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00:28:52

니카라과

중앙아메리카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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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공화국
República de Nicarag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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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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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면적 130,375㎢
인구 6,259,497명 (2018)
종족구성 메스티소 69%, 백인 17%, 흑인 9%, 아메리카 원주민 5%
종교 기독교 90%(가톨릭 50%, 개신교 40%), 기타 종교 4%
수도 마나과
정치 형태 대통령제, 공화제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
임기 1985년 1월 10일 ~ 1990년 4월 25일
2007년 1월 10일 ~ [1]
부통령 모이세스 오마르 알레슬레벤스
(Moisés Omar Halleslevens Acevedo)
GDP(명목) GDP 132억 3,000만 달러 (2016)
1인당 GDP 2,151 달러 (2016)
GDP(PPP) GDP 340억 7,000만 달러 (2016)
1인당 GDP 5,540 달러 (2016)
지니계수 0.401 (2007)
공용어 스페인어
화폐단위 코르도바(Córdoba)
국가 니카라과 만세(스페인어: Salve a ti, Nicaragua)
표어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En Dios Confiamos)
국제연합(UN) 가입 1945년
여행경보 철수권고 : 전 지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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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상징물
3.1. 국기3.2. 국장3.3. 국가
4. 경제5. 사회6. 자연
6.1. 언어
7. 스포츠
7.1. 야구7.2. 축구7.3. 권투
8. 문화9. 군사10. 외교11. 창작물12. 여행

1. 개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수도는 마나과(Managua).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국토면적 13만㎢로 중미에서 가장 크며[3], 인구는 약 620만 명.

2. 역사

스페인의 식민지화 이전 지금의 니카라과 지역에는 니카라오 족, 초로테가 족, 미스키토 족 등의 아메리카 원주민 종족 집단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침략으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여러 중남미의 나라들처럼 대농장주들이 원주민을 노예나 소작농으로 부려먹어 그 생산물을 수출하는 형태가 되었다.

스페인인들의 이주로 퍼지고 시작한 천연두와 황열병 같은 질병이 본격적으로 퍼지자 가뜩이나 강제노동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원주민들을 휩쓸었고 자연히 원주민들의 인구가 격감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흑인노예들을 상당수 수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다가 스페인이 니카라과와 제3국의 무역을 금지하자 농장주들은 이에 반발해 독립 운동을 일으켰다.

1821년 니카라과는 타 중미 국가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멕시코 제국의 한 부분으로 스페인에서 독립했다. 그러다 1823년 멕시코에서 떨어져나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다 혼란 끝에 1838년 니카라과는 중미 연방에서 독립한다. 영국은 이 무렵 니카라과 동해안을 장악했으며, 북부 레온 중심의 자유주의자와 남부 그라나다 중심의 보수주의자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끼리 내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고용된 미국인 백인 용병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가 황제 노릇을 한적이 있었지만 군벌들에게 다구리를 맞고 쫓겨났고 보수주의자들이 집권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니카라과에서 커피 산업과 바나나 산업이 나타났는데, 이들 신흥 소지주들이 감히 대지주들 땅을 뺏을 순 없었으니 원주민 땅을 뜯어갔다. 그러자 염료와 목축을 하던 대지주들도 커피와 바나나 재배를 시작했다. 1890년대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 정부는 교회의 땅을 뺏어 커피 농장으로 만들었으나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미군이 파견되어 니카라과는 19년간 미국의 간섭을 받았다. 산디노가 이에 저항해 게릴라 활동을 하다 1934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에 의해 죽는다. [4] 한편 이 무렵 국방군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으며 그가 암살당한 후에도 아들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와 그의 동생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연달아 니카라과의 권력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rente Sandinista de Liberación Nacional)이 결성되었다. 소모사 족벌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기존의 기득권층은 위협을 느꼈고 소모사가 1972년 대지진 때 받은 지원금을 횡령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자 소모사에 대한 불만은 더 높아졌다. 그리고 1978년 소모사가 자신에 반대하던 유력지 «라 프렌사»의 페드로 차모로를 살해하자 반 소모사 운동은 더욱 강해졌다. 1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혁명전쟁이 펼져졌고 1979년 마침내 소모사 일당은 해외로 망명을 가며 혁명은 성공하여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산디니스타 혁명정권은 국방군을 해체하고 혁명에 참여한 타 정당들과 단체들과 협력하면서 국가재건위원회를 구성해 토지 개혁과 국유화 등을 시도하였다. GDP의 41%에 달했던 소모사 일당의 소유 재산을 빼았고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문맹퇴치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1년도 안되는 기간에 문맹률을 50%에서 13%로 떨어트렸으며, 전국적인 의료보건제도를 도입하여 영유아 사망률을 크게 떨어트리는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국가재건위원회내에서도 좌우간의 대립으로 반목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니카라과에서 경제재건 운동을 하려고 쿠바와 소련에 지원을 요청하나 이게 빌미가 되면서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에 반발했고, 1982년 제재 조치를 취해 세계 최대 바나나 회사가 니카라과를 떠나 큰 타격을 주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콘트라 사건이라 불리우는 뻘짓을 감행했는데 산디니스타를 엎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밀수출까지 하면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는데, 콘트라 반군이 현지에서 현물세로 걷은 코카인까지 미국이 맡은 것이다.[5]

한편으로 미국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소련쿠바, 불가리아의 지원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소련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도 군사비 부담이 커져서 추가로 전선이 늘어나는걸 부담스러워해서 소극적으로 지원하는데 그쳤고, 쿠바와 불가리아도 지원을 했지만 두 나라 모두 당시 공산주의권에서 국력 규모가 큰 나라는 아니었기에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큰 보탬은 못 되었다. 거기에다가 정권초에 베네수엘라나 멕시코도 니카라과에 대한 지원에 나섰지만 80년대 중반 이후에 이들 국가가 석유값이 하락하여 경제위기가 일어나자 지원이 축소되었다. 이런판이니 니카라과의 경제는 막장이 되어 1989년 1인당 GDP는 1960년 수준까지 추락했고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환율이 1달러당 25,000,000 코르도바까지 갔다.

결국 소련의 지원이 계속해서 줄어드는판에 냉전이 종식될 기미를 보이자 산디니스타와 콘트라 반군과 협상에 나섰고 그 결과 1990년 선거에서 산디니스타가 정권을 잃고, 베올리타 차모르가 당선되었다. 우파가 집권해[6] 산디니스타가 몰수한 재산을 돌려주고 산디니스타 장교 몇 명이 체포되었다. 그렇지만 산디니스타와 보수여당간의 협약이 이루워져서 산디니스타도 제1야당으로써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했고 1980년대 당시 니카라과 대통령이었던 오르테가도 지속적으로 유력 대권주자로 나서며 대선에 출마했다. 다만 1980년대 후반 경제파탄으로 인한 기억과 미국과의 관계가 최악이었다는 기억 때문에 산디니스타는 계속 십수년간 야당 신세로 머물러있었다. 베올리타 차모르의 집권기간 동안 언론자유는 향상되었지만 이 시기 경제난의 완화를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지만 당대 중남미가 그렇듯이 일단 물가상승률이 줄어들기는 했어도 산디니스타 정권 시절에 도입된 사회보장 정책이 축소되고 빈부격차는 악화되어가면서 산디니스타 혁명의 유산의 상당수는 뒤엎어졌다. 이로 인해 집권 중후반 내내 낮은 지지율에 시달려야했고, 산디니스타와 협정을 맺으려 하자 미국정부에서 대놓고 원조를 축소시키고 구 콘트라 계열 세력이 반발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어야했다. 그나마 냉전이 끝났기 때문에 평화협정이 최종적으로 타결된것이 성과라 할수있다. 여하튼 이러한 애매한 위치에 서있던데다가 경제정책의 실패 때문에 베올리타 차모르는 언론인으로써 탁월한 인물이라고 평가되기는 해도 대통령으로써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후 1996년 대선에서 다니엘 오르테가가 앞설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오르테가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콘트라 출신 알레만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일레만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경제적으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도로 포장 등 공공투자가 진행되면서 경제는 차모르 정권 시절때부터 나아졌지만 그 과실은 일부가 독차지했으며, 실업률은 여전히 13%에 달했다. 2001년 대선에서도 역시 오르테가가 집권하면 경제가 파탄날것이라는 우려때문에 엔리케 불라뇨스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며 집권 초반 이후로 개혁드라이브를 타면서 과거사 청산을 명목으로 알레만 대통령을 구속했고[7], 이로 인해서 집권당내에 불화가 일면서 집권당이 두쪽이 나는 일이 벌어졌으며 재임 후반기에 공공요금 인상과 내우외환의 연속이었고, 결국 면책특권이 박탈당하는 초유의 일을 겪었고, 퇴임후에 구속되기도 했다.한편으로 그는 임기 말년에 악명높은 낙태금지법을 통과시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이점에 있어서도 많은 비난을 받는다.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의 분열에 힘입어 오르테가가 재집권하였고, 이후 친기업 정책[8]과 쿠바와 베네수엘라 등으로부터 의료와 석유지원을 받는 투드랙 전략으로 빈곤을 줄여나가면서 당초 경제파탄 우려를 기우로 만들면서 연 5%대 가량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했다. 결국 듈아온 오르테가는 2011년 대선에서 재선, 2016년에는 3선을 해서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는 중이다.

3기 집권기에도 주요 재정지원국인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에도 최소 연 4% 이상의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등 거시경제정책은 그런대로 잘 수행한다는 평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니카라과 운하 건설 문제로 인해서 니카라과 운하 건설에 대한 여론이 반으로 갈라지다시피한데다가[9] 농민들과 니카라과 운하 건설 예정지 주민에게 배신자, 중국과 기업을 위해 물을 팔아먹는 놈 소리를 들으면서 지지율이 상당히 떨어진 편이다. 그러나 대도시 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지율이 높아서 전체적인 지지율은 60%대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며 야권에서 오르테가에게 맞설 대안 후보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2016년 대선에서 기여이 70% 초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었다.[10]

오르테가 피델 카스트로와 친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사실 여러 번에 걸쳐서 대통령 선거에 지속적으로 출마한만큼 성향이 지속적으로 온건화되어서 (브라질룰라와 비슷한 케이스.) 2000년대 중반 당시에 보수여당이 볼라뇨스 대통령 탄핵문제로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오르테가는 당시 유력 우파정당이었던 헌정주의 자유당과 협약을 맺고 사법제도를 개편하는 대신에 선거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편했고 콘트라 인사도 영입했다.

거기에다가 집권 후에 빈민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책이나 빈민촌 지역에 상하수도나 전기 등을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정책을 펼치고 교육예산도 크게 늘리고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에 대해 뚜렷하게 압박하는 정책을 펼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오히려 주요 기업과 관계가 좋은 편이다) 야권의 지지기반 자체를 박살낸 것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부통령은 오르테가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가 당선됨에 따라 세계 첫 부부 정·부통령이 되었다.

그렇지만 2018년 4월에 연금개혁안을 시행하겠다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졌고, 거기에다가 친정부 시위대의 멍청한 대응까지 겹쳐서 시위가 크게 번져서 현재까지도 반정부 시위대간와 친정부 시위대간의 충돌이 이어지면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다가, 간헐적으로 경찰의 과격한 시위진압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11]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문제가 되었던 연금개혁안이 취소되었기는 했지만 당연히 이 상황에 책임이 있는 다니엘 오르테가의 지지율도 크게 떨어졌으며, 오르테가 하야촉구 시위도 수만명 이상이[12] 참여하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여하튼 희생자 규모가 수백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도 200명을 넘어서고 있는지라 국제적으로도 여러모로 압력을 받고있고, [13]최악의 경우에는 오르테가가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처럼 불명예 퇴진을 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권력욕이 대단한 오르테가의 성격상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지만 군대에서 퇴진을 권유할수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치안안정으로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던 경찰의 위상이 뒤통수나 치는 짭X들로 이미지가 크게 떨어지고 중립을 지키는 니카라과 군의 이미지가 올라가는 효과도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의 악명(?)을 다시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카더라[14]

덧붙여서 지속적으로 사망자가 나오는걸 보았을때 오르테가 정부가 경찰과 산디니스타 산하 단체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한데,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오르테가 정부 내에서도 각 조직들이 기득권 지키기를 하려고하다보니까 통제가 제대로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15] 그래서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진행될려 찰나에 무산되는 상황이 여러번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2018년 6월 15일에 니카라과 정부와 반정부시위대는 2개월동안 진행된 시위를 끝내기 위해 대화를 하기로 결정했다.#

뭐 일단 협의에서 2021년으로 예정된 선거를 2019년도로 2년 정도 앞당기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협의안이 나온 이후로도 일부지역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고 여기에 친정부 민병대와 경찰, 마약조직, 반정부 시위대등이 얽혀서 부상자와 사망자가 정기적으로 나오고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될 틈이 보이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 오르테가는 조기선거안을 거부하면서.# 비난을 더 받고 있다. 2019년 2월 19일에 니카라과에서 반정부시위를 이끌던 야권 지도자 2명이 각각 200년(!!)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2019년 들어서 다니엘 오르테가의 지지율이 다시금 50%를 넘고 산디니스타가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여유가 생기면서 야당과 대화에 나서면서 시위자들을 풀어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반정부시위에서 체포되어 수감된 모든 수감자들을 풀어준다고 밝혔다.#

니카라과 정부는 비판언론을 폐간시키고 있고 결국 39년된 일간지가 폐간되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게다가 2018년 12월에 몰수한 민영방송국TV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3. 상징물

3.1. 국기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를 기초로 하며 가운데에 국장이 들어가 있다.

3.2. 국장

국장 가운데에 그려진 빨간 모자는 프리기아 모자이며, 고대 로마에서 노예가 해방되어 자유민이 되면 이 모자를 썼기 때문에 자유와 해방, 공화정을 상징한다.

3.3. 국가


1893년부터 1910년까지 사용한 국가인 "Hermosa Soberana(아름다운 주권)"


1971년에 제정된 국가인 'Salve a ti, Nicaragua(니카라과여 만세!)"

4. 경제

본래 이 나라에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운하가 파질 예정이었지만 파나마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6월 13일, 니카라과 의회가 중국 회사에 의한 운하 건설 프로젝트를 승인함에 따라 니카라과에도 운하가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11년간 400억 달러(45조 원)를 투입해 길이 286㎞에 달하는 수로를 뚫는다는 계획.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중미 지역의 반미감정, 니카라과 자신의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신속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물론 여기에 대해 찬반여론이 비등하고 있긴 하다. 이 기사이 기사 참조 운하 건설과 운영권 유지 기간이 백 년이라, 운하만 완공된다면 미국이 파나마에 대해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하듯이, 중국도 합법적으로 니카라과에 군대를 주둔시킬 명분이 세워져 미국의 턱밑에 갑자기 중국군 기지가 건설되는 흠좀무한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이 군 기지 건설까지 내다보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설령 군사기지가 세워지지 않더라도 미국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못한 상황일 듯.

2014년 1월 11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중국 기업인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투자공사(HKND)과 12월 니카라과 운하를 착공하기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전년 6월 운하 건설에 대한 잠정 합의 후 뚜렷한 움직임이 없어 연내 착공이 불투명하다는 기존 예상을 깨트리는 것이다. 이 운하의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은 중남미에 자국에 유리한 경제적, 정치적 거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관련 기사
파일:/image/032/2014/12/23/khan_TC8mlu_99_20141224005902.jpg 12월 22일, 마침내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의 주도하에 니카라과 대통령도 참석한 착공식을 시작으로 500억 달러(약 55조 원)을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개시됐다. 총 길이는 약 280㎞. 컨테이너 25,000개를 실은 대형 화물선 한 척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수로 폭이 넓고 수심이 깊다. 예상 공사기간은 5년으로 2019년 말 완공, 2020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운하가 완공되면 HKND는 니카라과 정부에 매년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100년 동안 운하 건설·관리·개발 권리를 갖게 된다.본격 미국 따라하기 HKND는 운하 인근에 도로, 항구뿐 아니라 공항,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현지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 여론은 거세다. 환경단체들은 운하가 지나는 니카라과 호수의 오염을 경고하고 있다. 니카라과 호(湖)는 국민들의 주요 식수원이다. 또 운하가 통과하게 되는 지역 주민 3만여 명도 운하 건설 및 개발의 여파로 삶의 터전을 잃을까 우려하고 있다.# 다만 여기도 기업들이나 건설업쪽은 환영일색이다. 돈이 생기니까

대다수 북중미 나라가 그러듯이 가난과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고.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이런 사정으로 불참한 6개국 중 하나이다. 또한, 주변의 남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커피산업이 매우 영세한 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커피 농가들을 서포트하여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니카라과 커피는 수세식 커피로서 다른 나라 것보다 커피콩의 크기가 크고 독특한 맛과 신맛이 어우러져 고유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니엘 오르테가가 집권한 이후에 친기업 정책과 베네수엘라-쿠바의 지원이라는 투드랙으로 어느정도 경제가 성장하기는 했고, 상기했듯이 2014년 말 드디어 운하 건설이 시작되어 앙골라잠비아 같은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니카라과도 운하 건설을 계기로 중국 자본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경제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16]

주요 수출품은 면화(25%), 쇠고기(7%), 커피(13%) 등 1차 산업이 주류를 이룬며, 해외송금[17]도 니카라과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최저임금이 여전히 중미 대륙에서 가장 낮은 국가라서[18]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매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함에도 빈부격차가 여전히 큰 나라이다.

5. 사회

중미에서는 임금 수준이 낮기는 해도 코스타리카, 파나마와 함께 치안이 양호한 국가로 손꼽히고 중미 대륙에서 치안이 좋은 나라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밤에 길을 돌아다닌다고 사람이 죽는다거나 다치는 일은 덜 벌어진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고 돌아다녀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며 수도인 마나과에서도 강도, 절도, 소매치기 등의 범죄들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시내버스 승차시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차량으로 이동 시에는 차 문을 잠가야 하며, 또한 야간 외출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도 근처의 온두라스엘살바도르 같이 깡패와 마약 카르텔, 경찰들이 서로 총을 쏘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나라들과는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치안이 좋은 편이다.[19] 하지만 2018년 4월부터 대도시 지역에서 오르테가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면서 군경의 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고 약탈사건도 간간히 벌어지는 등 치안상황이 상당히 나빠졌기 때문에 정국이 안정될때까지 당분간 방문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낙태가 엄격히 금지되어있기도 한데, 그래서 성범죄로 임신했을때나 산모의 생명이 위험했을 때에도 낙태가 금지되어있으며, 아무리 생명에 지장이 있다한들 낙태수술을 하면 의사들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낙태문제와 관련해서 말이 많다. 이건 보수정권때 낙태금지법이 통과된 영향이지만 현직 대통령인 다니엘 오르테가도 대통령에 재당선 된 이후로 이후로 보수 가톨릭계의 눈치를 많이 보다보니까 법을 수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위험하거나 성범죄로 임신을 한 경우에도 낙태를 받을려면 다른 나라로 가서 받아야 되는데 문제는 니카라과가 경제적으로 성장했다지만 여전히 외국으로 나가서 수술받을 정도로 여유가 없는 가정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인권단체들로부터 지적을 받는 문제로 손꼽힌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타 중남미 국가들이 그렇듯이 부패가 상당한 문제인데, 소모사 정권때야 아예 국가적인 차원에서 빈민들의 골을 빼다먹은 판으로 사회전반적으로 부조리가 횡행했기 때문에 말할 것도 없는 수준이고,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집권한 우파정권들도 하나같이 부패에 연루되어있는건 마찬가지로 베올리타 차모르는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하의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 상당량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고, 알레만 대통령은 집권기간 동안 대기업들과 이권을 나눠가진 데다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가택연금형에 처해졌을 정도였으며 엔리카 볼르뇨스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리에 연루된것은 마찬가지였다. 재집권한 다니엘 오르테가 정권도 깨끗하기는 커녕 부패하기는 마찬가지라서 집권후에 대기업들과 제휴하고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권을 나눠 먹거나 오르테가의 자녀들이 기업들로부터 상납받은 돈으로 같이 사업을 벌이곤 했다. 상층부부터가 이러니 당연히 하급 공무원들도 썩지 않을리가 없기는 하다. 단지 극단적으로 썩지 않을 뿐인 수준이다.

6. 자연

국토면적이 13만 688㎢로 한반도의 3/5 크기에 해당된다. 해안 및 남서부의 마나과호와 니카라과 호수 주변의 평야 지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산지가 많다.

야생동물로는 개미핥기, 앵무새, 아르마딜로, 오셀롯, 나무늘보, 재규어, 퓨마, 페커리, , , 박쥐, 토끼, 주머니쥐, 코요테, 상어, 돌고래, 딱따구리, , 벌새, 이구아나, 악어 등이 서식한다.

기후는 열대 사바나성 기후를 띄고 있으며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하여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6.1. 언어

공용어는 다른 중남미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식민지배 시절의 영향으로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하지만 미스키토족 등 일부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미스키토어 등의 원주민언어들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니카라과의 동해안지역은 예전에 잠시 영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영어 크레올이 사용되기도 한다.

7. 스포츠

올림픽에서 메달은 딴 적이 없지만 코스타리카의 수영선수 클라우디아 폴의 고향이 니카라과이다.

7.1. 야구

야구 인기가 많은 나라로 1891년에 Managua Base-Ball Club이란 야구팀이 창단될 정도이다.인구 600만이 안되는 나라에 야구팀이 4500개, 야구선수로는 7만 명 가까운 이들이 등록되어 있다.1905년 Boer란 팀이 창단되었는데 2012년에도 활동 중이다. 68년에는 자국 리그를 창설했으며 72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 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 때 나타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데이빗 그린, 알 윌리엄스, 포피리오 알타미라노 그리고 '엘 프레지덴테' 가카 데니스 마르티네즈다. 80년대에 들어선 윈터리그 형식으로 시즌이 끝난 메이저리거나 마이너리거들을 끌어들여 리그의 인기를 높였다.

니카라과가 낳은 최고의 선수인 데니스 마르티네즈는 74년에 데뷔하여 97년까지 23시즌 동안 커터와 싱커를 앞세워 통산 245승을 올렸고 올스타 4회에 선정되었으며, 1981년 다승 1위, 1991년 방어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마운드의 대통령으로 군림하였다. 마르티네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인 1991년 7월 28일 LA 다저스를 상대로 역사상 13번째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여 니카라과의 전설이 되었으며 1996년에는 실제로 니카라과의 국민들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자신이 거절하였다. 데니스는 "El Presidente"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며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던 해에는 임시 공휴일이 선포되고 동상이 세워지기도 하였다.[20]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로베르토 클레멘테다. 클레멘테는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니카라과와 무관하지만 72년 11월 니카라과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자신의 돈으로 각종 구호물품을 싣고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이로 인해 클레멘테는 니카라과에서도 영웅이 되어 그의 이름을 딴 야구장도 생겼다.

이외 국제대회 성적 관련해서는 니카라과 야구 국가대표팀을 참조.

7.2. 축구

반면에 (니카라과에서) 축구는 야구에 비해 인기도 없고, 성적도 영 좋지 않다. 월드컵 본선 진출 기록은 아예 없으며,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나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같은 작은 섬나라들에게까지 져서 월드컵 예선을 번번히 탈락할 정도. 북중미 골드컵도 2009년에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했는데, 3패로 탈락했다.

2018년 6월 기준 피파랭킹136위. 작년 동월대비 36단계 내려갔다.

국대에 관한 사항은 니카라과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7.3. 권투

유명 프로복서들이 꽤 배출된 나라다.

2017년 현존 최고의 프로복서중 한명인 로만 곤잘레즈가 니카과라 출신이고,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토크쇼에서 자신이 꼭 붙어보고 싶다고 한 드림매치 상대가 바로 니카과라 출신의 알렉시스 아르게요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악동 복서로 유명했던 리카르도 마요르가도 니카과라 출신.

8. 문화

니카라과에는 불세출의 시인 루벤 다리오가 있다. 그는 대륙적인 차원에서 전개된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혁신적 문학운동인 모데르니스모(Modernismo)를 주도했으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근대의 문을 연 작가로 평가될 만큼 독보적인 문학사적 위치를 점하고 라틴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일어난 신문학 세대 '1898년세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니카라과는 2004년부터 매년 '그라나다 국제 시(詩) 페스티발' 개최를 통해 세계 각국과의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니카라과 요리의 주재료는 옥수수와 콩이며 마늘과 양파를 대부분의 요리에 사용한다.

9. 군사

니카라과군을 참조할것

10. 외교

대한민국과는 1962년부터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79년에 집권한 산디니스타가 사회주의 성향이라는 이유때문에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1988년 서울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에서는 한국과의 수교국 및 IOC 회원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창 콘트라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기 때문에 신경쓸 틈이 없어 불참했다. 그리고 내전이 끝난 1993년 대전에서 열렸던 세계박람회에서는 중남미공동관 국가로 참가했다.[21] 한때 주(駐) 코스타리카 한국 대사관이 겸임했으나 2007년부터 수도 마나과에 주 니카라과 한국 대사관이 설치되어 직무가 부분 이임되었다. 한편 니카라과 측에서는 아직 한국에 대사관을 열지 않았으며 현재 주 일본 니카라과 대사관에서 겸임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에 한국 운전면허증으로 니카라과에서 허용이 가능해진다.#코스타리카, 파나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와 함께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했고,# 지난 12일에는 니카라과 의회에서 한국-중미 FTA에서도 가결되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자 마자 다니엘 오르테가가 멕시코 대통령 페냐 니에토와 함께 가장 먼저 당선 축하인사를 건넬정도로 반응이 빨랐는데 니카라과가 위낙 작은 소국[22]이라 처절하게 묻혀지고 있는 중이다. 한국-중미 FTA가 니카라과와 온두라스를 시작으로 2019년 10월 1일부터 발효되고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파나마도 발효될 예정이라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혔다.#

북한과는 1978년에 수교하였다. 과거 1970년대 산디니스타 혁명 당시 북한에서 여러모로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1980년대에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고 북한대사관도 설치되어있었지만 이후로는 우파정권이 집권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졌고 북한에 경제난이 닥치면서 대사관 운영비도 줄었기 때문에 1995년에 대사관을 철수하고 그 이후로는 주 쿠바 대사관에서 대행하고 있다. 다니엘 오르테가가 재집권한 이후로도 관계가 소원한데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북한이 니카라과에 뭘 투자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줘야 편을 들어주든지 말든지 하지. 거기에다가 니카라과에서도 당연히 한국인이 북한인보다 훨씬 많이 살기 때문에[23] 당연히 남한과의 교류가 더 활발할 수 밖에 없다.

이웃 코스타리카완 애증의 관계가 크다. 국민소득이 6배가 넘게 차이가 크다보니 코스타리카로 가서 니카라과인들이 많이 일하지만 코스타리카에선 니카라고 부르면서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다. 니카라과인들을 저임금으로 부려먹는 등 인권 침해문제도 심각하다. 그래도 1979년 혁명 당시 산디니스타에게 지원을 해주는 등 니카라과의 민주화에 도움을 줬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뭔가 말할 수 없는 애증관계. 게다가 영토분쟁도 있어서 코스타리카는 2017년에 국제사법재판소에 니카라과를 제소했다.# 그리고 2017년 6월 3일에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영유권다툼을 했다.#

베네수엘라쿠바하고는 경제적인 교류덕택에 상당히 친한관계이며 다니엘 오르테카가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돈독한 관계다. 그외에도 멕시코와도 가까운 관계라서 멕시코는 니카라과에서 세번째로 중요한 교역국이기도 하고 FTA도 체결했다.[24] 하지만 멕시코와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은 관계가 아니라서 멕시코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1821년 ~ 1823년까지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과 함께 멕시코의 지배를 잠시 받은 적이 있다가 1823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독립했다.

위에도 나와 있지만 이웃 온두라스코스타리카와 함께 커피가 국가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이다. 특히 2011년 코스타리카에서 커피 생산량이 감소한 후 그 대체제로 니카라과산 커피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코스타리카 문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코스타리카 커피 농장의 노동자들이 거의 니카라과인이었고 그들이 돌아와서 산업을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의외로 콜롬비아와는 사이가 안 좋은데, 조업권 문제가 걸려 있어서 그렇다.

미국과의 관계는 한마디로 이란-콘트라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니카라과 민중입장에서는 독재정권을 비호하고 그 이후에는 도미노 이론에 매물되어 반군을 지원해서 전쟁을 일으키며 경제봉쇄로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렸기에 말 그대로 악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익정권이 들어선 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기는 했다고는 하지만 그 지원금이 일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에게나 돌아갔고, 일반인들은 혜택조차 보지 못한데다가 임금을 짜게 책정하고[25] 공공서비스를 대거 축소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그렇게 결국 산디니스타가 재집권을 했으니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래야 좋을수가 없기는 하다. 다만 미국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니카라과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이 상당하고 이들이 니카라과로 많은 액수를 송금하여 니카라과 경제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는데다가 자유무역협정까지 맺는 등,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경제교류는 매우 활발하다. 니카라과 현지에 많은 미국기업들이 진출해있으며 코카콜라, 펩시콜라, 맥도날드가 현지에 진출한것은 당연한일이고, 적지않은 니카라과 기업들이 미국기업의 하청을 받아 먹고살고있으며, 니카라과의 경제사정이나 인구규모상의 문제로 대형매장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그래도 중소규모의 월마트 가맹점을 주로 볼수있고, 미국제 자동차도 적지 않게 볼수있다. 물론 일본차도 만만치 않게 많으며 한국차도 드문드문 보인다.

대만의 몇 안되는 수교국 중 하나로 좌파 정권이 집권했더라도,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 중이다. 중국과의 첫 수교는 중화민국과 국민정부 시절에 했고 지금도 대만과 수교 중이지만 1980년대에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몇 년간 수교했던 역사가 있다. 허나 중국의 국력이 강대해지고 최근 중국의 경제적 공세로 대만과 수교를 맺었던 다른 중미의 국가였던 파나마,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가 대만과의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였듯이 니카라과도 언젠가는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할지도 모를 일이다.

니카라과는 중남미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9세기에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서 스페인어가 공용어이고 천주교도 널리 펴져 있다.

11. 창작물

GTA 시리즈 3D 세계관에서 필 캐시디레이 매쵸스키가 니카라과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26]

비디오 게임 블랙 옵스 2의 악역 라울 메넨데즈의 고향이기도 하다.

겁스 무한세계의 몇몇 평행계에는 이곳에 운하를 파져있기도 하다.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에 등장하는 아만다와 치코가 FSLN 출신이다.

키드갱 최고의 명대사에 등장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게릴라들-총을 든 사제의 배경이 바로 니카라과이다. 소모사 정권에 맞서싸우던 산디니스타 해방전선의 활동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엠마 스톤이 그녀의 약혼남과 약혼남의 형의 부부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여행지에 대하여대화하는 장면에서 약혼남의 형이 니카라과는 치안이 매우 나쁘다는 이야기를 한다.

12. 여행

미국 뉴욕 타임즈지가 2013년 방문해야할 이상적 여행지 46곳을 선정하였는데, 니카라과가 그 중 3위에 뽑혔다. 특히 카리브해의 콘 아일랜드는 외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명소다.

현재 여행유의 국가이고 특히 주요 우범지대인 마나과 오리엔탈시장 인근지역은 상당히 위험하다. 다만 로베르또 우엠베스 시장에 많은 공예품 가게가 있고 농산물과 식료품 등을 판매한다.


[1] 오르테가가 임기단축안에 동의할 경우에는 예정보다 2년에서 3년 정도 일찍 퇴진할것으로 보였다만 오르테가가 조기총선안을 거부하면서 정국 혼란이 더욱 길어질것으로 보인다.[2] 외교부 해외안전여행[3] 북한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이다.[4] 이는 나중에 나올 산디니스타의 어원이 되었다.[5] 참고로 이 사건은 국제법 판례에서 Nicaragua Case로 유명한 사건으로, 니카라과의 요청에 의한 미국의 집단적 자위권 발동 주장을 부정했고, 미국의 반군에 대한 군사적, 준군사적 지원에 대해 국내문제 불간섭 원칙 위반이라는 판시를 했다. 결국 1991년 니카라과에 친미정권이 수립되면서 제소가 취하됐다.[6] 이 당시 베올리타 차모르의 야당연합에 공산당이나 사민주의 정당도 참여하는 빅텐트 격인 선거연대가 이루워졌지만 절대적인 지분은 우익정당들이 차지하고 있었다.[7] 나중에 알레만 대통령은 헙법재판소 판결에 의해서 풀려나게 되는데 오르테가와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라는 썰이 파다하고, 실제 판결도 그리 공정하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8] 실제로 니카라과는 중미권에서는 파나마, 코스타리카와 더불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평을 받고 있다. 물론 치안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문제의 니카라과 운하 건설계획도 친기업적인 정책 중 하나다.[9] 니카라과 운하 건설을 하면 물류수송이 원할해지고 일거리도 많이 생기기 때문에 기업이나 일용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득이지만, 사업 특성상 상당수 주민들이 땅을 잃고 이주해야하는데다가 토지보상계획도 체계적으로 수립되어있지 않으며 운하를 건설했을 때 숲을 베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환경파괴 염려도 크다. 무엇보다도 운하를 잘못 관리했을 경우에는 수질오염 문제가 크게 발생할 수 있기에 이에 대한 염려가 크다.[10] 사실 이는 2006년 대선을 앞두고 니카라과의 선거제도가 오르테가에게 유리하게 짜여지도록 개편되었기 때문이다. 니카라과의 선거제도는 결선투표제지만 35% 이상의 득표율로 2위 후보와 5% 이상 격차만 벌려도 당선될 수 있게했다. 야당이 쪼개지면 그만인 것.[11] 덧붙여서 정부측에서 무장경비대원들을 동원해서 시위진압에 나서고있는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있는데. 사실 의혹수준은 아닌게 실제로도 여당측에서 시위가 일어날때마다 친정부시위대를 조직해서 반정부 시위대에 대항하는식으로 인력을 동원했다는것이 공공연한 사실이고, 거기에 산디니스타 해방전선측과 경호업체들의 줄이 끈끈하기 때문에 경호업체 인력 중 일부를 끌여들인다는 썰이 이전부터 나돌고 있었기는 했다. 진면목(?)을 드러낸게 2018년도일뿐.[12] 수만명이 적어보이는것 같지만 니카라과 인구가 620만명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다고 할수없는 수치이다. 한국으로 치면 수십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셈.[13] 물론 근처에 이웃 온두라스나 과테말라처럼 대통령이 부패나 사회지도자 살해 등에 대해 대놓고 철판을 깔고 통치를 하는 상황이고(미국은 이에 대해서 별소리를 안했고 대선 불복시위가 벌어졌을때도 침목을 지켰다.) 그에 비하면 니카라과는 미국이 직접 개입했던 시절이나 오르테가의 당선여부를 놓고 압박을 가했던 시절이 개판인데다가 오르테가 2기 집권기가 그나마 니카라과 역사를 통틀어서 나았던 시절인건 사실이기 때문에 미국이 대놓고 개입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고위층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14] 농담같지만 진짜다. 시위의 발단이 된 연금개혁안 자체는 IMF의 조언을 받아들여 발의한 것이기 때문이었다.[15] 하지만 오르테가 본인은 산하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깽판을 부리는것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는데 본인의 명성에 타격이 가는건 둘째치더라도 본인이 이걸 시인하면 잃을것이 많아지는데다가 숙청(?) 대상에 오를 산하단체들과 경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오르테가 일가의 비리나 부정행위를 고발해서라도 살아남을려고 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즉, 얽혀있는것이 많기 때문에 깽판을 부리든 말든 가만히 냅두고 있다.[16] 하지만 이 나라들은 자본 투자와 노동력 고용, 현장 관리까지 전부 중국인의 손으로 이루어져 자본 투자에 비해서 별다른 경제 개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해당 국가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중, 혐중(嫌中) 기운이 고조되기도 했다. 뭐, 다니엘 오르테가가 복지개념같은걸 모르는 인간은 절대 아니긴 하지만 중국쪽이 건설문제에 대해서는 여론을 무시하기로 유명하기도도 하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 과연 니카라과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 될지, 일단 지켜볼 일이다.[17] 주로 미국에서 번 경우가 많고 이외에도 코스타리카나 파나마 등으로 가서 돈을 버는 경우도 적지 않다.[18] 물론 베네수엘라(...)와 멕시코보다는 최저임금이 높기는 하다. 중앙아메리카 국가 가운데서 그나마 사회복지정책이 어느정도는 돌아가고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쿠바처럼 복지혜택으로 소득을 어느정도 벌충해주는 형태라고 보면된다.[19] 치안이 안 좋은 중미 국가로 과테말라와 벨리즈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2개국들은 치안이 나쁘고 범죄율이 높긴 해도 관광/휴양업이 국가의 주산업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치안 유지에 적극적으로 신경쓰는 등 엘살바도르나 온두라스보다는 조금 양호하다.[20] 퍼펙트 게임 당시 다저스 투수인 마이크 모건도 4안타 완투했지만 수비실책으로 2실점하여 데니스 마르티네즈의 퍼펙트에 가려졌다.[21] 같은 성격의 국가로 아프리카에티오피아가 있다.[22] 사실 인구가 적을뿐이지 면적은 한국보다 넓다.[23] 물론 많이 살고있다고 해봐야 650명 정도이기는 하다. 이들 중 대다수는 섬유업체 직원이나 농장경영등 자영업을 하고있으며 선교사도 일부 주거한다. 그리고 엄연히 대사관이 설치된 나라이기 때문에 한글학교와 한인교회도 있다.[24] 출처는 스페인어 위키백과[25] 2010년대 들어서도 니카라과의 임금수준이 많이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니카라과의 임금수준은 중미에서 많이 낮은편이다. 월 최저임금이 부문별로 다르지만 2017년 기준으로 121달러(농축산업)에서 274달러(금융업) 정도의 수준이고 공공부문은 월 160달러 정도 수준이다.[26] 작중 시점으로 보아 1984년 전에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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