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6 17:08:41

리비아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로마 제국의 초대 황후에 대한 내용은 리비아 드루실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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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ليبيا
파일:리비아 국기.png 파일:리비아 국장.png
국기 국장
표어 حرية، عدالة، ديمقراطية
자유, 정의, 민주주의
면적 1,759,541km²
인구 6,408,742명(2017년 통계)
수도 트리폴리
공용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수니파)
통화 디나르
GDP 명목 544억 1100만$(2017)
1인당 GDP 명목 8,438$(2017)
정치 체제 단일국가, 과도 의원 내각제, 공화국(사실상 대통령제)
대통령위원회 의장 파예즈 알사라지
HDI 0.716(2015)
시간대 EET (UTC+2)
국제전화 +218
국가 도메인 .ly
국가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여행경보 여행금지 : 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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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ya / Libia (short version / versión corta)
Libya / Libia (Olympic Version / Versión Olímpica 2012 / 2016)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장2.4. 국가
3. 자연
3.1. 지리
4. 역사
4.1. 고대4.2. 중세4.3. 근대4.4. 카다피의 독재 및 내전 이후
5. 군사6. 경제7. 사회
7.1. 관광7.2. 식문화7.3. 스포츠7.4. 난민 문제
8. 외교 관계
8.1. 미국과의 관계8.2. 이집트와의 관계8.3. 러시아와의 관계8.4. 이탈리아와의 관계8.5. 영국과의 관계8.6. 대한민국과의 관계
8.6.1. 리비아 한국 스파이 사건
9. 창작물에서의 리비아

1. 개요

북아프리카에 위치하며 지중해에 접해 있는 아랍 국가. 대중동권역으로도 분류된다. 영어로는 Libya. 아랍어로는 ليبيا(Lībiyā). 공용어는 아랍어다.[1]

수도는 트리폴리(Tripoli). 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طرابلس)인데 레바논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기 때문에 서 타라불루스(طرابلس الغرب)로도 불린다. 제2도시로는 벵가지가 있다.

이전에는 카다피의 독재국가였으나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로 현재는 과도정부 하의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들 과도정부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기본법으로 정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선포했다. 성향은 온건한 편.

인구는 2015년 기준 약 630만 명. 국토면적은 약 176만㎢로, 세계에서 17번째로 면적이 넓고 아프리카에서는 4번째로 큰 중간 크기의 대국이다. 유럽에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리비아보다 큰 나라가 없다. 아프리카에는 세계 순위권에 속하는 국가들(알제리, 콩고 민주 공화국, 수단 공화국)이 있어서 조금 밀리지만 그래도 아프리카에서도 영토만으로 5번째 상위권. 다만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이기 때문에 실제 개발 가능한 면적은 좁다.

2. 상징

2.1. 국호

국명은 고대 그리스어 '리뷔에(Λιβύη, Libyē)'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나일 강 가장 동쪽 지역을 리비아라고 불렀는데 고대 그리스 여신의 이름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전의 정식국명은 '대(大) 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국(الجماهيرية العربية الليبية الشعبية الإشتراكية العظمى)'였다. 여기서 '자마히리야(جماهيرية)'란 카다피가 창안해낸, 리비아의 아랍 사회주의 내 특유의 직접 정치참여 체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

2.2. 국기

혁명 전까지 쓰인, 카다피 정권 시기의 리비아 국기는 아예 색칠할 필요도 없이 초록색 천을 네모반듯하게 쓱싹 잘라놓으면 되었었다. 초원의 푸르름과 이슬람 교리의 성스러움을 상징한다고 한다. 카다피가 쿠데타로 집권한 초기에는 왕정시대 국기를 없애버린 후 적, 백, 흑의 가로 삼색기를 제정해 쓰다가(예멘 국기와 비슷하나 가로세로 비가 2:1이었다.) 1972년 이후 이집트, 시리아와 아랍 공화국 연방을 결성해서 이집트와 색깔, 문장이 똑같은 국기를 썼다. 그러나 4차 중동전쟁(1973) 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화해하려는 것에 격분해 이집트와 절교하고 연방해체 크리를 맞으며 국기도 바꿨다.

현재는 2011년에 망한 자마하리야 잔존세력들, 카다피 추종세력들만 녹색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시민군이 저 위의 3색과 초승달과 별이 있는 국기로 다시 바꾸어 놓았는데, 카다피가 집권했던 42년을 부정하는 의미라고 한다.

카다피 정권 시절의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초록색 단색으로 사용된 국기[2]이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 있는 국기광장에서 구 리비아 국기를 볼 수 있다.[3]

2.3. 국장

왕정 시기에는 초승달과 별 그리고 왕관이 그려진 국장이었고 카다피 정권 시기에는 쿠라이시의 매가 들어간 국장이었지만 현재는 공식 국장은 없다. 비공식적으로는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과 별이 상징물로 사용중이다.

2.4. 국가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라는 곡을 사용중이다. 이 노래는 1951년부터 1969년까지 사용된 리비아 왕국의 국가였다가 1969년 카다피가 쿠데타로 집권함에 따라 폐지되었다가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다시 사용 중이다.

3. 자연

해안부를 제외한 지역은 거의 사막지대로 인구가 희박하다.

1922년에 엘 아지지아(El Aizia)라는 곳에서 화씨 136도(=섭씨 58도)가 기록되어 세계 최고 기록 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2012년 세계기상기구(WMO)의 조사를 받은 후 왕좌를 빼앗겼다. 국제연구진을 조직해 조사를 벌인 결과, 비전문가가 부정확한 판독을 내리는 바람에 잘못 기록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3.1. 지리

이집트처럼 영토 대다수가 사하라이고 해안가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리비아와 국경을 직접 접하는 이웃나라들로는 서북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튀니지, 서쪽의 알제리, 서남쪽의 니제르, 남쪽의 차드, 동남쪽의 수단 공화국, 동쪽의 이집트, 그리고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진 않지만 지중해 건너편의 가까운 이웃나라들로는 동북쪽의 터키그리스, 북쪽의 알바니아, 서북쪽의 몰타이탈리아 등이 있다. 또한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가면 제 2의 도시인 벵가지가 있다.

4. 역사

리비아의 역사 تاريخ ليبي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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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 고대 중세 & 근세 근대 현대 리비아
T베르베르페니키아카르타고
누미디아
로마 제국반달 왕국 동로마 제국 우마이야 왕조 피흐리 왕조 무할라브 왕조 아글라브 왕조 파티마 왕조 파티마 왕조 지리 왕조 노르만 무와히드 왕조 하프스 왕조 오스만 제국
카라만리 왕조
이탈리아령 리비아 대영 제국리비아 왕국인민사회주의 아랍공화국리비아 내전공화국
C 펜타폴리스 헬레니즘 제국 동로마 제국 압바스 왕조 툴룬 왕조 이크쉬드 왕조 힐랄족,
술라임족
파티마 왕조
가니야족
아이유브 왕조
F가라만테스 왕국 베르베르
/
투아레그
프랑스
※ T는 트리폴리타니아 지역, C는 키레나이카 지역, F는 페잔 지역, 붉은색은 튀니지 방면 세력, 녹색은 이집트 방면 세력
}}}}}} ||

4.1. 고대

고대에 리비아는 주로 키레나이카 아니면 트리폴리타니아까지 포함한 명칭이다. 페잔의 경우는 기원전 19년 로마가 페잔을 점령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편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 해안가에는 고대 국가 카르타고의 영토 일부[4]였으며,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146)으로 카르타고가 망하자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가 제정으로 이행한 뒤에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냈지만, 2세기 후반 세베루스 왕조의 시조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재위 193~211)가 태어난 도시인 렙티스 마그나[5]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동쪽의 키레나이카는 이집트와 그리스, 페니키아, 페르시아,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6]

4.2. 중세

이후 다시 역사의 변방이 되었고, 반달 왕국,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거쳐 7세기 아랍 이슬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왔다. 길목으로서는 대단히 긴요한 지역이지만 세력을 떨친 나라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옆동네 이집트에선 살라흐 앗 딘의 아이유브 왕조를 비롯 맘루크 왕조 같은 강력한 나라가 태어났고 모로코에서도 나름의 강력한 국가들이 나타났지만 트리폴리타니아(Tripolitania)-키레나이카(Cyrenaica)라고 불린 현재의 리비아는 그저 지배만 받았다. 트리폴리타니아는 모로코계 베르베르인들의 통치를 받아서 베르베르인들의 문화와 비슷하기도 하며, 키레나이카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 이집트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4.3. 근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별 문제 없이 속주에 머물러 있었다. 1711년 트리폴리타니아에 잠시 카라만르 왕조[7]가 들어서기도 했다. 이 왕조를 중심으로 리비아를 구성하는 세 지역들이 서서히 통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835년에 오스만이 리비아 지역을 되찾았다.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하면서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이탈리아령 리비아) 이탈리아의 식민 통치 시절 오마르 무크타르 등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결국 로돌포 그라치아니가 이끄는 이탈리아군에게 진압되었고 이후 이탈리아는 리비아에 대한 강압적 통치를 실시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이탈리아군등 추축국과 미국, 프랑스, 영국군등 연합군들의 격전지가 되었고, 유명한 토브룩 전투가 키레나이카에서 벌어졌다. 2차 대전 후에는 패전국 이탈리아의 영토였기에 프랑스영국이 분할 통치하다가, 1951년에 영국령의 트리폴리타니아(Tripolitania, 아랍어로 طرابلس), 키레나이카(Cyrenaica, 아랍어로 برقة), 프랑스령의 페잔(Fezzan, 아랍어로 فزان) 세 지역을 합쳐 연합 왕국으로 독립했다. 독립당시의 리비아는 매우 가난한 최빈국이었으나 1961년에 대량의 석유가 발견되면서 완전히 역전되어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부의 재분배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왕정에 대한 지지도는 급속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4.4. 카다피의 독재 및 내전 이후

1969년에 육군 장교 무아마르 카다피는 국왕 이드리스 1세가 해외순방 겸 해외치료(당시 나이 80세였다.)를 나간 틈을 노려 쿠데타를 일으켜(이 당시 카다피의 계급은 일개 대위였다.[8]) 왕정을 폐지하고 나세르주의에 입각한 아랍 사회주의 국가(리비아 아랍 공화국)를 세웠다, 카다피는 집권 후에 석유국유화를 전면적으로 단행하여 거대 석유회사와 소수계층에서 쏠렸던 부를 재분배시켰고 1973년에 전격적인 유가인상을 주도하여 리비아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그 결과 당대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잘사는 그야말로 부자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카다피는 반미-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여러 테러활동에도 지원을 내보내서 카다피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주목받는 지도자가 되었다.

한편 이드리스 1세는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1983년 93세로 죽었다.

1988년 크리스마스 날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일어난 팬암 103편 폭파 사건을 포함하여 베를린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 등 여러 테러 사건에 연루되어 미국공습을 받았다. IRA 등 타국의 테러조직을 지원하기도 했다.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군림 중이었던 독재자 중 하나로, 그의 패션 센스를 포함한 각종 기행으로 악명을 떨쳤다. 해외에 방문할 때는 항상 유목민처럼 커다란 텐트를 치고 숙소로 삼는데, 뉴욕에 방문해서도 똑같이 하려다가 미국시민들의 주거지 침해로 무산되었고, 2009년 UN 총회에서 96분간 장시간 연설로 지루함과 짜증남 때문에 참석자들은 하나 둘 회의장을 떠났고, 결국 다음 연설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텅빈 회의장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카다피의 통역은 중간에 실신해서 새로운 통역으로 교체되었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UN직원들도 60년 역사상 가장 정신나간 사건으로 뽑는다고 한다.

카다피는 자신의 이념을 포함해 여성의 생리부터 바나나까지 온갖 얘기를 담은 "녹색책"이라는 이름의 소책자를 배포하고 그에 따라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일례로 모든 주택은 공공주택이었는데 자물쇠가 없어서 모든 집에 맘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외교 정책에서는 처음에는 아랍국가들과 동맹을 맺고자 했으나 사이가 틀어지자 아프리카 국가들로 급선회했다. 스스로를 아프리카의 영웅으로 띄우면서 아프리카를 제2의 USA 즉 United States Of Africa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독재 국가에 돈을 뿌렸다.

팬암기 사건 이후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 조치로 경제는 피폐해졌으나 그럼에도 인구가 적어서 쌓아 놓았던 건 많았던지라 알제리나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의 산유국들이 빈곤층의 급증이나 실업난, 정치 불안으로 격변기를 맞고 있을 순간에도 경제 파탄은 피했다. 2000년대 들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과거 테러 보상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상당 부분 경제 제재가 풀리고 다시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면서 다시 호황을 누렸다.

2011년 아랍의 봄을 타고 1차 리비아 내전이 일어나면서 카다피의 권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비아 내전으로 리비아 공화국이 정권을 잡기 전의 지배자인 카다피의 쿠데타 때문에 전복됐었던 리비아 왕국의 국기를 다시 내건 것이다. 하지만 굳이 '왕국'의 국기라서 내건 것(왕정복고)은 아니고 카다피가 집권한 42년을 부정하는 의미이다.

2011년 2월 말에서 10월 23일까지 리비아 내전이 발발했고, 반군과 서방의 공격으로 카다피는 결국 사망하면서 혁명이 성공하긴 했다. 하지만 내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2011년 이전처럼 치안이 회복되지는 못했고, 결국 카다피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 들어선 임시정부가 이슬람주의파와 세속주의파간 갈등으로 정부가 트리폴리 정부와 토브룩 정부로 갈라지면서 2014년 내전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한편 내전 와중에 이슬람 국가(IS)가 리비아에서 지부를 만들어 시르테와 벵가지 등을 점령하며 리비아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트리폴리 정부와 토브룩 정부, IS의 3파전으로 번지며 리비아는 혼란에 빠졌다.

2015년과 2016년 사이에 내전을 벌이던 각 두 정부가 유엔의 중재로 통합 정부 수립에 합의했다. 그러나 통합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토브룩 정부가 유엔 중재하에 성립된 통합 정부와의 합류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완전한 정부통합을 이루지는 못했고, 결국 토브룩 정부를 끌어들이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에서 트리폴리 정부만이 권력을 통합 정부에게 이양하여 2016년 리비아 통합 정부가 수립되었다.

2016년과 2017년 사이 서부의 리비아 통합 정부군과 동부 토브룩 정부 휘하의 리비아 국민군(LNA)이 IS가 장악하고 있던 시르테와 벵가지를 공격해 각각 도시 여러 곳을 함락시켜 IS를 섬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IS와 전쟁 중인 아랍 국가들 중에서 IS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IS가 토벌되었지만 불완전한 상태에서 성립된 통합정부와 통합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던 토브룩 정부와 일부 트리폴리 정부 세력들의 저항과 반발로 정국 혼란은 가시지 않은 상태였고 유엔 중재로 성립된 리비아 통합정부를 인정하지 않던 토브룩 정부도 국제사회의 중재 아래 리비아 통합정부와의 협상에 나섰다.

####그리고 2017년 7월 리비아 통합정부의 사라지 총리와 토브룩 정부 소속 리비아 국민군(LNA)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회동을 하여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휴전과 선거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선거의 시기를 놓고 양대 정파 간의 갈등이 벌어져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결국 12월 10일 프랑스의 중재 하에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로 합의안이 나오면서 이러한 리비아 양대 정파들의 평화 행보에 희망적인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 실시를 두고 양측이 벌인 협상에서 두 정부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9] 정국 혼란이 가중되면서 12월에 치뤄질 예정이던 선거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며 파행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9년 4월 봄 동부 토브룩 정부의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은 리비아 통합 정부가 지배하는 트리폴리 등 서부 지역으로의 진격을 지시, 수도 트리폴리를 위시한 서부 지역만 통치하던 리비아 통합 정부에 대한 선제 공격을 가하면서 서부의 리비아 통합 정부와 동부의 토브룩 정부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한편 하프타르가 트리폴리를 공격하자 파예즈 알 사라지 리비아 통합정부 총리는 하프타르가 배신을 했다며 하프타르와 동부 토브룩 정부를 격렬하게 비난했고, 유엔과 국제사회 역시 트리폴리를 공격한 동부 토브룩 정부 휘하의 칼리파 하프타르 LNA 사령관을 규탄하며 무력 공격을 멈추고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프타르는 이러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을 무시하며 서부 리비아 통합정부에 대한 군사적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비록 군사력과 규모에 있어서는 하프타르의 LNA군이 우세하지만 서부 통합정부의 정부군도 LNA군에게 격렬하게 저항하여 수도 트리폴리를 방어하면서 전쟁은 막상막하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자세한 것은 2차 리비아 내전 문서를 참고. 한편 카다피 정권 붕괴 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자 리비아내 일각에서는 카다피의 쿠데타로 축출됐던 알 세누시 왕조의 왕정복고를 거론하는 이들도 소수나마 존재하고 있다.

5. 군사

1970년대 러시아제 MiG-23(100대), MiG-25(120대), Su-22(80대) Su-25(70대), 미라지 F1(40대), Tu-22 블라인더 폭격기를 비롯한 전투기들을 사들여와 총 보유수가 500대가 넘었고, 거기에 이탈리아로부터 SF-260 훈련기만 200대 가까이 따로 사들여왔을 정도로 공군 규모 하나는 아프리카 최강급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렇다쳐도, 훨씬 공군력이 약했던 이집트와 차드 공군에게 크게 당했다. 덕분에 리비아가 이집트와 국경을 맞닿기에 다행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만일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닿았다면 틀림없이 전쟁벌여서 이집트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당했을테니.

1980년대 리비아 앞바다(주로 Gulf of Sidra, 시드라 만이라고 불린다.)에서 여러번 미 해군 함대에 무력시위를 벌이다 대응출격한 F-14 전투기에 MiG-23 전투기가 격추당했다.

6. 경제

석유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리비아의 석유는 성분에 있어 다른 국가의 석유에 비해 질이 높다고 한다. HDI도 높은 편이다. 최근 몇 년간은 정치상황이 혼란하다 보니 2011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내전의 여파로 -60%를 찍었다가 2012년에는 내전 여파가 복구되면서 120%를 기록했었는데, 다시 내전 재발과 유가 폭락으로 GDP가 반토막나는 등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상황. 참고로 과거 미국의 1인당GDP를 넘긴 아프리카의 전무후무한 국가이다. 석유파동 당시, 1980년 1인당 GDP가 13,032달러로 미국은 12,576달러였다. 출처

내전 이후에는 시설들이 많이 파괴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경제가 회복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sns 등에서 무기들이 불법으로 밀거래되면서 총기관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점이 남아있기도 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04/0200000000AKR20170504070300009.HTML

7. 사회

같은 이슬람 문화권인 사우디아라비아이란에 비하면 개방적인데 카다피의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유럽 유학을 하여 개혁. 개방적 사고를 갖추었다는 평. 카다피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2008년 정계은퇴를 발표하긴 했지만 그 후로도 외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후계자가 유력하다는 평이었는데 2011년 8월 21일 리비아 내전 와중에 시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지만 아버지가 사살당하고 해외로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기에 정권을 잡기엔 어려워보인다.

이 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아랍계 셈족이며 통용언어는 아랍어. 그리고 국토의 90% 이상이 사하라 사막이고 동쪽 이집트와의 접경지역은 리비아 사막이라 농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구 밀도도 대단히 낮은 편.

석유 덕분에 국가가 돈이 엄청나게 남아 도는 관계로 2006년에는 전 초등학생들에게 전자민주주의 확대라면서 120만대 노트북을 무상지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넘치는 돈을 가지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 내전에 지원했다.

7.1. 관광

한때 카다피가 비록 나란 황무지 같아도 자원의 힘도 있거니와, 온갖 유적지 등 볼 것도 많은데 왜 한 해 관광객이 10만 명도 안 되는가? 이웃 이집트만 해도 관광객이 해마다 평균 400만 명이 넘고 튀니지도 200만 명이 넘는데 우리가 뭐가 부족한가? 하여 1998년 영국 여행 관련 사업 전문가에게 한 번에 10억 원이 넘는 거액수표까지 줘가면서 자문을 얻었다. 그래서 그 전문가는 리비아로 와서 꾸준히 조사한 다음, 3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건의했다.

첫 번째는 리비아를 오고가는 국제 항공노선을 더 늘려야 하며, 두 번짼 술을 좀 자유롭게 해줄 것. 이집트는 아예 맥주를 직접 만들고(스텔라 맥주) 튀니지나 이집트나 술에 대하여 개방적이라 외국 관광객이라면 마실 곳이 꽤 많다. 마지막으로 입국을 더 자유롭게 해주면 된다[10]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난 2008년 그 전문가가 어디 얼마나 달라졌나 하여 리비아로 와봤더니, 이 가운데 딱 하나, 항공노선만 늘렸을 뿐 다른 건 전혀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카다피는 관광객이 안 온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다(...).

리비아 해안가 일대에는 고대 그리스, 페니키아나 카르타고, 로마가 남긴 문화유산 및 중근세 시대의 이슬람 사원유적들이 있지만 내전으로 인한 여행금지에 속한 나라이기에 가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많은 유적들이 오랜 내전으로 파괴되거나 약탈당했다.

# 현재 리비아의 치안불안과 이로 인한 문화재 방치, 훼손 등이 심하다고 한다.

7.2. 식문화

사막성 지역이라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고 그 동안의 남획으로 어업도 시원치 않다. 때문에 페르시아 만의 다른 산유국들처럼 먹을 것을 거의 수입해온다. 튀니지나 모로코처럼 쿠스쿠스가 대표적인 요리이다. 이탈리아의 영향으로 파스타도 발달해있다.

7.3. 스포츠

축구가 그나마 인기가 있긴 하나, 북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FIFA 월드컵에 한번도 못 나간 나라다. 그나마 가까웠던 때가 1986년의 예선. 이때도 모로코에 1:0으로 이겼으나 1차전 때는 3:0으로 져서 못 나갔다. 이 나라의 축구 국대에 대한 자세한 건 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7.4. 난민 문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서 유럽을 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에서 출발하는 난민선은 웬만하면 여자가 탑승하기 힘든 거의 인외마경이 따로 없을 정도. 불법으로 유럽에 들어왔다 나가는 난민선에 질서에 있을 리도 없고 난민선 내에서 성폭행 문제가 불거지자 여성 난민들은 리비아발 난민선을 가급적 탑승하지 않는 추세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콩고 민주 공화국 같은 경우에는 원래 강간 범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였는데 여기 출신 난민들도 리비아발 난민선에 적잖이 탑승한다. 일부 국가 출신 난민들이 강간 범죄 발생 비율이 높은 이유는 현지의 치안 부재와 이로 인한 인권의식의 미성숙인데, 범죄를 저질러도 친척들 동원해서 우기면 웬만하면 처벌받지 않고, 강간 피해자만 수치심에 침묵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다보니, 다른 나라에서도 성범죄를 저지르고나서 도망가거나 발뺌하면 처벌을 안 받는 줄 아는 경우가 진짜로 많다. 실제로 난민 브로커들이 포르노 영상을 보여주면서 유럽에만 가면 모든 걸 다 즐길 수 있다 유럽 여자들이 흑인 남자만 보면 좋아서 환장한다고 과장해서, 이런 경향을 더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안 좋아졌는데,[11]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도 다짜고짜 전부 다 싸잡혀서 성범죄자로 몰리는 현실에는 할 말이 많다.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들 같은 경우에는 엄연히 이들이 극악한 독재 정권을 피해 탈출한 난민임에도 그냥 "불법체류자" 취급 받는 현실이며,[12] 세네갈이나 가나 출신 난민들은 나름 교육수준 높은 엘리트들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부 다 무식쟁이 취급하니 원통해하기도 한다.

요즘은 리비아발 난민선을 통해서 유럽으로 불법이민 혹은 난민신청하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다보니 난민을 납치, 인신매매 후 경매로 노예로 판매하는 노예 시장마저 생겼다.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오고 난민선을 대기하는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그 와중에 난민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치안이 불안해진 것도 있었고, 카다피가 리비아 시민군과 싸울 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용병들을 닥치는 대로 고용해 시민들에게 총질하고 각종 전쟁범죄를 저지른 악감정이 남아서인지, 이들을 노예로 파는 리비아인들은 별로 죄책감이 없는 듯하다. 이쯤 되면 답이 없다

8. 외교 관계

이집트 말고도 이웃 나라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이스라엘에게 그다지 반감을 보이지 않는 튀니지나 모로코는 물론, 에티오피아와는 종교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고, 역시 국경을 맞닿은 수단 공화국차드는 내전을 지원하면서 아주 원수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차드의 경제가 풍비박산나면서 사람들이 굶주리자 비웃듯이 리비아에선 버려진 빵이 많은데 그거라도 줄까? 약올리기까지 했다…그러나 정작 차드와 벌인 토요타 전쟁에선 차드군에게 압도적으로 패하면서 자존심에 금이 갔다. 아무래도 내전으로 전투 경험이 많은 군대가 유리했나 보다. 최근까지 이웃 나라들과 작은 분쟁에서 동네북급으로 당했다(…).

8.1.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도 은근히 여러번(1981년, 1989년) 공중전을 벌였다. 물론 미군 피해(톰캣)는 전무하고, 리비아 미그기와 수호이를 각각 2대씩, 4대가 격추당하면서 조종사 3명을 잃었다. 더불어 1986년에 미국이 벌인 폭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당연하지 쇼미더머니천조국인데

2012년 9월 11일, 무함마드를 모독한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에 분노한 뱅가지 시위자들의 로켓 공격으로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미국은 대테러보안팀[13] 50명과 알레이버크급 이지스함 2척을 출동시켰다. 영어기사 하지만 무슬림의 순진함 문서를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예멘, 이란, 수단, 모로코,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비록 인구 20% 이하지만 이슬람이 다수인 지역이 따로 있기에) 기타 이슬람권 국가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리비아만 족칠 수도 없게 되었다.

8.2. 이집트와의 관계

이 두 나란 오래전부터 국경 문제로 허구한 날 치고받았다. 그리고 1977년에는 아예 국경에 위치한 이집트 군대에 폭격까지 감행했으나, 이집트군의 반격으로 되려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리비아군은 먼저 기습 폭격을 하고도 전투기 20대 이상, 전차 10여 대를 잃고 100여명의 전사자를 낸 반면에, 선빵 폭격을 당한 이집트군은 전투기 6대, 전차 2대를 잃고 20명 남짓한 전사자를 내면서 4차 중동전 초반 이스라엘을 뭉갠게 운빨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런 참패에 카다피가 분노하여 이 작전 지휘관들을 대거 잘라버렸다. [14]

8.3.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는 소련시절부터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리비아는 소련에서 무기를 많이 수입했다.

러시아측은 시리아 내전에 이어 리비아 내전에 개입할려고 하는 등 리비아에도 영향력을 강화할려고 하고 있다.#

8.4.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와는 사이가 매우 좋지 못한 편이다. 고대때에 리비아는 이탈리아와 함께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둘다 달라지게 되었고 리비아 지역이 아랍의 지배를 받으면서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이탈리아는 리비아 지역을 식민지배했고 지금도 리비아는 이탈리아에 대해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8.5. 영국과의 관계

영국과는 외교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의외로 리비아는 1997년 에딘버러 선언에 의해 영연방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8.6.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78년에 영사급으로 수교했다가 2년 후인 1980년에 대사급으로 격상되었으며, 북한과는 1974년에 수교했다. 197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는 한국기업들이 대수로 공사 및 여러가지 인프라 공사를 수주했었기 때문에 한국과 리비아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스파이 사건으로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 의해 대사관이 대표부로 격하됐으나, 리비아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끝난 뒤 다시 대사관으로 격상되었다. 다만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

과거 우리나라 건설 회사인 동아건설이[15] 1983년 리비아 대수로 건설에 나서면서 국민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16] 이후 다시 잊혔다. 200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아프리카 무역에 있어서 6위의 수출 대상국이었다.(4억 6,000만 달러 수출)

당연히 대수로 공사덕택에 한국에 대해서 호감도가 강한 나라이며 한류 열풍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빅뱅은 거기서도 유명하다고... 심지어 스피드왕 번개까지도 방송되었다고 한다.

대수로 건설 붐 당시엔 대한항공트리폴리에 취항했었다. 대한항공이 리비아 취항 당시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가 났었는데, 현대건설 전무 김윤규(이후 현대아산 부회장까지 오른다.) 씨가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을 파르르 떠는 버릇이 생겼다.

한편 대한민국에도 리비아인들이 꽤 거주하는데, 대표적인 연예인인 아미라가 있다.[17]

납치사건과 관련해서는 2018년 리비아 한국인 납치사건 문서 참고.

대우건설은 리비아전력청과 협력해서 웨스턴마운틴 복합화력발전소 신규 건설공사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리비아는 내전중이지만, 한국 중고차의 절반이 리비아(!)로 수출되고 있다.#

8.6.1. 리비아 한국 스파이 사건

앞서 말한 대로 한류 열풍도 있었지만, 자원은 많으나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이 2가지는 절대적인 골칫거리였다. 그런 골칫거리 중 하나를 해결한 것이 1980년대 한국 동아건설이 공사하여 이뤄낸 지하수 공사였다. 아주 물이 넘쳐날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난 시간과 공사 끝에 꽤 해낸 이 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많았다. 당시 리비아 여론도 환호했고, 오죽하면 당시 동아건설 회장이 카다피를 카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냈으며, 카다피가 서투른 한국어로 동아건설 회장을 "헤잔님"(회장님)이라고도 불렀을 정도였다.

이렇게 한국에 대하여 긍정적인 여론은 2010년 7월경에 한국의 개신교 목사가 선교하다가 잡히는 사건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한국 대사관 상주직원 3명도 철수하고 현지 공사에 필요한 인원도 보내지 못하는 등 그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

일개 목사 1명이 범법 행위를 저지른 거치고는 리비아의 대응이 너무 과한지라[18] 외교계 일각에서는 무언가 더 큰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줄곧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알고보니 한국 외교관간첩행위로 인해 국교가 파탄난 것이었고 외교당국이 이것을 은폐, 축소했다가 때마침 불법선교의혹을 사던 목사가 추방당한 것을 언론에서 아무 의심없이 불법선교행위로 국교가 파탄난 것으로 보도해버린 것(...). 이미 아랍 측 언론에는 이 일을 대서특필하고 있었고 현재는 이 간첩행위가 단지 한국의 국익을 위한 정보수집행위였나 아니면 다른 나라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조사 중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체포된 목사가 불법선교를 한 적 없으며 그저 리비아 대학에서 아랍관련 학문을 공부하던 중 외교적 구실 마련을 위해 체포당했다는 주장도 있고, 실은 목사가 국정원 스파이라는 설까지 있다.

리비아 측에서는 국정원이 카다피의 차기 후계자 정보를 수집[19]하다 체포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에선 그저 기업활동을 위한 통상적 업무수행이었다고 해명하자 이제는 한국 국적의 기업인들도 첩보 작전에 참여한 거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카다피는 이 사건 이후 한국과 외교를 끊는 것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라서 리비아에 나가 있는 건설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참여한 건 맞긴 한데 참 입장이 애매하다. 왜냐면 통역을 했기 때문이다. 왜 통역했냐면 국정원 요원이 아랍어를 못 했기 때문이다. 아랍어 수요는 대폭발인데 가르치는 곳은 한손에도 안 들어가고, 아랍어 능력자들은 상대적으로 연봉 적고 이런저런 조건에 시달리는 직업들을 기피하기 때문.

당시 리비아는 한국의 외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꽤 높은 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 리비아와의 교류로 얻는 경제적 이득도 큰 편이며 전체적인 영향력에서 북아프리카에서 리비아를 능가할 만한 나라는 이집트 정도를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비아는 미국이나 한국이 적대하는 나라들과도 꽤 친하게 노는 편이라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가는 게 많았다. 국정원 니들이 코렁탕 마셔라.

그런 가운데 리비아 주간지의 기사를 바탕으로 내보낸 KBS의 보도가 또 파문을 일으켰다. KBS는 리비아 주간지를 인용해서 한국 정부가 스파이 행위를 했음을 시인했으며 사죄의 의미로 리비아가 한국에게 10억 달러(1조 2천억 원)에 해당되는 것을 내놓지 않을 경우 리비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는 것. 일부에서는 10억 달러짜리 공사를 공짜로 해주라고 요구한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에 외교부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외교부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 그리고 10억 달러에 대한 것을 부정한 바로 다음 날, 리비아에게 10억 달러치의 경제 지원을 검토 중이란 말이 올라왔다.

그런데 어차피 카다피 정권이 작살났으니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전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 되어서 2017년에 한국에 온 리비아 정부 대표단은 국회일정으로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는 국토부 차관에게 간곡하게 면담을 요청 하였다.[20]

9. 창작물에서의 리비아

에어울프의 1회의 주요 배경이 리비아이다. 개발한 에어울프를 리비아에 팔아 넘긴 모펫 박사가 주인공 스트링펠로 호크의 애인인 CIA요원 가브리엘을 사막에 묶어두고 방치하여 탈진사시키고, 호크는 이에 복수하기 위해 사막을 도주하는 모펫박사를 에어울프로 추격해 미사일로 폭사시킨다.

로버트 제멕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쳐에서는 작중 등장하는 테러리스트의 국적이 이곳으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이에 화가 난 카다피가 직접 수입금지령을 내렸다는 일화가 있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에서는 소련군으로 참전. 데몰리션 트럭이라는 막강한 핵트럭을 특수유닛으로 지니고 있다. 데몰리션 트럭이 본진 가까이에서 터지는 순간 헬게이트가 열린다. 철의 장막을 씌운다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데미 무어가 주연을 맡은 영화 G.I. 제인에서도 영화 막바지에 네이비씰과 리비아군의 교전이 펼쳐진다.
[1] 교육받은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며 예전에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서 노인층 등에서는 이탈리아어 사용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2] 유사한 점으로 구 베냉 국기가 있으나 이쪽은 왼쪽 가상에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붉은색 별무늬가 있다.[3] 88 서울올림픽에서 리비아가 카다피 정권기에 참가를 했기 때문에 고증상을 위해 초록색 단색의 구 리비아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4] 식민지, 인종은 달랐고 지배 민족인 카르타고인과 리비아인 첩들간의 혼혈이 카르타고 군사력의 중추였다고 알려져있다.[5] 원래는 카르타고의 도시였으나 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 이 도시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북아프리카 최대의 로마 유적지로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6] 로마와 비잔티움은 같은 국가이므로 그냥 지배자가 같았다고 보면 된다.[7] 알바니아계 태수가 오스만 제국에 종속된 형태의 자치국 형태로 세운 국가로 악명높은 바르바리 해적을 서포트하다 미국에게 된통 털리는 그 왕조이다.[8] 물론 리비아같이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는 실제론 위관이라 해도 장관급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으므로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다.[9] 선거 방식과 여러 정파 참여자들의 출마권 부여와 권력 분배 문제를 두고 서부 통합정부와 동부 토브룩 정부 측 사이에 이견이 엇갈렸다.[10] 이 전문가가 리비아에 입국할 때, 공항 측은 "홀로 입국은 안 되며 기본 4명이 한 번에 들어와 입국료를 내야한다"고 배짱을 부렸다.[11] 한 번은 이탈리아에서 난민선에서 물에 빠져 죽어가는 콩고 난민을 구조해줬더니 그 난민이 이탈리아 유명 관광지인 리미니에서 폴란드인 20대 여성 관광객을 상대로 집단 강간 범죄를 저질러서 폴란드와 이탈리아 모두 국민감정이 폭발하고 폴란드에서는 콩고 난민과 별 상관도 없는 이슬람 사원들이 돌에 맞아서 창문이 박살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12] 만약 탈북자가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는다면 같은 생각을 해보자. 엄연한 모순이다[13] FAST로 불리는 미 해군/해병대의 대테러대응조직으로, 테러위협이 있는 지역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주임무이다. 일반적인 대테러부대와는 달리, 공격적으로 운용되는 조직은 아니다.[14] 리비아가 답이 없을 정도로 약했다고도 볼 수가 있는 게, 리비아는 무력으로 재미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토요타 전쟁에서는 지는 걸 생각하기도 어려운 약체인 차드군에게도 탈탈탈 털렸고, 미군의 엘도라도 협곡 작전에 본진을 푹 찔리기도 했다. 그리고, 미 해군 항모전단에 얼씬거릴 정도의 적이 별로 없어서 몇 대 안 되는 톰캣의 격추전과는 대부분 리비아군을 상대로 올린 것이었다. 21세기가 되어도 리비아군의 막장성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아서, 리비아 내전에서도 카다피 측과 시민군 측이 나란히 졸전을 벌이며 6개월간 난장판병림픽을 벌였다.[15] 문화방송 여의도 사옥, 성수대교, 원효대교를 지은 건설회사.[16] 신화창조의 비밀에서는 1차 대수로 공사 이후 진행된 119 프로젝트편을 방영하기도 하였다.[17] 2014년 10월에 방영했던 헬로 이방인에도 나왔으며, 지금도 몇몇 프로그램에 가끔씩 출현한다.[18] 리비아의 대한민국 건설 수주량은 5위권에 들 정도로 나름대로 상당히 각별한 관계다.[19] 전제 왕권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후계자 문제에 얼마나 예민한지는 한반도 북쪽의 예에서 보듯 엄청나게 민감한 사안이다.[20] 결국 25분간 비공식 회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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