든 t가 오든 둘다 무성음 t발음으로 나므로 의미가 없다. 또한 오늘날에도 오스만 제국을 지지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은 옛날식 표기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터키에서는 이 d와 t의 차이가 굉장히 중요하다.
대수 이름 즉위년일 퇴위년일 비고
00 에르투으룰 가지(Ertuğrul Gazi)[51]1230 1281
01 오스만 1세(Gazi Birinci Osman) (1281)1299 1324
02 오르한(Orhan Gazi) 1324? 1360
03 무라트 1세 휘다벤디갸르(Birinci Murat Hüdavendigâr) 1360 1389.6.15
04 바예지트 1세 '뇌제'(Yıldırım Sultan Bayezit) 1389.6.15 1402.7.20
혼란기 (1402~1413)[52]
05 메흐메트 1세(Birinci Mehmet) 1413.7.5 1421.5.26
06 무라트 2세(İkinci Murat)[53] 1421.6.25 1444
07 메흐메트 2세 '정복제'(Fatih Sultan Mehmet)[54] 1444 1446
- 무라트 2세(İkinci Murat)[55] 1446 1451.2.3
- 메흐메트 2세 '정복제'(Fatih sultan İkinci Mehmet)[56] 1451.2.3 1481.5.3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08 바예지트 2세 '정의제'(Veli İkinci Bayezit) 1481.5.19 1512.4.25
09 셀림 1세 '엄격제[57]'(Yavuz Sultan Selim Han) 1512.4.25 1520.9.21 칼리파 지위 획득
10 쉴레이만 1세 '대제', '입법제'(Kanuni Sultan Süleyman) 1520.9.22 1566.9.5 최장 즉위(45년 359일)
11 셀림 2세(İkinci Selim) 1566.9.29 1574.12.21
12 무라트 3세(Üçüncü Murat) 1574.12.22 1595.1.16
13 메흐메트 3세(Üçüncü Mehmet) 1596.1.27 1603.12.20
14 아흐메트 1세(Birinci Ahmet) 1603.12.21 1617.11.22
15 무스타파 1세(Birinci Mustafa)[58] 1617.11.22 1618.2.26
16 오스만 2세(İkinci Osman) 1618.2.26 1622.5.19
- 무스타파 1세(Birinci Mustafa)[59] 1622.5.20 1623.9.10
17 무라트 4세(Dördüncü Murat) 1623.9.10 1640.2.8
18 이브라힘(İbrahim) 1640.2.9 1648.8.8
19 메흐메트 4세(Dördüncü Mehmet) 1648.8.8 1687.11.8 중흥기·쇠퇴기
20 쉴레이만 2세(İkinci Süleyman) 1687.11.8 1691.6.22 대 튀르크 전쟁
21 아흐메트 2세(İkinci Ahmet) 1691.6.22 1695.2.6
22 무스타파 2세(İkinci Mustafa) 1695.2.6 1703.8.22 카를로비츠 조약
23 아흐메트 3세(Üçüncü Ahmet) 1703.8.22 1730.10.1 파사로비츠 조약
24 마흐무트 1세(Birinci Mahmut) 1730.10.2 1754.12.13 베오그라드 조약, 2차 중흥
25 오스만 3세(Üçüncü Osman) 1754.12.13 1757.10.29
26 무스타파 3세(Üçüncü Mustafa) 1757.10.30 1774.1.21 다시 쇠퇴기
27 압뒬하미트 1세(Birinci Abdülhamit) 1774.1.21 1789.4.6
28 셀림 3세(Üçüncü Selim) 1789.4.7 1807.5.29
29 무스타파 4세(Dördüncü Mustafa) 1807.5.29 1808.7.28
30 마흐무트 2세(İkinci Mahmut Han) 1808.7.28 1839.7.1
31 압뒬메지트 1세(Birinci Abdülmecit Han) 1839.7.1 1861.6.25 크림 전쟁
32 압뒬아지즈(Abdülaziz Han) 1861.6.25 1876.5.30
33 무라트 5세(Beşinci Murat Han) 1876.5.30 1876.8.31 최단 즉위(93일)
34 압뒬하미트 2세(İkinci Abdülhamit Han) 1876.8.31 1909.4.27 산 스테파노 조약, 발칸 반도 상실
35 메흐메트 5세 레샤트(Beşinci Mehmet Reşat Han) 1909.4.27 1918.7.3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세브르 조약
36 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Altıncı Mehmet Vahidettin Han) 1918.7.3 1922.11.1 최후의 술탄
37 압뒬메지트 2세(Halife İkinci Abdülmecit) 1922.11.19 1924.3.3 최후의 칼리파
폐위 이후 오스만 가의 수장[60]
- 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Altıncı Mehmet Vahidettin Han) 1922.11.1(1922.11.19) 1926.5.16 [61]
- 압뒬메지트 2세(Halife İkinci Abdülmecit) 1924.3.3(1926.5.16) 1944.8.23
38 아흐메트 니하트(Ahmet Nihat Osmanoğlu) 1944.8.23 1954.6.4
39 오스만 푸아트(Osman Fuat Osmanoğlu) 1954.6.4 1973.5.19
40 메흐메트 압뒬아지즈(Mehmet Abdülaziz Osmanoğlu) 1973.5.19 1977.1.19
41 알리 바스프(Ali Vâsıp Osmanoğlu) 1977.1.19 1983.12.9
42 메흐메트 오르한(Mehmet Orhan Osmanoğlu) 1983.12.9 1994.3.12 [62]
43 에르투으룰 오스만(Ertuğrul Osman Osmanoğlu) 1994.3.12 2009.9.23 [63]
44 오스만 바예지트(Osman Bayezit Osmanoğlu) 2009.9.23 2017.1.7
45 뒨다르 알리 오스만(Dündar Ali Osman Osmanoğlu) 2017.1.7

13. 대중매체에서

  • 유명한 역사 RTS게임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에서 플레이 가능한 유럽국가중 하나로 나온다. 게임내의 8개의 유럽 국가중에서 상당히 개성이 두드러지는 독특한 국가로 나온다. 고증이 상당히 잘 반영되었는데 보병은 제니세리라는 오스만제국만의 근위병으로 구성되며 포병의 경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의 확장펙까지 포함해서 모든 국가중 가장 강력하고 개성있는 포병을 보유하고 있다. 자세한건 항목 참고.
  • Paradox Interactive사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이슬람의 검 DLC가 있다면 1299년~1337년[64] 사이에 플레이할 수 있다. 에르투으룰로는 1270년대~1280년대부터 플레이할 수 있으며 독립 세력으로서의 오스만은 1299년부터다. 1편에서도 나오기는 하지만 기독교 국가로만 플레이할 수 있다.

13.1. 창작물에서 모티브를 딴 것들

14. 역사 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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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역사 تاريخ ليبي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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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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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는 트리폴리타니아 지역, C는 키레나이카 지역, F는 페잔 지역, 붉은색은 튀니지 방면 세력, 녹색은 이집트 방면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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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역사
تاريخ الجزائ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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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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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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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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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녹색은 칼리프 국가 또는 아랍계 왕조, 노란색은 베르베르계 왕조, 분홍색은 페르시아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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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역사
تاريخ جزيره العرب
고대 중/근세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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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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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예멘 타히르 왕조맘루크 왕조오스만 제국오스만오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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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디 세력
※ Q는 카타르, U는 아랍에미리트 / 연두색 : (수니파) 아랍계 왕조, 진한 초록색 : 시아파나 하심 가문 왕조, 자주색 (짙은 핑크) : 이란 계통 / 연한 빨강 : 토착 예멘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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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역사
تاريخ جزيره العرب
고대 중/근세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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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술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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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헤즈영국령 아덴남아라비아남예멘예멘 정부군
알루아키 술탄
※ 연두색은 아랍계 왕조, 조금 진한 초록색은 시아파나 하심 가문 왕조, 연한 빨강은 토착 예멘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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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역사
Magyar történe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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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역사
povijest Hrvat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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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C 19C 20C : 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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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오스트리아 - 합스부르크
Z
A
DV
L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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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역사
Historija Bosne i Hercegovine
Историја Босне и Херцеговин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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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제국 중세 초기 슬라브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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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M네포스동로마 제국불가르세르비아 왕국
보스니아 왕국 15C 오스만 제국 근현대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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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보스니아 공국보스니아 왕국오스만 제국오스만 제국
M헝가리 왕국헤르체고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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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역사
Historia e Shqipëris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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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슬라브 유입 / vs 불가리아 로마 제국의 중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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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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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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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C 13 ~ 14C 15C 오스만 : 16 ~ 19C
K동로마 제국 - 콤네누스 왕조제타에페이로스 공국 제타세르비아 왕국세르비아 제국제타레체 동맹오스만 제국
SV
D아르바논 공국제 2불가리아 제국니케아 제국 - 에피로스알바니아 왕국 - 앙주 왕조공국토피아 왕조베네
치아
V동로마 제국공국들오스만 제국
O불가리아 제국
19C 발칸 전쟁 / 20C 초 20C 중 현대
K알바니아 봉기오스만 제국알바니아 봉기세르비아중앙 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 공국오스트리아 - 헝가리알바니아 공국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 왕국이탈리아 보호령 알바니아 왕국나치 독일-알바니아 왕국알바니아 민주정부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알바니아 공화국
S
T
V알바니아임시 알바니아 정부이탈리아 왕국
O그리스프랑스
※ K는 동북부 쿠커스, S는 슈코더르, D는 두러스, T는 중부 티라나, V는 블로르, O는 동남부 오흐리드 호수 }}}}}}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역사 (Istoria României şi Moldov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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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세 근대 현대
루마니아 다키아 로마 제국
/ 다키아
속주
헝가리 왕국 트란실바니아 공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루마니아 왕국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루마니아
왈라키아 공국 오스만 제국 몰다비아 왈라키아 연합공국
몰도바 몰다비아 공국 소련
소비에트 몰도바
몰도바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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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역사
Історія Україн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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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
슬라브 / 루스 루스 카간국 키예프
공국
키예프 공국 몽골의 침입 갈리치아-볼히니아
몽골-타타르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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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자크
러시아 제국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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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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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니고프 공국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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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역사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ს ისტორი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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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 고대 기독교화 / 로마 vs 이란
A유목아시리아 제국콜키스키메르그리스 식민도시콜키스폰투스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사산 왕조로마 령
라지카
사산 왕조동로마 제국
B디아우에히우라르투
O유목스키타이아조이베리아아르메니아 제국아르탁세스 왕조파르나바즈 왕조아르사케스 왕조호스로 왕조이베리아 총독령하자르
T호스로
아랍 vs 하자르 / 아라보바이슬람 치하바그라티온 왕조 중근세
A압하지야압하지야 왕국조지아 왕국조지아 제국몽골 제국일칸국체르케스삼트케티무르 제국압하제티
B라지카구아람 왕조토후들이메레티조지아 왕국메스케티
O이베리아트빌리시 토후국바그라티온이베리아 왕국오세티아아르가베티
T트빌리시토후들사즈 왕조카케티트빌리시셀주크조지아카르트리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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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그루지야
압하지야
B구이라조지아
O사파비아프샤르이메레티러시아러시아 제국남오세티야
T카르트리 - 카케티카자르조지아
※ T는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한 동부, A는 서북부의 압하지야, B는 서남부의 바투미 일대, O는 북중부의 오세티야 지역}}}}}}

불가리아의 역사
История на България
고대중세 근현대
슬라브족 남슬라브족불가르 칸국불가리아 제1제국동로마 제국 불가리아 제2제국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공국 불가리아 왕국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불가리아 공화국
트라키아인 오드뤼사이 왕국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왕국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고대 튀르크족 불가르족



[1] 현대 터키어로는 Osmanlı İmparatorluğu(오스만 제국)이라고 해서 오스만 제국 시절의 국호와는 상당히 다르다. 오스만 시대의 오스만 터키어아랍어페르시아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반면, 현대 터키어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어휘와 문법을 최대한 없애고 고대 튀르크어식 어휘 문법과 서구식 어휘로 대체하는 인위적인 언어 '정화'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2] 참고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등의 게임이나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 오늘날의 터키 국기 등의 이유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국기라고 하면 무조건 붉은 바탕에 흰색 초승달+별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와 유사한 디자인의 깃발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오스만 제국 후기에 해당하는 1793년이다(게다가 초승달이 세로로 길쭉하고, 별의 모양도 다르다). 그 이전까지는 큰 초승달을 쓰지 않거나 붉은색 바탕에 노란 초승달을 사용하거나 하는 등 다양한 디자인을 사용했는데,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링크 참고.[3] 1882년에 황제 압뒬하미트 2세가 채택.[4] 근대의 오스만제국의 국장이 들어가 있는 회중시계 파일:976171339_tp.jpg파일:976171347_tp.jpg[5] 오스만 제국의 팽창 과정. 다만 진한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무라트 2세 때 확장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 이전에 정복된 지역과 무라트 때 정복된 지역이 함께 칠해져 있다. 앙카라 전투 이후 일시적으로 주춤했던 제국이 완전히 복구된 것이 그의 시대라 한꺼번에 표시한 듯.[6] Devlet-i Ebed Müddet[7] 오스만 제국령 아나톨리아 반도와 남동유럽 사이에 동로마 제국이 끼어 있는 형국이었기에 소통이 어려워 유럽(루멜리 에얄레트)에 하나, 아시아(아나돌루 에얄레트)에 하나, 총 두 곳의 수도를 필요로 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며 그 곳을 수도로 삼으면서 두 곳의 수도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또한 에디르네가 정확히 몇 년에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되었으며 언제 수도가 되었는지는 사료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무라트 1세 대에 수도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8] '황제(파디샤)' 대신 '술탄'을 칭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스만 베이국, 즉 제국 성립 이전의 술탄들은 재상 이하 여러 귀족 관료들의 눈치를 어느 정도 살펴야 했기에 '전제군주'로서 군림하지는 못했다. 이 귀족 관료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데브시르메 출신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전제 군주정을 확립한 인물이 메흐메트 2세.[9] 베이(bey)는 본래 지방 태수라는 뜻으로, 오스만 제국이 룸 술탄국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임을 잘 보여주는 용어라고 할 만하다. 대략 왕 정도에 해당하는 술탄보다는 지위가 낮아서, 의역해서 생각하자면 '공작(公爵)' 정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10] 황제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인 파디샤(Padişah), '술탄 중의 술탄'을 뜻하는 '술탄 에스 셀라틴(Sultan es-Selatin)', '로마 황제'라는 뜻의 '카이세리 룸(Kayser-i Rûm)' 등이 쓰였다. 이 밖에도 몽골어인 을 쓰기도 하고 셀림 1세칼리파를 칭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제국 말기에는 칼리파를 칭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여전히 술탄이라 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동안 술탄이라 했던 것이 관습화된 것으로 러시아의 군주가 차르에서 황제를 칭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줄곧 차르라 했던 것과 비슷한 예.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서구권(과 그 영향을 받은 한국)에선 오스만 황제들을 '술탄'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일반화되어 있다. 반면 터키에서는 오스만 황제들을 '파디샤'라고 부른다.[11] 터키어를 쓰지 않는 지방에 칙령을 내리거나 공문서를 작성할 때는 현지의 언어도 함께 썼다. 종교인과 학자 들은 아랍어, 학자와 문필가 들은 페르시아어를 쓰기도 했으며, 오스만 터키어는 이 두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2] 다만 당대에는 무슬림이냐, 정교회 기독교인이냐, 유대인이냐, 아르메니아 정교회인이냐 등등을 따졌으며 언어와 민족에 상관 없이 구분되었다. 심지어 그리스인이나 터키인 항목을 가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지만 현대의 관점에서는 같은 민족으로 여겨지는 아나톨리아의 그리스인이나 폰토스 그리스인이나 북부 그리스의 그리스인이나 남부 그리스인이나 서로 동족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위에 언급한 민족들은 19세기가 되어서야 구분되기 시작해서 20세기에야 완성되는 개념이다.[13] 다수파는 아니지만 중동의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도 있었고 중앙 유럽 일부까지 정복한 관계로 가톨릭이나 개신교도 있었다. 짐미, 즉 비(非)무슬림들에 대한 회유책의 일환으로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를 막지 말라는 포고를 내린 적도 있었다.[14] 맘루크 왕조의 멸망,명목상으로나마 카이로에서 명맥을 잇던 아바스 왕조의 멸망[15] 우크라이나 중남부[16] 오스만 제국 후기 리라화 개혁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세계와 마찬가지로 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17세기 쿠루쉬화를 발행하기 이전까지 3악체=1파라 였으며, 쿠루쉬화 등장 이후 40파라=1쿠루쉬였다. 다만 은화로는 고액 결제나 유럽과의 무역에서 불편함이 있었으므로 은본위제를 채택하되 고액권으로 금화를 발행했으며, 오스만 제국의 금본위제 개혁으로 발행된 터키 리라화(100쿠루쉬=금화 1리라)이전에는 시기마다 다르지만 이스탄불 제리 마흐붑(Zer-i Mahbûb=6.5쿠루쉬), 이집트 제리 마흐붑(Zer-i Mahbûb-î Mısıriye=5.5쿠루쉬), 제디드 마흐무디예(Cedid Mahmudiye=25쿠루쉬), 하이리예(Hayriye=12쿠루쉬), 메지디예(Mecidiye=20쿠루쉬), 루미(Rumî=48쿠루쉬), 아딜리 알튼(Adlî Altın=660파라) 등의 금화들이 발행되었으며 플로린, 리브르, 파운드스털링 등 해외금화도 유통되었다. 한편 이 금화들은 시장가치에 따라 가치가 변동되었기 때문에 시대마다 그 가치가 조금씩 다르다.[17] 이전 항목에는 1540년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1456년에 사실상 합병했다. 이후 세르비아 공작의 핏줄은 동맹국이었던 헝가리로 건너가 명목상 세르비아 공작에 임명되었으나, 1521년에 이르면 그마저도 단절되었다[18] 룸 술탄국의 멸망으로 아나톨리아에는 온갖 소국들이 난립하였다.[19] 중동 제국들 중에서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한 국가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 밖에 없다. 다른 중동 제국들은 많이 동원해봐야 10만 명 미만이었다.[20] 영토의 크기를 기준으로 보면 우마이야 왕조보다는 적었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던 아나톨리아와 그리스를 차지하고 동유럽까지 영향력을 끼치기는 하였으나 우마이야 왕조는 이베리아 반도(알 안달루스)와 페르시아까지 정복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이 우마이야 왕조보다 더 강한 역대 이슬람 제국 중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1) 우마이야 왕조보다 영토 전반에 대한 장악력과 동원력이 더 높았고 2) 동로마 제국프랑크 왕국에 틀어막혀 유럽 중심부와 동유럽, 발칸 반도에 대한 공세가 좌절된 우마이야 왕조에 비해 대항해시대르네상스 시대 세계에 대한 자신감이 팽배했던 근세 유럽의 영역에 끊임없이 공세를 가함으로써 이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유럽 국가들의 입장에서 '더 무서운 적'이었으며 3) 이와 연관하여 후대에 들어와 오스만 제국이 유럽의 열강들 중 약체화 된 18~19세기 이후는 유럽 식민 제국주의가 나머지 비서방세계를 비교적 일방적으로 침략, 정복할만한 절대적 군사적 우위를 누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후의 서구 문명을 위협한 동방의 비서구 정복 제국' 기믹을 뒤집어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21] 우리나라에선 역사적으로 천년 가까이 갔던 신라가 있었고 기본적으로 4~500년은 갔던 왕조가 두루 있었기에 왕조의 지속기간이 그렇게 긴게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중동쪽은 국가가 수립되고 단명하는 국가가 꽤 많았다.[22] 다만 이조차도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가 오늘날 이탈리아를 비롯해 프랑스, 그리스, 터키, 이집트, 알제리, 튀니지 등등의 역사이기도 하듯이 오스만 제국사 역시 터키는 물론 그리스, 세르비아 등 많은 나라들의 역사이기 때문. 더군다나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인만 우대하지 않았듯이 오스만 제국도 투르크인만 대접하는 나라가 아니었다.[23] 튀니지, 리비아, 알제리, 이집트[24]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25] 현재의 프랑스 인구가, 8천만을 자랑하는 독일이나 오스만 제국의 일부분에 불과한 터키에게도 밀리는 건, 19세기 중반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시기까지 프랑스의 고령화 + 전쟁으로 인한 청년들의 대규모 전사 + 저출산이 3종 세트로 터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냉전 이래로 혼외 가정의 합법화, 셋 이상의 자녀를 출산한 여성에 대한 연금 지급 등 각종 인구 부양책에 힘입어 선진국들 중 가장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다.[26] 인구학자들이 만약 프랑스가 이 당시에 인구가 증가했다면, 인구 1억을 넘는 인구 대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면 말 다한 셈. 물론 최근엔 출산율의 상승과 이민으로 다시 독일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된다.[27] 심지어 1707년에 스코틀랜드와 합치고도 인구가 천만도 안되는 700만에 불과했고 1800년대에 들어서야 천만을 넘겼다.[28] 15세기의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체 인구가 중동 1800만, 북아프리카 800만의 2600만밖에 안 되었다. 반대로 유럽은 이시기에 벌써 8천만을 넘겼다. 현재도 유럽은 인구가 7억 4천만에 달해 2억 6천만인 중동과 2억 3천만인 북아프리카 인구를 합쳐도 더 많다.[29] 명예로운 위치[30] 따라서 수도도 루멜리(루멜리아)에 하나(에디르네), 아나돌루(아나톨리아)에 하나(부르사). 이렇게 두 군데 두어야 했다.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수도가 두 군데 있어서는 효율적인 통치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31] 장군 중의 장군이라는 뜻으로 본래는 군대 총사령관이라는 뜻이지만, 에디르네를 중심으로 루멜리 에얄레트를 창설할 때에 에디르네 함락을 주도한 지휘관에게 베일레르베이라는 칭호가 하사된 이래로 지방 총독을 뜻하는 말로 바뀌기 사작한다.[32] 다만 카디가 모두 카자를 통치한 것은 아니고, 베일레르베이나 산작베이의 측근으로 재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33] 이런 경우는 주로 국경 방어를 위한 경우였다.[34] 가령 그리스와 보스니아, 다뉴브 강 하류 일대를 제외한 남동유럽 거의 대부분을 관할하는 루멜리아 에얄레트가 대표적인 예. 루멜리아 에얄레트를 통치하는 베일레르베이는 모든 베일레르베이 가운데 가장 윗자리로 여겨졌으며, 때로는 재상 이하 고관들의 중앙 회의 기구인 디반(Divan)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었다.[35] 연간 수입의 1/40을 매년 1회 납부[36] 이를테면 가톨릭과 정교회의 이혼, 이슬람의 이자대출[37] 이 칙령이 담긴 문서는 오늘날까지도 보스니아의 한 수도원(정확한 위치는 추가 바람)에 보관되어 있다.[38] 메흐메트 4세만 해도 카자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을 무슬림들의 희망이자 기쁨, 예수 그리스도의 묘를 지키는 단호한 파수꾼,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수호자라고 칭했다.[39] 사실 황가고 일반 농민이고간에 여러 민족의 피가 마구 섞였기 때문에 '터키인' 을 혈통이나 민족상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같은 경우도 고민하다가 혈통이 아니라 '터키어를 사용하며 터키에서 살아가면 터키인' 이라고 정의했다.[40] 본명은 클로드 알렉상드르 드 본느발(Claude-Alexandre de Bonneval).[41] 본명은 루트비히 카를 프리드리히 데트로이트(Ludwig Karl Friedrich Detroit).[42] 본명은 콘스탄티 보르젱츠키(Konstanty Borzęcki).[43] 동유럽에 거주하는 라틴족의 갈래. 말하자면 현대 루마니아 민족의 역사적인 명칭이라 봐도 되긴 한데, 사실 서로마 멸망 이후 수 천년 동안 그 일대에 살던 라틴족들이 슬라브, 오스만 문화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상실한 경우도 많고, 게다가 블라흐란 단어 자체가 루마니아를 구성하는 역사적인 3개 지방 중 왈라키아 중심적인 말이며, 또 발칸 반도 현지에서는 무식한 촌부를 지칭하는 경멸적인 단어로 사용 된 흔적도 있어 적어도 현지인, 학자들은 사용할 때 주의를 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더 자세한 건 루마니아 전공자들의 추가 바람[44] 오늘날 이라크[45]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46] 이집트는 BC 31 ~ AD 641에서 중간의 팔미라 제국과 말기 사산왕조의 점령을 제외하면 650년 내외, 레반트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병탄 시점인 BC 63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630년대 후반까지 거의 정확하게 700년에서 마찬가지로 팔미라와 사산을 빼면 600여년 후반 정도.[47] 참고로 생뚱맞은 대목이지만 이 스미르나 대화제는 태평양 전쟁을 다룬 미국의 대하드라마 더퍼시픽에서도 레키가 호주에서 작업 걸던 이민자 여성의 이야기로 언급 된다.[48] 물론 중동 지역이 남동유럽과 아나톨리아보다 척박한 것도 있다.[49] 비록 무슬림을 핵심적인 지배 계층으로 추구하긴 했지만, 동시대에 비슷하게 세계적인 보편제국(monarchia universal)을 추구했음에도 종교적 통일 이룬답시고 나라 안에 경제적, 기술적으로 핵심 계층을 이루었던 무슬림, 유대인들을 일괄 싸그리 추방해버리고 개신교도들을 탄압하여 반발한 개신교 귀족과 시민들의 반란이 일어난 합스부르크 스페인 제국과 비교해 보자.[50] 문자로 적으면 '압드 알하미드'이나, 실제로는 여러 법칙에 따라 줄여져 압둘하미드라 읽힌다.[51] 에르투으룰 가지는 오스만 1세의 아버지로, 오우즈족에 속하는 카이으(kayı) 부족을 이끌던 지도자였다. 본래 몽골의 침입을 피해 그의 아버지대에 부족이 아나톨리아로 임시로 피난을 왔지만, 당시 룸셀주크와 동로마와의 전쟁에서 셀주크를 지원하면서 오늘날 앙카라 인근에 위치한 카라자 다으(Karaca dağ) 일대를 봉토로 받고, 쇠위트(Söğüt)에 수도를 정해 공국을 세웠다. 그의 아들인 오스만 1세는 에르투으룰 가지가 죽고나서 이 공국을 상속받았고, 1299년에 독립해 오스만 제국을 세웠기 때문에 터키에서는 에르투으룰 가지의 공국도 오스만 역사로 포함시킨다.[52] 바예지트 1세가 티무르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힌 이후, 그 아들 사형제가 황위를 두고 내전을 벌인 기간. 결국 셋째인 메흐메트 1세가 승리하여, 단독 술탄이 되었다.[53] 1차 재위[54] 1차 재위[55] 2차 재위[56] 2차 재위[57] 괄호 안의 부분에서 '엄격제' 에 해당하는 부분은 'Yavuz'인데, 이걸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는 듯하다. 터키 원어의 뉘앙스를 적절히 살릴 수 있는 단어가 다른 언어에 없는 탓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문자 그대로 직역하자면 엄숙하다는 뜻이지만 근엄하다거나 완강하다는 정도로 의역하는 경우도 있으며 아예 '강인한 황제' 라고 창작에 가깝제 의역하는 경우도 있다.[58] 1차 재위[59] 2차 재위[60] 오스만 제국 붕괴 이후, 터키 공화국 정부는 오스만 가문(Osmanoğlu)을 터키에서 추방해버렸다. 이 조치는 1974년에 해제.[61] 11월 1일에 술탄에서 폐위당했지만 칼리파는 17일이 지나서야 터키 의회가 사촌인 압뒬메지트를 후임자로 선출했기 때문이다.[62] 이시형 교수의 에세이로 유명해진 인물. 하지만 그 이야기는 사실과 좀 다른 면이 있다.(참고)[63] 2004년에서야 터키 국적을 회복한다. 간혹 최후의 오스만이라고 일컬어 진다. 계승자들이 제국 붕괴 이후 태어났기 때문.[64] 북마크의 마지막 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