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5 15:33:49

요르단

서아시아의 국가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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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반도만 서아시아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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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하심 왕국
Hashemite Kingdom of Jordan

المملكة الأردنية الهاشمية
파일:요르단 국기.png 파일:요르단 국장.png
국기 국장
면적 92,300 ㎢
표어 الله، الوطن، الملك
하느님, 국가, 국왕
국가 요르단 왕실에 평화가 있기를
건국 1921년 4월 21일 (요르단 공국 건국)
1946년 5월 25일 (독립)
1952년 1월 11일 (헌법 제정)
인구 10,171,480명 (2018 추계)
수도 암만
공용어 아랍어
정치체제 입헌군주제(사실상 전제군주제),[1] 단일국가, 양원제
국왕 압둘라 2세
총리 오마르 라자즈
1인당 GDP 명목 GDP 4,428 달러
GDP(PPP) 9,406 달러
GDP 명목 GDP 418억 달러
GDP(PPP) 941억 달러
시간대 UTC+2(서머타임 시행)
통화 디나르
HDI 0.735
도메인 .jo
국제전화 +962
ISO 3166-1 400, JO, JOR
종교 이슬람 95%, 기독교 4%, 드루즈교바하이교 등 기타 1%
여행경보
여행유의 황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여행자제 시리아 및 이라크 접경 10km 이내 지역(이르비드주 및 마프라크주 일부)
요르단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1px-Jordan_on_the_globe_%28Afro-Eurasia_centered%29.svg.png

파일:attachment/요르단/Jo-map.png

1. 개요2. 역사3. 정치4. 외교5. 경제6. 자연7. 종교8. 문화
8.1. 언어8.2. 관광8.3. 스포츠
9. 한국과의 관계10. 국가

1. 개요

Jordan Travel Video Guide
서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2] 수도암만(عمان).

면적은 89,342㎢ ,인구는 10,248,069명(2017년 통계).[3] 얼핏보면 내륙국 같지만 홍해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주 약간 있다. 아카바는 유일한 항구도시.

정식 국명은 요르단 하심 왕국. 영어로는 'Jordan'이라 하며[4] 아랍어 표기로는 알-우르둔이라고 한다. 같은 이름의 요르단 강으로부터 국호를 따 왔으며, '요르단'이라는 번역은 대부분의 번역 성경의 저본인 라틴어판에서의 번역명인 Iordanis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

여담으로 구글에 영문 국명인 Jordan이라고 치면 스포츠 용품이나 마이클 조던 관련 결과만이 나온다 카더라... Jordan country 라고 쳐야 요르단 관련 결과가 나온다.

2. 역사

서아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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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역사
تاريخ الأرد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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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 vs 이스라엘 동방 제국 헬레니즘 히브리로마 제국vs 이란
A 셈계
아모리인
아카드
/
수메르 제국
이집트 신 왕조아람인이스라엘 왕국암몬신 아시리아 제국신 바빌로니아 제국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마케도니아 제국안티노고스셀레우코스셀레우코스 왕조아르메니아하스몬 왕조로마고대 로마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사산 조 페르시아 동로마 제국
M 모압이스라엘 왕국 모압프톨레마이오스헤로데 왕국
P힉소스 에돔 에돔나바테아 왕국
S 나바테아 인나바테아가산 왕국
이슬람 중세 (이집트 vs 이라크) 십자군 중근세 근대 아랍 민족주의운동 영국 현대
A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툴룬 왕조 아바스 왕조 이크시드 왕조 파티마 왕조셀주크 제국 예루살렘 왕국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오스만
제국
와하비 세력알리 왕조오스만아랍 반란 영국 위임통치 대요르단 토후국
팔레스타인
대 요르단 하심 왕국 요르단 하심 왕국
M
P
S 카라마트 다마스 장기 조
※ A는 북부 암몬 일대, M는 중부 메데바 일대, P는 남부 페트라, S는 시리아 사막일대}}}}}}


요르단 지역은 요르단 강의 아랍어 명칭인 우르둔에서 유래하였다. 고대의 페트라로 유명한 나바테아 왕국이 유명하고, 고대,중세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역사와 다소 비슷하다.

파일:Arabia_1905-1923.png

요르단 왕국의 시작은 무함마드의 씨족 하심 가(بنو هاشم, Banu Hashim)의 일원으로 메카의 대족장이었던 후세인 빈 알리(حسین بن علی, Hussein bin Ali, 1853/1854~1931)의 반란에서 비롯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지지부진하자 영국이 무함마드의 정통 후손임을 주장하며 일어난 후세인에게 접근,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면 전후 그 대가로 통일 아랍국가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맥마흔 선언. 후세인은 이에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후 약속된 아랍국가 건설은 빈 말이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등 레반트 지역을 차지해버렸다. 이후 후세인의 차남인 압둘라가 트란스요르단의, 삼남인 파이살 1세는 시리아[5]이라크 왕국의 형식적인 국왕이 되었지만 후세인은 생전에 두 나라의 독립을 보지도 못했다.

하심 가문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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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 메소포타미아
대영제국
이라크 왕국 -
파이살 1세 가지 1세 파이살 2세
요르단 - 트란스요르단
대영제국
요르단
압둘라 1세 탈랄 1세 후세인 1세 압둘라 2세
헤자즈 헤자즈 왕국 -
후세인 빈 알리 알리 빈 후세인
}}}}}}}}}


메카에 머물던 수호자 후세인은 터키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칼리파제를 폐지하자 스스로를 칼리파라고 선언했으나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반대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 망명해야 헸다. 이후 장남 알리가 헤자즈 왕국의 수도인 메카의 샤리프 직을 이어받았지만, 혼란을 이용해 압둘아지즈 빈 사우드의 네지드 술탄국이 쳐들어와 알리를 쫓아냈다. 쫓겨난 알리는 동생 파이살이 있던 이라크로 탈출했고, 헤자즈 왕국을 합병한 네지드 왕국은 이후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석권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이런 사연 때문에 요르단과 사우디는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현대의 이라크는 1958년에 공화국이 되었기에 일단 이 사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그렇다고 사우디와 사이가 좋단 말은 아니다

나세르아랍 연합 공화국 구상에 자극을 받아, 1958년 한때 요르단과 이라크의 하심 왕국들끼리 아랍 연방이라는 연합을 구성하기로 하고, 이라크의 파이살 2세를 연방의 원수로 추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반 년 만에 이라크에서 압둘카림 카심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국왕 파이살 2세를 포함한 파이살 1세의 후손들을 학살해버렸고, 이라크로 망명했던 후세인의 장남 알리의 아들 압달라('Abd al-Ilah)[6]도 끔살시켜버렸다. 그래서 현재 이라크 하심가의 당주는 후세인의 4남인 제이드[7]와 그 아들로 이어지고 있다.

3. 정치

공식적으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입헌군주제라곤 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고 국왕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전제군주제 국가다. 국왕은 총리와 군부 및 정보기관 수장 임명권을 갖고 있으며,[8] 대법관과 의회 의원[9]까지 국왕이 임명한다. 의회 역시 국왕이 해산권을 가지고 있어 국왕 내키는대로 소집하고 해산하여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입법도 공식적으론 상원과 하원의 인준을 거쳐야 하지만, 실제론 국왕이 있는 정부 주도의 입법이 대부분이다.[10] 언론에 대한 탄압도 심각한 수준이라 언론과 출판, 인터넷은 무조건 검열하며 국왕, 왕실, 정부, 군대, 종교에 대한 비판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할 경우 가차없이 무거운 벌금을 물거나 징역 산다. 기자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도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요르단은 언론자유지수가 138위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한 언론탄압국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파일:2018-06-14T150027Z_1952498080_RC1742C81AB0_RTRMADP_3_JORDAN-GOVERNMENT-CABINET.jpg

요르단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압둘라 2세 국왕(왼쪽)과 오마르 라자즈 총리(오른쪽)

후세인 1세는 꽤나 개념있던 군주로 이름이 높으며, 그의 치세 때 입헌군주제가 되었다.[11] 현 국왕인 압둘라 2세는 그의 장남. 그는 다른 아랍 왕족과는 비교될 정도로 개념충만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아버지보다는 약간 평가가 안 좋은 편이다. 또한 그의 아내인 라니아 왕비가 미인으로 유명하다.

평가가 안 좋은 건 압둘라 2세가 이스라엘과 미국을 노골적으로 편들어 이슬람 민족주의라든지 자국에서 꽤 많은 수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는 요르단에 이슬람 과격파가 득세하거나 민주주의로 이행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되려 군사원조 등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12] 정치적으로는 큰 힘이 없다지만, 그래도 국왕이고 압둘라 2세 역시 반정부적이거나 자신에 대한 비난을 탄압해서 인권면에선 아버지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반대파를 정중히 대우하면서 반대파에게도 인정받던 아버지와 달리 강압적으로 나서면서 과격파들에게 받는 원한도 큰 듯.

이 때문에 요르단에서도 종종 과격파에 의한 테러가 벌어지는데, 2005년 암만에 있는 고급 호텔이 폭발하여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폭발사고로 영화 할로윈의 제작자이자, 사막의 라이온 등을 감독한 무스타파 아카드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튀니지이집트에서 벌어진 민중혁명으로 요르단 왕가도 좌불안석이다. 그동안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지원을 얻어 왕가와 군부를 유지했기에 인구 다수가 팔레스타인계로서 불만을 억누르던 터에 이런 일로 이집트에 이슬람 과격 정권이 세워지고 그 여파로 요르단도 민중혁명이 터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벌써부터 왕가는 각종 세금을 내리고 불만을 다독이고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때 위기론도 있었으나 그래도 2012년 11월까지도 난장판이 된 시리아와는 달리 그럭저럭 잘 넘어간 듯.[13]

2014년 아랍권을 휘어감은 암적인 존재 다에시(IS)가 나오면서 요르단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에쉬의 주요전략이 국내 치안이 불안정하고 국가가 파탄나기 일보직전인 나라에 기생하여 이슬람의 성전을 주장하며 하층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형태인데, 요르단의 경우 치안유지도 잘 되고 있고 국민의 의식 수준도 높아 아직 대대적인 침략이나 각종 시설의 공작파괴 등을 받지 않으나 요르단 내에서 가담자가 나오면서 테러라든지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시리아 내전에서 난민들이 수십만씩이나 들어온 상황이라 임금은 하향세를 보이고[14] 집세가 급속히 올라버려서 자국민들의 불만이 상당한데 이와중에 이라크에서도 난민들이 대거 몰려오게 생겼기 때문.[15] 근데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에게는 요르단 주민들 상당수가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인걸 보면서 배은망덕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인듯[16] 그러다보니 요르단도 감당이 안되어 2017년 1월에 더는 난민을 못받아주겠다며 시리아 국경을 폐쇄했다.

그리고 요르단은 2017년 8월 1일부터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서 강간범이 결혼하면 죄를 묻지 않는 악법을 폐지했다.

2018년 6월 4일에 요르단에서는 정부의 긴축 정책과 증세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이과정에서 총리가 물러났다.

요르단에서는 2018년에 좌파정당을 세울려는 움직임이 있다.

4. 외교

이집트, 터키, 아제르바이잔, 국가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정식 주권국으로 인정하고 이스라엘과 수교관계까지 맺은 이슬람 국가이다.[17] 그래도 터키와 달리 이스라엘과 군사훈련까지 하진 않는다.[18]

하지만 요르단 역시 여타 아랍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동전쟁 동안 이스라엘과 죽어라 싸웠고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영토를 상실했으니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은 나쁘다. 요르단과 이집트에 가서 선교를 하던 김동문 목사[19]의 말에 의하면, 1990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제네바 협정 체결로 중동의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당시 요르단 최고 명문대학이라고 할 암만 요르단 대학교에서 히브리어 학과를 만들었었는데 당시 대학생들의 반응이 '우리 조상들을 죽이고[20] 땅 빼앗아간 원수놈들 언어를 배우자고?', '차라리 이스라엘 놈들 말 배우느니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를 배우고 말겠다!'라며 엄청나게 분노하여 학과를 때려부술 분위기라 오래 못가 대학교의 히브리어 학과가 폐지될 정도로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나쁘다고 한다. 게다가 요르단 대학교 시계탑 앞에 이스라엘 국기가 바닥에 페인트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밟고 지나가라고(...)

2015년 2월, 다에시측은 과거에 포로로 잡았던 요르단 조종사 무아트 알 카사스베를 요르단측에서 잡은 다에쉬 테러리스트들과 맞교환하기로 한 협상을 결렬하였고, 이후 조종사를 산 채로 분살(화형)시켰다. 이 동영상을 본 요르단 측은 테러리스트들을 즉각 사형시켰으며, 국민들은 ISIL의 만행에 격분했다. 특히 압둘라 2세의 경우 직접 공습에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표명하며 크게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압둘라 2세의 항목을 참조하면 좀 더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 다만 위치도 위치이거니와 군생활을 마친지 좀 되었기때문에 직접 몰기는 힘들다고.[21]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펼치자 요르단측은 1994년 평화협정으로 이스라엘에 빌려준 국경토지를 되돌려받겠다고 통보했다.
러시아와는 의외로 종교적으로 사이가 안 좋고 반러성향이 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80%에 달했다.#

그리고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이지만 최근들어 중국 물품들이 많이 들어와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을 받았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다. #

그리스, 키프로스와는 매우 좋은 관계이고 2019년 4월 14일에 요르단, 키프로스, 그리스는 정상회담을 가졌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두 국가 해법을 기초로 대화를 통한 포괄적인 평화프로세스 지지의사를 밝혔다.#

#요르단이 최근 미국의 친이스라엘적 행보에 불만을 품고 친미, 친서방 외교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2019년 6월 23일에 요르단 정부는 전력망을 이라크와 연결시켜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5. 경제

6. 자연

국토의 80%가 사막일정도로 척박하다. 물론 지리적으로 사람살기 좋은 곳이 여럿 있다. 사막성 기후에 더운 곳도 꽤 많지만, 바람이 불고 기후도 선선한 곳이 많아 다른 아랍국가 왕족들이 이 곳에 피서를 오기도 하고, 아예 여러 곳에 개인별장을 사둔게 많다.
파일:Wadi Rum.jpg
와디 룸(Wadi Rum)이라는 붉은색 사막 지역이 있는데,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작품을 찍을 때 필수요소급으로 써먹는 장소. 《미션 투 마스》, 《마션》, 《알라딘》 등.

물부족이 심각한데 여름철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연 강수량은 90mm밖에 안될 정도로 강수량이 적다. 특히 요르단강의 수자원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과의 갈등이 굉장히 심하다. 게다가 도시화와[22] 인구 증가로 인한 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수자원의 고갈이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요르단은 많은 양의 물을 수입해오고 있지만 이것으로도 감당이 안되어 정부에서 서민들에게 물을 주 1회만 공급하는 배급제를 실시할 지경까지 왔다. 이럼에도 요르단의 물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막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가뜩이나 적은 강수량까지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요르단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키프로스, 아랍 에미리트 등 중동 지역 대다수의 국가들이 물부족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7. 종교

요르단 국민의 92% 이상이 수니파 이슬람교도이지만, 팔레스타인이 인접해있기 때문에 국민의 약 7%가 기독교인이다.[23] 최대 종파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며[24], 가톨릭[25],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등을 믿는 이들도 있다. 요르단에서는 또한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와 드루즈파 신자도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요르단은 이슬람권 국가들 내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푼 것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차별을 금지하고 종교적 신앙과 예배를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현재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는 다른 중동의 이슬람 국가 지도자들 가운데 비교적 진보적인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5년 9월 13일 영국에서 가진 연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포용과 타협을 바탕으로 한 대화를 강조한 바 있다. 요르단 의회도 2006년 9월 24일 요르단 내 이슬람 사원을 통해 극단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사원 및 기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종교 행사에 대해 주제 및 강사 등 세부 내용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2012년에도 정당들조차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것을 금지하여 요르단의 정당들은 모두 세속주의를 추구하지 종교정당은 하나도 없다.

또한 요르단 정부는 국민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요르단인들은 물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난민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허용하는 등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로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종교의 개방성이 높은 나라로 알려졌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슬람교 신자에게는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는 이중 법률체계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도 막장 이슬람 율법을 시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브루나이보다 심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며 처벌하고 있는점이 인권단체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특히 반이슬람 만평을 실은 요르단의 작가가 기소되어었고 그의 만평이 삭제되고 싣는것까지 금지당했으며 재판을 기다리는 중 작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8. 문화

종교적으로 무슬림이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권 국가이지만 아랍, 이슬람권 국가들 중 문화적, 종교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여성의 지위도 중동에서 상당히 높은편이라 여성들에게 베일을 강요하지 않기에 여성들도 베일을 안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일부다처제는 여전히 허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더불어 이슬람 국가면서도 이슬람 율법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26] 판매도 허용하고 있어서[27]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중동 이웃나라 사람들이 자국에서 금지된 술을 사려고 혹은 술을 마시기 위해 여행을 오거나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미국, 캐나다 등 비이슬람권 국가들에서 온 외국인 체류자들과 관광객들이 돼지고기를 살 때도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동국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완전히 개방적인 것은 아니라서 넷플릭스의 첫 아랍어 드라마 '진'이 외설논란(!)에 쉽싸였다.#

8.1.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그리고 아랍어 방언이 타 중동국가보단 심하지 않아서 아랍어 어학연수지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다. 거기에다 영어는 주요외국어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영어도 널리 사용되는 편이다.

8.2. 관광

페트라+제라쉬+와디 룸 사막

관광업은 영토가 척박한 요르단의 가장 큰 돈줄 중 하나이다. 이슬람 국가이긴해도 개방적인 문화이다 보니 기독교 유적지를 파괴하거나 없애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때문에 이 유적지를 관람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요르단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편 '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유명한 페트라 - 알 카즈네 신전. 유독 유적의 보존 상태가 좋은데 깊은 산과 계곡 속 천연 암반을 깎아 만들어진 유적들의 위치 덕분에 자연 풍화를 면하였고, 나바테아인이 사라진 뒤 이곳을 차지한 아랍인들이 우상화될 만한 석상의 얼굴만 부수고 나머지는 손대지 않은 채 방치하며 잊혀진 덕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론 알 카즈네에 보물이 있다고 하여 안에 들어가 파보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유적들은 1812년에서야 유럽인들에 의하여 알려졌다. 산으로 가려진 좁디 좁은 길에 이런 귀중한 유적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시 유럽에서도 엄청나게 놀랐다. 현재 페트라에서 이나 낙타관광객을 태워 주거나 관광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대대로 이 곳에서 살던 유목민들의 후손이다. 요르단 정부가 이곳 관리권을 국영화하려고 하자 대대로 이 유적지 부근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반발하였고, 이에 정부가 이들을 달래고자 유적 관광업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현지인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대략 1500원)에 페트라에 입장할 수 있으나 외국인 관광객들은 10만 원에 가까운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요르단 국민이 아니더라도 학업 때문에 요르단에 살고 있으면 현지인만큼 저렴한 가격에 들어갈 수 있다. 페트라를 널리 알린 주역인 인디아나 존스 3편은 요르단에선 1년에도 몇번씩 방영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거기에 트랜스포머 2도 여기서 촬영한 것 때문에 여기서 정기적으로 방영해준다고 한다. 요단강 익스프레스의 종착역

사해도 유명하다. 대개 이스라엘 쪽으로 많이들 구경하러 왔으나 엄청 비싼 물가 덕에 훨씬 물가가 싼 요르단 쪽 바닷가로도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있다. 이스라엘도 관광업에 타격이 갈게 뻔하니 사해 관광을 더 싸게한다든지 발버둥치고 있긴 하지만.

페트라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다른 관광지들을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페트라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나 십자군 요새인 케락 성[28], 아카바 만의 항구도시 아카바, 요르단 남부의 사막지대 와디 룸 역시 요르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한국에서 요르단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두바이 등 다른 중동 도시들을 경유해서 가야 한다.

파일:Jerash.jpg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 사진.

8.3. 스포츠

국가 이름답게 아랍에서 농구인기가 많은 나라로 2000년대 와선 한국을 여러 아시아 대회에서 자주 발목을 잡으며 한국 킬러가 되어버린 나라이긴 하지만, 농구가 강해진 것이 미국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29] 농구선수들이나 아프리카 농구선수들을 귀화시켜서 단기간에 강해졌기에 진정한 강국이라고 해야할지? 참고로 2010 터키 세계 농구대회에서도 그동안 올림픽이나 세계 농구대회에서 자주 대패하던 하지만 아프리카 챔피언 앙골라 16강 진출 제물이 되었다. 참고로 앙골라는 8강전에서 우승팀 미국에게 121-66, 55점 대패로 이 대회 최다 점수차 패배에 최다 실점을 당했다.

이 때문에 카타르와 같이 허울좋은 농구강호라는 평을 듣다가 2011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선 귀화선수의 국대 참가를 엄격히 제한한 것에 카타르가 스스로 실격패를 자초하여 탈락한 것과 달리 요르단은 의외로 강세를 보이며 자국선수 위주로 강호급으로 발전한 이란을 8강전에서 88-84로 이겼다. 필리핀도 준결승에서 이기고 아시아 최강급인 중국과의 결승에서 통한의 아쉬운 69-70 패배로 준우승을 거두었다. 어찌됐든 3위를 거둔 한국과 같이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배정된 조예선에선 그리스푸에르토 리코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경기는 2012년 7월 2일부터 8일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열렸는데 요르단은 그리스에게 63:107, 푸에르토 리코에겐 52:93. 2경기 모두 40점차 대패를 당하면서 참가국에서 가장 많은 실점을 당하면서 12위 꼴찌로 마무리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농구에서는 한국에 조예선에서 69-98로 참패했으며 약체인 몽골에 74-83으로 패해 11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하긴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자주 부진했었던 요르단이긴 했지만...

중동답게 축구도 인기가 많지만, 아무래도 축구는 아랍권에서도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요르단 축구에 관한 자세한 건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고. 그래도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호주를 이기는 대이변도 보였다. 그러나, 16강에서 베트남에게 승부차기 끝에 탈락.

태권도도 좀 한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요르단은 은 3, 동 1을 획득했는데 모두 태권도에서 딴 것이다.[30] 특히 은 3개는 모두 결승에서 한국선수에게 패한 것이며, 동 1개는 8강에서 한국선수를 격파한 결과다. 하지만 그래놓고 4강에서 졌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태권도와 가라테에서 각각 금, 은, 동메달을 똑같이 2개씩을 받았던 걸 비롯하여 개인 종목은 꽤 하는 편... 인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선 태권도는 메달제로였다(가라테에서 은메달 1개를 받았으며 다른 종목에서 동메달 4개).

2016 리우 올림픽 태권도 68kg급에서 요르단의 아부다디 아부가우시가 한국의 이대훈을 비롯하여 여러 우승후보들을 꺾고,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대회 이후 최초의 메달을 금메달로 획득하였다.

9. 한국과의 관계

1962년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1974년북한과 수교하였으나 2018년에 요르단이 북한 공관이 없어서 북한과 외교관계를 끓었다.
한국은 1975년에 주요르단 한국대사관을 설치하였으며, 요르단은 2010년 10월 주한 요르단대사관 설치하였다 (그 이전까지는 주일 요르단 대사가 한국 대사를 겸임하였다.)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가국.

주요르단 한국인 체류 인원은 700명이며, 이는 일본의 300명보다 많다.

요르단 국왕도 2013년까지 4차례 방한, 왕비도 1차례 방한한 바 있다.

2010년에 한국에서 차관을 공여받아 연구용 원자로를 건설하였으며 2012년 일본과 원자력 협정을 맺은 바 있다.

한국 기업의 요르단 진출은 주로 전자제품, 건설 플랜트가 중심이며, 수출규모로는 자동차가 최대 (2012년 91%, 2013년 81%) 를 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중고차 수출이 비중이 컸으나, 2007년 이후로 신차 수출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중고차 판매의 경우 한국 중고차 수출의 20%(2013년 기준)을 차지하였으며, 리비아가 1위, 요르단이 2위다.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이 40%로 토요타와 함께 시장 점유율 최대 브랜드를 다투고 있다. 봉고, 아반떼가 대표 차종. 요르단의 경제규모 대비 산유국이 아닌 관계로 유가가 부담되며, 차량 구매시 세금에 큰 혜택을 주고 있어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도 꽤 있으나, 정확한 통계를 잡기 어렵다. 일반 차량의 경우 구매시 세금이 94.7%인 반면, 하이브리드/전기 차량은 27/57% (2400cc 기준) 로 큰 차이를 나타낸다. 디젤차량은 수입금지 품목이다. 차량의 세금뿐 아니라 판매가격 자체도 매우 높은데, 슬로바키아에서 만들어진 스포티지 1.6GDI가 30000 JOD 로 한국 주력 모델대비 1.5 배 정도의 가격 격차를 나타낸다. 이는 기본적으로 물류비용 자체가 매우 높음을 감안해야 할것이다. 슬로바키아에서 지중해까지 이동한 뒤, 배에 싣고 수에즈 운하를 거쳐 홍해의 Aqaba로 갈 수 밖에 없는 물류 문제가 있다. 북쪽으로는 ISIS로 인해 정세가 불안정한 시리아, 이라크가 있으며, 국제화물철도망 같은게 갖춰지지 못한 상태고[31], 지중해와 접한 서쪽에는 이스라엘이 있는데,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비록 상호 교류가 있고 민항기가 비행하나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도인 암만에 KOTRAKOICA, 주 요르단 대한민국 대사관(2010년 이래)이 설치되어 있다. OECD 기준 요르단 원조국 5위에 한국이 등재되어있다. (나머지는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순)

스마트폰의 경우 고급 메이커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나 화웨이가 비중이 높은 상태. 다만 이쪽은 제3국생산품이 수출되어 국내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다.

대형 건설 플랜트 산업의 경우 요르단의 경제규모가 이라크 대비 작아 지불 구매 능력의 문제로 크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요르단에서 한국에 수출하는 물건은 주로 1차 산업품이며, 그 규모도 한국의 수출액 대비 매우 미미하다.

그리고 요르단에서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K-POP한류가 인기를 끌고있다. 거기에다 한류의 영향과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그리고 요르단에서는 2018년 10월 2일(현지시간)에 아리랑 공연이 펼쳐졌다. 그리고 제13회 한국영화제가 요르단에서 개최되었고,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요르단에서도 높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아랍국가인지라 한국인들이 흔치 않아 매우 신기하게 처다보나, 몇몇 한량(?)[32] 들의 경우 관심을 끌려고 하며, 몇몇은 돌을(!) 던진다. 아니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일부러 치고 지나가면서 웃어대기도 한다. 당하면 니 부모가 그리 가르쳤냐며 영어로 답해주자.[33] 아랍어 전공이라면 아랍어로 시전하면 된다.하지만 이들과 사기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순박하며, 길거리에서 웃으며 “Hi”라며 인사해주기도 하니 똑같이 답해주자.

2018년에 KOICA는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학교를 짓기로 밝혔다. 그리고 2018년 10월 15일에 한국관광대학교는 주한 요르단 대사를 초청하고 동시에 요르단데이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국남부발전은 요르단에 풍력발전소를 착공하고 있다고 2018년 11월 8일에 밝혔다. 코트라는 2019년 4월 30일에 요르단에서 한국-요르단 비즈니스 파트너십이 개최되었고, 한국과 요르단의 기업들이 참여해서 서로 상담을 가졌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요르단은 이집트와 함께 아랍어 어학연수를 많이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국가이다.

북한과는 현재 외교 관계가 없다. #

10. 국가


요르단 왕실가(앗 살람 알 말리키 알 우르두니, السلام الملكي الأردني‎‎)는 1946년 요르단 왕국이 출범하면서 제정되었고, 압둘모넴 리파이가 작사하고 압둘 카데르 알타니르가 작곡했다.

[1] 모로코처럼 국왕이 총리를 탄핵할 수 있다.[2] 물론 공식적으론 입헌군주국이지만 실제론 전제군주국이다.[3] 해외거주 요르단인+요르단거주 요르단인+요르단거주 외국인을 합한수치다. 요르단은 특이하게도 자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과 해외에 거주하는 요르단인을 모두 요르단인구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의도한바는 아니겠지만 타국에 비해 인구집계기준으로서의 인구뻥튀기가 있는 나라다. 그리고 최근 10년간 시리아와 이라크로부터 난민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많이 증가했다.[4] 사실 이 단어는 미국의 어떤 먼치킨 농구황제의 이름과 그 철자 및 발음이 같다. 이를 이용해 영국 코미디언 Ali G는 유엔 본부를 방문한 스케치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한 사람을 위해 의석을 마련해주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개드립을 쳤다.[5] 시리아의 국왕 칭호는 1920년 한때만 실질효력을 가졌고 그 이후부터는 명목에 불과하다.[6] 파이살 2세가 미성년자였을 때 섭정을 맡았다.[7] 1958년 당시 영국 주재 이라크 대사로 런던에 나가 있어서 화를 면했다.[8] 실제로는 의회의 동의를 받아서 임명하지만, 의회에서 부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9] 상원만 해당[10] 다만, 현재 입법 과정에서는 선거로 구성이 되는 하원에 우선권을 부여한다.[11] 물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진압한 검은 9월 진압 같은 사건도 있긴 했지만.[12] 미국 공화당 의원이자 빌 클린턴 정권에서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리치가 오래전 아랍 나라들을 민주화시켜야 한다고 할때, 미국 민주당에서 비웃었다. 그러자면 요르단은 친팔레스타인 국가니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테고, 다들 미국을 싫어하는 민주국가가 될테니. 그리고 2013년 민주화된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이 예상은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13] 이는 요르단 왕정이 공식적으론 전제군주제가 아닌 입헌군주제인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중동권 국가들의 국가 막장테크의 정석이자 가장 큰 요소인 이슬람 극단주의등 종교적 광신이 없다![14]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로써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저임금직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데 요르단 주민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받는 임금보다 더 싸게 일하는데다가 수십만씩 몰려들어와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집세가 급증해 물가도 동시에 급속히 오르는 바람에 집 가진 부유층들만 대박이 터져서 가뜩이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악화되다보니 시리아 난민들이 곱게 보일 수가 없다. 이 문제 때문에 요르단 정부에선 시리아 난민들에게 정해진 구역 외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덕택에 시리아 난민들의 대다수가 시궁창인 상황에 빠져들었다. 참고로 터키레바논도 똑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15] 한국으로 친다면 북한에서 난리가 나서 300-500만명에 달하는 탈북자가 몰려온 상황인데 거기에 더해서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백만의 난민이 추가로 몰려오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면 된다.[16] 사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들어오면서 갈 곳이 없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으로 가서 난민생활하다가 돌아올 수 없게 되면서 별 수 없이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17] 다만 아랍연맹 가입국으로서는 이집트와 요르단만이 해당된다.[18] 터키보다 더한 경우가 아제르바이잔. 아예 이스라엘군이 여기 가서 훈련하고 온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군 연료 절반 가까이를 수출하는 등, 이스라엘에게 군사적으로 미국 못지않은 우방급이 되었다. 이러다보니 이스라엘 총리가 아제르바이잔도 가고 이스라엘은 아제르바이잔과 영토 문제로 원수지간인 아르메니아를 외면하다보니 아르메니아 대학살조차도 공식적인 인정을 하지않고 외면한다! 요르단보다 훨씬 우방인 셈. 솔직히 1980년대까지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였던 요르단과 달리 아제르바이잔은 1991년까지 소련의 공화국이였으니 그럴만도 하다.[19] 아랍인들과 꽤 친한 정보통이며, 아랍어에 능통하다. 드물게 무분별한 한국의 선교를 비판하는 사람이며 이슬람에 관한 괴소문을 바로잡는 글도 종종 쓴다. 덕분에 극우성향의 거대교회에게 별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모욕(이슬람을 믿는 엉터리 목사라든지)이나 공격을 당했다. 그러면서도 아랍 문제나 통역같은 일에 그 기득권 교회들이 와서 정보를 부탁하는 일이 잦은 아랍 정보통으로 알아준다.[20] 이집트만 해도 1980년 6월 12일에 이집트 관광지로 온 이스라엘 관광객들을 관광지 치안을 맡던 한 이집트 군인이 마구 쏴 죽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 군인의 아버지가 6일 전쟁 당시 이집트군으로 이스라엘군과 싸우다가 전사했기에 아버지의 원수 나라 연놈들이 우리 이집트 관광지로 와서 웃으며 사진찍는 걸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슬람 과격파나 반시오니즘 사상도 아닌 게 드러나 무기 징역을 선고해 지금도 이 군인은 복역 중이다. 마찬가지로 요르단도 똑같은 과거를 가진 터라...[21] 압둘라 2세는 공격헬기 조종 면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투기도 격추당하는 마당에 국왕이 직접 헬기를 끌고 나가는 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칫 격추라도 당하면(...).[22] 요르단은 전체 인구의 6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23] 다만 알아둘 점은 이들도 기독교인이 꽤 많이 사는 아랍 지역 나라들이 그러듯,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이거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라는 사실.[24] 약 12만 명 정도이며, 통계에 따라 30만을 추산하는 경우도 있다.[25] 약 11만 명 남짓. 로마 예법 신자들이 약 8만 명으로 가장 많고,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소속 신자들이 약 3만 명 정도이다. 이외에 시리아 가톨릭,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자들이 소수 있다.[26] 수도 암만에 돼지고기 정육점이 두 군데 있는데 고객은 주로 비무슬림과 외국인들이다.[27] 심지어는 페트라와 필라델피아, 카라케일이라는 국산 맥주 브랜드도 있다. 여담으로 카라케일은 현지 양조장 사장이 미국 유학 생활 시절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서 10년간 맥주 양조업을 배우면서 만들었다고 한다.[28] 1868년 독일인 의사가 여기서 고대어로 된 돌비석을 발견했던 일이 있다.하지만 현지인들이 연구를 방해했고 독일 측이 이걸 알게되자 독일로 가져가려 했기에 현지인들이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당시 요르단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 총독에게 뇌물을 먹이면서 독일로 가져가게끔 허락했는데 주민들은 억지로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부순다고 부숴버리고 만다! 실망한 독일이 포기한 거랑 달리 프랑스에서 깨어진 돌비석 잔해를 사가지고 가서 일부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돌비석의 2/3 수준만 프랑스에 있다. 그나마 탁본을 뜬게 남아있어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려 기원전 840년쯤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전에 남은 고대 히브리어 비석이다.[29] 하지만 NBA 선수로도 잠깐 뛴다든지 하부 미국 농구리그에서 뛰던 이들이라 이들도 절대 무시못한다.[30] 당시 남자만 8체급 실시.[31] 계획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갈길이 너무 멀다[32] 요르단의 청년 실업률은 34%로 엄청나게 높다. 때문에 길거리를 다녀보면 노는 청년들이 많이 보인다.[33] Did your parents teach you like that?이라 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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