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4 16:30:09

미얀마

동남아시아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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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준으로 친 주,라카인 주 북부에 특별여행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미얀마 연방 공화국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Pyidaunzu Thanmăda Myăma Nainngand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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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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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면적 676,578km² / 세계 40위
인구 53,955,140명(2018년) / 세계 26위
수도 네피도(နေပြည်တော်, Nay Pyi Taw)[1]
최대 도시 양곤
정치체제 대통령제 (사실상 의원내각제)
대통령 윈민(ဝင်းမြင့်, Win Myint)
부통령 민슈웨(မြင့်ဆွေ, Myint Swe)
힌니반티유(ဟင်နရီဗန်ထီးယူ, Henry Van Thio)
국가고문(총리격) 아웅산수지
GDP $707억1500만(2018년) / 세계 72위
GDP PPP $3348억5600억(2017년) / 세계 53위
1인당 GDP $1,338(2018년) / 세계 156위
1인당 GDP PPP $6,139(2017년) / 세계 126위
통화 (ကျပ်, K)
공식 언어 미얀마어
종교 불교 90%, 그리스도교 6.2%, 이슬람교 4.3% 등[2]
민족 구성 버마족 68%, 샨족 9%, 카렌족 7%, 라카인족 4%, 몬족 2%, 기타 10%
HDI 0.556(2015)
국제 전화 +95
도메인 .mm
무비자 입국 한국인→미얀마: 30일
미얀마인→한국: 불가능
주한 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28길 12
위치
파일:external/premium.britannica.co.kr/oseasia015m4.jpg
1. 개요2. 국호3. 인구 및 민족
3.1. 인도계 미얀마인
4. 소수민족 문제5. 지리6. 역사7. 경제
7.1. 마약 수출국
8. 군사9. 외교10. 문화
10.1. 언어10.2. 종교10.3. 기타
11. 과학12. 스포츠13. 관광14. 국가 상징
14.1. 국기14.2. 국가
15. 대중매체에서16. 이야깃거리

1. 개요

정식 국명은 '미얀마 연방 공화국(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Pyidaunzu Thanmăda Myăma Nainngandaw)'이다. 미얀마 군사 정권이 20년 만에 2010년 11월 7일에 실시하는 총선거를 앞두고 국기와 정식 국명을 변경했다. 이전의 국명은 '미얀마 연방'. 1988년 미얀마로 개칭하기 전인, 버마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현재의 수도인 네피도(Naypyitaw)의 원래 이름은 핀마나(ပျဉ်းမနား, Pyinmana)로 내륙의 작은 지방 도시였다. 네피도의 뜻은 왕도, 즉 '왕국의 수도'.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양곤(ရန်ကုန်, Yangon)은 예전의 수도다. 2005년에 먼저 핀마나로 행정 수도를 옮기고, 2006년 네피도로 이름을 바꾼 뒤 공식적으로 수도가 되었다.
버마
ဗမာပြည်
버마삐


미얀마 연방
ပြည်ဓထာဝ်စု မြန်မာနိုဝ်ဝ่ဓတာ်
삐다운주 며마나인응안도


미얀마
မြန်မာပြည်
며마삐

မြန်မာနိုဝ်ဝ่
며마나인응안

2. 국호

이 나라에 대한 공식 호칭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데, 이는 현 미얀마 정부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영국 등 꽤 많은 국가가 지금도 주야장천 버마(Burma)라고 부르며, BBC World News는 버마라고 부른다. 한편, 미국 CNN International은 미얀마(Myanmar)라고 부른다.

과거의 명칭이었던 '버마'는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민족인 버마족의 나라라는 의미였다. 여러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미얀마라는 단어의 어원이 결국 버마라서 다민족성을 표방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무엇보다, 1989년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국호를 개칭할 때 그에 관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어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군부에서 지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군부의 독단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지 여사는 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미얀마라고 안 부르고 그냥 버마로 부르고 있다. 이는 정통성에 관한 논란에서 비롯된 것인데, 미얀마가 군부가 임의로 개칭한 국호라는 이유로 군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언론들이 주로 버마라고 부른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버마와 미얀마로 부르는 언론사들이 따로 있다. 아웅산수지 여사가 방한했을 때, 국내 언론사들에게 미얀마를 버마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참고로, 버마로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는 꽤나 오랫동안 버마라고 부르다가 미얀마로 고쳤고,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국내 체류 미얀마인들은 현재의 공식 명칭인 미얀마는 독재 군사정권이 일방적으로 붙인 이름이므로 버마라고 표기해 달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기를 사용할 때도 옛날 국기(아래의 버마 연방 국기)를 사용한다. 경향신문2007년부터 국내 언론사 중 최초로 미얀마의 표기를 버마로 바꿨다. # 어느새 다시 미얀마로 바꿨지만.

그런데 이게 어느 쪽이 옳다고 하기가 애매한 면이 있는게, 원래 이 나라의 이름은 미얀마였는데,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버마족의 이름을 따와 버마라고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정권이 바꾸었으니 미얀마라는 호칭을 부정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버마 민족의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이름이란 점에서도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얀마 또한 어원은 버마족에 두고 있다. 오히려 영어판 위키피디아 해당 문서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버마(Bama)가 myanma에서 변성된 것으로, '버마'든 '미얀마'든 버마족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일본에서는 '버마'를 표기시 비르마(ビルマ)라고 쓴다. 한때 한국에서는 일본 매체의 영향으로 버마를 '비르마'라고 표기한 사례 역시 숱했다고 한다. 또, 인하대학교 사학과 최병욱 교수의 저서 『동남아시아사』에 따르면 1102년 버마족의 이웃이었던 몬족의 비문에 버마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Mirma'란 표현이 등장한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이를 음차한 것으로 보이는 '면전(緬甸)'이란 표기가 등장한다.

몇몇 맞춤법 검사기는 버마라는 국명이 예전의 이름이라 하여 일괄적으로 미얀마라고 수정하는데, 그래서 정작 버마와는 상관없는 '버마재비(사마귀)'까지 졸지에 '미얀마재비'가 되기도 한다.(…) 거기다가 '재비'를 따로 보고 '제비'로 수정해 버리면 미얀마제비 완성.(…) 참고로 '버마재비'의 어원은 + 아재비.

결국 아웅산 수 지 여사가 집권했지만 미얀마든 버마든 상관없다고 밝히면서 국호는 그대로 유지될 듯 하다.

3. 인구 및 민족

국토 면적은 약 677,000㎢(남한의 약6.7배)이며 인구는 약 5,512만 명(2017). 미얀마인의 종족 구성은 버마족이 약 68%, 샨족이 9%, 카렌족이 7%이며 기타 소수 민족도 16%에 이른다(2008). 나라 크기에 비해 민족 구성이 대단히 다양하며 무려 135개나 되는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보다 더 많다.) 공용어는 버마어이지만, 소수민족들의 언어들도 많이 쓰이는데 그 수가 242개나 된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영어도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지방행정은 일곱 주(states, ပြည်နယ်)와 일곱 성(regions, တိုင်းဒေသကြီး: 과거에는 divisions)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省) 지역은 버마족이 중심인 지방들이고, 주(州) 지역은 소수민족이 중심인 지방들이다. 주는 카친, 카야, 카인, 친, 몬, 라카인, 샨 주가 있고, 성은 양곤, 사가잉, 타닌타리, 바고, 마과이, 만달라이, 아예야와디 성이 있다.

3.1. 인도계 미얀마인

대영제국은 미얀마를 식민통치하는 와중에 농지 개간 및 도시 인프라 확대 차원에서 많은 인도계 주민들을 미얀마에 정착시켰다. 다른 대영제국 식민지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주로 타밀나두 지방의 수드라불가촉천민이 많았던 반면,[3] 미얀마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유달리 브라흐민과 크샤트리야 등 상위 카스트 출신이 많았다.[4] 대영제국에서 버마인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힌두교도 소수민족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

주로 양곤 시에 정착한 힌두교도 상인들은 버마 현지인들을 불가촉천민 취급을 하며 통혼은 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미얀마에 진주해오자 이들 중 상당수가 인도로 도망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양곤 시 인구의 다수가 힌두교도였지만 2차대전과 그 이후 버마의 독립을 계기로 거진 다 떠나버렸고, 현재 미얀마에 거주하는 인도계 힌두교도 및 미얀마계 힌두교도 숫자는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2% 내외이다.

양곤에 정착한 힌두교도들과 달리 인도 동부에서 온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현지처나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5] 버마인 승려들과 민족주의자들을 여기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무슬림들을 전부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고 벼르게 되었다. 힌두교도들은 이들을 열등인종 취급하고 개무시하는 마당에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첩[6]으로 삼으니 버마인들 입장에서는 이가 부득부득 갈릴만 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로힝야 난민문제의 발단은 버마인들이 느꼈던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로힝야를 제외한, 미얀마의 무슬림 인구 대부분은 무슬림 남성과 버마 현지인 비무슬림 여성의 혼혈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시크교도 군인들도 적지 않은 수가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양곤 시에 정착했었으나 현재는 거의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이다.

4. 소수민족 문제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그러듯이 소수 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극심한대 미얀마는 특히 심각하게 부각되는 편이다.[7] 버마족과 소수 민족들 간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의 소수 민족 우대 및 민족, 종교 간 분열 정책이다.[8] 미얀마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버마족이 독립 이후 미얀마 사회의 주도층으로 부상하면서 소수 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보복이 자행된 것이다. 이에 각지의 여러 민족들이 버마족에 대항해 무기를 집어 들었고 곧바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특히 소수 민족 반군들은 미얀마 정부에게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카친족, 기독교를 믿는 한족[9], 카렌족, 아라칸족, 샨족, 몬족, 친족[10] 등의 소수 민족들은 미얀마에 대한 반감이 강하며 주류민족이자 불교도인 버마족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심하다. 그중 아라칸족은 미얀마에서 분리 독립하거나 아예 인도에 편입하길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버마족은 물론 다른 소수 민족들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220만 명이 사는데 미얀마에 130만 명이 살고 방글라데시, 인도, 사우디, 파키스탄에도 살고 있다. 즉 다른 소수 민족들은 버마족 vs 각 소수 민족의 갈등 형태지만 로힝야족은 버마족+소수민족들 vs 로힝야족의 형태로 대립하고 있다.

미얀마의 독립과 함께 시작된 내전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기는 하나, 미얀마 정부와 굵직한 반군들 사이에 개별적인 휴전 협정이 타결된 이후로는 차츰 잦아들고 있다. 2010년대 현재 어느 정도 민주화된 미얀마에서는 라카인족, 샨족, 몬족, 카친족, 카렌족 등의 전통적인 반군 조직들과의 예전처럼 큰 교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버마족과 여러 소수민족들 간에 증오와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들은 미얀마 역사의 오랜 부분을 부대껴 살아왔고, 같은 상좌부 불교 문화권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부 카렌족과 카친족의 기독교 계열 반군과는 여전히 대립하고 있지만 8,90년대에 비하면 매우 완화된 수준이다. 하지만 일부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미얀마 정부에서 아직도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무슬림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 청소 문제가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아예 인도, 방글라데시로 추방시키거나 자국 내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처우 개선은 전혀 없이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화하고 군대를 주둔시켜 모스크를 강제로 불교 사찰로 개조하는 등의 행위로 국제사회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고 있으며 무슬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차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공립학교 또한 불상을 두고 불교 교육만 시킨다. 그런데다가 무슬림인 로힝야족 다수는 실업자라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이러다 보니 로힝야인들에게서 불교와 미얀마 정부에 대한 증오는 깊어져 가고있다. 결국 과격 이슬람 세력이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면서 로힝야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테러가 벌어졌다. 이렇게 헬게이트가 열렸음에도 미얀마 정부는 그저 군대투입과 같은 강경책으로만 나가며 억압만 일삼으며 각종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여기에 무슬림들의 추방을 강행하고 있는데, 여기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반발하고 있으며 반군들의 보복으로 불교도 버마족들을 공격, 죽이면서 당연히 이주하려는 사람이 뚝 줄었다.

2012년에 일어났던 무슬림과 불교도 간의 폭력 사태도 로힝야족 남자들이 불교도 여자 어린이를 집단 성폭행하고 산 채로 불태워 죽였고 당시 피해자 가족 등은 가해자들을 처단하겠다고 가해자를 내놓으라고 로힝야족에게 요구했지만 그걸 거부하고 모욕을 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또 로힝야족은 영국이 버마를 식민지화한 후 영국의 보호 아래에서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버마족 입장에선 영국에 빌붙어 이득을 취하는 민족으로 앞잡이 같은 인식이었고 당시에는 로힝야가 버마족을 차별을 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당시 카친족이나 카렌족, 샨족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로힝야 무장단체가 이슬람 과격 단체의 지원을 받고서 최근에 결성된 것도 아니다. 시작은 1948년에 미얀마가 독립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수천 명의 불교도들을 축출하면서 발생한 반란이었다. 또 이후로도 1994년 한 마을을 습격하여 폭탄을 설치하여 주민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 2014년 국경 경찰 4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고 2016년에는 수백 명의 로힝야족 남성들이 칼과 화기류로 무장하고 국경 경찰 초소를 공격하여 9명을 살해하고 2명을 사로 잡고 상당수의 화기와 탄약을 탈취해간 사건 등등 지난 몇 십 년 동안 로힝야족 무장 단체는 계속해서 존재해 왔고 말썽을 부려왔다.

비이슬람 계열인 카친족, 카렌족 등의 일부 반군 조직도 여전히 미얀마 정부와 투쟁하고 있으며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버마족들을 보복 살해하며 저항할 정도로 원수지간이긴 마찬가지이다. 다만 카친족과 카렌족은 미얀마 정부군에게 탄압 받긴 해도 최소한 미얀마 정부에서도 자국 국민으로 인정하기라도 하지만 로힝야족은 그마저도 없다.

5. 지리

국토의 중앙을 2,170km 길이의 에야워디 강이 관통하고 에야워디(이라와디) 강 유역에 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그 주변을 아라칸 산맥과 샨 고원 등 산지가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최북단에는 해발 5,881m의 만년설로 덮여 있는 동남아 최고봉인 카까보라지 산이 있다. 그러나 2013년 미국인 앤디 타이슨이 이끄는 등산대는 근처에 있는 감랑라지 산이 11미터 정도 더 높다고 발표하면서 카까보라지를 성스러운 산으로 받들던 미얀마에서 난리가 난 바 있다.[11] 현재도 감랑라지 산이 더 높은지, 아니면 종전처럼 카까보라지 산이 더 높은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산이 워낙 험해 제대로 측정이 어렵고 감랑라지 산을 1970년 처음 오른 러시아 등산대는 여길 5691m로 측정했다가 나중에 재측정하니 5870m가 나오기도 하고 5892m가 나오는 등, 측정할때마다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아직은 카까보라지 산이 동남아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다.

동쪽엔 길이 2,815km의 살윈 강이 흐르지만 워낙 절묘하게 산 속만 흐르는지라 에야워디(이와라디) 강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은 남부에, 행정수도인 네피도는 중부에, 역사도시인 만달레이는 북부에 있다. 그 북쪽은 동남아시아의 일반적인 풍경과 전혀 다른 티베트에서 이어지는 고산지대며, 반대로 남쪽의 길쭉하게 말레이 반도 입구까지 내려가는 지역은 동남아시아 어디 가도 안 꿀릴 맑은 인도양의 해변이 아직 덜 개발된 채 산재해 있다. 옆나라 태국을 보면 세계적 관광대국의 조건은 갖추고 있지만 정권이 못 받아줘서 지금 같은 상태인 것.

버마의 기후는 건기와 혹서기, 우기로 나뉘며 여타 동남아지역과는 비슷하나 비교적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다. 한국의 겨울 즈음인 건기에는 밤엔 춥고 낮엔 따뜻하며 건조하고, 한국의 봄 무렵에는 극도로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다 5월에서 6월쯤 오면 우기가 찾아와 적게는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800mm 정도부터 많게는 5,000mm를 넘는 많은 양의 비를 뿌린다.

에야워디 강 상류 지역은 열대가 아닌 아열대 기후를 띄고 있어서 건기의 밤엔 온도가 0도 가까이 내려가며 혹서기 때 같은 때도 그렇게 온도가 높지 않다. 만달레이 등의 중류 지역은 강수량이 1,000mm가 안 되는 곳도 흔할 정도로 건조한 지역으로, 혹서기에는 극도로 뜨거우며, 뻐꼬꾸처럼 강수량이 620mm까지 떨어지는 지역도 있다.

양곤이 있는 에야워디 강 하류 지역은 강수량이 2,500mm 정도로 많고 1년 내내 더운 편이다. 이 지역은 삼각주가 펼쳐져 있어 인구가 밀집해 있다.

서북부 해안의 시뜨웨 등의 라카잉 지역과 남동부 해안의 드웨 등의 뜨닝다이 지역은 바람과 산맥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아주 많아 5,000mm를 넘긴다. 마지막으로 따웅지 같은 고산 지대는 1년 내내 온화한 고산기후를 띈다.

6.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얀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경제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얀마/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30~40년대에는 아시아 최대의 생산국이었으며, 1960년대까지도 이런 위치에 있었다. 쌀 외에 티크(목재)도 수출하지만 군부 독재의 여파로 서방 국가들이 가하는 경제 제재 크리로 수출량은 매우 저조하다. 이는 쌀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1988년 이후 수출길이 모두 끊어져 ASEAN 내부에서나 근근히 교역이 이뤄지는 형편. 의외로 2016년 기준 최대의 대두 생산국이다.

놀랍게도 석유가 나는 산유국이다. 수출품목에 어엿하게 석유도 끼어있다. 해상 가스전도 현재 개발중이다. 포스코대우를 주축으로 해서 대한민국 대기업들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지하자원 중 특이하게 보석 원석이 있다. 미얀마의 보석 생산량은 대단한 수준인데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루비의 90%가 미얀마산이라는 통계가 있으며, 비취,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의 생산량도 상당한 양이다. 이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주된 수입원이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미얀마에 경제 재재를 가할 때 금수 목록에 미얀마산 루비를 특별히 지정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이어진 서방의 제재로 전반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지만 풍부한 자원에다 인구도 6천만명에 육박하기 때문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민족간의 갈등이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다.

미얀마는 1999년부터 250만명의 자국 노동자들을 해외로 보내고 있고 이 중 한국이 세번째로 많았고 1위가 태국이었다.네이버

7.1. 마약 수출국

놀랍게도 미얀마는 아프가니스탄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양의 아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고 가난한 농민들이 양귀비를 재배하고 심지어는 불교사원에서 엄청난 규모의 마약이 발견 및 적발되어서 미얀마 정부도 골치를 겪고 있지만, 마약근절 상황은 아직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 그리고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되는 마약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게다가 한국(!)까지 노릴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어서 유엔마약사무소의 주최로 네피도에서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의 마약책임자들이 참석해 미얀마산 메스암페타민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마약 생산 중에서도 특히 유명했었던 곳이 바로 골든 트라이앵글(마약). 미얀마 동부의 살윈강 유역 인근으로,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 3국의 국경이 만나는 삼합점 부분이라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1990년대까지 세계 아편 생산의 중심지였다. 이곳을 장악하던 마약 카르텔인 쿤사는 1995년 투항할 때까지 대규모 사병 조직을 가지며 지역을 장악했다. 쿤사가 투항한 뒤에는 카지노 사업과 차 재배로 업종을 바꾼 상태이다.

8. 군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버마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살생(殺生)을 금한 불교(상좌부 불교) 교리를 지키려는 불교 신도들의 시위로 1977년 3월 2일 징병제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탄 슈웨의 군사 독재 정권 하에 있는 상황이라 소년 등을 상대로 불법 징병이 이루어지다가 2011년 1월 17일 경 다시 공식적으로 징병제를 시행하였다.

9. 외교

미얀마/외교

10. 문화

10.1. 언어

공용어는 미얀마어로 지정되어 있다. 미얀마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SOV 어순을 띄고 있는 언어다. 미얀마도 다민족국가라서 카렌어 등의 각 소수민족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예전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의외로 한국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있거나 사용인구가 많은것이 아님에도[12]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익히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미얀마 TV에서 한국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영화를 틀때 한국어 음성 그대로 나오다보니까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어를 중급 이상으로 학습하는 경우는 그렇게까지 많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드라마, 영화, K-POP 덕질을 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미얀마내 한국 기업이나 한국으로의 취업을 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0.2. 종교

기독교이슬람을 비롯하여 여러 종교가 있지만, 상좌부 불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미얀마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며, 특히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이라도 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야 할 정도다. 전체인구 중 93 ~ 95% 이상이 불교 신자이므로 절대다수이다. 생활에서나 문화에서나 불교의 영향이 곳곳에 보인다. 거리에 나가면 아침마다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승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절을 젊은이들의 만남장소나 공동체 모임 장소로도 많이 사용하며, 미얀마 남자들은 성인식 차원에서 몇 주 혹은 몇 달간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림이 문화적인 통과의례다.

근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것을 귀찮게 여겨 생략하는 청년들이 늘엇다고 한다. 또, 추문에 시달리거나 소비지향주의에 많이 물든 땡중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는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으면 이런저런 계율을 지켜야 하므로, 일부러 평생 사미로 머무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불교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10계처럼 상좌부 불교의 5계를 일상적으로 지킨다.[13] 그러나 도덕적으로 교육을 잘 받지 못 한 시골 사람이나, 가축을 도축하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합리화하려고 각종 변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미얀마 내 불교 종파는 선불교나 명상과 같은 일반인들도 참여하기에 어렵지 않은 특징을 내세운 신흥 종파도 두각을 드러내며, 불교계 각종 이슈는 비교적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일반 학교 교사들 또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미얀마 문화와 불교 문화를 함께 가르치는 전인적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미얀마인들을 어릴 때부터 깊이 있게 불교 문화에 스며든다.

절에서는 대승불교와 많이 다른 상좌부 불교 문화가 많이 살아있다. 대승불교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미얀마의 절에서 금박을 붙이고 연꽃을 합장한 손에 끼우는 등 행위가 많이 낯설 수 있다.

불교가 존숭받는 나라답게 미얀마의 절들은 정말 크다. 보통 절들이 대학 캠퍼스만 한 경우도 적지 않고, 각종 역사적인 절들과 도심 곳곳에 자리한 절들 외에도, 새로 지어지는 절도 상당히 전국에 많다.

불교의 영향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불교는 법률적으로도 보호를 받는다. 미얀마에서 불교를 존숭하지 않는 행위는 법적으로 처벌받는 범죄이다. 예를 들어 불교 사찰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갔다가 종교행사방해죄로 경찰서에 끌려간 외국인 관광객의 사례가 있다. 또한 몸에 불상 문신을 한 네덜란드 관광객이 종교모독죄로 추방당한 예도 있다. 불교적 그림이나 불상은 불교의례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악의적인 표현이 없다고 하더라도 비불교적인 용도로 사용함 자체를 불교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외국인 입국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부분.

한편 서부 및 북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영국 식민 시절에 들어온 기독교를 믿는 민족들도 많으며 방글라데시와 접한 서부 라카인 주에는 로힝야라고 불리는 영국 식민 시절에 미얀마로 이주한 벵골인 무슬림들의 후손들도 많다. 다만 로힝야는 기원이 기원인지라 미얀마 정부의 조직적인 박해를 받는 중이다.

10.3. 기타

미얀마인들은 유난히 숫자 9를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미얀마 국영 라디오 방송국 주파수는 999 kHz에 할당되어 있으며, 1990년대 이전에는 45짯, 90짯 지폐가 통용되기도 했다. 마이크로 버스로 합승 택시 영업을 하는 운전 기사들도 승객이 9명이 되면 자리가 남아도 출발하며 출발 시간이 되어도 9명이 안 되면 9에서 모자라는 수만큼의 가축, 심지어 돌이라도 싣고 출발한다.

11. 과학

미터법을 공식 도량형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얀마는 비(非)미터법 3개국 중 하나다. (나머지 2개국은 미국라이베리아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미얀마 혼자 쓰는 (동아시아의 척관법과 비슷한) 전통적 도량형을 독자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만, 미얀마를 식민통치한 영국의 영향으로 현재의 미얀마 단위계는 야드파운드법과 어느 정도의 호환성을 갖추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야드파운드법과도 혼용한다. 한 예로 미얀마 도로의 표지판에서 라틴 문자가 병기된 부분을 잘 보면 거리 단위가 마일로 표기되어 있다.

2013년 들어 미얀마에서도 미터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12. 스포츠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고 프로 리그를 운영 중이다.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 축구 강호였으나 현재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최약체로 전락해버렸다.그냥 세계적으로 아예 최약체 수준이다. 자세한 건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축구 인프라는 아시아에서 하위권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11년까지 AFC프레지던트컵에 참가했으며 2012년부터 AFC컵에 참가하고 있다. 2010년 AFC프레지던트컵에서 야다나르본 FC가 키르기스스탄의 도르도이 비슈케크를 1-0으로 꺾고 우승한 기록이 있다. 최고 인기팀은 수도 양곤에 위치한 양곤 유나이티드로 매 경기 구름 관중을 동원한다.

그 외에는 역시나 다른 동남아국가와 마찬가지로 세팍타크로가 인기가 많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2개, 은메달1개, 동메달1개를 세팍타크로종목에서만 획득했다.

13. 관광

파일:myanmar20140917.jpg

외교부의 미얀마 여행경보 지도. 방글라데시중국, 라오스, 태국 접경 지역은 철수권고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은 여행유의 지역이다.

치안 상황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를 받았던 특성상 개발도상국임에도 상당히 좋은 편으로, 경범죄 발생률이 낮다. 미얀마 사람들도 불심으로 어디 가서 안 밀리는 나라답게 대체로는 온화하고 친절한 편이다. 그래도 엄연히 여행 유의 국가이며 국경 지대 등 일부 지역들은 철수 권고 지역으로 발령되어 있다. 간혹 불교이슬람교 간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범죄 발생률이 낮은 건 의외는 아니라 곳곳에 사복 경찰이 깔려있다는 뜻이다. 아니 대놓고 쪼리 신고 돌아다니는 제복 경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14] 무엇보다 미얀마의 경우 여행 경보가 발령된 이유는 다름 아닌 시위 때문인데,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시위로 인해 여행객들이 휘말리기 때문에 저런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사복 경찰이 깔려 있는 것도 치안도 치안이지만 곳곳에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도 강하다. 다만 중국-태국 접경 지역은 위험하고 외국인 출입 금지 지역은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집트가 한때 그러한 시위로 인하여 국가적 위기에 빠진 것을 볼 때 내려진 조치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국경지대 마을에 한정하여 잠시 다녀오는 것 외에는 육로로 입국할 수 없으며 비행기로만 입국이 가능하였으나 2013년 8월에 태국-미얀마 간 4개의 국경을 통해 외국인의 육로 이동이 허용되었다. 에어아시아에서 쿠알라룸푸르-양곤, 방콕-양곤 구간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중. 2012년 9월 대한항공에서 인천 - 양곤 노선을 취항했고 2012년 12월에는 아시아나항공도 양곤에 취항했던 적 있지만 2016년 3월 1일부로 철수하고 만다. 여행자수표나 신용카드 등의 사용은 어렵고, 구겨진 달러는 받지 않으므로 달러 지폐는 신권을 구비해 가는 것이 좋다. 최근 미얀마 주요 도시에 ATM이 보급되었다.

과거에는 입국비처럼 강제로 일정액수를 날강도 수준이던 공식환율로 태환 을 환전해야 하는 법률이 있었지만 현재는 관광업에 악재라 해서 폐지되었다.외국인들이 많은 주요 관광지에서 환전하는 가게를 흔히 접할 수 있고(물론 가게마다 환율이 다르다!), 100달러가 제일 좋고 낮은 단위일수록 손해이므로 신중히 교환하자. 달러나 짯 모두 받는 경우가 많지만 무조건 짜트로 낸다고 해서 이득인 게 절대 아닌 경우가 많다(…).

여행자들에게는 옛 수도이자 제1도시인 양곤, 제2도시이자 사가잉, 잉와 등 근교에 볼거리가 많은 만달레이, 고대 도시 바간, 소수민족인 샨족의 생활터전인 고산 지대의 인레호수 등이 유명하며, 그 외에도 북부 정글지대나 남부 나팔리 해변 등이 속속 외국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도시간의 이동은 버스(주로 야간 버스로 밤새 이동한다)나 비행기를 통해 한다. 그외 이동의 90%가 택시다. 참고로 택시비는 전부 흥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특히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로는 양곤크고 아름다운 황금 쉐다곤 파고다나 고대도시 바간이며 대한항공에서 밀어주고 있는 우베인 다리는 만달레이 근교인 아마라푸라에 위치하고 있다. 바간은 천년 전 바간 왕조의 유적인 약 2800개가 넘는다는 파고다(탑)들이 장관이다. 앙코르 와트와 함께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유명하다. 유적지 보존을 위해 외국인에게 지역입장료를 받는다. 미얀마 국민들은 불교를 보편적으로 믿고 이 파고다를 세우는 것을 최고의 공덕으로 여겨서 미얀마 국토 전역에 지금도 많은 수의 파고다가 세워지고 있다. 황금바위 짜익티요도 독특한 풍경으로 나름 유명한데 교통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아직은 숨겨진 보석 취급.

미얀마인들 또한 성격이 나쁘지 않고 여행자들에게 친절한 편이다. 현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거의 없다.[15] 요약하자면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있지 않아 다소 불편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삼가면 상당히 안전한 배낭여행을 즐길 수 있다. 미얀마에는 인도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인도계를 조심하라는 말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도는데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확실히 인도계가 좀 더 대하기 불편한(...) 경향이 있다.[16]

미얀마는 특히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각종 천혜의 자연환경, 광범위한 고대유적들이 만나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태국과 달리 지역이 너무 커서 비행기로 이동해야 하며 각 지역마다 문화유적 보호를 위한 입장료를 받고 있는 점, 외국인에 대한 호텔 숙박비 등의 차별이 있어 물가에 비해 저렴하게 이용하기는 어려우나 그덕분인지 라오스태국의 저질 장기체류자가 없어 더 천혜의 여행지로 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육로가 개방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태국에서 건너오고 있으므로 외국인에게 순수하고 친절한 미얀마 사람을 볼 날도 많이 남지 않았다.

이런 점 때문인지 한때 아웅 산 수 지 여사는 외국에다 "절대 버마에 관광 오지마라, 당신들이 관광을 하면서 뿌리는 돈으로 군사독재정권의 살을 찌우는 결과가 생긴다."라고 얘기한적도 있다.

미얀마 여행시 주의사항은 아직까지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나고 그 시위에 휘말린다면 신변 안전에 보장을 신경쓰라는 것이다. 이 해당 사항은 자신이 여행도 여행이지만 여행 겸 특수 목적으로도 온 언론인들이 주로 해당된다. 일반인들의 경우는 시위 문제에서 손 떼고 여행만 하는게 미얀마 시위에 참여하는 국민들에겐 안타깝지만 낫다. 그러니 그 근처는 안 가는 것이 좋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해도, 한국인들도 시위에 동참한 홍콩과는 규모부터가 이미 다르다.

특이사항으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이웃 국가인 인도, 방글라데시, 태국이 좌측통행을 함에도 1970년부터 우측통행을 하고 있다. 본래는 영국의 영향으로 좌측통행을 했으나, 1970년에 영국 식민지 시절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윗동네인 중국 및 인도차이나 반도 3국과 같은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17] 그러나 제대로 된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갑자기 바꾼 탓에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자동차로 우측통행을 하는 기형적인 교통환경이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일본, 태국 등 좌측통행 국가로부터 우핸들 자동차를 수입하게 되었으며, 우측통행 국가로부터 좌핸들 자동차를 수입하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미얀마 정부가 우측통행에 적합한 좌핸들 자동차를 많이 보급하기 위해 일본, 태국 등 좌측통행 국가로부터의 자동차 수입을 금지하고 한국, 중국 등 우측통행 국가로부터의 자동차 수입만 가능하게 한 상태다. 다만 기존에 이미 수입한 우핸들 자동차는 여전히 타고 다닐 수 있다.

2018년 8월부터 인도와의 국경 2곳(Tamu-Moreh / Rihkhawdar-Zokhawthar)이 외국인 여행자에게 개방되었다. 인도 북동부 임팔로 육로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몇 년 전에 시행된 미얀마-태국 육로국경 개방까지 해서 육로로 인도와 동남아를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 중국으로 배를 탄 뒤 여기를 지나 이란, 터키, 유럽까지 비행기를 한 번도 안 타고 육로로 가는 것도 과거엔 미얀마가 폐쇄국가라 불가능했는데 이젠 가능해졌나 했더니.. 그러나 이젠 건너편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주가 위험지역이라 불가능해졌다.[18]

14. 국가 상징

14.1. 국기

파일:버마 연방 국기.gif

버마 연방이었던 시절 사용했던 국기다. 1948년 1월부터 1974년 3월까지 사용되었다.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mm-73.gif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부터 1989년 출범한 미얀마 연방 시절까지 사용했던 국기다. 파랑은 평화와 성실함을, 빨강은 용기와 단호 그리고 독립을 위한 혈투를, 하양은 청순함과 미덕을 상징하고 파랑 바탕에 있는 톱니바퀴와 벼이삭은 이 나라가 농업 국가임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 농업을 통한 근면, 성실, 노동을 뜻하는 문장이다. 속뜻으로 농민과 농업 그리고 쌀 생산지임을 뜻하기도 한다. 얼핏보면 청천백일만지홍기와 거의 일치한다.[19]

파일:미얀마 국기.png

현재는 이렇게 바뀌었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총선을 앞둔 2010년 10월 21일에 바꾼 국기로, 1943~45년에 사용된 국기인 가로 삼색기에 꼰바웅 왕조의 국장이었던 공작새 문장 대신 오각별을 넣은 도안이다. 이전까지 사용된 국기와 공통점은 흰색 별이 유일하다.

국기의 황/적/녹 배열이 리투아니아와 같으나 리투아니아의 국기에는 별이나 문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황/적/녹 색깔이 미얀마 국기가 좀 더 밝은색이다.

14.2. 국가

'세상 끝까지(ကမ္ဘာမကျေ)'는 사야 틴(Saya Tin)이 1930년 작곡했으며 1947년에 가사를 붙여 같은 해 채택되었다. 도입부가 특이한데 미얀마 전통음악 형식이라고 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미얀마에서 국가 연주를 지켜본 바로는 미얀마 국가 연주시 아래 유튜브에 있는 미얀마 전통 음악 도입부는 나오지 않고 바로 트럼펫 음이 들리며 구시대적 전자 음악 MIDI로 편집한 것과 같은 국가가 연주된다. 이 나라 최고의 정치당 NLD 행사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국가가 연주되는 것 2018 몰라마잉 시 NLD 행사에서 확인하였다.

미얀마 내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 공식 행사 전에 미얀마 국가를 재생/상영한다. 관객 모두 기립해야하며 노래가 끝나는 부분에서 몇초간 묵념을 한다.


00:42초부터

15. 대중매체에서

람보 4: 라스트 블러드에서 람보의 주요 사냥터 활동지로 나온다.

16. 이야깃거리

일본의 애니메이션 난다 난다 니얀다의 주인공 니얀다는 국내에서 미얀마로 불린다. 별명은 아니고 이름이 비슷하고 인지도도 매우 애매해서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

2018년 3월 3일, 미얀마 출신 노동자 윈톳쏘씨가 한국인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한 후에 세상을 떠났다. 윈톳쏘씨는 작업 중 사고로 뇌사에 빠진 상태였으나 가족들의 동의하에 장기를 기증하게 되었고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장례 지원금 또한 기부되었다고 한다.http://v.media.daum.net/v/20180305190711191?f=m


[1] 2006년까지는 양곤[2] 월드 팩트북[3] 남아공,스리랑카,트리니다드 토바고,피지 기타 등등... 고향에 농사질 땅이 없는 가난한 소작농들이 주로 이주하였다.[4] 주로 아삼 지방과 마니푸르 지방의 상층 카스트들이 이주했다.[5] 힌두교에서는 외국인과의 통혼을 금기시하는 반면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성과 비무슬림 여성과의 결혼을 권장하는 편이다.[6] 원래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성과 기독교인,유대교인 여성과의 통혼은 권장하는 반면 무슬림 남성과 불교,힌두교도 여성과의 통혼은 허용하지 않는다. 양곤 시에 정착한 무슬림 상인 상당수는 정식 결혼을 올린 게 아니라 몰래 애인삼아서 현지처를 둔 것이었다...[7] 영화 람보 4만 해도 미얀마가 저지르고 있는 소수민족 탄압의 악랄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8] 이원복 교수 교양만화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 따르면, 미얀마 민족분쟁 근본 원인이 영국의 '국경선 멋대로 긋기'라고도 해석했다.[9] 18세기 이후 이주한 화교와 북동부 코캉 일대의 한족, 이렇게 두 부류가 있다.[10] 인도 미조람에 거주하는 미조인과 가까운 민족이다.[11] 미얀마는 세계 최초로 이 산을 등정한 게 일본인(1996년 오자키 타카시랑 2명의 티베트인 셰르파가 등정)이고 이후 외국인이 연이어 올라간 것에 불만을 품고 2014년 8월, 미얀마인으로만 이뤄진 등산대를 보냈으나 이들은 조난당해 2명이 행방불명되어 사망처리되었고, 구조 헬리콥터까지 추락하여 조종사 1명이 죽으면서 등정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장비도 개판이고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올라간 게 드러나서 미얀마만 개망신당했다(...)[12] 말 그대로 미얀마에 거주하는 소수의 한국인 정도나 사용하는 수준이다.[13]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과 마약을 삼가라.[14] 불교 사원은 기본 맨발 출입이고, 어차피 더워서 샌들이나 슬리퍼 류 신는 게 백배 낫다.[15] 택시 같은 경우도 일단 어디로 가면 추가요금 내야 한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멋대로 가놓고 돈 더 요구하질 않는다![16] 실제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시내에 돌아다니며 환전해주는 인도계 사람들이 있는데, 돈을 접어놨다가(...) 두 번씩 센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지인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냐고 혼낸다 환전 후 그 자리에서 직접 세보도록 하자. 사실 그냥 길거리 환전을 안 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요즘은 은행에서 환전해도 큰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17] 당시 미얀마가 사회주의 국가였는데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좌측통행을 하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태국이 모두 자본주의 경제체제라서 이들과의 단절 및 윗동네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의 친선관계 강화를 위해 중국과 같은 우측통행으로 바꿨을 수도 있다.[18] 정 육로로 유라시아를 횡단한다면 위쪽 러시아중앙아시아 쪽으로 지나가면 가능하다.[19] 이 때문에 예전에는 국제적인 체육대회가 열리면 대만 측에서 미얀마 국기를 흔들곤 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압력으로 자국의 국기를 반입할 수 없자 대신에 이와 비슷한 미얀마 국기를 들고와서 흔들면서 본인들의 애국심을 표출했다. 하지만 미얀마가 국기를 바꾸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옛일이 되어버렸다 괜찮아 아직 사모아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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